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찾아서 헤매는 인류 (천일국 훈독경 제 2 권 제 12 일)

훈독왕 | 20190410091205

천일국 훈독경 제 2 권 제 12 일 


첨부파일 16 훈독경 제2권 12일 참을 찾아서 헤매는 인류 1.mp3


참을 찾아서 헤매는 인류(훈독본)


날짜 : 1958. 12. 21()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인간의 실상과 절대적인 선의 기준의 필요성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는데마음에는 마음이 바라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내 몸을 그 목적의 본체에로 무한히 흡수하려는 힘의 움직임이 있습니다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어떤 정처 없는 방향으로 무한히 이끌어 가는 것 같은 생활여건 내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느낀다면 오늘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이념적인 무형의 세계가 있다 할진대  영적인 세계의 ()을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재감정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영과 나와는 어떠한 관념이라든가 사상이라든가 이념권 내에서 일체적인 관계를 이루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갈  있는 자신을 찾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였습니다

 선의 기준은 우리의 생명과  밖의 전체가 추구하는 이념과 소망의 기준입니다더 나아가마음과 마음속에 움직이고 있는 영원한 사랑의 중심이며 정적(情的)인 이념의 초점입니다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내 마음을 이끌어 어떠한 절대적인 안식처를 추구하도록 합니다또한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내 몸적인 욕망을 제거하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를 중심삼고  즉 몸을 중심삼고 보든가마음을 중심삼고 보든가혹은 영을 중심삼고 보든지 그것이 하나 하나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그래서 그것을 자유롭게 대할 수 있으며,그것과 자유롭게 화할 수 있어서 개인의 생활적인 감정이 전체의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이루어야 합니다그렇지 않는다 할진대여러분은 마음과 몸 혹은 영적인 움직임의 전체의 가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은 원한이 오늘날 이런 슬픔의 자리를 빚어냈고타락으로 말미암은 슬픔이 인류를 이런 역경 가운데로 몰아낸 것입니다그로 인해 인류가 가고 있는 역사노정은 타락으로 기인된 행로를 그대로 걷고 있고또 그러한 입장에서   자체는 지금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의 모습이 절대적인 선에 비해 어떠한 방향과 각도를 가지고 있습니까내 마음은 우()로 가고자 하는데 한계적인 우주관을 갖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이러한 입장에서 벗어나 본연의 자체를 찾기 위해 복귀의 행로를 걷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인류입니다.


  자체에는 몸이 있고마음이 있고영이 있습니다우리는 이 몸과 마음과 영을 통합한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이 땅 위에 어떠한 창조적인 주인이 있다면그 주인 앞에 끌리어 안길 수 있고 내 한 자체가 남을 품어 줄 수 있는 모습이것이 창조주가 찾고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또한오늘날 우리 인간이 찾고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5-62)


참된 인간이 되려면


 마음은 몸에게 참된 것을 찾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 인류는 무엇인지 모르게 참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찾아야  본연의 나를 놓고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슬픔에 처해 있는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참된 나를 찾지 못한 슬픔참된 나를 찾지 못한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세상에 슬픔과 고통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참된 나를 찾지 못한 슬픔과 고통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나를 잃어버릴 때의 하나님의 심정을 회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를 찾기 위하여 6천 년 전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흘리셨던 슬픔의 눈물고통의 심정을 잃어버리지 않으신 채 싸워 나오셨습니다. 6천 년을 하루같이 잃어버린 그때의 심정으로 인간을 찾아 싸워 나오셨습니다. 


슬픔이 6천 년 전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로 남아졌고 우리에게는 슬픔의 열매가 생겼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중에 사무친  슬픔을 풀기 전에는 오늘날 인류의 슬픔은 해소시킬  없습니다.


맺혀진 곡절은 맺혀진  자리에 가서 탕감복귀해야 하는  구원섭리의 철칙이라 할진대 오늘날의 우리 인간에게는 잃어버렸던  심정을 찾아야  역사적인 종말시대즉 끝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는 어떻게 되는가하나의 심정의 표준을 정해 놓고 그 심정을 기준으로 심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오늘날  일신은 하나님의 눈물의 결정체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고통의 결정체인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그러한 자리에서만이 나의 존재가치가 회생될 수 있는 것입니다. (5-65)


인간 타락으로 인한 파장과 인간이 가야  


타락으로 인하여 생긴 슬픔과 고통을 해원해야  끝날에 처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나의 일체를 부정하고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여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에 사무쳐 있는 모든 고통을 해원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신을 찾아 헤매야 할 운명 가운데 처해 있는 것이 오늘날 인류인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이 자신을 깨뜨리고 나가는 데는 무엇으로 해야 하겠습니까내 마음과 몸을 움직여낼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움직여낼 수 있는 것 온전한 사랑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영을 붙들고 사랑하시고  영은  마음내 마음은 내 몸내 몸은 만물을 붙들고 사랑하면 심정이 통일되는 것입니다.그런 세계에서는 만물을 사랑하는 심정은 몸을 통하고영을 통하고영을 사랑하는 심정은 하나님과 통한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인간이 찾아나가는 종착점입니다. (5-67)


역사 전개의 원형이  인간타락의 모형과 경로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라고 했습니다여기서 타락의 역사적 경로를 생각해 볼 때 어떠한 길을 거쳤겠습니까처음으로 사랑을 논의하고 나선 자가 누구였습니까에덴동산의 해와였습니다그 다음에는 아담,  다음이 가인 아벨이었습니다이것이 하늘 앞에 처음 나타났던 인류의 종족이 걸어온 타락 역사의 원형이라는 것입니다이 타락 역사형이 인류역사 시초에 벌어졌기 때문에 인간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늘이 인간과 연락할  있는 사랑의 사다리가 끊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류는 부모의 사랑을 잃은 고아참다운 부부의 사랑을 잃은 고아참다운 형제의 사랑을 잃은 고아와 같은 입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탄과 상대적이고 횡적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종말시대인 오늘날은 민주주의를 중심해서 평등주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평등주의를 부르짖는 동시에 여성이 남자보다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찾아나가야  길은 하늘이 제시하는  이념의 길이요생명의 길이요사랑의 길입니다이런 새 이념과 생명을 소개해 주는 사랑의 길을 찾아 나가는 역사노정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5-69)


