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8권 21일
사랑을 통한 이상실현 (훈독본)
- 이상헌 통일사상연구원 원장의 질문에 대한 말씀 -
날짜: 1987. 5. 18(월)
장소: 한국 한남동 공관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목적을 완성한 것이 하나의 세계인데,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를 투입해야 합니다.
사탄의 역사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은 중심만 잡으면 독재가 되어서 착취놀음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분열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중심삼고 쳐 가지고는 종말에서 수습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개인의 중심이 아닌 이타주의를 통하여 전체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위해주니까 상대가 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 상대를 위해준다는 것은 상대편에 플러스를 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양심은 자기에게 무엇이든지 플러스가 될 때 좋다고 표시하게 돼 있지 나쁘다고 표시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타주의로 말미암아 통일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본주의, 유신론에 의하여 세계의 통일이 가능하지 무신론에 의해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관을 중심삼고 유물사관을 비판해야 됩니다.
이상실현을 위해서는 자기를 위주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주합니다.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가치 있는 상대를 만들어야 됩니다. 남자나 여자가 자기보다 잘난 사랑의 대상을 왜 필요로 하느냐 이거예요.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지 자기 상대방은 자기보다도 더 귀하고 더 훌륭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자기 자체를 투입할 수 있는 목표를 그리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164-316)
이상실현의 가능성이 영속될 수 있다는 논리적인 기원
무신론은 자기를 중심삼은 것밖에는 없습니다. 로마 같은 나라가 왜 망했느냐?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원칙에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무엇이냐? 자기 투입입니다. 하나님도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무엇을 하시겠다는 것이냐? 사랑을 찾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더 큰 것을 위해서 자기를 투입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근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신론과 유물론의 대결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맞춰 나가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유물사관을 중심삼은 정반합의 논리가 깨져 나갑니다. 반드시, 이기주의는 사탄 편에 귀결됩니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이기주의가 강해지면 독재가 되는데, 그것은 사탄 편입니다. 처음에 그런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악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기주의가 세계적으로 만연하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이타주의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나가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먼저 사탄이 이기주의를 중심삼고 전부 다 자기에게 결부시켜 가지고 대항하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먼저 세계를 자기의 권내에 집어넣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면 가정의 주인이 사탄 편이 되어 있고, 사회면 사회의 주인이 사탄 편이 되어 있고, 국가의 위정자가 사탄 편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사탄 편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체제를 갖추어 가지고 이기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열이 벌어지고 반목이 벌어집니다. 통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상세계가 될 수 없습니다. (164-318)
우리가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환경적인 여건을 하늘이 다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핵을 세워서 맞춰 나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발전하려면 투입해야 됩니다.
복귀과정이 재창조의 과정인데, 복귀과정이 남아 있는 한 투입해야 됩니다. 투입의 한계선은 복귀가 완성될 때까지입니다. 그러면 복귀가 완성된 세계는 어떤 세계냐? 옛날에 내가 개인적인 입장에서 완성된 세계에서는 한국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을 좋아했지만, 복귀가 완성된 세계에서는 나를 중심삼고 세계까지 가는 것입니다.
세계적이 된 다음에는 또 국가적인 기준이 필요하니까 돌아와야 됩니다. 사람이 좋아졌으면 그 기준만 계속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계속 향상되기만 하면 이전에 좋았던 것은 없어집니다. 그렇게 이전에 좋았던 것이 없어지면 안됩니다. 그것과 현재가 하나의 핵을 중심삼고 돌면서 나선형으로 발전해 나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하면 옛날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과 하나되어 가지고 하늘의 축을 중심삼고 되돌아 나옵니다. 이런 운동을 합니다. 그다음에는 개인까지 왔다가 또 올라갑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이라든가 모든 욕망이나 희망이 최고를 바랍니다. 그 최고의 중심이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귀착점입니다.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서 결론은 뭐냐? 주체가 되는 것이 투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투입하면 어떻게 되느냐? 열만큼 높았던 것이 다섯만큼 투입하면 그 자체는 내려오지만 상대가 다섯만큼 올라옵니다. 그렇게 다섯만큼 올라온다는 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열 이상 올라온 것과 같은 가치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그러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투입을 하면 할수록, 자기 소모가 되면 될수록 불행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의 힘에만 그런 게 있지 딴 데는 없습니다. 사랑을 투입해 가지고 돌려 받는 자극은 투입한 이상의 힘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이상실현의 가능성이 영속될 수 있다는 논리적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164-319)
이상적인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랑의 힘은 입력보다 출력이 크다는 논리를 세워야 이상적인 밸런스가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우주의 운동을 일으켰으면, 하나님 자신이 소모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주가 균형을 취하느냐?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줌으로써 딴 면에서 보충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영속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존재기반이 아니고는 영속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자기 생명이나 재산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투입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는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이상의 사랑으로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사랑한다면 손해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주와 연결되기 때문에 우주적으로 커 갑니다. 반드시, 사랑을 위한 투입에는 창조의 역사가 벌어집니다. 여기서 막더라도 딴 방향으로 벌어져 가지고 창조적인 역사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언제든지 선한 일을 하라는데, 왜 선한 일을 하라고 하느냐 이거예요. 선한 일을 하려면 희생해야 됩니다. 자기를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투입하면 왜 좋으냐? 천운의 주류에 접속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무한한 힘의 보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선한 사람은 무한한 힘을 보급받기 때문에 모든 일에 만사형통할 수 있습니다.
