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頭翼)사상 요강
제9장 인식론 (認識論)
( Epistemology )
인식론(認識論)은 인식(認識; Erkenntnis)에 관한 여러가지 근본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철학(哲學)의 한 부문으로서 객관(客觀)에 대한 지식(知識)이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가, 또 어떻게 해야 올바른 지식(知識)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을 말한다. 즉 인식(認識)의 기원(起源)과 대상(對象)은 무엇이며, 인식의 방법(方法)과 발전(發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 등을 밝히는 이론이다.
인식론의 영어인 Epistemology는 그리스어의 지식(知識)을 의미하는 episteme와, 학문을 의미하는 logia를 결합시킨 말로서 페리어(J. F. Ferrier, 1808~1864)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 독일어(獨逸語) Erkenntnistheorie는 라인홀트(K. L. Reinhold, 1758~1823)에 의해 사용된 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인식론은 이미 고대(古代) 및 중세철학(中世哲學)에도 존재(存在)하고 있었으나, 근세(近世)에 이르러 인간성의 회복과 인간의 자연에 대한 주관(主管)이 제고(提高)되면서 철학의 중심적인 과제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존재론과 더불어 철학의 주요한 부문(部門)을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통일사상은 많은 현실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준(基準)을 갖고 있다. 특히, 오늘날에 이르러 인식론에 대한 연구열이 점차(漸次) 식어가고 있으며, 인식에 관한 문제는 철학계에서 의학계로 넘겨진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의학이 그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의학이 인식의 과정에 대한 생리학적 기초를 확립(確立)했다는 점에서, 인식에 관한 문제점의 해결에 공헌(貢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학적인 인식의 이론에도 아직 해결되지 아니한 점이 있다. 이와 같이 미해결의 문제를 포함하여 종래의 일체의 인식(認識)上의 문제를 일괄적으로 해결한 것이 본 인식론이다.
인식론은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라는 본체론적(本體論的)인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또 인식은 실천활동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올바른 인식론을 확립하지 않는다면 현실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종래의 인식론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론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여기에 그와 같은 요청에 보답하기 위해서 제시된 것이 통일사상에 근거한 본 통일인식론이다.
먼저 종래의 주요한 인식론에 대해서 그 요점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다음에 통일인식론을 소개한 후 종래의 인식론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본(本) 인식론에 의해서 훌륭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과, 종래의 모든 인식론의 핵심이 본 인식론에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본(本) 인식론은 문자 그대로의 통일인식론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끝으로 본 통일인식론도 다른 부문(部門)과 마찬가지로 문선명선생(文鮮明先生)의 지도하에 체계화(體系化)되었음을 밝혀둔다.
一. 종래의 인식론
인식론에 관한 연구는 이미 고대로부터 행해져 왔으며, 그것이 철학의 중심과제(中心課題)로서 제기된 것은 근세(近世)에 들어오면서 부터이다. 인식론을 처음 체계적(體系的)으로 설명한 사람은 로크(J. Locke, 1632~1704)로서 그의 인간오성론(悟性論)은 획기적인 노작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상(對象)을 올바르게 인식하는데 있어서 종래의 인식론은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데, 그 측면이 바로 인식의 세 가지 논점(論點)이다. 그리고 하나의 논점에 각각 두 가지의 입장이 있다. 인식의 세 가지 측면의 논점(論點)이란 첫째로 인식의 기원(起源)에 관한 것이며, 둘째로 인식의 대상(對象)에 관한 것이며, 셋째로 인식의 방법(方法)에 관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각각의 논점(論點)에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의 입장이 있다. 인식의 기원에 있어서는 인식이 감각(感覺)에 의해 얻어진다는 경험론(경험론)과 생득관념(生得觀念)에 의해 얻어진다는 이성론(理性論; 또는 合理論)의 두 입장이 대립해 왔고, 인식의 대상에 관해서는 대상이 객관적(客觀的)으로 실재한다는 실재론과 인식의 대상은 주관(主體)의 관념 또는 표상만이라는 주관적관념론의 두 입장이 대립해 왔으며,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는 주로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과 변증법적방법(辨證法的方法) 등이 주장되었다.
경험론(經驗論)과 이성론(理性論)의 대립에 있어서 경험론은 나중에 회의론(懷疑論)에 빠졌고, 이성론은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칸트는 이 양자를 비판적방법(批判的方法) 또는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에 의해서 종합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1) 이것이 인식의 대상은 주관에 의해 구성(構成)된다고 하는 선천적종합판단(先天的綜合判斷) 이론이다.
그 후,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표절한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 유물변증법적 방법에 의한 인식론이 바로 마르크스주의 인식론 즉 변증법적 인식론이다. 이것은 인식의 내용과 형식(形式; 思考形式)이 외계의 사물의 반영이라고 보는 공산주의의 반영론(反映論) 또는 모사설(模寫說)이다.
여기서 특히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본항목(本項目)에서 종래의 인식론을 다루는 것은 종래의 인식론의 내용을 구체적, 학술적으로 소개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통일인식론이 종래의 인식론이 지녔던 미해결(未解決)의 문제점(問題點)들을 해결해냈다는 것을 참고로 보이기 위해서, 그 문제점과 관련된 사항을 간단히 소개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본(本) 통일인식론 그 자체(自體)만을 이해하는 데는 종래의 인식론의 항목을 생략(省略)해도 좋을 정도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울러 밝혀둔다.
1. 인식(認識)의 기원(起源)
모든 지식(知識)은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보는 것이 경험론이며, 거기에 비해서 참다운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이성의 작용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보는 것이 이성론 또는 합리론(合理論)이다. 양자 모두 17~18세기(世紀)에 나타났는데, 영국의 철학자들은 경험론을 옹호하였고, 대륙의 철학자들은 이성론을 옹호하였다.
(1) 경험론
1) 베이컨
경험론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은 프란시스 베이컨(F. Bacon, 1561~1626)이다. 그의 저명한 노작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 1620)에서 그는 전통적인 학문은 무용(無用; 쓸데없는)한 말의 연속에 지나지 않으며, 내용적으로는 공허(空虛)하다고 하면서 올바른 인식은 자연의 관찰과 실험에 의해 얻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 때 올바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선인적(先入的)인 편견(偏見)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 편견으로서 네 가지의 우상(偶像; Idola)을 들었다.
첫째는, 종족(種族)의 우상(偶像; Idola Tribus)이다. 이것은 사람의 지성(知性)은 평평하지 않은 거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사물의 본성(本性)을 왜곡해서 반사하기 쉽다고 하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빠지기 쉬운 편견을 말한다. 예컨대 자연을 의인화(擬人化)시켜서 보는 경향이 그것이다.
둘째로, 동굴(洞窟)의 우상(偶像; Idola Specus)이다. 이것은 마치 동굴(洞窟)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개인(個人)의 독특한 성질이나 습관(習慣), 좁은 선입관(先入觀) 등에 의해서 생기는 편견을 말한다.
셋째는, 시장(市場)의 우상(偶像; Idola Fori)이다. 이것은 지성(知性)이 언어에 의하여 영향받는 데서 오는 편견을 말한다. 그 때문에 전혀 존재(存在)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공허(空虛)한 논쟁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극장(劇場)의 우상(偶像; Idola Theatri)이다. 이것은 권위나 전통에 의지하려는 데서 오는 편견(偏見)을 말한다. 예컨대 권위있는 사상이나 철학에 무조건 의지하려 하는 데에서 오는 편견(偏見) 따위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우상(偶像)을 제거한 후, 우리들은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개개의 현상(現象)속에 있는 본질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베이컨은 귀납법(歸納法)을 제시하였다.
2) 로크
경험론을 체계화(體系化)한 사람은 로크(J. Locke, 1632~1704)이며, 그는 주저(主著; 주요저서)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에서 그의 주장을 상세히 전개하였다. 그는 먼저 인식에 있어서 생득관념(生得觀念)을 배격했다. 생득관념(生得觀念)이란,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인식에 필요한 관념을 말한다. 그는, 인간의 마음은 본래 백지(白紙; tabula rasa)와 같은 것이며, 백지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면 그대로 남는 것처럼, 마음에 들어간 관념(觀念)은 마음의 백지(白紙)에 그대로 적혀진다(인식된다)고 하였다. 즉 그는, 인식은 외부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관념(觀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관념은 두 가지의 방향에서 마음에 들어오게 되는데, 하나는 감각(感覺; sensation)의 방향이며, 또 하나는 반성(反省; reflection)의 방향이다. 이것이 로크의 인식의 기원(起源)이다. 즉 로크에 있어서는, 인식의 기원은 관념을 받아들이는 감각과 반성(反省)에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로크의 경험론은 감각이나 반성을 통한 경험이 인식의 기원(起源)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감각(感覺)이란, 감각기관(感覺器官)에 비치는 대상의 지각(知覺)을 말한다. 즉 황(黃), 백(白), 열(熱), 냉(冷), 유(柔), 견(堅), 고(苦), 감미(甘味) 등의 관념을 말한다. 반성이란, 마음의 작용을 말하며 생각한다, 의심한다, 믿는다, 추리한다, 의지한다 등이 그것이다. 이 반성(反省) 때에도 관념(觀念)이 얻어진다.
그런데 관념(觀念)에는 단순관념(單純觀念; simple idea)과 복합관념(複合觀念; complex idea)이 있다고 한다. 단순관념(單純觀念)이란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 얻어진, 따로 따로 떨어진 관념(觀念)이며, 그것들이 오성(悟性)의 작용에 의해 결합(結合), 비교(比較), 추상(抽象)됨으로써 보다 고차적인 관념을 이룬 것이 복합관념(複合觀念)이다.
그리고 단순관념(單純觀念)에는 고체성(固體性; solidity), 연장(延長; extension), 형상(形象; figure), 운동(運動; motion), 정지(靜止; rest), 수(數; number)와 같이 대상자체(對象自體)에 객관적으로 구비(具備)되어 있는 성질과, 색(色; color) 냄새(smell) 맛(taste) 소리(sound)와 같이 주관적(主觀的)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성질이 있다고 하면서 전자(前者)를 제일성질(第一性質), 후자(後者)를 제2성질(第二性質)이라고 불렀다.
복합관념(複合觀念)에는 양상(樣相; mode), 실체(實體; substance), 관계(關係; relation)의 세 가지가 있다. 양상(樣相)이란, 공간의 양상(거리, 평면, 도형 등), 시간의 양상(계기, 지속, 영원 등), 사유(思惟)의 양상(지각, 상기, 추상), 수(數)의 양상, 힘의 양상 등, 사물의 상태나 성질 즉 속성을 나타내는 관념들이다. 실체란 단순관념을 일으키는 물자체(物自體)를 말하며, 여러 성질(性質)을 지니고 있는 기체(基體; substratum)에 대한 관념이다. 그리고 관계란, 인과(因果)의 관념과 같이 두가지의 관념을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관념(동일, 차이, 원인, 결과 등)을 말한다.
로크는 인식(認識)이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결합(結合)과 일치(一致) 또는 불일치(不一致)와 배반(背反)의 지각(知覺)'3) 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대개 진리(眞理)란 관념의 일치(一致), 불일치(不一致)를 그대로 언어로 표기한 것이다'4) 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관념을 분석함으로써 인식의 기원(起源)의 문제에 답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로크는 직각적(直覺的)으로 인식되는 정신과 논리적으로 인식되는 신(神)의 존재를 확실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외계(外界)에 있어서의 물체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감각적으로밖에는 알 수 없으므로 확실성을 지닐 수는 없다고 하였다.
3) 버클리
버클리(G. Berkeley, 1685~1753)는 로크가 말한 물체(物體)의 제1성질(第一性質)과 제2성질(第二性質)의 구별을 부정하고, 제1성질도 제2성질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이라고 하였다. 예컨대 거리(距離)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연장(延長)), 즉 第一성질(性質)의 관념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거리의 관념은 다음과 같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들은 일정한 거리의 저편에 있는 어떤 사물을 눈으로 보고, 다음에 그곳까지 발바닥으로 땅을 밟으며 걸어가서, 손으로 만져본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할 때, 어떤 종류의 시각(視覺)은 이윽고 어떤 종류의 촉각(觸覺; 예컨대 걸을 때의 발바닥의 촉각)을 수반한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게 된다. 거기에 거리의 관념이 생긴다. 즉 우리들은 연장(延長)으로서의 거리를 그대로 객관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버클리는 로크가 말한 여러 성질(性質)의 담하체(擔荷體)로서의 실체를 부정하면서, 사물은 관념의 집합(集合; collection of ideas)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존재(存在)하는 것이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버클리는 물체라는 실체(實體)의 존재를 부정했으나, 지각(知覺)하는 실체로서의 정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4) 흄
경험론을 궁극에까지 추구한 사람이 흄(D. Hume, 1711~1776)이었다. 그는 우리의 지식(知識)은 인상(印象; impression)과 관념(觀念; idea)에 근거한다고 생각하였다. 인상(印象)이란 감각과 반성에 의한 직접적인 표현을 말하며, 관념(觀念)이란 인상이 없어진 후에 기억 또는 상상에 의해 마음에 나타나는 표상(表象)을 말한다. 그리고 인상과 관념의 양자를 총칭하여 지각(知覺; perception)이라고 불렀다.
그는 단순관념(單純觀念)의 복합에 있어서 유사(類似; resemblance), 접근(接近; contiguity), 인과성(因果性; cause & effect)을, 세 가지의 연상법칙(聯想法則)으로 들었다. 여기서 유사와 접근에 관한 인식은 확실한 것이어서 문제는 없으나 인과성에 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는 인과성(因果性)에 관한 예로서, 번개가 친 뒤에 우레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면, 이때 보통 사람들은 번개가 원인이고 우레 소리는 그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흄은 단순한 인상(印象)으로서의 양자를 원인과 결과로서 결합시킬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고 하면서, 인과성(因果性)의 관념은 주관적인 습관이나 신념에 의해 성립(成立)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닭이 울고 난 후 잠깐 있다가 태양이 뜬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현상이지만, 이 때 닭이 우는 것이 원인이고, 태양이 올라오는 것이 그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인과성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인식은 그와 같이 주관적인 습관이나 신념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경험론은 흄에 이르러 회의론(懷疑論)에 빠져 버렸다. 그는 또 실체성(實體性)의 관념에 대해서도 버클리와 마찬가지로 물체라는 실체의 존재를 의심(疑心)하였다. 또한 그는 정신(마음)이라는 실체의 존재까지도 의심하였으며, 정신이란 지각(知覺)의 묶음(束 : bundle of perceptions)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2) 이성론
이와 같은 영국의 경험론에 대해서, 감각(感覺)에 의해서는 올바른 인식(認識)이 불가능하며 이성에 의한 연역적(演繹的), 논리적(論理的)인 추리에 의해서만 올바른 인식이 얻어진다고 보는 입장이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볼프 등을 중심한 대륙의 이성론(合理論)이다.
