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의 생애노정 1권
제4절 서울 흑석동 중학시절
1938.4월 ~ 1941.3월
1.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 수학 137
2. 스스로 감내하신 고행 151
3. 체휼 신앙의 심화 169
4. 서울 흑석동 178
1.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 수학
1938.4 12.,입학 ~ 1941.3.8.,졸업
말없이 솔선수범
여러분은 대개 보면 20세를 전후한 스물한 살, 17세 이상 21세 미만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선생님도 과거에 여러분들과 같은 연령시대에 이런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새로운 개척자의 입장에 서 가지고 그 무엇을 찾이 위해 허덕이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중학교 때 서울에 와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서울에 처음 오니까 환경이 얼마나 다른지, 자기 고향에 살던... . 정주로 말하면 정주는 시골이지요. 그 환경에 있다가 도시로 들어오니 이거 얼마나 다른지 180도가 달라요. 또 얼마나 범위가 넓은지, 거기에 박자를 맞추면서 지내던 모든 사실들... .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같은 연령 때에는 절대 말 안했어요. 내가 서지 못했는데 무슨 말을 해요? 입을 여는 날에는 천하가 나를 못막는다고, 그런 자신을 키워 가야 돼요. 떠들고 방황하는 그 자리에서는 자신을 키울 수 없어요. 뿌리가 안돼요, 깊은 뿌리가 안돼.
겸손한 사람, 자기가 실력이 있어도 교만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함부로 터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그에게서 위압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그에게는 주관성이 깃들어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옛날에 그런 무엇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시절에는 말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절대 재잘재잘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얘기를 하지 않는 날도 있었어요. 그래서 동급생들이 나를 참 어려워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보다 더 어려워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공갈이나 협박을 한 것도 아니고 주먹질을 한 것도 아닙니다.그런데도 그들은 내게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일까지 있었느냐 하면 학교 변소에서 친구들이 소변을 보려고 기다리다가도 내가 가게 되면 자리를 내주는 것입니다. 또 고민이 있으면 전부 나에게 와서 의논을 했습니다. 겸손하게 되면 그들의 마음을 전부 점령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같은 때는 말이예요,소제(청소)를 내가 다했어요. 전 학교를 내가 선두에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전 학교를 대신해서 내가 소제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될 때는 남이 도와주는 거 싫다 이거예요. 혼자 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깨끗이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려니까 남이 한 것을 다시 하게 된다 이거예요. 그렇게 몇 번 하다보니 친구들이 전부 다 '그럼 너 혼자 해라' 이러는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너 혼자 자꾸 그렇게 하니까 너 혼자해라' 이런다구요. 그래서 자연히 혼자 하게 돼요.
그 시간이 마음하고 즐기는 시간이예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그걸 다 하고 앉아서 명상이라도 해보라구요. 깊은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지. 남모르는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말하지 않지만 그들을 대해서, 그들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어요. 모든 어려운 일은 나한테 찾아와 가지고 의논하는 거예요. 또 집에서 돈이 많이 오면 그걸 보관할 수 없으면 선생님 한테 가져오는 거예요. 나한테 두었다가 도둑을 맞아도 좋으니까 맡아 달라고, 그래야 마음이 편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거 왜 이래? 이놈의 자식아 나도 귀찮아' 하면 '아니야 아니야' 라고 해요. 그건 뭐야? 나한테 갖다 놓으면 도둑질하려고 해도 그 사람이 손이 떨려서 못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그러한 모든 것이 인간세상에는 없는 새로운 주파, 새로운 주기, 파장으로 환경을 연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무대를 개척해서 살 수 있는 그러한 무대가 참다운 사랑에 있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집요한 탐구력
내가 학생시절에 내 질문에 대답을 못 해 가지고 도망간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자꾸 질문하니까. '물리학에 나오는 공식이나 정의를 누가 내렸소? 나 못 빋겠소. 내가 알게끔 설명해 주시오' 그런 사람입니다. 전부 다 내가 검증하기 전에는 믿지를 않았어요. 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이 공식을 가르쳐 주면 그걸 중심삼고 학교 선생님을 전부 다 몰아친 사람이라구요.이거 누가 이렇게 공식을 만들었느냐 이거예요. 내가 만들어야 할 텐데... . 그러니 들추고 헤치고, 들추고 헤치고, 파고 또 파고 그런 놀음을 했다구요. 적당히가 아니예요, 적당히가,적당히 뭘해 가지고는 안통합니다.
이렇게 중학교 시절부터 선생들을 골려 먹던 사람이라구요.물어 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답변을 못 하게 되면 내가 도서관에 가 가지고 전부 공부해 가지고 '이래야 됩니다.' 한 거예요.
공부를 하더라도 시험 전날에 딱 보면, 그게 틀림없이 적중합니다. 선생님이 강의한 것 중에서 가장 시험이 나올 확률이 높은 것, 두번째로 높은 것, 세번째로 높은 것을 쭉 빼서 보고 그 외 에는 안 봅니다. 그것만 동그라미 치는 거예요. 내가 강의를 하면 이렇게 할 것이다 하고 심리적으로 분석해서 준비하면 틀립없이 70퍼센트 이상 맞는다구요. 1, 2, 3, 4, 5, 6... 하는 선생님의 암호가 있어요. 보통 사람은 봐도 모릅니다. 시험 때는 한 장에 숫자만 '딱딱딱' 해서 적어 놓으면 자면서 쓰더라도 70점 이상 받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다고 해서 전부 다 머리에 남지 않는다구요. 전부 다 그냥 흘러가는 것이 보통이지요.
자기 준비의 정성
기도를 하면 왜 좋으냐. 정신력이 집중되면 관찰이 빠르다 이거예요. 선생님이 강의하게 되면 벌써 시험 문제에 날 것을 안다구요. 시험문제로 낼지 안 낼지, 선생님의 마음을 안다는 거예요. 왜 그런가 하면 그것은 안테나를 높이 단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예요. 안테나를 한층 높여서 들으면 작은 소리도 들리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정성들이는 사람은 반드시 미래의 세계가 연결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계시라든가 예언은 전부 다 정성드리는 사람함테서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시험공부 하기 위해서 정성드리고,공부하고, 정성을 들여 점수를 따는 것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그렇다 할 때는,인류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전체를 위해서 하려고 하면 그 시험에는 모든 선한 영들이, 그 분야의 전문적인 선한 영들이 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서 자기가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글을 써 보라구요. 글을 쓰게 되면 명문장이 된다구요. 그런 경지에서는 그림을 그려도 돼요. 내 손만으로 그림을 그리지 말고 그런 정성을 넣어 가지고 '이 손에 하나의 위대한 화가가 와서 나를 협조해서 그린다. ' 그렇게 정성들이는 가운데 쓱 그리면 탄성이 벌어져요. 탄성이. 그래서 좋은 작픔을 쭉 붙여 놓은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정성을 들여야 돼요. 언제나 정성을 들여야 돼요. 정성은 언제 한 번 들여 가지고 써 먹는 게 아니라구요. 칼은 언제나 갈아야 돼요. 칼을 한 번 쓰고 안 갈면 어떻게 되겠어요? 갈아야 된다구요. 언제나 갈아야 됩니다. 한번 격해 가지고 화를 냈으면 언제나 갈아 놓아야 된다구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조용히 마음의 자리를 잡아 놔야 된다구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을 다 안다는 거예요. 그것을 해야 돼요. 쓸데없는 생각 하고, 처녀 궁둥이나 따라다니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사된 짓을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방향감각을 잡아 가지고 그것을 중심삼고 거기로 따라가야 하는 거예요. 방향은 뾰족하게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만반의 준비를 해야 되고, 정비를 해야 돼요. 매일같이 그걸 밀어 줄 수 있어야 돼요. 스스로 밀어 줄 수 있는 추진력을 만들어야 된다구요. 그건 자기 혼자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18세가 되면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걸 다 아는 거예요. 그 힘 가지고 안 됩니다. 그러니까 초조해지기 쉬운 거예요. 친구의 힘이 필요하든가, 스승이 필요하든가, 하나님의 힘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거들랑 '이 밥아, 내가 준비하는 거름이 되어 다오. 소모되는 두뇌에, 소모되는 모든 세포에 힘을 보급해 다오. 내게 악을 대해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정의의 힘이 되어 다오' 그러라는 거예요. 한번 잘못하면 하늘땅이 망하는 거예요. 준비하라.
