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 제7장 예술론
七. 예술(藝術)의 통일성(統一性)
다음은 예술의 통일성(統一性)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예술활동에는 몇 가지의 상대적인 두 측면(요소(要素))이 있다. 예컨대 상기(上記)의 창작(創作)과 감상(鑑賞)을 위시해서 내용과 형식, 보편성과 개별성, 영원과 순간 등의 각각(各各)의 통일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대적(相對的)인 측면(요소)은 본래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의 예술활동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상대적인 요소를 분리하거나 한편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통일예술론에서는 이들의 상대적측면(相對的側面)의 통일성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1) 창작(創作)과 감상(鑑賞)의 통일
보통 창작은 예술가가 하고, 감상은 일반 사람들이 한다는 식으로 분리(分離)해서 생각해 왔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보면 양자는 주관활동(主管活動)의 두 가지 계기에 불과하다. 만물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인식과 실천이라는 상대적인 두 측면이 필요한데, 정적기능(情的機能)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인식과 실천이 바로 예술에 있어서의 감상과 창작에 해당한다. 인식과 실천은 각각 주체(人間)와 대상(萬物, 자연)의 수수작용의 두 가지 회로(回路)의 일방(一方)을 형성하는 것으로서, 인식이 없는 실천은 있을 수 없고, 실천이 없는 인식도 있을 수 없다. 창작과 감상에 있어서도 창작이 없는 감상은 있을 수 없고 감상이 없는 창작 또한 있을 수 없다.
예술가는 창작을 하면서 자기의 작품을 감상한다. 또 감상자도 작품을 감상하면서 창작을 하게 된다. 감상에 있어서의 창작이란, 앞에서 말한 주관작용에 의한 부가창조(附加創造)를 말한다.
(2) 내용과 형식(形式)의 통일
오늘날까지 형식을 중시(重視)하는 고전주의(古典主義)와 이러한 형식을 무시하고 내용을 중시하는 유파(流派)가 있었으나, 예술작품에 있어서 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의 관계이므로 본래는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모티브, 목적, 주제, 구상 등의 성상적인 내용과 소재를 사용하여 내용을 작품으로 표현할 때, 형식이 잘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의 한 미학자(美學者)는 형식(形式)이란 실은 내용의 형식이며 내용이란 다름 아닌 형식의 내용이다'17)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이것은 바로 내용과 형식은 통일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3) 보편성(普遍性)과 개별성(個別性)의 통일
모든 피조물(被造物)은 보편상과 개별상이 통일되어 있는 것처럼 예술에도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이 나타난다. 먼저 예술가 자신이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이다. 예술가는 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그는 일정한 유파(流派)에 속하거나 일정한 지역적(地域的), 시대적(時代的)으로 공통된 창작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개별성(個別性)이고 후자는 보편성(普遍性)이다.
이와 같이 예술가 자신이 보편성과 개별성을 통일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도 필연적으로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로서 나타내게 된다. 즉 작품에는 개별적인 미(美)와 보편적인 미(美)가 통일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문화에 있어서도 보편성과 개별성이 통일되어 나타난다. 즉 어떤 지역의 문화는 그 지역의 특성을 지니면서 그 문화가 속해 있는 보다 넓은 지역의 문화와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한국의 석굴암(石窟庵)의 불상은 신라 문화의 대표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 중에는 그리스예술과 불교문화를 융합(融合)시킨 국제적인 간다라미술(美術)의 요소가 함께 포함되어 있음도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즉 석굴암의 불상(佛像)은 민족적인 요소(신라예술)와 초민족적인 요소(간다라美術)의 통일, 즉 개별성과 보편성의 통일이다.
여기에서 민족문하(民族文化)와 통일문화와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각 민족은 각각 전통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는데, 앞으로 통일문화가 형성되는데 있어서 전통적인 민족문화는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예술의 당파성(黨派性)과 상부구조론(上部構造論)을 주장하던 마르크스주의 예술론은 전통적인 민족문화를 무시하였으나 통일주의(統一主義)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통일주의는 각 민족의 민족문화를 보존하면서 통일문화를 형성한다. 즉 개성(個性)이 다른 민족문화의 정수(精髓)를 보존하면서 한층 더 차원 높은, 보편적인 종교와 예술로써 통일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4) 영원(永遠)과 순간(瞬間)의 통일
모든 피조물은 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 靜的四位基臺)와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 動的四位基臺)의 통일체이므로 불변과 변화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의 불변은 영원을 뜻하며, 변화는 순간 순간의 변화이기 때문에 바로 순간을 뜻한다. 따라서 피조물이 불변과 변화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말은, 바로 피조물이 영원과 순간의 통일을 이루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에 있어서도 영원적인 요소와 순간적인 요소가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밀레의 만종(晩鐘)에는 교회와 기도하는 농부와 그의 아내, 시골풍경 등이 그려져 있는데, 여기에서도 영원적인 요소와 순간적인 요소의 통일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나 기도하는 모습 등은 시대를 초월한 영원에 속하는 것이지만, 시골의 풍경이나 부부가 입고 있는 의복 등은 그 시대 즉 순간에 속하는 것들이다.
