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두 세계 (천일국 훈독경 제9권 4일)

훈독왕 | 20250329090412

천일국 훈독경 제9권 4일

선악의 두 세계 (훈독본) 
날짜 : 1981. 2. 15(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선악의 두 세계 (천일국 훈독경 제9권 4일)

 

선악의 두 세계가 왜 생겨났느냐

여기에 와 앉은 사람들도 자기를 대해서 “너는 악한 사람이다” 하면 토라지고, 반대로 “아, 너는 선한 사람이다” 하면 "음…” 이럴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 다 선은 좋아하지만, 선의 기준이나 악의 기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전부가 선악의 두 세계로 되어 있습니다. 눈도 선한 세계의 눈과 악한 세계의 눈이 있고, 코도 선한 세계의 코와 악한 세계의 코가 있고, 귀도 그렇고, 손도 그렇고, 몸뚱이도 그렇고, 모든 생활도 두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가정도 역시 선한 가정과 악한 가정, 정치도 선한 정치와 악한 정치, 먹는 것도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습니다.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 좋은 법과 나쁜 법, 좋은 사상과 나쁜 사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려면 먹는 것도 선한 것만 먹어야 되고, 공기도 선한 공기를 마셔야 되고, 보는 것도 선한 것을 봐야 되고, 느끼는 것도 선한 것을 느껴야 됩니다. 느끼는 것, 사는 것, 나라와 모든 것이 선한 환경에서 살아야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면 전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모든 것이 좋아하고, 모든 것이 희망하고, 모든 것이 사랑하고, 모든 것이 전부 다 포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언제 생겨났고, 악은 언제 생겨났느냐? 지금 철학계에서는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선의 근거가 도대체 뭐냐? 그 선은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한 것이어야 됩니다. 선이 되려면 모든 게 완전해야 됩니다. 손도 완전해야 되고, 발도 완전해야 되고, 다리도 완전해야 되고, 눈도 완전해야 되고, 몸뚱이도 완전해야 되고, 다 완전해야 됩니다. 사람을 보게 되면, 사지가 다 성해도 우리의 두뇌 하나만 조금 잘못되면 모든 것이 다 정상에서 어긋납니다.

그러면 선과 악의 두 세계가 있는데, 무엇에 기인하여 가지고 두 세계가 생겨났느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두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 이겁니다. 두 사람이 아니면 나 하나의 두 부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아니면 두 부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아니면 투 파트(two part;두 부분)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 가운데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여기에 남자가 있다면, 이 남자 가운데도 내적인 파트도 있고 외적인 파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면 여자의 내적인 파트와 외적인 파트가 있다는 것입니다. (111-162)

남자는 흙과 같고 여자는 꽃과 같다

이렇게 볼 때, 악한 것은 도대체 뭐냐? 그건 변하는 환경과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개 악한 사람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데서 생겨나기 쉽습니다. 말을 하는 데도 “좋다” 하다가도 “나쁘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악의 유래가 될 수 있는 것이 남자일 것이냐, 여자일 것이냐? 가능성이 누구에게 많으냐? 물어보면 여자들은 남자라고 대답하고, 남자들은 여자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자리를 가만히 보고 남자들의 말이 맞다고 하시겠어요, 여자들의 말이 맞다고 하시겠어요? 두 말이니까 두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악이라는 것이 변하는 성품에 가까운 데서 시작됐다고 볼 때, 악은 여자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선 가정해 보자구요.


보라구요! 세상을 보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뭘 어떻게 할 때는 언제나 여자를 달고 돌아다닙니다. 세상 환경을 중심삼고 볼 때, 남자를 여자가 따라다닙니다. 남자들은 옷 한 벌만 가지면 색깔이 거무칙칙해도 언제든지 입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언제든지 변해야 됩니다. 색깔이 빨간 것, 노란 것, 알록달록한 것, 꽃같이 된 것을 좋아한다 이겁니다. 남자들을 보면 전부 다 거무튀튀한 것인데, 여자는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건 뭐냐? 남자는 흙과 같고 여자는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악이 여자를 통해서 접근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해와가 타락했다는 말도 이런 논리에서 볼 때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여자는 그렇게 컬러풀(colorful;화려한)하냐? 그것은 모든 것을 유치하기 위한 다방면의 방향성을 지니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여자는 꽃과 같습니다. 향기를 뿌리는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하냐? 꽃은 나비를 유치합니다. 그러니까 꽃과 같이 남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의 그런 면에 대해서 끌려가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을 여자가 유발하면 그러한 여자를 따라다니는 남자는 악을 따라가기 쉬운 것입니다. 성경에 해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고 그 선악과를 아담에게 줄 때 아담이 덥석 받아먹었다고 했는데, 이와 같은 논리로 분석해 볼 때 그것은 맞는 말이라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여자에게서부터 시작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를 두고 보면, 나쁜 사건에는 여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여자의 역사를 한번 뒤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가운데 세계를 여자가 많이 망쳤느냐, 남자가 많이 망쳤느냐? 그런 관점에서 쭉 뒤져보면 남자일 것입니다. 왜 남자냐? 전쟁을 통해서 남자들이 사람을 죽이고 그랬으니까 남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11-163)

