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사상의 완성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24일)

훈독왕 | 20220428064926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24일

신인사상의 완성 (훈독본) 
-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제17차 정기총회 때 하신 말씀 -
날짜 : 1990. 1. 19(금)
장소 : 한국 국제연수원

 

신인사상의 완성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24일)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신인사상(神人思想)의 완성’입니다. 신과 사람 사상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

하나의 사상이 되려면 체계적인 내용을 가진 관을 갖춰야 됩니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신(神)에 대해서는 대개 관심을 안 가져 왔습니다. 신은 보이지 않으므로 관념이나 생각 가운데 인식을 통해서 인정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장 어렵다면 어려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연역적 방법을 통해 신이 있다고 인정하고, 그걸 중심삼고 모든 것을 관찰해서 풀어 나갑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주는 힘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중심삼고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작용에 의해서 힘이 나오느냐, 힘에 의해서 작용을 하느냐? 이런 문제를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작용에 의해서 힘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작용을 통해서 움직이는데, 그 작용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이 뭐냐? 전기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주체와 대상이 있어 가지고 하나되기 위해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을 하는 데는 왜 직선작용을 하지 않고 회전작용을 하느냐 이거예요. 직선작용에서는 우주의 생성이 불가능합니다. 3점을 필요로 하는 데서부터 모든 평면적 혹은 입체적 입장을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것은 원형적인 순환작용을 합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근본에 들어가서 신이 있다면 신은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격을 갖고 있습니다. 지정의(知情意)를 지닌 가치적 기반 위에 인격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신 자체도 우리 인간과 어떠한 관계가 있다면 반드시 지·정·의의 인격적 신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원인적인 존재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신이 가진 사상과 인간의 사상이 둘이 아니고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 세계의 이상실현이 가능할 것이고, 또 신 자체가 인간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도 완결되는 것입니다. (197-227)

우리는 결과적 존재


그러면 신은 절대자인데, 그 절대자가 절대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절대자인 그 신은 무엇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신의 위치를 결정하려고 하느냐? 


절대적인 신 자체도 절대적으로 굴복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고 할 때는 신 자체도 얼마나 좋을 것이냐 이거예요. 자기의 현재 입장을 고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동해 가면서, 따라가면서, 거기에 화합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동화시킬 수 있는 면이 없다면 하나님 자신이 작용하실 수 없습니다.


무엇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신 자체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그것과 더불어 주고받을 수 있는 데서만이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혼자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 자체가 지극히 기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한테도 참된 사랑이 필요합니다. (197-229)

이렇게 볼 때 신 자신이, 원인적 존재가 절대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인간 자신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작용이나 통합 혹은 융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도 자신이 절대적 주체가 되는 것보다도 신 자신이 절대시할 수 있는 하나의 주체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그것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신 자신도 우리 사람과 마찬가지로 양심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 자신에 있어서 몸과 마음이 무엇에 의해서 하나되느냐? 신 자신의 몸 마음이 완전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절대적인 주체성을 지닌 것입니다. 절대자, 신 되는 그분도 절대시할 수 있는 그런 가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절대적인 하나님의 몸과 마음 자체도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오관을 갖고 있듯이 신도 오관을 갖고 있다면, 그 오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있다고 할 때 신의 눈이 완전히 뜨일 것입니다. 완전히 행복한 눈이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될 때 듣는 것도 최고의 이상적인 것이 될 것이고 냄새를 맡는다든가, 맛을 본다든가, 만지는 촉감이라든가 하는 모든 오관이 이상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신의 오관이 절대적으로 통일될 수 있는 그 기준은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이 있다고 할 때는 신의 눈이 거기에 집중되고 신의 후각, 신의 청각, 신의 미각, 신의 촉각 등 전부가 거기에 집약되는 것입니다. 신 자신도 사랑을 절대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신 자체도 영원히 절대적인 사랑을 모시고 그 사랑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다는 개념이 없을 때는 살래야 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원인적 존재인 신도 결과적 존재인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있는데, 그 몸과 마음의 통일은 참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된 그 기쁨은 우리의 외적 오관의 기쁨을 증가시켜 줄 것입니다. 또, 내적인 오관이 있다면 그 내적인 오관의 기쁨을 충당시켜 주는 요소도 되는 것입니다. (197-231)

하나님의 이상

그러면 신의 이상은 무엇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된 자리, 몸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리, 절대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한테 있어서 그 상대가 바로 인간입니다. 


여기에 미술을 하는 분들이나 혹은 문학작품을 쓰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지만 걸작품을 만들려고 할 때는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을 만든다고 하게 될 때 그 심신 전체를 투입하시지 않았겠어요? 하나님 자신도 최대의 정력을 투입하여 걸작품을 만들어서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피조물을 사랑 때문에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완성을 위한 전개체, 하나의 모체를 완성할 수 있는 성품을 전개시킨 것과 마찬가지의 구성체들이 피조세계입니다. 원소를 중심삼고 화학실에서 연구하는 아무리 훌륭한 교수님이라고 하더라도 원소가 맞지 않는 것은 아무리 힘을 가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하나로 못 만듭니다. 그렇지만 자연적으로 상대가 될 때는 하나되지 말래도 자연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것이 있게 될 때는 완전한 대상물인 상대가 생겨납니다. 그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그런 논리를 찾아내지 않으면 완전한 하나님의 대상적인 존재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주체가 있으면 완전한 대상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볼 때 피조세계는 광물세계, 식물세계, 동물세계 할 것 없이 모두 다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축을 중심삼고 구형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최고의 인간으로부터 급은 낮지만 저 동물의 세계까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남자 여자, 동물세계에서는 수컷 암컷, 식물세계에서는 암술 수술이 있는데 이게 전부 다 상대적인 기준으로 되어진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원인이 그렇지 않고는 결과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주체다” 하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체가 되는 그분이 이 모든 관계의 세계, 피조세계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무엇으로 관리조정하시느냐? 사랑을 가지고 조정하신다 이거예요. (197-232)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기준

