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종소리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15일)

훈독왕 | 20220418093806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15일

마음의 종소리 (훈독본)  
날짜 : 1979. 1. 28(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마음의 종소리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15일) - YouTube

 

전구와 같이 빛을 내는 인간

여러분이 밤에 높은 산에 올라가든가, 혹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도시를 보게 되면 많은 등불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큰 불이 있으면 유난히 그 불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람 자체를 두고 하나님이 보신다면 그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자체는 인간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 자체가 불과 같다면, 거기에는 전구가 있어야 되고 그 안에는 필라멘트가 있어야 됩니다. 안팎이 갖추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전구가 불을 비친다는 것은 그 전구 자체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배후에 발전소와 연결되는 송전소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 

 

발전소에 가 보면 여기에 전깃불을 비춰 주기 위해서 큰 덩치의 쇳덩이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보통 전깃불 아래서 공부하는 사람 혹은 전깃불을 보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그 전깃줄이라는 것은 멀면 멀수록 거기에는 많은 공(功)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희생이 치러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전구를 보게 되면 그 전구가 깨져도 못 쓰게 되고 필라멘트가 끊어져도 못 쓰게 됩니다. 그 전구가 깨지는 것은 사람으로 말하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그 안에 있는 필라멘트, 마음과 같은 그것이 끊어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볼 때, 여러분도 결국 하나의 전구와 같은 인간으로 비치고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103-9)

마음의 종을 누가 울려 주느냐

그러면 인간에게는 몇 볼트에 해당하는 전구를 갖다가 끼울 수 있느냐? 전구가 고정된 조그만 것인지 큰 것인지, 또는 내 뒤에는 몇 와트의 불이 켜질 수 있는 줄이 달려 있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전깃줄이 굵으면 굵을수록 몇 만, 몇 억와트의 전구도 갖다 끼울 수 있습니다. 줄이 있고 소켓이 있어 가지고 그 소켓에 언제나 전구를 갈아 끼울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인간을 소켓이나 전구와 같은 것에 비교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걸 볼 때, 우리 인간이 태어나 가지고 자라는 모든 과정이 전구라든가 소켓을 바꿔 끼는 것과 마찬가지니다. 줄을 굵게 만들고 많은 와트의 전등을 달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조그만 불을 가지고 그저 자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에 천 촉짜리 전구가 있다고 할 때, 그걸 여기에 하나 켜 놓으면 작은 불이 다 소용이 있겠어요?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우주에다 태양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아예 따르지 못할 빛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기가 필요한 것은 밤이 있기 때문이고 그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전기가 필요해요, 태양 빛이 필요해요? 우리 인간들에게는 태양 빛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03-11) 


우리 인간 세계를 보게 되면, 마음의 빛이라는 말도 더러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제목이 마음의 종소리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보게 된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불로 비교하면 전구와 같이 표시가 되고, 소리로 비교하게 되면 종과 같은 것을 갖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전깃불이 아무리 필요해도 소켓을 이어야 되고, 종이 아무리 있어도 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음을 갖고 있지요? 그 마음의 종을 누가 울려 주느냐? 

 

이 우주에 중심이 되는 어떠한 신이 있으면 그 신의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하고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관계냐? 그것은 전기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발전소라고 하면, 여러분은 하나의 전구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전기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잘 주고받아야 됩니다.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기는 장애가 없을수록 불은 밝다는 것입니다. 장애가 없으면 원 발전소의 전기량과 똑같아집니다. 그렇게 똑같아지려면 소모되는 것, 전기로 말하면 저항이라고 하는데 그 저항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기가 원하는 것은 순금을 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마음을 통해 가지고 전기가 쭉 들어오게 되면 마음의 종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마음의 종소리 자기 나름대로 전부 다 울려 나올 것입니다. (103-12)

역사 가운데 남아진 성인들은 뭐냐

이렇게 여러분은 일생 동안 마음의 종소리를 울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만한 종을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종으로 얼마만큼 울렸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학문이나 무슨 철학이나 종교나 참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이 마음에서 우러난 하나의 표현입니다. 전부 다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수하고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물건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그 나라의 박물관에 갖다가 보관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인류역사 가운데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 혹은 역사를 두고 추모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이와 같은 순수한 참종을 울렸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래도 역사 가운데 남아진 성인들은 뭐냐? 그 성인들을 말하면, 그들이 역사시대에 몇 세기 혹은 몇 천년을 대표해 가지고 울린 종소리가 좋았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다 본떠 가지고 “나도 좋다. 나도 좋다” 해서 모인 것이 하나의 종교 문화권입니다. 성인은 참된 생명, 참된 인격을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된 사랑을 가르쳐 줘야 됩니다. 사람만이 아니고 참된 인격의 신까지도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인이라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전부 다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영원을 중심삼고 역사를 넘어서 새로운 이상을 가르쳐 주었고, 역사 위에서 모든 이상을 갖다 주는 신을 가르쳐 줬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사람, 일생을 목표로 산 사람은 다 흘러가고 맙니다. 영생하는 데는 못된 사람이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사람만이 영생합니다.


