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頭翼)사상 요강 - 제10장 논리학 (論理學)

훈독왕 | 20250803194330

 통일(頭翼)사상 요강

 

 10장 논리학 (論理學)

( Logic )


논리학(論理學)은 인간의 사고의 법칙이나 형식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은 심신(心身)의 이중체(二重體)로서, 마음과 몸은 일정한 형식이나 법칙에 지배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몸은 생리작용(生理作用)에 의해서 건강을 유지하고, 그 생리작용(生理作用)은 일정한 형식이나 법칙의 지배하에 지속된다. 예를 들면, 혈액(血液)은 전신을 순환(循環)하면서 양분(養分)과 산소(酸素)를 말단(末端)의 세포나 조직에 공급한다. 이것은 혈액(血液)이 순환(循環)의 형식을 통하여 양분과 산소를 전신에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체의 지각(知覺)이나 운동은 구심신경(求心神經)이나 원심신경(遠心神經)을 통한 신경의 신호를 전달받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은 지각(知覺)이나 운동이 신경(神經)에의 신호전달의 형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인체의 혈액내(血液內)에는 항상 산소의 촉매작용(觸媒作用)에 의해서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바, 이 반응은 일정한 법칙하에 행해진다. 또 혈액내(血管內)의 혈액의 흐름은 유관(流管)의 연속의 법칙의 지배하에 행해진다. 이와 같이 인체의 생리작용(生理作用)은 모두 일정한 형식과 법칙하에서 이루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사고방식(思考方式)도 일정한 형식이나 법칙하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사고만은 법칙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形式論理學의창시자)이후, 형식논리학은 여러 사고(思考)가 지니고 있는 공통된 법칙이나 형식만을 다루어 왔으나,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논리학(변증법)은 사고 뿐만 아니라 자연의 발전과정에 있어서의 법칙과 형식까지도 다루고 있다. 본장(本章)에서는 먼저 종래의 논리학, 그 중에서도 특히 형식논리학과 헤겔논리학의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어서 통일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통일논리학을 소개한 후 통일논리학의 입장에서 종래의 논리학을 검토하고자 한다. 

 

一. 종래의 논리학(論理學)


본(本) 항목에서는 주로,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 헤겔논리학(論理學), 마르크스주의논리학(主義論理學),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 선험적논리학(先驗的論理學)을 다루려 한다. 그 중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은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비교적 충분한 설명을 가할 것이나, 그 외의 것은 간단히 요점만 소개한다. 그 이유(理由)는 인식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서, 단지 종래의 논리학이 지녔던 문제점들에 대하여 통일논리학이 해결해 냈음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그 문제점에 관한 부분(部分)만을 소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헤겔논리학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룬 것처럼 보이는 것은, 통일논리학에서 볼 때 헤겔논리학 전체가 문제 투성이이기 때문에, 문제의 요점만을 다룬다는 것이 좀 길어졌을 뿐이다. 따라서 본(本)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 자체만을 이해하는 데는 본항(本項)인 종래의 논리학(論理學)은 생략해도 좋을 것임은 물론이다.


1.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세워진 논리학(論理學)으로서 순수한 생각(思考; 판단이나 추리)의 형식이나 법칙만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판단이나 추리의 내용과 대상은 일체 취급하지 않고 있다. 칸트는 그런데 논리학이 고대로부터 확실한 길을 걸어온 것은 이 학설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조금도 후퇴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더라도 명백하다…… 더욱이 논리학에 대해서 기이(奇異)한 것은 이 학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진보(進步)를 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자기완료(自己完了)를 이루어 놓은 듯한 인상(印象)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1)라고 말 할 정도로 형식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약 2천년간 거의 변경됨이 없이 계속되어온 것이다. 그것은 그 논리학(論理學)이 사고에 관한 한,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진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일논리학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먼저 형식논리학을 소개하는 것은 그 논리학(論理學)의 어느 부분이 진리(眞理)의 면인가를 명백히 함과 동시에 그 불충분한 점도 나중에 지적하기 위함이다. 다음에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의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사고(思考)의 원리(原理)


형식논리학은 사고의 법칙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 원리를 들고 있다.


① 동일률(同一律; principle of identity)

② 모순률(矛盾律; principle of contradiction)

③ 배중률(排中律; principle of excluded middle)

④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동일률(同一律)은 A는 A이다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예컨대 이것은 꽃이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것은 현상(現象)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꽃이라는 사실 그 자체는 불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고 그 자체의 일치성(一致性)도 의미한다. 즉 꽃이라는 개념은 어떠한 경우에도 동일(同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새는 동물이다라는 식으로 두 가지의 개념(새와 동물)이 일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모순률(矛盾律)은 A는 非A가 아니다라는 형식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동일률(同一律)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非꽃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것은 꽃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며, 새는 非동물(동물이 아닌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도 새는 동물이다라는 말과 같다. 한 쪽은 긍정(肯定)的인 표현이고, 다른 쪽은 부정적(否定的)인 표현이지만 내용은 같다.


배중률(排中律)은 A는 B이거나 非B이거나의 어느 쪽이다라고 표현된다. 그 의미는 B와 非B라는 두 가지 모순(矛盾)되는 주장 사이에 第三의 주장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은, 라이프니츠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진 법칙으로서 모든 사고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존재(存在)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존재(存在)하는 모든 것은 그 존재의 충분한 이유를 가진다라고 하는 인과율(因果律)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 이유(理由)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근거(根據)나 논거(論據)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원인(原因)을 의미한다. 근거는 귀결(歸結)에 대한 상대적 개념(槪念)이며, 원인은 결과에 대한 상대적 개념(槪念)이다. 따라서 이 법칙은, 사고에는 반드시 그 논거(論據)가 있고 존재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법칙(法則; 原理)이 있으나 그것들은 모두 이 네 가지의 근본원리에서 연역(演繹)되어 나온 것이다. 형식논리학은 또 세 가지의 주요한 요소(要素, 사고(思考)의 三요소(要素))-개념(concept), 판단(判斷; judgment), 추리(推理; inference)-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다음에 설명하고자 한다.


(2) 개념(槪念)


개념(槪念)이란 사물의 본질적인 특징을 파악한 일반적인 표상(表象)(또는 사고(思考))을 의미하는데, 개념에는 내포(內包)(intension)와 외연(外延;extension)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내포는 각 개념에 공통된 성질을 말하며, 외연(外延)은 그 개념이 적용되는 대상의 범위를 말한다. 이것에 관하여 생물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자 한다.


생물은 동물, 척추동물, 포유류, 영장류, 인류 등과 같이 여러 단계의 개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생물은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다. 동물에는 물론 생명(生命)이 있으며, 그 외에 감각기관(感覺器官)이 있다. 척추동물은 거기에 더하여 척추가 있다. 포유류에는 거기에 더하여 포유(哺乳)를 한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영장류(靈長類)는 그 위에 사물을 쥐는 능력을 더 가지고 있다. 인류에게는 이성(理性)이 더 있다. 이와 같이 각기의 개념을 대표하는 각 단계의 생물은 공통적인 성질을 갖고 있는데, 어떤 개념의 이러한 공통된 성질을 그 개념의 내포(內包)라고 한다.


생물에는 동물과 식물이 있고, 동물에는 연체동물(軟體動物), 절지동물(節肢動物), 척추동물(脊椎動物) 등이 있으며, 척추동물에는 파충류, 어류, 포유류 등이 있고, 포유류에는 영장류나 식육류(食肉類) 등이 있으며, 영장류에는 여러 가지 원숭이류와 인류가 있다. 이상은 어떤 개념이 적용되는 대상의 범위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러한 범위를 그 개념의 외연(外延)이라고 하며 이것을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10-1과 같다.


어느 두 가지의 개념을 비교할 때, 내포(內包)가 보다 넓고 외연(外延)이 보다 좁은 개념을 종개념(種槪念)(하위개념(下位槪念)이라 하고, 외연(外延)이 보다 넓고 내포가 보다 좁은 것을 유개념(類槪念; 上位槪念)이라고 한다. 예컨대 척추동물과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의 개념을 비교하면, 척추동물은 유개념(類槪念)이며, 그 외의 것은 종개념(種槪念)이다. 또 동물이라는 개념과 연체동물, 절족동물, 척추동물 등의 개념을 비교하면 동물은 유개념(類槪念)이고 그 외의 것은 종개념이 된다. 또한 생물이라는 개념과 동물이나 식물의 개념을 비교하면 생물은 유개념(類槪念), 동물 식물은 종개념(種槪念)이 된다. 이와 같은 조작(操作)을 몇번이고 반복해 가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최고의 類개념(槪念)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의 그 최고의 유개념을 범주(範疇)(카테고리, kategorie)라고 한다(그림 10-2).

 
또 선천적(先天的)으로 이성이 구비하고 있는 순수개념, 즉 경험에 의하지 않는 순수개념도 역시 범주라고 한다. 범주의 종류는 철학자에 따라 다르다. 왜냐하면 철학자의 사상체계에 따라서 자신이 만들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개념을 범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범주를 처음 확립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며 그는 문법(文法) 을 단서로 하여 다음과 같은 10개의 범주를 세웠다.


① 실체(實體; substance)

② 양(量; quantity)

③ 질(質; quality)

④ 관계(關係; relation)

⑤ 장소(場所; place)

⑥ 시간(時間; time)

⑦ 위치(位置; position)

⑧ 상태(狀態; condition)

⑨ 능동(能動; action)

⑩ 피동(被動; passivity) 등이 그것이다.


근세(近世)에 이르러 칸트는 다음과 같은 12개(4綱 12目)의 범주를 세웠다. 이 12범주는 칸트의 12의 판단형식(判斷形式)(후술(後述))에서 도출(導出)한 것이다.


I. 분량(分量)……단일성(單一性; Einheit) 다수성(數多性; Vielheit) 전체성(全體性; Allheit)

II. 성질(性質)……실재성(實在性; Realitt) 부정성(否定性; Negation) 제한성(制限性; Limitation)

III. 관계(關係)……실체성(實體性; Substanz) 인과성(因果性; Kausalitt) 상호성(相互性; Gemeinschaft)

IV. 양상(樣相)……가능성(可能性; Moglichkeit) 현실성(現實性; Wirklichkeit) 필연성(必然性; Notwerdigkeit)


(3) 판단(判斷)


1) 판단(判斷)이란 무엇인가


판단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어떠하다고 주장하는 일과 두개념이 일치(一致) 또는 불일치(不一致)의 구별을 분명히 단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판단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명제(命題; proposition)이다.


판단(判斷)은 주어개념(主語槪念)(主辭, 主語, subject), 술어개념(述語槪念)(賓辭, 述語, predicate), 그리고 계사(繫辭)(연결사(連結辭; copula)의 3요소로 되어 있다. 사고의 대상이 되는 사물이 주어개념이며, 그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 술어개념이며, 이 두 개념을 연결하는 것이 계사이다. 일반적으로 주어개념을 S, 술어개념을 P, 계사(繫辭)를 `-'로 표시하여 판단을 S-P로 정식화(定式化)한다.


2) 판단(判斷)의 종류(種類)


판단의 종류로서는 칸트의 12가지의 판단형식(4綱 12형식(形式))이 있으며, 이것을 오늘날의 형식논리학에서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칸트의 12가지의 판단형식이란 다음과 같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칸트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은 4강(綱)인 분량(分量), 성질(性質), 관계(關係), 양상(樣相)의 항목에서 각각 3개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을 세운 것이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여러 가지 사건이나 상황에 직면(直面)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사고(思考)한다. 그 사고(思考)의 내용이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千差萬別)인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 사고(思考)의 내용이 비록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 하더라도 판단(判斷)에 관한 한, 그 사고는 모두 상술한 네가지 항목의 판단의 묶음밖에 안 된다. 즉 분량(分量; 많으냐, 적으냐)에 관한 판단(判斷)과, 성질(性質)(…… 이냐, 아니냐)에 관한 판단(判斷)과, 개념의 상호관계(相互關係)에 관한 판단(判斷)과, 그리고 樣相(확실성이 어떠한가)에 관한 판단(判斷)의 묶음이다.


이 네 개의 각각의 항목에서 세 개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이 성립(成立)되는데, 이들의 판단이 대부분 S-P의 정식으로 표시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관계의 항목(項目)下의 가언판단과 선언판단은 각각 두 개의 판단을 연결하여 하나의 명제(命題)를 만들고 있으므로 S-P의 정식(定式)을 사용하지 않고 A-B, C-D 또는 A-B, A-C로 표시한다.


3) 기본적(基本的) 형식(形式)


이상의 판단형식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정언판단(定言判斷)으로서, 여기에 전칭(全稱)과 특칭(特稱)의 양(量)에 관한 판단형식과, 긍정과 부정의 질(質)에 관한 판단형식을 조합하면, 다음의 4종류의 판단이 이루어진다.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 모든 S는 P이다.(A)

전칭부정판단(全稱否定判斷) 모든 S는 P가 아니다.(E)

특칭긍정판단(特稱肯定判斷) 어떤 S는 P이다.(I)

특칭부정판단(特稱否定判斷) 어떤 S는 P가 아니다.(O)


그런데, 상기(上記)의 12가지 판단형식中의 선언판단과 가언판단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정언판단(定言判斷)으로 고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이 정언판단을 질(質)과 양(量)의 입장에서 분류하면 가언판단, 선언판단 이외의 형식은 모두 이상의 4개의 형식(AEIO)에 수렴되게 된다. 그래서 이 4개의 AEIO의 형식을 판단(判斷)의 기본적(基本的) 형식(形式)이라고 한다. 여기의 A, E, I, O라는 기호는, 라틴어의 affirmo(긍정(肯定))와 nego(否定)의 처음과 두번째 모음(母音)에서 각각 취한 것이다.


