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로 1 (천일국 훈독경 제9권 29일)

훈독왕 | 20250424081148

천일국 훈독경 제9권 29일

통일은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로 1 (훈독본) 

날짜 : 1992. 2. 2(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S63KZV4Qs2A&list=PLtan-zpeJein8CLv1wZfteA6pHAzKAmIa&index=33

 


공명권을 통해서 통일이 되는 것

오늘날 인간들이 바라는 모든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내적인 요인이 뭐냐 하면 평화라든가 희망이라든가 혹은 소망 같은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이루어져야만 욕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판도가 아니라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서 우주의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와 더불어 함께하는 기준에서 해결된다고 봅니다.


통일이라는 것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통일의 이상이라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들과 합해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는 환경이 있고, 그 환경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그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그 하나된 자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응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더 큰 하나를 이루어 나갑니다. 그래서 더 큰 하나가 된 거기서 더더욱 큰 것으로 나가고, 그렇게 통일적인 환경이 형성되어 나갑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관계의 세계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관계의 철학을 중심삼고 통일적인 장(場)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눈도 통일되기 위해서는 1.2면 1.2에 초점을 맞추어야 됩니다. 하나는 1.2고 하나는 0.2라면, 이것은 찌그러지는 것입니다. 초점이 찌그러지는 거예요. 우리가 듣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듣는 것도 전부 다 초점을 맞춰서 들어야 됩니다. 그 초점을 맞춘 거리가 같고, 내용이 같게 될 때는 통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권이란 것은 공명하는 데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명, 서로 서로가  질과 내용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는 육적인 나와 영적인 나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일교회의 술어로 말하면 영인체와 육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영인체와 육신이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되어야만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하나되느냐? 공명된 자리에서 하나됩니다. 여러분, 음차(音叉;소리굽쇠)를 알지요? 음차의 주파수가 같게 될 때는 이것을 “탕” 하고 때리면, 이것도 “띠잉…” 하고 같이 소리가 납니다. 우리의 영인체와 육신도 음차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공명권을 통해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226-73)

무엇으로 말미암아 공명되느냐

사람은 몸과 마음의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마음은 종적인 면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종적인 나입니다. 또, 몸뚱이는 횡적인 나입니다. 그래서 그 횡적인 나와 종적인 내가 통일되는 자리에서 나라고 하는 인격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이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이 통일될 수 있느냐? 공명될 수 있는 본질을 통해 하나되는 데서 완성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공명되느냐? 그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참사랑에 의해서 공명되는 것입니다. (226-75)

우주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내용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도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자기 발견과 자기 통일이었습니다. 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있어서의 종적인 나와 횡적인 나를 앎으로 말미암아 내 자신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영계뿐만 아니라 대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소우주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공명적인 주체성을 지니게 될 때, 핵심적인 요인이 될 때는 중심이 됩니다. 핵이 되는 것입니다. 핵은 모든 부체(副體)들에 대해서 주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완성을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완성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48년 만에 수천 년 동안 기반을 닦은 다른 종단들 이상의 자리까지 올라와서 세계적인 판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 때문이었느냐? 나라는 사람이 핵심적인 기준에서 모든 부체가 되는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공명적(共鳴的)인 핵의 기준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한 단체가 크기를 바란다면 상대적인 단체들 가운데 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명적인 주체와 상대가 되게 될 때, 그 영역권은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대우주의 통일은 어떻게 되겠느냐?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전체의 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핵으로 되어 있는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모든 피조세계, 존재세계는 부체로 되어 가지고 그 핵과 공명권에 있게 될 때 천지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때 천주주의(天主主義)가 완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이 개인의 완성에서부터 시작한다구요. 몸 마음이 하나된 통일권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나라가 통일되고, 세계가 통일되고, 하늘땅이 통일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원소로 흡수될 수 있는 존재는 될지 모르지만 핵의 자리에서 모든 존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26-77)


그러면 우주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내용,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체와 부체가 하나될 수 있는 내용이 뭐냐? 그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능력, 만물을 지을 수 있는 물질적인 요인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참사랑만이 가능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아야만 하나님이 핵을 울릴 수 있고, 그 핵을 울리게 될 때에 우주가 공명됩니다.


우주 전체가 형성된 자체를 바라보게 될 때, 여기는 반드시 공명적인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존재한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 자체도 공명될 수 있는 주체와 대상을 갖추어야 됩니다.


인간은 남자 여자가 있고, 동물은 수놈 암놈이 있고, 식물에는 수술 암술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분자에는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 원자에는 전자와 양자가 있습니다. 전부 다 공명될 수 있는 통일권을 바라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것은 쌍쌍제도의 존재권을 벗어나서는 완성이니, 이상이니, 희망이니, 소원이니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유라는 것도 반드시 통일된 기반 위에 있습니다. 한 가정에 있어서 어머니 아버지와 형제들이 하나된 기준에 있을 때는 어머니의 방이나 내 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방에 가도 제재를 안 받고, 형님의 방에 가도 제재를 안 받습니다. 누나의 방에 간다고 해서 “아이고, 남자가 누나의 방에 들어올 수 있나” 하지 않아요. 서로 사랑으로 공명될 때는 자유롭습니다. 주체 앞에 대상, 대상 앞에 주체가 언제든지 맞춰 줄 수 있는 공명권이 이루어질 때 그 가정은 자연히 통일되고, 그 가정에는 자유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 안 되어 있으면, “왜 들어와” 하는 말이 나옵니다. 부부가 하나 못 되어 가지고 “왜 그래” 하는 거기는 자유가 없습니다. 형제가 전부 다 화합하지 못하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없어지기 때문에 자유가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명권을 벗어나서는 자유가 없습니다. 행복도 없는 것입니다. (226-78)

공명권이 되고 초점이 맞아야 통일이 벌어져

통일은 공명권이 되어야 벌어집니다. 화음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된 환경에서만 행복이 가능합니다. 부부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필요로 하느냐? 부부의 행복은 하나되는 자리, 통일된 자리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통일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 가지고 남편이 주체가 되면 아내는 상대가 되어 공명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주체 대상이 서로 웃고 화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화동하는 데 있어서, 파장이 맞는 데 있어서 이상적인 출발의 기준이 세워집니다. 그러니까 수평과 수직이 맞아야 됩니다.

