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9권 12일
주체와 대상으로 인한 이상세계 (훈독본)
날짜 : 1977. 2. 13(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주체와 대상으로 인한 이상세계(천일국 훈독경 제9권 12일)
하나님이 어디에 계셔야 되느냐
우리 원리에서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 완전히 주고받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몸의 제일 깊은 곳과 마음의 제일 깊은 가운데 계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천국이고, 천국은 내 마음에 있다고 했으니까 몸과 하나된 마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하나되느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 자체와 몸 자체만으로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내적으로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 둘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모티브(motive), 즉 그 동기적인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데 있어서 주체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됐다고 하는 경지가 어떤 경지냐? 그렇게 되려면 마음과 몸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최고의 이상이 있어야 되고, 그 이상을 중심삼고 실천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면 최고의 무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최고로 높은 기준과 넓은 기준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기준이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설정될 수 있겠느냐? 아니면, 그것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주체적인 그분이 기준이 되겠느냐? 어디까지나 인간이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이상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동기적인 존재가 그 기준이 됩니다. 그 동기적인 존재가 바라는 이상과 소원하는 활동무대가 기준이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의 최고의 기준일 것이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활동무대가 있으면 그것도 모든 것의 최고의 기준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와 같은 동기적인 존재와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이 바라시는 이상을 추구하고, 그분이 바라시는 활동무대를 추구해서 맞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91-185)
인간의 몸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하나님의 이상과 인간의 이상이 어디서부터 완전히 하나되느냐? 하나님은 90도를 중심삼고 찾아 내려오십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개인이 완성되면 하나님도 개인완성의 가치를 가지시고 우리가 가정완성과 종족완성으로 점점점 나아가 세계완성의 기준까지 가면 여기에 와서 맞부딪치십니다. 하나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완성되면 지상완성이 되는 동시에 영계완성이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도 완성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해방되면 하나님이 해방되십니다. 우리 가정이 해방되면 하늘나라의 가정이 해방되고, 이 지상이 해방되면 하늘세계가 해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18) 한 논리도 이러한 이중구조의 일체성을 앎으로 말미암아 해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종적이라고 한다면 우리 인간은 횡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합해 가지고 이 자리에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완성은 하나님만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성도 하나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반드시 인간과 지상의 활동무대를 통하지 않으면 완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목적의 완성이라는 것을 하나님 자신보다 인간세계에 두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사상을 가진 사람이 좋아요, 사상을 갖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좋아요? 말은 없지만 행동하는 사람, 세계를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이 더 좋다 이거예요. 그것은 하나님도 이상실현의 기반을 지상인 실체세계에 두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하나님의 완성도 나에게 달렸구나! 이 목적도 필요하고 이 방향도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지상의 목적과 지상의 방향이 없으면, 내가 살아가는 이 방향이 없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으시구나” 하는 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을 쓴 이 기간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부활시킬 수 있고, 우주도 부활시킬 수 있고, 모든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는 기간은 육신을 쓰고 있는 이 기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물을 합하더라도 이 육신세계와 바꿀 수 없습니다. 왜 그러하냐? 하나님과 우주를 합하더라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 없어 가지고는 완성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몸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복음16:26) 한 말도 그래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91-190)
통일교회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은 것이 있으면 그걸 하나님 혼자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중심삼고 같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같이 좋아하는 데는 뼛골과 마음속의 모든 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좋아하려고 하십니다.
“하나님도 별 수 없으시다. 나를 따라다니시지 않을 수 없고, 내가 가는 데를 같이 가시지 않을 수 없고, 내가 있는 곳에 같이 계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이론적인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말을 듣게 될 때 “예이, 이 녀석들아! 그럴 수 있느냐? 너희들과 나는 다르다” 하시겠어요, “그거 그렇다” 하시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거 그렇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하면,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박수를 치면, 하나님도 박수를 치신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세상에서 인권운동이니 해방운동이니 하는데, 그게 다 시시합니다. 그거 암만 하면 뭘 해요? 우리는 뭐냐 하면 “신권, 인권 동등 회복이다” 하는 패입니다. 그래,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세계를 혁명해 가지고 새로이 만들자! 신권과 인권을 통일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 하는 패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운동은 이 세계에 없습니다. 알겠어요? (191-192)
가장 핵심적인 원리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 사상을 가질 거예요?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받아들이는 사상을 가질 거예요, 인간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은 안 받아들이시는 사상을 가질 거예요? 하나님과 인간이 받아들이는 사상이 이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주체와 대상으로 인한 이상세계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출발점이 어디냐? 이상세계의 출발점이 어디예요? 누구로부터예요? 「나로부터입니다.」 나는 나인데, 나만이 아니라 선생님과 내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편에서 보면 선생님과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의 편에서 보면 나와 선생님, 하나님의 편에서 보시면 하나님과 인류, 인류의 편에서 보면 인류와 하나님, 세계를 중심삼고 보면 세계와 나, 내 편에서 보면 나와 세계, 하늘나라에서 보면 하늘나라와 나, 내 편에서 보면 나와 하늘나라입니다. 그게 이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가 없고 대상이 없는 데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데서 이상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말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이상이라는 말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희망이라는 말도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전부 다 주체와 대상이 없으면 성립이 안 됩니다.