4) 주연(周延)과 부주연(不周延)


정언판단(定言判斷)에 있어서 그 판단(判斷)이 오류(誤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주어와 술어의 외연(外延)의 관계가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판단에 있어서 개념이 대상의 전체 범위에 걸쳐서 적용되는 경우도 있고, 일부분(一部分)에 국한되어서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주개념(主槪念), 빈개념(賓槪念)이 전칭(全稱)을 표시하는 경우, 그 개념의 적용범위는 그 외연(外延) 전체(全體)에 미치게 되므로 이 경우를 주연(周延) 또는 주연(周延)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념이 특칭(特稱)을 표시하는 경우 그 개념의 적용범위는 그 외연(外延)의 일부에만 미치게 된다. 이 경우를 부주연(不周延) 또는 부주연(不周延)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주연(周延)과 부주연(不周延)은 판단에 있어서 주개념(主槪念)과 빈개념(賓槪念)의 관계를 아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그 이유는 판단에는 S(主槪念)와 P(賓槪念)가 같이 주연(周延)해도 좋은 경우가 있으며, S와 P가 같이 주연(周延)해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고, 또 S와 P중 일방(一方)만이 주연(周延)해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例컨대, 모든 인간(S)은 동물(P)이다에 있어서 S는 주연(周延), P는 부주연(不周延)이다. 이것은 올바른 판단이 된다. 이것은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A)의 주빈관계(主賓關係)이다(그림 10-3).


또 모든 조류(S)는 포유동물(P)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있어서는 주빈개념(主賓槪念)이 다같이 주연(周延)되어 있다. 이것은 전칭부정판단(全稱否定判斷)(E)의 주빈관계이다(그림 10-4).


어떤 꽃(S)은 붉다(P)에서 S는 不周延, P도 不周延이다. 이것은 특칭긍정판단(特稱肯定判斷(I))의 주빈관계이다(그림 10-5).


또, 어떤 새(S)는 육식동물(P)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있어서 S의 일부(主槪念의 外延의 일부)가 P(빈개념)의 전범위내(全範圍外)에 있음을 표시하고 있다. 즉, S는 부주연(不周延)이며, P는 주연(周延)하고 있다. 이것은 특칭부정판단(特稱否定判斷(O))의 주빈관계이다


이상의 AEIO(전칭긍정판단(A), 전칭부정판단(E), 특칭긍정판단(I), 특칭부정판단(O))의 판단에 있어서 주빈개념(主賓槪念)의 주연(周延)과 부주연(不周延)의 관계는 그대로 규칙(規則)으로 되어 있으며, 이 규칙을 벗어나면 그 판단은 오류(誤謬)에 빠진다. 예컨대, 인자(仁者)는 모두 호산가(好山家)이다라는 판단에서 그러므로 모든 好山家(S)는 仁者이다라는 판단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면, 不當周延의 허위에 빠지기 때문에 그 판단은 잘못이다.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에서 S는 주연(周延), P는 부주연(不周延)인데도 불구하고 S도 P도 주연(周延)되고 있기 때문이다.


(4) 추리(推理)


추리(推理)란 이미 알려진 판단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판단을 도출(導出)하는 사고를 말한다. 즉 이미 알려진 판단을 이유로 하여 그러므로 ~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을 추리(推理)라고 한다. 이 경우 이미 알려진 판단을 전제(前提)라고 한다. 이 추리(推理)에는 전제(前提)가 되는 판단이 하나만 있는 경우와, 둘 이상 있는 경우가 있어서 전자(前者)를 직접추리(直接推理), 후자(後者)를 간접추리(間接推理)라고 한다. 간접추리에는 연역추리, 귀납추리, 유비추리가 있다. 여기서는 간접추리중(間接推理中)의 연역추리(演繹推理), 귀납추리(歸納推理), 유비추리(類比推理)만을 간단히 소개한다.


1) 연역추리(演繹推理)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간접추리는 2개이상의 전제(前提)에서 결론을 도출(導出)하는 것인데, 이 때 보편적, 일반적 원리를 가진 전제(前提)에서 특수한 내용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추리를 연역추리(演繹推理) 또는 삼단논법(三段論法)이라고 한다(또는 추론식(推論式)이라고도 한다). 이 삼단논법(三段論法)에 있어서 이유가 되는 전제(前提)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의 전제를 대전제(大前提)라고 하고, 다음의 전제를 소전제(小前提)라고 한다. 그리고 대전제에는 대개념(P)과 중개념(M)이, 소전제에는 소개념(S)과 중개념(M)이 포함되며, 결론(結論)에는 소개념(S), 대개념(P)이 포함되게 된다. 여기서 중개념(M)을 매개념(媒槪念)이라고도 한다. 例를 들면 다음과 같다.

대전제(大前提):모든 사람(M)은 죽는다(P)

소전제(小前提):모든 영웅(英雄(S))은 인간(M)이다

결론(結論): 고로 모든 영웅(S)은 죽는다(P)


이것을 부호(符號)만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모든 M-P……… (M는 P이다)

모든 S-M……… (S는 M이다)

∴모든 S-P……… (∴ S는 P이다)


이 삼단논법(三段論法)에 있어서 대개념(P)의 외연(外延)이 가장 크고, 중개념(M)이 그 다음으로 크며, 소개념(S)의 외연(外延)이 가장 좁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그림 10-7).


2) 귀납추리(歸納推理; 귀납법)


간접추리에 있어서 2개이상의 전제(前提)가 특수한 사실을 포함하는 경우, 그 특수한 내용으로부터 보다 보편적(普遍的)인 진리(眞理)를 결론으로 도출(導出)하는 추리 방법을 귀납추리(歸納推理) 또는 귀납법(歸納法)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말, 개, 닭, 소는 죽는다 말, 개, 닭, 소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동물은 죽는다와 같다. 그런데 이 귀납추리(歸納推理)의 결론(그러므로 모든 동물은 죽는다)이 판단형식에서 볼 때 올바른 것일까. 이 결론은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이다. 따라서 소개념(S)인 동물은 주연(周延)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귀납법에서는 부주연(不周延)이다. 동물의 일부(一部) 뿐이기 때문이다. 그림 10-3과 같이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이 아니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림 10-5와 같이 특칭긍정판단(特稱肯定判斷)으로 되어 있다.


즉 판단형식에서 보면, 이 간접추리는 잘못되어 있다. 그러나 자연계에는 소수의 관찰로부터 전체의 성질을 인식하게 하는 제일성(齊一性)의 원리(原理)가 작용하고 있고, 또 자연계에 작용하는 인과율(因果律)이 동일원인(同一原因)으로부터 동일(同一)결과의 상정(想定)을 가능하게 하고 있으므로, 귀납추리는 비록 잘못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대체로 정당하다는 것이 체험에 의하여 증명되고 있다. 이것이 귀납추리(歸納推理)이다. 다음은 유비추리(類比推理, 類推)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3) 유비추리(類比推理, 유추(類推))


추리(推理)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유비추리(類比推理)이다. 지금 여기에 A와 B라는 두 개의 관찰의 대상(對象)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관찰에 의해서 그 A, B가 다 함께 공통적인 성질(例컨대 a,b, c,d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하고, A에는 B에 없는 또 하나의 성질 `e'가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하자. 그리고 B는 이 이상 상세히 관찰(觀察)하기 힘든 조건하에 있다고 한다면, 이 때 관찰자(觀察者)는 A, B가 a,b,c,d의 성질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A가 가지고 있는 `e'의 성질을 B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추리를 유비추리(類比推理, 또는 간단히 유추(類推))라고 한다. 예를 들면, 지구(地球)와 화성(火星)을 비교하여 화성(火星)에도 지구와 같이 생물이 있을 것이라고 추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양자가 다음과 같이 공통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즉 a)양자가 공히 유성(遊星)이며 자전(自轉)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공전(公轉)한다. b)대기를 가지고 있다. c)거의 비슷한 기온을 가지고 있다. d)4계(四季)의 변화가 있고 물도 있다는 등의 특징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이 사실을 근거로 하여, 지구에 생물이 있으므로, 화성(火星)에도 생물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推論)할 수 있다. 이것이 유추(類推), 즉 유비추리(類比推理)이다.


그런데 이 유추(類推)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추리이다. 오늘날의 발달된 과학적 지식도 초기에는 이 유추(類推)에 의해 얻어진 것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가정생활, 단체생활, 학교생활, 기업생활, 창작활동 등에 있어서 이 유추(類推)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 유추(類推)의 정확성이 필요하게 된다. 그 정확성의 필요조건은 다음과 같다.


i) 비교되는 사물(事物)에 유사점이 되도록 많을 것.

ii) 그 유사점은 우연적이 아니고 본질적일 것.

iii) 양자의 유사점에 대하여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이 양자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 등이다.


이상으로 유추(類推)에 관한 설명을 마친다. 형식논리학에는 이 이외에도 직접추리(直接推理) 가언적삼단논법(假言的三段論法) 선언적삼단논법(選言的三段論法) 오류론(誤謬論) 등 취급해야 할 항목이 더 있지만, 여기서는 단지 형식논리학의 요점만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 정도에서 끝내고자 한다.

 

一. 종래의 논리학(論理學)


본(本) 항목에서는 주로,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 헤겔논리학(論理學), 마르크스주의논리학(主義論理學),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 선험적논리학(先驗的論理學)을 다루려 한다. 그 중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은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비교적 충분한 설명을 가할 것이나, 그 외의 것은 간단히 요점만 소개한다. 그 이유(理由)는 인식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서, 단지 종래의 논리학이 지녔던 문제점들에 대하여 통일논리학이 해결해 냈음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그 문제점에 관한 부분(部分)만을 소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헤겔논리학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룬 것처럼 보이는 것은, 통일논리학에서 볼 때 헤겔논리학 전체가 문제 투성이이기 때문에, 문제의 요점만을 다룬다는 것이 좀 길어졌을 뿐이다. 따라서 본(本)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 자체만을 이해하는 데는 본항(本項)인 종래의 논리학(論理學)은 생략해도 좋을 것임은 물론이다.


1.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세워진 논리학(論理學)으로서 순수한 생각(思考; 판단이나 추리)의 형식이나 법칙만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판단이나 추리의 내용과 대상은 일체 취급하지 않고 있다. 칸트는 그런데 논리학이 고대로부터 확실한 길을 걸어온 것은 이 학설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조금도 후퇴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더라도 명백하다…… 더욱이 논리학에 대해서 기이(奇異)한 것은 이 학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진보(進步)를 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자기완료(自己完了)를 이루어 놓은 듯한 인상(印象)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1)라고 말 할 정도로 형식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약 2천년간 거의 변경됨이 없이 계속되어온 것이다. 그것은 그 논리학(論理學)이 사고에 관한 한,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진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일논리학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먼저 형식논리학을 소개하는 것은 그 논리학(論理學)의 어느 부분이 진리(眞理)의 면인가를 명백히 함과 동시에 그 불충분한 점도 나중에 지적하기 위함이다. 다음에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의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사고(思考)의 원리(原理)


형식논리학은 사고의 법칙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 원리를 들고 있다.


① 동일률(同一律; principle of identity)

② 모순률(矛盾律; principle of contradiction)

③ 배중률(排中律; principle of excluded middle)

④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동일률(同一律)은 A는 A이다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예컨대 이것은 꽃이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것은 현상(現象)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꽃이라는 사실 그 자체는 불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고 그 자체의 일치성(一致性)도 의미한다. 즉 꽃이라는 개념은 어떠한 경우에도 동일(同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새는 동물이다라는 식으로 두 가지의 개념(새와 동물)이 일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모순률(矛盾律)은 A는 非A가 아니다라는 형식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동일률(同一律)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非꽃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것은 꽃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며, 새는 非동물(동물이 아닌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도 새는 동물이다라는 말과 같다. 한 쪽은 긍정(肯定)的인 표현이고, 다른 쪽은 부정적(否定的)인 표현이지만 내용은 같다.


배중률(排中律)은 A는 B이거나 非B이거나의 어느 쪽이다라고 표현된다. 그 의미는 B와 非B라는 두 가지 모순(矛盾)되는 주장 사이에 第三의 주장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은, 라이프니츠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진 법칙으로서 모든 사고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존재(存在)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존재(存在)하는 모든 것은 그 존재의 충분한 이유를 가진다라고 하는 인과율(因果律)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 이유(理由)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근거(根據)나 논거(論據)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원인(原因)을 의미한다. 근거는 귀결(歸結)에 대한 상대적 개념(槪念)이며, 원인은 결과에 대한 상대적 개념(槪念)이다. 따라서 이 법칙은, 사고에는 반드시 그 논거(論據)가 있고 존재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법칙(法則; 原理)이 있으나 그것들은 모두 이 네 가지의 근본원리에서 연역(演繹)되어 나온 것이다. 형식논리학은 또 세 가지의 주요한 요소(要素, 사고(思考)의 三요소(要素))-개념(concept), 판단(判斷; judgment), 추리(推理; inference)-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다음에 설명하고자 한다.


