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생애노정 3권 - 제3절 서대문 형무소 수난

무지... | 20180818143717

참부모님 생애노정 3권 


제3절 서대문 형무소 수난


1. 서울 중부경찰서(치안국 특수정보과) 연행 89

2. 서울지방검찰청 송치 96

3. 최씨 일가의 불신과 이혼 종용 104

4. 서대문 형무소 생활 107

5. 서대문 형무소 출감 119



1. 서울 중부경찰서(치안국 특수정보과) 연행


7·4 사건

1955.7.4. 17:00, 장충동교회


1954년에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이고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역시 남한에서 국가적인 반대를 했습니다. 전체가 반대했다구요. 제2차 신약 탕감시대도 마찬가지로 1954년, 55년, 56년, 57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이 또 감옥살이를 한 거예요. 감옥에 들어가는 놀음이 벌어진 거라구요. 반대가 벌어진 것입니다. 3년간은 언제나 탕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955년도에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구요. 감옥에 들어갔어요, 감옥에. 하나되어 가지고‘레버런 문 잡아 죽여라, 이놈의 작자를’했다구요. 7월 4일이예요, 7월 4일. 그때의 죄목이 뭐냐? 공산당이니 뭐니 하면서 세상의 나쁜 것은 다 내가 걸머진 거예요. 과거에 잘못한 것도 전부 다 레버런 문에게 뒤집어 씌웠다구요. 다 뒤집어 씌웠다구요. 나쁜 이름이면 다 얘기했다구요.


선생님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을 중심삼고 섭리의 기점이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한국에 있어서의 기독교는 한국내의 기독교로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섭리와 전체 세계를 대표한 기독교의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섰던 교회와 나라가 반대하면 전세계가 걸려 들어갑니다. 선생님 한 사람을 어떻게 꺾느냐 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러한 문제, 복잡한 와중을 통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던 거와 마찬가지로 최후에 사탄편에 끌려가는 놀음까지 벌어졌습니다. 7·4사건 같은 것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그때 내가 천대받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그놈의 자식들이 ‘야, 자’하던 것이 내 뼛골에 사무쳐 아직까지 잊혀지질 않아요. 나 한 사람 고통받고 핍박받는 것은 좋지마는 나라와 민주세계가 전부다, 수천 년 동안 준비한 기틀이 다 무너져 나갔다 이겁니다.


사건 사주 최종 배후세력


대한민국에서 내가 이정권 시대에 감옥살이를 했어요, 안 했어요? 감옥살이했습니다. 이정권은 원수예요. 그놈의 자식들, 나에게 총칼을 들고 협박 공갈하고 별의별 짓 다 했어요. 그들은 나를 추방하기 위해 감옥에 넣었지만, 나는 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갔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사건 때 이박사가 5대 장관과 합해 가지고 박마리아 위신과 이대 위신과 프란체스카 위신을 세우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했다구요. 문교부 뭐 문공부, 그때는 공보부인가? 그다음에 내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 외무부 장관, 5대 장관이 합해 가지고, 권력을 가지고 문총재 때려잡으려고 한 거예요.


이승만 박사 시대 때 5대 장관이 문총재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보고하더라구요. ‘나라가 기독교를 위주로 해서 당신에 대해서 이렇게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하더라구요.


통일교회 하면 쉬쉬했지요? 무서워서 쉬쉬하기 시작했는데, 못 돼서 쉬쉬한 걸로 알았어요. 자유당 때도 사실은 무서워서 쉬쉬하면서 가지말라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나빠서 그런 줄 알았다구요. 자유당 때 민주당의 여성 대표자 박봉애朴奉愛를 내가 끌어오지 않았어요? 그래 가지고 자유당에 입당시킴으로 말미암아 야단이 벌어졌지만 말이예요. 그래 미워서라기 보다는 무서워서 반대하는데 나빠서 반대하는 줄 알았다구요. 이놈의 자식들이 무서워 반대하면서 제일 나쁘다고 반대하고 떠들었다는 것입니다.


병역법 위반 혐의


1955년 이화여대 사건, 모든 사건으로 인해 가지고 전국가가 소동해 가지고 문총재 잡아넣으려고 그랬다구요. 언제는 동아일보가 지지하더니 반대하고 그러더라구요. 이래 가지고 5대 장관이 문총재, 문 아무개 잡아 죽이려고 계획했다구요. 이박사 정권을 중심삼고 그 놀음을 한 거예요. 들추고 해봐야 나에게 죄 없어요. 갖은 흉악한 보따리를 다 씌워 놓았지만, 죄로 걸릴 게 있어요?


별의별 요사스런 소문내고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해 가지고 날 조사했어요. 조사해 보니 뭐가 없으니까 잡아 죽일 수 있어요? 뒤져 보니 병역기피라는 거예요. 내가 이북에서 나와 가지고, 중간에 감옥살이 하다가 나오니까 연령도 지났다구요. 이래 가지고 병역기피라고 걸은 거예요. 그것도 사실을 보니 법대로 했다 이거예요.


걸래야 걸 게 있어야지요. 뱀장어 같아요, 뱀장어. 이거 주둥이에다 걸어도 쪽 빠져 나가고 말이예요, 꽁지에 걸어도 쪽 빠져 나가고, 요렇게 요렇게 하더라도 쪽 빠져 나간다 이거예요. 걸 게 없다구요, 얼마나 매끄러운지. 세상이 야단 났거든, 나라를 이렇게 요사스럽게 만들어 놓고…. 문총재는 나쁜 놈이고 민족반역자다 해서 때려잡아야 할 텐데, 그래야 기성교회의 천년만년 왕국이 벌어질 것으로 다 알고 있는데, 이거 쪽쪽 빠져 나가 걸 것이 있어야지요.


