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제11장 방법론 (方法論)
( Methodology )
방법론(methodology)이란 인간이 어떻게 해야 객관적(客觀的)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논(論)하는 부문으로서, 방법을 의미하는 영어의 method는 그리이스어(希臘語)의 meta(따라서)와 hodos(길)에서 유래된 말이다. 따라서 method(方法)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정(一定)한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古代) 그리스시대(時代) 이래 오늘날까지 많은 철학자들은 각각 특유한 방법론을 전개해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 왔다. 여기서는 우선 종래의 대표적인 방법론의 요점을 소개하고, 다음에 통일사상에 의한 방법론 즉 통일방법론을 제시(提示)한 다음, 종래의 방법론을 통일방법론의 입장에서 논평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가지 첨가하고자 하는 것은, 인식론이나 논리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종래의 방법론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혹은 학술적으로 소개코자 함이 아니요, 단지 종래의 방법론들이 지녔던 문제점들에 대하여, 통일방법론이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그 요점만을 소개하려 한다는 것이다.
一. 사적고찰(史的考察)
1.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운동(辨證法運動法)
헤겔에 의해서 변증법(辨證法)의 창시자라고 불려진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35?~475 B. C.)는, 우주의 근원적(根源的)인 물질(아르케)을 불(火)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항상 변화(變化)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만물(萬物, 자연)은 유전(流轉)한다고 함으로써 고정(固定)되고 부동(不動)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생성(生成)과 운동(運動)속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王이다라는 관점에서, 만물은 대립(對立)과 투쟁에 의해서 생성(生成) 변화(變化)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을 생성(生成), 변화(變化), 유전(流轉)의 측면을 다루었다는 점에 대해서, 헤겔은 그의 방법론을 변증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생성(生成) 변화(變化)속에서도 만물에게는 불변한 것이 있다고 했으며, 그것이 곧 법칙으로서 그는 이것을 로고스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만물은 투쟁을 통하여 조화(調和)가 생긴다고도 말했다.
이와 같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방법론은 자연의 본연의 존재방식과 자연의 발전에 관한 견해, 즉 사물의 동적(動的)인 측면을 다룬 방법론이기 때문에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方法論)을 운동법(運動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2. 제논의 변증법(辨證法, 靜止法)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과는 반대로 엘레아학파(學派)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540?~480 B. C.)는, 존재는 불생불명(不生不滅)이며, 불변부동(不變不動)이라고 하였다.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엘레아의 제논(Zenon, 490~430 B. C.)은 운동을 否定하고, 단지 정지(靜止)하고 있는 존재만이 있다는 것을 논증(論證)하려고 하였다.
물체(物體)는 움직이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은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論한 네 가지의 증명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아킬레스는 거북을 뒤좇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킬레스는 트로이전쟁(戰爭)에서 공로(功勞)를 세운 영웅으로서 대단히 빠른 발을 가지고 있으나, 결코 거북을 앞지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북이가 먼저 출발하여 일정(一定)한 지점에까지 나아간 후, 아킬레스가 그 뒤를 좇아갔다고 하자. 아킬레스가 거북이 있던 곳에 닿았을 때 거북은 이미 조금 앞으로 가있게 된다. 또 아킬레스가 다시 거기에 당도했을 때 거북은 또 조금 전진(前進)해 있게 된다. 따라서 항상 거북은 아킬레스보다 앞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증명(證明)은 날고 있는 화살은 정지(靜止)하고 있다고 하는 비시정지론(飛矢靜止論)이다. A지점에서 C지점을 향하여 날아가는 화살이 있다고 하자. 이 때 화살은 A와 C사이에 있는 무수한 B지점을 통과하게 되는데, B₁, B₂, B₃ 지점을 통과한다는 것은, 그 점에서 잠깐 정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A와 C간의 거리는 무수한 점의 연속이므로, 난다는 것은 정지의 연속(連續) 즉 정지의 영속(永續)이 된다. 따라서 화살은 운동하지 않고 정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논의 방법(方法)은,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할 때 그 주장에 어떠한 모순(矛盾)이 생기는가를 문답식으로 따짐으로써, 상대방의 주장의 오류를 폭로해 가는 대화술(對話術)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변증법(辨證法)의 창시자라고 불렀다. 운동을 부정(否定)하고 단지 정지하는 존재가 있을 뿐임을 증명하려고 한 것이 제논의 변증법(辨證法)이기 때문에, 그의 변증법을 정지법(靜止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3. 소크라테스의 변증법(辨證法; 對話法)
기원전(紀元前) 5세기의 후반, 민주정치(民主政治)가 발달한 아테네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정치(政治)上의 성공, 즉 출세를 위하여 변론술(辯論術)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청년들에게 변론술(辯論術)을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소피스트(Sophist)라고 불렀다.
