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1권 9일
만민지원 통일세계 (훈독본)
날짜 : 1967. 8. 13(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mAYn1If5sqY&list=PLtan-zpeJeikOD5x4sJiSU6hdLc_Cy0m0&index=9
이 시간 말씀드릴 제목은 ‘만민지원 통일세계’입니다.
천추만대의 소원은 통일세계를 창건하는 것
만민이 원하는 통일세계라는 것은 과거의 사람은 물론 현재의 사람, 또 미래의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동경하는 세계입니다.
천추만대의 만민이 원하는 통일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과거의 수많은 군왕들은 약소민족을 흡수해서 하나의 통일된 왕국을 만들어 보겠다고 그들의 판도를 확장하는 데 급급했던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의 교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 미국 사람, 그리고 아프리카의 흑인들도 역시 통일을 원합니다. 이처럼 누구나 원하고 있는 통일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18-314)
지금 세계 만민은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가 통일되고 천주가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통일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통일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통일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통일시키지 못하면서 세계를 통일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세계를 통일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통일되지 못하는 한 그 통일은 불행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며, 결국에는 깨지고 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도 단지 이 세계만을 중심삼고 통일하려고 하신다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통일기준을 이루어 놓지 못하면 통일을 위한 해결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또, 그 구성된 모임 자체가 하나의 통일적인 실체로 규합될 수 있는 통일의 형태를 갖추기 전에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그러하듯이 이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통일을 바라기 전에 자아통일을 완성해야 하며, 우주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을 완성해야 합니다. 결국,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통일교회 자체가 통일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통일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각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싸우게 되면 언제든지 몸이 마음에게 먼저 싸움을 거는 것입니다. 마음은 가만히 있는데, 몸이 마음을 못살게 구는 것입니다. 남자의 몸이든, 여자의 몸이든 그 몸은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한 개체에 있어서 마음과 몸의 통일을 이루어야 되겠는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여러분이 “마음아, 몸아! 너희들 통일해라” 하면서 명령을 한다고 해서 마음과 몸이 통일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됩니다. (18-317)
하나님의 목표는 인간의 완전구원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왜 구원하려고 하시는 것이냐? 만민을 전부 분열시켜서 이 세상을 싸움터로 만들려고 구원하려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민이 통일되어서 서로 좋아하고, 서로가 하나의 목적 아래 화동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세계를 구상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평화를 고대하고 계신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말썽만 피우는 말썽꾸러기인 이 몸을 그대로 놔둔 채 통일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몸과 마음을 먼저 통일시켜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채 그대로 있어서는 통일이 될 수 없습니다.
몸 가운데는 싸움패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이것이 있게 된 원인은 타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개체를 두고 보더라도 선과 악의 두 목적을 지향하는 요소가 내 몸 안에 있습니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거기에 반하여 악을 지향하는 몸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짓지 못하면 수만 년 역사 가운데 원수의 괴물인 몸은 언제나 그 상태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이라면 비수를 가지고 인간의 썩은 부분을 제거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몸을 단번에 해치우시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우리 인간의 몸은 타락세계와 연락할 수 있는 안테나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몸은 인간세계의 죄의 근원입니다. 이런 말을 들어서 기분이 나쁜 사람들은 속죄해야 됩니다. 그러한 속죄의 역사가 지상에서 벌어지게 되면 통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통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단지 몸을 치면 되는 것입니다. (18-320)
종교의 근본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목적에 완결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본래에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과 일치되는 것이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기에 두 목적에 이끌려 살다가 보면 어느덧 백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평화를 가질 수 없고 행복이 깃들 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고해일 뿐만 아니라 고통과 비애 그리고 비참과 탄식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어져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지상의 인간에 대한 처리방법을 강구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처리방법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 가지고는 그 세계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천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 세계의 상도(傷悼)를 해결짓고 인간을 구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세워 놓으신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사람의 양심을 키워 주고 사람 속에 있는 나쁜 요소, 즉 악을 굴복시키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원수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원수입니다.