사랑을 가진 사람

그러면 선악의 두 세계가 있는데, 여자들 가운데도 두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통을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선악을 중심삼고 볼 때, 어디가 선한 편에 가깝고 어디가 악한 편에 가깝겠느냐? 전통이 선한 편에 가깝습니다. 전통에는 미국 전통도 있고, 영국 전통도 있고, 독일 전통도 있고, 한국 전통도 있고, 일본 전통도 있고, 중공 전통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게 정도(正道)냐? 아까 말했듯이 두 세계가 있는데,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무엇이 전통이에요? 내 몸 안팎으로 무엇이 전통이냐 이거예요. 여러분은 내적인 전통이 좋겠어요, 외적인 전통이 좋겠어요? 틀림없이, 내적인 전통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두 다 양심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양심적인 사람은 무엇을 갖고 있느냐? 생명을 갖고 있고,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통의 기반을 어디에 둘 것이냐? 내 생명에 둘 것이냐, 사랑에 둬야 되겠느냐? 생명은 내 개체에서 자주성을 가질 수 있지만, 사랑은 내 개체에서 자주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은 사회성을 지니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생명을 중심삼고는 개체가 자주성을 지니고 있고, 사랑을 중심삼고는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통해야 되느냐? 생명력을 통해서 하나되겠어요, 사랑을 통해서 하나되겠어요?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사랑에 생명력이 플러스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생명의 뿌리는 무엇이 되어 있느냐? 생명의 뿌리는 무엇이냐? 내 생명은 개체성을 지녔는데, 이 생명의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생명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결합체입니다. 내 생명 자체는 사랑으로부터 전수된 것입니다.


그러면 내 생명력은 어디를 향해야 되느냐? 부모로부터 받은 씨와 같은 생명이니까 그 본래의 길을 따라가서 사랑의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 길을 따라가서 부모들이 가던 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이것은 본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 합해 가지고 보다 넓은 사랑의 사회적 관계를 확대시켜 나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명력이 사회를 이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생명을 갖다 합한 힘, 사랑의 생명력이 사회를 이상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밥이 필요해요, 사랑이 필요해요? 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명력은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면 밥의 소원은 무엇이냐? 생명력을 통해서 사랑의 힘이 되고 싶어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전통에 가깝습니다. 양심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상적인 전통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양심적인 사람이 사랑을 가지게 될 때 완전한 전통의 기준이 설정될 수 있습니다. (111-166) 

인간의 사랑의 자극체로 창조된 우주

그러면 하늘나라에 법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의 법은 뭐겠어요? 사랑이 하늘나라의 헌법의 일종인데, 이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활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가 이것을 위해서 하나되겠다고 합니다. 선한 세계는 변하지 않는 세계요, 변하지 않는 세계니까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세계입니다. 또한, 그 세계는 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야말로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자기를 위주로 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것이라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 결국에는 상대를 세우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한테 상대가 필요하냐?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상대를 위해서 지으셨다면,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이니까 인간을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을 위해서 우주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요런 물건, 요런 물건, 요런 물건을 잔뜩 만들어 놓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아이구, 좋다”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주인이 그걸 보고 “정말 좋아요” 하고 물어 보아서 자기보다 더 좋아한다는 걸 확인하면 그 사람한테 주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든 자기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자기의 그것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한테. 여러분한테도 그런 마음이 있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쥐새끼를 봐도 “아이고, 하나님이 저걸 얼마나 사랑하시겠느냐” 하면서 사랑하고, 강아지새끼도 사랑하고, 나비를 봐도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러면 너 줄게! 너 가져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해야 주시지 그렇지 않으면 안 주십니다. 누구든지 주인의 입장에 있으면 압니다. 누구든지 그저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래, 너 주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모든 만물을 사랑하는 걸 보실 때, 하나님이 “그 녀석 나보다 나은데…”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팔이 있다면 그러한 내 뒤로 와서 이러시겠어요, 안 이러시겠어요? 하나님이 나를 붙안고 “야, 이 녀석아! 좋구나” 이러실 판이라구요. 하나님이 그러한 나를 볼 때 뒤로 와서 안 안고 싶으시겠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좋아서 붙드실 때 나도 좋아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붙들면 하나님이 “얘, 그건 안 된다” 그러시겠어요? 내가 하나님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도 “좋다, 좋다, 좋다…” 그러십니다. 그러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취해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을 만나서 사랑의 병이 나서 취해 놀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걸 보고 좋아하시겠어요, 싫어하시겠어요? “아, 내 사랑이 좋긴 좋구만! 하하하…” 하면서 크게 웃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아멘”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때 “아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다는 말밖에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111-170)