록펠러가 죽었는데, 그 사람이 참되면 참될수록 반응이 컸을 것입니다. 그 록펠러가 참된 사람이었으면 미국 국민이 “아, 우리나라가 없어지더라도 그 사람은 살았어야 돼”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록펠러는 미국 국민들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죽으니까 “죽었으면 죽었지”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라는 분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하면서 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르냐? 그 마음의 반응으로 나타난 모든 가르침이 세계를 위한 것이요, 우주를 위한 것이요, 역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주권자는 백 년도 못 살고 다 죽고, 나라도 몇 천년을 못 가서 망하지만 영원히 죽지도 않고 망하지 않는 분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분이 있다면 자기의 이름과 명예를 그분 앞에 전부 다 맡기고 의탁하고 싶을 것입니다. (103-14)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도 상대를 맞이해야

신이 있다면, 신은 그런 분입니다. 그 분은 역사의 주인이요, 존재세계의 주인이요, 영원히 전체를 관리하는 주체자입니다. 이러한 무엇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그걸 알기 때문에 그분을 대해 가지고 그분께 의탁하고 그분의 관할 하에 남기기 위한 우리의 마음의 본성이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성인들이 어째서 오늘날 인류 마음의 등불이 되고 모든 사람을 규합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느냐? 그것은 영원성을 가지고 불변성을 논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성인들 중의 중심이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어째서 예수님이냐? 왜냐하면 “나는 독생자다” 했기 때문입니다. 독생자는 하나님의 첫사랑을 독차지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시집 장가가서 아기를 낳을 때, 둘째 아기보다 첫 아기를 낳아 사랑할 때는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그런데 하나님은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백 퍼센트 사랑을 받았고, 또 사랑의 가지가 처음으로 인류세계 앞에 나로 말미암아 뻗친다는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독생자는 뭘 할 것이었느냐? 예수님은 자기가 독생자인 것을 생각한 동시에 독생녀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독생녀가 있어야 “아, 공평한 하나님이다”라고 공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독생자니까 독생녀를 찾아야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생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 가면서 “신랑으로서 언제 신부를 찾으러 온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아들이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었지요. 그러면 남자는 누가 만들었어요? 여자는 누가 만들었어요? 그 남자 여자의 둘을 만든 것은 하나되어 가지고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최고 신성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만 만들어 놓고 “선한지라” 하신 것이 아니라 해와까지 만들어 놓고 “선한지라”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좋고 아담 해와도 좋겠기 때문에 “선한지라” 한 것이지 하나님만 좋고 아담 해와가 좋지 않았으면 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니 불교니 하는 데서는 전부 다 독신생활을 하지만, 선생님은 “독신생활은 죄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탄 세계로 보았고, 이 세상 가운데서는 찾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독생자로서 독생녀를 중심삼고 가정을 생각했고 국가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인들 중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103-16)

성인의 중심으로 인정받은 예수님

그러면 누가 그걸 인정해야 되느냐? 성인을 감독할 수 있는 중심적인 신이 있다면 그 분,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인하려면 하나님도 홀딱 반하실 수 있는 것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는 돈이나 지식 혹은 권력은 전부 다 필요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남자들 가운데 예수님이 “당신 앞에 나는 독생자요” 하니까 그 말이 하나님의 귀에 쏙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념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자기 자리의 후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또, 그러한 여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독생자였는데, 그 독생자라는 사람이 이 땅에 나왔다면 그 말은 뭐냐 하면 절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난 틀림없이 독생자다. 세포를 하나 자르더라도 독생자다. 이러한 결심과 이러한 자부심은 내가 제일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만 내리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독생자였습니다. 성인들 중에는 사랑을 걸고 제일이다 한 성인이 예수님 외에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말한 것은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하고 나밖에 없습니다” 한 것입니다 “이제 내 손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독생녀를 만들겠습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새로운 종족을 만들고,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03-19)

인류를 해방해야

예수님의 때에 와서야 비로소 그러한 종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울려진 종소리가 이 지상의 세계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슴까지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종소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에 취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신이고 체면이고 다 잊어버리고 그저 좋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좋아하신다고 해서 누가 흉볼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에는 높은 것 낮은 것, 넓은 것 좁은 것, 큰 것 작은 것이 다 하나입니다.


하나님한테 “나 헌금을 많이 했으니까 출세하게 해주소” 그러면, 하나님은 금은보화가 있는 천국에 끌고 가서 “이놈의 자식아, 너 여기 구경해 봐라” 그러신다구요. 거기서 자기가 낸 것은 휴지조각 하나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했고 뭐했고 자랑하면, 그것도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역사를 하신 것에 비하면 먼지 하나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나를 알아주십시오. 나를 복 받게 해주고 천국 보내 주십시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찾아보면, 우리에게는 사랑했다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했다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한도가 어느 정도냐? 사탄 이상 인류를 사랑할 수 있고 자기 부모, 자기 나라의 어떤 군왕 이상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셨다는 표적은 그 사랑을 찾았을 때 결론이 지어집니다. 그 이상의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가도 기도를 안 합니다. 어려울 때는 기도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 가정의 자리인데,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종족을 찾기 위해서 우리 가정을 희생시키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세계 사람, 오색인종이 다 왔으니 이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세계 인류를 해방함과 동시에 영계를 해방하겠습니다” 하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인류에 하나님이 매여 계시니까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인류를 해방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해방되실 수 있습니다. (103-21)

