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날 (천일국 훈독경 제 2 권 제 14 일)

훈독왕 | 20190420105110

천일국 훈독경 제 2 권 제 14 일


첨부파일 16 훈독경 제2권 14일 새로운 날 1.mp3


새로운 (훈독본)


날짜 : 1960. 2. 7()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아담 해와를 대한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던  순간은 새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만물을 지어놓은  에덴새로운 만물과 더불어 영원복락을 향유해야 할 주인공인 아담 해와를 세워놓고 새로운 심정적인 이념을 품고 바라보시던 하나님한테는 어느 한 시간 귀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아담 해와가 거동하던 그 한 순간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하고 귀한 인연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담 해와를 위하여 지으신 만물을 품고 계시던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어떠한  날을 고대하고 그리워하셨느냐하나님이 바라시던 것은 아담 해와를 통하여 찾아 이루고자 하시던  날이었습니다


 날이야말로 만상(萬象)이 즐거워할 수 있었던 날이요그 날이야말로 하나님이 창조역사를 끝내 놓고 기뻐하실 수 있었고 최고의 웃음을 웃으실 수 있었던 날이요최고의 춤을 출 수 있었던 날이요천지가 생겨난 이후에 비로소 최고의 자유와 행복에 잠기어 만상이 뒤넘이치면서 화동(和動)할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타락이라는 슬픈  장면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되어 버린것입니다타락이라는 것이 새로운 만물을 하늘이 세운 법도에서 끊어놓고새로운 사람도 하나님의 법도에서 끊어놓고새로운 천지도 그 법도에서 끊어놓고새로운 하나님의 이념도 끊어놓았다는 것은 슬픈 사실입니다(8-267)


인간의 타락과 새로운 한날을 맞기 위한 역사


하나님은 타락된 인류를 버릴  없는 인연을 가지고 계십니다영원한 이념을 중심삼고 인간을 지으신 원리적인 내용이 있는 연고로 타락된 인류를 버릴래야 버리지 못한 채 이 날 이 시간까지 붙들고 나오십니다.


흔히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합니다모든 만물은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요이 세계도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오늘날 인간이 새로운 무엇을 갖고 있다고 자랑하더라도제아무리 인간적인 권한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타락세계의 종의 신세를 면치 못한 자리에 있습니다다시 말하면타락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이념의 세계와 새로운 이념의 동산과 새로운 이념의 심정을 가진 사람과 만물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새로운 날을 소망하면서 죽어갔습니다하나님도 우리에게 약속하시기를 끝날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움직임을  때도 오늘의 나를 거부하고 새로운  날의 나를 찾아 헤맨다는 것을 부정할  없습니다타락의 혈통을 가진 오늘의 우리들도 새로운  새로운 한 시간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자기도 모르는 그 무엇이 우리의 감성을 움직여 오늘 이 시간도 나를 그런 방향으로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날이 천지간에 이루어지면 하나님을 통하여 인연되어진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은 나의 것이   있습니다그래서 인간은 그 한 날을 맞을 수 있는 세계적인 이념을 찾아 허덕이고 있습니다세계를 지배하고 세계를 주관하고자 하여 이념을 품고 그 주의를 주장하여 나오는 사람이라면 그 이념을 거부하고 그 심적인 요구를 거부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성현군자나 성인 현철들이 우리보다 앞서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이 길을 개척했습니다.


 뒤를 따라가는 우리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그러기에 우리는 그러한 한 날하나님이 나의 것세계가 나의 것인류가 나의 것존재하는 일체가 나의 것이 되는 한 시간을 그리워하며 고대하고 있습니다. (8-269)


새로운 한날을 세우기 위해 개척자로서 싸우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적인 새로운  날을 세우기 위하여 역사노정에서 싸워오셨고 오늘  시간에도 우리 앞에서 새로운  날의 개척자로서 싸우고 계신다는것입니다.


만약인간들이 싸워서 승리한다고 해도 타락인간의 승리가 되니 타락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하나님이 타락된 인간 앞에서 싸워 나오시며 타락하지 않았다는 승리의 기준을 세워 타락되지 아니한 혈족을 남기시기 위해 수고해 오셨습니다시대가 지남에 따라 개인을 지나고 가정을 지나고 민족혹은 부족을 지나고 국가를 지나서 세계까지 나왔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선두에서 싸우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아닙니다타락된 인간만으로써 싸워 가지고는 이상과 이념이 이루어지는 한 날이 올 수 없습니다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의 선조보다도 먼저 개척해 나오셨습니다하나님이 개척자가 되어 수고하신 터전 위에 사람을 세워 싸우게  나오신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의 기원은 어떠한 민족도 아니요어떠한 부족이나 씨족도 아니요개인이 제창한 어떠한 주의나 사조도 아닙니다이 역사는 단 하나 선한 하나님이 개척자가 되어 악한 사탄세계를 대하여 싸워 나오신 투쟁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이것에 연유하여 역사는 선과 악이 대립하면서 엉클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8-270)


하늘과 사탄이 싸우는 근본 목적과  종결시기


하늘의 소원은 잃어버린 에덴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소망은 지으신 동산이 사망의 공포를 느끼지 않고 원수의 침략을 받지 않는 안식의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그것이 하늘이 싸우면서 찾아 나오는 소망의 목적지입니다그러기에 역사는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가고 있고 하나의 이념세계를 지향해 들어가고 있습니다오늘날 세계에는 주의와 사상이 나와서 움직여 가고 있지만 그것은 타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주의요사상입니다