고문 취조


이 사람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 민족 앞에 사무친 한이 많아도 참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무골충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뼈 없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30여 년의 생애를 참으셨던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 이후 2천년간이나 참으시며 뜻을 이루기 위한 터전과 때를 마련하기 위한 공고한 토대를 닦기에 노심초사하시는 것이 복귀의 노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태풍아 불어라, 설한풍아 불어라, 동삼삭아 와라’하며 참는 거예요. 그런 것들은 한 때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선생님의 책임이 무엇인가? 몰리고 쫓김 받을 때, 감옥에 들어갈 때, 이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될 것이냐? 세계 인류를 위해 맞고 세계의 고난을 전부 끌어다가 섬멸해야 합니다. ‘아무려면 세계의 고난 길을 개척해 나가는데 이만한 어려움이 없을소냐?’하며 고난을 오히려 당연시했습니다. 고문도 많이 받고 별의별 일을 다 당했지만, ‘내가 가는 길은 철석같다. 소망의 나라를 이룰 때까지 싸워 남아져 내가 희생의 길을 가더라도 지금 죽어서는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나오는 데에 있어서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동정해야 할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대문 경찰서에 끌려가는 마당에서도, 영어의 신세, 철창에 갇히는 신세의 자리에서도 그랬습니다. 뜻길을 가기 위한 그 첫걸음에서부터 ‘이렇게 생명이 남아 있으니 감사합니다’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을 지녀 온 역사적 탕감기준을 남기기 위해서 그런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누가 침범하려고 해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가지고 대한민국을 망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기성교회 망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저들이 모르는 죄를 용서해 주소. 불쌍한 대한민국이 죄지은 것을 탕감하게 나한테 다 지워 주소. 나를 욕해서 복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나님이시여, 제가 사랑하는 민족을 저 이상으로 사랑해 주십시오. 하나님이시여, 세계를 저 이상으로 사랑하시고 저를 위해서는 동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람이 만일 죽더라도 졸장부로는 죽지 않겠습니다’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느리고 인도해야 할 세계 만민을 이 졸장부가 맡고 있지만, 그 허물을 허물로 보지 않고 덮으시사 나에게 채찍을 가하여 이 세계 인류를 탕감하고 보충할 수 있으면 그래 달라고 싸워 나온 거라구요.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 앞에 불길로서 하나님의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요건이 됐기 때문에‘너 통일교회 문아무개는 어디 가든지, 망할 자리에 가도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았던 것입니다.


조서 작성


사람들이 나를 못 당해요. 옛날에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도 조서 꾸미던 사람이 나하고 얘기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한테 말려 버려요. ‘당신 지금 조서 쓰는데, 요 말은 왜 안 써? 지금 요것 써야 해’하고 내가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 가르쳐 주는 말이 조서 내용이 거꾸로 되는 말이예요.(웃음) 그러면 그렇게 써 놓고는 말이예요, 쭉쭉 찢어요. 조서를 꾸미긴 뭘 꾸며? 데리고 놀지요 뭐. ‘당신 보니까 이렇게 생겼고, 여편네가 이렇겠구만. 버릇들이 없어 가지고 오줌 싸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겠구만’그러면 그거 어떻게 아느냐고 해요. 그러면 ‘이놈의 자식아, 그거 모르면 내가 여기 들어와 앉지 않았어’하는 거예요. ‘잘난 사람이 들어오지, 못난 사람이 들어오는 거야?’이러고 데리고 노는 것입니다.


그때에 치안국장 하던 사람, 이런 사람들 이름도 내가 잊어버리지 않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거예요. 한번 다 불러 가지고 만날 때도 있겠지요. 그때 꼬인 다리를 하고 훈시를 하던 그 사람들이 오늘도 그와같은 자세를 갖고 나타날까요?



2. 서울지방검찰청 송치

    1955.7.13.


서대문 형무소 입감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내가 서대문 형무소를 향하여 쇠고랑을 차고 가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늘땅을 볼 때에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당당했다 이거예요. 나는 옥중에 쇠고랑을 차고 들어가더라도 조금도 섭섭해 안 한다구요. 누구한테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구요. 내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이니 누구한테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구요.


내가 하나도 잘못한 게 없었어요. 망나니가 될 수 있는 자식들, 거리의 창녀들이 될 수밖에 없는 계집애들을 모아다가 순박한 귀부인을 만들고 일가문의 효자 충신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이 나라에 필요한 젊은이를 만들기에 생애를 퍼부은 사나이였다구요.


죄없는 몸에 쇠고랑을 차고 형무소를 가더라도 부끄럼 하나 없이 갔다구요. 모든 사람, 친구가 비웃고 손가락질하며 ‘저거 저거’이랬지만 ‘너희들 이제 10년 후에 두고 보자’이랬어요. 그러한 비참한 길을 가는 노정 위에 나에게 비참한 화살을 던져 주던 사람이 ‘오냐, 나는 성공할 것이다!’이렇게 다짐하게 한 교육의 재료로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악한 것은 망하는 것이요, 선한 것은 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똥감태기안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순수하고 천하의 역사가 공증할 수 있는 참된 자리에 섰을 때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쇠고랑을 차고 갈 때, 지나가는 행인 여자들까지도 곁눈질을 하며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보고 ‘오냐, 너희들이 걷는 그 걸음걸이는 거룩해 보이고 여기 이 사나이는 불쌍해 보이지만, 아직까지 비교 기준이 안 나왔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됐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자리가 드러나게 될 때는 옳고 그른 것이 판결난다’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동고(同苦) 제자들

