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8일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훈독본)
- 미국 7대 도시 순회공개강연 말씀 -
날짜 : 1972. 2. 4(금)
장소 : 미국 링컨센터
이상세계는 어디서부터 추구해야 할 것인가
지금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는 누구나 마음으로 하나의 세계가 되었으면, 혹은 이상세계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러한 이상세계, 또는 하나의 세계를 바랄 것이 틀림없습니다.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 계시면 기필코 그러한 세계를 이루어 놓아야 될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 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으면 기필코 이 일만은 성사하지 않으면 안될 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하나의 세계를 바라지만, 이 세계 그냥 그대로는 그 세계를 이룰 수 없다고 다 자인할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민주세계, 공산세계는 공산세계대로 자기가 주장하는 입장에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정입니다. 그러면 민주세계 앞에 공산세계가 합할 수 있느냐, 혹은 공산세계 앞에 민주세계가 합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주세계는 하나의 신을 숭상하는 반면, 공산세계는 신이고 무엇이고 없다고 하면서 물질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공산세계가 물질을 숭상하더라도 신이 있다고 한다면 가망성이 있을는지 모르겠는데 신이 없다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물론자들이 신이 없다고 한다면, 있는 신 앞에 원수가 누구냐 하면 신이 없다고 하는 공산주의자, 즉 유물론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계속되는 한 하나의 세계, 혹은 평화의 이상세계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된 세계가 있기 전에 통일된 나라가 있어야 되고, 통일된 나라가 있기 전에 통일된 종족, 통일된 종족이 있기 전에 통일된 가정, 통일된 가정이 있기 전에 통일된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53-9)
인간은 선의 모체인 동시에 악의 모체
우리 개인은 상반되는 두 가지 목적의 방향을 가진 인간이 되었습니다. 마음은 선한 곳으로 가기를 원하는데 몸뚱이는 그 반대로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틀림없이 마음과 몸이 합해서 된 나인데, 이 둘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 즉 그러한 남자와 여자가 합하면 가정이 됩니다. 그런데 속사람과 겉사람이 있기 때문에 두 부부가 만나면 네 사람의 형이 벌어져 별개의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한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으면 그 여덟 식구는 상반된 열 여섯 식구와 같은 방향을 가진 가정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끼리 상반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씨족이면 씨족,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수백 갈래, 수천 갈래로 갈라지지 아니하고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면 이러한 인간들을 그냥 버려 둘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모르는 역사의 배후에서 활동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반면 우리 인간을 악으로 몰아넣은 사탄이 있다면 그 사탄도 하나님이 끌어가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끌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아무리 반대하는 사탄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탄에게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세워 놓은 원칙을 반대하고 나설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옳은 것은 하나님이 관리하는 것이요, 나쁜 것은 사탄이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의 결과가 우리 개인에게부터 미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악의 모체가 될 수도 있고 선의 모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선의 출발지가 되는 동시에 악의 출발지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높아지는 것은 좋은 것을 상징하고 내려가는 것은 나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람 가운데는 높아지고자 하는 부분과 낮아지고자 하는 두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양심작용입니다. 낮아지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양심이고 뭐고 내 멋대로 하면 되지!” 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고 양심의 고통을 안 받는 장사나 위인은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의 초소고 우리의 몸뚱이는 사탄의 초소이며, 양심은 천국의 기원이고 몸뚱이는 지옥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악의 본질을 보게 될 때, 선은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요, 악은 전체고 무엇이고 없다고 하며 자기 개인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자기를 위하는 사적인 면과 남을 위하는 공적인 면을 중심삼고 싸움으로 엮어져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볼 때는 이 몸뚱이를 중심삼은 악의 근거를 파탄시키고 뿌리를 빼 버리는 것이 절대적인 요구입니다. 그 반대로 양심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무자비하게 파탄시키려고 하는 것이 사탄을 중심삼은 악의 요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면서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양심을 위주한 하나님의 편과 몸뚱이를 위주한, 하나님은 없다고 하면서 그저 먹고 보자는 물질을 위주한 악의 편이 대립하여 싸우는 것으로 보아 이 세상 인류는 이렇게 유물주의와 유심주의로 나누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이러한 결과의 세계는 올 수 없습니다. 악은 질투, 분열, 투쟁을 강조해 결국 자멸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이상이니 통일이니 하는 것이 어디서 벌어져야 되느냐? 결국은 세계보다도 근본에 들어가서는 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통일의 세계고 이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도 그것을 바라야 할 것인데, 인간이 그렇게 못 되어 있으니 인간을 대해서 가르쳐 주는 교리나 방법이 있으면 통일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53-10)
종교의 가르침
