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는 내 나라다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8일)

훈독왕 | 20250501074555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8일

아버지의 나라는 내 나라다 (훈독본) 

날짜 : 1990. 9. 2(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https://www.youtube.com/watch?v=ed-XEEOrk3Y&list=PLtan-zpeJeilD6pJZCkogCwve2117SlW6&index=8

 


사랑은 일방통행이고 영원하고 유일한 것이기를 원해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온 세계 인류가 추구한 중심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철학에서도 해결하려고 하는 중심문제입니다. 신이 있느냐, 절대자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겁니다.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면 절대적인 평화가 거기에 있을 성싶고 절대적인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이고 유일 특권적인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보면 제일 좋은 것과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제일 절대적인 것, 제일 귀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인연을 맺고 싶어합니다. 세계에 그럴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다고 하면 모든 사람은 그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인연을 맺어서 가정 가운데서도 부부 사이에 갖다 두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나를 중심삼고 제일 가깝고 제일 좋고 제일 행복스런 자리에 갖다 두고 싶다는 것은 우리 집을 중심삼고 보면 부부의 관계에 종착됩니다. 


그러면 부부관계에서는 무엇을 갖고 싶으냐?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개념이 나옵니다.


그 사랑이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은 일방통행이고 영원하고 유일한 것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205-196)

사랑의 한계성

사랑이 우리 인류의 평화의 기지, 행복의 기지, 희망의 기지라고 하게 될 때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어디로 가시고 싶겠느냐? 하나님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싶겠느냐? 사랑하는 부부, 남자 여자가 진짜 사랑하는 곳에 계시고 싶고, 부자가 진짜 사랑하는 곳에 있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서 바라시는 것이요,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서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이 무엇이냐? 어떤 사랑이냐 이겁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세계의 최고가 되고 싶지요? 그러면서 사랑은 언제나 내 발 아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끌고 다닐 수 있는 사랑을 원해요, 사랑이 여러분을 끌고 다니기를 원해요? 이건 중요한 내용입니다. 사랑이 나를 컨트롤하고, 사랑이 나를 끌고 다니기를 원할 것입니다.

 

사랑이 간섭할 수 있는 내용은 우주적이라는 개념을 딱 집어넣으면 다 해결됩니다. 사랑을 싫다고 하는 사람은 “나는 그런 것이 싫다” 하겠지만, 사랑의 한계성을 몰라서 그럽니다. 얼마나 큰지 모르고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순응하다가 보면, 울면서라도 따라가다가 보면 잔칫집으로 갑니다. 싫다고 하면서 가 보니까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우주와 동반되고 우주의 최고와 더불어 관계를 맺으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자신이 그것에 관여하고 이렇게 저렇게 했다가는 모든 면에서 손해가 납니다. 


지금까지 미국 여자들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었어요? “나만을 위한 사랑, 내가 좋아하는 사랑만을 좋아하지 사랑이 좋아하는 건 싫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고독단신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사랑의 개념에는 우주를 포괄하고 전체를 화합시킬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의 사랑은 하늘땅의 모든 것들이 문을 열고 환영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랑의 개념과 정반대입니다. “나를 따라라, 요만한 문으로 빠져나가라” 하니까 비참한 일이 벌어집니다. 미국 여자들은 마음이 얼마나 좁은지 자기제일주의입니다. 남편을 보고 거기를 통과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큰 남편이 통과하겠어요?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205-198)

행복과 희망 그리고 평화는 나로부터

행복과 희망 그리고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지식이나 돈 혹은 출세, 그런 것들은 언제나 변하더라도 나에게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란 것이 변한다면 남자도 깨져 나가고, 여자도 깨져 나가고, 가정도 깨져 나가고, 다 깨져 나갑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은은한 가운데서 우러나 자연스레 웃는 얼굴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고 웃고 그 모습을 가다듬어서 표시하는 것은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동적인 사랑과 아름다운 사랑 중에서 어떤 것이 좋아요? 아름답다면 머리도 아름답고 사방이 다 아름다워야 합니다. 환경이 다 맞아야 합니다. 매혹적이란 것은 일방적입니다. 특이한 표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을 조화시킵니다. 이것은 주체적인 개념입니다. 조화되는 데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혹적인 여자와 아름다운 여자 중에서 어떤 것이 좋아요? 매혹적인 것은 한때 필요합니다. 매혹은 한때 갖고 싶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한 것입니다. 

화장을 해서 매혹적으로 눈을 새파랗게 그리고 헤헤헤 하고 웃는 사람과 화장도 자연스럽게 하고 모든 세포가 춤을 추며 웃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아름답겠어요? 그리고 손톱을 길러 새빨갛게 칠해 가지고 웃는 것과 아무것도 칠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귀해요? 자연스러운 것이 귀합니다. 