 

누구든지 좋기를 바란다면 나쁜 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재조건(先在條件)이 나쁜 것을 극복하는 데서부터 좋은 것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쁜 것을 극복 못 하면 좋은 것이 있더라도 좋으나 마나입니다.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만, 밤을 극복해야만 밝은 천지가 벌어집니다. 그런 모든 것이 공명적인 내용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눈도 깜박깜박할 때 두 개가 교대로 하나씩만 깜박거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그게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박자가 맞아야 됩니다. 화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근본문제에 있어서 이 우주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데, 그게 왜 그러하냐? 공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공명이 벌어지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할 때 남자 여자를 먼저 생각하고 사랑을 세우셨겠느냐, 아니면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를 세우셨겠느냐? 어떤 게 먼저 같아요? 남자 여자가 요렇기 때문에 사랑이 요래야 된다고 하셨겠어요, 사랑이 요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요래야 된다고 하셨겠어요? 사랑이 요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요래야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 귀합니다. (226-80)

 

사랑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남자 여자가 생겨났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남자 여자가 생겨났습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본향 땅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결과는 본향에 귀착되어야 합니다. 원인과 결과는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에 본연적인 사랑의 개념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가 태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태어난 남자 여자도 기필코 그 원인이 되는 사랑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226-81)

하나님의 마음세계에는 원수의 개념이 없다

선생님이 제일 고심한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내 자체의 통일이 문제로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하나님 자체는 마음과 몸이 통일이 되어 있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더니, 하나님이 “아니야” 그러시더라구요. 왜 그러냐 하면, 창조주로서 핵의 자리에 있지만 부체를 중심삼고 공명권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쁘신 하나님이 못 된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마음대로 기뻐한다고 하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공명권을 못 가지셨는데 그 공명권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하나님의 심적세계에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세계에는 원수의 개념이 없다는 걸 내가 알아요. 원수의 개념을 하나님이 가지셨다면 이원론에 떨어지고 끝날에 통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두 세계의 방향으로 전진해야 되는 거기에는 상충이 있고 경쟁이 있을 뿐이지 통일적인 환경은 영원히 못 찾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적개심, 적의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딸이 되겠다는 사람도 적의개념을 갖지 않아야 됩니다. 문 총재도 그러한 적의개념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226-84)

참사랑권에 도달할 수 있는 자리

통일은 참사랑으로부터 비롯되는데, 그 참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왜 결혼하느냐?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이냐 하면 우주를 움직이는 핵입니다. 우주를 움직이는 그 핵을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우주가 내 것이 됩니다.


아들딸이 태어나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상대가 되어서 사랑을 받게 되면 그 집안의 귀염둥이가 됩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도 아이가 되지요? 아이는 아이인데, 노망이 난 큰 아이입니다. 그런데 노망이 난 그 아이는 철딱서니가 없어요. 똥을 싸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아이는 그래도 똥 싸게 되면 창피해서 “에이…” 이런다구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히히히…” 하고 그냥 웃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집안에서 그 할아버지를 대해서 “아이고, 보고 싶었어요” 하면서 따라가서 키스하는 사람을 봤어요? 그러나 아이는 찾아가서 할아버지한테 키스합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여자들이 자리에 누워서 똥 누고 오줌 누고 하면서 아이와 같은 그 시아버지한테 가서 “아이고, 쪽…” 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아들딸같이 품고 “아이고, 놓고 못 살겠다” 하면서 뽀뽀를 할 수 있는 며느리가 있느냐구요. 그럴 수 있다면, 그 며느리는 참사랑권에 도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거예요. 


노망이 들어서 아이와 같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며느리가 될 때 참사랑의 경지에 가까워집니다. (226-88) 

참사랑이라는 것은 생명을 주고도 잊어버려

참사랑이라는 것은 생명을 주고도 잊어버리는 데서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던 직전에 자기의 왼쪽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던 원수를 대해서 기도하기를 “저는 저가 행하는 걸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저렇게 행하니 하나님이여, 용서하소서” 했습니다. 그게 위대했던 것입니다. 원수 중의 원수를 대하면서 원수개념의 자리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에 합당한 자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는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에도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자기 아들이 죄를 지어 가지고 오늘 아침에 교수대에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그 나라의 법이든가 모든 제도를 전부 다 없애더라도 자기 아들을 살려 주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죄의 규정이나 모든 것을 다 넘어서 가지고 해방시켜 주고픈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그 사랑하는 마음은 하늘 편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는 적대개념이 없습니다.

하늘 편에 서 있는 그러한 어머니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아들이 형장에서 천 년 한을 품고 가더라도 어머니 앞에는 머리를 숙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줄을 통해서 영원한 세계에 구원의 길이 연결됩니다. 만민이 죄가 많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천상세계까지 구도의 길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방시키는 것은 적개심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는 적개심,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원수의 개념이 없어져야,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김일성을 만나러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1987년에 김일성과 고르바초프가 암살대를 보내서 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일본의 적군파 25명을 보내 가지고 나를 제거하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모스크바에 간다는 것은 목숨을 던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걸고서라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길, 그러한 어려움의 길을 가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생명을 각오하고 가다 보니까 고르바초프 일당이 나한테 뒤넘이친 것입니다. (226-90)

환고향 이상 기쁜 복음이 어디 있겠느냐

이번에 내가 김일성을 만나러 갔지만, 여태까지 김일성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욕을 많이 했어요! 그는 영원히 남기겠다고 주체사상을 들고 나왔습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 주장하는 주체사상하고 김일성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래 가지고 갈 때는 김일성을 대해서 어머니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적의 개념을 갖고 가면 판도가 어그러지는 거예요. 수평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을 40년 전에 잃어버린 형님과 같이 생각하는 동생의 자리에 서서 부모를 모시고, 하늘 앞에 있어서 서로가 적개심이 없이 환담이 벌어질 수 있게끔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고해야 할 때는 충고도 해 줘야 돼요. 형님이 잘못했는데도 “형님, 괜찮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하늘이 정의의 자리에 못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수대 의사당에 가서 “주체사상, 안 된다.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가 아니면 세계의 평화를 이룰 수 없다” 하는 말을 했습니다. 