여러분, 그 방법을 알고 싶습니까? 첫째는 양심 앞에 반대되는 물건을 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신 쳐 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칠 수 있다면 사탄도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중간에 사람을 놓고 빼앗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르침은 양심을 중심삼고 몸뚱이가 싫어하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의 가르침은 “몸뚱이를 쳐라! 몸뚱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라!”고 가르칩니다. 불교도 고행을 중요한 가르침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희생을 모토(motto)로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실천하는 것은 인간에게 지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냥 그대로 놔두고 하나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의 힘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몸뚱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뚱이를 위하는 악편을 미워하고 그것을 청산지을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그 사람은 하늘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은 몸뚱이가 원하는 것을 부정하고, 그 반면에 정성을 들이게 해서 하나님의 힘을 받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러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정, 종족, 민족과 나라를 바라 나온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고 이스라엘 나라였던 것입니다. 즉, 선민이었습니다. 역사상에 선민이라는 말, 택한 나라라는 말이 있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대로 몸과 마음이 개인적으로 완전히 하나되고, 가정적으로 완전히 하나되고, 종족적으로 완전히 하나되고, 민족적으로 완전히 하나되어 세계까지 완전히 하나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대표자를 보내 주기로 이스라엘 선민 앞에 약속하신 것이 메시아였습니다. (53-13)
이상의 원형으로 오셨던 예수님
하나님의 섭리는 한 민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세계를 구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를 보낸 목적이었습니다.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이 바라던 것과 하나님의 섭리방향이 일치가 되어야 했는데 엇갈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계의 통일을 위하여 가정적인 패턴을 만들어야 했고 종족, 민족, 국가와 세계적인 패턴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을 못 만들고 간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의 모형으로 예수님을 보냈지만,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수천 년 동안 준비하신 나라와 터전이 사탄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난 후에 하나님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개인의 터전, 가정의 터전, 종족의 터전, 혹은 나라의 터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없었습니다. 그것을 인계받은 것이 기독교이니, 이 기독교가 제2이스라엘로서 그 사명을 이어받아 영계만 위주한 나라를 찾기 위한 운동을 지금까지 해 나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3-14)
민주세계와 기독교계의 여러 가지 문제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나라다.” 하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래도 나라와 교회를 가지고 오실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했지만 지금의 기독교는 나라를 준비하지 않고 영적으로만 바라고 있으니, 오실 주님을 영적인 만왕의 왕으로 고대하는 입장에 있으니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정성을 들이는 이 나라, 우리 가정이 정성을 들이는 이 나라를 받으소서!” 할 수 있는 터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과 의논을 했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자기 몸뚱이 전부를 바치면서 하나님과 의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목사 혹은 주교들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심각한 때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을 중심삼은 사상이 세계를 제패하기 위한 꿈을 꾸면서 꼭대기부터 밑창까지 통일된 사상을 가지고 민주세계에 대비하고 나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국의 교단 중에 “나는 미국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땅을 가졌다.”고 자랑할 수 있는 교단이 있습니까? 그 교단에 속해서 “내 집과 내 살림살이 전체는 하나님의 것이요, 내 아들딸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고 주장할 수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까? 하나의 나라를 중심삼은 터전이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문제는 큰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것과 같이 주님이 공중으로 재림해 가지고 통일된 개인, 가정, 종족, 민족과 세계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이룰 수 있는 목적지는 공중이 아니라 땅, 이 지상, 이 세계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몸 마음이 완전히 통일된 남성으로서 통일된 여성을 맞아 통일된 가정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통일된 나라와 세계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 중에 “내가 신부가 되어 주님이 원하는 가정을 이루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로 올지도, 어떻게 올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구름 타고 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바라는 하나의 가정을 찾기 위해서 오십니다. 그 가정을 찾기 위해서는 그 가정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가정을 위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을 위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을 위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이룰 수 있는 패턴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제3이스라엘 나라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현재의 기독교가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53-16)
기독교 사상은 봉사와 희생의 사상
여기서 다시 돌이켜 개인이 영원히 남아지기 위한 길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개인으로서 세상에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높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높임을 받으려면 희생을 해야 됩니다. 열 명의 친구가 있으면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오랫동안 희생하는 사람은 그 열 명의 친구 앞에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친구까지도 그와 하나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너희들은 나를 위하라. 나를 위하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친구들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외톨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자기도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선과 악의 구별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큰 무대를 위해서, 공적인 큰 일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은 망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역사적인 성현들입니다.
