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생애노정 3권 - 제4절 청파동 본부교회 중심한 내적 기반

무지... | 20180824164926

참부모님 생애노정 3권

  

제4절 청파동 본부교회 중심한 내적 기반


1. 청파동 전본부교회 정착 131

2. 가정적 시련과 고초 143

3. 피 땀 눈물의 정성으로 식구 육성 155

4. 청파동 시절 참사랑의 봄바람 169



1. 청파동 전본부교회 정착


청파동 전본부교회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1가 71-3


우리가 갖고 나온 인연이 무슨 인연이냐? 입체적인 인연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역사상에 있었던 어떠한 사상을 기조로 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기초로 해서, 본성의 인격을 표준하여 시작된 인연인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연의 핵심이기 때문에 절대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인연이 이곳 청파동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청파동’하면 기분 좋지요? 청파동은 푸른 언덕이라는 뜻이지요. 용산이 뭐냐? 용산 하면 최고 높은 산을 말한다구요. 최고 높은 산이 용산이라구요. 그래서 용산구龍山區 청파동靑坡洞은 푸른 언덕을 뜻하고, 푸른 언덕은 이상을 상징합니다. 피안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푸른 소망을 노래하는 청파동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1가, 이 1가라는 것은 첫째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71의 3은, 3수라는 것은 완전수입니다. 70이하면 떨어지기 때문에 70위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 입장에 서야 합니다. 7수는 완성수입니다. 그러기에 평면적인 사위기대를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이 청파동 통일교회 본부라는 것입니다.


본부 안에 기둥이 몇 개가 있느냐 하면 여섯 개가 있습니다. 이 6수 기반을 넘어서 7수를 세우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 본부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하면 일곱이 되는 거예요. 이 기둥을 척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세계 어디를 다녀 봐도 교회에 기둥이 있는 곳은 여기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개척입니다.


내가 생명의 빚을 안지고, 되레 빚을 지우고 삽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생명의 빚을 졌으니, 빚을 갚아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 세계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할 때, 엘리야가 말한 것처럼 ‘나만 남았나이다’라는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천지 가운데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중심삼고 타락한 세상의 구원의 터전을 넓혀 나온 곳이 이렇게 비참하고 초라한 청파동 1가 71의 3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이곳을 바라보시며 6천년의 한을 풀겠다고 나오신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 내 자신을 들여다 보면 눈물이 고인다는 것입니다.


본부교회 매입과 수리 이전

1955.10.7.


이 자리는 옛날 어떤 절간 자리라구요. 왜정때의 적산 건물이었습니다. 이것이 또 역사적인 건물인 것이 뭐냐면 내가, 1955년도로구만. 그때 한참 사건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와 가지고 갈 데 올 데 없어서 비상대책을 취해 가지고 마련한 곳입니다. 손수 만든 거라구요. 여기가 도깨비 장터 같았다구요. 전부 다 새까맣게 되어 가지고, 기둥도 전부 새까맣게 된 것을 전부 양잿물로 닦은 것입니다.


여기가 통일교회 조상 교회라구요. 이게 옛날에는 폐가였는데…. 여길 전부 소금물로 닦던 것이 생각나네요. 내가 감옥에 있다가 나오니 교회를 다 팔아먹어 집이 없어 할 수 없이 내가 나와서 이것부터 샀어요. 여기가 전부 몇 평인가요? 22평인가요?  이 교회를 2백만 원을 빚을 내 가지고 사서 젊은 사람들을 보내 대청소를 하여 사흘만에 이사를 했습니다.


통일교회 본부가 이러냐고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사기꾼들은 간판을 근사하게 달지만, 진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알려질까봐 가려 놓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 집에서…. 역사적인 인연이 맞부딪친 집이라구요. ‘이 집에서부터 원한에 사무친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 채찍을 쥐고 치던 무리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해야 되겠다. 몰아내던 무리를 몰리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그 신념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구요.


협소하고 불편한 공간


선생님의 집에 들어가려면, 깜깜한 굴속 같아서 어디로 들어갔다가 어디로 나와야 할 지 모르는 아주 외통길이라는 것입니다. 꼭 굴속으로 들어가는 거 같다구요. 기부 받으러 여기에 들어왔다가 ‘돈 없소’하면 ‘그러면 그렇지, 돈이 있을 수 있나’이렇게 생각할 거라구요.


그러나 선생님은 토굴같이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집에서 살면서도 세계를 한번 요리해 보자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꿈에서 춤을 추다가 딴 꿈에서도 춤을 출 수 있어야 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보아도 형편없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아 불편하다고 느끼고 뺑소니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 자리를 빨리 떠나십시오. 협소한 자리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으니 무리인 줄 알아요. 그러나 우리만이 이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더더욱 잘 아십니다. 선생님은 하나님께 ‘우리 교회를 지어 주십시요’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젯밤에도 저 문 뒤에서 밀고 당기면서 서로 들어오려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이것을 처량하게 바라보지 말고, 이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리기 위하여 ‘한때는 이러한 일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닙니까?’라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참석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환경은 비참한 처지에 있는 우리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실된 재산이요, 탕감복귀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고되게 연단을 받고 시련을 받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시련의 실전장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이중 삼중의 시련을 겪어서 새로운 신념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먹는 것은 일생의 무엇보다도 더 귀한 것이요, 여기서 자고 입는 것은 어느것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통곡과 눈물로 얼룩진 제단


여기는 피어린 눈물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여기는 하늘과 더불어, 땅과 더불어 천지 인류들이 마음과 심정을 털어 놓고 통곡하는 제단입니다. 제단은 비참한 것이예요. 역사적인 제단인 이 집에 들어올 때 문밖에서부터 눈물 흘리며 들어와야 할 집입니다. 내게는 호화찬란한 집보다도 이 집이 더 귀합니다. 비록 금은 갔지만 금이 간 것은 역사적인 풍상이요, 역사적인 흔적입니다. 여러분은 이 집의 흠집을 보면서 ‘너의 상처는 아직까지 가시지 않았구나’하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겁니다.


이 집은 역사적인 행사를 한 곳이고, 하늘 땅이 통곡을 한 곳입니다. 뭇 사람들이 통곡한 자리입니다. 피를 뿌려 몸부림치며 호소하던 자리입니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곡절로 인연된 눈물 자국이 어려 있는 곳입니다. 눈물로 얼룩진 거룩한 제단입니다. 함부로 들어오고 함부로 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정성들인 이 모든 터전을 여러분 자신이 유린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걸 느낀다면 이 청파동 골목에 들어올 때…. 통일교회가 과연 하나님의 6천년 역사를 거쳐온, 하늘의 뜻을 대해 온 교회요, 그런 청파동 골목이라면, 이 길을 거쳐오면서 흐느껴 가지고 눈물로 얼룩질 수 있는 걸음을 걷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 마루바닥에서 눈물짓고, 이 마루에 엎드려 기도하게 될 때, 이 자리가 아버지께서 천년만년 고대하던 소원의 한 터전이란 것을 느껴 봤느냐? 뼛골이 울려나고 피살이 인연된 심정으로 자기 일신의 모든 의식을 잊어버리고 눈물만으로 시작하여 눈물만으로 끝낼 수 없는 슬픔과 서글픔이 나를 점령해 봤느냐? 자기의 환경을 잊어버리고 호소한 때가 있었느냐? 그런 것이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초라한 본부를 바라보면서 ‘내가 정성들여 나오던 곳이 이래서야 되겠느냐! 내가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본부를 어떠한 교회의 본부보다도 훌륭한 본부로 만들겠다’고 결의하고 눈물과 더불어 이 자리에서 하늘 앞에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누구보다도 차원 높은, 하늘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좋은 동지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인연의 기원지


이 작은 집에서 세계의 호화로운 집에서보다도 더 정성을 들이고, 정성에 사무쳐 가지고 하나님이 기억하실 정성과 심정의 샘터를 만든다면 목마른 사람이 이 샘터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바위굴이든, 산등성이의 높은 어떤 곳이든 개의치 않고 생수가 쏟아져 나오는 곳이면 모두들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나오는 물이 참된 생수라면 거기에 도회지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곳은 문화의 발상지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역사의 기원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참부모의 인연이 이루어진 곳이요, 역사에 없던 일이 이 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역사에 없는 성혼식을 거행한 거라구요. 여기에서 별의별 소문거리를 남기고 별의별 소문거리를 거쳐가면서 역사에 없는 놀음을 했다구요. 여기서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책정했다구요. 36가정을 축복했고, 72가정을 축복했다구요. 역사적인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왕자님이 태어나더라도 그 탯집은 다 마찬가지라구요. 집이야 뭐 어떻든 여기서 역사가 소생했고 세계의 하나의 시금석이 여기서 생겨난다구요. 앞으로 여기 이 집은 요런 모형을 하나 뜨든가 해 가지고 저 청평에 갖다가 지을 건가 그냥 둘 건가 생각해 보는 거예요.


