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鮮明 評傳
제6장 경제와 기술로 세계 발전에 이바지하다
4. 돈이 목적이 아니라 기술평준화가 목적
문선명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 피땀으로 일구어낸 과학기술을 후진국의 발전을 위해 조건없이 전수해 주었다.
일본 유수의 대학 출신들과 독일 기술자들을 통일중공업 연구실과 기술부에 배치해 기술을 배우게 했으며 아프리카의 자이르 등에서 엔지니어를 초청해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또 통일산업의 기술자를 1년에 1/3씩 교체시켰다. 대개의 경우 기술을 보유한 핵심 인력은 특별히 보호하는 것이 통례지만 문선명은 우수한 핵심 인력들을 일부러 밖으로 내보내 기술이 전파되도록 했다.
이로 인해 통일중공업에서 기술을 배워 완성차 업계로 이직하는 기술자들이 많이 생겨났고 통일중공업은 인재양성소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같은 방침으로 한국은 자동차공업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문선명은 세계 인구의 1/4이나 되는 중국을 빼고는 아무도 세계평화를 운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중국을 위해서도 많은 정성을 들였다.
등소평(登小平) 정부로부터 후이저우(恵州) 지역에 3,200만 평의 토지를 7년 분할 지불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조건으로 자동차사업 허가를 받았다.
판다자동차 공업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1차에만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본래 후이저우의 땅은 문화혁명 때 도주하다가 3층에서 떨어져 장애인이 된 등소평의 장남 등박방(登様方)을 위해 장애인 휴양소를 만들기 위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등소평에게 부탁하여 판다자동차 부지로 허가를 받았다. 1989년 판다자동차 공업 도시 기공식을 갖는 한편 칭다오(青島)에 50억 원을 투자해 트랜스미션 부품공장을 건설하는 등 중국을 위한 본격적 투자에 나섰다.
한국티타늄을 통해 중국에 기술도 전수했다. 일본으로부터 서러움을 받으며 고가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 확보한 기술이었지만 중국 기술자들을 호텔에 재우고 양복도 해 입히면서 티타늄 공장의 주요 시설은 물론 세부 도면까지 제공해 실질적인 기술을 지도해주었다. 사람들은 힘겹게 얻은 기술을 왜 중국에 나누어주느냐고 반대했다. 문선명은 이렇게 대답했다.
"기술평준화, 정치평준화, 경제평준화를 안 하기 위해서 선진국이 후진국에 가르쳐주지 않고 오히려 지금까지 착취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것이지 미국의 것이 아니고 독일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빨리 평준화시켜야 됩니다. 중국에 그런 평준화를 시켰다고 해 보세요. 그래야 지상천국이 빨리 이루어집니다."
기술평준화는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이어졌다. 1991년 12월 김일성과의 만남에서 남포에 자동차공장을 건설할 것을 약속했다. 문선명은 북한을 살리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기술들을 모두 평화자동차를 통해 북한에 전수해 주었다. 평화자동차 사업을 계기로 북한과의 신뢰 속에 잦은 왕래와 상호협력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아가 1971년부터 세계에서 제일 큰 비행기 제조회사를 인수하겠다고 공언했다. 항공기술은 고도의 정밀성과 최첨단 전자기술이 요구되는 종합 첨단산업일 뿐만 아니라 방위 및 산업기술이 총망라되어 있어 국가적 기밀에 해당하는 고급 기술이다.
1982년 6월, 3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통일산업의 기술진들을 투입해 국산 경비행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때는 항공기 대부분의 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개발에 착수한 지 1년만인 1983년 5월 마침내 순수 국내기술로만 완성된 비행기 3대를 개발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경비행기 개발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김포에 대규모 항공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술평준화의 결실체인 '한국타임즈항공'을 세웠다. 경기도 김포에서 열린 기공식에서 문선명은 항공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난에 시달리던 조국 한국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고 나아가 온 세계를 위하여 베풀어 줄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튼튼한 공업기술 기반도 있어야 합니다.
공업기술 중에서도 최고의 정밀도가 요구되는 항공기술을 확립해 한국이 21세기 기계산업, 특히 항공우주산업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한국타임즈항공을 설립하고 세계 최고의 헬기 기술을 자랑하는 시코르스키와 기술협력을 체결했습니다.
앞으로 헬기산업의 새 지평을 열고 한국의 대중교통에 혁신을 가져옴은 물론 국토 활용의 효용을 높여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업이 차츰 발전에 들어선 1970년대 중반부터는 더 나은 과학기술에 보유하기 위해 기술의 최강국인 독일로 기술자들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1978년 뒤셀도르프 지역에 '유럽경제기술정보센터'를 세워 기계공업의 실태와 산업을 파악하고 기술정보를 수집했다. 3년에 걸친 검토 끝에 1981년부터 8년 동안 독일기업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그때 인수한 회사들은 반도르(Wanderer), 하일겐슈태드(Heyligenstaed), 혼스백(Hornsberg) 등 여러 곳에 달했다.
이 같은 기반 위에 1981년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 기술평준화를 주창했다. 문선명은 이 대회에서 하나님에게는 선진국이 필요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선진국이 과학기술을 토대로 약소민족을 착취해왔던 역사를 반성하고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후진국에 이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기술은 남미에, 유럽의 공업기술은 아프리카에 이전할 것을 주창한 것이다.
이처럼 기술평준화는 국경을 넘어 세계 여러 곳으로 퍼졌고 분야도 무척 다양해졌다. 문선명은 기술 산업을 독점해 강대국들이 세계를 점령해왔던 역사를 끝내려 했다.
몇몇 기업은 경영권이 넘어갔지만 문선명은 한 번도 아깝다거나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뿌린 기업의 열매들이 오늘날 한국과 세계에서 풍성하게 맺히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