김원필, 유효원, 유효영, 유효민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하면서도 선생님 재산 하나도 없어요. 남겨진 것은 고생입니다. 고생한 것은 자기를 위하고 뜻을 위한 고생이예요. 그것을 전부 다 도둑질해 가기 전에는 선생님이 동정받는 하나님의 심정적인 내용을 누가 점령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게 재산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사정을 바꿔 생각해 봐요. 나도 그런 거예요. 나도 여러분들을 대해 척 보게 될 때 말이예요. 아무리 얼굴이 잘나고 아무리 모든 것이 훤하다 하더라도 그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느냐 하는 것이 첫째 조건입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 길 가운데 있어서 같이 눈물 흘리고 같이 동정하면서 하늘의 소원, 하늘의 해원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가지고 걸어 왔던 그 사실은 내가 죽더라도 못잊는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제 앞으로, 간부 가운데서 선생님하고 같이 고생한 사람들, 옥중에 들어가서 고생한 사람들을…. 이런 사람들은 별로 공적이 없지만 말이예요, 그때 심정으로 볼 때 그것이 절정에 달해 있었던 것입니다. 예민한 첨단에 서 있을 때이기 때문에 그때 한마디의 위로는 천추의 위안을 깃들게 해 줬습니다. 그때의 한마디 권고가 사지에서 새로이 용솟음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시절의 사람들을 먼저 도와줘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법정 공판 1심-7.29., 결심-10.4., 서울지법 제4호 법정, 재판장(윤학로)


여러분은 지난날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교회와 나라 앞에 몰리고 쫓겨나 수의囚衣를 입고 가던 선생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의를 입고 쇠고랑을 차고 재판장 앞에 섰던 선생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공판장에 나서 가지고 희롱받던 그 아픔을 잊지 않은 사나이라구요. 죽기 전에 그것을 복수하여 탕감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인연을 가지고 여기에 몰려든 패라구요.


교계가 합하고 수많은 가정, 수많은 사람이 합하여 민족적으로 공격하여 삼천리 반도에 내가 설자리가 없었지만, 또 삼천만의 조롱과 비소가 땅 위에 충천되어 있고 나는 홀로 서 있었지만, ‘내가 비바람에 부대끼고 불에 탄 나무같이 그을리더라도 타서 죽는 나무는 될 수 없다. 그을린 그 나무가지에도 봄이 되면 새싹이 나올 것이다’하는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의 비소가 크면 클수록 그 슬픔이 삼천만 이상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나와 인연을 맺고 나를 버리지 않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삼천만의 심정 이상의 심정으로서 대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감옥에 들어 가서도 슬픈 얼굴을 가지려고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내가 가는 길 앞에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격려가 되고 생애를 걸고 투쟁해 나오는 데 있어서 격분의 심정을 자극시키는 찬란한 동기가 됐으면 됐지, 나를 좌절시키는 함정이 안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기쁨으로 알고 도리어 내가 장사 밑천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있었고, 거기에서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평양 부인의 조소와 힐난


내가 1955년도에 감옥에 있을 때, 옛날에 나를 따르던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문선생, 아직도 그러고 있어?’하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히지요. 한때는 선생님이라며 따르다가 내가 감옥에 들어가니까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 사랑한다면 왜 감옥에 들어가느냐’하면서 배반하고 나간 사람입니다. 몸이 까치통같이 생기고 눈이 좀 틀어져서 심술궂게 생긴 여자인데, 당시에 다른 교파로 가서 극성스럽게 통일교회를 반대했습니다. 그런 여자가 쓱 오더니 ‘문선생,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렸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 같은 여자한테 훈계를 받을 수 있는 사내 같으면 이런 놀음 하지도 않는다’고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내가 평양에 있을 때는 뭐 정성을 들인다고, 처음에는 바람을 일으키며 야단했었어요. 내가 쇠고랑을 차고 검사실에 불려 들어가는데 현관에서 떡 만났어요. 소문을 듣고 온 거예요. 와서 하는 말이 ‘지금도 그 놀음 하오?’ 이러는 거예요.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갑을 차고 법원 공판정에 간다는 소문이 나니까 구경을 하고 어느 교회에 가 가지고 간증한 그 간나, 통일교회를 뭐 우습게 알고 ‘아, 망해야 되는데 이 자리에 와 앉는다’고 하는 이런 패들….


나는 뼈가 있는 사나이예요. ‘내가 늙어 죽기 전에 네 자식이 내 눈앞에 와 가지고 통곡을 하고 회개하는 것을 못보면 내가 죽지 못하니 네가 자거들랑 나는 달릴 것이고, 네가 노력한 이상 몇 배 달릴 것이다.’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 이상의 십자가를 질 때 나는 승리의 방패를 끌고 넘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피곤하더라도 이놈의 다리야, 일어서라! 이놈의 다리야. 때려 몰고 끌고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 내가 감옥에서 사라질 사나이가 아니야. 나는 해방의 세계를 향해 도약하는 것이다.’ 했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그놈의 얼굴이. 요전에 다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됐구만 했어요. 나는 그러고 사는 사람이예요. 이 마음에 사무친 원한….


어려움이 있을 적마다 ‘이것을 청산하기 전에는 난 죽을 수 없다.’ 이러면서 나갔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이 많은 사나이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연을 얘기하자면 나 자신이 목이 메이지 않을 수 없는 사연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전통을 자식에게 남기고 싶지 않다구요. 숨겨가지고 내가 지고 가려고 그래요. 그러니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선생님한테 얼마나 크고 넓고 높은 빚을 지고 있나 하는 사실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될 것입니다.