두 아이가 싸우는데, 세상 같으면 때리고 울려야 승리하는 것인데, 맞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보거든요. 저쪽에서 때렸다면, 그렇게 때린 것을 나는 사랑으로 대합니다. 참는 자가 복받는다고 하는데, 왜 복받느냐? 치는 자와 대적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으면 내 사랑의 힘이 상대적으로 돌아서 지금 치는 자의 악한 자리에 선한 대상권을 세워 놓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치는 자를 사랑으로 품으려고 하면 그렇게 치는 사람은 물러가더라도 친 사람의 자리에 사랑으로 위하려고 했던 대상권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장은 안 보이지만 주변에 그러한 가치적인 내용이 집결됩니다. 그렇게 언제나 위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전진하는 데 있어서 선한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윗사람을 위하는 것은 윗사람이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위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자신의 소망적인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이 아이가 10년, 20년, 30년 후에는 이러 이러한 사람이 되겠구나” 하고 윗사람이 본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내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다리가 연결되어 나갑니다. 그 다리가 보이지는 않지만 사랑의 세계에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윗사람을 사방으로 위하다 보면 나는 사방으로 연결되어 윗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사랑의 동위권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위권에 참석하고 나서는 상속권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서도 윗사람을 존경하면 “아, 우리 동네에서는 누가 제일 좋다” 합니다. 주변의 윗사람들을 위해주면 다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다고 말하는 것은 동위권에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창조의 원칙을 우리 인간도 실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완성된 인간은 재창조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재창조의 생활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기를 투입하여 창조하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완성된 인간이라면 사랑의 이상을 위하여 자기를 투입할 수 있는 제2의 하나님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대상권을 어디든지 연결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만물에 대해서, 사회생활에 대해서, 세계에 대해서, 우주에 대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선한 사람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해 가지고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해 나오셨으니까 우리도 완성된 사람이라면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재창조의 상대권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가 그 상대권을 이루지만, 그 상대권은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내로 확대됩니다. (164-323)
오직 사랑만이 이상실현을 가능케 해
완성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나님이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완성된 사람도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랑의 대상권을 이루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완성된 사람의 생활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그렇습니다. 영계에 가서 역사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사는데 어떻게 사느냐? 서로가 위해주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생활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더 높고 가치 있는 것에 내가 투입합니다. 그것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영계는 육계의 연장입니다. 지상에서 평면적인 사랑의 이상을 추구했다면, 거기서는 구형체와 같은 사랑의 외곽뿐만 아니라 핵심까지 통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깊고 얕고 높고 낮은 모든 사랑을 투입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대신으로 재창조하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64-326)
그러면 하나님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히 자기도 높임을 받습니다. 제2의 하나님처럼 되니까 모든 영계에 있는 존재들이 높여줘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재창조권을 확장시키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공동소유를 중심삼고 나왔지만, 어째서 공유가 개인소유보다 못하냐? 이게 문제입니다. 공유의 소유권을 가진 공산당이 개인을 당의 이익보다 더 중요시해야 됩니다. 언제나 개인은 당을 위해야만 된다고 하지 당이 개인을 위한다는 개념은 없습니다. 그게 사탄이에요, 사탄. 독재체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을 중심삼은 당 절대주의이지 당이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는 주의는 없습니다. 그게 사탄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을 지옥으로 끌고 가자는 것입니다. 개인이 이상적인 수수작용의 상대기반을 갖지 못하니까 전부 다 무가치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까 지옥밖에 갈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개인이 당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반면에 개인의 행복을 절대 지지해야 되는데, 그러한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도 어느 기반만 잡으면 “너희들이 전부 다 중앙을 위해야지 중앙에서는 너희를 위하지 않아” 하는 게 아니라구요. 전체가 중앙을 위하는 것보다도 중앙이 전체를 더 위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인데, 하나님은 더 투입하려고 그러신다구요. 그렇게 더 투입하려고 하는 데서부터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이상적이고, 그것은 영원히 존속합니다.