또 하나의 예로서 수반(水盤)에 꽂혀 있는 꽃을 들 수 있다. 수반에 꽂혀 있는 꽃 그 자체는 옛날부터 꽂혀온 것이지만, 꽃을 꽂는 방법(方法)이나 수반(水盤)은 시대마다 특유하다. 따라서 꽃꽂이에도 영원과 순간의 통일이 나타나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도 이와 같이 영원속의 순간 혹은 순간속의 영원을 느끼면서 감상한다면 미(美)는 한층 돋보일 것이다.
八. 예술(藝術)과 윤리
최근(最近)에 이르러 예술의 저속화(低俗化)가 자주 지적된다. 이것은 예술과 윤리의 관계가 문제가 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예술은 만물(萬物, 자연)주관(主管)의 한 형식이다. 본래 인간은 소생, 장성, 완성이라는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완성한 후에 만물을 주관 하게 되어 있다. 완성이란 사랑의 완성, 인격(人格)의 완성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은 먼저 사랑의 인간, 즉 윤리人이 된 후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예술가는 동시에 윤리人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랑과 미(美)의 관계에서 윤리와 예술의 관계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사랑은 주체가 대상에게 주는 정적(情的)인 힘이고, 미(美)는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받는 정적(情的)인 자극이다. 따라서 사랑과 미(美)는 표리일체(表裏一體; 겉과 속이 일체가 되는 것)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취급하는 윤리와 미(美)를 취급하는 예술은 불가분(不可分)의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참다운 미(美)는 참다운 사랑을 기초(基礎)로 하여 성립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예술가들은 그와 같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예술가들도 윤리성(倫理性)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고한 철학적(哲學的) 근거(根據)가 예술가들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 특히 문예작가(文藝作家)들은 사랑을 테마로 삼아 작품활동을 해왔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랑은 타락(墮落)한 세계의 비원리적인 사랑이었다.
예술지상주의자(藝術至上主義者)로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O. Wilde, 1854~1900)는 예술상(藝術上)의 탐미주의(耽美主義)를 주창하면서 동성애(同性愛)로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실의(失意)와 궁핍(窮乏) 속에서 지내다가 일생을 마쳤다. 또 낭만주의(浪漫主義) 시인인 바이런(G. G. Byron, 1788~1824)도 방탕한 여성편력(女性遍歷)을 계속하면서 창작하고, 유랑(流浪) 생활을 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다름 아닌 그들의 타락한 사랑을 표현하거나 혹은 그 고뇌(苦惱)를 그린 것이다.
한편 참사랑을 표현한 작가도 있었다. 톨스토이(L. N. Tolstoi, 1828~1910)가 그러하다. 그는 러시아의 타락한 상류사회(上流社會)의 생활상을 폭로하면서 참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즉 그의 작풍(作風)은 한편에서는 현실을 묘사하는 리얼리즘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理想主義)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톨스토이와 같이 참사랑을 표현한 작품을 남기거나, 참다운 사랑을 추구하면서 창작활동(創作活動)을 하고 있는 예술가는 그리 흔치 않은 것이다.
