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 제 3 절 하나님의 소명과 뜻길 출발

훈독왕 | 20180427094439

 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제 3 절 하나님의 소명과 뜻길 출발

1935.4.17

 

1. 소명 전후한 탕감역사 111

2. 예수님과의 영적 만남과 뜻길 출발 118 

3. 소명과 내적인 준비 124

 

 

1소명 전후한 탕감역사 

 

축복 후에 받는 탕감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또 지금까지 선생님의 가정이 생활 해 나온 것을 쭉 되돌아보게 되면 하나님은 모질고 무자비하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때에는 축복을 해주시지만... . 선생님의 가정은 증조부 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때에 와서 탕감을 받았습니다. 축복받은 후에는 반드시 탕감받게 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탕감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축복받은 후에는 반드시 탕감을 받았습니다. 열만한 축복을 받았으면 반드시 그만한 탕감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지탱시키고, 그 씨를 남기기 위해서는 탕감을 받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가정을 위한 씨가 아니라 종족을 위한 씨를 남기려면 그 가정에 축복한 이상의 시련을 사탄이 퍼붓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열만한 축복을 주기 위해서는 스물, 혹은 백만한 사련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탕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기까지 선생님의 가정에 상당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가산이 탕진되었고, 인명 피해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사자로부터 전부다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축복을 받으면 절망적인 상태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이 그 가정을 사탄세계에 내놓는 것입니다.그러면 사탄세계에서 들이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선생님이 이 뜻을 찾아 나올 때까지 그 배후에는 삼대에 해당되는 탕감의 인연이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대에서도 탕감을 받았고, 아버지 대에서도 탕감을 받았고, 내 대에서도 형님까지 탕감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대에 있어서도 슬픈 일이 벌어져야 했고, 아버지 대에 있어서도 슬픈 일들이 일어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는 탕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 자신을 망하게 하려는 섭리냐?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한 승리의 기점을 바라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타락한 혈통을 받고 태어난 역사적인 섭리를 두고 볼 때에도, 타락한 이것은 불가피한 사살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때 사탄이 그 조상들을 통해서, 가정을 통해서, 형제들을 통해서, 자신을 통해서 들어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청산지울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하늘편을 대신해서 나설 수 있는 배후를 갖지 않고는 탕감의 자리에 못 나갑니다. 그 당사자는 알든지 모르든지간에 탕감의 인연은 오는 것입니다.

 

일족 차자(次子)들의 객사(客死)

 

선생님 집안이 그래요. 할아버지가 셋이 있었는데 둘째 할아버지(문신국 씨)가 객사했어요. 세 할아버지 아들들 가운데 둘째 아들들은 전부 다 객사했습니다. 용기 아버지(문경복 씨)도 객사했고, 문사장네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문경훈 씨)도 서울에 와서 공부하다 병나서 죽었습니다.  또 셋째 파주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문경호 씨)도 휘문고교 다니다가 역시 병나서 죽었어요. 그러면서 그 기간에 우리 집안이 엉망진창이 된 것입니다. 이건 뭐 사탄의 총공세를 받는 거예요.

 

그래 우리 대에 와 가지고, 내가 둘째거둔요. 장손집 둘째이니 나를 쳐야 되는데 내가 넘어지지 않았다 이겁니다. 승균이도 둘째이고, 용기도 둘째이고, 다 둘째가 남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별의별 것을 다 한 겁니다. 그러니까 똑똑한 사람 공부시키면 일찍 죽는다고 해 가지고 학교를 안 보낸 것입니다. 우리 문중에서 최고인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지요.

 

그러한 가문적 기반이 벌써 하나님의 탕감법을 중심삼은 섭리관과 일치될 수 있는 노정을 거쳐온 거예요. 원리가 그러니 부정할 수 없는 거라구요.  그러니 우리 가정이 얼마나 신통합니까? 얼마나 신통하냐구요.

