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부산 피난 시절
1951.1.27. ~ 1953.9.17.
1. 애환서린 피난민 생활 201
2. 범냇골 토담집에서 재출발 준비 210
3. 수정동 수난과 전도 확산 231
4. 부산 범냇골 성지 238
1. 애환서린 피난민 생활
1951.1.27. ~ 8월
부산도착 때의 행색
만약에 선생님이 평양에서 부산까지 곧장 내려왔더라면 10일밖에 안 걸렸을 겁니다. 선생님의 그 노정은 네 달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게 되었는데, 여러분은 선생님의 그 옷이 그 동안 얼마나 더러워졌는지를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그때는 내가 이북의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왔기 때문에 머리도 짧고 형편없었어요. 명주 바지 저고리가 너무 새까맣기 때문에, 껍데기는 벗겨 버리고 국방색으로 물들인 속이 겉으로 나오도록 뒤집어 입은 거라구요. 뒤집어 입으니까 그거 뭐 홀챙이퍼런 바지지요. 그걸 입고…. 명주 저고리는 뭐 두 달 동안 입었으니 될 대로 다 됐지요. 기름때가 배어 가지고 비가 오면 빗방울이 뚜루룩 굴러간다구요. 이래서 상거지가 다 되어 가지고 형편없이 부산에 도착하게 되었어요.
작업화나 운동화가 뚜껑만 있고 바닥은 없을 때까지 신었습니다.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입장인데 신발을 사 신을 수 있겠어요? 발가락에 흙이 끼이지만 신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피난시대에 옷 한 벌 가지고 1년 동안 입어 봤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누더기 옷을 입고 있더라도, 그럴 때에는 이 누더기 옷이 앞으로의 소망의 날에 있어서 천만인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이러이러 할 길이요, 내가 역사적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이 땅 위에그 시대를 맞아 가지고 그것이 전체화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될 때는 오늘 이와 같은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연극을 꾸밀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실극을 하는 주연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누더기 옷을 입고 쓱 행차하는 거라구요. 밥을 얻어 먹으러 가는 겁니다. 역사를 창건하는 주연의 심정을 갖고 가는 겁니다. 그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라구요. 생각 하나에 의해 천태만상이 다 달라지는 겁니다.
배고픈 피난생활
내가 김원필을 만났을 때, 그는 더벅머리 총각으로 19살이었습니다. 그 뒤로 4년이 지나서 23살이 되었는데 무슨 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식당 보이도 시키고 별의별 일을 다 시켰습니다. 얻어다 주는 밥도 먹어 보고, 점심 대신 누룽지도 먹어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밥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극적이고인상적이고 재미 있었습니다.
추울 때는 사람들이 전부 다 양지로 모여듭니다. 그러면 얼굴을 찡그리며 가서 배가 고파 밥을 먹어야겠으니 사람 못살게 굴지 말고 제발 비켜달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침도 먹고, 점심도 다 먹지 않소? 우리는 아침도 못 먹었으니 아침 먹는 사람박대하지 말고 저리 비키시오' 이렇게 해놓고는 양지쪽에 삥 둘러앉아서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거기에는 남모르는 철학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내 친구들입니다. 감정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거지노릇도 했다구요, 거지 노릇. 밥 얻어먹고, 밥얻어 오는 데는 나 못 당합니다. 눈치가 빨라야 얻어먹는다구요. 사람을 보는 거예요. 돈을 안 주면 '야, 이 녀석아! 너 배포가 이런 거야?' 하고 기합을 주고는 '우리같이 지나가는 사람을 후원 해 주면 좋을 거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환드레이징 조상입니다.
도움을 준 고향 친구
부산의 길은 외통길이라구요. 팔도강산 사람을 다 만날 수 있습니다. 통길이기 때문에 일주일만 왔다갔다하면 다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 부산에 가서 적적하니까 그 통길을 다니다가 고향의 친구를 만났어요. 그 이름도 안 잊었어요. 우리 동네에서먼 데 있는 나를 아는 사람인데 길거리에서 나를 만나 가지고 그때 돈으로 만 원을 주던 생각이 납니다.
그래 나는 이걸 몇백 배로 갚아 주겠다, 내가 한때에 가서는 몇백 배, 몇천 배로 갚아 줄 것이다…. 이렇게 떡 생각하고 있는데, 그 몇해 후에 그 사람의 아내가 여기 통일교회를 찾아왔어요. 와가지고 '아무 때에 우리가 문선생을 이만큼 도와주었으니까, 이제는 우리를 도와주어야지요' 하는 거예요. 내가 아주 기분 나빴다구요. 요사스럽게 여자가…. 나는 너희들의 아들딸을먹여 살리겠다는, 후덕하게 갚아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 앞에 기도하며만나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요사스럽게 나타나느냐 이거예요.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모릅니다.
그때에 만 원을 받았으니 그 이자를 계산해서 얼른 주어서 쫓아 버리라고 했어요. 일년에 얼마씩 고리대금으로 계산해서 주라고 했어요. 내가 일생 동안 그리워하고 선하다고 찬양하던 그 기준이, 피난시절에 있어서 제일 자극적인, 생애에 있어서 기념할 수 있는 그 표적이 몽창 꺾어지니까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모른다구요.
부두 노동과 초야 은신
부산에 내려가니 인산인해가 돼 가지고 뭐 구멍 있는데는 다 들어가 박혔고 어디 뭐 있을 만한 데는, 처마끝까지 전부다 만원이거든요. 그러니 어떻게 해요? 밤에는 밤일을 나가는 거예요, 낮에는 자고. 거 밤에 떨던 생각이 지금도 아득해요.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런 때도 선생님은 '아버지 걱정 마시옵소서. 아버지의 가신 발자국을 내가 기쁨으로써, 탄식으로 걸어가신아버지의 발자국을 소망으로써 이을 수 있는 내가 되겠습니다.' 그랬어요.