3. 최씨 일가의 불신과 이혼 종용


성진님 모친과 기독교


이남에 내려와서 7년 동안 기독교에 대한 작전을 하면서, 통일교회를 발전시키는 융합 공작을 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문제 된 것이 뭐냐? 성진이 어머니가 반대하고, 그가 기독교와 하나되어 별의별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진이 어머니도 세상 남자 중에서 성진이 아버지 같은 남자가 없다는 그것만은 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다 집어치우고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할 테니까, 어느 여자 못지 않게 할 테니까 나하고 재미있게 살자고 한 거예요.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집어넣고 자기가 주관하자는 것입니다. 완전히 타락한 해와격이라는 거예요. 아담을 주관하자는 거예요. 뜻을 모르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가 자꾸 퍼져 나가니까 기성교회와 짝을 해 가지고 선생님에 대하여 남자 여자가 하나됐느니, 사랑 관계가 어떻느니 하는 문제가 벌어진 거라구요.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반대하기 시작한 거라구요.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부산 북부서, 경찰서에 와서, 즉 관을 통해 가지고 통일교회 패들은 전부 다 요사스러운 단체라고 불어댄 거예요. 북부서에서 안 되니까 또 대구서에서 한 거예요. 전부 다 경찰서 놀음이예요. 경찰서 힘을 통해서 남편을 찾는다고 한 겁니다. 거 자기 남편이 자기품에 가서 안길 수 있는 남편으로 생각했다는 그 자체가 틀린 거라구요. 가는 길이 다른 거라구요.


통일교회가 고생한 것도 전부 다 그 사람이 감옥에 다니면서 선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남편이 나쁜 짓을 한다고 하며 별의별 소문을 내고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한 것입니다.


최씨 일가의 고소


성진이 어머니가 최선길(崔先吉)이예요. 최씨가 문제예요. 그다음에 최성모, 그 사람을 한국의 대표로 세운 거예요. 어려웠던 국가의 부흥 시기였던 그때에 있어서 최성모가 한국의 일인자였다 이거예요. 최성모가 이득삼씨의 두 딸을 중심삼고, 그 다음에는 둘째 아들을 중심삼고…. 자녀 수가 섭리적으로 딱 맞는다구요. 완전히 하늘이 딱 만들어 놓은 거예요. 최성모만 하나되었으면 통일교회는 핍박도 받지 않고,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을 거예요. 이화여대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연대 사건도 안 나는 거예요.


그 삼촌이 최성모예요, 최성모. 최씨가 연결돼 있어요. 최씨가 선생님을 감옥에 집어 넣었던 거예요. 1955년의 사건을 누가 일으켰느냐 하면 최성모가 일으킨 거예요. 내무부 장관하고 짜 가지고 통일교회를 전부 다 없애려고 했다구요. 최 무엇이지, 그 아들이? 최순영이. 지금까지도 반대하고 있잖아요. 최순영, 최성모 그들을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하늘이 시작한 거예요, 이렇게 최씨가 연결돼서. 결국 최씨 때문에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최성모 때문에. 그 녀석들이 고발하고 다 그랬어요.


이혼 요구


그 어머니 아버지, 가문이 조금만 협조했더라면 성진 어머니가 그렇게 안 되었을 거예요. 그렇게 안 되었으면 통일교회 40년의 이런 수난길을 안 가는 거예요. 내가 형무소에 있을 때 자기 어머니하고 큰 처남, 작은 처남하고 셋이 면회 와 가지고는 협박공갈하는 거예요. 이혼서 쓰라고 말이예요. 도장을 찍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3년만 기다리라고 했어요, 3년만 기다리라고. 그러면 당신들이 의심하던 이런 것이 다 지나갈 거라고 했어요.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있을 때 에미하고 처남이 이혼장 가지고 와서 ‘당신 믿다가는 우리 문중들 전부 다 거지가 되겠고, 우리 최씨네 딸은 그러한 문씨네 종자는 안 받겠다’하더라구요. 할말 다 하더라구요.


따라다니면서 당신하고 못 살겠으니 이혼해 달라고 한 거예요. 그래 내가 귓속말로 일러줬다구요. ‘여필종부라는 동양사상도 있으니 싫더라도 한번 생각해 보고 3년만 기다려 봐라, 그러면 내가 이혼하자고 해도 도망갈 테니까’이렇게 구슬러 내보냈더니, 내가 나오자마자 자기 어머니 오빠들 데려다 협박해 가지고 도장 찍으라고 하는 거예요.



4. 서대문 형무소 생활

    1955.7.13. ~ 10.4.


무고한 미결수 영어(囹圄)살이 수인번호 380번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이끌고 출발하여야 했는데 감옥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약속의 시대에도 그랬는데 사실의 시대인 지금은 안 그러겠느냐 하면서 태연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언제 나가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10년을 살든, 아니면 거기에서 죽든 뜻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태연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 자리에서 도를 닦았습니다. 무슨 도를 닦느냐?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시정해 가지고 앞으로 보람있는 길을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태산이 첩첩이 가로 막았으면 굴을 뚫고 고속도로를 내서라도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력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습니다. 그때까지는 나를 위해서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내 기력이 다했는데도 뜻앞에 내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협조하지 말라고 해도 협조하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서도 다리를 펴고 코를 골며 잠만 잤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삼키지 못할 때는 수가 난다 이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려니 때로는 남루해야 하기도 했고, 때로는 손가락질 받아야 했습니다. 이 길을 개척하면서 가지가지 고초를 다 당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풍상을 겪어 나오셨는데 내 어이 이만한 풍상을 겪지 않으리오!’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당한 그런 사연이 많을수록 남이 갖지 못한 보화를 창고에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밥을 잘 먹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보리밥이든 무슨 밥이든 주는 대로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 가든지 단지 하나의 걱정은 내가 잘못함으로 인하여 탕감의 길에 마이너스 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이지 다른 것은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위대한 사랑의 힘이…. 그런 힘이 없었다면 통일교회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힘이 있었기에 모든 박해를 헤치고, 고독단신으로 불철주야, 만세에 없는 슬픔의 곡절을 전부 다 내 품에 녹여 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위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멋지다면 멋지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지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보람 있는 길을 가고 하는 것은 일생이라는 생을 하늘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삶의 기쁨을 알고 힘차고 보람 있는 사랑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나에게는 감옥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의 전殿이예요. 사랑은 차원 높은 박자로서 높여 줘야 할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입감때의 수욕


