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2권 10일
참된 인생길(Ⅱ) (훈독본)
- 영국과 일본 학생들에게 하신 말씀 -
날짜 : 1973. 9. 10(월)
장소 : 미국 로키산맥 산장
참된 사람만이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오늘 말씀드리려는 말씀의 제목은 ‘참된 인생길’입니다.
모든 과학이나 철학이나 종교는 인간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모든 사상도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지만, 이 문제도 결국은 인간에게 귀결되는 문제로서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특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이 참이라고 찾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추구하게 될 때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69-54)
인간이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선한 것과 통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공통적인 입장에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오늘날 우리가 인간 세계에서 흔히 보고 있는 사랑이냐? 아닙니다. 참된 사랑이 문제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랑은 영원한 것, 참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유일하다고 주장합니다. 단 하나의 내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불변과 유일 그리고 영원이라는 형용사를 갖다 붙여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 명사는 참된 사랑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랑을 봤느냐, 만났느냐, 찾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지 못합니다. 만일에 이 사랑이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암흑 같고 얼마나 사막 같은 세상이 되겠어요! 만일 없다고 하더라도 가상적으로 만들어 놓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참된 사랑이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69-55)
하나님이 지금까지 필요로 하신 것
그 다음에는 이것을 추려 봐야 참된 인간이 가야 할 길, 참된 인간이 그리워하는 길, 참된 인간이 찾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은 생명입니다. 참된 생명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생명이 참된 생명이냐고 묻게 될 때 나는 참된 생명을 갖고 있다고 대답할 자신이 있어요? 없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그저 학교나 다니고 사회생활이나 하는 그런 것이 참된 생명을 가진 사람의 생활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느냐 할 때,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생명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단 하나의 생명으로서 불가침권을 가지고 불변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참된 생명이라면 여기에 영원이요, 불변이요, 유일하다는 말을 갖다 붙여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살고 있는 생활이 과연 인류가 요구하고, 역사가 요구하고, 도의 길을 가는 종교인들이 원하는 그런 참된 생명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지 못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치 있는 생명을 중심삼은 가치 있는 인생관, 가치 있는 세계관을 추구하게 됩니다. 어제 이렇게 살다가 오늘 이렇게 변하는 생활과 변할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서 꾸준히 진행해 갈 수 있는 생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희망입니다. 참된 진리를 통해서 희망의 길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렇게 묻게 될 때, 대답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은 사상을 존중시하고 하나의 평화세계, 희망의 세계를 만들자고 하는 세계적 종말시대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따로따로 찾아야 되겠느냐, 한꺼번에 찾을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이라고 하는 것은 혼자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이 상관관계를 가지고 참된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느냐? 인간은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결과적인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원인을 떠나 가지고 참이 있을 수 있느냐?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라는 문제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느냐?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하고 우리 인간이 최고의 희망으로 찾고 있는 참된 자리는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대관절 그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서 좋아하시는 게 무엇이겠는가? 하나님도 참된 사랑을 찾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체로, 영원한 희망과 소망의 중심체로 계시는 것입니다. 영원하고 불변하고 유일한 분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계시는 것 외에는 원할 것이 없습니다. (69-55)
메시아 사상
그러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은 언제 나타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었다면 하나님은 그 인간을 영원한 사랑의 대상, 영원한 생명의 대상, 영원한 희망의 대상으로 지으셔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 있는 제일 귀한 게 무엇이냐 할 때, 하나님도 “영원한 사랑이다.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희망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가진 하나님과 사람, 둘이 해결을 짓는 데서만이 참된 사랑의 세계가 나올 수 있고, 참된 생명의 세계가 나올 수 있고, 참된 희망의 세계가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가고, 이래 가지고는 안됩니다. 올라가면 따라서 올라가고, 언제나 같이 행동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인간이 지금까지 인간이 필요로 하는 주체를 인간 세계에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아니고는 안됩니다.