(2) 개념(槪念)


개념(槪念)이란 사물의 본질적인 특징을 파악한 일반적인 표상(表象)(또는 사고(思考))을 의미하는데, 개념에는 내포(內包)(intension)와 외연(外延;extension)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내포는 각 개념에 공통된 성질을 말하며, 외연(外延)은 그 개념이 적용되는 대상의 범위를 말한다. 이것에 관하여 생물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자 한다.


생물은 동물, 척추동물, 포유류, 영장류, 인류 등과 같이 여러 단계의 개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생물은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다. 동물에는 물론 생명(生命)이 있으며, 그 외에 감각기관(感覺器官)이 있다. 척추동물은 거기에 더하여 척추가 있다. 포유류에는 거기에 더하여 포유(哺乳)를 한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영장류(靈長類)는 그 위에 사물을 쥐는 능력을 더 가지고 있다. 인류에게는 이성(理性)이 더 있다. 이와 같이 각기의 개념을 대표하는 각 단계의 생물은 공통적인 성질을 갖고 있는데, 어떤 개념의 이러한 공통된 성질을 그 개념의 내포(內包)라고 한다.


생물에는 동물과 식물이 있고, 동물에는 연체동물(軟體動物), 절지동물(節肢動物), 척추동물(脊椎動物) 등이 있으며, 척추동물에는 파충류, 어류, 포유류 등이 있고, 포유류에는 영장류나 식육류(食肉類) 등이 있으며, 영장류에는 여러 가지 원숭이류와 인류가 있다. 이상은 어떤 개념이 적용되는 대상의 범위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러한 범위를 그 개념의 외연(外延)이라고 하며 이것을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10-1과 같다.


어느 두 가지의 개념을 비교할 때, 내포(內包)가 보다 넓고 외연(外延)이 보다 좁은 개념을 종개념(種槪念)(하위개념(下位槪念)이라 하고, 외연(外延)이 보다 넓고 내포가 보다 좁은 것을 유개념(類槪念; 上位槪念)이라고 한다. 예컨대 척추동물과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의 개념을 비교하면, 척추동물은 유개념(類槪念)이며, 그 외의 것은 종개념(種槪念)이다. 또 동물이라는 개념과 연체동물, 절족동물, 척추동물 등의 개념을 비교하면 동물은 유개념(類槪念)이고 그 외의 것은 종개념이 된다. 또한 생물이라는 개념과 동물이나 식물의 개념을 비교하면 생물은 유개념(類槪念), 동물 식물은 종개념(種槪念)이 된다. 이와 같은 조작(操作)을 몇번이고 반복해 가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최고의 類개념(槪念)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의 그 최고의 유개념을 범주(範疇)(카테고리, kategorie)라고 한다(그림 10-2).

 
또 선천적(先天的)으로 이성이 구비하고 있는 순수개념, 즉 경험에 의하지 않는 순수개념도 역시 범주라고 한다. 범주의 종류는 철학자에 따라 다르다. 왜냐하면 철학자의 사상체계에 따라서 자신이 만들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개념을 범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범주를 처음 확립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며 그는 문법(文法) 을 단서로 하여 다음과 같은 10개의 범주를 세웠다.


① 실체(實體; substance)

② 양(量; quantity)

③ 질(質; quality)

④ 관계(關係; relation)

⑤ 장소(場所; place)

⑥ 시간(時間; time)

⑦ 위치(位置; position)

⑧ 상태(狀態; condition)

⑨ 능동(能動; action)

⑩ 피동(被動; passivity) 등이 그것이다.


근세(近世)에 이르러 칸트는 다음과 같은 12개(4綱 12目)의 범주를 세웠다. 이 12범주는 칸트의 12의 판단형식(判斷形式)(후술(後述))에서 도출(導出)한 것이다.


I. 분량(分量)……단일성(單一性; Einheit) 다수성(數多性; Vielheit) 전체성(全體性; Allheit)

II. 성질(性質)……실재성(實在性; Realitt) 부정성(否定性; Negation) 제한성(制限性; Limitation)

III. 관계(關係)……실체성(實體性; Substanz) 인과성(因果性; Kausalitt) 상호성(相互性; Gemeinschaft)

IV. 양상(樣相)……가능성(可能性; Moglichkeit) 현실성(現實性; Wirklichkeit) 필연성(必然性; Notwerdigkeit)


(3) 판단(判斷)


1) 판단(判斷)이란 무엇인가


판단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어떠하다고 주장하는 일과 두개념이 일치(一致) 또는 불일치(不一致)의 구별을 분명히 단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판단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명제(命題; proposition)이다.


판단(判斷)은 주어개념(主語槪念)(主辭, 主語, subject), 술어개념(述語槪念)(賓辭, 述語, predicate), 그리고 계사(繫辭)(연결사(連結辭; copula)의 3요소로 되어 있다. 사고의 대상이 되는 사물이 주어개념이며, 그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 술어개념이며, 이 두 개념을 연결하는 것이 계사이다. 일반적으로 주어개념을 S, 술어개념을 P, 계사(繫辭)를 `-'로 표시하여 판단을 S-P로 정식화(定式化)한다.


2) 판단(判斷)의 종류(種類)


판단의 종류로서는 칸트의 12가지의 판단형식(4綱 12형식(形式))이 있으며, 이것을 오늘날의 형식논리학에서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칸트의 12가지의 판단형식이란 다음과 같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칸트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은 4강(綱)인 분량(分量), 성질(性質), 관계(關係), 양상(樣相)의 항목에서 각각 3개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을 세운 것이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여러 가지 사건이나 상황에 직면(直面)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사고(思考)한다. 그 사고(思考)의 내용이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千差萬別)인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 사고(思考)의 내용이 비록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 하더라도 판단(判斷)에 관한 한, 그 사고는 모두 상술한 네가지 항목의 판단의 묶음밖에 안 된다. 즉 분량(分量; 많으냐, 적으냐)에 관한 판단(判斷)과, 성질(性質)(…… 이냐, 아니냐)에 관한 판단(判斷)과, 개념의 상호관계(相互關係)에 관한 판단(判斷)과, 그리고 樣相(확실성이 어떠한가)에 관한 판단(判斷)의 묶음이다.


이 네 개의 각각의 항목에서 세 개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이 성립(成立)되는데, 이들의 판단이 대부분 S-P의 정식으로 표시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관계의 항목(項目)下의 가언판단과 선언판단은 각각 두 개의 판단을 연결하여 하나의 명제(命題)를 만들고 있으므로 S-P의 정식(定式)을 사용하지 않고 A-B, C-D 또는 A-B, A-C로 표시한다.


3) 기본적(基本的) 형식(形式)


이상의 판단형식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정언판단(定言判斷)으로서, 여기에 전칭(全稱)과 특칭(特稱)의 양(量)에 관한 판단형식과, 긍정과 부정의 질(質)에 관한 판단형식을 조합하면, 다음의 4종류의 판단이 이루어진다.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 모든 S는 P이다.(A)

전칭부정판단(全稱否定判斷) 모든 S는 P가 아니다.(E)

특칭긍정판단(特稱肯定判斷) 어떤 S는 P이다.(I)

특칭부정판단(特稱否定判斷) 어떤 S는 P가 아니다.(O)


그런데, 상기(上記)의 12가지 판단형식中의 선언판단과 가언판단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정언판단(定言判斷)으로 고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이 정언판단을 질(質)과 양(量)의 입장에서 분류하면 가언판단, 선언판단 이외의 형식은 모두 이상의 4개의 형식(AEIO)에 수렴되게 된다. 그래서 이 4개의 AEIO의 형식을 판단(判斷)의 기본적(基本的) 형식(形式)이라고 한다. 여기의 A, E, I, O라는 기호는, 라틴어의 affirmo(긍정(肯定))와 nego(否定)의 처음과 두번째 모음(母音)에서 각각 취한 것이다.


4) 주연(周延)과 부주연(不周延)


정언판단(定言判斷)에 있어서 그 판단(判斷)이 오류(誤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주어와 술어의 외연(外延)의 관계가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판단에 있어서 개념이 대상의 전체 범위에 걸쳐서 적용되는 경우도 있고, 일부분(一部分)에 국한되어서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주개념(主槪念), 빈개념(賓槪念)이 전칭(全稱)을 표시하는 경우, 그 개념의 적용범위는 그 외연(外延) 전체(全體)에 미치게 되므로 이 경우를 주연(周延) 또는 주연(周延)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념이 특칭(特稱)을 표시하는 경우 그 개념의 적용범위는 그 외연(外延)의 일부에만 미치게 된다. 이 경우를 부주연(不周延) 또는 부주연(不周延)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주연(周延)과 부주연(不周延)은 판단에 있어서 주개념(主槪念)과 빈개념(賓槪念)의 관계를 아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그 이유는 판단에는 S(主槪念)와 P(賓槪念)가 같이 주연(周延)해도 좋은 경우가 있으며, S와 P가 같이 주연(周延)해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고, 또 S와 P중 일방(一方)만이 주연(周延)해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例컨대, 모든 인간(S)은 동물(P)이다에 있어서 S는 주연(周延), P는 부주연(不周延)이다. 이것은 올바른 판단이 된다. 이것은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A)의 주빈관계(主賓關係)이다(그림 10-3).


또 모든 조류(S)는 포유동물(P)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있어서는 주빈개념(主賓槪念)이 다같이 주연(周延)되어 있다. 이것은 전칭부정판단(全稱否定判斷)(E)의 주빈관계이다(그림 10-4).


어떤 꽃(S)은 붉다(P)에서 S는 不周延, P도 不周延이다. 이것은 특칭긍정판단(特稱肯定判斷(I))의 주빈관계이다(그림 10-5).


또, 어떤 새(S)는 육식동물(P)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있어서 S의 일부(主槪念의 外延의 일부)가 P(빈개념)의 전범위내(全範圍外)에 있음을 표시하고 있다. 즉, S는 부주연(不周延)이며, P는 주연(周延)하고 있다. 이것은 특칭부정판단(特稱否定判斷(O))의 주빈관계이다


이상의 AEIO(전칭긍정판단(A), 전칭부정판단(E), 특칭긍정판단(I), 특칭부정판단(O))의 판단에 있어서 주빈개념(主賓槪念)의 주연(周延)과 부주연(不周延)의 관계는 그대로 규칙(規則)으로 되어 있으며, 이 규칙을 벗어나면 그 판단은 오류(誤謬)에 빠진다. 예컨대, 인자(仁者)는 모두 호산가(好山家)이다라는 판단에서 그러므로 모든 好山家(S)는 仁者이다라는 판단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면, 不當周延의 허위에 빠지기 때문에 그 판단은 잘못이다.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에서 S는 주연(周延), P는 부주연(不周延)인데도 불구하고 S도 P도 주연(周延)되고 있기 때문이다.


(4) 추리(推理)


추리(推理)란 이미 알려진 판단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판단을 도출(導出)하는 사고를 말한다. 즉 이미 알려진 판단을 이유로 하여 그러므로 ~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을 추리(推理)라고 한다. 이 경우 이미 알려진 판단을 전제(前提)라고 한다. 이 추리(推理)에는 전제(前提)가 되는 판단이 하나만 있는 경우와, 둘 이상 있는 경우가 있어서 전자(前者)를 직접추리(直接推理), 후자(後者)를 간접추리(間接推理)라고 한다. 간접추리에는 연역추리, 귀납추리, 유비추리가 있다. 여기서는 간접추리중(間接推理中)의 연역추리(演繹推理), 귀납추리(歸納推理), 유비추리(類比推理)만을 간단히 소개한다.


1) 연역추리(演繹推理)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간접추리는 2개이상의 전제(前提)에서 결론을 도출(導出)하는 것인데, 이 때 보편적, 일반적 원리를 가진 전제(前提)에서 특수한 내용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추리를 연역추리(演繹推理) 또는 삼단논법(三段論法)이라고 한다(또는 추론식(推論式)이라고도 한다). 이 삼단논법(三段論法)에 있어서 이유가 되는 전제(前提)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의 전제를 대전제(大前提)라고 하고, 다음의 전제를 소전제(小前提)라고 한다. 그리고 대전제에는 대개념(P)과 중개념(M)이, 소전제에는 소개념(S)과 중개념(M)이 포함되며, 결론(結論)에는 소개념(S), 대개념(P)이 포함되게 된다. 여기서 중개념(M)을 매개념(媒槪念)이라고도 한다. 例를 들면 다음과 같다.

대전제(大前提):모든 사람(M)은 죽는다(P)

소전제(小前提):모든 영웅(英雄(S))은 인간(M)이다

결론(結論): 고로 모든 영웅(S)은 죽는다(P)


이것을 부호(符號)만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모든 M-P……… (M는 P이다)

모든 S-M……… (S는 M이다)

∴모든 S-P……… (∴ S는 P이다)


이 삼단논법(三段論法)에 있어서 대개념(P)의 외연(外延)이 가장 크고, 중개념(M)이 그 다음으로 크며, 소개념(S)의 외연(外延)이 가장 좁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그림 10-7).


