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8권 27일
이상적 초점을 맞추자 (훈독본)
날짜 : 1988. 6. 1(수)
장소 : 한국 본부교회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서 바라는 초점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상적 초점을 맞추자’입니다. 우리 한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개인이 사는 생활은 대한민국이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법을 따라서 그 정치적 방향과 노선, 그리고 국법이 지향하는 표준에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떠한 회사에 속해 있으면 그 회사의 규약 혹은 규범을 중심삼고 그 부처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초점이 있으니까 그 초점을 맞춰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개인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냥 그대로 이 땅 위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나큰 섭리에 하나의 표준이 있어 가지고 그 표준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가 맞춰야 할 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적인 초점이 있고, 그 다음에는 생애적인 초점이 있습니다. 생활은 하루하루 영위해 나가는 것이요, 생애라는 것은 일생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대한민국도 크나큰 하나님의 세계사적 섭리권 내에 처해 있다면 그런 국가로서 가야 할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도 반드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기 때문에 그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가는 데 있어서 초점을 맞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돌아가면서 발전합니다. 나선형으로 돌면서 그것이 점점 커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인류가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재창조의 섭리였습니다. 그 재창조의 섭리과정을 통해서 복귀의 목적을 달성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재창조는 뭐냐 하면 원리를 중심삼은 궤도를 따라서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역시 하나의 궤도를 밟고 있습니다. (178-41)
인간이 맞추어야 할 초점
우리는 일생 동안 개개인으로서의 인생을 영위해 갑니다. 거기에는 남성이 있고 여성이 있는데, 그 남성과 여성이 맞춰야 할 초점이 뭐냐? 가정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사랑의 인연을 중심으로 해서 초점을 맞춰 나갑니다.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외적인 모든 것을 맞춰 나가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보이지 않는 내적인 근원에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사랑의 길을 찾아가고 여자도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그 초점, 기점이 어디냐? 사람은 그렇다고 하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서 바라는 초점은 무엇이겠느냐? 그 초점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지식이 문제가 아니고, 권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원리가 지향하는 참된 사랑입니다. 인간을 향하는 참된 사랑, 부모의 입장에 선 하나님이 자녀의 입장에 있는 인간에 대해 갖게 되는 참사랑의 초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초점은 마음대로 변경될 수 없습니다.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그 초점은 절대적으로 하나여야 됩니다. 영원불변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초점이 지향하는 방향이 어디냐 할 때, 그것은 반드시 수평선을 중심삼은 수직의 자리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178-43)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수 있는 길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지었다면 피조세계를 향하시는 방향은 하늘이 위에 있고 인간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수직일 것입니다. 그 길이 하나님이 취하셔야 할 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수직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준에서 맞춰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상봉할 수 있는 초점은 어디냐? 만날 수 있는 초점이 어디냐?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이상적인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종적인 기준에 횡적인 기준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두 방향을 맞출 수 있게끔 돼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것입니다. 수직적인 인격관을 구성할 수 있는 내적인 지향성과 외적인 지향성이 하나돼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중구조로 돼 있습니다. 꽃 가운데도 성상과 형상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음양의 내용이 전후좌우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수 있는 길이 두 길이냐? 두 길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수직선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를 중심삼고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돼야 합니다. 수직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우리 몸이 90각도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만물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피조세계는 쌍쌍제도로 지어져 있습니다. 쌍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플러스와 마이너스, 상대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도 처해 있는 위치가 다릅니다. 마음은 종적인 것이요, 몸은 횡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않고는, 이것이 수평선이 되지 않고는 본질적인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수직선을 그을 수 없습니다. (178-44)
여러분이 노력해야 할 것, 더욱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어떻게 몸을 하나로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178-46)
섭리의 뜻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자리,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하늘의 사랑과 인격이 찾아올 수 있는 종적인 기준 앞에 내가 90각도의 횡적인 기준을 갖춰야 되는 자리입니다. 그 결합점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바라는 사랑의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합되기 전에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하면 나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90각도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높은 것을 바라고 여러분의 행동은 먼 데까지 영향을 미치려고 합니다. 뭘 갖더라도 세계의 것을 다 가지려고 합니다. 동서의 모든 것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높고 낮은 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동서의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상하의 모든 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이라는 게 뭐냐? 그것은 사랑의 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의 힘은 국경을 초월할 수 있고, 현실세계의 끝을 넘어서 상대세계도 포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이 매일매일 생활하는 가운데서 초점은 무엇이냐? 우리의 마음과 몸 가운데서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마음이 중심입니다. 그러면 왜 보이지 않는 마음이 중심이 되느냐? 이 우주의 중심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보이는 것으로는 통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더 깊은 것, 더 높은 것을 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는 여러분이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나는 틀림없이 이러이러한 길을 간다” 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일생이면 일생의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관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일생의 목표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섭리의 뜻이라는 것은 여러분 개인을 초월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보다 큰 것을 말합니다. 내 개인보다 가정, 가정보다 종족, 종족보다 민족, 민족보다 국가, 국가보다 세계, 세계보다 천주통일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보게 된다면 점점점 커지지만 나중에는 하나로 돌아갑니다. 나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전부 다 확대시켜서 나중에 돌아가면 하나입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와서 각양의 변화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근본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점점점 크게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까지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 다음에는 하늘로 돌아가야 됩니다. 하나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178-46)
이상적인 초점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러면 하나님이 섭리를 중심삼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 사랑권을 중심삼고 영향을 미치시겠다는 게 아닙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되어 가지고 둘이 하나된 기준을 중심삼고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권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셨습니다.
