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길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6일)

훈독왕 | 20250316074750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6일

진정한 사랑길 (훈독본)  

날짜 : 1996. 3. 17(일)
장소 : 남미 코리엔테스

 

진정한 사랑길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6일)

 

참부모를 알고 참사랑을 체휼해야

원리말씀을 잘 공부해야 됩니다. 그런데 원리말씀만 가지고는 성약시대에 대한 것을 다 모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해 나온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지식이 없어 가지고는 혼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짓부모로 말미암아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이 시작된 것을 취소시키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의 내용이 어떻게 돼 가지고 가는 길을 어떤 방식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참부모를 알고 참사랑을 체휼해야 됩니다. 

 

신앙길에서는 희열을 느껴야 됩니다. 자기가 신앙길에 있어서 세상에서 느끼지 못한 기쁨,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느끼고, 그 기쁨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희생도 감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고는 희열을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잃어버리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것만 붙들면 모든 것이 절대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병도 낫고 원하는 것이 뜻대로 다 됩니다. 


누구든지 기쁨을 느끼면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또 내가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가지만 그 기쁨을 어떻게 실천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기쁘면 기쁜 자기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만물과 더불어 화동하여 만물의 상대적인 기쁨으로 남겨 놓아야 됩니다. 그것이 취미입니다. 재미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재미있고, 하나님의 뜻길에 있어서 하는 일이 재미가 있어야 됩니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재미가 있고 힘들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아야 됩니다. 생활환경에서 그것을 뿌리박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매일같이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해야 됩니다. 그것이 귀한 것입니다. 감사의 생활, 찬양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햇빛을 받아 가면서 하늘 앞에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냐는 것입니다. 남들은 다 자는데, 자기만이 찬양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위대한 그런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또, 밤이 되면 모든 만물이 쉬는데, 그 쉬는 가운데 자기가 일어나 가지고 하늘을 찬양할 수 있게 될 때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생각해야 될 것은 하나님은 낮을 지배하고 사탄은 밤을 지배하는데, 원래는 하늘이 낮을 지배하는 동시에 밤도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갖고 지배해야 되느냐? 사랑의 마음으로 지배해야 됩니다. 사랑의 마음은 밤낮을 초월합니다. 계절을 초월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 부자지관계의 사랑이라는 것은 계절을 타지 않습니다. 겨울에 자식을 생각하거나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눈물짓는 그 눈물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을 초월합니다. (277-12) 

참사랑은 시대를 초월해

참사랑은 청춘시대, 중년시대, 노년시대를 초월합니다. 그래서 영생할 수 있고, 영원히 기쁘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궤도와 같은 것이 참사랑입니다. 세상에 변동이 오고, 혁명이 벌어지고, 생사지권이 바뀌는 일이 있더라도 사랑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런 심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가야 됩니다. 기도생활이 필요한 것은 기도하는 시간이 그런 환경을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뜻길을 가고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는 감옥이 문제가 아니고 죽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이 참사랑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자기가 혼자 있더라도 자연을 보면 자연이 전부 다 가르쳐 줍니다. 지나가는 새소리도 자연과 어울려서 음악소리와 같이 들리고, 모든 환경적 여건이 나와 공명합니다. 


자신의 아들딸이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눈물짓는 경우도 있지만, 자연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느끼고 눈물지을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뭘 하게 되면 심각히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만큼 어려운 걸 잊어버립니다. 그런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누가 알아주나 몰라주나 개의치 않고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히 옆으로 크고 위로 크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이나 20년뿐만 아니라 일생을 두고 보면 그렇지 못한 사람과 천지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됩니다. 몇 천번 몇 십만번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반복한다고 해서 숨쉬기를 싫어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생활도 반복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근본으로 돼 있습니다. 


밥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농사를 짓든가 무슨 직장을 가는 것도 반복입니다. 매일같이 반복입니다. 그 반복하는 세계에서 커야 됩니다. 그러면서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커야 되는 것입니다. 10년을 지났으면 10년만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10년만큼 커지는 것이고, 일생 동안 정성을 들이면 일생만큼 커집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277-14) 