사랑의 종소리는 클수록 빛나고 좋은 것

이렇게 볼 때, 인류역사 가운데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종을 울리고 갔고 자기 등불을 켜고 갔는데 그 중에서 세계를 덮고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종소리가 무슨 소리이고 그러한 불빛은 무슨 빛이냐? 참된 사랑의 종소리입니다. 이것을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하늘나라에서 자기 권한의 설정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종소리는 클수록 빛나고 좋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마음의 종소리’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의 등불, 사랑의 종소리를 갖고 가는 사람들은 승리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종소리를 울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양심에 가책을 받는다는 그 말을 넘어서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가책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도 취합니다. 마음이 작용하지 않는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괜히 좋다는 거예요. 괜히 좋아서 춤추고 싶고, 혼자 생각해도 좋고, 어디 깜깜한 밤에 가도 좋고, 어디든 이불을 쓰고 들어앉아 있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은 마음의 종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집에 언제나 귀한 것을 준비했다가 줘야 되겠다” 하며 귀한 것을 언제나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불평할 여지가 없고 이유를 붙이고 논란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욕을 해도 “아, 내가 너희들을 미처 사랑 못 해주니까 빨리 와서 안 해준다고 욕을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가 욕을 하고 반대하더라도 “아, 저 사람들이 빨리 와서 자기들을 구해주지 않는다고 저러는구나” 하면서 생각이 그렇게 돌아가게 됩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저런다” 하면서 사랑으로 전부 다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감옥에 들어가 사형을 받는 자리에 가더라도 “아, 이제야 하나님을 진짜 사랑한다는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103-24)

참된 사랑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참소할 수 없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법도에 있어서는 사탄도 참소를 못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참소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 법도는 땅에나 하늘에나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사랑의 종소리가 울려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등불이 점점 커집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다이아몬드 빛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빛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 빛 가운데는 맛이 있습니다. 자꾸 보면 볼수록 취하고 맙니다. 여러분이 마음에서 사랑의 종을 울려서 하늘땅을 움직이고 모든 만민을 움직이게 되면, 하나님도 “아…” 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눈물을 얼마나 흘렸느냐, 사랑의 애달픔을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그게 여러분의 재산입니다.

지금 이 타락한 세계는 병원이고, 사람들은 전부 다 입원한 자들입니다. 병원에 들어간 사람은 집에 무슨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낫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약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조제, 사랑의 약을 투입하는 날에는 사랑이 없었던 사탄의 그물을 찢어 버리고 사랑의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의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랑의 종소리를 천지에 울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종소리를 듣고, 사랑의 마음을 받아 그들이 해방되어 병이 나아 가지고 그들이 또 사랑의 종소리를 울리게 될 때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땅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통해서 해방된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게 될 때 얼마나 기분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홈 처치(home church:가정교회)에 갈 때 의무적으로 가지 말고 사랑의 마음이 사무쳐서 가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감옥에 들어가거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 있다면, 자기가 감옥에 찾아가야 되겠다고 해서 가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감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간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안 갈 수 없어서 가는 곳이 홈 처치라는 것입니다. 그 홈 처치는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천국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의 상속자가 되게끔 하기 위한 곳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늘이 그렇게 나를 이끄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됩니다. (103-27)

영계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고 모든 것에 승리할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로막더라도 다 넘어갈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의 종을 치는 여러분이 되어 치다가 기진해서 쓰러졌다고 할 때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사랑의 종소리를 울린다면, 그 사랑의 종소리는 주인이 없더라도 억천만 년 울려 퍼져 나갈 것입니다. 


영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사랑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역사시대에 마음의 종소리를 크게 울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통일교회와 같이 이렇게 현세에 있어서, 이렇게 사막 같은 시대에 있어서 이런 종소리를 울린 것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입니다. (103-30)


여러분도 사랑의 종소리를 마음에서 울리고 사랑의 종소리를 따라서 일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소켓도 준비되어 있고,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구만 갖다 끼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너무 밝아서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몰려올 것이고, 또 소리라고 한다면 너무 커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내가 되면 어두운 세계에 하나의 등대와 같을 것입니다. 또, 사이렌 탑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내적인 새 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종을 울리자는 것입니다. (103-37)*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15일, 원문

마음의 종소리 
날짜 : 1979. 1. 28(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전구와 같이 빛을 내는 인간
 