타락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탕감역사


이제 역사적인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그래서 천지의 운세가 회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재에 와서는 남녀 평등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여자들이 남자들로부터 대우받을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에덴에서 어머니인 해와가 아담을 지배하던 것을 거꾸로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늘 앞에 굳건히 서야 되겠고만우주를 주관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그러면 만물의 주인공으로 결정될 수 있는 하나의 본질은 무엇입니까그것은 생명력도 아니요이념도 아니요사랑입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그런 즉 믿음소망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사랑의 길이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적인 영과 외적인 육을 합하여 자녀의 입장을 나타낼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그런데 유대 백성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은 세워지지 못했습니다인류역사는 재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에 복귀과정이 다시 전개되어야 했습니다그래서 영적인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고지상인간을 상대해야 할 성신이 땅에 오게 된 것입니다이 성신은 지상에 있는 영적인 자녀를 품어서 에덴의 이념을 다시 성취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하여 성신이 강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신과 자녀의 명분을 가지고 신랑 되신 구주를 찾아야 되겠습니다그런데 구주를 찾아 헤매는 데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영육을 합하여 찾지 못하고 이념적인 면만 가지고 찾고 있습니다오늘날 도의 길이나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육을 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이렇게 신앙인들은 마음의 세계영의 세계를 찾아 헤매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자녀격인 성도들은 영육을 합한 형태를 갖추어서 영적인 어머니인 성신을 중심삼고 복귀를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에덴에서 아버지를 주관한 어머니는 거꾸로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그래서 어머니의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그래 가지고 자녀를 주관해야 합니다.


 에덴의 소망은 영과 육을 합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인간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영과 육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영과 육이 일치된 입장에 서야 합니다그리고 종적인 입장에만 설 것이 아니라 횡적인 입장에도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사방성을 취하지 않고 일방적인 면만을 붙들고 나오다 보니 인간은 몸과 마음이 갈라졌고 마음과 영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성취의 날은 언제입니까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의 약속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다시 와야 합니다그 재림의 이상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몸적인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입니다찾아진  어머니는 타락된 어머니를 지배하여 몸적인 아버지의 자리를 복귀해야 합니다여기서부터 예수님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5-71)


참부모를 찾아야  타락인간


예수님의 소원 성취는 영육이 합할  있는 하나의 이념세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그렇게 돼야만 비로소 영육을 갖춘 하나의 부모가 천지간에 나타납니다섭리의 법도를 두고 볼 때일방적인 역사관이 상대성을 갖춘 역사관으로 정립되는 그 날이 인류역사노정에 필연적으로 와야 하는 것입니다그런 연고로오늘날 인류가 일방적인 면만을 취하면 슬픔의 세계에서 고민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복귀의 운명길을 걷고 있는 우리 인류는 무엇을 찾아야 하겠습니까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내 참 몸을 찾아야 하며이 몸의 부모를 찾아야 됩니다몸의 부모를 찾기 전에는 마음의 부모,영의 부모가 나타날 도리가 없습니다왜냐하면천지의 창조가 외적인 것으로부터 이루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신음소리는 언제 끝날 것인가하나님을 대신해서 내 몸을 사랑해 줄 수 있는 부모를 찾는 그 한 날을 맞이하지 않고는 인류의 고통은 이 지구상에서 제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나오지 않는 이상 참자녀가 있을  없는 것이니 아직까지  세상은 죄악  세상이요지옥의 세상이요고통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도 찾아오고 계십니다하나님은 영을 통해서 우리의 영과 몸을 찾아오고 계십니다하나님은 인류의 영적인 참부모요마음적인 참부모로 계십니다하나님은 이렇게 영과 마음을 합한 부모의 입장에 서 계시는데 육적인 부모를 찾아 상봉하는 한 날을 인류 앞에 예고하셨습니다그 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날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인간은 참부모를 찾아 헤매야 합니다실체를 가진 참부모는 새로운 이념과 비전을 가지고 인간을 찾아오셔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의 길은 나 혼자 찾아 넘어갈 수 없습니다왜냐하면내 개체는 역사적인 타락행로를 거쳐서 이 죄악의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시대적인 타락의 운세권 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이 길은 혼자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이념의 세계와 인연을 맺고  세계와 절충해야만 이념적인 사랑의 세계를 찾을  있다는 것입니다도의 길은 역경 속에서 싸우며 찾아 나오는 길입니다또한이것이 6천 년간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5-73)


하나님이 반겨줄  있는 인간


여러분은 6천 년 역사를 대표하는 제물들입니다따라서, 6천 년을 대표하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6천 년 동안 인간으로 하여금 제물을 바치게 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쫓겨날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쫓아내면서 쫓겨나던 그들의 슬픔보다   슬픔의 심정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중심삼고 하늘을 배반하여 쫓겨났던 인간은 어떻게 해야 복귀되겠습니까내 슬픔이나내 억울함이나내 사망이야 있거나 없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과 억울함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러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회개하라고 했습니다통곡하라는 것입니다눈물로 출발한 역사의 기원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사망선에 떨어진 인간을 6천 년 동안 품어 주시고인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울어 주시고고통으로 슬퍼해 오신 하나님을 붙들고 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예수님이 누구였습니까그분은 인류의 참아버지였습니다. 4천 년만에 하나님 대신 참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땅 위에 온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인간은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그런데 죽이고 보니 자기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그런 줄도 모르고 예수님을 죽였을 망정 그분이 진실로 자기의 아버지인  알게 되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아무리 악당이나 살인 강도라 할지라도목석 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가슴을 치고 통곡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만난 자는 통곡해야 됩니다통곡하더라도 예수님이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참부모로 오셨는데 그 예수님을 죽인 것을 놓고 먼저는 하나님을 위하여 통곡하고오셨던 참부모를 위하여 통곡하고나아가 땅의 인류를 위하여 통곡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을 죽였지만그 예수님이 참부모였음을 알았습니다그래서 그 참부모를 잃어버린 설움과 원통함을 느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랐습니다그러한 본성이 인간에게 있었던 연고로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재림주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5-75)