김일성은 대한민국 북쪽의 손바닥만한 땅에서 주체사상을 주장하고 있지만, 나 문 총재는 50억 인류가 사는 지구성 전체 앞에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를 주장해 가지고 공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핍박의 검은 구름은 사라지고 환성과 환영 일변도의 풍토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기반을 닦아 놓고 찾아왔다는 것을 그들이 잘 알더라구요. 


이번에 환고향을 하라니까 “나는 환고향 못 하겠습니다” 이러는 사람도 있어요. 환고향이라는 말이 없으면, 문 총재가 에덴 동산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 이상 기쁜 사건이 어디 있겠어요! 고향에서 쫓겨나 가지고 왕권을 잃어버리고 모든 창조권과 참된 이상적 부모권을 다 잃어버린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 고향을 찾아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거지요. 그것을 잃어버린 비통한 사실을 백 퍼센트 알고 있는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 환고향 이상 기쁜 복음이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오면서 북한의 해방을 위하여 기도를 한 번 한 죄로 일생을 여기에 다 바쳤습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소련과 중국을 수습해야 되고, 일본을 수습해야 되고, 미국까지 수습해야 됩니다. 천신만고, 한에 한의 고개가 있더라도 그걸 다 극복해야 되고, 인륜적인 모든 주장이 온 중천에 떠 있기 때문에 밤에 비치던 별빛이 무색하리만큼 태양 이상 빛날 수 있는 세계적인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지 않고는 남북의 자연굴복과 해방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한테는 적개심이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개념을 갖고 계시지 않기 때문에 자연굴복을 시키셔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지루하고 오랜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226-92)

이제 통일교회 찬양시대가 온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선생님의 이론적인 체계를 갖춘 이 내용을 듣게 되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소련의 국회의원들을 데려다가 교육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이론적인지 모릅니다. 신이 없다는 그런 사람들을 데려다가 교육했더니 4박5일 만에 80퍼센트가 완전히 돌아가더라구요. 이와 같은 무서운 무기가 문 총재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무기를 활용하면 원자포가 문제가 아니고, 북한의 원자탄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가에서 공산당들이 우리하고 이론투쟁을 하면 먹혀들게 됩니다. 1974년에 일본에서 내가 공산당을 전부 쓸어 버렸습니다. 일본을 중심삼고 아시아의 제패를 꿈꾸던 공산주의 세계의 이론가들이 12개 국가들로부터 모여 가지고 ‘통일원리의 극복’이라는 주제를 놓고 3주일 동안 연구하다가 결국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 도망갔습니다. 왜냐? 신을 설명할 수 없거든요. 암만 해도 그 개념이 해명이 안 돼요. 자기들이 찾는 길을 모릅니다.


그래서 교육해야 됩니다. 지금 흑해에서 영국이나 미국 사람들에게 지지 않을 만큼 영어도 잘하고 무불능통(無不能通)할 수 있는 소련의 천재들 3천 명을 모아 가지고 12월달부터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다 모르지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릅니다. 밤중도 이런 깜깜한 밤중이 없습니다.


이제 여명의 빛이 언제 들어오는지 다 알고 지금 우리가 가야 하는 산봉우리 저쪽으로 아침해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통일교회의 사람들은 쌍수를 합장하여 희망의 해가 솟아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는 밤중이에요, 밤중. 등잔 밑이 어둡다는 선현들의 말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한국 땅에서 문 총재를 중심삼고 벌어지는 이 사실은 한탄스러운 것입니다. (226-92)


그러나 문 총재는 그야말로 참사랑의 논리를 중심삼고 살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할 재료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두고 보더라도 지금 6대까지 나오는 데 있어서 정부를 중심삼고 어느 시대든지 나하고 관계를 안 맺은 대통령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용해 먹고는 차 버리더라도 “그래, 그래” 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대한민국 백성들 중에서 문 총재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226-95)*

 

 

천일국 훈독경 제9권 29일, 원문
 
통일은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로 1  
날짜 : 1992. 2. 2(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공명권을 통해서 통일이 되는 것
 