그러면 남을 위해 희생하고 나면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자연히 그를 중심으로 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자기를 위해주는 사람에게 지배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도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악의 전법은 남을 희생시켜서 자기가 출세하려는 전법이요, 하나님의 전법은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되는 전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선을 주장하고 나왔던 사람들이 그 시대에는 환영을 못 받고 희생을 당했지만,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간 사람들은 역사가 지나간 이후에 그 이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사상은 무엇이냐? 봉사의 사상이요, 희생의 사상인 것입니다. 만일 미국의 어떠한 기독교단이 활동하는 모든 목적을 미국을 구하는 데 두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각오하고 나선다면 하나님은 협조할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을 구해서 기독교화한 국가로 만들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미국 국민을 희생시킬 수 있는 기독교가 되면 기독교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종교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에 있어서는 미국보다는 세계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구하기 위해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할 때는 미국을 내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53-17)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신 이유
미국 국민 여러분, 지금 미국에 “우리나라의 사상적 전통은 이렇다.” 할 수 있는 전통이 있다고 봅니까? 미국을 개척한 사람들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퓨리턴(Puritan)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갈 수 있는 길을 국가가 막았기 때문에 그러한 국가를 뒤로 두고 신대륙 미국 땅을 찾아온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때 소수의 미국 국민들은 현지에 있던 인디언들과 싸우기 위해서 생명을 내맡기고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숭상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싸워 나왔던 그 사상이 미국의 건국사상이 된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를 먼저 세우고 학교를 세운 다음에야 자기의 집을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반대받던 환경에서 끌어내어 이 땅에서 보호를 해 가지고 2백 년도 못 되는 기간에 세계적인 나라를 창건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하려고 그들을 축복했겠습니까? 미국에 사는 여러분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 축복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세계를 구하기 위한 대표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축복했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 와서 아시아의 사람들은 전부 다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공산세계의 팽창을 저지하고 공산세계를 막아서 하늘편을 옹호할 수 있는 나라가 아시아에 있는 국가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시아에 있는 국가들은 다른 국가가 그렇게 해줄 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에 원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은 역사시대에 없었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옳은 일을 하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결판을 봐야 됩니다. 좋은 일이라면, 이것은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 남을 위해서 도와준다는 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축복하고 칭찬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2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뒤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미국 자신을 찾으려고 돌아섰지만 세계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초월해야
20세기 후반기에 있어서 세계적인 주도국가로서 책임을 졌던 미국을 자랑하지 말고 미국 나라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미국 국민이 자랑할 수 있는 사상, 30세기나 40세기에 가서도 그 사상이 아니면 안된다고 할 수 있는 사상을 갖는다면 미국 국민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국민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무슨 사명을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를 모시고 초국가적인 운동을 세계적으로 준비해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소망의 천국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 일한다는 사상을 빼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의 작전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요구하는 것이거늘 그러한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편성해서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의 터전을 만들어 드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을 가지고 앞으로 올 메시아를 중심삼고 통일된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 누가 선두에 서야 되느냐? 믿지 않는 사람이냐, 믿는 사람이냐? 종교를 가진 사람이냐, 안 가진 사람이냐 묻게 될 때 그것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요, 종교인들이 규합해서 선두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을 지금 세계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 교파, 내 교파를 중심삼고 하나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모토(motto) 밑에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을 함으로써 헤게모니(hegemonie)를 쥐겠다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자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수단 방법이나 금력, 권력, 혹은 지식을 동원해 가지고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만민들이 자주적으로 추대해서 중심으로 세울 수 있는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면 세계를 구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선 이 사람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에는 수많은 핍박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기독교를 위하고 기독교의 갈 길을 제시하겠다는데 기독교의 반대를 받았고, 나라의 갈 길을 제시하겠다는데 나라의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도 앞으로 비판받을 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을 생각해 봅시다. 미국이 세계를 위해서 원조하는 길로 일방적으로 나갔으면 미국은 언제나 세계가 추앙하는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미국 국민을 넘어서, 미국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을 했더라면 미국은 오늘날 이런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재의 미국은 세계보다도 미국을 더 중요시하고, 세계 인류보다도 미국 백성을 더 사랑하자는 입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견해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동원해서 세계를 살리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을 넘어서 세계를 사랑할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한 것인데 방향이 엇갈렸기 때문에 민주세계도 이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53-22)
최후에 남아질 사상
그러면 이제 최후에 남아질 사상이 무엇이냐? 결론을 지읍시다. 세계를 위해서는 자기 나라나 백성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운동,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운동만이 최후에 남을 수 있는 주의가 될 것이고 사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넘어설 수 있는 초민족적인 운동을 세계적으로 제시하고 초민족적으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 혹은 세계인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자유롭게 갈 수 있게끔 어떻게 모색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주님이 오신다면 한 나라를 구하려고 오지 않습니다. 세계를 구하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가까워 오면 끝날이기 때문에 국가를 넘어서 더 사랑할 수 있는 세계를 발견하고, 국가를 넘어서 하나님의 사람을 더 존중하고, 국가를 넘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을 하지 않고는 세계는 망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세계 인류가 바랄 수 있는 통일의 길이요, 사상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오늘 말씀드린 제목인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믿고 지금 이 땅에서 그런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53-24)
<훈독 소감>
이 말씀은 전 세계 인류를 향하여 미국 7대 도시에 순회강연하신 말씀이네요.