1) 데카르트
이성론의 시조(始祖)로 알려지고 있는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는 참된 인식에 이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의심(疑心)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것이 소위 그의 방법적 회의(方法的 懷疑; methodical doubt)이다.
그는 먼저 감각이 우리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감각적(感覺的)인 것을 의심하였다. 왜 이러한 방법을 취하였을까. 그것은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즉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의심해 보고, 그리고서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진실(眞實)이며, 진리(眞理)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한 모든 것을 의심(疑心)해 보고 또 의심해 보았다. 그 결과 한가지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음을 그는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의심한다(思惟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存在)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命題)를 세웠던 것이다. 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存在)한다라는 명제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철학의 제1원리(第一原理)로서,5) 이 명제(命題)가 틀림없이 확실한 것은 이 인식이 명석(明晳; clear)하고 판명(判明; distinct)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우리들이 극히 명석하고 판명하게 이해되는 것은 모두 참(眞)이다'6) 라는 일반적규칙(一般的規則)(第二原理)이 도출된다.
여기에서 명석(clear)이란, 사물이 정신에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고 판명(判明; distinct)이란 명석하면서 다른 사람과 확실히 구별되어 혼동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7) 명석의 반대가 애매(曖昧; obscure)이며, 판명의 반대가 혼동(混同; confused)이다. 이 규칙에 따라 사유를 속성으로 하는 정신과, 연장을 속성으로 하는 물체의 존재가 확실한 것으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이 제1원리와 제2원리에서 데카르트의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이 성립된다. 그것은 제1원리에서 마음(思惟)의 실제(實在)가, 그리고 제2원리에서 물질(연장)의 실재가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석하고 또 판명한 인식이 확실한 것으로 보증되기 위해서는, 악령(惡靈)이 몰래 사람을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하다. 성실한 하나님이 인간을 속인다는 일은 있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하면 인식에 잘못이 생길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신(神)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첫째, 하나님의 관념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생득관념(生得觀念;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관념, 本有觀念)이지만, 그 관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원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
둘째,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한 존재(存在)(하나님)의 관념을 가진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입증된다.
셋째, 가장 완전한 존재자(하나님)의 개념은 그 본질로서의 실체가 필연적(必然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포함(包含)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입증된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인 무한(無限), 전지(全知), 전능(全能)이 명백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로서 성실성(誠實性; veracitas)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명석-판명한 인식에 확실한 보증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하나님과 정신(精神)과 物體(물질)의 존재를 확실한 것으로 인정했지만 그 중에서 참다운 의미에서의 독립적인 존재는 하나님뿐이며, 정신과 물체(物體)는 하나님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정신과 물체는 각각 사유와 연장을 그 속성으로 하는, 서로 전적으로 독립한 실체라고 하면서 그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하였다.
이상과 같이 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한 인식이 틀림없이 확실하다는 것을 논증하였는데, 그는 그것으로써 수학적 방법을 터로 하는 합리적인 인식의 확실성까지도 주장하였던 것이다.
2) 스피노자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도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엄밀한 논증(論證)에 의해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 기하학적 방법(幾何學的 方法)을 철학에 사용하여 논리적인 이론전개(理論展開)를 하려고 하였다.
이성에 의해서 일체의 진리를 인식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스피노자 철학의 전제(前提)이다. 즉 이성에 의해 영원(永遠)한 상(相) 아래에서 사물을 파악하고 또한 하나님과의 필연의 관계에서 전체적, 직각적(直覺的)으로 사물을 파악할 때 참다운 인식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원한 상(相) 아래서 사물을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그 필연(必然)의 과정에서(필연의 연속에서)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인간은 덧없는 사물(事物), 흘러가는 현상에 집착해서 마음을 쓰지 않아도 좋게 되며, 오히려 지금까지 덧없는 것으로 알았던 사물이나 현상,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들까지도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표현으로서 귀(貴)한 것으로 파악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참다운 생명(生命)을 얻게 되고 완전에 도달하며, 무한(無限)한 기쁨, 참다운 행복(幸福)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의 상(相) 아래에서 사물을 파악한다는 말의 뜻이다.
또한 이것은 명석-판명한 이성과 영감(靈感)에 의하여 얻어지는 자각(自覺)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식을 감성지(感性知), 이성지(理性知), 직각지(直覺知)의 셋으로 나누었다. 그 중, 지성(知性)에 의한, 질서가 없는 감성지(感性知)는 불완전한 것이며, 이성지(理性知)와 직각지(直覺知)에 의해서 참다운 인식이 성립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직각지(直覺知)란, 어디까지나 이성(理性)에 근거한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을 각각 사유(思惟)와 연장(延長)을 그 속성으로 하는, 서로 독립된 실체라고 생각한데 대하여, 스피노자는 실체는 하나님 뿐이며, 사유(思惟)와 연장(延長)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를 능산적(能産的) 자연(自然; natura naturans)과 소산적(所産的) 자연(自然; natura naturata)의 관계로 보았으며, 양자는 분리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자연이다라고 하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사상(思想)을 전개하였다.
3)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도 수학적방법(數學的方法)을 중요시하고 소수의 근본원리에서 모든 명제(命題)를 이끌어 내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다. 그는 인간이 인식하는 진리(眞理)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즉 첫째로, 순수(純粹)하게 이성에 의해 논리적으로 파악(把握)되는 것, 둘째로 경험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나누어서 전자(前者)를 영원의 진리 또는 이성의 진리라고 부르고, 후자를 사실의 진리 또는 우연의 진리라고 불렀다. 이성의 진리를 보증하고 있는 것은 동일률(同一律)과 모순률(矛盾律)이며, 사실의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충분한 이유(理由)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충족이유률(充足理由律)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진리의 구별은 인간의 지성(知性)에 대해서만 해당되며, 인간에 있어서 사실의 진리로 간주되는 것도, 하나님은 논리적(論理的) 필연성에 의해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에 있어서는 궁극적(究極的)으로 이성적인 인식이 이상적인 인식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는 또 참다운 실체는, 우주를 반영하는 우주(宇宙)의 살아있는 거울(鏡)로서의 모나드(monade, 單子)라고 하였다. 모나드는 지각(知覺)과 욕구의 작용을 가진 비공간적인 실체이며, 무의식적인 미소지각(微小知覺; petite perception)에서 그 집합(集合)으로서의 통각(統覺; apperception)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나드에는 물질적 차원의 잠든 모나드, 감각과 기억을 가진 동물차원의 혼(魂)의 모나드(또는 꿈꾸는 모나드), 보편적인식을 가진 인간 차원의 정신(精神)의 모나드라는 3단계의 모나드가 있으며, 최고 차원의 모나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4) 볼프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기조(基調)로 하면서, 이에 더하여 이성적(理性的)인 입장을 체계화한 사람이 볼프(C. Wolff, 1679~1754)이다. 그런데 그의 이론의 체계화 과정에서 라이프니츠의 참정신이 희미해졌거나 왜곡되었으며, 또한 라이프니츠의 주요 부분이 그의 이론체계에서 빠졌던 것이다. 특히, 라이프니츠의 모나드論이나 예정조화론은 왜곡(歪曲)되었다. 칸트는 처음에 이 볼프학파에 속해 있었지만 후에 그를 합리주의적(合理主義的)인 독단론의 대표자라고 하면서 예리하게 그를 비판했다. 또한 볼프는 근본원리에 있어서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 인도되는 이성적(理性的)인 인식이야말로 참다운 인식이라고 하면서, 모든 진리는 同一律(모순율(矛盾律))에 의해서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에 관한 경험적 인식의 존재도 인정하고 있으나, 이성적인식(理性的認識)과 경험적인식(經驗的認識)과의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으며, 경험적인식은 참다운 인식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대륙의 이성론은 사실에 관한 인식을 경시(輕視)하고, 모든 것을 이성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결국 볼프에 이르러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
2. 인식대상(認識對象)의 본질(本質)
다음은 인식대상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이다. 인식의 대상은 주체에서 독립하여 객관적(客觀的)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이 실재론(實在論)이며, 인식의 대상은 객관세계(客觀世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체의 의식속에 관념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주장이 주관적관념론(主觀的觀念論)이다.
(1) 실재론
실재론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즉 소박실재론(素朴實在論), 과학적실재론(科學的實在論), 관념적실재론(觀念的實在論), 그리고 변증법적(辨證法的) 유물론(唯物論)등이 그것이다. 첫째의 소박실재론(素朴實在論)은 자연적 실재론이라고도 하며, 물질로 되어 있는 대상이 주관에 대하여 독립해 있다는 입장으로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물이 존재한다는 상식적인 견해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지각(知覺)은 대상을 정확하게 모사(模寫)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두 번째의 과학적실재론(科學的實在論)은 다음과 같다. 즉 대상은 주관과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지만, 감각적인식 그대로는 객관적인식이 될 수 없으며, 감각(感覺)을 초월한 오성(悟性)의 작용에 의해서 대상으로부터 얻은 경험적 사실에 과학적인 반성을 가함으로써 실재를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견해이다. 예를 들면, 색채는 시각적 현상이지만, 과학은 여기에 과학적 비판을 가하여 색채(예를 들면 빨강)는 일정(一定)한 파장을 가진 전자파(광선)에 대한 주관적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또 시각상의 번갯불과 청각상의 천둥은, 과학적으로는 공중에서 일어나는 방전현상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상식적인 실재관에 과학적인 반성을 가한 이론이 과학적 실재론이다.
세 번째의 관념론적실재론(觀念論的實在論)은 객관적관념론이라고도 한다. 대상의 본질은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정신적, 객관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말한다. 즉 정신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출현하기 전부터 세계의 근원(根源)으로서 존재하였으며, 이 근원적인 정신이야말로 세계의 참된 실재(實在)로서 우주의 원형이며, 만물은 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컨대 플라톤은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를 참된 실재(實在)로 생각하면서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헤겔은 세계는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변증법적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에 있어서, 대상은 의식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며, 의식에 반영된 객관적실재라고 보기 때문에 역시 실재론이다. 이것은 사물이 거울에 비치는 것과 같이, 외부의 만물이 인간의 의식(뇌수(腦髓)에 반영된 것이 인식이라고 보는 입장으로서, 공산주의의 인식론이다. 그러나 반영된 내용 그 자체가 반드시 그대로는 진실(眞實)이 아니며, 실천(實踐)(검증)에 의해서 그 진실성이 확인될 때 비로소 객관적으로 진실이 된다. 이와 같이 검증에 의해서 확인될 때 비로소 진리가 된다고 보는 입장을 변증법적 인식론이라고 한다.
(2) 주관적(主觀的) 관념론(觀念論)
실재론은 상술한 바와 같이 인식의 대상이 물질이냐 관념이냐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주관과 독립해서 존재한다고 보고 있는 반면에, 인식대상이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해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의식에 나타나는데 있어서만 그 존재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주관적관념론(主觀的觀念論)이다. 버클리가 그 대표자이며, 실재(實在)는 곧 지각(知覺)이다(esse est percipi)라는 명제(命題)가 그 주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 자아(自我)의 작용을 떠나서 비아(非我; 대상)가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전혀 말할 수 없다고 한 피히테(J. G. Fichte, 1762~1814)나, 세계는 나의 표상(表象)이다(Die Welt ist meine Vorstellung)라고 말한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1788~1860)도 똑 같은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이다.
3. 방법(方法)에서 본 인식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식의 기원(起源)을 경험으로 본 경험론은 나중에 회의론(懷疑論)에 빠지게 되었고, 인식의 기원을 이성에 있다고 본 이성론은 나중에 독단론(獨斷論)에 빠졌다. 그와 같은 결과가 벌어지게 된 이유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인식되어지는가, 그리고 이성에 의해서 어떻게 인식이 성립되는가 하는 문제, 즉 인식의 방법을 고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식의 방법을 중시(重視)하고 이것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과 헤겔?마르크스의 변증법적방법이다. 여기서는 칸트와 마르크스의 방법에 대해서 그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
영국의 경험론은 회의론(懷疑論)에, 대륙의 합리론(合理論)은 독단론에 빠졌지만 이 두 가지 입장을 종합하여 새로운 견해를 세운 사람이 칸트(I. Kant, 1724~1804)이다. 경험론은 인식의 기원(起源)을 경험으로 보고 이성의 작용을 무시함으로써, 그리고 이성론은 이성을 만능의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양자가 모두 오류에 빠졌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그래서 칸트는 올바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인식이 될 수 있는가 하는데 대한 분석(分析)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작용의 검토, 즉 비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批判), 판단력비판(判斷力批判)의 세가지 비판서를 저술하였는데, 각각 진리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선(善)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미(美)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라는 진(眞)-선(善)-미(美)의 가치의 실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중 인식론에 관한 것을 다룬 부분이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이다.
1)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의 요점
칸트는, 지식(知識)은 경험을 통하여 증대한다는 사실(事實)과, 올바른 지식은 보편타당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경험론과 이성론을 통일하려고 하였다. 경험에 의해서 비로소 인식능력이 작용하는 것은 자명(自明)하지만, 여기에서 칸트가 찾아낸 것은 인식하는 주관속에 선천적(先天的)인 인식의 형식(관념(觀念))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즉 대상에서 오는 감성적(感性的)내용(감각적질료, 감각의 다양, 감각적소재라고도 한다)이 주관의 선천적형식(先天的形式)에 의해서 질서가 세워짐으로써 인식의 대상(경험의 대상)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종래의 경험론이나 이성론이 모두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한다고 한 데 대하여, 칸트는 인식의 대상이 주관에 의해 구성(構成)된다고 하였으며, 자신의 이러한 착상을 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라고 자찬하였다. 칸트의 인식론은 이와 같이 대상 그 자체의 인식을 목표로 삼지 않고 객관적 진리성은 어떻게 해야 얻어지는가를 명백히 하고자 한 것으로서, 이것을 선험적(先驗的; 또는 초월적, transzendental)방법(方法)이라고 불렀다.