그런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염려하는 이상으로 염려하실 것 아니겠어요? 그러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과 어느 한 때라도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한 역사적 타이틀을 내거신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인류역사 가운데 메시아 사상은 인간들이 요구해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69-58)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이렇게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요? 그분의 아들딸이 되고 싶다” 할 것입니다. 왜 아들딸이 제일 좋으냐? 제일 가까운 자리는 부자관계입니다.
내가 없으면 부모의 사랑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부모의 사랑이 나와 더불어 상관되어 있고, 부모의 생명이 나와 더불어 상관되어 있고, 부모의 희망이 나와 더불어 상관되어 있습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의 결실체요, 생명의 결실체요, 희망의 결실체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의 자리가 가치 있는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사랑은 내 사랑이요, 부모의 생명은 내 생명이요, 부모의 희망은 내 희망으로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갖지 못한 인간 세계에 태어난 부모도 이와 같은 사랑을 중심삼고 자식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과 내일의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부모가 있다고 할진대, 그런 부모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생명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시겠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세포들이 폭발할 수 있는 자극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손을 붙잡는 것으로 생명력이 발동하고 희망이 연결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인간은 그런 자리까지 추구합니다.
그러면 아들딸의 특권은 무엇이냐? 그분은 내 것, 그분이 갖고 있는 것이 내 것인 동시에 그분의 사랑까지도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이 끌려오고, 사랑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끌려오고, 하나님의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가는 데로 하나님이 가십니다. 이 놀라운 인간 본연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69-59)
나를 주장하는 데는 참된 사랑이 성립 안 돼
하나님이 왜 인간을 지으셨느냐? 상대가 없는 하나님으로서는 자극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를 만들어 가지고 이상적인 사랑과 생명 그리고 희망의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걸고 지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투입이라는 말, 무조건 투입이라는 말, 전체 투입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한테 있어서 창조란 자기 힘의 투입이요, 사랑의 투입이요, 생명의 투입이요, 희망의 투입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셨느냐? 백 퍼센트 투입을 해 가지고 백만큼 완성되면, 거기에 상대적인 사랑이 플러스되어 하나님한테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극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에 대해서 전체를 투입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을 위해서 투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있겠다고 하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결국 참된 하나님,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가진 그분이 맨 처음 인간에게 주고 싶어하신 것은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주는데 자기 입장에서 준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 들어가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은 너를 위해서 가진 것이고, 내가 영원한 사랑의 주체인 것은 너를 위한 것이고, 내가 영원한 소망의 주체인 것도 너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전부를 네게 주겠다” 하시게 될 때, 여기서부터 참된 사랑이 발원된다는 것입니다. (69-61)
예수님이 특출하게 주장한 것
그러면 역사시대에 그렇게 자기 개인을 떠나 나라를 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주려고 한 그런 사람이 대관절 있었느냐? 오늘날 기독교가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지고 이 종말시대까지 왕좌에 올라 있느냐? 그것은 어떠한 성인보다도 본질적인 원칙에 가까운 진리를 주장했기 때문이고 그런 길을 가르쳐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기독교가 세계를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볼 때 타당합니다.
예수님은 자기편에 있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로마 병정들, 원수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 주고 그들 앞에 자기 생명의 핏줄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넘겨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간곡한 입장에서 왔다간 사람은 역사시대를 대표해서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특출하게 주장한 것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한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자의 관계를 찾자는 것이었습니다. (69-62)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참된 세계냐
오늘날의 인간들도 그런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 땅 위에 살기를 하나님도 바라실 것이고 예수님도 바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아들을 바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만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딸이 있어야 됩니다. 둘을 결혼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으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위하시는 가정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걸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상적인 혈족을 남기기 위한 뜻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보고 싶으셨던 것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참된 아들이었고, 그뿐만 아니라 누이동생이 있으면 그 누이동생의 참된 오빠가 되는 것을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된 남편이 되는 것, 참된 아버지가 되는 걸 보고 싶으셨습니다.