나무가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작년에도 푸르고 금년에도 푸르니까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 하겠지만, 단 한 가지의 철학이 있습니다. “나는 그러면서 자라고 있는 거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훌륭하고 멋진 거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희들은 화장으로 치장하여 자랑하고 결혼한다고 좋아하다가도 자꾸 깨져 나가고 울고불고 점점점 작아지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나 남자가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같은 멋을 갖고도 발전하면서 모든 면에서 전체가 주목하는 대상이 되는 거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우주의 사랑이 있다면 그런데 관심을 갖습니다. (205-200)

영원한 행복과 평화의 기지

여자의 유토피아는 남자를 내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여자의 행복은 남자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고, 여자의 평화는 남자를 떠나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의 사이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암만 잘나고 여자가 암만 잘났더라도 상대가 없으면 안됩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남자를 만남으로써 사랑을 알고, 여자를 만남으로써 사랑을 찾습니다. 그 사랑이 유토피아의 기원이요, 행복과 평화의 기지입니다.


그렇지만 잘났건 못났건 누구를 막론하고 변하는 사랑을 원치 않고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원합니다. 그처럼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갖겠다는 사람들이 변해 가지고 사랑을 찾는다면 그것처럼 불결하고 죄악 된 것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남자와 여자가 되어야지 언제나 변하면서 변치 않는 사랑을 갖겠다는 것은 변치 않는 것에 대한 모독이고 침범이고 침해입니다.


여러분은 매시간, 매분마다 변합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 절대적인 행복이라든가 사랑이 찾아온다면 그 행복이나 사랑은 미친 것입니다.


행복이라든가 영원한 기쁨이라고 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여러분과 같이 있기를 바라지만 같이 있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존재인 하나님한테 절대적인 사랑이 있어서 절대적인 평화와 절대적인 행복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변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절대적인 행복의 기지가 될 수 있고 사랑의 이상적인 기지가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변하는 기지라면 불변의 사랑이 거기에 머물 수 있어요? 없습니다. 불변의 평화가 거기에 있겠어요? 없습니다. 불변의 기쁨이 거기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절대적이고 불변의 표준입니다. 하나의 중심입니다. 거기서부터 불변의 사랑, 불변의 평화, 불변의 행복, 불변의 기쁨이 연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시 360도 변하고 변합니다. 공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행복을 찾고, 또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모두 허사였습니다. 문제는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 있습니다.


참사랑은 어디든지 있습니다. 참국민의 사랑은 내가 변하지 않고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는 것이요, 참개인의 사랑은 내가 변하지 않고 친구를 영원히 대하겠다고 하는 데 있는 것이요, 참사랑은 아내로서 남편을 영원히 대하겠다고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남편으로서 아내, 아버지로서 자식,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영원히 대하겠다고 하면서 영원의 개념을 심어 주는 데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변치 않는 영원성의 기반 위에서 모든 행복의 기원이 결탁되고 인연됩니다.

 

하나님이 변치 않는 주체이기 때문에 변치 않는 사람을 만드시려는 것이 구원의 도리요, 그것이 종교의 목적이요, 그것이 모든 이상의 종착점이 됩니다. (205-202)


하나님의 나라는 변하지 않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어

변하는 것과 안 변하는 것이 어떻게 달라요?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 여러분은 “변해야 어디든지 마음대로 가고, 영화도 보러 가고, 춤도 추러 가고, 술도 마실 수 있는데…. 이거 어떻게 살아먹겠노” 하면서 불평하지 않아요?

 

항상 변하는 사람이 술을 잘 먹습니다. 춤추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춤을 추어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천 년을 있으면 어떻겠어요? 그 춤이 얼마나 멋지겠느냐 이겁니다. 그렇게 천 년을 참는다면 안 가 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당장 나부터 가 봅니다. 하나님도 가 보실 것입니다.


영원한 웃음을 웃는다면 어때요? 영원한 웃음을 웃는다면 가 보고 싶겠어요, 안 가 보고 싶겠어요? 옷 한 벌을 갖고 천 대를 입었다고 할 때 가 보고 싶어요, 안 가 보고 싶어요? 가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본성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그리워합니다.


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변하지 않는 것은 배척받지만,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의 밥이 된다는 것입니다. 흡수당합니다. 그러니까 지루하더라도 참는 사람이 주인이 되고, 변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종이 되고 밥이 됩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 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모독입니다. 나도 변치 않아야 됩니다. 변치 않는 사랑 앞에 변하는 사랑을 찾는 것도 모독입니다. 변치 않는 평화의 주체 앞에 변하는 평화를 찾는 것도 모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지옥과 천국은 누가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는 것입니다. 지옥도 내가 갑니다. 내가 결정합니다. 그러니까 불평을 못 합니다. 불평할 수 없습니다. 지옥 가서도 불평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데 절대적인 행복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나라, 아버지의 나라가 어디서부터 시작되겠느냐 할 때 개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 그 나라가 변하는 나라냐, 변하지 않는 나라냐? 변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 가겠다는 사람은 변하는 사람이겠어요, 변치 않는 사람이겠어요?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존재라면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이 영원한 친구로 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탄식이 있을 수 있겠어요?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거기에 있고 싶은 것입니다. (205-204)

온 우주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부부로 생활하게 될 때 변치 않는 환경에서 변하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남편이라든가 환경을 어지럽히는 것은 큰 죄입니다. 내 기분이 나쁘다고 그 감정을 드러내 변치 않는 좋은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들은 친구한테 돈을 꿔 주고도 받으러 가서는 말도 못 하고 앉아 있습니다. 친구 집에 가서 그 집이 자기 집보다 더 잘사는가 못사는가, 형편이 좋은가 어려운가를 살피고는 형편이 나쁘다고 할 때는 말도 못 하고 일어서서 나오는 게 동양의 예(禮)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영수증 갖고 가서 “이거 내” 해서 안 내놓으면 “왜 안 내” 하면서 대번에 고소해 버립니다.