신앙생활은 하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으면 편안치가 않고, 몸에 지장이 오고, 환경에 지장이 옵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점심때가 되고, 저녁때가 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천년만년 다르지 않습니다. 그 궤도가 틀리게 되면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갑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참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참생명과 참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서 하나님과 같이 언제나 산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기뻐하며 살고, 자기가 오고 가는 생활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대상이니까 자연과 하나되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부모가 나를 길러주는 것은 잠깐입니다. 사회생활을 위해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갖추게 될 때는 부모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자기 독자적으로 가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과 종횡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서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또 가정을 지극히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은 만물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모든 만물의 주체가 되기 위한 생활입니다. 그러한 창조적인 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새로운 것을 가졌으면 나눠주어야 되고, 그렇게 나눠줬으면 또다시 받아야 됩니다. 언제든지 무엇을 받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됩니다. 그것을 받으려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받아 가지고는 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성들인 사람이 무섭습니다. 정성을 무한히 들인 사람은 무한히 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와 같이, 만물과 같이, 인류와 같이, 하늘땅과 같이, 하나님과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바라보는 좋은 오관,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오관을 중심삼은 좋은 몸으로서 같이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그것을 느끼고 살게 되면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자기가 옷 하나 잘 입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냐 이거예요. 나무처럼 푸른빛을 가지고 스스로 자라나는 그 만물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박물관에 가게 되면 골동품들이 있는데, 인간이 쓰다 남은 그런 것들이 비싸다고 하지만 만물은 몇 억만년 된 골동품입니다. 나뭇가지 하나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 스스로 자랑하면서 뭐 어떻다고 하는 그런 것을 보게 된다면 만물들이 웃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는 우주와의 관계를 중심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이 힘든 것입니다. 나라면 나라라든가 역사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277-16) 

물과 공기와 사랑은 수평으로 움직여

선생님의 성격으로 보게 되면 개인적인 개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지만 모든 자연과 더불어 누구보다도 줄 수 있어야 되고 누구보다도 화합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늘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하늘을 몰랐으면 선생님과 같은 성격에 뭐라고 할까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마피아의 장(長)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라고 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성격입니다. 그런 모든 성격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서 수평이 되었습니다. 물도 수평이 되고, 기름도 다 수평이 됩니다. 사랑도 물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기도 수평을 중심삼고 움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 간다고 해서 특별히 거기에 가면 그곳이 제2의 고향입니다. 거기에 나무도 있고, 물도 있고, 태양도 있고, 하늘도 있고, 모든 환경적인 것들이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어디든지 고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정적인 사랑보다도 국가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고, 국가적인 사랑보다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고, 세계적인 사랑보다도 천주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고, 천주적인 사랑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자기의 나라를 중심삼고 3개국을 거치라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의 4개국을 거쳐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사랑이라는 표제가 놀라운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사랑은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의 영적인 오관과 육적인 오관의 모든 세포들이 참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그 참사랑을 중심삼고 4백조나 되는 모든 세포들이 기쁨을 느끼고 희열을 느낍니다. 그러한 희열을 자기 집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어느 세계에 가더라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평준화되는 심정으로 유대관계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연결시켜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세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빼 놓고는 그렇게 우주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편안한 게 좋다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편안한 건 수평적입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어려운 것을 극복하고 나면 입체적으로 됩니다. 수평적인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을 극복하면 극복할수록 점점점 커 갑니다.


그래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꿈이 살아 있습니다. 죽은 꿈이 아니라 산 꿈을 지니고 삽니다. 그러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다 좋고, 그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고,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몸 마음이 부활됩니다. 그렇게 산 꿈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힘밖에 없습니다. (277-18)

사랑의 마음이 앞서야

여러분이 그렇게 살게 되면 맨 발로 가게 될 때 땅이 “여기를 밟아 주소, 여기를 밟아 주소” 합니다. 그렇게 발이 움직일 수 있는 체험을 해야 됩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면 낚시질을 가더라도 오늘 기분이 복잡하면 고기가 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심, 모든 것이 초점이 맞아야 됩니다. 사방이 초점이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후가 맞아야 되고, 물의 속도가 맞아야 되고, 갖춘 기구가 맞아야 되고, 밑감이라든가 모든 것이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위하지 않고는 세상 모든 만물이 진정으로 대해주지 않습니다.


지금 선생님한테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 돈 주소” 하는 기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소” 하는 기도를 절대 안 합니다. 내가 그렇게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할 것이냐 이거예요. 그것은 정성입니다. 


누구든지 사랑의 마음이 앞서야만 경제도 따라오고 모든 축복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나 알아 달라” 하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누구든지 보면 그런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괜히, 그 사람을 아침이나 밤에 만나면 마음이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은 환경에 어울립니다. 그렇게 어울리는 데 있어서 담이 없고 자연스럽습니다. 