밤에는 나가서 돈벌이 하고 낮에는 열시부터 두시까지 자는 거예요. 그때는 양지쪽에 가서 가만히 앉아 가지고 꿩새끼처럼 딱자리잡고 들어가 자면 좋아요. 떡 자고 일어나서 옷을 척 입었을 때에는 김삿갓 노래가 생각나는 거예요. 선생님은 자연적인사람입니다. 그런 마음만 있으면 뜰에 가다가도 뜰에서 자고, 바위에 앉아서도 자고, 그런 생활을 참 많이 했다구요. 왜 그러냐? 내가 이렇게 있다가 떠나려 하면, 그게 서러워하는 것을 안다구요. 거기서 자면 그것이 바위가 아닙니다. 자기 집 보다도더 귀한 거예요.
낮에는 산에 올라가서 숲속에 잠자리를 정하고 잠도 자고 혼자의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을 즐겨 했습니다. 밤에 다시 일터로 가면 선생님은 선풍적인 모습이 되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모였습니다. 선생님이 흥미로운 얘기를 해주면 그들은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눠 먹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눈 오는 날 혹은 진눈깨비 내리는 날에 길가에 있는 노동자의 그 처량한 신세를 보게 되면그가 선생인 것을 연상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아버님께서 저런 일을 하셨어!' 하면서 말이예요. 처마 밑에서 밤을지새운 일이 얼마나많은지 알아야 돼요.
팥죽 장사 아주머니
내가 피난을 내려와 가지고 여기 초량 부산진 4부두에 일하러 다니고, 그 다음에는 팥죽 팔아먹는 아줌마들, 그다음에 시루떡파는 아줌마들, 그때 생각이 나요. 그렇게 일해 가지고 돈을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어디를 가나 춥거든요. 그러니까 팥죽 파는 아주머니한테 가는 거예요. 누더기 이불을 싸 가지고 통이 식지 않게 해 가지고 와서 파는데 그 팥죽통을 끌어안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 아주머니가 뭐라고 안해요. 30분만 얘기하면 팥죽 먹으라고 하는 거예요. 팥죽 장수 아줌마한테 사홀만, 일주일만 가게 되면 말이예요, 팥죽 판 돈을 나에게 맡기게 되는데뭐.
요즘에도 그걸 먹고 싶을 때가 있다구요. 그때에 얼마나 그게 맛이 있던지 말이예요, 그 당시에는 굶주리고 다 그러니까 뭐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것이었어요. 그 때묻은 아주머니, 그저 한 가지밖에 모르던, 죽 팔기 위해 열심인 그 아주머니 얼굴과모습이 그립고, 그 손으로 퍼주던 죽이 얼마나 맛있는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때는 말이예요, 피난 때에는 내가 방공호에 가서 자고 그랬다구요. 피난시대에 집이나 있나요. 저 산동성이에 올라가 가지고 오바를 덮고 자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때 그 아주머니집이 하꼬방집이었어요. 남편하고 애기들하고 살았는데, 애기들을 보게 되면 불쌍하고 처량하고 처량한 그런 환경인데 거기에 발이라도 하나 집어넣고 살았다면 그게 얼마나 자랑이예요? 그래 죽을 퍼 놓고 남은 누룽지라도 줘서 맛있게 먹었던 것이, 얼마나 추억이겠어요. 그럴 수 있는 일도 있다구요.
생활 체험과 원리원본(原理原本) 집필 시작
1951.5.11.
몇몇 식구를 중심삼고 사선을 넘어 남한 땅에 1951년에 내려 와 가지고 원리원본을 만든 것입니다. 초량에 노무자수용소가있어 가지고 그 조그만 방에서 내가 원리원본을 쓰던 것이 생각난다구요. 요만한 방에서 바로는 못 누워요. 그렇기 때문에 엑스로 누워야 하는데, 엑스로 누웠댔자 발이 닿습니다. 그런 방에서 지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빠르다구요.
그 기간에 있어서 인간으로서 자립하여 살기 위해서 경제적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해야 했기 때문에별의별 일을 다 했다 이거예요. 임기응변이다 이거예요. 임기응변과 같이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소질을 많이 갖고 있다구요. 자연적 소질보다도 훈련시킨 소질이다 이거예요. 자신이 훈련해 가지고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립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되지 않고는 이러한 엄청난 큰 뜻을 성사시킬 수 없다구요.
내 이 거룩한 인생행로, 남아일언의 행로에 있어서 인생들이 가지 못하던 그런 곡절의 노정을 갈 수 있는, 한 기록을 남기는인간철학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인간철학. 인생철학이 아니예요. 인간철학이니 생활과 모든 쓰레기 구덩이도 다 파는 거예요. 생활분야의 특별한 그런 면에서 곡절의 모든 것을 풀어 나가는 이게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월남한 피난민들의 애환
부산에 오게 되면 내가 언제나 자갈치시장을 생각해요. 피난시절에, 처량한 시절에 그 동네를 많이 다녔다구요. 그당시에 피난와 가지고 부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소원이 무엇이었겠어요? 환고향 안 바라던 사람이 있었겠어요?
기반 없이 기반이 있는 남한 사람들에게 와 가지고 여기에 붙어서 자기들의 생계를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남한에 사는어떠한 사람보다 어려운 자리에 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피난민의 생활입니다. 그렇게 출발해서 정착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하나의 피난민으로 와서 피난생활을 했습니다. 그 과정의 곡절이라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 비참하냐? 그것은 기반을 가진 남한에 사는 어떤 노동자보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보다도 더 비참한 것입니다.
더구나 고향을 떠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 후손들 앞에 고향을 보여 줄 수 없고 고향을 소개할 수 없는 자리에 섰다면 그게 얼마나 비참하겠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 와서 경제적 기반도 많이 가졌지만, 스스로 북한 땅 고향으로 자기 자신이 돌아가게 될 때는 패자가 아니고 승자와 같이, 성공한 사람과 같이 권위를 갖추어 가지고 나타나고 싶은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고향 돌아가서 자기의 위신을 세우고 그 고향 땅에 모든 정성 들인 값진 것을 심을 수 있고 남길 수있는 것이있다 할 때, 피난살이 과정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오직 그 한날을 바라보고 살고 있는 것이피난 온 동포들의 사정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2. 범냇골 토담집에서 재출발 준비
1951.8. ~ 1953.1.