초기(初期)의 희랍철학은 자연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으나, 소피스트들은 자연철학에서 視線을 돌려서 인간의 문제를 논하였다. 그런데 자연현상은 객관성(客觀性), 필연성(必然性)을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인간에 관한 문제는 모두가 상대적(相對的)이어서 주관에 따라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게 됨으로써 상대주의(相對主義)와 그 해결을 체념하는 회의주의(懷疑主義)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폴리스(polis)사회의 곳곳을 돌아다니던 소피스트들은, 가는 곳마다 가치평가의 기준이 다름을 목격하고 인간에 관한 한, 진리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주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르치는 변론술(辯論術)이 나중에는 어떻게 상대를 논파(論破)하느냐 하는 방법(方法)만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궤변(詭辯)까지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Sokrates, 470~399. B. C.)는 이러한 소피스트들이 사람들을 현혹(眩惑)시키고 있음을 개탄하고,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출세를 위한 기술적(技術的)인 지식이 아니라 참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덕(德)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덕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참다운 지(知)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터득하는데 있어서, 먼저 자신의 무지(無知)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겸허(謙虛)한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이 대화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할 때 대화는 특수한 사항으로부터 출발하여 일반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對話)를 통하여 진리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먼저 질문을 해오는 상대의 혼(魂)속에 잠자고 있는 진리를 대화로써 깨우쳐서, 그것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산파술(産婆術)이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진리탐구의 방법(변증법(辨證法))을 대화법(對話法; 問答法)이라고 한다.
4. 플라톤의 변증법(辨證法; 分割法)
플라톤(Platon, 427~347 B. C.)은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말한 덕(德)에 관한 참다운 知가 어떻게 해서 성립(成立)할 수 있는가를 논하였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사물로 하여금 사물되게 하는 非물질적(物質的)인 존재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것을 그는 이데아(idea) 또는 에이도스(eidos)라고 불렀다. 그리고 많은 이데아中에서 선(善)의 이데아를 최고의 것이라고 하였으며, 인간은 선(善)의 이데아를 직관(直觀)할 때 최고의 생활을 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참으로 실존(實存)하는 것은 이데아이며, 감각계(感覺界)는 이데아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데아에 관한 인식이야말로 참다운 知이며, 이러한 이데아에 관한 인식의 방법(方法)을 그는 변증법이라고 불렀다.
플라톤의 변증법은 이데아와 이데아의 관계를 결정하고, 선(善)의 이데아를 頂点으로 하는 이데아세계의 구조를 명백히 하고자 했다. 이데아의 인식(認識)에는 보편적인 유개념(類槪念)을 종개념(種槪念)으로 분할(분석)해 가는 위에서 아래로의 방향과, 개별적인 것을 종합(綜合)하면서 최고의 개념을 목표로 하는 아래에서 위로의 방향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그 중 종합(綜合)의 방식은 소크라테스의 변증법과 일치한다. 그러나 보통 플라톤의 변증법이란 분할(分割)의 방법(方法)을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사람과 사람의 대화에 의해서 참다운 지(知)가 얻어진다고 되어 있으나 플라톤의 변증법은 개념의 분류의 방법으로서, 사유(思惟)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사유자체(思惟自體)의 자문자답(自問自答)이었다.