체력단련
세계에 없는 이런 일대 혁명을 내가 꿈꾸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가지고 '네가 건강하지 않으면 이 뜻을, 이 위업을 완수 못 할 것이다' 하는 천명(天命)을 받던 그날부터 모진 훈련을 한 사람이라구요. 나 힘 있습니다. 한두 사람쯤은 거뜬히 다룰 수 있는 능력도 있는 사람입니다. 또, 내가 안 해본 운동이 없습니다. 스물 두 살때까지 밤낮없이 몸을 위해서 운동했습니다.
복싱도 해서 옛날에 일본집 같은 것은 힙줘서 치면 한 주먹에 나간다구요.지금도 그래요. 길가에 가다가 안된 녀석이 있으면 굴려 버리는 겁니다. 남자는 자기 보호술을 배워야 되는 거예요. 달려가다가 추어서 담을 잡으면 넘어가는 거예요. 뚱뚱해도. 그런 훈련을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모든 제스쳐를 하더라도 자연스럽지요. 씨름을 하더라도 안 져요. 축구 같은 것에서도 유명해요. 이런 체격을 하고 있어도 빠르다구요. 옛날에 젊었을 때에는 철봉도 하고 말이예요, 여러 가지 운동으로 단련을 해 두었던 거예요. 지금도 남들이 모르는 운동을 하는 거예요. 운동을 선생님이 개발했어요. 그거 가르쳐 줘요?
몸의 훈련이 다 끝나게 될 때는 정신적 세계의 밑받침이 벌써 자리를 잡고 앉게 되기 때문에 흘러갈 수 없는사나이들이 된다는 거지요. 그런 무술을 고안해 가지고 외적으로 그걸 준비해 두어야 돼요. 여러분들 전부 다 힘이 없어 가지고 쫓겨나면 되겠어요? 정당방위, 세 번만 쳐라! 내 손이 가는 거예요. 장자의 권한을 갖고 늠름하라 이거예요.
언어 훈련
선생님이 말을 빨리하게 된다면 여러분들 한마디 할 때 열 마디 해요. 후루룩-. 전부 다 그런 챔피언이 되기 위한 훈련을 한 사람이예요. 평안도 말은 말이예요, 애기- 하고는 무슨 얘기할지 열 번은 생각해요. 그때까지 '애기...야' 이라고 있다구요. 서울와 보니까 우리 하숙집 주인 아줌마가 입술이 뭐 이렇게 얄팍하고 조그만한 눈이 생매 눈같이 반짝반짝하면서 말을 두루루루루- 하며 동네 설명하는데, 숨도 몇 번 안 쉬고 후닥딱 해 버리더라구요. 야,내가 저 아주머니도 이겨야 되겠다고 해 가지고, 그걸 훈련해서 이긴 사람이라구요. 제일 발음 어려운 것이'띠'발음이예요. 그래서 갈, 날, 달, 랄 이렇게 전부 다 국문으로 써놓고 아침 저녁으로 후루룩- 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 빨리하는 훈련도 한 사람이에요. 왜? 말하기 시작하면 할 말을 그저 순식간에 퍼붓기 위해서요. 후루룩-.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퍼붓는 거예요. 그래서 6개월 동안 골방에 들어가서 기억 니은부터, 가 갸 거 겨부터 전부 발음 연습을 다시 했어요. 발음을 전부 파악할 때까지 훈련을 했어요. 그래서 말이 빨라진 것입니다. 말투도 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방대한 말씀을 제한된 시간 내에 전해야 되기 때문에 어떠한 위엄을 갖추어 가지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할 말을 다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한 것은 다른 사람이 다섯 시간 동안 이야기한 것과 같습니다. 바쁠 때에는 다그치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라 이겁니다. 그렇세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귀의 전선이 망하지 않고 나왔지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망하지 않고 복귀섭리를 끌고 나온 것입니다.
음악에 심취
선생님이 옛날 청소년 시절에 음악을 참 좋아했습니다. 내가 하숙하던 집의 주인이 차를 운전하던 양반인데, 강원도 어디에 잘사는 집안의 맏아들인데 말이예요. 그 당시에 운전수라면 아주 난 사람이라구요. 그 양반은 팔도강산 안 돌어다닌 데가 없었어요. 그는 민요라면 모르는 게 없었고 수백 장의 레코드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 아줌마를 내 맘대로 하기 위해서 작전을하는 것입니다.주인하고 인사도 하고 매일같이 저녁에는 밥상도 들어다 주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무슨 심부름을 시키면 해주고, 해 달라는 대로 해주는 겁니다. 이런 작전을 하는거예요. 이렇게 작전계획대로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며칠 이내에 흘딱 반한 것입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사위를 삼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삶아 놓은 거예요. 그럼 그렇지! 그리하여 그 레코드판을 우리에게 다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 레코드판을 전부 다 듣는 것입니다. 몇 장씩 갖다 놓고... . 주인이 와서 봐도 탄로 안 난다구요. 판을 다 듣고 나서는 매번 체인지해 가지고 몇장씩 갖다가 전부 다 듣는 거예요. '당신의 주인은 저 레코드판을 몇 장이나 들어봤어? 다 들어봤어, 못 들어 봤어?' 주인보다 나아야 될 게 아니예요. 나는 며칠 이내에 다 듣는다 해 가지고 24시간 내내 틀어 놓고 지냈습니다. 밤에도 틀어놓고 잤어요.
노래를 잘 부르면 참 좋은 거라구요. 효자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 드리면서 노래하고, 청춘 남녀들이 서로 좋아하는 심정을 노래하려면 그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귀의 책임을 지고 선두에 서서 가는 사람으로서 소원성취를 어떻게든 해내야 될 것 아니예요? 이게 전부 다 도(道) 라구요, 도의 경지라고. 옆에 있는 사람은 아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밤을 새는 거예요. 잘 때는 어떻게 하느냐? 잘 때는 아예 조그맣게 틀어 놓고 이불을 쓰고 듣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극성맞다구요. 내가 무엇이든지 하면 누구한테 지려고 하지 않다구요. 노래도 배워 두라는 것입니다.