여러분, 사랑을 좋아하지요? 사랑은 상대가 없으면 안됩니다. 희망, 이상, 사랑과 행복은 상대로부터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받으려면 내가 겸손해야 됩니다. 완전히 겸손하면 완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사랑과 모든 것을 희생시켜도 찾을 수 없는 이상이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상대를 위하여 존경하고 희생해야 됩니다. 그 사랑과 이상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위하는 데서 나옵니다.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크다고 하더라도 희생봉사하는 사람은 언제나 받을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영원히 못 받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있다구요.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있으면 반발이 생겨요, 반발. 주체와 주체는 반발합니다. 플러스와 플러스끼리는 반발한다는 거예요. 교만한 사탄을 중심삼고 나도 교만하겠다는 주의를 주장한다면 통일의 세계는 절대 안 나옵니다.
종교는 이런 원칙을 가지고 이상세계를 찾아가려고 하고, 사탄은 그 이상세계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겸손하라고 합니다. 사탄은 교만합니다. 그렇게 교만한 자들을 굴복시키는 방법은 겸손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모든 종교가 희생봉사를 주장했다는 논리도 이러한 진리를 대표했던 것입니다. (91-193)
하나님의 이상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면
이제 주체와 대상의 문제를 알았어요? 그러면 이것을 하나로 만들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 그 길을 향해 가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이상세계와 인류의 이상세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통일과 이상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어디에서 만나고 싶어요? 내 마음에서 만나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상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면 하나님이 같이하십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되어서 밥을 먹게 되면 하나님과 같이 먹는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보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보고, 내가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 됩니다. 내가 만지는 것도 하나님과 같이 만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개인을 넘어 세계적으로 발전시킨다면 세계가 전부 다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좋아하겠지요.
여러분 가운데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 있다구요. 두 마음을 가지면, 이것이 90도가 안 됩니다. 마음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 세계는 다른 세계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원리세계와 관계없는 세계라구요. 인간세계가 왼쪽이고 아래라면, 하늘은 바른쪽이고 위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렇게 갈라집니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이 세계와 관계없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행동은 여기에 반대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주체이신데, 이런 플러스적인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전부 다 반대로 간다구요.
우주가 하나님의 창조이상권인데, 절반을 하나님 편이 가져가면 절반은 사탄세계로 갑니다. 이건 악한 세계요, 어두운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 맨 밑창의 세계가 있고, 하늘의 제일 높은 세계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플러스가 되면 그 개인이 여기에 가 머무는 것이요, 가정적으로 플러스를 형성하게 되면 반대로 여기에 가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고 무엇이고 다 없다,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하나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지옥의 맨 밑창에 들어갑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대신으로 플러스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독재자 중의 최고의 독재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지옥에 가서는 어디로 가느냐? 제일 반대의 세계에 갑니다. 반대는 마이너스입니다.
세계적인 핍박을 받고 마이너스가 되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플러스가 되는 거예요. 전부가 상대적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온유겸손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희생하게 되면 이것까지도 다시 흡수해 가지고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91-197)
하나님과 일치된 사랑권
그런데 이 길을 가는 데는 생각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사탄의 출발점이 어디냐? 사랑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사랑보다도 더 크고 높은 사랑을 가지고 응하지 않고는 이것을 능가할 수 없고 소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탄세계의 사랑은 유린하는 사랑이요, 파괴하는 사랑이요, 모든 것을 무시하는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세계의 사랑은 건설적인 사랑이요, 이상적인 사랑이요,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평화적인 사랑입니다. 반대입니다. 또, 사탄세계의 사랑은 잠깐의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런 사조가 세계적으로 부딪쳐 가지고 교차할 수 있는 운동이 벌어지면 하나는 지상지옥의 세계요, 다른 하나는 천상이상의 세계로 갈라집니다.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미국이 그러한 시기에 처하여 있습니다. 프리섹스하는 패니 무슨 뭐 히피니 이피니 하는 것들이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반대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가 거기에 맞서는 거라구요. 사탄세계는 사랑하면 할수록 점점점 절망, 밤이 찾아오지만 하늘세계의 사랑은 하면 할수록 광명한 우주가 벌어집니다. 통일교회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사랑을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 사람들은 목적이 있고 방향이 뚜렷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목적과 방향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출발하여 개인을 뚫고, 가정을 뚫고, 민족을 뚫고, 세계를 뚫고,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까지 뚫어 가지고 맞추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부모고 무엇이고 다 없다구요. 장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무엇을 남겨야 되느냐? 사랑을 남겨야 됩니다. 사랑을 연결시켜서 가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가는 길에는 사랑권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랑이 내 사랑이에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랑이에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내가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선, 몸과 마음이 언제나 하나된 자리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제나 내 몸과 마음 가운데 들어와 계시는 입장에 서 가지고 생각과 행동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세계에 일치된다 이거예요. 매일같이 하나님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 개인이 생활하는 권내에 비로소 인간과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무대가 벌어집니다.