그래서 불교나 기독교에서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을 쳐서 주관하라고 가르칩니다. 내 육신을 부정하고, 생활을 부정하고, 악의 세상을 부정하고 나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 외에는 그 무엇도 섬기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육정을 따라가는 생활에서 벗어나 독신생활을 하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세계에 종교라는 것이 나와서 육신을 쳐서 주관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절대적인 선을 세울 수 있는 어떠한 주인이 인류역사의 종말에 나타나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마음이 육신을 완전히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입장에서 살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세워지고,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이룬다면 그 세계가 바로 지상천국이요,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세계입니다. 역사 속의 모든 전쟁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과정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18-320)
무한히 큰 인간의 마음
여러분은 마음이 선을 지향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갑에 돈이 백 원 있는데 불쌍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그러면 마음은 “야, 그 돈을 불쌍한 사람한테 줘라” 하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나서도 “너는 속에 내의라도 입었으니까 그 윗도리도 벗어 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마음이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마음 좋은 사람이 삼천만 동포에게 각각 2천만 원씩을 나눠주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야, 이제 너 그만큼 했으면 네 할 도리는 다했으니 이제 쉬어라” 할 것 같습니까? 마음이 그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네 나라를 구했으면, 세계가 있지 않느냐? 이 인류가 있지 않느냐”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계에 가서까지도 그렇게 하라고 마음은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마음이 얼마나 큽니까! 마음이 하나님보다 클까요, 작을까요? 마음이 말하기를 세계를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는 편안히 쉬어라 할 것 같습니까? 가만히 보니까 지구보다 더 큰 태양계가 있고, 태양계보다 더 큰 우주가 있고, 이 우주를 만든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저 하나님을 점령하라”고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18-322)
이렇게 엄청난 사람의 마음을 중심삼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세계를 점령해도 행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점령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게 될 때 비로소 마음이 그곳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만 점령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점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제일 가까운 하나님과 인간간의 사랑의 내용을 보다 철저히 가르쳐 주는 종교일수록 고차적인 종교요,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를 비교해 볼 때 기독교가 그런 내용을 가장 많이 품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가르칩니다. 또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들은 신부라고 가르칩니다. 신랑 신부가 된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세우려고 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하나님이 세운 세계적인 종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기독교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믿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악한 마음을 빼 버릴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안 믿어도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팽개친 인간이기에 그 사랑을 다시 찾지 않으면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밝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통일교회를 세워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점령하는 날에는 세계의 판도가 바뀌게 됩니다. 요즈음 하나님의 사랑을 빼 놓고 이상과 행복을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망할 무리입니다. 온 세계 만복의 근원이요, 모든 힘의 총괄적인 중심의 모체요, 절대적인 통일의 실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통일세계에 가담할 수 있고 통일세계의 역군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18-326)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는 방법
사람의 마음과 몸을 통일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는 이 몸을 옥살박살내서 점령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몸을 치지 않고 통일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강제로 몸을 주관하는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이 마음에다 주사를 놔서 힘을 한 2-3배쯤 늘린다면 몸을 끌고 가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열심히 잡아끌면서 갈 수 있습니다. 자동차 튜브에다 공기를 강하게 불어넣으면 크게 부풀어오르는 것과 같이 마음에도 힘을 강하게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이 강하게 되겠지요? 그런 다음에 이 마음과 몸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이와 같이 사정없이 몸을 때려서 점령하는 방법과 마음에 힘을 가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힘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주고받아서 생기는 폭발적인 힘을 하나님께 연결만 시키면 그것은 몇 배, 몇 백배, 몇 천배도 통일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 만민이 고대하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요,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동시에 천국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통일을 향해서 올라가는 승강기이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인 비결인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 전체를 통일시켜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사랑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슬퍼하기 위해서 피조물을 창조하셨겠습니까? 아니면, 기뻐하기 위해서 창조하셨겠습니까? 플러스가 되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플러스가 되면 기쁨이 생깁니다. 그러면 기쁨의 대상에게 사랑이 흘러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통일의 원천이 됩니다. 