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 제 2절 어린시절과 초기학습

훈독왕 | 20180422221135

참부모님 생애노정 1권 

 

2절 어린시절과 초기학습

 1920-1938.3월

 

 

 

1.자연탐구와 농촌생활 57

2. 타고난 동정심과 가족사랑 79

3. 무서운 투지와 의분심 88

4. 주목받은 소년 94

5. 초기학습과 신앙입문 99 

 

 

1. 자연탐구와 농촌생활

 

고향의 산하

 

선생님은 어렸을 적부터 산을 보고 '저 산의 이름이 무엇일까? 저 산에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으며, 그렇게 생각되면 반드시 가 보았습니다. 또한 동네방네 한 이십 리 안팎에 있을 것을 환히 알았습니다. 그때는 산하에 있는 모든 것, 보이는 산이면 산 그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거예요. 성격이 그랬어요.

 

활동 범위가 크고 넓거든요. 보이는 뜰 안에는 안 가 본 데가 없고, 산꼭대기 높은 데는 안 가 본 데가 없습니다. 그 너머까지도 가 봐야 돼요.그래야 아침 햇빛에 보이는 저 속에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 머리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을 바라보지, 안 가보고는 그것도 바라보기 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나 앉아 있을 때가 없지요? 그런 모든 곳이 선생님이 신앙적인 정서를 길렀던 고향산천이예요. 고향 물이요, 고향 나무요, 고향 땅이요, 고향 봄바람이요, 자기의 지난 모든 것이 생생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고향의 산하에 있는 모든 동식물에 대한,자연계에 대한 것을 교재로 삼아 가지고 자기 내적인 인간이 자라는데 있어서의 풍요성을 갖추는 데서 많은 재료를 남기는 곳이 고향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고향의 산천이 그리워요.내가 자연을 참 좋아했습니다.

 

식물 탐구와 나무타기

 

내가 어렸을 때 산에 다니면서 꽃이라는 꽃은 안 건드린 게 없어요. 모르는 꽃이 없어요. 동산에 가서 자연이 너무 좋아서 집에도 안 들어가고 해가 지도록 자연과 어울려 돌아다니다가 피곤해서 엎드려 자다 보니 밤 12시 되어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찾으러 와서 데리고 갈 때가 많았어요. 자연을 그렇게 좋아했어요.

 

또한 풀도 수백 종류를 채집하여 어떤 것이 독초이고 어떤 것이 약초인가, 또 그 구조는 어떨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하여 열심히 연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나물 같은 것도 내가 모르는 것이 없다구요. 누나하고 혹은 동네의 아주머니들하고 산나물 캐러 가더라도 언제든지 앞장서 가 가지고 산나물을 뜯던 생각들이 납니다.

 

더욱이나 어렸을 때 자기 집에 가까운 거리에 있던 나무, 혹은 밤나무가 있었다든가, 혹은 아카시아 나무... . 그 아카시아 꽃이 피게 될 때는 행기가... . 그 행기는 참 고상한 향취 아니예요? 이런 모든... . 그러면 그 아카시아 나무도 자기가 바라보기만 하지 않는다구요. 가자마자 올라다니고 말이예요.

 

선생님은 동네에서 아무도 못 올라갔던 제일 높은 나무가 있으면, 올라가고야 말았어요. 밤잠을 안 자고, 밤인데도 거기를 올라가는 겁니다. 우리 집에 가게 되면 큰 밤나무가 있어요. 한 2백 년 된 밤나무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나무예요. 내가 원숭이 띠라서 나무에 잘 올라다녔어요, 가지마다. 밤송이 있는 데마다 그저... . 나뭇가지가 휘어 떨어지게 되면 저 아래 가지에 가서 닿을 것을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떨어질 때는 다른 나뭇가지에 걸치고 떨어지지요.일부러 끄트머리에 가서 나뭇가지가 닿는 곳까지 가는 시험까지 한다구요. 그렇게 다니면서 조그만 나무 지팡이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걸로 톡톡 밤송이를 따면 참 재미가 있습니다. 그 밤알을 떨어뜨리지 않고 따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거 아주 생생하다구요. 이것은 시골에서 자라지 않는 사람들은 모를 거라구요. 거 수십 그루지, 그 밤나무가 굉장히 크다구요.

 

그리고 나는 잣나무를 사랑한다구요. 나무에 열매가 없으면 안되지요. 잣나무는 열매가 있거든요. 이것은 심더라도 얼어 터져야 돼요. 또 오엽송이예요. 이것은 동서남북을 중삼삼고 하나의 중앙선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잣나무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 나무는 아주 잘 자라요. 똑바로 올라가거든요. 뿌리도 똑바르고 순도 똑바로 올라갑니다.

 

또, 선생님은 이 대나무를 볼 때 참 기분이 좋습니다. 암만 바람이 불어도 대나무는 안 부러집니다. 송죽 같은 뭐라 말할 때... . 그거 왜 소나무를 먼저 했을까요? 죽송이라 하지. 소나무는 부러지거든요. 그리고 또 자랄 때 보면, 대나무는 한꺼번에 다 자랍니다. 한꺼번에 자라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자라지 않습니다. 한꺼번에 크는 것입니다. 그것 알아요?

왕창 큰 다음에 가지를 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대나무를 보라구요. 대나무는 순이 나와 가지고 왕창 크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가지도 없습니다. 한 해에 다 자라는 것입니다.

 

새들의 생태 관찰

 

선생님은 어렸을 때 아름다운 새를 보면 그 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새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디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까는지? 이런한 것을 며칠이 걸리더라도 샅샅이 뒤져 기어이 알아 내고야 말았습니다.

 

산에 보이는 모든 것, 그 휘하에 있는 날아 다니는 모든 새는 다 새가 감정하고야 날아 다니게 하는 거예요. 철새 같은 것, 이쁘장한 철새가 딱 오게되면, 요거 처음 보거든요. 아, 요놈의 새가 숫놈은 어떻게 생겼고, 암놈은 어떻게 생겨는지 그걸 알고 싶다구요. 그런데 그걸 알 수 있는 책자가 있어요? 그러니까 할수없이 철새를 찾아가 연구하는 거예요. 일주일을 밥을 안 먹고 기다리는 거예요.

 

한번은 까치가 알을 낳는데 매일같이 그것이 궁금한 겁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기까지 밤잠을 못 자는 거라구요. 어제 저녁에 올라가 보고 또 새벽부터 까치가 나오기 전에 쓰윽 올라가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 보면 한 알 낳고 두 알 낳고 세 알 낳고 매일 알이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오르내리니까 까치와 친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죽겠다고 깍깍거리며 야단을 치더니 매일같이 올라와도 지장이 없으니까 그저 이러구 있더라구요. 그래서 새끼에게 무엇을 잡아먹이고 무엇을 하는가를 전부 다 관찰을 했습니다.

 

'아하, 선생님이 짓궃은 선생님이구나!' 할 거예요. 내가 짓궂지요. 짓궂은 데도 있다구요. 새들 잡아다가 쌍쌍이 전부 다, 입안 맞추는 것도 입맞추라고 갖다대고... . 암만 해도 안 맞추더라구요. '너희 둘이 좋아하면서 입맞추고 짹짹거리고 한번 노래해 봐라, 해봐라, 해봐라!' 하면서 암만 맛있는 먹이를 갖다 주고, 기다리고, 추울까봐 울타디리를 해주고 별의별 짓을 해도 안되더라 이거예요. 사랑은 자연히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최고의 자유의 환경에서 주고받자고 하는 것이 사랑이라 이거예요. 그런 거 선생님이 다 실험해 보고 다 배운 거라구요.

 

까치의 둥지를 보면 벌써 아, 금년에는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불겠구나 하는 것을 알아요. 동풍이 불겠다 하면 방향을 딱 달리해 가지고 들락날락 거리면서 구멍을 딱 내놓고 나뭇가지를 끌어다가 둥지를 치는 걸 보면, 참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걸작품을 만들어 놓는다구요, 이게. 이것은 나뭇가지로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비도 새고 그럴 게 아니예요? 그러니 나중에는 뭘하느냐 하면 진흙을 갖다가 아래에다 전부 바르는 거예요. 바람이 안들어오게 이렇게 해 놓고는, 참 신기할 정도로, 비가 오면 한 곳으로 흐르라고 전부 한 곳으로 끄트머리를 대 가지고 비가 집으로 떨어지지 않게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끄트머리를 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모아 놨더라고요. 비가 내리면 이 빗물이 흘러 가지고 그쪽으로 떨어지게 하는 거예요. 이걸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참 대단한 솜씨지요. 우리 인간들도 그런 집을 지으려면 아마 몇

년은 배워야 될 거예요. 그런데 나못가지를 입으로 물어다가 쑥쑥쑥 이렇게 하는 거예요.

 

꾀꼬리 둥지는 말이예요. 요렇게 가지에 매달려 있다구요. 그거 보면 참 신기해요. 그거 어디서 명주실 같은 것을.. . 그 명주실을 어디 가서 물어 왔는지 참 거... . 꾀꼬리는 보통 나무 가지에 안 틀어요. 높은데, 참 높은 데 ... . 오리나무 같은 짝짝한 송충이예요, 송충이. 맛있는 것 중에 송충이가 제일 맛있다는 거예요.

 

종달새 같은 것은 둥지를 틀든가 이러면 말이예요, 둥지를 저만큼 틀어 놓았으면 10미터 앞에 앉아요. 종달새는 뜰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 쉬우니까 잔디, 잔디 사이에다 참... .보통사람은 몰라요. 그 옆에 가도 모른다구요. 딱 삼각에다 만들어 놓고, 이쪽에 이렇게 다 해놓고, 그다음엔 문은 두 문으로 해놓고 말이예요.

 

참새를 보게 되면, 누가 교육했는지 조금만 참새 수놈 암놈이 만나 가지고 둥지를 틀어 놓고 새끼를 치는데, 새끼를 치게 되면 어미는 자기가 먹을 것도 안 먹고 새끼에게 다 갖다 먹입니다.