 

그런 걸 볼 때 동양을 미국 생활방법으로 화하게 해야 되겠느냐, 미국을 동양 생활방법으로 화하게 해야 되겠느냐? 어떤 것이 불변에 가까운 영원한 행복의 기지냐? 미국이 동양의 생활방법으로 화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뭐냐 하면,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젊은 사람들이 전부 서구화하려고 한다 이겁니다.


서양은 서양대로, 동양은 동양대로 자기들의 관습이라든가 전통 같은 환경이 남아져야 할 텐데 전부 다 서구화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을 추방하는 놀음이 벌어집니다. 이상적인 행복의 영원한 기지가 파괴됩니다. 서구사회는 하나님이 떠나시니까 망합니다.


그런 실정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구해주시기 위해서, 이런 전환시대에 혼란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선생님 같은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사랑은 불변하고 절대 하나이니만큼 남편도 하나님과 같이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종적인 중심이라면 남편이 가야 할 곳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나라입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나라요, 아내가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나라입니다. 그 다음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 아들이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 우리 가정이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 우리 일족이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좋아하고 세계와 온 우주가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전부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도 가정을 중심삼고 너와 나 부처끼리만 좋아하면 그만이다 하면 어머니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종족을 잃어버리고, 나라를 잃어버리고 고독단신이 됩니다. 치리하는 데 있어서 먼저 나라를 치리해 가지고 종족을 치리하고, 종족을 치리해 가지고 가정을 치리하고, 가정을 치리해 가지고 개인을 치리하게 돼 있지 나라에서 우리 가정을 직접 치리하게 안 돼 있습니다.


온 우주에 꽉 찬 만물까지도 전부 다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만든 것인데, 그 만물을 자기 가정만을 위해서 쓰겠다고 할 때는 만물이 저주합니다. 만물이 “나는 그런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합니다. 돈을 모으는 데도 자기 가정을 위해서 모은다는 부자는 망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돈을 모으는 부자는 나라가 망한 후에야 망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하냐? 하나님이 그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05-207)

본연의 발전적인 길

행복하지 못한 가정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나라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개인이 아니고는 환영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행복해야 가정을 찾아갈 수 있고, 가정이 행복해야 나라를 찾아갈 수 있고, 나라가 행복해야 천국을 찾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게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발전적인 길입니다.

행복한 가정이 찾아가야 할 곳은 행복한 나라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나라를 위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들딸이 번창해서 나라의 주인이 됩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가정을 희생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에 청교도들이 와서 한 일이 무엇이었어요? 먼저 하나님을 생각해서 교회를 짓고, 그 다음에 자기 부부를 희생하면서 아들딸을 위한 학교를 지었습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교회를 짓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했어요? 장래를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기지였습니다. 가정을 위한 기지가 아니라 국가의 기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축복하셨습니다.


청교도들의 가정은 행복했습니다. 교회를 지으면서 행복했고, 학교를 지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싸우지 않았습니다. 배를 주리고 고생을 해 가면서 나라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신교 독립국가는 세계에서 단 하나 미국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가진 정신상태가 변하지 않는 전통에 일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의 모든 보물들을 다 끌어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있느냐? 하나님입니다. 선생님이 집을 짓기 전에 교회를 지으려고 하고, 교회를 짓고 나서는 학교를 지으려고 했습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 동시에 하나님의 학교입니다. 어떻게 여러분의 장래를 보호할 것이냐? 배우는 것 이외의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생님이 외국에 가서 그 나라의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외국 사람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은 선생님이 2세들을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이 아닌 세계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국을 희생시키더라도 하겠다고 하는 정신은 하나님의 정신과 맞먹습니다. 하나님의 정신은 자기의 제일 가까운 사람, 제일 가까운 나라, 제일 가까운 무리들을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아무리 지루해도 영원불변한 이 길을 가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가정보다는 나라, 나라보다는 세계, 세계보다는 영계를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영계의 길을 닦으려는데 그 길이 변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갖은 수욕을 당하고 천대받더라도 참으면서 갑니다. 그게 하나님의 일인데 선생님이 대신 하니까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그렇게 되니까 번창하게 됩니다. (205-210)

뜻이 어떻다는 걸 아는 사람이 먼저 가야

내가 여기 온 지 16년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 나라와 우주를 구하기 위해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왔습니다. 여러분은 무니들입니다. 선생님을 따라서 미국과 세계를 구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찾으시겠다는 나라를 우리도 찾아야 됩니다. 공동운명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행복의 기지요, 가정적인 행복의 기지입니다. 그 나라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매일같이 문 밖에 나와서 “너희들, 가자! 네 가정을 동원해라” 하시는데, 싫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 미국의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가정에 들어와 가지고 잠자는 애기들을 보고 눈물을 안 흘렸을 줄 알아요? 이놈의 자식들, 자기 여편네는 귀한 줄 알지? 그렇지만 할 수 없어요. 내게 귀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건 한 고개였지만, 레버런 문에게는 무수한 고개들이 있습니다. 국가의 고개, 세계의 고개, 천주의 고개를 다 넘어가야 됩니다.