하나님이 우리 인간시조를 지으신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의 속성은 어떠한 내용을 갖고 있느냐? 사랑에는 상속권이 있습니다. 사랑관계를 맺으면 남자의 것은 여자의 것이 되고, 여자의 것도 남자의 것입니다. 사랑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것이 자식의 것이 되고, 자식의 것이 부모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말도 사랑을 빼 놓으면 성립이 안 됩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요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기준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할 때 사랑의 문제를 중심삼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는 데는 생명이 따라가기 마련이고, 생명이 가는 데는 핏줄이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핏줄이 연결되면 생명이 약동하기 마련이고, 생명이 약동하는 데는 사랑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의 이상적인 기준은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이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을 일시에 충동시킬 수 있고, 일시에 격동시킬 수 있고, 일시에 최고로 동화시킬 수 있는 힘이 뭐냐? 그건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닙니다. 그것은 참된 사랑의 힘부모의 사랑입니다. (197-234)

참사랑이란

지금까지 신과 인간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현실의 실천장에서 실현됐더라면 신과 대등한 자격을 갖춘 위대한 인물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 세상은 고장난 세상입니다. 

 

고장났지만, 근원적으로 하나가 남은 내용이 뭐냐 하면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인간 세계에 있어서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남아진 최후의 사상입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주고 주고도 잊어버리는 사랑, 하고 하고도 잊어버리는 사랑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자기 전체를 거기에 투입해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힘이 어디에서 왔느냐? 근원적인 내용에 그런 힘이 없다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게 된 동기의 존재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입니다. 투입하고도 또 투입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사춘기 시대에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게 될 때는 자기의 전부를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것입니다. 다 털어 주어도 또 주고 싶은 거예요. 근원적인 사랑이 싹트게 될 때는 그런 작용이 있게 됩니다. 그런 작용이 인간 세상에 뿌리로서 아직까지 꺼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늘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남철같이 방향을 깨우치기 때문에 양심은 언제나 더 선하고, 더 좋고, 더 참된 것을 추구합니다. 본래의 근원적인 그 작용이 끊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작용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참된 사랑의 대상으로서 모든 피조세계를 지으실 때 그 근본적인 정신은 하나님 자신을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시는 것이었습니다. (197-236)

사랑과 생명


그러면 여기서 볼 때 생명이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예요? 근본적으로 가치적인 절대적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생명이 절대적이냐, 사랑이 절대적이냐? 하나님한테 있어서도 절대 복종하고 싶은 것이 최고의 참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영원히 복종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참된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하고 또 하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위하면서 사랑하고도 더 위하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어하는 그런 남편이 참된 남편입니다. 참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엮어진 부부는 생명을 투입할 수 있어야 됩니다. 사랑이 생명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덩치의 남자와 여자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면 자연히 운동이 벌어집니다. 뭐가 운동시켜요? 생명이 운동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운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참된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고도 잊어버릴 수 있고, 할머니도 그럴 수 있고, 남편도 그럴 수 있고, 아내도 그럴 수 있고, 손자도 그럴 수 있고, 전부 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참된 가정입니다. (197-237)


하나님의 사상

그러면 하나님의 사상이 도대체 뭐냐?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혈통의 주체가 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나에게 전수된 그 사랑도 절대적입니다. 나에게 전수된 생명도 단 하나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있는 생명과 혈통은 누구를 닮았느냐? 전권적인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면 인류시조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할 부자지관계의 입장을 왜 상실해 버렸느냐 이거예요. 


창조 자체는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그 사랑 자체는 백 퍼센트, 천 퍼센트 투입돼야 합니다. 지식의 왕으로 계시는 하나님, 이론적인 모든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다 타진할 줄 아시는 그분이 천지창조의 기원에 대해서 인간들이 어떤 논리로 항의하고 반박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던 하나님이 거기에 걸리게 창조하셨겠어요? 지식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은 창조 당시에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걸 완전히 투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 퍼센트 이상을 투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절대자니 너희들은 절대적으로 복종해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사랑의 내용은 완전 투입입니다. 위하는 데서부터 출발했지 위하라고 하는 데서 출발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위하라고 하는 개념을 누가 갖다 주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197-244)

종교는 타락한 인간의 재생창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인간이 고장났기 때문에 재생창(再生廠)에 들어가야 되는데, 종교가 재생창입니다. 그러려면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떡을 만들든지, 돌을 만들든지, 눈을 만들든지, 코를 만들든지 거기에 불평하면 되나요? 전부 다 노(爐)에 들어가 독 안에서 한번 녹아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이 대표적인 인간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재료가 있어요? 세상이 다 “아니다” 하는 것을 “그렇다” 하면서, 이제는 선생님이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와 가지고 문전에서 경배하게끔 됐습니다. 그건 선생님이 하라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주가 시키는 거예요. “네가 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문 총재, 주체 앞에 마이너스의 요소로 화합해라! 그러면 우주가 보호한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급받아 먹고살겠다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급해 주고 사는 것, 그거 얼마나 멋져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보다도 더 낫기를 바라지 못하기를 바라시겠어요? 여러분이 결혼할 때 자기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고 다 그렇잖아요. 또,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물러가는 것이요, 공적으로 사는 사람은 남아집니다. 개인보다도 가정이 더 공적이고, 가정보다도 종족이 더 공적이고, 종족보다도 민족이 더 공적이고, 민족보다도 국가가 더 공적이고,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 천주, 천주보다 하나님,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공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모든 인간법과 천상세계의 법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망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197-255)

타락의 근원

인류역사는 타락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타락의 내용이 바로 사랑을 유린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 우주가 제일 중요시하는 사랑과 생명 그리고 핏줄을 악마가 유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아담 해와를 추방해 버리셨겠어요?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는데 얼마나 중요한 문제면 추방해 버리셨겠느냐 이거예요. 그들의 사랑은 오로지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이어야 했습니다.