토담집 건축
1951.8.-부산시 동구 범4동 1513번지
남한 땅에서도 부산 범일동, 거기에 그야말로 토굴을 짓고 혼자 있으면서 제2의 출발을 준비했어요. 거기는 공동묘지의 근처로 돌투성이의 골짜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범일동 골짜기에서 내가 아예 짐통을 지고, 자겟돌을나르고, 흙을 빚어집을 짓던 생각이 가보니 새롭더라구요.
부산에서 제일 꼬라비, 꼬라비였어요. 집을 짓는 데는 삽이 있어야지요. 삽을 빌리려 해도 빌려 줘야지요. 피난민들이 전부다 돈만 생긴다면 다 팔아먹으니까 안 준다 말이예요, 이게. 삽이 있어도 안 주는 거예요, 부엌에다 갖다숨겨 놓고. 그래, 할 수 없이 부삽으로 했다구요. 삽이 요만한데, 여기는 이렇게 깨져 나가고, 요건 떨어져 나가고, 이런 것 가지고 했다구요. 곡괭이가 있어야지요. 그런 삽 가지고 범일동 터를 닦았다구요. 또, 벽돌 만드는 기계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미군부대에 가서 레이션 박스 있잖아요? 그걸 갖다가 귀둥이를 째 가지고…. 이걸 펴 가지고 넓혀 가지고, 흙을 파다가…. 흙이 참 많이 들어간단말이예요. 이만한 것 가지고 가서 이겨 보면 한 덩어리밖에 안 돼요.
누가 땅을 주나요? 그러니까 산비탈을 깎아 가지고, 산비탈을 가로 따 가지고…. 비가 오면 말이예요, 그 방에서 샘이 솟아요. 그러니 할 수 있나요? 이 땅을 한 반자쯤 파 가지고 돌을 갖다가 수문을 내는 거예요. 수문을 내 가지고 그다음에는 그 위에다 온돌을 놨어요. 그 온돌 아래에는 물이 흐르는 거예요. 그런 유명한 집이예요.
벽과 지붕을 진흙과 바위로 지은 아주 초라한 주거장소였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집을 지을 만한 땅이 한 평도 없었어요. 산비탈에다 오두막집과 같은 것을 지었어요. 헌 박스로 임시 지붕을 만들었어요.
그리워했던 한 간 방
하꼬방도 그런 하꼬방이 없지요. 들어가 보면 바윗돌에다 집이라고 떡 지어 놓으니 바위가 하나 있고, 그다음에는 조그만한테이블이 하나 있고, 그다음에는 그림 그리는 캔버스, 그 두 가지 밖에 없다 이거예요. 그게 무슨 보물이라고…. 그거 비참한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잠을 잘 때도, 이 지상의 어떠한 궁중에서 영광을 누리며 사는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효행을할 수 있는 제일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깊은 내심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처마 밑에나 움막집에 있더라도 '내가 하나님을 여기서 모셔야 하는데 이 자리가 정성이 부족하다' 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나 입동시절이 찾아들 때는 불편한 게 많아요. 비가 오지 바람은 불지 감기 기운은 돌지, 찬방에서 콧물을 찔찔 나지, 할 책임은 많지, 배는 고프지, 입은 것은 없지... . 요때가 제일 불편한 때라는 거예요. 이때 낙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 길은우리의 스승들이 간 길이요, 선생님이 뜻을 붙들고 가는 길이니 여러분들도 심정 일치점을 그런 기준에서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 때는 방 한 간을 얼마나 그리워 했는지 모른다구요, 방 한 간. 세계의 누구보다도 방 한 간을 그리워 한 사람이라구요. '다쓰러져 가는 헛간집 같은 방 한 간이라도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는 방으로, 왕궁 이상의 귀한 방으로 내가 살 텐데...' 하며 그리워했던 사람이라구요. 또, 지극히 작은 땅 한 짜박지라도 그리워했던 사람이라구요. '내 땅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택한 내땅에서 내가 정성을 들여 봤으면…. 내가 이 사탄세계의 땅에서 정성들이는 이것은 삻다' 이겁니다. 얼마나 정성들였는지 모른다구요.
토담집 시절의 외모
이때까지도 그 누더기 옷을 넉달 동안 입은 그대로 입고 있었어요. 세탁할 곳이 없어으니까요. 그때는 따라지 중에서도 왕따라지였어요. 옷도 없어 가지고 바지는 한복바지, 겹바지인데 그것도 아껴서 입으려고 안껍질 겉껍질을 따로 해서 퍼런 물을들여서 입고, 위에는 옷이 없으니까 미군 작업복인 푸른 옷을 입고, 신은 운동화, 그 운동화는 왜놈들이 갖다 준 거라구요. 그렇게 3국의 옷을 떡 입고 다녔다구요. 그렇게 하고 다니면서도 '이건 다 탕감복귀다. 탕감복귀하려니 미국의 누더기, 한국의 누더기, 일본의 누더기를 내가 입고 다닌다' 이랬어요. 그게 얼마나 근사해요? 그렇게 입고 다니면서도 내가 부끄러워하고그런 게 없었다구요.
그 당시에 외면적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한푼 어치의 가치도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얼굴은 검을 대로 검어 있었고, 복장은 동양옷과 서양옷을 섞어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오늘날 굉장한 힘을발휘 합니다. 대포보다도 원자폭탄보다도 그 힘이 더 큽니다
부산 항구를 바라보며
그래, 범일동에서 내가 산에 올라가 기도를 했는데, 사탄의 멱살을 잡고 배를 칼로 찌르고 싸우는 이런 입장에 서 가지고 영적으로 많이 격투를 했어요. '이 싸움에서 너희들이 이기지 못하는 한 너희들은 한날에 굴복할 날이 있을것이다' 하면서 싸운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출발한 거예요. 형편없이 불쌍한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고 눈물을흘리고 땀을 흘리고 다 흘렸어요. 그 비통한 역사적 시대에, 민족 이념이 갈 데 없는 원망의 그 한계선에서 태평양바다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 그방파제가 된다는 입장에서 민족을 대표해 기도한다는 심정을 가지고 혼자 그 외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그 많은 배들이 들어와 가지고 '부웅, 나 쳐다봐라!' 하면서 연기를 뿜는 것을 볼 때 '나도 저런 배를 내 손으로 만들어서 부산항으로 환고향하는 금의환향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라고 기도하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렇게하고 앉아 가지고 '저대해를 건너 내가 마음으로 기대하던 심정의 인연을 저나라에 가서 뿌려야지, 씨를 뿌려 놓아야 돼' 라고 생각했어요. 부산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농을 참 좋아 하시는 분입니다. '야, 너 봐라. 앞으로 세계가 이렇게 되는거야' 하시며 큰 상선, 하늘 상선에 나를 태워 놓고는 수많은 군중이 환호하는 걸 보여 주고 위로하시더라구요.