지방에 있는 식구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 언제나 원칙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아무 지역 아무 곳에서 오늘 밤 기도합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는 자기 소속을 밝혀야 합니다. 본부교회의 남방이면 남방, 정남방이면 정남방에서 본부교회에 대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아무 지구의 아무 지역의 아무 곳에 있는 누구라고 밝혀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역사적인 전통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기도, 중요한 해결을 위한 기도일수록 본부교회에서 정성들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본부교회가 걸어 온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인연, 역사적인 배후를 더듬어서 눈물어린 심정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본부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보다 더 충성하는 자리에서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 자리


이 본부라는 곳이 어떠한 곳이냐? 우리 원리의 가르침대로 본다면 세계에서 둘도 없는 곳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해요? ‘통일교회 본부라는 곳은 세계에서 둘도 없는 곳이다’하는 생각을 해요? ‘아이고, 오늘 본부에 갔다 왔다’하고 자랑해요? 서로 본부에 갔다 와야 되겠다고 경쟁해요? 그러니 ‘이곳은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단 한번밖에 없는 일이 생겨난 곳이다’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본부에 와 가지고 ‘아이구 좋아라’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려 봤어요?


현재의 자각된 가치가 세계의 어떤 현실적인 가치보다 귀하다는 것을 아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뒷마루까지도 어느 고층 건물의 호화찬란한 자리, 모든 사람들이 전부다 거룩히 볼 수 있는 그 자리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먼지 하나, 공기 하나도 세계의 무엇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이 여기 본부에 들락날락하면서 유리창을 얼마만큼 사랑했으며 여기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느냐 이거예요. 여기 처녀들, 본부에 와서 소제들 해봤어요? 아주머니들 해봤어요? 알고 보면 이것들은 다 성물이예요. 본부는 나라의 명승지인 동시에 우리 교회의 명승지입니다.


이곳은 고귀한 곳이기에 앞으로 1억달러를 주고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여기는 중요합니다. 여기에 출입금지란 팻말을 붙일 때는 몇 억 달러를 준다 해도 하룻밤을 함부로 잘 수 없는 곳으로 만들 것입니다. 나라의 군왕도 여기서는 못 잡니다. 그런 때가 곧 옵니다. 이 집은 몽땅 금으로 지은 집과도 바꾸지 않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고 하며 영문을 몰라 하는 사람은 죽어 보라구요. 죽어 가지고 영계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청파동 전본부교회 성지

1966.1.1.성지택정, 1981.10.20.호칭확정


본부교회는 중앙성지로서 세계 40개국의 120개 성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지는 뭐고, 부산 성지는 뭐고, 청파동 성지는 뭐예요? 그 성지는 아들의 성지이고 여기는 어머니 아버지 성지예요. 어머니 아버지의 성지가 더 귀해요, 아들의 성지가 귀해요?


청파동은 오늘의 이 청파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세워지는 곳곳마다 수많은 식구들이 이 한국을 본향 땅, 조국 땅으로 사랑하여 찾아올 것이고 더욱이나 이 청파동을 사랑하여 찾아올 것입니다. 앞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문화주택을 짓고 좋은 장소를 택하여 웅대한 자리에서 예배보는, 그런 자리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청파동 이곳을 그리워하며 찾아올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 보아도 예수님이 태어났던 자리라든가, 감람산에 가 보게 되면 수풀이 우거지고 바위덩이가 함부로 널려 있어 형편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본부를 다 뜯어고치고 다 그랬는데, 선생님도 없는데 전부 뜯어고쳤다고 해서 내가 기분이 나빴습니다. 내가 순회하면서 당장에 전보를 쳐서 정지하라는 명령까지 했습니다. 왜 그러냐? 역사적인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유물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뜻을 아는 사람이면 그 자리를 역사적인 내용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알고 찾아올 것입니다. 아무리 잘 뜯어 고쳐봐야 서양의 먼 발치의 구색도 갖추지 못한 그런 형태를 가지고 자랑하려고 할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아무것도 없다 이겁니다.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빛나는 것이 아니예요? 거기에 전통이 있는 것이요, 거기에 빛이 있는 것이요, 거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요, 거기에 흐름이 있는 것이요, 인연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드러난 사실, 지금 현재에 보조를 맞추는 자리에 역사가 인연되는 것이 아니지 않아요? 전통을 존중시 할 줄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구요.


이 기둥을 보면 내가 어느 때 이 기둥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던 생각이 척 난다구요. 그러면 거기에 무엇이 회상되느냐 하면, 역사가 회상되고, 그때 나라가 우리를 반대하던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런 자극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 기둥을 보면 통곡이 나오고 문짝을 보면 사연이 깊다 이거예요. 그게 필요한 거예요, 모양과 외관은 어떻든.


여기에서 피눈물을 흘리던 나, 사연이 많다구요.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요거 전부 다 뜯어고쳐 가지고 하나 만든 것입니다. 우리 예진 애기를 낳고 인진, 영진 애기를 낳은 방도 전부 다 뜯어 없애버렸거든요. 그 방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거예요. 협회장은 한국에서의 역사시대를 보존치 못하는 과오를 범했다 이거예요. 내가 큰 방을 원치 않는 거예요. 이 마루바닥도 옛날 것은 전부 다 없앴다 이거예요. 여기 밑창에 깔렸나요?


이로써 앞으로는 전부 다 그러한 상태로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한 설계를 해서 다 만들어 놓고, 집을 하나 지어 놓고…. 집 지어 놓는 것은 제일의 가치가 없습니다. 골통품이라는 건…. 찌그러진 집도 좋고 깨진 조각들로 된 그것이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와서도 저기 큰 교회를 지었지만 거기에 안 들어가요. 여기에 들어와서 기도하는 거예요. 역사의 심정이 통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이 닳기 전에는 어머니가 자꾸 가자고 하지만 안 듣는다구요.


여러분들은 그런 걸 알아야 됩니다. 고향, 향수가 젖은 그 본고장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부모가 없을 때 부모가 묻힌 무덤에 찾아가 가지고 밤을 새우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기쁨으로 생각하는 효자를 하늘이 바라는 거예요. 이게 역사의 재료예요, 통일교회의 역사의 재료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역사적인 전당으로 남겨 놓아야 됩니다. 만일 여기에다 교회를 크게 짓는다 해도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우리 본부교회를 새로 짓더라도 이 건물을 헐어서는 안 됩니다. 이건 그냥 그대로 두고 앞으로 박물관을 세워 놓으라구요.



2. 가정적 시련과 고초


성진님 모친의 극심한 반대


성진이 어머니는 열녀예요, 열녀. 단 한 가지 지은 죄가 뭐냐 하면, ‘당신은 내 남편이지, 통일교회보다는 내 남편 해야지, 통일교회 선생님 보다도 내 남편이 제일이라’고 한 겁니다. 이것이 틀렸다는 거예요. 나한테 하는 말이 있었어요. ‘당신 뭐 그렇게 아쉬운 것이 있느냐? 돈이 필요하면 내가 벌어다 드리겠소. 명주 바지 저고리를 내가 사철 전부 해 입히고, 꽃방석 자리에 앉아 가지고 책을 보든지 뭘 하게되면 전부다…. 천하에 내가 무슨 노릇을 해도 그것 전부 책임질 텐데 제발 내 남편 노릇해 주지 왜 그러느냐’이거라구요. ‘그러니 내 말만 들어요. 내 말만 들으면 천배 만배 편안히 모시고 욕 한마디 안 먹게 다 모시고 그럴 텐데 왜 그러느냐?’이거예요.


