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제2장 존재론(存在論) (Ontology)
일반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存在論)의 희랍어의 원어(原語)는 ontologia로서 onta(존재하는 것)와 logos(論理)의 합성어이며 존재(存在)에 관한 근본문제를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부문을 말한다. 그러나 통일존재론(統一存在論)은 통일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모든 존재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創造)된 피조물(被造物)이라고 보는 입장에서, 피조물의 속성(屬性)(共通의 屬性)은 무엇이며, 피조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또 그것은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가를 다루는 부문(部門)이다. 본(本) 존재론(存在論)은 모든 피조물을 그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인간도 피조물이므로 본(本) 존재론(存在論)의 대상(對象)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인간은 만물의 주관주(主管主)여서 만물과 그 격위(格位)가 다르므로 인간에 관해서는 별도로 본성론에서 더욱 상세히 논(論)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本) 존재론(存在論)은 주로 만물에 관한 이론이라고 할 수가 있다.
원상론은 하나님에 관한 이론이며, 존재론(存在論)은 만물에 관한 설명을 통하여 원상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즉 원상론은 통일원리에 근거한 연역적(演繹的)인 이론이기 때문에 원상론에서 설명된 하나님의 속성이 실제로 어떻게 만물속에 나타나 있는가, 또 나타나 있다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를 명백히 하는 것이 본(本) 존재론(存在論)이다. 그리하여 만물속에 그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屬性)이 보편적(普遍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원상론 의 참(眞)이성은 한층 더 보장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만물의 속성을 취급하는 존재론(存在論)은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하나님의 속성을 가시적(可視的)으로 확인(確認)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오늘날 자연과학(自然科學))은 급속한 발전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과학자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객관적(客觀的)으로 자연계(自然界)를 관찰(觀察)했을 뿐이다. 그러나 닮기의 법칙에 의해서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연을 관찰한 과학적 사실이 하나님의 속성과 대응된다는 것이 밝혀지면, 자연과학은 도리어 원상론을 뒷받침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된다. 실제로 오늘날까지의 자연과학의 성과가 하나님에 관한 이론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이 본 존재론에서 증명(證明)될 것이다. 통일원리(統一原理)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고(창 1:27) 만물은 인간을 닮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우주(宇宙)를 창조(創造)함에 앞서, 마음속에 먼저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상(像)(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상(像)을 근본으로 하여 그것을 닮도록, 만물을 하나하나 창조하신 것이다. 이것을 닮기의 창조(創造) 또는 상사(相似, 서로 닮음)의 창조라고 하며, 이러한 창조의 법칙(法則)을 닮기의 법칙(法則) 또는 상사(相似, 서로 닮음)의 법칙(法則)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인간은 타락(墮落)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도 본래의 모습을 잃고 비정상적(非正常的)인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다. 따라서 현실의 인간과 사회를 그대로 두고서는 존재(存在)의 문제(問題)와 관계(關係)의 문제(問題)의 해결의 길은 찾아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성인(聖人)이나 철인(哲人)들은 하늘의 별들의 운행이나 자연만물의 소장(消長)과 변화(變化)와 四時의 변천속에서 깨달은 철리(哲理)로써 자신(自身)들의 가르침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왜 인간과 사회를 구제하는 진리가 자연계를 통하여 얻어지는 가를 알지 못했으며, 단지 직감적(直感的)으로 그러한 진리를 깨달았을 뿐이었다.
통일원리(統一原理)에 의하면, 만물은 본연의 인간의 모습을 표본으로 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자연계를 통하여 본래의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원상론에서 하나님의 속성(屬性)을 올바르게 이해(理解)하는 것이 인간이나 사회의 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창조(創造)가 닮기의 창조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屬性) 뿐 아니라 만물의 속성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이것 또한 현실문제 해결의 열쇠(基準)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존재론도 현실문제(現實問題)를 해결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는 사상부문(思想部門)인 것이다.
본 존재론에서는 만물 하나 하나의 개체를 존재자(存在者; existing being)라고 한다. 따라서 존재론(存在論)은 존재자(存在者)에 관한 설명(說明) 즉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존재자(存在者)에 관한 설명은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와 연체(聯體)라는 두 항목(項目)으로 區分하여 개체를 다룬다. 여기서 개성진리체란 하나님의 속성(屬性), 즉 원상(原相)의 내용을 그대로 닮은 개체(個體)를 말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개체에 대하여 다른 개체와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 독립적으로 다룰 때의 피조물(被造物)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개체(존재자)는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존재한다. 그리하여 한 개체를 다른 개체와의 관계에서 볼 때, 그러한 하나하나의 피조물(被造物)을 연체라고 한다. 따라서 연체(聯體)는 상호관련성을 지닌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를 말한다.
피조물(被造物)(존재자)은 하나님을 닮아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의 모습은 신상을 닮고 있다. 그런데 신상에는 보편상과 개별상이 있기 때문에 모든 개체는 원상을 닮아서 보편상(普遍相)과 개별상(個別相)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보편상이란 성상(性相)과 형상(形狀) 및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을 말하며, 개별상은 개체마다 갖고 있는 특성을 말한다. 먼저 개성진리체의 보편상, 즉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一.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
1. 성상(性相)과 형상(形狀)
모든 피조물은 우선 원상(原相)을 닮은 속성, 즉 성상과 형상의 두 측면을 지니고 있다. 성상은 기능이나 성질 등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측면이요, 형상은 질료(質料)와 구조, 형태 등 유형적인 측면이다. 먼저 광물(鑛物)에 있어서의 성상은 물리화학적 작용성이며, 형상은 원자나 분자에 의해 구성된 물질의 구조, 형태 등이다. 식물(植物)에는 식물 특유(特有)의 성상과 형상이 있다. 식물의 성상은 생명(生命)이며, 형상은 세포와 세포에 의해 구성된 조직, 구조 즉 식물의 형체이다. 생명은 형체속에 잠재하고 있는 의식(意識)으로서, 목적성과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생명의 기능은 식물의 형체를 통제하면서 성장시켜 가는 능력 즉 자율성(自律性)인 것이다.
식물은 이와 같은 식물 특유의 성상과 형상을 지니면서 동시에 광물 차원의 성상적요소와 형상적요소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식물은 광물질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動物)에는 식물의 차원보다 더 높은 동물 특유의 성상과 형상이 있다. 동물의 성상이란 본능을 말한다. 그리고 동물의 형상은 감각기관이나 신경을 포함한 구조와 형태 등이다. 동물도 역시 광물질을 갖고 있어서 광물 차원의 성상과 형상을 내포하고 있고 또 식물 차원의 성상과 형상도 내포하고 있다. 동물의 세포나 조직은 모두 이러한 식물차원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영인체(靈人體)와 육신(肉身)으로 구성된 이중적 존재(二重的 存在)이다. 따라서 인간은 동물의 차원보다 더 높은 특유의 성상과 형상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특유한 성상이란 영인체의 마음인 생심(生心)이며, 특유한 형상이란 영인체의 몸(體)인 영체(靈體)이다. 그리고 인간의 육신에 있어서 성상은 육심(肉心)이고 형상은 육체(肉體)이다.
그런데 인간의 육체(肉體) 속에도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광물차원의 성상과 형상을 지니고 있다. 또 인간은 세포나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식물차원의 성상과 형상도 지니고 있다. 또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감각기관과 신경을 포함한 구조와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동물의 성상과 형상을 또한 함께 갖고 있다. 인간(人間)속에 있는 동물차원의 성상 즉, 본능의 마음을 육심(肉心)이라 하고 영인체의 마음을 생심(生心)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인간의 마음은 본능(本能)으로서의 육심과 영인체의 마음인 생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육심의 기능은 의-식-주-성(衣·食·住·性)의 생활을 추구하며, 생심(生心)의 기능은 진-선-미-애(眞·善·美·愛)의 가치를 추구한다. 이 육심과 생심이 합성일체화한 것이 바로 인간의 본연(本然)의 마음(本心)이다.
여기서 인간의 영인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육신은 만물과 동일(同一)한 요소로 되어 있어서 일정한 기간동안에만 생존(生存)한다. 한편 영인체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요소로 되어 있어서 영원히 생존(生存)하며, 그 모습은 육신과 다를 바 없다. 육신이 죽게 되면 마치 낡은 의복을 벗어 버리듯이 영인체는 육신을 벗어 버리고 영계에 들어가 그곳에서 영원히 산다. 한편 영인체도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二性性相)으로 되어 있는 바, 영인체의 성상(마음)은 생심이며 형상(몸)은 영체(靈體)이다. 영인체의 감성(感性)은 육신생활중 육신과의 상대적 관계에서 발달한다. 즉 영인체의 감성은 육신을 터로 하고 성장(成長)한다. 따라서 인간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타계(他界)하면, 영인체는 영계의 충만한 사랑속에서 영원히 기쁨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지상에서 악(惡)한 생활을 하면 사후(死後)에는 악한 영계에 머물게 되어서 고통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광물, 식물, 동물의 성상과 형상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터 위에 더욱 차원높은 성상과 형상, 즉 영인체의 성상과 형상까지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요소를 모두 총합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만물의 총합실체상(總合實體相) 또는 소우주(小宇宙)라고 부른다. 이상의 설명에서 광물, 식물, 동물, 인간으로 존재자의 격위가 높아감에 따라서 성상과 형상의 내용이 계층적으로 증대(增大)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존재자에 있어서의 성상과 형상의 계층적 구조(階層的 構造)'라고 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함에 있어서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의 순서로 창조할 때, 새 차원의 특유한 성상과 형상을 다음 단계의 피조물에 더해 가면서 창조를 계속하다가 마지막으로 최고 차원의 인간의 성상, 형상을 만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창조를 함에 있어서 마음속에 먼저 성상과 형상의 통일체인 인간을 구상하셨다. 그 인간의 성상과 형상에서 차례차례로 일정한 요소를 사상(捨象(省略))하여 차원을 낮추면서 동물, 식물, 광물을 구상하신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내에 있어서의 실제의 창조는 그 반대 방향으로 광물에서 시작하여 식물, 동물, 인간의 순서로 행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인간의 성상과 형상은 광물, 식물, 동물의 각각 특유한 성상과 형상이 쌓여서 된 것처럼 보여진다.
인간의 성상과 형상이 계층적(階層的)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그림 2-1)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첫째로, 인간의 성상은 계층성(階層性)을 지니면서 동시에 연속성(連續性)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인간의 마음은 생심과 육심으로 되어 있으며, 생심과 육심은 서로 연속되어 있다. 그래서 생심으로써 육심(本能)을 조절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인간의 마음은 생명(자율성)과도 연결(연속)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마음이 자율신경(自律神經)을 조절할 수는 없으나, 훈련에 의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예컨대 ‘요가’의 수행자(修行者)는 명상에 의해 심장의 고동을 자유로이 증감시킬 수 있으며, 때로는 멈추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은 체내의 광물질의 성상과도 통해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은 대내적(對內的)으로 뿐 아니라 대외적(對外的), 체외적(體外的)으로 다른 광물이나 식물의 성상과도 통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염력(念力)에 의해서 물리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동물이나 식물은 물론 물질(광물)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밝혀져 있다. 한편 동물, 식물, 광물이 인간의 마음에 반응한다는 사실도 알려지고 있다. 예컨대 식물의 경우, 미국의 거짓말탐지기 검사관(檢査官)인 크리브 백스터가 실험을 해서 얻은 ‘백스터 效果’가 그 하나의 예이다. 그리고 광물이나 소립자도 자체내에 예지(叡智)나 사고력(思考力)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행해지고 있다.