그것을 누가 먹이라고 가르쳐 줬어요? 그것을 누가 설명할 수 있어요?

 

또, 조그만 참새들도 가만 보라구요. 이거 뭐 짹짹짹짹 할 때는 애기들이 그저 장난감으로 알고 잡아죽이려고 하고 말이예요, 맘대로 할 수 있는 참새지만, 이 참새가 집을 지을 줄을 안다구요. 새끼를 낳아 가지고 기르다가 새끼가 위험하게 될 때는 자기 생명을 초월한 줄 알아요. 그것이 천년 만년 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거예요.

 

참, 새끼 사랑하는 그 동물들의 강한 모성애, 부성애라는 것은 대단한 거예요. 어떤 때는 이거 생각하면 안쓰러워요.  그런 한가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새면 새에 대해 비교해 가지고 생태를 연구할 수 있는 이런 교재가 많은 것입니다.

 

새들의 노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어요. 첫째는 배가 고플 때 신호하고 노래하고,  그다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 하는 노래하고, 그다음에는 위험할 때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게 다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는 뭐, 보통 사람들은 모르지만 자기들 세계에서는 다 안다는 거예요. 배가 고파서 울면 벌써 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매일의 생활이 무엇을 중심삼고 돼 있느냐? 배고픈 거야 하번 먹으면 끝나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매일같이 뭐 위험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예요. 대부분의 노래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하면, 상대와 주고받는 관계에서 노래가 오고 간다는 거예요.

 

재미있는 것이 뭐냐? 새를 보더라도 수놈 암놈이 있는데, 가만 보면 새들은 말이예요, 수놈이 더 아름답다는 거예요. 암놈은 치장을 하지 않았어요. 꿩을 보더라도 수컷이 아름답지요? 아, 이거 얼마나 근사해요, 쓱-. 볏도 울긋불긋하고, 여기 전부 자색빛이 나고, 뭐 목에 넥테이를 두르고, 그 얼마나 호화스럽게 해가지고 있어요. 그건 왜? 어째서 그렇게 되어 있느냐 이거예요. 새들은 많이 번식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번식할수록 좋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여자가 찾아다닌다 이거예요.

 

곤충들의 생태 탐구

 

자, 새는 이와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교재입니다. 동물세계 식물세계가 다 교재라구요. 나비가 나는 것도 이와 같이 사랑하라는 교재입니다. 모든 자연세계는 사랑의 교재입니다.

 

벌레들이 살고 곤충들이 살고 혹은 동믈들이 사는 것 보면 전부 다 쌍쌍이라는 것을 알수 있어요. 이렇게 볼 때에 자연은 뭐냐 하면, 인간 하나를 사랑의 대상으로서 상대이상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전개시켜 놓은 교재, 박물관이다 이거예요.

 

동물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봄이 되면 다 사랑의 짝을 찾아 헤맵니다. 새들도 그렇고, 곤충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름이 되어 곤충의 우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그 우는 소리에는 딱 두 가지밖에 없어요. 하나는 배고파 우는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짝을 만나고 싶어서 우는 소리입니다. 신호가 간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선생님은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곤충을 참 많이 잡아보았습니다. 안 잡아 본 곤충이 없을 정도입니다.

 

매미가 울 때는 날이 맑아지는 거예요. 무더운 여름에 쓰르라미가 울 때는 그 쓰르라미의 음성이 얼마나 시원해요? 그걸 가만히 보면 땀을 흘리는 것도 다 잊어버려요. 얼마나 시원한지 거 알아요? 천지조화가 그 모든 환경에 맞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매미 소리를 사랑해야 되고 쓰르라미 소리를 사랑해야 되고... .

 

내가 있는 방 앞에 감나무가 있었어요. 변소 앞에 있던 큰 감나무인데 그 빛이 얼마나 청청했는지 모릅니다. 감나무 잎이 유난히 윤기가 나는 거예요. 거기에 쓰르라미가 있는 거예요. 그 동네에서는 거기가 제일 높은 곳이거든요. 그 쓰르라미가 높은 곳에서 울어야 된다는 것을 다 아는 거예요. 높은 데서 울어야 그 효과가 나지, 저 구멍이에서 효과가 날게 뭐예요? 그게 울어대는데, 어떤 때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얼마나 시원한 지, 거 한번 들어 보라구요.

 

거기에는 바느질하는 아낙네들이 더위를 원망할 수 있는 마음을 잊고 바느질을 멈추고 끌려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경지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그러는지 한번 찾아가 봤어요? 선생님은 관심이 많아서 그런 거 참 많이 했다구요. '아, 요런 매미는 요렇게 우는 거구나.' 하고, 안 잡아 본 것이 없어요. 관심이 많다구요.

 

그러면 저들이 노래하는 게 뭐냐? 사랑의 흥을 돋으자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맴매맴 스룩스룩'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 상대도 그렇지만 천지의 모든 환경적 여건을 전부 다 화합시키는 거예요. 그 환경 가운데 사는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노래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이상을 가지고 살아라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태어난 고향의 열매를 먹고, 고향의 물을 먹고, 고향에서 자연 동물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세계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조그만 개미새끼도 보면, 옛날에 개미를 봤는데 조그만 개미새끼도 손이 다 있더라고구요. 개미 같은 것도 우리 인간이 깨닫지 못한 것까지 깨닫는 민첩하고도 더 고차적인 섬세한 기관이 있더라 이거예요. 여러분들, 뭐 영국 런던 박물관이 크다고 하지만, 박물관 몇백 개 가지고도 그건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그맣게 생긴 것이 박물관 몇천 개를 업고 지고 안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그래 법이라는 건 무서운 거예요. 법이라는 건.

 

여러분, 쇠똥구리 알지요? 쇠똥구리. 이 욕심 많은 쇠똥구리가, 뒷발로 앞발로 자꾸 똥을 굴려 가지고 크게 만듭니다. 그것을 내가 재미있게 잘 봤어요. 쇠똥구리를 바라보면 알겠지만, 작업하는 것이 아주 영리하거든요. 그것을 착착착 굴려 갑니다. 솔직한 말로 야, 멋지더라 이거예요. 이 녀석을 가만히 보면 자꾸 커집니다. 요만큼 한 놈이 이만큼 크게 만드는 거예요. 욕심 많게 말이예요. 이래 놓고는 밀어도 안 되니까 그 다음에는 뒤로 차고 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여 그게 도르륵 굴러가게 되면 말이예요, 그것을 놓지 않고 함께 굴러가는 거예요.

 

우리가 양봉도 많이 했지만 진짜 이 꿀이 말이예요, 아카시아 꿀이 참 맛있습니다. 이 아카시아 꽃에 벌이 앉아 가지고 처음부터 맛을 보게 된다면... . 이놈의 대가리를 처박고 들이 먹을 때는 앞뒷발을 이렇게 버티고 꽁무니는 아래에다 받치고 들이 빨아대는 거예요. 그럴 때 핀세트로 꽁무니를 잡아 당기면 꽁무니가 떨어지더라도 안 놓더라구요. 얼마나 지독해요? 몸뚱이가 떨어지도록 당기는 녀석도 지독하지만 그 맛을 알고 못 놓는 게 더 지독하다는 거예요. 야, 이거! 그걸 보고 '야! 이거 나도 배웠다. 나도 요렇게 해야 되겠다' 했어요.  

 

사냥과 고기잡이

 

또, 안잡아 온 동물, 짐승이 없습니다. 아 이, 호랑이는 잡아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삵괭이로부터 너구리, 토끼, 뭐 다 잡아 보았습니다. 그거 흥미진진합니다. 그것들이 혼자 사는 줄 알았는데 다 짝이 있었습니다. 전부 쌍쌍입니다.

 

이끌고 다니면서 족제비 사냥 많이 했어요. 낮에는 토끼사냥을 많이 했어요. 없으면 그 동네 개라도 짓게 해서 따라오게 해 놓고는 한고개를 넘어 '야 저 뒤에 가서 몽둥이로 후려갈겨라' 해서 개몰이 했어요. 토끼가 없으니 개몰이라도 해야지요. 이래가지고 야단 맞고 그랬다구요. 개를 몽둥이로 후려 갈기면 다리가 부러지지 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짓는 개를 잘 훈련시켰어요.

 

참새 고기가 참 맛있다구요. 뭐 안 먹어 본 고기가 없어요. 뜸북새 있지요? 뜸북새로부터 뭐 꿩으로부터 뭐 왁새, 뭐 뱀, 안잡아 본 게 없어요. 뱀이라는 건 전부 다 독사건 무엇이건 나타나면 잡는 거예요. 독사가 날 물어요? 내가 독사를 물지요. (웃음) 또, 새 알들이 알락달락한 게 참 여러가지입니다. 그걸 또 구워먹고 싶으면 하나 갖다가 구워 먹어 보지요. 계란과 새들의 알은 마찬가지예요. 무슨 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골 가면 큰 청개구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홍역 같은 것 해서 먹지 못하고 열병 앓으면 홀쭉해지거든요? 그러면 그런 것을 댓 마리 잡아다가... . 그거 다리가 피둥피둥하다구요. 그것을 껍데기 벗겨 가지고 호박잎에 싸 가지고 굽는 거예요. 서너 겹만 싸 가지고 구우면 두꺼풀 이상 안 탑니다. 시루에 찐 것 같다구요. 얼마나 말랑말랑한지 모른다구요. 그 맛이 그만이라구요. 배고플 때 개구리 잡아 구워먹으면 얼마나 좋아요? 먹을 게 많다구요. 혼자 산다면 밥 해먹고 그럴 칠요 없어요.

 

우리 동네를 가보면, 고향이 정주인데 황해 바다가 우리 집에서 한 십리만 나가면 보여요. 높은 산에 올라가면 다 보이거든요. 그런데 바다에 연결되는 그 중간에 쭉 못들이 있고 개울이 다 있잖아요? 거기에 고기가 사철 달라집니다. 그거 잡던 얘기로 부터, 그거 훤하지요?