 

또, 내가 이 뜻길을 나서 가지고 제일 수난을 당한 것은 언제였느냐?  제 2차, 둘째번 길이었습니다. 물론 첫째번 길도 그랬지만 둘째번 길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에 섭리사는 가인 아벨의 싸움이고, 가인 아벨 의 싸움은 가인이 아벨을 쳐 가지고 섭리의 뜻을 언제나 방해해 나왔다는 거예요. 번번이 섭리의 뜻은 가인세계를 점령하여 아벨 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놀음을 해온 반면에, 사탄은 가인편 지상 사람들, 즉 주권자들을 통해서 언제나 종교를 박해해 나왔습니다. 이 싸움은 지금까지 인류역사가 출발한 이후에 계속반복되면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대에 와 가지고도 그렇잖아요? 유효원 전 협회장도 세 가정 중에서 둘째 번입니다. 우리 희진이도 둘째 번 아들입니다. 어머니 시대에 와서는 둘째인 흥진이도 객사했습니다.우리 혜진이도 둘째 번 딸입니다.  낳은지 8일 만에 죽었다구요, 탕감법이 그래요.

 

천리의 공법에는 인과원칙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아는 사람이에요.그거 인간이 갖다 붙인 거 아닙니다. 내가 그걸아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길을 안 갔다가는 벌써 사탄이 채 가는 거예요. 어디에 가서 죽었는지 모른다구요. 그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음을 넘고 죽음을 앞놓아 가는 길을 아무도 모르게 그 이상 앞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고개를 다 넘었다구요.

 

쉴새 없는 집안 환란

 

영적인 현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이는 곳에서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탄은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선생님의 일가를 망칠 계획을 한 것입니다. 그 와중에 형(문용수 씨)과 누나(문효순 씨)가 미쳐서 아주 큰일이 났었어요. 젊었을 때 그러한 영적인 배경과 영적 세계의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미친 줄 알았던 형이, 가마히 보니, 뭔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야기할 때도, 형이 혼자서 쭉 하는데, 그 내용이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하는 방법이 달라요. 하루종일 몇 명의 영인들이 와서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것을 선생님은 바로 알 수 있었어요.

 

그래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죽었다 살아나고, 이건 뭐 쑥새둥지가 되는 거예요. 도깨비들이 난동을 벌이는 거예요.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낼 때 쓰는 예장이라는 게 있다구요. 열두 세 이상 보름 세 되는 것 말이예요. 그걸 토끝이라고 그래요. 물레에서 뽑는 거 말이예요. 그걸 전부 다 독에다 둬 가지고 한 필이 되게 되면 그 베를 맨다구요. 베를 매 가지고 무명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쌓아 놓은 것을 밤에 전부 다 풀어다가 우리 집에 한150년 이상 된 밤나무가 있는데, 거기에서 저 윗마을 박씨네 집에 큰 밤나무가 있었는데 거기에까지 공중으로 어떻게 해서 하얗게 널어 놓는 거예요. 승균이, 그거 생각나? 별의별 흉한 일이 벌어졌어요. 도깨비가 없는 게 아니라구요. 또 우리 평안도 시골에 가게 되면 벽문이 있는데 벽문에 조그마한 문이 있다구요. 어머니가 부엌에서 불을 때면 불이 뻥하고 그 공기 나가라고 뚫어 놓은 조그마한 문으로 빠져 나가 가지고 처마 끝에 불이 붙는 거예요. 그게 믿어져요? 그러니 그거뭐... .

 

심촌네(문경구 씨) 개가 귀를 잘라 먹지, 큰 돼지가 한꺼번에 물에 빠져 죽지, 소가 죽지, 말이 죽지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나 하나 때문에 일가가 전부 다 무어라고 할까?  내가 열여섯 살 때 이 길을 출발하게 될 때에는 열세 식구 가운데 다섯 식구만 남고 일년 동안에 다 죽었어요.  

