참부모님 생애노정
제5절 일본동경 유학시절
1941.4월 ~ 1943.9월
1. 눈물로 떠나는 유학길 185
2. 와세다대학 부속 와세다고등공학교 전기공학과 수학 189
3. 원리 구명과 사상 정립 199
4. 항일 지하학생운동 211
5. 자아주관 수행 216
6. 최저에서 최고까지의 생활체험 228
7. 원수 사랑의 실천 242
1. 눈물로 떠나는 유학길
유학수속
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식장에서 대응변을 했어요.서장 군수들을 앞에 놓고 일본놈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들이 깠어요. 초등학교 학생 때부터 그래 놓으니... . 그래서 경찰서장한테 붙들려 가서 담판한 사람이라구요. '이런 이런 내용이 옳지 못한 데 이런 경우에 가만 있겠느냐?' 이래 가지고 그때부터 레테르가 붙은 거예요.
이래 가지고 내가 일본 가기 위해서 교장 선생님 추천받고,도항증 내고 전부 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서장을 만나러 내려가니까 아 이거 요주의 청년이라고 해서 싸우던 일이... . 가 가지고 서장하고 들이 싸운 거예요. 그래야 된다구요. 그런 뭣이 있어야 돼요
경부선 열차 '히까리(光)호'
1941.3.31., 14:10 발
선생님이 1941년도에 일본에 유학을 가기 위해서 부산을 향해 서울역을 떠날 때 서울 장안을 바라보면서 불쌍한 이 민족을 누가 책임지겠는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일본에 갈 때 철도역에서 -그때는 히까리호가 있었다구요- 서울역에서 그 열차를 타면서 '내가 갔다 올 때는... . 패자의 졸렬한 사나이로 흘러갈 것이 아니야. 나라를 구도하기 위한 붉은 마음을 품고가는 사나이의 길은 하늘이 보호한다. 내가 돌아올 때는 너는 희망에 벅차 있을 것이다'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2차대전 때에 한국에 폭격 한 번 안 했다구요.
서울에서 부산 갈 때 '내가 일본에 가서 배워 올 것이 뭐냐? 이 나라를 해방하고,자라고 있는 우리의 2세들이 희망찬 전진적 출세를 할 수 있는 길을, 자주적 독립국가를 갖추어 가지고 출세 할 수 있는 길을 내가 닦아 주어야겠다' 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용산역을 떠나고, 옛날 한강 다리를 지나면서 데스리(난간)를 잡고 눈물을 떨어뜨리던 것이,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것이 지금도 생각나요.
고아와 같은 이 민족을 두고 갈 때 외투를 뒤집어 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통곡하면서 갔습니다.일본 아주머니가 기차 안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보고는 '청년,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나요? 그러한 슬픔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슬픔은 오직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꽉 메워져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눈물이 끊이지 않아서 눈이 붓고 코와 입술이 붓도록 울었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눈물, 하늘을 사랑하고 싶어 했던 그 사연, 이 민족에게 심어 주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그 하소연이 이 민족 앞에 기필코 남아질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 만족 앞에 남아지지 않으면 통일의 젊은 가슴에, 통일을 원하는 사나이의 가슴 가슴에 남아 달라고 선생님이 부탁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관부(關釜)연락선 '쇼께이마루(昌慶丸)'
1941.4.1., 02:40 발
이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린 것으로 말하면 선생님은 그 어느 애국자 보다 더 많이 흘렸습니다.선생님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던 1941년 4월 1일 새벽 2시에 부산 부두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비록 떠나지만 너를 더욱더 사랑하고, 너를 위하여 더 많은 눈물을 흘려주마' 고약속했던 것입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는데 그때 부산에서 연락선을 타고 가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그때는 왜정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쌍한 이 민족을 누가 속박에서 구원해줄 것이냐? 내가 밤을 세워 별을 바라보면서 정성을 들였고, 이 민족의 해방의 한 날을 위해 정성을 들이며 눈물을 흘리며 이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내가 이제 떠나가니 돌아 올 때까지 하나님이여, 지켜 주십시오,' 하며 기도했습니다. 새벽2시40분에 떠났는데, 그때의 심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과 더불어 가는 길에 애국이 있는 거예요. 눈물과 더불어 가는 데에 효자가 있는 것입니다. 충신도 마찬가지예요, 성인이 가는 길도 마찬기지입니다. 눈물과 더불어 생애를 거쳐가는 데에 성인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역사, 전통을 남겨 이어받게 할 수 있는 역사가 있다면 눈물과 더불어 남겨준 역사입니다. 그 전통의 역사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눈물과 더불어 전통을 이어 나오는 그 자세를 망각해서는 안돼요.
2. 와세다대학 부속 와세다고등공학교 전기공학과 수학
1941.4.초 ~ 1943.9.30
비정한 심지
내가 원수의 나라에 가서 발딛는 그 시간부터 내 눈물까지 거둔다 이거예요. 거기서부터 내가 갈 길을 정해요. 내가 일본의 명승지를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어요. 나라 없는 백성이 그런 간판 붙은 데는 안 간다 이거예요. 내가 일본에 가 있을 때 집에서 돈을 안 보내 줘서 돈이 없는 것도 아니예요. 일본 사람들이 보고 있는 데서, 그런 원수들 앞에 자기 위신과 체면을 세우려고 안 하는 거예요. 또, 나타나려고 안 했다는 거예요.
일본에 와서 좋은 곳에 구경하러 다니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후지산(富士山)에도 가지 않았고, 아다미(熱海), 하꼬네( 箱根), 닛꼬(日光)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땅에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고 나서 '저기는 좋은 곳이니 가보자'라고 말씀하신 후에야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주의입니다.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의 다까다노바바의 길을 하루에 두 번씩 걸었습니다. 잘 걸었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으로써 와세다의 도쯔까쪼우(戶塚町)를 다까다노바바부터 걷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있는 굽은 길, 거기에 있는 전신주 등 여러분들이 기억할 수 있는 곳에는 선생님의 눈물이 스며 있다고 생각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 지옥을 자진해서 찾아가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젊은 청춘시대는 한 때입니다. 청춘시대는 한 때다 이거예요. 레버런 문은 가장 귀한 때를 잘 넘긴 사람이라구요. 어떤 것이 플러스되느냐? 젊은 적에 놀고 싶은 대로 놀고 뭐 데이트나 하고 춤추고 이렇게 헛된 데 휩쓸리는 것보다, 핍박을 받고 조롱을 받으며 참것을 본질화하기 위해서 이 길을 가는 거예요. 선생님의 노정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이 길은 언제나 마찬가지예요.
전기공학 전공
내가 어떤 일을 하겠다는 그런 관이 없어 가지고 안되는 거예요. 벌써 20대가 되었으면 관을 가지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이다' 딱 해 가지고 일생동안 싸워 나가야 그 사람이 역사적인 인간이 되든가 뭘 하나 남긴다구요. 뭐 눈치 봐 가면서 환경에 적당히 박자 맞추고 살겠다고 애쓰는 사람은 흘러가 버리고 마는 거예요.
딱 정한 다음에는 그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투쟁해 나갈 수 있는 용맹심이 있어야 돼요.그걸 싫다 하지 않고 전부 다 소화 할 수 있는 배포가 있어야 돼요.
제일 중요한 때가 스물 셋까지예요. 18, 19, 20, 21, 22, 23, 24세까지의 기간입니다. 24세까지는 완전히 자기의 전인생을 걸 목표를 정해야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수양을 하고 정성을 들이면 알게 되어 있다구요.
선생님은 공부를 할 때 전기,과학을 공부했다구요. 과학을 공부했는데 내 갈 길을 알아요. 내 갈 길을 알았거든요. 내가 과학공부를 하면서 벌써 전기 방면에 손을 댄 것은... . 큰 일을 하려면 수학적인 계산이 빨라야 됩니다. 감정력이 빨라야 된다구요. 그건 보이지 않는 것을 관리하는 것이니 종교와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현상세계에서는 전기 현상이 발견되는 거예요. 운동하는 모든 것에서 말이예요. 이제 현대 과학문명을 전부 다 몰라 가지고는 앞으로의 새로운 종교이념을 세울 수 없겠기 때문에 그런 면으로 공부했는데, 그 공부한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됐어요.
선생님은 머리가 수리적입니다. 학생시절에 모자 공장에 두 번이나 가서 주문했는데, 그래도 작아서 반 정도는 찢어 버렸어요. 그렇게 머리가 크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뇌세포가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무엇이든지 한 가지 일을 신경써서 하면 보통 사람이 10년 걸리는 것을 3년 이내에 해 버립니다.
생명을 건 심각한 공부
선생님은 공부하는 것도 그러한 마음으로 합니다.공부를 할 때에 왜 피곤을 느끼느냐? 자기를 위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피곤을 느끼는 것입이다. 그러나 삼천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여기 이 한 페이지에 달려 있고 한 문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단어를 가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살고 한 단어를 감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망한다는 마음으로 더욱 정성들여 그 한 단어를 가하자 하는 심각한 마음으로 공부해 보라는 겁니다. 머리가 나쁘긴 왜 나빠요? 여러분, 심각한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있어요? 생명을 걸고 하라는 거예요.