능란한 원맨쇼
하나님은 참 능락한 분이예요.욕도 잘하고 말이예요. '이자식! 뻔뻔스럽게 생겼구만, 이 자식!' 하며 욕도 하신다구요. 아주 농도 잘하십니다. 유머의 대왕이 하나님이예요. 욕 잘하는 데 있어서도 대왕이고. 나도 그걸 닮아서 유머도 잘하고 임기응변도 잘하는 거예요.
내가 원맨쇼,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원맨쇼 챔피언이었어요. 내가 나온다 하면 학예회 때는 말이예요, 학부형들이 '거 아무개 청년 나오나?' 해서 나온다 하면 그저 쓱쓱쓱쓱 모이더라고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주 놀음 하지, 교주 놀음이 쉬운 줄 알아요?
통일교회 사람들은 나가서 욕은 먹고 다니지만 통일교회 집안에 들어오면 재미있지요? 내가 원맨쇼를 잘하거든요. 원맨쇼가 아니라 실제 사람의 실맨 쇼, 실맨 극을 하는 거예요, 극.
서울 학창시절의 추억
선생님은 옛날에 한강의 잔잔한 물결 위에 돌을 던지는 놀이를 많이 했는데, 아침보다는 저녁에 더 맛이 납니다. 저녁 노을이 질 때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돌아가는 광경과 복잡하게 지낸 하루해가 뉘엿뉘엿 고요한 물결 속에 잠기는 것을 보면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럴 때 납작하고 동그란 돌멩이를 손아귀에 감아쥐어 가지고 던지면 이 돌멩이가 살랑살랑 날아가다가 수면에 닿을 때마다 튀는 것입니다. 돌멩이가 너무 커도 안 됩니다. 그 돌멩이가 날아가다가 한 번, 두 번, 세 번... . 이렇게 튀다가 끝부근에 가서는 그냥 물을 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기분 느껴지나요?
학생 시절 여름에 친구하고 한강변에 가서 수면에 돌을 던져 튕기는 놀이는 하는 데 친구는 여남은 곳이나 튕기면서 나갔습니다. 그것도 멋지게 하려면 여러 조건이 잘 맞아야 합니다. 돌도 잘생겨야 하고, 던지기도 아주 잘 던져야 합니다. 각도를 조금만 잘 못 맞추어도 빵 하고 한 번도 안 튕기며 물 속으로 빠져버립니다. 또한 각도도 잘 맞추어야 하는데 선생님이 잘 던지려고 있는 힘을 다해서 각도를 맞추어 가지고 던지다가 손 끝이 바위에 맞았어요. 이러니 물장난치게 됐습니까? 기분이 나빠서 피가 흐르는 손 끝을 한강물에다 자꾸자꾸 한 40분쯤 씻어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있으니까 입술이 부르튼 것처럼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와이샤쓰를 찢어 가지고 자꾸 찍어 냈습니다. 여름이라 세 시간 내지 네 시간 지나니까 말라붙더니 며칠 후엔 다 나았습니다.
그런데 의욕 가운데는 모든 탐구력이 개제되어 있습니다. 한강에는 어떤 새가 살까? 아이구 이거 여름이 되어 더운데 저 산꼭대기는 얼마나 시원할까? 얼마나 시원한지 올라가서 한번 바람을 쐬어 보자. 야! 거기서 서울 장안을 보면 어떨 것이냐? 이런 의욕, 이런 마음에 사무친 의욕이 많으면 많을수록 처해진 모든 환경을 극복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우리 고향에는 감나무가 없어요. 그래 감 열매는 봤었지만 어미는 생전 보지 못했습니다. 감 어미가 뭐예요? 나무 아니예요? 물론 어미는 맨 처음에 씨 가지고 생겨나는 것이지만 말이예요. 옛날에 거 잠, 홍시가 참... . 선생님이 먹게 되면 하나만 안 먹거든요. 그게 집에 있으면 뭐 바닥 나도록.. . 먹는 게 취미예요. 내가 아주 참 잘 먹는다구요.
그런데 서울에 떡 올라오니 감나무가 있더라구요. 척 보니까 밑에 따닥따닥하고 참 잘생겼거든요? 그놈의 나무를 만져 보니까 아주 단단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크지는 않아요. 저 자하문 밖에 말이예요, 자하문 밖에 거 동무 녀석이 있어 갔는데 감이 아주 노랗게 되었더라구요. 노렇게 돼 가지고 참 먹음직해요. 그래서 그 녀석하고 몰래 거기에 들어갔어요. '야, 이거 맛있겠다' 해서 따 가지고... . 그 녀석은 따니까 그저... .
그리고 또 내가 옛날에 서울에 와 가지고 재수 없었던 일이 있습니다. 서울 바람떡을 보고 '아이고 이렇게 곱게 생긴 떡을 처음 본다' 고 하면서 떡 좋아하는 내가 하나 집고 둘 집고 이렇게 꽉 쥐니 이게 폭삭하는데... . '아하 서울 사람들이 바로 이런 거로구나. 깍정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구만' 했어요.
2. 스스로 감내하신 고행
자취생활
선생님이 7년 동안 자취생활을 했어요. 돈이 없어서 한 게 아니예요. 거, 여자들을 알아보려고 그런 거라구요. 절대 더운물 가지고는 안하는 거예요. 찬물, 그저 두레박으로 찬물을 퍼서 하는거예요. 그러면 손이 짝짝 붙어여. 이래 가지고 쌀도 씻고 하는 이런 놀음을 많이 해봤어요.
그때 서울에 왔을 때는 추웠다구요. 평균 영하 17도에서 21도까지 오르내렸다구요. 우리 젊었을 땐 그랬다구요. 그런데 어디가서 자취하면서도 잘사는 사람으로 자취 안 했어요. 제일 어려운 사람에서부터 시작했어요. 그 추운 동지섣달이예요. 찬 방에서 살고 밥을 하는데 찬물 가지고 하는 거예요. 전부 다 지금도 내가 잊지 않았지만 말이예요. 산등에 파 놓은 우물이기 때문에 한 열 발 이상 들어간 우물이라구요. 이 우물이 참 물이 좋았다구요. 두레박은 고리를 쇠사슬로 하거든요. 끈이 끊어지니까. 그걸 잡을 때 손이 붙어서 '호호' 하던 것이 엊그제 일 같아요. 그런 생활에서부터 전부 다 인생살이를 해봤어요. 여자들이 뭘하고 있다는 것도 다 안다구요.
습관이 되어서 많은 반찬이 필요없습니다. 언제나 간편하고 맛있고 실질적인 것 하나면 됩니다. 언제나 일식 일찬(一食一饌)이라구요. 맛있는 반찬 한 기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 상에 반찬을 수두룩하게 올려 놓는 것을 보면 아예 귀찮다는 거예요.