여러분이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실 수 있고, 하나님이 동정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실 수 있는 입장에서 효자의 길을 가고, 충신의 길을 가고, 성자의 길을 갈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잊으실 수 없습니다. 충신은 군왕을 밤이나 낮이나 눈물짓게 하고, 효자는 부모를 밤이나 낮이나 눈물짓게 하고, 성자는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을 눈물짓게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있어 가지고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낮은 데서 크게 돼 있습니다. 큰 데서부터 낮은 데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죽는 것입니다. 낮은 데서 커 가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대할 때는 아무리 자기가 높더라도 낮은 데서부터 친구를 삼아 가지고 끌어올려야 됩니다. (277-20) 


신앙길에서는 싫다는 것이 있어서는 안돼

동양 사람이 위대한 것은 뭐냐? 동양 사람들은 지금까지 정신적인 분야에 있어서 종교적으로 훈련을 받은 배경이 있어서 모든 것을 하나님한테 소속된 것으로 생각하고 존중시할 수 있는 관념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 사람들은 산을 존경하고, 큰 나무를 존경하고, 큰 바위를 존경합니다. 자연적인 모든 걸 인격적인 대상으로 섬겨 나왔습니다. 서양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분해하고 파괴시켜 나왔습니다.   


땅 위에 벌레들이 살고 있지만, 조그만 벌레는 큰 벌레한테 먹힙니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하나님한테 먹혀야 됩니다. 하나님의 밥이 되고 하나님의 영양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도 밥을 먹어야지요. 하나님도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먹겠느냐? 인간의 사랑, 당신이 사랑하는 상대의 사랑을 먹고 사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랑을 가지면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잠자지 않아도 고단치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시공을 초월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사랑의 상대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밤을 극복하실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영생의 개념이 나옵니다. 사랑의 힘이 계속되는 한 영생할 수 있습니다. 


모두 다 재미있게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내가 싫은 것이 이렇다” 할 때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받습니다. “아무 것은 좋고, 아무 것은 싫다” 할 때, 그렇게 싫다는 것으로 침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원형이 못 됩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싫다고 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원수입니다. 나를 올가미로 걸어 놓은 것입니다. 신앙길에서는 싫다는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싫다는 그게 원수가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도 말씀을 할 때 제일 귀한 것은 참부모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재림주면 재림주, 사랑이면 사랑, 인간의 가치 문제에 연결시켜서 오목 볼록에 대한 얘기까지 해주는 것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자꾸 하느냐? 이것이 근본이기 때문에 근본을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가지는 필요 없으니까 씨를 주라는 것입니다. (277-22)

진정한 사랑의 길에는 가식이 필요 없어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가 여자를 완성시키고 해방시켜 줍니다. 사랑이 없으면 완성이 없습니다. 그렇게 완성시키고 해방시키는 게 뭐냐 하면 오목 볼록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남자와 여자가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완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이성성상이 되어 가지고 종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완성시키고 하나님을 해방시키는 게 인간입니다. 또, 인간을 완성시키고 해방시키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떨어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길에서는 가식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 옷 벗기 전에 가 가지고 키스하고 다 품어주고 그러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소개가 필요 없고 과정도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나타나는 환경에는 그림자가 없고 시공을 초월하여 자연스럽습니다. 그런 환경이 되면 밝은 해가 난 날과 같이 모든 것이 깊고 넓게 보입니다. 사랑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아침이 되어서 태양 빛이 올라오는데, 그것이 모든 동물들의 생명선입니다. 인간에 대해서 하나님이 태양과 같은 입장에 계시면 그 하나님이 생명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생각하면 찬양하고 싶고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사무쳐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혼자서 은혜스럽게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은혜스러운 생활을 환경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확대되는 환경이 그냥 그대로 천상세계에 자기가 머물 수 있는 계열이 되고, 급이 되고, 위치가 됩니다.

 

원래 하나님은 자연의 아버지도 되고 주인도 되지만 친구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이의 친구도 되고, 청년의 친구도 되고, 중년이나 노년의 친구도 되십니다.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만하더라도 열 식구가 사는 집안이 있다고 할 때 아무리 그 주인이나 주인의 마누라가 훌륭하고 아들딸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주인은 따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라도 자기만 사랑하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게 제1교재입니다. 그래서 새들도 사람의 집을 따라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추울 때는 먹이를 주어야 되고 집을 지어주어야 됩니다.