그래서 이리 저리 반대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보고 이 길을 가지 말라고 하면서 손가락을 안 깨물었나, 꼬집기를 안 했나, 긁지를 않았나, 그래도 안 되니 자기 고무신을 뒤집어 가지고 뺨을 때리지 않았나…. 내가 여자한테 천대를 깨깨 받았습니다.


그리고 통일교회 간부들은 성진이 어머니한테 별의별 수난을 다 당했습니다. 뺨도 맞고, 채이기도 하고, 똥바가지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별의별 역사가 다 있었다구요. 간부들이 매도 맞고 별의별 일을 다 당했다는 거예요. 똥을 갖다 붓지를 않나, 뭐 별의별 놀음을 다 한 거예요. 그야말로 사탄의 역사를 한 거지요. 이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여자한테 세계에서 제일 극악한 시련을 당한 사나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뭐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였다는 말을 남겼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세상에 별의별 놀음 다 당하면서도 달게 받았다구요. 그게 그럴 수 있다 이거예요. ‘그 한이 세계에 미칠 것이다. 천상에 미칠 것이다’하며 그 한을 다 풀 수 있도록 내가 달게 받아 줬다구요. 자기가 하는 게 분해가지고 그저 뭐 발바닥이라도 때려 줬으면 좋겠는데 안 그러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성진이 어머니가 선생님을 사랑하면서도 뭐라고 할까, 악처가 돼 가지고 공격했지만 거기에 대해서 선생님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가 책임을 못했다. 내가 남편으로서의 평면적인 책임을 못했다. 책임 못했으니 그것을 달게 받아야지’그런 거예요. 내가 그 책임을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종적인 면에서는 내가 책임 못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조건에 걸리지 않고 이 길을 가기 위해서 끝까지 참아 나온 사람이라구요. 조건에 걸리는 것이 없고, 양심에 가책되는 것이 요만한 것도 없다구요.


하늘의 최종 재가하에 이혼

1957.1.8. 협의이혼 신고


이혼을 내가 원한 게 아닙니다. 저쪽에서 어머니, 아버지, 오빠, 3인이 와 가지고…. 우리 집 물건을 얼마나 겁탈해 갔어요? 1차, 2차, 3차 와서 전부 다 갖다 팔아먹었다는 거예요. 공적인 나라의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적으로 쓰니, 그것을 한 번, 두 번, 세 번 하니 공법에 걸리고 천법에 걸려 가지고, 아무리 처자라도 그 법에 끌려가야 되고, 아무리 자식이라도 그 법도에 의해 판단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시간만 있으면 그 어머니와 오빠를 불러 가지고, 당신들이 나중에 후회할 테니 제발 그러지 말고 3년 동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매일같이 찾아와 가지고 이혼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왜 이혼을 안 해 주느냐는 거예요. 교회도 팔아 치우고 전부 다 별의별…. 그야말로 사탄이라구요. 선생님이 별의별 수욕을 다 당했다구요. 내가 큰소리 한마디 해 본 적도 없이 다 당해왔다구요. 이래서 기간이 찼기 때문에…. 이러다가는 하늘의 뜻이고 무엇이고 다 망친다는 거예요. 다 안 된다는 거예요. 하늘이 알고, 사탄도 알고 다 아는 거라구요. 남편을 대해서 뿐만 아니라 식구들을 대해 가지고도 이런 놀음을 하니 하늘이 더 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늘이 자기네들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명령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혼을 하게 된 거라구요.


하나의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려야지 여편네 살려야 되겠나. 그래서 ‘잘라라!’해서, 천명에 의해서 잘랐다구요. 누가 천명을 반대해요, 누가? 나라를 위해서는 통일교회 교인이 희생해야 돼요.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정을 희생시켜야 돼요. 마찬가지라구요.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 개인이 희생해야 돼요. 내 개인이 백퍼센트 희생해야 된다구요. 그 원칙이 하나의 개인으로 보나, 천상세계의 하나님으로서 보나, 어느 역사적인 성인 현철로 보나, 양심적으로나 모든 면으로 봐서 그 한계선을 넘고 넘고 남았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두면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망하기 때문에 그건 처단해야 돼요.


여러분들 중에 선생님도 이혼했으니까 우리도 이혼해…. 그건 다르다구요. 그것은 선생님이 탕감노정을 세워 나가는 과정이었다구요. 원칙을 세우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거예요. 그러한 내용 때문에 세계가 전부 다 통일교회가 뭐 어떻고, 선생님이 뭐 어떻고 어떻고…. 이런 논란의 대상이 되는 건 세계사적인 문제가 남아졌기 때문이예요. 한 여인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무서운 거라구요. 그렇지만 할 수 없다구요. 가니까, 없어지니까 할 수 없다구요. 하늘인들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그걸 하늘이 원치 않는 데도, 그 원치 않는 행동으로 나가는 걸 어떡하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진이 어머니는 타락한 해와의 자리에 섰다는 거예요.


가정 분리를 조장한 배후


선생님과 성진이 어머니와의 가정이 파탄된 것은 기성교회 때문에 그랬어요. 영락교회 때문에. 한경직 목사를 중심삼은 영락교회 때문에. 전부 이혼하라고 성진이 어머니 사촌을 끌어들이고 말이예요. 요사스러운 사탄 악마의 교주라고 하면서 듣지도 않고 덮어놓고 반대해 가지고 말이예요, 지금까지 반대하고 잘났다고 해요. 성진이 어머니가 나쁜 게 아니예요. 영락교회 전체가 주동이 돼 가지고 이단 잡아치워야 된다고, 평안북도 망신이라고 해서 판결된 것입니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가 오산공고 나왔다나?


요전에 우리 성진이 외삼촌이 수원교회 김명대 교구장을 찾아와 가지고 역사시대의 일을 말했다는 걸 들었어요. 그가 손위 처남이거든요. 성진이 어머니의 오빠예요. 옛날엔 반대하고 다 그랬지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 일족이 자기 어머니를 중심삼고 가족회의를 열어서 전체가 합하여 문선생과는 신앙이 다르기 때문에 가정을 파탄시키고, 이혼을 시키는 데 선동적인 일을 했다는 것을 직고했다는 거예요. 나는 그런 이야기를 안 했어요. 그가 그런 얘기를 세밀히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다 뒤집어 쓰고 나왔어요. ‘문선생이 미인인 여자를 얻기 위해서 여편네를 쫓아냈다’는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다구요. 그래도 ‘그래 그래, 하늘만이 알고 나만이 아는 사실이다. 당사자만이 아는 사실이다’ 그랬습니다.


그사람도 자기 어머니가 나빴어요. 어머니가 재건교회에 나가는데 다 코치해 가지고…. 그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예요. 자기 어머니에 비해서 선생님은 혁신적인 신앙을 하거든요. 결국은 반대한 동기가 자기 운명을 망쳤어요. 지금은 처량한 입장에 놓였다구요.


변명없이 책임져 온 가정문제


여러분, 옛날에 성진이 어머니가 미친듯이 반대했는데 말이예요, 따라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으면 통일교회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두 길이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여러분, 길에는 틀림없이 두 길이 있다구요, 두 길이. 레버런 문이 나타날 때도 두 길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내가 주장하는 것은 결혼할 때 가진 그 마음, 첫사랑의 마음을 갖고 가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 환경에서 첫사랑의 마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자기의 남편만 되라는 거예요. 사회고 뭣이고 나라도 다 싫다는 거예요.


에덴에서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천지를 망치더니 오늘날 복귀시대에도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역사에 통일교회의 비참한 역사를 남긴 것을 내가 비탄한 사람이라구요. 그 대신 내가 욕을 먹더라도 전체를 대신해 내가 책임지려고 한마디 변명 안 했어요.


내 아직까지 망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머니에 대해서 ‘될 수 있으면 당신 한번 찾아가 보겠다’하는 거예요. 그가 죽을 때 여러분을 대신하여 천하에 없는 복을 빌고 가야 된다는 거예요.