형극의 길을 거쳐오시는 참부모


여러분이 고대하고 있는 참부모님은 다만  십년간 준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그 기간은 인간의 한 생애가 아니라 6천 년이었습니다오시는 데는 편안히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여러분이 편안히 잠을 자고 쉬고 있을 그 시간에도 하늘은 여러분을 찾기 위해 애썼다는 것입니다때로는 거지의 모양빈민의 모양방랑자의 모양죄수나 핍박받는 자의 모양이나 비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해 가지고 인간 최하의 자리에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예수님이 걸은 길이었고또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걸은 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편안히 먹고 자고 편안히 쉬는 자리에도 하늘의 슬픈 음성이 울리고 있고 하늘의 억울한 고통과 통곡소리가 울리고 있다는 서글픈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여러분은 참부모 앞에 사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마음을 붙안고 잠을 자면서도밥을 먹으면서도 송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죄인 중의 죄인이요천지가 용납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사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5-77)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있는 자리


오늘날 여러분은 죄인 중에서도 부모를 죽인 용납받을  없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욕을 하거나 핍박을 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그러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슬픔과 역사적인 분함을 느껴 감사해야 할 여러분입니다.


그러면서 욕하는 형제를 붙들고 눈물지을  있는 곳이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십자가상에서 자기를 치던 자를 오히려 염려하고 그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 주었던 예수님의 심정이런 심정을 품고 가는 길이 참인간이 가는 전형적인 길이요골수에 사무쳐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죄인들입니다우리 모두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하늘은 이러한 역사적인 제물을 원하고 있습니다제물은 받으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민이 기뻐한 후에 비로소 머리를 드는 존재입니다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고 만민이 기뻐하기 전에 머리를 들었다면 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요하늘의 황태자이신 예수님도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왜냐하면 제물로 왔던 연고입니다영계에 가서도 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지상의 성도들이 기뻐하여도 제물인 예수님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하나님과 만민이 기뻐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그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족이 받아 모든 핍박을 바라보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반만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우리 민족은 슬픔이 있어도 어디 가서 호소할 줄 몰랐고분함과 억울함이 있어도 호소할 줄 모르는 가운데 걸어나왔습니다그러면 민족을 붙들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고아와 같은 이 민족이지만 우리끼리 손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야 이 민족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족이 거쳐온 역사노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할진대  섭리의 종국에 하나님은 어떠한 무리를 요구하실 것인가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울 줄 아는 모습일 것입니다하나의 뜻에 엉키어 울고하나의 심정에 엉키어 울고하나의 행동에 엉키어 울면서 먼저 제물이 되겠다는 무리들입니다하늘은 그러한 무리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5-79)


인간이 찾아가야  최후의 목적점


이제 하늘을 중심하지 않은 부모의 사랑부부의 사랑자녀의 사랑을 깨뜨려야 할 시대가 왔습니다이러한 사랑을 깨뜨리고 그 대신 하늘을 중심한 부모의 사랑자녀의 사랑부부의 사랑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그러기에 기독교에서는 신랑 신부의 명사를 걸어 놓고 섭리해 온 것입니다.


타락된 인간들은 사랑을 잃어버린 존재들입니다이러한 인간들 앞에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지상에 다시 천적인 사랑을 복귀하려고 왔던 분이 예수님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영계로 갔습니다그리하여 인간은 영적인 사랑의 기준을 세워 놓고 육적인 사랑을 복귀해 나가는 노정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신부를 찾는데 어떠한 심정으로 찾으려고 했느냐하나님을 대신한 신부자녀를 대신한 신부형제를 대신한 신부를 찾으려고 했습니다신랑 신부를 보내시어 땅 위에 하나의 기준을 세우시려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그 뜻은 신부를 중심삼고 상으로는 하나님하로는 자녀좌우로는 형제가 있어 그 전체가 사위기대의 형태를 이루자는 것이었습니다그런 사랑을 대표한 상대존재인 신부를 찾아 나온 역사가 2천 년 섭리노정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해야  일은 무엇입니까남자는 여성을 존중해야 하고여자는 남성을 존중해야 합니다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여자는 남자를 대할 수 있고 남자는 여자를 대할 수 있습니다남자는 아버지의 분체(分體)여자는 어머니의 분체입니다분신(分身)이라는 것입니다상호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개개인의 상대적인 성품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본연의 인간들이 걸어야 할 노정인 것입니다.


자식을 대할 때도 그들이 아무리 자기의 아들이라도 하나님의 이상을 전개하여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총합시켜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던  이념을 마음에 품고서 자식을 붙안고 사랑할  아는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타락세계에  있는  자식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슬퍼하시던 그 감정에 “오냐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인류가 고대하고만물이 고대하던 본연의 사람이 되라!” 하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참다운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이렇게 볼 때예수님은 만물을 대하고 우주를 대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그렇기에 예수님은 자기가 찾던 신부는 하나님의 대신이요인류의 대신이요천추 만대 후손의 대신 존재라는 감정을 가졌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신랑 된 예수님의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를 대신하고 자녀를 대신할  있는 일체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실체형을 갖춘 신랑 신부로서 상봉하는 날이 와야 합니다그 날이 와야 피조세계의 비극적인 모든 것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에 막혔던 모든 것이 전후좌우상하로 화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 날이 우리 인류가 바라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랑의 심정을 갖추어 하늘땅 앞에 나설  있어야 합니다그래야만 하나님이 4천 년을 역사하시어 예수님과 성신을 세우신 것처럼 실체 신랑의 입장에서 실체 신부를 상봉하게 되는 것입니다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요이러한 실체적인 상대를 찾는 것이 인간이 찾아 나아가는 최후의 목적점이요인간이 찾아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표준점이라는 것입니다. (5-81)



<훈독 소감>
 
참된 인간은 한 자체에 몸과 마음과 영이 통합한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 영을 붙들고 사랑하시고 내 영은 내 마음을, 내 마음은 내 몸을, 내 몸은 만물을 붙들고 사랑하면 심정이 통일되어 참된 인간이 되어질 수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모든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하나님 대신체로 사랑함으로써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영이 내 영인체를 붙들고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돌이켜 볼 때 아버지의 과분한 사랑에 무한한 감사를 올립니다.
 