주의와 사상은 생활적인 감정을 영원한 이념과 접속시켜   있는 정적인 것을 기반으로 해야 됩니다그러지 못한 주의와 사상은 어느 한 때 슬픔과 더불어 사라져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도의 관념은 심정적인 기준에  들어가고 있습니다그 도의 주의와 사상은 양심적인 기준까지는 이룰 수 있을지 모릅니다그렇지만 역사적인 심정민족적인 심정천륜적인 심정뼛골로 흐르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부부끼리 사랑하는 심정형제끼리 사랑하는 모든 심정문제를 완전히 해결짓지 못하고 있습니다이 심정의 기준이 잡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가 싸우고 형제 사이에 분열이 생기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사탄은 6천 년 동안 우리의 심정을 서로 점령하기 위하여 싸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정기준은 어느  잡혀질 것이냐이 세계의 종말과 더불어 사탄세계가 송두리째 점령당해야 됩니다이것이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찾아 나오시며 세우려 하시는 새로운 날입니다. 하나님이   날을 인간 앞에 소개해 주시기 위하여 싸움의 용자전체를 책임진 개척자로서 우리의 선조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끌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하나입니다자식이 부모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심정은 누가 점령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존재의식을 넘어서 존재할  있고 움직일  있는 것입니다만우주의 어떠한 원동력이나 어떠한 존재물의 주관권 내에서 머물지 않고 초월합니다사랑은 이념을 초월하고 인간적인 가치를 초월합니다이 기준은 하나님의 가치까지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이런 기준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악을 대하여 심판주의 입장에 계시던 하나님도 심판주가 아니라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심정은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처음이자 나중입니다참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이 같은 것입니다처음에 크다가 나중에 작아지는 것은 거짓입니다시작보다는 나중에 커 가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선은 망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즉 작은 선에서부터 하나님과 같이 큰 선으로까지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악은 천지를 가졌으되 점점 빼앗깁니다악의 역사는 잃어버리는 역사요선의 역사는 찾아지는 역사입니다. 이런 원칙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어떠한 도()나 어떠한 종교가 있다 할진대 그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확대되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날이 가면 갈수록 주의와 사상을 휩쓸어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갈 것입니다. (8-272)


역사가 변천하는 이유와 투쟁역사의 종착점


우리는 최고의 선을 지향해 나왔습니다행동에도 선이요말씀에도 선이요생활에도 선이요내 관념과 주의 전체가 선이 되기를 바라고 나왔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을 지향하는 선이 인류가 찾아나가는 최후의 종착점이요그 선이 하나님이 선의 환경을 개척해 나오신 최후의 종착점입니다.


선의 중심이 이러하기에 예수님은 말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목숨을 다하고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라보고 계십니다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인류도 바라보면서 찾고 있는 그 기준은 하나님과 같은 점입니다그 기준은 갈라졌던 인간과 하나님이 상봉할 수 있는 점입니다하나님이 심정동산에서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위치를 잡는 그 점입니다그 점은 과연 무엇이냐새로운 아들딸을 세워놓고 영원히 사랑할 내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마음하나님의 뼛골에 흐르는 그 마음은 어느 누가 점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아무리 악한 사탄권세가 있다고 할지라도 주인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8-274)


하나님이 인간을 간접적으로 사랑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하나님의 역사는 복귀역사라고 했습니다복귀역사인 만큼 근원에서부터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역사입니다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자녀로 사랑해야 할 인간을 종과 같이 사랑한 때가 있었습니다다시 말하면백성과 같이 사랑한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입니다종과 같이백성과 같이 사랑하셨으니 아들과 같이딸과 같이 사랑하실 수 있는 한 날을 찾으셔야 하는데 그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이 사랑하실  있는 아들이요딸로서 왔다는 것입니다성신은 어머니의 신입니다예수님은 아들이었고 성신은 딸입니다이것이 인간의 표본입니다인간은 예수님과 성신을 표본으로 삼아 그들과 인연을 맺음으로써 하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딸로 인정을 받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의 한이 남아 있는 것을 선생님은 알았습니다하나님은 그저 아들딸로 축복해 주실 수 있는 아들딸보다도 품에 품고 애지중지하며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들을 찾고 계십니다만물을 대해서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보다도 품에 품고 뺨을 대고 입을 맞추며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애지중지하실 수 있는 아들딸뼛골에 사무친 심정으로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아들딸은 어린양 잔칫날에 신랑 신부로 축복해 주고  날부터 품고 사랑하실  있는 아들딸이었습니다그런데 역사상의 어느 누구도 6천 년 전부터 오늘 이때까지 아버지가 품에 품고 혈육처럼 심정으로 기르실 수 있었던 아들딸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8-276)


하나님의 궁극적인 소원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역사적인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그 예수님은 타락하기 전 선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품 가운데서 자라난 아담과 같이 하나님이 타락의 한을 잊어버린 자리에서 품고 키우신 아들이 되어야 했는데 그런 예수님이 못 되었습니다한스러운 4천 년 역사를 붙들고 그 역사적인 서러운 장면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던 싸움의 책임자로 일생을 다 보낸 예수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한때 이것을 알고 무한히 슬펐습니다역사적인 싸움의 무대에 하나의 구세주로 예수님을 보냈지 구세주가 필요 없는 동산타락의 인연이 없는 선의 동산의 왕자로서 예수님을 보내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이 사탄의 비난과 비소와 참소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선의 동산에 왕자로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사정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예수님만 맞이하면 다가 아닙니다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해야 됩니다하나님은 무엇을 그리워하시느냐타락으로 인한 한에서 벗어나서 안식할 수 있는 자유의 새 천지를 맞이해서 모든 시름을 잊고 어릴 때부터 품고 사랑하실 수 있는 그런 아들딸을 그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왔다 갔지만그런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없었습니다만일그런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있는데 하나님이 그를 죽이면 하나님도 참소받습니다그런 아들딸을 죽일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을 하나님이 죽음의 자리에 내놓으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그가 그러한 아들딸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자기를 구세주로 대하지 않았던 타락된 세계에서 싸움의 왕자로서 메시아의 기준을 가졌던 것입니다만일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은 영원한 선의 동산에서 하나님이 품고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있는데 그를 사탄세계에 내놓아 죽게 하셨다면 천리원칙은 근본부터 다 깨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신랑 신부를 갖추게 되면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것입니다안기는 데는 그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됩니다만일예수님이 승리해서 신랑 신부를 갖추어 가지고 지상천국을 이루고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을 가졌다면즉 에덴동산에서의 타락하지 않은 기준에서 아들딸을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봤습니까? 우리는  기준을 향하여 넘어가야 되겠습니다선생님은 여러분에 대해서 그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그런 목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8-277)


인류가 가야  최후의 목적지


우리는  날을 사모하고 있습니다한 시간을 찾기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그 목표를 향하여 수십 년 외로운 길을 걸어왔고그 목적을 향하여 핍박의 길도 걸었으며그 한 날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연속되는 시련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나선 것입니다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도 찾고 계시고인간도 찾고 있습니다우리가 그리워하며 찾아야 할 정성의 근원지가 어디냐정성들여야 할 왕궁이 어디냐? 정성들이는 데는 예수님을 통해야 합니다예수님을 통하여 타락하지 않은 아들딸이 하나님 앞에 정성들이는 그 기준까지 가야 합니다이것이 타락한 인류가 가야 할 최후의 목적지입니다.