사랑은 언제 나타나느냐 하면 개인적인 완성기준이 세워질 때 나타납니다. 완성이라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구요. 아담 해와도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서 가지고 개인적인 한계를 넘어설 때 사랑이 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한계점을 넘어 가지고서야 사랑이 임합니다.
그렇게 되면 눈으로 보는 것도 사랑으로 보게 되고, 귀로 듣는 것도 사랑으로 듣게 되고, 행동하는 것도 사랑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왜 그러하냐? 하나님과 일치된 사랑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주가 자연히 그 사람을 주목하게 됩니다. 전부 다 접붙으려고 합니다. 플러스의 전기가 있을 때 마이너스의 전기를 갖다 붙이면 전기가 통하는 것과 같이 그 사람을 향해서 만우주가 하나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91-199)
주체와 대상을 통하지 않고는 이상세계가 나오지 않아
하나님의 사랑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는 남자나 여자나 만물이 전부 다 끌려갑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우가 없었어요? 교회면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있어서 교회를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어디에 가다 보니까 교회에 오게 되는 경우가 말이에요. 자기도 모르게 교회에 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초창기에 여자들이 시장에 간다고 바구니를 들고 나와 가지고는 시장은 안 가고 교회로 오던 일들이 참 많았다구요. 그런 일 때문에 남편들이 “이 쌍년, 어디에 미쳐서 돌아다니느냐” 하면서 반대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을 안 해봤어요?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자기도 모르게 가고 싶은 거라구요.
그 이유는 강력한 힘이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는 통일이 됩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이 임하셔 가지고 개인의 생각과 사상과 행동이 일치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91-201)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곳입니다. 인간의 행동과 이상이 하나되어 가지고 완전히 통일된 권내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이 임합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환경까지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영원한 천국세계에 이른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그런 생활을 하게 될 때는 여기에서 천상천국까지 한꺼번에 점핑해 갈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청년시대에 이런 기준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완성하지 못했으니까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청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불타야 됩니다. “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내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 어느 시대의 젊은 청춘 이상의 힘을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고 하늘땅을 사랑하는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산다” 하는 주체성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됐어요? 문제가 크다구요. 지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지칠 수 없다구요. 선생님이 지쳤어요? 지친 것 같아요? 지금도 나는 젊은 사람에게 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젊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구요. 그래서 내가 전부 다 책임지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누구 누구가 책임져라” 하시기 전에 “하나님, 제가 하지요” 합니다. 내가 해야지요, 내가.
그러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 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중심삼고 지상과 천상이 하나된 것이 이상세계입니다.
그 사랑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을 통하지 않고는 이상세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랑을 통하는 길에서만 이상세계가 벌어집니다. 누구든지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하나님의 사랑도 받을 수 없고 천국과 관계도 맺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사상을 이론적으로 집어넣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양심이 “야, 이 녀석아! 왜 쉬어, 왜? 남들은 다 일하는데, 왜 쉬어?” 이런다구요. 자꾸 이러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조금 잠을 자고 나서 벌떡 일어나 “아이구, 잠 또 잤구만”, 행동을 안 하고 쉬면 “아이구, 또 쉬었구만” 이러지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아이고, 통일교회의 진리고 무엇이고 몰랐으면 내가 이 마음의 고통을 안 받을 텐데…” 이런 소리를 한다구요. 그게 사실이에요.
왜 자꾸 그러는 거예요? 마음이 알기 때문에 몸에게 “야, 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리에 가자” 그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 가자! 가야 된다.”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그게 나쁜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자는 것이 나쁜 거예요? 그 사랑을 한번 체험하는 날에는 그렇게 잠자거나 쉬어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리에는 다시 내려가라고 해도 절대 안 내려간다구요.