성진이 어머니가 그랬잖아요? 남자 중에는 성진이 아버지 같은 남자가 없다고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을 가려 해도 양심이 허락지 않아서 시집 못 간다고 말이예요. 65년인가는 와 가지고 ‘제발 부엌이라도 들어와서 일할 수 있게끔 해 줄 수 없느냐?’했는데 이미 다 지나갔다 이거예요.


또 언젠가 내가 그 여인을 길가에서 한 번 만났어요. 얼마나 처량한지…. 그래도 일편단심 사랑하기 때문에…. 그거 보면 사랑하는 모양이지요? 그거 얼마나 기가 막힌 놀음이예요? 만났는데 자기 마음이 그렇지 않으니까 이러고 서 있는 거예요. 그거 잊혀지지 않아요. 그거 못할 노릇입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반대 안 했으면, 절대적으로 남편만 믿었으면 세상 모르게 뜻이 다 이루어져 나가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왜 전세계적으로 반대를 받아요? 감옥은 왜 다니고 말이예요. 성진이 어머니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준비했던 모든 단체들이 희생 당한 거예요. 복중교도 다 그렇게 되고, 기성교도 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세계가 다 걸려 넘어가는 거예요. 내가 그걸 생각하면, 그것을 일대일로 생각하고 복수심을 가진다면 벼락을 쳐 버려야지요. 그렇지만 세상을, 지옥까지 복귀해야 된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전번에 내가 왔을 때 성진이 어머니가 사는 집 앞까지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갔었다구요. 어머니가 그걸 안 하고 반대하면 곤란하다는 거지요. 세상으로 생각한다면 그곳이 어디 어머니가 따라갈 곳이예요? 돌아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돌아설 때는 걸어 잡아당기면 안 됩니다. 못 잡아당기게 다 청산짓고 가야 된다구요. 집을 사 주는 것도 어머니가 사주고, 전부 다 어머니를 시켜서 사주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생활비 대 주지?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갈라진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남편 노릇을 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복귀가 그렇게 힘든 거예요.


그게 다 탕감조건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죽을 때에 암만 저주를 해도 그 저주에 걸리면 안 돼요. 저주의 총탄을 무수히 쏘더라도 그건 나하고 하등의 관계가 없게끔 그 자리를 벗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본심에 하소연을 하더라도…. 나만이 아니예요. 어머니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 중의 여자, 위해서 사는 여성의 모습을 남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가 훌륭하다구요. 아무 불평불만 없이 ‘아, 그러셔야지요’하는 거예요. 그러고 그걸 넘은 어머니가 훌륭하다구요.


내 언젠가 그 일가를 모셔다가 전부 다 잔치를 한번 해 주려고도 생각하는 거예요. 원수를, 사랑의 원수를 남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뜻을 다 이룰 때는 안됐다 해 가지고 내가 좋은 요리점에서 만나 잔치 한번 해줄지 모르지요. 죽을 때 나는 선생님 때문에 이렇게 망해 죽는다고 눈 감고 기도하면 안 돼요. 그래, 언제 한번 만나서 전부 다 위로해 주고 다 그래야 돼요.


최씨를 내세워 탕감하는 섭리


최씨네 문중에서 그랬기 때문에 최씨를 중심삼은 역사를 하는 거예요. 인과의 법도라는 것은 참 무서운 거예요. 지금도 반대하고 있고, 그 여파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문제가 벌어졌다구요. 그렇지만 그 가문을 죽여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원수, 가인적인 자리에 돌아갔지만 포섭해 줘야 합니다. 끝까지 그들을 해방시켜 줘야 할 책임을 해야만 대한민국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섭리가 그렇게 복잡한 거라구요.


그래서 일본을 개척한 것도 최봉춘이예요. 최씨를 먼저 내세운 것입니다. 일본을 개척한 최봉춘. 또 미국에서 선교사들이 싸움하는 것을 수습하라고 보낸 사람이 최봉춘이었다구요. 앞장을 세웠다구요. 또, 최원복이.(웃음) 이름이 원복이예요. 다 원리적이예요. 선길이가 잘못했으니까 원복이가 수습한다는 거예요. 원 자가 ‘으뜸 원元’자고 복 자는 ‘복 복福’자예요. 그러니까 여자의 대표로서 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최씨예요, 최씨!


부흥회를 할 때도 유협회장 안 내세우고 최창림이를 내세웠다구요. 곤줄박이 같은 녀석을.(웃음) 이것을 용서하지 않으면 자유세계를 수습할 길이 없어요. 나라와 민족이 살 길이 없어요, 이걸 잘라버리면. 최창림이 잘한다고 세운 것이 아니예요. 다 알아요. 내가 알아요. 그렇지만 국가의 운명의, 생사의 기로까지, 경계선까지 최씨 성을 내세워서 가야 한국이 살 수 있는 길이 있지, 다른 데는 길이 없다고 봅니다. 그것이 원리예요. 좋아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구요.


성진님의 희생


우리 성진이를 낳은 다음에 내가 성진이 손목을 잡고 안고 사랑을 못 해 봤다구요. 이런 뜻을 성진이 어머니가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성진이를 대해 가지고 내가 아들이라고 말을 못 했어요. 아들 취급을 안 했다구요.


그런데 성진이가 훌륭한 것이 말입니다, 일곱 살 때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는 어머니인데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하고 같이 있지 않고, 어머니를 버리고 아버지를 찾아왔다구요. 이거 보통애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건 자기 생각 아닌 겁니다. 어머니가 아버지 반대하는 것을 알거든요. 그러니까 장충동 교회에 우리가 있을 때, 그저 반대하러 온다 하게 되면 새벽같이 연락해 주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아버지로서 한번 똑바로 대해 주지 못했다는 거예요. 냉정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을 사랑하기 전에 가인을 먼저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찾아 세운 제2 이스라엘을 먼저 사랑하고 난 후에 아들딸을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입니다. 섭리는 원칙대로 가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모시게 된 60년까지는 내가 우리 성진이 손목도 잡아 주지 않고, 키스도 안 해 주었어요. 아버지가 있는 데서 못 살게 했어요. 그래서 바깥에서 절간으로 찾아 다니며, 식구들의 손에 손을 거쳐 가지고…. 왜 그래야 돼느냐 이거예요. 천도를 세워야 할 책임을 진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의 기반까지 다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 돼요. 순리라는 것은 준비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곡절의 길을 걸어오면서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 내가 살아왔어요.


희진(喜進)님 모친과 예수님 가정 탕감길


성진이 어머니가 반대를 했기 때문에 이 가정의 틀을 중심삼고 이러한 역사적인 소생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입니다. 성진 어머니가 해와의 입장이고, 희진이 어머니는 마리아 입장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애급으로 간 것처럼 희진 어머니도 희진이를 데리고 일본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희진이는 일본 오무라 수용소에서 3년 이상을 자랐습니다. 원수의 철창에서 자랐습니다. 희진이는 세상의 어떠한 아들보다도 귀한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도를 세우기 전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희진 어머니는 바다를 건너가 일본에서 모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적응하고 다시 돌아올 때는 민족이 환영하면서 맞이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실패한 것과 같은 결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진이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진이는 객향에서 태어나 객향에서 죽었습니다.(1969. 8. 1. 하계 전도길에 충남 매포역에서 순교) 예수님도 객향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지에서 십자가에 돌아갔던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역사적인 전통과 시대적인 내용을 갖춘 가정이 되지 않고는 아벨 가정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십자가예요? 또 자식에 대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표적인 십자가를 선생님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편과 아들딸뿐이지만 선생님은 복잡합니다. 가정적으로 보더라도 성진 어머니가 뜻을 못 세워 나왔기 때문에 3대로 연장되게 되었습니다.



3. 피 땀 눈물의 정성으로 식구 육성


1957년부터 7년간 참목자의 고행길


밤을 새우더라도 눈이 샛별 같아야 돼요. 나한테 이기는 사람을 하나도 못 봤어요. 1957년부터 7년 간은 두 시간도 안 잤어요. 한 시간 자는 게 보통이었다구요. 그러고도 피곤한 줄 몰랐어요. 피곤하지 않게 하는 훈련을 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7년 동안 옷을 벗고 잘 때가 별반 없었다구요. 이렇게 입고…. 그래서 1960년대에 새로운 세계로 출발할 때에 내 자신이 하늘 앞에 부끄럽지 않은 20년노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7년 동안 그 준비를 하고, 훈련한 거예요.