그 영장이라는 말은 인간 자체만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삼고 횡적인 면으로 드러난 존재세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랑으로 하나된 존재는 모든 만물도 화합하고 환영하게 돼 있습니다.
내 자신이 이상적인 초점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만물을 대표하는 자라는 자각을 가져야 됩니다. 내가 완성되어 가지고 만물 가운데 갈 때는 그 만물과 하나되어 동화될 수 있습니다. 시를 짓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정서적인 면을 체휼하여 표현한 문장을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이 크면 클수록 상대적으로 와 닿는 것도 큽니다.
내 머리카락이면 머리카락을 언제나 하나 둘 뽑아도 관계없지만, 이 머리카락이 내 생명을 지닌 완전한 것이라고 할 때는 내 몸 전체와 화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해 있는 위치와 급(級)은 다를지언정 완전히 나라는 사람하고 화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화합하는 초점은 무엇이냐?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내용이 화합될 수 있는 것이면 될 수 있는 것일수록 그만큼 오래가고 완전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제3의 물건과 제4의 물건 앞에 표준형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3의 물건과 제4의 물건 앞에 주체성을 가지고 하나되어서 제5의 물건과도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내적인 기반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주가 전부 다 연결됩니다. (178-48)
이상적인 요소
이렇게 보면, 이 우주 전체가 무엇 때문에 존속하느냐? 우주 전체가 존재하는 내적인 기반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탕” 치면 모든 만물이 공명합니다. 여기에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원소가 90각도의 수직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자동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도 보면, 반드시 둘의 초점이 맞습니다. 숨도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반드시 맞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도 잘 들을 수 있으려면 음향의 초점이 맞아야 됩니다. 귀도 그렇잖아요? 초점이 맞아야 잘 들립니다. 그 초점이 아무렇게나 돼 있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물이 수직과 횡적인 관계를 이루어서 핵을 중심삼고 돌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도는 데 있어서는 마음대로 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축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지구도 축을 중심삼고 돌아갑니다. 태양계면 태양계에 있어서 태양이 마음대로 뒤넘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심을 향하는 축을 중심삼고 대우주가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요소가 무엇이냐? 생명의 근본까지 격동시키는 작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본래 모든 존재는 상대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남자 여자가 생겨나는 것은 부모의 사랑으로부터입니다. 사랑의 줄기 가운데서 뻗어나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줄기로부터 뻗어나가서 사랑의 열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먹고 입고 사는 것보다도 마음속으로 사랑의 줄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귀합니다.
그 사랑의 줄기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의 부모입니다. 그 부모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김씨면 김씨의 문중으로부터 한 가지와 같이 뻗어 가지고 쭉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의 줄기를 수직으로 삼고 수평으로 생활합니다. 어린애들을 보면 그렇잖아요. 갓난애를 가만히 보면, 그 아이가 뭘 원해요? 어머니의 젖을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누구한테 먼저 얘기해요? 먼저 사랑의 줄기를 중심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라고 하지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에요. 대개,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보다도 “어머니 아버지”라고 합니다.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대외적인 세상으로 나타낼 때는 모부(母父)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 부모라고 합니다. 그 부모라는 말은 횡적인 세계에 있어서 질서를 연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먼저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정서적인 문제에 연결됩니다. (178-50)
사랑을 빼놓고는 이상을 그릴 수 없어
여러분이 생각하는 돈이나 지식 혹은 권력은 다 부속품들입니다. 남자나 여자도 사랑에 목을 매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그 하나의 절대적인 사랑을 겨냥해 나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추구하는 것이 이상권입니다.
이상주의자라고 하면 어떤 환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사랑을 빼놓고는 이상을 그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남자가 잘났다고 하더라도 이상이라고 할 때는 여자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상권이 벌어집니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지만 그 둘의 초점은 맞을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참사랑으로 하나되면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첫사랑의 정을 품고 일생 동안 살아갑니다. 아무리 미인 할머니라도 첫사랑을 알게 한 사람이 보기 싫은 영감일지라도 그 첫사랑의 영감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첫사랑이 뭐냐 하면 방향을 맞추는 것입니다. 남자는 바른쪽이고 여자는 왼쪽이니까 그 둘의 방향은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가 빠르게 달려와서 아무데서나 부딪치면 납작해집니다. 그렇지만 중앙에 오게 되면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데 있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돌아요? 종적인 수직을 중심삼고 돌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보면 여자의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가 도느냐, 남자의 사랑을 중심삼고 여자가 도느냐?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은 사랑을 축으로 해 가지고 돌아가야 됩니다. 왜 남자 여자의 사랑을 축으로 해서 돌아가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접붙이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구형(球形)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되어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서로가 달라붙는 것보다도 원심작용에 의해서 확산됩니다. 그래서 동서로 하나되었다가 남북으로 갈라지려고 하면서 돌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리를 잡느냐? 반드시, 수직을 중심삼고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178-53)
영원한 초점
이 모든 우주의 존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축을 중심삼고 돈다는 것입니다. 태양계면 태양계에 위성들이 있지만, 그 태양계 자체가 멋대로 도는 것이 아닙니다.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수직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준의 자리에서 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세포들도 그런 기준에 맞춰 가지고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오관(五官)이 무엇에 전부 다 초점을 맞추려고 하느냐?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닙니다. 권력도 아닙니다. 참사랑입니다. 그 초점이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고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참사랑을 취해야 모든 것이 움직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로 말하면 영인체하고 육체는 다르지요? 이런 영인체의 감각과 육체의 감각이 공용될 수 있는 하나의 초점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느냐? 그것만 “탕” 하게 된다면, 남자와 여자의 모든 세포들이 작동합니다. 또, 그 세포들이 작동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작용하실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그 기준이 어디서 상봉하게 되느냐 하면 90각도의 자리에서 상봉합니다. 그것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물을 대표하는 인간과 종적인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이 만나서 하나될 수 있는 초점은 둘일 수 없습니다. 영원한 초점입니다. 이것을 변경시킬 수 있는 아무런 논리가 없습니다. 이걸 뜯어 놓으면, 모든 것이 다 틀어집니다. 언제나 이 각도를 맞추게끔 모든 우주의 존재가 협력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을 찾아가게 될 때는 힘이 납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가면 왜 힘이 나느냐? 우주의 모든 것이 밀어 주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밀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밀어 주기 때문에 강한 힘으로 발전합니다. 빠르다면 그 이상 빠른 게 없습니다. 빛이 1초 동안에 3억 미터의 속도로 달려가지만, 그것보다 사랑의 속도는 더 빠릅니다. 빛까지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8-55)
제일 무서운 병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냐 하면 자기를 제일로 세우려고 합니다. 여러분, 제일 첫째가 되고 싶지요? 첫째가 되고 싶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일가는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도 여자를 빼놓고 제일이 되려고 합니다. 또, 여자도 남자를 생각지 않고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젊은 남녀들이 사랑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생명을 던지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찾아가야 됩니다. 누구든지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상대를 통해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리를 잡는데 한 번 “꽝” 꽂으면, 그것을 뽑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순응해야 됩니다.