내가 공부하는 것도 세계를 위해서입니다.나는 나를 위해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공부했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대학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이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책 한 페이지 가지고 몇 달 동안 연구하고,한 제목 가지고도 몇 달 동안 생각하며 들여다본 적도 있습니다. 중요한 인생의 근본문제, 실존문제를 놓고 그랬습니다. 그런 문제는 생명을 다해 가지고 대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해결되면 내 개체 뿐만 아니라 만민이 해방될 수 있고 하늘땅의 해원성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집요한 질문
우리 같은 사람은 전기공학을 한 사람인데,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에게 질문하면 전부 곤란해 한다구요. 내 얼굴만 보면 '저 녀석이 또 무슨 질문할까' 이런다구요. 자꾸 물어대니까 자기가 딸리거든요.
학창시대에 내가 선생을 이론적으로 코너에 몰아넣어 가지고 언제나 골탕먹였습니다.선생님이 강의하면서 내가 일어설까봐 언제나 힐끗힐끗 보고 그랬었다구요. 평소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학교 선생님 한테 한번 질문을 시작하면 대답할 수 없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번 일어서서 질문을 시작하면 학교 선생님의 얼굴이 새빨개질 때까지 질문하는 거예요. 특히 이론이나 변론같은 때는 학교 선생님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친구도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자주 물어 들어가기 때문에 나만 보면 저 구석에 가는 것입니다. 질문을 안 할 것 같으면 가운데 앉지만 그렇지 않으면 선생이 저리 가는 겁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강의하는 거예요. 나 안 보려고 그러는 거예요. 뿌리를 파더라도 끝까지 파야 되는 거예요. 또 물리학을 배울 때 '이 공식을 누가 만들었어요? 내가 해보기 전에 어떻게 믿어?' 이런 식이었다구요.그러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어요.
일본말 속도 훈련
선생님은 머리가 나쁘지 않다구요. 일본에 가 있을 때에도 일본 사람하고 경쟁을 해도 선생님보다 빨리 일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본 사람들 중에서도 없었다구요. 그래서 머리가 좋은 거라구요. 기억력이 뛰어나요.
훈련을 해 놓았습니다. 연구를 했다구요. 앞으로 일본 청년들까지 내 손으로 소화해서 세계를 위해서 써먹겠다고 다짐한 것이 있어요. 보통의 일본 사람들 이상 상식이 있는 변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 가지고 훈련을 한 것입니다.
일본에 와서부터 일본말을 배우면서 일본인과 1분간에 누가 더 많이 말할 수 있는지 경쟁을 했었습니다. 지면 선생님은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일본어를 말하는 데에 있어서 스피드를 내는 것이 제일 첫째가 됩니다. 싸움을 할 때도 일본어를 다른 사람 한 마디에 세 마디를 합니다. 연구 했다구요. 그러므로 지도자가 되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운동실력 연마
선생님이 학생 시절에는 일본에 후다바야마 라는 씨름의 대표 선수가 있었는데 지금도 살아 있는지? 만약 선생님이 씨름을 했다면 한번 겨뤄보고 싶었는데. 겨를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씨름을 잘해요. 중고교 시절에는 전교에서 일등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씨름 챔피언이었어요. 뜀뛰기라든가, 무슨 운동이나 못 하는 게 없어요. 복싱까지 했으니까요. 못된 사람은 '떡' 하면, '훅' 굴러간다구요. 그런 훈련까지 했다는 거예요. 그건 왜 그랬느냐? 싸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위대한 혁명을 해야 되겠다, 세상을 한번 바로잡고 천리에 부합되는 평화의 세계를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소신을 가진 이상 거기에는 몸이 건강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큰일을 못 해요.
가다가도 휙- 하게 되면 숨은 실력이 드러납니다. 여러분들에게 자기 보신법도 가르쳐 줘야 되겠어요. 바쁘면 낚아채서 넘어가게 한다는 거예요. 그런 훈련을 다 했다구요. 그건 왜? 내가 잘먹고 잘살려고? 내 얼굴이 생기기는 이렇게 생겼지만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 원수들이, 악당들이 만일 길을 막게 되면, 옆구리를 차고라도 가야 합니다.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다면 절대 가야 된다구요.
하숙생활
선생님이 일본 땅에서 하숙을 구할 때, 문전박대를 당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어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플 정도예요. 그렇지만 사탄의 자식을 하나님의 이상적인 자녀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게 하나님의 심정이예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몇천 번이나 충고해 가며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그거 정말이라구요.
선생님은 이전에, 선생님이 하숙했던 여러 곳이 있었음을 생각하면서 그중 한 하숙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하숙집의 아주머니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때의 1백 엔이라고 하는 것은 큰 돈입니다. 그 시대에 하숙비가 얼마였는지 알아요? 한 달에 11엔이었어요.
선생님이 유학 시절에 하숙집에서 지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어요.하숙집 아저씨가 매일 술을 먹고 늦게 돌아와서 부인을 두들겨 패는 거예요. 그리고 그 부인도 성격이나 기질이 그렇게 순종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자도 신경질적이 되어서 '아!' 하고 소리치면 동네 전체가 떠들썩해요. 선생님도 자다가 그것 때문에 깬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요.
그래서 아주머니를 불러 가지고 "왜 매맞으며 살아요? 고향으로 돌아가든지 하지" 하니까, 싸움하고 나서 빌고 사랑하는 것은 결혼 안 해 본 사랑은 모른다나요? 이거야 원. 그거 그럴 것입니다. 싸움하고 나서는 사랑하려 해도 무슨 자격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저 빌고 이래 가지고 하는데는... . 한두 대 맞는 것은 무서워도 '저 녀석 습관이니 그렇다' 고 생각하면 되지만, 그리고 나서 며칠씩 자기를 위하여 사랑해 주는 게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그 맛에 산다는 것입니다.
3. 원리 구명과 사상 정립
'원리' 구명과 체계화
문총재는 이 원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만신창이가 되고,하루에도 열두 시간 열네 시간 기도한 것이 몇년이 계속됐어요. 그 비참한 모습을 여러분이 알아요? 원리책에는 피와 땀과 눈물이 엉클어져 있어요. 페이지마다의 내용에 엉크러진 선생님의 피눈물이 여러분들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선생님이 젊은 청춘을 희생시켜 투입한 거예요. 피와 눈물이 여러분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성경만 보고 원리를 찾은 게 아니라구요. '창세기가 타락의 장이면 묵시록은 복귀의 장이다. 이것이 생명나무로서 이렇게 되었으면 생명나무로 복귀되는 거다. 그것이 안 맞으면 성경은 거짓말이다' 했어요. 왜? 씨를 심어 가지고 난 것은 씨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게 맞지 않으면 안 돼요. 나오는 순이, 씨에서 움터 나오는 순이 같아야지, 그것이 위로 뻗어야지 옆으로 뻗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원리의 가르침은 추리적 방법을 통해서 섭리사관에 일치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종교 중의 주류 종교는 기독교가 아닐 수 없다 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우리 같이 똑똑한 사람은 '기독교의 끝을 뽑아 보자, 뿌리를 뽑아 보자' 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걸 뽑다보니 천지창조가 어떻고, 하나님이 뭘하고, 하나님이 왜 사랑을 좋아하나 하는 것들을 밝혀 낸 것입니다.
처음부터 성경이라는 감투를 쓰고 성경을 표본으로 했다면 이런 길을 개척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타당한 이론을 중심삼고, 우리 심정세계에 관계되는 내용을 중심삼고 최고로 깊은 골짜기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탐지해 보게 될 때, 그 머무를 수 있는 닻 중에 최고의 닻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누가 나 한테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혼자 이런 것을 터득해 가지고 체계를 만들어 가지고 휘어잡아 가지고 주머니에 몰아 넣어... . 꿈같은 얘기예요. 하나님이 나에게 있어서는 사랑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무정한 하나님이고 무자비한 하나님입니다. 동정 안 해줘요. 동정해 주면 사탄이 참소하거든요. 죽을 곳에서도 스스로 개척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그걸 전부 파헤쳐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지독한 사람이니 그런 체계를 만든 것입니다. 그 세계가 얼마나 방대한지 손댈 수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고 수많은 성현들이 있었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 못 했어요.이런 영계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 가지고, 옛날의 도인들, 도주들을 다 만나 가지고, 변론해 가지고 천상세계의 모든 것을 체감해 가지고 천법에 의해서 전부 다 경계해 가지고 물리쳐야 돼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하나님한테까지 가 가지고 정의에 입각해서 변론해 가지고 천상세계의 어인을 받지 않고는 지상에서 통일 못 합니다.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
선생님은 신비로운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우주의 근본은 무엇이냐고 알아본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남으로부터의 대답이 '부자의 관계다. 아버지와 아들이다' 였어요. 결론이 그거라구요.
하나님이 계신가 하고 생각하던 옛날의 기억을 돌이켜 더듬어 보면 진지해집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머니로부터 왔다. 그럼 어머니는 어디에서 왔는가.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까? 인간의 시초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정말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걸까? 인간의 시초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이런 것을 모두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입니다.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맺는 데는 어떤 관계 아래서 맺는가? 역사적 관계일까, 시대적 관계일까, 미래의 관계일까, 무슨 관계일 것인가?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 관계는 무엇을 중심으로 하며 무엇을 키 포인트로 하고 있을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자신의 위치와 가치를 알게 됩니다. 또한 관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 자체는 뭘까? 하나님의 희망은 뭘까?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일까? 우리 생활처럼 하나님에게도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정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계의 심정은 무엇을 중심한 것일까?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 희망이나 심정 등의 문제를 모두 총합해 결론을 내리면 '인간' 이라는 것이 됩니다.