안방에 꼬부리고 앉아 가지고 세 시, 네 시까지, 매일같이 7년 동안을 그런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내 정성을 다 퍼부어라! 지치도록 퍼부어라! 배고파도 퍼부어라! 졸음 가운데도 퍼부어라! 하늘이 공인할 때까지…. 그렇게 심었기 때문에, 그 심어진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이 씨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해 가지고 세계에 연결돼 나갈 것입니다. 반드시 그것이 한때에 거두어 질 날이 있겠거늘, 한국에서 못 거두거든 세계에서 거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초창기에는 밤 새우기가 일쑤고, 잠 안 자기가 일쑤였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고단하여 변소에 가서도 졸았다구요. 그 정도로 고단했다구요. 가 가지고 앉자마자 기대 가지고 코를 골고 자는 거예요. 그거 이해돼요? 미칠 듯이 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60년도가 지날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서 밥을 먹었습니다. 너무 바쁘거든요. 반찬도 세 가지 이상 놓고 먹지 않았어요. 3년 동안 그 놀음 했습니다. 상이 뭐예요? 바닥에다 놓고 먹었다구요. 왜? 전체를 다 살려 주려니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밥을 테이블에서 먹지 않았다구요. 여기 이런 조그만 판자에다 놓고, 그냥 땅에다 놓고 먹었다 이거예요. 죄인이예요. 그것 못하면 죄인이예요. 생일날은 금식을 했다구요, 7년 동안.


이거 뭐 책임을 못 해 놓고, 천리의 법도를 못 세워 가지고 살아서 밥을 먹고, 이렇게 다니고 그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어요? 그거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나는 나라가 있어도 내 나라가 아니요, 세계가 있어도 내 세계가 아니요, 내가 무엇을 갖더라도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거예요. 이것 해놓고야 내 것이 되는 거예요.


식구 개개인을 위한 기도


통일교회의 초창기 시대에 선생님은 잠자지 않았습니다. 코피를 쏟으면서 기도했습니다. ‘이놈의 코피야 어서 나와라, 역사적인 피를 대신해서 만민이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만민이 통곡하고도 갚을 수 없는 코피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영광 중의 영광의 코피냐?’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1957년쯤 돼 가지고는 한 4백 명의 식구를 위해 언제든지 기도해 준 거라구요. 어느 한계점까지 넘어가기 위해서는 전부 다 기도해 줘야 된다구요. 그래서 척 기도하면 심령상태가 어떻다는 것이 들어온다구요.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하나님이 주체이니까 주체와 더불어 하게 된다면, 반드시 자기와 관계된 식구들은 가지와 같은데 하나님이 거 안 가르쳐 주겠나요? 가르쳐 준다구요. 정성을 들여 보라구요. 식구들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게 되면, 그들의 심령상태가 상하게 된다면 별의별 모양으로 보여주는 거라구요.


식구들 이름을 쭈욱 다 부르면서 기도했습니다. 이름도 부르기 전에 머리가 후루룩 다 나타납니다. 그 이름만 부르는데도 한 40분이 걸립니다. 웃는 얼굴로 나타나기도 하고 근심있는 얼굴로 나타나기도 해요. 그러니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대번에 압니다.


교회 시작했을 때는 선생님이 흘리는 눈물로 마루가 말라 본 적이 없었습니다. 피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4백 명 식구면 4백 명의 이름을 쭉 부르면서 기도하게 되면 벌써 누가 병이 났다는 것을 압니다. 대번에 전화해서 불러내고 당신 이러이러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이냐고 물어 보면 틀림없거든요. 그러면 병이 어디 났는지를 진찰해서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올바른 참부모, 종적인 참부모 횡적인 참부모의 도리를 정상적으로 대신자로서 이어 나가게 될 때에 구부리지 않고 바른 방향을 갖춰서 자리를 잡고 따라오려고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또 이름 가지고 쭈욱 보면서 ‘오늘 이 아줌마가 틀림없이 와야 된다’이러면 오는 거예요. 오는 거라구요. 시장간다고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와 가지고는 ‘어? 교회에 왔다?’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영계가 나를 돕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어요?


개별적인 식구 양성


1957년도에 한국에서 식구 만들 때에는 잠도 자지 않았다구요. 일대일 작전을 했다구요, 일대일 작전. 남는 것은 일대일 작전이라구요. 한 사람을 놓고 강의할 때 백 사람 천 사람 놓고 강의하는 거와 같은 생각으로 했다구요. 그 한 사람에게 수천 수만 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구요. 내가 무슨 명령을 해도 들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그만큼 정성들여 가지고 그럴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어야 됩니다.


이래가지고 식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을 사랑해야 할 입장에서 민족을 사랑하지 못 한 것이 분해서 밤을 새워 가면서 이야기해 준 거라구요. ‘날 닮아라, 날 닮아라’ 기른 때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어린아이를 일곱 살쯤 정성들여 키워 놔야 그 다음에 국민학교에도 보내잖아요? 그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7년노정이 다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가인을 기르려면 7년은 길러야 됩니다.


교회가 없더라도 내 손으로 개인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50년대에는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쉬지 않고 일을 한 거예요. 그 사연을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아, 선생님은 저렇게 자유스러운 사람이고, 뭐 뼈 없는 사람…. 천만에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뼈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개인을 붙들고 눈물로 시작했고, 개인을 붙들고 통곡으로 시작했고, 민족의 비운을 그를 통해서 풀려고 했고, 민족의 한을 그 가정을 통해 풀려고 했습니다.


하늘이 같이 하기에 거기에는 큰 전류가 통하는 것입니다. 몇 억 볼트가 통해 나가는 것과 같은 힘이 같이 하고, 세상을 흔들면 왔다갔다 흔들리는 그러한 기분이 난다구요. 얼마나 통쾌하냐 이것입니다. 그런 때는 눈을 감으려 해도 감기지 않아요. 자다가도 퍼뜩 눈이 떠집니다.


1957, 58년도에 전부 다…. 선생님이 어떠한 사람이었느냐? 어떤 할머니,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의 말을 제일 잘 들어 준 선생이었다구요. 그들한테 자기 말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들어 준 사람이라는 통칭을 받았다구요. 그 놀음을 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오게 되면, 시집가던 날로부터 영감을 뭐 어떻게 사랑했던 얘기도 나한테 다 해 버리려고 그런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는다 이거예요. 누구든지 선생님을 찾아오는 사람은 ‘선생님은 내 말을 다 들어준다’그랬다구요.


말을 들어줄 때에는 세상에 그렇게 재미있게 들을 수 없다구요, 그렇게. 밤을 새워 가면서, 밤을 새워 가면서 들어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대일이예요. 말을 진정으로 들어 주고, 또 내 말을 진정으로 하는 거예요. 그게 비결예요, 비결. 그렇게 주고 받는 거예요. 듣는 데도 열심히 듣고, 말할 때도 피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껏 들어 주고, 정성껏 말해 주라 이겁니다. 한 사람의 할머니 말을 열 두 시간에서 스무 시간까지 들어 주라는 거예요. 밤을 새우면서 들어 주는 거예요. 다 들어 주고 했으니 이젠 내 말을 들어라 이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가인을 내 편에…. 사탄의 보따리를 전부 다 휘저어 이걸 쏟아 없애 버리지 않고는 나에게 끌어 붙일 비결이 없다는 거예요. 개인지도를 해야 돼요, 개인지도. 개인지도예요. 어머니가 한꺼번에 쌍둥이를 났나요? 하나 하나 낳지요. 그러므로 땀흘리며 정성을 들여야 돼요. ‘저 사람이 이제 어느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을 한 시간 두 시간, 또 열 두시가 되고 한 시가 되었더라도 두 시간만 얘기하면 고개를 넘어간다’ 할 때는 서슴지 않고 세 시 네 시를 밝히면서라도 얘기를 해줘야 되는 거예요. 한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된다구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결투하는 사람이 먼저 칼끝을 대야 하는 거와 마찬가지이고, 총으로 누가 먼저 맞추느냐 하는 거와 마찬가지라구요. 심각하다구요. 주사 한 대에 사느냐 죽느냐 하는 의사와 같은 입장에 섰다구요. 생명을 그렇게 귀하게 다룰 줄 알아야 돼요.