5.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법(演繹法)
어떻게 해야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과제에 대한 이론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 C.)는 지식에 대한 학으로서, 즉 논리학으로서 체계화하였다. 오르가논(Organon)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그의 논리학은 올바른 사고에 의해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道具)로서, 그것은 여러 학문에의 예비학(豫備學)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참다운 지식은 논증(論證)에 의해야 한다. 그는 특수(特殊)에서 보편(普遍)으로 나아가는 귀납법(歸納法)도 인정했으나, 그것은 완전성을 결(缺, 결여하게)한다고 하면서, 보편에서 특수를 연역(演繹)하는 연역법(演繹法)이야 말로 확실한 지식을 부여한다고 하였다. 그 기본이 되는 형식이 삼단논법(三段論法)이다. 삼단논법(三段論法)의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①모든 인간은 죽는다(大前提)
②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小前提)
③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結論)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중세에 있어서 신학(神學)이나 철학(哲學)의 여러 명제(命題)를 연역적(演繹的)으로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중요시되었다. 그리고 약 2천년간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三段論法)은 거의 변경됨이 없이 널리 인정되어 왔던 것이다.
6. 베이컨의 귀납법(歸納法)
중세(中世)를 통하여 초월적인 존재(存在)로서 파악되어온 하나님은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 점차 그 초월성(超越性)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신(神)을 자연속에 내재하는 존재로서 파악하는 범신론적(汎神論的)인 자연철학이 생겨났다. 이러한 중세시대(中世時代)가 끝나고 근세(近世)가 시작되는 시기에 한 철학자가 출현하여 자연의 탐구(探究)를 어떻게 행할 것이냐 하는, 자연연구의 새로운 방법(方法)을 제시하였다. 그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었다. 베이컨에 의하면, 과거의 학문은 신(神)에게 몸을 바친 시녀(侍女)와 같이 불임(不姙)상태였다는 것이며, 그것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을 사용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논증(論證)을 위한 논리학이었지만,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타인(他人)을 설득할 수는 있어도 자연현상에서 새로운 진리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그리하여 새로운 진리를 찾아내는 논리(論理)로서 제시(提示)한 것이 그의 귀납법(歸納法)이며,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에 대항하여 자기의 논리학을 新오르가논(Novum Organum)이라고 명명(命名, 불렀다)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근거로 한 전통적인 학문은 다만 무용(無用)한 말의 논쟁(論爭)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베이컨은 확실한 지식(知識)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들이 빠지기 쉬운 편견(偏見)을 제거하여, 자연 그 자체를 직접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편견(偏見)에는 네 개의 우상(Idola)이 있다. 종족의 우상(Idola Tribus), 동굴의 우상(Idola Specus), 시장의 우상(Idola Fari),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 그것이다(인식론참조). 이와 같은 우상을 제거한 후, 순수한 정신으로 자연에 대하여 실험과 관찰(觀察)을 행하여, 거기에서 개개의 현상속에 숨어있는 공통적인 본질(本質)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컨 이전에도 귀납법은 있었지만, 이전의 귀납법(歸納法)은 소수의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일반적인 법칙을 이끌어 내려고 한 데에 대하여, 베이컨은 가능한 한 많은 事例를 수집하는 것, 반증(否定的事例)을 중시하는 것 등으로써, 확실한 지식을 터득하기 위한 참다운 귀납법(歸納法)의 제시를 시도했던 것이다.