물질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당이 가지려고 하지 개인한테 안 주려고 합니다. 소유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됩니다. 사랑이 아니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이든지 좋은 것을 아들딸한테 주려고 하지, 그러한 사랑이 아닌 소유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자기의 것을 다른 사람한테 주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의 부모들이 자식을 몰라보잖아요. 개인주의를 중심삼고 사탄 편에 전부 다 걸려든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사랑의 이상권이 다 파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소유욕은 물질이 아닙니다. 이상입니다. 그 이상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개인주의를 중심삼고 나오다 보니까 모든 공적인 일이나 사랑을 중심삼고 희생하려는 데 담이 다 막혀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몰라보고, 남편이 아내를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는 것입니다. 현실문제를 중심삼고 이상적인 내용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말이에요. 전부 다 그것을 있으나 마나 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으니까 소유욕을 중심삼고 전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164-327)
가치관의 통일은 어떻게 하느냐
‘가치관’ 하게 될 때, 그 가치관의 통일이 어떻게 되느냐? 모든 것은 좋은 면을 중심삼고 움직인다는 관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 가치관이라는 것이 나쁜 것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보다 좋을 수 있는 것을 바라보는 데에서 가치관이 설정됩니다.
우리의 손, 발, 눈, 코, 귀 등이 전부 다 선을 중심삼고 향진할 수 있는 기준에서 가치관을 세우려고 하지 내려간다면 다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은 보다 선할 수 있는 기준에서 연결된다고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가치관의 통일은 어떻게 되느냐? 모든 존재들이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의 공통분모가 무엇이냐? 생명이 아닙니다. 그 공통분모가 사랑이었다 이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할 수 있다는 논리는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생명의 힘은 쓰면 쓸수록 소모되고 피곤해지지만, 사랑은 하면 할수록 피곤하지 않습니다. 밤을 세우더라도 피곤을 초월해서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명력으로 미칠 수 없는 힘을 가진 게 뭐냐? 그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가치관의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사회의 가치관이라고 할 때 종교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불교면 불교의 가치관, 기독교면 기독교의 가치관, 유교면 유교의 가치관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가 기꺼이 하나될 수 있는 그게 뭐냐? 그것은 우주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됩니다. 그 우주애라는 것이 뭐냐 하면 작용해 가지고 소모되는 것이 아니고 작용을 하면 할수록 확대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선을 추구해 나가는 존재들은 도약하기를 바라고 확장되기를 바라는데 그 힘이 사랑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분모로 해 가지고 통일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통해서 보다 큰 가치의 세계를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4대 종교를 통해 가지고 세계를 수습해 나왔습니다. (164-330)
존재세계의 모든 것은 보다 가치 있는 것과 합하려고 해
여기에서 통일적인 선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종교형, 하나의 이상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종교형이 나타나야 됩니다. 그 종교는 모든 종단이 세계의 인류와 신을 위해서 투입한 이상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내용을 가진 종교는 세계의 종교를 통일함과 동시에 하나님까지도 결부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한테 도와 달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목적을 이루어 가지고 대상권에 서면 하나님이 찾아와서 사랑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선한 기준을 중심삼고 가치관을 설정해 놓아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싫으면 절대로 안 합쳐집니다. 그러니까 보다 차원 높고 가치 있는 선의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종교도 그 자체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희생하는 단체가 있으면 그 단체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에서부터 출발했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앞에서는 손을 드시는 거라구요. 사랑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랑의 공통분모 앞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영원히 분립될 수 없습니다. 그래야 사랑이 아니에요, 그게? 우리 이념을 딱 이렇게 세워 놓으면 만사가 들어맞는 것입니다. (164-333)
사랑의 열매
나무로 보게 될 때, 가지가 나고 잎사귀가 푸르고 모두 크기를 바라는 것은 뭐냐?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나무는 몇 백년이나 몇 천년을 못 살거든요. 그것을 연장시키려니까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는 것이 사랑이에요, 사랑. 꽃이 왜 향기가 필요하냐? 상대를 유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향기를 가졌다는 것은 뭐냐 하면 그 자체를 투입하기 위한 것입니다.
개인주의와 사리사욕은 사탄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타주의는 하나님 편에 속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장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세계에 갈 때 우리는 세상의 것을 다 버리고 오로지 가지고 가는 것은 사랑의 열매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열매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만드신 것은 사랑의 열매를 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버리더라도 사랑의 열매를 가지고 저나라에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영원한 대상으로 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는 사랑의 세계이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열매 가운데는 우주를 전부 다 포괄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됩니다. 어떤 나무의 씨라면 그 나무의 뿌리의 소성, 줄기의 소성, 가지의 소성, 잎의 소성, 꽃의 소성, 향기의 소성이 전부 다 있어야 될 것 아니에요? 세포분열이 벌어지잖아요. 그것들이 세포에까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손해나는 데서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성상이라고 하는 것이 위대합니다. 요즘에 와 가지고 학자들이 물질에도 영이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다 우리의 원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주가 간단합니다.