둘째는, 인간의 성상·형상의 계층적구조는 생명의 문제에 대하여 중요한 사실을 시사(示唆)해 주고 있다. 오늘날까지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는 하나님의 실존의 유무에 관해서 끊임없이 논쟁해 왔다. 그때마다 유신론자들은 ‘神이 없이는 생명이 만들어질 수 없다. 즉 신(神)만이 생명을 창조한다’는 논거를 가지고 무신론을 제압해 왔던 것이다. 아무리 자연과학이 발달하더라도 생명의 기원에 관한한 자연과학은 합리적인 논증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생명의 기원의 문제(생명의 창조설)는 유신론이 성립할 수 있는 유일한 거점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그 유일한 거점이 무신론에 의해 무너지려 하고 있다. 과학자가 생명을 만들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과학자가 생명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현대 생물학에 의하면 세포의 염색체에 포함되어 있는 DNA(디옥시리보핵산)는 아데닌, 구아닌, 티민, 사이토신이라는 4종류의 염기(鹽基)를 포함하고 있다. 이 4종류의 염기의 배열이 바로 생물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유전정보(遺傳情報)이다. 이 유전정보에 의해서 생물의 구조나 기능이 결정된다. 결국 DNA에 의해서 생명체가 만들어 진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과학자가 DNA를 합성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유물론자들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신(神)의 존재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신(神)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가 DNA를 합성한다는 것은, 과연 생명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통일사상에서 보면 과학자가 아무리 DNA를 합성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명체의 형상면(形狀面)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 생명의 보다 근본된 요소는 생명체의 성상(性相)이다. 따라서 과학자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니고 생명을 지니는 담하체(擔荷體)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인간에 있어서 형상인 육신은 성상인 영인체를 지니고 다니는 터전인 것과 같다. 육신은 부모(父母)에서 유래하지만 영인체는 하나님에게서 유래(由來)한다. 마찬가지로 DNA가 과학자로부터 유래할 수 있다 하더라도(즉 과학자가 DNA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생명(生命) 그 자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라디오는 전파를 음파로 바꾸는 장치로서, 이것은 방송국에서 오는 전파를 포착하여 음파로 변환시키는 기구에 불과하다. 아무리 과학자가 라디오를 만들었다고 해도 음성까지 만든 것은 아니다. 음성은 방송국에서 전자파를 타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과학자가 비록 DNA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생명을 유숙(留宿)시키는 장치를 만든 데 불과하므로 생명 그 자체를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우주는 생명이 충만해 있는 생명의 장(場)으로서, 이것은 신(神)의 성상에서 유래한다. 그리하여 생명이 깃들 장치만 있으면 생명은 거기에 나타나게 된다. 그 장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DNA라는 특수한 분자이다. 이와 같은 결론이 ‘성상과 형상의 계층적 구조’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2. 양성(陽性)과 음성(陰性)
(1) 양성(陽性)과 음성(陰性)도 이성성상(二性性相)이다.
다음은 개성진리체의 양성과 음성에 대해서 살펴보자. 원상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양성과 음성도 하나님의 이성성상이다. 그리고 동시에 성상과 형상의 속성이다. 즉 성상에도 양성과 음성이 있고, 형상에도 양성과 음성이 있다.
먼저, 인간의 성상과 형상에 있어서 그 속성으로서의 양성 음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인간의 성상은 마음인데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마음에는 지정의(知·情·意)의 세 기능이 있다. 이 지정의(知·情·意)의 각각의 기능에는 양적(陽的)인 측면과 음적(陰的)인 측면이 있다. 이것은 성상(마음)에 양성과 음성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知의 양적인 측면은 명석, 기억, 상기력, 판명, 재치 등이다. 이에 대하여 지(知)의 음적인 측면은 모호, 망각, 기명력, 혼동, 고지식 등이다. 정(情)의 양적인 측면은 명랑, 시끄러움, 기쁨, 흥분 등이고 정(情)의 음적인 측면은 불쾌, 정숙, 슬픔, 침착 등이다. 의(意)에 있어서는 적극적, 공격적, 창조적, 경솔성 등이 양적인 측면이고 소극적, 포용적, 보수적, 신중성 등은 음적인 측면이다.
형상 즉 몸(신체)에 있어서는 융기된 부분, 돌출(突出)된 부분, 철(凸部), 표면(表面) 등이 양적인 면이며, 함몰(陷沒)된 부분, 공혈부(孔穴部), 요부(凹部), 이면(裏面, 속) 등이 음적인 면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그림 2-2와 같다. 동물·식물·광물에 있어서도 각각 성상에 양성과 음성이 있고, 형상에 양성과 음성이 있다. 동물에는 활발히 행동할 때(양)와 그렇지 않을 때(음)가 있다. 식물에는 성장할 때(양)와 시들 때(음)가 있다. 즉 꽃은 필 때(양)와 질 때(음)가 있으며 줄기는 위로 향하고(양), 뿌리는 땅속을 향한다(음). 그리고 광물에 있어서는 물리화학적 작용성이 활발하게 진행할 때(양)와, 그렇지 않을 때(음)가 있다. 이것이 각각 성상면에 있어서의 양성과 음성이다. 형상면에도 양성과 음성의 현상이 나타난다. 형상의 돌출부와 공혈부, 높음과 낮음, 표(表)와 리(裏; 속), 그리고 명(明)과 암(暗), 강(剛)과 유(柔), 동(動)과 정(靜), 청(淸)과 탁(濁), 열(熱)과 냉(冷), 낮과 밤, 여름과 겨울, 하늘과 땅, 산과 골짜기 등이 각각 양과 음의 예이다.
이상으로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의 성상과 형상에서의 양성 및 음성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런데 각 개성진리체는 성상과 형상이 이와 같이 양성과 음성을 속성으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떤 개체는 양성을 보다 더 많이 나타내고, 어떤 개체는 음성을 보다 더 많이 나타낸다. 전자(前者)를 양성실체(陽性實體)라 하고, 후자(後者)를 음성실체(陰性實體)라고 한다. 인간에서의 남자와 여자, 동물에서의 수컷과 암컷, 식물에서의 수술과 암술, 분자에서의 양이온과 음이온, 원자에서의 양자와 전자 등이 그 예들인 것이다. 단세포(單細胞)인 박테리아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다고 한다.
(2) 인간(人間)의 경우의 양성실체(陽性實體)와 음성실체(陰性實體)
양성실체(陽性實體), 음성실체(陰性實體)는 특히 인간의 경우, 각각 남자와 여자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자주 쓰인다. 그러면 인간의 경우, 양성실체와 음성실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形狀(신체)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의 양음의 차이는 명백하다. 그것은 양적차이(量的差異)이기 때문이다. 즉 남자의 신체는 여자의 신체보다 양적(陽的)인 요소가 더 많고, 여자의 신체는 남자의 신체보다 음적인 요소가 더 많다. 이와 같이 남과 여의 형상에 있어서의 차이는 양(陽)과 음(陰)의 양적(量的)인 차이이다. 이에 반하여 성상(지·정·의)에 있어서 남녀간의 차이는 질적(質的)인 차이이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남녀 다같이 지(知)에도 양·음이 있고, 정(情)에도 양·음이 있으며 의(意)에도 양·음이 있다. 그런데 성상의 양성·음성에는 남녀간에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양적(陽的)인 지(知)의 명석(明晳)인 경우, 男女가 다함께 명석함을 갖고 있으나, 명석의 질이 다르다. 남자의 명석은 포괄적(包括的)인 경우가 많고, 여자의 그것은 분석적(分析的), 또는 축소지향적인 경우가 많다. 또 음적(陰的)인 정(情)인 슬픔의 경우 남자의 슬픔은 悲痛(비통, 억센 슬픔)의 경향이 있고, 여자의 슬픔은 悲哀(비애, 가냘픈 슬픔)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양적인 의(意) 가운데 적극성(積極性)의 경우, 남자의 적극성은 딱딱한 感觸(감촉, 硬性感觸)을 주며, 여자의 적극성은 연한 感觸(軟性感觸)을 준다. 성상에 있어서의 이러한 남녀간의 차이가 질적차이(質的差異)이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성악(聲樂)에 있어서 남자의 테너와 여자의 소프라노는 모두 高音(고음, 陽)이나, 이들은 서로 질이 다름을 볼 수 있다. 또 남자의 베이스와 여자의 알토는 모두 低音(저음, 陰)이지만 이들도 역시 서로 질이 다르다. 남자와 여자에 있어서 성상의 속성인 양성·음성의 차이도 이와 비슷한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 때문에 남자에게는 남자다움이 나타나고 여자에게는 여자다움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음은 우주의 창조과정에 있어서 양·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하나님의 창조는 양·음의 조화를 활용한 일종의 웅장한 예술작품에 비유할 수 있다. 조화라는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은 천지창조라는 하나의 장대한 교향곡을 연주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대폭발(Big bang theory...... 아직은 가정(假定)의 단계)6)로부터 시작하여 은하계를 만들고 태양계를 만들고, 지구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지구에 있어서 식물, 동물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교향곡의 연주에 있어서 음의 고저(高低), 강약(强弱), 장단(長短), 양적(陽的)인 악기와 음적인 악기의 연주 등, 여러가지 양·음이 조화롭게 작용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창조의 과정에 있어서도 무수한 종류의 양·음의 조화가 상호작용을 해 왔다고 본다.
은하계(銀河系)에는 약 2천억 개의 항성(恒星)이 있으며 그것들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별의 조밀한 곳이 양이고, 성긴 곳이 음이다. 지구에는 육지와 바다가 있는 바, 육지가 양이고 바다가 음이다. 산과 골짜기, 낮과 밤, 아침과 저녁, 여름과 겨울 등도 양·음의 조화이다. 이와 같이 수많은 양음의 조화가 얽히고 설키면서 우주가 형성되었고 지구가 형성되었으며, 생물이 발생하고 인간이 출현한 것이다.
인간의 활동도 양·음의 작용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부부(夫婦)의 조화(調和)에 의하여 가정(家庭)이 유지된다거나 미술창작에 있어서 선(線)의 굴곡(屈曲)·색의 명암(明暗)·농담(濃淡)·양감(量感)의 大小 등과 같이 양·음의 조화가 필요하다. 이처럼 우주의 창조에 있어서나 인간사회의 활동에 있어서도 양성과 음성의 조화가 성상·형상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양·음의 조화적인 작용은 변화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미(美)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양성과 음성을 성상·형상의 속성으로 두신 것은 양성-음성(陽性·陰性)을 통하여 조화(調和)와 美를 나타내기 위함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3. 개성진리체의 개별상 (個性眞理體의 個別相)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는 개체마다 普遍相(보편상; 성상·형상, 양성·음성)외에 독특한 속성(屬性)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개성진리체의 개별상(個別相)으로서 원상(原相)의 개별상(原個別相)에서 유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1) 보편상(普遍相)의 개별화(個別化)
개별상(個別相)은 보편상(普遍相)과 별개의 속성이 아니며, 보편상 그 자체가 특수화(特殊化) 또는 개별화(個別化)된 것이다. 즉 보편상은 성상·형상과 양성·음성이므로 이들 속성이 개체마다 다르게 나타난 것이 개별상(個別相)이다. 人間의 경우 개인마다 性格(성격, 性相)이 다르고 체격이나 容貌(용모, 形狀)가 다르다. 또 성상의 양·음과 형상의 양·음도 개인마다 다르다. 예컨대 같은 기쁨(情의 陽)이라도 그 표현방법이 각각 다르며, 슬픔(情의 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코는 몸의 양적(陽的)인 부분으로서 코의 높이와 모양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몸의 음적인 부분인 귓구멍을 보아도 그 크기나 모양은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와 같이 개별상은 보편상 그 자체가 개별화된 것이다.
