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2권 18일
축복과 영생 (훈독본)
- 4천만 쌍 축복승리환영 및 문선명 선생 말씀훈독대회 말씀 -
날짜 : 1998. 2. 18(수)
장소 : 한국 잠실올림픽체조경기장
영생문제를 알아야 할 이유
왜 지금 세상의 가정들이 깨져 나가고 있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원수가 되기도 하는데, 그거 왜 그래요? 참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영생문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영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이 죄를 지으라고 해도 안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기독교를 믿든 무슨 종교를 믿든 절대로 천국에 못 갑니다. 참사랑은 생명을 투입하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영생문제와 연결이 안 되면 사회혁명도 불가능합니다. 영생문제, 영원한 생명문제라고 하게 될 때는 환경적 여건을 모두 극복할 수 있습니다. 종교가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영생문제의 개념만 딱 확정지어 놓으면, 그것이 사실이라는 주관이 서게 되면 자기 아들딸과 가족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그런 사상계를 포괄해 가지고 환경에서 습관성으로 엮어진 현재의 문화배경이 된 틀거지를 전부 소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게 왜 그러하냐? 영생이라는 개념을 확정지어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도 지금까지 신앙해 나왔더라도 끝날이 되어 환경이 변하면 변할수록 전부 다 휘저어 버리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영생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생명을 내놓고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다 거기에 소속되어 사방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생활방편에 따라서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길이라는 것이 지금 살고 있는 인생살이, 육신생활의 준비가 아니고 영원한 세계의 생활을 위한 준비라는 신념만 가지게 되면 그냥 내버려둬도 됩니다. 사람은 시일이 가면 갈수록, 40이 넘고 50이 넘을수록 죽을 날이 가까워오기 때문에 영생개념을 놓고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희박해지지만 영생개념만 집어넣으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심각해집니다. 사악한 환경, 혼란된 변화가 얼마나 빈번합니까! 그러나 영생개념만 철저하면 빈번히 변하는 환경을 뚫고 넘어갈 수 있고 어떤 곳에서 희비극이 부딪쳐 오더라도 모든 것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참사랑의 파트너로 지으시지 않았어요? 참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냐 하는 것만 느껴지게 되면 이 길을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생활할 때 주력해야 할 것은 어떻게 영생의 개념을 집어넣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집어넣는 데도 이론적으로 그것이 적중하게 들어맞을 때 마음에 꽝 울리고 육신까지 제일 가까운 격위로 하나될 수 있는 사람들은 청소년들입니다.
열 여섯 살 이전에는 타락 전 본성의 기준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때입니다. 열 여섯 살 이전에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이전이니까 본성의 기준이 살아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 시대에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앎으로써 자기하고 하나님과 불가피한 관계를 아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왜 불가피하냐”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영생의 개념을 집어넣어야 됩니다. (290-139)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인간
여러분은 얼마나 살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에서는 “아, 내가 젊었으니까 이제부터 적어도 사십 년, 오십 년은 산다” 하는 그런 욕심을 다 갖고 있지요? 하나님한테 보증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일년 이내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라구요! 그 짧은 기간에 준비를 다 해야 합니다. 그런 관념을 갖고 될 수 있는 대로 짧은 기간에 참되게 준비한다면 그 내용이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사는 동안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소개시키기 위해 24시간 정성들여 봐라 이거예요. 그렇게 살다 죽으면 영원한 생명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몇 살까지 살다 가겠어요? 하늘이 나를 칭찬할 수 있는 뭘 남겨야 하는데 자신 있어요?
일생과 영원의 문제인데, 그 일생을 짧게 잡을수록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사랑하느냐? 개인을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느냐? 그 다음에 가정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씨족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이렇게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씨족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온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교재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전체를 사랑하기 위한 교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건 절대 우리 일생에서 손해를 안 보는 거라구요.