또,도마질하는 것을 보면 풋나기인지 아닌지 다 안다구요. 내가 도마질도 잘 합니다. 다닥닥 다닥닥. 반찬 만드는 것 보면 솜씨가 있는지 없는지 벌써 아는 거라구요. 부인들이 밥하는 것,반찬 만드는 것을 쓱 보게 되면 밥물은 얼마나 부었고, 시금치나물에는 어떤 양념이 들어갔고, 콩나물에는 어떤 양념이 들어갔다는 것을 다 알 수 있어요. 쓱 보게 되면 무슨 반찬은 어떻게 무친 것인지 다 아는 거예요.
하루 2식과 생일금식
선생님이 서울에서의 학생시절에, 여러분 같은 연령 때에는 점심을 안먹고 살았어요. 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배고팠던 부모의 역사가 있으면 배고팠던 부모의 사연을 알아야 돼요. 배고픈 자리에서 그 부모에게 효도 못 한 자신을 탓해 가지고 배고픈 그 시대에 효자 될 수 있는 내 스스로를 준비해야 되는 거예요.
배고프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른다구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배고픈 시간이 제일 하나님 앞에 가깝다구요. 그럴 때는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행여나 저 사람이 내 어머니가 아니겠느냐? 저 사람이 누님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되는 거라구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된다구요. 그렇게 되면, 천만인을 위로할 수 있고 천만인을 맞아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구요.
더구나 나라도 없는 주제에 밥을 세 끼씩이나 다 찾아먹을 자격이 있느냐면서 말이예요, 밥이 그리운 생활을 참 많이 했습니다. 밥을 그리워함과 동시에 민족을 그리워하는 길을 갔다구요. '밥 보다 민족을 더 사랑해야지, 나라를 더 사랑해야지' 하면서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와 있으면서 말이예요, 점심을 안 먹었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구요. 돈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금식을 밥 먹듯이 했어요. 30세까지 점심을 안 먹었어요. 제일 배고플 때 집 떠나 가지고 줄곧 2식주의였어요, 2식주의. 제일 힘든 것이 뭣이었으냐 하면, 동창생이랑 같은 방에 있는데 이 친구가 점심을 갖다 놓고 자꾸 먹자고 하는 거였어요. 그것을 이기던 것이 지금 생각난다구요. '내가 할 일이 있어. 내가 할 일이 있어. 숙제가 많아. 이걸 청산할려면... .' 해 가지고 안 먹고 그랬다구요.
배고파 보기를 나같이 배고파 본 사람 없을 거예요. 배고픈 사람들이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굶주리면서 해방을 바라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 와요. 밥을 먹을 수 없는 거예요. 수양하는 자들은 일생을 통해서 평상시에 수양해 놔야 된다 해가지고... . 생일날은 굼식하기가 일쑤였다구요. 자기 개인적 승리의기준도 못 넘고, 가정적 승리의 기준도 못 넘고, 민족 . 국가 . 세계의 승리의 기준도 못 넘은 게 생일 놀이를 해요? 생일 놀이를 어떻게 하겠어요? 춤을 추고 뭐, 댄스하고 뭐, 할 수 있어요?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죄인은 하늘 앞에 천명을 받은 책임을 하고 난 다음에 그런 것을 해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했다구요. 여러분들은 참 편하다구요, 선생님이 다 닦아놓은 길을 가고 있으니.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이렇게 하니까 선생님이 하는대로 따라 하지만 선생님 하는 대로 하게 돼 있지 않다구요, 사실은.
외로울 때 찾아준 온정의 손길
선생님이 어느 곳에 가든지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그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또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하듯이 가는 곳곳마다 그렇게 대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명절날 같은 때에 밤을 새워 가면서 준비한 그 상을, 혹은 남편을 위해서 준비한 그 상을 선생님 방에 갖다주지 않고서는 안방에 들어 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냥 안방에 들어가게 되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왜 그런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낙네들의 정성들인 그 음식까지도 선생님을 먹이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꿈에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서울에 와 있으면서 잊을 수 없는 부인이 한 사람 있어요. 송씨 부인이라고 못사는 부인이예요. 그때 셋방에서 딸 하나 데리고 사는데, 뭐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예요. 딸 하나하고 사는데 조그만한 구멍가게를 해가지고 겨우 밥을 먹고 사는 거예요. 그런 송씨 아줌마라고 있었어요. 이 아줌마가 말이예요,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내가 학생시절에 하숙하고 있으니까,하숙집에서도 아침 주고 점심 주고 저녁 주면 그만 아니예요? 학생들은 그것 먹고는 배가 고프다구요. 그걸 알고 말이예요, 자기가 뭘 팔다 남으면 갖다 먹여 주려고 그래요.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자기 동생이 있었대요. 나와 비슷한 동생이 있는데 그 동생이 생각난다는 거예요.저분이 여기 와 있는 것이 남같지 않다는 거예요. 거 아마 영적으로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지요. 이래 가지고 뭐가 생기면 자기 입에 들어가야 할 텐데 이 손이 이리 간다는 거예요.
한번은 두 교회가 한강가에서 합동예배를 드린 적이있습니다.그 모래 사장이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빙고 앞이었어요. 점심 때 모두 점심을 먹는데 그 속에서 혼자 앉아 가지고 버틸 수 있나요. 그래서 혼자 쓱 뒤로 빠져 나와 돌무더기 같은 데에 가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점심을 안먹고 자갈 쌓아 둔 돌 무더기 뒤에 있었는데 그때 송씨 부인이 아이스케이크 두 개와 빵 두 개를 가져 왔었어요. 그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한 개에 일전짜리예요. 그거 모두 합해야 4전인데, 그 빵과 아이스케이크를 갖다 준 것이 영영 잊혀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때 그 자리가 얼마나 심각한 자리였더냐 이거예요.
이렇게 신세를 진 것은 영영 잊혀지지 않아요. '아무때 어떻고, 아무때 어떻고...' 하며 나를 위해서 수고하고 나를 위해서 베풀어 준 그 은덕은 영영 잊어버리지 않는다구요. 그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냐?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인간을 위해서 그것을 갚으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갚아 줄 수 없는 거라구요.
은덕을 갚은 데 있어서 그 사람을 언제 다시 만날 것이냐? 그 사람을 찾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 신세를 진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그 마음을 가지고 '아무때에 내가 은덕을 받은 것을 이 사람한테 주겠사오니 대신 갚는 조건으로 하나님이여, 받아 주시고 대신 갚아 줄 수 있는 자리로 메워 주시면 좋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인을 만나서 주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주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겠어요? 이러한 분위기의 생활체제를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울 때 방문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끼리 좋아하는 것은 다 흘러가요. 그러나 어렵고 못견디는 자리에 찾아주고 위로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 그것을 거기에서 배웠어요. 그 송씨 아주머니는 얼굴도 잘 못생겼어요. 궁둥이가, 허리가 꾸부정하고 이 뽄때기가 고생하게 생겼지요, 그 얼굴 가지고 뭘 나르는 걸 보면 밉지 않더라구요. 그런 모든 정서적인 면에 관계되어 있는 것은 잊혀지지 를 않아요.