그것만으로 끝났느냐? 아닙니다. 3대만 되면 사방으로 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는 참된 아저씨가 되기를 원하셨고, 참된 할아버지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또한, 중심존재로서 참된 왕이면 왕이 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아들로서 최고의 권위를 갖출 수 있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자였습니다. 만일 예수님보다 더 훌륭한 여자가 있었다면 장가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결혼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희망이 될 수 있었던 참된 아들딸을 갖고 싶었겠어요, 안 갖고 싶었겠어요? 그 다음에는 참된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참된 아들, 참된 오빠, 참된 남편, 참된 아버지, 참된 할아버지, 참된 왕으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한테 없었겠느냐?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만나 봤어요? 못 만나 봤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만나 봤어요? 못 만나 봤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참된 세계예요? 아닙니다. (69-64)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입하는 데 행복과 희망과 보람이 있어
대관절 인간은 왜 태어났느냐? 인간이 태어난 것은 나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다른 주체, 혹은 상대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한 세상이 되었느냐?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태어났다는 관념 때문입니다. 이 관념이 역사를 망하게 하고 악한 세상, 타락한 세상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타파하지 않으면 새로운 희망의 세계가 나타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여기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쓸 데가 없습니다. 여자가 없다고 하게 되면, 남자들은 1세기만 돼도 다 없어집니다.
그러면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태어난 근본이 위해서 태어났다면, 내가 해야할 사랑이 나를 위하는 사랑이면 모순된 사랑입니다. 남자의 사랑은 여자를 통하여, 남자의 생명은 여자를 통하여, 남자의 희망은 여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백 퍼센트 투입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 퍼센트 자기의 상대존재가 발생함과 동시에 상대가 사랑을 플러스해 가지고 나에게 더 큰 것으로 갚아 준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희망이 있고,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은 전부 다 자기를 주장하는 데, 악은 자기를 주장하는 데, 사탄은 자기를 주장하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새로운 이상세계, 참된 인생길, 참된 희망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자기를 중심삼은 모든 여건을 뒤집어 가지고 상대를 위하여 전체를 투입해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고 새로운 인생관이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 가든지 중심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진정으로 주게 되면 진정한 중심자, 주체로 모시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주는 날에는 상대 앞에 완전한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놀라운 길이 있습니다. (69-66)
지상천국을 형성하는 운동
종교에서 희생과 온유겸손, 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말없이 희생해 나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도 이런 원칙에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가르침이 있는 것을 볼 때 참된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긍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뜻을 받드는 곳, 창조 당시의 하나님과 같이 전체를 투입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참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에 많은 나라들이 있는데 그 나라들 가운데 아무리 조그만 나라라도 서로가 위하는 그런 나라라면, 위하는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는 나라라면 이 넓은 세상에 미국이라든가 문명국가가 많지만 어디를 찾아가겠느냐 할 때 여러분의 본심은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고 해도 그 나라를 찾아가서 살고 싶을 것입니다. 천국은 그런 곳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주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주고, 이 둘이 합해서 아들딸을 위해주고, 그 아들딸은 부모를 위해주고, 그 다음에 이들이 하나되어 나라를 위해주고, 나라가 하나되어 세계를 위해주기 위한 사상체계를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개인에서부터 가정과 나라 그리고 세계로 줄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지상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한번 줘 보자는 것입니다. 이 운동이 세계의 새로운 부활운동이요, 새롭게 살 수 있는 길이요, 지상천국을 형성하는 운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온다면 그 메시아는 와서 이런 길을 개척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는 개인이 참되게 갈 수 있고, 가정이 참되게 갈 수 있고, 나라와 세계가 참되게 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보여 주고 실천해서 모든 내용을 제시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과 더불어 그렇게 가면 틀림없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이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바라는 참된 인생길입니다. 그렇게 하자는 운동이 우리 통일교회의 운동입니다. 본인도 여러 면에서 다년간 부딪쳐 봤고 알아 봤고 찾아 봤지만 이 길이 아니고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생애를 바쳐서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9-68)*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10일, 원문
참된 인생길(Ⅱ)
- 영국과 일본 학생들에게 하신 말씀 -
날짜 : 1973. 9. 10(월)
장소 : 미국 로키산맥 산장
참된 사람만이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오늘 말씀드리려는 말씀의 제목은 ‘참된 인생길’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방대한 문제입니다. 현재까지의 철학 혹은 과학이 동원되고 모든 종교가 동원되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남아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를 내걸 때 “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어디 얘기해 보자구요.