여러분이 밤에 높은 산에 올라가든가, 혹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도시를 보게 되면 많은 등불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파란 불이나 빨간 불이 있으면, 그 불이 유난히 드러날 것입니다. 또, 그 가운데 큰 불이 있으면 유난히 그 불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람 자체를 두고 하나님이 보신다면 그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자체는 인간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마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 자체가 불과 같다면, 거기에는 전구가 있어야 되고 그 안에는 필라멘트가 있어야 됩니다. 안팎이 갖추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전구가 불을 비친다는 것은 그 전구 자체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배후에 발전소와 연결되는 송전소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위치를 켜면 전기가 들어와서 불이 켜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기는 전구 안에 있느냐,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불이 오게 될 때는 전구 안에도 있지만 연결된 어디에나 전기가 있습니다.
전기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전기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물어 보면, “저 스위치에 있다. 전기가 저기에 있지” 이렇게 대답하겠지만 그 근본은 발전소에 있는 것입니다. 발전소에 있는 것이 연결되어 있을 뿐입니다. 발전소에 가 보면 여기에 전깃불을 비춰 주기 위해서 큰 덩치의 쇳덩이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수력발전은 물을 인도하는 도관이 있어서 큰 폭포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화력발전은 석탄을 컨베이어로 날라다 불을 때서 증기를 내어 돌려야 됩니다.
보통 전깃불 아래서 공부하는 사람 혹은 전깃불을 보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그저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이렇게 볼 때, 그 전깃줄이라는 것은 멀면 멀수록 거기에는 많은 공(功)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희생이 치러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전구를 보게 되면 그 전구가 깨져도 못 쓰게 되고 텅스텐으로 된 필라멘트가 끊어져도 못 쓰게 됩니다. 그 전구가 깨지는 것은 사람으로 말하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그 안에 있는 필라멘트, 마음과 같은 그것이 끊어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볼 때, 여러분도 결국 하나의 전구와 같은 인간으로 비치고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103-9)

마음의 종을 누가 울려 주느냐

그러면 인간에게는 몇 볼트에 해당하는 전구를 갖다가 끼울 수 있느냐? 전구가 고정된 조그만 것인지 큰 것인지, 또는 내 뒤에는 몇 와트의 불이 켜질 수 있는 줄이 달려 있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우선 전깃줄이 굵어야 됩니다. 그래서 “무거워서 못 가겠다. 아이구, 이거 무겁구나” 이렇게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 그렇게 느껴 봤어요? 전깃줄이 굵으면 굵을수록 몇 만, 몇 억와트의 전구도 갖다 끼울 수 있습니다. 줄이 있고 소켓이 있어 가지고 그 소켓에 언제나 전구를 갈아 끼울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인간을 소켓이나 전구와 같은 것에 비교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걸 볼 때, 우리 인간이 태어나 가지고 자라는 모든 과정이 전구라든가 소켓을 바꿔 끼는 것과 마찬가지니다. 줄을 굵게 만들고 많은 와트의 전등을 달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것이 쉬운 일이겠어요? “아이구, 나 편안히 앉아서 그저 불이나 보면 됐지 뭐…” 하며 구경하는 사람은 관계없지만, 진짜 그와 같은 입장에 서려면 그것은 과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조그만 불을 가지고 그저 자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나다. 요거다, 요거” 이렇게 자랑하려고 합니다. 만약에 천 촉짜리 전구가 있다고 할 때, 그걸 여기에 하나 켜 놓으면 작은 불이 다 소용이 있겠어요?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도리어 거추장스럽고 장애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도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우주에다 태양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아예 따르지 못할 빛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기가 필요한 것은 밤이 있기 때문이고 그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전기가 필요해요, 태양 빛이 필요해요? 우리 인간들에게는 태양 빛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전구를 천 개, 만 개 갖다 놓더라도 햇빛 아래서는 다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103-11)
우리 인간 세계를 보게 되면, 마음의 빛이라는 말도 더러 합니다. 그게 얼마나 시적이에요! “마음의 빛, 마음의 빛” 그렇게도 말할 수 있다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제목이 마음의 종소리입니다. 그러면 종소리는 뭐냐? 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보게 된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불로 비교하면 전구와 같이 표시가 되고, 소리로 비교하게 되면 종과 같은 것을 갖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전깃불이 아무리 필요해도 소켓을 이어야 되고, 종이 아무리 있어도 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음을 갖고 있지요? 그 마음의 종을 누가 울려 주느냐? 여러분은 마음이 작용하는 걸 알아요? 마음은 아무리 밤중이라도 좋은 일 하면 “좋다” 하고 나쁜 일 하면 “이놈…” 하는 작용을 합니다.
우리 마음을 볼 때, 여러분에게도 마음이 있지만 여러분의 조상들한테도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조상의 마음과 마음을 쭉 올라가서 이 우주에 중심이 되는 어떠한 신이 있으면 그 신의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하고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관계냐? 그것은 전기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발전소라고 하면, 여러분은 하나의 전구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전기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잘 주고받아야 됩니다. 둘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눈도 둘이 있는데, 두 눈의 도수가 잘 맞아야 됩니다. 시신경에 들어가 가지고 각도가 초점에 잘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이 강하게 들리고 다른 쪽이 약하게 들리면 안됩니다. 같이 들려야 됩니다. 파동수가 같아야 된다구요.
그래서 장애가 없을수록 불은 밝다는 것입니다. 장애가 없으면 원 발전소의 전기량과 똑같아집니다. 그렇게 똑같아지려면 소모되는 것, 전기로 말하면 저항이라고 하는데 그 저항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저항이라는 것은 전기를 잡아먹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몸 마음이 순금처럼 하나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나무토막처럼 되어 있느냐 이거예요. 이것은 순금으로부터 순은, 순동, 순철 등 많은 계열이 있습니다. 천태만상의 계열이 있다구요.
여기서 전기가 원하는 것은 뭐냐? 전부가 순금을 원합니다. 순금은 탄탄한 대로와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나 돌 같은 것은 절대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마음을 통해 가지고 전기가 쭉 들어오게 되면 벨 소리가 납니다. 마음의 종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 종이 백 퍼센트 순금이고 완전하다면, 하나님은 그 종소리를 천년 만년 들어도 “아, 좋다”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전부 다 마음의 종소리가 울려 나온다 이거예요. 자기 나름대로 전부 다 울려 나올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깨진 종, 누더기 같은 종 등 별의별 종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 종이 깨졌는지, 고장났는지, 뭐 어떤지 지금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03-12)