영원한 생명의 세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영원한 사랑과 일치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과 나의 기쁨이 만나 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의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결착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개체가 얼마만큼 전진적 사랑과 생명력을 지니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각의 일체를 통합하여 참사랑과 어느 정도로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인간으로서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이 생명력과 가중된 참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시대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더불어 생활해야 됩니다. 일생이 1백 년 이내의 짧은 생애지만 생애를 한계로 하여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계선을 극복하면 한계로 삼던 이 모든 지구촌의 생활을 넘어 초연한 자리에서 생존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는 엄연히 실재하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며 사는 인류를 동정하고 돕기 위해서는 가상적인 영생론을 주장해야 하고 가상적인 신을 중심삼은 이상국가의 형태를 추리해 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도 종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생문제와 더불어 종교문제를 중심삼고 신(神)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됩니다. (290-142)
영생해야 할 이유
하나님이 사람을 어떠한 존재로 지으셨느냐? 하나님의 절대 유일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참사랑의 대상자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 참사랑의 상대권을 갖추어 남자를 지었고 여자를 지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참사랑에서 나서, 참사랑에서 커 가지고, 참사랑에서 살다가, 참사랑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 주체되시는 그 분이 영원·불변·유일하니까 그 앞의 대상적인 참사랑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영생하는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이론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생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제일 참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과 안팎으로 한 몸이 되어 가지고 자녀의 입장에서 완전히 참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참다운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참된 인생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고 제일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하루 혹은 십 년이나 백 년쯤 같이 지낸 후 집어던지게끔 지으셨겠어요,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으셨겠어요? 영원히 함께 있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으면 그만이면 좋겠어요, 영생해야 되겠어요? 영생해야 됩니다. 왜냐? 사람은 절대자 하나님이 절대적인 참사랑을 중심삼고 좋아하실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생을 바랍니까, 안 바랍니까? 막연하게나마 영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귀한 물건이 있으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자기가 죽게 되면 그것을 자기 후대에게 남기고 싶어합니다. 영원히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생하시는 절대자라면 그분이 사랑하실 수 있는 대상도 영생해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고로 영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인 하나님은 영생하는 가치를 지닌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으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을 닮아 났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우리도 영원한 성품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겠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늙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해야 그 걸작품으로서 존재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290-145)
하나님의 참사랑의 동반자
만약 하나님이 사랑의 이념을 안 세웠으면 고독 단신이요, 희로애락을 느끼실 수 없는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인데 그 사랑을 잃어버리신 하나님은 역사이래 그 누구도 체험할 수 없는 심각하고도 기막힌 자리, 절대적으로 비참한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누가 위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위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꿈꾸시던 참사랑의 파트너를 재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만 우주를 그 파트너를 위해서 화동하게 만드셨습니다.
대기권에 절대 저기압권이 있으면 고기압권이 생겨 가지고 자동적으로 순환운동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십니다. 왜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느냐? 그럼으로 말미암아 순환원리를 통해서 영원한 회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영생논리가 이론적으로 설정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영생의 논리가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참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면 누구를 세우실 것이냐 할 때,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유인최귀(萬物之衆惟人最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주의 참사랑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게 될 때, 그 참사랑의 파트너는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납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적인 산물입니다. 참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의 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거나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에 영생이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계속적인 작용을 이어나가야 됩니다. 영원히 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뭐 예수 믿으면 영생해요? 믿으면 구원받아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으로 볼 때, 참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참사랑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면 영원히 살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 참사랑의 권내에 들어가 있으면 영계나 지상에 살게 될 때 자기가 어디에 가서 살 것인지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양을 다니는 큰배가 파손될 위험이 생기게 될 때는 그 배 안에 살던 쥐들이 전부 닻줄을 타고 육지로 도망간다는 얘기를 들어봤어요? 미물에 지나지 않는 동물도 미래의 자기 생사권을 가려갈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이게 타락 때문입니다. 이 타락의 탈을 어떻게 벗느냐 하는 문제가 곧 악마의 사랑과 악마의 생명과 악마의 핏줄을 어떻게 해탈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해탈이란 말은 완전히 벗어나 자주적인 입장에 선다는 말입니다. (290-150)