그럼,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엇으로 인하여 연결되는 것일까? 그것은 심정기준을 통과해 가지 않으면 모릅니다. 깊숙한 곳에 들어가 기도해 보라구요. 기도하며 물어보라구요. 우주의 근본은 무엇인가? '부자(父子)이다. 부모와 자식. 최초의 기준으로 인간과 하나님이 부자관계라 한다. 천적 심정, 천척 혈통을 중심삼은 부자관계가 우주의 근본이다.' 한다구요.
'하나님 아버지!' 하고 외치면 우주의 모든 것이 거기에 모입니다. '아버지!' '아버님!' 이 말은 전체에 대한 하나의 정의입니다. 모든 것의 표상의 중심어로서 느껴져 옵니다.그런 입장에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어떠한 생각이 솟아나도 하나님이 자신의 부모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자신에 대해 '그렇다'라고 하십니다. 거기에 이르러 의심할 수 없는 부자관계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근본은 부자입니다.만물은 자녀를 위한 정원입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알면 창조원리가 자연히 나오게 됩니다. '나의 마음과 몸은 이러한 관계로 되어 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사위기대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을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수수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확실히 알면 창조원리를 자연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선생님이 이걸 놓고 제일 골몰했던 거예요. 우주의 근본 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9년 동안이나 몸부림쳐 가지고 해결했어요. 알고 보니 얼마나 간단한지, '야, 요렇게 간단한 걸 몰랐구나. 다 갖고 있었는데 몰랐구나' 이랬어요.
상응상보작용의 원리
학자들이 말하기를, 우주는 상응상반작용(相應相反作用)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게 하니예요. 상응상반작용이 아니라 상응상보 작용(相應相補作用)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다 혁명적인 말로서 망언이라면 망언일 수 있는 거예요.
전기원리를 보면 플러스 마이너스는 서로 하나되지만 플러스 플러스, 마이너스 마이너스 끼리는 반발 하지요? 그런 논리를 세우게 되면... . 먹구름이 밀려와 가지고 소낙비가 내릴 때 우르르 꽝꽝하고 번개가 치는 것은 수억 볼트의 음전기와 양전기가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수억 볼트의 플러스 마이너스 전기가 한거번에 나타나는 거예요? 그거 어떻게 설명 할 거예요? 이것이 내가 박사되기 위해 쓰려 했던 논문 내용입니다.
수억 볼트의 플러스와 수억 볼트의 마이너스가 한꺼번에 나와 가지고 꽝- 하고 부딪친 거예요? 플러스 플러스와 마이너스 마이너스가 합하지 않고 한거번에 나타난다는 그런 논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플러스 플러스 전기가 서로 합하고 마이너스 마이너스 전기가 서로 합해 가지고 부딪치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를 세우지 않으면 해설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기원론에서 말하는 플러스 플러스 끼리는 반발하고 마이너스 마이너스 끼리는 반발한다고 하는 그 이론은 어떻게 되느냐? 전기 원론으로 볼 때 합한다고 그 논리가 모순 같지만, 아니라는 거예요. 정의가 달라요. 플러스 마이너스가 완전히 상대를 결정했을 때는 보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파괴하면 우주의 공약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해야 돼요. 보호하려니까, 하나의 완전한 주체와 대상 앞에 또다른 플러스가 오고 또다른 마이너스가 오게되면 그것을 파괴시키기 때문에 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창출해 낸 결론이 뭐냐? 우주공약 가운데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하나되면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플러스와 플러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는 서로 반발하는데, 반발하는 그 작용은 반작용이 아니라 보호의 작용이라는 것 입니다. 오늘날 작용을 중심삼고 볼 때 서로 반발하는 것은 반작용이 아니라 보호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사상정립과 이론투쟁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전혀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도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성서를 연구하기도 하고 종교관계 서적이나 보통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철학서를 가지고 와서 읽었습니다.
와세다대학 정경과에 다니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그 친구는 공산주의를 공부하고 있어서 그 친구와 격론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또 노방에서 큰소리로 연설한 적도 있었습니다. 벚꽃이 만발하여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그곳에서도 했습니다. 그 시대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내일의 청년은 이러이러한 식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고 외쳤습니다. 그때 예언했던 것이 지금 다 맞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어정어정 구경와서는'어떤 젊은이가 저렇게 열렬하게 호소하고 있지, 대체 누구야?'하며 머리를 디밀어 보고는 '어어 누구 아니야!' 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교실에서는 말이 없습니다. 말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선생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같은 20대부터 투쟁한 사람이예요. 공산당의 두목들, 이북에 들어가서 장관하는 녀석들 중에서 내 친구도 있습니다. 왜정 때 '학창 시절에는 너하고 나하고 같이 합동으로 투쟁했지만, 미래에는 결렬될 것이다 이 자식아' 그러던 것이 실감이 난다구요. 내가 오늘날 이와 같이 공산주의를 때려잡는 괴수가 될 줄 그들은 몰랐다구요. 난 벌써 알았어요.
진화론 문제
찰스 다아윈 같은 사람이 쓴 <종의 기원(種의 起源)>을 보면, 그는 진화론을 기원으로 약육강식이라는 논리를 제창해서 힘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하여 새로운 문화권을 형성하는 것을 정당화 시키는 놀음도 했습니다. 이런 별의별 놀음이 다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종의 기원이 뭐냐 이거예요. 근본문제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걸 생각하게 될 때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 오늘날 철학적인 관점에서 의식이 먼저냐 사유가 먼저냐 하는 것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거예요. 근본에 가 가지고 인간의 근본이 뭐냐? 원숭이에서 사작했느냐, 또 다른 무슨 종의 기원이 있느냐 하는 문제, 이러한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눈은 물질이예요. 물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눈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할 때 눈이 그냥 생겨나고 싶어서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이라구요. 코는 가만히 있는데 눈은 왜 움직여요? '왜 눈이 움직여?' 할 때에'움직이고 싶어서 움직이지' 하는 것이 진화론식이고 변증법식이예요. 눈의 목적은 보는 거예요. 보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거예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거예요. 코는 먼지가 붙어도 가만히 있는데 눈은 왜 이렇게 자꾸 깜박거리느냐 이거예요. 왜 그래요? 왜 그러냐 하면 수분이 증발되어 마르니까 수증기를 뿌려 주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구요.
눈썹은 왜 났어요? 먼지를 박기 위해서 났어요. '왜 그렇게 돼 있느냐?' 할 때,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되었지... .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벌써 이 눈이 생겨날 때는 태양이 있고, 공기가 있고, 먼지가 있고, 수증기가 증발된다는 천문학적, 박물학적 지식 기반 위에서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먼저냐 의식이 먼저냐 할 때 어떤 것이 먼저예요?
인간 근본이 어기서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인간 자체의 의식이라는 자체의 발전적 작용의 어떤 원인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근본적인 작용이 있고 방향성이 있고 목적관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을 먼저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인간이나 모든 만물들이 제멋대로 진화 발전한 게 아니고, 반드시 작용이 이래야 되고 방향이 이래야 되고 목적이 이래야 된다는 의식의 결정적인 목적 실체로서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는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 내용을 놓고 내가 옛날 학생시절부터 공산당하고 싸운 것입니다. '야, 이 자식아! 진화론이 뭐야? 찰스다윈의 종의 기원이 뭐야? 이 미친 자식!' 하고 그때부터 싸워 나온 얘기입니다.
사랑의 철학자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떻게 나왔느냐?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선생님도 이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그리움이 있었다면 하나님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공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이 나라의 주인을 그리워하고,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성현들을 그리워하고 존중시했습니다. 하나님을 무한히 존중시한 동시에 역사를 지탱할 수 있는 중심적인 사상의 주인공이 있으면 그 주인공을 존중시했습니다. 존중시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에 급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찾아진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남과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하느냐? 자신의 의식이 몽롱하게 될 때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미쳐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 가지고 망한다면 하나남은 없는 것입니다. 극에까지 가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 하면 사랑의 철학자가 되어 있다구요. 레버런 문 철학은 사랑의 철학인데, 사랑의 철학은 레버런 문에게 물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그러면 사랑의 철학을 만들어 낸 것인가, 발견한 것인가? 그렇지요. 만들어 낸 것은 아니예요. 발견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랑의 철학자예요. 천지애(天地愛)의 철학자예요. 비로소 선생님 시대에 와서 사랑을 중심삼고 전부 다, 가정으로부터 종족, 세계까지 풀어 나가고 있는 겁니다.
내가 나는 건 이것밖에 없는데, 아무리 영계를 들추고 세상 역사를 다 들춰 봐도 이것밖에 없더라 이거예요. 또 시험을 해봐도 이렇게 하면 악마가 물러가고 하나님이 환영하는데, 이걸 누가 알아줘야지요, 그거 알아주게 될 때까지 40여 년이 걸렸어요.