이 사랑을 들고 나오게 될 때는 만국을 소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요, 만국을 품고 영원히 끌고 가더라도 더 끌어 주었으면 하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르쳐 주는 진리로 말미암아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해 주고, 그 사랑을 소유하여 자신이 그 사랑 앞에서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관계를 맺은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서 맺는 사랑의 인연은 본성의 인간이 그리워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전부 다 지상에서 녹아 없어질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면 지상에서 아무리 금실이 좋던 부부도 남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본래부터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결합해서 출발한 부부라면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18-329)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들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완전히 일체가 된 부부가 들어가는 곳이요, 그 일체가 된 부부에 의해서 태어난 자녀들,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일체가 된 가정과 종족 그리고 민족을 전부 다 거느리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가정을 갖지 못한 예수님은 지금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낙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진 부부가 아니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상대적 이념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전부 다 들어가야 되고, 자기 종족과 나라가 전부 다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무슨 힘이 있어야 되느냐? 마음에다 펌프질을 강하게 해서 몸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됩니다. 그러한 힘을 길러서 이미 태어난 사람들을 통일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서만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진리는 세계 만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그 사랑을 갖게 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줍니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을 막론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만국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은 나의 몸 마음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에 나오면 남처럼 멀게 지내던 사람도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육신의 부모가 아닌 부모님을 모시고 서로 다른 형제,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민족이 더 강하게 규합될 수 있는 고차적인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곳을 ‘만민지원 통일세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이러한 소망의 요소를 갖출 수 있습니다. (18-332)
우리가 가는 길
통일교회는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과정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가르쳐 줍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현실을 알 수 없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하나님을 모르고는 오늘의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통일용사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 숨어 있는 희로애락을 찾아서 현실에 표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인류에게 달려가겠다고 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통일의 절대 요건이란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처럼 엄청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하늘의 용사가 되고 하늘의 전령이 되어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여 나가야 합니다. 승리가 깃드는 그 나라에 가서 머무르고, 승리가 깃드는 그 세계에서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용사들은 싸움의 행로가 아무리 길고 행군이 지루하다고 하더라도 그 길에서 낙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만민지원 통일세계’의 숙원을 풀기 위하여 선두에 서서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소신은 여러분을 세워 놓고 혼쭐내어 때려서라도 그 세계에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안 가려고 하면 목을 매서라도 끌고 가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민족을 살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개척자의 사명을 견지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사랑의 세계와 선의 세계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의 어려움과 악을 점령하는 하늘 용사들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18-334)*
천일국 훈독경 제11권 9일, 원문
만민지원 통일세계
날짜 : 1967. 8. 13(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이 시간 말씀드릴 제목은 ‘만민지원 통일세계’입니다.
천추만대의 소원은 통일세계를 창건하는 것
만민이 원하는 통일세계라는 것은 과거의 사람은 물론 현재의 사람, 또 미래의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동경하는 세계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천추만대에 이르도록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추만대의 만민이 원하는 통일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런 중에 ‘통일’이라는 간판을 들고 나온 통일교회가 이 한국에서 생겨났으니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은 과거에도 모두가 바라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수많은 군왕들은 약소민족을 흡수해서 하나의 통일된 왕국을 만들어 보겠다고 그들의 판도를 확장하는 데 급급했던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의 교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 미국 사람, 그리고 아프리카의 흑인들도 역시 통일을 원합니다. 이처럼 누구나 원하고 있는 통일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라가 가까워요? 나라도 가깝기는 하지만 제일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제일 가까우냐 할 때, 어떤 사람들은 부부 사이가 제일 가깝다고 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 사이가 제일 가깝다고도 할 것입니다. 물론, 부부 사이도 가깝고 부모와 자식 사이도 가깝지만 그런 사이보다 더 가까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부모 때문에 서럽다, 형제 때문에 서럽다, 혹은 자식 때문에 서럽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서럽다는 말도 결국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좋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상대적인 여건을 통해야 그런 결과가 나오겠지만, 결국 그것도 자신의 관념에서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 제일 서러운 것, 제일 좋은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18-314)