현실 세계는 민주와 공산이 싸우고 있는 모순된 갈등의 세계임을 말씀하시면서 그 모든 갈등의 근본 뿌리는 인간 자체에 있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즉 인간 자체의 몸과 마음의 투쟁에 있음을 천명하시면서 그것을 극복하여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몸의 욕망은 바로 사탄이 심어놓은 것이고 그에 반하여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바르게 이끌어 가실려고 하심을 말씀하십니다.
그 섭리에 따라 하나님은 종교를 통해 마음을 중심하고 이끌어 오셨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강조하신 것도 바로 마음의 욕망을 따라 살도록 인도하셨던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음은 바로 희생 봉사, 즉 위하여 사는 삶으로 인도하니만큼 희생봉사하고 위하여 사는 삶을 통하여 가정을 찾아 세우고 나라와 세계도 찾아 세울 수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누구나 마음의 인도하심, 즉 양심을 좆아 살아야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깨우쳐 주시는 귀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8일 원문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
- 미국 7대 도시 순회공개강연 말씀 -
날짜 : 1972. 2. 4(금)
장소 : 미국 링컨센터
이상세계는 어디서부터 추구해야 할 것인가
지금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는 누구나 마음으로 하나의 세계가 되었으면, 혹은 이상세계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이때는 그럴 수 있는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 우리 인류 앞에 슬픔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러한 이상세계, 또는 하나의 세계를 바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나 인간이나 바라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세계요, 이상세계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 계시면 기필코 그러한 세계를 이루어 놓아야 될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 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으면 기필코 이 일만은 성사하지 않으면 안될 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하나의 세계를 바라지만, 이 세계 그냥 그대로는 그 세계를 이룰 수 없다고 다 자인할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민주세계, 공산세계는 공산세계대로 자기가 주장하는 입장에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정입니다. 그러면 민주세계 앞에 공산세계가 합할 수 있느냐, 혹은 공산세계 앞에 민주세계가 합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주세계는 하나의 신을 숭상하는 반면, 공산세계는 신이고 무엇이고 없다고 하면서 물질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공산세계가 물질을 숭상하더라도 신이 있다고 한다면 가망성이 있을는지 모르겠는데 신이 없다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물론자들이 신이 없다고 한다면, 있는 신 앞에 원수가 누구냐 하면 신이 없다고 하는 공산주의자, 즉 유물론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 것 같습니까? 이 싸움이 계속되는 한 하나의 세계, 혹은 평화의 이상세계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계를 중심삼고 통일을 모색하고 이상세계를 모색하기 전에 한 국가를 중심삼고 우리나라는 통일된 나라요, 이상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까? 그것도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통일된 세계가 있기 전에 통일된 나라가 있어야 되고, 통일된 나라가 있기 전에 통일된 종족, 통일된 종족이 있기 전에 통일된 가정, 통일된 가정이 있기 전에 통일된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통일은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이 세계는 결과의 세계인 고로 그 결과의 세계에서부터 할 것이 아니라 원인이 되는 개개인을 중심삼고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53-9)
인간은 선의 모체인 동시에 악의 모체
우리 개인은 상반되는 두 가지 목적의 방향을 가진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은 선한 곳으로 가기를 원하는데 몸뚱이는 그 반대로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틀림없이 마음과 몸이 합해서 된 나인데, 이 둘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 즉 그러한 남자와 여자가 합하면 가정이 됩니다. 그런데 속사람과 겉사람이 있기 때문에 두 부부가 만나면 네 사람의 형이 벌어져 별개의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한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으면 그 여덟 식구는 상반된 열 여섯 식구와 같은 방향을 가진 가정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끼리 상반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씨족이면 씨족,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수백 갈래, 수천 갈래로 갈라지지 아니하고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면 이러한 인간들을 그냥 버려 둘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모르는 역사의 배후에서 활동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반면 우리 인간을 악으로 몰아넣은 사탄이 있다면 그 사탄도 하나님이 끌어가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끌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아무리 반대하는 사탄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탄에게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세워 놓은 원칙을 반대하고 나설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옳은 것은 하나님이 관리하는 것이요, 나쁜 것은 사탄이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의 결과가 어디에 미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에도 물론 그렇겠지만, 우리 개인에게부터 미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악의 모체가 될 수도 있고 선의 모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선의 출발지가 되는 동시에 악의 출발지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높아지는 것은 좋은 것을 상징하고 내려가는 것은 나쁜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사람들 앞에서 칭찬받을 일이 있을 때는 크게 뽐내고 싶어하지만 자기가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할 때는 선전을 하고 나를 본받으라고 세계적으로 외칠 수 있습니다. 나쁜 일을 할 때는 알려질까 봐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쁜 짓, 즉 도둑질을 한 사람이 당당하게 선전하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숨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 가운데는 높아지고자 하는 부분과 낮아지고자 하는 두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양심작용입니다. 낮아지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양심이고 뭐고 내 멋대로 하면 되지!” 