7. 데카르트의 방법적회의(方法的懷疑)
르네상스시대 이후 자연과학의 눈부신 성과를 터로 하고 17세기의 철학은 기계적자연관(機械的自然觀)을 절대적인 진리로 생각하였으며, 이것과 모순(矛盾)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그리고 기계적자연관(機械的自然觀)을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기초(基礎)지으려 한 것이 합리론(合理論)이며, 그 대표적인 학자가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였다. 데카르트는 수학적방법(數學的方法)을 유일하고도 참다운 학문적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수학에 있어서와 같이 우선 누구에게나 명백한 직관적진리(直觀的眞理)를 구하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 새롭고도 확실한 진리를 연역적(演繹的)으로 전개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직관적진리(直觀的眞理)를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는 모든 지식의 원리가 되어야 할 절대 확실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의심(疑心)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疑心)해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아도 우리가 의심하면서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存在)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有名)한 명제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이 명제(命題)가 왜 아무 증명도 필요없는 확실한 명제이냐 하면, 그것은 명석(明晳; clear)하고 판명(判明; distinct)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명석 판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참이다라는 일반적인 진리의 기준을 도출해 낸 것이다.
데카르트의 회의(懷疑, 의심)는 회의(懷疑)를 위한 회의가 아니라 확실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회의였으며, 이것을 방법적회의(方法的懷疑)(methodical doubt)라고 한다. 데카르트는 명석 판명하게 직관(直觀)되는 公理에서 출발하여 개개의 명제를 증명해가는 수학적방법에 의하여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한 것이다.
8. 흄의 경험론
데카르트를 대표로 하는 합리론(合理論)에 대하여, 정신적인 것은 경험을 통하여 얻어진다는 자연법칙을 터로 하고 설명하려는 입장을 취한 것이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경험론이었다.
흄(David Hume, 1711~1776)은 여러 학(諸學)의 완전한 체계(體系)를 찾아내기 위하여 진리(眞理)를 확립하기 위한 새로운 方法으로서 심적현상(心的現象)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흄은 심적세계(心的世界)의 불변적인 자연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관계하는 모든 세계, 즉 여러 학의 근저(根底)를 밝혀내려고 하였다.
흄은 심적세계(心的世界)의 요소인 관념을 분석하였다. 그는 단순관념이 상상력의 연합작용에 의해 즉 유사연합(類似聯合), 접근연합, 인과성의 연합에 의해 복합관념(複合觀念)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 중에서 관념의 유사(類似)와 관념의 접근(接近)은 확실한 인식이지만 인과성은 주관적인 신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결과, 흄의 경험론은 나중에 경험과 관찰에 의한 귀납적 추리(歸納的 推理)로부터는 객관적인 지식이 얻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회의주의(懷疑主義)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일체의 형이상학(形而上學)을 부정(否定)함은 물론 자연과학까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9.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
합리주의철학(合理主義哲學)과 자연과학의 입장에서 출발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흄이 독단의 잠에서 나를 흔들어 깨웠다'고 말한 바와 같이, 흄의 인과성(因果性) 개념(槪念)의 비판을 계기로 하여, 인과성의 개념이 어떻게 해서 객관적(客觀的) 타당성(妥當性)을 가질 수 있는가를 문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2)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인과성의 개념이 흄이 말한 바와 같이 주관적인 신념에 그친다면, 인과율(因果律)은 당연히 객관적인 타당성을 잃게 되며, 따라서 인과율(因果律)을 중심으로 세워지고 있는 자연과학은, 객관적 타당성을 지닌 진리 체계여서는 안 되게 된다.
그리하여 칸트는 어떻게 해서 경험일반(經驗一般)이 가능한가 하는 것, 객관적 진리성은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가 하는 것을 문제로 삼았다. 이것을 명백히 하고자 한 것이 그의 선험적(先驗的; transzendental)방법이다.