남자나 여자한테 있어서 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사랑이 “꽝” 하고 결정될 때는 그것에 절대 복종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복종하는 것이 원칙인데 복종할 수 없는 자체가 되니까 우주가 제거하는 것입니다. “너는 없어져라” 그럽니다. 우주가 제거해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마음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우주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또, 눈물이 나기 전에 답답하고 가슴이 막 아프지요? 그거 왜 그런 거예요?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의 아픔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병이 무슨 병이냐? 사랑의 병입니다. 약이 없다고 그러잖아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상사병에는 약이 없다고 그러는데 진짜 사랑 때문에 병났으면 고칠 약이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고칠 수 있는 약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본질적인 참사랑입니다. 그가 사모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주체라든가 대상만이 이상형으로서 본래의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상충이 벌어지게 됩니다. (178-56)
사랑의 초점을 붙들어야
오늘 제목이 ‘이상적인 초점을 맞추자’입니다. 전부가 이상적인 초점을 원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은 초점입니다.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그 초점이 우리 인간의 생활권을 스쳐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쳐 가는 그 사랑의 초점이 여러분을 붙들어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그 사랑의 초점을 붙들어야 되겠어요? 우리가 붙들어야 됩니다.
전체의 중심이 되는 것은 참사랑뿐
여러분은 욕심을 다 갖고 있습니다. 본심은 “내가 최고야” 합니다. 문 총재가 큰소리칩니다. 문 총재 자신을 두고 볼 때 “나는 세계적인 남성을 대표하는 남성으로서 역사시대가 소원하던 사랑의 초점에 서야 된다” 합니다. 그것이 문 총재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 초점은 하나이지만 개인을 중심삼고 세계적이요, 가정을 중심삼고도 세계적이요, 종족을 중심삼고도 세계적입니다. 대표의 자리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도 대표의 자리요, 하늘땅을 대표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이 추를 내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이 추 앞에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횡적으로 맞추면 됩니다. 이 초점을 중심삼고 개인이 서게 되면, 그 다음에 가정을 중심삼고 서는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도 뭐냐 하면 이 초점입니다. 가정의 중심, 종족의 중심, 민족의 중심, 국가의 중심, 세계의 중심, 천주의 중심과 하나님의 중심도 이 초점입니다. “이 초점에 맞춰라” 하면, 척척척 세계가 돌아갑니다. 무엇이든지 여기에 이중의 그늘을 지우면 안됩니다. 전부 다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대표가 돈을 중심삼고는 불가능합니다. 지식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어요? 아무리 전문가나 학자라도 자기의 전공분야밖에 모릅니다. 그것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참사랑입니다. 만세의 승리적인 축을 꽂을 수 있는 참사랑에 초점을 맞춘 사나이의 위대함을 하늘이 찬양하고 만우주가 찬양하는 것입니다. (178-65)*
천일국 훈독경 제8권 27일, 원문
이상적 초점을 맞추자
날짜 : 1988. 6. 1(수)
장소 : 한국 본부교회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서 바라는 초점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상적 초점을 맞추자’입니다. 우리 한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개인이 사는 생활은 대한민국이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법을 따라서 그 정치적 방향과 노선, 그리고 국법이 지향하는 표준에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떠한 회사에 속해 있으면 그 회사의 규약 혹은 규범을 중심삼고 그 부처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초점이 있으니까 그 초점을 맞춰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개인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냥 그대로 이 땅 위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나큰 섭리에 하나의 표준이 있어 가지고 그 표준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가 맞춰야 할 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적인 초점이 있고, 그 다음에는 생애적인 초점이 있습니다. 생활은 하루하루 영위해 나가는 것이요, 생애라는 것은 일생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대한민국도 크나큰 하나님의 세계사적 섭리권 내에 처해 있다면 그런 국가로서 가야 할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도 반드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기 때문에 그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가는 데 있어서 초점을 맞춰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초점이 중앙에 있다 할 때, 그 중앙을 중심삼고 사방이 전부 그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중앙에 갈 수 없습니다. 동쪽에 있는 사람이 그 동쪽을 중심삼고 중앙을 찾아가려면 서쪽이라는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그 길을 따라가기 전에는 초점을 맞출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우주는 순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도 돌고 있습니다. 정착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춘하추동이 돌듯이 우리 마음도 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돌아가면서 발전합니다. 나선형으로 돌면서 그것이 점점 커 간다는 것입니다. 원소면 원소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원소 자체가 도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돕니다. 그렇게 돌고 있는 것이 한 바퀴 돌아 가지고 더 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나가는 데 있어서 발전적인 궤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인류가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재창조의 섭리였습니다. 그 재창조의 섭리과정을 통해서 복귀의 목적을 달성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재창조는 뭐냐 하면 원리를 중심삼은 궤도를 따라서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역시 하나의 궤도를 밟고 있습니다. (178-41)