내가 사랑의 모체가 되어야

가정이요, 나라요, 세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사랑해야 됩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 효자의 길이요,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충신의 길이요,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 성인의 길입니다. 이것이 인륜도덕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표준이 되어 왔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내 생명이 생겨났습니다. 그렇지만 내 생명에 사랑이 있는지 모릅니다. 왜 부모의 말을 들어야 되느냐?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좋고 어머니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게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나님한테로 돌아갑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부모를 사랑해야 되느냐? 하나님과 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의 모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 왜 내가 상대를 원해요? 나를 중심삼고 상대가 지어졌습니다. 내가 남자면 여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왜 아들딸이 필요하냐? 여기서 시작해 가지고 이렇게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시작해 가지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111-173)


그러면 천국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뭐예요? 그런 사람은 개인에서 출발해 가지고 가정을 거치고, 사회를 거치고, 국가를 거치고, 세계를 거치고, 영계를 거치고, 하나님을 거치고 빙 돌아 들어가도 언제든지 문제가 없습니다. 경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환영하고 어디든지 통하는데, 그것이 사랑을 가진 생명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옥에 가더라도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은 전부 다 환영합니다. 또,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 올라가더라도 하나님이 싫어하시지 않습니다. 사랑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이 그럴 때는 지옥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나는 네가 잘못한 것을 책망할 수 있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아무도 책망하지 못한다” 하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내가 너희들을 책망하기 전에 상부로부터 책망받을 수 있는 나다” 하는 걸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시정해 줘야지 그냥 둬서는 안됩니다. 뜻을 위해서 그래야 됩니다.

 

누구든지 책임자는 부모의 입장에서 더 고생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어서 나를 다리삼아 빨리 올라가라. 어서 오라”고 자꾸 사람들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의 눈물이 있습니다. 비참의 눈물이 아니고 감격의 눈물이 있습니다. 사랑의 매로는 때려도 “좋다. 아이구, 좋다. 아이구, 좋다. 아이구, 좋다” 그러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사고가 나더라도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도 사랑을 말하고, 문학이나 모든 것이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고 추구해 나왔는데, 오늘 이렇게 정리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에 의지해 가지고 움직이는 역사적 전통이 남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개념을 여러분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111-174)

무니는 두 세계를 소화해야

여러분의 집안에도 부모의 세계, 부부의 세계, 아들딸의 세계가 갈라져 있는데 그것을 전부 다 소화시킬 수 있고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사랑을 마음속에 지니기 때문에 희생이 가능하고 봉사가 가능해집니다. 그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그 희생과 봉사를 통해서 몇 백배 더 큰 우주적인 사랑이 찾아옵니다. 동네나 마을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면 그 동네나 마을의 사랑, 나라에서 그러면 나라의 사랑이 나에게 찾아옵니다. 왜 그러하냐? 온 우주가 사랑에 화합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지내다 보면 자동적으로 모든 환경이 내 편으로 찾아옵니다.


레버런 문을 미국에서 반대하고 세계에서 반대했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지내다 보니까 그것을 흠모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사랑의 힘이 생깁니다. 사랑에 접붙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세계가 어떤가를 알았을 것입니다. (111-180)


이제 선생님이 말하려는 게 무엇이냐? 사랑이 미쳐지는 곳에는 하나님이 틀림없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곳은 자동적으로 사탄이 주관합니다. 우리가 가인 아벨의 탕감복귀를 말하고 있지만, 이것도 이 원칙을 중심삼고 좌우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아벨은 사랑을 투입한 물건을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또, 될 수 있으면 사랑을 지닌 사람과 환경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려고 해야 됩니다. 이게 아벨의 길입니다. 그래서 레버런 문이 사랑을 통하여 세계적인 물질을 바치려고 하고, 세계 만민들에게 사랑을 깨우쳐 주어서 하나님 앞에 바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세계적인 아벨의 길입니다.


그래, 아벨은 뭐냐? 물질을 바치고 자기 가정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 나라의 물질과 백성을 바치고, 세계의 물질과 백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랑권에 연결되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희생하라는 것은 관두고 사랑을 중심삼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자기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전체를 위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체가 밸런스를 이룰 때 자기가 센터가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경제관, 사회관, 가정관, 문화관, 정치관, 종교관뿐만 아니라 이론체계니 전통이니 역사니 하는 모든 것 가운데 사랑을 위주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자대회를 쭉 해 나오고 있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나오다 보니까 다 좋아합니다.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아이구, 레버런 문 위대하다” 그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레버런 문은 복음주의자, 레버런 문은 실업가, 레버런 문 뭐 어떻고 어떻고…” 전부 다 그러는데, 좋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됩니다. 전부 다 좋다는 것입니다.