인식(認識)이 모두 경험적인 것이라면, 흄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들은 결코 객관적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그리하여 객관적 진리성이 어떻게 얻어지는가를 추구한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우리의 주관속에 선천적(先天的; apriori)인 요소 내지 형식(形式)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칸트는 일절(一切)의 경험에 앞서,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선천적(先天的)인 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선천적형식에는 시간과 공간의 직관형식(直觀形式)과 순수오성개념(純粹悟性槪念, 카테고리)이었다. 그리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파악한다고 해서 인식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주관의 선천적형식(先天的形式)에 의해서 인식의 대상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0. 헤겔의 개념(槪念)변증법(辨證法)
칸트의 방법은 어떻게 해야 객관적인 진리의 인식이 가능한가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방법은 인식의 발전과정으로서의 변증법이며, 그것이 그대로 존재의 발전논리로서 전개되었다.
칸트는 객관적인 진리성(眞理性)을 보증하기 위하여 아프리오리(apriori)한 개념을 발견(發見)하였으나, 헤겔은 개념이 아프리오리하면서 자기를 초월하여 자기운동을 한다고 보았다. 즉 헤겔은 개념을 직접적으로 긍정(肯定)하는 입장에서, 그 개념과는 상반(相反)되는 규정(대립(對立)) 즉 부정(否定)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르렀으며, 그 모순(矛盾)되는 두 개의 규정을 지양(止揚; Aufheben)하여 종합(綜合) 통일하는 새로운 입장, 즉 부정(否定)의 부정(否定)의 입장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 긍정(肯定), 부정(否定), 부정(否定)의 부정(否定)의 세 개의 단계를 즉자(卽自; an sich), 대자(對自; for sich), 즉자대자(卽自對自; an und for sich)라고 하였다. 이 3단계는 正-反-合, 정립-반정립-종합(定立-反定立-綜合)이라고도 불리운다. 헤겔은 개념의 자기전개의 추진력이 되는 것을 모순(矛盾)으로 보았다. 그는 모순(矛盾)은 모든 운동과 생명성의 근본이다. 어떤 사물은 그 자신속에 모순을 지니고 있는 限에 있어서만 운동하며, 충동(衝動)과 활동성을 갖게 된다'고 말하였다. 그와 같이 모순을 추진력으로 하는 자기운동의 논리가 헤겔변증법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헤겔은 개념이 자기발전하여 이념에 이르고, 개념(理念)은 자기를 부정한 후, 외화(外化)하여 자연으로서 나타나고, 또 인간을 통하여 정신으로서 발전해 간다고 하였다. 따라서 헤겔의 변증법은 개념의 발전의 방법인 동시에 객관적세계의 발전의 방법이기도 하였다.
11.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
근대에 있어서 변증법을 발전시킨 것은 독일 관념론(觀念論)이며, 헤겔이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은 관념론 때문에 왜곡되었다고 하면서,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헤겔의 관념변증법을 逆立시켜서 유물론의 입장에서 변증법을 재구성하였다.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자연, 인간, 사회 그리고 사고의 일반적인 운동의 발전법칙에 관한 과학'이며, 자연과 사회발전의 방법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사고의 발전도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였다.
헤겔의 관념(觀念)변증법(辨證法)이나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도 다같이 正-反-合의 3단계의 전개과정으로서 이해되는 모순의 변증법이다. 모순(矛盾)이란 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를 배척(否定)하면서도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상태이지만, 헤겔의 변증법의 경우, 모순의 개념은 綜合(통일)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대하여,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있어서의 모순의 개념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타도, 절멸시키는 것과 같은 투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엥겔스에 의하면, 유물변증법의 기본법칙(基本法則)은 ①양(量)의 질(質)에의 전화(轉化)의 법칙 ②대립물(對立物)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對立物의 상호침투의 법칙) ③부정(否定)의 부정(否定)의 법칙의 세 가지이다. 제1(第一)의 법칙은, 질적(質的)인 변화는 양적(量的)인 변화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양적변화(量的變化)가 어느 일정(一定)한 단계에 도달하면 비약적(飛躍的)으로 질적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제2(第二)의 법칙은, 사물속에 있는 대립물이 한편으로는 서로 상대방을 필요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배척(排斥)하는 가운데, 다시 말하면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에 의해서 사물의 발전운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제3(第三)의 법칙은, 사물의 발전에 있어서 낡은 단계가 부정됨으로써 새로운 단계로 옮겨지고, 그것이 다시 부정됨으로써 제3의 단계로 이행하지만, 이 제3의 단계로의 이행(移行)은 높은 차원에 있어서의 처음 단계로의 복귀라고 한다(이것을 나선형(螺旋形)의 발전이라고 한다).