이제 내 몸이 만물을 사랑하고 내 마음은 내 영을 중심하고 살아갈 때 내 영인체를 하나님의 성령이 사랑해주실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천일국 훈독경 제 2 권 제 12 일 원문 &&&&


참을 찾아서 헤매는 인류


날짜 : 1958. 12. 21()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인간의 실상과 절대적인 선의 기준의 필요성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는데, 마음에는 마음이 바라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내 몸을 그 목적의 본체에로 무한히 흡수하려는 힘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어떤 정처 없는 방향으로 무한히 이끌어 가는 것 같은 생활여건 내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느낀다면 여러분은 자신에게 다시 돌아 들어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감정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이념적인 무형의 세계가 있다 할진대 영적인 세계의 ()을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재감정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영과 나와는 어떠한 관념이라든가 사상이라든가 이념권 내에서 일체적인 관계를 이루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갈 있는 자신을 찾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심정에는 평화가 있을 없는 것이요, 그 무엇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행복과 소망은 성취되지 않습니다.


원리를 통하여 보면,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였습니다. 선한 인간이 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선하지 못한 존재가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종교인들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 자신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의 기준은 우리의 생명과 밖의 전체가 추구하는 이념과 소망의 기준입니다. 더 나아가, 마음과 마음속에 움직이고 있는 영원한 사랑의 중심이며 정적(情的)인 이념의 초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내 마음을 이끌어 어떠한 절대적인 안식처를 추구하도록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내 몸적인 욕망을 제거하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를 중심삼고 , 즉 몸을 중심삼고 보든가, 마음을 중심삼고 보든가, 혹은 영을 중심삼고 보든지 그것이 하나 하나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유롭게 대할 수 있으며, 그것과 자유롭게 화할 수 있어서 개인의 생활적인 감정이 전체의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 할진대, 여러분은 마음과 몸 혹은 영적인 움직임의 전체의 가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은 원한이 오늘날 이런 슬픔의 자리를 빚어냈고, 타락으로 말미암은 슬픔이 인류를 이런 역경 가운데로 몰아낸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인류가 가고 있는 역사노정은 타락으로 기인된 행로를 그대로 걷고 있고, 또 그러한 입장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자신의 모습을 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몸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절대적인 이념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인 그 무엇을 필연적으로 찾아야 할 인간인데  자체는 지금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의 모습이 절대적인 선에 비해 어떠한 방향과 각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내 마음은 우()로 가고자 하는데 한계적인 우주관을 갖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이러한 입장에서 벗어나 본연의 자체를 찾기 위해 복귀의 행로를 걷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인류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모습을 다시 냉정한 입장에서 관찰해 보아야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무엇을 찾기 위하여 허덕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의 마음과 영이 실체로 화하여 하나의 영광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창세 이후 그러한 모습은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인지 모르게 찾아가야 할 길, 운명의 길을 걸어야 할 내 한 자체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자체에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몸과 마음과 영을 통합한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 위에 어떠한 창조적인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 앞에 끌리어 안길 수 있고 내 한 자체가 남을 품어 줄 수 있는 모습, 이것이 창조주가 찾고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인간이 찾고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5-62)


참된 인간이 되려면


마음은 몸에게 참된 것을 찾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먼저, 참된 몸을 찾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 인류는 무엇인지 모르게 참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한 원한 가운데 사무쳐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연고로 무엇인지 모르게 참것을 찾아야 이런 운세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찾아야 본연의 나를 놓고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슬픔에 처해 있는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세계를 보고 슬퍼할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느끼더라도 어떠한 상대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고통만을 느껴서는 안됩니다.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 할진대 참된 나를 찾지 못한 슬픔, 참된 나를 찾지 못한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세상에 슬픔과 고통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참된 나를 찾지 못한 슬픔과 고통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주 하나님이 지금까지 누구를 찾아 내려오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자체, 즉 나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내가 완전히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하나의 실체를 중심삼은 참된 가정이나 그 참된 가정을 중심삼은 사회, 국가, 더 나아가 국가를 단위로 한 세계, 세계를 단위로 한 천주와는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내가 되는 것이 모든 단계의 첫 번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인간을 대해 무한한 슬픔의 길을 걸어 나오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린 이 한 사실은, 분하다면 그 이상 분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 하나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온 천주가 흑암의 세계로 화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무한한 고통과 슬픔을 느끼십니다.


그러면 오늘날 인간들이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잃어버린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을 회상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연의 나를 찾을 도리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장소에 다시 가야 찾을 있는 것과 같이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나를 잃어버릴 때의 하나님의 심정을 회상해야 합니다. 그런 운동을 제시하지 않고는 인간들은 본래의 자기의 모습을 찾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우리 인간을 대하여 6천 년 동안 찾아오고 계십니다. , 내 한 개체를 찾기 위해서 6천 년 역사노정을 거쳐왔다는 것입니다. 6천 년의 역사노정은 피눈물의 길이요, 핍박의 길이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노정을 거쳐 오시면서도 하나님은 하나를 찾기 위하여 6천 년 전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흘리셨던 슬픔의 눈물, 고통의 심정을 잃어버리지 않으신 채 싸워 나오셨습니다. 6천 년을 하루같이 잃어버린 그때의 심정으로 인간을 찾아 싸워 나오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이 6천 년 전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로 남아졌고 우리에게는 슬픔의 열매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중에 사무친 슬픔을 풀기 전에는 오늘날 인류의 슬픔은 해소시킬 없습니다.