내가 감옥에 가더라도 감옥의 정문을 바라보면서 당당하게 가려고 했지 돌아가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레버런 문이란 걸 알아야 됩니다. 미국의 재판 같은 것도 그래요. 내가 안 오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뭘 하러 감옥 가요? 미국에 있는 잘사는 사람들은 무슨 사건이 있으면 전부 다 도망가는데 말이에요. 내가 댄버리에 간 것은 다 미국을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의 장래를 위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내가 저버렸으면, 여러분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겠어요?


그러니까 모두 다 나에게 빚졌다구요. 여러분의 나라가 책임하게 되면, 여러분이 빚을 안 지고 나도 여기에 와서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어려운 환경에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기반을 상속하여 세계를 위해서 노력해야 됩니다. 이미, 선생님은 다 이루었습니다.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의 길을 따라올 거예요, 안 따라올 거예요? 선생님의 길을 따라오겠다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205-220)*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8일, 원문
 
아버지의 나라는 내 나라다   
 
날짜 : 1990. 9. 2(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사랑은 일방통행이고 영원하고 유일한 것이기를 원해
 
본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오늘날 인간세계에는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여러 가지의 종교들이 있습니다. 급은 낮지만 샤머니즘으로부터 급이 높은 것까지 민족배경과 문화배경 혹은 습관이 다름에 따라서 여러 형태로 영들이 지도해서 한 곳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세계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의지하고, 그 의지한 존재와 자기가 상대적인 관계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무엇을 대해서 “이것이 되면 이렇게 될 것이고, 이것이 안 되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또, 만물을 대해 가지고도 “저 나무가 잘 자라면 우리 집이 잘되고, 저 나무가 못 자라면 우리 집이 안된다” 하기도 합니다.
그건 뭐냐 하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행복의 중심체와 내가 관계를 맺고 의지하며 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최고의 행복, 영원한 행복,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의 주체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겁니다.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온 세계 인류가 추구한 중심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철학에서도 해결하려고 하는 중심문제입니다. 신이 있느냐, 절대자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겁니다.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면 절대적인 평화가 거기에 있을 성싶고 절대적인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이고 유일 특권적인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뭐냐? 평화다, 행복이다, 영원한 기쁨이다 하는 걸 어떤 자리에서 갖고 싶으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보면 제일 좋은 것과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제일 절대적인 것, 제일 귀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인연을 맺고 싶어합니다. 세계에 그럴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다고 하면 모든 사람은 그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거기에 가고 싶다. 가야 되겠다. 가서 하나돼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인연을 맺어서 어디에 갖다 고착시키고 싶으냐? 그걸 어디에 갖다가 정착시키고 싶으냐? 그런 모든 공통적인 인류의 요구, 공통적인 우리의 요구가 어떤 자리이겠느냐? 보편적으로 보면, 그것이 독일에 있다면 미국 사람은 미국으로 가져가야 되겠다고 합니다. 또, 미국도 좋지만 우리 고향 주(州)에 가져오면 좋겠다고 그럽니다. 주가 있으면 주 가운데서도 어디에 갖다 놓으면 좋겠느냐? 내 도시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 가정입니다. 가정 가운데서도 어떤 자리에서 나와 관계를 맺고 싶으냐? 여자라면 자기 남편, 남자라면 자기 아내를 생각하면서 그 부부 사이에 갖다 두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나를 중심삼고 제일 가깝고 제일 좋고 제일 행복스런 자리에 갖다 두고 싶다는 것은 우리 집을 중심삼고 보면 부부의 관계에 종착됩니다. 이것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흑백의 모든 인종을 초월하고, 모든 종교를 초월하고, 역사를 초월해서 공통적인 것입니다. 시대가 변천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부부관계라든가 부자의 관계에서는 무엇을 갖고 싶으냐? 거기에는 돈도 있고, 지식도 있고, 힘도 있고, 자기가 자랑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많지만 무엇을 중심삼고 갖다 놓고 싶겠느냐 이겁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을 중심삼고 갖다 놓고 싶으냐, 변치 않는 데 갖다 놓고 싶으냐? 변치 않는 것입니다. 변치 않는 것인데, 무엇이 변치 않으면 좋겠느냐? 사랑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개념이 나옵니다.
그 사랑이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일방통행이고 영원하고 유일한 것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205-196)
 