(2) 종차(種差)와 개별상(個別相)
일정한 사물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성을 보통 徵表(징표; Merkmal)라고 하며, 동일한 유개념(類槪念)에 속하는 종개념(種槪念) 중에서 일정한 종개념에 나타나는 특유한 징표(徵表)를 種差(종차; specific difference)라고 한다. 예컨대 `사람'은 `개'나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동물'이라는 유개념에 속하는 종개념이지만, `사람'이라는 종개념에 공통되는 성질의 징표로서 `理性的'이라는 말이 그 예이다(統一思想으로 볼 때 여기의 징표나 종차도 모두 보편상의 특수화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어떤 생물의 징표는 여러 가지 단계의 종차가 합쳐져 있는 것이다.
예컨대, 하나의 인간을 생각해 보자. 인간은 생물이면서 식물이 아닌 동물의 징표(徵表) 즉 종차(種差)를 가지고 있다. 또 인간은 동물이면서 무척추동물(無脊椎動物)이 아니고 척추동물(脊椎動物)의 종차(특성)를 가지고 있다. 또 척추동물이면서 어류나 파충류가 아닌 포유류의 종차(특성)를 가지고 있다. 또 포유류이면서 食肉類(식육류, 齧齒類)가 아닌 영장류(靈長類)의 종차(특성)를 가지고 있다. 또 영장류(靈長類)이면서 손이 긴 원숭이가 아닌 사람科(Homonidae)의 종차를 지니고 있다. 또 사람과(科)로서 소위 원인(猿人)이 아닌 사람屬(속, Homo)으로서의 종차를 가지고 있다. 또 사람屬으로서 소위 원(原人)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의 종차(種差) 즉 특성(이 특성이 바로 `理性的'인 것이다)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미표(微表)에는 대체로界(kingdom),門(phylum), 綱(class), 目(order), 科(family), 屬(genius), 種(species)의 7단계(段階)의 종차(특성)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7단계 종차의 기반위에 개인의 특성(特性), 즉 개별상(個別相)이 세워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7단계의 종차를 터로 하는 개인의 특성이 바로 인간의 개별상(個別相)이다.
그런데 인간에 있어서 7단계의 종차는 생물학자(生物學者)들이 편의상(便宜上) 그렇게 구분한 것뿐이며, 하나님은 그와 같이 여러 종차를 거듭하면서 인간을 만드신 것은 아니다. ‘原理講論’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미래에 창조(創造)될 인간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형상적(形象的)으로 전개하여 만물세계를 창조하셨다"7)고 되어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천주(天宙)의 창조에 있어서 제일 마지막으로 만들어야 할 인간을, 마음속에서는 제일 먼저 구상(構想)하신 것이다.
즉 제일 먼저 구상(構想)한 인간을 표준으로 하여 동물, 식물, 광물을 차례로 생각하신 것이다. 즉 구상(構想)된 인간을 표본으로 하여 동물을 생각하고 다음에 식물을, 그리고 나중에 광물을 생각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구상에 있어서는 인간, 동물, 식물, 광물의 순서와 같이 하향식(下向式)으로 생각하였으나 실제로 피조세계를 만든 순서는 그 반대였다. 즉 광물(天體), 식물, 동물, 인간의 순서와 같이 상향식(上向式)으로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상에 있어서 몇 개의 종차(種差)를 합쳐 가면서 인간을 구상한 것이 아니며, 한꺼번에 모든 屬性(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을 구비한 인간을 구상한 것이다.
더욱이 추상적(抽象的)인 인간이 아니고 구체적(具體的)인 개별상(個別相)을 가진 인간 아담과 해와를 마음에 그렸던 것이다. 그 다음은 인간에게서 일정한 성질과 요소를 생략하고 변형(變形)시키면서 여러 가지 동물을 구상하였다. 다음에는 동물의 일정한 성질과 요소를 생략하고 변형시키면서 여러 가지 식물을 구상하였다. 또 식물의 일정한 성질과 요소를 생략하고 변형시키면서 여러 가지 천체(天體)와 광물(鑛物)을 구상한 것이다. 이러한 하향식(下向式) 구상에 있어서의 한 단계의 구상, 예컨대 동물 단계의 구상에 있어서도 고급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거기에서 일정한 성질과 요소를 생략 또는 변형시킴으로써 점차로 저급한 동물을 구상해 나갔다고 본다(식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실제의 만물창조의 결과만을 보면 인간은 여러 단계의 동물의 종차가 겹쳐있는 것 같이 보여진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분자, 원자, 소립자 등 미시세계(微視世界)에 있어서, 개체의 개별상은 그 개체들이 속한 종류의 종차(특성)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물의 분자는 어떤 분자든지 같은 형태와 화학적(化學的) 성질을 가지고 있다. 원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소립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미시세계(微視世界)에서는 종차와 개별상이 일치한다고 본다. 원자나 소립자는 더 높은 차원의 개체의 구성요소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광물로 되어 있는 산하(山河), 하늘의 천체(天體)들은 각각 개별상을 갖고 있으나 구성 요소로서의 광물 그 자체는 역시 종차가 그대로 개별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식물이나 동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종류의 특성 그대로가 개별상(個別相)이 된다. 예컨대 무궁화나무의 특성은 그대로가 모든 무궁화나무의 개별상이 되며, 일정(一定)한 종류의 닭의 특성은 그대로가 동종(同種)의 모든 닭의 개별상이 된다. 이리하여 인간에 있어서는 개인마다 개별상이 다르지만 인간 이외(人間 以外)의 만물들은 종류에 따라서 개별상이 다르게 된다.
(3) 개별상(個別相)과 환경(環境)
인간(人間)에 있어서 개별상이란 개체가 태어나면서 가진 특성이지만, 그 개별상에는 환경에 따라 변하는 측면(側面)이 있다. 그것은 원상(原相)이 그러했듯이 모든 개체는 존재 또는 운동함에 있어서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과 發展性(발전성, 變化性)의 양면을 동시에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不變性(불변성, 自己同一性)과 可變性(가변성, 發展性)의 통일적 존재로서 존재하며 성장한다. 그런데 이중에서 불변성(不變的)인 측면이 본질적인 것이고 변화하는 측면은 2차적인 것이다. 개별상을 유전학적(遺傳學的)으로 보면 유전형질(遺傳形質)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개별상이 개체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환경과의 부단한 수수작용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변화해 간다. 개별상중(個別相中)에서 이와 같이 변화하는 부분(部分) 또는 변화한 부분을 개별변상(個別變相)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별상의 가변적(可變的)인 부분은 유전학상의 획득형질(獲得形質)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의 리셍코(T. D. Lysenko, 1898∼1976)는 春化處理(춘화처리, 低溫處理)에 의해서 가을보리(秋播小麥)를 봄보리(春播小麥)로 변화시키는 실험을 통해서, 환경에 의해 생물의 특성(特性)이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불변의 형질이 유전자에 의해 자손(子孫)에게 전해진다고 하는 멘델·모르간의 유전자설(遺傳子說)은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하여 부정(否定)하였다. 생물의 본래적인 불변성을 부정하고 환경에 의해서 변화하는 면만을 강조한 것이다. 이 리셍코의 설(說)은 스탈린(J. V. Stalin, 1879∼1953)에게 인정받은 후 높이 평가되자 그때까지의 멘델·모르간파(派) 학자들은 반동으로 몰리어 추방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리셍코학설(學說)의 오류(誤謬)가 외국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확인되고 멘델·모르간학설의 정당성이 재차 인정되었다. 결국 리셍코의 학설(學說)은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을 합리화하기 위한 어용학설(御用學說)이라는 것이 폭로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로서도 만물은 불변성과 가변성의 통일적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개별상에 관련하여 `環境(환경)이 인간을 규정(規定)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성격은 환경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레닌(V. I. Lenin, 1870∼1924)의 혁명가적 인물로서의 지도 능력은 당시 러시아의 상황(狀況)에 의한 산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볼 때, 인간은 어디까지나 환경에 대해서 주체(主體)이고 주관주(主管主)이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특출한 개성(個性)과 능력(能力)을 가진 인간이 일정한 환경조건이 성숙(成熟)되었을 때, 그 환경을 수습(收拾)하기 위하여 지도자(主體)로서 출현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혁명의 경우 레닌은 본래 특출한 능력의 소유자로서 출생했다가, 국내외(國內外)의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여, 그 때의 환경을 수습하면서 러시아를 공산주의혁명(共産主義革命)으로 이끌어 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을 개별상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면, 환경은 인간의 개별상에 있어서 가변적(可變的)인 부분에만 영향을 줄 뿐, 개별상 전체가 환경에 의해서 규정(規定)되는 것은 아니다.
二. 연 체(聯 體)
1. 연체(聯體)란 무엇인가
(1) 구조(構造)로 본 연체(聯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란 그 내부에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요소가 있어서 양자가 목적을 중심으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개성진리체는 또 외적으로 다른 개성진리체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고 수수작용을 한다. 그때 이 개체(個體(個性眞理體))를 특히 연체(聯體)라고 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룬 한 개체(개성진리체)가 다른 개체(개성진리체)와 관계를 맺어서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를 형성했을 때의 개체, 즉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를 닮은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를 연체(聯體)라고 한다.
(2) 목적으로 본 연체(聯體)
목적을 중심하고 볼 때, 모든 개체는 반드시 개체목적(個體目的)과 전체목적(全體目的)이라는 이중목적(二重目的)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개체를 또한 연체(聯體)라고 부른다. 개체목적이란 개체로서 생존을 유지하거나 발전코자 하는 목적을 말하며, 전체목적이란 전체의 생존 또는 발전에 기여(寄與)코자 하는 목적을 말한다. 다음에 피조세계에 있어서 소립자로부터 우주에 이르는 개체의 계열(系列)을 살펴보자. 소립자는 소립자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면서 原子(전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원자는 원자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면서 分子(전체)를 형성하기 위해 존재하며, 분자는 분자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면서 세포(細胞(全體))를 형성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세포는 세포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면서 생물의 조직이나 器官(전체)을 형성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원자(原子)나 분자(分子)는 광물(鑛物)(전체)을 형성하고, 또한 지구(地球)(전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지구는 지구로서의 자체를 유지하면서 태양계(太陽系)(전체)를 형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또 태양계는 태양계 자체를 유지하면서 은하계(全體)를 위하여 존재한다. 은하계는 은하계 자체를 유지하면서 우주(宇宙)(전체)를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 또한 우주는 우주로서 존재하면서 인간(全體)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외형으로는 극히 작은 존재이지만 그 가치로서는 전우주(宇宙)를 총합(總合)한 것보다 더 크다.