이제부터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음이 “이놈의 몸뚱이야…” 할 때, 몸뚱이가 “아이구…” 이러지 말고 “하하하…” 이러라는 거라구요. 찡그리지 말고 웃으면서 “뭐 어째 이놈의 마음아!” 하라는 거라구요. 웃으면서 말이에요. 그래야 마음이 “너 사탄의 무대인지 몰라, 이놈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실질적인 문제라구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상세계가 벌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의 말씀을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행동을 안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확실히 알고 보니 이론적으로 딱 들어맞고 사실적으로 들어맞으니까 앞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들은 손 들어 보라구요! 감사해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91-204)*
천일국 훈독경 제9권 12일, 원문
주체와 대상으로 인한 이상세계
날짜 : 1977. 2. 13(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하나님이 어디에 계셔야 되느냐
내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내 개인은 종적인 기준과 횡적인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으로 하나되어야 하고 횡적으로 하나되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누구나 이상과 희망을 가져야 됩니다. 종적인 기준의 이상과 희망을 횡적으로 실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종횡의 관계를 일체화시키는 데에서 우리의 행복한 생활권이 이루어집니다. 내 개체가 90도로 꺾어지는 기점에 놓여 있다고 볼 때, 마음은 종적인 면을 향해야 되고 몸은 횡적인 면을 향해야 됩니다.
우리 원리 가운데서 가르쳐 주기를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 완전히 주고받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몸의 제일 깊은 곳과 마음의 제일 깊은 가운데 계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천국이고, 천국은 내 마음에 있다고 했으니까 몸과 하나된 마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하나되느냐? 몸이 하나되게 할 수 있느냐? 마음이 하나되게 할 수 있느냐? 이게 문제라구요. 그냥 그대로 마음 자체가 있고 몸 자체가 있어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느냐? 하나될 수 있어요? 그냥 그대로 하나될 수 있다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도 자동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어요? 하나되어 있지 못합니다.
그 둘이 하나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 자체와 몸 자체만으로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내적으로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 무엇이 없어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둘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모티브(motive), 즉 그 동기적인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데 있어서 주체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됐다고 하는 경지가 어떤 경지냐? 그렇게 되려면 마음과 몸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최고의 이상이 있어야 되고, 그 이상을 중심삼고 실천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면 최고의 무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최고로 높은 기준과 넓은 기준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기준이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설정될 수 있겠느냐? 아니면, 그것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주체적인 그분이 기준이 되겠느냐? 어디까지나 인간이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이상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동기적인 존재가 그 기준이 됩니다. 그 동기적인 존재가 바라는 이상과 소원하는 활동무대가 기준이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의 최고의 기준일 것이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활동무대가 있으면 그것도 모든 것의 최고의 기준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와 같은 동기적인 존재와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이 바라시는 이상을 추구하고, 그분이 바라시는 활동무대를 추구해서 맞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91-185)
원인과 결과는 하나되는 것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이것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지” 해야 되느냐? 어느 쪽이 참된 기준인가를 우리는 여기서 결정해야 됩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을 아느냐?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아느냐 이거예요. 모르지만, 그것을 추구해 가는 길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높은 곳, 더 높은 곳, 더 높은 곳을 찾아갑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막연하지만 옳은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최고의 자리에 도달하려면 그런 곳을 향하여 가는 내 자신에게 이런 면도 있고 이런 면도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없으면, 내 자체에 그런 소성(素性)이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때요?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게 어디에서 나왔어요? “그거 우리 엄마 아빠에게서 나왔지” 한다면, 그 엄마 아빠는 어디에서 나왔느냐 이거예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공산주의 이론은 사람을 물질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어요? 물질에 그럴 수 있는 관념이 있어요? 모든 조화의 비결을 갖다 붙여도 물질 자체가 그런 소질을 가질 길이 없다 이거예요. 변증법에서는 모든 존재세계가 변하고 발전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발전하고 변하느냐 이거예요. 옛날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몇 만년 이후의 사람이나 이것에 대한 본성이 변하고 발전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거 변할 것 같아요?
원숭이가 고등동물이라지만, 원숭이가 그런 생각을 가져요? 몇 천년 몇 억년 무슨 힘을 가하고 별의별 놀음을 다 하더라도 그럴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원숭이가 가질 수 있느냐 이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에게는 원숭이와 달리 본성적으로 위대한 본연의 작용이 투입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이러한 변하는 소성이 아닌 변치 않는 소성이 투입된 것은 변치 않는 주체의 대상적인 실체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본성이 있다는 것은 그러한 본성을 지닌 주체적인 실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체의 관념과 대상의 관념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주체와 상대적인 관계로 인연되어 있다는 것을 알 거라구요.
그러면 주체가 되시는 그분이 그러한 본성을 투입한 것은 그 자체만을 위한 것이냐, 보다 차원 높은 이상경을 위한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더 큰 것을 위해서, 더 큰 것을 바라서 투입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더 큰 것을 위해서 투입하셨다고 말할 수 있느냐?