배를 타더라도 그냥 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지니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투나가 와서 인사를 합니다. (111-182)


통일교회에도 두 세계가 있습니다. 나 선생님은 이렇게 양복도 입었지만 평범한 사람입니다. 박보희가 남미 대통령을 만나고 다니다가 돌아와서, 이 모닝가든에 와서 내가 그물을 만지고 땅에 앉아 있는 것을 볼 때 눈물이 쑥 나오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두 세계입니다. 두 세계를 통할 줄 알아야 됩니다. 두 세계인데, 우리가 상대의 세계에 가서 전부 다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못 가지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두 세계가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무니는 두 세계를 소화해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소화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게 나갈 수 있는 내가 되겠다, 사랑을 가지고 두 세계를 소화하기 위하여 달음질치겠다고 결의하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고맙다구요. (111-182)*

 

 

 

천일국 훈독경 제9권 4일, 원문
 
선악의 두 세계  
 
날짜 : 1981. 2. 15(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선악의 두 세계가 왜 생겨났느냐
 
여기에 와 앉은 사람들도 자기를 대해서 “너는 악한 사람이다” 하면 토라지고, 반대로 “아, 너는 선한 사람이다” 하면 "음…” 이럴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 다 선은 좋아하지만, 선의 기준이나 악의 기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선악의 경계선이 어디예요?
전부가 선악의 두 세계로 되어 있습니다. 눈도 선한 세계의 눈과 악한 세계의 눈이 있고, 코도 선한 세계의 코와 악한 세계의 코가 있고, 귀도 그렇고, 손도 그렇고, 몸뚱이도 그렇고, 모든 생활도 두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가정도 역시 선한 가정과 악한 가정, 정치도 선한 정치와 악한 정치, 먹는 것도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습니다.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 좋은 법과 나쁜 법, 좋은 사상과 나쁜 사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전부가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려면 먹는 것도 선한 것만 먹어야 되고, 공기도 선한 공기를 마셔야 되고, 보는 것도 선한 것을 봐야 되고, 느끼는 것도 선한 것을 느껴야 됩니다. 느끼는 것, 사는 것, 나라와 모든 것이 선한 환경에서 살아야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면 전부 다 악한 것입니다.
여기에 사과가 있다고 할 때, 이 사과는 모양도 좋고 맛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흠이 나 있으면 이것 때문에 나쁜 사과가 됩니다. 조금이라도 흠이 나 있으면 이것은 절대 선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선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의 기준 외에는, 완전한 선 외에는 전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모든 것이 좋아하고, 모든 것이 희망하고, 모든 것이 사랑하고, 모든 것이 전부 다 포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은 좋은 나라다”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 좋은 나라냐? 여러분 가운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 술은 좋은 것이다” 그러고, 일반 사람들은 “술은 나쁜 것이다” 그럽니다. 밥을 먹는 데 있어서도 자기 양대로 먹으면 그 밥은 좋은 것이 되는데, 그렇지 않고 너무 많이 먹으면 좋은 밥인데도 불구하고 나쁜 밥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을 두고 볼 때, 한 집안에 다섯 식구가 살면 다섯 식구 전부 다 선한 사람이냐?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 누가 진짜 선한 사람이냐? 어머니냐, 아버지냐, 형제들 가운데 어느 누구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선악의 규정, 선과 악을 어떻게 갈라내느냐 하는 데 있어서 원칙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선은 언제 생겨났고, 악은 언제 생겨났느냐? 지금 철학계에서는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선의 근거가 도대체 뭐냐? 그 선은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한 것이어야 됩니다. 선이 되려면 모든 게 완전해야 됩니다. 손도 완전해야 되고, 발도 완전해야 되고, 다리도 완전해야 되고, 눈도 완전해야 되고, 몸뚱이도 완전해야 되고, 다 완전해야 됩니다. 사람을 보게 되면, 사지가 다 성해도 우리의 두뇌 하나만 조금 잘못되면 모든 것이 다 정상에서 어긋납니다.
이렇게 볼 때, 그 브레인(brain;두뇌)만 완전해 가지고 선한 사람이냐? 브레인도 완전해야 되고, 브레인에 대해 상대적 관계에 있는 것도 완전해야 된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여기서 내외의 관념, 중심이라든가 외적이라는 두 세계의 관념이 나옵니다. 이런 걸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선악의 두 세계인데, 선한 세계는 도대체 어떤 세계냐? 그 세계는 안팎의 관계에 있는 것, 상대관계에 있는 것이 하나되어 전부 다 원활하게 돌아가는 세계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공장에 큰 기계들이 많지만 모터를 돌리면 모든 기계가 조화를 이루어 돌아갑니다. 전기의 힘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것이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두 세계가 있는데, 무엇에 기인하여 가지고 두 세계가 생겨났느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두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 이겁니다. 두 사람이 아니면 나 하나의 두 부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아니면 두 부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아니면 투 파트(two part;두 부분)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 가운데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여기에 남자가 있다면, 이 남자 가운데도 내적인 파트도 있고 외적인 파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면 여자의 내적인 파트와 외적인 파트가 있다는 것입니다. (111-162)
 