우주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와 같이 피조물은 모두 전체목적과 개체목적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피조물의 전체목적 중에서 최고의 전체목적은 모두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데 있다. 그리고 인간의 전체목적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데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립자에서 우주(宇宙),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은 이중(二重)목적을 가진 연체(聯體)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전체목적에는 형상(形狀)的인 전체목적과 성상(性相)的인 전체목적이 있다. 예컨대 지구는 태양계를 형성한다는 목적을 지니면서 동시에 인간의 주거지(住居地)가 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 미시세계(微視世界)의 전자는 원자를 형성하기 위하여 원자핵(原子核) 주위를 돌면서 원자를 형성하고 있으나, 그것은 동시에 인간을 위해(인간의 주관의 대상인 만물을 만들기 위해)서도 돌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소립자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각급의 피조물은 보다 상위의 피조물을 구성하기 위해 존재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바, 전자(前者)를 형상적(形狀的)인 전체목적이라 하고, 후자(後者)를 성상적(性相的)인 전체목적이라고 한다.
(3) 관계(關係)의 방향성으로 본 연체(聯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원상에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와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의 2단구조(構造)가 있는 것같이, 피조세계에 있어서도 모든 개체는 이단구조를 이루고 수수작용을 하면서 존재한다. 즉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로서 내적사위기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른 개성진리체와 더불어 외적사위기대를 이룬터위에서, 공통목적을 중심으로 수수작용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존재(存在)의 2단구조(構造)이다.(전술(前述))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의 형성에 있어서 인간은 上下, 전후(前後), 좌우(左右)의 6방향(六方向)으로 수수작용을 한다. 나를 중심하고 볼 때, 윗 방향에는 부모(父母)와 상사(上司), 연장자(年長者)가 있고, 아래 방향에는 子女와 부하(部下), 연하자(年下者, 나이 어린 사람)가 있다. 앞에는 스승과 지도자, 선배가 있고, 뒤에는 제자와 후배, 자기에의 추종자가 있다. 오른쪽 방향에는 형제와 친구, 동료들이 있고, 왼쪽에는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성격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은 6方向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존재한다. 이것은 인간 뿐 아니라 만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6방향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개체도 또한 연체(聯體)이다.
인간은 또 자연환경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예컨대 대단히 먼별로부터도 인간은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다. 우주선(宇宙線)이 인간의 생리작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이 광물(鑛物), 식물(植物), 동물(動物)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도 인간은연체(聯體)이다.
(4) 격위(格位)로 본 연체(聯體)
이 항목에 관해서는 4. 존재격위(存在格位)의 항목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5)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과 상호관련성(相互關聯性)
연체(聯體)와 관련하여, 공산주의의 이론중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의 주요 개념중의 하나인 상호관련성(相互關聯性)을 비판하고자 한다. 공산주의(唯物辨證法)도 우주의 모든 사물들이 상호관련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형이상학(形而上學)과는 반대로 변증법(辨證法)은 자연을 서로 분리(分離)하거나, 서로 고립(孤立)하거나, 서로 의존(依存)하지 않는 대상(諸對象, 여러 대상), 현상(諸現象, 여러 현상)의 우연적인 집적(集積)으로 보지 않고, 서로 관련을 가진 하나의 전체로 보며, 이 전체에 있어서의 제대상(諸對象, 여러 대상), 현상(諸現象, 여러 현상)은 서로 유기적(有機的)으로 결부됨으로써 서로 의존하며 서로 제약하고 있다고 본다."8)고 하면서 사물의 상호관련성(相互關聯性)을 강조함으로써 사물을 개별적으로만 보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을 비판하고 있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서 창조되었으므로, 개성진리체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연체로서 다른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와 직접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물변증법은 단지 이 사실을 상호관련성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은 사물의 상호관련성을 인정할 뿐, 왜 그러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으며, 또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공산주의자들은 이 상호관련성의 이론을 가지고 세계의 노동자들은 혁명을 위해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논리(論理)의 비약(飛躍)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 통일사상은, 연체(聯體)의 개념으로 모든 사물은 목적을 중심하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上下, 전후(前後), 좌우(左右)로 반드시 다른 사람과 상호관련을 맺고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상호관련성은 필연적(必然的)인 것이다. 따라서 전우주는 상호관련성을 가진 무수히 많은 개체로 구성된 거대한 유기체(有機體)이다.
2. 주체(主體)와 대상(對象)
앞에서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는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의 보편상(普遍相)을 지녔다는 것을 설명했는데 이러한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은 다같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피조물인 개성진리체는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 이외에 또 하나의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요소를 갖는다. 그것이 주요소(主要素)와 종요소(從要素)(또는 主個體와 從個體)이다. 이것은 피조세계가 시공적(時空的) 성격을 띠고 있는 데서 생기게 된 것이다. 예컨대 가정에 있어서의 부모와 자녀, 학교에 있어서의 스승과 제자, 태양계에 있어서의 태양과 지구, 세포에 있어서의 핵과 세포질 등은 성상과 형상의 관계도 아니고 양성과 음성의 관계도 아니다. 이것을 주요소(主要素)와 종요소(從要素)의 관계, 또는 주개체와 종개체의 관계라 한다. 이들의 관계 역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다.
이와 같이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에는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 주요소와 종요소(주개체와 종개체)라는 세 가지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성립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성성상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의 성격은 어떠한가. 주체는 대상에 대해서 중심적(中心的), 적극적(積極的), 동적(動的), 창조적(創造的), 능동적(能動的), 외향적(外向的)이며, 대상은 주체에 대해서 의존성(依存的), 소극적(消極的), 정적(靜的), 보수적(保守的), 수동적(受動的), 내향적(內向的)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일정한 주체적요소와 대상적요소가 일시에 여러 가지의 상대적 관계를 모두 지니는 것이 아니며, 주로 1 대 1의 상대적 관계를 지니게 된다. 즉 주체가 중심적일 때 대상은 의존적이 되고, 주체가 적극적일 때 대상은 소극적이 되고, 주체가 외향적일 때 대상은 내향적이 된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요약해서 주체는 주관적(主管的)이며, 대상은 피주관적(被主管的)이라고 표현한다.
(1)피조세계(被造世界)에 있어서의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의 계열(系列)
존재자는 반드시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 주요소와 종요소(주개체와 종개체) 등의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 사실을 피조세계의 각급의 개성진리체 즉 극대세계(極大世界)인 우주(天宙)에서부터 극미세계(極微世界)인 소립자에 이르기까지의 계열(系列) 각급의 개성진리체를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주(天宙)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 역시 하나의 개성진리체이다. 그런데 천주는 영계(靈界)와 우주(宇宙)(지상계)로 되어있다. 영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이며, 지상계는 눈에 보이는 우주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 경우, 영계와 지상계의 관계는 인간의 영인체와 육신의 관계와 같아서 성상과 형상이라는 의미에서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인 것이다.
다음에 우주를 보면 이것도 하나의 개성진리체이다. 우주에는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을 향하여 약 2천억 개로 추산되는 은하(星雲)가 돌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부분(部分)이 주요소이고, 여러 은하는 종요소들이다. 이 주요소와 종요소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 다음에 은하계도 하나의 개성진리체인 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은하계는 중심핵을 이루는 항성군(核恒星系)과 그것을 에워싼 약 2천억 개의 별(항성)들로 구성된 별들의 대집단이다. 여기의 중심핵과 항성들도 각각 주요소와 종요소로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 태양은 은하계를 이루고 있는 여러 항성중의 하나이지만 태양계도 하나의 개성진리체이다. 태양계는 하나의 태양과 아홉 개의 혹성으로 되어 있는바, 태양과 혹성은 각각 주요소(主要素)와 종요소(從要素)로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 하에 놓여 있다. 태양계의 혹성중의 하나인 지구도 하나의 개성진리체인데 지구에는 중심부(핵)와 지각(地殼) 및 지표(地表)가 있다. 이것 역시 주요소와 종요소이므로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다.
지표(地表)도 하나의 개성진리체로 볼 수 있다. 지표에는 자연만물과 더불어 인간이 살고 있다. 인간이 주요소(主要素)(주체)이고, 자연만물이 종요소(從要素)(대상)이다. 그리고 인간들이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데, 국가도 정부와 국민이라는 주요소(主要素)(주체)와 종요소(從要素)(대상)로 되어 있는 하나의 개성진리체이다. 국가의 단위인 가정도 하나의 개성진리체인데 가정은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와 자녀는 각각 주개체(主個體)와 종개체(從個體)로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고, 남편과 아내는 양성과 음성의 개체들로서 역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인간 개개인도 개성진리체로서 영인체와 육신으로 되어 있다. 이 경우 영인체와 육신은 성상과 형상의 관계로서 역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다.
그리고 육신도 개성진리체로서 뇌(腦)와 지체(肢體)인 주요소(주체)와 종요소(대상)로 되어 있다. 그리고 육신은 세포로 되어 있는데 개개의 세포도 각각 개성진리체로서 핵과 세포질이라는 주요소(주체)와 종요소(대상)로 되어 있다. 또 세포핵도 하나의 개성진리체로서 염색체와 核液이라는 주요소(주체)와 종요소(대상)로 구성되어 있다. 염색체(染色體)도 하나의 개성진리체로서 핵산(DNA)과 단백질이라는 주요소(주체)와 종요소(대상)로 되어 있다. 핵산도 역시 일종의 분자인 개성진리체로서 주요소(주체)인 염기와 종요소(대상)인 당(糖)?인산(燐酸)으로 되어 있다. 염기나 당과 인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원자이다. 원자도 하나의 개성진리체로서 두 종류의 소립자, 즉 양자(핵)와 전자라는 주요소(주체)와 종요소(대상)로 되어 있다. 그리고 소립자도 한층 더 낮은 차원의 주요소(主要素)와 종요소(從要素)로 되어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피조세계에는 작게는 소립자(素粒子)에서부터 크게는 우주(天宙)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수많은 개성진리체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요소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의 개성진리체는 그것보다 상위의 개성진리체에서 볼 때 그 상위의 개성진리체의 구성요소에 불과하다. 예컨대 태양계는 태양과 혹성으로 구성된 개성진리체이지만, 은하계라는 상위의 개성진리체에서 보면 태양계는 그 은하계의 하나의 구성요소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개성진리체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주체와 대상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태양은 태양계에 있어서 혹성에 대하여 주체이지만 은하계에 있어서는 중심핵(핵항성계)에 대하여 대상이 된다.
(2)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의 유형
통일사상에서 말하고 있는 주체와 대상의 개념은 종래의 철학상의 주체와 대상의 개념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그 차이를 명백히 하고자 한다. 종래의 철학에 있어서 예컨대 인식론에서 말하는 주체는, 인식하는 사람의 의식 또는 인식하는 자아(自我)를 의미하고, 대상은 인식되는 것, 의식 안에 있는 대상(개념)과 의식 밖에 있는 대상(물체)을 뜻한다(인식론에서는 일반적으로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존재론적 또는 실천적인 의미에서의 주체란, 의식(意識)을 가진 존재자(인간)를 말하며, 대상은 주체가 상대하고 있는 존재를 뜻한다. 요컨대 종래의 철학에서 말하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의식 내지 인간과 그 인간이 마주 대하고 있는 사물과의 관계를 뜻한다. 그런데 통일사상에 있어서의 주체와 대상의 개념은 이것과 다르며, 인간과 만물(물체)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나 물체와 물체와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유형이 있다.
1) 본래형(本來型)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로 볼 때 영원히 성립되는 보편적인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말한다. 예컨대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교사와 학생, 항성과 혹성, 세포핵과 세포질, 원자핵과 전자 등의 관계가 그 예이다.