전부 다 하나의 분모를 중심삼고 분열되기도 하고 종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보따리에 싸면 하나가 되고 풀어놓으면 수없이 많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꽃들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땅에 저런 꽃의 색깔이 있는 게 아닙니다. 씨에 다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복잡한 요소가 그 열매의 씨 속에 들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64-335)*
천일국 훈독경 제8권 21일, 원문
사랑을 통한 이상실현
- 이상헌 통일사상연구원 원장의 질문에 대한 말씀 -
날짜: 1987. 5. 18(월)
장소: 한국 한남동 공관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목적을 완성한 것이 하나의 세계인데,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를 투입해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민주주의 세계와 기독교가 세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를 투입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 앞에 투입하지 못 했습니다. 그렇게 투입해 가지고 재창조의 입장을 갖추어 사랑을 실천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실현하실 수 있는 대상권의 입장에 못 나갔기 때문에 분립되었습니다.
공산주의는 뭐냐 하면 민주세계, 즉 자본주의를 타도하자는 것입니다. 계급적인 투쟁개념을 중심삼고 자기들의 주의만을 남기고 민주주의 세계, 자본주의는 완전히 전멸시키기 위한 작전을 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적인 기준만 잡으면 그 외의 모든 것은 때려치우는 것입니다. 자기 투입이 없습니다. 반대되는 것은 전부 다 제거한다는 것, 그것이 다릅니다.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발전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은 중심만 잡으면 독재가 되어서 착취놀음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분열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중심삼고 쳐 가지고는 종말에서 수습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개인의 중심이 아닌 이타주의를 통하여 전체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위해주니까 상대가 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 상대를 위해준다는 것은 상대편에 플러스를 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양심은 자기에게 무엇이든지 플러스가 될 때 좋다고 표시하게 돼 있지 나쁘다고 표시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타주의로 말미암아 통일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본주의, 유신론에 의하여 세계의 통일이 가능하지 무신론에 의해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관을 중심삼고 유물사관을 비판해야 됩니다.
유물사관이 그렇지 않아요? 투쟁개념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정반합작용(正反合作用)을 중심삼고 투쟁개념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세계는 그냥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상실현을 하겠다고 하면서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상대방의 좋은 것을 모두 다 끌어다 붙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좋을 수 있는 이상권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끌어다 붙이려고 하면 저쪽은 이상권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상실현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늘 편은 어떻게 하느냐? 이상실현을 위해서는 자기를 위주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주합니다.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가치 있는 상대를 만들어야 됩니다. 남자나 여자가 자기보다 잘난 사랑의 대상을 왜 필요로 하느냐 이거예요.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지 자기 상대방은 자기보다도 더 귀하고 더 훌륭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자기 자체를 투입할 수 있는 목표를 그리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164-316)
이상실현의 가능성이 영속될 수 있다는 논리적인 기원
무신론이 뭐냐?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은 자기를 중심삼은 것밖에는 없습니다. 로마 같은 나라가 왜 망했느냐?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원칙에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무엇이냐? 자기 투입입니다. 하나님도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무엇을 하시겠다는 것이냐? 사랑을 찾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더 큰 것을 위해서 자기를 투입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근본입니다. 그런데 로마 같은 나라가 세계를 중심삼고 그 자체를 투입하지 못했습니다. 로마가 희생하고 투입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전부 다 로마와 같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신론과 유물론의 대결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맞춰 나가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유물사관을 중심삼은 정반합의 논리가 깨져 나갑니다. 반드시, 이기주의는 사탄 편에 귀결됩니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이기주의가 강해지면 독재가 되는데, 그것은 사탄 편입니다. 처음에 그런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악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기주의가 세계적으로 만연하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이타주의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나가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먼저 사탄이 이기주의를 중심삼고 전부 다 자기에게 결부시켜 가지고 대항하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먼저 세계를 자기의 권내에 집어넣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면 가정의 주인이 사탄 편이 되어 있고, 사회면 사회의 주인이 사탄 편이 되어 있고, 국가의 위정자가 사탄 편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사탄 편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체제를 갖추어 가지고 이기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영국 사람은 영국 편으로 돌아가고, 미국 사람은 미국 편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분열이 벌어지고 반목이 벌어집니다. 통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상세계가 될 수 없습니다. (164-318)