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고 양심의 고통을 안 받는 장사나 위인은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의 초소고 우리의 몸뚱이는 사탄의 초소이며, 양심은 천국의 기원이고 몸뚱이는 지옥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악의 본질을 보게 될 때, 그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은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요, 악은 전체고 무엇이고 없다고 하며 자기 개인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에게는 가정이고, 친척이고, 나라고, 세계고 다 없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선한 사람은 나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동네, 동네보다도 나라, 나라보다도 세계를 위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자기를 위하는 사적인 면과 남을 위하는 공적인 면을 중심삼고 싸움으로 엮어져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볼 때는 이 몸뚱이를 중심삼은 악의 근거를 파탄시키고 뿌리를 빼 버리는 것이 절대적인 요구입니다. 그 반대로 양심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무자비하게 파탄시키려고 하는 것이 사탄을 중심삼은 악의 요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면서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양심을 위주한 하나님의 편과 몸뚱이를 위주한, 하나님은 없다고 하면서 그저 먹고 보자는 물질을 위주한 악의 편이 대립하여 싸우는 것으로 보아 이 세상 인류는 이렇게 유물주의와 유심주의로 나누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이러한 결과의 세계는 올 수 없습니다. 악은 질투, 분열, 투쟁을 강조해 결국 자멸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이상이니 통일이니 하는 것이 어디서 벌어져야 되느냐? 결국은 세계보다도 근본에 들어가서는 나인 것입니다. 근본에 들어가서는 우리인 것입니다. 개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통일의 세계고 이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도 그것을 바라야 할 것인데, 인간이 그렇게 못 되어 있으니 인간을 대해서 가르쳐 주는 교리나 방법이 있으면 통일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53-10)
종교의 가르침
여러분, 그 방법을 알고 싶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누구도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첫째는 양심 앞에 반대되는 물건을 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신 쳐 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칠 수 있다면 사탄도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중간에 사람을 놓고 빼앗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르침은 양심을 중심삼고 몸뚱이를 “쳐라, 쳐라, 쳐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을 세계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몸뚱이가 싫어하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기관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몸뚱이를 쳐라!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마라, 행하고 싶은 것을 행하지 마라, 몸뚱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라!”고 가르칩니다. 전부 다 부정하라고 어떠한 종교든 고차적인 종교는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도 고행을 중요한 가르침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희생을 모토(motto)로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종교든지 이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종교 축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대로 실천하는 것은 인간에게 지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냥 그대로 놔두고 하나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의 힘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그 기준이 한 번은 이리 갔다가 한 번은 저리 갔다가 하며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5대 1의 비율이라면 하나님은 마음에 한 15쯤의 강력한 힘을 주입하여 15대 5쯤 만들어 놓아 자동적으로 몸뚱이를 끌고 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끌고 가서 거기서 습관이 되게 해서 몸뚱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나 만들기 위한 운동, 사람을 찾는 운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몸뚱이를 위하는 악편을 미워하고 그것을 청산지을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그 사람은 하늘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은 몸뚱이가 원하는 것을 부정하고, 그 반면에 정성을 들이게 해서 하나님의 힘을 받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해 나온 종교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러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정, 종족, 민족과 나라를 바라 나온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고 이스라엘 나라였던 것입니다. 즉, 선민이었습니다. 역사상에 선민이라는 말, 택한 나라라는 말이 있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대로 몸과 마음이 개인적으로 완전히 하나되고, 가정적으로 완전히 하나되고, 종족적으로 완전히 하나되고, 민족적으로 완전히 하나되어 세계까지 완전히 하나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대표자를 보내 주기로 이스라엘 선민 앞에 약속하신 것이 메시아였습니다. 하나님이 개인, 가정, 나라와 세계를 몽땅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되게 만들어서 세계를 구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53-13)
이상의 원형으로 오셨던 예수님
여러분이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메시아를 맞아서 잘살게 하기 위한 목적도 물론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한 민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세계를 구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를 보낸 목적이었습니다.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이 바라던 것과 하나님의 섭리방향이 일치가 되어야 했는데 엇갈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계의 통일을 위하여 가정적인 패턴을 만들어야 했고 종족, 민족, 국가와 세계적인 패턴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을 못 만들고 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는 주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돌감람나무 밭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돌감람나무 밭에 참감람나무로 와서 이것을 다 잘라 버리고 가정으로부터 한 국가를 하나님의 패턴(pattern;모형)에 접붙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은 참감람나무가 되었겠습니까, 돌감람나무가 되었겠습니까? 틀림없이 참감람나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를 중심삼고 주권을 가지고 유대교와 하나되어 세계적으로 선교를 했더라면 오늘날까지 2천 년의 기독교 역사는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하나 못 된 인간세계 앞에 통일의 모형으로 예수님을 보냈지만,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수천 년 동안 준비하신 나라와 터전이 사탄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2천 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의 수많은 민족의 말발굽에 밟히고 신음하면서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나라가 1948년에 독립했습니다. 그처럼 독립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은 재봉춘하여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세계적 시대로 들어온 것임을 뜻합니다. 그러한 때가 왔다는 것은 주님이 재차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난 후에 하나님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개인의 터전, 가정의 터전, 종족의 터전, 혹은 나라의 터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없었습니다. 그것을 인계받은 것이 기독교이니, 이 기독교가 제1이스라엘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제2이스라엘로서 그 사명을 이어받아 뜻을 이루어야 할 텐데 땅과 영계가 하나된 자리에서 터전을 닦지 못하고 땅은 부정하고 영계만 위주한 나라를 찾기 위한 운동을 지금까지 해 나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3-14)