칸트에 의하면, 인식(認識)은 판단이다. 판단은 명제(命題)인 것으로서 거기에는 주어와 술어가 있다. 따라서 인식을 통하여 지식이 증가한다는 것은, 판단(命題)에 있어서 주어의 개념 속에 없던 새로운 개념(槪念)이 술어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칸트는 그와 같은 판단을 종합판단(綜合判斷)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어의 개념 속에 술어의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 있는 판단을 분석판단(分析判斷)이라고 한다. 결국, 종합판단에 의해서만 새로운 지식(知識)이 얻어지는 것이다.
칸트가 들고 있는 분석판단(分析判斷)과 종합판단(綜合判斷)의 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물체(物體)는 연장을 가지고 있다라는 판단은 물체의 개념 속에 이미 연장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분석판단(分析判斷)이다. 한편 직선(直線)은 두점간(二點間)의 최단의 선(線)이다라는 판단은 종합판단(綜合判斷)이다. 직선이라는 개념은 장단(長短)이라는 양(量)을 포함하지 않고 단지 똑바르다는 성질을 가리키고 있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최단이라는 개념은 전혀 새로이 첨가(添加)된 것이다.
그러나 종합판단(綜合判斷)에 의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고 하여도 그 지식이 보편타당성(普遍妥當性)을 갖지 않으면, 그것은 올바른 지식이 될 수 없다. 지식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은 단순한 경험적인식(經驗的認識)이어서는 안되며, 경험에서 독립된 先天的(아프리오리)인 요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종합판단(綜合判斷)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은 선천적(先天的)인 인식 즉 선천적 종합판단(先天的 綜合判斷)이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칸트가 부딪혔던 문제는선천적(先天的)인 종합판단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9)하는 것이었다.
2) 내용과 형식(形式)
칸트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로써 경험론과 이성론을 종합하려고 하였다. 내용이란, 외계의 사물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우리의 감성(感性)에 주어지는 표상(表象) 즉 의식 내용을 말한다. 내용은 인식의 소재(Stoff) 또는 질료(質料; Materie)로서 외래적인 것이므로 후천적(後天的), 경험적(經驗的)인 요소이다.
한편 형식(形式)이란 질료(質料) 즉 다양한 감각의 내용을 종합 통일하는 한정성(限定性)이며 테두리이다. 즉 감각적 단계에서 형성된 각종의 질료를 통일하는 뼈대이다. 이 형식이야말로 선천적인 것이며, 그 감성적 내용에 통일성을 주는 테두리이다. 이 선천적(先天的)인 형식(形式)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감각의 다양(多樣)한 내용을, 직감적으로 시간적*공간적으로 한정(限定)하는 테두리로서의 직관형식(直觀形式)이며, 또 하나는 오성(悟性)의 사유(思惟)를 한정(限定)하는 사유형식(思惟形式)이다. 이러한 후천적(先天的)인 형식(形式)에 의해서 보편타당성을 지닌 종합판단이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개념으로서의 직관형식(直觀形式)은 감성적 단계에서 감각의 다양한 내용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파악하는 직감적(直感的)인 틀(形式)이다. 그러나 감성적(感性的) 단계에서의 직감만으로는 인식이 성립(成立)되지 않는다. 인식이 성립(成立)되려면 대상이 오성(悟性)에 의해 사유(思惟)되는 과정이 필요하며, 따라서 오성단계에 있어서의 사유(思惟)를 한정하는 테두리로서의 선천적인 형식(形式), 즉 선천적인 개념으로서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직관형식(直觀形式)으로 포착한 내용과 사유형식(개념)의 결합에 의해 인식이 성립한다고 하였다. 그것을 칸트는 내용 없는 사유(思惟)는 공허하며, 개 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칸트는 오성(悟性)에 있어서의 선천적인 개념(思惟形式)을 순수오성개념(reiner Verstandesbegriff) 또는 카테고리(Kategorie, 범주(範疇))로 불렀다. 그리고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일반논리학에 있어서의 판단(判斷)의 형식(悟性形式)을 정리해서 다음과 같은 12가지 카테고리를 도출(導出)하였다.
1.분량(分量; Quantitat)... ... ... 단일성(單一性; Einheit) 다수성(數多性; Vielheit) 총체성(總體性; Allheit)
2.성질(性質)(Qualitat)... ... ... 실재성(實在性; Realitat) 부정성(否定性; Negation) 제한성(制限性; Limitation)
3.관계(關係)(Relation)... ... ... 실체성(實體性; Substanz) 인과성(因果性; Kausalitat) 상호성(相互性; Gemeinschaft)
4.양상(樣相; Modalitat)... ... ... 가능성(可能性)(Moglichieit) 현실성(現實性; Wirklichkeit) 필연성(必然性; Notwerdigkeit)
이와 같이 칸트는 대상의 감성적 내용(感性的內容)이 직관형식을 통하여 직감되고 사유형식(思惟形式)(카테고리)을 통하여 사유됨으로써 인식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감각적 단계에 있어서의 감성적(感性的)내용(직관적 내용)과 오성적 단계에 있어서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은 자동적으로 종합되는 것이 아니다. 감성과 오성은 같은 인식능력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질적인 것이다. 여기에 兩요소(要素)를 공유하는 제3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구상력(構想力; 想像力, Einbildungskraft)이며, 이 구상력에 의해서 직관적(直觀的) 내용과 사유형식(思惟形式)이 통일되어서 다양한 질료의 단편(端片)들이 종합-통일되게 된다. 이와 같이 감각적(感覺的)단계의 직관적(直觀的)내용과 오성적(悟性的)단계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이 구상력에 의해 종합-통일되어 생긴 구성물(構成物)이 바로 칸트에 있어서의 인식(認識)의 대상(對象)이다. 따라서 칸트에 있어서의 인식의 대상은 객관적으로 외계(外界; 외부세계)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과정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의 인식의 대상은 경험론의 후천적인 요소와 이성론의 선천적인 요소가 하나로 통일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때 인식하는 우리들의 의식(意識)은 경험적, 단편적인 의식이어서는 안 되며, 경험적인 의식의 근저(根底)에 통일력을 지닌 순수의식(純粹意識)이어야 한다. 칸트는 그것을 의식일반(意識一般; Bewusstsein Uberhaupt), 순수통각(純粹統覺; reine Apperzeption) 또는 선험적통각(先驗的統覺; transzend entale Apperzeptio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감성(感性)과 오성(悟性)의 작용이 어떻게 결부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칸트는 구상(構想)力이 그 매개의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3) 형이상학(形而上學)의 부정과 물자체(物自體)
이리하여 현상세계에 있어서의 인식, 즉 자연과학이나 수학에 있어서, 어떻게 해서 확실한 인식이 성립(成立)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논한 후에, 칸트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이 과연 가능한가 가능하지 아니한가를 검토하였다. 감각적(感覺的)인 내용이 없는 형이상학은 감성적직관(感性的直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인식될 수가 없다. 그런데 인간의 이성작용(作用)은 悟性만에 관한 것이어서 감성과는 직접 관계하지 않으므로, 현실로 존재하지 않은 것을 마치 존재하고 있는 것같이 착각(錯覺)하는 경우가 있다. 그와 같은 착각을 칸트는 선험적가상(先驗的假象; transzendentaler Schein)이라고 불렀다. 선험적가상(先驗的假象)에는 영혼(靈魂)의 이념(理念), 우주(세계)의 이념(理念), 그리고 신(神)의 이념(理念)의 세 가지가 있다.
그 중 우주의 이념 즉 우주적가상(宇宙的假象)을 순수이성의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ie)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성이 무제약자(無制約者; 무한한 우주)를 추구할 때, 동일한 논거에서 두 개의 전혀 相反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세계는 시간적으로 시작이 있고,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다(定立), 세계는 시간적으로 시작이 없고, 공간적으로 한계가 없다(反定立)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명제(命題)가 그 예이다. 이것은 감성(感性)에 주어진 내용을 그대로 세계 전체로서 파악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오류라고 하였다.
칸트는 대상에서 오는 감성적(感性的)내용이 주관의 선천적인 형식에 의해서 구성되는 한에 있어서 인식이 성립되는 것이며, 대상 그 자체, 즉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는 결코 인식될 수 없다고 하였다. 물자체의 세계란 현상적(現象的) 세계의 배후에 있다고 보는 세계이며, 예지계(叡智界)라고도 한다. 그러나 칸트가 물자체의 세계를 부정(否定)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批判)에서 그것은 도덕을 실현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세계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지계(叡智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유와 영혼의 불사(不死)와 신(神)의 존재가 요청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2) 마르크스주의(主義)의 인식론(認識論)
다음은 유물변증법에 근거한 인식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유물변증법에 의한 인식론은 마르크스主義 인식론 또는 변증법적유물론의 인식론이라고 불려진다.
1) 반영론(反映論, 模寫說)
유물변증법에 의하면, 정신의식(精神意識)은 뇌의 산물 또는 기능이다. 그리고 객관적 실재가 의식에 반영됨(模寫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 진다고 보고 있다. 이것을 반영론 또는 모사설(teoriya otrazhenia, copy theory)이라고 한다. 그것을 엥겔스는 우리들은……… 다시 유물론적으로, 우리들의 두뇌(頭腦) 속의 개념을 현실의 사물의 모사라고 이해하였다'고 말하고, 레닌은 인간의 의식은(인간의 의식이 존재하고 있는 경우에) 거기에서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고, 또 발전하고 있는 외계(外界)를 반영한다'고 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에 있어서는 칸트가 말하고 있는 감성적내용이 그대로 객관적실재의, 의식에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사유형식(思惟形式)도 객관세계의 실재형식의 의식에의 반영이라고 보고 있다.
2) 감성적인식(感性的認識), 이성적인식(理性的認識), 실천(實踐)
인식은 단순히 객관적세계의 반영이 아니다. 반영된 내용은 반드시 실천을 통하여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레닌은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생생한 직관(直觀)으로부터 추상적사고(抽象的思考)로, 그리고 이것에서 실천으로…… 이것이 진리인식의, 즉 객관적실재의 인식에 대한 변증법적인 과정이다'.
유물변증법적 인식의 과정을 더욱 구체적(具體的)으로 설명한 것이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뚱)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식은 실천을 터로 하고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인식의 발전과정에 관한 변증법적유물론의 이론이다……… 즉 인식은 낮은 단계에서는 감성적인 것으로서 나타나며, 높은 단계에서는 논리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어느 단계거나 모두 하나의 통일적인 인식과정의 단계이다. 감성(感性)과 이성이라는 두 가지 성질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기초 위에서 통일되고 있는 것이다.
인식과정의 제1보(第一步)는 외계의 사물에 접촉하기 시작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감각(感覺)의 단계이다 [감성적인식의 단계]. 제2보(第二步)는 감각된 재료를 종합하여 정리하고 개조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개념(槪念), 판단(判斷) 및 추리(推理)의 단계이다 [이성적(理性的) 인식(認識)의 단계].
이와 같이 인식은 감성적인식에서 이성적인식(또는 논리적인식)으로, 그리고 이성적인식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인식과 실천은 일회만(一回限)의 것이 아니다. 실천, 인식, 재실천(再實踐), 재인식(再認識)이라는 형식이 순환왕복(循環往復)하여 무한히 반복되며, 그리고 각 순환마다 실천과 인식의 내용이 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칸트는 주관(主觀)이 대상을 구성하는 한에 있어서만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현상의 배후에 있는 물자체(物自體)는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함으로써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는 현상(現象)을 통해서만 사물의 본질이 인식되어지며, 실천에 의하여 사물을 완전히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상에서 유리(遊離)된 물자체(物自體)의 존재는 부정했다. 엥겔스는 칸트에게 반론(反論)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칸트의 시대에는 자연의 물체에 관한 우리들의 지식이 극히 단편적이었으므로, 칸트도 그 자연물에 대해서 우리들의 얼마 안되는 지식의 배후에 무엇인가 아직 신비한 물자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놀라운 진보(進步)에 의해서 이러한 알기 어려웠던 것들이 차례차례로 파악되고 분석되었다. 그뿐 아니라 재생산(再生産; reproduce)되기까지에 이르렀다. 적어도 우리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우리들이 인식할 수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식과 실천의 과정에 있어서 실천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모택동은 변증법적유물론의 인식론은 실천을 제일의 지위에 놓으며, 인간의 인식은 조금도 실천으로부터 떠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실천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작용이나 인간의 여러가지 사회활동을 말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경우에는 그 중에서도 혁명을 최고의 실천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식의 최종적인 목적은 혁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식의 능동적 작용은,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이성적 인식으로의 능동적인 비약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더욱 이성적 인식으로부터 혁명적 실천으로 라는 비약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리적 인식(理性的認識)에 있어서의 사유형식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논리적인식은 개념을 매개로 하는 판단, 추리 등의 사유활동을 말하지만, 그 때 사유형식은 중요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반영론(反映論)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는 사유형식이 객관세계에 있어서의 제과정의 의식에의 반영, 즉 존재형식의 의식에의 반영이라고 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의 카테고리(實在形式)?사유형식(思惟形式)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물질(物質) 한도(限度)
운동(運動) 모순(矛盾)
공간(空間) 개별(個別)과 보편(普遍)
시간(時間) 원인(原因)과 결과(結果)
의식(意識) 필연성(必然性)과 우연성(偶然性)
유한(有限)과 무한(無限) 가능성(可能性)과 현실성(現實性)
양(量) 내용과 형식(形式)
질(質) 본질(本質)과 현상(現象)
3) 절대적진리(絶對的眞理)와 상대적진리(相對的眞理)
인식과 실천의 반복에 의해서 지식이 발전해 가는데, 지식의 발전이란 지식의 내용이 풍부(豊富_해지는 것과 지식의 정확도가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에 지식(知識, 眞理)의 상대성과 절대성이 문제가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객관적실재(客觀的實在)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 진리라고 한다. 즉 우리들의 감각, 지각, 표상, 개념, 이론이 객관세계와 일치하며, 그것을 올바르게 반영한다면 그것들은 참[眞]이다 라고 한다. 또 참된 언명(言明), 판단(判斷) 또는 이론을 진리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마르크스주의는 실천-결국은 혁명적 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식이 참인가 아닌가는 실천을 통하여 현실과 비교하며, 인식이 현실에 일치하고 있는가 있지 않은가를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마르크스는실천속에서 인간은 그 사고의 진리를, 다시 말하면 그 사고의 현실성과 힘(力), 차안성(此岸性)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사람들의 사회적 실천만이 외계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진리인가 아닌가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결국 혁명적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시대의 지식은 부분적(部分的)이고 불완전해서 상대적진리에 머물지만,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지식은 완전한 절대적진리에 한없이 가까워진다고 하면서 절대적진리의 존재를 승인한다. 그러므로 상대적진리(相對的眞理)와 절대적진리(絶對的眞理)의 사이에 넘기 어려운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레닌은 말했다. 그리고 상대적인 진리속에 절대적으로 참다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것이 부단히 축적(蓄積)되었을때 절대적진리가 된다'고 하였다. 以上으로종래의 인식론의 항목을 전부 마친다.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이상(以上)은 종래의 인식론의 요점을 참고로 소개했을 뿐이며, 따라서 통일인식론의 이해를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部分)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 밝혀둔다.