우리는 충성을 하되 예수님보다  충성해야 됩니다예수님은 죄악을 대하여 싸우고 사탄을 대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 한 면으로는 칼을 들어 원수와 싸우고 또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을 위로하던 입장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싸우지 않는 입장즉 싸움을 다 끝내 가지고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 평화와 자유천지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그리워하고 계십니다우리는   날을 향하여 가야 합니다. 


  날은 심정이 얼크러지는 시간이요하나님의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시간입니다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쌓인 하나님의 슬픔의 보따리를 다 터트려 버리는 시간입니다. 동시에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을 붙들고 슬퍼하시던 역사는 종결되고 인간에 대하여 소망하시는 기쁨의 날이 시작됩니다하나님 속에 체휼된 슬픔은 악한 종자에게 넘겨주시고 선한 마음과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울음은 선한 종자한테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어느  순간어느 한 찰나를 멈추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향하여 육박해 들어오고 있습니다우리의 생활에 침범해 들어오고 있습니다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를 향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그 한 날을 마음에서생활에서가정에서사회에서국가에서세계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한 왕자가 없습니다하늘은 그런 자를 찾고 있습니다. (8-279)


하늘이 찾고 있는 인간과 새로운  


하늘은 새로운 이념에 불타는 세계관그 이념을 중심삼은 사회관그 이념을 중심삼은 가정관을 갖고 그 이념을 중심삼은 인격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그러므로 내 일신에서부터 그러한 인격을 갖추어 가정사회국가세계의 문을 열고 “하나님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가 된다면 심판대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왔다 가신 예수님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했습니다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내 형제요자매요모친이라고 했습니다집안 식구도 그렇지 못할 때는 원수라고 했습니다그는 철두철미한 분이었습니다당신 손에 못을 박은들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죽지 않는 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철두철미한 우주관을 기반으로 한 이념을 갖추어 가지고 사망의 환경에 있을망정 “하늘이여이 세계의 문을 열었사옵고 이 민족과 이 사회의 문도 열었사오니 오시옵소서!” 하면하나님도 “오냐!” 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존재가 나와야만 세상이 망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생관을 갖고 있습니다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천주관을 가져야 합니다인간은 이론적인 것만 가지고는 안락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이론만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천주관을 가지면 말하지 않아도 대하면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 앞에는 네가 누구고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형제나 부모와 같이 누구보다도 가까울 수 있고 심정이 자극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런 자극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타락하지 않았을  하나님이 품고사랑하시던 그런 아들딸이   위에 나와야 합니다사탄을 궤멸시켜 가지고 사탄의 참소나 악의 침범이 없는 동산공포와 불안을 느끼지 않는 행복의 동산에서 영원무궁토록 태평이요영원무궁토록 자유스러운 동산에서 하나님이 품고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나타나야 합니다그러면 이 세계는 순식간에 통일이 될 것입니다선생님은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아버지얼마나 그리웠습니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281)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


 그리워하는 마음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가 그리워하시던 마음입니다아담 해와를 낳기 전부터 고대하시던 마음만물을 지으시기 전부터 있던 마음입니다그 심정을 채우기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히 불쌍하신 분입니다죄악의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실 수밖에 없는 거북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죄악 된 아들딸들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에 오셔서 찢기고 상처를 받고 몰리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통곡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타락된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나오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런 전통적인 심정을 가진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결탁되어야 됩니다그러려면 무한히 슬펐던 하나님을 알고 무한히 고통스러웠던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무한히 분하고 억울했던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위에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아버님이여당신의 슬픔을 제게 지워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안 주려 하시면 빼앗아 가지고라도 져야 합니다빼앗아서라도 하나님의 슬픔을 지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님의 고통이  고통이요아버님의 억울함이 내 억울함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런 아들딸이 몇 명이나 됩니까예수님을 믿고 천당 가겠다고 하고 예수님을 믿고 편안하겠다는 사람은 하늘의 역적입니다해야  일을 하지도 않고 천당 가려 하고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강도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을 인계받는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예수님은 죽음을 홀로 인계맡은 왕자였기에 구세주가 되었습니다죽음으로 쓰러졌지만 부활의 권한으로 살아났으니 사망권을 지배할 수 있는 왕자가 되었습니다성경에는 이것이 몇 번밖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숨은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나의 눈물과 피와 감정에는 예수님의 모든 오관의 감정이 어리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예수님과 더불어 울어본 자예수님과 더불어 고통받은 자예수님과 더불어 간장을 녹여본 자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8-283)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영과 육을 합하여 하나님이 지신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는 사람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는 사람은 사탄이 우습게 압니다“하나님제가 당신의 십자가를 지겠나이다.” 하는 자를 사탄이 제일 무서워합니다“하나님제가 억울함을 당하겠습니다.” 하게 될 때 사탄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 성도에게는 반드시 환난이 옵니다하나님이 참아 나오신 고비고비의 곡절을 비롯하여 억울함과 배반과 배척과 몰림과 죽음과 역사상의 피 어린 모든 흔적이 여러분을 휩쓸 것입니다그러나 하늘에 대한 일편단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그 심정을 누가 지배하겠습니까아버지와 나와의 심정적인 인연을 아무도 끊지 못합니다사탄의 사망의 권세는 어림도 없습니다이것을 찾아가는 노정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넘어갈 수 있는 기준을 가진 사람만이 최후의 심판대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이 찾고 계시고 인류가 찾고 있는 새로운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새로운 시대새로운 날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고 세계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당당한 자격자라는 것입니다. (8-284)


 <훈독 소감>


아담 해와 창조하시고 완성되는 그날, 하나님은 최고의 행복에 잠기시어 만상이 화동하는 날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타락으로 그 소망의 날을 잃어버리셨기 때문에 그날을 찾으시기 위해 6000년 동안 수고하시며 개척해 나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모든 수고는 인간과 하나님이 상봉할 수 있는 심정의 동산, 본연의 에덴동산을 찾기 위함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2000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어 이러한 상봉을 원하셨지만 인간들이 받아들이고 모셔들이지 않음으로 그 뜻은 좌절되었음을 상기시키시면서 다시 오시는 재림주님 역시 받아들이고 모셔들이지 않으면 또다시 하나님의 뜻은 좌절되고 연장될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시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곧 사탄인데 그 사탄을 극복하지 않으면 결국 또다시 주님을 배척하고 반역하는 입장에 서게 됨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사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영과 육을 합하여 하나님이 지신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깨우쳐 주셨습니다.