2) 귀납추리(歸納推理; 귀납법)


간접추리에 있어서 2개이상의 전제(前提)가 특수한 사실을 포함하는 경우, 그 특수한 내용으로부터 보다 보편적(普遍的)인 진리(眞理)를 결론으로 도출(導出)하는 추리 방법을 귀납추리(歸納推理) 또는 귀납법(歸納法)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말, 개, 닭, 소는 죽는다 말, 개, 닭, 소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동물은 죽는다와 같다. 그런데 이 귀납추리(歸納推理)의 결론(그러므로 모든 동물은 죽는다)이 판단형식에서 볼 때 올바른 것일까. 이 결론은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이다. 따라서 소개념(S)인 동물은 주연(周延)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귀납법에서는 부주연(不周延)이다. 동물의 일부(一部) 뿐이기 때문이다. 그림 10-3과 같이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이 아니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림 10-5와 같이 특칭긍정판단(特稱肯定判斷)으로 되어 있다.


즉 판단형식에서 보면, 이 간접추리는 잘못되어 있다. 그러나 자연계에는 소수의 관찰로부터 전체의 성질을 인식하게 하는 제일성(齊一性)의 원리(原理)가 작용하고 있고, 또 자연계에 작용하는 인과율(因果律)이 동일원인(同一原因)으로부터 동일(同一)결과의 상정(想定)을 가능하게 하고 있으므로, 귀납추리는 비록 잘못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대체로 정당하다는 것이 체험에 의하여 증명되고 있다. 이것이 귀납추리(歸納推理)이다. 다음은 유비추리(類比推理, 類推)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3) 유비추리(類比推理, 유추(類推))


추리(推理)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유비추리(類比推理)이다. 지금 여기에 A와 B라는 두 개의 관찰의 대상(對象)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관찰에 의해서 그 A, B가 다 함께 공통적인 성질(例컨대 a,b, c,d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하고, A에는 B에 없는 또 하나의 성질 `e'가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하자. 그리고 B는 이 이상 상세히 관찰(觀察)하기 힘든 조건하에 있다고 한다면, 이 때 관찰자(觀察者)는 A, B가 a,b,c,d의 성질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A가 가지고 있는 `e'의 성질을 B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추리를 유비추리(類比推理, 또는 간단히 유추(類推))라고 한다. 예를 들면, 지구(地球)와 화성(火星)을 비교하여 화성(火星)에도 지구와 같이 생물이 있을 것이라고 추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양자가 다음과 같이 공통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즉 a)양자가 공히 유성(遊星)이며 자전(自轉)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공전(公轉)한다. b)대기를 가지고 있다. c)거의 비슷한 기온을 가지고 있다. d)4계(四季)의 변화가 있고 물도 있다는 등의 특징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이 사실을 근거로 하여, 지구에 생물이 있으므로, 화성(火星)에도 생물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推論)할 수 있다. 이것이 유추(類推), 즉 유비추리(類比推理)이다.


그런데 이 유추(類推)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추리이다. 오늘날의 발달된 과학적 지식도 초기에는 이 유추(類推)에 의해 얻어진 것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가정생활, 단체생활, 학교생활, 기업생활, 창작활동 등에 있어서 이 유추(類推)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 유추(類推)의 정확성이 필요하게 된다. 그 정확성의 필요조건은 다음과 같다.


i) 비교되는 사물(事物)에 유사점이 되도록 많을 것.

ii) 그 유사점은 우연적이 아니고 본질적일 것.

iii) 양자의 유사점에 대하여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이 양자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 등이다.


이상으로 유추(類推)에 관한 설명을 마친다. 형식논리학에는 이 이외에도 직접추리(直接推理) 가언적삼단논법(假言的三段論法) 선언적삼단논법(選言的三段論法) 오류론(誤謬論) 등 취급해야 할 항목이 더 있지만, 여기서는 단지 형식논리학의 요점만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 정도에서 끝내고자 한다.

 

2. 헤겔논리학(論理學)


(1) 헤겔논리학의 특징(特徵)


헤겔논리학의 특징은 사고(思考) 자체의 법칙과 형식에 관한 이론이 아니고, 사고(思考)의 발전의 법칙과 형식에 관한 이론이라는 점에 있다. 게다가 그 사고(思考)는 인간의 사고(思考)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고(思考)이다. 따라서 헤겔논리학은 하나님의 사고가 어떤 법칙이나 형식에 의해 발전하였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하나님의 사고는 하나님 자체(自體)에 관한 사고로부터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자연에 관한 사고로 발전하고, 이어서 역사에 관한 사고, 국가에 관한 사고로 발전하여, 드디어 예술, 종교, 철학에 관한 사고로까지 발전한다. 이러한 사고의 발전에 관한 법칙과 형식이 바로 헤겔논리학의 특징이다.


헤겔자신이 언급한 바와 같이 헤겔논리학은 세계창조 이전의 하나님의 사고의 전개를 다루고 있으며, 天上의 논리(論理) 즉 창조 이전의 영원한 본질(하나님)속에 있는 서술(敍述)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형식논리학과 같이 단순히 형식적인 사고의 법칙만을 다룬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고의 전개라고 하면서도 현실적인 것의 가장 보편적인 여러 규정(規定), 여러 법칙(法則)을 다루고자 했던 것이다.


(2) 헤겔논리학의 골격(骨格)


헤겔논리학은 [유론(有論)], [본질론(本質論)], [개념론(槪念論)]의 3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 부문은 또 각각 세분화되어 있다. 즉 [유론(有論)]은 [질(質)], [양(量)], [질량(質量)]으로, [본질론(本質論)]은 [본질(本質)], [현상(現象)], [현실성(現實性)]으로, [개념론(槪念論)]은 [주관적개념(主觀的槪念)], [객관적개념(客觀的槪念)], [이념(理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또 각각 세분화되어 있다. 예컨대 [유론(有論)]의 [질(質)]은 [유(有)], [정유(定有)], [향자유(向自有)]로 되어 있고, 또 [유(有)]는 [유(有)], [무(無)], [성(成)]으로 성립되어 있다.


그런데 헤겔에 있어서, 논리전개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 유(有)-무(無)-성(成)의 변증법이다. 이 삼단계를 통과하여 [유(有)]가 [정유(定有)]로 이행한다. 그리고 [정유(定有)]에도 삼단계가 있어서, 그것을 통과하면 [정유(定有)]는 [향자유(向自有)]로 이행한다. [向自有]에도 삼단계가 있어서 이것을 통과하면[질(質)]이[양(量)]으로 옮겨진다. [양(量)]이 삼단계를 통과하여[질량(質量)]으로 옮겨지고[질량(質量)]이 다시 삼단계를 통과하면 [유(有)]에 관한 이론이 끝난다.


다음은[본질(本質)]에 관한 이론인데,[본질(本質)]에서[현상(現象)]으로[현상(現象)]에서[현실성(現實性)]으로 이행한다. 다음은 [개념(槪念)]에 관한 이론이 된다. 개념은 [주관적개념]에서 [객관적개념]으로, [객관적개념]에서 [이념(理念)]에로 이행한다. [理念]中에는[생명(生命)],[인식(認識)],[절대이념]이라는 3단계가 있다. 이렇게 해서 [절대이념]이 논리의 발전에 있어서 최후의 도달점이 된다.


다음에 논리의 세계 즉 이념의 세계는, 참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하여 오히려 자기를 부정하고 자연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헤겔은 이것을, [이념자신체(理念自身體)가 다른 것으로 이행해 간다]고 말하고, 자연(自然)은[이념의 자기소외, 자기부정](selbstentfremdung, selbstverneinung der ldee), 또는 타재형식(他在形式)(die form des Andersseins)에 있어서의 이념이라고 하였다. 자연계에 있어서는 역학(力學), 물리학(物理學), 생리학(生物學)의 삼단계를 통과한다. 이와 같이 자기를 부정하고 스스로 밖으로 나타나서 자연계가 되었던 理念은, 다시 자기(자연(自然))를 부정하여 인간이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이 되어서 자기를 회복한 이념이 정신이다. 정신은 주관적정신, 객관적정신, 절대정신의 삼단계를 거치는데 여기의 절대정신은 정신 발전의 최후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절대정신은 예술, 종교, 철학의 삼단계를 거쳐서 드디어 본래의 자기(自己)(절대이념)로 복귀한다.


(3) 유(有)-무(無)-성(成)의 변증법


헤겔논리학에 있어서는 유(有)에서 출발하여 절대이념(絶對理念)에 이르기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이 有는 유론(有論)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바, 이 유론(有論)은 유(有)-무(無)-성(成)의 변증법으로 시작된다. 따라서 헤겔논리학의 성격(性格)을 알기 위해서는 이 유(有)-무(無)-성(成)의 변증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이 헤겔논리학(변증법)의 출발점인 동시에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헤겔논리학은 有에서 시작된다. 有는 단지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가장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전혀 무규정성(無規定性)의 공허한 사고(思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정적인 것, 즉 無라고 한다. 헤겔에 있어서의 有와 無는 다같이 공허한 개념이며, 양자사이에는 거의 구별이 없다. 다음에 헤겔은 有와 無의 통일을 成이라고 하였다. 그에 있어서는, 有도 無도 모두 공허하고 추상적이지만, 양자는 대립의 상태에서 통일을 이룬 다음 최초의 구체적인 사고(思考)를 이루어서 成이 된다. 이 有-無-成의 논리를 기본으로 하여, 보통 헤겔의 방법이라고 알려진 정-반-합(正-反-合), 긍정-부정-붖정의 부정(긍정(肯定)-否定-否定의 否定) 또는 定立-反定立-綜合의 변증법적 논리가 성립된다.


(4) 정유(定有)에의 이행과 정유(定有)


다음은 정유(定有)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정유(定有)란 일정한 형태를 가진 有이며, 구체적으로 고찰된 有이다. 有가 단지 있다를 의미하는데 대하여 정유(定有)는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有, 無, 成에서 정유(定有)에로의 이행은, 요컨대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成은 그 속에 有와 無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 모순에 의해 成은 자기를 지양하여, 즉 한층 더 높여져서 정유(定有)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유(定有)란 특정한 有, 규정된 有이다. 헤겔은 이 定有의 규정성을 質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비록 有가 특정하다 하더라도 여기서 고찰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규정성을 말하며 규정성일반(規定性一般)에 불과하다.


有를 정유(定有)로 만드는 규정성은, 한편에서는 어떤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내용인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한정된 것 즉 제한(制限)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만드는 質은, 어떤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실재성(實在性)이고, 한정된 것 혹은 다른 것이 아니라는 면에서 보면 부정성(否定性)이다. 따라서 정유(定有)에 있어서는 실재성(實在性)과 부정성(否定性)의 통일, 긍정과 부정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에 정유(定有)는 향자유(向自有)로 이행한다. 향자유(向自有)란, 다른 것과 연관되거나 또 다른 것으로 변화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에 머무르고 있는 有를 말한다.


(5) 有-본질(本質)-개념(槪念)


헤겔이 유론(有論)에서 논한 것은,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변화의 논리(論理), 생성(生成)?소멸(消滅)의 논리에 관한 것이었다. 다음에 유론(有論)은 본질론(本質論)으로 이행하는데, 거기서는 사물속에 있는 불변한 것(본질(本質)), 그리고 사물의 상호관련성을 논(論)하고 있다. 그 다음에 유론(有論)과 본질론(本質論)의 통일로서의 개념론(槪念論)으로 이행한다. 여기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면서도 자기라는 것을 버리지 않는 사물의 존재방식, 즉 자기발전(自己發展)이 고찰되고 있다. 이 발전의 원동력을 이루는 것이 개념(槪念)이며, 생명(生命)이다.


왜 하나님의 사고가 有-본질(本質)-개념(槪念)이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사물을 외측(外側)으로부터 내측(內側)으로 관심(關心)을 옮겨가는, 인간의 인식의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어떤 꽃을 인식하는 경우, 먼저 외적이고 현상적(現象的)으로 꽃의 존재를 파악한 다음 꽃의 내적인 본질을 이해한다. 그러고나서 꽃의 존재와 꽃의 본질이 하나가 된 꽃의 개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6) 논리(論理)-자연(自然)-정신(精神)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헤겔에 의하면, 자연이란 타재형식(他在形式)에 있어서의 이념(理念), 자기소외(自己疎外)된 이념이다. 따라서 논리학을 正이라 하면 자연철학은 反이 된다. 다음에 이념(理念)은 인간을 통하여 다시 의식(意識)과 자유를 회복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정신이다. 따라서 정신철학은 合이 된다.


자연계도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발전을 하는 바, 그것이 역학(力學), 물리학, 생물학의 삼단계이다. 그러나 이 3단계는 자연계 그 자체가 발전하는 과정이 아니며, 자연계의 배후에 있는 이념이 출현되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먼저 힘의 개념이, 다음에 물리적 현상의 개념이, 그 다음에 생물의 개념이 나타난다는 삼단계 과정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인간이 출현하는 바, 인간을 통하여 정신이 발전한다. 이것이 즉 주관적(主觀的)정신(精神), 객관적정신(客觀的精神), 절대적정신(絶對的精神)의 삼단계의 발전이다. 주관적 정신이란 인간개인의 정신이며, 객관적 정신은 개체를 넘어 사회화된 정신, 대상화된 정신을 말한다.


객관적 정신에는 법(法), 도덕(道德), 윤리의 삼단계가 있다. 법(法)이란 국가에 있어서의 헌법(憲法)과 같은 정비된 法이 아니며, 어떤 집단(集團)으로서의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초보적인 형식(形式)을 말한다. 다음에 인간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도덕적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직도 다분(多分)히 주관적인 면(개인적인 면)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規範)으로서의 윤리가 나타난다.