엥겔스는 이 세 가지 법칙을 제시(提示)함에 있어서 헤겔의 논리학(論理學)을 참조하였는데, 헤겔은 주로 제1법칙(第一法則)은 유론(有論)에서, 제2법칙(第二法則)은 본질론(本質論)에서, 제8법칙(第三法則)은 개념론(槪念論)에서 다루고 있다. 유물변증법의 세 가지 법칙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제2(第二)의 대립물(對立物)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이다. 여기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을 모순의 본질로 삼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통일보다도 투쟁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레닌은 대립물(對立物)의 통일(一致, 同一性, 均衡)은 조건적, 일시적, 경과적, 상대적이다. 그러나 서로 배척하는 대립물의 투쟁은 발전, 운동이 절대적인 것처럼 절대적이다' 라고 하였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발전은 대립물의 투쟁이다‘ 라고까지 하면서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12. 훗서얼의 현상학적방법(現象學的方法)
훗서얼(Edmund Husserl, 1859~1938)은 일체의 과학(科學)의 기초를 이루는 기초학(基礎學; Grundwissenshaft) 즉 제1철학(第一哲學)으로서 현상학(現象學; Phanomen -ologie)을 제창하였다.
현상학(現象學)은 과학(科學)의 이론을 구성하는 의식(意識) 그 자체, 인식을 수행(遂行)하는 의식 그 자체를 문제로 삼고 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cogito)라는 절대적 확실성을 출발점으로 하여, 종래의 철학의 근저(根底)에 숨어 있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독단을 배제하면서, 엄밀한 학으로서의 의식의 본질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일체의 선입관을 배제(排除)하면서 순수의식을 직관적으로 명백히 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사실(事實) 그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를 모토(표어)로 삼았다. 여기서 사실(事實)이란, 선입견이 첨가된 경험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한 사실적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서, 훗서얼의 현상학은 이 사실적(事實的)인 현상(現象)에서 사실적인 것을 배제(排除)하고 본질적인 현상을 직관(直觀)하는 단계를 거쳐서, 그 초월적(외적) 본질을 내재적 본질로 전환시킨 다음, 의식의 본질인 순수의식의 구조를 분석, 기술하고 있다.
우리들 앞에 가로 놓여져 있는 자연적 세계를, 자명(自明)한 것으로 보는 일상적인 태도를 자연적태도(自然的態度)(Naturliche Einstellung)라고 한다. 그러나 자연적 태도에는 뿌리깊은 습관성(習慣性)이나 선입관이 작용하고 있으므로, 자연적 태도에 의해서 인식되는 세계가 사실 그 자체의 세계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하여 자연적태도(自然的態度)에서 현상학적태도(現象學的態度)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형상적환원(形相的還元)과 선험적환원(先驗的還元)이라는 두 개의 단계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事實)의 세계에서 본질의 세계로 옮아가는 것을 훗서얼은형상적환원(形相的還元)(eidetischeReduktion)이라고 하였다. 그 때 행해지는 것이 자유변경(freie Variation)에 의한 본질직관(本質直觀)(Ideation)이다. 즉 존재하는 개개의 것을 자유로운 상상(想像)에 의해 변화시켜 보고, 그래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것이 직관(直觀)될 때, 그것이 곧 본질이다. 예컨대 꽃의 본질인 장미, 튤립, 꽃봉오리, 시들은 꽃 등에 관해서 검토하고, 그것들 중에서 불변(不變)한 것을 찾아냄으로써 얻어진다.