끝날의 성도에게는 반드시 환난이 찾아오게 마련인데 그 환난 속에서 하나님 대신, 예수님 대신, 재림주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사탄을 이기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의 모든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신앙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심정 자세를 확실히 깨우쳐 주신 귀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 원문 &&&&&&


새로운 


날짜 : 1960. 2. 7()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아담 해와를 대한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던  순간은 새로운 순간이었습니다지어지는 만물도 새로운 만물이었습니다지으시던 순간도 그러했거니와 지어진 물건도 새로운 것이었던 동시에 새 것을 대하고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마음도 새로운 마음이었습니다.


새로운 만물을 지어놓은  에덴새로운 만물과 더불어 영원복락을 향유해야 할 주인공인 아담 해와를 세워놓고 새로운 심정적인 이념을 품고 바라보시던 하나님한테는 어느 한 시간 귀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아담 해와가 거동하던 그 한 순간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하고 귀한 인연의 시간이었습니다.


자라나고 있었던 아담 해와는 날이 감에 따라 이지와 지능이 밝아져 하나님의 본성을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는 새로운 세계를 대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서 볼 수 있으며들을 수 있으며만질 수 있는 자격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면서 그들의 움직임이 하나님 자신의 움직임이 되고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님 자신의 말이 되고또한 그들이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이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그러한 관계와 인연권 내에 있었던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심중으로 그리시던 존재하나님의 전체를 대신한 존재였습니다.


아담 해와를 위하여 지으신 만물을 품고 계시던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어떠한  날을고대하고 그리워하셨느냐여섯째 날까지 만물 지으시기를  마치셨으나 아담 해와를 완성된모습으로 창조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아 필시 아담 해와와 하나님의 사이에는 무엇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던 것은 지어 놓으신 상태의 아담과 해와도 아니요그들이 성장하던 모습을 바라보시던 그 기간도 아니요아담 해와를 통하여 찾아 이루고자 하시던  날이었습니다  날을 맞이하는 순간에 하나님도 기뻐하셨을 것이며아담 해와도 기뻐했을 것이며만물도 기뻐할 것이었기에 만물도인간도하나님도 그 날을 고대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날이야말로 만상(萬象)이 즐거워할 수 있었던 날이요그 날이야말로 하나님이 창조역사를 끝내 놓고 기뻐하실 수 있었고 최고의 웃음을 웃으실 수 있었던 날이요최고의 춤을 출 수 있었던 날이요천지가 생겨난 이후에 비로소 최고의 자유와 행복에 잠기어 만상이 뒤넘이치면서 화동(和動)할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그런데 그러한  그러한 한 시간그러한 한 순간은 하나님의 심중에 소망의 날과 소망의 시간과 소원의 순간으로 묻힌 채 오늘날까지 미완(未完)의 이상으로 남아져 있습니다이렇게 하나님은 억울한 자리에 처하여 계십니다.


타락이라는 슬픈  장면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타락이라는 것이 새로운 만물을 하늘이 세운 법도에서 끊어놓고새로운 사람도 하나님의 법도에서 끊어놓고새로운 천지도 그 법도에서 끊어놓고새로운 하나님의 이념도 끊어놓았다는 것은 슬픈 사실입니다타락의 인연을 맺고 나온 역사타락의 혈통을 받고 있는 나입니다이것을 본연의 새로운 동산의 아담새로운 동산의 만물새로운 동산의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고충이요인류의 고충이요역사의 고충이요만물의 고충입니다. (8-267)


인간의 타락과 새로운 한날을 맞기 위한 역사


하나님은 타락된 인류를 버릴  없는 인연을 가지고 계십니다영원한 이념을 중심삼고 인간을 지으신 원리적인 내용이 있는 연고로 타락된 인류를 버릴래야 버리지 못한 채 이 날 이 시간까지 붙들고 나오십니다.


흔히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합니다모든 만물은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요이 세계도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오늘날 인간이 새로운 무엇을 갖고 있다고 자랑하더라도제아무리 인간적인 권한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타락세계의 종의 신세를 면치 못한 자리에 있습니다다시 말하면타락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이념의 세계와 새로운 이념의 동산과 새로운 이념의 심정을 가진 사람과 만물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타락된 인간들은 싸움의 역사를 거쳐오고 있습니다고통스럽고 슬픈 생활 속에서 허덕이면서 소망과 소원이념과 이상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그 소원과 이상과 목표는 새로운 한 날을 맞이하는 것뿐입니다타락된 인간이 새로운 한 날을 맞이해야 되겠고이 만물이 새로운 한 시간을 가져야 되겠고이 천지가 새로운 한 날을 맞이한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새로운 날을 즐길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에 수많은 선지성현과 의인들이 왔다 갔지만 “나는 새날을 맞았고새로운 하늘의 뜻을 세웠고새로운 한 날을 틀림없이 세웠노라!”고 부르짖고 간 사람은 없었습니다예수님도 새로운 날을 소망하면서 죽어갔습니다하나님도 우리에게 약속하시기를 끝날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움직임을  때도 오늘의 나를 거부하고 새로운  날의 나를 찾아 헤맨다는 것을 부정할  없습니다타락된 인류는 새로운 날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타락의 혈통을 가진 오늘의 우리들도 새로운  새로운 한 시간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자기도 모르는 그 무엇이 우리의 감성을 움직여 오늘 이 시간도 나를 그런 방향으로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날이 천지간에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우리의 세계는 우리의 것인류는 우리의 것만물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하나님을 통하여 인연되어진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은 나의 것이   있습니다그래서 인간은 그 한 날을 맞을 수 있는 세계적인 이념을 찾아 허덕이고 있습니다세계를 지배하고 세계를 주관하고자 하여 이념을 품고 그 주의를 주장하여 나오는 사람이라면 그 이념을 거부하고 그 심적인 요구를 거부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성현군자나 성인 현철들이 우리보다 앞서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이 길을 개척했습니다.