윤리의 첫째 단계는 가정이다. 가정에서는 사랑으로 가족이 서로 결합되어 있고, 자유가 허락되어 있다. 둘째 단계는 시민사회(市民社會)이다. 그런데 시민사회에 이르면 개인의 이해(利害)가 서로 대립(對立)하고, 자유는 구속(拘束)되게 된다. 그래서 셋째 단계로서 가정과 시민사회를 종합하는 국가가 출현하게 된다. 헤겔은 국가를 통하여 이념이 완전히 자기를 실현(實現)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념이 실현된 국가가 이상국가(理想國家)이다. 거기에서는 인간의 자유가 완전히 실현된다.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것이 절대정신인 바, 절대정신은 예술, 종교, 철학의 삼단계를 통하여 자신을 전개한다. 그리고 철학에 이르러 이념(理念)은 완전히 자기를 회복한다. 이와 같이 하여 이념은 변증법적운동을 통하여 원점으로 돌아간다. 즉 자연, 인간, 국가, 예술, 종교, 철학 등의 여러 단계를 거쳐서 드디어 처음의 완전한 절대이념(絶對理念; 신(神))으로 돌아간다. 이 귀환이 이루어짐으로써 발전의 전과정(全過程)은 끝난다.6)(그림 10-8)


(7) 헤겔논리학(論理學)의 골격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헤겔변증법의 시발점은 有-無-成이라는 Triade(3단계過程)이며, 이 삼단계는 모순(矛盾)(대립물(對立物)에 의한 부정)에 의한 정-반-합(正-反-合)의 삼단계이다. 이와 같은 Triade, 즉 삼단계과정이 레벨을 높여가면서 반복(反復)함으로써 논리학(論理學)-자연철학(自然哲學)-정신철학(精神哲學)이라는 최고의 Triade를 형성한다. 여기의 논리학(論理學)을 구성(構成)하는 3단계과정(過程)은 有-본질(本質)-개념(槪念)이며, 이 개념(絶對理念)의 단계에서 절대정신(絶對精神)(신(神)의 사고(思考))은 理念(이념; ldee) 즉 절대이념이 된다. 그런데 절대정신(絶對精神)은 논리학(論理學)의 단계를 거친 후 절대이념이 되어서 외부에 나타난 다음(外化하여) 자연계(自然界)가 되고(자연철학(自然哲學)), 더욱 발전하여 인간을 통하여 주관적정신(主觀的精神)-객관적정신(客觀的精神)-절대적정신(絶對的精神)이 된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처음 출발하였던 자기 자신, 즉 절대이념(絶對理念)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자연철학(自然哲學)이나 정신철학(精神哲學)이 논리학(論理學)과는 전연 별개의 분야와 같이 생각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논리학은 최고의 3단계과정(過程)의 처음 단계긴 하지만, 그 논리학(論理學)속에 자연자연(自然哲學)이나 정신철학(精神哲學)의 원형(原型)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절대정신(絶對精神)은 有-본질(本質)-개념(槪念)이라는 Triade의 개념의 단계에서 理念(ldea)이 되지만, 이 이념은 자연철학(自然哲學)과 정신철학(精神哲學)의 내용의 전부를 원형(原型)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곧 우주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 정신(精神)이다. 그래서 실제의 자연철학(自然哲學)이나 정신철학(精神哲學)은 이 이념(理念) 속의 원형이 그대로 외부에 나타난 영상(映像)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영화 필름의 영상(映像)이, 스크린에 비춰진 것이 영화(映畵)인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헤겔의 논리학은 최고의 Triade의 초기(初期)단계이며, 자연철학(自然哲學)이나 정신철학(精神哲學)과는 별개이면서 그것들의 원형(原型)으로서, 전부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헤겔철학체계 전체를 논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절대정신의 발전을 다루는, 이와 같은 헤겔의 변증법은 보통 관념변증법(觀念辨證法)으로 불리운다.


(8) 헤겔변증법의 원환성(圓環性)과 법칙(法則)과 형식(形式)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헤겔변증법은 정-반-합(正-反-合)의 삼단계 발전의 반복(反復)을 통하여, 높은 수준에서 원래의 위치에 돌아오는 복귀성(復歸性)의 운동(運動)이며, 원환성(圓環性)의 운동(運動)이다. 이것은 낮은 레벨의 Triade에 있어서나 높은 레벨의 Triade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헤겔변증법의 또 하나의 특징(特徵)은 발전운동(發展運動)이 圓環性(복귀성)임과 동시에 완결성(完結性)이라는 점이다. 절대정신이 자기 내 복귀(自己 內 復歸)를 끝내면 그 이상 발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헤겔논리학에 있어서의 법칙(法則)과 형식(形式)에 대하여 살펴보자.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에 있어서의 법칙은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 등이었다. 그리고 형식(形式)은 판단형식(判斷形式)이나 추리형식(推理形式; 間接推理, 直接推理 등)이었다. 그런데 헤겔논리학의 법칙은 변증법의 내용인 모순(矛盾)의 법칙 양(量)의 질(質)에의 전화(轉化)의 법칙 부정(否定)의 부정(否定)의 법칙 등이며, 형식(形式)은 변증법의 발전형식인 정-반-합(正-反-合)의 삼단계과정에 의한 발전형식(發展形式)을 의미한다. 즉 헤겔논리학의 그 법칙(法則)은 형식논리학과는 달리 모순(矛盾)의 법칙(法則), 量의 質에의 전화의 법칙, 否定의 否定의 법칙 등이며, 그 형식(形式)은 삼단계발전(三段階發展)의 형식이다. 이와 같이 3단계발전의 형식을 다루는 논리학(論理學)은 보통 변증법적논리학(辨證法的論理學)이라 불리운다. 이상으로 헤겔논리학의 설명을 전부 마친다.

 

3. 마르크스주의(主義) 논리학(論理學)


헤겔에 의하면, 개념이 물질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자연이므로 관념(觀念, 개념(槪念))은 객관적존재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반대로 물질이야 말로 객관적인 존재이며, 관념(槪念)은 물질세계가 인간의 의식(意識)에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물질의 발전형식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헤겔의 관념변증법에 대하여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이라고 부른다.


이 유물변증법을 근거로 하여 마르크스주의(主義) 논리학이 세워진다. 그런데 유물변증법도 변증법(辨證法), 즉 正·反·合의 3단계과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관념변증법(觀念辨證法)과 동일하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논리학도 역시 변증법적논리학(辨證法的論理學))이다. 그 주안점(主眼點)은 본래 형식논리학 특히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을 반대한다는 데에 두고 있다. 즉 사물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A는 A인 동시에 非A이다로 되지 않으면 안되며, 사고법칙은 그 반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고의 형식과 법칙을 다루는 형식논리학은,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상부구조(上部構造)에 속하는, 계급성을 띤 논리학으로 단정하여 이것을 거부하고 유물변증법에 의한 변증법적논리학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형식논리학을 거부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즉 형식논리학에서처럼 앞뒤에 모순이 없는, 시종일관(始終一貫)된 바른 사고(思考)를 전혀 할 수 없게 된다는 곤란(困難)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언어학(言語學)도 같은 곤란(困難)에 빠져 있었다. 언어도 상부구조(上部構造)에 속하고 있어서 계급성(階級性)을 지닌다는 주장과 함께, 공산주의(共産主義) 체제하(體制下)에서도 여전(如前)히 상용(常用)되고 있는 러시아어를 대신하는 새로운 소비에트언어(言語) 사용의 필요성이 논의(論議)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50년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제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언어는 상부구조(上部構造)가 아니며, 계급적인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하였다. 이 논문을 계기로 하여 1950년부터 1년간 소련에서는 형식논리학의 평가를 둘러싸고 대대적인 토론이 벌어졌다. 그 토론에 의하여 형식논리학의 사고의 형식과 법칙은 상부구조(上部構造)가 아니며, 계급성을 갖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과 변증법적논리학(辨證法的論理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은 사유의 초등(初等)의 법칙과 형식에 관한 학문이지만 변증법적논리학은 객관적실재와 그 반영인 사유와의 발전적법칙에 관한 고등의 논리학이다.'라고 규정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유물변증법에 의한 논리학 즉 변증법적논리학은 상기(上記)와 같이 형식논리학의 동일률(同一律)과 모순율(矛盾律) 등을 비판했을 뿐, 논리학으로서 체계화(體系化)된 내용은 누구에 의해서도 제시(提示)되지 않고 있다.

 

4.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은 형식논리학을 발전시킨 것으로서, 수학적기호(數學的記號)를 사용하여 올바른 판단의 방법을 연구하려고 하는 입장이다. 형식논리학은 개념의 외연(外延)의 포섭관계, 즉 판단에 있어서의 주개념(主槪念)과 빈개념(賓槪念)의 포섭관계를 주제(主題)로 삼아 왔다. 거기에 대하여 기호논리학에서는 개념과 개념, 명제와 명제의 결합관계를 주목하고, 수학적기호에 의해 사고의 법칙이나 형식을 연구하는 것이 그 주제가 되고 있다.

명제(命題)의 결합에는 5개의 기본형식이 있는 바 그것은 다음과 같다. (p. q를 임의의 2개의 명제(命題)로 한다).


이 5개의 기본형식의 결합에 의하여 어떠한 복잡한 연역적추리(演繹的推理)도 정확히 표현된다. 예컨대 형식논리학의 기본적인 원리인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 배중률(排中律)은 다음과 같이 기호화된다.


철학은 각기 방대(尨大)한 체계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논리구성이 옳은가 그른가가 문제이다. 그 올바름을 식별(識別)하는 데는 수학적기호를 사용하여 계산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출현한 것이 기호논리학이다.


5. 선험적논리학(先驗的論理學)


선험적논리학(先驗的論理學; 超越的論理學)이란 칸트의 논리학을 말한다. 칸트는, 객관적인 진리성은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직관형식(直觀形式)을 통하여 얻어진 감성적(感性的) 내용을 사유형식(오성형식)과 결합함으로써, 즉 사유함으로써 얻어진다고 하였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사고(思考)에는 형식(形式)이 있었다.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이나 추리형식(推理形式)이 그것이며, 헤겔논리학의 변증법(辨證法)의 삼단계 발전(三段階 發展)의 형식(形式)도 사고의 형식이었다. 마찬가지로 칸트에게도 사고하는데 일정한 형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직관형식(直觀形式)과 오성형식(悟性形式, 사유형식(思惟形式))이다. 칸트의 오성형식에는 12가지의 형식이 있는데, 이것은 그의 12가지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을 터로하고 분류(分類)한 것으로서, 칸트는 판단의 종류를 양(量), 질(質), 관계(關係), 양상(樣相)의 4종류로 나누고, 다시 그 각각의 종류를 3가지로 나누어서 12개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을 제시(提示)하였다. 이 12가지의 판단형식에 대응(對應)하는 12가지의 사유형식(思惟形式), 곧 12가지의 카테고리(범주(範疇))를 정립(定立)하였는데, 여기의 카테고리란 우리가 생각할 때 반드시 따르게 되는 근본적인 생각의 테두리를 말한다.


그런데 그는, 직관형식(直觀形式)이나 오성형식(悟性形式) 모두 선험적(先驗的)인 개념으로서, 경험(經驗)에 의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논리학을 선험적논리학(先驗的論理學)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인식에 있어서는, 이 선험적형식(先驗的形式) 특히 오성형식(悟性形式) 그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으며, 반드시 외부로부터의 감각적(感覺的)내용과 결합되어 인식(認識)의 대상(對象)을 구성함으로써 비로소 인식이 성립(成立)하게 된다. 즉 오성형식은 인식(認識)을 위한 형식이었다. 칸트의 오성형식(悟性形式)은 개념(槪念)이며 범주(範疇)이다. 개념이라는 것은 내용이 없는 텅빈 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 속에 내용이 채워지지 않으면 무의미(無意味)하다. 이것을 비유해서 예를 들면, 동물이라고 할 때, 동물 그 자체는 내용이 없는 단순한 개념일 뿐, 실제로 객관세계에 있는 것은 닭, 개, 말, 고양이, 고등어 등의 구체적인 개물(個物)들이다.


그런데 칸트에 있어서 닭, 개 등의 그 자체(물자체(物自體))는, 실제는 불가지(不可知)이다. 실제로는 닭이나 개 등의 물자체(物自體)들이, 그들의 여러 성질(性質)에 기인하는 다양(多樣)한 자극을 발(發)하여서, 그것으로 인간의 감각기(感覺器)의 감성(感性)을 촉발(觸發)하여, 물자체(物自體)의 여러 성질에 대응하는 잡다(雜多)한 영상의 단편(端片)들을 직관(直觀)하게 하는데, 이때의 직관(直觀)된 영상의 단편들을 감각적내용(感覺的內容) 또는 감각적 성질이라고 한다. 이 감각적성질과 마음속의 동물(動物)이라는 개념이 합쳐져서 비로소 현실의 닭이나 개가 되어 인식의(認識)의 대상(對象)이 된다.


이 비유의 예와 마찬가지로 오성형식(悟性形式) 그 자체는 내부(內部)가 텅 비어있는 틀에 불과하며, 외부(外部)로부터의 성질에 의하여 채워질 때 비로소 인식의 대상이 구성된다는 것, 그 구성된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이래의 일반논리학(형식논리학)은 인식의 대상과는 관계없이 사고의 일반적형식을 다루어 왔으나 칸트의 논리학은 인식의 대상에 관한 진리를 알아보고 확인하는 인식논리학(認識論理學)이었던 것이다.