모든 과학이나 철학이나 종교는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하면 인간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인간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모든 사상도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지만, 이 문제도 결국은 인간에게 귀결되는 문제로서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가 어떠한 인간으로 말미암아 해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특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과 거짓이 있다면 그야말로 참 중의 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사람들을 볼 때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으로 당대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과연 참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힘만을 가지고는 참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식을 가진 사람이 참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지식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러면 돈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 그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이라고 찾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추구하게 될 때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을 봤지만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69-54)
그러면 여기에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하는 것을 추려 봅시다. 인간이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선한 것과 통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공통적인 입장에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오늘날 우리가 인간 세계에서 흔히 보고 있는 사랑이냐? 아닙니다. 참된 사랑이 문제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랑은 영원한 것, 참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유일하다고 주장합니다. 단 하나의 내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불변과 유일 그리고 영원이라는 형용사를 갖다 붙여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 명사는 참된 사랑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물론이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라는 대답은 정답이요, 당연한 대답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랑을 봤느냐, 만났느냐, 찾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지 못합니다.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그러한 사랑을 찾고 있는데, 왜 못 찾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도대체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가망성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에 이것이 없다고 한다면, 이 사랑이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암흑 같고 얼마나 사막 같은 세상이 되겠어요! 만일 없다고 하더라도 가상적으로 만들어 놓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참된 사랑이 아니겠어요? 다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69-55)
하나님이 지금까지 필요로 하신 것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이것을 추려 봐야 참된 인간이 가야 할 길, 참된 인간이 그리워하는 길, 참된 인간이 찾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은 무엇이 되겠느냐? 생명입니다. 참된 생명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생명이 참된 생명이냐고 묻게 될 때 “아! 나는 영국을 대표하고, 나는 일본을 대표했기 때문에 참된 생명을 갖고 있고 말고”라고 대답할 자신이 있어요? 없습니다.
참된 생명이 어디 있느냐? 있느냐, 없느냐?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그저 학교나 다니고 사회생활이나 하는 그런 것이 참된 생명을 가진 사람의 생활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느냐 할 때,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폭탄이 옆에 꽝꽝 떨어지면 “아이고, 나 죽고 싶으니까 들어가 죽겠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성인이니까, 나는 권력이 있으니까, 나는 돈이 있으니까 안 죽는다” 하는 것은 안 통한다구요. 도망가게 마련입니다.
그걸 보면, 우리 인간은 생명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이 태어나서 빵긋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생명이 단 하나의 생명으로서 불가침권을 가지고 불변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그런 생명이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생명이 참된 생명이라면 여기에 영원이요, 불변이요, 유일하다는 말을 갖다 붙여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살고 있는 생활이 과연 인류가 요구하고, 역사가 요구하고, 도의 길을 가는 종교인들이 원하는 그런 참된 생명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지 못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치 있는 생명을 중심삼은 가치 있는 인생관, 가치 있는 세계관을 추구하게 됩니다. 어제 이렇게 살다가 오늘 이렇게 변하는 생활과 변할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서 꾸준히 진행해 갈 수 있는 생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되겠느냐? 그것은 희망입니다. 참된 진리를 통해서 희망의 길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사람들이 되었어요?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사람이 되었느냐구요?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렇게 묻게 될 때, 대답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은 사상을 존중시하고 하나의 평화세계, 희망의 세계를 만들자고 하는 세계적 종말시대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따로따로 찾아야 되겠느냐, 한꺼번에 찾을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이라고 하는 것은 혼자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이 상관관계를 가지고 참된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느냐? 