영생하려면 참사랑의 권내에서 살아야
영생, 나는 영생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영생과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내가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무엇을 하는 것이 영생을 위한 재료들입니다. 영생을 훈련하고 영생을 위한 재료를 생산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영생과 참사랑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영생을 바라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왜 참사랑은 변하지 않느냐? 참사랑은 모든 생명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그 주위가 전부 다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우주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중심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남아 계시는 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결혼할 때, 결혼상대는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지요?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안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거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도 참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참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신다는 원칙을 놓고 볼 때, 인간의 가치가 최대의 가치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보다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최고의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천상의 높고 귀한 자리에서 이 우주를 바라보고 관리하면서 주도하게 되어 있지 다른 무엇을 바라보고 목이 끌려 다니고 복종하게 돼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지요? 어느 누구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만민 평등입니다. 참사랑의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의 자리, 하늘나라의 보좌에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사랑 때문에 인간이 지어졌다고 할 때 영원하신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 영생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의 참사랑에 일치된 인간도 영생한다는 것은 자연적인 논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하려면 참사랑의 권내에서 살아야 합니다. 왜냐? 창조의 출발, 동기, 과정으로부터 모든 목적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과정을 통해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 마음의 완성이라는 것은 참사랑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한의 원인으로부터 이상의 결실을 맺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위해서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290-157)
참사랑의 자리에 서 있게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참사랑의 센터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왜 문 선생이 이런 것을 강조하느냐? 그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둘째는 영생을 알아야 되고, 셋째는 참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참사랑은 투입입니다.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는 데 영생이 있습니다. 참사랑을 가지지 않고는 영생이 없습니다. 영생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수습하느냐? 첫째는 이타주의요, 둘째는 참사랑, 셋째는 영생입니다. 이것으로 세계가 수습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반대는 이기주의입니다. 사탄 편과 통하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미국에 와서 생명과 재산과 통일교회의 모든 정성을 퍼부었지요? 여기서부터 참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성립 안 되면 영생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악한 생명의 기원은 사탄의 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사랑도 사탄의 사랑입니다. 그 이상 안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했습니다. 이 말은 뭐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라고 한 것은 생명까지 걸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계명입니다.
제2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게 뭐냐? 생명을 걸고 참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 생명을 걸지 않으면 안되느냐? 생명을 걸지 않으면 첫째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고, 둘째는 사탄의 환경을 벗어날 수 없고, 셋째는 사탄의 혈통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입니다. 사탄의 환경은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탄의 혈통은 어쩔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생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야 되느냐? 영계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사후의 세계라고 대개는 말하지만,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왜 사후의 세계가 될 수 없느냐? 참사랑과 관계되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참사랑과 관계되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참사랑의 자리에 서 있게 될 때는 지금 여기가 영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종적인 구형운동을 해야만 상하·전후·좌우가 화합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참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의 이상세계를 논하는 것도 원리적인 관에 일치된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끌어 주시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참사랑의 호흡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주에 박자를 맞추시는데, 참사랑을 중심삼고 우주가 영원히 계속됩니다. 여러분이 참사랑권까지 가야 하나님의 호흡권 내에 들어가서 휙 넘어가는 것입니다. (290-164)
참부모와 참사랑으로 일체가 되면
그러면 참사랑이 뭐냐? 종횡이 90도 각도를 갖추어 가지고 어디든지 각도가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동양에도 맞고, 서양에도 맞고, 남쪽에도 맞고, 북쪽에도 맞을 뿐만 아니라 오색 인종의 문화배경이나 종교배경이 다르더라도 모두 다 같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인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모든 인류는 축복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만, 그 기독교 자체도 축복이라는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로 갈 수 없다구요.