 

바다에 가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구요. 바다의 땅 밑에는 무슨 게들이 살고 있고, 무슨 고기들이 살고 있는 것을 전부 다 안다구요. 바다가 선생님 고향에서 머니까 바다를 배우기 위해서는 방학 같은 때 매일같이 바다로 출근을 하는 거예요. 바닷가에 가 가지고는 구정물 냄새나는 못에서부터, 감탕주머니에서 부터 뱀장어를 잡는다든가, 게 구멍을 쑤시고 말이예요, 별의별 곳을 다 뒤진다는 거예요. 그렇게 훤히 알고, 그마음에는 낚시질하는 거지요. 어떤 고기가 어디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고기를 잡는 겁니다. 게도 잡고 말이예요. 시골가면 참게가 있다구요. 낚시질 같은 것도 전부 다 배우러 다니는 거예요.

 

뱀장어 같은 것을 잡는 데는 선생님이 참피언이라구요. 손님이 오든지 해서 뱀장어 찜이 먹고 싶다 하게 되면 30분, 한 시간이면 됩니다. 선생님이 뛰기도 잘 뛰거든요. 시오리 길을 달려가 가지고 어느 못에 가서 한 15분이면 뱀장어 이런 거 댓 마리씩 잡아오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방학 때에 가게 된다면 하루에 뱀장어 한 40마리 이상은 매일같이 잡았어요. 뱀장어가 이만한 거라구요. 구런 것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저 깊은 물 속에... . 그 뱀장어도 보게 되면 말이예요, 그냥 엎디어 있는 것은 싫어하거든요. 보호될 수 있는 구멍이 딱 막혀 있는 거기에 대가리는 나와 있고 꽁지는 나와 있더라도 몸뚱이는 가릴 수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구요. 생리적으로, 생태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까 구멍을 찾아들어 가거든요. 게 구멍 같은 데 보면 거기에 있다구요. 그런 구멍을 쓱 보게 되면, 구멍이 옆으로 뚫어져 가지고.. . 그거 쓱 해보면 아는 거예요. 손을 이래 보면 아는 거예요. 거기에는 벌써 전문가가 되었지요. 뱀장어에 대해서는 뭐. 그거 틀림없지요.  

 

가축사랑

 

옛날에 소를 먹이는데 말이예요, 나는 소 먹이기를 참 싫어했다구요. 그래서 건너 동네 들에다가 매어 놓는 거예요. 그렇게 반나절쯤 지나면 자기 먹여 줄 사람이 나올 것인데 안 나오니까

 

소가 '음매-' 이렇게 운다구요. 저놈의 소, 저거 저거... . 그렇지만 소가 주인이 안 안온다고 주인을 받아 넘기지 않고, 늦게 가더라도 그저 반가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뜻 앞에 저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구요.

 

여러분들, 도살장에 가 보라구요. 소가 전부 다... . 옛날에 내가 도살장에 많이 가 보았다구요. 재미가 있거든요, 철모를 때는 우리 동네에서 한 4키로미터 가면 도살장이 있었어요. 누가 소 잡으러 간다고 하면 아침부터 가서 기다리는 거예요. 백정이 나와 가지고 함마라고 쇠함마를 이만한 걸 가지고 들어와서, 옆으로 척 소가 들어와 서면 언제 길겼는지 갈겨 버려 가지고, 보면 벌써 넘어간다 이거예요. 그러면 눈이 뒤집어지는 거에요. 그 다음에는 껍질을 벗기고 가죽을 떼놓고 다리를 떼 놓는데, 다리를 뗐어도 뗀 곳이 헉헉헉헉 이러더라구요. 그렇게 희생하는 거예요. 불쌍한 거라구요. 불쌍한 거예요.

 

또 내가 참 사랑하던 개가 있었다구요. 이 개가 얼마나 영리한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벌써 알아요. 참 영리했다구요. 사람보다 낫다구요. 벌써 30분 전에 쓱 나아서 기다린다구요. 늦게 되는 날에는 떡 알고 늦게 나간다 이거예요. 그거 어떻게 알아요? 아마 냄새를 맡는 모양이지요? 그래 가지고 쓱 오게되면 말이예요, 내가 언제나 바른손으로 만져 줍니다. 그러니까 왼쪽으로 왔다가도 쓱 돌아서 바른손 쪽으로 와서 이렇게 비벼대는 거예요, 만져달라고. 이렇게 만져주고 얼굴 만져주고 쓸어주고 그래야지, 안 그러면 낑낑낑낑 따라와 가지고 빙빙빙빙 돈다구요. 삥삥삥삥 돈다는 거예요. '야, 사랑이 무엇인지, 너도 그렇게 사랑이 좋으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돼지가 새끼 낳는 것을 보니까 말이예요, 내가 옛날에 취미가 있어서 보니까 한번 '응!' 하면 주욱 낳고, 한번 '응!'하면 주욱 나오다라고요. 아, 정말이라구요. 내가 그런 데 취미가 얼마나 있는지, 고양이가 새끼 낳는 거, 개가 새끼 낳는 것도 다 봤다구요. 내가 그들을 다 사랑하거든요.

 

여러분 암탉이 병아리를 까기 위해 알을 품는 걸 봤어요? 눈을 심각하게 뜨고 발로 굴리면서 하루종일 앉아 있습니다. 나중에는 배에 있는 털이 다 빠집니다. 털이 빠지도록 앉아 있는데 그게 기분 좋아서 앉아 있겠어요, 기분 나빠서 앉아 있겠어요? [좋아서..] 난 어릴 때 관심이 참 많았습니다.

 

매일 들여다봤어요. 처음에는 쫓으려 하더니 하루에 세 번 이상 들여다보니 쫓지도 않더라구요. 으레 그러려니 하고.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도망가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 말은 뭐냐 하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

 

보게 되면 사랑하는 것이 반응이 있기를 해요? 단단한 알을 품고 달가락달가락하는데 말이예요. 그러나 앉아 있는 자세는 '천하에 누가 건드리기만 해봐라. 용서하지 않겠다' 하고 용서할 수 없는 대왕지권을 가지고 살피고 있는 거예요. 암탉의 권위에는 수탉도 마음대로 못 합니다. 수탉에게 그 알을 품으라고 해봐요. 그놈은 뭐 세 시간도 안 가서 도망 갈 거라구요. 암탉이니까 품고 있지... . 그게 무슨 힘이예요? 사랑의 힘입니다.

 

호기심과 탐구력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이 열두 살 때 증조 할아버지의 분묘를 보았습니다. 어릴 때 그 묘를 파고 시체를 이장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아, 이 눈하고 살은 다 없어졌구나. 이렇게 뼈만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해골 봤지요? '저게 사람의 뼈로구나' 느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혹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 증조 할아버지가 이렇게 생겼다' 했는데 그 뼈다귀를 보니 형편없게 생겼거든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렇게 생겼으면 나도 저렇겠구나' 하고, 그런 일로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모르고는 못 살아요. 동네에서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죽었으면 무슨 병으로 죽었느냐고 물어 보는 거예요. 왜 죽었는지 몰라서 궁금하면 반드시 장사 지내고 있는 데 찾아가서 물어 보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 돌아가셨느냐고... . 그러니 동네 일을 훤하게 아는 거지요.

 

이렇게 모든 만사에 흥미진진하다구요. 어느 동네에 가서도 똥푸는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남들은 다 냄새가 나서 코를 막는데, 그 할아버지 코는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냄새를 못 맡을가? 할아버지 코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게 궁금하다구요.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 보는 거예요. '할아버지, 냄새 나요, 안 나요?' 라고 물으면, '냄새가 나기는 나지' 라고 합니다. 그러면 '냄새가 좋으세요, 나쁘세요?' 하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지' 하는 겁니다. 그건 그렇다는 거예요.

 

또 어머니가 사과나 참외를 주더라도 어머니에게 '이 참외 어디서 났습니까?' 하고 여쭈어 봅니다. 그러면 어머님은 '어디서 나긴 어디서 나 형님이 사왔지' 하십니다. 그러면 '어느 밭에서 사왔어요? 밭에서 살 때 할머니가 땄어요, 아저씨가 땄어요, 아니면 형님 뻘 되는 사람이 땄어요, 누나 뻘 되는 사람이 땄어요?' 하고 또 여쭤보는 겁니다. 그거 아주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참외도 자랑할 수 있는 참외라야 먹지 그 참외가 훔쳐다가 판 참외인지 알 게 뭡니까? 그것을 확실히 모르고 참외를 먹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난 굶어 죽으면 굶어 죽었지 그런 것은 못 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먹고 지낼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는 누님들이 많았어요. 여섯이예요. 여섯 여자들인데 보따리 없는 사람이 없더라 그거예요. 한 집에 살면서도 다 있어요. 큰 누님은 큰데 이만큼 커요. 순서대로 크더라 이거예요. 나는 중간이니, 그걸 뒤져 보는 것이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 몰라요. 부엉이 집을 보게 되면 없는 것이 없다구요. 딱 그래요. 천으로 보면 큰 것부터 다 들어가 있어요.   

 

농촌 환경의 생활 경험

 

농촌에 가면 못하는 게 없습니다. 논갈이도 잘하고, 밭길이도 잘하고, 모도 잘 내고, 김도 잘 맨다구요. 김매기 중에 제일 힘든 것이 조밭입니다. 씨를 뿌린 후에 그 고랑을 한번 추리려면... . 보통 세 벌은 맨다구요. 세 벌 맬 때 이렇게 큰 것을 뽑는 것입니다. 조밭이 가장 매기 힘들고 다음엔 목화밭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콩이 잘되고 벼가 잘되고, 옥수수가 잘되는 것을 다 잘 알고 있다구요. 고구마 캐 놓은 것 보게 되면, 이제 진흙에서 자랐는지 어디에서 자랐는지 단번에 안다구요. 진흙에서 자란 것은 맛이 없습니다. 진흙이 3분의 1정도 섞어진 모래밭에 심으면 요건이 참 달거든요.