인간은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결과적인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원인을 떠나 가지고 참이 있을 수 있느냐?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라는 문제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느냐?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하고 우리 인간이 최고의 희망으로 찾고 있는 참된 자리는 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대관절 그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서 좋아하시는 게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게 뭐예요? 지식이에요, 돈이에요, 권력이에요? 아닙니다. 무엇이겠어요? 하나님도 할 수 없이 참된 사랑을 찾으실 것입니다. 이 답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필요로 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체로 계십니다. 영원한 희망과 소망의 중심체로 계시는 것입니다. 영원하고 불변하고 유일한 분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계시는 것 외에는 원할 것이 없습니다. 그 외에는 원하실 것이 없는 것입니다. (69-55)
메시아 사상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은 언제 나타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었다면 하나님은 그 인간을 영원한 사랑의 대상, 영원한 생명의 대상, 영원한 희망의 대상으로 지으셔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크냐 하면 하나님도 자기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더라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 있는 제일 귀한 게 무엇이냐 할 때, 하나님도 “영원한 사랑이다.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희망이다” 하시는 것밖에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문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가진 하나님과 사람이 둘이서 해야 됩니다. 그렇게 둘이 해결을 짓는 데서만이 참된 사랑의 세계가 나올 수 있고, 참된 생명의 세계가 나올 수 있고, 참된 희망의 세계가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가고, 이래 가지고는 안됩니다. 올라가면 따라서 올라가고, 언제나 같이 행동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인간이 지금까지 할 것은 다 해봤다구요. 따라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주체를 인간 세계에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아니고는 안됩니다.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 그런 하나님이 계신다면, 절망 중에 있는 청년들은 그 하나님을 만나 가지고 다시 희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또한 그런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염려하는 이상으로 염려하실 것 아니겠어요? 그러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과 어느 한 때라도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한 역사적 타이틀을 내거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메시아 사상입니다.
인류역사 가운데 메시아 사상은 인간들이 요구해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이 있을 성싶다는 것을 우리는 지레 인정할 수 있습니다. (69-58)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이렇게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요? 친구,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위가 되고 싶어요? 무엇을 원해요? 제일 높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아, 나는 사위나 며느리도 싫어! 나는 그분의 아들딸이 되고 싶다” 할 것입니다. 그건 여러분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틀림없는 대답입니다.
그러면 왜 아들딸이 되려고 하느냐? 왜 아들딸이 제일 좋으냐?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 부모가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그러면 그 부모와 나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문제를 따지고 볼 때 제일 가까운 자리는 부자관계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부모의 사랑과 생명이 집중된 자리, 부모의 희망을 대신하는 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게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게 위대한 것입니다.
내가 없으면 부모의 사랑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부모의 사랑이 나와 더불어 상관되어 있고, 부모의 생명이 나와 더불어 상관되어 있고, 부모의 희망이 나와 더불어 상관되어 있습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의 결실체요, 생명의 결실체요, 희망의 결실체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의 자리가 가치 있는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사랑은 내 사랑이요, 부모의 생명은 내 생명이요, 부모의 희망은 내 희망으로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바라보게 될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라고 합니다. “이는 내 사랑의 실체요, 이는 내 생명의 실체요, 이는 내 희망의 실체”라는 것을 부모는 느끼고 깨닫고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은 하루만 안 봐도 보고 싶고, 금방 봤어도 또 보고 싶습니다. 그건 암만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입니다. 없으면 죽을 것 같고, 거기에는 모든 희망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갖지 못한 인간 세계에 태어난 부모도 이와 같은 사랑을 중심삼고 자식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과 내일의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부모가 있다고 할진대, 그런 부모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생명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시겠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세포들이 폭발할 수 있는 자극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자리까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손을 붙잡는 것으로 생명력이 발동하고 희망이 연결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인간은 그런 자리까지 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리가 없다면 모르지만, 그런 자리가 있다면 거기에 대해 한번 투기적인 생활을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지었는데 무슨 존재로 지었느냐 하면 사랑의 대상이요, 생명의 대상이요, 희망의 대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이 놀랍고 위대한 가치를 인간은 다시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들딸의 특권은 무엇이냐? 