아담 해와의 결혼식은 하나님의 결혼식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종(縱)적인 인간의 부모입니다. 하나님이 횡적으로는 다 못 하십니다. 그러니까 종적인 기준으로 연결시킬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종적인 사랑은 최고의 직단거리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건 수직선입니다. 남녀의 참사랑도 수직선밖에 없습니다. 90각도에서 쌍을 이루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구형세계에서 최고의 높은 자리가 어디냐 하면 중심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중심존재가 되고 싶지요? 무엇을 중심삼고 그래요? 구형의 이상권을 중심삼는 것입니다. 이상은 구형을 말합니다. 그것은 천지창조의 본연적인 이상입니다. 그 구심의 중앙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이 맞붙어서, 사랑의 핵이 상대적인 인간과 하나돼서 폭발되어 사랑의 일체성, 종횡의 일체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인간조상의 일치점, 하나님의 핏줄과 인간조상의 핏줄이 결합할 수 있었던 일치점이 그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악마의 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음란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끝날에는 한 여인이 열두 남자 이상을 대하는 것입니다. 또, 한 남자가 열두 여자 이상을 대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로마가 왜 망했는지 알아요? 음란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상을 파괴한 본원지요, 생명을 파괴한 본원지며, 혈통을 유린한 본원지입니다. 마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간부(姦夫)입니다. 타락한 후손인 여러분의 핏줄에는 악마의 핏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악마의 생명과 사랑의 기원을 갖고 있는 것이 타락한 인류입니다. 이걸 어떻게 청산하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가 와야 됩니다. (197-263)

탄이 아버지가 되어 전부 다 더럽혀 놓았으니까 참된 아버지가 와야 됩니다. 이게 메시아 사상입니다. 하나님과 일체 된 남성이 와야 됩니다. 악마의 생명체, 악마의 사랑체를 빼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도 음란으로 망한 것이고, 여러 선진국들도 음란으로 망해 가는 것입니다. (197-265)

6천 년 역사의 숙명적 과업

 더럽힌 혈통을 누가 청산해야 되겠어요? 인생은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행복으로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릇된 사랑의 원칙을 중심삼은 악마의 사랑과 악마의 생명과 악마의 핏줄을 이어받음으로 말미암아 탄식스러운 원한의 구덩이에 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됩니다. 그러려면 잘라 버리고 접붙여야 합니다. 사탄 세계에서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어떠한 효자가 남긴 효도 이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라 이거예요. 성인이 남긴 이상으로 세계를 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못 다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아담의 참사랑, 하나님의 참생명과 아담의 참생명, 하나님의 참된 혈통과 아담의 참된 혈통을 통해서 접붙임으로 다 끝나게 됩니다. 뿌리는 하나님과 아담의 뿌리인데, 여기에 악마의 뿌리를 넣었습니다. 그러니 그걸 잘라 버리고 참부모의 본연적인 참사랑과 참생명 그리고 참혈통을 중심삼은 가지를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본연적인 세계의 기준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가려 갈 수 있는 최후의 인간으로서 ‘신인사상의 완성’ 자리를 무엇으로 가질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러려면 사랑이 있어야 되고, 참된 생명이 더럽혀지면 안됩니다. 만세 인류에 순결한 핏줄을 남겨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수직선으로 통할 수 있는 완성된 개인, 가정, 종족과 일국을 꿈꾸면서 이루어야 됩니다. 만국이 그러한 자리에 서야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합덕시대가 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계에 있어서 “이 우주에 제일 귀한 참된 사랑, 참된 생명, 참된 혈통을 우리가 먼저 가져야 된다. 그것들을 우리가 먼저 갖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다” 할 때는 세계의 사람들이 다 환영합니다. 위하는 사랑을 중심삼고야 하나님도 통일점을 맞추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라와 세계를 살리겠다고 하나되어 위하게 된다면 못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하는 여러분이 되어서 부디 여러분의 천천대 후손들을 중심삼고 찬양받을 수 있는 모습들이 되기를 재삼 부탁하면서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197-265)*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24일, 원문


신인사상의 완성 
-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제17차 정기총회 때 하신 말씀 -
 날짜 : 1990. 1. 19(금)
장소 : 한국 국제연수원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신인사상(神人思想)의 완성’입니다. 신과 사람 사상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