한겨울 냉방생활
내가 20대 전후한 그때에 있어서 서울만 해도 추었어요. 보통 영하 17도예요. 한강이 안 언 때가 없었어요. 그런 때 방에 불을 안 때고 사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때 모본단 포대기를 깔아 놓고 쭉 자고 일어나면 짝짝 판이 박힌다구요. 그러면 그 판 박힌 것이 보통 때는 안 진다구요. 이게 6개월도 가고 그래요. 그게 인상적이예요. 그게 다 추억에 남아요.
하도 추워가지고 전구를 켜 가지고 화덕같이 뒤집어 쓰고 잠자다가 전기에 데어 까풀이 벗겨진 것, 그런 것이 다 인상적이예요. 그래, '서울' 하면, 그때 '사실 내가 그랬지'하는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목욕탕에 들어가서 쓱 씻게 되면 '아, 그 시절... .' 하는 것이 기억에 나요.
그렇게 죄인과 같이 ... . 남과 같이 갈래야 갈 수 없는 고생을 한 거예요. 역사적 스승이 살던 고통, 하나님의 역사적 고통을 흘려 보내서는 안되는 거예요. 내 마음 깊은 사랑의 곳에다 담고, 저나라에 가서 만나거들랑 목을 안고 '당신이 슬펐던 사정을 다 알고 나도 그 도수를 맞춰 살려고 했지만 미치지 못했소. 이것을 용서하시오'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통곡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때는, 하나님을 붙들고 통곡하더라도 하나님도 같이 울며 붙들어 줄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날이 없어 가지고는 해방이 없다고 생각하며 나오고 있는 사람이예요.
그렇게 찬방에 살면서도 효자는 효자 놀음을 해야 돼요. 찬 방에 모신 부모의 그 서글픈 심정을 품고 하늘땅을 걸어 사랑하지 못하는 불충을 회개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늘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헌옷을 입고 자립 훈련
선생님은 30대까지 여러분들이 입고 있는 그런 옷을 못 입어봤어요. 왜정 때는 전부 다 그랬지요? 고물상에 가게 되면 때가 새까맣게 끼어 가지고 반질반질한 것을, 냄새가 나는 그런 것을 사다가 입었어요. 쪽 빼고 다니면 아주 시끄러워서 못 견딘다구요. 이건 알록달록한 각시들이 매일 따라다녀요. 골목으로... .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걸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더벅머리 총각으로 구석진 길로 다녔어요.사나이로 태어나서 어떠한 맹세를 했으면 맹세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지요.
그리고 내가 뜨개질을 참 잘합니다. 스웨터 같은 것도 혼자 다 만들어 입었어요. 버선같은 것도 잘 만들었습니다.
팬티나 왜잠방이 같은 것도 혼자 잘 만들었어요. 내가 여자 없이도 혼자 살겠다고 모든 것을 연구한 사람이라구요. 일생 동안 독신생활 하더라도 이 뜻을 내 필생의 사업으로 작정하고 나선 사람이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없다구요. 내가 모자를 척 떠 쓰면 아주 예쁜 모자를 떠서 쓸 수 있습니다. 장갑을 떠도 참 빨리 떴다구요.
그러면서 내가 여자 옷 입고도 서울 장안 안 다녀 본 데가 없습니다. 근사하지요? 남자 녀석들은 전부 다 골려 먹어야 되겠다, 이놈의 자식들! 이래 가지고, 골목에 들어가 가지고는 후려갈기는 거예요. '이 자식아, 여자인 줄 알고 이래? 이 못된 자식들! 내가 싹 쓰고 싹 이러면 말이예요. 모양은 나쁘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말이예요, 양산 갖고 싹... . 왜? 세상살이를 알려고. 암행어사가 돼야 돼요. 세상을 조사하려면 샅샅이 해야돼요. 그런 역사가 많습니다.
첫 방학 때
첫 학기가 마쳤을 때, 고향 떠나 가지고 서울에 와서 맞은 학교의 첫째 번 여름방학에는 집에 안 갔어요. 남들은 서로 간다고 시간 다투어 차표 산다고 했지만 나는 엄숙히 혼자 있었어요. 다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는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내가 이런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통고하는 거예요. 왜, 왜 그랬을까요? 사탄 세계와 다른 길을 가야 되기 때문이예요.
학생들은 전부 다 보따리 싸가지고 집으로 가는데, 나는 '그리운 부모를 남나고 싶지만 그보다도 부모를 살려 줄 수 있는 하늘이 그립다'고 눈물짓고 그랬어요. 그 그리움을 머금고 나라를 위해서, 내 갈 길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친지들이 야단하는 것입니다. 오라고 야단이 벌어진 거라구요. '집에 무슨 중대한 일이 있으니 오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 갔어요. 친구들이 돌아와 가지고 이상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들을 붙들고 '천년사의 역사를 엮어 온 귀한 시대를 놀고 떠들며 흘러 보내며 살 게 뭐야? 이자식아!' 그러고 살았다구요.
극장을 둘러서 다님
내가 청소년 때에는 얼마나 극장에 가보고 싶었는지... . 우리같은 사람이 영화를 보게 되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구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기질을 가졌다구요. 그러나 난 절대 안 가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래서 '그거 뭐 본래부터 안가는 것보다 자꾸 매일 같이 가자' 해서 하루에 영화를 다섯 번까지 봤다구요. 그거 뭐 안 가면 될 것이 아니라 제일 많이 가 보면서 제일 상극이 될 수 있는 체험을 하고는 안 가는 거예요.그거 뭐 체험도 못 하고 안 가면 가치 없다구요. 그래서 하루에 다섯 번씩 다니다가 딱 끊어 버린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아, 안간다' 이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과 같은 연령 때에 부러운 것이 없었겠지요? 여러분들은 영화 구경하러 극장에도 잘 가지요? 선생님은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극장 앞에도 다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거 왜냐? 내가 그 이상 넘어가 가지고, 다 지나가 가지고 극장이라든가 이런 곳을 아무리 다니더라도 거기에 걸리지 않고, 가서 잠을 자고 살더라도 거기에서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 선을 넘어서고 나서야 가야 되기 때문이예요.
요즘에 내가 극장 가라고 다 하는 것도 가 가지고 물들지 않을 수 있는 입장에서 가라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딱 다 지난 다음에는 완전개방이라구요.
여러분이 극장에 가서 영화 구경을 할 때라도 심각한 자리에 서서 그것이 남의 일같지 않고 내 일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길을 가는데 방해가 되는 원수같으니 어떤 악한 무리가 나올 때 그들을 잡아 치우겠다는 마음을 갖고 극장에 가면 죄가 안 됩니다.그런 마음을 가지고 간다면 극장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곳을 가도 괜찮습니다.
악당들이 사는 소굴이라도 사기꾼 모양을 해 가지고서라도 그들을 끌어 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간다면, 또한 원수를 한 칼에 전부 쳐 버리겠다는 결의를 갖고 나선다면 하나님의 용자로 세워집니다. 그런 사람은 천하 어디를 가든 화제의 인물이 됩니다.