오늘날 인간들이 바라는 모든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내적인 요인이 뭐냐 하면 평화라든가 희망이라든가 혹은 소망 같은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이루어져야만 욕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판도가 아니라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서 우주의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와 더불어 함께하는 기준에서 해결된다고 봅니다.
통일이라는 것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통일의 이상이라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들과 합해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는 환경이 있고, 그 환경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그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그 하나된 자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응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더 큰 하나를 이루어 나갑니다. 그래서 더 큰 하나가 된 거기서 더더욱 큰 것으로 나가고, 그렇게 통일적인 환경이 형성되어 나갑니다.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 이거예요. 컴퓨터에 프로젝트가 투입된 것과 마찬가지로 나와 같은 생리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가 투입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포들 가운데도 미래에 자랄 수 있는 나의 모습이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플러스가 되어서 모든 물질을 상대적인 요인으로 흡수하고, 또 그것이 사방에 있는 것들을 흡수해서 더 큰 것과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관계로 하나됩니다.
전기에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하나의 원형체(圓形體)를 중심삼고 볼 때 상현이 있으면 하현이 있고, 우현이 있으면 좌현이 있고, 전현이 있으면 후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는데, 그것은 마음과 몸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응적인 세계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관계의 세계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관계의 세계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현상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관계의 철학을 중심삼고 통일적인 장(場)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눈도 통일되기 위해서는 1.2면 1.2에 초점을 맞추어야 됩니다. 하나는 1.2고 하나는 0.2라면, 이것은 찌그러지는 것입니다. 초점이 찌그러지는 거예요. 우리가 듣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듣는 것도 전부 다 초점을 맞춰서 들어야 됩니다. 그 초점을 맞춘 거리가 같고, 내용이 같게 될 때는 통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권이란 것은 공명하는 데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명, 서로 서로가 같아야 된다는 거예요. 질과 내용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는 육적인 나와 영적인 나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일교회의 술어로 말하면 영인체와 육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영인체와 육신이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되어야만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하나되느냐? 공명된 자리에서 하나됩니다. 여러분, 음차(音叉;소리굽쇠)를 알지요? 음차의 주파수가 같게 될 때는 이것을 “탕” 하고 때리면, 이것도 “띠잉…” 하고 같이 소리가 납니다. 우리의 영인체와 육신도 음차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공명권을 통해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 현상세계에서는 그렇게 하나됩니다. (226-73)
 
무엇으로 말미암아 공명되느냐
 
사람은 몸과 마음의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마음은 종적인 면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판서하시며) “저 사람은 마음이 바르다” 할 때, 그 마음이 바르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바른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곧은 사람이라고 할 때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그것은 수평을 중심삼고 봤다는 것입니다. 수직으로 보았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바른 사람이다” 할 때, 그렇게 바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바르다고 하는 것이냐? 그것은 수평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누구냐? 불교에서는 참선을 통해서 마음이 무엇인가를 연구해 나왔지만, 아직도 마음이 무엇인지를 몰라요. 마음은 종적인 나입니다. 또, 몸뚱이는 횡적인 나입니다. 그래서 그 횡적인 나와 종적인 내가 통일되는 자리에서 나라고 하는 인격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이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이 통일될 수 있느냐? 공명될 수 있는 본질을 통해 하나되는 데서 완성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공명되느냐? 그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참사랑에 의해서 공명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에 의해서 공명권이 벌어진다구요? 참사랑에 의해서입니다.
그래, 참사랑이 뭐냐 이겁니다. 참사랑은 자기를 위한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환난이 오고, 화(禍)가 오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하면 모든 전부가 자기를 중심삼고 개인주의 천국화의 이념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한 집에 여덟 식구가 산다면, 그 여덟 식구가 자기를 중심삼고 전부 다 나뉘어져 있습니다. 몸 마음이 하나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열여섯 패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여섯 패거리를 무엇으로 하나로 만드느냐 이거예요. 돈 가지고 안 돼요. 돈은 가지면 점점 더 많이 갖고 싶은 것입니다. 지식도 그렇습니다. 지식도 끝이 없어요. 권력도 끝이 없습니다. 돈이니, 지식이니, 권력이니 하는 것들이 마음이 필요로 하는 욕망적 대상이냐?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몸뚱이를 중심삼고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몸뚱이를 중심삼은 사적인 입장에 있는데, 그 사적인 입장을 중심삼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땅을 필요로 하고, 돈을 필요로 하고, 지식을 필요로 하고, 권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들이 외적인 환경을 확장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외적인 환경을 확장해서 뭘 할 것이냐? 거기에 비례해서 본질적인 세계에서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하나되는 기준을 보게 되면 어떻느냐? 외적인 확장은 내적인 충실을 가져옵니다. 외적인 기준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중앙의 기준도 커진다 이거예요.
여러분, 봄에도 보면 알잖아요. 동산에 자라는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그것이 중앙이 먼저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 잎사귀가 먼저 자라 가지고 종대가 커 나오는 거예요. 잎사귀가 무성하게 많이 자라 가지고 종대가 나옵니다. 벼 같은 것도 그렇잖아요? 벼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라야, 그 가운데서 대를 중심삼고 씨알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횡적인 확장은 상응적으로 종적인 확장을 도모합니다. 또, 종적인 확장이 벌어지면 횡적인 확장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공명권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은 공명권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26-75)
 