부산 범냇골 성지? 선생님이 바위를 붙들고 비통해 했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그 6.25동란 때 화물선이, 전부다무기를 나르느라고 배들이 꽉찬 그 부산항구를 바라보면서 무슨 기도를 했는지 알아요? 그걸 알아야 돼요. 다 이루어 졌다구요.
전시상황 감지
이 범일동에 기거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때만 하더라도 6.25사변이 계속될 때예요, 1953년에 휴전협정이 됐으니까. 그때 미국에서 들어오는 군수물차 선단들이 줄지어 이 항구에 꽉 들어왔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선생님은 그것을 헤아리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구요. 하나, 둘, 셋, 넷…. 보통 50척이고, 어떤 때는 100척이 넘을 때도 있었다구요. 그럴 때 전시상황이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배의 수가 많아진 것을 볼 때 '아, 이 전쟁이 치열해지겠구나' 이렇게 생각했고, 배들이 적어지면 '아, 이제는 전쟁이 그저 이럭저럭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원리원본 집필과 제자에 대한 정성
원필이가 자신이 돈을 벌어 오겠다고 해서 선생님이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원리원본을 쓰고 있었는데 동지가얼마나 귀하고 따르는 사람 하나가 얼마나 귀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필이가 회사에 나가게 될때는 반드시 한 1킬로미터 이상 따라 나가곤 했는데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또 저녁이 되어 돌아올 때가 되면 반드시 마중을 나갔는데 그 만나는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기준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심정은 그리움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필이를 데리고 범냇골에서 살던 때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좋은 때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때 원리원본 초고 쓸 때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 그 인상을 지금도 잊지 않아요. 그 원필이도 잊어지지 않고, 선생님에 대해서 고맙게 했던 일, 피난 와 가지고 외롭고 서러워 같이 달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살던 일, 그 인상이 뗄 수 없을정도로 남아 있는 거예요. 그때 원필이는 회사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자기 연인을 찾아오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어 했다구요. '너 좀 집에서 쉬고 있으라' 해도 '아! 저 싫습니다.' 하고 선생님만 따라다녔다구요. 변소에 가서 30분만 앉아 있으면변소문을 두드린다구요. 변소에 가서 졸 때가 많았어요. 그만큼 심정적으로 가까워져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피난나올 때도 자기 어머니와 집을 다 버리고 나왔다구요. 거기 있으라고 해도 다 집어 던지고, 선생님을 따라나선 거라구요.
미군들 초상화 그리는 부업
내가 범일동에서 살던 집, 제일 비참할 때, 테이불 요만한 것, 우리 식구 한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고 내가 전부 치다꺼리하던…. 그건 뭐 비참한 거예요. 비참해. 그 집이 비참해!
거기서 미군 부대 병사들의 초상화를 그렸어요. 김원필이 그림을 그릴 줄 알거든요. 그때 요만한 천 한 장으로 틀을 전부 짜가지고 했어요. 그림 그리려고 만든 풀이 있는데, 이것을 끊여 가지고 천에다 완전히 발라야 팽팽해지는겁니다. 팽팽해야 구멍이 다 막히게 돼요. 그때 한 장 그리는데 4불이었다구요.
그 부대가 무슨 부대냐 하면, 미국 사람들이 1년 반이라든가, 2년 반 정도 있다가 순환하는, 집에 돌아가는 부대예요. 몇 개월만에 교체해서 집에 돌아가는데, 거기가 마지막 처소, 부대라구요. 그 부대에서 자기 고향으로 갈 텐데선물이 필요하거든요.선물이 필요한데 가져갈 것이 뭐가 있어야지요. 그러니까 여편네 초상화 그려 준다고 해 가지고, 4불이면 싸지요?
그것을 어떻게 빨리 그리느냐? 맨 처음에는 한 장, 두 장 가져왔거든요. 돈이 무한히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에 20장, 30장까지 받아 와라 이거예요. 보통 거기서 일주일 묵고 가요. 그래서 주문하게 되면 주문받아 가지고…. 어떤날은30장 가까이 그릴 때가 있다구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줄을 전부 다 펴 놓는 거예요. 그러면 원필이는 4B 연필을 가지고 틀에 들어 있는 수와같이 똑같은 사이즈로, 작지만 전부 다 금을 긋는 겁니다.
금을 그어 놓으면, 사람의 형을 집을 때는 그 금을 따라서 그리면 되거든요. 눈은 어디 있고…. 얼마나 빠른지, 몇배가 빠르다구요. 입술도 싹 그려 놓으면 빨간 칠은 내가 하고. 머리도 싹 그려 놓으면 머리 색도 내가 해주고. 그러다 보니 그거 다 배우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뒷전에서 훈수하던 입장에서 하나하나 배워 가지고 나중에는 옷 같은 것은 전부 다 내가 해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돈 많이 벌었지요. 하루에 백 불 가까운 돈을 벌었어요. 굉장한돈이지요. 그렇게 가르쳐 주는 걸 그리다보니 내가 선생이 되더라 그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출세하려면 천만 사람을 출세시키라고요. 그런 사람은 출세해도 망할 길이 없다 그거예요. 그래 가지고 돈을 벌어서 전도 경비를 하고, 전부 다 이래 가지고 개척한 것입니다. 그렇게번 돈이예요. 그렇다고 그 돈 가지고 내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았다구요.
미군부대 목공 일
선생님은 사진틀 같은 것도 짤 줄 압니다. 피난 가 가지고 미군부대에서 8개월 동안 목수 노릇 해먹었다구요. 그걸배운 게 아니라구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모든 이론보다 앞선다구요. 보통 사람은 전문가의 3배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빨리 하지만 난 정성을 들여 천천히 한다구요.
