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鮮明 評傳
제5장 길고도 처절했던 공산주의와의 투쟁
3. 한반도는 세계평화의 출발점이다
한반도는 우리의 뜻과 관계없이 분단국가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한반도를 통일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두 동강 난 조국을 이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한반도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갈등뿐만 아니라 동서 문화의 갈등까지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갈등 해소는 세계평화와 직결되며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첫 단추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난 후 문선명은 1991년이 넘어가기 전에 김일성 주석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다. 어려운 과정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북한 당국을 설득하자 마침내 1991년 11월 30일, 김일성이 문선명 부부를 초청했다.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급하게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중국 정부가 내준 베이징공항의 귀빈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북한 대표가 나타나 공식 초청문서를 내놓았다. 초청장에는 평양의 관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통일교회의 문선명과 영부인, 그리고 수행원 일행을 공화국에 초청합니다. 공화국은 재북 기간 중 그 신원을 보장하겠습니다. 1991년 11월 30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무원 부총리 김달현." ㅡ「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p286.
문선명 일행은 김일성이 보낸 조선민항 특별기 JS215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황해를 건너 신의주로 올라가 고향인 정주 상공을 지나 평양으로 갔다. 평양 순안공항에는 48년 전에 헤어진 가족들이 나와 있었다.
꽃처럼 어여쁘던 동생들이 초로의 할머니가 되어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일흔 살이 넘은 누님도 어깨를 붙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문선명은 마음속으로 폭포 같은 눈물을 쏟아냈을 뿐 끝내 울지 않았다. 그날 저녁 평양 모란관초대소에서 '북한 방문 만찬사'를 했다.
"40년 만에 평양에 왔습니다. 저 맑고 푸른 대동강 물이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고 반겨주는 듯했습니다. 본인은 북한의 2천만 동포를 정말 사랑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우리는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역사적 형제자매입니다. 가족과 상봉하는 순간 본인은 기쁨과 동시에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통일은 민족의 숙명이요, 우리 시대의 과제입니다. 우리 시대에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선조와 후손들 앞에 영원히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7천만 동포가 대화와 화해로 대동단결해 이번 상봉을 계기로 만난을 극복하고 통일의 그날로 약진해야 하겠습니다. 본인은 조국통일을 위해 신명을 바칠 각오가 돼 있는 사람입니다. 조국통일을 위해 우리 모두가 총진군할 것을 맹세합시다."
다음 날 평생의 습관대로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했다. 만일 영빈관에 감시시설이 있었다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울부짖는 그 기도가 모두 녹화되었을 것이다.
이어 평양 시내도 둘러보고 금강산도 구경 했으며 6일째 되던 날은 헬리콥터를 타고 고향으로 갔다. 문선명은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꽃을 바치고 흰 눈이 내려앉은 어머니의 무덤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문선명이 본래 북한에 가려 한 이유는 고향에 가고 싶어서도 아니고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김일성을 만나 조국의 장래를 놓고 담판을 지으려 간 것이었다.
그런데 6일이 지나도록 김일성을 만나게 해준다는 아무런 언질도 없다가 7일째가 되어서야 만났다. 함경남도 마전에 있는 주석공관에 들어서자 김일성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았다.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사냥이며 낚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갑자기 할 말이 너무 많아져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문선명이 일주일의 일정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자마자 연형묵 총리를 수반으로 한 북한 대표단이 서울에 왔으며, 연 총리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조인했다.
문선명은 북한을 내 고향, 내 형제의 집으로 여기고 찾아갔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주려고 간 것이었다.
김일성을 만나고 온 후 북한에서 평화자동차공장을 비롯해 보통강호텔, 세계평화센터 등을 운영했다. 이런 일들은 남북교류와 통일을 위한 평화활동들이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사업이 아니었다.
문선명의 방북은 뚜렷한 결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평화자동차 등의 기업을 통해 남북화해 조성에 일정한 몫을 했으며, 리틀엔젤스 공연을 계기로 문화 교류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