 뒤를 따라가는 우리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그러기에 우리는 그러한 한 날하나님이 나의 것세계가 나의 것인류가 나의 것존재하는 일체가 나의 것이 되는 한 시간을 그리워하며 고대하고 있습니다. (8-269)


새로운 한날을 세우기 위해 개척자로서 싸우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적인 새로운  날을 세우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움을 계속해 나오고 계십니다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목전에서 싸우고 계십니다하나님은 역사노정에서 싸워오셨고오늘  시간에도 우리 앞에서 새로운  날의 개척자로서 싸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날을 고대하며 나오셨습니다만약인간들이 싸워서 승리한다고 해도 타락인간의 승리가 되니 타락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하나님이 타락된 인간 앞에서 싸워 나오시며 타락하지 않았다는 승리의 기준을 세워 타락되지 아니한 혈족을 남기시기 위해 수고해 오셨습니다시대가 지남에 따라 개인을 지나고 가정을 지나고 민족혹은 부족을 지나고 국가를 지나서 세계까지 나왔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선두에서 싸우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아닙니다타락된 인간만으로써 싸워 가지고는 이상과 이념이 이루어지는 한 날이 올 수 없습니다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지금까지6천 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의 선조보다도 먼저 개척해 나오셨습니다우리 선조가개척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개척자가 되셨습니다하나님이 개척자가 되어 수고하신 터전 위에 사람을 세워 싸우게  나오신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상에  전쟁이  번이나 있었습니까그 큰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큰 전쟁을 하셨고 그 전쟁에서 승리한 발판 위에 인간들을 세워 전쟁을 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육신을 가진 우리 인간들은 ()만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종교인들은 악신이 있는 동시에 선신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선한 하나님이 계시고 악한 사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사탄은 인류를 지배하여 인류를 자기의 소유물로 하였고 혈통과 심정까지 유린하여 인연을 맺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지배받아야   세계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었고사람으로 말미암아 빚어져야 할 이 세계의 역사는 사탄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역사가 되었기에 모든 것이 사탄과 인연되어 있는 것입니다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기원은 어떠한 민족도 아니요어떠한 부족이나 씨족도 아니요개인이 제창한 어떠한 주의나 사조도 아닙니다이 역사는 단 하나 선한 하나님이 개척자가 되어 악한 사탄세계를 대하여 싸워 나오신 투쟁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이것에 연유하여 역사는 선과 악이 대립하면서 엉클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8-270)


하늘과 사탄이 싸우는 근본 목적과  종결시기


하늘의 소원은 잃어버린 에덴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소망은 지으신 동산이 사망의 공포를 느끼지 않고 원수의 침략을 받지 않는 안식의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그것이 하늘이 싸우면서 찾아 나오는 소망의 목적지입니다그러기에 역사는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가고 있고 하나의 이념세계를 지향해 들어가고 있습니다오늘날 세계에는 주의와 사상이 나와서 움직여 가고 있지만 그것으로써 세계는 끝나지 않습니다움직이고 있는 주의와 사상이 새로운 주의 같고 새로운 사상 같지만 그것은 타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주의요사상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으되 그것은 악의 혈통에 인연되어 움직이는 마음이고 여러분의 심정이나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와 사상은 생활적인 감정을 영원한 이념과 접속시켜   있는 정적인 것을 기반으로 해야됩니다그러지 못한 주의와 사상은 어느 한 때 슬픔과 더불어 사라져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러기에 하늘은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심정을 혁명하기 위하여 인류역사를 움직여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인간들을 어떻게 찾아오셨느냐인간 심정의 중심을 향하여 공격전을 개시해 나오셨습니다사탄에게 지배당하고 사탄에게 점령되어 있는 인간들을 사탄세계와 끊어놓고 악의 본성을 폐하여 본성적으로 악을 싫어하고 선을 좋아할 수 있는 그 심정기준을 이루기 위하여 개척해 나오셨습니다.


지금까지의 도의 관념은 심정적인 기준에  들어가고 있습니다그 도의 주의와 사상은 양심적인 기준까지는 이룰 수 있을지 모릅니다그렇지만 역사적인 심정민족적인 심정천륜적인 심정뼛골로 흐르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부부끼리 사랑하는 심정형제끼리 사랑하는 모든 심정문제를 완전히 해결짓지 못하고 있습니다이 심정의 기준이 잡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가 싸우고 형제 사이에 분열이 생기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사탄은 6천 년 동안 우리의 심정을 서로 점령하기 위하여 싸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정기준은 어느  잡혀질 것이냐이 세계의 종말과 더불어 사탄세계가 송두리째 점령당해야 됩니다이것이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찾아 나오시며 세우려 하시는 새로운 날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의 심정세계를 점령해 나오던 무리를 걸어 놓고 하늘이 심정적으로 점령했다고 외칠  있는   날이 인간들이 찾아가는 날입니다하나님이   날을 인간 앞에 소개해 주시기 위하여 싸움의 용자전체를 책임진 개척자로서 우리의 선조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끌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고와 싸움이 끝나는 시간은 언제냐? 하나님의 심정은 하나입니다자식이 부모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심정은 누가 점령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이 그렇고 하나님의 자녀가 그렇다고   있는   날이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새로운 날입니다.