 

그러니 어떤 땅에 콩 심어야 하고, 팥 심어야 하는지를 훤하게 다 알지요. 땅을 척 보면 '여기는 고구마가 잘 되는데 왜 이거 심었어요?' '당신의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기는, 다 경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농촌에 가게 되면 농군중의 농군입니다.

 

난 농사꾼이요. 옛날에 형님을 도와서 일 할 때는 손으로 똥을 주물러 가지고 가루 만든 사람이라구요. 인분은 옥수수에 제일 좋아요, 옥수수. 그다음에는 옮기는 데는 내가 챔피언이예요.

 

모내기 같은 것도 선생님은 참 잘합니다. 대개 여기서는 줄모로 하지요? 우리 평안도 같은 곳에서는 농지가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이남보다 상당히 발전해 있다구요. 기독교 문물이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라구요. 모를 한 장대에 열두 칸씩 사이를 둬 가지고, 전부 다 표시를 해 가지고 두사람이 여섯 줄 여섯 줄씩 옮기면서 심어나가는 것이 빨라요. 여기서는 줄을 쳐 놓고 한 줄에 사람이 수십 명씩 들어가서 첨벙첨벙 왔다갔다하니까 발자국이 나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거예요.발을 딛는 데 있어서 두 뼘 사이의 간격을 딱 지킬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된다고요. 거기에서 누가 더 많이 심느냐? 참 빠르지요. 선생님이 빠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농사철이면 농사철에 모를 심어주면 밥벌이는 문제없다는 거예요. 학자금 같은 곳 문제없다 이거예요.

 

또 산에 가서 낙엽을 긁을 때, 보통 사람은 이렇게 긁지요? 선생님은 이렇게 쥐고 긁거든요. 소나무 밭에 가서 낙엽을 긁기 시작하면 말이예요, 다른 사람이 한 시간 걸리면 난 40분에 다 해치운다는 겁니다. 연구하는 거예요. 그러한 생활배경이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이 시대의 고임돌이 되고, 재료가 되고, 원료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양말이나 옷 같은 것은 다 내가 짜 입은 사람입니다. 모자도 춥게 되면 쓱쓱쓱 하면 다 만들어요. 우리 누나들한테 뜨개질을 내가 다 가르쳐 줬어요. 팬티 같은 것도 말이예요, 통 광목을 쓱 갖다 놓고 본을 떡 그어서 한 쪽으로 떠서 딱 입으면 내게 딱 맞게 돼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버선도 만들었다구요. 그래, 어머니가 '야야, 버선꼴을 어떻게 했는지 장난삼아 하는 줄 알았는데 딱 맞는구나!' 그러는 것입니다. 버선을 말이예요, 대개 버선 둘례는 이렇게 해서 갈아야 되거든요. 앞을 곧게 하고, 여긴 좀 높여야 하는 거예요. 요것만 줄여 놓으면 딱 맞는 것입니다.발이 싸악 들어가면 딱 들어맞지요.

 

그리고 선생님이 시골 절간의 변소에 가서 변을 누게 되면 말이예요, 그 떨어지는 소리가 '철렁 쾅! 철렁 쾅!' 그런다구요. 거 가만 들어 보니 얼마나 시적인지 모릅니다. '철렁 쾅!' 하는데 풍경이 '땡그랑!' 하는 게 얼마나 시적인지 말이예요. 30분. 한시간, 어떤 때는 두 시간씩 앉아 있을 때가 있다구요. 거 재미있다구요. 조금씩 똥롱 똘롱 똘롱... . 그거 다 시적이라구요. 아무리 그 소리를 들어도... . 시가 거기에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10분도 못 가 있을 거라구요. 나는 30분 이상 가 있어요. 그래, 나올 때는 내가 일등입니다. 변소도 '너 나 알지? 내가 일등이지?' 하고 물으면 변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변소도 행복하게 생각한다구요.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기에 달렸어요. 모든 만사가 내 동무가 돼 주고, 내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문학 친구, 예술 친구 다 되는 것입니다.

 

그리운 고향의 음식맛

 

선생님은 생오이도 잘 먹고, 무엇이든지 잘 먹어요. 옥수수도 잘 먹고, 생감자도 잘 먹을 수 있는 훈련을 한 사람입니다. 날콩까지 먹는 훈련을 한 사람이라구요. 날콩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외가집이 20리 밖에 있었는데 거길 처음으로 갔을 때 고구마를 처음으로 봤습니다. 거기에서는 고구마를 '지과'라고 했습니다. 땅의 열매라고. 외가에서 돌아다니다 떡 보니까 덩굴이 뻗어 나가는 것이 있기에 이게 뭐냐고 했더니 지과라는 거예요. '지과가 뭐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어떻게 먹는 거야?' 했더니 캐서 쪄먹는 거래요. 그래서 그걸 삶아 달라고 해서 먹는데, 처음 먹으니까, 아, 그 고구마 맛이 얼마나 감칠 맛인지...! 그래서 혼자 다 먹겠다고 해 가지고 고구마를 소쿠리째 갖다 놓고 앉아서 먹었습니다. 그 다음해부터는 고구마 절기만 되면, 사흘이 멀다 하고 저녁때가 되면 20리길을 '엄마 나 잠깐 어디 갔다 올깨요' 해 놓고는 마라톤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마를 먹고 오곤 했습니다.

 

시골에 가면 5월달 감자 고개가 있습니다. 감자만 먹다가 이때 보리쌀을 만들어 가지고... . 보리쌀도 요즘의 납작보리쌀이 아니고 통보리쌀이예요. 그 통보리쌀을 물에 한 이틀 불렸다가 밥을하게 되면 숟가락으로 꽉꽉 눌러서 떠도 알알이 삐져 나가요. 그걸 고추장에 비벼 가지고 먹던 생각이 납니다. 그게 지금도 그리워요. 다른 것으로 비비면 맛이 없어요. 얼큰한 고추장으로 비벼가지고 불그스름한 것을 한 입 집어 넣어 놓으면 이빨사이로 자꾸 나옵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우물우물 먹던 것이 지금도 그립다구요.

 

씀바귀도 맛있다구요. 씀바귀 알아요? 씀바귀를 양념장을 짭짭하게 해 가지고 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맛있다구요. 이 씀바귀 먹을 때는 말이예요. 입에 들어갈 때는 딱 숨을 멈추고 쉬지 말라구요. 단맛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단맛이 난다구요. 거먹어 봐요. 그것이면 밥 한 그릇 맛있게 먹는 거지요. 비위 약한 사람들은 한 번도 못 먹지만 말이예요. 해봐요. 이게 뭐 냄새를 맡고 그러니까 그렇지, 그냥 그대로 싹 넘기게 되면 냄새가 날 여지가 있나? 맛있는데.

 

 

2. 타고난 동정심과 가족사랑

 

애틋한 동심의 눈물

 

철이 들고 나서는 그 새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우물을 파줬다구요. 내가 정성을 들여 가지고 샘풀을 파고 '새야, 너는 여기에 와서 물을 먹어야 돼' 하면 와서 먹더라구요. 내가 먹을 것을 갖다 주면 그걸 먹고, 내가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더라도 날아가지 않더라구요. 사람을 좋아하게 마련입니다.

 

또 한번은 물구덩이를 파 가지고 말이예요... . 고기는 물 안에서는 다 사는 줄 알았지요, 이래 놓고 잡아 넣으면, 하룻밤 자고 나며 다 나가자빠져 죽어 가지고 있어요. 그걸 잘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왜 죽었느냐고, '정성들여서 널 살려 주려고 하는데 왜 죽었노?' 하는 거예요. 사정도 모르고 말이예요. 그래 가지고, 그거 보면 선생님이 정적인 사람이예요. 고기 보고도 '야, 네 엄마가 울겠구나' 그런 거예요. 그 고기 보고 운다구요. '내가 울어줄께' 이러면서 혼자 우는 거예요.

 

선생님이 어렸을 때인데, 우리 아버지는 개 잡는 것을 제일 싫어하셨어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를 내세워 가지고 내가 사랑하는 개를... . 내가 학교에 갔다 오니까 그 개를 매달아 잡고 있잖아요. 그 개가 죽으면서도 나를 보고 거 자기 목 걸리는 줄 모르고 그저 반가와 하는 그것을 보고, 내가 목매달린 개를 붙들고 통곡을 했어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인간은 믿을 수 없지만 개는 믿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다구요.

 

선생님이 목석 같은 사나이가 아닙니다. 정적인 사람이요, 눈물 많은 사람이요, 동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짓궂은 친구와 싸우다가도 그 친구의 옷이 찢어지면 선생님의 옷을 벗어 입히고서야 돌아섰던,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려운 집안 돕기

 

선생님은 천성이 그래서도 그랬겠지만, 겨울에 떨고 지나가는 거지를 보고 들어와서는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잤습니다. 그 성격이 있어요. 엄마 아빠한테 그 거지를 안방에 데려다가 잘 먹여 보내자고... . 그런 바탕이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바탕이 아니겠느냐?

 

동네에서 밥을 굶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못 들었으면 몰라도 듣기만 하면, 밤잠을 못 잔다구요. 어떻게 도와줄까. 그래서 어머니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도 '너는 뭐 동네 사람까지 전부 먹여 살릴래?' 그런다구요. 그럴 때에는 내가 어머니 아버지 몰래 쌀독에서 쌀을 퍼다가도 주었어요.

 

섣달 보름날 되어 동네는 전부 다 잔치하는데 그 가난한 사람들은 떡을 해 먹으려 해도 떡을 해 먹을 수 있나요? 뭐가 없으니까. 그러면 떡쌀을 도둑질해서 갖다 주지 않나, 고기를 도둑질해서 갖다 주지 않나 말이예요. 동네의 나쁜 일을 전부 다 가려가지고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 애기를 낳아는데도 미역이 없고 쌀이 없어서 밥 못 짓는 사람이 있으면 다 갖다 주는 거예요.