남자는 흙과 같고 여자는 꽃과 같다
 
이렇게 볼 때, 악한 것은 도대체 뭐냐? 그건 변하는 환경과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개 악한 사람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데서 생겨나기 쉽습니다. 말을 하는 데도 “좋다” 하다가도 “나쁘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악의 유래가 될 수 있는 것이 남자일 것이냐, 여자일 것이냐? 가능성이 누구에게 많으냐? 물어보면 여자들은 남자라고 대답하고, 남자들은 여자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자리를 가만히 보고 남자들의 말이 맞다고 하시겠어요, 여자들의 말이 맞다고 하시겠어요? 두 말이니까 두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악이라는 것이 변하는 성품에 가까운 데서 시작됐다고 볼 때, 악은 여자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선 가정해 보자구요.
보라구요! 세상을 보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뭘 어떻게 할 때는 언제나 여자를 달고 돌아다닙니다. 세상 환경을 중심삼고 볼 때, 남자를 여자가 따라다닙니다. 남자들은 옷 한 벌만 가지면 색깔이 거무칙칙해도 언제든지 입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언제든지 변해야 됩니다. 색깔이 빨간 것, 노란 것, 알록달록한 것, 꽃같이 된 것을 좋아한다 이겁니다. 남자들을 보면 전부 다 거무튀튀한 것인데, 여자는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건 뭐냐? 남자는 흙과 같고 여자는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악이 여자를 통해서 접근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해와가 타락했다는 말도 이런 논리에서 볼 때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미국 여자들 가운데 한 여자가 여기는 빨갛고, 여기는 노랗고, 여기는 파랗고, 여기는 알록달록하고, 여기는 까맣게 하면 그것이 전국적으로 유행될 것입니다. 특히, 여자들이 많이 그렇게 따라서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악이 침범할 가능성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많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왜 여자는 그렇게 컬러풀(colorful;화려한)하냐? 그것은 모든 것을 유치하기 위한 다방면의 방향성을 지니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여자는 꽃과 같습니다. 향기를 뿌리는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백화점에 가면 어디를 가느냐? 별것 없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대부분 어디를 먼저 가느냐? 대부분 평균적으로 보게 된다면 화장품이 있고 보석품이 있는 곳으로 먼저 가 보고 나서 다른 데로 갑니다. 여자는 보다 컬러풀하고, 보다 센스 있고, 보다 향기로운 것을 원합니다.
그건 왜 그러하냐? 꽃은 나비를 유치합니다. 그러니까 꽃과 같이 남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는 여자의 그런 면에 대해서 끌려가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을 여자가 유발하면 그러한 여자를 따라다니는 남자는 악을 따라가기 쉬운 것입니다. 성경에 해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고 그 선악과를 아담에게 줄 때 아담이 덥석 받아먹었다고 했는데, 이와 같은 논리로 분석해 볼 때 그것은 맞는 말이라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보통 윙크를 남자가 먼저 하느냐, 여자가 먼저 하느냐? 인류역사 가운데 가짜 윙크를 누가 먼저 하고, 가짜 웃음을 누가 먼저 짓고, 또 가짜 눈으로 누가 먼저 보고, 가짜 귀로 누가 먼저 듣고, 가짜 생각을 누가 먼저 하고, 가짜 행동을 누가 먼저 했을 것이냐? 해와가 먼저 했습니다. 해와가 가짜 웃음을 먼저 웃었을 것이고, 가짜 말을 먼저 했을 것이고, 가짜 눈을 가지고 가짜 몸뚱이를 가지고 출발했을 것이 아니냐. 여자가 먼저 가짜 윙크를 했겠어요, 남자가 먼저 가짜 윙크를 했겠어요? 여자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여자에게서부터 시작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를 두고 보면, 나쁜 사건에는 여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여자의 역사를 한번 뒤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가운데 세계를 여자가 많이 망쳤느냐, 남자가 많이 망쳤느냐? 그런 관점에서 쭉 뒤져보면 누가 많이 망쳤겠느냐? 남자일 것입니다. 왜 남자냐? 전쟁을 통해서 남자들이 사람을 죽이고 그랬으니까 남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을 안 죽이셨어요?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는 데는 어떤 사람을 죽이셨느냐? 선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고, 선한 사람을 희생시킨 것이 아니고 악한 놈, 지독히 악한 사람들을 희생시키셨습니다. 2차대전 직후에 독일의 히틀러가 많은 종교인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을 싫어하고 독일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들을 또 누가 죽였느냐? 순전히 영국 사람과 미국 사람들이 죽였습니다.
그러면 영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들은 죄가 없어요? 사람을 죽인 것은 죄입니다. 법을 어떻게 만들어서 죽였든간에 죽인 건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선한 편이냐, 악한 편이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안 죽이셨어요? 미국 사람은 사람들을 안 죽였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111-163)
 