사랑의 한계성
 
사랑이 우리 인류의 평화의 기지, 행복의 기지, 희망의 기지라고 하게 될 때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어디로 가시고 싶겠느냐? 하나님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싶겠느냐? 사랑하는 부부, 남자 여자가 진짜 사랑하는 곳에 계시고 싶고, 부자가 진짜 사랑하는 곳에 있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서 바라시는 것이요,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서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평화가 세계에 있기를 바라느냐, 행복이 세계에 있기를 바라느냐, 기쁨이 세계에 충만하기를 바라느냐? 그것을 다 바라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어디를 중심삼고 움직이게 하고 싶으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인 나, 부부, 부자를 중심삼은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되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이 무엇이냐? 답은 간단합니다. 사랑은 사랑입니다. 답이 맞는 것 같지만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이 안 됩니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냐? 어떤 사랑이냐 이겁니다. 사랑도 미워하는 사랑이 있겠어요? 없습니다. 그러면 좋기만 한 사랑이겠어요? 여러분은 모두 다 세계의 최고가 되고 싶지요? 그러면서 사랑은 언제나 내 발 아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끌고 다닐 수 있는 사랑을 원해요, 사랑이 여러분을 끌고 다니기를 원해요? 이건 중요한 내용입니다. 사랑이 나를 컨트롤하고, 사랑이 나를 끌고 다니기를 원할 것입니다.
사랑이 “야, 너 왼쪽으로 가지말고 오른쪽으로 가” 이러면서 끌고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 간섭할 수 있는 내용은 우주적이라는 개념을 딱 집어넣으면 다 해결됩니다. 사랑을 싫다고 하는 사람은 “나는 그런 것이 싫다” 하겠지만, 사랑의 한계성을 몰라서 그럽니다. 얼마나 큰지 모르고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순응하다가 보면, 울면서라도 따라가다가 보면 잔칫집으로 갑니다. 싫다고 하면서 가 보니까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는 우주와 동반되고 우주의 최고와 더불어 관계를 맺으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자신이 그것에 관여하고 이렇게 저렇게 했다가는 모든 면에서 손해가 납니다. 이런 개념을 딱 정리해 놓고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미국 여자들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었어요? “나만을 위한 사랑, 내가 좋아하는 사랑만을 좋아하지 사랑이 좋아하는 건 싫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고독단신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사랑의 개념에는 우주를 포괄하고 전체를 화합시킬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의 사랑은 하늘땅의 모든 것들이 문을 열고 환영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랑의 개념과 정반대입니다. “나를 따라라, 요만한 문으로 빠져나가라” 하니까 비참한 일이 벌어집니다.
미국 여자들은 마음이 얼마나 좁은지 자기제일주의입니다. 남편을 보고 거기를 통과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큰 남편이 통과하겠어요?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내가 자꾸 미국 여자들을 어떻다고 하니까 기분 나쁘지요? 사랑문제 같은 것을 예민하게 콕콕 찌르고 문제삼는 것이 남자들이에요, 여자들이에요? 남자보다 여자들입니다. 특히, 대표적인 게 미국 여자들입니다.
대중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남자를 들어 비유하면 여자들은 관심을 안 가집니다. 또, 남자들도 관심을 안 가집니다. 그렇지만 대표적으로 여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예를 들게 되면 여자들도 관심을 갖고 남자들도 관심을 갖습니다. 청중을 한데로 몰기 위해서는 여자를 예로 드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미국 여자가 어떻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래서 그러는구나”라고 생각하라구요! 교재로 사용된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교재로 사용되니까 포즈라든가 태도가 좋아야 되겠다” 그러면 됩니다. (205-198)
 
행복과 희망 그리고 평화는 나로부터
 
행복과 희망 그리고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지식이나 돈 혹은 출세, 그런 것들은 언제나 변하더라도 나에게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란 것이 변한다면 남자도 깨져 나가고, 여자도 깨져 나가고, 가정도 깨져 나가고, 다 깨져 나갑니다. 그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삥삥 돌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은은한 가운데서 우러나 자연스레 웃는 얼굴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고 웃고 그 모습을 가다듬어서 표시하는 것은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동적인 사랑과 아름다운 사랑 중에서 어떤 것이 좋아요? 아름답다면 머리도 아름답고 사방이 다 아름다워야 합니다. 환경이 다 맞아야 합니다. 매혹적이란 것은 일방적입니다. 특이한 표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을 조화시킵니다. 이것은 주체적인 개념입니다. 조화되는 데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혹적인 여자와 아름다운 여자 중에서 어떤 것이 좋아요? 매혹적인 것은 한때 필요합니다. 매혹은 한때 갖고 싶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웃을 때 손발, 얼굴, 눈, 입이 한꺼번에 웃는 것과 눈과 입만 웃는 것 중 어떤 것이 귀해요? 화장을 해서 매혹적으로 눈을 새파랗게 그리고 헤헤헤 하고 웃는 사람과 화장도 자연스럽게 하고 모든 세포가 춤을 추며 웃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아름답겠어요? 그리고 손톱을 길러 새빨갛게 칠해 가지고 웃는 것과 아무것도 칠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귀해요? 자연스러운 것이 귀합니다. 자연스러움은 언제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나무가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작년에도 푸르고 금년에도 푸르니까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 하겠지만, 단 한 가지의 철학이 있습니다. “나는 그러면서 자라고 있는 거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훌륭하고 멋진 거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희들은 화장으로 치장하여 자랑하고 결혼한다고 좋아하다가도 자꾸 깨져 나가고 울고불고 점점점 작아지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나 남자가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같은 멋을 갖고도 발전하면서 모든 면에서 전체가 주목하는 대상이 되는 거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우주의 사랑이 있다면 그런 데 관심을 갖습니다. (205-200)
 