인간이 맞추어야 할 초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다음에는 인류가 있고 만물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각양색색으로 전부 다 회전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목표하는 초점이 어디이겠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많은 직장들이 있는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그 직장에서 자기 직무를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거기는 국이면 국, 부면 부, 과면 과를 중심삼고 명령계통이 있어서 위에서 아래로 전달된 것은 반드시 회전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 회사 자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회사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요원은 자기가 처한 각 분야를 중심삼고 초점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또, 회사면 회사 자체는 국가가 움직이는 모든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가 가는 것과 국가가 가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합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통합적으로 전부를 수습해 가지고 하나의 체제로써 관할할 수 있는 권이 필요한데,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회사는 국가에 속해 있고, 국가는 세계에 속해 있고, 세계는 천주라는 대우주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대우주가 순환하는 중심의 초점은 무엇이겠느냐? 그게 문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생활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부터 더 높은 곳, 더 귀한 곳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러면 그 귀한 것이 무엇이냐? 귀한 것은 전체가 다 갖고 싶어하고, 전체가 보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상에 있어서 보물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또 현재 살고 있는 사람, 크나 작으나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전부 다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근원, 뿌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 이렇게 볼 때 어디까지나 나타난 외적인 것보다도 나타나지 않은 내적인 것이 귀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면 남자가 맞추어야 할 초점이 뭐냐? 우리는 일생 동안 개개인으로서의 인생을 영위해 갑니다. 거기에는 남성이 있고 여성이 있는데, 그 남성과 여성이 맞춰야 할 초점이 뭐냐? 가정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사랑의 인연을 중심으로 해서 초점을 맞춰 나갑니다.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외적인 모든 것을 맞춰 나가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보이지 않는 내적인 근원에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사랑의 길을 찾아가고 여자도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그 초점, 기점이 어디냐? 사람은 그렇다고 하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서 바라는 초점은 무엇이겠느냐? 그 초점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지식이 문제가 아니고, 권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원리가 지향하는 참된 사랑입니다. 인간을 향하는 참된 사랑, 부모의 입장에 선 하나님이 자녀의 입장에 있는 인간에 대해 갖게 되는 참사랑의 초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초점은 마음대로 변경될 수 없습니다.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그 초점은 절대적으로 하나여야 됩니다. 영원불변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초점이 지향하는 방향이 어디냐 할 때, 그것은 반드시 수평선을 중심삼은 수직의 자리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178-43)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수 있는 길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지었다면 피조세계를 향하시는 방향은 하늘이 위에 있고 인간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수직일 것입니다. 그 길이 하나님이 취하셔야 할 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수직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준에서 맞춰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상봉할 수 있는 초점은 어디냐? 만날 수 있는 초점이 어디냐?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이상적인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종적인 기준에 횡적인 기준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두 방향을 맞출 수 있게끔 돼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것입니다. 수직적인 인격관을 구성할 수 있는 내적인 지향성과 외적인 지향성이 하나돼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중구조로 돼 있습니다. 꽃 가운데도 성상과 형상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음양의 내용이 전후좌우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수 있는 길이 두 길이냐? 두 길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수직선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를 중심삼고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돼야 합니다. 수직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우리 몸이 90각도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만물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피조세계는 쌍쌍제도로 지어져 있습니다. 쌍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플러스와 마이너스, 상대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도 처해 있는 위치가 다릅니다. 마음은 종적인 것이요, 몸은 횡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않고는, 이것이 수평선이 되지 않고는 본질적인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수직선을 그을 수 없습니다. 이 수직선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178-44)
여러분이 노력해야 할 것, 더욱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어떻게 몸을 하나로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이상을 추구하고 높고 귀한 것을 추구합니다. 그 높고 귀한 것이 자기 스스로의 관념적으로 지어진 그런 높고 귀한 것이 아닙니다. 대우주의 원칙과 화합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존재권이 있는데, 그것이 이상권입니다.