지금 세계 만민은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가 통일되고 천주가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통일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통일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통일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즉, 외적 세계가 통일이 되어서 행복의 꿈나라에 잠길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세계가 전개된다고 할지라도 그 세계가 자신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통일시키지 못하면서 세계를 통일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세계를 통일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통일되지 못하는 한 그 통일은 불행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며, 결국에는 깨지고 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도 단지 이 세계만을 중심삼고 통일하려고 하신다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의 변천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시대의 존망에도 영향 받지 않는 확고부동한 통일의 주체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완전히 이루어진 통일세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도 그러하시거늘 자녀로 지음을 받은 인간도 역시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통일기준을 이루어 놓지 못하면 통일을 위한 해결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또, 그 구성된 모임 자체가 하나의 통일적인 실체로 규합될 수 있는 통일의 형태를 갖추기 전에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그러하듯이 이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통일을 바라기 전에 자아통일을 완성해야 하며, 우주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을 완성해야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통일교회 자체가 통일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통일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통일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통일을 원하고 있습니까? 자기 자신을 통일하는 데는 나쁜 방향으로 통일하는 것과 좋은 방향으로 통일하는 것으로 두 가지의 방향이 있습니다. 나쁜 방향으로 통일하는 데는 연구도 필요 없고, 생각도 필요 없고, 궁리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통일은 급속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방향으로 통일하는 데는 많은 연구와 생각과 궁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매우 힘이 듭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절대로 혼자 있을 수 없습니다. 마음은 반드시 몸과 더불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없는 자리에는 마음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없을 때는 마음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불행하지만 할 수 없이 영계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은 몸과 완전히 하나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각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은 서로 친구가 될까요, 싸움패가 될까요? 만약 친구가 되지 못하고 싸움패가 된다면, 어느 것이 싸움의 주인공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 싸우게 되면 언제든지 몸이 마음에게 먼저 싸움을 거는 것입니다. 마음은 가만히 있는데, 몸이 마음을 못살게 구는 것입니다. 남자의 몸이든, 여자의 몸이든 그 몸은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한 개체에 있어서 마음과 몸의 통일을 이루어야 되겠는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여러분이 “마음아, 몸아! 너희들 통일해라” 하면서 명령을 한다고 해서 마음과 몸이 통일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됩니다. (18-317)
하나님의 목표는 인간의 완전구원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왜 구원하려고 하시는 것이냐? 만민을 전부 분열시켜서 이 세상을 싸움터로 만들려고 구원하려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민이 통일되어서 서로 좋아하고, 서로가 하나의 목적 아래 화동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세계를 구상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은 만민구원을 목적으로 삼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평화를 고대하고 계신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말썽만 피우는 말썽꾸러기인 이 몸을 그대로 놔둔 채 통일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만민이 바라고 소망하는 이상세계, 통일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먼저 통일시켜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채 그대로 있어서는 통일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 이 둘 중에 하나는 싸움패입니다. 여러분, 싸움패를 좋아합니까? 싸움패라면 누구나 기분 나빠합니다. 싸움을 하지 않는 평화주의를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몸 가운데는 싸움패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이것이 있게 된 원인은 타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개체를 두고 보더라도 선과 악의 두 목적을 지향하는 요소가 내 몸 안에 있습니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거기에 반하여 악을 지향하는 몸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짓지 못하면 수만 년 역사 가운데 원수의 괴물인 몸은 언제나 그 상태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이라면 비수를 가지고 인간의 썩은 부분을 제거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훌륭한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하나님을 바랍니까? “몸아, 죄 많은 세상에서 이 만큼이라도 남아지기 위하여 얼마나 고생했느냐. 공로가 많았다” 하고 등을 두드려 주시는 하나님을 바랍니까? 아니면, 무자비하게 이 몸을 처치하시는 하나님을 바랍니까? 어떠한 하나님이 좋을 것 같습니까?
이 몸을 단번에 해치우시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우리 인간의 몸은 타락세계와 연락할 수 있는 안테나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몸은 인간세계의 죄의 근원입니다. 이런 말을 들어서 기분이 나쁜 사람들은 속죄해야 됩니다. 그러한 속죄의 역사가 지상에서 벌어지게 되면 통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통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단지 몸을 치면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두 목적을 지닌 사람을 지으셨다면 그 하나님은 논리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두 개의 목적을 가지고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 개의 목적을 동시에 지니고는 존재할 수 없고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두 가지의 목적을 갖게 된다면 한 몸이 두 곳을 동시에 갈 수 없기에 먼저 두 목적이 서로 싸움을 해야 됩니다.