우리는 참사랑의 이상을 찾아가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영계의 대변자로 서기 위해서 참사랑의 이상을 내 몸에 지녀야 됩니다. 그래서 참사랑을 얼마만큼 횡적인 세계에 부식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참사랑의 열매를 맺어서 부부가 영계에 들어가게 될 때 참사랑의 권내에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땅 위에서 껍데기가 전부 다 늙어 가지만 참사랑을 하면 할수록 영인체는 젊어집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이 오래 살면 살수록 내적 인간인 영인체는 원숙한 미남 미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여러분의 발 앞에서부터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물을 사랑함으로써 만물의 요소를 흡수해 가지고 내 몸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제1부모는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이지만, 제2부모는 지구입니다.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땅으로부터 여러분의 육신이 클 수 있게끔 필요한 요소를 공급받습니다. 그러니까 땅이 육신의 제2부모입니다. 그 제2부모를 거쳐서 제3부모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이라는 과정입니다. 제3부모에게로 가는 데는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3부모에게 돌아가려면 본래의 부모였던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야 됩니다.
따라서, 결혼은 왜 하느냐? 하나님의 모양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분으로서 각 일성이 합체화한 일체적인 존재이시고, 그 하나님의 분성적인 인격 자체들이 남녀이기 때문에 그들이 합성일체화하여 씨와 같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본성의 자리에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씨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구든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영생의 방향이 틀어진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축복결혼과 영생은 참부모로부터 시작됩니다. 참부모와 참사랑으로 일체가 되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완성되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완결됩니다. 참부모가 태어난 곳은 인류의 조국이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출발지입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백성들은 훈독회를 통하여 참부모와 초국가적으로 일체를 이루어 이 땅이 만국의 조국이 될지어다! (290-175)*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18일, 원문
축복과 영생
- 4천만 쌍 축복승리환영 및 문선명 선생 말씀훈독대회 말씀 -
날짜 : 1998. 2. 18(수)
장소 : 한국 잠실올림픽체조경기장
영생문제를 알아야 할 이유
세계 인류는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왜 지금 세상의 가정들이 깨져 나가고 있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원수가 되기도 하는데, 그거 왜 그래요? 참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영생문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영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이 죄를 지으라고 해도 안 짓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라고 해도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기독교를 믿든 무슨 종교를 믿든 절대로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에 못 가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생명을 투입하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영생문제와 연결이 안 되면 사회혁명도 불가능합니다. 현재보다 더 피폐하고 몰락된 환경으로 떨어진다면, 누구나 그 자리로 안 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문제, 영원한 생명문제라고 하게 될 때는 환경적 여건을 모두 극복할 수 있습니다. 종교가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영생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영생문제의 개념만 딱 확정지어 놓으면, 그것이 사실이라는 주관이 서게 되면 자기 아들딸과 가족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그런 사상계를 포괄해 가지고 환경에서 습관성으로 엮어진 현재의 문화배경이 된 틀거지를 전부 소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게 왜 그러하냐? 영생이라는 개념을 확정지어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습니다. 기독교도 지금까지 신앙해 나왔더라도 끝날이 되어 환경이 변하면 변할수록 전부 다 휘저어 버리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영생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생명을 내놓고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다 거기에 소속되어 사방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생활방편에 따라서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길이라는 것이 지금 살고 있는 인생살이, 육신생활의 준비가 아니고 영원한 세계의 생활을 위한 준비라는 신념만 가지게 되면 그냥 내버려둬도 됩니다. 사람은 시일이 가면 갈수록, 40이 넘고 50이 넘을수록 죽을 날이 가까워오기 때문에 영생개념을 놓고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희박해지지만 영생개념만 집어넣으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심각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의 이념만이 앞으로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악한 환경, 혼란된 변화가 얼마나 빈번합니까! 그러나 영생개념만 철저하면 빈번히 변하는 환경을 뚫고 넘어갈 수 있고 어떤 곳에서 희비극이 부딪쳐 오더라도 모든 것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참사랑의 파트너로 지으시지 않았어요? 그건 뭐 틀림없다구요.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에 참사랑의 대상을 이루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만이 아니고 실감해야 돼요. 또, 체휼해야 됩니다. 참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냐 하는 것만 느껴지게 되면 이 길을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생활할 때 주력해야 할 것은 어떻게 영생의 개념을 집어넣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집어넣으면 다 끝납니다. 이것을 집어넣는 데도 이론적으로 그것이 적중하게 들어맞을 때 마음에 꽝 울리고 육신까지 제일 가까운 격위로 하나될 수 있는 사람들은 청소년들입니다.