 

그 때 나이 열한 살쯤 됐는데, 그 때 쌀 대두 한 말을 팔아서 누구를 도와 주겠다고 아버지한테 선포를 했습니다. 아버지 몰래 쌀을 한 말 짊어지고 20리 길을 걸어가던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그걸 들고 가는 데 새끼나 무슨 밧줄이 있어야지, 그냥 지고 가는데, 이것이 말이예요, 마음이 벌렁벌렁 하는데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수없이 '헉헉'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예요. 그 모든 것이 뜻을 위해 갈 수 있는 입장에 선 거예요.

 

우리 집이 그때 못살지는 않았어요. 양봉을 하는데, 수백 통의 양봉을 했습니다. 양봉하게 되면 소비가 잘 안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원판뙈기, 소초를 박아놓는데 그렇게 해 놓으면 거기에 벌들이 전부 다 밀을 물어다가 둥지를 틀어 가지고 꿀 저장할 곳을 만듭니다. 집은 자기가 만든다구요. 원판, 딱 판을 대 가지고 그걸 만드는 그게 비싼 거예요.

 

그것을 케비넷 같은 데에 쌓아 놓으면 찾아가서 문을 열어 가지고 웽가당 뎅가당 전부 다 짓이깁니다. 시골에 가게 되면 기름이 없어서 불을 켜는 데가 있거든요. 그러니 집에 초를 놔두고 촛불이라도 켜야지, 석유는 못 주더라도... . 그래 가지고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견딜 수 있어요? 그래서 전부 다 짓이겨 가지고 일일이 배급을 주는 겁니다, 배급을. 그러니 그때 당시에 돈으로 얼마 하는지 그때는 내가 철부지였는데 알아요? 아, 그래서 결국 아버지한테 혼쭐이 났지요.

 

그러면서 자기 집을 중심삼고 이웃 동네와의 관계, 이웃 동네 고향 마을 있잖아요? 거기에는 친구도 있고... . 거기 마을 가운데는 전부 다 문씨만 사나요? 다른 성이 들어와 가지고 이씨도 와 있고, 김씨도 와 있어요. 이러면 말이예요, 고향 어른들이 전부다 텃세를 하는 거예요. 그 한 집안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아버지, 할아버지가 뭘 안 빌려 주면 내가 메어다가라도 갖다 주는거예요.

 

그때 내가 이 뜻을 알기 전부터 생각한 게 뭐냐 하면 동네면 동네에 있어서의 불쌍한 사람의 친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못사는 사람한테 관심을 가졌다 이거예요. 아이들이 있더라도 잘살고, 그 동네에서 드센 집 아이들과는 잘 찬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거예요. 반대의 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동네에서 어렵게 살고 밥을 못 먹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잠을 안 자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걸 해결해 주는 놀음을 했다구요. 이렇게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고 모든 사람의 친구 이상의 길을 가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동정심과 의협심

 

 또, 명절 때가 되면, 동무들 가운데 남들과 같이 옷도 갖추지 못하는 어려운 환경에 있는 동무들이 있는데, 그런 어려운 동무들을 위해서 극성맞게 움직이던 그런 소년이었습니다.

 

 동네의 못먹고 못사는 친구들이 도시락으로 조밥으나 보리밥을 싸 가지고 와서 먹으면 그걸 보고 내 밥을 그냥 못 먹습니다. 바꿔 가지고 먹으면 먹었지... . 또 친구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아파 가지고 병원에 갈 돈이 없을 때에는 선생님이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게 집 우리 동무 어머니 아버지가 병원에 가게 돈을 내라고 합니다. '낼 거예요, 안 낼 거예요?' 해가지고 내지 않을 때는 어머니 아버지한테 '나 돈 쓸 데가 있어 어떤 어떤 물건을 갖다 팔 테니 그런 줄 아십시오' 라고 선포하는 겁니다.

 

 또 떡 같은 것 전부 다, 시골 가면 범벅떡을 시루에다 많이 하거든요. 그걸 나무 같은 걸로 이렇게 해 가지고 개나 고양이가 잘  못 올라가게끔 해서 올려놓으면, 겨울이 되면 전부 다 땅땅어는 거예요. 그걸 밥 짓힐 때 솥뚜껑 아래다가 쓱 넣어 놓으면 물렁해지거든요. 그러면 그걸 이제 애들 주고 다 그런 거예요. 그거 뭐 한달 먹으려고 해 놓는데 한달이 뭐예요, 며칠이면 없어지지. 그러니까 야단하지요. 많은 사람을, 친구들도 참 많이 도와 주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 훤하지요. 그 동네뿐만 아니라 뭐 몇 십리 안팎은 훤하다구요. 누가 어떻게 살고 있고... . 내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모르고는 못 산다구요.

 

그리고 내가 열두 살 때 투전판에 다니면서 짓고땡은 전부 다 해먹었어요. 세 판만 하면 마지막 판에 따 버려요. 한 판 하면 그때 돈으로 120원을 따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120원이면 큰 돈입니다. 그 때 대학교 학생들의 1년 학비가 80원에서 120원이었어요. 그때 소 한 마리에 70원, 80원 했습니다. 쌀 한 말에는 1원 10전 했어요.

 

 아, 이놈들이 아버지 한테 탄 돈을 가지고 전부 뭐하느냐 하면 노름을 합니다. 명절 때, 섣달 그믐날하고 정월 보름날은 동네 투전판이 전성기입니다. 집집마다 순서가 와서 보더라도 잡아가지도 않아요. 그런 데는 내가 훤하거든요. 내가 찾아가 가지고는, 조그만 녀석이 가 가지고는 판을 보고 판이 틀렸으면 뒤에가서 자는 거예요.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딱 세 판만 하는 거예요. 대라 이거예요. 내가 이긴다고 하면 틀림없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동네 불쌍한 가난뱅이 아이들을 위해 판쓰리해다가 조청을 독째로 사 가지고 너도 먹고, 물러 가라, 너도 먹고 물러 가라 해서 전부 먹게 해주었어요. 나쁜 일 안 했어요.

 

 그런데 우리 삼촌이 욕심이 많았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왔다갔다하는 길에 참외밭이 있었는데 매일 이 참외 냄새 때문에 전부다 한장합니다. 원두막을 길가에 만들어 놓고는 말이예요, 하나도 안 따 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하루는 '참외 먹고픈 아이들은 전부 다 포대자루 가지고 아무때 와라!' 이랬어요. 밤에 열두시쯤 되어 가지고 한 고랑씩 전부 다 뽑아서 따라고 했어요. 이래 가지고 싸리밭에 갖다 쌓아 놓고는 몇 시에 와서 먹고 가라고하면 새벽같이 와서 실컷 먹고 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야단이 벌어졌어요. 암만 해봐야 조카 문아무개밖에, 나밖에 없거든요. '내가 이걸 했어요. 삼촌! 먹고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가다가 참외  한 개씩 줘야 되겠어요. 절대 안 줘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줘야되지'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매부들이 오게 되면 지갑에 있는 돈을 마음대로 꺼내쓰더라도 인정하게끔 약속을 하고 살았다구요. 자주 오라고 그래요. 오게 되면 미리 약속을 했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면 꺼내서 동네 불쌍한 애들에게 말눈깔사탕도 사주고 조청도 사 준 거예요. 그런 것이 나쁜 것 아닙니다.

  

가족의 대한 애정

 

우리 할머니가 참 순했다구요. 마음이 좋아가지고, 예를 들어 떡을 해 가지고 장거리에 가서 판다 하게 되면, 떡장사 했다는 얘기가 아니예요. 아침에 갖다 펴 놓고 갔다가 저녁 때 가 가지고는 누가 돈을 놔 놓고 가겠지 하는 할머니예요. 떡은 다 없어지고, 돈은 한푼도 없는 것은 모르고 그런다구요. 그런 면에서는 지극히 선한 사람이지요. 그런 할머니를 천시하게 되면 나는 밤에 잠을 못 자는 거예요. 나는 그런 사람이라구요.

 

내가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를 많이 녹여 먹었어요. 무엇갖고? 사랑 가지고. 할머니가 늙어서도 제일 좋아하는 것은... .

 

옛날 자식을 기르던 그때 마음을 잊지 않아요. 할머니가 자고 있으면 모르게 싹 들어가서 할머니 젖꼭지를 살살 만지면서 빨아주면 할머니가 '이놈아, 재수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궁둥이를 두드려 주더라고요. 그리고 난 다음에는 주머니에 있는 돈 같은 것도 그저 집어 넣는 거예요. 할머니가 보면 눈을 보고 웃으면서 여기 집어 넣고, 저기 집어 넣고 하는 거예요. 집어 넣으면 할머니는 '고얀지고, 히히히' 하면서 좋아하더라구요. 혀를 내놓고 좋아하는 걸 봤다구요. 그건 실험한, 경험한 것이라구요.

 

나는 그랬어요. 외지에 나갔다 오면 어머니한테 가서 매일 애기 노릇을 했어요. 어머니 젖을 내가 옛날에 많이 빨아 봤다구요. 젖을 빨면 '이놈의 자식, 징그렇다' 고 하지만 좋아합니다. 지금도 해보라구요, 내 말이 진짜인가 아닌가.

 

그리고 우리 맏누나가 있는데, 병이 나 가지고 있는데 모든 치료를, 내가 6개월, 반년동안 밤을 새워가면서 치료를 해 주었다구요. 여러분들은 뜸뜨는 거 알아요?  

 

나도 옛날에는 사돈집 아들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누이가 많았거든요. 손 위에 넷이 있었고, 손아래 둘이 있었어요. 그러면 방학이 돌아오게 되면 말이예요, 누나가 사는 마을로 가는 것입니다. 누나들이 시골에서 중류 이상 사는 데로 다 시집을 갔다구요. 누님네 집에 가면 먹을 것도 있고, 바다에서 쓰는 그물도 있고, 투망도 있고, 배도 있고, 다 있거든요. 가면 가만히 안 있습니다. 종일 동네에 나가서 사돈의 사촌들을 불러 모아 가지고, 거기서 대장 노릇을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시골 애들도 고기는 잘 못 잡는다구요. 그래서 내가 고기를 잡아서 한 대야씩 배급해 주면 말이예요, '사돈 어른!' 그런다구요.  