우리 자신들이 그렇습니다. 내 자신이 더 큰 것을 원하는 것을 봐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상이 그러니까 주체도 그렇다는 논리는 타당합니다. 왜 그러하냐?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려니까 그렇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큰 것과 하나되고 싶어요, 작은 것과 하나되고 싶어요? 원인과 결과는 하나되는 것입니다. 닮으면 하나된다는 거예요. 통일의 원칙이 여기에서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의 목적과 대상의 목적이 하나로 화하면 됩니다. 그것이 똑같이 될 때 완전통일이 이루어집니다. (91-187)
인간의 몸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주체와 대상이 어떤 목적을 바라고 전진하는 데는 반드시 고차적인 사상이 있어야 되고, 그 사상을 따라 가지고 고차적인 방향성과 평면적인 행동의 방향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 방향성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새로운 목적이 있음과 동시에 방향성이 있어야지,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우리 마음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존재세계든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진 존재세계에 목적관이 있고 방향성이 있습니다. 주체적인 목적관과 방향성, 그 다음에는 상대적인 목적관과 방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을 중심삼고 가야 할 종적인 목적관과 방향성이 있어야 되고, 몸을 중심삼고 가야 할 횡적인 목적관과 방향성이 있어야 됩니다. 두 방향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선생을 만나더라도 좋은 선생을 만나려고 하고, 친구를 만나더라도 좋은 친구를 만나려고 하지요? 그것은 왜 그래요? 지도자가 필요할 경우에도 좋은 지도자를 원하는데, 좋은 지도자라는 것이 뭐예요? 요즘에 대학을 가고 학박사가 되기 위하여 공부하는데, 그것이 뭐예요? 무엇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것은 보다 높은 이상, 높은 희망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목적을 세우고 방향성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노력하면서 그 방향성에 맞추어야 됩니다. 거기에 도달할 수 있게끔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리에 올라가 가지고 “아, 나는 내 이상적인 목적의 자리에 다 올라왔다. 그러니까 됐다” 하면 되느냐? 그것을 가지고는 안된다 이거예요. 그렇게 방향성을 잡아 가지고 목적에 도달하면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서 낙오하면 낙오자가 됩니다. 이만큼 가다가 말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람이에요? 이런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사람, 목적과 방향을 완전히 하나로 일치시켜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하나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인간은 어디에 가든지 상충이 없고, 환경이나 이상세계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91-189)
그런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자동적으로 올라갑니다. 이렇게 된 사람은, 이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된 사람은 여기서 90도 각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기점이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올라갑니다. 자동적으로 높아지고 올라갑니다. 이것이 45도를 향해서 올라가게 되면 이 경지까지 도달합니다. 틀림없이 도달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어디서부터 접속되시느냐? 하나님의 이상과 인간의 이상이 어디서부터 완전히 하나되느냐? 이 자리예요, 이 자리. 그럴 것 아니에요? 그러면 이와 같은 반대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선을 중심삼고, 90도를 중심삼고 찾아 내려오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오셔야 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개인이 완성되면 하나님도 개인완성의 가치를 가지시고 우리가 가정완성과 종족완성으로 점점점 나아가 세계완성의 기준까지 가면 여기에 와서 맞부딪치십니다. 하나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중으로 뒤집어 놓으면 맞아요, 안 맞아요? 이것을 여기에다 갖다 맞추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완성되면 지상완성이 되는 동시에 영계완성이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도 완성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해방되면 하나님이 해방되십니다. 그게 맞아요? 우리 가정이 해방되면 하늘나라의 가정이 해방되고, 이 지상이 해방되면 하늘세계가 해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18) 한 논리도 이러한 이중구조의 일체성을 앎으로 말미암아 해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종적이라고 한다면 우리 인간은 횡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합해 가지고 이 자리에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완성은 하나님만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성도 하나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반드시 인간과 지상의 활동무대를 통하지 않으면 완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목적의 완성이라는 것을 하나님 자신보다 인간세계에 두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거 뭘 그럴까” 할는지 모르지만, 그런가 안 그런가 보자구요!
여러분은 사상을 가진 사람이 좋아요, 사상을 갖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좋아요? 말만을 하는 사람이 좋아요, 행동하는 사람이 좋아요? 어떤 사람이 좋아요? 말은 없지만 행동하는 사람, 세계를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이 더 좋다 이거예요. 그것은 하나님도 이상실현의 기반을 지상인 실체세계에 두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아, 하나님의 완성도 나에게 달렸구나! 이 목적도 필요하고 이 방향도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지상의 목적과 지상의 방향이 없으면, 내가 살아가는 이 방향이 없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으시구나” 하는 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을 쓴 이 기간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부활시킬 수 있고, 우주도 부활시킬 수 있고, 모든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는 기간은 육신을 쓰고 있는 이 기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물을 합하더라도 이 육신세계와 바꿀 수 없습니다. 왜 그러하냐? 하나님과 우주를 합하더라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 없어 가지고는 완성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몸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거 멋지지요? 우리의 육신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복음16:26) 한 말도 그래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91-190)
통일교회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은 것이 있으면 그걸 하나님 혼자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중심삼고 같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같이 좋아하는 데는 뼛골과 마음속의 모든 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좋아하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만큼 다리를 드시는데 사람은 이만큼 들면 되겠어요? 하나님이 손을 이렇게 드시는데 사람은 이렇게 들면 좋겠어요, 하나님과 똑같이 드는 것이 좋겠어요? 어떤 것이 좋아요?