민주세계와 기독교계의 여러 가지 문제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나라다.” 하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미국이 2억 가까운 국민을 갖고 있고 국민의 3분의 2가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하지만, 이 미국이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아닙니다. 민주세계의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 아무리 작더라도 “이것은 내 나라요, 내 백성이요, 내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래도 나라와 교회를 가지고 오실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했지만 지금의 기독교는 나라를 준비하지 않고 영적으로만 바라고 있으니, 오실 주님을 영적인 만왕의 왕으로 고대하는 입장에 있으니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정성을 들이는 이 나라를 받으소서! 우리 가정이 정성을 들이는 이 나라를 받으소서!” 할 수 있는 터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과 의논을 했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자기 몸뚱이 전부를 바치면서 하나님과 의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목사 혹은 주교들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대다수의 목사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목사들이 많은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수양하기 위한 종교다. 수양하는 데 하나님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때?”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산당이 좋다고 하는 목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있다면 그것을 원하겠습니까? 그것은 내 몸뚱이가 좋다는 말입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요전에 미국에 더블유 시 시(WCC;세계교회협의회)의 집회를 했을 때 6백여 명의 목사들이 모여 “중국 지지다, 중국 지지다!” 한 것을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심각한 때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을 중심삼은 사상이 세계를 제패하기 위한 꿈을 꾸면서 꼭대기부터 밑창까지 통일된 사상을 가지고 민주세계에 대비하고 나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국의 교단 중에 “나는 미국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땅을 가졌다.”고 자랑할 수 있는 교단이 있습니까? 그 교단에 속해서 “내 집과 내 살림살이 전체는 하나님의 것이요, 내 아들딸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고 주장할 수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까? 하나의 나라를 중심삼은 터전이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문제는 큰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것과 같이 주님이 공중으로 재림해 가지고 통일된 개인, 가정, 종족, 민족과 세계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이룰 수 있는 목적지는 공중이 아니라 땅, 이 지상, 이 세계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몸 마음이 완전히 통일된 남성으로서 통일된 여성을 맞아 통일된 가정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통일된 나라와 세계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 중에 “내가 신부가 되어 주님이 원하는 가정을 이루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로 올지도, 어떻게 올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구름 타고 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바라는 하나의 가정을 찾기 위해서 오십니다. 그 가정을 찾기 위해서는 그 가정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가정을 위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을 위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을 위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이룰 수 있는 패턴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제3이스라엘 나라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현재의 기독교가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53-16)
기독교 사상은 봉사와 희생의 사상
여기서 다시 돌이켜 개인이 영원히 남아지기 위한 길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개인으로서 세상에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높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높임을 받으려면 희생을 해야 됩니다. 열 명의 친구가 있으면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오랫동안 희생하는 사람은 그 열 명의 친구 앞에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친구까지도 그와 하나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너희들은 나를 위하라. 나를 위하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친구들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외톨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자기도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선과 악의 구별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한 나라의 애국자를 두고 봅시다. 미국을 놓고 생각할 때 여러분은 링컨 대통령이라든가 케네디 대통령을 지극히 존경합니다. 왜 존경합니까? 대통령은 마찬가지 대통령이지만 미국을 위해서 생명을 바쳤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가운데서 미국을 위해서 비참히 죽은 대통령이 있으면 비참히 희생될수록 그는 미국에서 지극히 높은 애국자요, 지극히 높은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다섯 사람의 대통령 가운데서 제일 나라를 위한 대통령을 뽑는다면 죽지 않은 대통령은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생명을 바쳐 나라를 사랑한 사람일수록, 그것도 비참히 희생당한 사람일수록 위대합니다.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것이 한때는 비참하지만 역사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점점 환경의 범위는 넓게 그를 중심삼고 뭉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서 희생했느냐 하면 세계의 인류를 위해서, 세계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인류를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한 입장에서 복을 빌고 비참히 운명한 것입니다. 그 당시 민족 반역자로 몰렸던 예수님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큰 무대를 위해서, 공적인 큰 일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은 망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역사적인 성현들입니다.