역사 가운데 남아진 성인들은 뭐냐

이렇게 여러분은 일생 동안 마음의 종소리를 울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걸 중심삼고 여러분의 마음을 울려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동네에 울려 가지고 군을 울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전부 다 다를 것입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도 옳은 사람, 그 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 신용받는 사람이 “야, 이러자” 할 때는 전부 다 그걸 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만한 종을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종으로 얼마만큼 울렸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학문이나 무슨 철학이나 종교나 참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이 마음에서 우러난 하나의 표현입니다. 전부 다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수하고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물건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그 나라의 박물관에 갖다가 보관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인류역사 가운데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 혹은 역사를 두고 추모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이와 같은 순수한 참종을 울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어떤 게 역사적으로 남아져 나오느냐? 힘이 셌던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가졌던 사람도 아닙니다. 또, 힘있던 나라도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그래도 역사 가운데 남아진 성인들은 뭐냐? 그 성인들을 말하면, 그들이 역사시대에 몇 세기 혹은 몇 천년을 대표해 가지고 울린 종소리가 좋았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다 본떠 가지고 “나도 좋다. 나도 좋다” 해서 모인 것이 하나의 종교 문화권입니다. 그러면 성인들 가운데 진짜 성인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성인은 무엇을 가르쳐 줘야 되느냐 하면 참된 생명, 참된 인격을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된 사랑을 가르쳐 줘야 됩니다. 사람만이 아니고 참된 인격의 신까지도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인이라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전부 다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주라는 거예요. 그게 왜 그렇게 됐느냐? 그들은 영원을 중심삼고 역사를 넘어서 새로운 이상을 가르쳐 주었고, 역사 위에서 모든 이상을 갖다 주는 신을 가르쳐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종교에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사람, 일생을 목표로 산 사람은 다 흘러가고 맙니다. 그것은 동물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만이 달라서 영생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영생하는 데는 못된 사람이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사람만이 영생합니다.
록펠러가 죽었는데, 그 사람이 참되면 참될수록 반응이 컸을 것입니다. 그 록펠러가 참된 사람이었으면 미국 국민이 “아, 우리나라가 없어지더라도 그 사람은 살았어야 돼”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자, 보라구요! 록펠러는 미국의 부통령도 해서 미국 국민들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죽으니까 “죽었으면 죽었지”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라는 분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하면서 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거 얼마나 차이가 있어요! 그러면 무엇이 다르냐? 사람의 외모가 달라요? 외모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마음의 반응으로 나타난 모든 가르침이 세계를 위한 것이요, 우주를 위한 것이요, 역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은 역사를 두고, 영생을 중심삼고 십 년이나 백 년뿐만 아니라 천 년, 만 년, 억천만 년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동물과 마찬가지인데, 그걸 남겨서 뭘 해요? 요즘에는 종교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아, 명예를 남겨야 되겠다” 하는데, 그 명예를 남겨서 뭘 해요? 애국자가 되어서 기념관에 가 있어도 나라가 망하게 될 때는 기념관이 다 깨질텐데 말입니다. 이름을 남겨서 뭘 하느냐? 그러니까 망하고 흥하는 역사시대에 아무리 좋은 것을 남겨봤자 그 좋다는 것도 나쁘게 취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주권자는 백 년도 못 살고 다 죽고, 나라도 몇 천년을 못 가서 망하지만 영원히 죽지도 않고 망하지 않는 분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분이 있다면 자기의 이름과 명예를 그분 앞에 전부 다 맡기고 의탁하고 싶을 것입니다. (103-14)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도 상대를 맞이해야