선생님이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맨 처음 문에 척 들어서자마자 소장이 눈을 부릅뜨며 ‘통일교의 교주인 문 아무개가 왔구먼’하며 비웃는 듯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네가 나에게 항복하나 안 하나 두고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서대문 형무소 소장이 기성교인이었는데, 대뜸 ‘임자가 문 아무개인가? 한 달은 구류받아 이 자식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되어 먹지 못한 사람에게 농담삼아 한마디 했습니다. ‘이 자식이 뭐야? 당신은 이런 것을 해 먹었군’하니까 가슴이 찔렸는지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식아, 가만히 있어’라고 했습니다.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이 선생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갈 때, 그곳의 구치과장이 처음 온 사람들을 인솔해 가서 도장을 찍게 했습니다. 그때의 그 과장을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겁니다. 지금은 그 사람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그때 그 녀석이 나를 보고 ‘통일교회가 뭐 어떻고 어떻다 하더니 결국 이렇게 됐구만’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때 내 기분이 상당히 나빠서 시끄럽다고, 집어치우라고 해놓고 내가 여기서 나갈 때는 반드시 형사와 간수들, 소장까지도 굴복시키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자를 언젠가는 다시 한번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옛날 예수님이 로마병정에게 붙잡혀 빌라도 법정에 나가기 전에 간수들에게 희롱을 당했듯이 선생님도 그렇게 당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그래 별의별 짓을 다 해봐라. 그렇지만 내가 이곳을 나가기 전에 소장을 굴복시킬 것이다’그런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어떤 날은 도리어 내가 기합을 주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느날 나에게 차입품이 들어왔는데 기분에 물건에 손을 댄 것 같아서 호통을 쳤습니다. 자기는 내가 모를 줄 알았지만 나는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왜 손댔어? 어디에 손댔나? 무엇 무엇에 손댔어?’하며 다그쳤더니 그 후로는 나만 보면 꼼짝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인들의 감화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몇 달 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통일교회 문아무개라고 불렀습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형무소에 들어가 보면 전부다 왕자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다 잘났다는 거예요. 그러나 난 나보고 무엇이라고 불러도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들어가는 날부터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달도 있을 수 있고 두 달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두 주일쯤 지나게 되자 그들이 나를 어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소변 보러 가면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먹으로 막을 수 있습니까?


선생님은 그들 중 제일 골치거리인 사람, 모두가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몇마디 같이 얘기하며 잘 타일렀습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골치거리인 사람인데, 문이라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그 사람이 달라졌다고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너달 지나자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감방의 사람들이 전부다 문아무개 말을 잘 듣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말이 문제가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선생님도 그들을 위한 입장에 서서 대한민국을 대신해서 대통령도 가지지 못하는 심정을 가지고 현재의 한국의 운명과 미래의 한국의 운명, 그리고 이 민족이 가야 할 국민사상을 중심삼고 그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심정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죄수를 그 어머니 아버지 같이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이예요. 얼마나 불쌍해요! 먹을 것이 있으면 자기가 안 먹고 먹여 주려고 하고, 어렵고 제일 나쁜 자리는 내가 찾아가서 자려고 하는 걸 아는 거예요. 아침 한끼 먹으면 12시까지 얼마나 배가 고픈 줄 알아요? 혓바닥이 닳아 단내가 납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기도 배가 고프지만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일장 장편소설을 엮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달이 못돼서 자기 면회와서 사식私食을 가져오면 내 앞에 갖다 놓고는 ‘선생님 마음대로 처리하시오’ 이렇게 되더라구요. 그거 무서운 일이예요.


통일교회는 간단합니다.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완전 투입을 하는 것입니다. 천리의 근본이 그렇기 때문에 그 근본을 내가 붙안고 가는 곳에는 그것을 파괴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행동하면 출력은 강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감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침이면 반드시 인사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들어갔어요. 그래 가지고, 소문이 나 가지고 감방 안에서 ‘저렇게 선하고 좋은 사람을 가두어 버린 대한민국이 나쁘고 이 감옥이 나쁘고 너희들이 나쁘다’하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나오게 되었다구요.


또한 거기에서 목사라는 한 양반은 선생님이 이단이요 원수의 입장이라고 맨 처음에는 서슬이 시퍼래 가지고 ‘그래 당신이 주장하는 교리가 도대체 뭣인가?’하며 대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시간을 정해 놓고 찾아와서 상당히 친해진 일도 있습니다. 같이 들어간 제자들도 악착같이 선생님을 따르고 모시니 사람들은 ‘세상이 저렇게 욕을 하고 반대해도 저렇게 끈질기니 과연 통일교회 문선생은 난사람이야’라고들 했습니다.


영계의 증거와 협조


선생님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영계에서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너 몇 번 문 아무개한테 가서 인사해라! 그리고 차입 들어오면 전부다 바쳐라’ 하면서 호통을 친다는 것입니다.