4. 항일 지하학생운동
장래 대비한 조사활동
나는 이십대 시절에 하나님 앞에 이 민족을 구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일본 국민이 천황을 위하는 마음보다도 내가 삼천만을 대신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망한다고 믿었습니다. 일본이 선을 먼저 쳤으니까 그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이 참을 치면 남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속으로 '치고 싶은 대로 다 쳐 봐라. 더 이상 칠 수 없는 날에는 뒤집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동경에서 공부하고 있을 그때에 선생님은 동경을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장차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학자들은 어떻고 노동자들은 어떻고 전부 다... . 실제 조사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뒷골목 거리를 많이 다녔다구요. 전부 다 밀사를 보내고, 다녀왔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범죄하는 게 아니예요. 이 나라는 언제까지 망해야 돼, 하늘의 복기섭리의 프로에 있어서 이런 때가 오거늘 그때에 해당할 수 있는 기간이 되면 망해야 된다 이거예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 동경 역전에 내릴 적부터 싸워 온 거라구요. 말은 하지 않지만 다니는 길가야, 넌 알 것이다,한민족이 가는 길을. 나는 애국자 원치 않아요. 길을 건너가나 오나, 나무를 바라보나 '이 만물, 원수의 땅에 있는 만물 너는 하늘에 속할 것이어늘 나를 알 것이다' 이러고 다닌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이 일선 장병이 되어 가지고 사탄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게릴라가 되었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모르는 것이 없어요. 학교를 가게 되면 학교 사무처 책임자를 만나 가지고 학교의 비밀을 전부 조사했어요. 일본이 어떻다는 것을 다 알고, 얼마나 가겠다는 것을 점치고 있었어요. 그 다음에 대학 총장으로부터, 고위층 대신(大臣)의 집안 일까지 했었습니다. 내가 글을 잘 썼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거예요.그래서 일본 배후세계의 흑막이라든지, 부패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인 유학생회 지하활동
여러분은 나라를 잃어버린 서글픔을 당해 보지 못했을겁니다.선생님은 그걸 잘 알고 있어요. 대한민국이 왜정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선생님도 일제에 대항해 싸운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일제시대에 지하공작을 한 사람입니다. 그때 무슨 문제가 있으면 전부 다 나한테 밀으라고 했습니다, 나한테. 내가 그때 도감을 맡았어요. 도감 책임자였습니다. 그래 가지고 죽을 사지에 가거든 나 한테 밀으라고 한 것입니다.
문선생은 정의를 위해서 모가지를 벌써 내던져 버렸다구요. 졸장부가 아니라구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현해탄을 건너와 가지고 부산서부터 안동까지 차바퀴 밑에 붙어 가지고 상해임시정부까지 파송하는 그런 일도 했습니다. 북경을 중심삼고 하관에서부터 안동현까지 차로 연락하는데는 차바퀴 밑에서 여덟 시간, 아홉 시간 달리는 그런 놀음까지 했다구요. 북경에서 김구 선생 휘하에 들어간 녀석들은 요즘에 알고 보니 중국에서도 유명한 사람들이 되어 있더구만요. 그런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裕仁)를 어떻게 다스릴 것이냐? 그 때문에 여러 가지 공작도 펴고, 지하운동도 하고, 최고의 실력자들도 연결 해 가지고 그러한 길을 개척한 거예요. 어제 일처럼 잊혀지지 않아요. 선생님의 마음 전체를 투입했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것 입니다. ...중략...
내가 학창시절에는 공산주의자하고 친구였습니다.일본 천황 유일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에 있어서 공동 폭표 아래 공동전선을 펴 나갔습니다. 그때는 그들이 친구 중의 친구요, 없어서는 안 될 동지 중의 동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갈라 졌으냐? 그들과 우리가 대하는 방향과 목적이 상반되기 때문에 갈라진 것입니다.
요주의 인물
선생님의 꽁무니에는 언제나 형사들이 따라다녔습니다.내가 한국에 나오게 되면 그들이 한국에 미리 전화를 해서 아무개가 지금 한국 어디에 간다고 연락을 합니다. 이래 가지고 선생님이 정거장 개찰구를 나오면 원치 않는 사람들이 와 가지고 지금 오시냐고 합니다.
학생이었지만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그러나 보통사람은 선생님을 잘 모릅니다. 한국이 일본 정권하에 있었을 때, 선생님은 몇 번이나 유치장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이곳 도오꾜오(東京)에 와 있을 때에는 한 달에 한번은 경찰서에 불려 갔습니다. 그 경찰서는 다까다노바바(高田馬場) 거리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쪽에서 오른편에 있었습니다.
20대 때는 일본 경관에게 고문도 당했어요. 그렇게 싸워 나왔습니다.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면서 선생님은 당당했어요. 그런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요스가와의 다리 난간 기둥을 빼들고 싸우던 청춘시절을 잊을 수 없어요.
나라사랑 하늘사랑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뭐 하늘을 사랑한다구요? 내 앞으로 이제 전부 다 한번 재심사를 하려고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하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정 때에는 헌병과 경찰이 따라다녔지,이북에 가서는 공산당하고 싸웠기 때문에 공산당들이 그랬지, 이남에 와서는 대한민국이 그랬지, 선생님 팔자가 그런 모양이예요. 내가 뭐 자기네들 담을 넘어 노략질을 했나? 누구보다도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 내가 이 나라를 위해서 흘린 눈물이 한 독 찰 거라구요. 무슨 애국자 애국자 해도 나 부럽지 않아요.
나라의 문제를 염두에 두었을 때는 당당하게 애국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그러면 그것을 넘어서 충신의 중심이 됩니다. 천국 충신의 고개를 넘어서, 거기서 성인, 성자가 됩니다. 그렇게 해 가는 것이라구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없는 사람은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을 잘 알아두라구요. 일본을 알지 못하는 남자라고 여긴다면 큰 잘못입니다.
5. 자아주관 수행
1일 2식 배고픈 나날
선생님이 30평생 배고파 보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그래서 배고픈 그리움을 내가 참 잘 압니다. 왜그랬냐 이거예요. 하늘 앞에 맹세했고 하늘이 주신 맡은 바의 사명이 있는데,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사나이로서 맹세한 그 기준을 어느 기반까지 닦아 놓지 못한 내가, 하늘 앞에 책임 못 한 내가 어디 밥을 먹을 수 있어요? 밥을 보면 밥이 '이놈' 하고 호령을 하는 겁니다. 그런 세계를 알겠어요? 밥이 호령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지 않을 만큼... . 그러니 30평생 배고파 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구요.
그러니 밥을 먹는 데도 자기를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배고픈 것은 왜인가를 따지는 거예요. 공적인 일을 위하여 피땀을 흘렸기 때문에 배가 고픈 것이라면 거기에 얼마나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피땀을 흘렸느냐? 나를 위했느냐? 공적인 일을 위했느냐? 이렇게 스스로 비판해 보고 공적인 일을 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밥그릇을 대하게 될 때, '오냐, 어제 아침에 먹던 밥보다 너를 먹고 더 빛나게 보다 공적인 일을 해줄께' 이렇게 생각하면 밥이 웃는다는 거예요. 밥이 소리를 치고 좋아한다구요. 그런지 어떤지 여러분은 모르지요? 어서 어서 이날이 있기를 바란다구요. 그런다구요. 밥 먹는 시간이 아주 신비로운 시간이라는 거예요.
좋은 것을 갖기 위해, 좋은 것을 먹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하면서 식당에 가더라도 고급 식당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식당에 가더라도 제일 말석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리의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런 놀음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때는 쌀이 모자라던 판인데, 젊은 놈들이 가서 먹기 시작하면 한이 없어요. 내가 몇 그릇까지 먹었느냐 하면 열한 그릇까지 먹어봤어요. 아, 그렇게 먹는다구요. 짜왕(밥공기)같은 것으로 먹기 시작하면 열한 그릇도 금방이예요. 그거 냄비로 하면 한 냄비도 못 될 거라구요.
어느날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 고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시대인 그때에는 식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식권이 있어서 '몇 그릇이나 먹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먹어 보자'고 친구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다까다노바바를 쭉 내려가면 절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식당이 쭉 늘어 서 있어요. 거기에서 선생님은 닭고기 계란덮밥을 일곱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일곱 그릇 먹고 나서는 목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배가 고픈 것보다도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일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선생님이 항상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예요. 선생님은 항상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을까요? 자신의 배만을 채우고 있으면 자신으로부터 민족이 멀리 도망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자기에게서 멀리 달라나 버립니다. 배가 고파서 먹고 싶지만, 그 이상으로 민족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진리이면, 선생님의 신조였습니다.
이제부터 한 4년 동안 2식주의(二食主義)를 실행하라구요. 전부 다하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30세까지, 고등학교 시절부터 2식주의예요, 세 끼를 안 먹고 살았어요. 그래서 배고프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밥 한 끼를 그런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구요. 그건 거룩한 일이예요.
헌 옷과 고개숙인 걸음
선생님을 보면,입는 옷은 헌 옷가게에서 산 싼 것들이었습니다. 그 옷을 보면 반들반들 윤이 납니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는 기분을 내서 포마드라든가 무엇인가를 바릅니다. 바람이 불거나 태풍이 불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바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어떠한 봄날이나 여름날에도 바르지 않았습니다. 또 걸을 때에는 밑에서 부터 45도 이상 위를 보지 않았습니다.