목수질하는 것을 옛날에 내가 봤기 때문에, 눈썰미 가지고 한 거예요. 그냥 안다구요. 첫날 가서 전부 다 한다구요. 건축현장에 나가면 집 짓는 것이 뭐 어떻다는 것을 대번에 다 안다구요. 배워 가지고 하나요? 사리를 비판해 가지고 원칙을 따져 가지고 하게 되면 전부 다 통하게 돼 있다구요.
식구 기다리는 그리움
선생님이 부산 범일동에서 하나님과 인연될 식구들을 그리워 하던 때에, 선생님은 온갖 정성을 다하며 그들을 기다렸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그들이 오기는 오는데, 실제로는 가까이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간막이 터지지 않았다구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갈 길을 찾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것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터져 나기기 시작하면 길이 열리는 거라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탕감기간이 있는 겁니다. 자기 개인의 탕감기간이 있고, 그 다음엔 동네 탕감기간이 있어요.
그 때가 아직 안 되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때다 이거예요. 백지 한 장 가리워졌어요, 백지 한 장. 함성이 '선생님! 선생님! 아버님! 아버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구요. 수많은 군중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구요. 요 구멍만 뚫어 놓으면 터져 나올 것같은데 여기에 막이 가려져 있다 이거예요. 그것이 1년, 2년, 해가 가면 점점 가까워진다구요. 그럴 때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있는 아들딸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그립겠느냐? 아침에 일어나 척 먼산을 바라보게 된다면, 사람이 이렇게 보이는 거예요. 수많은 군중이 행렬을 지어서 오는 거라구요.
아침에 산에 올라가게 되면 저녁까지 점심을 잊어버리고 기다리는 거라구요. 그 얼마나 기다렸더냐?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잃어버린 타락한 인간을 기다리는 그 심정적 체휼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석양이 되게 되면 '안 오나 ', 아침이 되게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 가지고 닭이 울기 전에 '안 오나' 그렇게 오매불망의 심정이 돼야 된다 이거예요.
오늘날 여러분이 선생님이 그립rh 다 이런 것은, 다 그런 동기의 기원이 천상세계에 터전으로 남아 있고, 이 삼천리 반도에여러분은 모르지만 이 운기 가운데 그러한 터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운기권내에 사는 사람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선생님이 생각이 난다구요, 자기도 모르게. 생각 안 할래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은 다 그러한 동기의 기원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옛식구 수습
남한 땅에 다시 돌아 왔을 때 선생님을 원망하고 배반했던 그 무리들에게 아직도 하늘의 슬픈 역사의 사연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사연을 나누고자 찾아갔습니다.
어떤 집을 찾아 들어가니 세 모녀가 선생님의 면전에서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말려도 가더니 결국은 거지 모양이 되어서 찾아왔다' 고 서로 눈짓을 하면서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집을 찾아간 것은 밥이 그리워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천적인인연을 중심삼고 같이 눈물을 흘렸고 같이 사연을 나누었던 하늘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인연을 거룩하게 심었으니 심은것을 거룩하게 거두어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그 누구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동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해서 회사를 설립했는데 장안에 이름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 얼굴도 씻지 않고 이도 닦지 않은 상거지의 모습을 해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나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선생님을 배신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별의별 곡절의 노정을 거치며 먼저 동지들을 찾아 다녔던 것입니다. 남들 같으면 다시 남한 땅을 찾아 왔으면 처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선생님은 동지부터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까운 동지로부터 찾기 시작해서먼 동지까지, 또 이북에서 선생님을 따르던 식구들을 비롯해서 선생님과 인연된 동지들은 찾는 데에 2년이 걸렸습니다. 여기승도 할머니는 그것을 압니다. 그들을 다 찾은 후에야, 찾고 찾아서 그들을 다 만나 후에야 집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하늘은이렇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남은 사람이 원필이, 지승도 노친네, 옥세현 노친네예요. 이기완씨 같은 이는 이남에 있을 때 옛날부터 아는 사람이고, 그 사람들 중심삼고 이남에 나와 가지고 범일동에서부터 교회 출발한 거 아녜요? 그때 출발할 때는 전부가 반대지요. 전부가 반대한 것을 이북에서부터 남한까지 탕감조건을 세우면서 세계적 기준까지 탕감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나온 거예요.
'원리원본' 탈고와 전도 개척
여러분 동네에 원리책을 갖고 갈 때에는 지나치리 만큼 소중히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이 책이 한 권밖에 없다고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 선생님이 이 책의 원고를 초잡을 때, 그 원고의 관리를 얼마나 심각하게 했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만일 그게 없어지고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세계가 왔다갔다한다구요, 세계가. 여러분, 그런 걸 생각해 봤어요? 혼자이면서 그때 내가 원리원본을 쓴 것을 뿌릴 때 그걸 누가 혼자 그렇게…. 이것이 세계의 영적 양식이 되고 만민이 추앙할 수있는 원리의 말씀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선생님이 처음 부산에서 뜻길을 출발할 때, 다른 사람들과 그 모습은 같았으나 내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비록 옷은남루하고 밥은 굶는 처지에 있었지만 생각만큼은 이 세계를 정복하고 하늘나라를 꼭 이루겠다고 했고, 그럴 수 있다고 큰소리를 꽝꽝 쳤습니다.
처음에는 범일동에서 집을 짓고 세 사람이 모여서 전도하고 기도하고 그랬어요.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할 때는 선생님이 세 사람을 놓고 기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 이 사람들에게 얘기하지만 현재 수억의 기독교인과 수많은 인류를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동네에 우물이 있었는데 거기에 물을 길르러 온 사람들이 저 집은 싸움을 안 한다고 소문이 났는데 요즈음 싸움을 한다고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차려 입은 모습을 보면 형편 무인지경이고,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그런 집에서 살지만 세계를 한 주먹에 말아 먹고, 하늘땅이 뒤집어지고, 한국이 한꺼번에 세계를 다 통일한다고 하는엄청난 얘기를 하니까 소문이 난것입니다.