맺혀진 곡절은 맺혀진 자리에 가서 탕감복귀해야 하는 입니다. 이것 구원섭리의 철칙입니다. 이것이 철칙이라 할진대 오늘날의 우리 인간에게는 자체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잃어버렸던 심정을 찾아야 역사적인 종말시대, 즉 끝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의 심정의 표준을 정해 놓고 그 심정을 기준으로 심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체를 두고 여러분 몸에는 6천 년 동안 흘리신 하나님의 슬픔의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으며, 하나님의 고통의 핏자국이 얼룩져 있으며, 골수에까지도 악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원한의 조건을 제거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이 몸에 사무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체가 6천 년 동안 흘리신 하나님의 눈물의 결정체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일신은 하나님의 눈물의 결정체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고통의 결정체인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만이 나의 존재가치가 회생될 수 있는 것입니다. (5-65)


인간 타락으로 인한 파장과 인간이 가야


타락으로 인하여 생긴 슬픔과 고통을 해원해야 끝날에 처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6천 년 동안 슬퍼해 오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슬퍼할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 년 동안 고통받은 그 하나님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님을 대신하여 맞아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는 인간인 연고로 하늘은 심판이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인간을 대해 눈물 흘리시며 섭리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을 피할 있는 길은 어떤 길이겠습니까? 내 몸을 붙들고 울 것이 아니요, 내 자신의 고통 때문에 울 것이 아닙니다. 나를 구하기 위하여 내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지니고 나오신 하나님의 고통을 알아야 합니다. 슬픔보다 하나님의 슬픔이 있었고 몸의 어려움보다 하나님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일체를 부정하고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여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에 사무쳐 있는 모든 고통을 해원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신을 찾아 헤매야 할 운명 가운데 처해 있는 것이 오늘날 인류인 것입니다.


이렇게 , 타락한 인간이 자신을 깨뜨리고 나가는 데는 무엇으로 해야 하겠습니까? 내 마음과 몸을 움직여낼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움직여낼 수 있는 것 무엇입니까? 그것 온전한 사랑의 심정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영이 마음을 붙들고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마음이 몸을 붙들고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몸이 만물을 붙들고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우리 인간이 찾아야 할 목적지요, 종착점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마음이 있으되 마음이 몸을 붙들고 사랑하고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없었고, 영이 마음을 붙들고 사랑하고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을 붙들고 사랑하고 계시지만 그것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을 붙들고 사랑하시고 영은 마음, 내 마음은 내 몸, 내 몸은 만물을 붙들고 사랑하면 심정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에서는 만물을 사랑하는 심정은 몸을 통하고, 영을 통하고, 영을 사랑하는 심정은 하나님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찾아나가는 종착점입니다.


여러분을 붙들고 “너에게 어떠한 사명이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로 가느냐, 너는 어떤 일을 할 것이냐?” 하고 권고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인간이 탄식하게 된 원인이라는 거예요. 그리하여 인류역사도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가운데 탄식의 역사노정을 거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체 지상천국을 건설할 있는 영원한 천국이념의 발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영원한 세계의 이념적인 기반인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연고로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떠나가셨습니다. 그리하여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점점 무너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5-67)


역사 전개의 원형이 인간타락의 모형과 경로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타락의 역사적 경로를 생각해 볼 때 어떠한 길을 거쳤겠습니까? 처음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음에 아담이 그랬고, 그 다음으로 그들의 자녀가 그랬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경로인 연고로 인류역사도 사랑을 잃어버리는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으로 사랑을 논의하고 나선 자가 누구였습니까? 에덴동산의 해와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담이었습니다.  다음이 가인 아벨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늘 앞에 처음 나타났던 인류의 종족이 걸어온 타락 역사의 원형이라는 것입니다. 이 타락 역사형이 인류역사 시초에 벌어졌기 때문에 인간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만우주를 통솔할 있는 주관적인 중심이요, 통솔적인 중심이요, 관용적인 중심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이념인 것입니다. 이 이념이 역사의 터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노정을 살펴보면, 원시시대에는 모계를 중심한 씨족사회였습니다. 이것은 맨 먼저 해와, 즉 어머니가 사랑을 논의했던 연고입니다. 이것이 부족사회를 거치면서 부계를 중심한 역사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형제를 중심한 형제주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내려온 형제의 입장에서 부부의 이념을 갖추어 나아가는 어떠한 것까지도 깨어지는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늘이 인간과 연락할 있는 사랑의 사다리가 끊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류는 부모의 사랑을 잃은 고아, 참다운 부부의 사랑을 잃은 고아, 참다운 형제의 사랑을 잃은 고아와 같은 입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진국가에서 먼저 이런 것이 종적으로 벌어졌는데 현재는 이런 것들이 세계적으로, 횡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탄과 상대적이고 횡적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타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역사적인 종말시대인 오늘날은 민주주의를 중심해서 평등주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으로 아담가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아벨은 해와의 대신 존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선진국가에서는 평등주의를 부르짖는 동시에 여성이 남자보다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때는 횡적인 면을 거쳐 종적인 면을 세워야 시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완전히 종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므로 깨지고 있는 세계적인 양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찾아나가야 길은 하늘이 제시하는 이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사랑의 길입니다. 이런 새 이념과 생명을 소개해 주는 사랑의 길을 찾아 나가는 역사노정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자신이 잃어버린 부모는 어떠한 부모였습니까? 잃어버린 그 부부는 어떠한 부부였습니까? , 잃어버린 자녀는 어떠한 자녀였습니까? 그들은 타락하지 않은 부모요, 타락하지 않은 부부요, 타락하지 않은 자녀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타락의 종족이 되었던 에덴의 슬픔을 박차버리고 에덴의 기쁨을 획득할 있는 하나의 무리가 위에 나타나야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 하나님의 6천 년 복귀섭리는 근본적으로 파멸의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5-69)