머릿기름도 30세 때까지는 안 발랐다구요. 맨 처음에 머리 올릴 때는 기름을 발랐지만, 그다음에는 안 발랐다구요. 그래, 머리가 자꾸 내려오는 거예요. 될 수 있으면 머리를 숙이고 다녔어요. 땅을 보고 다녔다구요.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
선생님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여러분들처럼 새 옷을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전부 다 고물상에 가서 헌 옷을 사서 입었습니다. 천명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한 사나이가 어찌 뻔뻔스럽게 갖출 것을 다 갖추어 대로를 활보하며 다닐 수 있느냐 하면서 나왔습니다. 천리의 공법 앞에 치러야 할 대가를 청산하지 못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차면 전차 속의 학생들 가운데 뭐 차려 입은 학생들,잘났다는 여학생, 남학생들을 바라보며 비교하는 거예요. 너희들의 웃음 결에는 너희 청춘이 흘러가고 너희 일생이 흘러가지만 나의 침울한 이런 생각 가운데에서는 내 일생이 빛이 날 것이고 장래의 희망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나에게는 미래가 보장되고 희망이 있지만, 너희들은 미래의 희망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선생님은 30평생 옷을 하나도 안 사 입었어요. 전부다 새 옷을 안 사 입었어요. 왜? 은신해야 돼요, 은신. 나타나서는 안된다 이거예요. 때가 있는데 나타나면 되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저 뒷골목의 고물상에서 제일 나쁜 옷을 사 입으려고 했고, 갖고 다니는 모자도 한 곳 두 곳 찢어진 것을 쓰고 다녔어요.
불편한 잠자리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찬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추웠어요. 잠을 잘 때도 편안히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닦아 나올 때는 모든 것이 미완성이기 때문에 똑바로 누워서 자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잤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뜻을 알고 난 후에는 내 몸뚱이를 함부로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선생님이 혼자 살 때도 다리를 펴고 살지 않았습니다. 미쳐 도를 닦지 못하고 책임도 못했는데 다리를 펴고 살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나왔습니다.
지난날을 회고해 보면 잘먹고 잘자고 했던 것은 하나도 안 남습니다.추운 자리에서 신문 한장, 가마니 한장을 덮고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눈물짓던 것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재산될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없으면 저나라에 가서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내놓을 것을 쌓아 두려면 고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불쌍하고 거지와 같은 생활을 자주 했습니다.추울 때, 신문 한장이 비단 이불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것을 체험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사실을 말하니까 사실에 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통일 청년들에게는 그런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생활 안 해본 줄 아세요? 다 해봤습니다. 이불 한 채 갖가다 너댓 사람이 아주 다정스럽게 자니, 참 좋더구만요. 자다 보면 다리가 입에 척 걸쳐 있어도 차버리는 사람이 없고, 입으로 발가락이 들어가면 그것을 젖인 줄 알고 빠는 사람이 있어요. 정이 들면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유혹극복과 정욕주관
전차, 동경을 도는 전차가 있어요? 야마데센(山手線), 선생님은 계속해서 시부야(澁谷)에서 다까다노바바(高田馬場)까지 다녔기 때문에 그걸 탔다구요. 타게 되면 여자애들이 계속해서 다닌다구요. 그때는 선생님이 말쑥한 타입도 취하지 않는다구요. 머리는 이렇게 해가지고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옷깃 같은 데도 구석구석 찌들어 몇 년이나 입었는지 고약한 냄세가 나는 것 같다구요. 그러고 있어도 이상하다구요. 여자가 모두 유혹해 온다구요.
신기한 것은, 내가 영화관 같은 데 가면 말이예요... . 학생시절에는 냄새 나는 교복을 벗고 깨끗이 갈아 있어요. 교복은 냄새가 나지요? 머리카락은 늘어뜨리고 입은 꼭 다물어서 색기도 없는데, 20대 30대 여자들이 앉으면 자기들도 모르게 선생님의 손을 쥐어요. '뭐요? 당신 손이 내 손을 쥐지 않았소!' 하면 '그렇습니까? 앗!' 하고는 얼른 손을 뗍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러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선생님이 눈길을 한 번만 주더라도 여자들이 전부 다 호감을 갖고 따라왔습니다.어디서나, 서서 먹는 초밥집에 가더라도 여자가 숨어 있는 거예요. '당신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좋아서 어쩔 수가 없어요.' 이러길래 '뭐가 좋아, 이 간나야!' 그랬어요. 그런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선생님 때문에, 뭐라 할까, 혈서를 쓴 여자도 있어요. 유명한 재벌의 딸이예요. 외동 딸. 그리고 학교 가게 되면,황해도의 부잣집 딸이 있었어요. 제일 갑부의 딸이 있어요. 매달 테이블의 서랍을 빼게 되면 말이예요. 갑부의 딸이 나 없을 때 돈 봉투를 갖다 쌓아 놓는 거예요. 세상 남자 같으면 '얼씨구나, 복 바가지 떨어졌다' 하겠지만 쓸 것이 아니라구요. 한 달, 두 달, 석 달 쌓아 놓는 거예요. 그것이 그냥 쌓여 있는 거예요. 이걸 보고도 회수 안 하면 6개월 지난 후 내가 불러 앉히는 거예요. 불러 놓는 거예요.정색을 하고 훈계해 줘요. 어머니 아버지 입장에서 '민족의 운명이 이런 자리에 있는데 너 여인으로 와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 애국의 심정을 다 바쳐도 이 나라가 소생할 수 없는 비참한 운명길에 서 있는데, 너 여기 일본에 와 가지고 차별받고 비굴한 환경을 못 면한 네 자신이 이럴 수 있느냐' 그랬다구요. 그러던 그 여자가 세상에 그런 남자를 잊을 수 없다고 오빠같이 모시겠다고 했다구요. 그런 여자를 내가 약혼까지 시켜 주려고 노력하다가 내가 졸업 때가 되어서 졸업하고 나왔지만 말이예요, 그런 역사가 많다구요.
여자들이 나를 농락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안 했어요? 선생님이 유학시절 일본에 갔을 때도 여자들이 벌거벗고 이불 속으로 몰래 들어오는 것을 여러번 당했다구요. 그렇지만 내가 일본 여성들 앞에 죄를 안 지었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세계 모든 여자를 맡겨도 좋은 남자로 보기 때문에, 그러한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올바른 전통을 지금부터 더럽히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 이 기반을 세우기 위해 선생님은 얼마나 고생했는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자기의 성욕을 콘트롤해야 돼요.만약에 미인들 틈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이, 생식기가 일어나서는 안 돼요. 콘트롤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해요. 그런 길을 가기 위해서 얼마나 선생님이 투쟁했겠는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말뿐이 아니예요. 그길을 간 거예요. 그런 길이 통일교회의 뿌리가 되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선한 아버지가 되어야지요? 내가 우리 아들딸 앞에도 누구한테도 부끄럽지 않아요. 아버지로서 하늘땅 앞에 당당하지, 어머니 앞에 당당하지, 선생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 아니예요.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지요. 그래, 통일교회의 뿌리가 깊다는 걸 알고 그 뿌리에 여러분들이 접을 붙여 가지고 자라야 푸른 동산에서 여러분들이 선생님 같은 나무가 되는 거예요.
인정을 뛰어넘어
내가 지금 생각해도, 이젠 다 영계에 간 것을 내가 알고 있지만 말이예요, 수많은 각국 사람을 위해 내가 옷도 수천 수만 벌 해줬을 겁니다. 집도 사 주고 텔레비전도 사 주고 차도 사 주고 별의별 것 다 해줬어요.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 . 우리 어머니는 참 나를 사랑했어요. 나를 누구보다 사랑한 어머니인데 손수건 하나 안 사줬습니다.
왜정 때,신발이 없어 가지고 짚세기를 끌고 있는 그때 내가 일본을 출입하면서 신발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입장인데도 일부러 신발 한 켤레 안 사다 줬다구요. 내가 효도 할 수 있는 효의 자리는 다르다구요.
선생님은 일본에서 공부하던 학창시절에도 절대로 전보를 안 쳤습니다.역에서 집까지 한 20리 됩니다. 그런데 될 수 있으면 바람 불고 추운 날 또는 비오는 날에 걸어가면서 가만히 기도해 보면, '참, 훌륭한 분이 세상을 지었구나!' 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에 부모나 형제들이 와 가지고 쑥덕쑥덕하게 되면 고향의 맛을 다 잊어버립니다.그렇지만 해가 기울어 밤이 되었을 때와 또는 흰눈이 내리던 그런 밤의 추억들은 일생 동안 잊혀지질 않습니다. 조그만 선물이나마 양손에 번갈아가면서 들고 갈 때, 부모가 어떤 얼글로 대할까? 생각하면 아주 감상적인 시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기간이 얼마나 복된 기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자아주관 완성 과제
하늘땅 우주 통일이 문제 아니라는 것입니다.그 가운데서 제일 선결 문제가 몸 마음이 통일입니다. 내 몸 마음이 싸우고 있는데 세상이 하나되면 뭘해요? 그런 나를 어디에 갖다 세워요? 문총재는 거기에 누구보다도 피땀을 흘린 사람이예요. '우주주관 바리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는 것이 도의(道義)의 표어였어요.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세상만사와 어떤 연관을 갖기 전에, 자아주관 안성하라 그랬어요.