하나의 사상이 되려면 체계적인 내용을 가진 관을 갖춰야 됩니다. 개인의 사상이라든가 민족의 사상이라든가 세계의 사상이라든가 혹은 요즘의 우주사상(宇宙思想)이라든가 하는 말들을 들어 볼 때, 그 개념이 막연하게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개인, 사회, 국가와 세계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체계적인 관련성을 가진 하나의 관을 갖게 될 때 사상이라고 합니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신(神)에 대해서는 대개 관심을 안 가져 왔습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귀납적인 방법을 통해서 원인을 추구하는 학문적 연구를 하기 때문에 신을 인정한다는 것이 지극히 어렵습니다. 연구해 가면 갈수록 그것이 확실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호해진다는 것입니다. 물질계 혹은 실존성을 인정해 가지고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은 보이지 않으므로 관념이나 생각 가운데 인식을 통해서 인정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장 어렵다면 어려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다릅니다. 종교인들은 반대로 연역적 방법을 통해 신이 있다고 인정하고, 그걸 중심삼고 모든 것을 관찰해서 풀어 나갑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주는 힘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중심삼고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작용에 의해서 힘이 나오느냐, 힘에 의해서 작용을 하느냐? 이런 문제를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작용에 의해서 힘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있습니다.
그러면 작용은 혼자 할 수 있느냐? 우주의 모든 존재가 작용을 통해서 움직이는데, 그 작용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관계와 같은 그러한 환경적 여건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이 뭐냐? 일반적으로 잘 아는 말을 빌려 말하자면 전기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주체와 대상이 있어 가지고 하나되기 위해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을 하는 데는 왜 직선작용을 하지 않고 회전작용을 하느냐 이거예요. 직선작용에서는 우주의 생성이 불가능합니다. 3점을 필요로 하는 데서부터 모든 평면적 혹은 입체적 입장을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것은 순환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순환작용을 하는데, 그것이 원형적인 순환작용을 합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작용을 알 수 있습니다. 전기작용을 보면 잘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작용을 하는 데는 반드시 순환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근본에 들어가서 신이 있다면 신은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것이 문제됩니다. 인간은 인격을 갖고 있습니다. 지정의(知情意)를 지닌 가치적 기반 위에 인격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신 자체도 우리 인간과 어떠한 관계가 있다면 반드시 지·정·의의 인격적 신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원인적인 존재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신이 가진 사상과 인간의 사상이 둘이 아니고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 세계의 이상실현이 가능할 것이고, 또 신 자체가 인간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도 완결되는 것입니다. (197-227)

우리는 결과적 존재

이렇게 말하게 된다면, 신이 바라거나 신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인 욕구로 등장하는 경제문제나 지식문제 혹은 명예문제 같은 것들이 아닙니다.
신은 창조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물질을 마음대로 지닐 수 있습니다. 또, 전지전능한 주체이시기 때문에 지적인 모든 요인의 근본이 됩니다. 신은 경제만능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주체이고, 또 지식만능을 가능케도 할 수 있는 주체입니다. 그분에게 있어서는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또, 절대자인 그 신에게 물질의 절대성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면 신은 절대자인데, 그 절대자가 절대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절대자인 그 신은 무엇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신의 위치를 결정하려고 하느냐? 신 자체를 복종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명교수라고 하더라도 천진난만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이 지식을 탐구하는 것을 대하게 될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순진한 본성에 가까운 그런 모습을 보게 될 때는 자기 자체를 투입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다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신 자신도 무엇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위치에 있고 싶으냐? 이런 것이 철학적인 세계에서는 논의의 대상이 못 됩니다. 왜냐하면 철학에서는 신 자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건 종교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말입니다. 오늘날 기성 신앙자들은 “신은 공의의 심판주다” 합니다. 그러면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그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공의의 심판주로서 행사하면서 사는 것이 신이 소원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궁극에 가서 절대적인 신 자체도 절대 굴복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게 되면 얼마나 기쁠 것이냐?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절대적인 신 자체도 절대적으로 굴복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고 할 때는 신 자체도 얼마나 좋을 것이냐 이거예요. 자기의 현재 입장을 고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동해 가면서, 따라가면서, 거기에 화합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동화시킬 수 있는 면이 없다면 하나님 자신이 작용하실 수 없습니다.
무엇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신 자체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그것과 더불어 주고받을 수 있는 데서만이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혼자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 자체가 지극히 기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한테도 참된 사랑이 필요합니다. (197-229)
그러면 신 자신이 우리 인간과 같이 이목구비를 갖춘 그런 분이겠느냐? 그건 우리가 그렇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1의 존재가 아니고 제2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1의 존재는 원인적 존재이고 우리는 결과적 존재인데, 결과적 존재인 우리가 오관을 가졌으니 신 자체도 우리가 측정은 할 수 없지만 오관적 내용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 자신이 절대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원인적 존재가 절대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인간 자신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작용이나 통합 혹은 융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도 자신이 절대적 주체가 되는 것보다도 신 자신이 절대시할 수 있는 하나의 주체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그것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신 자신도 우리 사람과 마찬가지로 양심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 자신에 있어서 몸과 마음이 무엇에 의해서 하나되느냐? 물질이나 돈이 그리워서 하나되느냐? 지식이 그리워서 하나되느냐? 그런 것은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신 자신의 몸 마음이 완전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절대적인 주체성을 지닌 것입니다. 절대자, 신 되는 그분도 절대시할 수 있는 그런 가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절대적인 하나님의 몸과 마음 자체도 거기에 순응할 수 있는 내용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몸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오관을 갖고 있듯이 신도 오관을 갖고 있다면, 그 오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있다고 할 때 신의 눈이 완전히 뜨일 것입니다. 완전히 행복한 눈이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될 때 듣는 것도 최고의 이상적인 것이 될 것이고 냄새를 맡는다든가, 맛을 본다든가, 만지는 촉감이라든가 하는 모든 오관이 이상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신의 오관이 절대적으로 통일될 수 있는 그 기준은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이 있다고 할 때는 신의 눈이 거기에 집중되고 신의 후각, 신의 청각, 신의 미각, 신의 촉각 등 전부가 거기에 집약되는 것입니다. 신 자신도 사랑을 절대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신 자체도 영원히 절대적인 사랑을 모시고 그 사랑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다는 개념이 없을 때는 살래야 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원인적 존재인 신도 결과적 존재인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있는데, 그 몸과 마음의 통일은 참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된 그 기쁨은 우리의 외적 오관의 기쁨을 증가시켜 줄 것입니다. 또, 내적인 오관이 있다면 그 내적인 오관의 기쁨을 충당시켜 주는 요소도 되는 것입니다. (197-231)