 

오빠로서 동생이 좋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어떠한 일이라도 다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대까지도 다 잘라 버렸습니다. 여동생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남동생도 데려갔습니다. 우리 동생이 일곱 살 때 죽었지만 말이예요, 그 애가 나보다 잘생기고 아주 뭐 활달해서 '야, 저 녀석 저거 한판 차리겠구나. 나도 너한테 지지 않겠다.' 고 했던 참 자랑스러운 동생이었어요. 이름이'용(龍)'자하고 '관(官)'자, 용관이라구요. 이 녀석이 마마병에 걸렸어요. 그때에 왜정 때로구만요. 약을 구할 수 있나요? 종두가 없던 그때에 있어서 마마에 걸려 가지고 열이 동하니까 펄펄 끊는 거예요.그런데 그 뚱이 달면 죽고 쓰면 안죽는다나요? 그래,어머니가 그 똥맛 보는 걸 내가 봤다구요. 지금도 그게 잊혀지지 않아요.  

 

하늘이 끊어버린 인연들

 

선생님 자신에 있어서도 제일 가깝던 친구들, 하늘에서 축복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친구들은 다 데려갔습니다. 다 제거시켜 버렸습니다.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다 잘라 버렸습니다. 그들 중에는 평안북도 사람도 있었고 황해도 사람도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제일 가깝던 친구들을 다 데려가 버렸습니다.

 

왜 그들을 영계에서 데려갔는가 하는 것을 지금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그들과 사정(私情)을 나눌까봐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책임지고 나가는 선생님이 그들과 사정을 나눌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생님이 세상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모두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선생님이 잘 알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갈래야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남의 동네에 가게 되면 그 동네에서 사람이 죽든가, 병이 나든가, 그렇지 않으면 말이 죽든가, 소가 죽든가,하는 일이 반드시 벌어진다구요. 일생 동안 그랬어요. 어느 동네에 가만히 들어가더라도 그 동네에 야단이 벌어졌어요. 말이 죽지,개가 죽지, 독수리가 와서 하루에 닭을 몇 마리씩 채 가는 일이 벌어져요. 이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 번 동네에서 쫓겨났다구요. 색다른 사람이 저것이 동네에 오더니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요사스러운 사람이라고 쫓아낸다구요. 개인으로도 그렇고 가족이 전부 다 그렇게 살아왔어요.

 

 

2. 예수님과의 영적 만남과 뜻길 출발 

    1935.4.17. 아침, 정주 묘두산 

  

근본문제 고민과 담판기도

 

선생님이 태어난 1920년에는 이 땅이 일제 식민지하에 있었습니다. 그 무렵 선생님은 강대국에 짓밟히는 약소민족의 고통과 슬픔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청소년 시절이었던 그 당시에는 이 비참한 전쟁과 죄악의 세계를 구원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국가적 사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나라의 통치권 내에서 민족이 당하는 비참상을어려서부터 마음 깊이 느끼고, 이러한 환경적 여건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길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혼란된 세계정세를 누가 책임지고 수습할 것이냐?  그러니까  개인생활이 곤란하고 가정생활이 곤란 했습니다. 동네면 동네의 어느 가정을 보더라도 행복한 듯한 가정이 없을 정도로 혼란이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부락을 넘어서 나라가 그러하고, 나라를 넘어서 아시아가 그러하고,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가 그러한 혼란시기였던 것입니다. 

 

소년시대부터 인생에 관해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부터 왔을까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죽은 후에 우리의 생명은 그대로 계속되는 것일까?  또,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혹은 무력한 존재이신가? 만일 하나님이 전능하신다면 하나님은 왜 인류세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가? 이 지구상에는 왜 수많은 고통이 존재하는가?'

 

과거지사를 전부 돌아볼 때, 지금에 있어서는 이것이 추억의 한 말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때에 있어서는 참 심각하였어요. 자기 생애의 미래를 걸어놓고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담판하는 시기였습니다. 이것이 인간만의 결정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인간들의 생각을 넘어 결정적 노정을 취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그런 신앙길로부터 고심하던 모든 전부의 추억이 생생한 것입니다.