우리가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환경적인 여건을 하늘이 다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핵을 세워서 맞춰 나갑니다. 그것은 가인 아벨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발전하려면 투입해야 됩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렇잖아요?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이 뭘 해야 되느냐? 우리 자체를 투입해야 됩니다. 환경은 다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익을 얻고자 하면 안됩니다. ‘투입하라, 될 때까지 투입하라’는 사상이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복귀과정이 재창조의 과정인데, 복귀과정이 남아 있는 한 투입해야 됩니다. 투입의 한계선은 복귀가 완성될 때까지입니다. 그러면 복귀가 완성된 세계는 어떤 세계냐? 옛날에 내가 개인적인 입장에서 완성된 세계에서는 한국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을 좋아했지만, 복귀가 완성된 세계에서는 나를 중심삼고 세계까지 가는 것입니다. 큰 구형이 되면, 그것의 힘이 어디로 작용하느냐 하면 구형의 주변으로 먼저 작용합니다. 그러면서 돌아갑니다. 끝과 끝이 주고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이에요, 세계적. 지금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왜 세계적인 것을 바라느냐? 세계적인 것만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세계적이 된 다음에는 또 국가적인 기준이 필요하니까 돌아와야 됩니다. 사람이 좋아졌으면 그 기준만 계속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계속 향상되기만 하면 이전에 좋았던 것은 없어집니다. 그렇게 이전에 좋았던 것이 없어지면 안됩니다. 그것과 현재가 하나의 핵을 중심삼고 돌면서 나선형으로 발전해 나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하면 옛날로 돌아가야 됩니다. 옛날로 돌아가려고 파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꾸로 돌아서 들어왔다 나갔다, 풀렸다 감겼다 하면서 발전합니다. (판서하시며) 그러면 이 나선형의 축이 고정된 것이냐? 이렇게 되면 축이 점점점 올라갑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과 하나되어 가지고 하늘의 축을 중심삼고 되돌아 나옵니다. 이런 운동을 합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까지 왔다가 또 올라갑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이라든가 모든 욕망이나 희망이 최고를 바랍니다. 그 최고의 중심이 뭐냐? 전부 다 귀착될 수 있는 점이 몇 개냐 하면 하나입니다. 안 그래요? 그 하나가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귀착점입니다.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서 결론은 뭐냐? 주체가 되는 것이 투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투입하면 어떻게 되느냐? 열만큼 높았던 것이 다섯만큼 투입하면 그 자체는 내려오지만 상대가 다섯만큼 올라옵니다. 그렇게 다섯만큼 올라온다는 것은 뭐냐?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이 열 이상 올라온 것과 같은 가치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그러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투입을 하면 할수록, 자기 소모가 되면 될수록 불행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상에서는 투입하게 되면 내려와 가지고 사그라지지만, 그렇게 사랑은 투입하는 이상의 힘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폭발합니다. 그 힘이 있기 때문에 내려가서 올라오고, 내려가서 또 올라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에만 그런 게 있지 딴 데는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투입하게 되면 투입한 자체가 내려가지요? 그래서 투입받은 것은 올라오더라도 투입한 자체는 내려갑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을 투입해 가지고 돌려 받는 자극은 투입한 이상의 힘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이상실현의 가능성이 영속될 수 있다는 논리적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164-319)
이상적인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도 운동하는 세계의 소모를 무엇이 지탱하느냐 이거예요. 사랑의 힘은 입력보다 출력이 크다는 논리를 세워야 이상적인 밸런스가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우주의 운동을 일으켰으면, 하나님 자신이 소모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주가 균형을 취하느냐?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줌으로써 딴 면에서 보충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영속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존재기반이 아니고는 영속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자기 생명이나 재산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투입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진정한 사랑을 떼먹으려고 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것을 영원히 보존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는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이상의 사랑으로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개인을 사랑한다면 손해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주와 연결되기 때문에 우주적으로 커 갑니다. 복귀섭리도 그렇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욕을 먹으면서 일을 하지만 상대적인 세계에 창조의 역사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반드시, 사랑을 위한 투입에는 창조의 역사가 벌어집니다. 여기서 막더라도 딴 방향으로 벌어져 가지고 창조적인 역사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다고 할 때도 논리적으로 딱 집어 넣어 줘야 됩니다. 왜 공부하는 것이 좋으냐 하는 것을 말이에요. “네가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사랑을 중심삼은 노력을 투입하게 되면 상대적인 세계가 창조되어 가지고 너를 더 큰 것으로 맞아들인다” 하는 간단한 개념을 싹 집어 넣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해석하면 지치지 않습니다. 반드시, 투입하면 투입하는 만큼 내 주변에 현현합니다.
언제든지 선한 일을 하라는데, 왜 선한 일을 하라고 하느냐 이거예요. 선한 일을 하려면 희생해야 됩니다. 자기를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투입하면 왜 좋으냐? 천운의 주류에 접속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무한한 힘의 보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선한 사람은 무한한 힘을 보급받기 때문에 모든 일에 만사형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논리적인 체제가 안 세워져 있으면 무턱대고 좋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두 아이가 싸우는데, 세상 같으면 때리고 울려야 좋고 승리하는 것이 좋을 텐데 맞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보거든요. 저쪽에서 때렸다면, 그렇게 때린 것을 나는 사랑으로 대합니다. 참는 자가 복받는다고 하는데, 왜 복받느냐? 치는 자와 대적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으면 내 사랑의 힘이 상대적으로 돌아서 지금 치는 자의 악한 자리에 선한 대상권을 세워 놓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치는 자를 사랑으로 품으려고 하면 그렇게 치는 사람은 물러가더라도 친 사람의 자리에 사랑으로 위하려고 했던 대상권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장은 안 보이지만 주변에 그러한 가치적인 내용이 집결됩니다. 그렇게 언제나 위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전진하는 데 있어서 선한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설을 해줘야 젊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쏙 들어갑니다. 왜 선한 일을 해야 되느냐, 왜 좋은 일을 해야 되느냐, 왜 참아야 되느냐, 왜 남을 위해야 되느냐, 왜 윗사람을 위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모릅니다.