열 여섯 살 이전에는 타락 전 본성의 기준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때입니다. 열 여섯 살 이전에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이전이니까 본성의 기준이 살아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 시대에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앎으로써 자기하고 하나님과 불가피한 관계를 아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왜 불가피하냐”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영생의 개념을 집어넣어야 됩니다. 언제나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290-139)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인간
여러분은 얼마나 살 것 같습니까? 전부 다 “칠 팔십 년은 다 살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그 전에는 죽는다고 생각 안 합니다. 여러분은 욕심쟁이들입니다. 내가 팔십 세에 죽거나 백 세에 가서 죽을 거라고 절대 믿는다고 해도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밥 먹다가 죽을지, 또는 오늘 저녁에 신발을 벗고 들어와서 잠자다가 죽을지 알 수 있어요?
여러분의 생각에서는 “아, 내가 젊었으니까 이제부터 적어도 사십 년, 오십 년은 산다” 하는 그런 욕심을 다 갖고 있지요? 하나님한테 보증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일년 이내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라구요! 그 짧은 기간에 준비를 다 해야 합니다. 그런 관념을 갖고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잡을수록 행복한 것입니다. 짧게 잡을수록 손해를 안 봅니다. 짧은 기간에 참되게 준비한다면 그 내용이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짧은 기간에 하나님을 사랑해 봤느냐? 하나님과 하나돼 가지고 하나님과 사랑을 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다구요. 하나님은 “사랑하라” 하시는 거예요. 인간 세상에 사는 동안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소개시키기 위해 24시간 정성들여 봐라 이거예요. 그렇게 살다 죽으면 영원한 생명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몇 살까지 살다 가겠어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당장에 죽을 자리로 나간다면 어떡하겠어요? 그렇다면 뭘 남겨야 하겠지요. 하늘이 나를 칭찬할 수 있는 뭘 남겨야 하는데 자신 있어요? 자는 시간이 아깝고 먹는 시간이 아깝게 생각된다구요. 걱정할래야 걱정할 새가 없습니다.
일생과 영원의 문제인데, 그 일생을 짧게 잡을수록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개인을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느냐? 그 다음에 가정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씨족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이렇게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씨족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온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교재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전체를 사랑하기 위한 교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건 절대 우리 일생에서 손해를 안 보는 거라구요. 지극히 지혜로운 생각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영원한 사랑과 일치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과 나의 기쁨이 만나 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의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결착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개체가 얼마만큼 전진적 사랑과 생명력을 지니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각의 일체를 통합하여 참사랑과 어느 정도로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인간으로서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이 생명력과 가중된 참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못하다고 할진대는 정지하는 것이 아니면 후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일생만이 아니라 영생합니다. 종교는 지금까지 지구성에서 없어지지 않고 문화배경과 풍습이 다른 모든 환경을 거쳐오면서 세계적인 판도를 확대시켜 나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일생이 문제가 아니라 영생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 시대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더불어 생활해야 됩니다. 일생이 1백 년 이내의 짧은 생애이지만 생애를 한계로 하여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계선을 극복하면 한계로 삼던 이 모든 지구촌의 생활을 넘어 초연한 자리에서 생존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는 엄연히 실재하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며 사는 인류를 동정하고 돕기 위해서는 가상적인 영생론을 주장해야 하고 가상적인 신을 중심삼은 이상국가의 형태를 추리해 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도 종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상적으로 추리된 종교의 이상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누가 만족을 느끼겠습니까? “있다”고 단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있다” 하는 그 정함은 영원 전부터 정해져 있다는 거예요. 근본부터 “그렇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밝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생문제와 더불어 종교문제를 중심삼고 신(神)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됩니다. 이런 제반 문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290-142)
영생해야 할 이유
하나님이 사람을 어떠한 존재로 지으셨느냐? 하나님의 절대 유일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참사랑의 대상자로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요즈음 한 인간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됩니까? 몇 푼이나 돼요? 그런 무가치한 인간이 아니라구요. 하나님 앞에서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 참사랑의 상대권을 갖추어 남자를 지었고 여자를 지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참사랑에서 나서, 참사랑에서 커 가지고, 참사랑에서 살다가, 참사랑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 주체되시는 그 분이 영원·불변·유일하니까 그 앞의 대상적인 참사랑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영생하는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이론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생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제일 참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과 안팎으로 한 몸이 되어 가지고 자녀의 입장에서 완전히 참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참다운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참된 인생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최고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간이 최고의 자리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내 것입니다. 또,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 자신과 하나되니까 우주는 누구의 것이 되는 것입니까? 