二. 통일인식론
이상(以上)에서 종래 인식론의 개요(槪要)를 살펴 보았는데, 다음은 통일사상에 의한 인식론 즉 통일인식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통일인식론은 통일원리중 인식에 관련된 개념과 문선명 선생(文鮮明 先生)의 설교, 강연중에서 이에 관련된 내용 및 저자의 질문에 대한 문선생님의 답변 등을 근거로 하여 세운 인식에 관한 이론체계(理論體系)'28)이며 문선생님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1. 통일인식론(통일인식론)의 개요(槪要)
통일인식론은 종래의 인식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격(性格)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종래의 인식론이 다룬 문제, 예컨대 인식의 기원, 인식의 대상, 인식의 방법 등을 다루면서 통일인식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인식(認識)의 기원(起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인식의 기원이 경험에 있다고 보는 경험론과 이성에 있다고 보는 이성론(合理論)이 형성되었으나, 경험론은 흄에 이르러 회의론(懷疑論)에 빠졌고, 합리론은 볼프에 이르러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칸트는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에 의해 경험론과 합리론의 통일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물자체(物自體)를 불가지(不可知, 알 수 없는)의 세계에 남겨놓고 말았다. 이에 대하여 통일인식론의 입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날까지의 인식론은 인식의 주체(人間)와 인식의 대상(萬物)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과 만물의 관계를 명확히 몰랐기 때문에, 이성론과 같이 인식의 주체에 중점을 두고 이성(또는 悟性)이 추론하는 대로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거나, 경험론과 같이 대상에 중점을 두고 감각을 통하여 대상을 그대로 파악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던 것이다.
칸트는 대상으로부터 오는 감각적요소와 주체가 갖고 있는 사유형식이 구상력에 의하여 종합?통일되어 인식의 대상이 구성(構成)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주체(인간)가 지닌 요소와 대상(만물)이 지닌 요소와의 종합에 의해 인식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그러나 그는 양자(주체와 대상)의 필연적인 관계를 몰랐기 때문에, 주체의 카테고리라고 하는 테두리 내에서밖에 인식할 수 없다는 논리(論理)가 되어서 결국 물자체는 불가지(不可知)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자기전개에 있어서, 이념이 자기를 외부에 소외(疎外)시켜서 자연(自然)이 되었다가 나중에 인간의 정신을 통하여 본래의 자기(自己)를 회복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연은 인간의 정신이 발생하기까지의 하나의 과정적(過程的) 존재(存在)에 불과하며, 항구적(恒久的)인 존재로서의 적극적인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는,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립(對立)하는 우연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인식의 주체(인간)와 인식의 대상(만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무신론(無神論)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과 만물과의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 우주는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는 우주생성설(宇宙生成說)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인간과 만물은 서로 우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에 의해서 인간과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질 때 비로소 인간과 만물은 필연적인 관계가 확인(確認)되게 된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인간과 만물은 모두 피조물(被造物)로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 즉 인간은 만물의 주관주(主管主), 즉 주관의 주체이며, 만물은 인간에 대하여 기쁨의 대상이요 미(美)의 대상이며, 따라서 주관의 대상이다. 주체와 대상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기계에 있어서의 원동기(原動機)와 작업기(作業機)의 관계와 같다. 원동기가 없는 작업기는 있을 필요가 없고, 또 작업기가 없는 원동기도 있을 수 없다. 양자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도록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만물도 주체와 대상이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도록 창조된 것이다.
인식이란, 인간주체가 기쁨의 대상이요, 미(美)의 대상이요, 주관(主管)의 대상인 만물을 판단하는 행위이다. 그 때 인식 즉 판단에는 `경험(經驗)'이 수반되는 동시에, 판단 그 자체는 `이성'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식에는 경험(經驗)과 이성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와 같이 통일인식론에 있어서 경험(經驗)과 이성은 양자가 다같이 필수적인 것이며, 양자가 통일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만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으므로, 인간은 만물을 완전히 또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2) 인식(認識)의 대상(對象)
통일사상은 우선 인간의 외부에 만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즉 실재론을 인정한다. 인간은 만물에 대하여 주체이므로, 만물을 주관하고(栽培-育成하거나, 취급 가공 이용하거나 하는 것 등) 만물을 인식한다. 그것을 위하여 만물은 인식의 대상으로서, 또 주관의 대상으로서, 인간과 독립하여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인식론은 또, 인간은 만물의 총합실체상으로서 우주의 축소체 즉 소우주이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구조(構造), 요소(要素), 소성(素性)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몸을 표본으로 하여 상징적(象徵的)으로 인간과 비슷하게 창조된 것이 만물이다. 따라서 인간의 몸과 만물은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인간에 있어서 몸은 마음을 닮도록 지어진 것이다.
인식은 반드시 판단을 동반하는데, 판단이란 일종의 측정작용(測定作用)이라고 볼 수 있다. 측정에는 기준(척도)이 필요한 바, 인식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觀念)이며, 그것을 `원형(原型)'이라고 한다. 원형(原型)은 마음속에 있는 영상(映像)이며, 내적인 대상이다. 이 마음속의 영상(映像)(내적영상(映像))과 외계의 대상에서 오는 영상(외적영상(映像))이 조합(照合)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실재론은 인간속에 있는 선재성(先在性)의 관념(觀念)을 무시하고 외계의 존재만을 주장했다. 반영론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가 그 대표이다. 또 그와 반대로 인간의 의식에 나타나는 관념만이 인식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주장이, 버클리에 의해 대표되는 주관적관념론(主觀的觀念論)이다. 그런데 통일인식론에 있어서는 이 실재론과 관념론(觀念論, (주관적관념론))이 통일되고 있는 것이다.
(3) 인식(認識)의 방법(方法)
통일인식론의 방법은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이나 마르크스의 변증법적방법과는 다르다. 수수법(授受法), 즉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의 원리가 통일인식론의 방법이다. 따라서 방법에서 볼 때 통일인식론은 수수법적인식론(授受法的認識論)이 되는 것이다. 인식은 주체(主體)(인간)와 대상(만물)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주체와 대상에는 각각 지니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이 있다. 마치 예술의 감상에 있어서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이 각각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었던 것과 같다. 작품을 감상할 때 주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대상에의 관심(關心)과 가치추구욕 및 주관적요소 등이며, 대상이 갖추어야 할 조건(條件)은 창조목적과 상대적요소의 조화(調和)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식(認識)에 있어서도 주체와 대상에 조건이 필요하다. 주체적 조건은 주체가 원형(原型)과 관심(關心)을 갖는 것이며, 대상적 조건은 대상이 속성(屬性)(내용)과 형식을 구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수작용에는 존재의 2단구조(構造)의 원칙에 따라 내적수수작용(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과 외적수수작용(外的四位基臺)이 있다.
인식은 먼저 외적수수작용이 행해지고 이어서 내적수수작용이 행해짐으로써 성립된다. 이와 같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인식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수수법적(授受法的) 인식론이라고 한다. 즉 관심을 가진 주체(인간)와 대상적 조건을 구비한 만물과의 사이에 수수작용이 행해진다. 이 때 먼저 감성적 단계의 마음(감성(感性))에 대상의 속성(내용)과 형식(存在形式)이 반영되어서, 영상(映像)으로서의 내용(감성적(感性的)내용)과 형식(감성적(感性的)형식(形式))이 형성된다. 이것을 외적영상(外的映像)이라고 한다. 외적수수작용(또는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에서 나타나는 영상(映像)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 및 형식(외적영상(映像))과, 주체가 전부터 가지고 있던 원형(原型)(내용과 形式: 내적映像)과의 사이에 또 수수작용(대비형의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이것이 내적수수작용(또는 내적四位基臺 形成)이다. 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인식이 성립된다.
여기서 통일인식론의 방법(方法)과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 및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과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하기로 한다. 칸트에 있어서의 내용(感性的내용)은 外界(대상)에서 수용된 것이며, 형식 즉 직관형식(直觀形式)과 사유형식(思惟形式)은 주체가 지닌 선험적(先驗的)이며 주관적(主觀的)인 요소이다. 따라서 내용은 대상에 속하고 형식은 주체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물자체(物自體)를 불가지(不可知, 알 수 없는)의 세계로 넘겨버렸기 때문에, 그의 감성적 내용은 실체(實體)가 없는 내용, 즉 주체(주관)에만 속하는 내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결국 칸트에 있어서는 내용도 형식도 모두 주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관념론자(觀念論者)라고 자주 불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수수법적(授受法的) 방법에 있어서는 내용과 형식(形式)이 주체에도, 대상에도 속해 있다. 즉 주체도 내용과 형식을 구비하고 있고, 대상도 내용과 형식을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辨證法的) 방법에 있어서는 내용과 형식이 모두 객관적(客觀的) 실재(實在)인 대상에만 속해 있고, 주체의 의식은 단지 그것을 반영(反映)할 뿐이다. 이렇게 볼 때, 통일사상의 수수법적(授受法的) 방법(方法)은 선험적(先驗的) 방법과 변증법적(辨證法的) 방법을 함께 구비하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통일인식론에 있어서 외적수수작용에 반영론적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내적수수작용에 선험적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통일인식론에 있어서 변증법적방법(反映論)과 선험적방법이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2. 인식(認識)에 있어서의 내용과 형식(形式)
일반적으로 내용과 형식을 말할 때, 사물속에 있는 것을 내용이라고 하고, 외부에 나타난 모양을 형식(形式)이라고 하지만, 인식론에서 다루는 내용이란 사물의 속성(屬性)을 말하고, 형식이란 그 속성이 규제(規制)되어서 나타나는 일정한 틀을 말한다(즉 속성이 일정(一定)한 틀을 통해서 나타날 때 그 틀을 형식(形式)이라고 한다).
(1) 대상(對象)의 내용과 주체의 내용
인식의 대상은 만물 또는 사물이므로, 대상의 내용이란, 만물(事物)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속성 즉 형태, 중량, 길이, 운동, 빛깔, 소리, 냄새, 맛 등을 말한다. 따라서 대상의 내용은 물질적 내용 즉 형상적인 내용이다. 한편 인식의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주체의 내용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속성을 말하는데, 그 속성도 만물(事物)의 속성과 같이 형태, 중량, 길이, 운동, 빛깔, 소리, 냄새, 맛 등의 물질적 내용인 것이다.
보통 인간의 속성(屬性)이라고 하면 이성, 자유, 영성(靈性) 등을 말하는 경우가 많으나 인식론에서는 내용의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상(만물)과 동일한 속성을 다룬다. 인간은 우주의 축소체(小宇宙)이며 만물의 총합실체상이므로, 인간은 만물이 가지고 있는 구조(構造), 요소(要素), 소성(素性) 등을 모두 통일적(축소적)으로 구비하고 있다. 즉 인간은 만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체(인간)와 대상(만물)이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인식에 있어서의 수수작용은 성립(成立)되지 않는다. 인식은 일종의 사유현상(思惟現象)이기 때문에, 내용은 주체의 마음에도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주체의 마음속에 있는 이 내용이 원형(原型)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원형속의 내용 부분으로서, 원의식(原意識, 생명체가 가지는 潛在意識... ... 후술) 속에 나타나는 원영상(原映像)을 말한다. 이 원영상은 인간의 몸의 속성에 대응하는 심적영상(心的映像)으로서, 이것은 외계의 만물의 속성(물질적 내용)에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심적영상(心的映像) 즉 원영상(原映像)은 물질적 내용에 대응하는 心的내용 즉 성상적(性相的) 내용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몸의 속성은 만물의 속성(물질적 내용)에 대응하고 인간의 심적영상(心的映像, 原映像)은 인간의 몸의 속성에 대응한다. 따라서 결국 인간의 심적영상(心的映像)은 만물의 속성에 대응한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므로 인식에 있어서 주체(인간)의 心的내용 즉 원영상(原映像)과, 대상(만물)의 물질적 내용(감성적 내용)이 서로 대응하게 되어, 주체와 대상사이에 수수작용(授受作用)이 벌어져서 이때 인식이 이루어진다.
(2) 대상(對象)의 형식(形式)과 주체(主體)의 형식(形式)
인식의 대상인 만물(사물)의 속성은 반드시 일정한 틀(framework)을 가지고 나타난다. 이 일정한 틀이 존재형식(存在形式)이다. 존재형식은 사물의 속성의 관계형식이기도 하다. 이 존재형식 또는 관계형식이 인식에 있어서의 대상의 형식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우주의 축소체(縮小體, 소우주)이며 만물의 총합실체상이므로, 인간의 몸은 만물이 지니고 있는 존재형식과 같은 존재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식에 있어서의 형식은 마음속의 형식, 즉 사유형식이 아니면 안 된다. 이것은 몸의 존재형식이 원의식(原意識)속에 반영된 것, 즉 형식상(形式像; 또는 관계상)이며, 원형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3) 원형(原型)의 구성요소(構成要素)
인식에 있어서 판단의 기준(尺度)이 되는 주체속의 심적영상(心的映像)을 원형(原型)이라고 하며, 원형(原型)은 다음과 같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첫째로, 원영상(原映像)이다. 이것은 인체의 구성요소인 세포나 조직의 속성이 원의식에 반영된 영상이다. 즉 원의식(原意識)이라는 거울에 비춰진 세포나 조직의 속성의 영상이 원영상인 것이다.