타락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탕감역사


타락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인류 역사는 탕감원칙에 의한 역사였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자녀에게로 주관권이 옮겨져 온 역사였습니다. 이제 역사적인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천지의 운세가 회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필연적인 운명노정에 처해 있는 인류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재에 와서는 남녀 평등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들로부터 대우받을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덴에서 어머니인 해와가 아담을 지배하던 것을 거꾸로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흘러온 역사는 정상적인 역사가 아니었고, 평면적인 역사가 아니었고, 상대적인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분별적이고, 일편적이고, 일방향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타락되어 떨어진 인간을 돌려 가지고 하나는 왼쪽, 또 하나는 오른쪽으로 갈라놓는 섭리를 했습니다. 이러한 좌우의 분립 형태는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서도 벌어지며 남자와 남자끼리, 국가와 국가끼리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좌라는 것은 그릇된 것을 상징하는 것이요, 우라는 것은 옳은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타락된 연고로 천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양심의 직고에 의해 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늘 앞에 굳건히 서야 되겠고, 만우주를 주관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만물의 주인공으로 결정될 수 있는 하나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력도 아니요, 이념도 아니요,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313절에 보면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 사랑의 길이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걸어가야 인간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그러한 말을 해주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적인 영과 외적인 육을 합하여 자녀의 입장을 나타낼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 백성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은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인류역사는 재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에 복귀과정이 다시 전개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고, 지상인간을 상대해야 할 성신이 땅에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성신은 지상에 있는 영적인 자녀를 품어서 에덴의 이념을 다시 성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성신이 강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신과 자녀의 명분을 가지고 신랑 되신 구주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구주를 찾아 헤매는 데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영육을 합하여 찾지 못하고 이념적인 면만 가지고 찾고 있습니다. 오늘날 도의 길이나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육을 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인들은 마음의 세계, 영의 세계를 찾아 헤매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자녀격인 성도들은 영육을 합한 형태를 갖추어서 영적인 어머니인 성신을 중심삼고 복귀를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아버지를 주관한 어머니는 거꾸로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자녀를 주관해야 합니다.


에덴의 소망은 영과 육을 합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영과 육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영과 육이 일치된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종적인 입장에만 설 것이 아니라 횡적인 입장에도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방성을 취하지 않고 일방적인 면만을 붙들고 나오다 보니 인간은 몸과 마음이 갈라졌고 마음과 영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성취의 날은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성신을 세우고 갔는데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재림의 약속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다시 와야 합니다. 그 재림의 이상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몸적인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찾아진 어머니는 타락된 어머니를 지배하여 몸적인 아버지의 자리를 복귀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5-71)


참부모를 찾아야 타락인간


예수님의 소원 성취는 영육이 합할 있는 하나의 이념세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만 비로소 영육을 갖춘 하나의 부모가 천지간에 나타납니다. 섭리의 법도를 두고 볼 때, 일방적인 역사관이 상대성을 갖춘 역사관으로 정립되는 그 날이 인류역사노정에 필연적으로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인류가 일방적인 면만을 취하면 슬픔의 세계에서 고민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 복귀의 운명길을 걷고 있는 우리 인류는 무엇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내 참 몸을 찾아야 하며, 이 몸의 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몸의 부모를 찾기 전에는 마음의 부모, 영의 부모가 나타날 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지의 창조가 외적인 것으로부터 이루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글을 때도 왼쪽부터 나가는 것입니다. 바른쪽부터 써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창조이념의 존재방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신음소리는 언제 끝날 것인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내 몸을 사랑해 줄 수 있는 부모를 찾는 그 한 날을 맞이하지 않고는 인류의 고통은 이 지구상에서 제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다 하여도 여러분은 육적인 참부모를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참부모가 나오지 않는 이상 참자녀가 있을 없는 것이니 아직까지 세상은 죄악 세상이요, 지옥의 세상이요, 고통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도 찾아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을 통해서 우리의 영과 몸을 찾아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영적인 참부모요, 마음적인 참부모로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영과 마음을 합한 부모의 입장에 서 계시는데 육적인 부모를 찾아 상봉하는 한 날을 인류 앞에 예고하셨습니다. 그 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날입니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모계시대를 거친 다음 부계시대를 거쳤고, 이제 형제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인간은 새로운 주의 주장과 제도를 들고 나오지만 거기에서 이상적인 상대, 이상적인 형제, 이상적인 자녀, 이상적인 부모가 나올 수 없다면 그 주의 주장과 제도는 깨져 나갈 것입니다. 만물보다 못한 자리로 밀려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심판의 한 날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렇게 , 오늘날 인간은 참부모를 찾아 헤매야 합니다. 실체를 가진 참부모는 새로운 이념과 비전을 가지고 인간을 찾아오셔야 합니다. 인간이 참부모를 모시고 사는 세계가 바로 이상세계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겨 놓은 것입니다. , 그리하여 재림이라는 명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에 처하여 여러분 자신을 이제 피조세계 앞에 세워놓고 공격해야 때가 왔습니다. 사탄을 대신하여 여러분 자신의 몸을 자신이 공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사탄을 대신하여 자신이 치고 나아가야 되는 것이 도의 길입니다. 자신의 몸을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 사랑의 길은 나 혼자 찾아 넘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개체는 역사적인 타락행로를 거쳐서 이 죄악의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시대적인 타락의 운세권 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은 혼자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역사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습니다. 거기에는 내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의 문제가 있고 사회,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 영계의 문제가 있습니다.