하나님의 이상

그러면 신의 이상은 무엇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된 자리, 몸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리, 절대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한테 있어서 그 상대가 바로 인간입니다. 현대 신학사상에 있어서 창조주는 거룩한 것에서부터 출발했고, 피조물은 속된 것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장난으로 지으신 게 아닙니다. 심각하게 자기의 모든 정력을 다 투입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술을 하는 분들이나 혹은 문학작품을 쓰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지만 걸작품을 만들려고 할 때는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합니다. 하나의 공예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심신의 모든 것을 투입하는 법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을 만든다고 하게 될 때 그 심신 전체를 투입하시지 않았겠어요? 누구든지 심신 전체를 투입하지 않고는 사랑의 대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최대의 정력을 투입하여 걸작품을 만들어서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피조물을 왜 지었느냐 할 때 근본에 가서는 사랑 때문에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완성을 위한 전개체, 하나의 모체를 완성할 수 있는 성품을 전개시킨 것과 마찬가지의 구성체들이 피조세계입니다. 광물세계도 그렇잖아요?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이 하나되는 데는 어떠한 원칙이 있습니다. 원소를 중심삼고 화학실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훌륭한 교수님이라고 하더라도 원소가 맞지 않는 것은 아무리 힘을 가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하나로 못 만듭니다. 그렇지만 자연적으로 상대가 될 때는 하나되지 말래도 자연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것이 있게 될 때는 완전한 대상물인 상대가 생겨납니다. 그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그런 논리를 찾아내지 않으면 완전한 하나님의 대상적인 존재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주체가 있으면 완전한 대상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전기에서도 그렇습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생겨나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자연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수가 어떻게 맞느냐 이거예요. 우리는 계산을 안 하지만 천지의 이치에 있어서 자연적으로 맞춰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양심과 몸이 하나된 완전한 남성이 있게 되면 어딘가에 그 상대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와 남자의 비율을 보면 대개 비슷합니다. 이렇게 볼 때 피조세계는 광물세계, 식물세계, 동물세계 할 것 없이 모두 다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축을 중심삼고 구형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세포도 전부 다 세포핵을 중심삼고 부체(副體)들이 운동하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최고의 인간으로부터 급은 낮지만 저 동물의 세계까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차원이 낮은 입장의 모든 원소들도 비록 급은 다르고 표상의 내용은 다를지 모르지만, 전부가 주체와 대상으로서 서로서로 그리워하고 화하려는 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있어서 왜 남자 여자가 생겼느냐? 사람에게 있어서는 남자 여자, 동물세계에서는 수컷 암컷, 식물세계에서는 암술 수술이 있는데 이게 전부 다 상대적인 기준으로 되어진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원인이 그렇지 않고는 결과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주체다” 하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체가 되는 그분이 이 모든 관계의 세계, 피조세계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무엇으로 관리를 하시느냐? 지식을 가지고 관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지식은 다 투입돼 있습니다. 물질의 힘 가지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가지고 이것을 조정하시느냐?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조정하신다 이거예요. (197-232)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기준

하나님이 우리 인간시조를 지으신 것은 장난하기 위해서, 무슨 놀음을 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속성은 어떠한 내용을 갖고 있느냐? 우리 인간 사회에서 보게 된다면 사랑에는 상속권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사랑관계를 맺으면 남자의 것은 여자의 것이 되고, 여자의 것도 남자의 것입니다. 사랑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것이 자식의 것이 되고, 자식의 것이 부모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말도 사랑을 빼 놓으면 성립이 안 됩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요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과 생명을 갈라놓을 수 있느냐? 나 자신을 볼 때, 내게도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이 어디서 왔어?”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와, 근원에서 왔지?” “너 어디서 태어났어?”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지!” “그 어머니 아버지는 무엇에서 태어났어?” “사랑과 생명과 혈통에서 태어났지!” 이런 문제가 중요합니다. 이건 우주의 근본문제입니다.
신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기준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할 때 사랑의 문제를 중심삼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는 데는 생명이 따라가기 마련이고, 생명이 가는 데는 핏줄이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핏줄이 연결되면 생명이 약동하기 마련이고, 생명이 약동하는 데는 사랑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의 이상적인 기준은 뭐냐?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이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그 창조는 무엇을 기반으로 했느냐? 하나님 자신이 사랑의 주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생명의 주체라는 거예요. 그것을 육으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여러분이 영계에 대한 체험이 있으면 알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을 일시에 충동시킬 수 있고, 일시에 격동시킬 수 있고, 일시에 최고로 동화시킬 수 있는 힘이 뭐냐? 그건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닙니다. 그것은 참된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세상은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현세의 그 무엇을 가지고도 수습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고장났습니다. 그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잘못됐지만, 그 잘못된 가운데서도 근원적인 내용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부모의 사랑입니다. (197-234)