그러면 남을 위해 희생하고 나면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자연히 그를 중심으로 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자기를 위해주는 사람에게 지배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도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이 악의 세계를 대해 싸울 수 있는 작전이 있으면 그 작전법은 어떠한 작전법이냐 하는 것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악은 그 반대입니다. 자기 때문에 남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되면 개인의 반대를 받는 것이요, 국가적으로 그렇게 나가면 반드시 역사 앞에 규탄받는 독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악의 전법은 남을 희생시켜서 자기가 출세하려는 전법이요, 하나님의 전법은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되는 전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선을 주장하고 나왔던 사람들이 그 시대에는 환영을 못 받고 희생을 당했지만,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간 사람들은 역사가 지나간 이후에 그 이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사상은 무엇이냐? 봉사의 사상이요, 희생의 사상인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의 교단을 중심삼고 자기 교단만 위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만일 미국의 어떠한 기독교단이 활동하는 모든 목적을 미국을 구하는 데 두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각오하고 나선다면 하나님은 협조할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을 구해서 기독교화한 국가로 만들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미국 국민을 희생시킬 수 있는 기독교가 되면 기독교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종교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에 있어서는 미국을 사랑하느냐, 세계를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미국보다는 세계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구하기 위해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할 때는 미국을 내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53-17)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신 이유
미국 국민 여러분, 지금 미국에 “우리나라의 사상적 전통은 이렇다.” 할 수 있는 전통이 있다고 봅니까? 지금의 미국 청년들 가운데서는 그러한 전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을 개척한 사람들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퓨리턴(Puritan)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갈 수 있는 길을 국가가 막았기 때문에 그러한 국가를 뒤로 두고 신대륙 미국 땅을 찾아온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때 소수의 미국 국민들은 현지에 있던 인디언들과 싸우기 위해서 생명을 내맡기고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숭상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싸워 나왔던 그 사상이 미국의 건국사상이 된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를 먼저 세우고 학교를 세운 다음에야 자기의 집을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반대받던 환경에서 끌어내어 이 땅에서 보호를 해 가지고 2백 년도 못 되는 기간에 세계적인 나라를 창건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하려고 그들을 축복했겠습니까? 미국에 사는 여러분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 축복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세계를 구하기 위한 대표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축복했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국민이 “이제 우리가 단합해서 세계를 구하자!” 하는 통일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원수인 공산세계는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미국을 문제없이 삼켜 버릴 수 있는 자신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흑백의 싸움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습니다. 백인이 반대하는 흑인들을 중심삼고 공산당의 기반이 넓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즘에 와서 아시아의 사람들은 전부 다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공산세계의 팽창을 저지하고 공산세계를 막아서 하늘편을 옹호할 수 있는 나라가 아시아에 있는 국가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시아에 있는 국가들은 다른 국가가 그렇게 해줄 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에 원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은 역사시대에 없었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옳은 일을 하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결판을 봐야 됩니다. 좋은 일이라면, 이것은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 남을 위해서 도와준다는 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축복하고 칭찬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2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뒤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미국 자신을 찾으려고 돌아섰지만 세계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이 기억해야 될 것은 미국의 국책에서 아시아에 대한 원조라든가 외국에 대한 원조를 삭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국에 대한 원조를 삭감하기 시작한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유엔 사무총장이 함마슐드 씨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참사를 당해 갔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배후 동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1965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때 내가 “당신이 한국동란에서 휴전한 것은 잘한 것같이 생각하겠지만 역사적인 오류다.” 하고 지적했습니다. 당신이 공산당을 믿느냐? 공산당은 말과 행동이 다른 무리라고 말했습니다. 행동과 말이 다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휴전협정을 한 후 20년이 지난 지금 북괴는 온갖 힘을 다해서 국민 무장을 시켜 놓은 것을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부정하겠습니까?
오는 2월 21일이 모택동과 닉슨 대통령의 회담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택동은 닉슨 대통령에 대해서 공격을 하든 무엇을 하든 손해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 국민은 이것만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공산당은 미국과 얼마든지 “친하다, 친하다.” 하다가도 그냥 그대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이만큼 나갔다가 이만큼 후퇴할 수 있는 독재체제입니다.