윗사람을 위하는 것은 윗사람이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위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자신의 소망적인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이 아이가 10년, 20년, 30년 후에는 이러 이러한 사람이 되겠구나” 하고 윗사람이 본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내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다리가 연결되어 나갑니다. 그 다리가 보이지는 않지만 사랑의 세계에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윗사람을 사방으로 위하다 보면 나는 사방으로 연결되어 윗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사랑의 동위권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위권에 참석하고 나서는 상속권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서도 윗사람을 존경하면 “아, 우리 동네에서는 누가 제일 좋다” 합니다. 주변의 윗사람들을 위해주면 다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다고 말하는 것은 동위권에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사회생활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설명해 줘야 됩니다. 전부 다 이론적으로 관이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관이 안 서 있으니까 혼란이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재창조의 원칙을 우리 인간도 실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완성된 인간은 재창조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재창조의 생활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기를 투입하여 창조하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완성된 인간이라면 사랑의 이상을 위하여 자기를 투입할 수 있는 제2의 하나님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대상권을 어디든지 연결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만물에 대해서, 사회생활에 대해서, 세계에 대해서, 우주에 대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선한 사람의 생활입니다.
선한 사람의 생활이 뭐냐고 할 때 논리적인 뭐가 없거든요. 이상적인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창조해 가지고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해 나오셨으니까 우리도 완성된 사람이라면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재창조의 상대권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가 그 상대권을 이루지만, 그 상대권은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내로 확대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만을 보고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루는 상대권까지 좋아하십니다. 그러니까 내가 한 일도 하나님의 사랑권에 포괄되어 가지고 우주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164-323)
오직 사랑만이 이상실현을 가능케 해
완성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제 이렇게 묻는다구요. 앞으로 얘기를 하게 되면, “완성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나님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 하고 묻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고, 안 보이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완성된 사람도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랑의 대상권을 이루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완성된 사람의 생활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그렇습니다. 영계에 가서 어떻게 하느냐? 역사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사는데 어떻게 사느냐? 서로가 위해주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생활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더 높고 가치 있는 것에 내가 투입합니다. 그것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울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거든요. 사랑의 이상이 실현되어 나가는 것을 보고 자극을 느끼셨습니다. 사랑의 대상권으로부터 자극이 옵니다. 그래서 지치지 않습니다. 사랑만이 투입하더라도 지치지 않지 그 외의 것은 전부 다 소모되기 때문에 점점점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영계는 육계의 연장입니다. 지상에서 평면적인 사랑의 이상을 추구했다면, 거기서는 구형체와 같은 사랑의 외곽뿐만 아니라 핵심까지 통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깊고 얕고 높고 낮은 모든 사랑을 투입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대신으로 재창조하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64-326)
그러면 하나님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히 자기도 높임을 받습니다. 제2의 하나님처럼 되니까 모든 영계에 있는 존재들이 높여줘야 됩니다. 그래, 통일교회의 책임자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높은 사람은 높은 범위에 자기를 투입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재창조권을 확장시키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이타주의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떻게 이상적으로 실현되느냐 하는 것이 쏙 안 들어왔거든요. 이런 것을 설명해 줘야 됩니다. 신이 없다고 하게 되면 사랑의 원동력을 보급받을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공동소유를 중심삼고 나왔지만, 어째서 공유가 개인소유보다 못하냐? 이게 문제입니다. 공유의 소유권을 가진 공산당이 개인을 당의 이익보다 더 중요시해야 됩니다. 그러면 됩니다. 당 자체가 바라는 이익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 이상으로 개인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당의 소유인 동시에 보다 높은 개인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념이 안 서 있습니다. 언제나 개인은 당을 위해야만 된다고 하지 당이 개인을 위한다는 개념은 없습니다. 그게 사탄이에요, 사탄. 독재체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을 중심삼은 당 절대주의이지 당이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는 주의는 없습니다. 그게 사탄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을 지옥으로 끌고 가자는 것입니다. 개인이 이상적인 수수작용의 상대기반을 갖지 못하니까 전부 다 무가치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까 지옥밖에 갈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개인이 당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반면에 개인의 행복을 절대 지지해야 되는데, 그러한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도 어느 기반만 잡으면 “너희들이 전부 다 중앙을 위해야지 중앙에서는 너희를 위하지 않아” 하는 게 아니라구요. 전체가 중앙을 위하는 것보다도 중앙이 전체를 더 위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인데, 하나님은 더 투입하려고 그러신다구요. 그렇게 더 투입하려고 하는 데서부터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이상적이고, 그것은 영원히 존속합니다.
선생님의 생활 자체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와 앉아 있으면, 내가 공적인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버리고 안 가려고 그런다구요. 내 자신을 희생시키려고 생각합니다. 세상 같으면 “아이구! 너희들, 다 가라! 이제, 나 바쁘다” 할 텐데, 선생님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활적인 내용이 다 다릅니다.