그 이상권은 천 년 전이나 만 년 전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그 가운데 들어와 가지고 반항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그 가운데 포용될 때 전체가 화합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창조이상이라고 하게 될 때, 거기에는 물론 원리적인 내용이 다 갖추어져 있고 모든 원칙적인 기준이 다 맞지만 그 이상이라는 것도 서로 서로가 화합하는 것입니다. 위가 아래, 아래가 위, 오른쪽이 왼쪽, 왼쪽이 오른쪽으로 화합할 수 있는 기준은 사랑밖에 없다고 결론지어야 됩니다. (178-46)
섭리의 뜻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자리,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하늘의 사랑과 인격이 찾아올 수 있는 종적인 기준 앞에 내가 90각도의 횡적인 기준을 갖춰야 되는 자리입니다. 그 결합점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바라는 사랑의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합되기 전에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하면 나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90각도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높은 것을 바라고 여러분의 행동은 먼 데까지 영향을 미치려고 합니다. 뭘 갖더라도 세계의 것을 다 가지려고 합니다. 동서의 모든 것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높고 낮은 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동서의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상하의 모든 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이라는 게 뭐냐? 그것은 사랑의 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의 힘은 국경을 초월할 수 있고, 현실세계의 끝을 넘어서 상대세계도 포괄할 수 있습니다. 표면(表面)이 아니라 이면(裏面)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물이 그렇습니다. 모든 원소를 분해해 봐도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성격이 핵을 중심삼고 움직이는데, 그 핵은 어디까지나 90각도를 갖추는 자리에서 정착하려고 하지 아무데나 정착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세포들도 존재하는 데는 내적인 기준과 외적인 기준이 90각도에서 맞아떨어진 초점과 핵을 중심삼고 존재하려고 합니다. 거기서 떠나게 될 때는 분해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이 매일매일 생활하는 가운데서 무엇을 맞춰야 되느냐? 초점은 무엇이냐? 우리의 마음과 몸 가운데서 어느 것이 중심이냐? 몸이 중심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마음이 중심입니다. 그러면 왜 보이지 않는 마음이 중심이 되느냐? 이 우주의 중심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보이는 것으로는 통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더 깊은 것, 더 높은 것을 통해야 합니다.
사람도 그렇잖아요. “그 사람 마음이 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사람일수록 말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깊다는 것입니다. 또, 넓다고 합니다. 깊다는 자체는 종(縱)을 표시하는 것이고, 넓다는 것은 횡(橫)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 종횡이 따로 되는 것이 아니라 포괄되어 가지고 하나의 존재형태를 갖춰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운동을 해야 됩니다. 운동을 하는 데는 그냥 하지 않습니다. 종횡이 운동하게 되면 반드시 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는 여러분이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나는 틀림없이 이러이러한 길을 간다” 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일생이면 일생의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관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일생의 목표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섭리의 뜻이라는 것은 여러분 개인을 초월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보다 큰 것을 말합니다. 내 개인보다 가정, 가정보다 종족, 종족보다 민족, 민족보다 국가, 국가보다 세계, 세계보다 천주통일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보게 된다면 점점점 커지지만 나중에는 하나로 돌아갑니다. 나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전부 다 확대시켜서 나중에 돌아가면 하나입니다. 이것이 열매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와서 각양의 변화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근본으로 돌아갑니다. 난초면 난초의 씨가 뿌려져서 그 씨를 중심삼고 나오는 데는 뿌리가 뻗고, 줄기가 뻗고, 가지에 잎이 뻗고, 꽃이 피어 가지고, 그 다음에 열매를 맺어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점점점 크게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까지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 다음에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면 하늘로 돌아가야 됩니다. 하나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178-46)
이상적인 초점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러면 하나님이 섭리를 중심삼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 사랑권을 중심삼고 영향을 미치시겠다는 게 아닙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되어 가지고 둘이 하나된 기준을 중심삼고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권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셨습니다. 만물 중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셨습니다.
그 영장이라는 말은 인간 자체만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삼고 횡적인 면으로 드러난 존재세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랑으로 하나된 존재는 모든 만물도 화합하고 환영하게 돼 있습니다. 로마서에 보게 된다면, 모든 만물이 인간이 타락한 것을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만물뿐만 아니라 천사세계까지도 탄식하고 하나님도 탄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느냐? 이상이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신이 이상적인 초점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만물을 대표하는 자라는 자각을 가져야 됩니다. 내가 완성되어 가지고 만물 가운데 갈 때는 그 만물과 하나되어 동화될 수 있습니다. 시를 짓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정서적인 면을 체휼하여 표현한 문장을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이 크면 클수록 상대적으로 와 닿는 것도 큽니다.
꽃이면 꽃을 아이로 상징할 수 있고, 동물이면 동물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상징할 수 있습니다. 만물 전체가 완전히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그 자리에서는 작은 것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머리카락이면 머리카락을 언제나 하나 둘 뽑아도 관계없지만, 이 머리카락이 내 생명을 지닌 완전한 것이라고 할 때는 내 몸 전체와 화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해 있는 위치와 급(級)은 다를지언정 완전히 나라는 사람하고 화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화합하는 초점은 무엇이냐?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내용이 화합될 수 있는 것이면 될 수 있는 것일수록 그만큼 오래가고 완전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제3의 물건과 제4의 물건 앞에 표준형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3의 물건과 제4의 물건 앞에 주체성을 가지고 하나되어서 제5의 물건과도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내적인 기반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주가 전부 다 연결됩니다. (178-48)
이상적인 요소
이렇게 보면, 이 우주 전체가 무엇 때문에 존속하느냐? 우주 전체가 존재하는 내적인 기반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탕” 치면 모든 만물이 공명합니다. 여기에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원소가 90각도의 수직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자동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도 보면, 반드시 둘의 초점이 맞습니다. 숨도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반드시 맞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도 잘 들을 수 있으려면 음향의 초점이 맞아야 됩니다. 귀도 그렇잖아요? 초점이 맞아야 잘 들립니다. 그 초점이 아무렇게나 돼 있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물이 수직과 횡적인 관계를 이루어서 핵을 중심삼고 돌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도는 데 있어서는 마음대로 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축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지구도 축을 중심삼고 돌아갑니다. 태양계면 태양계에 있어서 태양이 마음대로 뒤넘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심을 향하는 축을 중심삼고 대우주가 돌고 있는 것입니다. 손의 세포면 세포 자체도 그렇습니다. 물론, 그림으로 보게 된다면 거꾸로도 돼 있고 반대로도 돼 있고 아래로도 돼 있지만 반드시 그와 같은 원칙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손이면 손을 중심삼고 수직과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요소가 무엇이냐? 생명의 근본까지 격동시키는 작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본래 모든 존재는 상대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남자 여자가 생겨나는 것은 부모의 사랑으로부터입니다. 사랑의 줄기 가운데서 뻗어나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줄기로부터 뻗어나가서 사랑의 열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먹고 입고 사는 것보다도 마음속으로 사랑의 줄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귀합니다.