2) 잠정형(暫定型)
이것은 잠정적으로 성립되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일상생활에 있어서 흔히 일어나는 관계이다. 예컨대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에 성립되는 강사와 수강자의 관계가 그러하다. 본래형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주체와 대상이 역전(逆轉)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가정에 있어서 남편이 부재중이거나 와병중(臥病中)일 때 아내가 남편을 대신하여 주체(家長)의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고, 부모가 노쇠(또는 와병)했을 때 자녀가 부모를 대신하여 가정을 책임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가 잠정형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본래형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며, 본래형을 기반으로 한 잠정형인 것이다.
3) 교호형(交互型)
인간 상호간의 대화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서로 바뀌는 경우에 있어서의 양자의 관계를 교호형이라 한다. 즉 말하는 사람은 주체이고 듣는 사람이 대상인데,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말하는 사람(주체)과 듣는 사람(대상)이 서로 바뀌는 때가 많은 것이다.
4) 부정형(不定型)
어느 쪽이 주체이고 어느 쪽이 대상인가를 인간이 자의적으로 결정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부정형(不定型)이라고 한다. 객관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예컨대 동물과 식물의 관계에 있어서 동물은 탄산가스를 방출하여 식물에게 주고, 식물은 산소를 방출하여 동물에게 준다. 여기서 산소의 흐름으로 볼 때에는 식물이 주체이며, 탄산가스의 흐름에서 볼 때에는 동물이 주체이다. 어느 편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즉 판단자의 뜻에 따라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달라진다. 이와 같은 것이 부정형의 주체와 대상이다.
(3) 수수작용(授受作用)
두 개체가 공통목적을 중심으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 일정한 요소 또는 힘을 주고 받는 작용이 벌어진다. 이 작용을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이 작용에 의해서 그 두 개체(사물)는 존속, 운동하고 변화, 발전한다. 예컨대 학교에 있어서 신입생이 입학수속을 마치면 그때부터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대적 관계가 성립된다. 상대적 관계란 서로 마주 대하는 관계이다. 이 상대적 관계의 기반 위에서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수수작용이다.
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지식이나 기술이 전달되며 학생들의 인격이 도야된다. 또 교사는 보람을 느끼고 학생은 스승에게 감사를 돌린다. 또 청춘 남녀는 흔히 어떠한 계기를 통하여 알게 되거나 맞선을 보거나 하여, 약혼하고 결혼한 후 가정을 이루어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이때 선을 보는 것과 약혼하는 것은 상대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요, 결혼과 서로간의 사랑은 수수작용을 하는 것이다. 또 태양과 혹성은 46억여년 전에 상대적 관계를 맺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만유인력에 의해 힘을 주고 받는다. 이것도 수수작용이다. 이때 혹성들은 태양 주위를 돌게 된다.
원상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심정(心情)을 중심으로 성상과 형상이 수수작용을 하면 중화체(中和體) 또는 합성체(合性體)를 이루게 된다. 이것은 영원히 그 자존성을 유지하는 자기동일적(自己同一的)인 측면이다. 그리고 원상에는 목적(창조목적)을 중심으로 성상과 형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번식체, 또는 신생체(피조물)를 만드는 측면도 있다. 이것이 변화, 발전의 측면이다. 전자의 경우가 자동적수수작용(自同的授受作用))이고 후자의 경우가 발전적수수작용(發展的授受作用)이다. 마찬가지로 피조세계의 수수작용에 있어서도 자동적수수작용과 발전적수수작용의 양측면이 있다. 피조세계는 닮기의 법칙에 의하여 원상(原相)의 속성을 본따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은하계를 보면 중심의 핵항성계(核恒星系)와 그것을 중심으로한 약 2천억 개의 별(항성)사이에 수수작용이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볼록렌즈형을 한 은하계의 모습은 언제나 일정하다. 또 모든 별은 일정한 궤도(軌道)를 지키면서 회전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것도 은하계의 불변의 한 측면이다.
그런데 은하계가 처음에는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으나 점차 그 회전의 속도가 빨라져 왔다고 한다. 또 은하계에서는 항상 낡은 별은 소멸하고 새로운 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은하계에는 부단히 변화하는 면도 있다. 따라서 은하계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에도 자기동일적인 것과 발전적인 것이라는 두 측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또 원상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성상의 내부에 두 내적요소(內的要素) 즉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두 부분이 있다. 이 두 내적요소가 심정 또는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주체, 대상의 관계를 맺고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합성체(合性體) 또는 신생체(新生體)를 이룬다. 이것이 내적수수작용이다. 그리고 상기(上記)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이 심정 또는 목적을 중심으로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체 또는 신생체를 이루는 것이 외적수수작용이다.
하나님에 있어서의 이같은 내적수수작용과 외적수수작용의 2단작용(作用)은 동시에 2단의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기 때문에 이것을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라고도 한다. 이 이단구조는 그대로 피조세계에도 적용된다. 그리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반드시 내적으로 주체와 대상의 두 요소를 지님과 동시에 외적으로도 타자와 더불어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고 있다. 예컨대 인간과 만물(자연)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은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수수작용 즉 내적수수작용을 행하면서(즉 생각하면서) 외적수수작용에 의하여 만물을 인식하고 주관한다. 이때 인간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생심과 육심의 수수작용을 내적수수작용이라 하며, 인간과 만물(또는 인간과 인간)과의 수수작용을 외적수수작용이라 한다. 그런데 수수작용에는 여러가지의 유형이 있게 되는데, 이것은 주체와 대상이 의지 또는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구별되는 유형이다. 수수작용의 유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양측의식형(兩側意識型)
학교의 수업시간에 있어서 교사는 주체요, 학생은 대상인데 양자가 다같이 의식(意識)을 가지고 수수작용을 한다. 이와 같은 경우를 양측의식형의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인간과 인간의 수수작용 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 동물과 동물에 있어서도 쌍방이 의지 또는 목적의식(意識)을 가지고 수수작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경우도 양측의식형의 수수작용이다.
2) 편측의식형(片側意識型)
교사가 백묵으로 흑판에 글을 쓸 때, 교사와 백묵 사이에도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그 경우 교사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백묵은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이 한편(주체)은 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한편(대상)은 다만 피동적으로만 움직이는 경우, 이것을 편측의식형의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3) 무자각형(無自覺型)
동물이 호흡작용을 할 때, 식물로부터 방출된 산소를 흡입(吸入)하고 탄산가스를 방출한다. 한편 식물은 광합성작용을 할 때, 동물로부터 나온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보낸다. 이때 동물은 의식적으로 식물을 위해 탄산가스를 방출하는 것이 아니며, 식물도 의식적으로 동물을 위해 산소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다. 양쪽 다같이 무의식중에 탄산가스와 산소를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의 양자 혹은 한편(주체)이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무자각적으로 수수작용을 하고 있는 경우, 이것을 무자각형의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4) 타율형(他律型)
주체와 대상이 모두 의식은 없으나 제삼자의 의지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수수작용을 하게 되는 경우, 이것을 타율형의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예컨대 태양(주체)과 지구(대상)의 수수작용이 그러하다. 태양과 지구는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창조목적(의지)에 따라 타율적으로 수수작용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시계도 여러 부품들이 서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시간을 가리키고 있으나 그것은 시계를 만든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그렇게 움직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우를 타율형의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5) 대비형(對比型)
인간이 둘 또는 다수의 사물을 대비(대조)하여 그들 사이에 조화를 발견할 때, 인간은 그들이 수수작용을 하고 있다고 주관적으로 간주한다. 이것을 대비형 또는 대조형(對照型)의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대비형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인간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한편의 요소를 주체로, 다른 한편의 요소를 대상으로 가정(假定)(想定)하여 대비를 함으로써 그 두 요소(주체와 대상)가 수수작용을 하고 있다고 간주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형의 수수작용은 주관적인 수수작용이다.
이 대비형의 수수작용을 특히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가 예술의 창작이나 감상활동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 때, 색과 색, 빛과 그림자 그리고 양과 음 등이 조화를 이루도록 조절한다. 또 감상자는 작품을 대할 때 작품중의 여러가지 물리적요소를 대비하여 조화를 발견하려고 한다. 사고(思考)에 있어서도 대비형의 수수작용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이 꽃은 장미꽃이다라는 판단은 이 꽃을 주체, 장미를 대상으로 하여 대비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인식에 있어서는 외계의 대상에서 오는 형태, 색, 향기 등의 감각적내용과 인간 주체가 가지고 있는 원형(原型) 즉 일정한 관념군(觀念群)이 대비되어서 인식이 이루어진다. 인식론에 있어서는 특히 이 대비과정을 조합(照合)이라고 하며, 따라서 조합도 역시 대비형의 수수작용인 것이다.
(4) 상대물(相對物)과 대립물(對立物)
개성진리체 속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누차 설명했는데, 그와 같은 상대적 요소를 간단히 상대물(相對物)이라고도 표현한다. 주체와 대상은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상대적 관계를 맺은 후 원만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합성체를 이루거나 번식체를 만들거나 한다(통일사상에서는 수수작용의 법칙을 간단히 수수법(授受法)이라고도 한다). 한편 유물변증법은 모든 사물속에는 반드시 대립물(對立物)과 모순(矛盾)을 내포하고 있으며, 대립물의 투쟁에 의해서 사물은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통일사상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물은 상대물의 원만한 수수작용에 의해 발전하는 것일까, 혹은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이 주장한 바와 같이 사물은 대립물의 투쟁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일까. 모든 사물은 반드시 두 가지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 통일사상과 유물변증법은 일치한다. 그러나 발전에 관해서는 양쪽의 주장이 다르다. 어느 쪽이 옳은가는 사물속에 내재한 이 두 가지 요소의 관계를 검토해 보면 알 수 있다. 즉 두 요소 사이에 공통목적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아보면 된다. 만일 공통목적이 내포되어 있음이 확인되면 두 가지 요소는 상대물이고, 없으면 대립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또 두 요소의 상호작용이 조화적인 것인가, 혹은 투쟁적인 것인가를 검토해 보아, 조화적이면 수수작용이고 그렇지 않으면 변증법적인 작용이다. 그리고 또 두 요소의 격위(格位)가 같으냐, 다르냐를 밝힘으로써도 양자의 구별을 확정지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사물이 변증법에 의해서 발전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실례로는 인간사회의 문제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즉 대립물의 투쟁에 의해서 발전하는 자연만물의 실례는 하나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그와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엥겔스가 자연과학을 연구한 후 그 성과를 자연변증법(自然辨證法)과 반(反) 듀링론에서 밝혔는데, 그는 거기에서 자연은 변증법의 검증이다'9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자연의 현상은 예외없이 변증법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엥겔스가 실례로 든 자연현상을 잘 검토해 보면, 거기에서 투쟁은 전연 발견되지 않는다. 도리어 공통목적을 중심으로 한 조화적인 작용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이에 관한 상세한 예증(例證)은 지면관계로 생략한다). 따라서 자연은 변증법(辨證法)의 검증이 아니라 도리어 수수법(授受法)의 검증이 되고 있다. 단지 인간사회에 있어서는 인간 조상의 타락 때문에,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수많은 투쟁이 벌어져 왔던 것이다.
3. 존재양상(存在樣相)
다음은 존재자(存在者)가 어떠한 양식(樣式)으로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즉 존재양상(存在樣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조물의 존재양식은 운동이다. 이 운동은 물론 시간, 공간내에서의 물리적 운동을 말한다. 즉 존재양상(存在樣相)은 피조세계에만 성립(成立)하는 시공적(時空的)인 개념이다.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공적(時空的) 성격을 띤 운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원상(原相)내에 존재양상(存在樣相)이라는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피조세계의 존재양상(存在樣相)에 대응하는 원형은 원상내(原相內)에 있는 것이다.