'저 동네에 가 보았더니 우물에서는 말이 없던 그 사람이 굉장하더라' 이렇게 소문이 나니 사람들이 자꾸 모여들 것 아닙니까? 어떤 때는 무슨 신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와가지고 '역사상에 당신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많이 와서 통일세계를 꿈꾸었는데도 다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당신이 통일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얘기를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도참 처량했습니다. 물이 흘러 거게끔 도랑을 파고 그 위에다 집을 지었기 때문에 방구들 아래에서는 쫄쫄쫄 물 흐르는 소리가나는데 그런 집에 앉아서 그런 엄청난 말을 하니 누가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이화여대 교수 짜박지들이 왔다 가더니 소문 나기를 '저 산꼭대기에 있는 미남자, 아까운 사람이 미쳐서 병신이 되어 간다.' 이렇게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도 내가 미남자처럼 생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구요. '어떤 미남자가 수도하다 미쳤다는데, 저 사람인가보다!' 하고 보러 온 것입니다.
강현실(姜賢實) 전도사 입교
자, 그렇게 꿈을 가지고 참고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하나님 보실 때 얼마나 동정이 가겠어요? 그래서 '야, 야, 너 레버런 문을 찾아가라!' 해 가지고 전부 다 자기 사람을 호출 명령을 내려 찾아오게 하시는 거예요.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는 모양이예요. 그렇게 명령을 하셔서 보내는 거예요. 그러므로 현실은 어렵지만 미래의 꿈을 가지고 현실을 미래의 것으로알고 살고 있는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된다는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여기 강현실이가 처음 범냇골에 찾아올 때도 그랬어요. 산에 올라가면 잃어버린 자식 그리워하는 마음이지요. 요 담을 심정으로 터친 거예요. 타락의 심정으로 막혀진 것을 하늘의 심정으로 터친 거예요. 그러니 몰아 들어오는 거예요. 그리하여 기성교회 전도 문제라든지…. 그때 강현실 전도사가 들어왔지만 말이예요. 그렇게 해서 한 사람, 두 사람 뜻 맞는 사람을 하늘이보내 줘서 다시 규합하였습니다.
강현실 전도사라고, 범일동 천막교회 전도사로 책임지고 있던 그 아줌마가, 지금 저 산골짜기, 그때 범일동 산골짜기 하게 되면 그 위에는 절간밖에 없었는데, 맨 마지막 집에 이상한 청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도하겠다고 찾아왔댔지요. 찾아와 가지고 방문할 때의 내 모습은…. 이렇게 삼층 옷을 입고 있을 때 찾아오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래서 그때 말씀했는데 하나님이 역사해서 매일매일 찾아오게 된 거예요. 그러다가 그 교회를 버리고 통일교회 믿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래서 영계에서 전도하는 거예요. 영계에서. 그렇기 때문에 가다가 발이 붙어 가지고 못 가게 하면 이리 들어가고…. 이런전도 했습니다. 통일교회 기원이 그래요. 성경에 있는 이상의 내용이 있어요. 별의별 이적기사의 길을 통하면서 나온 거예요.
성진님 모자와의 재회
내가 이남에 나왔을 때는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구요. 어디에 가면 반드시 만날 수 있다 하는 것도 알았지만 안 갔다구요. 내가 만나야 할 사람,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약속한 몇 몇 사람을 못 만났으니, 그들을만날 때까지는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자 마자 연락을 한 것입니다. 연락을 하니 대번에 왔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내가 남편이라는 사람인데 자식이 일곱 살이 되어서야 만난 거라구요. 그때는 식구들과 같이 지내던 때였습니다. 할머니들을 데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이 왔다고 내가 기뻐하며 맞이했다가는 조건에 걸리는 것입니다. 아벨은 누구를 통해서? 가인을 통해서 소개받아 가지고 사랑해야 됩니다. 가인이 '오냐! 네가성진이야' 해 가지고 '선생님, 성진이가 돌아왔습니다' 해서 품고 사랑의 표시로 하나되어 맞이해야 됩니다. 이것이 원리의 법도입니다.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가 나한테 왔을 때, 선생님이 '얘가 성진인가?' 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성진이 어머니에게는 일생 동안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들어오라는 얘기는 식구들이 해야 되는 거예요. 나는 원리적으로 살려고 지금까지 별의별 비참한경지를 다 거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성진이 어머니는 '아! 목석같은 사람' 이라고 합니다. 그건 사실이예요. 뜻을 모르니까….
그 어머니가 나를 대해서 인사하기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소? 남 모르는 이 길, 몰리는 길을 가기에, 뜻을 위해서 그렇게수난길을 가기에 얼마나 힘들었소? 그동안 내게 고생스러웠던 그 일들은 고생이 아니었소. 나를 핍박하는 사람도 많고 가로막는 사람도 많은데 죽지 않고 몰려 쫓겨나지 않고 살아왔으니 감사할 뿐이요' 이렇게 인사를 먼저 하고 난 후에 그 어머니 입으로 아들에게 '훌륭한 아버지, 내가 가르쳐 준, 교육하던 이상의 아버지가 왔다. 인사해라' 고 할 수 있는 아내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랐던 것입니다. 그걸 보면 부모로써 불쌍한 사람이지요. 남편으로서 안된 남편이지요. 천도가 엇갈린 자리에서, 하나님이 슬퍼하는 그 자리에서 자식이 있으면 뭘하고 아내가 있으면 뭘해요!
반대와 핍박의 고조
이 곳, 부산 범일동은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으며 뜻길을 출발하였던 곳이기에 한스럽게 생각하면 한스러울 수 있는 곳입니다. 내가 범일동에서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구요. 범일동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뭐 좋은 곳으로 알는지 모르지마는, 선생님으로서는 선생님의 머리에 다 기억되지 않을 만큼 반대를 받고 잊혀지지 않는 곳인데 좋아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구요.