그렇지만 미국 국민은 그렇지 못합니다. 미국 전체가 좋다고 해서 국민이 전부 다 나간다고 합시다. 여기에서 만일 후퇴하게 되면 전미국 국민이 전부 다 후퇴할 것 같아요? 절반은 갈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 미국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40대 대통령, 210년까지의 역사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는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1976년이 미국 건국 2백 년째인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예수님까지는 42대가 됩니다. 40대의 2천 년 역사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어졌습니다. 대수로는 42대였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3대에 걸친 하나님을 1대의 하나님으로 잡기 때문에 40대가 되는 것입니다. (53-19)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초월해야
그와 같은 탕감의 역사가 미국을 중심삼고 끝날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책임을 못 하게 된다면 금후의 미국은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보호하는 나라가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기에 있어서 세계적인 주도국가로서 책임을 졌던 미국을 자랑하지 말고 미국 나라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미국 국민이 자랑할 수 있는 사상, 30세기나 40세기에 가서도 그 사상이 아니면 안된다고 할 수 있는 사상을 갖는다면 미국 국민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국민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무슨 사명을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를 모시고 초국가적인 운동을 세계적으로 준비해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소망의 천국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 일한다는 사상을 빼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의 작전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요구하는 것이거늘 그러한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편성해서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의 터전을 만들어 드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을 가지고 앞으로 올 메시아를 중심삼고 통일된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 누가 선두에서 서야 되느냐? 믿지 않는 사람이냐, 믿는 사람이냐? 종교를 가진 사람이냐, 안 가진 사람이냐 묻게 될 때 그것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요, 종교인들이 규합해서 선두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을 지금 세계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 교파, 내 교파를 중심삼고 하나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모토(motto) 밑에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을 함으로써 헤게모니(hegemonie)를 쥐겠다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자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수단 방법이나 금력, 권력, 혹은 지식을 동원해 가지고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만민들이 자주적으로 추대해서 중심으로 세울 수 있는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면 세계를 구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선 이 사람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에는 수많은 핍박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기독교를 위하고 기독교의 갈 길을 제시하겠다는데 기독교의 반대를 받았고, 나라의 갈 길을 제시하겠다는데 나라의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도 앞으로 비판받을 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은 자기편을 희생시키면서 세계를 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적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자기의 측근자를 희생시키면서라도 남을 구하겠다는 운동을 전세계적으로 제시하지 않고는 이상적인 어떠한 방향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남을 위해서 세계적인 운동을 하는 그런 사상을 가진 단체, 자기 자체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겠다는 운동을 하는 그런 사상만이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세계 제패를 꿈꾸고 나왔지만, 중국과 소련이 왜 분립됐느냐?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공산당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소련은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고 헤게모니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중국과 소련이 갈라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공산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 나라의 백성보다도 다른 나라의 공산당원들을 더 높이 추대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런 내용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갈라진 것입니다. 즉, 자기 나라의 국민과 국가관을 초월한 사상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갈라진 것입니다.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을 생각해 봅시다. 미국이 세계를 위해서 원조하는 길로 일방적으로 나갔으면 미국은 언제나 세계가 추앙하는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미국 국민을 넘어서, 미국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을 했더라면 미국은 오늘날 이런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재의 미국은 세계보다도 미국을 더 중요시하고, 세계 인류보다도 미국 백성을 더 사랑하자는 입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견해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동원해서 세계를 살리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을 넘어서 세계를 사랑할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한 것인데 방향이 엇갈렸기 때문에 민주세계도 이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53-22)
최후에 남아질 사상
그러면 이제 최후에 남아질 사상이 무엇이냐? 결론을 지읍시다. 세계를 위해서는 자기 나라나 백성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운동,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운동만이 최후에 남을 수 있는 주의가 될 것이고 사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넘어설 수 있는 초민족적인 운동을 세계적으로 제시하고 초민족적으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 혹은 세계인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자유롭게 갈 수 있게끔 어떻게 모색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주님이 오신다면 한 나라를 구하려고 오지 않습니다. 세계를 구하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가까워 오면 끝날이기 때문에 국가를 넘어서 더 사랑할 수 있는 세계를 발견하고, 국가를 넘어서 하나님의 사람을 더 존중하고, 국가를 넘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을 하지 않고는 세계는 망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세계 인류가 바랄 수 있는 통일의 길이요, 사상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피부색이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문화의 배경이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세계를 위해서 하나되는 것만이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세계가 벌어지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가는 길, 가정으로서 가는 길, 종족으로서 가는 길, 민족으로서 가는 길, 국가로서 가는 길, 세계로서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말씀드린 제목인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믿고 지금 이 땅에서 그런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5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