공판정에 나서는 심정의 예배


내가 공석에 나타나서 기도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입니다. 보라구요. 초상집 주인과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뭇 생명을 생사의 기로에서 생명권으로 옮겨야 하는 입장에 있는 거예요. 그건 심각한 문제예요. 그것은 결판이요, 담판이요, 생사의 결정을 가름하는 금을 긋는 거라구요. 최후의 금을 긋는 자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를 책임지고 이 자리에 나온다는 것은 형장에 나오는 것과 같은 거라구요. 공판정에 나서는 그러한 심정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동정을 바라야 되겠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되겠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가 감도는 입장에 서야만 생명이 윤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공석에 나타날 때는 ‘무슨 설교할까?’하고 제목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된 결과를 가져오는 거라구요. 그것은 내 지식과 내 조직적인 계획이나 머리를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은 될는지 모르지만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것은 못 됩니다. 그 대신 설교하기 전에 열 시간 이상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뿌리를 깊게 자라게 해 가지고 나오자. 순은 아무래도 좋다. 벌레 먹었더라도 좋다 이거예요. 말이야 다듬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좋다는 겁니다. 진실된 심정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생사지권을 결정합니다.


통곡으로 얼룩진 감동의 설교


선생님이 여기에서 강의도 하고 설교도 많이 했지만, 1950년대 이후 눈물 안 흘리고 설교한 날이 언제 있었어요? 통곡하지 않은 날이 어디 있었어요? 자기 그릇에 담고 넘쳐야 돼요. 넘쳐야 됩니다. 그냥은 넘치지 않아요. 있는 힘을 다하고, 피땀을 흘리고, 정신이 아뜩한 경지, 나 죽는다고 쓰러진 거기서 날겠다고 해야 하늘이 위로해 주고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초창기에는 그 모진 박해의 와중에서도 피땀을 흘리면서 설교했어요. 목이 터지게 설교를 해서 모인 사람에게 감동을 줘야 돼요. 어제보다도 오늘의 핍박에 지쳤지만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이 남았으니 힘을, 원동력을 투입하는 거예요. 힘을 투입하려니 소모전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있는 정력을 다 퍼붓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끌고 나온 거예요. 그래서 설교할 때는 이 등에 전부 다 땀이 뱄어요. 와이셔츠나 내복은 완전히 젖고, 이 머리에서는 땀방울이 다 떨어졌다구요.


옛날에는 이 단상에서 양복을 입고 설교하지 않았어요. 노동복으로부터 출발한 거예요. 설교를 할 때 한 사람이 있더라도 피땀을 흘리고 정성을 다 해 눈물을 흘리며 설교를 했지 지나가는 손님 맞듯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연들, 그 사연이 지나고 나니까 지금 그립다는 거예요. 오늘은 여러분 앞에 양복을 입고 왔지만, 옛날에는 잠바를 입고 왔어요. 잠바도 아니예요. 아래에는 한국 바지, 위에는 미군들이 입던 잠바를 물들여 입고, 2층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구요.


그렇게 입고 설교를 시작한 것이 설교의 출발이라구요. 그 당시 통일교회를 찾아온 사람들은 ‘문선생이 어디 있어?’ 하고 찾는다는 거예요. ‘문선생 어디 있긴 어디 있어, 단에서 설교하지!’ 지금은 없지만 오히려 유협회장이 의자에 딱 버티고 앉아 가지고 눈을 띵굴띵굴 굴리고 있으면 ‘저 사람이 문선생이다’ 생각한다는 거예요. 양복을 입게 된 것도 서양풍이 불다 보니 거기에 박자를 맞추자니 할 수 없이 입었지요.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문선생이 언제나 그렇게 사는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못난 사람의 대표격이라구요.


유효원 협회장 원리강의 지도


통일교회가 출발할 때는 청파동에서 3년 8개월 동안 유협회장이 병신 몸이 돼 가지고도 하루에 18시간씩 강의했어요. 하루에 18시간씩 3년 8개월 동안 매일 병신인 사람을 계속해서 시켰다구요. 그게 전통이예요. 그래서 이틀에 한 번씩 강의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없으면 자기 자신이 전화로 친구를 불러오든가, 아저씨를 불러오든가, 어머니를 불러오든가, 조카를 불러오든가 해서 강의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틀에 전편 후편 강의를 전부 하는 겁니다. 매일 계속하는 겁니다.


그 얼마나 힘들겠어요. 폐가 아프고 뭐 다 그러겠지만 안 불고 있으면 ‘이놈의 자식, 하늘 뜻의 나팔쟁이인데, 18시간 불라고 했으면 불어야지. 지금 영계에서는 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네가 이럴 수 있느냐? 당장에 해라!’이랬다구요. 그렇게 3년 8개월 했다구요. 그게 기록이예요, 기록.


강의시킬 때 내가 잔 줄 알아요? 다락방에서 앉아 가지고 다 듣고 있었다구요. 누가 왔다는 것을 다 보고 받았다구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앉아 들어 주었어요. 열심히 들어주고 나서 그다음에는 물어 보는 거지요. 그래 가지고 기른 것입니다. 딱 지켜 앉아 가지고 감독을 했습니다. 잘못하게 되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시정해 주고 조정을 했어요. 그리하여 3년 8개월이 지난 후에 대역자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게 되면, 저녁때가 되게 되면 앉아 가지고 환영회를 하는 겁니다. 오락을 하고,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전체 분위기를 강의하는 것 이상의 재미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하든지 만드는 거예요. 옛날에 강의가 끝나고 환영회를 하면 선생님이 전부 다 맡아 하는 겁니다. 강의를 들은 사람은 선생님이 누군지 모른다구요. 앉아가지고 밤을 새우고 전부 다 이렇게 일주일이 가고 보름 지나고 나서야 ‘아, 저 분이 선생님이었구나!’ 이런다구요. 그래 가지고 24시간 잔치 한다구요. 잔치 분위기예요.


내가 안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먹기나 잘해요? 보리밥 두끼 먹으면서 했어요. 그렇다고 반찬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날김치를 하룻밤 재워서 먹는 것입니다. 유협회장이 잘 먹던 것이 있는데, 곤쟁이 젓 담근 것을 좋아했어요. 나는 그것 뚜껑을 열지도 않고 구석에 놓아 둔 것을 보고도 저게 뭐냐고 야단했는데, 그 냄새가 똥내보다 더 지독한데 그것을 찍어 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던 게 눈에 선해요.


얼마나 힘들었겠나! 어떤 날은 점심도 못먹고 누워 있는 걸 보고 기가 막히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를 않아요. 지금도 파주 성묘 가게 되면 말이에요, ‘지금이면 그 곰팡이 냄새 나는 젓갈이 뭐냐. 소라도 통째로 잡아서 줄 터인데’ 그런 생각을 한다구요.


‘유협회장이 지금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루에 18시간 이상 강의를 했어요. 원리강의를 했습니다. 결국 식구 증가율은 원리강의 수에 비례해요. 다른 것 없습니다.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 육성하는 지도자


7년동안 선생님이 두 시간 이상 잠을 안 잤어요. 사악한 세상에서 전부 흘러가는 사람들 만들지 않기 위해 밤낮 훈련시킨 거라구요. 비오는 날 전부 다 관악산에 비를 철철 맞으면서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다가 돌에 미끄러져 가지고 별의별 놀음 해도 올라가는 거예요. 안 올라가면 안 되는 거라구요. 앞으로 국가와 싸우고 세계와 싸울 수 있는, 큰 전장에 나서서 전부 다 패자가 되지 않게 하고, 패잔병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훈련을 시켜 온 거라구요. 별의별 욕을 다 먹으면서 그런 훈련을 시켰어요.