(1) 원환운동(圓環運動)
피조세계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는 두 요소 또는 두 개체(個體)가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수수작용을 하면, 그 결과로서 합성체(合性體)가 생김과 동시에 운동이 시작된다. 이때의 중심인 목적은 존재자(存在者)(만물)가 아니며, 또 합성체는 수수작용의 결과로서 생기는 상태에 불과하므로, 수수작용에 있어서 실제로 운동에 관여하는 것은 주체와 대상의 두 요소(개체) 뿐이다. 이 때의 수수작용의 중심(目的)은 주체와 대상의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체 속에 있다. 따라서 수수작용에 의한 운동은 주체를 중심으로 한 원환운동(圓環運動)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컨대 원자(原子)에 있어서는 전자(電子)가 핵(陽子)을 중심으로 돌고 있고, 태양계에 있어서 혹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수수작용의 중심인 목적이 각각 핵과 태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피조세계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은 왜 이와 같은 운동을 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세계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으니, 운동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에게 원환운동과 같은 존재양상은 없다 하더라도 피조세계의 원환운동의 원형(原型)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수수작용의 원만성(圓滿性), 원화성(圓和性), 원골성(圓滑性; 원활성)이다. 원상에서는 성상과 형상이 심정(心情)(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원만한 수수작용을 하고 있는 바, 이 수수작용의 원만성 또는 원화성이,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 상징적으로 전개된 것이 바로 원환운동(圓環運動) 다.
만물세계는 하나님의 속성의 상징적(象徵的)인 표현체이다. 예컨대 바다의 넓음은 하나님의 마음의 넓음을 상징하며, 태양의 열은 하나님의 사랑의 따뜻함을 상징하고, 태양의 빛은 하나님의 진리의 밝음을 상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피조세계의 원환운동도 하나님의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것인 바, 그것이 곧 원상내의 수수작용의 원화성(圓和性)이다. 수수작용의 원화성의 표현인 원형은 동시에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원상에 있어서 수수작용의 원화성(圓和性)은 심정을 중심으로 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은 모서리가 없는 것으로서 원형(圓形)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원상(原相)도 도면으로 표시할 때, 원형(圓形) 또는 구형(球形)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형(無形)이어서 일정한 모습은 없다. 그 대신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존재한다. 즉 하나님은 무형(無形)이며 무한형(無限形)으로서 이것을 물에 비유할 수 있다. 물에는 일정한 形이 없지만 사각의 용기에 넣으면 사각으로, 삼각의 용기에 넣으면 삼각으로, 둥근 용기에 넣으면 둥근 모습으로 나타난다. 용기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도 나타난다. 즉 무한형(無限形)이다. 그러나 물의 대표적인 모양이 있다면 그것은 구형(球形)이다. 그것은 물방울이 구형인 것으로써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때로는 파도와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바람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며, 또 때로는 불꽃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대표적인 모양이 있다면 그것은 구형(球形)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원상(原相)은 원형(圓形) 혹은 구형(球形)으로 표시될 수 있다. 만물도 원상을 닮아서 모두 기본적인 형태는 구형을 이루고 있다. 원자나 지구, 달, 태양, 별 등은 모두 구형으로 되어 있다. 생물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식물의 씨(種子)나 동물의 알(卵)은 기본적으로는 모두 구형이다. 그리고 만물의 운동이 원환운동이라 함은 상술한 바와 같이 원상의 수수작용의 원화성(圓和性)을 닮은 때문임은 물론이지만 또 원상 자체의 구형성(球形性) 혹은 원형성(圓形性)을 닮은 때문이기도 하다.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할 때, 원환운동(圓環運動)이 벌어지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환운동이 수수작용의 표현 형태이기 때문이다. 만일 대상이 주체를 중심으로 돌지 않고 직선적으로 운동한다면, 결국은 주체를 떠나고 말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은 수수작용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수수작용을 할 수 없다면 피조물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오직 수수작용에 의해서만 생존(存續)과 번식(發展)과 통일의 힘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은 주체와 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이 주체의 주위를 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자전운동(自轉運動)과 공전운동(公轉運動)
다음은 자전운동(自轉運動)과 공전운동(公轉運動)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어떠한 개체든지 원환운동을 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자전운동과 공전운동이라는 두 가지의 운동을 동시에 행하게 된다. 모든 개체는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이면서 연체(聯體)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개체는 내적으로 수수작용을 하면서 동시에 외적으로도 수수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이 두 가지 수수작용에 대응(對應)하는 두 가지의 원환운동이 벌어지게 된다. 내적수수작용에 의한 원환운동이 자전운동(自轉運動)이요, 외적수수작용에 의한 원환운동이 공전운동(公轉運動)이다.
예컨대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公轉)하고 있고, 전자(電子)도 자전하면서 원자핵을 중심으로 돌고(공전) 있다. 피조물에 있어서 이와 같이 자전운동과 공전운동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은 만물의 안 밖의 운동(수수작용)이 원상에 있어서의 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의 원화성(圓和性)과 외적수수작용(授受作用)의 원화성(圓和性)을 닮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授受作用) 때에는 반드시 내적사위기대 및 외적사위기대가 목적을 중심으로 형성된다(피조물(被造物)은 원상과는 달리 어떠한 사위기대(四位基臺)든지 모두 그 중심에 목적이 세워진다). 그리고 이 내적 및 외적사위기대 형성에 있어서, 결과가 합성체(合性體)인 경우와 신생체(新生體)인 경우의 두가지가 있게 된다. 여기서는 결과가 합성체인 경우만을 살펴보자.
원상(原相)에 있어서, 결과가 합성체인 경우의 수수작용 즉 사위기대는 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였으며 여기에 다시 내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와 외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가 있었는 바, 이것이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였다. 피조물도 원상의 사위기대(수수작용)를 닮은 내적자동적사위기대와 외적자동적사위기대를 이루고 있는 바, 이것이 존재(存在)의 2단구조(構造)이다. 수수작용은 사위기대를 터로 하고서 벌어지며, 수수작용 때에는 반드시 원환운동(圓環運動)이 나타난다. 따라서 내적 및 외적사위기대에서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이 벌어지는 동시에 내적 및 외적인 원환운동이 벌어진다. 이때의 내적원환운동이 바로 자전운동(自轉運動)이며, 외적원환운동이 공전운동(公轉運動)이다.
(3) 원환운동(圓環運動)의 제형태(諸形態, 여러 형태)
그런데 피조세계에 있어서 실제로 공간적인 원환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천체(天體)와 원자(原子) 내의 소립자뿐이며, 그 외의 만물은 문자 그대로의 원환운동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식물은 일정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으며, 동물도 비록 움직이고는 있지만 원환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피조물들도 그 존재양상(存在樣相)의 기본형은 역시 원환운동이며, 다만 그것이 변형(變形)되어서 다른 형태를 취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피조물의 원환운동이 변형된 이유는 각 피조물의 창조목적(創造目的) 즉 전체목적과 개체(個體)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함이다. 이리하여 실제로 나타난 원환운동의 형태에는 몇 가지의 유형이 있게 된다. 기본적 원환운동, 변형된 원환운동, 정신적 원환운동이 그것이다.
1) 기본적(基本的) 원환운동(圓環運動)
여기에 다시 공간적 원환운동과 시간적 원환운동의 두 가지가 있다. ①공간적(空間的) 원환운동(圓環運動)...... 이것은 물리적, 반복적인 원환운동으로서 천체(天體)와 소립자의 자전운동 및 공전운동이 그 예이다. 즉 원상내의 자동적수수작용이 공간적성격을 띠고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원환운동이지만 항상 거의 같은 궤도(軌道)를 돌고 있으므로 반복운동(反復運動)이기도 하다. ②시간(時間)的 원환운동(圓環運動)(螺旋形運動)... ... 이것은 生物(생명(生命))의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의 반복과 계대현상(繼代現象)을 말하는 것으로서, 식물의 경우 한 알의 씨에서 싹이 난 후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새로운 씨)를 맺는 바, 이 새로운 씨는 처음의 씨보다 수가 많으며, 이 씨가 또 땅에 심겨진 후 싹이 나고 성장하여, 또 새로운 열매(씨)를 맺는다.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수정란(受精卵)이 성장하여 새끼가 되고, 새끼가 성장하여 어미 동물이 되면, 다시 새로운 수정란을 지니게 된다. 이 새로운 수정란이 다시 성장하여 어미가 된다. 이와 같이 식물도 동물도 라이프 사이클(生活史)을 반복(反復)하면서, 즉 대를 이어가면서 종족을 보존한다. 이와 같은 종족 보존을 위한 계대현상(繼代現象)도 일종의 원환운동인 바, 이 운동은 목적성(目的性), 시간성(時間性), 단계성(段階性)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것을 특히 나선형운동(螺旋形運動)이라고 한다.
여기서 생물의 나선형운동(螺旋形運動), 즉 종족의 보존과 번식의 의미를 해명하고자 한다. 만물은 인간의 기쁨(美)의 대상인 동시에 주관(主管)의 대상(對象)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만물의 종족 보존과 번식은 인간들의 부단한 계대(繼代; 대를 이음)와 번식(繁殖)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의 육신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며, 영인체(靈人體)만이 영생(永生)한다. 즉 육신을 터로 하고 영인체가 완성하면 육신이 죽은 뒤 그 성숙(成熟)된 영인체가 영계에서 영원히 살게 되어 있다(단, 인간의 타락(墮落)에 의하여 오늘날까지 인간의 영인체는 미완성한 채로 영계에 가 있다). 영인체(靈人體)의 완성이란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성장하여 인격을 완성하고 결혼하여 자녀를 번식(繁殖)하고 만물을 주관(主管)하는 것, 즉 삼대축복(三大祝福)의 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상에 사는 인간은 일정한 수명을 누리다가 영인체는 영계에 가고 육신은 번식을 통하여 다음 대로 이어진다. 만물들은 이와 같이 지상인의 기쁨과 주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만물 역시 대를 이으면서 종자를 보존하고 번식하게 된다. 이상이 시간적(時間的) 원환운동에 관한 설명인데, 이러한 원환운동은 모두 원상 내의 발전적수수작용이 주로 시간적(時間的), 계기적(繼起的) 성격을 띠고 나타난 것이다.
2) 변형(變形)된 원환운동(圓環運動)
여기에는 다시 고정성(固定性)운동과 대체성운동(代替性運動)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①固定性運動...... 이것은 원환운동이 한 개체의 창조목적 수행을 위해서 고정화된 것이다. 마치 정지위성(靜止衛星)이 그 목적수행을 위해서 일정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의 경우,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원자가 마음대로 운동한다면 지구는 가스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거기에서 살 수 없게 된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지구가 되기 위해서는, 원자와 원자가 굳게 결합하고 고정되어서 굳은 지각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는 인간이 사는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전체(全體)목적을 위하여) 원환운동의 형태를 변형시킨 후 고정화(固定化)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물체의 각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도 모두 서로 결합한 후 고정되어 있다. 예컨대 동물의 심장(心臟)을 이루고 있는 세포(細胞)는 서로 결합하고 있는 바, 이것은 심장의 기능인 신축작용(伸縮作用); 전체목적(全體目的)을 다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세포들이 서로 떨어져서 개별적으로 운동한다면, 심장은 그 기능을 다 할 수 없게 된다. ②대체성운동(代替性運動)... ... 그런데 동물에 있어서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이 직접 원환운동을 하지 않는 대신, 혁액(血液)과 임파액(淋巴液)이 체내를 돌면서 세포와 세포를 연결시킴으로써, 세포들이 서로 원환운동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效果)를 나타내고 있다. 식물에 있어서도 도관(導管; 물관 [vessel])과 사관(篩管; 체관 [sieve tube])을 통하여 양분이 체내를 돌면서 세포와 세포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포들이 원환운동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혈액(血液)이나 임파액(淋巴液), 또는 양분(養分)이 유통하면서 세포의 원환운동을 대신하는 것을 대체성원환운동(代替性圓環運動) 혹은 대체성운동(代替性運動)이라고 한다. 지구에 있어서의 맨틀(mantle)의 대류(對流)라든지 플레이트(plate: 地球表面의 岩盤)의 이동 등도 대체성운동으로 볼 수 있으며, 경제생활에서의 상품이나 화폐의 유통도 역시 대체성운동에 속하는 원환운동으로 볼 수 있다.
