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鮮明 評傳
제6장 경제와 기술로 세계 발전에 이바지하다
6. 남북통일에 기여하는 평화자동차
1991년 문선명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를 평화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여러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하나가 금강산 개발과 자동차 회사의 설립이었다.
하지만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 과정에서 그 일은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통일교의 대북사업은 '이제 틀렸다'고 말했지만 문선명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1998년 1월에 북한과의 사업이 다시 재개되었다.
문선명이 역점을 둔 것은 자동차산업이었다. 자동차는 우리의 기술력이 이미 세계 수준에 이르렀고 북한에도 자동차는 꼭 필요한 것이었기에 기술평준화와 남북평화를 이루기 위해 시작했다.
그리하여 1999년 4월 8일 남포에 북한기업과 합영으로 평화자동차회사를 7:3의 비율로 세웠다. 자본금은 435억 원이고 본사는 서울 강남에 있지만 생산공장은 남포에 있다. 남포는 북한 제2의 도시이며 가장 큰 항구도시다.
남포에 공장이 준공되던 날에는 북한의 김용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참여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 사람들은 "정말 북한에 공장을 세울 수 있을까?", "북한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팔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으나 공장은 완공되었고 그곳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들은 북한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평화자동차가 생산하는 자동차는 휘파람, 뻐꾸기, 뻐꾸기 4WD, 준마, 삼천리 등이다.
평화자동차는 자동차만을 생산하는 단일 기업이 아니라 평화항공 여행사와 평화무역을 계열사로 거느린 대기업이다. 평화자동차 외에도 보통강호텔, 자동차새기술연구소, 연유공급소, 세계평화센터 등도 함께 운영했다.
평화자동차의 사훈은 '남다른 발상, 남 먼저 행동'이며, 표어는 '남북을 잇는 기업, 백두에서 한라까지, 민족이 힘 모아 세계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자동차는 이익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라 남북통일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곳이다.
보통강(普通江)호텔은 그 뿌리가 '보통강려관'으로 평천구역의 안산동에 있으며 9층 건물로 1973년에 완공되었다. 1993년 금강산국제그룹이 경영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세계평화센터는 1997년 공사에 들어가 10년 만인 2007년 8월에 완공된 초현대식 국제컨벤션센터로 평화의 전당이다. 지상 6층 규모의 세계평화센터는 800석의 연회장도 겸비돼 있어 각종 국제회의를 비롯한 문화・학술・ 종교 세미나, 남북 화상상봉 장소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평화지동차는 남북화해에도큰 역할을 하고 있다. 1999년 2월 평화그룹이 설립된 후 2000년 5월에 평화무역을 세웠다. 그해에 북한의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예술단 100명이 서울을 방문해 공연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또 분단 최초로 세계 및 남부 여자프로권투대회, 여자프로암골프대회 등을 열어 남북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힘을 기울였다.
2003년에는 북한 최초로 평양에 상업광고판을 설치했다. 이 광고판은 이제까지 북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큰 변화였다. 이 광고판을 세우는 데도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5년 동안이나 북한 고위 관리들과 협의해 광고판을 세울 수 있었다. 정치국 구호를 대신해 등장한 평화자동차 광고판은 북한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 북한 신문에도 광고를 실었고 TV에서 광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