영원한 행복과 평화의 기지

여자의 유토피아는 남자를 내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여자의 행복은 남자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고, 여자의 평화는 남자를 떠나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의 사이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안됩니다. 남자가 암만 잘나고 여자가 암만 잘났더라도 상대가 없으면 안됩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남자를 만남으로써 사랑을 알고, 여자를 만남으로써 사랑을 찾습니다. 그 사랑이 유토피아의 기원이요, 행복과 평화의 기지입니다.
그렇지만 잘났건 못났건 누구를 막론하고 변하는 사랑을 원치 않고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원합니다. 그처럼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갖겠다는 사람들이 변해 가지고 사랑을 찾는다면 그것처럼 불결하고 죄악 된 것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남자와 여자가 되어야지 언제나 변하면서 변치 않는 사랑을 갖겠다는 것은 변치 않는 것에 대한 모독이고 침범이고 침해입니다.
여러분은 변치 않는 사랑을 원하는 사람으로써 변하는 나예요, 변하지 않는 나예요? 어떤 나예요? 이걸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간, 지금 이 생활형태가 어때요? 변치 않는 생활형태예요, 변하는 생활형태예요? 매시간, 매분마다 변합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 절대적인 행복이라든가 사랑이 찾아온다면 그 행복이나 사랑은 미친 것입니다.
행복이라든가 영원한 기쁨이라고 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여러분과 같이 있기를 바라지만 같이 있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절대적인 존재인 하나님한테 절대적인 사랑이 있어서 절대적인 평화와 절대적인 행복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변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절대적인 행복의 기지가 될 수 있고 사랑의 이상적인 기지가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변하는 기지라면 불변의 사랑이 거기에 머물 수 있어요? 없습니다. 불변의 평화가 거기에 있겠어요? 없습니다. 불변의 기쁨이 거기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절대적이고 불변의 표준입니다. 하나의 중심입니다. 거기서부터 불변의 사랑, 불변의 평화, 불변의 행복, 불변의 기쁨이 연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공식이요, 표준입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매시 360도 변하고 변합니다. 공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행복을 찾고, 또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모두 허사였습니다. 문제는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 있습니다.
참사랑은 어디든지 있습니다. 참국민의 사랑은 내가 변하지 않고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는 것이요, 참개인의 사랑은 내가 변하지 않고 친구를 영원히 대하겠다고 하는 데 있는 것이요, 참사랑은 아내로서 남편을 영원히 대하겠다고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남편으로서 아내, 아버지로서 자식,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영원히 대하겠다고 하면서 영원의 개념을 심어 주는 데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변치 않는 영원성의 기반 위에서 모든 행복의 기원이 결탁되고 인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핍박이 가해지더라도 나라를 사랑하는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나가게 될 때 애국자라고 합니다. 효자라는 것은 가정에 아무리 변동이 있고 요동이 있더라도 부모에 대한 사랑이 변치 않는 사람입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도리를 중심삼고 천지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자세를 취하는 데 성인의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변치 않는 주체이기 때문에 변치 않는 사람을 만드시려는 것이 구원의 도리요, 그것이 종교의 목적이요, 그것이 모든 이상의 종착점이 됩니다. (205-202)
 
하나님의 나라는 변하지 않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어
 
변하는 것과 안 변하는 것이 어떻게 달라요?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 여러분은 “변해야 어디든지 마음대로 가고, 영화도 보러 가고, 춤도 추러 가고, 술도 마실 수 있는데…. 이거 어떻게 살아먹겠노” 하면서 불평하지 않아요?
항상 변하는 사람이 술을 잘 먹습니다. 춤추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춤을 추어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천 년을 있으면 어떻겠어요? 그 춤이 얼마나 멋지겠느냐 이겁니다. 그렇게 천 년을 참는다면 안 가 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당장 나부터 가 봅니다. 하나님도 가 보실 것입니다.
영원한 웃음을 웃는다면 어때요? 영원한 웃음을 웃는다면 가 보고 싶겠어요, 안 가 보고 싶겠어요? 옷 한 벌을 갖고 천 대를 입었다고 할 때 가 보고 싶어요, 안 가 보고 싶어요? 가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본성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그리워합니다.
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변하지 않는 것은 배척받지만,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의 밥이 된다는 것입니다. 흡수당합니다. 그러니까 지루하더라도 참는 사람이 주인이 되고, 변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종이 되고 밥이 됩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 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모독입니다. 나도 변치 않아야 됩니다. 변치 않는 사랑 앞에 변하는 사랑을 찾는 것도 모독입니다. 변치 않는 평화의 주체 앞에 변하는 평화를 찾는 것도 모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지옥과 천국은 누가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는 것입니다. 지옥도 내가 갑니다. 내가 결정합니다. 그러니까 불평을 못 합니다. 불평할 수 없습니다. 지옥 가서도 불평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데 절대적인 행복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 공부를 암만 잘했더라도, 박사학위를 몇 백개 가졌더라도 행복한 남자나 여자를 못 찾으면 낙제입니다. 그렇게 됩니다.
부부싸움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에 여자의 얼굴이 아름답겠어요, 어떻겠어요? 만물까지도 “저거 왜 저래? 상통이 저게 뭐야” 이럽니다. 그 얼굴에는 수심이 드리워져 있고, 아름답던 표정이 전부 변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구, 저거 차라리 안 봤으면 좋았을 걸…! 재수 없이 보았어”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나라, 아버지의 나라가 어디서부터 시작되겠느냐 할 때 나라에서 시작되겠어요, 개인에서부터 시작되겠어요? 개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건 누구나 다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가 변하는 나라냐, 변하지 않는 나라냐? 변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 가겠다는 사람은 변하는 사람이겠어요, 변치 않는 사람이겠어요?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존재라면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이 영원한 친구로 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탄식이 있을 수 있겠어요?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거기에 있고 싶은 것입니다. (205-204)