사실,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지 새들이나 동물들은 전부 다 사람과 가깝습니다. 그것들을 사랑하면 지붕에 와 사는 것이고 헛간에 와 사는 것입니다. 소들과 같이 살고 말들과 같이 살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약할수록 무시하면 멀어집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면 전부 다 가까워집니다. 새 소리를 듣고 자기를 위해서 축하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얼마나 되느냐 이거예요.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고 싶어서 노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고 싶어서 날아가던 새가 나를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렇게 날아오게 되면 잡으려고 합니다. 새와 곤충들이 다 누구 때문에 만들어진 거예요? (277-25)

사랑의 눈을 가지면 친구 아닌 것이 없어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눈을 가지면 친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잔디를 보라구요! 박물관의 골동품은 자라지 못합니다. 박물관의 그림은 세상을 푸르게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잔디는 계절에 따라서 색깔이 달라지고 거기에 순응하면서 자기의 의연한 가치를 그냥 그대로 드러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만 우주와 더불어 본색을 드러내고 스스로 연결돼 가지고 동화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정성을 들이고 땀을 흘리면서 무한한 소망을 갖고 살면 하나님이 찾아와서 내 주체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엇이든지 재미를 붙여야 되고 취미로 생각해야 됩니다. 


취미산업입니다. 모든 것이 취미입니다. 색다른 곳에 가면 산이 다르고, 바위가 다르고, 나무가 다릅니다. 그것이 전부 다 관심사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졌느냐? 하나님, 주인이 그것들을 품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아들딸이 땅 위의 어디에 가든지 살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 몇 대를 살았으면 그곳의 모든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병나면 다른 데 가서 약을 쓰지 않고 그 지방의 약초를 쓰고 그 지방에서 나는 샘물을 먹고 그 지방에서 나는 건강제를 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자기를 위한 사랑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늘도 상대적인 가치로 인정하니 만큼 언제나 그 환경적인 여건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고향이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277-27)*

 

 

 

천일국 훈독경 제8권 16일, 원문 
 
진정한 사랑길 12743
 
날짜 : 1996. 3. 17(일)
장소 : 남미 코리엔테스
 
참부모를 알고 참사랑을 체휼해야
 
남미의 사람들이 힘듭니다. 문화도 다르고 천주교의 신자들도 있기 때문에 길을 잡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원리말씀을 잘 공부해야 됩니다. 그런데 원리말씀만 가지고는 성약시대에 대한 것을 다 모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해 나온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지식이 없어 가지고는 혼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짓부모로 말미암아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이 시작된 것을 취소시키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의 내용이 어떻게 돼 가지고 가는 길을 어떤 방식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참부모를 알고 참사랑을 체휼해야 됩니다.
신앙길에서는 희열을 느껴야 됩니다. 자기가 신앙길에 있어서 세상에서 느끼지 못한 기쁨,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느끼고, 그 기쁨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희생도 감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고는 희열을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잃어버리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것만 붙들면 모든 것이 절대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병도 낫고 원하는 것이 뜻대로 다 됩니다.
누구든지 기쁨을 느끼면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또 내가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가지만 그 기쁨을 어떻게 실천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기쁘면 기쁜 자기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만물과 더불어 화동하여 만물의 상대적인 기쁨으로 남겨 놓아야 됩니다. 그것이 취미입니다. 재미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재미있고, 하나님의 뜻길에 있어서 하는 일이 재미가 있어야 됩니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재미가 있고 힘들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아야 됩니다. 생활환경에서 그것을 뿌리박아야 됩니다.
아침이 올 때 조그만 새가 먼저 신호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점점점 밝아 오면 큰 새들이 지저귀면서 아침을 찬양합니다. 그것이 아침 햇빛을 맞기 위한 기쁨의 환영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그래야 됩니다. 하루 하루에 모든 새들과 만물도 전부 다 햇빛을 바라고 찬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매일같이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해야 됩니다. 그것이 귀한 것입니다. 감사의 생활, 찬양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여기 남미면 남미는 열대지방이니 만큼 여러분도 얼마나 더워요! 다 잠자는데, 잠자는 그 대낮에 햇빛을 받아 가면서 하늘 앞에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냐는 것입니다. 남들은 다 자는데, 자기만이 찬양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위대한 그런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또, 밤이 되면 모든 만물이 쉬는데, 그 쉬는 가운데 자기가 일어나 가지고 하늘을 찬양할 수 있게 될 때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습니다. 주무실 수도 있지만 주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주무시는 하나님 앞에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감사하고 찬양하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도 나를 위해서 미래의 앞날을 가르쳐 주고 지시해 주십니다.
언제나 생각해야 될 것은 하나님은 낮을 지배하고 사탄은 밤을 지배하는데, 원래는 하늘이 낮을 지배하는 동시에 밤도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갖고 지배해야 되느냐? 사랑의 마음으로 지배해야 됩니다. 사랑의 마음은 밤낮을 초월합니다. 계절을 초월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 부자지관계의 사랑이라는 것은 계절을 타지 않습니다. 겨울에 자식을 생각하거나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눈물짓는 그 눈물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을 초월합니다. (277-12)
 