     

16세 부활절 아침

 

선생님은 16세 때에 비상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오랜 시간을 눈물어린 기도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께 나타나셔서 많은 계시와 교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심오하고도 놀라운 것들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께서 슬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체험한 이 경험을 말로써 여러분께 다 표현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영적인 세계가 돌연히 선생님 앞에 펼쳐졌고,선생님은 자유로이 그 영적인 세계에 있는 성자들과 마음껏 통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북한 땅 고용한 산중에서 선생님은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에 계시된 진리의 내용이 지금 통일원리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특별한 만남이 있은 후로 지금까지 나는 쭉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를 포함한 영계의 모든 성현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왔습니다. 그 내용을 말로써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예수를 봤을 때, 예수가 웃으면서 '아이구, 좋아!' 이래요? 그런 예수 봤어요? 그런 예수를 만나 봤어요? 선생님도 못 만나 봤다구요. 언제나 심각하고도 침울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구요. 하늘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거라구요.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본래의 부활절 4월 17일

 

이 4월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가 수난의 길을 거쳐 가지고 부활한 기간이기도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4월 17일을 부활절로 지내고 있습니다. 4월은 봄절기 중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받는 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날은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의 날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세계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던 그 한날도 알지 못하고 내려온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이 부활의 한날을 알지 못하는 인간을 대하는 하늘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며 얼마나 서러울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만은 하늘과 온 만민을 대신하여 누구도 모르는 이 한날을 축하하여야할 것이며, 이 시간 예수그리스도의 심정을 느끼는 그의 내적 외적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이 앉아있는 이 한 장소는 하늘과 땅과 온 만물이 주시하는 귀한 장소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타나 오늘이 당신의 부활의 날임을 밝혀 주던 일이 기억납니다.

 

책임감과 미래 위한 결의

 

내가 이 길을 나서게 될 때는 여러분보다 더 나이가 어릴 때입니다. 스무 살 전에, 그때에 이 길을 출발한 거예요. 그때는 천진난만한 그런 시대였습니다. 좋은 무엇이 있으면 그 좋은 것을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또 동네에 조금 색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알아보고 싶고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아주 강한 때였어요.

 

그런 시절에 이 엄청난 하늘의 뜻을 알고 천적인 대명을 받들고 나서는 그날부터... . 이 엄청나고 큰 것을 하나님이 약속함과 동시에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가야 할 자신은 그 큰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그대로 그것을 삼킬 수 있는 자기 스스로가 못 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탱하기에 너무나 크고, 그것을 받들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할 자기 스스로의 착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을 때는 그 큰 책임을 어떻게 다 해내느냐 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나는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목적하는 길로 가겠다고하는 힘이 누구보다도 강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운 길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품고 가기를 결정한 사람이요, 어러석은 사람은 지금 당장의 행복을 위해서 미래를 꿈같이 버리는 사람입니다. 선생님도 옛날에 젊었을 때 그런 생각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청춘시대는 한번밖에 없는데... . 어떤 길을 택했겠느냐 이거예요. 지혜로운 사람이 택해야 할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가는 데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느냐, 나라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느냐, 세계가, 하나님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느냐? 높은 차원에 비례해 가지고 그 인격의 가치라든가 역사를 지배하는 인간상이 달라지는 거예요.

 

오늘날의 여러분 자신, 자체가 문제예요. 과연 나는 내 자신이 내일을 약속할 수 있고 내일을 보장시 킬 수 있는 스스로의 그 입장을 결정했느냐? 이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예요. 오늘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미래에 소망을 세울 수 있는 스스로의 각오와 스스로의 결의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구요.