 

이래 가지고 사돈의 사촌, 친척까지 불러서 '야야, 네 집에서는 떡 해라! 또, 네 집에서는 닭 잡아라!'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누구네 집에서 매일같이 닭 잡아 달라고 하고, 떡 해 달라고 하겠어요? 한 번 해 주면 그만이지요. 그렇게 해서 그 떨레들 모아서 한 열흘씩 누이집 세 집 가서 놀게 되면, 한 달이 된다구요 매부 집이 다 있으니까 방학 때가 되면 집에 있을 사이가 없습니다.

 

 또, 우리 여동생이 열 세 살 때 내가 아주 잘 골려 먹었다구요. '얘, 네 신랑될 사람이 이런 남자면 어떠니, 눈꺼풀이 이렇고, 뭐 어떻고' 하면, '아, 뭐뭐뭐' 이랬어요. 그런데 열 여닯 살쯤 되었을 때, 먼 이모뻘 되는 아주머니가 와서 중매 설 테니 시집갈래 하게 되면 괜히 누군가 보자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얘야, 내일쯤 누구 선보러 올지 모르니, 너 그렇게 알아라' 하게 되면 그날 아침 먼저 일어나서 머리 빗고 분까지 바르더라고요. 옷도 갈아 입고, 그뿐만이 아니라구요. 집 안팎을 혼자서 전부 청소하고 말예요. 그거 왜 그래요? 가고 싶은 것이 시집이기 때문이라구요.  

 

3. 무서운 투지와 의분심

 

옳은 일에 대한 고집

 

선생님은 울기 시작하면 한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별명이 뭐냐 하면 '하루울이' 입니다. 하루종일 울고 나야 그치기 때문에 하루울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 나와서 구경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해서는 자던 사람들까지 깨게끔 울었지, 뭐 가만히 '쟁쟁' 울지 않았습니다. 큰일난 것처럼 계속 울었어요. 그래 목이 붓고 쉬게 되어서 나중에는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였어요. 그리고 가만히 앉아 우는 것이 아니예요. 훌떡훌떡 뛰면서 상처가 나 살이 터져 방을 피투성이가 되게 했습니다. 그만하면 선생님이 어떤 성격이라는 것을 알겠지요.

 

 양보 안 합니다. 뼈다귀가 부러져도 양보를 안 해요. 죽어도 양보를 안 한다는 거예요. 철이 들기전 10대 전이지요. 어머니가 뻔히 잘못했는데 자식을 충고하면 '아니야!' 하는 거예요. 나보고 일방통행 안 된다고 하면 맞서 싸운 거예요. 대단하지요. 잘못했다고 한마디 하라는 데도 대답을 안 하는 거예요.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잘못했다고 대답을 해요. 우리 어머니 성격도 대단해요. 한번 뭐하게 되면 끝장을 봐야 된다는 거예요. '어디 자식이 부모가 대답을 하라고 하는데 대답을 안 하고 견딜 것 같아' 하며들이 패는 거예요. 그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는 그 어머니보다 더 한데요. 후퇴가 있을 수 있어요? 버티는 거예요. 뭐라할까요? 대단하지요. 한 번은 얼마나 맞았는지 내가 기절하여 나가자빠졌다구요. 그러면서도 항복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니 집에서 요사가 벌어져 가지고 야단하고 그랬다구요. 몇 시간을 패놓고 기절하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내 앞에 엉엉 울고 그랬어요. 그때 내가 '잘못했으면 울어야지요' 했어요.  

 

할아버지도 그랬어요. 할아버지도 나한테 충고를 들었다구요. 손자를 가르치겠다고 담뱃대를 들고 뭐라고 하길래 '할아버지가 손자를 훈시하는데 담뱃대 들고 훈시할 수 있어요? 그게 이 가문의 전통이오?' 하고 들이 쏘니까 할아버지가 별수 있나요? 조그만 손자를 우습게 알았다가 '네 말이 맞다. 치워야지'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벌써 열두 살 때부터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형제들을 다 내 손에 쥐고 살았어요.

 

승부 근성

 

문선생 개인으로 말하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악착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구요. 어렸을 때는 내가 싸워 가지고 행복을 받아내지 않으면 석 달, 넉 달 잠을 못 잔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 아버지까지 행복하기 전에 그 집을 그냥 놔두지 않았어요. 안착같은 사나이라구요. 무섭다면 누구보다 무서운 사나이라구요. 남에게 지는 것을 절대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져 본 적이 없다구요. 무엇이든지 해서 꼭 이기지 질 것은 생각도 안 합니다. 벌써 질 것, 이길 것 다 압나다. 내가 손대는 날에는 죽기 아니면 이기는 거라구요. 그러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오산집 작은 애, 그놈은 한번 결심하면 한다고 했다구요. 집에도 불 붙인다면 불붙이고, 도끼로 기둥 자른다면 기둥 자르는거예요. 소 죽인다면 죽이는 거예요. 한다 하면 다 해요. 그렇게 아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서면 굴복 안 하고는 안 돼요.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3대가 와서 굴복해야 내 마음이 풀렸어요. 내가 여덟 살 때 매 한번 맞고 그 일가를 굴복시킨 사람이라구요. 불을 놓는다면 불 놓는 거예요.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지 몰라요. 눈을 보라구요, 두더지 눈 같은 게 하늘이 보이겠어요?(웃음)

 

한번은 어떤 녀석이 내 코피를 터뜨리고 도망을 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 문전에서 30일 동안 기다려 가지고 끝내는 그의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또 떡까지 한 시루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웃음)

 

우리 같은 사람은 옛날에 딱지치기를 참 잘했습니다. 딱지 치는 것 알아요? 딱지치기 참 잘하거든요. 또 돈치기, 돈을 벽에 쳐 가지고 멀리 가게 하는 것하고, 구멍을 파 놓고 때려 넣는 거 참피언입니다. 어느 동네 아무개가 잘한다 하면 그 녀석에게 시합을 거는 거예요. 돈 걸고 동네끼리 편싸움을 하는 거예요. 어떤 때에는 닭을 몇 마리씩 걸고 해서는 잡아서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어요. 평안도에 가면 닭잡아 가지고 냉면 국수를 해 먹거든요.

 

내가 젊어서는 내 나이 또래와 팔씨름해서 진 적이 없고, 씨름을 해서 진 적이 없어요. 그만하면 쓸만하지요, 남자로서. 그 예를 들어 보면 말이예요. 나보다 세 살 더 먹은 녀석이 우리 동네에 있었는데, 이 녀석하고 씨름해서 내가 하번 졌거든요. 지고 나서 6개월 동안... . 시골에서 산 사람들은 알 겁니다. 아카시아 나무가 봄철 되면 물이 올라 껍질을 벗기면 전부 다 소나무 껍질 벗겨지듯이 벗겨져요. 그래서 봄철에 물들 때 그저 자꾸 휘면 전부다 껍질이 떨어지는데 그걸 쭉 벗겨 가지고... . 이제 질깁니다. 이 아카시아 나무하고 씨름하는 겁니다. '이놈의 자식! 너를 내가 깔고 앉기 전에는 밥을 안 먹는다!' 이래 가지고 6개월 이내에 그를 타고 앉고서야 잠을 잤지, 그러기 전에는 밥먹을 것도 잊어버리고 잠잘 것도 잊어버린 거예요. 그렇게 지독한 사람이예요.

 

 정의감과 의분심

 

선생님이 어렸을 때는 남하고 도매금 싸움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동네에 가다가 큰 녀석이 조그만 녀석에게 주먹질을 하게 되면 내가 대신 맡아 싸웠습니다. 거리를 지나다가 싸움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가만 보고 들어 보고 잘못한 녀석이 우세하면 내가 맡아 가지고 싸워 주는 거예요. '이 자식아. 네가 틀렸구만. 이거 안 되겠다.' 고 이러는 겁니다. 옳다고 하면 내가 사생결단하고 싸우는 사람이라구요. 동네에서 나를  전부 무서워했다구요.

 

동네에서 꺼떡거리는 손자가 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배를 내가 이렇게 찌르면서 '당신 손자에게 이렇게 가르쳐줬지, 할아비야?' 하고 충고를 했다구요. 아주 유명했었다구요.

 

옛날 열 살도 못 됐을 때 동네 이십리 안팎에 있는 아이들은 전부 다 내 쫄개였어요. '야, 어느날 너희 부락에 간다' 해서 아이들을 전부 다  모아 가지고 가서 패당 싸움을 하고 말이예요. 그런 놀음도 했다구요. 매를 맞아 가지고 분해서 울면서 안 자고 혼자 가는 거예요. 가서 불러 내는 거예요. '이 자식 너 누구 어떨게 때렸지? 몇 대 때렸지? 이놈의 자식' 이러고 들이대는 거예요.

 

나이 많은 총각들이 지나가는 처녀 히야까시(희롱) 하든가하면 저거 내 동생 같은데 해 가지고 '이놈의 자식 네 동생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어?' 하고 극성맞게 반대했어요.

 

옛날 우리 동네에 광석이라고 눈이 좀 병신인 사람이 있었다구요. 우리 친척이 되지만 말이예요. 이건 환갑날이라든가 잔칫날이면 벌써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 와서 앉누만. 옛날 시골에서는 잔칫상에 떡 담는 목판이 있어요. 목기가 있는데 '이놈의 자식' 하고 그걸로 들이 갈긴 것입니다. 그게 여덟 살 때인데, 그것이 잊혀지지 않아요. 몇 촌 형 뻘이 되거든요. 그렇게 갈겨 놓았는데 이놈의 자식이 사랑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네요. 그래서 또 '이놈의 자식 낮잠까지 자고 있어?' 하면서 목덜미를 들이 조이고 차고 했더니, 그 녀석이 얻어맞고 코피가 나고 그랬어요. 그래 가지고 그 집에 불 놓는다고 했어요. 내가 불 놓겠다면 불 놓는 줄 안다구요. 그러니까 그 어머니 일족이 전부 다 빌고 해서 내가 용서해 준 일도 있었어요. 난 그런 것을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라구요.