참사랑은 시대를 초월해
 
참사랑은 청춘시대, 중년시대, 노년시대를 초월합니다. 그래서 영생할 수 있고, 영원히 기쁘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궤도와 같은 것이 참사랑입니다. 세상에 변동이 오고, 혁명이 벌어지고, 생사지권이 바뀌는 일이 있더라도 사랑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런 심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가야 됩니다. 기도생활이 필요한 것은 기도하는 시간이 그런 환경을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뜻길을 가고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는 감옥이 문제가 아니고 죽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이 참사랑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자기가 혼자 있더라도 자연을 보면 자연이 전부 다 가르쳐 줍니다. 지나가는 새소리도 자연과 어울려서 음악소리와 같이 들리고, 모든 환경적 여건이 나와 공명합니다.
자신의 아들딸이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눈물짓는 경우도 있지만, 자연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느끼고 눈물지을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뭘 하게 되면 심각히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만큼 어려운 걸 잊어버립니다. 그런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내가 사랑으로 얼마만큼 만물을 대하고 상대적인 세계를 관리할 수 있느냐? 지금 우리로 말하면 지렁이 같은 것을 만지기 싫어하지 않습니다. 지렁이를 만지기 싫어하는 자는 고기를 잡을 자격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토룡탕이라고 해서 먹으니까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낚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낚시하러 가면 춥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심각해야 됩니다.
자기 생명을 위하고 자기 생활이념을 세워 나가는 데 있어서 심각해야 됩니다. 할 수 없이 하는 사람은 전부 다 오(○) 엑스(×)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투입하고 잊어버리면서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되풀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나 몰라주나 개의치 않고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히 옆으로 크고 위로 크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이나 20년뿐만 아니라 일생을 두고 보면 그렇지 못한 사람과 천지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됩니다. 몇 천번 몇 십만번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반복한다고 해서 숨쉬기를 싫어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생활도 반복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근본으로 돼 있습니다.
밥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농사를 짓든가 무슨 직장을 가는 것도 반복입니다. 매일같이 반복입니다. 그 반복하는 세계에서 커야 됩니다. 그러면서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커야 되는 것입니다. 10년을 지났으면 10년만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10년만큼 커지는 것이고, 일생 동안 정성을 들이면 일생만큼 커집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새들이 둥지를 트는 것은 천 년 전이나 만 년 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참새와 미국의 참새가 몇 억년 전에 갈라졌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집을 짓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동물들도 생태환경에 있어서는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유지하느냐 이거예요. 그럴 수 있는 지향성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지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나무가 자라는데 순이 큰다고 하는 사실을 언제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순도 하늘을 중심삼고 큽니다. 사람은 여기에 숨구멍이 있다고 하잖아요. 여기의 숨구멍으로 숨을 쉬면서 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일주의로 하게 된다면 모든 어려운 일이나 기쁜 일들을 스스로 가려갈 수 있습니다. (277-14)
 