원형(原型)을 구성하는 둘째 요소는 관계상 즉 사유형식(思惟形式)이다. 원의식(原意識)에는 인체의 세포나 조직의 속성 뿐만 아니라 속성의 존재형식(存在形式, (關係形式)도 원의식(原意識)에 반영되어서 영상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관계상(關係像)으로서, 이 관계상이 현재의식의 사고작용에 일정한 제약을 주는 사유형식이 되고 있다. 이상의 원영상(原映像)과 관계상(關係像, 사유형식)은 경험과는 관계가 없는 관념(觀念) 즉 선천적(先天的)인 관념으로서, 원형에는 그 외에 과거 및 인식(認識)의 직전(直前)까지 경험에 의해 부가(附加)되는 후천적(後天的)인 관념(觀念)도 있다. 즉 인식에 앞서서 그때까지의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 관념(觀念; 경험적관념(經驗的觀念)은 그 후의 인식에 있어서 원형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한번 경험한 사물과 동일한 사물을 대하였을 때, 쉽게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원형(原型)은 원영상(原映像), 관계상(關係像, 思惟形式), 경험적관념(經驗的觀念)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원형(原型)은 경험에 앞서는 선천적(先天的)인 요소와 경험을 통하여 얻어진 요소, 즉 경험적요소로 되어 있다. 선천적요소(先天的要素)란 본래의 의미의 원형(原型)을 말하며, 원의식(原意識)에 나타난 원영상(原映像)과 관계상(關係像)을 말한다. 이것은 경험(經驗)과는 관계없는 선천적(先天的)인 원형이다. 이것을 원초적(原初的) 원형(原型)이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경험적요소(經驗的要素)란 일상생활의 체험에 있어서 마음속에 영상으로 나타나는 경험적(經驗的) 관념(觀念)을 말하며, 일단 나타나면 그 이후 원형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경험(經驗的) 원형(原型)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선천적(先天的) 원형(原型)과 경험적(經驗的) 원형(原型)이 결합된 원형을 복합원형(複合原型)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원형은 모두 복합원형(複合原型)인 것이다.
(4) 원형(原型)의 선재성(先在性)과 그 발달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원형에는 선천적(先天的)인 요소(要素)와 경험적(經驗的)인 요소(要素)가 있기 때문에 어떤 순간의 판단은 그 이전에 형성된 원형(複合原型)이 그 판단의 기준(척도)이 된다. 이와 같이 인식에 있어서 그 인식의 판단기준(原型)은 반드시 미리 갖춰져 있게 마련이다. 이 사실을 원형(原型)의 선재성(先在性)(priority)이라고 한다. 칸트는 인식의 주체가 가지는 형식을 선천적(先天的; a priori)이라고 주장했는데, 통일인식론에서는 주체가 지니는 원형의 선재성(先在性)을 주장한다.
그런데 인간이 출생하면서 가지고 있던 원형(原映像, 關係像)은 출생 직후의 유아의 경우 세포, 조직, 기관, 신경, 감각기관, 뇌 등의 미발달 때문에 아직 불완전하다. 따라서 인식은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아(幼兒)가 성장함에 따라 신체(身體)의 발달과 더불어 원영상이나 관계상은 점차로 명료해진다. 여기에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 새로운 관념이 계속 첨가된다. 이리하여 원형은 질적(質的)으로나 양적(量的)으로 발달한다. 이것은 곧 기억량의 증대 또는 새로운 지식(知識)의 증대를 의미하는 동시에 경험적 원형의 발달, 더 나아가서 복합원형(複合原型)의 발달을 의미한다.
(1) 원의식(原意識)
원리강론(原理講論)에는 피조물은 원리 자체의 주관성 또는 자율성에 의해 성장한다'29)라고 되어 있다. 여기의 주관성이나 자율성은 생명력(生命力)의 특징을 말한다. 생명이란, 생물체의 세포나 조직에 들어있는 잠재의식을 말하며, 잠재하고 있는 감지력(感知力), 각지력(覺知力), 합목적적(合目的的)인 능력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이란, 감지성, 각지성, 합목적성을 지닌 잠재의식이다. 여기서 감지성이란 사물에 관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각지성은 알고 있는 상태를 지속하는 능력을 말하며, 합목적성은 일정한 목적을 지니면서 그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력(意志力)을 말한다. 원의식(原意識)이란, 근본이 되는 의식이라는 뜻으로서, 그것은 세포나 조직속에 들어 있는 생명(宇宙意識)을 말한다. 마음의 기능이라는 점에서 볼 때 원의식(原意識)은 저차원의 마음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포속에 들어간 저차원의 우주심 또는 저(低)차원의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의식(原意識)은 동시에 또 생명이다. 우주의식이 세포나 조직에 들어가서 개별화된 것이 원의식이며, 생명이다. 즉 세포나 조직속에 들어온 우주의식이다. 마치 전파가 라디오에 들어가 음성을 내고 있는 것처럼, 우주의식이 세포나 조직속에 들어가서 그것들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31) 결국 원의식이란 생명이며, 그것은 감지성(感知性), 각지성(覺知性), 합목적성(合目的性)을 가진 잠재의식이다. 통일사상에 의하면, 하나님은 로고스로써 우주를 창조하실 때, 생물의 각 개체의 계대(繼代)를 위해서, 즉 번식에 의한 종족보존(種族保存)을 위해서 그 개체에 고유한 모든 情報(즉 로고스)를 물질적 형태의 기록(암호)으로 세포속에 봉인(封入)해 두었다고 본다. 그 암호가 바로 DNA(디옥시리보핵산(核酸))의 유전정보로서, 아데닌(adenine), 구아닌(guanine), 티민(thymine), 사이토신(cytosine)이라는 4종류의 염기(鹽基)의 일정한 배열인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되어 있다. 만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흙으로 세포를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으시니 세포는 산 세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포에 취입(吹入)된 우주의식이 원의식이며 생명이다. 우주의식이 세포, 조직에 취입(吹入)됨으로써 생물체는 살아있는 개체가 된 것이다.
3. 원의식(原意識), 원의식상(原意識像) 및 범주(範疇)
(2) 원의식(原意識)의 기능(機能)
다음은 원의식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원의식(原意識)의 기능은 다양하다. 즉 유전정보(暗號)의 해독(解讀)과 정보의 지시사항(指示事項)의 수행(遂行), 그리고 정보의 전달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주의식이 먼저 세포에 스며들어 가서 원의식(原意識)이 되면 먼저 거기에 들어 있는 DNA의 유전정보를 해독한다. 그리고 원의식은 그 정보의 지시(指示)에 따라 세포나 조직을 활동시킨다. 그리고 또 생체(生體)의 성장에 따라 세포조직의 증대, 신기관(新器官)의 형성과 성장, 각 세포간 및 조직간의 상호관계의 형성 등을 실현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한편 필요에 따라서 각 세포나 조직에 새로이 발생(發生)하는 정보를 말초신경(求心神經)을 통하여 중추신경에 전달하고, 중추는 다시 말초신경(遠心神經)을 통하여 세포나 조직에 새로운 지령(指令((情報))을 내리는데, 이 때 그 정보를 역시 원의식(原意識)이 전달한다. 이와같이 세포나 조직과 중추와의 사이에서 정보(情報)를 주고 받는 전달자의 역할(役割)도 원의식이 맡아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이 원의식의 기능(機能)이다. 이러한 기능은 모두 원의식(潛在意識)의 감지성(感知性), 각지성(覺知性), 합목적성(合目的性)에 기인한다. 원의식이 이와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 동안에 원영상(原映像)이나 관계상(關係像)이 발달하게 된다.
(3) 원의식상(原意識像)의 형성
생물체속의 잠재의식 즉 원의식은 감지성(感知性)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원의식은 직감적(直感的)으로 세포나 조직의 구조, 성분, 특성 등을 감지한다. 더욱이 세포나 조직의 상황변화(狀況變化)까지도 원의식은 감지하게 된다. 그 때 원의식(原意識)이 감지한 내용, 즉 원의식에 반영된 영상이 원영상(原映像)이다.
원의식에 원영상이 생긴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물체가 거울에 비치는 것, 또는 필름의 노출에 의해 물체가 그 필름에 비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의식은 또 각지성(覺知性)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감지(感知)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 즉 원영상을 파지(把持; 감지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하는 것이어서 파지성(把持性)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세포, 조직, 기관 등 체내의 여러 요소(要素)는 각각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 및 연체(聯體)로서, 내적 또는 외적인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존재하고, 작용하며, 성장한다. 예컨대 어떤 하나의 세포의 경우, 그 세포내의 제요소(핵과 세포질)간에 벌어지는 수수작용이 내적수수작용이며, 그 세포와 타(他)세포와의 사이에 벌어지는 수수작용이 외적수수작용이다. 그 때의 수수의 관계가 성립하는데, 필요한 여러 조건을 관계형식(關係形式)이라고 하며, 만물은 예외없이 그러한 조건을 갖춘 상황하(狀況下)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관계형식은 존재형식(存在形式)이라고도 한다. 이 존재형식은 만물이 존재하는데 있어서 짜여지게 되는 틀(framework)이기도 한 것이다.
이 존재형식이 원의식에 반영되어서 이루어진 영상을 관계상(關係像) 또는 형식상(形式像)이라고 한다. 원의식은 이와 같이 원영상(原映像)과 관계상(형식상)을 지니고 있는데, 원영상과 관계상을 합친 것을 원의식상(原意識像)이라고 한다.
(4) 사유형식(思惟形式)의 형성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인식주체(認識主體, 인간)가 갖고 있는 내용에는 물질적내용(형상적내용)과 심적내용(성상적내용)이 있는데 물질적내용은 대상(사물)의 속성과 같은 것이며, 심적내용(心的내용)은 원영상이다. 여기에서 물질적내용이 심적내용의 대응원(對應源)이 되는 것이다. 여기의 대응원(對應源)이란 1 대(對) 1의 대응관계에 있는 두 요소(要素)중 원인적 관계에 있는 요소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와 그림자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서, 물체가 움직이면 그림자도 그에 따라 움직이고, 물체가 정지하면 그림자도 정지한다. 이 때 물체(物體)는 그림자의 대응원(對應源)이라고 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관계에 있어서 몸이 건강할 때 마음이 건강해지고 몸이 약할 때 마음도 약해진다고 하면, 이때 몸은 마음의 대응원(對應源)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식의 주체가 지닌 물질적(物質的)형식(形式, 형상적 형식)과 심적형식(心的形式, 성상적 형식)에 있어서 물질적 형식이 심적형식의 대응원(對應源)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물질적형식은 바로 대상(사물)의 존재형식이다.
이미 누차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몸은 만물의 총합실체상(總合實體相)이기 때문에, 만물의 속성 그대로가 몸의 속성이 되고, 몸의 속성이 원의식(原意識)에 반영되어서 원영상(原映像), 즉 심적(心的)내용이 되듯이, 만물의 존재형식도 그대로가 몸의 존재형식이 되고, 그것이 그대로 원의식에 반영되어서 심적형식(心的形式), 즉 관계상(關係像)이 된다. 심적형식이란 바로 사유형식(思惟形式)이다. 즉 사유형식의 뿌리는 존재형식이다. 따라서 존재형식(存在形式)은 사유형식의 대응원(對應源)이 되는 것이다.
세포나 조직에 있어서의 관계형식(關係形式, 존재형식)이 원의식에 반영되어서 관계상이 되는데, 이 원의식의 관계상은 일종의 정보가 되어서 대뇌의 중추에 전달되는 바, 먼저 수많은 관계상은 말초신경을 지나서 하위중추를 거친 다음 대뇌의 상위중추(皮質中樞)에 모인다. 그 과정에서 여러 관계상들이 정리되고 분류되면서 사유형식이 확정되어 피질중추에 도달된다고 본다. 즉 외계의 존재형식에 대응하는 심적 형식으로서의 사유형식이 심리(心理)속에 형성되는 것이다.
이 사유형식이 인간이 사고할 때에 그 사고가 따라야 하는 틀이 된다. 즉 인간의 사고(思考)는 사유형식(思惟形式)에 따라서 행해진다. 이렇게 되는 것을 사유형식이 사고를 규정한다고 말한다. 사유형식은 가장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기본개념(基本槪念)을 의미하는 범주(範疇, 카테고리)와 동일한 것이다.
(5) 존재형식(存在形式)과 사유형식(思惟形式)
사유형식의 대응원이 존재형식이므로 사유형식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형식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개체와 개체(또는 요소와 요소)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때의 형식 즉 관계형식이 곧 존재형식인 것이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가장 기본적인 존재형식으로서 다음의 10가지가 있다.
①존재(存在)와 힘........ 모든 개체가 존재할 때, 반드시 거기에는 힘이 작용한다. 존재를 떠난 힘은 없고, 힘을 떠난 존재도 없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원력이 만물에 작용하여 만물을 존재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성상(性相)과 형상(形狀)......... 모든 개체는 내적인 무형(無形)의 기능적요소와 외적인 유형의 질량(質量), 구조(構造), 형태(形態)로 되어 있다.
③양성(陽性)과 음성(陰性)......... 모든 개체는 성상과 형상의 속성으로서 양성과 음성을 지니고 있다. 양성과 음성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언제나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음양(陽陰)의 조화에 의해서 미(美)가 나타난다.
④주체(主體)와 대상(對象)......... 모든 개체는 그 자체 내부의 상대적(相對的) 요소(要素) 사이에, 또는 그 개체와 다른 개체와의 사이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고 수수작용을 하면서 존재한다.
⑤위치(位置)와 정착(定着)......... 모든 개체는 일정한 위치에 정착한 후 존재한다. 즉 각 위치에는 거기에 적합한 개체가 자리잡고 있다.
⑥불변(不變)과 변화(變化)......... 모든 개체는 반드시 변하는 면과 변하지 않는 면을 가지고 있다. 피조물은 모두 자동적사위기대(정적사위기대)와 발전적사위기대(동적사위기대)의 통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⑦작용(作用)과 결과......... 모든 개체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相對的)요소(要素)가 수수작용을 하면 반드시 거기에 결과가 나타난다. 즉 수수작용에 의해 합성체(合性體)를 이루거나 신생체(新生體)가 생긴다.
⑧시간(時間)과 공간(空間)......... 모든 개체는 시간과 공간속에 존재하는 시공적(時空的)존재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사위기대(공간적 기대)를 형성하면서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시간적 작용)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⑨수(數)와 원칙(原則)......... 모든 개체는 수적존재(數的存在)인 동시에 법칙적존재이다. 즉 수는 반드시 법칙 또는 원칙과 일치(一體)가 되고 있다.32)
⑩유한(有限)과 무한(無限)......... 모든 개체는 유한적(순간적)이면서 무한성 (지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상은 통일원리의 사위기대(四位基臺), 수수작용(授受作用),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을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가장 기본적인 존재형식이다. 이것은 인식의 대상인 만물의 존재형식인 동시에, 인식의 주체인 인간 육신의 구성요소(構成要素)의 존재형식이다.