우주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내용
 
우리 통일교회의 사람들은 다 아는 바이지만,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도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자기 발견과 자기 통일이었습니다. 이 세계의 모든 물질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다 드러나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있어서의 종적인 나와 횡적인 나를 앎으로 말미암아 내 자신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영계뿐만 아니라 대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소우주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공명적인 주체성을 지니게 될 때, 핵심적인 요인이 될 때는 중심이 됩니다. 핵이 되는 것입니다. 핵은 모든 부체(副體)들에 대해서 주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완성을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완성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48년 만에 수천 년 동안 기반을 닦은 다른 종단들 이상의 자리까지 올라와서 세계적인 판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 때문이었느냐? 나라는 사람이 핵심적인 기준에서 모든 부체가 되는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공명적(共鳴的)인 핵의 기준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단체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단체가 크기를 바란다면 상대적인 단체들 가운데 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명적인 주체와 상대가 되게 될 때, 그 영역권은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대우주의 통일은 어떻게 되겠느냐?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전체의 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핵으로 되어 있는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모든 피조세계, 존재세계는 부체로 되어 가지고 그 핵과 공명권에 있게 될 때 천지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때 천주주의(天主主義)가 완성됩니다. 이런 논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나님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개인입니다. 개인의 완성에서부터 시작한다구요. 몸 마음이 하나된 통일권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나라가 통일되고, 세계가 통일되고, 하늘땅이 통일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원소로 흡수될 수 있는 존재는 될지 모르지만 핵의 자리에서 모든 존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26-77)
그러면 우주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내용,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체와 부체가 하나될 수 있는 내용이 뭐냐? 그건 하나님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능력, 만물을 지을 수 있는 물질적인 요인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참사랑만이 가능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아야만 하나님이 핵을 울릴 수 있고, 그 핵을 울리게 될 때에 우주가 공명됩니다.
우주 전체가 형성된 자체를 바라보게 될 때, 여기는 반드시 공명적인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존재한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맞지 않으면 우주가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핵을 중심삼고 공명적인 환경을 이룰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 자체도 공명될 수 있는 주체와 대상을 갖추어야 됩니다.
이 피조세계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위주한 모든 전체가 피조세계지요? 인간은 남자 여자가 있고, 동물은 수놈 암놈이 있고, 식물에는 수술 암술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분자에는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 원자에는 전자와 양자가 있습니다. 전부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왜 이게 이렇게 되어 있느냐 이겁니다. 전부 다 공명될 수 있는 통일권을 바라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것은 쌍쌍제도의 존재권을 벗어나서는 완성이니, 이상이니, 희망이니, 소원이니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쌍쌍기반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자유도 없는 것이요, 희망도 없는 것이요, 소망도 없는 것이요, 평화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통일된 기반 위에 자유가 있습니다. 한 가정에 있어서 어머니 아버지와 형제들이 하나된 기준에 있을 때는 어머니의 방이나 내 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방에 가도 제재를 안 받고, 형님의 방에 가도 제재를 안 받습니다.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공명권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제재를 안 받는 것입니다. 누나의 방에 간다고 해서 “아이고, 남자가 누나의 방에 들어올 수 있나” 하지 않아요. 서로 사랑으로 공명될 때는 자유롭습니다. 주체 앞에 대상, 대상 앞에 주체가 언제든지 맞춰 줄 수 있는 공명권이 이루어질 때 그 가정은 자연히 통일되고, 그 가정에는 자유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 안 되어 있으면, “왜 들어와” 하는 말이 나옵니다. 부부가 하나 못 되어 가지고 “왜 그래” 하는 거기는 자유가 없습니다. 형제가 전부 다 화합하지 못하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없어지기 때문에 자유가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명권을 벗어나서는 자유가 없습니다. 행복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아이들도 그렇잖아요. 우리 집의 꼬마 손자 손녀들을 보더라도 그래요. 오늘 아침에도 보니까, 움직이는 데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끔 움직이면서 상대권을 이루려고 하더라구요. 왜 그러하냐? 그것은 자기의 행동을 중심삼고 환경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공명적인 환경을 수습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요? 그와 같이 상대권이 필요합니다. 그게 왜 그러냐 이거예요. 자유의 이상적인 근원이 반드시 통일된 환경에서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요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이라는 말이 붙게 된 거예요. 오늘 제목이 뭔가요? ‘통일은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로’입니다. 모든 통일을 집어넣어도 괜찮아요. ‘모든 통일은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로’라고 말이에요. (226-78)
 
공명권이 되고 초점이 맞아야 통일이 벌어져

이제 통일이라는 말을 알았습니다. 통일은 공명권이 되어야 벌어집니다. 초점이 맞아야 된다구요. 코도 그렇지요? 이렇게 하나가 안 맞으면 찔찔대지요? 요렇게 되면 둘이 공명을 안 해요. 공기가 들어가서 잘 순환하지 않는다구요. 찌그러져 가지고 한 곳으로만 가려고 합니다. 귀도 그래요. 이게 전부 다 신경을 중심삼고 화음이 벌어집니다. 화음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음악도 그렇잖아요. 고저의 폭을 중심삼고 화음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화음이 되어야 취한다구요. 왜 인간이 화음이 되어야 취하느냐? 우리 자체가 공명체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모든 예술도 그런 기준에서 걸작품이 됩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통일된 환경에서만 행복이 가능합니다. 부부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필요로 하느냐? 부부의 행복은 하나되는 자리, 통일된 자리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통일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 가지고 남편이 주체가 되면 아내는 상대가 되어 공명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주체 대상이 서로 웃고 화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화동하는 데 있어서, 파장이 맞는 데 있어서 이상적인 출발의 기준이 세워집니다. 그러니까 수평과 수직이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모든 이상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여러분, 그렇잖아요. 속도로 볼 때, 제일 늦은 속도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더라도 빨리 가는 걸 좋아해요, 천천히 가는 걸 좋아해요? 빨리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천천히 가는 게 얼마나 안전해요! 다른 사람은 1시간에 갈 것을 10시간에 가게 되면, 그건 뭐 절대 안전합니다. 그렇게 늦게 가지만 절대 안전해요. 절대 안전한 반면에 절대 지루합니다. 그렇다는 얘기지요. 그렇지만 빨리 가는 것은 절대 좋지만 절대 위험합니다. 그렇게 반드시 상대권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좋기를 바란다면 나쁜 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재조건(先在條件)이 나쁜 것을 극복하는 데서부터 좋은 것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쁜 것을 극복 못 하면 좋은 것이 있더라도 좋으나 마나입니다.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만, 밤을 극복해야만 밝은 천지가 벌어집니다. 그런 모든 것이 공명적인 내용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눈도 깜박깜박할 때 두 개가 교대로 하나씩만 깜박거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그게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박자가 맞아야 됩니다. 화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근본문제에 있어서 이 우주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데, 그게 왜 그러하냐? 공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공명이 벌어지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할 때 남자 여자를 먼저 생각하고 사랑을 세우셨겠느냐, 아니면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를 세우셨겠느냐? 어떤 게 먼저 같아요? 남자 여자가 요렇기 때문에 사랑이 요래야 된다고 하셨겠어요, 사랑이 요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요래야 된다고 하셨겠어요? 사랑이 요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요래야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 귀합니다.
오늘날 칸셉(concept;관념)과 리얼리티(reality;실재), 관념과 실재철학이라고 하는 2대 대립적인 요소에 의해서 인류역사가 파탄에 직면해 가지고 인류가 혼란의 와중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구할 것이냐 하는 것은 우주사적인 심각한 문제입니다. 개인 문제를 넘고, 국가 문제를 넘고, 세계 문제를 넘고, 하늘땅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 자신이 해결하시지 않으면 안될 문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26-80)