그분은 내 것, 그분이 갖고 있는 것이 내 것인 동시에 그분의 사랑까지도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생명, 희망까지도 내 것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이 끌려오고, 사랑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끌려오고, 하나님의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가는 데로 하나님이 가십니다. 이 놀라운 인간 본연의 가치가 있을 성싶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추구해 봐도 타당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희망이란 말도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생명도 혼자 독단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입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69-59)
나를 주장하는 데는 참된 사랑이 성립 안 돼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왜 인간을 지으셨느냐? 상대가 없는 하나님으로서는 자극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를 만들어 가지고 이상적인 사랑과 생명 그리고 희망의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그 이상 멋진 결론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야! 사람아, 나타나라’ 해 가지고 그렇게 간단하게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걸고 지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투입이라는 말, 무조건 투입이라는 말, 전체 투입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나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손해나는 곳을 찾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있어서 창조란 자기 힘의 투입이요, 사랑의 투입이요, 생명의 투입이요, 희망의 투입이었습니다. 자기 자체의 소모를 말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을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참된 사랑을 이루시기 위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상대에게 백 퍼센트 투입하셨습니다. 그렇게 투입한 과정은 하나님의 자체의 소모였습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투입했다고 하는 날에는 문제가 됩니다. 백 퍼센트 투입을 해 가지고 백만큼 완성되면, 거기에 상대적인 사랑이 플러스되어 하나님한테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극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에 대해서 전체를 투입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도 하나님을 위해서 투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있겠다고 하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기를 전부 다 자식한테 투입해 가지고 그 자식과 더불어 있겠다고 하는 데서 사랑과 생명 그리고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결국 참된 하나님,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가진 그분이 맨 처음 인간에게 주고 싶어하신 것은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주는데 자기 입장에서 준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 들어가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경우와 다릅니다.
여러분, 완전한 사랑이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이 있는데, 이것을 이만큼 남겨 놓고 사랑했다면 그것은 완전한 사랑이 못 됩니다. 하나님이 “내가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은 너를 위해서 가진 것이고, 내가 영원한 사랑의 주체인 것은 너를 위한 것이고, 내가 영원한 소망의 주체인 것도 너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전부를 네게 주겠다” 하시게 될 때, 여기서부터 참된 사랑이 발원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나를 주장하는 데는 참된 사랑이 성립 안 되는 것입니다.
친구 중에는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좋은 친구는 나를 만나면 나한테 주려고 하는 친구입니다. 진짜 좋은 친구라면 자기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희망을 다 줍니다. 그런 친구가 진짜 좋은 친구입니다. 결국 좋은 친구는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만을 위해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69-61)
예수님이 특출하게 주장한 것
그러면 역사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한번 알아보자구요. 부모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게 될 때는 그를 효자라고 합니다. 또한, 나라나 백성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치게 될 때는 그를 충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 위인들은 많지만 성현들은 많지 않습니다. 성현이란 나라로부터 환영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로부터 반대를 받고 쫓김을 받는 가운데서 성현들이 나왔습니다.
성현은 세계 인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인류의 생명을 책임지고 자기의 모든 사랑과 생명 그리고 희망을 투입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가 죽어간 다음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전부 다 바치고 갔다고 하게 되면 그는 성현 중에서도 성현의 왕좌, 충신 중에서도 충신의 왕좌, 혹은 효자 중에서도 효자의 왕좌에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닙니까? 전부를 투입하려고 하는 거기에 참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에 그렇게 자기 개인을 떠나 나라를 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주려고 한 그런 사람이 대관절 있었느냐? 오늘날 기독교가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지고 이 종말시대까지 왕좌에 올라 있느냐? 그것은 어떠한 성인보다도 본질적인 원칙에 가까운 진리를 주장했기 때문이고 그런 길을 가르쳐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기독교가 세계를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볼 때 타당합니다.