신앙생활은 하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으면 편안치가 않고, 몸에 지장이 오고, 환경에 지장이 옵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점심때가 되고, 저녁때가 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천년만년 다르지 않습니다. 그 궤도가 틀리게 되면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갑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참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참생명과 참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서 하나님과 같이 언제나 산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기뻐하며 살고, 자기가 오고 가는 생활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대상이니까 자연과 하나되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부모가 나를 길러주는 것은 잠깐입니다. 사회생활을 위해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갖추게 될 때는 부모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자기 독자적으로 가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과 종횡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서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또 가정을 지극히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은 만물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모든 만물의 주체가 되기 위한 생활입니다. 그러한 창조적인 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새로운 것을 가졌으면 나눠주어야 되고, 그렇게 나눠줬으면 또다시 받아야 됩니다. 언제든지 무엇을 받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됩니다. 그것을 받으려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받아 가지고는 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성들인 사람이 무섭습니다. 정성을 무한히 들인 사람은 무한히 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푸른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섭리와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고기라면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밑감을 좋은 걸 꿰어 넣어야 되고, 든든한 줄이어야 되고, 낚싯대도 좋아야 되는 등 모든 걸 갖추어 가지고 잡아야 됩니다. 줄도 약하고, 밑감도 나쁘고, 낚싯대도 나쁘고, 잡는 기술도 나쁘면 못 잡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도 고기를 잡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내 자신이 낚싯대와 같은 입장에서 좋은 줄을 걸고 좋은 밑감을 걸어서 낚시를 만들어 가지고 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은 낚아지지 않습니다. 균형이 맞고 상대적인 여건이 맞아야 수확이 생기지 상대적인 여건을 맞추지 않으면 수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든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와 같이, 만물과 같이, 인류와 같이, 하늘땅과 같이, 하나님과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바라보는 좋은 오관,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오관을 중심삼은 좋은 몸으로서 같이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그것을 느끼고 살게 되면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자기가 옷 하나 잘 입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냐 이거예요. 나무처럼 푸른빛을 가지고 스스로 자라나는 그 만물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박물관에 가게 되면 골동품들이 있는데, 인간이 쓰다 남은 그런 것들이 비싸다고 하지만 만물은 몇 억만년 된 골동품입니다. 나뭇가지 하나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 스스로 자랑하면서 뭐 어떻다고 하는 그런 것을 보게 된다면 만물들이 웃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는 우주와의 관계를 중심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이 힘든 것입니다. 나라면 나라라든가 역사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자기만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게 세상과 다릅니다. (277-16)
 
물과 공기와 사랑은 수평으로 움직여
 
선생님의 성격으로 보게 되면 개인적인 개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지만 모든 자연과 더불어 누구보다도 줄 수 있어야 되고 누구보다도 화합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늘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하늘을 몰랐으면 선생님과 같은 성격에 뭐라고 할까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마피아의 장(長)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성격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라고 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성격입니다. 그런 모든 성격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서 수평이 되었습니다. 물도 수평이 되고, 기름도 다 수평이 됩니다. 사랑도 물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기도 수평을 중심삼고 움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 간다고 해서 특별히 거기에 가면 그곳이 제2의 고향입니다. 거기에 나무도 있고, 물도 있고, 태양도 있고, 하늘도 있고, 모든 환경적인 것들이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어디든지 고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정적인 사랑보다도 국가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고, 국가적인 사랑보다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고, 세계적인 사랑보다도 천주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고, 천주적인 사랑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자기의 나라를 중심삼고 3개국을 거치라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의 4개국을 거쳐야 됩니다. 아르헨티나에 사는 사람들은 아르헨티나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브라질이면 브라질, 파라과이면 파라과이, 우루과이면 우루과이 등 4개국으로 확대해서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을 확대하면 6대주의 수많은 나라들까지 확대됩니다. 그 수많은 나라들을 생각할 때, 여러분 아르헨티나 국민이 아르헨티나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수많은 나라의 백성들도 그들의 나라를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낚느냐 이거예요. 어떻게 연관짓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더 큰 사랑, 더 맛이 있는 밑감, 더 좋은 것이 아니고는 안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사랑이라는 표제가 놀라운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사랑은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의 영적인 오관과 육적인 오관의 모든 세포들이 참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그 참사랑을 중심삼고 4백조나 되는 모든 세포들이 기쁨을 느끼고 희열을 느낍니다. 그러한 희열을 자기 집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어느 세계에 가더라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평준화되는 심정으로 유대관계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연결시켜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세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빼 놓고는 그렇게 우주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편안한 게 좋다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편안한 건 수평적입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어려운 것을 극복하고 나면 입체적으로 됩니다. 수평적인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을 극복하면 극복할수록 점점점 커 갑니다.
그래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꿈이 살아 있습니다. 죽은 꿈이 아니라 산 꿈을 지니고 삽니다. 그러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다 좋고, 그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고,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몸 마음이 부활됩니다. 그렇게 산 꿈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힘밖에 없습니다. (277-18)
 