 

 

사랑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남자 여자가 생겨났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존재는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쌍쌍제도로 되기 전에 쌍쌍제도로 나타날 수 있었던 내적인 무형의 형태가 있었습니다. 무형의 존재가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남자 여자가 생겨났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생겨났으니까 사랑이 생겨났다는 것은 유물론적인 관입니다. 유물론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뭐냐? 여러분이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다” 하는 그러한 칸셉을 가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여자로 태어나겠다” 하는 그런 관념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여자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나로 말미암아 태어났어요? 아닙니다. 우리 인류의 조상, 종지조상인 해와 할머니한테 “당신이 태어날 때 여자로 태어난다는 생각을 가지고 태어났습니까” 하고 묻게 되면, “아니야, 난 이렇게 태어나는 줄 몰랐어” 할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날 수 있었던 동기는 내가 아닙니다. 그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것은 관념에 귀착됩니다. 이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태어나게 될 때 여자로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여자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원했으면 왜 여자로 태어나요, 남자로 태어나지요? 그리고 내가 여자로 태어나면 최고의 미인으로 태어나지 왜 추녀로 태어나요? 내 스스로 주체성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그런 의식 혹은 느낌과 같은 여건이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도 없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될 수 있었던 기원이 나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여자로 태어나기 전에 여자라는 칸셉이 있었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여자 남자가 태어났다 이거예요. 여자 남자가 왜 태어났느냐 하면 무엇 때문이에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본향 땅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결과는 본향에 귀착되어야 합니다. 원인과 결과는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에 본연적인 사랑의 개념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가 태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태어난 남자 여자도 기필코 그 원인이 되는 사랑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왜 그 원인과 결과가 하나되어야 하느냐? 하나는 종적이요, 또 하나는 횡적인데 그 종횡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운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그렇지요? 종횡이 떨어지면 운동은 끝나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구형이 되어서 순환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순환운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종횡을 중심삼고, 전후를 중심삼고 구형을 갖추어서 돌기 때문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운동하더라도 도는 것을 모릅니다. 지구가 도는데, 여러분이 그걸 느낄 수 있어요? 못 느낍니다. 하루에 한 번씩 꼭대기가 거꾸로 되고, 내가 거꾸로 붙어 있다는 걸 알아요?
여러분은 원만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요? 원만한 사람이 뭐냐? 모든 면에서 꽉 차 있다 이거예요. 우리 인체의 구조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세포들은 전부 다 원형을 이루어 가지고 어느 하나의 방향에 치우침이 없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포들의 생활입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춤추게 될 때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하나되어 통일됩니다. 그래 가지고 다른 것을 찾아가서 하나되는 거기에서 자기가 커 가는 걸 볼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누구든지 이익이 나면 좋아하지요? (226-81)
 
하나님의 마음세계에는 원수의 개념이 없다

선생님이 제일 고심한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내 자체의 통일이 문제로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하나님 자체는 마음과 몸이 통일이 되어 있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더니, 하나님이 “아니야” 그러시더라구요. 왜 그러냐 하면, 창조주로서 핵의 자리에 있지만 부체를 중심삼고 공명권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쁘신 하나님이 못 된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마음대로 기뻐한다고 하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공명권을 못 가지셨는데 그 공명권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심적세계에 해방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 통일교회의 문 선생은 어떨 것 같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방대한 뜻을 중심삼고 내 자체는 핵의 자리, 주체의 자리에 서 있지만 상대적인 세계와 공명권을 이루지 못하게 될 때는 그 마음이 기쁘지 않더라 이거예요. 이제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나를 많이 존경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뭐 5천 년 역사이래 처음 태어난 성인이라는 말까지 갖다 붙이더라구요. 나는 성인인지 무슨 뭐 성을 쌓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구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런데 제일 기분 나쁘고 죽고 못사는 패들은 기성교인들입니다. 나하고 무슨 원수졌어요? 나는 원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세계에는 원수의 개념이 없다는 걸 내가 알아요. 원수의 개념을 하나님이 가지셨다면 이원론에 떨어지고 끝날에 통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두 세계의 방향으로 전진해야 되는 거기에는 상충이 있고 경쟁이 있을 뿐이지 통일적인 환경은 영원히 못 찾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적개심, 적의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딸이 되겠다는 사람도 적의개념을 갖지 않아야 됩니다. 문 총재도 그러한 적의개념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그런데 기성교인들은 밤낮 문 선생을 원수라고 하면서 죽으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원수의 개념을 가진 사람은 천국 가는데 있어서 무사통과가 불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을 나는 용서해 주고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려고 합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사람들 가운데 어느 종류를 남겨야 되고, 어느 종류를 없애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볼 때 대상권을 갖출 수 있는 내용을 가진 것은 남기시지만, 여기에 상치되고 상반되는 존재는 천운이 제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는 점점 큰소리하고 커 간다고 하지만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전부 다 뺏기는 것입니다. 반면에, 통일교회는 껍데기는 없는 것 같지만 알맹이를 가졌습니다.
이 둘이 합하게 된다면 어느 것이 주체가 되느냐? 기성교회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고 틀림없이 통일교회가 주체가 됩니다. 또, 나라와 통일교회 중에서도 누가 주체냐 하면 나라가 주체로 되어 있지 않아요. 통일교회가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하냐? 종적인 마음분야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226-84)