새로운 이념의 세계와 인연을 맺고 세계와 절충해야만 이념적인 사랑의 세계를 찾을 있다는 것입니다. 도의 길은 역경 속에서 싸우며 찾아 나오는 길입니다. 또한, 이것이 6천 년간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5-73)


하나님이 반겨줄 있는 인간


여러분은 6천 년 역사를 대표하는 제물들입니다. 따라서, 6천 년을 대표하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6천 년 동안 인간으로 하여금 제물을 바치게 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쫓겨날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쫓겨나던 자신들을 두고 슬퍼했습니다. 그것이 인류의 눈물의 기원이 되었고 고통과 질고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그런 아담 해와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쫓아내면서 쫓겨나던 그들의 슬픔보다 슬픔의 심정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쫓겨난 종족이요, 그 후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슬퍼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쫓겨나 있는 인간을 보시고 오늘도 슬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중심삼고 하늘을 배반하여 쫓겨났던 인간은 어떻게 해야 복귀되겠습니까? 내 슬픔이나, 내 억울함이나, 내 사망이야 있거나 없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과 억울함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회개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통곡하라는 것입니다. , 눈물로 출발한 역사의 기원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슬픔을 가지고 울어서는 안됩니다. 사망선에 떨어진 인간을 6천 년 동안 품어 주시고, 인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울어 주시고, 고통으로 슬퍼해 오신 하나님을 붙들고 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있다면, 하나님은 “오냐, 네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이 반겨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하나님이 인간 때문에 슬퍼하시고, 억울함을 당하시고, 고통당하셨던 모든 것을 탕감하고 해원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였습니까? 그분은 인류의 참아버지였습니다. 4천 년만에 하나님 대신 참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땅 위에 온 분입니다. 4천 년 동안 불쌍하게 허덕여 온 인류와 상봉하여 하나님 대신 그들을 붙안고 사랑하기 위하여 왔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인간은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죽이고 보니 자기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죽이고 나서야 자기의 참아버지인 알았다는 것입니다.


땅에 오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은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어 줄 참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예수님을 죽였을 망정 그분이 진실로 자기의 아버지인 알게 되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당이나 살인 강도라 할지라도, 목석 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가슴을 치고 통곡할 것입니다.


이렇게 ,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4천 년 동안 고생한 부모의 서글픈 심정을 몰랐던 인간들로 하여금 통곡하게 하는 하나의 자극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만난 자는 통곡해야 됩니다. 통곡하더라도 예수님이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참부모로 오셨는데 그 예수님을 죽인 것을 놓고 먼저는 하나님을 위하여 통곡하고, 오셨던 참부모를 위하여 통곡하고, 나아가 땅의 인류를 위하여 통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성도들은 어떠한 통곡을 해야 하느냐? 나를 위하여 통곡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가정을 위하여,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통곡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세계를 위하여, 하늘을 위하여, 성부·성자·성신을 위하여 통곡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된 전체의 세계를 주관하는 이념권 내에 참석할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을 죽였지만, 그 예수님이 참부모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참부모를 잃어버린 설움과 원통함을 느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본성이 인간에게 있었던 연고로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재림주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을 맞이해야 끝날의 성도들도 같이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 역사적인 눈물을 흘리고 시대를 대표하여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에 이러한 눈물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인간들은 오늘날까지 슬픔의 눈물은 흘렸지만 기쁨의 눈물은 흘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한 날을 인간들은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재림의 날이고 잃어버린 참부모를 찾는 날입니다. (5-75)


형극의 길을 거쳐오시는 참부모


여러분이 고대하고 있는 참부모님은 다만 십년간 준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간은 인간의 한 생애가 아니라 6천 년이었습니다. 오시는 데는 편안히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편안히 잠을 자고 쉬고 있을 그 시간에도 하늘은 여러분을 찾기 위해 애썼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거지의 모양, 빈민의 모양, 방랑자의 모양, 죄수나 핍박받는 자의 모양이나 비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해 가지고 인간 최하의 자리에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잠자는 시간에도 하늘은 눈물의 , 슬픔의 길, 폭풍우에 휩쓸리던 길, 잠시도 쉴 수 없던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그런 길이 예수님이 걸은 길이었고, 또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걸은 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편안히 먹고 자고 편안히 쉬는 자리에도 하늘의 슬픈 음성이 울리고 있고 하늘의 억울한 고통과 통곡소리가 울리고 있다는 서글픈 사실을 여러분이 느껴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참부모 앞에 사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마음을 붙안고 잠을 자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송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죄인 중의 죄인이요, 천지가 용납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사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나를 찾아 헤매고 있는 하나님의 사정을 여러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그런 사정을 알고 형제의 손을 붙들고 통곡할 알아야 합니다. 길가를 헤매는 거지를 보고 붙안고 통곡할 줄 알아야 하겠고, 어려운 노동자를 보아도 “어찌하여, 나의 형제가 저렇게 되었는가?” 하며 탄식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눈을 들어 그들을 바라볼 그들을 찾아 세우고 그들을 통해 나를 찾아 세워야 천륜의 역사노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만나는 사람마다 눈물을 갖고 대할 수 있는 그런 감정에 사무친 인간들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고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의 굶주림을 보고도 배불리 먹고 누워 있는 자는 심판받을 것입니다. 민족은 헐벗고 있는데 배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자들은 심판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타락한 인류가 해야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굶주릴지라도 형제의 굶주림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못 먹고 못 입을지라도 형제를 위하고 세계 인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세계 인류를 위하여 우시던 것을 나로 인하여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러한 성도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6천 년 역사노정에서 어느 한 때 그런 심정을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불러 준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하늘을 부모라 불러 주었고, 누가 인류를 참형제라 불러 주었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단을 인도하는 교직자들, 신앙의 노정을 걷고 있다는 교직자들, 그들의 마음은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하늘이 6천 년 역사를 두고 애타게 찾아왔고, 하늘의 어려움과 슬픔과 소원을 대신했던 사람들도 이런 길을 갔거늘,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해결지어야 할 타락의 원한에 사무쳐 있는 인류인 것입니다. (5-77)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있는 자리


자고 이래,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인물은 자기를 주장하고 나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사에 남아질 인물이라 할진대 그는 민족을 붙들고 나선 사람이요, 사회적인 인물이라 할진대 사회를 붙들고 나선 사람이요, 세계적인 인물이라 할진대 세계를 붙들고 나선 사람이요, 하늘적인 인물이라 할진대 하늘을 붙들고 나선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죄인 중에서도 부모를 죽인 용납받을 없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욕을 하거나 핍박을 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슬픔과 역사적인 분함을 느껴 감사해야 할 여러분입니다.