八. 예술(藝術)과 윤리
최근(最近)에 이르러 예술의 저속화(低俗化)가 자주 지적된다. 이것은 예술과 윤리의 관계가 문제가 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예술은 만물(萬物, 자연)주관(主管)의 한 형식이다. 본래 인간은 소생, 장성, 완성이라는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완성한 후에 만물을 주관 하게 되어 있다. 완성이란 사랑의 완성, 인격(人格)의 완성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은 먼저 사랑의 인간, 즉 윤리人이 된 후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예술가는 동시에 윤리人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랑과 미(美)의 관계에서 윤리와 예술의 관계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사랑은 주체가 대상에게 주는 정적(情的)인 힘이고, 미(美)는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받는 정적(情的)인 자극이다. 따라서 사랑과 미(美)는 표리일체(表裏一體; 겉과 속이 일체가 되는 것)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취급하는 윤리와 미(美)를 취급하는 예술은 불가분(不可分)의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참다운 미(美)는 참다운 사랑을 기초(基礎)로 하여 성립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예술가들은 그와 같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예술가들도 윤리성(倫理性)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고한 철학적(哲學的) 근거(根據)가 예술가들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 특히 문예작가(文藝作家)들은 사랑을 테마로 삼아 작품활동을 해왔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랑은 타락(墮落)한 세계의 비원리적인 사랑이었다.
예술지상주의자(藝術至上主義者)로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O. Wilde, 1854~1900)는 예술상(藝術上)의 탐미주의(耽美主義)를 주창하면서 동성애(同性愛)로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실의(失意)와 궁핍(窮乏) 속에서 지내다가 일생을 마쳤다. 또 낭만주의(浪漫主義) 시인인 바이런(G. G. Byron, 1788~1824)도 방탕한 여성편력(女性遍歷)을 계속하면서 창작하고, 유랑(流浪) 생활을 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다름 아닌 그들의 타락한 사랑을 표현하거나 혹은 그 고뇌(苦惱)를 그린 것이다.
한편 참사랑을 표현한 작가도 있었다. 톨스토이(L. N. Tolstoi, 1828~1910)가 그러하다. 그는 러시아의 타락한 상류사회(上流社會)의 생활상을 폭로하면서 참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즉 그의 작풍(作風)은 한편에서는 현실을 묘사하는 리얼리즘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理想主義)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톨스토이와 같이 참사랑을 표현한 작품을 남기거나, 참다운 사랑을 추구하면서 창작활동(創作活動)을 하고 있는 예술가는 그리 흔치 않은 것이다.
八. 예술(藝術)과 윤리
최근(最近)에 이르러 예술의 저속화(低俗化)가 자주 지적된다. 이것은 예술과 윤리의 관계가 문제가 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예술은 만물(萬物, 자연)주관(主管)의 한 형식이다. 본래 인간은 소생, 장성, 완성이라는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완성한 후에 만물을 주관 하게 되어 있다. 완성이란 사랑의 완성, 인격(人格)의 완성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은 먼저 사랑의 인간, 즉 윤리人이 된 후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예술가는 동시에 윤리人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랑과 미(美)의 관계에서 윤리와 예술의 관계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사랑은 주체가 대상에게 주는 정적(情的)인 힘이고, 미(美)는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받는 정적(情的)인 자극이다. 따라서 사랑과 미(美)는 표리일체(表裏一體; 겉과 속이 일체가 되는 것)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취급하는 윤리와 미(美)를 취급하는 예술은 불가분(不可分)의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참다운 미(美)는 참다운 사랑을 기초(基礎)로 하여 성립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예술가들은 그와 같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예술가들도 윤리성(倫理性)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고한 철학적(哲學的) 근거(根據)가 예술가들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 특히 문예작가(文藝作家)들은 사랑을 테마로 삼아 작품활동을 해왔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랑은 타락(墮落)한 세계의 비원리적인 사랑이었다.
예술지상주의자(藝術至上主義者)로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O. Wilde, 1854~1900)는 예술상(藝術上)의 탐미주의(耽美主義)를 주창하면서 동성애(同性愛)로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실의(失意)와 궁핍(窮乏) 속에서 지내다가 일생을 마쳤다. 또 낭만주의(浪漫主義) 시인인 바이런(G. G. Byron, 1788~1824)도 방탕한 여성편력(女性遍歷)을 계속하면서 창작하고, 유랑(流浪) 생활을 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다름 아닌 그들의 타락한 사랑을 표현하거나 혹은 그 고뇌(苦惱)를 그린 것이다.
한편 참사랑을 표현한 작가도 있었다. 톨스토이(L. N. Tolstoi, 1828~1910)가 그러하다. 그는 러시아의 타락한 상류사회(上流社會)의 생활상을 폭로하면서 참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즉 그의 작풍(作風)은 한편에서는 현실을 묘사하는 리얼리즘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理想主義)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톨스토이와 같이 참사랑을 표현한 작품을 남기거나, 참다운 사랑을 추구하면서 창작활동(創作活動)을 하고 있는 예술가는 그리 흔치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