참사랑권에 도달할 수 있는 자리

통일은 참사랑으로부터 비롯되는데, 그 참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참사랑이 필요하지요? 참사랑을 통해서 참사람이 됩니다. 참사랑과 참사람은 사촌이 되는 거지요. 여러분, 참사랑의 세계를 한번 경험해 봤어요? 모두 다 시집 장가를 가서 아들딸을 낳고 살림살이를 해 본 경험들이 있지요?
왜 남자 여자들이 결혼을 해요?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하지” 하는 그건 미친 것들이라구요. 왜 결혼하느냐?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이냐 하면 우주를 움직이는 핵입니다. 우주를 움직이는 그 핵을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우주가 내 것이 됩니다.
아들딸이 태어나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상대가 되어서 사랑을 받게 되면 그 집안의 귀염둥이가 됩니다. 그 집안의 귀염둥이라고 할 때 할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이에요, 아이를 두고 하는 말이에요? 아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 자라고 있는 아이도 있지만, 나이 많은 할아버지도 아이가 되지요? 아이는 아이인데, 노망이 난 큰 아이입니다. 그런데 노망이 난 그 아이는 철딱서니가 없어요. 똥을 싸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아이는 그래도 똥 싸게 되면 창피해서 “에이…” 이런다구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히히히…” 하고 그냥 웃고 있습니다. 그런 게 다릅니다.
그러면 한 집안에서 그 할아버지를 대해서 “아이고, 보고 싶었어요” 하면서 따라가서 키스하는 사람을 봤어요? 그러나 아이는 찾아가서 할아버지한테 키스합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여기는 전부 다 여자들의 판도인데, 여자들이 자리에 누워서 똥 누고 오줌 누고 하면서 아이와 같은 그 시아버지한테 가서 “아이고, 쪽…” 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아들딸같이 품고 “아이고, 놓고 못 살겠다” 하면서 뽀뽀를 할 수 있는 며느리가 있느냐구요. 그럴 수 있다면, 그 며느리는 참사랑권에 도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노망이 들어서 아이와 같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며느리가 될 때 참사랑의 경지에 가까워집니다. 참사랑의 경지에 도달했든가, 아니면 참사랑의 경계선에 가까이 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의 여자들 가운데는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를 모시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들이 태반이지요? 시부모를 모시는 데로 시집가겠다는 여자를 찾아봤어요? 소위, 대학을 나왔다는 간나들이 더 그렇습니다. ‘간나’라고 한다고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시집갔나” 그 말이에요. (226-88)
 
참사랑이라는 것은 생명을 주고도 잊어버려

참사랑이라는 것은 생명을 주고도 잊어버리는 데서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던 직전에 자기의 왼쪽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던 원수를 대해서 기도하기를 “저는 저가 행하는 걸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저렇게 행하니 하나님이여, 용서하소서” 했습니다. 그게 위대했던 것입니다. 원수 중의 원수를 대하면서 원수개념의 자리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에 합당한 자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는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에도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보라구요! 자기 아들이 죄를 지어 가지고 오늘 아침에 교수대에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그 나라의 법이든가 모든 제도를 전부 다 없애더라도 자기 아들을 살려 주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죄의 규정이나 모든 것을 다 넘어서 가지고 해방시켜 주고픈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그 사랑하는 마음은 하늘 편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는 적대개념이 없습니다.
아무리 불효자식이라도 “응당히 죽어야 돼, 이놈의 자식” 하는 것이 아니라 형장에 나가는 그 아침에 소원이 있다면 자기 아들이 해방될 수 있는 길,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붙들고픈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놈의 자식, 싸지” 그런다구요. 그렇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습니다. “아이고, 죽겠어! 내가 죽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바꿔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합니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늘 편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편에 서 있는 그러한 어머니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아들이 형장에서 천 년 한을 품고 가더라도 어머니 앞에는 머리를 숙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줄을 통해서 영원한 세계에 구원의 길이 연결됩니다. 만민이 죄가 많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천상세계까지 구도의 길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만민이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머리를 숙여 가지고 과거에 세상에서 자기가 저지른 부정을 뉘우침으로 말미암아 그게 가능한 것입니다. 거기서 해방권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해방시키는 것은 적개심이 있는 데서가 아니에요. 적개심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는 적개심,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원수의 개념이 없어져야,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김일성을 만나러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1987년에 김일성과 고르바초프가 암살대를 보내서 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일본의 적군파 25명을 보내 가지고 나를 제거하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CIA와 FBI에서도 나에게 통고해 왔습니다. 소련에 가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 간다는 것은 목숨을 칵 던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목숨을 칵 던져 버리는 것이 모스크바라고 생각도 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러나 생명을 걸고서라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길, 그러한 어려움의 길을 가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생명을 각오하고 가다 보니까 고르바초프 일당이 나한테 뒤넘이친 것입니다. (226-90)
 