사랑의 마음이 앞서야
 
여러분이 그렇게 살게 되면 맨 발로 가게 될 때 땅이 “여기를 밟아 주소, 여기를 밟아 주소” 합니다. 그렇게 발이 움직일 수 있는 체험을 해야 됩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면 낚시질을 가더라도 오늘 기분이 복잡하면 고기가 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심, 모든 것이 초점이 맞아야 됩니다. 사방이 초점이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후가 맞아야 되고, 물의 속도가 맞아야 되고, 갖춘 기구가 맞아야 되고, 밑감이라든가 모든 것이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위하지 않고는 세상 모든 만물이 진정으로 대해주지 않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그렇잖아요. 선생님한테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하나님, 돈 주소” 하는 기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소” 하는 기도를 절대 안 합니다. 내가 그렇게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할 것이냐 이거예요. 그것은 정성입니다.
누구든지 사랑의 마음이 앞서야만 경제도 따라오고 모든 축복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나 알아 달라” 하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누구든지 보면 그런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괜히, 그 사람을 아침이나 밤에 만나면 마음이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은 환경에 어울립니다. 그렇게 어울리는 데 있어서 담이 없고 자연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자연스럽지요? 그렇게 환경이 자연스럽고 어색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실 수 있고, 하나님이 동정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실 수 있는 입장에서 효자의 길을 가고, 충신의 길을 가고, 성자의 길을 갈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잊으실 수 없습니다. 충신은 군왕을 밤이나 낮이나 눈물짓게 하고, 효자는 부모를 밤이나 낮이나 눈물짓게 하고, 성자는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을 눈물짓게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있어 가지고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세상으로 말하면 내가 성공한 사람입니다. 누구한테도 존경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나타날 때 그 기준이 어느 상대의 기준이냐 이거예요. 높은 상대가 아닙니다. 낮은 데서 크게 돼 있습니다. 큰 데서부터 낮은 데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죽는 것입니다. 낮은 데서 커 가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대할 때는 아무리 자기가 높더라도 낮은 데서부터 친구를 삼아 가지고 끌어올려야 됩니다. (277-20)
 
신앙길에서는 싫다는 것이 있어서는 안돼
 
스페니쉬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개인주의가 강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바람으로 그런 것입니다. 서구사회가 앞으로 문제될 것은 물질문명을 중심삼고 발전해 왔기 때문에 세계의 첨단에 섰다고 하는 자부심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이 위대한 것은 뭐냐? 동양 사람들은 지금까지 정신적인 분야에 있어서 종교적으로 훈련을 받은 배경이 있어서 모든 것을 하나님한테 소속된 것으로 생각하고 존중시할 수 있는 관념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 사람들은 산을 존경하고, 큰 나무를 존경하고, 큰 바위를 존경합니다. 자연적인 모든 걸 인격적인 대상으로 섬겨 나왔습니다. 서양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분해하고 파괴시켜 나왔습니다. 천국은 교만한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산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땅 위에 벌레들이 살고 있지만, 조그만 벌레는 큰 벌레한테 먹힙니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하나님한테 먹혀야 됩니다. 하나님의 밥이 되고 하나님의 영양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도 밥을 먹어야지요. 하나님도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먹겠느냐? 인간의 사랑, 당신이 사랑하는 상대의 사랑을 먹고 사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랑을 가지면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잠자지 않아도 고단치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시공을 초월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사랑의 상대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밤을 극복하실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영생의 개념이 나옵니다. 사랑의 힘이 계속되는 한 영생할 수 있습니다.
모두 다 재미있게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내가 싫은 것이 이렇다” 할 때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받습니다. “아무 것은 좋고, 아무 것은 싫다” 할 때, 그렇게 싫다는 것으로 침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원형이 못 됩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싫다고 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원수입니다. 나를 올가미로 걸어 놓은 것입니다. 신앙길에서는 싫다는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싫다는 그게 원수가 됩니다.
서양 사람들은 선생님을 자연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개할 때 뭐라고 할까요? 서론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나 당신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렇게 그림까지 그리면서 좋아했습니다” 하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직격탄입니다. 바로, 붙안고 키스하면서 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도 말씀을 할 때 제일 귀한 것은 참부모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재림주면 재림주, 사랑이면 사랑, 인간의 가치 문제에 연결시켜서 오목 볼록에 대한 얘기까지 해주는 것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자꾸 하느냐? 이것이 근본이기 때문에 근본을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가지는 필요 없으니까 씨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교사상이 있는 사람은 “저런 말은 나중에 하면 좋겠다” 하면서 듣습니다. “왜 선생님이 저런 말을 하나”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찾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는지 모릅니다. 그걸 헤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뿌리입니다. 여러분을 언제 만날지 모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을 전해 놓으면 잊혀지지 않습니다. 완전한 플러스는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그런 개념을 가지고 얘기했으면 그것이 꺼지거나 없어지지 않는 한 그 상대의 세계는 커 갑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은혜를 받은 말씀을 먼저 하잖아요? 보통 은혜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하는 내용도 달라지고, 출발도 달라지고, 과정도 다르고, 목적지도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근본에서부터 시작해서 과정도 관찰해 가면서 끝까지 가야 됩니다. (277-22)
 