예수님은 자기편에 있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로마 병정들, 원수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 주고 그들 앞에 자기 생명의 핏줄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넘겨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간곡한 입장에서 왔다간 사람은 역사시대를 대표해서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특출하게 주장한 것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한 것입니다. 독생자라는 명사를 역사시대에 선포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자의 관계를 찾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부자의 관계를 찾자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69-62)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참된 세계냐
오늘날의 인간들도 그런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 땅 위에 살기를 하나님도 바라실 것이고 예수님도 바랄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나온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참된 사람의 종류에 끼는 데 있어서 어떤 종류의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실 것이냐?
하나님은 완전한 아들을 바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만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무엇이 있어야 돼요? 딸이 있어야 됩니다. 딸이 있어 가지고 무엇을 하게요? 둘을 결혼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결혼해서는 뭘 해요? 아들딸을 낳으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위하시는 가정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들을 주장했고 신랑 신부를 주장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걸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상적인 혈족을 남기기 위한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보고 싶으셨던 것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참된 아들이었고, 그뿐만 아니라 누이동생이 있으면 그 누이동생의 참된 오빠가 되는 것을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된 남편이 되는 것, 참된 아버지가 되는 걸 보고 싶으셨습니다.
그것만으로 끝났느냐? 아닙니다. 3대만 되면 사방으로 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는 참된 아저씨가 되기를 원하셨고, 참된 할아버지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또한, 중심존재로서 참된 왕이면 왕이 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아들로서 최고의 권위를 갖출 수 있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만나셨다고 봐요?
예수님이 남자였어요, 여자였어요? 틀림없는 남자였습니다. 만일 예수님보다 더 훌륭한 여자가 있었다면 어떻게 하고 싶었겠어요? 장가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여러분들 가운데 남자들도 자기보다 더 훌륭한 여자가 있으면 장가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결혼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희망이 될 수 있었던 참된 아들딸을 갖고 싶었겠어요, 안 갖고 싶었겠어요? 자기의 아들딸만 있어 가지고 되었겠어요? 자기의 형제가 있었으면 참된 조카도 갖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된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참된 아들, 참된 오빠, 참된 남편, 참된 아저씨, 참된 할아버지, 참된 왕으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한테 없었겠느냐?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만나 봤어요? 못 만나 봤습니다. 틀림없이 못 만나 봤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만나 봤어요? 못 만나 봤습니다. 틀림없이 못 만나 봤습니다. 우리만 못 만나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못 만나 보셨다구요.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참된 사람을 만나서 일생을 이렇게 살아야 된다, 가정은 이렇게 가야 된다, 민족은 이렇게 가야 된다, 국가는 이렇게 가야 된다, 세계는 이렇게 가야 된다고 가르쳐 준 참된 길을 우리가 보았느냐? 배웠느냐? 보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참된 세계예요?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부부, 형제들이 전부 다 참되다고 할 수 있어요? 아무리 여러분이 자신 있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아니오” 하는 것이 당연한 대답입니다. (69-64)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입하는 데 행복과 희망과 보람이 있어
인간은 왜 태어났느냐? 여기서 다시 한 번 알아봅시다. 대관절 인간은 왜 태어났느냐? 인간이 태어난 것은 나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다른 주체, 혹은 상대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역사가 왜 망해 가느냐?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한 세상이 되었느냐?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태어났다는 관념 때문입니다. 이 관념이 역사를 망하게 하고 악한 세상, 타락한 세상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타파하지 않으면 새로운 희망의 세계가 나타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여기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체격이 건장하고 “어, 내가 천하에 이만하면 아시아를 움직일 수 있고 세계를 메주 덩어리 밟듯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내가 제일이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는 세계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먼저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느냐?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가 이렇게 생긴 것은 누구 때문이에요? 남자 때문에 이렇게 생겼어요? 아무리 봐도 남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나지 않고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쓸 데가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남자도 여자에게는 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없다고 하게 되면, 남자들은 1세기만 돼도 다 없어집니다. 전쟁이 없어도 다 없어집니다. 싸우지 않아도 그냥 다 없어집니다. 전부 다 깨끗이 없어진다구요.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미국 여자들 “남자가 여자보다 나을 게 뭐야? 여자가 제일이지” 하겠지만, 미국 여자들도 왜 태어났느냐 하면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태어난 근본이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면, 내가 해야할 사랑이 나를 위하는 사랑이면 모순된 사랑입니다. 남자의 사랑은 여자를 통하여, 남자의 생명은 여자를 통하여, 남자의 희망은 여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백 퍼센트 투입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 퍼센트 자기의 상대존재가 발생함과 동시에 상대가 사랑을 플러스해 가지고 나에게 더 큰 것으로 갚아 준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희망이 있고, 거기에 보람이 있는 것 입니다.