기성교회가 반대하기 때문에 성진 어머니가 반대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때 말을 하면 역사에 없는 핍박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입을 다물고 가만 있었던 거예요. 만난 지 1년밖에 안돼요, 1년. 원리예요, 원리. 원리대로 되는거예요. 별의별 짓다 한 거예요. 세상에 나쁜 소문 다 내놓고, 그저 죽일 사람이라고 별의별 소문 다 내놓았다 이거예요. 뜻이고 뭣이고 내가 당신을 제일 사랑하고, 당신이 일 안 해도 내가 먹여 살리고…. 또 먼저 들어온 할머니들에게 '저 할머니들이 전부 우리 남편 빼앗았다' 고 하면서 할머니들을 들이 패지를 않나, 별의별…. 여자식구들이 나오면 멱살 잡고 '이 간나들, 왜 와?' 하는 거예요.그럴수록 반대로 그 여자들이 '이 여우 같은 여자 같으니라구. 내가 당신 남편을 옹호해야 되겠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그런데, 성진이 어머니가 한참 반대할 때 성진이가 나이 일곱 살 때구만, 어머니를 버리고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어머니가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사랑하면서 일곱 살 때까지 업어 길렀는데, 그런 어머니를 버리고 자기를 위해서 아무 것도 안 해주는아버지를 찾아 왔다는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가 반대하면 미리 와서 전부 다 알려주는 거예요.내가 그런 성진이에게 미안한것이, 그 애한테 언제 한번 교육 못해준 거예요. 원리는 이렇다고 교육을 한번 못 해주었다구요.
3. 수정동 수난과 전도 확산
1953.1. ~ 9.17.
이남 생활 적응 3년기간
1951 ~ 1953
내가 피난살이 할 때 이북에서 감옥살이 하다가 이남에 척 내려와서 보니까 이건 뭐 전부가 생소했어요. 뭐 그 환경을 세밀히살피는데만 3년 이상이 걸리더라구요. 3년 이상 되니 그 환경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그 전에는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자꾸마음이 쓰여지고, 그것이 한 3년 이상 걸리니까 비로소 평평하게 되더라구요. 그것을 볼 때, 예수님도 3년 공생애노정이 절대필요한 기간이었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간세상과 하늘세계는 전통과 습관이 다른데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몸에 젖기 위해서는 3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남에 있다가 이북에 가서 몇해 동안 있다가 다시 이남에 돌아온 이후에 이북의 그 모든 감정을 해소시키는 데에 못해도 3년 이상 걸리더라 이거예요. 3년 이상이 걸리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습관성이 얼마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고, 이 습관성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길이 얼마나 왜곡되어 버리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잦은 이사와 피신
1953년 1월, 2월, 3월, 11월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더 훌륭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는 선생님의 훌륭하지 못한점을 배웠다면 무엇입니까? 도망다니는 것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피난을 많이 다녔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밥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배고픈 가운데서 하릇밤 자게 될 때도 배 고프다고 생각을 안합니다. '오늘 정성들여 기도 할 시간이 되었구만' 하고 기도합니다. 배고프다고 하는 사람은 하늘이 절대 안 도와 주는 것입니다. '이마을에 왔으니 이마을의 복받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해 복 빌어 주고 가자' 하고 밤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게 되면 그집의 영이 발동해 가지고 '아무개 집에 이런 손님이 있으니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몇 시에 모셔와!' 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 것을 알아요? 그래서 선생님은 공밥도 많이 얻어먹고 공돈도 내가 많이 얻어 썼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홍길동이 할아버지지요? 어떻게 사는지 모르게 사는 것입니다.
식구전도와 신령집단 방문 지도
내가 한국의 신령하다는 집단은 안 찾아간 데가 없습니다. 더더욱이나 신령하다는 여자들, 강현실이 같은 사람도 그 중의 한사람이지?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남자를 방문시킨 것입니다. 절에 있는 사람들 불러다가 전부 다 물어 보는 거예요. 만나서 얘기할 때에도 나는 정성으로 대하는데 그들이 악당의 마음을 가지고 이단으로 대했다가는 그들이 가진 복을 내가 몽땅 거두는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담 해와 자체가 다시 빚어질 수 있는 하늘적 인격 완비를 천하에 벌여 놓았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80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해서 그들을 끌어 모아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를 통해 인연돼 가지고 만났던 식구들이 전부 다 총총걸음으로 그때 혼자 살고 있던 선생님을 찾아오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런 식구들 가운데 이미 영계에 간 사람도 여러명 있습니다. 혼자서 시작해 가지고 몇몇 식구들을 모아 움직이면서 전국에 제일 신령한 사람들을 방문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중에 대구에 전도를 보냈던 강현실전도사라고 있었다구요.
대구 개척전도 파송
1953.7.20.:강현실
8월 중순:이요한
당시 예를 들어보면, 그때 저 고신파에 다니는 극렬분자 부인 전도사가 통일교회에 넘어왔다고 해서, 고신파에서 한상동, 한명동이를 중심삼고 이 일파가 전부 다 똘똘 뭉쳐서 '문아무개라는 것이 이리떼다, 이단이다' 고 야단하고 그랬다구요. 그런 판국에 대구는 남한의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이기 때문에 대구에 전도 보냈습니다. 보낼 때에 아무것도 없이 내보낸 거예요. 여비도 안주고 어떻게 하든지 가서 전도하라고 내보낸 그때의 사정이…. 그러니까 영계에서 전부 다 역사를 많이 했지요. 대구에 갔는데 갈 곳이 없으니까 영계에서 코치를 해 가지고 만날 사람을 만나게 해서 대구교회의 시작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사연들이 있어요.
그래서 원래 전도 내보낼 땐 돈 같은 것은 다 빼앗아 가지고 보내야 된다구요, 사실은. 돈 믿고 가는 게 아니라구요. 돈이 있으면 돈을 믿는 거예요. 돈을 믿고 다닌다구요. 돈보다도 하나님을 믿어라!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한테 돈을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이 그냥 그대로 현실에도 적용되고, 그냥 그대로 하나님은 지금 살아 계셔서 그런 사람들이 가는 길을 보호하는 것을 틀림없이 여러분들도 체험할 것입니다.
그래 돈을 가지고 가게 되면, '내가 쓸 돈이 아니라 전달할 돈이다' 그렇게 생각하라구요, 전달할 돈. '저,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가지고 간다'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이 가는 길은 축복을 받으리라고 생각한다구요.