진정한 사랑의 길에는 가식이 필요 없어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가 여자를 완성시키고 해방시켜 줍니다. 사랑이 없으면 완성이 없습니다. 그렇게 완성시키고 해방시키는 게 뭐냐 하면 오목 볼록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남자와 여자가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완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이성성상이 되어 가지고 종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완성시키고 하나님을 해방시키는 게 인간입니다. 또, 인간을 완성시키고 해방시키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떨어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길에서는 가식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 옷 벗기 전에 가 가지고 키스하고 다 품어주고 그러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소개가 필요 없고 과정도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나타나는 환경에는 그림자가 없고 시공을 초월하여 자연스럽습니다. 그런 환경이 되면 밝은 해가 난 날과 같이 모든 것이 깊고 넓게 보입니다. 사랑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아침이 되어서 태양 빛이 올라오는데, 그것이 모든 동물들의 생명선입니다. 인간에 대해서 하나님이 태양과 같은 입장에 계시면 그 하나님이 생명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생각하면 찬양하고 싶고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사무쳐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혼자서 은혜스럽게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은혜스러운 생활을 환경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확대되는 환경이 그냥 그대로 천상세계에 자기가 머물 수 있는 계열이 되고, 급이 되고, 위치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많은 일을 했습니다. 손 안 댄 데가 없습니다. 바다에 대해서도 오대양을 거치고, 육지에 대해서도 육대주를 다 거쳤습니다. 바다도 그렇고, 육지도 그렇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자연의 아버지도 되고 주인도 되지만 친구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이의 친구도 되고, 청년의 친구도 되고, 중년이나 노년의 친구도 되십니다.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만하더라도 열 식구가 사는 집안이 있다고 할 때 아무리 그 주인이나 주인의 마누라가 훌륭하고 아들딸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주인은 따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라도 자기만 사랑하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게 제1교재입니다. 그래서 새들도 사람의 집을 따라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추울 때는 먹이를 주어야 되고 집을 지어주어야 됩니다.
사실,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지 새들이나 동물들은 전부 다 사람과 가깝습니다. 그것들을 사랑하면 지붕에 와 사는 것이고 헛간에 와 사는 것입니다. 소들과 같이 살고 말들과 같이 살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약할수록 무시하면 멀어집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면 전부 다 가까워집니다. 새 소리를 듣고 자기를 위해서 축하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얼마나 되느냐 이거예요.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고 싶어서 노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고 싶어서 날아가던 새가 나를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렇게 날아오게 되면 잡으려고 합니다. 새와 곤충들이 다 누구 때문에 만들어진 거예요? (277-25)
 
사랑의 눈을 가지면 친구 아닌 것이 없어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눈을 가지면 친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잔디를 보라구요! 박물관의 골동품은 자라지 못합니다. 박물관의 그림은 세상을 푸르게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잔디는 계절에 따라서 색깔이 달라지고 거기에 순응하면서 자기의 의연한 가치를 그냥 그대로 드러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만 우주와 더불어 본색을 드러내고 스스로 연결돼 가지고 동화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남미에 그런 걸 만들 것입니다. 박물관도 만들고, 동물원도 만들고, 식물원도 만들 것입니다 식물원도 만들고 동물원도 만들면 인간의 이상적인 마을도 만들어야 되고 이상적인 도시도 만들어야 됩니다. 거기에 정성을 들이고 땀을 흘리면서 무한한 소망을 갖고 살면 하나님이 찾아와서 내 주체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엇이든지 재미를 붙여야 되고 취미로 생각해야 됩니다.
취미산업입니다. 모든 것이 취미입니다. 색다른 곳에 가면 산이 다르고, 바위가 다르고, 나무가 다릅니다. 그것이 전부 다 관심사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졌느냐? 하나님, 주인이 그것들을 품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아들딸이 땅 위의 어디에 가든지 살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 몇 대를 살았으면 그곳의 모든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병나면 다른 데 가서 약을 쓰지 않고 그 지방의 약초를 쓰고 그 지방에서 나는 샘물을 먹고 그 지방에서 나는 건강제를 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자기를 위한 사랑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늘도 상대적인 가치로 인정하니 만큼 언제나 그 환경적인 여건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고향이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27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