 

二.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


1. 기본입장


(1) 사고(思考)의 출발점과 방향


종래의 논리학은 사고의 법칙이나 형식을 다루고 있지만,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은 먼저 `사고의 출발점'에 대하여 생각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즉 `왜 사고가 필요한가'라는 데서부터 출발하며, 그 다음에 사고의 법칙이나 형식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간은 왜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 창조에 앞서서 먼저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에 앞서, 심정을 동기로 하여 사랑을 실현코자 하는 목적을 세워가지고, 그 목적에 부합되는 내용을 마음속에 구상하신 것이다. 이것이 생각이요, 로고스(말씀)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된 인간도 심정(心情)을 동기로 하여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을 세워 놓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생각하는 것이 본연의 생각의 자세이다. 여기의 목적이란, 피조물에 있어서는 피조목적이며, 여기에는 전체목적과 개체목적이 있다.


전체목적이란 사랑을 통하여 가족이나 이웃, 민족, 인류 등 전체에 대하여 봉사하면서 그 전체를 기쁘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하나님께 봉사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고, 개체목적이란 자기의 이기적(利己的)인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목적이다. 결국 이 두 가지의 목적이 인간이 사는 목적이며,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인간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전체목적과 개체목적에 있어서 전체목적이 우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인간의 사고(思考)는 일차적(一次的)으로 전체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행해야 하며, 2차적으로는 개체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행해야 한다. 그런데 개체목적도 결국 전체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본래 자기이익을 중심으로 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타인(他人)을 사랑하기 위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의 사고의 출발점이요 방향이다.


(2) 사고(思考)의 기준(基準)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기준(基準)이 되는 생각일까? 존재론이나 인식론에서도 그러했듯이 통일사상은 어떠한 부문(部門)도 그 논리전개의 근거를 모두 원상(原相)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사고(思考)의 기준도 원상(原相)에 있으며 그것은 원상(原相)의 논리적 구조(構造)이다. 즉 그것은 원상에 있어서 로고스(구상(構想))가 새로 생겨날 때 형성되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이다. 이것은 심정이나 사랑을 기반으로 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중심하고, 내적성상(內的性相)과 내적형상(內的形狀)間에 이루어지는 원만하고 조화로운 수수작용을 말한다. 이러한 원상의 논리적구조가 사고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3) 관련분야(關聯分野)


통일논리학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또 하나 언급해 두고자 하는 것은 논리학(論理學)의 관련분야(關聯分野)이다. 형식논리학은 다른 분야(領域)와의 관련된 부분을 다루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그 대안으로서 변증법적논리학(辨證法的論理學)이나 인식논리학(認識論理學)이 출현했던 것이다.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에 있어서의 사고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사랑을 터로 하는 창조목적(創造目的)의 실현(實現)에 있고, 그 기준은 원상(原相)의 논리구조(論理構造)에 있기 때문에 관련분야(關聯分野)는 대단히 넓다. 왜냐하면 사고(思考)의 기원(起源)은 하나님의 말씀(構想) 곧 로고스이며, 문화분야(文化分野)치고 어느 것 하나 구상(構想)(思考없이 운영되는 분야(分野)가 없기 때문이다.


원상(原相)에 있어서 로고스가 형성(形成)되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는 모든 만물이 창조되는 창조의 2단구조(構造)의 일부이다. 따라서 로고스는 말씀인 동시에 우주(宇宙)의 법칙(法則)으로서, 만물 모두를 망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로고스(思考)의 학문으로서의 논리학도 모든 다른 영역과 더욱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는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와 더불어 창조의 2단구조(構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창조의 2단구조(構造)에 있어서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는 논리구조(論理構造)가 되며,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는 인식구조(認識構造)나 주관구조(主管構造)가 된다. 인식구조(認識構造)란 만물로부터 인식(認識)을 얻는 경우의 사위기대로서, 주로 과학(자연과학)연구의 경우에 조성되는 사위기대이며, 주관구조(主管構造)는 생산이나 실천, 즉 산업, 정치, 경제, 교육, 예술 등의 경우에 조성되는 사위기대이다. 따라서 논리구조(論理構造)를 기반으로 하는 논리학(論理學)은 인식구조(認識構造)나 주관구조(主管構造)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문화영역(領域)과 밀접(密接)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4) 원상구조(原相構造)


여기서 원상구조(原相構造)에 대해서 좀 더 언급해 보고자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원상구조(原相構造)는 안 밖 2단의 사위기대로 되어 있다. 이것을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라고 한다. 이것을 닮은 피조물(被造物)의 이단구조를 존재(存在)의 2단구조(構造)라고 한다. 그런데 원상구조(原相構造)에 있어서 안 밖의 사위기대(四位基臺)는 심정중심의 자동성(自同性)과 목적중심의 발전성(發展性)을 각각 지니게 되어 자동적(自同的) 및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가 된다. 이 경우 안 밖의 사위기대(四位基臺)가 모두 발전적기대(發展的基臺)가 되는 경우의 원상구조를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라고 한다.


피조물(被造物)은 예외없이 모두 이 2종의 2단구조(構造)를 닮아서 지어졌기 때문에, 각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는 모두 존재(存在)의 2단구조(構造)와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생물의 경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에 있어서 논리구조(論理構造), 인식구조(認識構造), 존재구조(存在構造), 주관구조(主管構造) 등은 모두 각각 2단구조(構造)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 있어서 인간이 관련된 모든 사위기대(四位基臺)는 반드시 2단의 사위기대(四位基臺), 즉 이단구조(二段構造))이다.


이것은 또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 형성(形成)에 중점을 두는 영역(領域)과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형성(形成)에 중점을 두는 영역(領域)과는 서로 보완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例를 들면, 내적구조(構造)(사위기대)에 중점을 두는 논리학(論理學)이나 외적구조(構造)에 중점을 두면서 주관활동의 한 분야를 다루는 교육론(敎育論) 등은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 이것을 요약하면 인간사회의 모든 2단구조(構造)는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에서 유래하므로 모두 상호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원상(原相)의 논리적(論理的) 구조(構造)


이상으로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의 서론에 해당하는 기본입장의 항목을 마치고 이제부터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의 본론에 들어가고자 한다. 먼저 원상의 논리적구조에 관해서 살펴보자.


(1) 로고스형성(形成)의 구조와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논리학(論理學)은 사고(思考)의 법칙(法則)과 형식(形式)에 관한 학문이다. 그런데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의 근거는 원상의 본성상(本性相內)의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 특히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에 있다. 따라서 논리학(論理學)이 사고를 취급하는 학문인 이상, 이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에서 어떻게 사고(思考)가 발생하는가를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원상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도 원상(原相)의 이와 같은 논리구조(論理構造)를 본받아서, 사랑의 목적을 실현(實現)하기 위한 내적사위기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거기에서 사랑을 지향(指向)하는 사고(思考)가 생겨나게 된다.


(2) 본래의 인간의 모습


따라서 본래 인간의 사고(思考)에 있어서는, 그 사고(思考)의 동기(動機)가 심정(心情) 또는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 인간의 사고(思考)는 사랑의 실천(實踐)을 위한 사고(思考)이며,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는 것도 사랑의 실천(實踐)을 위해서인 것이다. 자유를 가지고 악(惡)을 행하거나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자유의 남용(濫用)이다. 사랑의 실현(實現)이란 요컨대 사랑의 세계의 실현(實現)이며,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의 실현이다. 사랑을 지향(指向)하는 사고를 많은 인간이 가지면 가질수록 사랑의 세계(世界)는 보다 빨리 실현(實現)될 것이다.


(3)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


창조의 이단구조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언급했지만 여기서는 同 2단구조(構造)와 논리학(論理學)과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란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와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가 연속적으로 형성(形成)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에서 로고스가 형성되는데, 이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가 바로 논리구조(論理構造)이다.


그러면 이때의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논리학(論理學)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즉 논리학(論理學)에 대하여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는 과연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에 있어서 사고(思考)는 창조목적(創造目的)의 실현(實現) 또는 사랑의 실현을 지향(指向)하며, 따라서 사랑의 실천(實踐)을 전제(前提)로 하기 때문이다. 실천(實踐)한다는 것은 마음에 생각한 것을 외부(外部)에 대하여 실제(實際)로 行하는 것이며, 바로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의 형성(形成)을 뜻한다. 실천의 대상은 만물이며 인간이다. 즉 사랑의 실천이란 만물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에 있어서 사고(思考)한다는 것은 거기에 반드시 동기(動機)와 목적과 方向이 있으므로, 반드시 실천(實踐)에 연결되고 행동(行動)과 결부되어야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상하시고, 로고스를 만들고, 창조를 개시(開始)하셨다. 그래서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라는 개념(槪念)이 성립한 것이다.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에 있어서는 사고(思考) 그 자체만의 형식(形式)이나 법칙(法則)을 취급하지만, 통일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잘못은 아니더라도 불충분(不充分)한 것이다.


보통 지행일치(知行一致)라든가 이론과 실천(實踐)의 통일을 자주 말하는 것은, 그 논리적(論理的) 근거(根據)가 이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에 있었기 때문이다.

 

3. 사고과정(思考過程)의 2단계(二段階)와 사위기대(四位基臺) 형성(形成)


(1) 오성적(悟性的)단계와 이성적(理性的)단계


인식에는 감성적단계, 오성적단계, 이성적단계의 3단계가 있다. 이것은 인식이 통일원리의 삼단계완성의 법칙에 따르기 때문이다. 감성적단계는 외부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창구이므로 인식의 소생적단계이며, 장성적인 오성적단계와 완성적인 이성적단계에서는 사고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중 오성적단계의 사고는 외부로부터 들어온 정보에 영향을 받지만, 이성적단계에 이르면 사고(思考)는 외부와 관계없이 자유로이 이루어진다.


칸트도 역시 3단계의 인식과정에 대해서 論하고 있다. 외계에서 들어오는 감성적내용을, 직관형식(直觀形式)을 통하여 수용(受容)하는 단계가 감성적단계이며, 다시 사유형식(思惟形式(오성형식))을 가지고 사고하는 단계가 오성적단계이며, 오성적인식을 통일 내지 통제해 가는 과정이 이성적단계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경우에는, 감성적내용이 뇌(腦)에 반영되는 것이 감성적단계이다. 그 다음 단계는 논리적단계 또는 이성적단계로서 거기에서 판단이나 추리가 행하여진다. 또 그 다음 단계로서 실천에 의해서 확인하는 실천의 단계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경우, 사유형식(思惟形式)은 외계의 존재형식이 의식에 반영(反映)된 것이다.


대뇌생리학(大腦生理學)의 관점에서 보면, 인식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감성적단계의 인식은 감각중추(感覺中樞)에서, 오성적단계의 인식은 두정연합야(頭頂聯合野)에서, 그리고 이성적단계의 인식은 전두정연합야(前頭聯合野)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오성적(悟性的)단계와 이성적(理性的)단계에서 원상구조와 비슷한 논리구조가 형성된다. 오성적단계에 있어서 사고는 외계로부터 들어오는 감성적요소(내용)에 의해서 규정(規定)된다. 즉 외계의 내용과 내계의 원형(原型)이 조합(照合)되어서 인식이 일단 완결된다. 그 때 인식구조 또는 논리구조로서 내적인 완결적(自同的)사위기대(四位基臺)가 형성된다. 그런데 이성적단계에서는 오성적단계에서 얻어진 지식을 터로 하여, 자유로이 추리를 진행시켜 새로운 구상(構想)(신생체(新生體))을 세우기도 한다. 이때의 사고의 구조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이다.


인식에 있어서의 대뇌의 생리과정(生理過程)을, 내객(來客, 손님)을 맞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내객이 처음 들어서는 현관(玄關)은 감각중추(감성(感性))에 해당되고, 주인을 만나는 응접실은 두정연합야(頭頂聯合野(悟性))에 해당되며, 거실이나 서재는 전두연합야(前頭聯合野(이성))에 해당된다. 하인(下人)으로부터 현관에 손님이 왔다는 전언을 받으면, 주인은 응접실에 나와서 그 손님을 맞이한 후 대화를 나눈다. 주인은 손님을 상대하면서 그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 때 주인은 제멋대로의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손님과의 대화에 필요한 말을 해야되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은 상대의 말 여하에 좌우된다. 이것은 오성적단계에서 벌어지는 인식의 비유이다. 대화가 끝나면 주인은 손님과 작별한 뒤 자기의 거실이나 서재에서 손님의 말을 참고하면서 자유로이 생각할 수가 있다. 이것이 이성적(理性的)단계의 사고의 비유이다.