타락된 인간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둘이 아니고 절대 중의 절대입니다그것은 존재의식을 넘어서 존재할  있고 움직일  있는 것입니다만우주의 어떠한 원동력이나 어떠한 존재물의 주관권 내에서 머물지 않고 초월합니다사랑은 이념을 초월하고 인간적인 가치를 초월합니다이 기준은 하나님의 가치까지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이런 기준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악을 대하여 심판주의 입장에 계시던 하나님도 심판주가 아니라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도의 기준을 세우고양심의 도리를 세우고인간 세계에 윤리를 세워 이 한 목표를 바라보게 하시고 있습니다사탄 세계는 주의의 싸움혹은 혁명적인 사조를 개척하면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역사는 변천의 역사요우리 생활의 역사우리 싸움의 역사는 변천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심정은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처음이자 나중입니다참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이 같은 것입니다처음에 크다가 나중에 작아지는 것은 거짓입니다시작보다는 나중에 커 가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선은 망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즉 작은 선에서부터 하나님과 같이 큰 선으로까지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악은 컸다가 작아집니다악은 천지를 가졌으되 점점 빼앗깁니다악의 역사는 잃어버리는 역사요선의 역사는 찾아지는 역사입니다. 이런 원칙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어떠한 도()나 어떠한 종교가 있다 할진대 그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확대되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날이 가면 갈수록 주의와 사상을 휩쓸어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갈 것입니다. (8-272)


역사가 변천하는 이유와 투쟁역사의 종착점


이런 원칙 밑에서 판단하게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 있고 기독교인들은 세계의 사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어 있느냐선은 선한 것으로서 나왔으되 선의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선될 수 있는 역사는 거쳐왔으되 선의 가치가 어떻고아버지가 찾으시는 선이 무엇이며영원한 선의 주체가 지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시해 주지 못했습니다예수님은 이것에 대해 끝날에는 신랑 신부가 상봉해야 한다고 상징적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선을 지향해 나왔습니다행동에도 선이요말씀에도 선이요생활에도 선이요,내 관념과 주의 전체가 선이 되기를 바라고 나왔습니다선생님은 단순히 주의(主義)로만 주장하는 선이 물러가고 행동으로만 자랑하는 선도 물러가기를 바랍니다그것을 넘고 넘어 하나님의사랑을 지향하는 선이 인류가 찾아나가는 최후의 종착점이요그 선이 하나님이 선의 환경을 개척해 나오신 최후의 종착점입니다.


선의 중심이 이러하기에 예수님은 말했습니다누구를 대하여 효도하고 누구를 사랑해야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자기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목숨을 다하고,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22:37) 했습니다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적인 내용을 갖지 못한 종교는 어느   굴복당합니다.이런 내용을 갖지 못한 주의와 사상도 굴복당하고 말 것입니다세계는 이런 종말적인 무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진대 하나님도 지정의(知情意)를 내포한 주인공을 찾으십니다.지와 의는 상대적이로되 정은 절대적입니다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갖춘 자명망이 높은 자가 있다 할지라도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 어느 한 기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불행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바라보고 계십니다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인류도 바라보면서 찾고 있는 그 기준은 하나님과 같은 점입니다그 기준은 갈라졌던 인간과 하나님이 상봉할 수 있는 점입니다하나님이 심정동산에서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위치를 잡는 그 점입니다그 점은 과연 무엇이냐새로운 아들딸을 세워놓고 영원히 사랑할 내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마음하나님의 뼛골에 흐르는 그 마음은 어느 누가 점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아무리 악한 사탄권세가 있다고 할지라도 주인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수많은 기독교를 대신하여 “하나님아무리 명색을 갖춘 기독교인들이 많고 영화로운 환경을 자랑하는 교회당과 교파가 많다 할지라도 저는 그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하나님도 그런 것을 원치 않으심을 알았기에 그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하늘은 어떠한 교회당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기 아들이 청년일 때는 아들을 빙자하여 다른 젊은이를 사랑합니다사랑하지만 젊은이 전체를 직접 사랑할 수 없습니다그러기에 누구를 연유하여 누구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것이냐아들이라는 존재를 근거로 하여 사랑의 인연을 맺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8-274)


하나님이 인간을 간접적으로 사랑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와 같이하나님은 인간들을 역사적으로 사랑하셨고사회적으로 사랑하셨고가정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보호해 주시고 사탄을 분별시키면서 사랑해 오셨다는 것입니다그렇게 사랑해 오셨지만 인간을 대하여 “너는 내 아들이요내 딸이다.” 하시며 붙안고 사랑하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복귀역사라고 했습니다복귀역사인 만큼 근원에서부터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역사입니다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자녀로 사랑해야 할 인간을 종과 같이 사랑한 때가 있었습니다다시 말하면백성과 같이 사랑한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입니다종과 같이백성과 같이 사랑하셨으니 아들과 같이딸과 같이 사랑하실 수 있는 한 날을 찾으셔야 하는데 그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이 사랑하실  있는 아들이요딸로서 왔다는 것입니다성신은 어머니의 신입니다예수님은 아들이었고 성신은 딸입니다이것이 인간의 표본입니다인간은 예수님과 성신을 표본으로 삼아 그들과 인연을 맺음으로써 하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내가 아들딸이 된다니 고맙습니다.” 하고 하나님한테 몇 번이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아들딸로 인정을 받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의 한이 남아 있는 것을 선생님은 알았습니다.하나님은 그저 아들딸로 축복해 주실 수 있는 아들딸보다도 품에 품고 애지중지하며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들을 찾고 계십니다만물을 대해서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보다도 품에 품고 뺨을 대고 입을 맞추며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애지중지하실 수 있는 아들딸뼛골에 사무친 심정으로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우시어 신랑과 신부라는 목표 밑에서 인류를 끌어들이시려고 했습니다그러기에 부활한 예수님을 막달라 마리아가 붙잡으려고 할 때 막았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이 찾고 계시던 날이 멀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이 소원하시던 아들딸은 어린양 잔칫날에 신랑 신부로축복해 주고  날부터 품고 사랑하실  있는 아들딸이었습니다그런데 역사상의 어느 누구도6천 년 전부터 오늘 이때까지 아버지가 품에 품고 혈육처럼 심정으로 기르실 수 있었던 아들딸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넘어야  고개는 주를 만나기 위한 세계적인 골고다입니다주를 만나기위한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야 합니다그 고개를 넘어 부활권 내에 들어가서는 주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당신은 역사적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당신은 시대적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당신은 미래적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8-276)