내 것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고 제일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하루 혹은 십 년이나 백 년쯤 같이 지낸 후 집어던지게끔 지으셨겠어요,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으셨겠어요? 영원히 함께 있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으면 그만이면 좋겠어요, 영생해야 되겠어요? 영생해야 됩니다. 왜냐? 사람은 절대자 하나님이 절대적인 참사랑을 중심삼고 좋아하실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생을 바랍니까, 안 바랍니까? 막연하게나마 영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귀한 물건이 있으면 피난가게 될 때 가져가요, 안 가져가요? 가져갑니다.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하루 이틀 자랑하다가 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죽게 되면 그것을 자기 후대에게 남기고 싶어합니다. 영원히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생하시는 절대자라면 그분이 사랑하실 수 있는 대상도 영생해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고로 영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인 하나님은 영생하는 가치를 지닌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으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을 닮아 났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우리도 영원한 성품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겠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늙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해야 그 걸작품으로서 존재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다 이거예요. 여기서 영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신령 영(靈) 자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때 이 ‘영’ 자를 씁니다. 사람은 영생해야 됩니다. (290-145)
하나님의 참사랑의 동반자
영생의 논리를 어떻게 찾아요?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의 이념을 안 세웠으면 고독 단신이요, 희로애락을 느끼실 수 없는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인데 그 사랑을 잃어버리신 하나님은 역사이래 그 누구도 체험할 수 없는 심각하고도 기막힌 자리, 절대적으로 비참한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누가 위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위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꿈꾸시던 참사랑의 파트너를 재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만 우주를 그 파트너를 위해서 화동하게 만드셨습니다.
대기권에 절대 저기압권이 있으면 고기압권이 생겨 가지고 자동적으로 순환운동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십니다. 왜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느냐? 그럼으로 말미암아 순환원리를 통해서 영원한 회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영생논리가 이론적으로 설정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영생의 논리가 벌어집니다. 누구든지 위하는 데 있어서는 망하지 않습니다. 작은 데서 큰 것으로 성장해 가지고, 그 다음에는 큰 것이 어디로 가느냐 하면 안으로 들어가서 핵이 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참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면 누구를 세우실 것이냐 할 때,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유인최귀(萬物之衆惟人最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주의 참사랑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게 될 때, 그 참사랑의 파트너는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납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적인 산물입니다. 영생은 거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의 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거나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에 영생이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예수 믿으면 영생한다” 합니다. 말은 좋습니다. “그렇다면 영생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면, “영생을 어떻게 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 합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계속적인 작용을 이어나가야 됩니다. 영원히 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영생하느냐 물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뭐 예수 믿으면 영생해요? 믿으면 구원받아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으로 볼 때, 참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참사랑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면 영원히 살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 참사랑의 권내에 들어가 있으면 영계나 지상에 살게 될 때 자기가 어디에 가서 살 것인지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양을 다니는 큰배가 파손될 위험이 생기게 될 때는 그 배 안에 살던 쥐들이 전부 닻줄을 타고 육지로 도망간다는 얘기를 들어봤어요? 미물에 지나지 않는 동물도 미래의 자기 생사권을 가려갈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이게 타락 때문입니다. 이 타락의 탈을 어떻게 벗느냐 하는 문제가 곧 악마의 사랑과 악마의 생명과 악마의 핏줄을 어떻게 해탈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걸 중심삼고 해탈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해탈이란 말은 벗어난다는 것 아니에요? 완전히 벗어나 자주적인 입장에 선다는 말입니다. (290-150)
영생하려면 참사랑의 권내에서 살아야
영생, 나는 영생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영생과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내가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무엇을 하는 것이 영생을 위한 재료들입니다. 영생을 훈련하고 영생을 위한 재료를 생산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영생과 참사랑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영원히 필요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할 수 있습니다. 영생을 바랍니다. 영생을 바라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참사랑입니다.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합니다. 그러면 왜 참사랑은 변하지 않느냐? 참사랑은 모든 생명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참사랑이 왜 변하지 않느냐? 참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그 주위가 전부 다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우주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중심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남아 계시는 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결혼할 때, 결혼상대는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지요?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안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거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도 참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그거 부정할 수 있어요?