참사랑이란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라면, 그 주체가 갖고 있는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과 인간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현실의 실천장에서 실현됐더라면 신과 대등한 자격을 갖춘 위대한 인물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 세상은 고장난 세상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몰랐지만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고장났지만, 근원적으로 하나가 남은 내용이 뭐냐 하면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인간 세계에 있어서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남아진 최후의 사상입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주고 주고도 잊어버리는 사랑, 하고 하고도 잊어버리는 사랑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잖아요?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언제 무엇 무엇을 사다 주었다는 것을 수첩에다 치부(置簿)해 두었다가 총계를 잡아 가지고 자식이 큰 다음에 이자를 붙여서 받겠다고 생각해요? 아닌 것입니다. 자기 전체를 투입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투입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자기 전체를 거기에 투입해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힘이 어디에서 왔느냐? 근원적인 내용에 그런 힘이 없다면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이 1세대만이 아닙니다. 수천 수만 세대의 인류역사를 거쳐오면서도 변치 않는 그러한 사랑의 작용이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 된 동기의 존재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입니다. 그것은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천번 만번 주고도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투입하고도 또 투입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사춘기 시대에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게 될 때는 자기의 전부를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것입니다. 다 털어 주어도 또 주고 싶은 거예요. 근원적인 사랑이 싹트게 될 때는 그런 작용이 있게 됩니다. 그런 작용이 인간 세상에 뿌리로서 아직까지 꺼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늘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남철같이 방향을 깨우치기 때문에 양심은 언제나 더 선하고, 더 좋고, 더 참된 것을 추구합니다. 본래의 근원적인 그 작용이 끊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작용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참된 사랑의 대상으로서 모든 피조세계를 지으실 때 그 근본적인 정신은 하나님 자신을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상적 기원에서부터 피조세계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기도하거나 할 때 “하나님 아버지…” 합니다. 그것이 우리 조상 때부터 믿어 오면서 습관적으로 부른 말이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핏줄이 연결됨과 동시에 생명이 연결되어 있고 사랑이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수천 수만 대가 지나가더라도 부자의 관계에는 혈통이 연결되어 있고, 생명이 연결되어 있고, 사랑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197-236)

사랑과 생명

그러면 여기서 볼 때 생명이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예요? 근본적으로 가치적인 절대적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생명이 절대적이냐, 사랑이 절대적이냐? 하나님한테 있어서도 절대 복종하고 싶은 것이 최고의 참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영원히 복종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스승이란 어떤 사람이냐? 월급 얼마를 더 주겠다고 하는 데 가겠다고 생각하면 가짜입니다. 참된 스승은 자기의 모든 지식을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나한테 신세지고 다 배워 가지고 제자가 됐으니 정초가 되었으면 인사하러 와야지, 왜 안 와” 하면서 알아 달라는 말은 받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스승은 다 주고도 마음이 흡족하지 않아서 또 주고 싶어하는 스승입니다. 연구를 해 가지고 자꾸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의 연구가 끝이 안 날 때는 “내가 주려고 하는 말을 다 했어도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으니까 네가 대신 나의 일을 계속해 가지고 이 깊은 뜻을 위해 노력하는 제자가 되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스승이 참된 스승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사랑, 생명, 혈통과 젊음을 투입할 수 있는 그런 길을 가는 사람이 참된 스승인 것입니다.
참된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하고 또 하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10년을 위해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50년, 70년, 혹은 80년 동안 늙어 죽도록 사랑하고도 잊어버리는 남편입니다. 일생 동안 위하면서 사랑하고도 더 위하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어하는 그런 남편이 참된 남편입니다. 참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엮어진 부부는 생명을 투입할 수 있어야 됩니다. 사랑이 생명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사랑을 연결시키는 게 아닙니다. 생명이 사랑 때문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 어머니의 생명이 합해져 가지고 핏줄을 통해서 내가 태어난 것입니다. 생명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혈통도 하나됩니다. 여러분도 다 그렇잖아요? 부모 중에서 아버지의 핏줄만 이어받았다고 생각을 안 하거든요. 부모의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핏줄만 이어받았느냐 이거예요. 부모의 생명과 사랑도 이어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일시에 동원될 수 있는 것이 뭐냐? 생명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힘있는 남자와 힘있는 여자가 둘이서 “우리가 생명으로서 사랑을 격동시킬 수 있고 핏줄을 이어받을 수 있다” 했을 때, 생명이 거기에 동해요? 거기에는 연결시킬 수 있는 뿌리가 없습니다.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덩치의 남자와 여자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면 자연히 운동이 벌어집니다. 뭐가 운동시켜요? 생명이 운동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운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참된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고도 잊어버릴 수 있고, 할머니도 그럴 수 있고, 남편도 그럴 수 있고, 아내도 그럴 수 있고, 손자도 그럴 수 있고, 전부 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참된 가정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그 ‘가화(家和)’라는 말이 간단하겠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자기 부부, 아들딸 하면 여덟 사람인데 그 여덟 사람이 무엇으로 화하겠어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아내와 남편, 자식도 절대시할 수 있는 중심, 그것을 어길 수 없는 절대적 중심이 뭐냐 이거예요. 할아버지도 움직일 수 있고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는 데 있어서 가화만사성이다 이겁니다. (197-237)