온 우주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무엇이든지 변하는 것을 표준으로 해서 변치 않는 것이 닮아야 되겠어요, 변하는 것이 변치 않는 것을 닮아야 되겠어요? 누구든지 신랑 각시가 변하는 커플이 되고 싶겠어요, 변치 않는 커플이 되고 싶겠어요? 부부로 생활하게 될 때 변치 않는 환경에서 변하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남편이라든가 환경을 어지럽히는 것은 큰 죄입니다. 내 기분이 나쁘다고 그 감정을 드러내 변치 않는 좋은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이 미국 사람을 누가 믿어요? 미국이 돈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지만 돈은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는 돈을 따라다니니까 미국 사람들도 변합니다. 동양 사람들은 친구한테 돈을 꿔 주고도 받으러 가서는 말도 못 하고 앉아 있습니다. 친구 집에 가서 그 집이 자기 집보다 더 잘사는가 못사는가, 형편이 좋은가 어려운가를 살피고는 형편이 나쁘다고 할 때는 말도 못 하고 일어서서 나오는 게 동양의 예(禮)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영수증 갖고 가서 “이거 내” 해서 안 내놓으면 “왜 안 내” 하면서 대번에 고소해 버립니다.

그런 걸 볼 때 동양을 미국 생활방법으로 화하게 해야 되겠느냐, 미국을 동양 생활방법으로 화하게 해야 되겠느냐? 어떤 것이 불변에 가까운 영원한 행복의 기지냐? 미국이 동양의 생활방법으로 화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뭐냐 하면,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젊은 사람들이 전부 서구화하려고 한다 이겁니다.
서양은 서양대로, 동양은 동양대로 자기들의 관습이라든가 전통 같은 환경이 남아져야 할 텐데 전부 다 서구화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을 추방하는 놀음이 벌어집니다. 이상적인 행복의 영원한 기지가 파괴됩니다. 그러니까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서구사회는 하나님이 떠나시니까 망합니다.
그런 실정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구해주시기 위해서, 이런 전환시대에 혼란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선생님 같은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하늘의 불변적인 도리를 가르쳐 주게 해서 고쳐 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서양이 동양을 따라가는 것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데리고 이상의 나라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상의 가정이면 좋을 텐데, 왜 이상의 세계야? 이상의 세계는 싫어” 하지요? 이것이 통일교회의 문제입니다. “나는 이상의 가정은 좋지만 이상의 세계는 싫어”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체의 중심이시기 때문에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상적인 중심도 되십니다.
사랑은 불변하고 절대 하나이니만큼 남편도 하나님과 같이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종적인 중심이라면 남편이 가야 할 곳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나라입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나라요, 아내가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나라입니다. 그 다음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 아들이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 우리 가정이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 우리 일족이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좋아하고 세계와 온 우주가 좋아하는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전부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도 가정을 중심삼고 너와 나 부처끼리만 좋아하면 그만이다 하면 어머니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종족을 잃어버리고, 나라를 잃어버리고 고독단신이 됩니다. 치리하는 데 있어서 먼저 나라를 치리해 가지고 종족을 치리하고, 종족을 치리해 가지고 가정을 치리하고, 가정을 치리해 가지고 개인을 치리하게 돼 있지 나라에서 우리 가정을 직접 치리하게 안 돼 있습니다.
온 우주에 꽉 찬 만물까지도 전부 다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만든 것인데, 그 만물을 자기 가정만을 위해서 쓰겠다고 할 때는 만물이 저주합니다. 만물이 “나는 그런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합니다. 돈을 모으는 데도 자기 가정을 위해서 모은다는 부자는 망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돈을 모으는 부자는 나라가 망한 후에야 망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하냐? 하나님이 그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 돈을 내 것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천년만년 우주와 더불어 갈 것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이겁니다. 이것을 농락하고 친다면 친 녀석이 망하고, 망한 모든 것은 여기에 접붙여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재산을 다 뿌려 놓고도 관리를 안 합니다. 내버려두고도 안심합니다. 하나님이 관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불변의 법을 통해서 처리해 주소” 하면, 그 법을 통해서 처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농락하려다가는 다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꾸 큽니다. 세상에 바람이 불든 태풍이 불든 자꾸 큰다 이겁니다. 그거 얼마나 멋져요! 돈 몇 백만 달러를 가지고 “아이구, 내가 손해다. 아이구, 뭐 어쨌다” 그래서 되겠어요? 나는 선한 일을 하다가 빚졌습니다. 세계의 제일가는 빚쟁이가 되겠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를 찾아야 하고, 그 후에 내 행복의 기지를 찾아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행복한 나라가 나와 관계됩니다. 개인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나라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205-207)