이목사! 지금도 이목사가 찾아 가야 돼, 옛날같이. 목사들을 찾아가 가지고, 그 분을 소화시켜 나를 형님 같이 모시고 따라 오게끔 해야 돼. 복귀의 길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목사가 몇 살이예요? 뭐 힘이 안 나다가도 말씀을 하다보면 전부 다 은혜로우니까 힘이 난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저렇게 안 늙었습니다. 만찬가지예요, 은혜생활이 아니라 사랑 생활을 하기 때문에. 내가 사랑을 주기 바쁘고 사랑을 받기에, 느끼기에 바쁘면 안 늙는 겁니다.
한국 동란의 휴전
1953.7.23
한반도의 휴전선은 공산독재체제와 자유민주체제가 대립하고, 악편의 좌익과 선편의 우익이 대결하고 있으며, 유물론과 유심론이, 무신론과 유신론이 부딪치고 있는 대치선인 것입니다. 한반도는 세계의 축소형이요, 세계는 한반도의 확대형입니다. 또 구약시대의 헤브라이즘의 흐름을 이어받은 기독교문명과 헬레니즘의 흐름을 계승한 공산주의 문명이 이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선편과 악편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모든 대립과 투쟁의 상황은 한반도의 휴전선이그대로 집약적으로 표현 하고 있습니다.
이 민족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3.8선이 해결 안 되고 있잖아요? 트루만이 맥아더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1953년 7월에 끝이 났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역사가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는것입니다. 이런 한 많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되 아는 사람은 피가 끓는 것입니다.
나는 휴전을 반대 했었습니다. 내가 이승만 박사 입장이라면 절대 휴전을 안 했을 것입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휴전을 안합니다. 설령 휴전을 하더라도 또 북벌하자는 주의입니다. 이 박사가 크게 나가다가 왜 양보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서 후퇴하게 안 되어 있었거든요. 후퇴를 하더라도 남한 각지의 파괴된 것을 복구해 달라고라도 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북의 비운은 세계사적인 비운입니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이 책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미국 자체의 추락, 영국 자체의 추락, 민주세계의 추락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공산당을 중심삼고 전부 다시 빼앗깁니다.
4. 부산 범냇골 성지
부산 범일동
부산은 가마 밑이예요. 부산 하면 가마 꼭대기가 아니라 가마 밑이라고 생각한다구요. 그리고 또 왜 부산의 항구 좋으냐이거예요. 깊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부산은 불이 붙어야 발전 한다구요. 자갈치 시장에 불이 자꾸 났기 때문에 시장이 좋아졌을 거라구요, 틀림없이. 한번 불나면 조금 더 좋아지고, 한번 불나면 조금 더 좋아지고….그렇기 때문에 부산은 불이 날수록 좋아진다는 거예요. 왜? 부산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풀무질을 자꾸 해주어야 발전한다구요.
그래서 부산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불이 붙어라! 알겠어요? 그러면 경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산부터 뭐예요? 불이 붙어라!
부산 바다 밑이 가마 밑이기 때문에 여길 내가 먼저 찾아왔어요. 부산이 팔금산이지요? 이걸 볼 때 부산에 뜻이 있어요. 범일동이라는 말도 그래요. ‘범일’이 뭐예요? 보통이 아니다 이거예요. 성지가 뭐예요? 팔금산에 범일동. 부산에서 제일가는 골짜기예요.
범일전 개관
1978.10.20. 일요일
오늘 여기 범일동에 다시 와보니 옛날 생각이 새롭습니다. 여기 있는 것은 바윗돌입니다. 저 바윗돌은 범일동 골짜기의 수많은 바윗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 바위는 어느 누가 중히 여기지 않았고, 바라보지 않던 바위 였지만 어떤 인연 때문에, 저라는 사람과 더불어 관계되었던 그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 바위가 이제부터 세계적인, 역사적인 것으로 되었다는 거예요. 어떤 인류역사와 더불어 혹은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가치적 내용에 있어서 하나의 조건물로 인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이 바위 중에서 어떤 바위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아무 가치없는내 자신이지만, 하늘의 심정 세계에 있어서 두터운 인연을 남길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기념물이 될 것입니다. 역사뿐만 아니라 섭리적인 기념물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 바위보다 가치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보다 가치 있는 기념의 대상이 되기를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범일동에서 뭐 개관 기념일이니 해 가지고 범일전당도 지었지만 말이예요. 그래서 오늘 내가 저 범일동도 다녀왔지만 말이예요, 뭐 박판남이가 수고했다고 하지만 나 보기에는 뭐 수고한 것도 없다구요. ‘그저 그랬군’ 칭찬을 해도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옛날에는 그것이 성지가 되어서 저런 집을 쓰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주인은 그보다 더 형편없는 데서 살았는데 말이예요. 그 바위는 매일같이 비 맞고 볕이 나면 내가 바지를 말리고 하던 것인데 말이예요, 옛날의 나보다 훌륭하게 되어 있더구만요.
눈물의 바위
남이 모르는 것을 한 가지 아는 사람들이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찾는 거라구요. 이게 무서운 거예요. 범일동에 가게 된다면 말이예요. 눈물의 바위면 눈물의 바위…. 그거 이름이 눈물의 바위인가, 본래? 선생님이 기도하던 곳인데 그걸 설명할 수 없거든요. 그 눈물의 바위도 있지만, 선생님이 기도한 자리는 그곳만이 아니거든요. 선생님만이 아는 곳이있다 이거예요. 선생님만이 아는 곳을 누가 한마디 딱 이르면 그 사람의 권위가 서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무로 말하면 나무 뿌리는 다 마찬가지예요. 뿌리는 마찬가지인데, 동서남북 뿌리는 알고 있지만 제일 깊은 뿌리가, 한 뼘 드러나지않았지만 그 깊은 뿌리가 역사 전체의 걸음걸이를 좌우한다는 거예요. 그걸 누가 알아 가지고 설명하게 될 때는, 사실로서 연결된 모든 내용이 있게 될 때는 그것을 설명한 사람이 역사시대에 최고의 학자가 되는 거예요.
요전에도 한 사람이 눈물의 바위에 가 가지고 통곡이 벌어져서 ‘아이구, 성지가 하나인 줄 알았더니 세계에 둘이 있구만, 부산 성지’이러더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