발레와 같은 춤을 보더라도 남자가 이렇게 하면 여자도 이렇게 해야 되고, 여자가 이렇게 하면 남자도 이렇게 해야 됩니다. 남자는 드는데, 여자는 내리는 그런 춤은 없다구요. 춤을 출 때 한 자리에서 요렇게만 해요? 왔다갔다합니다. 높고 낮고, 멀리 갔다 오고, 돌고 이러면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도 별수없으시다. 나를 따라다니시지 않을 수 없고, 내가 가는 데를 같이 가시지 않을 수 없고, 내가 있는 곳에 같이 계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이론적인 말입니다. 그런 것 같아요?
여러분이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 기분이 얼마나 좋아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 말을 듣게 될 때 “예이, 이 녀석들아! 그럴 수 있느냐? 너희들과 나는 다르다” 하시겠어요, “그거 그렇다” 하시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어떨 것 같아요? “그거 그렇다” 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 우리가 기뻐하면,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박수를 치면, 하나님도 박수를 치신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세상에서 인권운동이니 해방운동이니 하는데, 그게 다 시시합니다. 그거 암만 하면 뭘 해요? 우리는 뭐냐 하면 “신권, 인권 동등 회복이다” 하는 패입니다. 그래,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뭘 하자는 패예요? 무슨 영신들이에요? “세계를 혁명해 가지고 새로이 만들자! 신권과 인권을 통일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 하는 패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운동은 이 세계에 없습니다. 지금 공산당들은 “노동자 농민 해방 운동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통일교회 교인들은 같다, 다르다? 어떤 거예요? 다르다면 그게 나쁜 의미에서 다른 거예요, 좋은 의미에서 다른 거예요? 좋은 의미에서 다른 것입니다. (191-192)
가장 핵심적인 원리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 사상을 가질 거예요?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받아들이는 사상을 가질 거예요, 인간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은 안 받아들이시는 사상을 가질 거예요? 하나님과 인간이 받아들이는 사상이 이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주체와 대상으로 인한 이상세계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출발점이 어디냐? 이상세계의 출발점이 어디예요? 누구로부터예요? 선생님으로부터예요, 나로부터예요? 「나로부터입니다.」 맞다구요. 맞기는 맞았는데, 절반만 맞았다구요. 나는 나인데, 나만이 아니라 선생님과 내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도 선생님만 가지고는 안되는 거라구요. 선생님과 여러분입니다.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선생님의 편에서 보면 선생님과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의 편에서 보면 나와 선생님, 하나님의 편에서 보시면 하나님과 인류, 인류의 편에서 보면 인류와 하나님, 세계를 중심삼고 보면 세계와 나, 내 편에서 보면 나와 세계, 하늘나라에서 보면 하늘나라와 나, 내 편에서 보면 나와 하늘나라입니다. 그렇다구요. 그게 이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가 없고 대상이 없는 데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하나만 있어 가지고는 이상이 아닙니다. 이상이 안 나온다구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데서 이상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말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이상이라는 말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희망이라는 말도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전부 다 주체와 대상이 없으면 성립이 안 됩니다. 혼자 무슨 희망이 있어요? 혼자 무슨 행복이 있어요? 혼자 행복하면 뭘 해요? 혼자 이상이 있다고 혼자 웃으면 미친 녀석이지 별수 있어요?
여러분, 사랑을 좋아하지요? 여러분도 사랑을 좋아해요? 내가 제일이지, 사랑해서 뭘 해요? 그까짓 것 해서 뭘 해요? 사랑은 상대가 없으면 안됩니다. 상대가 없으면 사랑도 없고 다 없다구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희망, 이상, 사랑과 행복은 나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구요. 그것들은 상대로부터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받으려면 내가 겸손해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것들이 완전히 올 수 있습니다. 완전히 겸손하면 완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사랑과 모든 것을 희생시켜도 찾을 수 없는 이상이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상대를 위하여 존경하고 희생해야 됩니다. 그 사랑과 이상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위하는 데서 나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크다고 하더라도 희생봉사하는 사람은 언제나 받을 수 있습니다. 교만한 자, “너는 너, 나는 나다” 하는 사람은 영원히 못 받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있다구요.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발이 생겨요, 반발. 주체와 주체는 반발합니다. 플러스와 플러스끼리는 반발한다는 거예요. 교만한 사탄을 중심삼고 나도 교만하겠다는 주의를 주장한다면 통일의 세계는 절대 안 나옵니다.