어떤 간수는 나를 찾아와서 얘기를 하는데, 어느날 아침에 떡을 해먹었는데 떡이 목에 걸려서 넘어가질 않더라는 거예요. 떡이 왜 안 넘어갈까요? 조상이 걸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선조들이 선생님을 푸대접하다가는 큰일 난다는 것을 알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밀리에 떡을 해먹다가 혼이 났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갈 때는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갑니다. 감옥에 가는 도상에서도 ‘하늘이 바라보는 감옥은 이렇게 가야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이런 마음이 원인이 되어가지고 이렇게 살아나가는 것이다’ 할 때, 그 자리에는 내 치하의 결과가 반드시 상대적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있으면 완전한 상대는 창조되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어도 선조들이 나타나서 ‘이 자식아, 너는 너와 함께 계시는 그분이 누군지 아느냐?’ 하고 영계의 법도를 중심삼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정면에 앉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게 되면 머리를 숙이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과 똑같지요? 그렇지만 나는 여러분이 미치지 못하는 동기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연구해도 알지 못하는 동기를 갖고 있다구요. 그것은 여러분이 죽어서도 모를 동기입니다. 그것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저나라에 가서도 만민들에게 ‘이놈들아’하게 되면 ‘예이’할 수 있는 주체성이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올바른 길을 갔으면 영계에 가기 직전에 자연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받기를 바라거든, 참된 행복의 자리를 원하거든 전체의 불행의 자리를 대신하여 나 홀로 불행한 자리에 가라는 겁니다. 그런 자리에 가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고 내가 열 대 맞으면 백 대 천 대의 수난을 개의치 않고 나의 앞을 미리 닦아 나가면서 싸움을 다해준다는 것을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소장과 형무관들의 태도 변화


한 달 이내에 형무소 소장이 찾아와서 나에게 잘못했다고 인사하고, 거기에 간부들이 나를 초대하여 점심 대접까지 하는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구요.


한 달이 못되어 그들은 나한테 찾아와 가지고 ‘옛날에 들었던 통일교회 문 아무개와 지금 알고 난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다르더라’고 사죄하는 것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구요. 정의는 아무리 혹독한 핍박의 쇠사슬 가운데서도 승리한다는 것을 봐 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정의의 길은 힘들지만 하나님이 찾고 있는 그 무리의 길을 책임지고 가는 길이므로 낙심하지 말지어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당한 수난의 매자국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약속을 해주신 후에 어디로 보내느냐 하면 감옥소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거꿀잡이로 밑창에 처 넣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어 보라는 것입니다. 황금은 어디에 있어도 누런 빛을 발휘하는 겁니다. 선생님은 형무소에 들어가서도 소장까지 감동시켰어요. 나를 취조하는 형사들은 선생님을 미워했지만, 형무소에서는 소장까지도 감동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거기엔 많은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스스로 변하지 않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이 동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때는 마치 봄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이를 테면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이 선생님의 꿈을 꾸고 일어나서는 퍼뜩 몇 호 감방의 아무개라고 나를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침이면 나에게 찾아와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형무관들도 찾아와서는 인사를 하고 더울 때면 아이스 케이크ice cake도 사다 주는 겁니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느냐? 하늘이 같이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아무도 점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간수들이 ‘선생님, 뭐 불편한 것 없습니까?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사다 드리겠습니다’하면서 떡을 사 달라면 떡을 사다 주고, 무슨 연락을 해달라면 연락을 해주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좋아서 하겠다는 것이니 죄가 아닌 것입니다.(웃음) 천하가 제아무리 반대하고 세상이 제아무리 드세다 해도 그 천하와 세상을 녹여낼 수 있고 삼킬 수 있는 기백이 있으면 그는 영웅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면회기록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있을 때에 고맙게 생각했던 것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전부 선생님을 면회하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서로가 먼저 면회하려고 싸움을 한다는 것입니다. 나 통일교회 문선생은 전부 다 죽으라고 하고 망하라고 했는데도 안 망했어요. 사람들이 욕하면 욕할수록 내가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눈물을 흘리고 나를 위로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더구만요. 내가 형무소에 들어가는데 형무소에 서로 가겠다고,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아침 8시 이후에 만나는데 새벽 한 시부터 줄 서고 기다리고 앉아 있더라구요. 그것이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기록이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미치게 해도 저렇게 새빨갛게 미치게 해놓았노?’이러더라구요.(웃음) 그거 그런 거예요. 집에서 엄마가 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듣고 야단을 맞으면 아들딸들이 ‘엄마!’하고 위로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제일이라고, 우리 엄마가 제일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 무엇 때문에?


사랑의 힘때문에


어떤 사람은 사흘씩이나 거기서 기다려야만 면회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결과가 되니 ‘형무소에 자기 아들이 들어왔고 자기 여편네가 들어 왔고 자기 남편이 들어 왔다면 모르지만, 알지도 못하고 관계도 없는 사람인데 저렇게 지성일 수 있느냐’하고…. 이게 문제가 안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뭐 세뇌 공작하고, 자기 아들딸을 강제로 교육하고, 뭐 어떻고?’ 이랬지만, 강제로 해 가지고 조금이라도 싫은 게 있으면 거기에 나타나서 그런 놀음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형무소 안에서부터 그것을 전부 다 알기 시작한 거예요. ‘문선생은 독재자고, 착취하는 사람이고 하는 것, 다 헛소리다, 헛소리’하게 된 거예요.


역사 이래 형무소 앞에 아침부터 24시간 줄이 점점 길어진 것은 레버런 문이 기록이라구요. 그걸 볼 때, 이상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면 내가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쌍것 왜 왔어, 부산스럽게? 그냥 박혀 있지 소문내고 말이야’이렇게 욕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눈물을 흘리면서 ‘우우’이러면서도 ‘그래도 좋은 걸 어떻게 해요?’이러고 있다 이겁니다.


내가 법원에 다니고 쇠고랑을 찼을 때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던 것을 잊지 않았어요. 그때의 얼굴들을, 누구 누구를 지금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서 가지고는 눈물을 훌쩍 훌쩍 흘리면서 우리 선생님 저래서는 안 될 텐데…. 다 보고 있었어요. 언제까지나 내 기억에 남아 있을 겁니다. 끝날 내가 죽기 전까지 기억했다가 죽기 전에 불러다가 축복을 해줄지도 모르지요.