‘학교가 뭐야. 너희들은 전부 다 특정대라구. 학교 다 버리고, 다 집어치우고 뒤로 돌아서서…’ 그렇게 시작한 거 알아요? 그거 누구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한 가지 내가 하늘 앞에 고마운 것은 내가 기억했던 사람이 떨어져 나가면 그와 같은 사람이 남쪽, 북쪽에 두 사람 내지는 세 사람이, 모양도 같고 거동도 같고 음성도 같은 사람이 들어오더라는 거예요. 참 신기할 뿐이예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가는 주체적인 심정권을 가진 자 앞에는 상대권이 절대 손해가 안 나는 거예요. 내가 유난스럽게 그를 대해서 특별히 대해 주지 않을 뿐이지 마음으로는 ‘아, 옛날의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늘은 저와 같은 사람을 보내 주었구나’하고 감사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많다구요.


위해 살게 되면 중심 존재가 됩니다. 중심 존재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보호해 줘야 됩니다. 보호뿐만 아니라 육성해 줘야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말하면, 내가 중심이라 할 때는 여러분에 대한 전체의 책임을 져야 됩니다. 어려운 걸 피해 가지 않고 내가 책임지는 거예요. 어려운 모든 것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보호해 줘야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육성해 줘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라 나오다 보니 보호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욕 먹을 것을 내가 다 욕 먹는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잘못한 것을 전부 다 문총재가 짊어지는 거예요. 여러분의 생명을 책임지는 거예요. 여러분의 조상문제까지 영생문제까지 책임지는 거예요.



4. 청파동 시절 참사랑의 봄바람


개인적인 심령부활의 때


사람들이 통일교회운동에 가담하게 되는 이유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일원리 가운데 들어 있는 자석과 같은 진리의 인력 때문입니다. 진리에 접하면 누구나 불붙기 마련입니다. 가장 절대적이고 완전한 진리에 접하면 이제까지 있던 차원 낮은 진리에 붙들려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자간의 관계는 사랑이 충만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가정에서 양친들과 경험한 그 이상의 사랑을 맛보았다고 합시다. 그때 그 자녀는 영적인 만족을 위해 보다 위대한 사랑의 보금자리로 가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같은 생명의 힘을 발견할 때 그들은 그와 같은 자력에 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은 삶의 근본이며 빛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배후에는, 나타나지 않은 과거역사에는 비참한 일들이 참 많아요. 일화도 많고, 곡절도 많고 나타나지 않은 게 많다구요. 1960년도 선생님 성혼식 때는 이미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대중이 대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대중에게 필요한 말씀을 그때그때 했던 거예요. 그전의 말씀은 대중에게 필요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의 심령을 어떻게 부활시키느냐, 하나의 생명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느냐 하는 문제가 책임진 지도자인 선생님으로서 말하게 되는 전부였다 이거예요.


종적인 사랑을 체휼하는 때


통일교회에 있어서 맨 처음에 그런 때가, 내가 어머니 모시기 3, 4년 전 부터는 봄바람이 부는 거예요. 1957년서부터 7년 동안 사랑의 봄바람이 불었어요.


우리는 오시는 그 주님의 종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을 받아서 그와 똑같은 사랑이 부부간의 횡적 사랑으로 뻗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종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그런 종적인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집에 가서 잠을 자더라도 저 북쪽을 향해서 교회 방향과 거꾸로 자고 있는데 마음은 이곳을 향해 이러고 있다구요. 그거 왜 그래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요술을 잘해 가지고 뭐 어떻고 어떻고…. 요술은 무슨 요술이예요. 자연술自然術이고 천술天術이지.(웃음) 요술은 한 때밖에 못가는 거예요. 최면술 같은 것도 한 시간만 지나게 되면 그냥 다 해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일생을 통해 가지고 지긋지긋한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나 자신도 마찬가지라구요. 일생 욕을 먹고 그래도 끄떡 없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그러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구요. 플러스인 마음과 마이너스인 몸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으면, 플러스인 마음에 하나되는 그 힘은 하나님의 본연의 창조주의 그 힘의 권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능한 창조력이 있고 혹은 생명력이 있으면 그 창조력과 생명력에 접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 바람, 본연의 사랑 바람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봄동산의 냄새를 맡고, 봄동산에서 놀고, 그걸 체휼하고, 그걸 느꼈던 사람은 세상에 나가서는 못 살아요. 한숨이 그득하지. 선생님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어요. 자기 부모를 잊을 수 있어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향을 잊을 수 없어요, 고향을. 통일교회가 마음의 고향이예요. 인간 생명의 본향의 기지가 돼 있기 때문에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3대 심정권의 재현과 체휼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뭘 잃어버렸느냐 하면 아버지 사랑을 잃어버렸고 남편 사랑을 잃어버렸고 오빠 사랑을 잃어버렸다구요. 3대 사랑을 잃어버린 거예요. 이 3대 사랑을 일시에 재현시켜 가지고 탕감하지 않고는 본연의 길을 찾아갈 길이 없다는 거예요. 오빠의 정을 파괴하고 오빠를 녹여 먹은 것이 여자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남편을 망하게 만들고, 그 다음엔 아버지를 망하게 만들었어요. 3대의 한을 품고 있다구요. 3대 멸망의 조건을 비축한 사람들입니다. 3심정을 유린한 해와이기 때문에 세상에 재림시대가 오지 않고는 여자를 해방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아, 언젠가 만난 분이다, 언젠가. 눈도 귀도 코도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데? 언젠가 어디에서 보았다’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을 떠올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 가까운 오빠같다구요. 선생님이 품에 안는다고 할지라도, 무슨 남자같이 생각되지 않습니다. 부모의 품에 돌아가는 것 같은 생각, 오빠를 향한 여동생의 느낌, 떠오르는 생각은 선생님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남편처럼 ‘아- 그립다. 만나고 싶어서 참을 수 없다’라고 하여 밤에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거기까지 간다구요.


지금도 그러한 체험을 할 거예요. 오빠처럼 안내하며 에덴의 꽃동산에 데리고 다니면서 계속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많이 선생님을 만날 것입니다, 꿈속에서. 때로는 약혼반지를 끼워 주기도 하고, 약혼 준비의 꽃다발을 안겨 주기도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함께 이불 속에서 잠자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보여진다구요. 그 심정권이 무엇인가 하면, 잃어버린 남편의 심정권을 원리대로 되돌리는 하늘적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단계를 지나 완전히 심정권 내에서 아버지 같이 됩니다. 완전히 아버지 같다구요. 어린아이처럼 되어 선생님의 무릎 위라든가 아무리 지나치게 장난을 해도 싫지 않은, 부녀관계 같은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구요.


12세에서 80세까지의 여자들은 모두 가을 바람이 불어서 한창의 꽃다운 색을 띠고 향기가 나는 거예요. 모두 선생님은 자기만의 아버지요, 자기만의 오빠요, 자기만의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해와와 똑같다구요. 해와의 심정권 복귀를 실체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어떤 입장에 들어 가느냐 하면 선생님과 심정일체권에 들어가는 거예요. 선생님이 외롭다고 생각하면 자기도 외로워지는 거예요. 그러한 체휼권에 들어가는 거예요, 체휼권. 그리워서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참사랑에 반한 식구들


선생님이 한참 기도할 때는 통일교회 전체 사람들은 선생님한테 홀딱 반해 가지고 뭐 시장 가도 뛰어갔다가 오고 말이예요, 그런 거예요. 시장 간다고 하는 사람이 전부 다 교회 오고, 남자고 여자고 다 정신이 홀려 버린 거지요. 내가 그렇게 한 게 아니예요. 사랑이 그런 거예요, 사랑이. 보면 괜히 좋다구요. 뭐 없으면 그저 버선짝 팔아다가라도 갖다 드리고 싶고 말이예요. 주고도 또 주고, 또 주고, 또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4시까지 통행금지가 실시됐거든요.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청파동에 찾아 오는 것입니다. 남편이 반대하기 때문에 못가고 있는데 쇼핑하는 바구니를 들고 시장 찾아간다는 것이 습관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교회로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강한 것입니다. 자기 의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의식권을 컨트롤 해 가지고 목적의 세계를 자기 영육의 사지가 움직여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속에서 ‘아이고! 가고 싶다’ 소리를 치는 거라구요. 그 소리가 들린다구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는 거라구요. 거기에서부터는, 소리가 들리면 벌써 딴 세계의 말을 합니다. 영계가 통하는 거예요. 제일 내적인 전기줄,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내적 전기줄이 뭐냐 하면 진짜 사랑인데, 그 사랑에 통할 수 있는 전기줄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벌써 모든 것이 보인다는 거예요.