절대적인 하나님이 우리 인류의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는 절대적으로 행하지 않으면서 그 아들딸 앞에 절대적으로 행하라고 명령할 수 있어요? 명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참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신다는 원칙을 놓고 볼 때, 인간의 가치가 최대의 가치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보다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최고의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만인 평등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천상의 높고 귀한 자리에서 이 우주를 바라보고 관리하면서 주도하게 되어 있지 다른 무엇을 바라보고 목이 끌려 다니고 복종하게 돼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지요? 해방된 마음입니다. 어느 누구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만민 평등입니다. 참사랑의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의 자리, 하늘나라의 보좌에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사랑 때문에 인간이 지어졌다고 할 때 영원하신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 영생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의 참사랑에 일치된 인간도 영생한다는 것은 자연적인 논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하려면 참사랑의 권내에서 살아야 합니다. 참사랑에 의해서 영생이 가능합니다. 왜냐? 창조의 출발, 동기, 과정으로부터 모든 목적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과정을 통해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 마음의 완성이라는 것은 참사랑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한의 원인으로부터 이상의 결실을 맺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밖에 없다구요.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영존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중심삼고 영존하시는 거예요? 영생은 참사랑에 의해서 연결됩니다. 그래서 영생을 위해서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290-157)
참사랑의 자리에 서 있게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참사랑의 센터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왜 문 선생이 이런 것을 강조하느냐? 그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영원한 세계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영원한 세계를 알면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둘째는 영생을 알아야 되고, 셋째는 참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참사랑은 투입입니다. 백 퍼센트 이상 투입입니다.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는 데 영생이 있습니다. 참사랑을 가지지 않고는 영생이 없습니다. 영생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수습하느냐? 첫째는 이타주의요, 둘째는 참사랑, 셋째는 영생입니다. 이것으로 세계가 수습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반대는 이기주의입니다. 사탄 편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 뭐라구요? 자기의 생명 이상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생명 이상 투입하지 않는 곳에는 참사랑이 없습니다.
레버런 문이 미국에 와서 생명과 재산과 통일교회의 모든 정성을 퍼부었지요? 여기서부터 참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성립 안 되면 영생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느냐? 여러분의 악한 생명의 기원은 사탄의 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사탄의 혈통입니다. 사탄에 속한다구요. 사랑도 사탄의 사랑입니다. 그 이상 안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했습니다. 이 말은 뭐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라고 한 것은 생명까지 걸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계명입니다.