신이 있다면, 신은 그런 분입니다. 그 분은 역사의 주인이요, 존재세계의 주인이요, 영원히 전체를 관리하는 주체자입니다. 이러한 무엇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그걸 알기 때문에 그분을 대해 가지고 그분께 의탁하고 그분의 관할 하에 남기기 위한 우리의 마음의 본성이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돈이 필요해요? 그것은 이 세계의 물건 중의 하나입니다. 별스럽게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새로이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들이 어째서 오늘날 인류 마음의 등불이 되고 모든 사람을 규합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영원성을 가지고 불변성을 논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 성인은 동양에도 있었고 서양에도 있었는데, 그 성인들 중의 중심이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어째서 예수님이냐? 그 시대로 말하면 예수님은 유명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성인 중의 제일입니까? 왜냐하면 “나는 독생자다” 했기 때문입니다. 독생자는 하나님의 첫사랑을 독차지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시집 장가가서 아기를 낳을 때, 둘째 아기보다 첫 아기를 낳아 사랑할 때는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그런데 하나님은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백 퍼센트 사랑을 받았고, 또 사랑의 가지가 처음으로 인류세계 앞에 나로 말미암아 뻗친다는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독생자는 뭘 할 것이었느냐? 예수님은 자기가 독생자인 것을 생각한 동시에 독생녀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독생녀가 있어야 “아, 공평한 하나님이다”라고 공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쪽의 다리만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양쪽의 다리가 다 있는 걸 좋아하신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독생자니까 독생녀를 찾아야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생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 가면서 “신랑으로서 언제 신부를 찾으러 온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말하기를 남자도 “내가 주님 앞에 신부다” 그럽니다. 어째서 남자가 신부 될 수 있습니까? 교회가 신부 될 수 있어요? 교회가 신부 되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었는데, “만왕의 왕인 그 사람은 홀아비여야 했다” 그런 법이 있어요? 그분에게 상대가 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 된 예수님이 왕위에 앉아 가지고 교육하기를 “너, 나와 같이 혼자 사는 것이 좋다” 이랬겠어요, “너희들과 같이 둘이 사는 것이 좋다” 했겠어요? 둘이 사는 것이 좋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장가가야 했다는 말은 지극히 원리적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예수님은 장가 안 가야 했다”라고 말하는 것을 예수님이 좋아하겠어요? 예수님의 입장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겠어요? 예수님은 누구의 아들이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었지요. 그러면 남자는 누가 만들었어요? 여자는 누가 만들었어요? 그 남자 여자의 둘을 만든 것은 하나되어 가지고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최고 신성한 것입니다. 최고로 신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만 만들어 놓고 “선한지라” 하신 것이 아니라 해와까지 만들어 놓고 “선한지라”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좋고 아담 해와도 좋겠기 때문에 “선한지라” 한 것이지 하나님만 좋고 아담 해와가 좋지 않았으면 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니 불교니 하는 데서는 전부 다 독신생활을 하지만, 선생님은 “독신생활은 죄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무엇을 말했느냐? 이 세상을 사탄 세계로 보았고, 이 세상 가운데서는 찾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소리가 있고 아무리 무엇이 있어도 귀담아 들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독생자로서 독생녀를 중심삼고 가정을 생각했고 국가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인들 중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전부 다 자기를 주장하는데, 성인들 끼리끼리도 “네가 중심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다” 하고 싸우며 주장하고 “내가 낫지” 그럴 것 아니에요? 그럴 수 있다구요. 조그만 아이들도 그렇고, 여러분끼리도 서로가 지지 않겠다고 그러잖아요. (103-16)

성인의 중심으로 인정받은 예수님

그러면 누가 그걸 인정해야 되느냐? 아무리 성인들끼리 인정해도 안됩니다. 성인을 감독할 수 있는 중심적인 신이 있다면 그 분,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인정하시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데 그저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 인정하시겠어요, 사실이 그러니까 인정하셔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 “누가 중심이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러니까 중심을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인하려면 하나님도 홀딱 반하실 수 있는 것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는 돈이나 지식 혹은 권력은 전부 다 필요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남자들 가운데 예수님이 “당신 앞에 나는 독생자요” 하니까 그 말이 하나님의 귀에 쏙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쏙 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가 독생자야? 4천 년 역사시대에 왔던 인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네가 제일이란 말이야? 네가 유대교의 모세나 아브라함보다도 더 크단 말이야” 할 때, 예수님은 “예스, 예스”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면 어떻게 나한테 증거할 거야” 하실 때, 예수님은 “그들은 하늘을 반대할 수도 있고 배반할 수도 있고 천번 만번 변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억천만 년 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입니다” 이랬을 것입니다. 그 독생자의 사상을 중심삼고 잘라도 변하지 않고, 좀 더 큰 것을 잘라도 변하지 않고, 좀 더 큰 것을 잘라도 없어지지 않고, 전체를 잘라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둘로 자르면 독생자가 둘로 갈라지고, 열 개로 자르면 독생자가 열 개로 갈라지는 것이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념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자기 자리의 후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또, 그러한 여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독생자였는데, 그 독생자라는 사람이 이 땅에 나왔다면 그 말은 뭐냐 하면 절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난 틀림없이 독생자다. 세포를 하나 자르더라도 독생자다. 이러한 결심과 이러한 자부심은 내가 제일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만 내리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독생자였습니다. 성인들 중에는 사랑을 걸고 제일이다 한 성인이 예수님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좀더 잘해 보라고는 했지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으려고는 안 했습니다. 다른 성인들은 근본적으로 개조하려고는 안 했다는 것입니다. 적당히 무슨 나라를 잘 다스리고 뭐 어떻다고 그랬지만 근본적으로 틀렸다고 부정하고 새로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말한 것은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하고 나밖에 없습니다” 한 것입니다 “이제 내 손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독생녀를 만들겠습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새로운 종족을 만들고,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03-19)