종교는 이런 원칙을 가지고 이상세계를 찾아가려고 하고, 사탄은 그 이상세계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겸손하라고 합니다. 사탄은 교만합니다. 그렇게 교만한 자들을 굴복시키는 방법은 겸손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모든 종교가 희생봉사를 주장했다는 논리도 이러한 진리를 대표했던 것입니다. (91-193)
하나님의 이상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면
이제 주체와 대상의 문제를 알았어요? 그러면 이것을 하나로 만들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 그 길을 향해 가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이상세계와 인류의 이상세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통일과 이상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어디에서 만나고 싶어요? 국회의사당에서 만나고 싶어요, 여러분의 마음에서 만나고 싶어요? 어디에서 만나야 되겠어요? 내 마음에서 만나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상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면 하나님이 같이하십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되어서 밥을 먹게 되면 하나님과 같이 먹는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보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보고, 내가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 됩니다. 내가 만지는 것은 어때요? 그것도 하나님과 같이 만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개인을 넘어 세계적으로 발전시킨다면 세계가 전부 다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끌어들이겠지요.
여러분 가운데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 있다구요. 두 마음을 가지면, 이것이 90도가 안 됩니다. 마음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것이 이렇게 되면 몸은 자동적으로 천리원칙에 있어서 90도의 형에 머물게끔 작용하게 됩니다. 이 세계는 다른 세계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원리세계와 관계없는 세계라구요. 인간세계가 왼쪽이고 아래라면, 하늘은 바른쪽이고 위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렇게 갈라집니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이 세계와 관계없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여기의 행동은 여기에 반대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주체이신데, 이런 플러스적인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전부 다 이리(반대로) 간다구요.
우주가 하나님의 창조이상권인데, 절반을 하나님 편이 가져가면 절반은 사탄세계로 갑니다. 이건 악한 세계요, 어두운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 맨 밑창의 세계가 있고, 하늘의 제일 높은 세계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플러스가 되면 그 개인이 여기에 가 머무는 것이요, 가정적으로 플러스를 형성하게 되면 반대로 여기에 가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고 무엇이고 다 없다,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하나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지옥의 맨 밑창에 들어갑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대신으로 플러스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독재자 중의 최고의 독재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지옥에 가서는 어디로 가느냐? 제일 반대의 세계에 갑니다. 이것의 반대는 마이너스입니다.
세계적인 핍박을 받고 마이너스가 되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플러스가 되는 거예요. 상대적이라구요, 전부가. 그렇기 때문에 온유겸손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희생하게 되면 이것까지도 다시 흡수해 가지고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91-197)
하나님과 일치된 사랑권
그런데 이 길을 가는 데는 생각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사탄의 출발점이 어디냐? 사랑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사랑보다도 더 크고 높은 사랑을 가지고 응하지 않고는 이것을 능가할 수 없고 소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탄세계의 사랑은 유린하는 사랑이요, 파괴하는 사랑이요, 모든 것을 무시하는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세계의 사랑은 건설적인 사랑이요, 이상적인 사랑이요,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평화적인 사랑입니다. 반대입니다. 또, 사탄세계의 사랑은 잠깐의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런 사조가 세계적으로 부딪쳐 가지고 교차할 수 있는 운동이 벌어지면 하나는 지상지옥의 세계요, 다른 하나는 천상이상의 세계로 갈라집니다.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미국이 그러한 시기에 처하여 있습니다. 프리섹스하는 패니 무슨 뭐 히피니 이피니 하는 것들이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반대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가 거기에 맞서는 거라구요. 사탄세계는 사랑하면 할수록 점점점 절망, 밤이 찾아오지만 하늘세계의 사랑은 하면 할수록 광명한 우주가 벌어집니다. 통일교회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사랑을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 사람들은 목적이 있고 방향이 뚜렷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목적과 방향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가 여기에서 출발하여 개인을 뚫고, 가정을 뚫고, 민족을 뚫고, 세계를 뚫고,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까지 뚫어 가지고 맞추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부모고 무엇이고 다 없다구요. 장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무엇을 남겨야 되느냐? 사랑을 남겨야 됩니다. 사랑을 연결시켜서 가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가는 길에는 사랑권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랑이 내 사랑이에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랑이에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내가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선, 몸과 마음이 언제나 하나된 자리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제나 내 몸과 마음 가운데 들어와 계시는 입장에 서 가지고 생각과 행동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세계에 일치된다 이거예요. 매일같이 하나님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 개인이 생활하는 권내에 비로소 인간과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무대가 벌어집니다.