뒷골목 조사
옛날에는 종로 3가 같은 데는 전부 다 거 유곽이었어요, 유곽. 그걸 내가 조사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왜 예쁜 여자들이 저 놀음을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저게 만약에 자기 누이라면 어떡할 거야? 자기 딸이라면 어떡할 거야? 애비가 되어 가지고, 오빠가 되어 가지고 어떡할 거야? 문제가 심각하다구요. 그런 젊은 여자들을 대해 가지고 밤을 새워서 얘기해 주던 생각이 난다구요. 그런 놀음을 전부다 거쳐가야 돼요. 나라를 사랑해야지. 사람을 사랑해야지. 그걸 이용해 먹고 그럴 수 있나 말이예요. 이 세상의 물정을 환히 알아야 돼요.
선생님은 그런 세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구요. 몰라 가지고 어떻게 그 세계를 구하나요? 그 심층 분야에 가리어진, 하소연에 잠긴 그 모든 사연들을 알고 그들을 구해 줘야 돼요.
그렇지만 뿌리는 없이 잎만 되어 가지고 되느냐 이거예요. 그 자리에 나설 때는 내가 아무런 일을 하더라도 걸리지 않을 수 있는 내적인 결정을 받고 나타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도 그래요? 그런 수양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수양과정이 있어야 되는 거라구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내 허벅다리를 본 사람이 없어요. 친구들 한테도 안 보이고 살았어요. 절개를 지켜 신랑을 맞이해야 할 숫처녀와 같이 자기 일신을 고히 간직했어요. 내가 십자가를 지더라도 상처 안 난 몸으로 지겠다, 순정이 역사시대에 처음 꽃필 때 그런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겠다 하고 지냈어요.
전차비로 적선
내가 흑석동에 있을 때 시내에 들어오려면 전차값이 5전이었어요. 5전 주면 전차 타고 시내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시내까지 걸어갔어요. 화신까지 45분이면 갔어요. 빠르다구요. 빨리 걷는 사람이지요. 보통 사람은 한 시간 반 걸립니다. 여름날 학생복을 입고 땀을 흘리면서 걸어다닌 거예요. 그 돈 가지고 뭘했느냐? 불쌍한 사람에게 준 거예요. '천만금 주고 싶어, 여러분에게 복지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지금 민족을 대신해서 주노니 이것을 받아 가지고 부디 복의 씨가 되시오' 한 거예요.
내가 그때 노량진에 좀 있었는데, 거기에서 학교까지 5전이면 전차를 타는데 전차를 타지 않고 그 5전을 넣어 가지고 걸어오다가 내리는 곳 쯤에서 적선하고, 갈 때는 노량진에서 적선하고 그러고 다녔어요. 그러고 다니면서 '내가 이 나라 찾아들어와 가지고 큰소리할 때까지 잘 자라라. 죽지 말고 나와 더불어 크자' 하면서 나무를 치고 다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 그 플라타나스가 다 없어졌더구만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소년시절에 오뉴월 삼복지경에도 땀을 뻘뻘흘리면서 걸어다녔던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전차나 버스 혹은 택시를 타고 편히 오더라도 지난날 선생님이 걸어다녔던 기준을 생각하고 선생님이 이 나라 이 민족의 한을 풀어주고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께 안길 수 있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린 것과 같은 마음을 품고 나와야 합니다.
한강다리 밑의 빈민가
선생님도 옛날에는 빈민굴에 들어가서 누더기 옷을 입고 생활해 보았어요.이가 행렬을 지어 가지고 새벽부터 일진이... . 그런 경험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고관들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거리의 행인과 거지들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빈민굴이 선생님의 활동의 첫 무대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눈물이 많습니다. 하지만 높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눈물이 적습니다. 빈민굴 사람들 중에는 선생님이 한마디만 해도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높은 권위에 있는 사람들은 열 마디 백 마디를 하여도 대성통곡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은 대성통곡을 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 더 가까우냐 하면 빈민굴에 있는 사람들이 더 가깝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거지들이 살고 있는 곳에 많이 가봤습니다.그들은 낮에 밥을 얻어 가지고 오는데 거기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서로 먹을 것을 얻어 가지고 와서 '무엇을 얻어 왔어?' 그러면 '나는 잔치집에서 돼지고기 얻어 왔어' 하며 춤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그것이 또 자랑이 되거든요. 수십 명이 밥을 얻으려 갔다 왔어도 한 사람이 조금만 기준이 오르게 되면 전부다 그것을 가지고 떠드는 것입니다.
빈민굴에 가 가지고 그 사람들 앞에 트루 페어런츠고뭐고, 그저 손으로... . 젓가락이 뭐예요? 그저 변소 갔다 와서도 씻긴 뭘 씻어요? 그저 주워 먹고 싶어도 없어서 못 주워 먹지요. 파리가 붙었어도 먹어야 돼요. 그거 그래야 된다구요. 거기 있는 사람들은 여기 쓰윽 긁으면 손가락 자리가 난다구요. 때가 끼어서 말이예요. 그런 손으로 갖다 주면 정성껏 주는데 안 먹겠다고 치워버려야 되겠어요? 받아서 먹어야 된다구요.
불우한 이웃 돕기
그리고, 집에서 학비를 보내게 되면, 학비를 4월 초순이라 하게 되면 5월이면 다 써 버려요. 불쌍한 사람에게 나눠 주는거예요. 일화가 많아요. 그러고는 뭘하는 거냐? 신문배달도 하고 별의별 짓 다 하는 거예요, 장사도 하고.그런 역사가 훤해요.
또,선생님이 고향에서 보내 온 한 달 동안 학비를 가지고 학교로 올라가던 도중에 길가에서 죽음을 앞 둔 환자를 만나 그 환자에게 전부 다 돈을 주고 입원을 시켜서 치료해 가지고 돌려 보낸 그런 놀음도 다 했다구요. 그래 가지고 학자금을 내지 못해 독촉받던 그 생각, 그리고 그때 친구들이 동정해 준 일들은 일생동안 잊혀지지 않는다구요. 그런 한때의 일이 선생님의 일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내가 안다구요.
그때가 3월말쯤이었습니다. 새학기로 개학이 되어 학기금(학자금)을 가져왔는데, 가만 보니까 그 사람은 아들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천안에 자기 딸네 집에 있다고 해서 학기금을 몽땅 털어 여비와 병난 것을 치료할 것까지 다 해주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선조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구요. 내가 그때 발이 떨어지지 않아요. 돌아서지를 못 하겠더라구요.
그런 사람을 하늘이 만나게 해주었으면 하늘이 동정해 주라는 이상 동정해 준다고 해서 절대 손해나는 것이 아닙니다.하늘이 열을 도와주라고 하는데 백을 도와주게 된다면 아흔은 내가 하늘앞에 공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열을 도와 주기를 바라는데 다섯을 도와 주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하늘이 열만큼 도와주기를 바라게 될 때는 열 이상 도와줘야지, 열 이하를 도와줬다가는 여러분은 은혜 길이 막히는 거예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공식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내가 지갑에 있는 돈 전부 다 털었다구요. 책 살 돈, 하숙비 전부 다 털어서 안겨 보냈어요. 거기서 한 3킬로미터 정도 업고 가던 일이 엊그제 같이 생각나요.