 

성격이 급하고 모집니다. 옳다고 판단하면 절대 기다리지 않아요. 결정해 버려야 내가 잠자지, 그렇지 않고는 잠을 못 자요. 그러니 할수없이 어떻게 하느냐? 바람벽을 긁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 그래야 잊어버리는 거예요. 바람벽을 긁다 보니 바람벽을 다 헐어 놓는 거예요.

 

 

4. 주목받은 소년

 

천부적인 영적 감각

 

어려서 내가 오늘 비가 온다 하면 비가 왔어요. 일주일 이내에 이 동네에서 사람 하나 죽는다. 저 윗동네에서 할머니 하나 죽겠다 하면 죽었어요. 그런 일화가 많다구요. 벌써 달라요. 동네에 척 앉아 가지고 '오늘 저 웃동네 누구집 아무개 할아버지 편하지 않겠는데, 병나겠는데' 하면 틀림없어요. 다 알고 있다구요. 여덟 살 때부터 동네방네 선봐 주는 챔피언이었다구요. 사진 두 장 갖다 주었는데 '이 양반 결혼하면 나빠' 하면 틀림없어요. 해보라구. 전부 다 왱가당뎅가당 깨져 나가는 거예요. 그런 역사가 있다구요.

 

사진 갖다 보고 집어 던지면 나쁘다는 것이고 놔두면 좋다는 거예요. 집어 던지는 거 했다가는 반드시 급살맞아요. 다 나빠요. 그거 그대로 결혼한 사람은 다 아들딸 잘 낳고 잘살고 그랬어요. 지금은 나쁘지만 말이예요. 그때부터, 여덟 살부터 했으니 지금은 뭐 여든 살 가까우니까 오죽 이 전문가가 됐겠나요? 내가 그거 보고 알아요. 떼어 보긴 뭘 떼봐요? 냄새 맡고 다 알고 말이예요. 벌써 쓱 보게 되면 다 알지요. 쓱 앉는 것 보고 웃는 것 보고 다 안다구요, 훤하게.  

 

여러분도 자기가 갈 길을 알아야 된다구요. 개미도 장마가 질걸 다 알잖아요? 개미가 이사하는 걸 봤지요, 행렬을 짓고? 그러므로 사람은 침착하면 마음 깊은 거기에 마음이 가라앉는 자리가 있다구요. 마음이 잘 수 있는 자리가 있다구요. 그 자리까지 내 마음이 들어가야 된다구요. 거기서 자고 깨개 될 때에는 예민하다는 거예요. 그때에 잡생각을 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면 모든 것이 통합니다.

 

 '아, 오늘 아버지 어머니 틀림없이 나갔다 왔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어머니 아버지가 집에 있나 없나를 다 아는 것입니다. 5시쯤 끝나게 되면 4시 반쯤에 정신을 딱 통일해 가지고 알아보는 것입니다. 안다구요. '어디 나갔다 왔구만. 지금 싸움할 것 같구만.' 안다구요. 그거 몇 번만 해보라구요. 그러면 내가 한마디만 하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정신통일 참 무섭다구요. 우리 누나가 뭘 할 것이냐 하면서보면 전부 다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형제들이 나를 좋아하면서도 제일 무서워했어요. 언제나 자기 필요할 때는 딱 나타나 가지고 옆에서 싸악 '나 필요해!' 그러면 안 줄 수 있어요?

 

소도 말이예요, 판매장에서 '저 소 나쁘다고 한마디 하면 그건 못 파는 거예요. 내가 소도 볼 줄 알아요. 소는 목덜미가 잘 생겨야 되고, 앞발이  잘 생겨야 되고, 뒤가 잘 생겨야 되고, 허리가 잘 생겨야 돼요. 네가지가 잘 생겨야 돼요. 옛날에 아버지가 소 사러 가면 내가 척 감정해 주는 거예요. 그 사실을 아버지가 모르는데 이야기를 해 주니까 '너 그거 어떻게 알아?' 하는 거예요. 난 벌써 복중에서부터 배워 가지고 나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누구도 못하는 일을 내가 하는 것이지요.

 

문중과 마을에서의 평가

 

내가 오산집 작은 아이예요, 둘째거든요. 오산집 작은 아이야 우리 일족의... . 앞으로 우리 문중을 살릴 수 있고 우리 문중에서 자랑스러울 수 있는 하늘의 귀염둥이로 태어났다고 하고 말이예요. 물어 보면 다 아는 거예요.

 

우리 일족, 우리 삼촌네까지도 나를 다 존중시 했어요. 자기 아들딸보다... . 여기 용선이 어디 갔나? 노래 잘하는 용선이. 그의 어머니(김경기씨)가 숙모 되지만 자기 아들딸보다 나를 더 사랑했다구요. 학교 갔다 오게 되면 자기 아들딸은 말순깔사탕 사 달라고 해도 안 사 주고, 돈을 싹 세에서 빠닥빠닥한 돈을 나도 모르게 궁둥이에 척 갖다가... . '이게 뭐야?' 하면, ;뭐긴 뭐야? 너 학비 하라고 내가 주는 거다' 하는 겁니다. '자기 아들딸은 공부도 못 시키고 뭐요? 하면 '야, 우리 아들딸은 그저 그렇고 네가 잘하면 우리 아들딸 복받는다' 하는 겁니다. 복받는다는 겁니다.

 

어떤 의사 할아버지가 관상을 보는 의사 할아버지가 내가 글방에 갈 때 나를 척 보고는 말이예요, '야 저런 남자가 있느냐'고... . 아 그 의사 영감이 훈장 영감에게 저게 뉘 집 아들이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이 동네 아무개 집 아들이다' 하니, '아, 그러냐고' 그러는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는 알거든요. 당장에 사위 삼겠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 딸이 지금 열 덟 살이니... . 나 보다 두 살 위라고, 열 여덟살이면. 그래 참 우리 딸이 나와 같이 풍채도 좋고 미인인데 저 총각이 보면 반할 거라구, 사위 삼겠다는 거예요. 그때 내가 열 몇 살인데도 기분 나쁘지 않데요.

 

그리고 문사장의 아버지 (문경천씨) 가 우리 5촌 당숙이거든요. 키가 자그만하고 땅딸해 가지고 언제든지... . 우리집이 큰집이고 내가 둘째, 작은 놈이라구요. 그 당숙이 '큰집 작은 놈은 시대를 잘못 타고 나서... . 저것 왕 아니면 역적밖에 될 수 없는데 왕 될 길은 없고 역적밖에 될 길이 없다' 고 그랬다구요. 문사장(문승룡)도 가끔 얘기하잖아요?

 

여러분, 생이지지 학이지지 (生而知之 學而知之) 라는 말 알지요? 벌써 쓱 알아요. 내가 어렸을 때도 말이예요... . 우리 친척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우리집 8남매 가운데서는 몰론, 동네에서도 제일 나았어요. 머리도 좋고 씨름도 잘하거든요. 씨름도 잘하지. 운동은 몰론 백사에 제일이었지요. 그래서 동네에 나 때문에 시집 안 가겠다는 처녀들이 많았습니다.

 

 

5. 초기학습과 신앙입문

 

한문서당 공부

 1926~1932., 7-13세

 

본래 한국은 유교의 가깝지요. 선생님도 유교의 논어 맹자 다 읽어 보았어요. 다방면에 소질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림을 그리더라도 잘 그리는 거예요. 내가 열두 살에 글방 가서 체(體)글을 써 준 사람입니다.

 

내가 열 살 때 글방 다닐 때는 말이예요, 책 하루에 한 장만 떼면 됩니다. 그건 뭐 30분 내에 다 떼는 거예요. 딱 정신집중해서 하면 30분에 다 집어 넣을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훈장 앞에 가 가지고 조잘조잘 외우면 되는 거예요. 30분만 하면 다 외우는데, 그걸 하루종일 공자왈 맹자왈 하고 앉아 있어요? 다해 놓고는 말이예요. 훈장님이 힘드시니까 낮잠 잘 자거든요. 훈장님이 낫잠 잘 때 나는 산으로 돌아다니는 거예요.

 

나는 점심을 안 먹고 사는 사람이 됐어요. 왜? 산에 가서 뜯어 먹을 것이 어디 있는지 자꾸 더 알게 되니까 더 많이 뜯어먹는 거예요. 이러다 보니 저녁 때까지 배고프지 않아요. 그러니 점심이 뭐 필요하고, 저녁이 뭐가 필요해요? 그러다가 고단하면 거기 산에서 잠을 자는 거예요. 그러니 집에서는 큰일났다 해 가지고 등불 밝히고 찾아다닌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를 발견하고 깨우면 나는 고맙게 샌각하지 않고 '누가 등불 밝히고 찾아와? 나 기분좋게 자는데. 남 기분 좋게 자는데 왜 깨우고 야단이야? 내가 호랑이한테 물려 갈 게 뭐야? 자기들같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 못난 사람도 아닌데. 호랑이가 오게 되면 냄새 맡고 벌써 도방갈 텐데' 이랬다구요.

 

내가 옛날에 글방 다닐 때 거기에 훈장이 대개 논어 같은 것, 맹자 같은 것을 장을 척 해서 강의받아 가지고 다음날 아침에 반드시 강(講)을 바친다구요. 못 바치면 초달 받았어요, 초달. 하여튼 내가 초달받던 생각이 나요, 그때는 제발... . 선생님이 들었던 그 손이 딱 달라 붙었으면 젛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부들부들 떨다가 그걸 내버리면 좋겠다, 별의별 생각을 하는 거라구요.

 

원봉학원 수강

   1933., 14세

 

옛날에는 학교 가기 위한 학원이 있었습니다. 서울에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학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때로 말하면 소학교입니다. 국가가 인정하는 그러한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전단계로 학원이 있었다구요. 그 학원에 가서 공부해 가지고 편입시험을 쳐야 되었어요. 그런 중간 교육기관으로서 학원이 있었어요. 그 학원을 가기 위해서 사촌동생을 충동질에 가지고 혁명을 한 것입니다.