내가 나를 마음대로 콘트롤할 수 있으면, 내가 세계를 콘트롤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웃다가도 완전히 스톱할 수 있습니다. 이런 흔련을 해야 됩니다. '내가 이 눈을 깜빡깜빡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한테 훈련받을 수 없다. 내가 이걸 콘트롤 해야 되겠다'하면 훈련된다구요. 보통 사람은 귀가 움직이지 않는데, '귀도 움직여야 되겠다' 하면 전부 움직여요. 전부 다 콘트롤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손을 들 때 누가 여기를 간지르면, 나는 나 자신을 훈련했기에 웃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다구요. 그래야 불법적인 사랑까지도 주관할 수 있다구요. 사랑의 자리, 어떠한 여인이 있어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끌려들어가는 자리에서도 그래야 브레이크를 걸 수 있습니다. 먹는 것, 배고픈 것, 안 자는 것도... . 그게 필요하다구요. 언제나 공적이어야 됩니다.
방법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몸을 약하게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이 몸뚱이가 금식하고 이러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그러니까 마음에 몇 배의 힘을 가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어야 됩니다. 그렇게 힘을 가해 몸뚱이를 끌고 돌아다녀 가지고 3년 내지 5년 습관화시켜라 이겁니다. 그래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자는 문제입니다. 그다음에는 배고픈 것입니다. 그다음이 정력문제입니다. 이것이3대 원수예요, 3대 원수. 그렇기 때문에 밤을 세우면서도 그것을 수양의 과정으로 세워 나온 것입니다. 굶으면서도 수양의 과정으로 세워 나왔다는 거예요. 혼자 살면서도 수양의 과정으로 세워 나왔다 이거예요.
첫째는 배고픈 훈련, 그다음 둘째는 잠 안 자는 걸 훈련해야돼요. 그다음에는 보고싶은 것 참는 훈련해야 되겠다구요. '아이구, 먹고 싶다' 싶다는 것을 참는 훈련 해야 돼요. 잠자고 배고픈 것, 그다음에는 정적인 관계. '아,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아, 누구누구... .' 그런 걸 훈련해야 돼요. 그래 가지고는 뭘해야 되느냐? 그렇게 단련된 이 몸뚱이로서 당장에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선봉 정군으로 설수 있는, 이런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돼요. 그런 사람이 필요해요.
참을 찾아 나간다면 마음을 절대 위할 수 있는 몸이 되어야 합니다.이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늘땅에 하나님을 중삼삼고 90각도로 연결되면 동서남북 상하고저(上下高低) 어디에 가든지 압니다. 자동적으로 영계가 통해요.배우지 않고도 다 압니다.
문총재 같은 사람이 어떨게 천지의 비밀을 다 알겠어요? 그 경지에 들어가니까 다 알게 돼요.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공명되는 경지에 딱 들어가 보니 다 보이더라 이겁니다. 하나님도 보이고, 천상세계가 다 보이고, 역사가 보이고, 다 보여요. 왜? 참된 사랑을 통해서 관계 맺고 인연짓고 이상적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이 본래의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원칙이었기 때문에 그 경지에 들어가 보니 안 통하는 데가 없어요. 영계의 조상도 부르면 재까닥 나와 가지고 만나 뭘 물어 볼 수 있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참사랑의 이상으로 신인(神人)과 심신(心身)을 통일하는 곳입니다. 간단해요, 통일교회의 사명이. 하나남과 사람을 통일하고, 몸과 마음을 통일해요.
6. 최저에서 최고까지의 생활체험
전면적인 체험과 모진 훈련
별의별 인간들이 다 거쳐 나가는 그런 류의 생활 이면을 알지 못하고서는 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빈민굴 생활로부터 밥을 얻어먹는 일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체험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길이길이 세우고 싶었던 그 사연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해방될 때까지 기다려 왔습니다. 선생님은 해방의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온갖 일을 다 해봤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고락이 어떤 것인가를 다 알아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고락을 겪으며 살고 있는 인간들을 해방시키는 책임자가 되어 이들을 완전히 해방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습니다. 인간의 쓰레기와 같은 제일 밑에서부터 인간의 최고 영광의 입장까지 모두 연구해 보았습니다. 어디에 가도 친구가 생깁니다. 역시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환경에 부딪혀 그것을 뚫고 나가 목적점까지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령 내가 어떤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더라도, 아 통일교회 선생님이 밥벌이가 곤란해서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고 알면 그건 큰 오해입니다. 나는 당장에 어디 가든지 이 몸뚱이를 가지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도 여러분 못지 않게 희망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류를 종의길로 내몰아야 되기 때문에 선생님 자신도 먼저 종의 몸을 썼었습니다. 그러지않고는 여러분에게 종살이를 시킬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 길을 나올 때, 뻔뻔스럽게 임자네들과 같이 벗고 돌아다니고 구경하고 싶은 것 다 구경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나왔을 것 같아요? 아니라구요. 인중지말(人中之末)의 생활을 해내는 것입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오, 형제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주팔자가 어떠냐 하면 고물을 사게 돼 있는 거예요. 비참하다는 거예요. 햇빛을 바라보고 산 사람이 아니라구요. 머리를 숙이고 죄인같이 살아왔어요. 그런 훈련을 받아 나왔습니다.
시나가와(品川)의 빈민가
일본 유학시절에 선생님은 빈민굴에서부터 사창굴에 이르기까지 안 가 본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시나가와의 빈민가를 휩쓸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선생님에게는 비상한 가치관이 되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이 빈민굴에서의 생활입니다. 거기서 누더기 뒤집어쓰고 이를 잡던 생각이 지금도 간절해요. 솔기(옷의 두 폭을 맞대고 꿰맨 줄)가 있거든요. 그것을 이렇게 쭉 하면 핏줄이 짝 생겨나요. 이렇게 선생님은 거지굴에 가서 왕초 노릇을 해가지고 밥도 얻어먹고 별의별 일을 다 해본 사람입니다.
영광의 하나님만이 아니예요. 비참한 하나님도 되는 거예요. 그러니 그런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그런 자리에 가야 된다는 거예요. 영광의 하나님을 아는 것은쉬워요. 그러나 비참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쉽지 않아요.
또, 일본 나라를 알기 위해 빈민굴에서부터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 보니까 그 옛날의 흔적은 없더구만요. 그래도 몇 군데 남아 있기는 하던데. 그것은 원수의 나라인 그 일본 민족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책이 끝나면 제2권에는 일본 민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책 제1권에 기록하는 데 있어서 원수라고 기록을 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록으로 남길 수 없고, 행동의 실적을 남길 수 없는 길을 묵묵히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주꾸(新宿)의 뒷골목
여러분의 나라가 전쟁할 때 선생님은 일본에 와 있었는데, 신주꾸의 뒷골목 등을 쭉 돌아보곤 했습니다. 어디라도 들어가 여성들의 과거를 쭉 물어 봅니다. 맥주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러면 자꾸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술은 마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얘기를 합니다. ‘왜 이런 곳에 왔느냐?’ 계속 얼굴 보면서 ‘부모가 없는가 보군’ ‘어머니가 안 계신 거 아냐’ 라고 하면 점점 마음을 열고 ‘그렇습니다’ 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계속 연구를 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자신에게 플러스가 되는 것을 취해 옵니다. 나쁜 곳에 가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소화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주의입니다. 좋은 환경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사람은아닌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그녀의 부모 이상 슬퍼하고, 그녀의 오빠 이상 통곡할 수 있는 심정을 어떻게 유발시키느냐를 생각하며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리의 여인들을 대해 가지고 찾아가서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연을 캐 가지고 그런 여성을 어떻게 해방할 것인가 하고 눈물의 동지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맨 그런 사나이였습니다.
또 창녀 소굴에 들어가서 그들을 악의 소굴에서 빼 주기도 했습니다. 별의별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런 일을 했습니다. 이런 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선생님이 염려 해야 되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역사가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진정 그들을 위했습니다.
긴자(銀座)거리의 리어카꾼
우리 같은 사람은 안 해본게 없어요. 집에서 돈 보내 주게 되면 전부 다 못사는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 말이에요. 안 해본 게 없다구요. 노동판에서 리어카를 끌기도 했고 말이예요. 엄덕문이는 그런 거 할 줄 모르지? [예] 선생님은 안 해본 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경 시내를 훤하게 알아요. 선생님이 옛날 여러분들 같은 연령 때에 동경에 있을 때에, 그때 27개 구역을 리어카로 배달하는 배달부 노릇을 했어요. 찾아가서 한 거예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예요. 훈련이 필요해서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 운수회사면 운수 회사의 그 사람들을 설득해야 돼요. 몰라 가지고는 설득 안돼요.
선생님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일본 동경에 가면 긴자라는 번화가가 있습니다. 그 거리는 선남선녀들이 아주 잘 차려입고 다니는 일본에서 제일번화한 곳인데, 선생님이 학생복을 벗어 던지고 전신주를 실은 구루마를 끌고 가면서 ‘너 이상한 녀석들 길을 내준다 안 내주나 보자’는 생각을 하고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름에 전선대를 싣고 네거리를 가다가 이게 옆으로 이렇게 되어 가지고, 사람들이 보니까 큰일 났거든요. 십자도로를 건너다가 옆으로 되니까, 리어카가 삥 돌아가요. 그러니깐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도망가던 일이 눈에 선해요. 그래 놓으니 뭐 어떻게 저떻고 욕을 하고 그러던 일, 그런 등등을 잊을 수 없어요. 요전에 가보니까 그 도시의 옛 모습이 하나도 없어요. 추억의 발자국 남아 있지만 현실의 실상은 옛날과 다르다 이거예요. 그걸 볼 때 섭섭하더구만요.