인류를 해방해야

예수님의 때에 와서야 비로소 그러한 종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울려진 종소리가 이 지상의 세계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슴까지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울려 주던 그 마음의 종소리에 하나님이 기분 나쁘신 것이 아니라 좋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종소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생명이에요? 하나님이 영생하시고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기에 그것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식이냐? 하나님은 지식의 왕이시고 지식의 주체입니다. 그러면 권력은 어떻겠어요? 방대한 우주를 움직이시는 큰 권능자십니다. 그 다음에는 돈도 뭐도 하나님한테는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에 취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신이고 체면이고 다 잊어버리고 그저 좋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좋아하신다고 해서 누가 흉볼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에는 높은 것 낮은 것, 넓은 것 좁은 것, 큰 것 작은 것이 다 하나입니다.
하나님한테 “나 헌금을 많이 했으니까 출세하게 해주소” 그러면, 하나님은 금은보화가 있는 천국에 끌고 가서 “이놈의 자식아, 너 여기 구경해 봐라” 그러신다구요. 거기서 자기가 낸 것은 휴지조각 하나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했고 뭐했고 자랑하면, 그것도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역사를 하신 것에 비하면 먼지 하나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나를 알아주십시오. 나를 복 받게 해주고 천국 보내 주십시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찾아보면, 우리에게는 사랑했다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했다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한도가 어느 정도냐? 사탄 이상 인류를 사랑할 수 있고 자기 부모, 자기 나라의 어떤 군왕 이상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셨다는 표적은 그 사랑을 찾았을 때 결론이 지어집니다. 그 이상의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인류는 지금 전부 다 경쟁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고 누가 진짜 사랑을 하느냐 하는 경쟁을 합니다. 한국하고 미국이 경쟁하고, 백인하고 유색인종이 경쟁하고, 다 경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나 문화 같은 그런 것은 안 보십니다. 사랑을 가지고 보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안경을 끼고 보시기 때문에 사랑 이외의 것은 다 안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이 저 전깃불같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레버런 문하고 하나님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아느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사랑하게 되니까 때려도 좋고 뭐라고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진짜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를 욕하고 죽여도 좋다. 내가 좋은 걸 어떻게 하겠느냐”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면서 뭐 어떻다고 야단했는데 나는 그런 말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빼 버려야 합니다. 그때 거기에서 “나는 당신으로부터 왔으니, 당신의 사랑의 계대를 이었으니까 당신의 사랑을 위해서 영광 가운데 이 길도 가겠다” 했으면, 그게 얼마나 멋졌겠느냐 이겁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가도 기도를 안 합니다. 어려울 때는 기도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 가정의 자리인데,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종족을 찾기 위해서 우리 가정을 희생시키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세계 사람, 오색인종이 다 왔으니 이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세계 인류를 해방함과 동시에 영계를 해방하겠습니다” 하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인류에 하나님이 매여 계시니까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인류를 해방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해방되실 수 있습니다. (103-21)

사랑의 종소리는 클수록 빛나고 좋은 것

이렇게 볼 때, 인류역사 가운데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종을 울리고 갔고 자기 등불을 켜고 갔는데 그 중에서 세계를 덮고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종소리가 무슨 소리이고 그러한 불빛은 무슨 빛이냐? 참된 사랑의 종소리입니다. 이것을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하늘나라에서 자기 권한의 설정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작은 종 억천만 개가 “땡땡땡…” 하고 아무리 울려 봤자 큰 종이 “쾅” 하고 소리가 날 때는 이 종소리에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이 사랑을 중심삼은 종소리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종소리는 클수록 빛나고 좋은 것입니다. 그 종소리는 24시간 가운데 잘 때도 좋아하고, 깨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밥 먹을 때도 좋아하고 언제나 좋아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좋아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시간의 세계에서 환영하지 않는 때가 없고 장소의 세계에서 환영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마음의 종소리’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의 등불, 사랑의 종소리를 갖고 가는 사람들은 승리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종소리를 울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양심에 가책을 받는다는 그 말을 넘어서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가책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도 취합니다. 마음이 작용하지 않는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괜히 좋다는 거예요. 괜히 좋아서 춤추고 싶고, 혼자 생각해도 좋고, 어디 깜깜한 밤에 가도 좋고, 어디든 이불을 쓰고 들어앉아 있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그저 좋습니다. 밥을 안 먹어도 좋고, 잠을 안 자도 좋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취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은 마음의 종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집에 언제나 귀한 것을 준비했다가 줘야 되겠다” 하며 귀한 것을 언제나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불평할 여지가 없고 이유를 붙이고 논란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욕을 해도 “아, 내가 너희들을 미처 사랑 못 해주니까 빨리 와서 안 해준다고 욕을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가 욕을 하고 반대하더라도 “아, 저 사람들이 빨리 와서 자기들을 구해주지 않는다고 저러는구나” 하면서 생각이 그렇게 돌아가게 됩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저런다” 하면서 사랑으로 전부 다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감옥에 들어가 사형을 받는 자리에 가더라도 “아, 이제야 하나님을 진짜 사랑한다는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103-24)