감옥살이하는 선생님을 면회했다면 그것은 역사에 남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을 면회하던 면회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앞으로 표창할 텐데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것 시집갈 때나 장가갈 때에 가슴에 품고 가서 그것을 그 가정의 보물로 간직해야 합니다.



5. 서대문 형무소 출감

    1955.10.4.


무죄(無罪) 언도 석방


7·4사건이라든가 이런 사건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형무소에 출입을 하고 세상에서는 전부 다 ‘문 아무개 시대는 지나갔다’이렇게 생각했다구요. 한국 역사에 있어서 비운의 사나이로서 사라질 줄 알았던 문 아무개가 거기서 또 출발해 가지고 오늘날….


그때 대한민국이 문 아무개를 때려잡고 밟아 치우려고 했고, 기성교회와 정부가 하나되어 별의별 짓을 다해 가지고 없애버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공판정에서 무죄 석방을 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통일교회 역사는 시작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별의별 조사를 해봐야 아무것도 없으니 10월 4일을 중심삼고 무죄석방! 그리고 그 다음부터 또 시작하고 또 시작하고, 반대하는 것을 잘라 버리고 새로 출발하는 거라구요.


나라에서 문제시하던 점에 걸려 넘어갔다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10월 4일에 무죄석방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그 기반을 잃지 않고 영육을 중심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기독교와 나라가 반대함으로써 기반을 잃어버린 입장에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자체,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 자체로 보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물론 분립적인 입장에서 잃어버린 걸 전부 다 찾은 자리가 아닙니다. 이제 다시 찾아야 할 자리다 이거예요. 기독교가 영적 세계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이 영적 기반을 대신할 수 있는 기반을 선생님이 만들어야 됩니다. 기독교와 같은 기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이것을 재편성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국가적인 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서 국가와 기독교가 하나돼 가지고 반대했던 기준을 탕감복귀해서 하나 만드느냐 하는 것이 탕감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조건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기준을 이루려니 영적 기준을 한 단계 전진하는 입장에서 닦아 나옴과 동시에 육적 기준을 짜나와야 됩니다. 영적 기반 위에 재림하는 것이 다시 기반을 닦기 위한 역사와 마찬가지인고로 그걸 일치시켜야 됩니다. 그러려면 통일교회는 수가 적지만 나라와 교회가 들이치더라도 밀려 나가서는 안 됩니다. 버티어 서서 완전히 이것을 넘어가야 됩니다.


옥중생활 극복과 승리


선생님 오는 길에 하나님이 환영하지 않았어요. 내버려둔 거예요. 협조해서는 안 되게 돼 있는 겁니다. 협조하는 날에는 기독교를 손대지 못해요. 기독교를 다시 구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내가 그걸 아는 사람이예요. 나를 치면서라도 기독교를 보호해 나왔고, 나를 고생시키면서도 한국의 기독교를 키워 왔다는 것입니다. 나를 보호하는 날에는 기독교를 보호할 수 없다는 거예요. 둘을 보호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가만 내버려 둔 겁니다. 핍박받아 가지고 본래의 자리까지 올라와야 돼요.


그러니 선생님의 생활은 감옥에 들어가서…. 감옥이 개인기반을 닦는 종적 기반이 되었다구요. 종적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지상지옥 위에 하나님의 종적 심정권을 남기기 위해서는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이 볼 때 제일 가까운 직단거리예요. 이 자리에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승리해야 돼요. 개인적으로 몸 마음을 중심삼고, 고통을 부정하는 몸뚱이와 마음의 싸움이예요.


마음을 종적 기준에 맞추고, 몸을 횡적 기준 90각도에 맞춘 생활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사랑을 해야 돼요. 그 환경의 모든 것을 자기 형제와 같이 사랑하고, 자기 가정에서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 일원과 같이 옥중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의 자리를 대신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개인적 십자가의 길을 가야 돼요. 개인적으로 국가의 십자가의 환경을 극복해야 돼요.


선생님이 만 석 달 만에 나올 때에는 소장도 과장도, 거기 있던 기성교회 목사도,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통일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 알지요? 가만히 보니까 소문과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간수들과 소장까지도 나와 배웅했고, 간수들 중에는 선생님을 따라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이 가는 길 앞에는 원수가 생겨나지만 반드시 그 길은 개척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적을 두고 볼 때,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어떠한 수난의 길을 가더라도 자기 혼자 간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하느냐?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란 어떠한 자리냐? 하나님과 일체된 자리인데,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기쁜 자리가 아니라 가장 슬픈 자리, 가장 어려운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고자 하는 자리,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감옥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탄도 싫어하는 인간지마人間之馬들이 모인 그 세계에서도 여느 인간들이 갖는 그 이상의 희망과 소망을 가지게 되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계 역사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탄세계의 참소를 받지 않는 것이요, 또 높은 자리에 올라가더라도 간섭받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계까지 연결될 수 있는 새출발의 기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선하다는 입장에서 맞는다고 억울해하지 말라구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방을 대표한 축복의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활표준이예요. 한국이 야단하고, 1955년에 형무소살이하고 별의별 짓 다 했던 역사가 있지만, 그럴수록 점점 강해지는 거예요.


들어갈 때보다도 더 무장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감옥이지만 그것이 선생님에게는 여행을 갔다 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코오스가 다를 뿐이었지요. 그 다음에는 보따리 끈으로 크게 묶어 해결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도 나한테는 무자비해요. 거꾸로 처박아 놓고 거기서 나올 때까지는 가르쳐 주지도 않고 보고만 있어요. 그래 거기서 나와 가지고 또 히히 웃고 기운을 내 가지고 또 부스럭부스럭 가게 되면 ‘어디 가노? 어디 가’ 그러면서 간섭을 하지요. 하나님은 참 능란한 분이예요.


