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생애노정 7권
제1절 - 1981년 (∥) - 가정교회는 나의 천국
8. 기독인 교수 학생 중심한 활동 개시
국제크리스찬교수협의회 ICPA 창립
| 국내외 크리스찬 교수들의 친교 대화 협력을 위한 모임과 학술교류를 위한 국제크리스찬교수협의회 창립총회가 1981년 3월 28일 롯데호텔 예머랄드 룸에서 개최됐다. 이날 회장에는 장병림 서울대 교수가 선출됐다. |
교수들이 모이면 공산주의 이론을 비판해 가지고 전부 다 대안을 제시하고 교육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크리스찬교수협의회를 만들었지요. 1981년도 3월에 창립했어요. 그때도 그렇지요. 미국에 가서 과학자 대회 끝낸 다음에 말이예요. 당장에 가서 크리스찬교수협의회를 만들라고 했어요.
내가 벌써 작년부터 계획해 나왔어요. 작년부터 계획한 것이 뭐냐하면 국제기독교수협의회예요. 크리스찬교수협의회라는 걸 만든 거라구요. 작년 11월부터지요? 그거 윤尹世元박사를 시켜서 했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어요?
윤박사만 해도 그래요. 하와이에 가게 되면 말이예요. 하나오네? 「하나오네」 거기 가게 되면, 벗고 딱 들어가게 되면 바다에 사는 오색가지 고기가 와 가지고 줄줄줄줄 물어뜯습니다. 먹이 달라고 말이예요. 윤박사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든지 이거 숨 나가게 하는 파이프 달린 것 쓰고 종일 엎드려서 점심때도 나오지 않고 이러고 있더라구요.(웃음)
그때 내가 지령을 떨어뜨리기를 '윤박사, 이런 일도 좋지만 이제 우리가 대한민국 살릴 준비를 해야 될 텐데, 자신 있소? 기독학생연합회를 만들고 기독교수연합회를 만들어 북을 쳐서 기성교회는 나를 반대 하지만 저 원수새끼들 전부 구해 줘야 할 텐데, 자신 있소?"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 해보지요' 했다구요. 하라고 하고 떡 와 보니까 눈만 껍적껍적하고는 소식불통이더라구요.(웃음) 기독교 살리자고 하는데도.…. 나 같으면 밤 잠을 안 자고 왔다갔다 물어 보고 보고하고 그럴 텐데, 말이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다 만들어 줬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출발이 뭐예요? 출발이 뭐예요? 한국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할아버지도 가담해야 되고 20년 된 통일교회 노장도 가담해야 되고 또 젊은 사람도 다 연합해야 합니다. 평하고 깎으려 하지 말고 울타리를 만들어 끌고 갈 수 있는 협력자를 많이 만들어야합니다. 그것이 도리어 한국을 위하고 한국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국제기독학생연합회ICSA 창립과 전국 조직활동
| 국제기독학생연합회가 1981년 11월 14일 한국일보 12층 강당에서 2백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됐다. 동 연합회는 기독학생회의 일치,사회봉사, 국제기독학생과의 교류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
국제기독학생협의회 발기총회를 요전에 했지요? 2백 5십 명으로 46개 대학에 조직편성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구요. 현재 이 분위기를 절대 잃어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독교가 반대하려고 자꾸 그러는데, 지금 정부는 기독교가 반대하는 걸 '이놈의 자식' 한다구요. 지금까지 한패 돼 가지고 도움받았는데 그 저 생떼를 쓰고 있다구요. 자기들이 빚을 많이 지고 우리 통일교회를 걸쳐서 딱 따 놓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뭣을 빌려 주고 무엇을 도와주라고 자꾸 생때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래조래 다 이제 끓으려고 한다구요.
이런 입장을 중심삼고 우리가 기독교 학생을 딱 한 2백 명! 지금 종합대학이 몇개인가? 한 40개 대학이면 평균 다섯명씩 잡으라구요. 평군 다섯몇씩 기독 교수가 딱 자리잡고 있으면 말이예요. 그 기독교수를 중심삼고 네 명이면 네 명, 다섯 명이면 다섯 명이.. 어느 과면 과, 어느 학부면 학부에 책임 담당과 교수가 있다구요.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이렇기 때문에 자기 직속하에 있는 그 반만 하더라 몇 십 명이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교수가 다섯 명이나 열 명씩 포섭하는 건 문제도 없다 이거예요.
벌써 기독 교수들하고 집회해 보니까 찬송 부르고 기도하게 되면 '아멘' 하고 같이 울고, 피가 통한다구요, 피가. 교수아카데미 회원은 암만 모여 가지고 그저 울고불고 해도 피가 안 통하지만, 기독 교수하고 노래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게 되면 피가 통한다 이겁니다. 이런 사람이 다섯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기독학생회는 책임교수 한 사람이 있으면 대번에 조직되는 거예요. 이제 다섯 명이 기독학생회 조직하면 이 교수들 앞에 '카프CARP; 원리연구회 책임과 겸해 주소' 하면 오케이 하게 돼 있다구요. 문제가 없다구요.