3) 정신적 원환운동(精神的 圓環運動)
인간에 있어서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수수작용은 물리적인 원환운동이 아니며 생심(生心)이 원하는대로 육심(肉心)이 호응한다는 의미에서 정신적인 원환운동이다. 또 가정이나 사회에 있어서 인간과 인간의 원만한 수수작용은 주체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대상의 마음이 호응한다는 의미에서 역시 정신적인 원환운동이다. 예컨대 부모와 자녀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부모가 자녀를 사랑으로 잘 지도하면 자녀는 부모의 뜻을 잘 따르게 된다. 이때 자녀가 부모의 뜻에 잘 따르는 것이 정신적인 원환운동이다.
(4) 성장(成長)과 발전운동(發展運動)
1) 통일사상의 발전관
여기서 성장과 발전의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통일사상의 발전관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이다. 생물은 생명을 가지고 있는데, 생명이란 원리의 자율성(自律性)과 주관성(主管性)을 말하며, 생물체에 잠재(潛在)하고 있는 의식성(意識性)을 지닌 에너지(또는 에너지를 지닌 의식(意識))를 말한다. 생물의 성장은 이 생명(生命), 즉 원리의 자율성과 주관성에 기인하는 바, 그것은 생물체에 잠재하고 있는 의식(意識)과 에너지의 통일物(의식성 에너지)인 것으로서 이 의식성(意識性)에너지의 운동이 바로 생명운동(生命運動)이다.
자율성이란 외부로부터 강요받지 아니하고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能力)이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돌고 있으나 그것은 단지 기계적(機械的)인 법칙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생명은 기계적인 법칙에 따르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자신을 조정(調整)하면서 여러 가지의 환경변화(環境變化)에 대처한다. 그렇게 해서 성 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원리(原理)의 자율성(自律性)이다.
한편 원리의 주관성이란 주위에 대하여 영향을 주는 작용을 말한다. 식물에 있어서 그 씨를 땅에 심으면 발아한 후 줄기가 자라고, 잎이 나는 등 성장(成長)하게 되는데, 그러한 힘 그 자체는 원리(原理)의 자율성이지만 동시에 그 식물은 주위에 영향을 주면서 성장한다.11) 동물에 산소를 공급한다든지 꽃을 피워서 벌과 나비를 부르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것이 원리(原理)의 주관성(主管性)이다. 따라서 생명은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율성이고, 주위에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주관성이다. 이와 같이 생명에 의한 생물의 성장운동이 바로 발전운동이다. 그런데 피조물에는 모두 創造目的(被造目的)이 주어져 있다. 생물에도 피조목적이 주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生物(예컨대 식물(植物))에 피조목적이 주어져 있다는 것은 생물(生物) 속의 생명(生命)이 그 목적을 의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생물의 성장은 처음부터 목표(目的達成)를 지향하는 운동인 것이다.
따라서 발전에는 목표와 방향이 있게 마련이니 그것은 생명에 의해 정해지게 된다. 즉 식물의 경우 종자 속에는 생명이 있어서, 이 생명이 종자로 하여금 나무와 과실을 목표로 하여 성장하도록 작용하게 된다. 또 동물의 경우 알(受精卵)속에도 역시 생명이 있어서, 알로 하여금 성체(成體)를 목표로 하여 성장하도록 작용한다. 여기서 우주 발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宇宙)는 처음에는 극히 고온(高溫)으로서 고밀도(高密度)의 극히 작은 에너지 덩어리였으나 150~200억 년 전에 이 작은 덩어리가 대폭발(大爆發)과 함께 팽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팽창하면서 소용돌이를 이룬 뜨거운 가스가 냉각(冷却)되고 응축(凝縮)되면서 여러 은하(銀河)가 형성되었으며, 각 은하속에 많은 별(恒星)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별(恒星)의 대부분은 혹성에 둘러싸이게 되었는데, 그 혹성(惑星) 중의 하나가 지구(地球)이며 이 지구에 생명이 발생하고 드디어 인간이 나타났다. 이것이 오늘날 알려져 있는 과학적인 우주 발전관의 골자이다. 그런데 이 우주의 발전은 생물의 成長(발전)과 어떻게 다른가. 생물과는 달리 단순한 물리화학적 법칙에 의한 발전인가, 아니면 생물의 경우처럼 생명에 의한 발전인가.
이 우주(宇宙)의 발전을 비교적 단기간의 과정만으로 다룬다면, 우주의 발전은 단순한 물리화학적 법칙에 의한 발전으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억 년의 오랜 기간을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살펴 볼 때, 우주는 물리화학적 법칙에 따르면서도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진행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우주의 발전에는 일정한 목표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목표(目標)란 우주의 주관주(主管主)인 인간의 출현을 뜻한다. 즉 인류의 출현을 향하여 우주가 발전해 온 것이다. 우주의 발전에 이와 같은 방향성을 제시해 준 것은 우주의 배후에 잠재(潛在)해 있던 어떤 의식(意識)의 힘이며, 이것을 `우주의식(宇宙意識)' 혹은 `우주생명(宇宙生命))'이라고 부른다. 식물의 종자(생명체(生命體))가 발아한 후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주의 발전에 있어서도 처음에 우주적인 종자(생명체(生命體))가 형성되어 그것이 오늘날까지 팽창하면서 성장해 왔으며, 그 성장의 최종적인 열매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과실이 과수(果樹)의 목표인 것과 같이, 인간이 우주 발전의 목표였던 것이다. 앞에서 성장은 생물(有機體)에게만 있는 현상이라고 했지만 150~200억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의 안목으로 우주를 볼 때, 우주 전체는 하나의 거대(巨大)한 유기체로서 계속 성장해 왔다고 보는 것이다.
2) 공산주의(共産主義)의 발전관(發展觀)
다음은 공산주의(共産主義)의 발전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발전은 일정한 목표를 지향하는, 즉 목적성을 띤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운동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발전을 목적성을 띤 운동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또한 공산주의는, 발전은 사물의 내부의 모순(矛盾)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발전에는 법칙성(法則性)과 필연성(必然性)만이 인정될 뿐이라고 하면서 목적(目標)을 부정한다. 왜 그럴까. 만일 목적을 인정한다면 그 목적을 세운 근원자(根源者)가 누구인가 라는 문제가 제기되며, 목적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의지(意志)나 이성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주가 생겨나기 전에 목적을 세운 이성이 있다면 그 이성은 바로 신(神)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결국 신(神)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며, 신(神)을 인정하게 되면 무신론(無神論)인 공산주의는 파탄되므로, 그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목적만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상은 발전에 있어서 필연성과 법칙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반드시 목적성(目的性)이 있음을 주장한다. 발전의 주체는 생명(生命)이며, 생명은 목적성을 지닌 의식성(意識性)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발전에 있어서의 법칙성(法則性), 필연성(必然性)은 모두 이 목적의 실현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즉 법칙성과 필연성은 만물로 하여금 그 목적(創造目的)을 달성하도록 하기위해서 만물에 부여되었던 것이다.
원상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성상에 있어서 內的性相(理性)과 內的形狀(법칙)이 목적을 중심으로 수수작용을 할 때 로고스가 형성된다. 로고스는 이성과 법칙(法則)의 통일체이다. 여기서 법칙은 하나님의 우주창조 이전부터 창조목적의 실현을 위해서 하나님의 내적형상(內的形狀) 內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물론자(唯物論者)들은 우주의 발전에 있어서 목적성을 부정했기 때문에, 인간은 다만 법칙(法則)의 필연성(必然性)에 의해서 탄생한 무목적적(無目的的)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목적을 지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간은 우연적(偶然的) 존재(存在)에 불과하며 그런 인간에게는 가치(價値)의 생활이나 도덕적(道德的)인 생활 모두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세계는 힘이 강한 者만이 사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공산주의(共産主義)의 운동관(運動觀)
공산주의는 물질(物質)을 `운동(運動)하는 물질(物質)'로서 파악하고 있다. 예컨대 엥겔스(F. Engels, 1820~1895)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운동(運動)은 물질의 존재양식(存在樣式)이다. 운동이 없는 물질은 언제 어디에도 없었고 또 있을 수 없다....... 운동(運動)이 없는 물질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물질이 없는 운동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12) 공산주의가 이와 같이 운동을 물질의 존재양식(存在樣式)이라고 주장한 것은 신(神)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함이다.
우주(宇宙)를 거대한 기계로서 파악한 뉴톤은 그 기계를 만들고 가동시킨 존재로서 신(神)을 인정했다. 물질과 운동을 분리해서 생각해 보면 운동은 물질 이외의 다른 존재(存在), 예컨대 신(神)과 같은 존재에 의해서 작동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그와 같은 형이상학(形而上學)的인 운동관을 방지하기 위해서, 운동은 물질이 본래부터 구비(具備)하고 있는 존재양식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통일사상에서 보면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사물은 존재하고 운동한다. 따라서 운동은 역시 만물의 존재양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운동은 한 개체에만 속해 있는 존재양식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現象)으로서, 수수작용 없이 만물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운동이 만물의 존재양식(存在樣式(樣相))인 것이다. 그런데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창조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작용이다. 따라서 운동은 창조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창조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과 외적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고 있고, 그 때문에 자전운동(自轉運動)과 공전운동(公轉運動)을 하게 된다.
공산주의는 운동이 물질의 존재양식이라고 하면서도 왜 물질이 그와 같은 존재양식을 갖는가, 그리고 그 운동의 형태는 어떠한가(直線運動인가 圓環運動)인가 등)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이, 다만 사물은 대립물(對立物)의 투쟁에 의해서 운동하고 있다고만 주장하고 있다.
4. 존재격위(存在格位)
모든 개체(個體)에는 반드시 각자의 존재위치(存在位置)가 주어져 있다. 개체에게 주어져 있는 위치를 존재격위(存在格位)라고 한다. 그리고 한 개체는 다른 개체와 더불어 주체와 대상의 관계, 즉 수수의 관계를 맺는데 이 때 주체와 대상의 격위에 차이가 생긴다.