그 사랑의 줄기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의 부모입니다. 그 부모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김씨면 김씨의 문중으로부터 한 가지와 같이 뻗어 가지고 쭉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의 줄기를 수직으로 삼고 수평으로 생활합니다. 어린애들을 보면 그렇잖아요. 갓난애를 가만히 보면, 그 아이가 뭘 원해요? 어머니의 젖을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누구한테 먼저 얘기해요? 먼저 사랑의 줄기를 중심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라고 하지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에요. 대개,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보다도 “어머니 아버지”라고 합니다.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대외적인 세상으로 나타낼 때는 모부(母父)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 부모라고 합니다. 그 부모라는 말은 횡적인 세계에 있어서 질서를 연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먼저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정서적인 문제에 연결됩니다. (178-50)
사랑을 빼놓고는 이상을 그릴 수 없어
여러분이 생각하는 돈이나 지식 혹은 권력은 다 부속품들입니다. 그것들은 일생이 지나간 다음에는 필요 없습니다. 저나라에 가 가지고 내가 무슨 물리학 박사면 물리학 박사라고 행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영계에 가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배우지 않고 다 알 수 있느냐? 전부가 사랑의 뿌리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의 자리에만 들어가 보게 되면 다 보여서 알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눈이 밝아진다’는 말이 뭐냐? 남자가 여자를 알고 여자가 남자를 아는 것, 즉 이성에 대한 것을 아는 것 이상은 없습니다. 남자로 생겨나 가지고 여자를 모르면 바보입니다. 최고의 이상이 뭐냐? 남자가 가야 할 최고의 이상적인 초점이라는 것은 여자입니다. 여자인데, 어떤 여자냐? 자기의 마음에 딱 맞는 여자, 젊어서도 맞고 늙어서도 맞고 영원히 맞을 수 있는 여자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마음을 여자의 무엇에 맞추겠느냐? 코에 맞추겠어요, 눈에 맞추겠어요? 눈도 나이가 많아지면 우글쭈글해집니다. 코도 전부 다 그렇게 됩니다. 얼굴도 그렇고 모든 것이 쭈글쭈글해집니다. 그러니까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 하면 사랑에 맞추는 것입니다. 늙은 부부가 사랑하는 것과 젊은 신랑 신부가 사랑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멋지겠어요? 그거 생각할 문제입니다.
젊은 청춘들은 “아, 그거 물어 보나마나 젊은이가 사랑하는 것이 제일 멋지지” 할는지 모르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사랑하더라도 종적인 형이 남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그 형이 남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이 있고 개성이 살아 있습니다. 그건 무엇이냐 하면 종적인 기준과 횡적인 기준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나이가 많은 노부부의 사랑은 원만하게 둥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청춘남녀의 사랑이 좋다구요?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게 있으니까 울퉁불퉁합니다. 그래서 한 마디만 잘못하더라도 픽 돌아가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혼은 젊은 사람들에게 많습니다. 40이 넘고 60이 된 노부부들에게 있어서는 이혼이 많지 않습니다. (178-52)
그러면 누구든지 일생 동안 무슨 줄기에 목을 매고 살려고 하느냐? 남자나 여자도 사랑에 목을 매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그 하나의 절대적인 사랑을 겨냥해 나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추구하는 것이 이상권입니다.
이상주의자라고 하면 어떤 환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사랑을 빼놓고는 이상을 그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남자가 잘났다고 하더라도 이상이라고 할 때는 여자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상권이 벌어집니다. 여자도 그렇지요? 여자와 남자가 다르지만 그 둘의 초점은 맞을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참사랑으로 하나되면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첫사랑의 정을 품고 일생 동안 살아갑니다. 아무리 미인 할머니라도 첫사랑을 알게 한 사람이 보기 싫은 영감일지라도 그 첫사랑의 영감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첫사랑이 뭐냐 하면 방향을 맞추는 것입니다. 남자는 바른쪽이고 여자는 왼쪽이니까 그 둘의 방향은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가 빠르게 달려와서 아무데서나 부딪치면 납작해집니다. 그렇지만 중앙에 오게 되면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데 있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돌아요? 종적인 수직을 중심삼고 돌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보면 여자의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가 도느냐, 남자의 사랑을 중심삼고 여자가 도느냐?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은 사랑을 축으로 해 가지고 돌아가야 됩니다. 왜 남자 여자의 사랑을 축으로 해서 돌아가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접붙이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구형(球形)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되어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서로가 달라붙는 것보다도 원심작용에 의해서 확산됩니다. 그래서 동서로 하나되었다가 남북으로 갈라지려고 하면서 돌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리를 잡느냐? 반드시, 수직을 중심삼고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178-53)
영원한 초점
이 모든 우주의 존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축을 중심삼고 돈다는 것입니다. 태양계면 태양계에 위성들이 있지만, 그 태양계 자체가 멋대로 도는 것이 아닙니다.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수직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준의 자리에서 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세포들도 그런 기준에 맞춰 가지고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오관(五官)이 무엇에 전부 다 초점을 맞추려고 하느냐?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닙니다. 권력도 아닙니다. 참사랑입니다. 그 초점이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고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참사랑을 취해야 모든 것이 움직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로 말하면 영인체하고 육체는 다르지요? 이런 영인체의 감각과 육체의 감각이 공용될 수 있는 하나의 초점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느냐? 그것만 “탕” 하게 된다면, 남자와 여자의 모든 세포들이 작동합니다. 또, 그 세포들이 작동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작용하실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그 기준이 어디서 상봉하게 되느냐 하면 90각도의 자리에서 상봉합니다. 그것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물을 대표하는 인간과 종적인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이 만나서 하나될 수 있는 초점은 둘일 수 없습니다. 영원한 초점입니다. 이것을 변경시킬 수 있는 아무런 논리가 없습니다. 이걸 뜯어 놓으면, 모든 것이 다 틀어집니다. 언제나 이 각도를 맞추게끔 모든 우주의 존재가 협력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을 찾아가게 될 때는 힘이 납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가면 왜 힘이 나느냐? 우주의 모든 것이 밀어 주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밀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밀어 주기 때문에 강한 힘으로 발전합니다. 빠르다면 그 이상 빠른 게 없습니다. 빛이 1초 동안에 3억 미터의 속도로 달려가지만, 그것보다 사랑의 속도는 더 빠릅니다. 빛까지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8-55)