 

소명을 받아 가지고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생각해야 될 것은 언제든지 정성을 들이면서 뜻의 목적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찾기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복귀섭리의 전체적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나 스스로도 생각할 수 없는 초조한 자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집념이 필요하다구요. 이 선생님도 역시 집념을 가진 사람입니다.나는 영원을 위해서 출발했습니다. 집념을 가져야 돼요.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엔 뭐냐 하면 극복이 필요합니다.   

 

 

3. 소명과 내적인 준비  

    1935.4월 ~ 1945.8월

 

하나님의 실존과 원리의 탐구

 

하나님은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서 나를 선택하여 서품(敍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셨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여쭈어 보아야 됩니다. 내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그러한 사명이 나에게 부여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에 숱한 사연을 남기면서 지금까지 역사의 고빗길을 넘고 넘어서 해결짓지 못한 채 문전까지 하나님이 찾아왔다는 거예요. 레버런 문이 소년일 때 문전까지 찾아와 가지고 통고했는데, 그때가 레버런 문이 이 뜻을 알고 출발한 때였다구요.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누구의 말을 듣고 이 길을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누가 전도해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 동기의 출발점이 어디냐?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이 길을 나설 때에도 '하나님, 있습니까?' 하고 끝까지 캐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실히 알고 출발했습니다. 다음은 '하나님, 소원이 있습니까?' 하고 물어서 하나님의 소원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 내가 필요합니까?' 하고 여쭈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필요합니까?'하고 따졌습니다. 이렇게 내가 한번 찾아가 붙으면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시든가 아니면 보따리 싸들고 다른 데로 가시든가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10대를 지나고 20대를 향하면서 신앙적 노장에서 여러 가지 고민도 했어요. 그러면서 '일본에 가 봐야 되겠다. 일본에 거쳐서 미국을 갔다 와야 되겠다. 현지에 가 가지고 약소민족이 서러움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체험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다면, 내가 바라는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모험을 하는 대표자로 등장해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아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알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내정으로부터 사정, 하나님이 가야 할 목적지까지 알아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기독교 성경으로부터 모든 경서들을 탐구해 봤어요.  

 

선생님이 초라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 것은 16세 때부터였습니다. 여하튼, 그후부터 9년동안 선생님은 언제나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차례에 걸쳐 영계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점차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놀랄 만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길고 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진리 안에서 선생님은 영광스러운 새로운 문화의 서광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신약성서에 기초를 둔 이 특별한 계시는 유대교의가르침보다 훨씬 훌륭한 것입니다. 이 계시는 모든 종교를 포섭하여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받은 이 계시는 오늘날 '원리' 라고 불리워지고 있고, 선생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원리를 땅끝까지 전파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가르쳐 준 것은 전부 다 뚜껑 덮어져 있던 미지의 사실이예요. 지금까지 인류역사에서 방대하게 덮어져 있던 뚜껑을 전부 벗겨 가지고 그것을 엮어서 하나의 이론적인 체제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으로 실제적인 사실과 진리적인 역사적 내용에 일치 될 수 있는 결론을 지울 수 있겠끔 했다고 하는 사실은 놀라운 거예요.  

 

전국 답사

 

나는 세상을 잘 알아요. 이 나라 사정도 잘 알아요. 나는 15세, 16세때 이 삼천리 반도를 다 답사한 사람이라구요. 자기 나라를 생각할 줄 알아야 돼요. 그 나라가 세워직들랑 세계는... .

 

벌써 15, 16세 시절에 남한 일대를 다 편답한 사람이예요. 전라도가 어떻고, 경상도가 어떻고, 문전걸식도 해봤다구요. 이런놀음 하면서 민족이 비운데 사라져서는 안 될 것이고 비운의 운명, 하늘 앞에서 퇴보했던 그 비운의 역사는 우리 선조의 핏줄을 통해서 오늘 나에게까지 이어져 와 가지고 종착점을 세워 놓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데, 잠들어 있는 민족 앞에 내가 기수가 되어 가지고 폭발적인 민족의 얼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있다면 대한민국은 살 길이 있다고 봤던 것입니다.