제2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게 뭐냐? 생명을 걸고 참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 생명을 걸지 않으면 안되느냐? 생명을 걸지 않으면 첫째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고, 둘째는 사탄의 환경을 벗어날 수 없고, 셋째는 사탄의 혈통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입니다. 사탄의 환경은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탄의 혈통은 어쩔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생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은 영원히 끝이자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싫지 않도록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본 바탕,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본 바탕이 뭐냐? 그런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이 뭐예요?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가능하냐? 안됩니다. 하나님의 지혜, 전지전능, 모르는 것이 없는 것 가지고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됩니다. 참사랑의 힘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도 “참사랑” 하면 “오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하나님한테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야 되느냐? 영계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사후의 세계라고 대개는 말하지만,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왜 사후의 세계가 될 수 없느냐? 참사랑과 관계되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참사랑과 관계되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참사랑의 자리에 서 있게 될 때는 지금 여기가 영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종적인 구형운동을 해야만 상하·전후·좌우가 화합할 수 있습니다. 종은 종이고, 횡은 횡이 되어 화합이 안 되면 상하·전후·좌우 전체가 화합이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이 안 벌어집니다. 참사랑만이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참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의 이상세계를 논하는 것도 원리적인 관에 일치된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끌어 주시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숨을 쉬신다구요. 참사랑의 호흡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주에 박자를 맞추시는데, 참사랑을 중심삼고 우주가 영원히 계속됩니다. 참사랑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참사랑권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호흡권 내에 들어가서 휙 넘어가는 것입니다. (290-164)
참부모와 참사랑으로 일체가 되면
영계와 육계도 참사랑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과거의 사람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람도 영원성과 동반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이고 우리 인간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욕구의 근본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참사랑입니다. 그것은 데데한 사랑이 아닙니다.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이 뭐냐? 종횡이 90도 각도를 갖추어 가지고 어디든지 각도가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동양에도 맞고, 서양에도 맞고, 남쪽에도 맞고, 북쪽에도 맞을 뿐만 아니라 오색 인종의 문화배경이나 종교배경이 다르더라도 모두 다 같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60억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 축복이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말이고, 이 축복이라는 말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축복결혼행사를 해 나왔습니다.
앞으로 인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모든 인류는 축복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만, 그 기독교 자체도 축복이라는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로 갈 수 없다구요.
이렇게 말하면, 기독교에서는 통일교회 레버런 문은 독선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고 불평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의 말이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결혼은 타락한 인류가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중차대한 문제가 되는 것이 축복결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구원’ 하게 되면 개인구원을 생각합니다. 잘 믿으면, 자기는 천당에 간다고 믿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상을 두고 볼 때, 천국은 혼자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사랑의 이상을 찾아가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영계의 대변자로 서기 위해서 참사랑의 이상을 내 몸에 지녀야 됩니다. 그래서 참사랑을 얼마만큼 횡적인 세계에 부식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참사랑의 열매를 맺어서 부부가 영계에 들어가게 될 때 참사랑의 권내에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땅 위에서 껍데기가 전부 다 늙어 가지만 참사랑을 하면 할수록 영인체는 젊어집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이 오래 살면 살수록 내적 인간인 영인체는 원숙한 미남 미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이라는 껍데기는 옷과 같이 벗어버려야 되겠는데, 이것이 젊어서 달라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까 늙으면 외적인 면인 껍데기는 전부 다 망가지지만, 내적인 알맹이는 단단해 가지고 미래의 상속자가 되고 미인이 되는 것입니다. 가을철의 알 밤송이와 같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여러분의 발 앞에서부터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물을 사랑함으로써 만물의 요소를 흡수해 가지고 내 몸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제1부모는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이지만, 제2부모는 지구입니다.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땅으로부터 여러분의 육신이 클 수 있게끔 필요한 요소를 공급받습니다. 그러니까 땅이 육신의 제2부모입니다. 그 제2부모를 거쳐서 제3부모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이라는 과정입니다. 제3부모에게로 가는 데는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3부모에게 돌아가려면 본래의 부모였던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야 됩니다.
따라서, 결혼은 왜 하느냐? 하나님의 모양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분으로서 각 일성이 합체화한 일체적인 존재이시고, 그 하나님의 분성적인 인격 자체들이 남녀이기 때문에 그들이 합성일체화하여 씨와 같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본성의 자리에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씨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구든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영생의 방향이 틀어진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축복결혼과 영생은 참부모로부터 시작됩니다. 참부모와 참사랑으로 일체가 되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완성되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완결됩니다. 참부모가 태어난 곳은 인류의 조국이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출발지입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백성들은 훈독회를 통하여 참부모와 초국가적으로 일체를 이루어 이 땅이 만국의 조국이 될지어다! (290-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