본연의 발전적인 길

행복하지 못한 가정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나라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개인이 아니고는 환영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행복해야 가정을 찾아갈 수 있고, 가정이 행복해야 나라를 찾아갈 수 있고, 나라가 행복해야 천국을 찾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게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발전적인 길입니다.
지금 이 통일교회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행복에서 멈추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나는 아내와 아들딸이 필요하다. 나한테 나라는 필요 없다. 그것은 나로부터 너무 멀리 있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찾아가야 할 곳은 행복한 나라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나라를 위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들딸이 번창해서 나라의 주인이 됩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가정을 희생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서 나라를 희생시키면 망합니다. 지금 미국이 망하게 되는 것도 미국의 가정들이 그 자체들만의 이익 때문에 나라나 모든 사회를 팔아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청교도들이 와서 한 일이 무엇이었어요? 먼저 하나님을 생각해서 교회를 짓고, 그 다음에 자기 부부를 희생하면서 아들딸을 위한 학교를 지었습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교회를 짓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했어요? 장래를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기지였습니다. 가정을 위한 기지가 아니라 국가의 기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축복하셨습니다.
청교도들의 가정은 행복했습니다. 교회를 지으면서 행복했고, 학교를 지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싸우지 않았습니다. 배를 주리고 고생을 해 가면서 나라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신교 독립국가는 세계에서 단 하나 미국밖에 없습니다. 구교 독립국가들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가진 정신상태가 변하지 않는 전통에 일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의 모든 보물들을 다 끌어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있느냐? 하나님입니다. 선생님이 집을 짓기 전에 교회를 지으려고 하고, 교회를 짓고 나서는 학교를 지으려고 했습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 동시에 하나님의 학교입니다. 여러분이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밤을 새워 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잘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싫어하는 것을 내가 잘 압니다. 그래도 가르쳐야 합니다. 어떻게 여러분의 장래를 보호할 것이냐? 배우는 것 이외의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정확한 답입니다.
선생님이 외국에 가서 그 나라의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외국 사람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은 선생님이 2세들을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이 아닌 세계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국을 희생시키더라도 하겠다고 하는 정신은 하나님의 정신과 맞먹습니다. 하나님의 정신은 자기의 제일 가까운 사람, 제일 가까운 나라, 제일 가까운 무리들을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아무리 지루해도 영원불변한 이 길을 가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가정보다는 나라, 나라보다는 세계, 세계보다는 영계를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영계의 길을 닦으려는데 그 길이 변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갖은 수욕을 당하고 천대받더라도 참으면서 갑니다. 그게 하나님의 일인데 선생님이 대신 하니까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그렇게 되니까 번창하게 됩니다. (205-210)

뜻이 어떻다는 걸 아는 사람이 먼저 가야

내가 여기 온 지 16년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 나라와 우주를 구하기 위해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망해 가면서 세계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브레이크를 걸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니들입니다. 선생님을 따라서 미국과 세계를 구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길을 따라와야 합니다. 다른 길을 따라가면 망합니다.
아버지가 찾으시겠다는 나라를 우리도 찾아야 됩니다. 공동운명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행복의 기지요, 가정적인 행복의 기지입니다. 그 나라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내 나라를 위해서 밤을 새우면서도 노력하자” 하시며 부르고 계시는데, 모두 다 “푸푸푸…” 하고 있습니다. 그거 할 짓이에요? “이것들이 아니고는 저것을 못 이루겠는데, 이것들이 자고 있으니…” 하시면서 하나님이 안타까워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매일같이 문 밖에 나와서 “너희들, 가자! 네 가정을 동원해라” 하시는데, 싫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 미국의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됩니다.
누구든지 여름에 땀 흘리면서 일하는 것은 싫지요? 나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뜻이 어떻다는 걸 아는 사람이 먼저 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은 가정에 들어와 가지고 잠자는 애기들을 보고 눈물을 안 흘렸을 줄 알아요? 이놈의 자식들, 자기 여편네는 귀한 줄 알지? 그렇지만 할 수 없어요. 내게 귀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건 한 고개였지만, 레버런 문에게는 무수한 고개들이 있습니다. 국가의 고개, 세계의 고개, 천주의 고개를 다 넘어가야 됩니다.
내가 감옥에 가더라도 감옥의 정문을 바라보면서 당당하게 가려고 했지 돌아가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레버런 문이란 걸 알아야 됩니다. 미국의 재판 같은 것도 그래요. 내가 안 오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뭘 하러 감옥 가요? 미국에 있는 잘사는 사람들은 무슨 사건이 있으면 전부 다 도망가는데 말이에요. 내가 댄버리에 간 것은 다 미국을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의 장래를 위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내가 저버렸으면, 여러분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겠어요?
그러니까 모두 다 나에게 빚졌다구요. 내가 여러분한테 빚졌어요, 여러분이 나한테 빚졌어요? 솔직히 얘기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빚졌습니다. 그거 누구 때문이에요? 나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나라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나라가 책임하게 되면, 여러분이 빚을 안 지고 나도 여기에 와서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어려운 환경에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기반을 상속하여 세계를 위해서 노력해야 됩니다. 지금 이 시대에 세계를 위하는 사람은 레버런 문밖에 없잖아요. 세계의 지도자들이 그것을 압니다. 이미, 선생님은 다 이루었습니다.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의 길을 따라올 거예요, 안 따라올 거예요? 선생님의 길을 따라오겠다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205-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