(2) 이성적(理性的)단계에 있어서의 사고(思考)의 발전


이성적(理性的)단계에 있어서의 사고는 어떻게 해서 발전해 가는 것일까. 사고(思考)란 내적성상(內的性相)과 내적형상(內的形狀)의 수수작용이었다. 그리하여 먼저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제일(第一)단계의 로고스 즉 사고의 결론으로서의 구상(신생체(新生體))이 형성된다. 그것으로 사고가 일단 끝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의 경우 그 사고의 결론(구상) 여하에 따라서는 다음 단계의 로고스(구상(構想))가 필요하게 된다. 그때 第一단계에서 형성된 로고스는 사고의 소재(素材)인 하나의 개념 또는 관념이 되어서, 내적형상속에 비축된 후 2단계(第2段階)의 사고(思考) 때 다른 많은 소재(관념, 개념)와 더불어 동원된다. 이와 같이 하여 2단계(第2段階)의 로고스가 생기게 되며, 그것이 또 필요에 따라서 내적형상에 이행(移行)되어서 다음 사고 때 동원된다. 이리하여 3단계(第3段階)의 로고스가 형성(形成)된다. 같은 방식으로 제4(第四), 제5(第五)의 단계에로 사고가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비록 하나의 사항(事項)에 관한 사고일지라도 일회만(一回限)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수가 많다. 이것이 이성적(理性的)단계에 있어서의 사위기대 형성의 과정이며, 이것을 사고의 나선형의 발전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이성적(理性的)단계에서 사고가 무한히 발전을 계속하는 것은 이 단계가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발전을 계속한다 하더라도, 하나의 사항(事項)에 관한 사고가 일단 끝난 후 새로운 사고가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의 발전은 완결적(完結的)인 사위 기대형성의 연속인 것이다. 따라서 사고는 완결적(完結的)단계를 반복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3) 사고(思考)의 기본형식(基本形式)


오성적(悟性的)단계에 있어서의 사고(또는 인식)는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감성적내용과 원형이 수수작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래서 목적은 먼저 바르게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바른 목적이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심정(사랑)을 기반으로 한 창조목적을 말한다. 인식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포나 조직의 원의식(原意識)에서 형성된 원영상(原映像)과 형식상(形式像)이 말초신경을 통하여 하위중추(下位中樞)의 잠재의식에 이르러 통합되어서 그곳에 머물러 있게된다. 이것이 인간이 선천적(先天的)으로 가지고 있는 원형(先天的原型)이다. 그 중에서 형식상이 인식 또는 사고에 일정한 규정을 부여하는 사유형식(思惟形式; 사고형식(思考形式)이 되게 된다.


다음은 하위중추(下位中樞)의 잠재의식이 일정한 형식상(形式像)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겠다. 예컨대 맹장염에 걸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원의식을 통합하고 있는 하위중추(下位中樞)에서는 맹장의 고유한 성상과 형상(기능과 구조)에 관한 정보가 수시로 전달되고 있다. 따라서 맹장염에 걸리면 하위중추(下位中樞)는 곧 그 이상(異常)을 안다. 그리고 그 맹장이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도록 적절한 지시(指示)를 보낸다.


또 위(胃)의 운동이 지나치게 강하게 되면 위경련이 되는 경우가 있고, 너무 약해지면 위하수(胃下垂)가 되는 수가 있는데, 그와 같은 위(胃)의 운동의 강약에 관한 정보도 하위중추(下位中樞)는 알고 있다. 그래서 위(胃)의 운동이 지나치게 강해지거나 약해지면 이것을 적당히 조절한다. 하위중추(下位中樞)의 잠재의식이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정보는 양성(陽性), 음성(陰性)에 관한 것이다.


세포는 핵(核)과 세포질로 되어 있는데, 핵이 세포질을 컨트롤한다. 핵과 세포질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 하위중추(下位中樞)의 잠재의식은 이와 같이 세포에 있어서의 주체와 대상의 정보도 가지고 있다.


잠재의식(潛在意識)은 또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 즉 체내(體內)의 어디엔가에 또 어느 일정한 시간에 염증이 있으면 적시에 그곳으로 백혈구를 보낸 후 염증을 고치려고 한다. 유한(有限)과 무한(無限)의 관계에 대해서도 잠재의식은 이것을 알고 있다. 예컨대, 적혈구는 어느 일정한 기간동안 생명을 유지하다가 파괴되고 새로운 적혈구가 生成된다. 이와 같이 체내(體內)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가 생기고 낡은 세포가 소멸되는데, 잠재의식은 그것(有限性)을 알고 있다.


또 체내에서는 지속성, 영원성, 순환성을 유지하면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세포나 기관도 있다. 이것은 하위중추(下位中樞)가 그러한 세포(細胞)나 기관의 기능의 무한성을 알고 있는 증거이다. 이와 같이 하위중추(下位中樞)의 잠재의식은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 주체와 대상, 시간과 공간, 유한과 무한 등의 형식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잠재의식에 반영된 이들의 상대적관계의 상(像)이 형식상(形式像)인 바, 그 형식상(形式像)이 결국 대뇌의 피질중추에 보내어진 후 사고에 있어서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이 되는 것이다.


사유형식이 사고에서 하고 있는 역할을 축구시합에 비유하여 설명할 수가 있다. 축구시합을 할 때 선수들은 자기 마음대로 뛰거나 차거나 하지만, 일정한 규칙을 지키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차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성은 자유로이 사고를 진행시키고 있으나, 형식상의 영향을 받은 사고는 일정한 형식을 취하면서, 즉 규칙을 지키면서 행하게 된다.


사유형식(思惟形式)은 범주(範疇)이다. 범주란 최고의 유개념(類槪念) 또는 가장 중요한 유개념을 말하는 것으로서, 통일사상에 있어서는 사위기대 및 수수작용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범주가 세워진다. 사위기대(四位基臺)와 수수작용(授受作用)이 통일사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10가지의 기본적인 범주가 세워지게 되는데, 개개의 범주의 의미는 인식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지금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여러 가지의 범주(範疇)를 세웠지만, 그중에는 통일사상의 범주와 관련된 것도 적지 않다. 예컨대 본질(本質)과 현상(現象)이라는 범주는 통일사상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에 해당한다.


그래서 통일사상의 범주(範疇)를 제1범주(第一範疇)와 제2범주(第二範疇)로 구분하고자 한다. 제1범주(第一範疇)는 통일사상의 특유한 10가지의 기본적인 형식이다. 제2범주(第二範疇)는 제1범주(第一範疇)를 기초로 하여 전개한 것으로서, 거기에는 종래 철학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도 포함된다. 제1범주(第一範疇)와 제2범주(第二範疇)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특히 제2범주(第二範疇)의 수(數)는 제한이 없는데 여기서는 그 일부만을 열거하겠다.


제1범주(第一範疇)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은 제2범주(第二範疇)의 본질(本質)과 현상(現象)이나 내용과 형식(形式)과 비슷한 데도 불구하고, 왜 이와 같이 일반화되지 않은 특이한 용어를 사용하는가. 통일사상의 기본이 되고 있는 것은 사위기대, 정분합작용, 수수작용 등의 개념이다. 이것들을 빼면, 통일사상은 골격이 빠져버린 것과 같게 된다. 따라서 통일사상의 범주(範疇)로서는 이것들과 관련한 개념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범주와 사상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범주를 보면 사상을 알 수 있고, 사상을 보면 범주를 알게 된다. 범주는 사상의 간판(看板, 얼굴)이다. 통일사상은 새로운 사상이므로 거기에 알맞는 새로운 용어의 범주가 당연히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에는 마르크스적인 범주가 있고, 칸트의 사상에는 칸트적인 범주가 있고, 헤겔사상에는 헤겔적인 범주가 있다. 마찬가지로 통일사상의 범주도 통일사상의 특징을 표시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것이 제1범주(第一範疇)로서의 10가지의 기본적인 개념이다.


(4) 사고(思考)의 기본법칙


형식논리학에 있어서 사고의 근본원리는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 배중률(排中律),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이었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볼 때 그보다 더욱 기본적인 법칙이 있다. 그것이 수수법(授受法)이다. 이 수수법(授受法)은 논리학(論理學)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領域)의 법칙(法則)이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역사, 예술, 종교, 교육, 윤리, 도덕, 언론, 법률, 스포츠, 기업 그리고 모든 자연과학(自然科學)의 학문(學問)(물리학, 화학, 생리학, 천문학 등) 등 실로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법칙(法則)이다.


뿐만 아니라 전피조세계, 즉 전지상세계(宇宙)와 전영계(全靈界)를 지배해온 법칙(法則)이다. 그리고 논리학과 직접관계가 있는 인식론의 법칙이기도 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수수법(授受法)이 왜 이와같이 광범위하게 작용하느냐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創造)의 법칙(法則)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원은 하나님의 속성(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간에 작용한 수수작용(授受作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 자신의 속성간의 수수작용을 모방하여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피조세계(被造世界)에 있어서는 그것이 법칙(法則)이 된 것이다.


이것은 수수법(授受法)이 모든 다른 법칙까지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基本的)인 법칙(法則)인 것을 의미한다. 물리적(物理的) 법칙(法則)이나 화학적(化學的) 법칙(法則)이나 천문학적(天文學的) 법칙(法則)도 그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은 수수법(授受法)이다. 따라서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을 비롯해서 다른 논리학(論理學)의 법칙(法則)이나 형식(形式)도 실은 그 근거가 이 수수법(授受法)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논리학(論理學)에 있어서도 다른 영역(領域)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이 수수법(授受法)은 사고(思考)의 기본법칙(基本法則)인 것이다. 여기에서 그 예로서 3단논법과 수수법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1) 삼단논법(三段論法)과 수수법(授受法)


삼단논법(三段論法)은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의 형식(形式)의 하나인 추리형식(推理形式)이다. 수수법(授受法)이 형식논리학의 형식이나 법칙의 근거가 된다는 것을 이 삼단논법을 실례로 들어서 밝히기로 한다.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여기에서 대전제(大前提)와 소전제(小前提)로부터 도출된 결론(結論)은, 목적을 중심으로 한 대전제(大前提)와 소전제(小前提)와의 수수작용(對比)의 결과이다. 즉 여기에 인용(引用)된 삼단논법(三段論法)은 소크라테스의 생사(生死)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다는 목적이 삼단논법(三段論法)의 배후에 잠재하고 있다.


그리고 대전제(大前提)와 소전제(小前提)를 대치시킨 것은, 사람은 죽는다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의 두 명제(命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그림 10-14, 10-15). 마치 미터(meter)와 피트(feet)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예를들면, ⓐ 1m는 3.28ft이다. ⓑ 이 책의 세로의 길이는 1ft이다. ⓒ 그러므로, 이 책의 세로의 길이는 0.328meter이다.


이 경우의 결론 ⓒ는 ⓐ명제(命題)(의 數字)와 ⓑ명제(命題)(의 數字)를 대비(수수작용(授受作用))하여 얻은 결과(合性體, 數字)이다. 마찬가지로 처음의 삼단논법(三段論法)의 결론도 대전제와 소전제를 대비해서 얻어진 수수작용의 결과이다. 다음은 형식논리학의 법칙중의 하나인 동일률(同一律)과 수수법(授受法)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2) 동일률(同一律)과 수수법(授受法)


동일률(同一律)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A는 A이다에서 이 꽃은 장미꽃이다라고 하는 명제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명제(命題)는 이 꽃과 장미꽃을 마음속에서 비교해 보고, 두 꽃이 일치하였으므로 ~은 …… 이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비교한다는 것은 대비형(對比型)의 수수작용을 뜻한다. 따라서 동일률(同一律)도 수수법(授受法)을 터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순율(矛盾律)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으로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의 형식(形式)이나 법칙(法則)은 모두 수수법(授受法)의 기반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 명백해 졌으리라 생각한다.


3) 사고(思考)와 자유


여기에서 사고와 자유에 대하여 한마디 하고자 한다. 논리학은 사고(思考)의 형식(形式)이나 법칙(法則)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까지 일일이 법칙(法則)이나 형식(形式)의 간섭(干涉)을 받아야만 하는가?, 법칙(法則)이나 형식(形式)과 같은 까다로운 룰(rule)에 지배받고 싶지 않다,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생각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고(思考)에 규칙(規則)이나 형식(形式)이 있음은, 사실은 사고에 자유를 주기 위한 것이다. 법칙(法則)이나 형식(形式)없이 사고는 한걸음도 전진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철도가 없으면 기차가 조금도 전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의 몸이나 마음은 모두 법칙(法則)에 따라 살 때 비로소 그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維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몸을 볼 때, 몸의 모든 생리작용(生理作用)은 법칙(法則)의 지배를 받고 있다. 호흡도, 소화작용도, 혈액순환(血液循環)도, 신경의 전달작용(傳達作用)도 모두가 일정한 생리(生理)의 법칙(法則)下에서 영위되고 있다. 만일 이들의 생리작용(生理作用)이 법칙(法則)을 이탈하면 즉시 병에 걸린다. 이것은 인간의 사고작용(思考作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A는 A이다라고 하는 동일률에서 ~은 …… 이다의 논리어(論理語)를 사용하지 않고, 예컨대 이 꽃은 장미꽃이다라고 하지 않고 이 꽃, 장미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형식(形式)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칭긍정판단(全稱肯定判斷)이라는 판단형식(모든 S는 P이다)에 있어서 모든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판단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경우, 모든 ~은 …… 이다라는 형식(形式)을 제거하면 단지 인간, 동물만이 남게 되어 역시 무슨 의미인지 전연 알 수 없다. 타인(他人)이 알 수 없음은 물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자신도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사고(思考)에는 반드시 일정한 법칙(法則)과 형식(形式)이 필요하다. 그러면 순수하고도 자유로운 사고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즉 법칙(法則)이나 형식(形式)을 떠난 자유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역시 사고(思考)에 자유가 있다. 그것은 사고(思考)의 선택의 자유이다. 법칙이나 형식을 따르면서도, 즉 그 법칙이나 형식을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선택(選擇)의 자유가 있다. 가령 사랑의 실현에 관한 사고를 예로 든다면, 사랑의 실현이라는 공통목적 공통방향을 지향하면서도, 그 구체적(具體的) 실현(實現)에 있어서는 개인에 따라서 개별적(個別的)인 목적이나 방향(方向)이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이것은 선택의 자유 때문이다. 즉 선택의 자유에 의해서 각자가 필요한 목적이나 방향(方向)을 자유로이 결정하는 것이다.