가와사끼(川崎) 철공소와 조선소
지금은 다른 곳에 가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가와사끼의 철공소라든가 조선소에 가서 선생님은 노동을 잘했습니다. 가와사끼 조선소에 들어가서 말이예요, ‘빠지’라고 하는 석탄 싣고 다니는 통통선이 있습니다. 그 120톤 되는 것을 세 사람이 도 맡아서 하면 새벽 1시까지 끝내야 돼요. 남들은 사흘 걸리는 일을 한 시까지끝냈다구요. 한국 사람의 본때를 보여야 돼요.
그것을 하루에 얼마로 도급을 맡는 것입니다. 일할 때는 회사의 노동자들과 대결했습니다. ‘당신들은 이것을 몇 시간에 하겠는가’ ‘우리들은 6시간 안에 이것을 끝내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젊은 사람들을 모아 ‘4시간 안에 하자’고 하여 필사적으로 하는 거예요. ‘오늘 하루 하고 죽어도 좋다. 저들에게 져서는안 된다’하며 심하게 독려하며 시작합니다. 4시간에 한다고 했으면 3시간에 전부 해치웁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3일 정도는 잠만 잡니다. 젊을 때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구요.
모든 회사에 좋은 곳, 나쁜 곳을 통과하면서 거기서 증명서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만약 큰일을 하려면, 내 자신이 대중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모든 계급의 사람들을 즉시 지도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노동자 중의 노동자가 되어 봤어요. 노동자의 친구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형제예요, 형제. 형제인데 동생의 자리에서 희생을 하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밤도 새워 봤고 피땀도 흘려 봤고, 일하지 않은 몸으로 노동판에 가 가지고 일생 동안 노동하는 사람들한테 지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그때 그들과경쟁을 해서 이기고 나서 상금을 탔을 때의 그 행복감!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휴일 같은 때에는 가와사끼에 있는 회사 등에 자주 갔어요. 거기에는 유산탱크가 있는데, 노동자가 그 유산탱크 속에 들어가 정화하기 위해 원료를 죽 내려 보냅니다. 그리하여 그 장치는 몇년간 쓰게 되면 못 쓰게 되어 버립니다. 유산이 스며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교환하기 위해서 그 탱크 속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는 15분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 싸우면서 일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눈오는 날이나 태풍이 부는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하층 노무자들의 밥집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그런 때는 참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태풍이 불고 있던 때니까 거기서 손이 새까맣게 되어도 비에 맞아서 죽 흘러내려 깨끗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런 가운데서 땀을 흘리며 일합니다. 그 기분이 참으로 상쾌합니다.
수양하는 데는 꼭 조용하고 삼엄 장엄한 곳이나 깊은 산과 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조용한 곳에서만 공부가 된다는 것은선생님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공장의 몇 백만 마력의 모터나 엔진이 돌아가는 곳에서도 공부합니다. 그런 일을 잘 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온갖 인간 생활의 현장 체험
노동자 중에서 노동자가 되지 않고는, 노동자의 어버이가 되지 않고는 노동자를 구하지 못하는 거예요. 농민의 어버이가 돼야 돼요. 농민의 어버이적 사랑에 있어서 농사를 사랑할 줄 알고, 어촌에 가게 되면 어부 중의 어부예요. 그러니 여러분 이 시골에 가서 목동을 보면 선생님에게도 목동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농부나 노동자를 보면 선생님에게도 농부나 노동자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인생철학이 아닌 인간철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노동자도 되어보고 농민도 되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무엇이든 무엇이든 다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노동판에 가서 노동도 할 수 있고 목수 일도 잘합니다. 염전에 가면 소금을 젓는 가래질도 잘합니다.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구루마도 잘 끌고 구덩이를 파라고 해도 잘 팝니다. 다 해보았습니다. 구들을 놓으라면 놓을 수 있고, 벽이나 담을 쌓으라고 해도 쌓을 수 있고, 굴뚝을 쌓으라고 해도 다 한다구요. 무엇을 하든지 벗고 나서면 먹고 사는 건 문제 없다는 거예요.
저 산중에 들어가서 숯 굽는 것까지 전부 다 배웠다구요. 동발(동바리:갱내에 양쪽에 버티어 세우는 통나무)을 매는 것도 전부 다 배웠어요. 또 톱 가지면 무엇있는지 다 만듭니다. 해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가든지 양복만 벗어버리면, 옷을 갈아입으면 무엇이든지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일본에 가서도 안 돌아다닌 데가 없는 거예요. 어려운 데는 다 파고 다니면서 별의별 짓 다 해 봤다고요. 큰 회사 빌딩이 소사로부터 다 했어요. 최고의 장관, 대신의 비서까지 했다고요. 말도 빠르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만나게 되면 해치우는 것입니다. 유명의 필생(筆生) 노릇도 했습니다, 글 쓰는 것. 또 외교도 했구요.
회사에 나가서 일도 해보고, 글씨를 써서 팔아 보기로 했습니다. 어떤 때는 회사에서 현장 감독도 해보았습니다. 무엇이든 하라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사주 봐주는 것까지 했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들 만나면 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이론가를 만나면 이론가가 됩니다. 학자세계에 가 가지고는 학생 시대부터 교수들은 놀려먹고, 배고플 때는 교수들을 찾아가서 점심 사 달라고 했다구요. 그렇다고 억지가 아닙니다.
심리 감별 훈련
선생님이 요즘은 그러지 않지만 옛날에는 그런 일을 많이 했어요. 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어떤 느낌이 오느냐 알아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이렇다’고 생각이 될 때, 그것이 진짜 맞는지 안 맞는지 따라가면서 타진을 해보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랬지요?’하고 물어 봅니다. 그것은 영계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벌써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런 사람이지요?’하고 물어 보면 ‘어떻게 알지요?’하고 놀랍니다.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틀림없이 맞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저 방에 누가 있느냐, 좋은 일 하고 있느냐 나쁜 일 하고 있느냐, 좋은 사람이 살고 있느냐 나쁜 사람이 살고 있느냐 하는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안테나를 점점점 높여서 그렇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인연을 따라가지고 감별하는 감별사의 생활이 신앙 자의 생활입니다. 이제부터는 사람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마이너스 될 수 있는 사람인가, 플러스 될 수 있는 사람인가... 척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첫 인상만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선생님이 빠릅니다. 체휼신앙이라는 것은 영계에서 협조해서 하는 것보다 생활권 내에서 감정해 가지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면 곧 캐치합니다. 여러분들을 보기만 해도 바로 압니다. 보는 즉시 ‘아! 저 사람은 어디가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코가 이렇게 되어 있구나, 어깨가 이렇게 되어 있구나, 귀가 이렇게 되었구나, 즉시 캐치합니다. 그런 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연구를 하라구요. 눈 박사가 되려면, 눈을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어야 됩니다. 눈의 종류가 몇 종류나 되느냐 하면 몇 천 종류라구요. 눈꺼풀을 벗겨 놓으면 다 같겠지만 눈까풀을 씌워 놓으면 다 다릅니다. 그 눈동자가 왔다 갔다하면서 기쁠 때는 이렇게 하고 울 때는 또 이렇게 하잖아요. 눈을 보면 다 다르다구요. 눈을 봐 가지고 알아보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내 이웃 가운데 어떤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을 가졌다는 것을 생각해 가지고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을 골라내는 방법을 기르는거예요. 아무개 눈과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을 골라내는 거예요. 귀를 보고도, 코를 보고도, 눈을 보고도 골라내는 것입니다. 다 닮아 있다는 거예요. 그런 걸 봐 가지고, 어떤 사람에게 착하게 생긴 것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삼고 열가지 중에서 세 가지만 같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절반, 50% 이상이 가려지는 거예요. 얼굴에는눈, 입, 귀, 코 이 네 가지 밖에 없는데, 그 중에 세 가지만 같게 되면 절반 이상 들어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걸 봐 가지고 악한 사람인지 선한 사람인지 가려내는것입니다. 그런 잼대를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선생님에게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분들입니다.