 

학교에 가기 전에 벌써 조사를 해 가지고... . 4월에는 학교에 들어가야 되거든요.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는 글방에 훈료(訓料), 학비 같은 것을 다 지불한 것입니다. 그땐 훈료라고 했어요. 그 월사금(月謝金)을 다 냈는데 1년도 안 돼 가지고 도망치려니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설득해야 된다구요. 그래, 어머니 아버지 설득하고 할아버지까지 설득한 것입니다. 사촌까지 설득했어요. 남들은 비행기 날리고 있는데 공자왈 맹자왈 해 가지고 안 되겠다 이겁니다. 전부 내가 개척한 것입니다.

 

세개 이상의 박사 학위 꿈

 

여러분들이 지금 나름대로 많은 꿈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돌담을 쌓을까? 무슨 담을 쌓을까? 선생님에게도 꿈이 많았습니다. 세개 이상의 학위를 따지 않고 는 살지 않기로 칼을 꽂고 결심한 사람입니다. 선생님 셩격은 세개 이상의 학위를 따지 않고는 누구를 가르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욕심이 많다는 거예요. 내가 살아생전에 박사 세 개 이상 안 하면 죽는다고 생각한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박사가 제일 쉬운 거예요. 요즘에는 서로가 무슨 영예박사인지 명예박사인지, 진짜 박사학위 주겠다는 데가 너무 많아요.

 

다 계산하고 저울질해 보니 그것이 포괄성이 없기 때문에, 다 집어 던지고 통일교회 문선생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보더라도 머리가 나쁘지 않고, 무슨 공부를 했어도 세계적인 학자가 됐으리라 본다구요. 그런 머리를 가졌으니 내가 공부를 해서 세계에 이름난 학자가 되면 뭣을 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구요. 그 학자가 되어야 칠판 앞에서 백묵가루를 마시고 일생 동안 허리 꾸부러지도록 그저 연구하다 가 죽는 게 아니냐? 그래 가지고 모든 근본 문제가 해결되느냐하면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면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 중에서 무슨 길이 제일 어렵고 힘든 길이냐? '가기에 힘든 길이다' 하는 길을 나는 가고 싶었다 이거예요.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과거, 현재, 미래에 어떤 누구든지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한번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구요.

 

정주 사립 오산보통학교 3학년 편입

     1934., 15세

 

그래서 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해 가지고, 그때로 말하면 보통학교에 들어간 거예요. 오산소학교, 여기도 오산학교가 있지요?  그 때는 오산보통학교지요. 그 학교의 3학년에 편입시험을 쳐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일년 공부하는데 열심히 안 할 수 없지요. 결사적으로 했더니 성적이 5학년으로 월반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거예요.

 

내가 학교 다닐 때는 20리 길을 걸어 다녔다구요, 초등학교 다닐 때. 그거 얼마인가요? 8키로미터. 8키로미터를 매일같이 걸어 다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중간쯤에 사는 애들은 내가 딱 그 시간에 지나가니까, 그때 나오면 절대 지각 안 합니다. 다 과학적이라구요. 그래서 쭉 고개마다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내가 참 길을 빨리 걷는다구요. 8키로미터를 한 시간 이내에, 45분에 가는 거예요. 차차차차 차차차차 가는 거예요. 그러면 뒤에서 따라오기가 바쁘지.

 

내게 그런 일화도 많다구요. 어머니 아버지가 학교 가라고 준비할 것 없이 전부 다 내가 준비했다구요. 학교 교장 선생한테가서 구술고사 받는 것도 내가 다 교섭하고 말이예요. 전부 개척이예요.

 

저녁때쯤 되면 배도 출출해요. 20리를 가려면 한참 간다 이거예요. 동무들 다 가고 혼자 남아 가지고, 그때 뭘 사 먹었느냐하면, 중국집에 들어가 가지고 만두를 사 먹었어요. 그 팥만두가 얼마나 맛있던지! 그때 5전 했어요. 15전이면 3개 사 먹어요. 세개 먹으면 배가 불러서 더 못 먹어요. 거기에 앉아 가지고 오차물 갖다 놓고 그것 세 새 놓고 조금씩 먹으면 시간을 보내면서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열한시쯤 되어서 여러번 쫓겨났어요. 그러니 열한시가 넘으면 뛰는 거예요. 산 고개를 넘고... . 그때는 늑대도 많고 호랑이도 많았어요. 어느 산중에서 누가 잡혀 먹었다 하던 그런 때였어요. 평안도에 호랑이가 많았어요. 그런 산골 길을 뛰어다니면서 학교를 다니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니 그게 다 훈련이었어요.

 

그때 훈련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도 길을 잘 걷는다구요. 설렁설렁 말이예요. 아마 여러분들이 지금도 못 따라올 거예요.  

 

몰음마을 덕흥장로교회 입교

       15세

 

선생님은 북한에 한 지방의 착실한 유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0여 세 때 전가족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개종과 더불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이 새로운 신앙에 애착을 갖고 이전에 그 누구를 사랑한 것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려서 교회 다닐 때는 예배시간에 늦으면 얼굴을 못들고 다녔습니다. 며칠 동안을 회개하지 않고는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 였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늦은 시간에 가면 많은 사람이 예배 드리는 데 실례가 되지나 않을까 했으며, 언제나 예배 시작 전에 먼저 가서 보탬이 되도록 했습니다.

 

정주 공립 보통학교 4학년 전학

     1935.4월 ~ 1938.3.25., 16-19세

 

과거 우리 나라는 아시아의 작은 반도의 한 나라로서 일본 치하에 있었던 비참했던 실정의 나라였다는 걸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소년시대를 대한민국의 자주적 국가권 내에서 자라지 못하고 일본의 압제권 내에서, 일본의 통치하에서 자랐습니다. 25세까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점차 세상을 알게 되고 젊은이로서 지낼 수 있는, 어려운 모든 사정을 측정할 수 있는 그런 중요한 시기에 나라 없는 백성으로 자란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오산소학교-지금으로 보면 초등학교지요.-에서는 일본 말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일본 말을 못 쓰게해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원수의 자리에서 투쟁한 대표적인 사람인 이승훈씨가 세운 학교이고 그런 학교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일본 말을 못 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만히 보니까, 문제는 우리가 적을 알아야 된다는 거였어요. 적에 대해 세밀히 몰라 가지고는 적과 싸우더라도 대비책을 세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정주보통학교-공립보통학교예요-거기에 편입시험을 쳐 가지고 4학년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거기 들어가서는 일본 말을 유창하게 하게 돼 가지고 졸업을 한 거예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신앙길이라든가 인생의  근본문제라든가 어려운 모든 문제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학교에 가게 되면 전부 일본 말을 배워야 되었거든요. 가다가나 히라가나를 공부하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하루 저녁에 다외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벼락같이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의 모든 책을 그저 보름만이 다 외워버렸어요. 그리고나니까 귀가 트이더라구요.

 

또 나는 첫번에 가 가지고 그림 그린 것을 붙였어요. 배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측정하는 거예요. 3등분해서 따라 들어가는 거예요. 저 그림이 저 평원에 몇 등분 안에 들어가 있구나 하고 딱잡아 내요. 센터를 중심삼고 측정을 해 나가는 거예요. 이 도화지가 3배니까 3배 딱 정해서, 센터를 중삼삼고 3배에 전부 다 딱딱딱 점만 치면 다 그림이 그려지는 거예요.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공책을 쓸 때에는 줄이 쳐진 부분부터 쓰는 것이 아니라 맨 꼭대기부터 썼습니다. 어떤 때는 한 장에 두 번씩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공책 한 권에 더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물건을 아껴 써야 됩니다.

 

그리고 책을 읽게 되면 저 뒷편까지 보이더라 이거예요. 옛날 초등학교때... . 일본말 국어 독본이라는 것을 5, 6학년 때는 두 권씩 떼었다구요. 한 권에 180페이지인데 이것을 하루 저녁에 다 외워버렸어요. 사람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여러분, 호롱불을 알아요? 기름을 이렇게 해 가지고 공부하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두 시, 세 시, 밤을 새워 공부하게 되면 엄마 아빠는 '야,! 잠자라. 몸이 너무 약해지면 안 된다. '이랬다구요. 늘 그랬다구요. 그때 내가 제일 친구로 했던 것이 밤벌레 들이었어요. 야름철엔 밤벌레를 친구로 했다구요. 척 이렇게 앉아 가지고 두 시, 세 시까지 있었어요. 조용한 밤에... . 시골 밤은 참 고요하다고요. 벌레, 곤충들이 달밤에 우는 소리는 아주 신비롭다구요. 쓱 산으로 돌아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졸업식 때 특별소견 발표

   1938.3.25., 제29회 졸업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정주보통학교에서의 졸업식 때의 일입니다. 많은 학부형들과 전체 선생들이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고 정주읍, 그때는 읍이었는데, 정주읍의 우지들이 축하하기 위해 전부 다 모였습니다. 그 졸업식에서는 교장의 훈시가 있었고 그 다음에 손님의 축사가 있었는데 그 다음에 내가 자원해 가지고 그 단상에 나타나서 일본에 대해서 반박하던 사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그 앞에서 그랬던것이 지금도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소년시대의 기질이 보통 기질이 아니었던 모양이지요.

 

선생님은 그런 자리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면서, 소년시대의 교육에 대한 비판과 지금까지의 학교 선생님에 대한 비판을 모두 해 버렸습니다. '이 선생님은 이런 성질이 있습니다. 역사 선생님은 이런 성격이고 이러이러한 사고를 하고 있으니까 이러한 결과밖에 되지 않습니다' 고 하며 선생님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시대적 비판도 하고 또 '이 시대의 책임자는 이러이러한 각오를 지녀야만 합니다' 고 한 시간 가까이 했는데, 그것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소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때 부터 레테르가 붙여졌습니다. 경찰로부터 지목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