사랑은 언제 나타나느냐 하면 개인적인 완성기준이 세워질 때 나타납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완성이라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구요. 아담 해와도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서 가지고 개인적인 한계를 넘어설 때 사랑이 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한계점을 넘어 가지고서야 사랑이 임합니다.
그렇게 되면 눈으로 보는 것도 사랑으로 보게 되고, 귀로 듣는 것도 사랑으로 듣게 되고, 행동하는 것도 사랑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왜 그러하냐? 하나님과 일치된 사랑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주가 자연히 그 사람을 주목하게 됩니다. 전부 다 접붙으려고 합니다. 플러스의 전기가 있을 때 마이너스의 전기를 갖다 붙이면 전기가 통하는 것과 같이 그 사람을 향해서 만우주가 하나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91-199)
주체와 대상을 통하지 않고는 이상세계가 나오지 않아
하나님의 사랑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는 남자나 여자나 만물이 전부 다 끌려갑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우가 없었어요? 교회면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있어서 교회를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어디에 가다 보니까 교회에 오게 되는 경우가 말이에요. 자기도 모르게 교회에 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초창기에 여자들이 시장에 간다고 바구니를 들고 나와 가지고는 시장은 안 가고 교회로 오던 일들이 참 많았다구요. 그런 일 때문에 남편들이 “이 쌍년, 어디에 미쳐서 돌아다니느냐” 하면서 반대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을 안 해봤어요?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자기도 모르게 가고 싶지 않아요? 자기도 모르게 가고 싶은 거라구요.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강력한 힘이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의 방향성을 백인만 가지고 있어요? 흑인은 안 그래요? 그런 면에 있어서 백인과 흑인이 같아요, 안 같아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러니까 거기에서는 통일이 됩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이 임하셔 가지고 개인의 생각과 사상과 행동이 일치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91-201)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곳입니다. 인간의 행동과 이상이 하나되어 가지고 완전히 통일된 권내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이 임합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환경까지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영원한 천국세계에 이른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그런 생활을 하게 될 때는 여기에서 천상천국까지 한꺼번에 점핑해 갈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청년시대에 이런 기준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완성하지 못했으니까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청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불타야 됩니다. “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내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 어느 시대의 젊은 청춘 이상의 힘을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고 하늘땅을 사랑하는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산다” 하는 주체성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됐어요? 문제가 크다구요. 지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지칠 수 없다구요. 선생님이 지쳤어요? 지친 것 같아요? 지금도 나는 젊은 사람에게 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젊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구요. 그래서 내가 전부 다 책임지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누구 누구가 책임져라” 하시기 전에 “하나님, 제가 하지요” 합니다. 내가 해야지요, 내가.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지쳐서 이러고 있으면, “이 자식아…” 하면서 동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동정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이상이 높은 만큼 행동하면 하늘의 소유권과 땅의 소유권을 갖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 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중심삼고 지상과 천상이 하나된 것이 이상세계입니다.
그 사랑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을 통하지 않고는 이상세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랑을 통하는 길에서만 이상세계가 벌어집니다. 누구든지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하나님의 사랑도 받을 수 없고 천국과 관계도 맺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사상을 이론적으로 집어넣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양심이 “야, 이 녀석아! 왜 쉬어, 왜? 남들은 다 일하는데, 왜 쉬어” 이런다구요. 자꾸 이러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조금 잠을 자고 나서 벌떡 일어나 “아이구, 잠 또 잤구만”, 행동을 안 하고 쉬면 “아이구, 또 쉬었구만” 이러지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아이고, 통일교회의 진리고 무엇이고 몰랐으면 내가 이 마음의 고통을 안 받을 텐데…” 이런 소리를 한다구요. 그게 사실이에요.
왜 자꾸 그러는 거예요? 마음이 알기 때문에 몸에게 “야, 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리에 가자” 그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 가자! 가야 된다”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그게 나쁜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자는 것이 나쁜 거예요? 그 사랑을 한번 체험하는 날에는 그렇게 잠자거나 쉬어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리에는 다시 내려가라고 해도 절대 안 내려간다구요.
이제부터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음이 “이놈의 몸뚱이야…” 할 때, 몸뚱이가 “아이구…” 이러지 말고 “하하하…” 이러라는 거라구요. 찡그리지 말고 웃으면서 “뭐 어째 이놈의 마음아” 하라는 거라구요. 웃으면서 말이에요. 그래야 마음이 “너 사탄의 무대인지 몰라, 이놈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실질적인 문제라구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상세계가 벌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의 말씀을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행동을 안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확실히 알고 보니 이론적으로 딱 들어맞고 사실적으로 들어맞으니까 앞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들은 손 들어 보라구요! 감사해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9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