이들 존재형식에 대응하는 심적(心的)인 형태가 사유형식(思惟形式)이다. 즉 ①존재와 힘 ②성상과 형상 ③양성과 음성 ④주체와 대상 ⑤위치와 정착 ⑥불변과 변화 ⑦작용과 결과 ⑧시간과 공간 ⑨수와 원칙 ⑩유한과 무한 등이 그대로 사유형식이 된다. 존재형식은 물질적인 관계형식이며, 사유형식은 관념의 관계형식으로서 기본적(基本的) 개념(槪念)이다.
물론 이 외에도 존재형식이나 사유형식은 더 있을 수 있지만, 여기에 열거(列擧)한 것은 통일사상에서 본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다. 칸트가 주장한 것 같이 사유형식이 존재와 무관계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것같이 외계의 실재형식(實在形式)이 반영되어 사유형식이 된 것은 더욱 아니다. 인간자신은 원래부터 외계의 존재형식에 대응하는 사유형식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인간자신은 원래부터 시간성과 공간성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을 가지고 있으며, 원래부터 주체성과 대상성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사유형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10개의 존재형식에 정확히 대응하는 사유형식이 인간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4. 인식(認識)의 方法
(1) 수수작용(授受作用)
원리강론에는 주체와 대상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면 생존(生存)과 번식(繁殖)과 작용(作用) 등을 위한 힘을 발생한다'33)고 되어 있다. 여기서 번식(繁殖)이란, 넓은 의미에서 출현, 발생, 증대, 발전을 의미한다. 또 작용(作用)은 운동, 변화, 반응 등을 의미한다. 인식은 지식의 획득(獲得)이나 증대를 의미하므로, 수수작용에 의한 번식의 개념에 포함된다. 따라서 인식은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라는 명제(命題)가 세워진다.
인식에 있어서의 주체는 일정한 조건 즉 대상에 대한 관심(關心)과 원형(原型)을 갖춘 인간을 말하고, 대상은 내용(屬性)과 형식(存在形式)을 갖춘 만물(事物)을 말한다. 이 양자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사위기대(四位基臺)의 형성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반드시 목적을 중심하고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수수작용의 결과로서 인식이 성립(成立)된다. 따라서 인식은 사위기대(四位基臺) 형성(形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위기대(四位基臺)는 중심, 주체, 대상, 결과라는 4개의 위치에 의하여 성립(成立)된다. 다음에그각각의위치에대하여설명하고자한다.
1) 중심(中心)
수수작용의 중심이 되는 것은 목적이며, 목적에는 원리적(原理的)인 목적과 일상적이자 현실적(現實的)인 목적이 있다. 원리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피조물을 지으신 창조목적으로서, 피조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 피조물의 존재목적 즉 피조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심정(心情; 사랑)이 그 동기가 되었기 때문에 인간도 사랑을 동기로 하여 만물을 인식하는 것이 본래의 인식의 자세이다. 창조목적(피조목적)에는 성상적(性相的)목적과 형상적(形狀的)목적이 있으며 이 각각의 목적에는 다시 전체목적과 개체목적이 있다. 인식에 있어서 인간의 전체목적이란 이웃, 사회, 국가, 세계에 봉사하기 위하여 지식을 얻는 것이고, 개체목적이란 개인의 의식주(衣食住)의 생활과 문화생활을 위하여 지식을 얻는 것이다. 한편 대상인 만물의 전체목적은 인간에게 지식과 미를 주거나 인간에게 주관되어서 인간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개체목적은 인간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墮落) 때문에 만물은 그와 같은 창조목적(피조목적)을 完遂할 수가 없어서 만물은 탄식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롬 8:22).
일상적인 목적(또는 현실적인 목적)이란, 원리적인 목적을 토대(土臺)로 한 개별적인 목적, 즉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각 개인의 목적을 말한다. 예컨대 식물학자가 자연(自然)을 볼 때는, 식물학도의 입장에서 자연계의 식물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할 것이다. 화가(畵家)가 같은 자연을 대할 때는 미(美)의 추구를 위한 지식을 얻고자 할 것이다. 또 경제인이 자연을 대할 때는 그 자연을 개발하여 사업을 일으킨다는 입장에서 자연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함은 모두 기쁨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기쁨을 얻고자 하는 원리적인 목적은 같지만, 각 개인의 일상적인 목적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 할 수 있다.
2) 주체(主體)
인식에 있어서 주체가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주체가 지녀야 할 요건의 하나이다. 관심이 없다면 주체와 대상 사이에 상대기준이 성립되지 않게 되어서 수수작용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친구와 마주쳤다고 하자. 그가 무슨 일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면, 관심이 그 일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것이다. 또 등대(燈臺)지기의 부인(夫人)이 잠을 자고 있을 때, 파도소리 때문에 잠을 깨지는 않으나, 파도소리보다도 작은 자신의 어린아이 울음소리에는 잠을 깰 수가 있다. 이것은 파도소리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에는 항상 관심이 있으므로 작은 소리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연히 사물을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 예상치도 않았는데 갑자기 번갯불을 보고 천둥소리를 듣는 경우가 그 뚜렷한 예이다. 그와 같은 경우는 주체에 관심이 없어도 인식이 가능한 것같이 생각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무의식적(無意識的, 잠재의식적)으로나마 반드시 관심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렸을 때 모든 것에 대하여 놀라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대했던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놀라움과 호기심이 바로 관심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인간은 외국땅에 처음 갔을 때에도 모든 사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 또는 여러 번 외국여행을 해봄에 따라서 관심은 습관화되고 잠재의식화하게 된다. 그것은 관심이 없어져버린 것이 아니고 잠재의식 속에서 관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주체가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요건(要件)은 원형(原型)을 지니는 것이다. 아무리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다 해도 원형(原型)이 없다면 인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처음으로 외국어를 듣는 경우 그 말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모른다. 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은 낯설은 얼굴로 비치지만, 과거에 만난 적이 있다면 비록 잊어버렸더라도 왠지 모르게 낯익은 얼굴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체속에 판단(判斷)의 기준이 되는 원형이 반드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3) 대상(對象)
인식의 대상에는 자연의 만물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의 사물이나 사건, 인물 등도 있다. 통일원리에 의하면, 만물은 인간의 대상으로서, 인간은 만물의 주체(주관주)로서 지어졌기 때문에 주체인 인간은 대상인 만물을 사랑으로 주관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 때 인간은 만물을 감상(鑑賞)하거나 인식(認識)하면서 주관하게 된다. 따라서 만물은 미(美)의 대상,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용으로서의 만물의 속성과 형식으로서의 존재형식(存在形式, 관계형식)이다. 이와 같은 내용과 형식은 만물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긴 하지만, 실은 만물 자체가 스스로 구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 만물에게 주어진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총합실체상(總合實體相)이요 우주의 축소체이므로, 만물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형식에 대응(對應)하여 축소된 형태로서 역시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4) 결과
목적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나타난다. 여기서 결과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위기대(四位基臺)의 성격을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상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위기대에는 내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 외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의 4종류가 있다.
인식은 기본적으로 주체의 내용-형식과 대상의 내용-형식이 수수작용을 통하여 조합(照合)함으로써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해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때에는 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가 형성된다. 한편 창조나 주관의 경우에는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가 형성된다. 그런데 인식은 주관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인식없는 주관도, 주관없는 인식도 모두 完全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인식과 주관은 인간과 만물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상대적인 회로(回路)를 이룬다. 즉 인식의 과정은 수수작용에 있어서 대상에서 주체에로 향하는 회로(回路)이며, 주관의 과정은 주체에서 대상으로 향하는 회로(回路)이다. 여기에서 주관에 있어서의 발전적사위기대와 인식에 있어서의 자동적사위기대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주관이란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이므로 주관의 사위기대는 창조의 사위기대와 같은 것이다.
원상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창조의 2단구조(構造) 즉 내적발전적사위기대(로고스의 형성)와 외적발전적사위기대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이들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에 있어서 먼저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가 형성되고, 다음에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즉 내적인 사위기대(四位基臺)에서 외적인 사위기대(四位基臺)로라는 순서에 따라서 만물이 창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식을 위한 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는 먼저 외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가 형성되고, 다음에 내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가 형성된다. 즉 외적인 사위기대(四位基臺)에서 내적인 사위기대(四位基臺)로라는 순서에 따라서 인식이 이루어진다. 인식은 이 내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가 형성됨으로써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바, 직접적으로는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의 조합(照合)에 의해서 성립된다. 그러면 그 인식의 과정(過程)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다음의 인식의 과정에서 명백해질 것이다.
5. 인식(認識)의 과정
인간이 인식을 통해서 충분한 지식(知識)을 얻는 데는 일정(一定)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이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로서 감성적(感性的)단계-오성적(悟性的)단계-이성적(理性的)단계가 그것이다. 만물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를 거치는 것과 같다.
(1) 감성적단계(感性的단계)의 인식
이것은 인식과정의 소생적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먼저 외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가 형성된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주체(인간)와 대상(만물)간의 수수작용이 행해지고, 대상의 내용과 형식이 주체의 감각중추(感覺中樞)에 반영되어서 영상 또는 표상을 형성한다. 이것이 감성적(感性的)내용과 감성적(感性的)형식(形式)인데, 이것을 감성적인식상(感性的認識像)이라고 한다.
이 단계가 인식의 감성적단계이다. 이 때 주체는 관심과 원형을 갖추고 있지만 이 감성적단계에서의 원형은 아직 인식작용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감성적(感性的)단계에서 형성되는 감성적내용이나 감성적형식은 단편적인 영상(映像)들의 집합(集合)일 뿐, 대상을 닮은 통일적인 영상(映像)을 이루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대상이 구체적(具體的)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2) 오성적단계(悟性的단계)의 인식
이 단계는 인식의 장성적(長成的)단계이다. 이 오성적(悟性的)단계에 있어서는 내적인 자동적수수작용(自同的授受作用)에 의해서 내적인 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가 형성되며, 이 때 감성적단계에서 전달된 단편적인 영상들이 통일된다.
이 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의 중심이 되는 목적은 감성적단계의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때의 목적과 동일하며, 원리적 및 현실적목적이 그 중심(中心)이 된다. 이 때 주체의 위치에 오는 것이 내적성상(內的性相) 즉 마음의 기능적부분으로서, 인식에 있어서 그것은 지(知)-정(情)-의(意)의 통일체인 것이다. 그리고 마음은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합성체로서 인간의 본심이며, 이것은 동물의 본능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식에 있어서 생심(生心)의 기능은 가치판단을 주관하고, 육심(肉心)의 기능(機能)은 感覺을 주관하며, 양자가 합해서 기억을 주관한다. 따라서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합성체인 본심(本心)은 인식에 있어서 가치(진(眞)-선(善)-미(美))를 지향(指向)하면서 감각을 통괄하고 기억을 주관한다. 그리하여 인식에 있어서 마음(본심(本心))의 이러한 기능적부분을 특히 영적통각(靈的統覺)이라고 부르고자 한다.34) 이리하여 인식에 있어서 내적성상은 통각력(統覺力) 및 대비력(對比力)과 가치판단력 및 기억력(記憶力)으로써 작용하며, 실천에 있어서는 주체성으로서의 가치실천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의 대상의 위치 즉 내적형상에는, 먼저 감성적단계의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에서 형성된 감성적인식상 즉 감성적내용과 감성적형식이 이 단계로 옮겨져 온다. 그러면 이 감성적내용과 감성적형식에 대응(對應)하는 원영상(原映像)과 사유형식, 즉 원형이 영적통각(靈的統覺)에 의해 기억속에서 인출(引出)된다. 이 두 가지 요소 즉 감성적인식상과 원형이 함께 내적형상(內的形狀)을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하(狀況下)에서 수수작용이 행해지게 되는데, 이 때의 수수작용은 대비형(對比型)의 수수작용이다. 주체인 영적통각이 원형과 감성적인식상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대비(對比, 對照)하여 그 일치 또는 불일치를 판별하기 때문이다.
이 대비에 의해서 인식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대비를 통일인식론에서는 조합(照合; collation)이라고 한다. 여기서 인식은 조합(照合)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결론이 성립한다. 따라서 통일인식론을 방법에서 보면 조합론(照合論)이 된다.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은 반영론(反映論)이고, 칸트의 인식론은 구성론(構成論)이었다.
그러나 오성적(悟性的)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한 번의 인식(내적수수작용)으로는 인식이 불충분하거나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35) 그 때에는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까지 실천(실험, 관찰, 경험 등)과 병행하면서 내적수수작용을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다.
(3) 이성적(理性的)단계의 인식
이 단계는 인식의 과정에 있어서 완성적단계이다. 여기의 이성(理性)이란, 개념(관념)에 의한 사유(思惟)의 능력을 말한다. 이성은 오성적단계의 인식에 있어서는 판단력, 개념화의 능력으로서 작용하였으나, 이성적단계의 인식에 있어서는 오성적단계에서 얻어진 지식(知識)을 자료로 하여 사유작용(思惟作用)에 의해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다.
결국 이성적(理性的)단계에 있어서의 인식이란 사고(思考)이다. 이것은 원상에 있어서의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에 의한 구상(로고스)의 형성에 해당된다. 마음속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사고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대비형의 수수작용이다. 즉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내적형상(內的形狀)중의 여러 요소(관념, 개념, 수리, 원칙 등)들 가운데 필요한 것을 골라서 내적성상(內的性相)이 그것들을 연합, 분리, 분석, 종합함으로써 여러 관념(개념)들을 이렇게 저렇게 조작한다. 관념(觀念, 槪念의 操作이란 內的性相이 내적형상의 여러 관념이나 개념들을 여러 가지로 對比함으로써, 즉 對比型의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새로운 관념(개념)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여러 관념중에서 아버지라는 관념과 아들이라는 관념을 대비해서 합당하다고 느껴지면, 이 두 관념을 결합해서 父子라는 새로운 관념을 얻는다.