하나님의 궁극적인 소원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역사적인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그 예수님은 타락하기 전 선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품 가운데서 자라난 아담과 같이 하나님이 타락의 한을 잊어버린 자리에서 품고 키우신 아들이 되어야 했는데 그런 예수님이 못 되었습니다한스러운 4천 년 역사를 붙들고 그 역사적인 서러운 장면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던 싸움의 책임자로 일생을 다 보낸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늘은 고대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한 그 한 날로 하나님의 해원이 끝날 줄 알고 있는데그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은 또 원하신다는 것입니다선생님은 한때 이것을 알고 무한히슬펐습니다역사적인 싸움의 무대에 하나의 구세주로 예수님을 보냈지 구세주가 필요 없는 동산타락의 인연이 없는 선의 동산의 왕자로서 예수님을 보내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이 사탄의 비난과 비소와 참소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선의 동산에 왕자로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사정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예수님만 맞이하면 다가 아닙니다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해야 됩니다하나님은 무엇을 그리워하시느냐타락으로 인한 한에서 벗어나서 안식할 수 있는 자유의 새 천지를 맞이해서 모든 시름을 잊고 어릴 때부터 품고 사랑하실 수 있는 그런 아들딸을 그리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왔다 갔지만그런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없었습니다만일그런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있는데 하나님이 그를 죽이면 하나님도 참소받습니다그런 아들딸을 죽일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을 하나님이 죽음의 자리에 내놓으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그가 그러한 아들딸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자기를 구세주로 대하지 않았던 타락된 세계에서 싸움의 왕자로서 메시아의 기준을 가졌던 것입니다만일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은 영원한 선의 동산에서 하나님이 품고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있는데 그를 사탄세계에 내놓아 죽게 하셨다면 천리원칙은 근본부터 다 깨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류 앞에 나타내지 않은 분야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그 부분이 밝혀져야 합니다하나님의 소원도 의당 그래야 논리적으로 맞는 것입니다타락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이 필요한 입장에서 구원받는다면 그 자리는 양자의 자리입니다로마서에서 양자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직계의 자녀가 아닌 양자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신랑 신부를 갖추게 되면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것입니다안기는 데는 그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됩니다만일예수님이 승리해서 신랑 신부를 갖추어 가지고 지상천국을 이루고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을 가졌다면즉 에덴동산에서의 타락하지 않은 기준에서 아들딸을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봤습니까?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은 “아그것은 이단의 말이다.” 하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기준을 향하여 넘어가야 되겠습니다선생님은 여러분에 대해서 그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그런 목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8-277)


인류가 가야  최후의 목적지


우리는  날을 사모하고 있습니다한 시간을 찾기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그 목표를 향하여 수십 년 외로운 길을 걸어왔고그 목적을 향하여 핍박의 길도 걸었으며그 한 날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연속되는 시련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나선 것입니다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가야만 합니다.


1이스라엘은 망해 버렸으니예수님을 위주한 기독교가 제2이스라엘입니다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제2이스라엘의 백성들입니다기독교는 제2이스라엘인 것입니다그런데 그 제2이스라엘이 책임을 못 하니 “주를 모시고 살 수 있는 제3이스라엘을 세워 주시고 하나님이 품고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을 이 땅 위에 보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도 찾고 계시고인간도 찾고 있습니다우리가 그리워하며 찾아야 할 정성의 근원지가 어디냐정성들여야 할 왕궁이 어디냐? 정성들이는 데는 예수님을 통해야 합니다예수님을 통하여 타락하지 않은 아들딸이 하나님 앞에 정성들이는 그 기준까지 가야 합니다이것이 타락한 인류가 가야 할 최후의 목적지입니다.


우리는 충성을 하되 예수님보다  충성해야 됩니다예수님은 죄악을 대하여 싸우고 사탄을 대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 한 면으로는 칼을 들어 원수와 싸우고 또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을 위로하던 입장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싸우지 않는 입장즉 싸움을 다 끝내 가지고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 평화와 자유천지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그리워하고 계십니다예수님도 그것을 향하여 2천 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성신도 그것을 향하여 그 날을 소망하며 싸워 나왔습니다. 우리는   날을 향하여 가야 합니다. 죽지 않고살아서   있다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날은 심정이 얼크러지는 시간이요하나님의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시간입니다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쌓인 하나님의 슬픔의 보따리를 다 터트려 버리는 시간입니다. 시간은 역사적으로 제일 슬픈 시간이  것입니다.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은 온갖 슬픈 노정을 걸어왔으나  순간에는 역사의 모든 슬픔을  번에 울어 치우십니다. 동시에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시는 시간입니다 날은 희비극이 교차되는 날입니다그것을 상징하여 인간세계에 반영되어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슬픔을 인계받은 종자와 하나님의 기쁨을 인계받은 종자로 갈라집니다그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을 붙들고 슬퍼하시던 역사는 종결되고 인간에 대하여 소망하시는 기쁨의 날이 시작됩니다하나님 속에 체휼된 슬픔은 악한 종자에게 넘겨주시고 선한 마음과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울음은 선한 종자한테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세계는 심정을 두고 갈라질 날이  것입니다그것이 하늘이 인간 앞에 세운 심판날입니다그 날의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선지선열들이 선의 싸움을 한 피 어린 역사노정이 있었습니다그것을 고이고그것을 높이고그것을 세우기 위하여 싸워 나왔다는 것입니다.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우리가 자는 시간에도 다가오고 있고 싸우는 순간에도 다가오고 있습니다그 무엇을 생각하는 시간에도 다가오고 있으며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그 순간에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어느 한 찰나를 멈추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향하여 육박해 들어오고 있습니다우리의 생활에 침범해 들어오고 있습니다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를 향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그 한 날을 마음에서생활에서가정에서사회에서국가에서세계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한 왕자가 없습니다하늘은 그런 자를 찾고 있습니다. (8-279)