공산당의 이론은 모순적인 것입니다. 노동자와 농민들을 중심삼고 독재정권을 이루어야 된다는 그것이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그런 논리는 이상적인 논리가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상은 주고받아야 되는데 혼자서 이상을 실현해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최고의 이상적인 주체이니까 그 자신으로만 계셔도 좋았을 것 아니에요? 그렇지만 피조세계를 만드신 것은 사랑의 상대권을 추구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의 논리를 창조의 기원에서부터 세워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심정권을 중심삼고 전부 다 연결되어야 합니다.
물질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당이 가지려고 하지 개인한테 안 주려고 합니다. 소유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됩니다. 사랑이 아니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이든지 좋은 것을 아들딸한테 주려고 하지, 그러한 사랑이 아닌 소유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자기의 것을 다른 사람한테 주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 요즘의 부모들이 자식을 몰라보잖아요. 개인주의를 중심삼고 사탄 편에 전부 다 걸려든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사랑의 이상권이 다 파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소유욕은 물질이 아닙니다. 이상입니다. 그 이상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습니다. 내 생명까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개인주의 관념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희생한다 이거예요. 사랑의 본질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자기 아내나 아들딸을 위해서 재산을 팔고 다 그러면서 왜 그래야 되는지를 모릅니다. 왜 그래야 돼요? 그 아내나 아들딸이 죽게 되면 다 없어지더라도 그렇게 한다 이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거기에는 논리적인 해설방법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개인주의를 중심삼고 나오다 보니까 모든 공적인 일이나 사랑을 중심삼고 희생하려는 데 담이 다 막혀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몰라보고, 남편이 아내를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는 것입니다. 현실문제를 중심삼고 이상적인 내용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말이에요. 전부 다 그것을 있으나 마나 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으니까 소유욕을 중심삼고 전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164-327)
가치관의 통일은 어떻게 하느냐
‘가치관’ 하게 될 때, 그 가치관의 통일이 어떻게 되느냐? 손이면 손이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만지고, 좋은 것을 만들고, 좋은 것을 하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손은 손대로 손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손은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 나쁜 가치관은 안 가지려고 합니다. 손 자체도 감촉이 나쁘면 싫어합니다.
그 감촉이 좋을 수 있고, 또 팔이 보다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자극이 될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한 관이 딱 서 있습니다. 모든 것은 좋은 면을 중심삼고 움직인다는 관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 가치관이라는 것이 나쁜 것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보다 좋을 수 있는 것을 바라보는 데에서 가치관이 설정됩니다.
우리의 손, 발, 눈, 코, 귀 등이 전부 다 선을 중심삼고 향진할 수 있는 기준에서 가치관을 세우려고 하지 내려간다면 다 싫어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냄새도 나쁘면 코를 막잖아요. 무엇이든지 보기 싫으면 얼굴을 돌리지요? 그것은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설정될 수 있는 기반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은 보다 선할 수 있는 기준에서 연결된다고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통일되느냐? 가치관의 통일은 어떻게 되느냐? 모든 존재들이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의 공통분모가 무엇이냐? 생명이냐?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공통분모가 사랑이었다 이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할 수 있다는 논리는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생명의 힘 자체를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생명의 힘은 쓰면 쓸수록 소모되고 피곤해지지만, 사랑은 하면 할수록 피곤하지 않습니다. 밤을 세우더라도 피곤을 초월해서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명력으로 미칠 수 없는 힘을 가진 게 뭐냐? 그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가치관의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사회의 가치관이라고 할 때 종교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불교면 불교의 가치관, 기독교면 기독교의 가치관, 유교면 유교의 가치관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떻게 통일되느냐 이거예요. 불교면 불교 모체 이상의 힘, 불교에서 바라는 목적 이상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면 기독교가 출발하던 모체 이상의 힘, 또 기독교의 목적이 이루어질 그때의 힘보다 더 큰 힘이 있다면 기독교 자체가 기꺼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됩니다.
그러면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가 기꺼이 하나될 수 있는 그게 뭐냐? 그것은 우주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됩니다. 그 우주애라는 것이 뭐냐 하면 작용해 가지고 소모되는 것이 아니고 작용을 하면 할수록 확대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선을 추구해 나가는 존재들은 도약하기를 바라고 확장되기를 바라는데 그 힘이 사랑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분모로 해 가지고 통일될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가치관을 통일하자고 하면 불교면 불교대로 통일하려고 하고, 유교는 유교대로 “우리가 중심이 되는 거야. 우리를 중심삼고 하나되자”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랑으로 투입하라 이거예요. 만교(萬敎)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투입할 수 있어야 됩니다. 모든 종단이 출발하던 이상, 각 종단의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상의 사랑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상만이 통일을 가져 올 수 있지 그 외에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확실히 한계를 지어 줘야 된다구요.