무책임한 언론의 폐해


자유당 시절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의 신문을 보면 별의별 소문이 실려있어 참 재미있습니다. 이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우리의 황금 같은 보물입니다. 정의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피땀을 흘리고, 삼천만 민족을 위해서 밤을 새우고, 피를 팔아 가면서까지 이 민족을 구하려 했던 정의의 애국자들을 그들이 멋대로 때려잡고 가두었던 것입니다. 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들의 후손을 잡아다가 그들의 무덤을 파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죄석방되었다는 말 들어 봤어요, 여러분들? 신문(경향신문 10월 5일자)에 찾아 보면 석 줄밖에 없어요. 문총재가 그런 감투가 씌워진 것을 뚫고 나오기에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는지 알아요? 그러면 전국적인 그 인상을 무엇으로 바꿔 주느냐 이거예요. 그러니 통일교회 선전을 했댔자 전부 다 반대하고, 그 소문을 뒤집어 엎고 그러면 전부 다…. 그래 가지고 법정문제가 되고, 싸움이 벌어져 가지고 경찰서에서 문제 되게 되면 ‘통일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다’ 한다구요. 그런데 모든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경찰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대번에 ‘뭐야, 이것들! 통일교인들이 매수했다’ 이런다구요. 그러므로 그 악선전된 환경여건을 끌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권내로 몰려들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높은 급에서는 교수, 대학가로부터, 모든 교회 책임자로부터 전부 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목사들이, 그런 교파가 선생님의 친척이면 친척에게 ‘당신네 친척 되는 아무개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그저 하나, 둘, 만나는 사람마다 악선전을 했다구요. 자, 그러니 설명을 해도 설명이 통하나….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뒤집어 쓰고 그것을 벗을 때까지 세월을 통해 우리가 실적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벗는 단계까지 올라오는데는 수십년의 세월이 걸리더라 이거예요.


이러니 지금까지 떠든 모든 것을 내가 뒤집어 쓰고 말없이 살아왔어요, 말없이. 나는 소화하는데 그것이 비료가 돼요. 다 역사적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한테 방송국의 마이크만 맡겨서 사흘만 사실대로 얘기하면 이 민족이 창자를 쥐고 배밀이 하며 통곡할 수 있는 일이 벌어져요. 세계가 믿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문총재의 결론입니다.


제자들의 의분심


하나님이 축복할 수 있고, 세계에 복지천국을 이룰 수 있는 좋은 다이아몬드 광맥 같은 걸 다 말아먹고, 시궁창에 몰아 넣고 발길로 쑤셔 넣어 버렸습니다. 목사들이 지금까지 치고 밟고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문선생 이름으로 성명 낸 것을 봤어요?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가지고 별의별 놀음을 당하고 무죄석방이 됐습니다. 그때에 우리 간부들이 모여 가지고 ‘선생님, 이제는 분해서 못 견디겠어요’하는 거예요. 그 옛날에 유협회장은 아주 뭐 성격이 무사태평이라구요. 그런 성격이 오죽했으면 ‘이놈들, 배때기를 째자’고 독한 소리를 했겠어요? 내가 말만 하면 배때기를 째는 거라구요. 살인까지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나 ‘야,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치고 충돌해서 빼앗아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감동시켜 가지고 자연굴복시켜 나오는 법도가 아니냐’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밟고 허물고 하는 데 내가 쫓겨 다녔습니다.


그때 유협회장이랑 간부들이 성명을 내고 반기를 들어 가지고 공세하려고 했는데, ‘야!…’ 공세를 누가 할 줄 몰라요? 개인적 시대예요. 개인적 투쟁시대예요. 가정시대를 거쳐 가지고 종족, 민족시대를 거쳐 넘어가야 돼요. 말보다도 사실이 필요하고, 변명보다도 실적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결과는 삼엄한 것이요 냉정한 것입니다. 옳으면 옳은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요, 나쁘면 나쁜 것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승리는 승리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형무소에 들어갈 때는 내가 부끄럽게 들어간 게 아니라 당당하게 들어갔지만, 나올 때 ‘이놈들! 내가 힘을 갖추어 가지고 한번 보자. 전부 복수한다’이런 기도를 안 했다구요. ‘아버지여! 웃고 찾아올 수 있게 해주소서’하고 기도했다구요. 이것이 하늘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런 길을 가는 사람은, 하늘은 언제나 보호한다구요.


이남 출감일과 100일 기념기간

1955.7.4.~1955.10.14.


통일교인이라면 10월 4일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날입니다. 한민족이 통일교회를 없애기 위해 핍박의 깃발을 들고 나서서 몰고 또 몰고 찌르면서 죽음길로 몰아넣었던 자리에서 해방되던 날입니다.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뜻을 안 젊은 사람들은 땅에 엎드려 통곡을 하며 기념해야 할 의미 깊은 날입니다.


오늘은 광명의 새아침이요, 해방의 새아침이었던 10월 4일이니까 오늘 날씨가 좋은 것 같군요. 10월이라는 달은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해방의 달이요, 축복의 달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10월 4일입니다. 사람은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날들을 지낼 적마다 선생님은 언제나 내가 목적한 바대로 이루어 나가고 있느냐, 안 이루어 나가고 있느냐를 반성하게 됩니다.


선생님이 7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100일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옥중기도를 가지고 기도하라고 그랬지요? 심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동지가 되어주길 바라는 뜻에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동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10월 14일까지 100일을 감옥에서 복역하는 것같이 살라고 한 것은 10월 4일 서대문 형무소 출감일과 10월 14일 흥남감옥 출감일을 특별히 기념하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