더더구나 자기 집에 있으면서도 선생님이 뭘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오늘은 나쁜 일을 하누만. 오늘은 좋은 일을 하누만. 오늘 가게 되면 기분 나쁘니 내가 가면 기분이 좋지 않겠구나’ 하고 다 안다는 거예요. 그래도 안 갈 수 없어 온다는 거라구요.


그래, 이 청파동 고개가 뭐라구요? 도깨비 고개, 도깨비 고개예요. 이거 안 갈 수도 없고, 또 가보면 별것 아니예요. 선생님이 고맙게 하나요? ‘이 쌍것! 왜 이렇게 부산스럽게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야단이야’이런다구요. 그렇게 욕을 한 바가지 먹고 눈물, 그저 닭똥 같은 눈물을 두루룩 떨구고는 ‘어이구! 다시는 안 온다’하고 갔다가는 밥 한끼 먹으면 또 돌아선다는 거예요. 암만 결심했더라도, 울면서 안 오겠다고 하고 나왔는데, 집에서 나와 가지고 뜰 안을 빙빙 돈다고 했는데 대문을 열고 어느새 버스를 타고 교회에 온다는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오는 거예요. 그렇게 요사스러운 힘이 있지요. 그런 것을 못 느껴 본 사람들은 진짜 사랑을 모르는 거예요.


우리 청파동 전본부교회 시절에 말이예요, 요 문으로 쫓아내면 저 문으로 들어와 가지고 의자 뒤에 숨어 있다가 선생님이 올라간 다음에 딱 나타나 가지고 기도하면서 밤을 새운 그런 역사를 다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 놓고 아침에는 선생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가려고 전부 이러고 있어요.


새 치마를 입고 온다고 바쁘게 왔는데 구멍이 뚫어져 있고 그랬다구요. 왔는데 구멍 뚫어진 헌 치마를 입고 와서 새 치마 입고 온 줄 알고 있었으니까.(웃음) 오집사 같은 사람은 밥을 하는데 말이예요, 쌀을 일어 가지고 가마솥에다 부어야 하는데 물독에 쌀을 갖다 붓고는 물만 가마솥에 붓고 불을 때고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한참 때다 보니 밥이 없더라 이거예요.(웃음) 그렇게 미친 겁니다. 미친 거라구요.


선생님이 여기 도봉산이나 삼각산, 관악산에 다닐 때에도 여자들을 못 따라오게 했어요. 내가 여자들 따라오는 걸 제일 싫어했다구요. 이거 그저 앞장서고, 선생님 뒤에 붙어 가지고…. 우리 어머니 귀 좀 막고 들으라구요.(웃음)


가정 분란과 핍박 고조


청파동 시절에, 교회가 작아서 본관에서 살았는데 여자들이 담을 넘어 들어오고 그랬다구요. 남편이 뭐라고 해도, 가서 선생님의 얼굴을 한번 봐야 밥이 넘어가고 숨을 쉴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매일같이 가니까, 그 여편네를 가만 둘 수 있어요? 쇠고랑을 채워서 가두어 두는 거예요. 그래도 가니까, 팬티만 딱 입혀 놓고 말이에요, 머리를 깎아 버리는 거예요.


여자들이 남편한테 매 맞게 되면, 세상 같으면 한 번 맞고 ‘아이고, 이젠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당신 뜻대로 해요’ 그렇게 약속을 하면 그것으로 누그러지고 그럴 텐데, 통일교회 패들은 들이맞고서도 절대 선생님한테 안 가겠다는 이야기는 안 한다 이겁니다. 그러니, 집에 얼마나 분란이 벌어지겠어요?


남편이 엄동설한에 빤스(팬티)만 입혀 놓고 ‘너 서방질하다가 추운데 밤늦게 들어오지? 이 간나!’하고 쫓아내니까 할수있어요? 갈 데는 통일교회밖에 없으니까 여기 찾아오니, 담 넘어 가는 그 여자 보고 무슨 소린들 안 하겠나? 집에서 쫓겨나 가지고, 동삼에 쫓겨나 가지고 어디로 가겠어요? 선생님밖에 더 있어요? 그때는 내가 혼자 살 때라구요. 40대까지 내가 혼자 살았는데, 청파동 집의 담이 한 길 반이 되는데 여자가 팬티를 입고 넘어 찾아와 가지고 ‘선생님’하니 소문이 날 대로 다 났지요.(웃음) 벌거벗고 팬티만 입고 담 넘는다고 전부 청파동에 소문나 가지고 내가 욕 많이 먹지 않았어요?


더구나 자기 남편이 가방 들고 나가는 모습이 쌍두사가 되어 가지고 나가는 모습으로 보이는 거예요. 몸뚱이는 하나고 머리는 둘인 쌍두사 말이예요. 그리고 저녁 때 시간 되어 들어오면 쌍두사가 자기집에 찾아와 가지고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갈 때는 쌍두사가 좌우편에 걸고 몸뚱이를 감고 전부 음부에다 꽁지를 들이박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데 같이 부부생활 할 수 있겠어요? 부부생활을 하면 하혈하는 거예요. 이런 기가 막힌 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누구한테 이야기 하겠어요?


거기다가 부모들이 얼마나 미워하느냐? 그저 미워하는 거예요. 오죽 미우면 자식을 타고 앉아서 등에다 칼을 꽂았겠어요? 우리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 아버지한테 칼침 맞은 사람이 있는 것을 알라구요.


지방 식구들의 그리움과 사랑


남자들도 그래요. 부산에 살던 남자들도 말이에요, 자갈치시장 같은 데 가게 되면 펄펄 뛰는 숭어나 농어 같은 걸 보게 된다면 그걸 떠억 붙들고 선생님 생각하느라고 손이 펴지질 않아요. 고기가 놔 주질 않아요. 왜? 그땐 불쌍한 선생님이었지요. 나라에 쫓기고, 기성교회에 몰리고, 동정하는 사람 누구 있었어요? 하늘이 동정해야지요.


이래 가지고 부산에서 펄펄 뛰는 그 고기를 붙들고 ‘아이고, 죽지 않게 해서 서울까지 갖고 가면 좋겠는데! 비행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이래 가지고 걸어갈 수 없으니 차를 타고 가는데 통일교회 거지 패들이 표를 사 가지고 타나요? 중간에 기다리다가 도깨비 등쳐 먹듯 차를 잡아 타고 올라오다가 들키게 된다면 그 고기도 빼앗겨 버리고 돌아와서는 통곡하는 거예요.


부산에 사는 식구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왔다갔다 하는데, 왔다갔다 할 차비가 어디 있나? 못사는 통일교회 패들. 이러니깐 도둑차 타고 오다가 들켜 가지고 유치장에 가서 하룻밤 자고 이틀 밤 자고 그런 일 수두룩하다구요. 차비가 없어 몰래 타다가 붙잡혀서 말이예요. 그렇게 사랑 바람이 대단한 때가 있었다구요.


또, 어떤 남자는 자기 여편네도 있고 아들도 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좋아서 선생님이 얘기한다 하게 되면 새벽에도 가 보고 싶고, 아침에도 가 보고 싶고, 낮에도 가 보고 싶고, 밤에도 가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편네고 자식이고 뭐고 다 아랑곳 없이 선생님만 따라 다니고, 선생님한테 미쳐 울고 다니는 거예요. 그런 말 들어 봤어요? 남자가 남자를 보고 싶어서 울고 있는 남자. 그 얼마나 징그러워요! 자기도 몰라요, 왜 그런지. 선생님 생각만 하면 괜히 눈물이 주르르륵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눈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엉엉 울면서 ‘우리 선생님, 불쌍한 선생님’ 그러고 있었어요. 뭐 그런 얄궂고 해괴스러운 사실을 나는 많이 보고 경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