목적이나 방향(方向)에 관한 선택의 자유의 경우, 자유로운 사고가 어떻게 해서 행하여지는가 하면, 사고(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에 있어서 영적통각(靈的統覺)이 내적형상(內的形狀)內의 관념(觀念) 또는 개념(槪念)의 복합(複合)이나 연합(聯合)을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서, 바로 구상(構想)의 자유이다. 이 구상(사고)의 자유는 이성의 자유성(自由性)에 기인하는 것이다. 

 

三.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에서 본 종래의 논리학(論理學)


(1)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


형식논리학 그 자체에 대해서 통일논리학은 반대하지 않는다. 즉 형식논리학이 다루고 있는 사고의 법칙이나 형식에 관한 이론은 그대로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에는 형식의 측면 뿐 아니라 내용의 측면도 있다. 또 사고(思考)에는 이유(理由)나 목적이나 방향성이 있고 다른 분야와의 관련성도 있다. 즉 사고(思考)는 사고(思考)를 위한 사고가 아니고 인식이나 실천(주관)을 위한 사고이며, 창조목적 실현을 위한 사고이다. 즉 사고의 법칙이나 형식은 사고가 성립하고 유지되는데 필요한 조건에 불과한 것이다.


(2) 헤겔논리학(論理學)


헤겔논리학은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우주를 창조하셨는가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헤겔은 하나님을 로고스 또는 개념(槪念)으로서 이해하고, 이 개념이 우주창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였다.


헤겔은 먼저 개념의 세계에 있어서의 有-無-成의 전개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有 그대로는 발전이 없으므로 有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無를 생각했다. 그리고 有와 無의 대립의 통일로서 成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문제가 있다. 헤겔에 있어서 본래 無는, 有의 해석 즉 有의 의미(意味)에 지나지 않으며, 有와 無가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헤겔은 有와 無를 구별하여 마치 有와 無가 대립하고 있는 것같이 설명했다. 따라서 헤겔철학은 출발점에서부터 벌써 오류(誤謬)가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개념(槪念)이 자기발전한다는 점이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원상구조(原相構造)에 있어서의 개념은 내적형상에 속하고,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내적성상인 지정의(知情意)의 기능_특히 知의 기능중의 이성_이 내적형상에 작용함으로써 로고스(구상(構想))가 형성되어, 그것이 새로운 개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로고스나 개념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수수작용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결과, 신생체(新生體))이지, 그 자체가 자기발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튜빙겐대학 총장 류메린은 헤겔이 주장하는 개념(槪念)의 자기발전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헤겔의 사변적방법(思辨的方法)이 소위 그 창시자 헤겔에 있어서 도대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들이 얼마나 고민했으며, 머리를 괴롭혔는가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주위를 돌아보고 머리를 흔들면서 이렇게 물을 것이다. 도대체 너는 알겠는가.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개념(槪念)은 너의 머리속에서 홀로 움직이는가라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사변적인 두뇌의 소유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과 별개인 우리들은 유한(有限)한 오성적(悟性的) 카테고리에 있어서의 사고의 단계에 서 있는 데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왜 이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는가 라는 이유를 우리들 자신의 재능의 우둔함에서 찾음으로써, 감히 방법 그 자체의 불명석(不明晳)이나 결여(缺陷)에 있다고 생각할 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또 헤겔변증법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도 제기된다. 헤겔은 자연을 이념의 자기소외(自己疎外) 또는 이념의 타재형식(他在形式)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원상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범신론(汎神論)-자연을 神 자신의 출현으로 보고 양자에 구별을 두지 않는 견해-에 이를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쉽게 유물론(唯物論)으로 전환될 수 있는 소지(素地)가 되는 것이다. 헤겔변증법에 있어서의 자연은 인간이 발생하기까지의 중간적 과정에 불과하였다. 건물이 완성된 뒤에는, 중간에 세워졌던 발판들이 제거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발생한 이후의 자연은 헤겔철학에 있어서 자연 그 자체로는 철학적으로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는 또 역사의 발전에 있어서, 인간은 이성의 궤계(詭計)에 조종을 받고 있다고 했는데, 이 때문에 인간은 마치 절대정신에 의해 조종받는 인형(人形)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보면 하나님이 일방적(一方的)으로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책임분담과 하나님의 책임분담이 합해짐으로써 역사가 꾸며져온 것이다.


또 헤겔의 正-反-合의 변증법은 원환성(圓環性)이며, 귀환성(歸還性)이어서 최종적으로는 완결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헤겔에 있어서 프러시아는 역사의 마지막 완결점(完結點)으로서 나타나는 이성국가(理性國家)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프러시아는 이성국가(國家)가 되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하여 프러시아의 종말과 더불어 헤겔철학도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헤겔철학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그와같은 잘못을 일으킨 원인은 그의 논리학에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다음에 검토해 보고자 한다. 헤겔은 개념(槪念)의 발전을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발전으로 파악했다. 개념(槪念, 理念)은 자기를 소외시켜서 자연이 되고, 그 후 인간을 통하여 정신(精神)이 되어서 본래의 자신을 회복한다고 말한다. 한스 라이제강크에 의하면, 이와 같은 헤겔의 사고방식(思考方式)은 그의 성서연구(聖書硏究)에서 연유된 특유한 방식이라고 했다. 즉 높은 총합(總合)속에 지양되는 헤겔의 대립(對立)의 철학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나는 부활(復活)이요 생명(生命)이니, 나를 믿는 者는 죽어도 산다라는 요한복음의 성구(聖句)를 테마로 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헤겔은 하나님을 로고스 또는 개념(槪念)으로 파악하였으며, 그러한 하나님이 마치 땅에 뿌려진 씨앗의 생명이 외부(外部)로 자신을 나타내듯이, 자기를 외부(外部)의 세계로 소외시켰다고 보았다. 여기에 헤겔이 범한 오류의 근본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통일사상에서 보면 하나님은 심정(心情, 사랑)의 하나님이며, 사랑을 통하여 기뻐하고자 하는 정적(情的)인 충동에 의해서 창조목적을 세워놓고, 로고스로써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다. 이 때의 로고스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형성된 창조의 구상일 뿐, 하나님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헤겔의 개념변증법에 있어서, 그의 하나님에서는 심정(心情)(사랑)이나 창조목적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그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 아니라 發芽하여 성장하는 일종의 생명체(生命體)였던 것이다.


여기서 헤겔논리학과 통일논리학의 주요개념들을 비교해 보면 그 뜻하는 바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상응(相應)하는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헤겔에 있어서의 로고스는 통일사상에서는 하나님의 구상에 해당된다. 헤겔의 로고스의 변증법이 통일사상에서는 원상(原相)의 수수작용에 해당(該當)한다. 그리고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의 형식은 통일사상의 정분합(正分合)의 형식에 대응한다. 헤겔의 귀환적, 완결적인 변증법이 통일사상에서는, 자연계에 있어서 창조목적을 중심으로한 수수작용에 의한 나선형의 발전운동에 해당하며, 역사에 있어서는 재창조와 복귀의 법칙에 해당된다. 헤겔은 자연을 통하여 이념을 찾으려고 했으나, 통일사상은 만물을 통하여 상징적(象徵的)으로 원상(신상과 신성(神性))을 발견한다. 따라서 헤겔의 범신론적(汎神論的)인 성격은 통일사상에 있어서 범신상론(汎神相論)-모든 피조물속에 신상이 나타나 있다는 견해-을 가지고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3) 마르크스주의(主義) 논리학(論理學)


전술한 바와 같이 구(舊)소련의 사상계에서 야기된 언어학논쟁을 수습하기 위해서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言語學)의 제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同 논문에서 스탈린은 언어는 상부구조(上部構造)에 속하지 않고 계급적인 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리하여 형식논리학의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이 드디어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형식논리학의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은 사고의 법칙일 뿐, 객관세계의 발전법칙은 아니었다. 따라서 사고가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을 따른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객관세계에 관한 한, 발전이 모순의 법칙(대립물(對立物)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을 따른다는 논리가 여전히 성립(成立)된다. 왜냐하면 형식논리학은 자연계를 다루지 않고 사고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고보니, 사고는 객관세계의 반영(反映)이라는 유물변증법의 본래의 주장은 무너지고 만다고 하는 아포리아(a poria)가 발생하게 된다.16) 즉 스탈린의 논문(論文)이 발표된 뒤 유물변증법에 있어서는, 객관세계의 법칙(모순(矛盾)의 법칙)과 사고(思考)의 법칙(同一律)이 상반(相反)되고 말았는데, 이에 대하여 객관세계에 있어서나 사고에 있어서 발전성(發展性); 변화성(變化性)과 불변성(不變性)은 통일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통일사상의 주장이다.


오성적(悟性的)단계의 사고(또는 인식)는 주로 자기동일적이다. 왜냐하면 외계에서 들어온 감성적(感性的)내용과 내부의 원형이 조합(照合)함으로써 인식은 일단 완료(完了)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성적(理性的)단계에 있어서의 사고는 발전적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사고는 단계적으로 발전하므로 각각의 단계에서 완결적인(즉 자기동일적인) 측면을 또한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통일사상은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도 당연히 인정하는 입장이다.


아무튼 유물변증법에 있어서 형식논리학 즉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본래 유물변증법의 기본적인 주장은 사물을 부단히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으로만 보고 있다가 나중에 동일률(同一律), 모순율(矛盾律)을 인정하였다는 것은 비록 사고에 관한 것이기는 하나, 불변성(不變性)을 긍정한 것이 되어서 유물변증법의 변질(變質)을 가져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변증법의 수정(修正) 내지 붕괴(崩壞)를 의미한다. 동시에 사물을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과 발전성의 통일로서 파악하는 통일사상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4)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


사고의 정확성(正確性) 또는 엄밀성을 기한다는 것은 의의(意義)있는 일로서,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에 반대할 이유는 전연 없다. 그러나 수학적 엄밀성만으로는 인간의 사고를 충분히 파악할 수가 없다. 원상(原相)에 있어서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수수작용을 하면 로고스가 형성(形成)되는데, 이 때 내적형상(內的形狀)은 원칙과 수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수수작용을 통해서 형성된 로고스도 수리성(數理性)을 띠게 되며, 따라서 로고스에 의해 창조된 만물에는 수리성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자연을 수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로고스를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인간의 사고에도 당연히 수리성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고는 수리적 정확성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이 사고를 수리적으로 연구하는 의의(意義)가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유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내적성상(內的性相)과 내적형상(內的形狀)과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심정(心情)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로고스(말씀)의 형성에 있어서 심정이 이성이나 수리보다 상위(上位)에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본래 로고스的 존재(存在)(이성적(理性的), 법칙적(法則的) 존재(存在))일 뿐만 아니라 보다 더 본질적으로는 파토스的 존재(存在)(심정적, 감정적존재)이다. 즉 사고에 비록 수학적 엄밀성이 없다 하더라도 거기에 사랑 또는 감정이 담겨 있기만 한다면, 발언자의 의향(意向)이 충분히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화재를 보고 불이다!라고 외칠 때, 이것은 문법적으로 보면 이것이 불이다라는 의미인지, 지금 화재가 났다라는 의미인지 모른다. 그러나 절박한 경우에 긴급히 도움을 구하는 호소의 감정이 거기에 담겨져 있다면, 그 말에 문법적(文法的)인 정확성이 없더라도 그 의미는 곧 알게 된다.


인간은 본래 로고스와 파토스의 통일체(統一體)이다. 로고스만을 따른다면 인간으로서는 반쪽의 가치밖에 없다. 이성적(理性的)인 것만으로는 인간성이 부족하며, 정적(情的)인 측면을 함께 갖춤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인간다움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부정확(不正確)한 언어가 오히려 인간다운 경우도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사고에는 엄밀을 요하는 면도 있으나 반드시 언제나 정확히, 논리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은 세워질 수 없는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성경)을 보더라도 비논리적인 면이 많이 있음을 본다. 그런데 그 말씀이 왜 위대한가. 그것은 그 말씀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언어가 정확하게 논리에 맞지 않더라도, 그 속에 파토스적인 요소가 적절히 포함되어 있다면, 그 뜻하는 바는 충분히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5) 선험적논리학(先驗的論理學)


칸트는 대상으로부터의 감성적(感性的)내용과 인간 오성(悟性)의 선천적인 사유형식이 결합되어 인식의 대상이 구성됨으로써 비로소 인식과 사고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볼 때 인식의 대상에는 내용(감성적(感性的)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존재형식(存在形式))도 있고, 인식의 주체에도 형식(사유형식(思惟形式)) 뿐만 아니라 내용(내용像)도 있다. 칸트가 말하는 선천적인 형식과 감성적인 내용만으로는 대상에 대한 사고의 진리성(眞理性)이 보증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상에서는 인간과 만물의 필연적 관계에서 사고의 법칙 혹은 형식과 객관세계의 법칙 혹은 형식의 대응성(對應性)이 도출되고, 대상에 대한 사고의 진리성이 보증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