그러면서 욕하는 형제를 붙들고 눈물지을 있는 곳이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자기를 치던 자를 오히려 염려하고 그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 주었던 예수님의 심정, 이런 심정을 품고 가는 길이 참인간이 가는 전형적인 길이요, 골수에 사무쳐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죄인들입니다. 우리 모두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이러한 역사적인 제물을 원하고 있습니다. 제물은 받으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민이 기뻐한 후에 비로소 머리를 드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고 만민이 기뻐하기 전에 머리를 들었다면 깨어지게 마련입니다. 기독교가 만민을 위하여 봉사해야 할 사명을 지고 있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면, 만민을 위해 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면 개혁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요, 하늘의 황태자이신 예수님도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물로 왔던 연고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지상의 성도들이 기뻐하여도 제물인 예수님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민이 기뻐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족이 받아 모든 핍박을 바라보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반만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우리 민족은 갖은 고생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슬픔이 있어도 어디 가서 호소할 줄 몰랐고, 분함과 억울함이 있어도 호소할 줄 모르는 가운데 걸어나왔습니다. 그러면 민족을 붙들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아와 같은 이 민족이지만 우리끼리 손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민족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의 잘못이야 있든 없든 하늘이 허락한 같은 핏줄과 살을 가지고 태어난 형제이니 자기 개인의 사정을 넘어서서 부모의 역사적인 혈통과 심정에 결합되기 위해 아는 아량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합니다. 오늘날 그런 사람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피끓는 정열이 있다 할진대 정열을 어디다 기울일 것인가? 일신의 출세와 욕망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일개인의 한계권 내에서 종결될 것입니다. 인간의 본래 이념은 무한대의 선()을 넘고 넘어서 하나님을 붙들고 기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 본래의 이념을 위하여 그 정열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족이 거쳐온 역사노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할진대 섭리의 종국에 하나님은 어떠한 무리를 요구하실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울 줄 아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의 뜻에 엉키어 울고, 하나의 심정에 엉키어 울고, 하나의 행동에 엉키어 울면서 먼저 제물이 되겠다는 무리들입니다. 하늘은 그러한 무리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5-79)


인간이 찾아가야 최후의 목적점


이제 하늘을 중심하지 않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깨뜨려야 할 시대가 왔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깨뜨리고 그 대신 하늘을 중심한 부모의 사랑, 자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에서는 신랑 신부의 명사를 걸어 놓고 섭리해 온 것입니다.


타락된 인간들은 사랑을 잃어버린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인간들 앞에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지상에 다시 천적인 사랑을 복귀하려고 왔던 분이 예수님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영계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영적인 사랑의 기준을 세워 놓고 육적인 사랑을 복귀해 나가는 노정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상하가 있고, 전후가 있고, 좌우가 있습니다. 그 상을 대신한 것이 부모요, 하를 대신한 것이 자녀요, 전후를 대신한 것이 부부요, 좌우를 대신한 것이 형제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원칙입니다. 인간은 이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 중에서 전후의 관계에 있는 부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신랑 신부를 제일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신부를 찾는데 어떠한 심정으로 찾으려고 했느냐? 하나님을 대신한 신부, 자녀를 대신한 신부, 형제를 대신한 신부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신랑 신부를 보내시어 땅 위에 하나의 기준을 세우시려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 뜻은 신부를 중심삼고 상으로는 하나님, 하로는 자녀, 좌우로는 형제가 있어 그 전체가 사위기대의 형태를 이루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대표한 상대존재인 신부를 찾아 나온 역사가 2천 년 섭리노정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해야 일은 무엇입니까? 남자는 여성을 존중해야 하고, 여자는 남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여자는 남자를 대할 수 있고 남자는 여자를 대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분체(分體), 여자는 어머니의 분체입니다. 분신(分身)이라는 것입니다. 상호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개개인의 상대적인 성품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본연의 인간들이 걸어야 할 노정인 것입니다.


자식을 대할 때도 그들이 아무리 자기의 아들이라도 그를 아버지의 분신, 딸은 어머니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존중할 줄 아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상을 전개하여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총합시켜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던 이념을 마음에 품고서 자식을 붙안고 사랑할 아는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타락세계에 있는 자식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슬퍼하시던 그 감정에 “오냐! 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류가 고대하고, 만물이 고대하던 본연의 사람이 되라!” 하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참다운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은 만물을 대하고 우주를 대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자기가 찾던 신부는 하나님의 대신이요, 인류의 대신이요, 천추 만대 후손의 대신 존재라는 감정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랑 된 예수님의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신부를 찾는 날에는 하늘과 땅을 품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것입니다. 부모를 대해서도 마찬가지요, 자녀를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를 대신하고 자녀를 대신할 있는 일체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실체형을 갖춘 신랑 신부로서 상봉하는 날이 와야 합니다. 그 날이 와야 피조세계의 비극적인 모든 것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에 막혔던 모든 것이 전후, 좌우, 상하로 화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날이 우리 인류가 바라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곳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 한 곳을 찾아 나가려면 부모나 형제 혹은 자기의 상대를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로써 세계를 대신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랑의 심정을 갖추어 하늘땅 앞에 나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4천 년을 역사하시어 예수님과 성신을 세우신 것처럼 실체 신랑의 입장에서 실체 신부를 상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요, 이러한 실체적인 상대를 찾는 것이 인간이 걸어가야 목적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몸에 하나님이 들어와 일체로 화할 있는 이상동산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인간이 찾아 나아가는 최후의 목적점이요, 인간이 찾아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표준점이라는 것입니다.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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