하나님의 사상

그러면 하나님의 사상이 도대체 뭐냐?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혈통의 주체가 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나에게 전수된 그 사랑도 절대적입니다. 나에게 전수된 생명도 단 하나입니다. 누가 침범을 못 합니다. 하나님이 이어 주신 혈통도 단 하나입니다. 우주 전체와 대응해 가지고 대치할 수 있는 이런 놀라운 하나의 가치적 내용을 내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냐 이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안에 있는 생명은 누구를 닮았느냐? 전권적인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혈통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혈통은 하나님의 생명줄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피를 보게 되면 깜짝 놀라지요? 그것은 근본에서 우러나오는 어떠한 원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류시조가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되었느냐?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할 부자지관계의 입장을 왜 상실해 버렸느냐 이거예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참된 사랑이 어디 있느냐? “나에게 있다” 할 자신이 있어요? 나무가 있으면, 그 나무의 잎들은 전부 다 다릅니다. 잎들은 다르지만 그 잎의 세포 하나에 뿌리도 있고, 줄기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걸 갖다 심으면 그냥 그대로 번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이상적인 상대로 지으셨다는데, 어찌하여 그 존재가 이런 모습이 되었느냐? 식물도 세포번식이 가능한데, 하나님이 인간의 참된 진리의 핵을 어디에서라도 번식되고 확대될 수 있는 내용으로 왜 못 지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조 자체는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그 사랑 자체는 백 퍼센트, 천 퍼센트 투입돼야 합니다. 지식의 왕으로 계시는 하나님, 이론적인 모든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다 타진할 줄 아시는 그분이 천지창조의 기원에 대해서 인간들이 어떤 논리로 항의하고 반박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던 하나님이 거기에 걸리게 창조하셨겠어요? 지식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은 창조 당시에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백 퍼센트, 백 이십 퍼센트를 투입하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걸 완전히 투입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으셨다’고 했는데, 그 말은 뼈와 살뿐만 아니라 모든 정수(精髓)를 투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완전히 고기압적인 입장에 서 있다가 완전히 진공상태, 진공도 몇 백도의 진공상태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 상대 앞에 최고의 고기압권으로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순환운동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둘이 순환하는 데는 중앙을 통해서 순환해야 되었습니다. 직선으로 운동했다가는 공존권(共存圈)이라는 것이 없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백 퍼센트 이상을 투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진공상태가 됨으로 말미암아 자연순환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절대자니 너희들은 절대적으로 복종해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사랑의 내용은 완전 투입입니다. 위하는 데서부터 출발했지 위하라고 하는 데서 출발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위하라고 하는 개념을 누가 갖다 주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도 마음을 갖고 있지요? 양심이 있다구요. 여러분의 양심은 불쌍한 사람을 전부 도와주라고 그럽니다. 남한 사람들한테 1억 원씩 나눠줬다고 합시다. 그러면 양심은 남한 사람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까지 나눠주라고 합니다. 본연의 양심은 위대하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양심은 절대 기준에 서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 국민들한테 다 줬으면 “저 북쪽에 있는 중국 사람한테 주어라” 한다는 거예요. 중국의 12억 사람들에게 다 주고 나면, 또 “저 아프리카에서는 1년에 2천만 명이 굶어 죽고 있다” 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루에 6만 명이 죽어 간다구요. 그거 하나님이 보실 때 “너는 잘먹고, 너희들은 죽어라” 하시겠어요? 높은 데 있는 물은 내려가야 됩니다. 많은 데 있는 공기는 희소한 데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균을 취해야 됩니다. 그게 도리가 찾아가는 길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와 같이 평등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197-244)

종교는 타락한 인간의 재생창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인간이 고장났기 때문에 재생창(再生廠)에 들어가야 되는데, 종교가 재생창입니다. 그러려면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떡을 만들든지, 돌을 만들든지, 눈을 만들든지, 코를 만들든지 거기에 불평하면 되나요? 전부 다 노(爐)에 들어가 독 안에서 한번 녹아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이 대표적인 인간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재료가 있어요? 세상이 다 “아니다” 하는 것을 “그렇다” 하면서, 이제는 선생님이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와 가지고 문전에서 경배하게끔 됐습니다. 그건 선생님이 하라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주가 시키는 거예요. “네가 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문 총재, 주체 앞에 마이너스의 요소로 화합해라! 그러면 우주가 보호한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이 나서 아프다는 게 뭐냐? 신경계나 혈관이 잘 주고받아야 되는데, 그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 순환궤도를 갖추게 될 때 우주가 보호하는데, 그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결여되어 있으니까 냅다 미는 거예요. “너는 불합격자니 이 우주의 공존법에 화합할 수 없다” 해서 내모는 힘이 아픔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투약이라는 게 그 길을 열어 줍니다. 그러면 다시 순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작용이 나쁜 게 아닙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상응과 상반의 관계에서 상응과 상반을 반대의 개념으로 보지만, 그게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권을 갖춘 모든 것은 화합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 논리에 의해서 선생님은 어디에 가서 얘기할 때 있는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일은 성사되기 마련입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존속하는 데는 완전한 마이너스는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더욱이나, 사랑의 이상을 갖고 행동하는 데는 백 퍼센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급받아 먹고살겠다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급해 주고 사는 것, 그거 얼마나 멋져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보다도 더 낫기를 바라지 못하기를 바라시겠어요? 여러분이 결혼할 때 자기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고 다 그렇잖아요. 또,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물러가는 것이요, 공적으로 사는 사람은 남아집니다. 개인보다도 가정이 더 공적이고, 가정보다도 종족이 더 공적이고, 종족보다도 민족이 더 공적이고, 민족보다도 국가가 더 공적이고,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 천주, 천주보다 하나님,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공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모든 인간법과 천상세계의 법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망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죽고 사는 것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여기 이 세상보다도 저 영계를 환하게 알기 때문에, 어디에 갈 줄 알고 다 보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일을 해 온 것입니다. (197-255)