하늘이 찾고 있는 인간과 새로운  


하늘은 새로운 이념에 불타는 세계관그 이념을 중심삼은 사회관그 이념을 중심삼은 가정관을 갖고 그 이념을 중심삼은 인격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그러므로 내 일신에서부터 그러한 인격을 갖추어 가정사회국가세계의 문을 열고 “하나님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가 된다면 심판대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인격을 갖추어 “아버지여내가 사망세계의 문을 여니 오시옵소서이 사망의 사회의 문을 여니 오시옵소서사망의 가정의 문을 여니 오시옵소서사망의 실체의 문을 여니 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한 왕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위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 봤습니까왔다 가신 예수님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했습니다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내 형제요자매요모친이라고 했습니다집안 식구도 그렇지 못할 때는 원수라고 했습니다그는 철두철미한 분이었습니다당신 손에 못을 박은들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죽지 않는 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철두철미한 우주관을 기반으로 한 이념을 갖추어 가지고 사망의 환경에 있을망정 “하늘이여이 세계의 문을 열었사옵고 이 민족과 이 사회의 문도 열었사오니 오시옵소서!” 하면하나님도 “오냐!” 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망의 물결이 진동하는  때에  마음의 문을 열고가정의 문을 열고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문을 열어서 “아버님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심판날이 오기 전에 심판을 넘어설 아들딸이 나와야 됩니다그런 존재가 나와야만 세상이 망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생관을 갖고 있습니다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천주관을 가져야 합니다인간은 이론적인 것만 가지고는 안락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이론만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천주관을 가지면 말하지 않아도 대하면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 앞에는 네가 누구고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형제나 부모와 같이 누구보다도 가까울 수 있고 심정이 자극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그것이 나오면 형제를 버리고 그리로 가고부모를 버리고 그리로 가고국가를 버리고 그리로 가고세계를 버리고 그리로 갑니다. 그것은 구상하고 상상해서 되어지는 인격이 아닙니다자연적이요자동적이면서 천륜을 통할 수 있는 인격입니다천정(天情)이 움직여 인정적(人情的)인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격이 이 땅 위에 나오면 세계는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통일됩니다하늘은 그런 한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극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타락하지 않았을  하나님이 품고 사랑하시던 그런 아들딸이  위에 나와야 합니다사탄을 궤멸시켜 가지고 사탄의 참소나 악의 침범이 없는 동산공포와 불안을 느끼지 않는 행복의 동산에서 영원무궁토록 태평이요영원무궁토록 자유스러운 동산에서 하나님이 품고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나타나야 합니다그러면 이 세계는 순식간에 통일이 될 것입니다선생님은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아버지얼마나 그리웠습니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281)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


 그리워하는 마음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가 그리워하시던 마음입니다아담 해와를 낳기 전부터 고대하시던 마음만물을 지으시기 전부터 있던 마음입니다그 심정을 채우기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히 불쌍하신 분입니다죄악의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실 수밖에 없는 거북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죄악 된 아들딸들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에 오셔서 찢기고 상처를 받고 몰리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통곡하고 계십니다하나님의 심정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상처가 있습니다민족이 쓰러지고 새로운 민족이 이루어지는 그때마다 역사의 어느 한 페이지도 제외됨이 없이 하나님의 심정의 곡절이 스며 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된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나오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런 전통적인 심정을 가진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결탁되어야 됩니다그러려면 무한히 슬펐던 하나님을 알고 무한히 고통스러웠던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무한히 분하고 억울했던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위에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하나님의 슬픔과 고통이 끝나지 않는  슬픔의 역사를 붙들고 나아가야  하나님이심을 알았으면 “아버님이여당신의 슬픔을 제게 지워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안 주려 하시면 빼앗아 가지고라도 져야 합니다빼앗아서라도 하나님의 슬픔을 지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님의고통이  고통이요아버님의 억울함이 내 억울함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런 아들딸이 몇 명이나 됩니까예수님을 믿고 천당 가겠다고 하고 예수님을 믿고 편안하겠다는 사람은 하늘의 역적입니다책임을 다해야 천당에 갑니다. 해야 일을 하지도 않고 천당 가려 하고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강도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을 인계받는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예수님은 죽음을 홀로 인계맡은 왕자였기에 구세주가 되었습니다죽음으로 쓰러졌지만 부활의 권한으로 살아났으니 사망권을 지배할 수 있는 왕자가 되었습니다성경에는 이것이 몇 번밖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숨은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나의 눈물과 피와 감정에는 예수님의 모든 오관의 감정이 어리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예수님과 더불어 울어본 자예수님과 더불어 고통받은 자예수님과 더불어 간장을 녹여본 자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입니다과거의 습관적인 신앙을 갖고는 안됩니다통일교회 신앙은 그런 신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8-283)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영과 육을 합하여 하나님이 지신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는 사람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는 사람은 사탄이 우습게 압니다“하나님제가 당신의 십자가를 지겠나이다.” 하는 자를 사탄이 제일 무서워합니다“하나님제가 억울함을 당하겠습니다.” 하게 될 때 사탄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 성도에게는 반드시 환난이 옵니다하나님이 참아 나오신 고비고비의 곡절을 비롯하여 억울함과 배반과 배척과 몰림과 죽음과 역사상의 피 어린 모든 흔적이 여러분을 휩쓸 것입니다그러나 하늘에 대한 일편단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그 심정을 누가 지배하겠습니까아버지와 나와의 심정적인 인연을 아무도 끊지 못합니다.사탄의 사망의 권세는 어림도 없습니다이것을 찾아가는 노정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넘어갈 수 있는 기준을 가진 사람만이 최후의 심판대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이 찾고 계시고 인류가 찾고 있는 새로운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절대적인 선은 영원합니다처음과 끝이 같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아버지와 더불어 심정적으로 결탁된 이 마음을 누가 점령할소냐사탄세계의 사망권한아오너라사탄세계의 피의 곡절아오너라세기말적인 공포나 7년 대환난도 전부 다 한꺼번에 몰아쳐 오라난 점령당하지 않는다.” 하는 심정으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승리의 기틀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탄세계에서 이러한 뜻을 위하여 싸워 오신 아버지시여이 사망세계에서 어느 한 날 이러한 아들딸을 만나 위로받으셨습니까위로받지 못하신 하나님이시여오늘 제가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런 사람은 새로운 시대새로운 날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고 세계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당당한 자격자라는 것입니다. (8-284)

첨부파일첨부된 파일이 1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