 

그 나라가 행복하고 평안했더라면 그렇게 인상적인 것이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어렵게 사는 마을 마을을 거치고, 혹은 산야를 넘나들면서 느꼈던 것이 '이 불쌍한 민족' 그런 거였어요. 그런 생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러면서 나는 이 민족 가운데 한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그 불쌍한 민족인 동시에-그때는 왜정시대였어요, 왜정시대- 외세의 짓밟힘을 받으면서 자기의 심중과 자기의 생활환경을 자랑할 수 없는 비참상, 그 모든 내적인 고충이 크면 클수록 환경이 어려운 민족을 바라볼 때 그 충격적인, 기가막힌 사실들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을 지금 생각하게 됩니다.

 

학생 시대에, 청소년 17세에 전국을 안 다녀 본 데가 없다구요. 밤을 세워 가지고 트럭을 타고... . 트럭 운전수가 안 태워 줘도 그래도 올라가 타는 거예요. 저 운전석에 못 타면 저저 짐칸에라도 올라가 타는 거예요. 타고 앉아 있는 거예요. 나 죽이고가라 이거야. 나 하나 뭐 탔다고 빵꾸 날 것도 아닌데... . 그래 가지고 트럭을 타고 가서 그 다음날 저녁에 내리면서 '아저씨,내가 저녁 사지' 그러면 '그래' 한다구요. 그래 저녁을 먹으면서 한바탕 얘기를 들어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야기에 흘딱 넘어가 가지고 내가 저녁 산다는 말도 잊어버리고는 말이예요, 대신 돈을 꺼내서 자기가 지불하는 거예요. 또 어떤 아주머니에게 말이예요. 논에서 일하는 자기 남편 밥해 가지고 광주리를 이고 가는그 아주머니를 길가에 세워 놓고 내가 그 밥을 다 대접받은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임기응변이 필요해요, 임기응변.

 

죽음도 각오한 심각한 출발

 

선생님이 처음 이 길을 출발할 때 얼마나 생각을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이 길을 위해서 피땀을 흘리고, 생명을 걸어 놓고 기도하며 일생을 바쳐 온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대하면서 내가 옳다그르다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이 길을 나선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몸이 쓰러지지 않았으니 아직까지 내 갈 길이 남아 있고, 거쳐 가야 할 약속의 길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선생님도 하나밖에 없는 청춘을 다 바쳤다구요.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머리가 어리석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구요. 도망갈래야 도망갈 길이 없어, 길이. 그러니까 할수없이, 이 길밖에 갈 길이 없기 때문에 아니 갈 수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여러분보다 많은 생각을 하는 선생님이 얼마나 심각했겠나.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신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그 사람은 외형적으로 인격이 잘난 사람이 아니요, 내적으로 신념이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는 참을 가진 사람입니다. 보기에는 약하더라도 사랑의 칼을 가지고,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이 모든 것에 부딪치게 될 때에 그것을 끊고 남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않고는 우리의 소명의 목적지를 향하여 갈 수 없는 것이요, 소명하신 분 앞에 내 스스로 가야 할 길을 다 왔다고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선생님 혼자서 해결해 나온 것입니다. 그건 어느 누구에게 의논해도 모르는 거예요. 선생님이 장래에 가고자 하는 그 길에 대해서는 부모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야기해 봤자 이해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면 모두 방해만 돼요.

 

선생님이 10대 청소년으로서 결의한 결의가 오늘 역사적인 복귀의 한을 넘어 가지고 승리의 천국의 문을 갬ㄴ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어요. 그것을 알게 될 때, 한 젊은이가 결의한 그 능력은 위대한 것이라는 겁니다.