환고향 이상 기쁜 복음이 어디 있겠느냐
 
이번에 내가 김일성을 만나러 갔지만, 여태까지 김일성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욕을 많이 했어요! 나도 그랬습니다. 김일성을 욕하면서 “때려치워라, 주체사상이 뭐냐” 그랬다구요. 마피아는 나쁜 짓을 가르쳐 주면서도 영원히 남기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그는 영원히 남기겠다고 주체사상을 들고 나왔습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 주장하는 주체사상하고 김일성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래 가지고 갈 때는 김일성을 대해서 어머니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적의 개념을 갖고 가면 판도가 어그러지는 거예요. 수평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을 40년 전에 잃어버린 형님과 같이 생각하는 동생의 자리에 서서 부모를 모시고, 하늘 앞에 있어서 서로가 적개심이 없이 환담이 벌어질 수 있게끔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고해야 할 때는 충고도 해 줘야 돼요. 형님이 잘못했는데도 “형님, 괜찮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하늘이 정의의 자리에 못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수대 의사당에 가서 “주체사상, 안 된다.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가 아니면 세계의 평화를 이룰 수 없다” 하는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붉은 왕이 되어 총칼을 가지고 지금까지 전부 다 해 나왔지만, 이제는 맨 마지막의 벼랑에 딱 몰렸습니다. 그러나 문 총재는 벼랑에서 시작해 가지고 어디로 올라왔느냐 하면, 반대의 자리로 올라왔습니다.
김일성은 대한민국 북쪽의 손바닥만한 땅에서 주체사상을 주장하고 있지만, 나 문 총재는 50억 인류가 사는 지구성 전체 앞에 두익사상과 하나님주의를 주장해 가지고 공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핍박의 검은 구름은 사라지고 환성과 환영 일변도의 풍토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기반을 닦아 놓고 찾아왔다는 것을 그들이 잘 알더라구요. 통일교회의 문 선생에 관한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느냐 하면 2백 권 이상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설교집만 해도 2백 권이 넘잖아요. 그러니까 방대한 사상적인 내용입니다. 그걸 보게 되면, 여러분이 지금부터 공부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원리책도 잘 모르면서 “나, 통일교회 교인이야” 이러고 있다구요. 그건 아이 때는 통하지만 성숙해 가지고 장성한 때가 되면 안 통합니다. 자기의 인격 자체를 주장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되겠다고 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자기의 상대권을 이루기 위해서 문 선생이 아는 모든 내용의 판도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번에 환고향을 하라니까 “나는 환고향 못 하겠습니다” 이러는 사람도 있어요. 환고향이라는 말이 없으면, 문 총재가 에덴 동산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 이상 기쁜 사건이 어디 있겠어요! 고향에서 쫓겨나 가지고 왕권을 잃어버리고 모든 창조권과 참된 이상적 부모권을 다 잃어버린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 고향을 찾아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거지요. 그것을 잃어버린 비통한 사실을 백 퍼센트 알고 있는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 환고향 이상 기쁜 복음이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오면서 북한의 해방을 위하여 기도를 한 번 한 죄로 일생을 여기에 다 바쳤습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소련과 중국을 수습해야 되고, 일본을 수습해야 되고, 미국까지 수습해야 됩니다. 천신만고, 한에 한의 고개가 있더라도 그걸 다 극복해야 되고, 인륜적인 모든 주장이 온 중천에 떠 있기 때문에 밤에 비치던 별빛이 무색하리만큼 태양 이상 빛날 수 있는 세계적인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지 않고는 남북의 자연굴복과 해방이 불가능합니다. 그건 총칼을 가지고 싸워 가지고는 안 돼요. 자연굴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는 적개심이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개념을 갖고 계시지 않기 때문에 자연굴복을 시키셔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지루하고 오랜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226-92)
 
이제 통일교회 찬양시대가 온다
 
문 총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선생님의 이론적인 체계를 갖춘 이 내용을 듣게 되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소련의 국회의원들을 데려다가 교육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이론적인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세계를 주머니에 넣고 주물럭거리면서 “내 손으로 전부 다 까먹겠다” 하는 판국이거든요. 신이 없다는 그런 사람들을 데려다가 교육했더니 4박5일 만에 80퍼센트가 완전히 돌아가더라구요. 이와 같은 무서운 무기가 문 총재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무기를 활용하면 원자포가 문제가 아니고, 북한의 원자탄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40년 전에 이 사상으로 무장했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는 한 사람도 남아지지 않고 7천만이 전부 다 세계에 나가서 대한민국의 말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 혹은 우리의 원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전부 다 취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 거라구요.
그 다음에 금강산을 개발했으면 말이에요, 대한민국 사람들을 관광요원들로 세워서 한 사람이 열 사람의 관광객을 유치하면 모두 다 얼마나 돼요? 7천만인이니까, 7억이나 되는 사람들을 관광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 거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금강산을 보러 갔을 때 “너 40년 동안 얼마나 지루했느냐! 이제 주인인 내가 왔으니까 너를 개발해 주겠다” 그랬던 것입니다.
이런 운동을 해 가지고 금강산 본래의 아름다움과 천연의 형태를 만민이 추모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존경이 아니라 추모예요. 한국의 금강산을 해외에서 생각하게 될 때 동방, 서방, 남방, 북방의 모든 인간들이 그리워할 수 있는, 또 거기서 살고 싶다고 할 수 있는 판도를 만들었더라면 40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처럼 피폐하지 않고, 북한도 저렇게 거지 패들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무서운 벌입니다.
대학가에서 공산당들이 우리하고 이론투쟁을 하면 먹혀들게 됩니다. 1974년에 일본에서 내가 공산당을 전부 쓸어 버렸습니다. 일본을 중심삼고 아시아의 제패를 꿈꾸던 공산주의 세계의 이론가들이 12개 국가들로부터 모여 가지고 ‘통일원리의 극복’이라는 주제를 놓고 3주일 동안 연구하다가 결국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 도망갔습니다. 왜냐? 신을 설명할 수 없거든요. 암만 해도 그 개념이 해명이 안 돼요. 자기들이 찾는 길을 모릅니다.
그래서 교육해야 됩니다. 지금 흑해에서 영국이나 미국 사람들에게 지지 않을 만큼 영어도 잘하고 무불능통(無不能通)할 수 있는 소련의 천재들 3천 명을 모아 가지고 12월달부터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다 모르지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릅니다. 밤중도 이런 깜깜한 밤중이 없습니다.
이제 여명의 빛이 언제 들어오는지 다 알고 지금 우리가 가야 하는 산봉우리 저쪽으로 아침해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통일교회의 사람들은 쌍수를 합장하여 희망의 해가 솟아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는 밤중이에요, 밤중. 등잔 밑이 어둡다는 선현들의 말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한국 땅에서 문 총재를 중심삼고 벌어지는 이 사실은 한탄스러운 것입니다. (226-92)
그러나 문 총재는 그야말로 참사랑의 논리를 중심삼고 살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할 재료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두고 보더라도 지금 6대까지 나오는 데 있어서 정부를 중심삼고 어느 시대든지 나하고 관계를 안 맺은 대통령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용해 먹고는 차 버리더라도 “그래, 그래” 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대한민국 백성들 중에서 문 총재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22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