인생행로를 왜 고해(苦海)라고 하느냐?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이 두 목적세계의 기로에 서서 어느 한 곳을 결정지어서 가야 할 숙명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민거리를 타개하기 위한 싸움이 남아졌기 때문에 인생행로는 고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18-320)
종교의 근본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목적에 완결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본래에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과 일치되는 것이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기에 두 목적에 이끌려 살다가 보면 어느덧 백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평화를 가질 수 없고 행복이 깃들 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고해일 뿐만 아니라 고통과 비애 그리고 비참과 탄식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어져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지상의 인간에 대한 처리방법을 강구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처리방법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돈과 권세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지상에 종교를 세우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라는 것은 만민에게 필요한 것이냐? 아니면, 어떤 특수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냐?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늙어 죽게 되었을 때 교회에 찾아가서 그저 예수님을 믿다가 천당 가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천당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통일된 하나님으로서 수천 년을 이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의 요소와 일치될 수 없는 사람은 통일된 세계인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 가지고는 그 세계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천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 세계의 상도(傷悼)를 해결짓고 인간을 구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세워 놓으신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어떠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냐? 종교는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다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에게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내용을 모르고 죽었을 뿐입니다. 또 미래의 사람들도 알아야 하며, 그들에게도 필요할 것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사람의 양심을 키워 주고 사람 속에 있는 나쁜 요소, 즉 악을 굴복시키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원수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원수입니다.
그러면 고차적인 종교란 어떠한 것이냐? 세상과 타협하는 종교는 시시한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는 결국 망하고 맙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의 고빗길을 모조리 청산할 수 있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종교일수록 선에 가까이 접하는 고차적인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나 기독교에서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을 쳐서 주관하라고 가르칩니다. 내 육신을 부정하고, 생활을 부정하고, 악의 세상을 부정하고 나서야 됩니다. 외적인 전체를 부정하고 나서는 것이 참된 종교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 외에는 그 무엇도 섬기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육정을 따라가는 생활에서 벗어나 독신생활을 하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세계에 종교라는 것이 나와서 육신을 쳐서 주관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절대적인 선을 세울 수 있는 어떠한 주인이 인류역사의 종말에 나타나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는 선한 세계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에는 재림사상이 있으며 천국을 동경하는 이상세계와 접경을 지어 놓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같은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마음이 육신을 완전히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입장에서 살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세워지고,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이룬다면 그 세계가 바로 지상천국이요,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 세계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합니다. 역사 속의 모든 전쟁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과정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인류역사에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 종교로 말미암아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육신을 정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망했고, 육신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망했고, 육신으로 말미암아 이 인류가 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육신은 원수의 모태요, 죄악의 근본뿌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몸을 치는 것이 지금까지 종교의 근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40일 금식을 통하여 처참하게 몸을 쳤던 것입니다. 몸은 높아지기를 원하고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데, 종교는 몸에게 “복종하고 순종해라! 죽어서 제물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전부 반대로 가르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을 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육신을 침으로써 세계적인 밧줄을 타고 나가기 위함입니다. (18-320)
무한히 큰 인간의 마음
여러분은 마음이 선을 지향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갑에 돈이 백 원 있는데 불쌍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그러면 마음은 “야, 그 돈을 불쌍한 사람한테 줘라” 하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나서도 “너는 속에 내의라도 입었으니까 그 윗도리도 벗어 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마음이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마음 좋은 사람이 삼천만 동포에게 각각 2천만 원씩을 나눠주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야, 이제 너 그만큼 했으면 네 할 도리는 다했으니 이제 쉬어라” 할 것 같습니까? 마음이 그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네 나라를 구했으면, 세계가 있지 않느냐? 이 인류가 있지 않느냐”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계에 가서까지도 그렇게 하라고 마음은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마음이 얼마나 큽니까! 마음이 하나님보다 클까요, 작을까요? 마음이 말하기를 세계를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는 편안히 쉬어라 할 것 같습니까? 가만히 보니까 지구보다 더 큰 태양계가 있고, 태양계보다 더 큰 우주가 있고, 이 우주를 만든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저 하나님을 점령하라”고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도 그런 면에서는 같다는 것입니다. (18-322)