사랑을 가진 사람
 
미국을 보게 된다면, 미국은 화려한 나라입니다. 무엇이 화려하냐? 집들도 화려하고, 자동차도 화려하고, 다 화려하지만 여자들이 특별히 화려합니다. 집에 페인트칠을 할 때도 남자들은 3년에 한 번 칠하면 된다고 하지만, 여자들은 뭐 춘하추동 매번 칠해야 좋다고 합니다. 독일 같은 나라에 가 보면 분위기가 침침하고 충충합니다. 여자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여자들을 보면 화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 여자들은 아주 화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제일 빨리 변천하는 것이 미국인데, 미국의 누가 그래요? 여자들입니다.
그러면 선악의 두 세계가 있는데, 여자들 가운데도 두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통을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선악을 중심삼고 볼 때, 어디가 선한 편에 가깝고 어디가 악한 편에 가깝겠느냐? 전통이 선한 편에 가깝습니다. 전통에는 미국 전통도 있고, 영국 전통도 있고, 독일 전통도 있고, 한국 전통도 있고, 일본 전통도 있고, 중공 전통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게 정도(正道)냐? 어떤 것이 정도의 전통이에요? 아까 말했듯이 두 세계가 있는데,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무엇이 전통이에요? 내 몸 안팎으로 무엇이 전통이냐 이거예요. 여러분은 내적인 전통이 좋겠어요, 외적인 전통이 좋겠어요? 틀림없이, 내적인 전통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두 다 양심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양심적인 사람은 무엇을 갖고 있느냐? 생명을 갖고 있고,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통의 기반을 어디에 둘 것이냐? 내 생명에 둘 것이냐, 사랑에 둬야 되겠느냐? 생명은 내 개체에서 자주성을 가질 수 있지만, 사랑은 내 개체에서 자주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은 사회성을 지니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생명을 중심삼고는 개체가 자주성을 지니고 있고, 사랑을 중심삼고는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통해야 되느냐? 생명력을 통해서 하나되겠어요, 사랑을 통해서 하나되겠어요?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사랑에 생명력이 플러스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생명의 뿌리는 무엇이 되어 있느냐? 생명의 뿌리는 무엇이냐? 내 생명은 개체성을 지녔는데, 이 생명의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생명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결합체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 생명 자체는 사랑으로부터 전수된 것입니다.
그러면 내 생명력은 어디를 향해야 되느냐? 부모로부터 받은 씨와 같은 생명이니까 그 본래의 길을 따라가서 사랑의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서 부모들이 가던 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이것은 본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 합해 가지고 보다 넓은 사랑의 사회적 관계를 확대시켜 나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명력이 사회를 이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생명을 갖다 합한 힘, 사랑의 생명력이 사회를 이상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누구나 다 나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누구나 다 공통적으로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밥이 필요해요, 사랑이 필요해요? 사랑이 필요합니다. 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명력은 뭘 필요로 하느냐?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면 밥의 소원은 무엇이냐? 생명력을 통해서 사랑의 힘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밥의 소원입니다. 그렇게 남자나 여자나 사랑이 필요하고, 만물도 사랑의 생명력이 필요하니까 사랑의 권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양심적인 사람이 전통에 가깝습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전통에 가깝다고 그랬는데, 양심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상적인 전통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거예요. 양심적인 사람이 사랑을 가지게 될 때 완전한 전통의 기준이 설정될 수 있습니다. 그건 할아버지 시대나 몇 천대 할아버지 시대에서도 전부 다 꽝꽝 도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도장을 들고 있으면 “음…” 이러시겠어요, 꽝 찍으시겠어요? 꽝 찍으십니다. 사랑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언제나 전통의 중심에 세울 수 있다고 “꽝”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111-166)
 