 

고향과 종족을 외면한 뜻길

 

공의의 뜻, 세계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라는 도리를 알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를 따라서 천도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천도를 따라서 인도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즉, 인정을 따라서 천정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천정을 따라서 인정이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정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인정을 없애야 합니다. 천도(天道)를 세우기 위해서는 인도(人道)를 흡수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부모님에게 손수건 한 장, 신발 한 켤레도 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일을 생각하면 인간적으로는 불효 자식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부모님 앞에 불효한 망정 하나님 앞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불효의 자리에 서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며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결심으로 모든 것을 주관해 나왔기때문에  결의가 성사되는 그날까지 안식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형제들을 못 구했어요. 세계적 가인을 사랑하고, 나중에는 세계적 가인국가까지 사랑해서 방향을 하늘편으로 돌려놓기 전에는 자기 고향에 가서 수습할 수 없는 것이 원리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 가까운 사람들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희생시켜 가지고 가인에게 복귀운동을 한 전통적 내용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머니 아버지한테 원리 말씀 한번 전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형님은  통하는 사람이었어요해방될 것도 알았다구요. 그런 형님이었습니다. 우리 일족 전부다, 누나나 동생은 다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예요. 원리 말씀을 들었으면 직통할 수 있는 소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원리 말씀을 못 들어서... . 말을 하려고 그려면 입이 달라붙었어요. 때가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여러분이 부름을 받아 기지고 레베런 문을 통해 뜻의 길을 나섰거들랑, 여러분은 소명받은 자로서 무엇을 위해 소명을 받았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나는 이렇게 가야 되겠다고 결심을 했으면 그 길에서 몇분지 몇에, 혹은 몇부 능선 가운데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이 한번 결심을 했으면, 그 결심한 것을 중삼삼고 결정을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스냐, 노냐, 답을 해야 된다구요.

 

그것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늘 앞에 내가 약속을 하고... . '이러 이러한 길을 필시 갈 것이어늘 내 동역자가 배반하더라도, 내 부모가 배반하고 내 처자가 배반하더라도 나는 갈 것입니다. 내 민족이 배반하고 내가 사는 통일교회 자체가 배반을 하면 이것을 쓸어 버리고라도 나는 갈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소명을 받은 그날부터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고 있는 거예요. 내일도 갈 것입니다. 그 길은 빨리 갈수록 좋은 거예요

 

뜻길 출발 때의 회상의 기도

 

아버님, 지금으로부터 수십여 년 전, 철모르는 어린 것을 불러 놓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던 그때가 어제 같사옵니다. 수많은 역사적인 고비를 넘긴 오늘, 옛날을 뉘우치며 생애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던 그때에 고요히 분부하시던 당신의 음성이 새롭나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행복을 자처하는 그 자리보다도 눈물과 피를 흘리는 자리에서 입술을 깨물며 아버지 앞에 맹세했던 그 시간이 그립나이다. 인간들끼리 교류하는 그 자리보다도 몰리고 쫓김받으면서도 하늘의 인연을 자랑할 수 있는 자리가 그립나이다. 현재 이 땅의 인간들은 모르나 저희들은 하늘을 찾아가는 자녀의 길이 그러하고, 자녀들이 가야 할 인연이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나이다. 저희가 죽음의 길을 자청하여 가기로 결의할 적마다, 하늘은 그 길을 다시 살 수 있는 부활의 길로 엮어나오셨다는 것 또한 알았나이다.

 

뜻의 길을 알고 난 때에 그 딱하고 어려웠던 사연을 앞에 놓고 몸부림치면서 허덕이던 그때를 잊을수 없습니다. 통일가의 전통적 배후에는 많은 눈물의 교차로가 엉크러져 있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이 자리에 돌아와 생각하니 그것이 막을 수 없었던 회생의 일념이 되어 있나이다. 일제시대를 거쳐, 북한 땅을 거쳐, 남한 땅을 거쳐, 미주 땅을 거쳐 세계를 넘나들었습니다. 하늘이 가는 길은 그렇게 핍박이 동반되었던 사실을, 그 연유를 알고 나니 하늘 앞에 감사할 길밖에 없었던 생애의 길을 걸어오게 하심을 다시 한 번 감사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