이렇게 해 놓고 이제 무엇을 하느냐 하면 기독 교수를 뛰게 하는거예요. 예를 들어서, 밤이고 낮이고 학교에서 강의하고 이래 놓으면 아카데미 교수들이 곤란하게 돼 있거든요. 일은 우리가 먼저 하고 풍토는 우리가 먼저 했지만, 뛰기는 저쪽이 먼저 뛴다 이거예요. 그럼 불붙게 마련이예요.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후원을 안 하거나 반대도 할수 없게 되었거든요, 반대를 할 수 없어요. 틀림없이 백 퍼센트 후원 안 할 수 없다 이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반대받고 몰려서 아쉬운 판인데, 동지 교수들이 학교에 간판 붙이고, 학생회의 책임교수로 가서 뛰고 문제를 일으키니 마음으로 기분 좋게 돼 있고 후원하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 교수세계에 환영받는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아카데미의 교수를 늘려라 이거예요. 한 2천 명 늘려야 됩니다. 늘려 놓으면 그 가운데도 기독 교수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종일 뛰는 거예요. 뛰는 데는 혼자 뛰는 것이 아니거든요. 자기 반에 학생들 떡 해 놓고 말이예요. 무슨 원리강의고 무엇이고, 교리강의 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야, 야! 내가 오늘 교수 다섯 명을 부를테니 기독 학생들 모여라!' 해 가지고 때와 모든 시기를 볼 때, 한 방씩 놓는 것입니다.
기독인 교수 학생 중심한 활동
이번에 통일교회를 아는 패는,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전부 다 완전히 넘어섰어요. 기성교회 말을 듣고, 관청의 말을 듣고, 누가 어떻게 말하던 것을 듣고 그런 것을 이제 이론적으로 아주 완전히 넘어선 거라구요. 이러한 전환의 풍토가 이번 과학자 대회로 말미암아 되어졌다고 선생님은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자들을 통해서 내밀었고, 그 다음에 승공연합을 통해서 내밀었고, 그 다음에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 중심삼고 전부 다 내밀었고, 지성인들 통해서 대회를 해 가지 고 내가 내밀었습니다.
이제 한 가지 남은 것은 뭐냐 하면, 기독교 교수들과 기독교 학생을 중심삼고 내밀 것을 마련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사진>>
'81 기독인 교수 하계 수련대회
이제는 기성교회만 말없이 돌아가고, 기성교회 지성인들만 묶고, 또 그 다음에 대학교 기학생들만 움직여 가지고 딱 단결해서 사회와 연결시킬 수 있는 기반만 닦게 되면 끝난다는 거예요. 숙제가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카데미 요원과 더불어 짝자꿍이 돼 가지고 저쪽은 가인이고 이쪽은 아벨인 것입니다. 가인이 먼저 태어나고 아벨이 나중에 태어났는데, 끌고 가기는 누가 해야 하느냐 하면, 가인을 구해 가지고 형님같이 모셔 가지고, 돌아올 때는 아벨이 형님으로 돌아오면 원리에 그냥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본다구요. 또 카프도 형님이라구요. 가인입장에 서 있다구요.
기독 학생들은 원리 한 번만 들으면 말이예요, 이건 선발대가 되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이 원리 듣고 그렇게 되려면 6개월, 1년 반이 걸려야 된다구요. 기독 학생들은 일주일만 들으면 그건 그저 선발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얼마든지 조준을 해 놓고 교육할 수 있는 퍈국이 되었으니 얼마나 쉽겠어요?
지금 뭐 대학가를 움직인다기보다도 대학가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누가 움직이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카프하고 현재의 평화교수 아카데미의 교수들을 가지고는 못 움직인다는 거예요. 대학가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중심삼고 기독 교수와 기독 학생이 하나 될 때는 일반 아카데미 교수까지도, 카프멤버 안에 까지도 움직일 수 있다구요. 5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기독교 가정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 이게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이거 하면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때가 그런 때라구요. 우리 섭리사로 보면 그렇잖아요? 제1세 시대는 물러가고 제2세 시대다 이거예요. 섭리적으로 볼 때에 제1회 3차 7년노정이 끝났으니 그 다음에는 제2회 3차 7년노정인데 그것은 선생님 시대라기보다 여러분들 시대다. 이거예요. 한 단계 발전을 해서 지나간다 이겁니다.
한국 보사부에 신체장애자 성금 기탁
1981.11.21.
이번에 뭐 신체장애자니 해서 내가 떠나면서 보건사회부에 기부금을, 원조금을 좀 냈더니 '그 문목사가 하게 되면 10억쯤 해야지 뭐 그러더라나요. 10억이 아니라 100억도 내가 하마, 그렇지만 10억을 받을 수 있는 현정부의 자격이 못 된다, 나는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것은 피땀을 흘린 피의 값이요 땀의 값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이것 너희들이 모은 돈과는 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거기에는 레버런 문의 눈물자국이 깃들어 있고 통일교회 신도들의 땀자국과 핏자국이 깃들어 있는 거예요. 많은 돈을 받을 자격이 못 된다구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걸 받을 수 있는 그 이상의 주체자라면, 내게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협조하지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선생님 대해 '선생님은 돈을 많이 쓰고, 독일에 무슨 공장을, 아프리카에 대한 모든 계획을 하면서 통일교회 우리들은 고생을 시키고 쫄쫄 굶기고 말리고 이러는데 왜 그래? 하지만 그거 다른 게 아니라구요. 이 돈은 세계를 위한, 만민들의 해방을 위한 재료로 쓸 돈이예요. 여러분들은 해방이 필요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구원이 필요 없다구요. 여러분들에게 구원이 필요해요? 필요없는 거예요. 구원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쓰겠다는 게 선생님의 생각이예요. 그것은 하늘이 볼 때 잘 생각한 것이고, 우리 통일교회 역사를 볼 때 잘 생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