또 하나의 예로서, 여러 개념중에서 사회(社會)라는 개념과 ‘제도(制度)라는 개념을 대비해서 합당하다고 느껴지면 이 두 개념을 합해서 사회제도(社會制度)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든다. 이와 같이 여러 관념이나 개념들 중에서, 대비를 통하여 필요한 것을 가려낸 후 결합시켜서 새로운 관념이나 개념을 만드는 것을 관념(개념)의 조작(操作)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관념(觀念, 개념)의 조작을 반복하면서 지식은 증대해 간다. 이 내적인 수수작용에 있어서 내적성상은 역시 영적통각(靈的統覺)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게 된다. 이성적(理性的)단계의 인식은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의 형성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그림 9-4).
이성적(理性的)단계의 인식에 있어서 새로운 지식의 획득은 매번마다의 판단의 완결을 동반하면서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일단 얻어진 새로운 지식(완결한 판단)은 사고의 자료로 내적형상(內的形狀)속에 옮겨져서 다음 단계의 새로운 지식의 형성에 이용된다. 이리하여 지식(思考)은 발전해 간다. 즉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형성을 반복하면서 지식은 발전해 간다.
이와 같은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의 발전은 실천을 병행하면서 행해지게 되는데, 실천을 통하여 얻어진 결과(신생체(新生體))가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의 내적형상에 옮겨져서 새로운 지식의 획득에 이용된다. 새로운 지식이 얻어지면 다시 새로운 실천을 통하여 그 진위(眞僞)가 검증된다. 이와 같이 하여 반복적인 실천 즉, 반복적인 외적발전적(發展的)사위기대(四位基臺)의 형성(形成)이 인식을 위한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의 형성(形成)과 병행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6. 인식과정(認識過程)과 신체적(身體的) 조건(條件)
통일인식론은 통일원리 또는 통일사상을 근거로 한 인식론이므로, 종래의 인식론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통일인식론의 주장이 과학적 견해에 반한다든지 그것과 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통일인식론도 과거의 인식론과 마찬가지로 주창자(主唱者)의 단순한 주장으로 끝나서, 보편타당성이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종래의 인식론 즉 경험론이나 이성론, 칸트의 선험적(先驗的)인식론이나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은 모두 과학적인 견해와 무관계한 이론이었거나, 또는 오늘날의 과학적 견해와 일치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 있어서 그것들은 거의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통일인식론은 과학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타당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이제부터 논술(論述)하고자 한다.
(1) 심리작용(心理作用)과 생리작용(生理作用)의 병행성
통일사상은 이성성상인 원상(原相)을 닮아서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모든 존재는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인간은 마음과 몸의 이중적존재(二重的存在)이며,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 조직, 기관 등도 모두 심적요소(心的要素)와 물질적요소(物質的要素)의 통일체인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이나 작용도 이중적(二重的)이어서, 거기에는 반드시 심리작용과 생리작용이 통일적으로 병행하게 된다. 따라서 통일사상에서 보면 인식작용도 반드시 심리적과정과 생리적과정이 병행하고 있다. 예컨대 마음과 뇌의 수수작용에 의해 정신작용(의식작용)이 나타난다. 여기의 마음이란 생심(生心, 靈人體의 마음)과 육심(肉心, 육신의 마음)의 합성체인 것이다.
뇌(腦) 연구(硏究)의 세계적 권위자인 펜필드(W. Penfield, 1891~1976)는 뇌(腦)는 일종(一種)의 컴퓨터이며 마음은 그 컴퓨터를 조작하는 프로그래머(programmer)와 같다는 의미의 말을 하였다.36) 마찬가지로 저명한 뇌(腦) 연구학자인 엑클스(J. C. Eccles, 1903~)도 마음과 뇌(腦)는 별개의 것이며, 마음과 뇌(腦)의 상호작용으로서 심신(心身)문제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37) 그들의 주장은 마음과 뇌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정신작용이 영위된다는 통일사상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것은 통일인식론이 주장하는 바가 과학적 견해(見解)와 일치한다는 실례(實例)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2) 원의식(原意識), 원영상(原映像)의 대응원(對應源)
다음은 통일인식론에 있어서의 독특한 개념인 원의식(原意識)과 원영상(原映像)에 대하여, 그것을 입증할 만한 과학자들의 견해를 살펴 보자.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원의식은 세포나 조직에 스며든 우주의식 또는 생명이며, 원영상은 이 의식(意識)의 필름에 찍힌 영상이다. 여기서 원의식은 목적의식이며, 원영상은 정보이다. 이것은 세포가 목적의식을 가지면서 정보에 따라 일정한 기능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이버네틱스이론에 의하여 원의식과 원영상을 검증(檢證)해 보고자 한다.
사이버네틱스란 기계에 있어서의 정보의 전달과 제어(制禦)의 자동화방식(自動化方式)을 말한다. 생물에 있어서는 정보가 감각기관(感覺器官)을 통하여 중추에 전달되고, 중추신경이 그것을 통합하여 적절한 지령(指令)을 말초신경을 통하여 효과기(效果器; 근육)에 보내게 되는데, 이 현상은 자동기계의 자동조작과 같은 것이어서 생물에 있어서의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현상이라 불리운다. 그러나 생물의 경우, 그 자동현상은 문자 그대로의 자동조작이 아니라 그 생물이 지닌 자율성(自律性)에 의한 자율적인 조작이다.
이러한 사이버네틱스 현상은 한 개의 세포에서도 볼 수 있다. 즉 세포질로부터 핵으로의 정보의 전달과, 이에 대한 핵의 반응이 끊임없이 자율적으로 되풀이되면서 세포의 생존(生存), 증식(增殖) 등이 행해진다. 이러한 사이버네틱스 현상을 통하여 한개의 세포에서도 자율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 세포에 있어서의 자율성이 바로 생명이며, 원의식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생리학자(生理學者) 앙드레 구도-페로(Andree Goudet-Perrot)는 그가 저술한 생물의 사이버네틱스 속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포의 정보원(情報源), 즉 암호를 가지고 있는 세포핵이 세포질의 작은 기관(mitochondria, Golgi complex등)에 명령을 하면서 세포의 생활에 필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세포의 암호란 생물의 해부학적 형태 및 본질적 기능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당연히 생기게 될 것이다. 첫째로, 암호는 해독되고 기억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해독과 기억의 주체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로, 세포의 생활에 필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위하여 세포핵이 명령을 하려고 할 때, 세포핵은 세포 내부의 상황을 정확히 각지(覺知)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각지(覺知)의 주체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현상 면만을 취급하고 있는 과학(生理學)의 입장에서는 대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성성상이라는 이론을 가진 통일사상은 거기에도 성상(性相)으로서의 합목적적(合目的的)인 요소 즉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다. 세포 속에 있는 이 의식이 바로 원의식이며, 정보가 원영상인 것이다.
(3) 인식(認識)의 3단계의 대응원(對應源)
이상으로 인식에 있어서의 삼단계인 감성적단계, 오성적단계, 이성적단계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뇌생리학(大腦生理學)은, 대뇌피질(大腦皮質)에 이와 같은 인식의 3단계에 대응하는 생리과정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대뇌피질(大腦皮質)은 크게 나누어 감각기로부터 신호를 받는 감각야(感覺野, 감각분야), 수의운동(隨意운동(運動); 의도에 따라 움직임)에 관계되어 신호를 내보내는 운동야(運動野), 그리고 그 이외의 연합야(聯合野)로 나누어진다. 연합야는 앞머리연합야(前頭聯合野), 두정연합야(頭頂聯合野), 옆머리연합야(側頭聯合野)로 구분되는데, 전두연합야는 의지(意志), 창조(創造), 사고(思考) 등의 기능에 관계되고, 두정연합야는 지각(知覺), 판단(判斷), 이해(理解) 등의 기능에 관계되며, 측두연합야는 기억의 메카니즘에 관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먼저 빛, 소리, 맛, 향기, 촉감(觸感) 등의 정보가 말초신경을 통하여 각각 시각(視覺), 청각, 미각, 취각, 피부감각(체성감각) 등의 감각야에 전해진다. 여기의 감각야에 있어서의 생리적과정(生理的過程)이 감성적(感性的)단계의 인식에 대응하는 것이다. 다음에 감각야의 정보는 두정연합야에 모여져서 거기에서 지각되고 판단(이해)되는데, 이것이 오성적(悟性的)단계의 인식에 대응하는 생리적 과정이다. 그리고 이 이해, 판단을 터로 하고 전두연합야에서 사고가 이루어지고, 이어서 창조활동이 행해지게 되는데, 이것이 이성적(理性的)단계의 인식에 대응하는 과정이다. 이와 같이 삼단계의 인식에는 각각 대뇌(大腦)의 생리적인 과정이 대응하고 있다.
(4) 정보전달에 있어서의 심리적 과정(心理的 過程)과 생리적 과정(生理的 過程)의 대응관계
인체(人體)는 항상 몸의 외부나 내부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받아들인 후 이것을 처리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작용이 행해진다. 눈, 귀, 피부 등의 수용기(感覺器)가 받아들인 자극은 임펄스(impulse)가 되어서 신경섬유의 구심로(求心路)를 통하여 중추신경에 이른다. 중추신경은 그 정보를 처리하여 지령(指令)을 방출(放出)하는데, 그 지령이 임펄스로서 신경섬유의 원심로(遠心路)를 통하여 근육, 분비선(分泌腺) 등의 효과기에 전달되어 반응을 일으킨다.
어떤 자극을 받을 경우, 무의식중(無意識中)에 즉 상위중추(上位中樞)와는 관계없이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반사(反射)라고 한다. 이 경우 척수(脊髓), 연수(延髓), 중뇌(中腦) 등이 그와 같은 반사중추가 되어서 자극에 대하여 적절한 지령을 보내곤 한다.
여기서 수용기(受容器)를 통해 들어온 정보가 어떻게 해서 전해지는가를 알아보자. 수용기에 들어온 정보는 거기에 있는 신경세포에서 전기적(電氣的)인 신경임펄스로 변한다. 신경임펄스란, 신경섬유의 흥분부위와 흥분하지 않은 부위와의 사이의 막전위(膜電位)의 변동을 말하는데, 그것이 신경섬유를 따라 이동하게 된다. 그때 생기는 전위의 변화를 활동전위(活動電位)라고 한다. 신경섬유의 막(膜)이 정지(靜止)한 상태에서는 그 막의 내측이 負(-)의 전기를 띠고 있으나, 임펄스가 통과할 때 전하(電荷)가 역전(逆轉)되어 내측(內側)이 正(+)으로 대전(帶電)한다. 이것은 나트륨이온이 내측(內側)에 유입(流入)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어서 칼륨 이온이 외측(外側)에 유출(流出)됨으로써 하전(荷電)은 원래의 상태를 회복한다. 이와 같이 하여 막전위(膜電位)의 변동이 일어나서, 이것이 이동하게 된다
다음은 신경세포의 연결부 즉 시냅스(synapse)에 있어서 신경임펄스는 어떻게 전달되는 것일까. 시냅스는 체액(體液)이 들어 있는 공간으로서 이 시냅스에 이르러 전기적인 임펄스가 화학적인 전달물질로 변환(變換)되어서 시냅스의 간극(間隙; 틈새)을 이동한다. 그리고 그 화학물질이 다음의 신경섬유에 도달하게 되면 거기서 다시 전기적임펄스로 변환(變換)된다. 즉 한 신경세포의 신경섬유를 흐르는 전기적(電氣的)인 신호가 시냅스에서는 화학적인 신호(化學物質)로 변하고, 그 화학적신호가 다음의 신경세포의 신경섬유에 도달하면 다시 전기적인 신호로 변하게 된다. 시냅스에 있어서의 전달물질은, 전기 임펄스가 흐르는 신경이 운동신경이나 부교감신경의 경우에는 아세칠콜린(acetylcholine)이며,교감신경의경우에는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임이 밝혀졌다.
이상이 정보전달에 대한 생리적과정(生理的過程)인데, 통일사상에서는 이 생리적과정의 배후에 반드시 의식과정이 병존(竝存)하고 있다고 본다. 즉 신경섬유에 있어서의 활동전류나, 시냅스에 있어서의 화학물질의 이동의 배후에 원의식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 원의식이 정보의 내용을 각지(覺知)하면서 정보를 중추에 전달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원의식을 정보의 전달자로 간주할 수가 있다. 그래서 신경섬유에 있어서의 활동전류나 시냅스에 있어서의 화학물질의 출현은, 정보의 전달자인 원의식에 의해서 생겨나는 생리적(物理的現象)으로 보는 것이다.
(5) 원형(原型)의 형성에 있어서의 대응관계(對應關係)
앞에서 원영상(原映像)과 관계상(關係像)의 대응원이 각각 세포나 조직의 내용과 요소의 상호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밝혔는데, 그것들을 각각 말단원영상(末端原映像)과 말단관계상(末端關係像)으로 부르고자 한다. 이에 대하여 인식의 오성(悟性)단계에서 나타나는 원영상과 관계상을 중추(中樞)원영상과 중추(中樞)관계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말단원영상이 신경로(神經路)를 통하여 상위중추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중추신경계의 각 중추(中樞)에서 선별되고 또 복합(複合) 연합(聯合)되어서 중추원영상이 된다. 말단관계상의 경우도 중추신경계의 각(各) 중추(中樞)에서 선별되고, 또 복합(複合) 연합(聯合)되어서 중추관계상이 되는데, 이 중추(中樞관계상이 대뇌피질(大腦皮質)에 이르러 사유형식이 된다. 또한 그 때, 대뇌피질에 있는 지각중추의 중추신경계 各 위치(位置)는, 각각 그 위치에 있어서의 원영상과 관계상을 보관하고 있게 된다.
인식의 원형(原型)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원영상(原映像)과 사유형식 외에 경험적영상(經驗的映像) 또는 경험적관념(經驗的觀念)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이것은 그때까지의 경험에서 얻어진 영상(관념(觀念))이 기억중추에 보관되어 있다가, 그 후의 인식에 있어서 원형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 때 원영상(原映像)과 사유형식을 선천적원형(先天的原型)(또는 원초적원형(原初的原型))이라 하고 경험적영상을 경험적원형(經驗的原型)이라고 한다.(전술(前述)) 중추신경계에 있어서, 정보가 하위(下位)에서 상위(上位)로 이행함에 따라 정보의 수용량(入力)과 방출량(出力)이 증대함과 동시에, 정보의 처리방법은 보다 더 포괄(包括)化되고 보편화된다. 이것은 한 국가의 행정에 있어서 행정조직이 위로 올라갈수록 취급하는 정보량이 증대하고, 정보의 처리방식도 보다 포괄적, 보편적으로 되는 것과 같다.