그런 놀음을 해 나온 것이 선생님의 생활적인 심정의 배경이랄까.그런 생활을 해 나왔기 때문에, 하늘은 기필코 그런 사람이 필요한 모양이지요?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거라구요.
3. 체휼 신앙의 심화
사무친 눈물의 기도
기도를 할 때에는 등이 구부러지고 무릎에 굳은 살이 박힐 정도로 해야 합니다.선생님의 무릎에는 옛날에 기도하면서 생긴 굳은 살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기도는 마루바닥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도 흘려야 됩니다. 선생님은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자국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고비를 몇번이나 넘긴 사람입니다.
인생의 갈 길을 해결 못 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눈이 불거져 가지고 늘 기도했다구요. 기도하면서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햇빛을 못 볼 만큼흘렸어요.그런 놀음 하면서 이 길을 찾아온 거예요. 선생님은 한창 때는 18시간 17시간, 보통 12시간 기도했습니다. 엎드려 가지고. 점심을 안 먹어요. 그래 가지고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못 살아요. 사방이 딱 막혀 가지고 나갈 구멍이 없어요. 기도를 해야 바늘 구멍이 보이는 거예요. 그런 시련 과정을 거쳐 가지고 원리를 찾아낸 것입니다. 여러분들, 원리책을 붙들고 울어봤어요? 일생은 중요한 겁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안 와요.
'공든탑이 무너지랴' 하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지요? 하나님을 위해서 공을 들여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그리워서 미치리만큼 사무친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 땅이라면 뭐 하루에 천 번도 왔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땅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괜히 그렇게 정이 가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동삼(冬三)에 솜바지저고리를 전부 다 눈물로 적실 때가 있었다구요. 얼마나 기가 막혔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칼을 꽂아 놓고 담판기도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구요.
민족해방을 위한 기원
내가 나라를 위해서 왜정 때 눈물을 흘린 것은 ... .애국자에 지지 않은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지금도 흑석동 길이 ... . 지금은 용산까지 길이 나 있지만 아쉬운 감이 나요. 그때는 포플라도 있고 플라타너스도 있었는데, 그때 다니던 인상이 남아지는 거예요. 저기 저 저 명수대,노들강... . 그때는 왜정 때라구요. 그때 눈물 흘리고 나라 위해 기도 많이 했다구요.
그 한강을 건너가다 보면 나까시마, 중도(中島)라는 게 있다구요. 거기서 한강 물을 보고 탄식하던 일이 생생해요. '너는 천년만년 흐르지만 얼마나 붉은 마음을 가지고 이 나라 이 민족을 품기 위해서 흐르느냐? 생명줄이 될 수 있는 것이 물인데 이 비옥한 삼천리강산을 단장할 수 있는 샘, 어머니 젖과 같은 이런 한강수가 돼야 할 텐데... . 너는 못 하더라도 나는 할 거야' 하던 것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때는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다구요. 거기 걸어다니면서 그랬던 것이 생각납니다.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 옛날에 선생님이 공부할 때에는 한 폐이지를 읽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비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하면서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기도도 그러한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먹을 쥐어 봐요. 옛날에 선생님은 기도할 때에는 너무 쥐어 가지고 나중에 펴면 손이 아팠어요. 얼마나 함을 줬으면 그랬겠어요. 땀이 나도 꽉 쥐고 맹세를 했던 것입니다.
명수대 예수교회와 서빙고 오순절교회
옛날에는 서빙고 앞에 모래사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을 다 파버려서 모래사장이 없으니까 섭섭하더구만요. 여러분은 안 그래요? 빌딩 지은 것은 좋지만, 모래사장이 없어진 것이 난 지극히 섭섭해요. 추억이 많은 곳인데... . 여러분, 명수대(흑석동)에 가면 명수대 교회가 있어요. 그 교회는 선생님과 몇몇 동지들이 지은 교회입니다. 한번은 그 모래사장에서 서빙고 교회와 명수대 교회가 합동예배를 보았는데 그때... . 거기에 자갈돌, 모래판이있기 때문에 바람이 볼게 되면 아주 고약하거든요. 그러니까 자갈돌 더미 사이의 모래판에 가 가지고 전부 다 모여 앉아 가지고예배를 보고 다 그랬어요, 주일날이면.
유년 주일학교 교사
그때 학교 다니면서 주일학교 학생들도 지도하고 다 그랬거든요. 흑석동 교회에서도 그랬고, 서빙고 교회에서도 그랬어요. 그때는 한강이 얼어 가지고 밤에, 추우니까 강이 얼어 가지고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뺑! 지지지지지...' 그런다구요. 그러면 혼자 있으면 무섭다구요. 그런 한강을 건너 다니면서 서빙고에 있는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내가 주일학교 학생들을 잘 가르쳤지요. 지금은 얘기를 재미있게 못하지만 그때는 재미있게 했던 모양이예요. 내가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되면 전부 다 엉엉엉엉 하면서도, 매번 울고 야단하면서도 말이예요, 한번 울었으면 기가 막힐 텐데, 그만 울게 해 주기를 바랄 텐데 또 해달라는 거예요. 따라다니면서 말이예요. 그렇게 얘기해 주고 했어요.
선생님은 어린애들을 중삼삼아 가지고 나 자신의 소망의 상대로 여기고 유년 주일학교 학생들을 지도하던 명지도요원이라구요.그들을 누구보다 사랑했어요. 그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막 미쳤다구요. 학교에도 안 가고 선생님 뒤를 따라다니려고 했어요.
하기야 뭐 그런 바람이 불어야 한다구요. 뭐 학교도 뭐고 다 싫다 하고 선생님을 따라다녔다구요. 지금 서울에 옛날 내가 지도한 처녀 총각들이 다 있다구요. 그 처녀 총각들한테 내가 이남에 와서 '야야, 와라' 하면 전부 다 와서 선두에서 달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을 데려다가 통일교회 중요한 멤버를 안 만들었다구요. 그것은 왜 그랬느냐? 가인을 사랑하는 역사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 선생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도 다 여기에 있다구요.
교우들과의 친교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다구요. 삼척동자도 모시고, 소학교 학생을 모시고, 중고등학생을 모시고, 중년을 모셨다구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처럼 모셨다구요.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는 것보다도 더 모셨다구요. 먹을 것이 있으면 그들에게 주려고 싸 가지고 다녔다구요.
또 나이 많은 할머니들,꼬부랑 깽깽 할머니들도 붙들고 재미있게, 자기 영감보다도 더 재미있게 이야기 하기 때문에 '아이고 우리 영감보다 낫다' 하면서 가지 말라고 하고 따라온다구요.
어떤 환경에서든지 마음을 잘 맞춰 주거든요. 그래 가지고 할머니가 오게 되면 할머니와 친구하고, 아줌마와 친구하고, 애들하고 놀고 다 그러는 거예요. 얘기하고 놀 때는 유치원 선생과 같이 되어 가지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전부 다 잊지를 못 합니다. 지금도 그래요.