여러분이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의 몸을 수평선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세계하고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김 아무개의 우리 집안을 대표해 있습니다. 아버지를 대표하고, 어머니를 대표하고, 형제를 대표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또, 대한민국을 대표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까지 대표했습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하나님까지의 8단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 왔습니다” 하고 기도할 때 “너 누구냐? 김씨의 가정을 대표했어” 하고 물으신다면, “예” 하고 대답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대한민국 사람이면 “한국을 대표했어” 하시면 “예” 해야 하고, 그 다음에 “너는 아시아의 사람이니까 아시아를 대표했어” 하시면 “예” 해야 하고, 그 다음에 “너는 세계를 대표했어” 하시면 “예” 하고 소리가 더 커야 됩니다. 그래야 됩니다. (178-56)
제일 무서운 병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냐 하면 자기를 제일로 세우려고 합니다. 여러분, 제일 첫째가 되고 싶지요? 첫째가 되고 싶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일가는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도 여자를 빼놓고 제일이 되려고 합니다. 또, 여자도 남자를 생각지 않고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남자는 “나는 여자까지 대표한 남자입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어야 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사랑이라는 인격이 있으면 남자는 플러스적이고 내적인 성상이요, 여자는 마이너스적이고 외적인 형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냐” 할 때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체적(連體的)인 체제권 내에서 존속하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나’ 할 때는 역사적인 존재입니다. 여러분 선조들의 요소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수천 수만의 선조들의 요소 요소들을 다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조상들이 심어 놓은 돈 보따리를 다 갖다가 종합한 주식회사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게 되면 그 속에 여러분의 어머니도 들어가 있고 아버지도 들어가 있고 할아버지와 증조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몇 천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다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형태로 연결시킨 것은 무엇이냐? 사랑이 연결시킨 것입니다. 사랑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았어요? 생명이 연결시킨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딸의 생명이 무엇으로 연결돼요? 만약에 생명을 얻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다 끊어져서 동강납니다. 생명의 밑바탕이 사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따라서 우리 생명이 움직이려고 하지 생명을 따라서 사랑이 움직이려고 해요?
그러니까 사람은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어야 됩니다. 뿌리가 남으면 가지는 잘라 버려도 뿌리를 통해서 새로운 가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보다 근원적이요, 보다 원초적인 내용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뿌리를 남겨 놓으면 줄기는 잘라 버려도 새로운 가지가 다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남녀들이 사랑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생명을 던지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찾아가야 됩니다. 생명을 던지는 것이 자기 때문에 던져요, 남편 때문에 던져요? 이게 문제입니다. 여자가 투신자살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것이 자기 때문이에요, 남편 때문이에요? 그것은 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왜 자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던지겠어요?
그것은 상대 때문에도 아닙니다. 그 상대가 없어졌는데 왜 그래요? 쓱, 지워버리면 되잖아요. 그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상대를 통해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리를 잡는데 한 번 “꽝” 꽂으면, 그것을 뽑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순응해야 됩니다.
남자나 여자한테 있어서 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사랑이 “꽝” 하고 결정될 때는 그것에 절대 복종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복종하는 것이 원칙인데 복종할 수 없는 자체가 되니까 우주가 제거하는 것입니다. “너는 없어져라” 그럽니다. 우주가 제거해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마음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우주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또, 눈물이 나기 전에 답답하고 가슴이 막 아프지요? 그거 왜 그런 거예요?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의 아픔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병이 무슨 병이냐? 사랑의 병입니다. 약이 없다고 그러잖아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상사병에는 약이 없다고 그러는데 진짜 사랑 때문에 병났으면 고칠 약이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고칠 수 있는 약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본질적인 참사랑입니다. 그가 사모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주체라든가 대상만이 이상형으로서 본래의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상충이 벌어지게 됩니다. (178-56)
사랑의 초점을 붙들어야
오늘 제목이 ‘이상적인 초점을 맞추자’입니다. 전부가 이상적인 초점을 원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은 초점입니다.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그 초점이 우리 인간의 생활권을 스쳐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쳐 가는 그 사랑의 초점이 여러분을 붙들어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그 사랑의 초점을 붙들어야 되겠어요? 우리가 붙들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타락한 인간들은 철야작업을 하면서 밤새 지키고 “나를 빼놓고 지나가서는 안 돼” 하면서 사방으로 갈고리를 해 놓고 버티고 “빕니다. 빕니다” 한다구요. 그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나가는 운세의 초점을 여러분이 당기겠어요? 그냥 돌아가면, 여러분이 어떻게 되겠어요? 뺑뺑 돌아가는 거기에 바구니를 걸어 놨으면 그 바구니를 잡아타야 됩니다. 그때 바구니가 “아, 내가 여기에 왔으니까 타소”라고 절대 안 합니다. 후닥닥, 점핑해 가지고 바구니에 타야 됩니다.