가장 상위의 중추 즉 대뇌(大腦)피질에 있어서, 정보의 수용(受容)은 바로 인식이며, 정보의 보관은 곧 기억이다. 그리고 정보의 방출(放出)은 바로 구상(思考)과 창조와 실천이다. 이와 같은 대뇌피질의 통합작용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하위중추(下位中樞)의 통합작용도 그 방식은 대뇌피질의 그것과 동일하며, 이러한 의식에 의한 합목적적(合目的的)인 통합작용이 각각의 중추에서 행해지고 있다. 여기의 합목적적(合目的的)인 통합작용(統合作用)이란 생리적 통합작용과 의식적(정신적) 통합작용의 통일을 말한다. 그리하여 중추신경의 각 위치에 있어서, 생리적인 통합작용과 의식적인 통합작용이 병행되면서 통일적으로 행해진다. 즉 중추신경의 정보(神經임펄스)의 전달이라는 생리과정에는 반드시 판단, 기억, 구상 등의 심리과정이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상(關係像; 형식상(形式像)의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同정보가 하위의 중추에서 상위의 중추로 이행함에 따라, 그 다양한 정보가 처리를 통하여 점차 단순화되는데, 이것은 말단의 개별적인 관계상이 상위로 이행함에 따라 점차로 보편화되고 일반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뇌피질(大腦皮質)에 이르면 완전히 개념화되어서 사유형식 즉 범주가 된다. 이것은 마치 행정시책(行政施策)이 행정조직의 말단(末端)으로 갈수록 보다 더 개별성(個別性), 특수성(特殊性)을 띠게 되고 중앙(中央)으로 갈수록 일반성(一般性), 보편성(普遍性)을 띠는 것과 같다 하겠다.
(6) 원형(原型)과 생리학(生理學)
원형(原型)이란, 인식에 있어서 주체가 미리 가지고 있는 관념이나 개념을 의미하며, 이것을 다른 말로 기억(記憶)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앞에서 인간은 선천적(先天的)인 원형과 경험적인 원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것에 대하여 생리학자(生理學者)의 표현을 빌린다면, 유전적기억과 경험에 의한 획득기억에 해당한다고 하겠다.41) 생물체로서의 인간의 세포나 조직에 관한 정보인 유전적기억(遺傳的記憶)은, 대뇌변연계(大腦邊緣系)-대뇌(大腦)의 신피질(新皮質)에 싸여져(包圍되어) 있는, 구피질(舊皮質)로 된 부분- 등에 축적되어 있다고 뇌생리학(腦生理學)은 보고 있다. 그러면 획득기억(獲得記憶)은 의학적으로 볼 때 어떻게 해서 어디에 축적되어 있을까.
기억에는 수초간(數秒間) 지속되는 단기(短期)의 기억과 수시간에서 수년간에 걸쳐 지속되는 장기(長期)의 기억이 있다. 단기의 기억은 전기적(電氣的)인 반복회로(反復回路)를 터로 한다고 되어 있다. 한편 장기의 기억에 대해서는 뉴론회로설(回路說)과 기억물질설(記憶物質說)의 두 가지 설(說)이 주장되어 왔다. 뉴론회로설(回路說)은, 개개의 기억은 접합부(시냅스)에 변화가 이루어진 특수한 뉴론의 회로망(回路網)에 축적된다고 하는 입장이고, 기억물질설은 개개의 기억에 대해서 RNA나 펩티드 등의 기억물질이 관계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억물질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42) 장기(長期)의 기억의 자리(座)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측된다. 대뇌(大腦) 내부의 대뇌변연계(大腦邊緣系)에는 해마(海馬)로 불려지는 부분이 있다. 이 해마가 정보 기억의 역할을 다하고, 그 후 기억은 대뇌신피질(大腦新皮質; 측두엽)에 영속적으로 축적된다고 되어 있다. 즉 기억은 해마(海馬)를 통하여 측두엽(側頭葉)에 축적된다고 보고 있다.
인식에 있어서 이와 같은 기억(축적되어 있는 지식)이, 감각기관(感覺器官)을 통하여 들어온 외계로부터의 대상의 정보와 조합(照合)되어 판단된다는 것을 구도-페로(Andree Goudot-Perrot)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감각수용기(感覺受容器)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정보-이들 정보는, 대뇌피질 감각중추에 의해서 획득되어 `기억(記憶)'속에 저축되어 있는 지식과 조합(照合)되어 판단된다.‘ 이러한 판단관(判斷觀)은, 외계에서 들어온 정보(외적영상(映像))가 원형(내적영상(映像))과 조합된 후 일치 또는 불일치가 판단되는 것이 인식이라고 하는, 통일인식론의 주장과 일치(一致)하는 견해인 것이다.
(7) 관념(觀念)의 기호화(記號化)와 기호(記號)의 관념화(觀念化)
마지막으로 기호(記號)의 관념화와 관념의 기호화(記號化)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주체인 인간이 대상을 인식할 때, 대상의 정보가 감각기에 도달하면 그것은 임펄스가 되어서 감각신경을 타고 상위중추(上位中樞)에 도달하며, 대뇌피질의 감각중추에서 임펄스(일종(一種)의 기호)는 관념화되어서 의식의 거울에 일정한 영상(映像; 觀念)으로 비쳐진다. 이것이 기호(記號)의 관념화(觀念化)이다. 이에 대하여, 실천(實踐)의 경우 어떤 일정한 관념에 따라 행동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때 그 관념이 임펄스가 되어서 운동신경을 통하여 효과(效果)器(근육)에 이르러서 이것을 움직인다. 이것이 관념(觀念)의 기호화(記號化)이다. 임펄스는 일종(一種)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뇌생리학(大腦生理學)에 의하면, 인식에서 생긴 관념이 기억으로서 뇌의 일정한 장소에 저장될 때, 그 관념은 뉴론의 특수한 결합의 양식(樣式)으로서 기호화되고, 또 그 기호화된 기억이 필요에 따라서 상기(想起)될 때, 의식(意識)은 기호를 해독하여 관념으로서 이해한다고 한다. 이것은 기억의 저장과 상기(想起)에 있어서도 관념의 기호화와 기호의 관념화가 행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 예로서 대뇌생리학자(大腦生理學者) 가자니가(M. S. Gazzaniga)와 레두우(J. E. LeDoux)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경험은 매우 많은 특징(特徵)을 가지고 있으므로, 경험의 개개의 특징이 뇌(腦) 안에서 각각 특이하게 부호화(符號化)된다고 간주한다.
기억(記憶)의 저장과 부호화(符號化) 및 부호의 해독(解讀)이, 다면적(多面的)인 과정에서 뇌(腦)속에서 다량(多量)으로 수행(遂行)되고 있다는 사실은 금후에 더욱 명백하여 질 것이다.
이와 같은 관념(觀念)과 기호(記號)의 상호전환은, 마치 1차코일과 2차코일 사이를 유도(誘導)에 의해 전류가 이동하는 것같이, 관념(觀念)을 지니고 있는 성상적인 심적(心的)코일과 기호(記號)를 지니고 있는 형상적(形狀的)인 물질적코일(뉴론)과의 사이에 생기는, 일종의 유도현상(誘導現象)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관념(觀念)과 기호(記號)의 상호전환은, 인식작용이 심적과정과 생리적과정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영위(營爲)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三. 통일사상에서 본 칸트와 마르크스주의(主義)의 인식론
다음은 종래의 방법(方法)에서 본 인식론 중, 대표적인 칸트의 인식론과 마르크스주의(主義)의 인식론을 통일사상의 입장에서 비판해 보기로 한다.
1. 칸트의 인식론 비판
(1)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에 대한 비판
칸트는 인식의 주체(주관(主觀))에는 선천적(先天的)인 사유형식(카테고리)이 갖추어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는 사유형식을 잘 검토해 보면 객관적인 존재형식이기도 하다. 예컨대, 객관세계의 모든 사물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 위에서 존재하고, 운동한다. 또 과학자는 객관세계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 위에서 일정한 현상을 인위적(人爲的)으로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형식은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형식이기도 하다.
인과성(因果性)의 형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는 자연계의 현상속에서 많은 인과관계(因果關係)를 발견하고, 그 인과관계에 따라 같은 현상을 실제로 일으키기도 한다. 이것은 객관세계에 실제로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있다는 사실을 표시한다.
또 칸트는 주관(주체)의 형식과 대상으로부터의 내용이 결합함으로써 인식이 구성(構成)된다고 하였으나, 통일사상에서 보면 주체(인간)도 대상(만물(萬物, 자연))도 내용과 형식을 모두 갖추고 있다. 즉 주체가 갖추고 있는 것은 칸트가 말한 선천적(先天的)인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과 형식이 통일된 선재성(先在性)의 원형(複合原型)이며, 또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은 혼돈(混沌)된 감각의 다양(多樣)이 아니고 존재형식에 의해서 질서가 잡혀진 감성적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주체(인간)와 대상(만물)은 상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주관이 대상을 구성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체가 가지고 있는 내용과 형식(形式)(원형(原型))과 대상이 지니고 있는 내용과 형식과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조합(照合)되어 판단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2)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대한 비판
칸트는 현상세계에 있어서의 자연과학적인 지식만을 참된 인식이라고 하면서 물자체(物自體)의 세계(叡智界)는 이를 인식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성계와 예지계를 전적으로 분리해 놓았다. 그것은 순수이성(純粹理性과 실천이성(實踐理性)의 분리를 의미하며 과학과 종교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물자체는 사물의 성상(性相)이며, 이에 대하여 감성적내용은 형상(形狀)이다. 사물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은 통일되어 있으며, 게다가 성상은 형상을 통하여 표현되므로 우리들은 형상을 통하여 그 사물의 성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사상에 의하면 인간은 만물의 주관주이며, 만물은 인간의 기쁨의 대상으로서 인간을 닮도록 창조된 것이다. 만물이 인간을 닮도록 지어졌다는 것은 구조와 요소에 있어서 인간과 만물이 닮고 있다는 것, 따라서 내용과 형식도 닮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식에 있어서 주체(인간)가 지니는 내용과 형식과 대상(만물)이 지니는 내용과 형식은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을 이루고 있어서 서로 조합(照合)될 수 있는 것이며, 게다가 그 내용(感性的내용)을 통하여 물자체(物自體), 즉 대상의 성상이 표현되므로, 주체는 대상의 형상(感性的내용과 형식) 뿐만 아니라 성상(물자체)까지도 완전히 인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과 만물의 원리적(原理的)인 관계를 몰랐기 때문에, 또 인간이 영인체(靈人體)와 육신의 통일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2. 마르크스주의(主義) 인식론의 비판
(1) 반영론(反映論)의 비판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아무리 외계가 의식에 반영된다 하더라도, 판단의 기준(척도)으로서 인식의 주체속에 외계의 사물에 대응하는 원형이 없으면 인식은 성립될 수 없다. 더욱이 인식은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주체가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외계의 대상이 주체의 의식에 반영되었다 하더라도 주체가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인식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반영(反映)이라는 수동적인 물질적 과정만으로 인식은 성립되지 않으며, 적극적인 심적과정(대상에의 관심이나 조합의 기능)이 관여함으로써 비로소 인식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2) 감성적인식(感性的認識), 이성적인식(理性的認識), 실천(實踐)에의 비판
마르크스主義 인식론에 있어서의 인식과정은 감성적인식, 이성적인식(논리적인식), 그리고 실천(혁명적실천)의 3단계로 되어 있다. 여기서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뇌(腦)의 산물 혹은 뇌의 기능이면서 객관적실재를 반영한다는 의식이 어떻게 해서 논리적인 인식(추상, 판단, 추리) 등을 행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해서 실천을 지령(指令)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외계를 반영하는 수동적(受動的)인 과정과 논리적인 인식이나 능동적인 실천의 과정과의 사이에는 대단히 큰 갭(gap)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리적(合理的)인 설명이 없다. 즉 논리가 비약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논리적인 인식이나 실천은, 뇌(腦)에 있어서의 생리적 과정만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인식작용은 마음(정신(精神))과 뇌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논리적인 인식이나 실천은 오성(悟性)이나 이성의 작용을 가진 마음과 뇌가 수수작용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다.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인식에 있어서의 실천의 역할이다. 레닌은, 인식은 실천으로 이행(移行)한다고 보았으며,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뚱)은 인식과 실천의 불가분성(不可分性)을 주장했는데, 그 점에 대하여 통일사상은 아무런 이론(異論)이 없다. 만물은 인간의 기쁨의 대상으로서 창조된 것이며, 인간은 창조목적에 따라 만물을 주관(실천)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주관을 위하여 만물을 인식하게 된다. 인식과 실천은 인간과 만물의 수수작용의 상대적(相對的)인 회로를 이루고 있어서(그림 9-12), 실천(實踐)(주관)을 떠난 인식은 없으며, 인식을 떠난 실천(주관) 또한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해온 실천은, 최종적으로는 혁명(革命)을 목표(目標)로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하여 통일사상은 인식과 실천이 혁명을 목적으로 행해져서는 결코 안 되며, 창조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창조목적의 실현이란,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기뻐하시고, 인간은 만물을 사랑으로 주관함으로써 기쁨을 얻는, 그와 같은 세계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식이나 실천도 사랑을 통한 기쁨의 실현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다.
(3) 절대적진리(絶對的眞理)와 상대적진리(相對的眞理)에 대한 비판
레닌과 모택동은 절대적진리의 존재를 승인하고, 인간은 인식과 실천을 되풀이함으로써 절대적진리에 한없이 가까워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절대적진리에 있어서의 절대(絶對)의 개념은 애매하다. 레닌은 상대적진리의 총화(總和)가 절대적진리라고 했다. 그러나 상대적진리를 아무리 총화(總和)해도 그것은 총화된 상대적진리일 뿐 절대적인 진리는 될 수 없다.
절대적진리란 보편적이면서 영원성을 띤 진리를 말한다. 따라서 절대자를 기준으로 하지 않으면 절대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절대적진리는 가치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과 표리일체(表裏一體)가 되고 있다. 마치 태양에 있어서 빛의 따뜻함과 밝음이 표리일체(表裏一體)여서 나눌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떠나서 절대적진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할 때 인간은 비로소 만물의 창조목적을 이해하고, 만물에 대한 참다운 지식을 얻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아무리 실천한다고 해도 절대적진리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