이렇게 엄청난 사람의 마음을 중심삼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세계를 점령해도 행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점령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게 될 때 비로소 마음이 그곳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만 점령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점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아가씨라도 한 나라의 총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나이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아가씨는 그 나라에서 첫째가는 여인이 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아가씨라도 그 아가씨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그 아가씨를 초등학교 졸업생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부인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아가씨가 대통령의 사랑을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대통령과 동반적인 가치를 지니고 그 자리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권위와 권한을 갖게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그와 같이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당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우주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본질적인 터전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천 년의 역사가 흘러 왔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제일 가까운 하나님과 인간간의 사랑의 내용을 보다 철저히 가르쳐 주는 종교일수록 고차적인 종교요,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를 비교해 볼 때 기독교가 그런 내용을 가장 많이 품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가르칩니다. 또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들은 신부라고 가르칩니다. 신랑 신부가 된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세우려고 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하나님이 세운 세계적인 종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기독교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믿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악한 마음을 빼 버릴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안 믿어도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팽개친 인간이기에 그 사랑을 다시 찾지 않으면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밝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통일교회를 세워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점령하는 날에는 세계의 판도가 바뀌게 됩니다. 요즈음 하나님의 사랑을 빼 놓고 이상과 행복을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망할 무리입니다. 온 세계 만복의 근원이요, 모든 힘의 총괄적인 중심의 모체요, 절대적인 통일의 실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통일세계에 가담할 수 있고 통일세계의 역군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거기까지 이른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런데 마음은 어찌하여 현실을 부정하느냐? 부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현실을 부정하고 몸을 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희망봉의 표준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세계통일이 가능합니다. 그들을 빼놓고는 통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바탕을 점령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나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18-326)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는 방법
사람의 마음과 몸을 통일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는 이 몸을 옥살박살내서 점령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몸을 치지 않고 통일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강제로 몸을 주관하는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마음은 허풍선같이 한 번도 몸과 대등하게 싸워 보지 못하고 번번이 져 왔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에다 주사를 놔서 힘을 한 2-3배쯤 늘린다면 몸을 끌고 가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열심히 잡아끌면서 갈 수 있습니다. 자동차 튜브에다 공기를 강하게 불어넣으면 크게 부풀어오르는 것과 같이 마음에도 힘을 강하게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이 강하게 되겠지요? 그런 다음에 이 마음과 몸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이와 같이 사정없이 몸을 때려서 점령하는 방법과 마음에 힘을 가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힘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주고받아서 생기는 폭발적인 힘을 하나님께 연결만 시키면 그것은 몇 배, 몇 백배, 몇 천배도 통일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 만민이 고대하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요,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동시에 천국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통일을 향해서 올라가는 승강기이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인 비결인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이 없이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왜 사랑을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힘이 개체를 위하는 힘보다 강할수록 더 이상적인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완전히 하나로 얽어매는 그것은 사랑의 밧줄입니다. 쇠로 만든 줄은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어 끊어지지만, 사랑의 밧줄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는 밥이나 돈으로 얽어맬 수 없습니다. 오직, 부자관계의 사랑으로만 얽어맬 수 있습니다.
형제끼리 하나되는 것도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간에도 사랑이요, 한 가정을 중심삼고 친척간에 하나되는 데도 사랑이요, 종족과 민족을 하나되게 하는 것도 사랑이요, 한 나라 혹은 세계를 하나되게 하는 것도 사랑이요,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되게 하는 것도 오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 전체를 통일시켜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완전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사랑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슬퍼하기 위해서 피조물을 창조하셨겠습니까? 아니면, 기뻐하기 위해서 창조하셨겠습니까? 플러스가 되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플러스가 되면 기쁨이 생깁니다. 그러면 기쁨의 대상에게 사랑이 흘러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통일의 원천이 됩니다. 이 사랑을 들고 나오게 될 때는 만국을 소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요, 만국을 품고 영원히 끌고 가더라도 더 끌어 주었으면 하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면 할수록 기쁨이 불어납니다. 사랑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어느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멋진 사랑입니까!