가치관의 통일이 뭐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기가 힘들지요? 가치라는 것은 선을 중심삼고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향진하려는 보다 큰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통해서 보다 큰 가치의 세계를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4대 종교를 통해 가지고 세계를 수습해 나왔습니다. (164-330)
존재세계의 모든 것은 보다 가치 있는 것과 합하려고 해
여기에서 통일적인 선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종교형, 하나의 이상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종교형이 나타나야 됩니다. 그 종교는 모든 종단이 세계의 인류와 신을 위해서 투입한 이상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내용을 가진 종교는 세계의 종교를 통일함과 동시에 하나님까지도 결부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한테 도와 달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목적을 이루어 가지고 대상권에 서면 하나님이 찾아와서 사랑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존재세계의 모든 것은 보다 가치 있는 것과 하나되려고 합니다. 자연세계도 그렇잖아요.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자기와 공통분모가 일치될 수 있는 데에서 자연세계의 원소면 원소들이 합하지 그 공통분모에 위배되면 아무리 하나님이 합치려고 하시더라도 안 합쳐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선한 기준을 중심삼고 가치관을 설정해 놓아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싫으면 절대로 안 합쳐집니다. 사람도 싫은 냄새가 나게 되면 코를 막고 보기 싫은 것이 보이게 되면 눈을 돌립니다. 그러니까 보다 차원 높고 가치 있는 선의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종교도 그 자체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희생하는 단체가 있으면 그 단체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문 선생이 구교와 신교 등 모든 종교를 통해서 추구해 나왔던 것은 무엇이었느냐? 기독교가 그 자체의 교회를 위해서 투입하는 이상으로 우리가 기독교를 위해서 투입하고, 기독교가 사회에 투입하는 이상으로 우리가 사회를 위해서 투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가 기독교 자체를 위하면, 우리는 세계를 위해서 투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를 중심삼고 통일이 돼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자연히 해결됩니다. 그건 뭐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대번에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8개 종단을 통일하려고 돈을 대주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희생시켜 가면서 말이에요. 선생님이 일생 동안 한 일이 뭐냐? 통일교회의 발전을 위했으면 교회를 뭐 영락교회 이상 훌륭하게 다 지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각 도에 훌륭한 돌집을 다 지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이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그 놀음을 한다 이겁니다.
그렇게 선을 중심삼고 볼 때 보다 차원 높은 가치기반을 확대시켜 나오는 활동을 통일교회가 했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되는 기반이 닦아집니다. 내가 미국에서 국가 전체를 움직이는 놀음도 이 원칙이 사실이고 이 정의가 사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에서부터 출발했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앞에서는 손을 드시는 거라구요. 사랑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랑의 공통분모 앞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영원히 분립될 수 없습니다. 그래야 사랑이 아니에요, 그게? 우리 이념을 딱 이렇게 세워 놓으면 만사가 들어맞는 것입니다. (164-333)
사랑의 열매
나무로 보게 될 때, 가지가 나고 잎사귀가 푸르고 모두 크기를 바라는 것은 뭐냐? 꽃을 피우기 위한 것입니다.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열매를 맺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무는 몇 백년이나 몇 천년을 못 살거든요. 그것을 연장시키려니까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그래서 가지도 있고, 잎도 있고, 줄기도 있고, 뿌리도 있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씨에서 씨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는 것이 뭐예요? 사랑이에요, 사랑. 꽃을 피우는 것이 그것 아니에요? 왜 향기가 필요하냐? 상대를 유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향기를 가졌다는 것은 뭐냐 하면 그 자체를 투입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사리사욕은 사탄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타주의는 하나님 편에 속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장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세계에 갈 때 우리는 세상의 것을 다 버리고 오로지 가지고 가는 것은 사랑의 열매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열매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위해서 아담 해와를 만들어 놓으셨거든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만드신 것은 사랑의 열매를 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버리더라도 사랑의 열매를 가지고 저나라에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영원한 대상으로 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는 사랑의 세계이어야 합니다. 전부 다 이론이 맞습니다. 그 사랑의 열매 가운데는 우주를 전부 다 포괄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됩니다. 어떤 나무의 씨라면 그 나무의 뿌리의 소성, 줄기의 소성, 가지의 소성, 잎의 소성, 꽃의 소성, 향기의 소성이 전부 다 있어야 될 것 아니에요? 세포분열이 벌어지잖아요. 그것들이 세포에까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라구요.
세포분열은 씨 자체의 내용이 분열된다고 봐야 됩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손해나는 데서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성상이라고 하는 것이 위대합니다. 요즘에 와 가지고 학자들이 물질에도 영이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다 우리의 원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주가 간단합니다.
전부 다 하나의 분모를 중심삼고 분열되기도 하고 종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보따리에 싸면 하나가 되고 풀어놓으면 수없이 많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꽃들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땅에 저런 꽃의 색깔이 있는 게 아닙니다. 씨에 다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복잡한 요소가 그 열매의 씨 속에 들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64-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