나는 예수교 박재봉 목사라든가, 이호빈 목사라든가 하는 사람들의 배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배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내입으로 그 사람들의 결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해 본 것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과는 인연이 있어서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만큼의 인연을 중심삼고 만나게 해주었는데 그것을 오십쯤의 인연으로 끌어내리면 끌어내린 사람이 책임져야 된다는 거예요. 일단 그 밭에 심어 놓은 것은 그 밭에서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전도 활동
선생님이 여러분과 같은 연령 때는 쓱 모자를 쓰고-그땐 모자를 쓰고 다녔다구요- 꽁무니에 책을 넣고는 공원 같은 데에 가서 쓰윽 대중강의를 잘했다구요. 내 말 좀 들으라구 말이예요. 그게 훈련이예요. 앞으로 많은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훈련이라구요. 많이 많이 해봐야 돼요. 많이 질문해 보고, 많이 답변해 보고... . 그거 다 경험이라구요.
한번은 무슨 일이 있었으냐 하면, 말하지 않던 내가... .창경원 꽃놀이 때가 왔어요. 거기 얼마나 사람이 많아요! 거기서 전도를 하는 거예요. 옷 벗어 젖히고 뭐 이렇게 하고 말이예요. 그거 나인 줄 모르지요. 내가 대중 앞에 나타나 가지고 그렇게 했지만 교실에서는 말도 안 하는 사람이 그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어휴, 저거 문 아무개 같은데 저럴 수 있나?' 이러는 거예요.
아침에 학교 가서 만났는데도 날 못 알아보더라고요.창경원 갔다 온 사람들은 내가 전도하면서 보았으니 나는 다 알거든요. 학교에 갔는데도 난 줄 모르고 있어요. 그거 말도 하지 않던 사람이 대중을 놓고 그럴 줄 몰랐던 거예요.
그리고 내가 흑석동에서 살았는데, 상도동 넘어가는 곳에 소나무가 우거지고 그 너머에는 화초를 가꾸는 일본식 집이 있었어요. 그리고 쭉 돌아가면 논이 있고, 그 너머에 동네가 있었는데 거기에 개척전도 다니던 집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의 일기장
일기를 쓰되 어떤 날은 노트 30장, 한 권을 썼어요. 그때 심정의 모든 비장한 사실을 가지고 왜정 때에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게 전부 다 자료가 돼 가지고, 그 기록 가운데에 형제들이나 관계되어 있는 이름 적힌 사람이 전부 다 연루자가 되어 가지고 줄연행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일기를 안 쓰는 거예요. 지금까지 수첩도 안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모두 머리에 기억하는 거예요.
그때 내가 매일 일기 쓰던 것이 있으면 지금도 상당히.. . 금은보화를 주고도 살 수 없을 거예요. 산을 더듬으면서, 마을 마을을 더듬으면서 그 자라던 시대의 심정세계를 그린 재료를 일본 형사들한테 끌려 다니면서 다 불태워 버렸다구요.
그런 여러 가지 사연이 많지만, 그 사실들이 결국은 자기라는 인간을 어떤 목적으로 끌고가는, 그 과거에 하나의 남겨진 유물이었더라!
전부 다 내 손으로 불태우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내가 앞으로 이런 길을 가게 될 때 필요한 역사적인 자료가, 도탄 중에 신음하는 젊은이들에게 해방의 길을 비춰 줘야 할 기록이 여기 있는데 이걸 태운다' 하면서 목이 메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문선생은 청춘 시절에 배고픔을 극복하고 민족 구도와 세계 구도와 하나님의 구도를 위해서 노력하던 사람이예요.
4. 서울 흑석동
그리운 흑석동의 옛모습
선생님이 고향을 19세부터 떠나 가지고 지금까지 고향을 잃어버리고 사탄세계를 수습하기 위해 일생을 거쳐 나오는 겁니다. 고향에서 떠나와 서울에 왔다면 서울이 외지예요. 그러면 평안도 정주 땅이 고향땅이 되고, 자, 외국에 나가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서울이 고향이 돼요. 서울이 고향이 된다구요.
내가 서울 흑석동에 있었는데 옛날 생각을 가지고 몇 번씩 가 보았어요. 그런데 서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흑석동에 한번 들어가면 자연 풍경도 있고 말이지, 추억 가운데 인상지어져 이렇게 흐르던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 가지고 가 보고는 낙심을 한 거예요. 야, 이거 뭐 발전한 것도 좋고 이렇지만 이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옛날을 더듬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높은 산에 올라가 보니 상상도 할 수 없더라고요.얼마나 들춰서 파가지고 집들을... . 옛날에는 그 산골짜기가 깊다고 했는데 어떻게들 다 메우고 집들을 지었는지, 상막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 옛날에는 있던 집을 찾아 봤어요. 찾아가서 집을 보니 알 수가 있나요? 가만히 이것 보고 저것 보고 이것 보고 저것 보니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옛날 살던 흑석동 집을 그 모습 그대로 어디에 모형이라도 만들어 놓았으면 얼마나 반갑겠어요? 이건 이렇고 요건 요렇고... .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잊을 수 없는, 뜻있는 물건은 추억으로 남기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의 요구다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정서적인 인연을 갖고 사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런 추억의 자료와 더불어 재차 자극을 느끼면서 더더욱 발전할 수 있는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런 것을 여러분 가문이면 가문에 남겨야 된다 이거예요.
광명의 터전 백석동(白石洞)으로
내 스스로 하늘이 갈 수 있는 길을 닦아 온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여기 흑석동에 가서 그런 기간에 흑석동 산에서 앉아 눈물짓던 바윗돌들이 있는 것을 보면.. . 그 나무들은 다 없어졌대요.
내가 이번에 흑석동에 가 가지고 말이예요, 이번에 내가 70년이 되어가기 때문에 옛날 학생시대에 살던 집을 몇년 전부터 찾으려 했지만 못찾은 집이 있어요. 그래서 요전에 쭉 찾아보고 나서 통일교회가 어디냐고 보니까 통일교회는 제일 하꼬방 집이예요. 내가 집을 짓거든 옛날에... .
그래도 여기 통일교회 역사를 찾아 드는 사람이 이 흑석동을 찾아 들어와서... . 흑석동 백석동 돼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 생각이예요. 흑암이 골짜기 여기에서, 내가 옛날에 살았던 여기가 세계 만민에게 광명의 햇빛을 비춰 주는 전통의 기지가 되어야 된다는 걸 생각할 때... . 거 노들강변도 거기 있더라구요. 그런데, 옛날 모습은 하나도 없어요. 교회가 없다고 그래서 교회도 사줬지만 말이예요.
그래, 왜 사 준 거예요? 그건 통일교회 교인들이 많아서 사 준것이 아닙니다. 흑석동에 살던, 옛날 그 시대에 살던 사람은 만나지는 못하지만 수적으로 볼 때 후손들이 많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 후손들, 그 아들딸들, 자기 어머니 아버지와 관계된 그 아들딸들 만나면 얼마나 감격적이겠어요? 거기서 역사가 부활하는 거예요. 옛날을 얘기하면 역사를 부활시켜 가지고 시대를 꽃피게 하는 거예요. 그런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역사를 배워야 되고 위인들을 존경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비싸고 귀한 보물은 보물을 산 주인밖에는 모릅니다.
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