(1) 연체(聯體)로 본 존재격위(存在格位)
그런데 한 개체는 개성진리체인 동시에 연체(聯體)이기 때문에 대상(對象)의 位置(대상격위)에 있으면서 동시에 주체(主體)의 位置(주체격위)에도 있게 된다. 그 결과 수많은 개체가 上下, 전후(前後), 좌우(左右)로 연결되면서 位置(격위)의 계열(系列)이 이루어진다. 이 위치의 계열이 질서이다. 이같은 주체격위와 대상격위의 계열, 즉 연 체의 계열은 원상에 있어서의 주체와 대상의 격위가 三차원의 공간(空間)의 세계인 피조세계에 전개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으나 그것들은 모두 연체이기 때문에, 격위의 차이를 통하여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일대(一大) 질서체계(秩序體系)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질서는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를 닮은 존재(存在)의 2단구조(構造)가 연속적, 단계적으로 확대되어서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연체는 또 이중목적체(二重目的體)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주는 一大 유기체이기도 하다. 이같은 유기체 질서의 최상위에 인간이 위치하고 있고 인간의 상위에 하나님이 위치한다.
(2) 종적질서(縱的秩序)와 횡적질서(橫的秩序)
그런데 우주의 질서에는 종적인 질서와 횡적인 질서가 있다. 우주의 종적질서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달(위성)과 지구(혹성)가 대상과 주체(主體)의 관계로 수수작용을 하고 있다. 또 지구는 태양과 수수작용을 하여 다른 혹성과 함께 태양계를 형성하고 있는 바, 이 때 지구는 대상이고 태양이 주체이다. 다음에 태양은 다른 많은 항성과 더불어 은하계의 중심에 있는 핵항성계와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은하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때 태양은 대상이고 은하계의 중심인 핵항성계(核恒星系)는 주체이다. 또 은하계는 다른 많은 은하계와 더불어 우주의 중심부와 수수작용을 하여 우주전체(宇宙全體)를 형성하고 있다. 그 때 은하계는 대상이고 우주의 중심부가 주체이다. 이러한 달(衛星), 지구(惑星), 태양(恒星), 핵항성계, 우주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계열이 우주(宇宙)의 종적(縱的)인 질서이다.
다음은 우주의 횡적질서(橫的秩序)의 예를 들어보자. 태양계를 보면 태양을 중심으로하여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등 아홉 개의 혹성이 횡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한 이들 혹성간의 배열이 태양계에 있어서의 횡적인 질서이다. 이러한 횡적질서가 다른 항성계(恒星系)에도 나타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3) 우주질서(宇宙秩序)와 가정질서(家庭秩序)
가정(家庭)도 본래는 우주와 같은 질서체계(秩序體系)를 이루는 것이 그 본연의 모습이다. 가정에는 손자, 자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라는 종적인 질서와, 부모를 중심한 자녀(子女)들인 형제자매의 서열(序列)로서 횡적인 질서가 있다.
통일사상에 의하면 구성요소(構成要素)로 볼 때 인간은 소우주(小宇宙)이며 우주의 축소체(縮小體)이다. 그리고 질서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정은 우주의 축소체이다. 그리고 우주는 가정의 확대형이다. 한 은하계 안에는 태양계와 같은 혹성계가 무수히 있다고 하며, 또 대우주에는 은하계가 또한 무수히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주는 무수한 천체가정(天體家庭)의 집합체(集合體)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주는 원만한 수수작용에 의해서 그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아홉 개의 혹성이 태양과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각각 일정한 궤도(軌道)를 돌면서 원반형(圓盤形)을 유지하고 있다. 은하계는 약 2천억 개로 추산되는 항성(恒星)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며, 이 항성들은 그 중심인 핵항성계(核恒星系)와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각각 일정한 궤도를 따라 돌면서 전체가 볼록렌즈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또 우주에는 약 2천억 개의 은하계가 있으며, 각각의 은하계는 역시 우주의 중심과 수수작용을 하면서 일정한 궤도를 따라 돎으로써 우주 전체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우주의 질서가 가정(家庭)에도 적용됨으로써, 가정도 본래는 각 격위(格位)間의 원만한 수수작용에 의해서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천체(天體) 상호간의 원만하고 조화로운 수수작용(천도(天道))에 의해서 우주의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듯이 가정에 있어서도 조화로운 수수작용의 법칙(法則) 즉 사랑의 도리(道理)에 의해서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 사랑의 도리가 바로 윤리이며 천도에 대응하는 가정의 규범이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 때문에 가정은 본래의 질서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가정윤리가 파탄됨으로써 불화가 일어나게 되었고 따라서 가정의 연장(延長)이요, 확대형인 사회에도 끊임없는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5. 우주(宇宙)의 법칙(法則)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法則)(진리)을 천도(天道)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주체와 대상의 원만한 수수작용을 말한다. 우주(宇宙)의 수수작용(授受作用)의 법칙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개의 특징(特徵) 또는 소법칙(小法則)이 있다.
(1) 상대성(相對性)의 법칙(法則)
모든 존재는 그 자체(自體) 내부(內部)에 주체와 대상이라는 상대적 요소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밖으로 다른 존재와도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상대성(相對性)이다. 이와 같은 상대성을 갖지 않으면 만물은 존재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
(2) 목적성(目的性)과 중심성(中心性)의 법칙(法則))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는 반드시 공동목적을 갖고 있으며(目的性), 그 목적을 중심으로(中心性) 수수작용을 하고 있다.
(3) 질서성(秩序性)과 위치성(位置性)의 법칙(法則)
모든 개체에는 각자가 존재하는 위치 즉 격위가 주어져 있으며(秩序性), 그러한 격위(位置性)에 의하여 일정한 질서가 유지된다.
(4) 조화성(調和性)의 법칙(法則)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원화성(圓和性)이며 조화(調和)的이어서(조화성(調和性)), 거기에는 대립이나 투쟁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그 곳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5) 개별성(個別性)과 關係性(의 法則)
모든 개체는 개성진리체이면서 동시에 연체(聯體)이다. 따라서 각 개체는 고유한 특성(개별성)을 지니면서 다른 개체와 일정한 關係(授受關係)를 가지고(關係性)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6)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과 發展性(의 法則)
모든 유기체(有機體)는 일생을 통하여 변치않는 본질(本質) 즉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성장과 더불어 변화하고 발전하는 면(面) 즉 발전성을 가지고 있다. 우주도 일종(一種)의 유기체로서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7) 원환운동성(圓環運動性)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대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하여 돌고 있으며, 시간적(時間的) 또는 공간적(空間的)으로 원환운동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주(宇宙)의 小법칙(法則)들은 로고스의 작용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미 원상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로고스는 법칙이면서도 심정을 터로 한 이성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그 로고스의 배후에는 사랑이 작용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를 로고스로 창조하실 때 심정과 사랑을 동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문선명 선생(文鮮明 先生)은 우주에는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사랑의 힘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우주의 법칙이 개인에게 적용되면 도덕이 되고, 가정에 적용되면 윤리가 된다. 즉 우주의 법칙과 가정의 윤리법칙은 대응(對應)관계(關係)에 있다. 따라서 가정을 확대한 것이 사회이므로 사회에도 천도(天道)에 대응하는 사회윤리가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우주의 법칙을 위반(違反)하면 개체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예컨대 태양계의 혹성(惑星) 中의 하나가 궤도(軌道)를 이탈하면 그 혹성은 자체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태양계에는 일대 異變이 일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정이나 사회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윤리법칙을 위반하면 파괴(破壞)와 혼란(混亂)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혼란된 사회를 구하기 위해서는 윤리법칙(法則)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緊要)한 과제이다.
그런데 종래의 종교나 사상(思想)에 근거한 윤리론(倫理論)은 논리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분석적(分析的)이요 이성的인 현대인에게는 설득력이 없으며, 오늘날은 옛부터 전해 내려온 윤리관이 대중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고 있다. 통일사상은 윤리법칙이 인간이 자의(恣意)로 만든 법칙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자연법칙)에 대응하는 필연적인 법칙임을 밝히고, 윤리와 도덕의 실천의 당위성(當爲性)을 가르치고 있다. 윤리와 도덕의 내용에 관해서는 가치론(價値論)이나 윤리론(倫理論)에서 구체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통일사상의 입장에서 우주법칙에 관한 공산주의(共産主義)의 견해를 검토해 보자. 공산주의의 우주관은 변증법적(辨證法的)인 우주관(宇宙觀)이므로 우주의 운동, 변화, 발전은 사물에 내재(內在)하는 모순(矛盾) 또는 대립물(對立物)의 투쟁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쟁(鬪爭), 즉 계급투쟁이 필요하다고 한다. 레닌은 철학(哲學)노트에서 대립물(對立物)의 통일(一致, 同一性, 균형)은 조건적, 일시적, 경과적, 상대적이다. 서로 배제(排除)하는 대립물의 투쟁은 발전, 운동이 절대적인 것처럼 절대적(絶對的)이다."13)라고 말하고 발전은 대립물의 `투쟁(鬪爭)'에 의해서이다." 라고까지 단언(斷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산주의는 대립물의 투쟁에 의해서 사물이 발전한다고 했으나 실제로 우주에는 그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없다. 우주는 오늘날까지 조화(調和)를 이루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과학자(科學者)가 우주를 관찰해 볼 때, 별의 폭발과 같은 현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부분적인 파괴현상일 뿐 결코 우주의 전체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생물체에 있어서 낡은 세포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가 출현(出現)하는 현상과 같은 것으로서, 새로운 별의 탄생을 위해서 낡은 별이 소실(消失)되는 과정인 것이다.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이므로 동물계에 한해서만은 대립물의 투쟁(鬪爭)이론이 맞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생길는지 모른다. 예컨대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는다. 공산주의는 이런 사실을 가지고 인간사회의 투쟁이론을 합리화하려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뱀과 개구리나, 고양이와 쥐의 경우는 서로 종(種)이 다른 동물끼리의 싸움이다. 분류학상(分類學上)으로 볼 때, 생물은 계문강목과속종(界?門?綱?目?科?屬?種)으로 분류된다. 고양이와 쥐의 경우, 목(目)에 있어서 고양이는 식육류(食肉類, 육신동물)에 속하고, 쥐는 설치류에 속한다. 고양이와 쥐는 목(目)에서부터 다른 것이다. 뱀과 개구리의 경우, 강(綱)에 있어서 뱀은 파충류에, 개구리는 양서류에 속한다. 뱀과 개구리는 강(綱)에서부터 다른 것이다.
즉 한 동물이 다른 동물을 죽이는 경우, 그 두 동물은 분류학상(分類學上) 최소한 종(種)의 단위가 다르다. 그런데 자연계에 있어서 같은 종에 속하는 동물들끼리는 싸우더라도 죽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지만 고양이끼리는 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지만 같은 뱀은 잡아먹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서 같은 종(種)에 속(屬)해 있으면서도 인간들끼리 서로 빼앗거나 죽이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계에서의 약육강식의 현상을 가지고 인간사회의 투쟁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사자의 집단사회내에 새로운 숫(雄)사자가 들어가면 그 집단의 두목과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보스(두목)를 결정하기 위한 싸움이며, 질서의 중심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다. 일단 강약(强弱)이 결정되면 약자는 바로 강자 앞에 굴복하고 싸움은 끝난다. 이러한 싸움은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따위의 투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와 같이 자연계에는 인간사회의 투쟁을 합리화하는 현상은 전혀 없다.
인간들끼리 서로 빼앗고 죽이는 행위는 인간이 타락(墮落)한 결과, 그 성향(性向)이 자기(自己)중심적(中心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면, 인간사회에서 투쟁은 볼 수 없게 될 것이며,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만물(萬物, 자연)의 주관주(主管主)가 되어서 자연계를 사랑으로 주관했을 것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가 말한 것처럼 자연계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모순(矛盾)의 법칙(法則)이나 대립물(對立物)의 투쟁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도리어 상대물(相對物)(주체(主體)와 대상(對象)) 간의 조화로운 수수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