참된 사랑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참소할 수 없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법도에 있어서는 사탄도 항의를 못 하는 것입니다. 간섭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을 갖고는 사탄이 참소를 못 하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 혹은 지식을 가지고는 다 참소할 수 있지만 사랑의 법도, 참된 사랑을 가지고는 참소를 못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참소를 못 하시고, 사탄도 참소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 법도는 땅에나 하늘에나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돈을 가지고 갈 때는 “내가 너에게 얼마를 줬는데, 나에게 얼마를 줘야 될 것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에서만 더 많이 갚아 주는 것입니다. 백 배 천 배로 갚아 줍니다. 영계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 여러분의 마음에 사랑의 종소리가 울려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등불이 점점 커집니다. 그 빛은 오색 찬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다이아몬드 빛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빛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 빛 가운데는 맛이 있습니다. 그것은 볼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자꾸 보면 볼수록 취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에서 사랑의 종을 울려서 하늘땅을 움직이고 모든 만민을 움직이게 되면, 하나님도 “아…” 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눈물을 얼마나 흘렸느냐, 사랑의 애달픔을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그게 여러분의 재산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 하는 걸 생각해 봅시다. 지금 이 세상은 환자들이 있는 병원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는 병원이고, 사람들은 전부 다 입원한 자들입니다. 병원에 들어간 사람은 집에 무슨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낫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약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조제, 사랑의 약을 투입하는 날에는 어느 사회의 어디를 막론하고 전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으면 자기 아들딸도 사랑할 줄 알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도 사랑할 줄 알고, 자기 나라를 사랑할 줄 알고, 자기 세계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병에서 낫게 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었던 사탄의 그물을 찢어 버리고 사랑의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고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위대한 사랑을 잃어버려 가지고 사랑의 절망에 허덕이는 제일 비참한 자리에 갑니다. 그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면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때는 “누구 때문에 그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이렇게 됐구나” 하고 전부 남을 원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사랑했다가 그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배반하게 되면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랑의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랑의 종소리를 천지에 울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종소리를 듣고, 사랑의 마음을 받아 그들이 해방되어 병이 나아 가지고 그들이 또 사랑의 종소리를 울리게 될 때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땅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통해서 해방된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게 될 때 얼마나 기분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홈 처치(home church:가정교회)에 갈 때 의무적으로 가지 말고 사랑의 마음이 사무쳐서 가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감옥에 들어가거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 있다면, 자기가 감옥에 찾아가야 되겠다고 해서 가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감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간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안 갈 수 없어서 가는 곳이 홈 처치라는 것입니다. 그 홈 처치는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천국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의 상속자가 되게끔 하기 위한 곳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늘이 그렇게 나를 이끄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됩니다. (103-27)

영계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고 모든 것에 승리할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로막더라도 다 넘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고, 수많은 성인들이 왔다 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잘났다고 하는 세상에 오늘날 레버런 문이 이런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풍자적입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의 종을 치는 여러분이 되어 치다가 기진해서 쓰러졌다고 할 때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억천만 년, 억만 년이 지나더라도 또다시 계승해 가지고 서로가 이걸 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의 종소리를 울린다면, 그 사랑의 종소리는 주인이 없더라도 억천만 년 울려 퍼져 나갈 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와 먼지가 눈에 들어가고 입에 들어가고 귀에 들어가 가지고 전부 다 막혀 있으면 사랑이라는 것이 들어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사랑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서 협조합니다. 사랑의 상속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협조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역사시대에 마음의 종소리를 크게 울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통일교회와 같이 이렇게 현세에 있어서, 이렇게 사막 같은 시대에 있어서 이런 종소리를 울린 것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희망의 때요, 전체가 완성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 이상 무엇이 있겠습니까? 연극을 하는 한 무대에 내가 배우로 가담했다는 사실이 크나큰 영광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 종소리를 더 크게 울려야 됩니다. 이게 울리기 시작하는 날에는 영원히 이 종소리를 그치지 않게 하려고 그저 있는 힘을 다할 것입니다. 이 나라가 그럴 것이고, 이 세계가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무슨 소리보다도 레버런 문의 소리가 제일 크다고 하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사랑의 소리를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전기처럼 줄이 없이도 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집에 좋은 것이 있고 훌륭한 것이 있으면 “아이구, 이거 우리 선생님한테 갖다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면 부모의 입장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우리 통일교인들에게 전부 다 주고 싶습니다. “미국에 잘사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좋은 차를 내가 사줘야 되겠다. 내가 전부 다 잘 살게 만들어 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산사업을 하는 등 여러분이 모르는 일들을 지금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면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식구들이 영적으로도 그렇게 되어 있지만 육적으로도 선생님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미국도 선생님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시집 장가도 보내고 말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103-30)
여러분도 사랑의 종소리를 마음에서 울리고 사랑의 종소리를 따라서 일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소켓도 준비되어 있고,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구만 갖다 끼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너무 밝아서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몰려올 것이고, 또 소리라고 한다면 너무 커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내가 되면 어두운 세계에 하나의 등대와 같을 것입니다. 또, 사이렌 탑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내적인 새 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종을 울리자는 것입니다. (10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