다음에 행해지는 것이 선험적환원(先驗的還元)(transzendentaleRuduktion)이다. 이것은 외계(外界)의 존재가 확실한가 확실치 아니한가에 관해서는 판단을 정지(停止)시킴으로써 행해진다. 그것은 외계의 존재를 부정(否定)한다든가 의심(疑心)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판단중지(判斷中止)(epoche), 또는 괄호 안에 집어넣음(Einklammern)을 행할 뿐이다.
그 때 괄호안에 들어가지 않고(배제(排除)되지 않고), 남는 것을 순수의식(純粹意識)(reines Bewusstsein), 또는 선험적의식(先驗的意識)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속에 나타나는 것이 순수현상(純粹現象)(reines Phanomen)이다. 이와 같은 순수현상을 파악하는 태도가 현상학적(現象學的) 태도이다.(그림 11-1)
순수의식의 일반적 구조를 연구해 보면, 순수의식은 지향작용(指向作用)인 노에시스(noesis)와 지향(指向)되는 대상인 노에마(noema)로 성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관계는 생각하는 것과 생각되어지는 것의 관계라 해도 좋다. 이와 같이 현상학(現象學)은 순수의식의 내재적 본질(內在的本質) 즉 순수현상을 충실히 기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13. 분석철학(分析哲學)의 언어분석(言語分析)
현대의 구미(歐美)에서 철학의 주류(主流)의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 분석철학이다. 분석철학(分析哲學)이란 일반적으로 언어구조의 논리적인 분석에 철학의 주요한 임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이것을, 초기의 논리실증주의(論理實證主義; logical positivism)와 후기의 일상언어학파(日常言語學派; ordinary language school)의 두 입장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세계는 구극(究極)의 논리적 단위(單位)인 원자적 사실(事實)의 집합이라고 하는, 논리적원자론(論理的原子)論; logical atomism)을 주창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과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의 영향을 받은, 빈의 철학자 슈릭(Moritz Schlick, 1882~1936), 카르납(Rudolf Carnap, 1891~1970)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논리실증주의(論理實證主義)(별명: 빈학파)이다.
논리실증주의(論理實證主義)는 경험적 지각(知覺)에 의해서 검증(檢證)되는 것만이 올바른 지식(知識)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실에 대한 연구는 모두 과학이 행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의 사명(使命)은 언어의 논리적 분석을 통하여 일상의 언어(言語表現)이 가지고 있는 애매성을 제거하는, 그리고 종래의 언어를 버리고, 모든 과학에 공통된 하나의 이상적(理想的)인 人工언어의 확립을 목표로 삼았다. 그것은 물리학이 사용하는 수학적언어(數學的言語), 물리학 언어로서 그와 같은 이상언어(理想言語)에 의하여 여러 과학의 통일을 꾀하려 하였다. 논리실증주의의 기치(旗幟)는 反형이상학(形而上學), 언어와 논리의 분석, 과학주의(科學主義) 등이었다.
그런데 과학적 지식마저도 검증되지 않은 명제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사실(事實)과, 논리실증주의의 주장 자체가 하나의 도그마라는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논리실증주의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어(George Edward Moore, 1873~1958), 라일(GilbertRyle, 1900~ )을 중심으로 일상언어학파(言語學派)가 성립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상언어학파(言語學派)도, 철학의 임무는 언어(言語)의 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적(理想的)인 인공언어의 구성을 단념하고 일상언어에 입각(立脚)하여 개념의 의미를 밝히고, 논리구조를 찾아내는 것을 그 임무(任務)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어서 反형이상학적태도(形而上學的態度)도 완화(緩和)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