인간의 사랑의 자극체로 창조된 우주
 
그러면 하나님도 법이 필요하시냐? 하늘나라에 법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의 법은 뭐겠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이 하늘나라의 헌법의 일종인데, 이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활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가 이것을 위해서 하나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늘나라의 법을 알았습니다. 선한 세계는 변하지 않는 세계요, 변하지 않는 세계니까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세계입니다. 또한, 그 세계는 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야말로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자기를 위주로 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것이라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것이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었어요? 물론,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창조하셨지만 결국에는 상대를 세우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한테 상대가 필요하냐?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상대를 위해서 지으셨다면,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이니까 인간을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을 위해서 우주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 나를 위해서 세계를 하나님이 지으셨지…” 하고 생각해요? 나를 위해서 지으셨는데, 나를 사랑의 주체로 지으셨습니다. 여러분, 우주를 사랑해요? 어떤 사람이 요런 물건, 요런 물건, 요런 물건을 잔뜩 만들어 놓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아이구, 좋다”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주인이 그걸 보고 “정말 좋아요” 하고 물어 보아서 자기보다 더 좋아한다는 걸 확인하면 그 사람한테 주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사랑하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든 자기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자기의 그것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한테. 여러분한테도 그런 마음이 있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쥐새끼를 봐도 “아이고, 하나님이 저걸 얼마나 사랑하시겠느냐” 하면서 사랑하고, 강아지새끼도 사랑하고, 나비를 봐도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러면 너 줄게! 너 가져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해야 주시지 그렇지 않으면 안 주십니다. 누구든지 주인의 입장에 있으면 압니다. 누구든지 그저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래, 너 주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모든 만물을 사랑하는 걸 보실 때, 하나님이 “그 녀석 나보다 나은데…”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팔이 있다면 그러한 내 뒤로 와서 이러시겠어요, 안 이러시겠어요? 하나님이 나를 붙안고 “야, 이 녀석아! 좋구나” 이러실 판이라구요. 하나님이 그러한 나를 볼 때 뒤로 와서 안 안고 싶으시겠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좋아서 붙드실 때 나도 좋아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붙들면 하나님이 “얘, 그건 안 된다” 그러시겠어요? 내가 하나님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도 “좋다, 좋다, 좋다…” 그러십니다. 그러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취해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을 만나서 사랑의 병이 나서 취해 놀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걸 보고 좋아하시겠어요, 싫어하시겠어요? “아, 내 사랑이 좋긴 좋구만! 하하하…” 하면서 크게 웃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아멘”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때 “아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다는 말밖에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111-170)
 
내가 사랑의 모체가 되어야
 
우리는 선악의 뿌리가 어디냐 하는 것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올라갑니다. 선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그 반대는 전체가 악입니다. 그 반대의 악한 사탄은 뭐냐? 사랑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그 개념을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하여 중간적인 내용을 말했습니다.
그 사랑에 근거한 곳이 어디냐? 가정이요, 나라요, 세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사랑해야 됩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 효자의 길이요,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충신의 길이요,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 성인의 길입니다. 이런 방향을 통해서 인륜도덕을 교육해 왔습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 성인의 도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인륜도덕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표준이 되어 왔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내 생명이 생겨났습니다. 그렇지만 내 생명에 사랑이 있는지 모릅니다.내가 혼자 있으면 무엇이든지 잘할 텐데, 왜 부모의 말을 들어야 되느냐?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된다구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좋고 어머니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게 어디로 돌아가느냐? 아버지가 좋고 어머니가 좋아 가지고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면 하나님한테로 돌아갑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지 씨가 되면 본래와 같은 씨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부모를 사랑해야 되느냐? 하나님과 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의 모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 왜 내가 상대를 원해요? 나를 중심삼고 상대가 지어졌습니다. 상대가 필요합니다. 내가 남자면 여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왜 아들딸이 필요하냐? 여기서 시작해 가지고 이렇게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시작해 가지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111-173)
그러면 천국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뭐예요? 그런 사람은 개인에서 출발해 가지고 가정을 거치고, 사회를 거치고, 국가를 거치고, 세계를 거치고, 영계를 거치고, 하나님을 거치고 빙 돌아 들어가도 언제든지 문제가 없습니다. 경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편에서 바라봤던 하나님의 입장에서 나가게 될 때는 일본을 바라보는 하나님 편으로 갈 수 있고, 미국을 바라보는 하나님 편으로 갈 수 있고, 영국을 바라보는 하나님 편으로 갈 수 있고, 세계를 대하는 하나님 편으로 전부 다 통할 수 있습니다. 온 세계가 환영하고 어디든지 통하는데, 그것을 무엇 보호할 수 있겠느냐? 사랑을 가진 생명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여기에 미국 책임자, 독일 책임자, 영국 책임자, 불란서 책임자, 혹은 무슨 주 책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을 것입니다. “나를 통해야 된다” 이러고, 힘을 갖고 “내 힘이 대단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파워풀 맨(powerful man;힘이 센 사람)이 좋긴 좋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빼면, 파워풀 맨도 끽…!
그러면 사랑의 파워풀 맨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꼭대기에 있을수록 저 깊은 곳에 빨리 내려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빨리 내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더라도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누가 제재를 하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더라도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은 전부 다 환영합니다. 또,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 올라가더라도 하나님이 싫어하시지 않습니다.
보라구요! 여러분은 떠억 이렇게 서 가지고 “선생님한테는 보고하지 말고, 나한테만 보고하라! 좋은 것은 선생님한테 보고하고, 나쁜 것은 보고하지 말라” 이러고 있습니다. “네 맘대로 하지 말고, 내 맘대로 하라! 독일은 내 맘대로 하고, 불란서는 내 맘대로 하는 것이다”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좋다는 거예요. 사랑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이 그럴 때는 지옥 간다구요, 지옥. 그러면 지옥가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들어야 된다” 하는데, 자기 말을 들을 게 뭐예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을 들어야지요.
여러분, 보라구요. “나는 네가 잘못한 것을 책망할 수 있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아무도 책망하지 못한다” 하겠지만, 그게게 아닙니다. “내가 너희들을 책망하기 전에 상부로부터 책망받을 수 있는 나다” 하는 걸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시정해 줘야지 그냥 둬서는 안됩니다. 뜻을 위해서 그래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향하는 나라는 이러한 관을 가지고, 하나님이 지향하시는 나라는 이런 관을 가지고, 원리가 지향하는 길은 이런 관을 가지고 가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누구든지 책임자는 부모의 입장에서 더 고생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어서 나를 다리삼아 빨리 올라가라. 어서 오라”고 자꾸 사람들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의 눈물이 있습니다. 비참의 눈물이 아니고 감격의 눈물이 있습니다. 사랑의 매로는 때려도 “좋다. 아이구, 좋다. 아이구, 좋다. 아이구, 좋다” 그러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사고가 나더라도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도 사랑을 말하고, 문학이나 모든 것이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고 추구해 나왔는데, 오늘 이렇게 정리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에 의지해 가지고 움직이는 역사적 전통이 남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개념을 여러분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111-174)
 