그 초점의 때라는 것이 여러분을 찾아와 가지고 “아, 여기에 자리가 있으니까 앉으소” 하면서 모셔 앉혀 놓겠어요, 그냥 그대로 지나가겠어요? 그냥 그대로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잡아타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잡아타야 됩니다. 그 때가 오거든 밤이든 낮이든 후닥닥 잡아타야 됩니다. 그래서 종교세계에서는 먹지도 않고 밤을 새워 기도하고, 남들이 잘사는 사이에 못사는 거지같은 모양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는 다 됐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다 됐어요, 기다리고 있어요? 아버님을 만났으니까 뭐 다 그만 아니에요? 그 아버님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아버님, 가정적인 아버님, 종족적인 아버님, 민족적인 아버님, 국가적인 아버님, 세계적인 아버님, 천주적인 아버님, 그 다음에 하늘땅의 아버님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렇게 맞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으로서의 초점이 있습니다.
통일교회에는 참부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부모, 부모로서의 초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초점, 가정적인 초점 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초점의 아버지로서 갖춰 나갈 것은 가정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누구든지 가정적인 아버지하고 개인적인 아버지의 둘이 있는 데 와서 부탁하게 되면 개인적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대해 줘야 되겠어요, 가정적인 아버지 입장에서 대해 줘야 되겠어요? 가정적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대해 줘야 됩니다.
어째서 그렇느냐? 개인은 지나왔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올라가야 되겠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종족적인 기준의 아버지와 가정적인 아버지 그리고 개인적인 아버지를 부르게 된다면 종족적인 아버지를 대해야 되겠어요, 가정적인 아버지를 대해야 되겠어요, 개인적인 아버지를 대해야 되겠어요? 종족적인 아버지를 대해야 합니다.
가정적인 아버지를 부르면 무시해 버리고 개인적인 아버지를 불러도 차 버리고 종족적인 아버지를 부를 수 있도록 해 놓으면 그 종족권 내에는 가정도 들어가고 개인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논법을 알겠어요? 그러면 국가적인 아버지의 시대에 있어서 문씨의 종중이라든가 뭐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아는 체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대할 수 있어도 종족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부르는 아버지는 지나갔기 때문에 안 대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개인적인 판도도 들어가고, 가정적인 판도도 들어가고, 종족적인 판도와 민족적인 판도도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게 높고 넓은데, 그것을 포괄해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시대에 있어서 세계적인 아버지의 자리에서 나가는데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와 가지고 “아, 세계적인 아버지여! 세계적인 아버지는 그만두고 대한민국의 아버지가 돼 주소” 할 때는 차 버려야 되겠어요, 끌고 가야 되겠어요? 차 버려야 됩니다.
그 다음에 천주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자리에 나갈 텐데 “아이구, 세계의 아버지가 아니요? 당신은 우리만을 중심삼고 천주는 그만두소”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차 버려야 되겠어요, 안 차 버려야 되겠어요? 그거 차 버려야 됩니다. 맨 나중에 하나님을 중심삼을 때까지 다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정에서 챔피언이 되어야 종족적인 챔피언의 자리에 나가잖아요? 종족적인 챔피언이 되어야 민족적인 챔피언권에 나가 싸웁니다. 지금 올림픽대회가 그걸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민족적인 챔피언이 세계에 나가는 것입니다. 세계에 나가야 천주사적인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178-63)
전체의 중심이 되는 것은 참사랑뿐
여러분은 욕심을 다 갖고 있습니다. 본심은 “내가 최고야” 합니다. 문 총재가 큰소리칩니다. 문 총재 자신을 두고 볼 때 “나는 세계적인 남성을 대표하는 남성으로서 역사시대가 소원하던 사랑의 초점에 서야 된다” 합니다. 그것이 문 총재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 초점은 하나이지만 개인을 중심삼고 세계적이요, 가정을 중심삼고도 세계적이요, 종족을 중심삼고도 세계적입니다. 대표의 자리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도 대표의 자리요, 하늘땅을 대표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이 추를 내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이 추 앞에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횡적으로 맞추면 됩니다. 이 초점을 중심삼고 개인이 서게 되면, 그 다음에 가정을 중심삼고 서는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도 뭐냐 하면 이 초점입니다. 가정의 중심, 종족의 중심, 민족의 중심, 국가의 중심, 세계의 중심, 천주의 중심과 하나님의 중심도 이 초점입니다. “이 초점에 맞춰라” 하면, 척척척 세계가 돌아갑니다. 무엇이든지 여기에 이중의 그늘을 지우면 안됩니다. 전부 다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대표가 돈을 중심삼고는 불가능합니다. 지식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어요? 아무리 전문가나 학자라도 자기의 전공분야밖에 모릅니다. 그것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참사랑입니다. 만세의 승리적인 축을 꽂을 수 있는 참사랑에 초점을 맞춘 사나이의 위대함을 하늘이 찬양하고 만우주가 찬양하는 것입니다. (17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