타락은 전부 다 자기를 주장하는 데, 악은 자기를 주장하는 데, 사탄은 자기를 주장하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새로운 이상세계, 참된 인생길, 참된 희망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자기를 중심삼은 모든 여건을 뒤집어 가지고 상대를 위하여 전체를 투입해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고 새로운 인생관이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 가든지 중심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힘으로 싸우고 밟고 죽이고, 그렇게 강제로 중심존재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투쟁이 있고, 고통이 있고, 비참이 있고, 희생이 동반됩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주는 사람은 빚을 지우는 사람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빚을 지는 사람은 머리를 숙이기 마련입니다. 진정으로 주게 되면 진정한 중심자, 주체로 모시려고 합니다.
선생이 학생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완전히 주려고 하게 되면, 학생들은 그 선생을 영원히 받들려고 합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가 백성들을 위해서 완전히 주려고 하게 되면, 백성들은 그 주권자를 영원히 받들려고 합니다. 역사이래 어떠한 절대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인류를 위해서 갖은 희생을 하면서도 주려고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인류 앞에 추앙을 받을 수 있는 중심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 같았으면 “네 이놈, 왜 안 믿어”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전부 다 밟아 죽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위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죽었다고 해도 나타나지 않고 없는 것같이 계시는 것을 볼 때 위대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주는 날에는 상대 앞에 완전한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놀라운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69-66)
지상천국을 형성하는 운동
여러분, 그렇게 해보라구요! 이 미스터 문의 말이 거짓인가, 참인가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종교에서 희생과 온유겸손, 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말없이 희생해 나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도 이런 원칙에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가르침이 있는 것을 볼 때 참된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긍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뜻을 받드는 곳, 창조 당시의 하나님과 같이 전체를 투입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참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에 많은 나라들이 있는데 그 나라들 가운데 아무리 조그만 나라라도 서로가 위하는 그런 나라라면, 위하는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는 나라라면 이 넓은 세상에 미국이라든가 문명국가가 많지만 어디를 찾아가겠느냐 할 때 여러분의 본심은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고 해도 그 나라를 찾아가서 살고 싶을 것입니다. 천국은 그런 곳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주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주고, 이 둘이 합해서 아들딸을 위해주고, 그 아들딸은 부모를 위해주고, 그 다음에 이들이 하나되어 나라를 위해주고, 나라가 하나되어 세계를 위해주기 위한 사상체계를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개인에서부터 가정과 나라 그리고 세계로 줄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지상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희망을 한번 줘 보자는 것입니다. 이 운동이 세계의 새로운 부활운동이요, 새롭게 살 수 있는 길이요, 지상천국을 형성하는 운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온다면 그 메시아는 와서 이런 길을 개척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는 개인이 참되게 갈 수 있고, 가정이 참되게 갈 수 있고, 나라와 세계가 참되게 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보여 주고 실천해서 모든 내용을 제시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과 더불어 그렇게 가면 틀림없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이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바라는 참된 인생길입니다. 그렇게 하자는 운동이 우리 통일교회의 운동입니다. 본인도 여러 면에서 다년간 부딪쳐 봤고 알아 봤고 찾아 봤지만 이 길이 아니고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생애를 바쳐서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