무니는 두 세계를 소화해야
 
여러분의 집안에도 부모의 세계, 부부의 세계, 아들딸의 세계가 갈라져 있는데 그것을 전부 다 소화시킬 수 있고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사랑을 마음속에 지니기 때문에 희생이 가능하고 봉사가 가능해집니다. 그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그 희생과 봉사를 통해서 몇 백배 더 큰 우주적인 사랑이 찾아옵니다. 동네나 마을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면 그 동네나 마을의 사랑, 나라에서 그러면 나라의 사랑이 나에게 찾아옵니다. 왜 그러하냐? 온 우주가 사랑에 화합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지내다 보면 자동적으로 모든 환경이 내 편으로 찾아옵니다.
레버런 문을 미국에서 반대하고 세계에서 반대했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지내다 보니까 그것을 흠모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러게 마련입니다. 이게 이론적으로 타당합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을 좋아해요? 무엇이 좋아요? 선생님의 얼굴이 좋아요, 코가 좋아요, 눈이 좋아요? 뭐가 좋아요?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사랑의 힘이 생깁니다. 사랑에 접붙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세계가 어떤가를 알았을 것입니다. (111-180)
이제 선생님이 말하려는 게 무엇이냐? 사랑이 미쳐지는 곳에는 하나님이 틀림없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곳은 자동적으로 사탄이 주관합니다. 우리가 가인 아벨의 탕감복귀를 말하고 있지만, 이것도 이 원칙을 중심삼고 좌우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아벨은 사랑을 투입한 물건을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또, 될 수 있으면 사랑을 지닌 사람과 환경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려고 해야 됩니다. 이게 아벨의 길입니다. 그래서 레버런 문이 사랑을 통하여 세계적인 물질을 바치려고 하고, 세계 만민들에게 사랑을 깨우쳐 주어서 하나님 앞에 바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세계적인 아벨의 길입니다.
그래, 아벨은 뭐냐? 물질을 바치고 자기 가정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 나라의 물질과 백성을 바치고, 세계의 물질과 백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랑권에 연결되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희생하라는 것은 관두고 사랑을 중심삼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자기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전체를 위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체가 밸런스를 이룰 때 자기가 센터가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경제관, 사회관, 가정관, 문화관, 정치관, 종교관뿐만 아니라 이론체계니 전통이니 역사니 하는 모든 것 가운데 사랑을 위주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자대회를 쭉 해 나오고 있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나오다 보니까 다 좋아합니다.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아이구, 레버런 문 위대하다” 그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레버런 문은 복음주의자, 레버런 문은 실업가, 레버런 문 뭐 어떻고 어떻고…” 전부 다 그러는데, 좋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됩니다. 전부 다 좋다는 것입니다.
배를 타더라도 그냥 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지니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투나가 와서 인사를 합니다. (111-182)
통일교회에도 두 세계가 있습니다. 나 선생님은 이렇게 양복도 입었지만 평범한 사람입니다. 박보희가 남미 대통령을 만나고 다니다가 돌아와서, 이 모닝가든에 와서 내가 그물을 만지고 땅에 앉아 있는 것을 볼 때 눈물이 쑥 나오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두 세계입니다. 두 세계를 통할 줄 알아야 됩니다. 두 세계인데, 우리가 상대의 세계에 가서 전부 다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못 가지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두 세계가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무니는 두 세계를 소화해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소화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게 나갈 수 있는 내가 되겠다, 사랑을 가지고 두 세계를 소화하기 위하여 달음질치겠다고 결의하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고맙다구요. (111-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