타락의 근원

역사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타락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타락의 내용이 바로 사랑을 유린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 우주가 제일 중요시하는 사랑과 생명 그리고 핏줄을 악마가 유린한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후 하체를 왜 가렸어요? 그런 문제를 기독교에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아담 해와를 추방해 버리셨겠어요?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는데 얼마나 중요한 문제면 추방해 버리셨겠느냐 이거예요. 그들의 사랑은 오로지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이어야 했습니다.
아담 해와의 결혼식은 하나님의 결혼식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종(縱)적인 인간의 부모입니다. 종이라는 것은 한 자리, 한 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횡적으로는 다 못 하십니다. 그러니까 종적인 기준으로 연결시킬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종적인 사랑은 최고의 직단거리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건 수직선입니다. 이 수직선을 중심삼고 인간이 장성해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남녀의 참사랑도 수직선밖에 없습니다. 90각도에서 쌍을 이루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구형세계에서 최고의 높은 자리가 어디냐 하면 중심점이라는 것입니다. 표면에서 제일 높은 자리가 어디냐 하면 구심점입니다. 여러분은 다 중심존재가 되고 싶지요? 무엇을 중심삼고 그래요? 구형의 이상권을 중심삼는 것입니다. 이상은 구형을 말합니다. 그것은 천지창조의 본연적인 이상입니다. 그 구심의 중앙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이 맞붙어서, 사랑의 핵이 상대적인 인간과 하나돼서 폭발되어 사랑의 일체성, 종횡의 일체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인간조상의 일치점, 하나님의 핏줄과 인간조상의 핏줄이 결합할 수 있었던 일치점이 그곳이었습니다. 그 점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악마의 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음란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끝날에는 한 여인이 열두 남자 이상을 대하는 것입니다. 또, 한 남자가 열두 여자 이상을 대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중앙에서 방향을 가리켜야 되는데 몇 도 몇 분인지 알지를 못 합니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로마가 왜 망했는지 알아요? 음란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상을 파괴한 본원지요, 생명을 파괴한 본연지며, 혈통을 유린한 본원지입니다. 마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간부(姦夫)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발표한 역사적 선언입니다. 타락한 후손인 여러분의 핏줄에는 악마의 핏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악마의 생명과 사랑의 기원을 갖고 있는 것이 타락한 인류입니다. 이걸 어떻게 청산하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가 와야 됩니다. (197-263)
여러분은 아버지로부터 생명이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잘못 만났습니다. 사탄이 아버지가 되어 전부 다 더럽혀 놓았으니까 참된 아버지가 와야 됩니다. 이게 메시아 사상입니다. 하나님과 일체 된 남성이 와야 됩니다. 악마의 뿌리, 천사장의 뿌리에 연결된 모든 것은 영생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종교를 세워서 그 법(法)을 가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몸을 쳐야 됩니다. 금식하고 봉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몸을 치는 것은 몸을 약하게 만들어서 마음의 명령에 순응할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의 방법은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도를 닦고 정성을 들여서 마음에 힘을 몇 백배 강하게 투입해야 됩니다.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으면서 육적으로 잘살겠다는 것은 가짜들입니다. 몸을 쳐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악마의 피를 빼내야 되는 것입니다. 악마의 생명체, 악마의 사랑체를 빼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던 애인을 빼앗아 가지고 새끼를 쳐 놓은 것을 찾아가 악마 옆에서 사랑하실 수 있겠어요? 이게 공언(空言)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도 음란으로 망한 것이고, 여러 선진국들도 음란으로 망해 가는 것입니다. (197-265)

6천 년 역사의 숙명적 과업

걸 누가 청산해야 돼요? 더럽힌 혈통을 누가 청산해야 되겠어요? 이것이 6천 년 역사의 숙명적 과업입니다. 누가 이 그릇된 혈통을 바로잡아야 돼요? 인생은 본래부터 고해가 아닙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생이 행복으로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릇된 사랑의 원칙을 중심삼은 악마의 사랑과 악마의 생명과 악마의 핏줄을 이어받음으로 말미암아 탄식스러운 원한의 구덩이에 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됩니다. 그러려면 잘라 버리고 접붙여야 합니다. 참감람나무가 되라고 했는데 돌감람나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담의 사랑으로부터 참사랑을 통해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사탄 세계에서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게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지금까지의 애국자들이 남긴 사랑 이상으로 나라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효자가 남긴 효도 이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라 이거예요. 성인이 남긴 이상으로 세계를 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못 다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마의 핏줄로 더럽혀진 흔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 가지고 4대 종교가 통일종교로서 연합되어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종파의 위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는 역사성을 대치할 주체성을 지닐 수 없습니다. 세계가 하나되어야 하는데 싸우면 되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통일종교를 주장하는 것은 위대한 발언입니다. 그래서 이걸 합해야 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합해야 되느냐? 본연의 사랑, 본연의 생명, 본연의 핏줄을 중심삼고 합해야 됩니다.
그거 누구의 힘을 가지고 하느냐? 하나님과 아담의 힘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아담의 참사랑, 하나님의 참생명과 아담의 참생명, 하나님의 참된 혈통과 아담의 참된 혈통을 통해서 접붙임으로 다 끝나게 됩니다. 뿌리는 하나님과 아담의 뿌리인데, 여기에 악마의 뿌리를 넣었습니다. 그러니 그걸 잘라 버리고 참부모의 본연적인 참사랑과 참생명 그리고 참혈통을 중심삼은 가지를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본연적인 세계의 기준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가려 갈 수 있는 최후의 인간으로서 ‘신인사상의 완성’ 자리를 무엇으로 가질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러려면 사랑이 있어야 되고, 참된 생명이 더럽혀지면 안됩니다. 바람 피워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만세 인류에 순결한 핏줄을 남겨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수직선으로 통할 수 있는 완성된 개인, 가정, 종족과 일국을 꿈꾸면서 이루어야 됩니다. 만국이 그러한 자리에 서야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합덕시대가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마음 속에 생활의 중심으로서 하나님, 모든 재창조에 협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서 모실 수 있도록 충고하는 것입니다. 위하는 사랑에 있어서는 통일적 원리가 벌어집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서로 잡으려고 했으면 싸움이 벌어졌겠지만, “내가 하나님을 먼저 가지려고 하는 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요. 내가 가정의 귀한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우리 가정을 위한 것이오” 했으면 화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에 있어서 “이 우주에 제일 귀한 참된 사랑, 참된 생명, 참된 혈통을 우리가 먼저 가져야 된다. 그것들을 우리가 먼저 갖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다” 할 때는 세계의 사람들이 다 환영합니다. 위하는 사랑을 중심삼고야 하나님도 통일점을 맞추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라와 세계를 살리겠다고 하나되어 위하게 된다면 못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하는 여러분이 되어서 부디 여러분의 천천대 후손들을 중심삼고 찬양받을 수 있는 모습들이 되기를 재삼 부탁하면서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197-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