이러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르쳐 주는 진리로 말미암아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사랑이 있으되 내게는 필요 없는 사랑입니다. 나를 보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모르면 그 사랑은 깨어지기 쉽습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수없이 들어도 또 듣고 싶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시조가 때 아닌 때에 사랑의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해 주고, 그 사랑을 소유하여 자신이 그 사랑 앞에서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통일이라는 것은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끌고 가는 것이고, 나로 말미암아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사방에서 전부 다 몰려듭니다. 천하일색의 미인이 있으면 천하의 모든 남성이 관심을 갖고 몰려들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한번 들어오면 달라붙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관계를 맺은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서 맺는 사랑의 인연은 본성의 인간이 그리워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전부 다 지상에서 녹아 없어질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면 지상에서 아무리 금실이 좋던 부부도 남이 되고 맙니다. 틀림없이 갈라집니다. 그러나 본래부터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결합해서 출발한 부부라면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18-329)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들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완전히 일체가 된 부부가 들어가는 곳이요, 그 일체가 된 부부에 의해서 태어난 자녀들,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일체가 된 가정과 종족 그리고 민족을 전부 다 거느리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가정을 갖지 못한 예수님은 지금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낙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진 부부가 아니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상대적 이념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전부 다 들어가야 되고, 자기 종족과 나라가 전부 다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전부 다 천국 가는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문이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 문이 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천국 문을 열기 위해 예수님이 왔지만 땅 위에서 그 상대적인 실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사랑에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상대적인 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수고의 노정을 걸어오면서 천국 문이 열릴 그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재림하는 날에 만민 중에서 하나의 신부를 택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무슨 힘이 있어야 되느냐? 마음에다 펌프질을 강하게 해서 몸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됩니다. 그러한 힘을 길러서 이미 태어난 사람들을 통일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서만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진리는 세계 만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그 사랑을 갖게 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줍니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을 막론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만국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 선생’ 하게 되면 높은 자리에 앉아서 호령이나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에 와 본 사람들은 분위기가 너무 자유스러워서 위가 아래 같기도 하고 아래가 위 같기도 할 때가 있어서 곤란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그저 감투나 씌어 놓고 춤이나 추려고 그러신 것 같습니까?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서 개척하고 건설한 세계를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볼 때 선생님이 진실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누가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해도 역사적인 산 증거가 태산 같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는 남편이 문제가 아니요, 가정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義)를 구하는 이상(理想) 앞에서 천하가 울 때가 있으니 그때를 위하여 충효의 절개를 천세만세에 기릴 수 있는 자체로서 나서는 사람들이 통일교인들입니다. 때문에, 통일교인의 가치는 세상적인 성공이나 희망 혹은 행복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통일은 나의 몸 마음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에 나오면 남처럼 멀게 지내던 사람도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육신의 부모가 아닌 부모님을 모시고 서로 다른 형제,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민족이 더 강하게 규합될 수 있는 고차적인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곳을 ‘만민지원 통일세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이러한 소망의 요소를 갖출 수 있습니다. (18-332)
우리가 가는 길
통일교회는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과정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가르쳐 줍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현실을 알 수 없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하나님을 모르고는 오늘의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통일용사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 숨어 있는 희로애락을 찾아서 현실에 표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인류에게 달려가겠다고 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통일의 절대 요건이란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한때는 세상 사람들의 핍박이 벌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비난과 비소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조금만 더 가게 되면 잘못된 모든 사실들을 대중매체를 통하여 선포할 것입니다. 그때에 선생님한테 마이크를 사흘만 맡겨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처럼 엄청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하늘의 용사가 되고 하늘의 전령이 되어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여 나가야 합니다. 승리가 깃드는 그 나라에 가서 머무르고, 승리가 깃드는 그 세계에서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용사들은 싸움의 행로가 아무리 길고 행군이 지루하다고 하더라도 그 길에서 낙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만민지원 통일세계’의 숙원을 풀기 위하여 선두에 서서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소신은 여러분을 세워 놓고 혼쭐내어 때려서라도 그 세계에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안 가려고 하면 목을 매서라도 끌고 가려는 것입니다.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지금은 잘 모르지만 알고 보면 사실은 걱정이 많은 길입니다. 편안히 잠잘 날이 없고, 편안하게 앉아서 밥 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전체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힘을 남겨 두어서는 안됩니다. 조금이라도 퍼부을 기력이 남았으면 계속해서 전진해야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열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열 사람을 위해서 선생님은 말씀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 길은 단순한 의식혁명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타락한 조상으로부터 받은 심정적인 내용을 고차원의 사랑의 세계로 회오리바람과 같이 옮기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에는 쉴 사이가 없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노릇을 그 누구에게 대신하라고 해도 못 합니다. 세계의 어떤 유명한 박사라도 못 합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일꾼으로 쓰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민족을 살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개척자의 사명을 견지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사랑의 세계와 선의 세계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의 어려움과 악을 점령하는 하늘 용사들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18-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