전인적 인격훈련 과제
내가 붓을 들어 지나온 장면들을 기록하게 되면 앞으로 다가오는 2천년대의 젊은이들 가슴속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의 누룩이 될 것입니다. 이게 멋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생님은 역사상에 없는 일등 배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심각한 입장에 부딪혀 보아야 인생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는 노동자냐, 너는 어떤 사람이냐? 그 자리는 어떠한 위대한 영웅들이, 위대한 위인들이 웅변을 하고 설교를 해도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없는 멋진 자리라는 것입니다. 힘차게 땅을 딛고 서는 그 한 발자국에는 역사가 주름잡히는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힘이 들더라도 치달을 수 있는 길이 있거든 땀을 흘리며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산 철학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에 대한 선생님의 지도방법은 30세 전까지는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절망의 도가니에 들어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 절망의 도가니가운데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햐’하고 환희의 함성을 지르면서 ‘오늘이 없었더라면...’ 하며 결의를 새롭게 다지며 함성을 지르는 사나이나 아낙네가 되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곳만 보지 말라는 거예요. 위로도 볼 줄 알고, 동서남북으로 다 볼 줄 알아야 돼요. 생애라는 것은 70년, 80년 다 마찬가지 아니에요. 한번 밖에 없는 생애인데, 그 기간에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눈이 잘 보느냐 못 보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러려면 경험이 많아야 돼요. 그러니까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여유있는 인간미와 융통성 있는 자주성, 이것이 절대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올라갔다는 또 내려가는 인격자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올라가면, 절대로 내려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른 일면을 인격을 만들어야 합니다. 올라갔다고 해서 계속 그대로는 안 됩니다. 그런 경우에 옛날의 어느 때는 좋았다고 상기하고, 그리고 높은 곳에서 자연히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위로 올라가서 내려오고 또 올라가는 인격자가 아니면 하늘 편에서는 쓰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을 지도하려면 그런 것을 다 소화해야 되는 거라구요. 젊은 시절에 모든 경험을 해봐야 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선생님을 그저 앉아서 감투나 쓰고여행이나 다니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는 큰 오산이라구요. 선생님은 인생 철학과정에 있어서 모든 과목을 다 통과한 실적이 있는 사람이라구요.
다 해보라는 거예요. 백과사전 1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있는 것을 다 지내 보고 ‘내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이제 할 것이 없다!’ 하게 될 때는 자기 주관이남는 거예요. 주체성이 남는다는 거예요. ‘전국을 다 돌아 봐야 나를 꺾을 사람이 없고, 나와 싸워 가지고 나를 당할 사람이 없다’ 할 때는, 그 다음에는 자신 있는것을 하나 붙들고 냅다 미는 거예요, 일생 동안. 그러면 성공하게 마련입니다.
뜻을 위하여 고생 철학 박사 왕초가 되는 것이 세계를 점령할 수 있는 비법인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고생 왕초라구요, 고생 왕초. 고생 왕초, 고생철학 박사가 되는 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을 독차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7. 원수 사랑의 실천
일본인 사랑
일본에 가면 내가 싸우는 것은 일본 천황이지, 일본 백성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싸우는 것이 사탄이지, 사탄 휘하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이 확실하다는 거예요. 일본에 가서도 일본 사람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일본은 신(神)을 모르는 나라였습니다. 본연의 주인,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 주어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돈이 있으면 전부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일본을 사랑하는 조건을 새우자' 그런 것을 생각했습니다. 여러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커다란 삼목(杉木)을 부둥켜 안고 눈물 흘리며 운 적도 있었습니다.
굶주린 친구를 만나게 되면 선생님은 굶더라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굶주린 고학생을 만나면 부둥켜 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해 학생복을 벗어 던지고 부두노동을 했고, 석탄 짐을 지고 운반을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젊은 동지들을 사랑하기 위해 싸워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왜정 때에는 배가 고팠다구요. 그래서 고학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너희들 배고프지? 우리 집에 와라' 해가지고 식권이 나오면 한달 먹을 거 전부 다 모아 가지고 '먹어라, 먹어라. 마음껏 먹어라'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한 3일 되면 다 없어져 버립니다.
이들을 내 형님과 같이, 내 어머니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내 마음을 갖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정권에 못들어가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수련과정을 거치기 위해 민족을 넘어 일본에 가서도 그런 놀음을 했다구요. 노동판에 다녀서 돈벌이해 가지고 내가 학비 대준 친구들이 있다구요.
학교를 못나가게 된 학생을 졸업시키기 위해서 내가 몇 달 동안 학교를 그만두고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 노릇까지 했습니다. 밤이 따로 없었습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그런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약자편에서 대신 싸움
굉장한 패거리가 약한 자를 괴롭힐 때에는, 그들을 모두 단독으로 해치웁니다. 싸우는 것입니다. 혼자요, 자기뿐이예요. 그것은 공(公)을 위해서. 만날 때는 혼자입니다. 맞을 때의 그 기분, 이것은 모두 인생 철학에 있어서 필요한 문제입니다. 때때로 남의 일을 가로맡아 싸움도 했습니다. 자진해서 '이 자식 뭐야?' 그랬습니다. 청년시대에는 그런 기질도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노동판에는 조장이 있어서 착취를 하는데, 3할을 떼냅 니다. 그래서 '그렇게는 안 된다' 고 하면서 강력히 항거했습니다. 선생님은 무서운 자들이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들의 말에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잘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힘이 있어요. 선생님이 학생 때 삼총사 친구가 있었어요. 그때 일본의 조합이 유학생이라든가 학생이라든가 하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디 어디를 착취한다.' 라는 말을 듣게 되면 삼총사가 뛰어드는 거예요. '나는 이런 사람이다. 당심들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소문으로 모두 들어서 알고 있다.'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오늘 일하러 오니까 써 달라. 쓴 그대로 해라!' 해 가지고 안 된다고 하고 듣지 않을 때는... .그러한 일은 하지 않아도 좋은데, 선생님은 그것을 알고는 화가 나 견딜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가 통일교회 교주가 되었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온순하지만, 엄격하다구요. 발길질도 잘하기 때문에 말해서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확 걷어차는 거예요.
차등없는 인간대우
만물을 그리워하면서 돌아다닌 역사적 전통으로서의 선생님의 정신! 지금 만우주를 향해서 소리쳐서... . 나의 상대자가 일본 땅에 얼마든지 있어요. 그렇다구요. 사람을 사랑해서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그런 효성스러운 아들딸을 찾는 그 모습! 비가 오나,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런 모든 것에 상관없이 끝없이 날을 넘고 달을 넘고 연을 넘어서, 생애를 넘어서 가는 그 모습을 만우주 만상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선생님이 흘린 눈물이 말이예요. 마릇바닥을 항상 적셔 놓았어요. 주위에 어느 누가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 달려가서 부모처럼 돌보고 형제나 자식에게 하는 것처럼 해 왔어요.
더욱이나 이 아가씨들, 이런 사람들이 전차나 버스에 타게 된다면, 땀내나고 무슨 냄새나는 이런 노동자가 옆에 와 있으면 자꾸 이렇게 밀치고... . 이 통일교인 쌍간나 자식들도 그러면 대가리를 까 버릴 겁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보라구요. 선생님도 그런 생활을 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내가 그렇게 사는 걸 볼 때 얼마나 통곡했겠나 말이예요.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금이야 옥이야 기른 아들이 그렇게 사는 걸 볼 때 얼마나 통곡했겠느냐 말이예요. 그런 사람들 보면 '아, 저 사람에게도 어머니가 있을 것이고 부모가 있을 것이다. 그 부모가 저렇게 생계를 꾸리는 아들의 입장을 본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또 그뿐만이 아니라, 그 아저씨를 가마히 보면 그 아저씨를 생명을 걸고 기다리는 그 아저씨들의 아낙네가 있어요. '애기 아버지가 왜 안 들어올까?' 하며 하루에 몇푼 벌어오는 거기에 생명을 걸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거룩히 승리하여 한푼이라도 더 벌어 들어오기를 비는 그런 아주머니가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예요. 나이 어린 아들딸들은 그들을 대하여 아버지라 할 것이며, 아버지는 그들을 대하여 아들딸이라고 하는 여기에도 무슨 차이가 있어요?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그걸 생각해야 돼요. 절대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인간을 대우 할 줄 알아야 돼요. 입는 것이야 아무것을 입고 두른 것이야 아무것을 두르면 어때요? 마음씨에 있어서 남이 갖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 아들 딸은 망하지 않아요. 이 시대에는 이렇게 살지만 3대를 지니고 7대의 그의 후손들은 반드시 꼬리를 치고 다닐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것을 체험해야 돼요.
사교력과 친밀감
일본에 있을 때 한국에 가야 되는데 아주 어려우니 동경역에 나가 가지고 귀가집 부인을 만나서 설득했습니다. '나 일본에 와서 이러이러한 일을 했소. 내가 돈이 얼마 필요하니, 당신 헨드백에 얼마 이상 있을테니 3분의1을 꾸어 주소' 한 거예요. 그 말이 하도 진지하니까 그 아주머니가 돈을 꾸어준 거예요. 그것으로 차표를 사서 와 가지고는 그 3배를 내가 보내 줬어요. 그런 역사가 많아요.
또, 선생님이 친구들을 떡 사귀려면 말이지요, 필요하면 대번에 사귀는 거예요. 또, 어디 가면 잘 논단 말이예요. 잘 놀거든요. 노래하라면 노래도 하고 말이지요, 춤추라면 춤도 추고 장단 맞추라면 맞출 줄도 알고 다 한다 이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뭐 팔방미인이라구요.
일본 친구들도 많이 있었어요.그때는 제정시대였지요? 일본을 멸망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던 그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그 친구들을 대해서는 빈틈없이 대해 주었다구요. 그랬더니 그 친구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선생님한테 의논하러 오더라고요. '한국은 어때?' 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그들은 선생님을 친구 중의 친구라면서 자기의 비밀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을 너한테만은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견디겠다고 직고하는 동지들을 남겼던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무릎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하며 교제하라구요.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모두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지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나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의 비밀을 나의 가슴속에 받아들여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나이로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슴속에 두는 편이 편하다고 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