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2권 9일
참된 인생길(Ⅰ) (훈독본)
날짜 : 1973. 8. 19(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3대 부모로부터 태어난 인간
인간은 누구나 크나큰 소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기 자기의 희망을 달성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이라는 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커지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최고의 희망의 절정, 최고의 기준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나, 그러한 나를 우리는 지니고 있습니다.
무한한 희망을 갖고 있는 나지만, 현재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두고 볼 때 나 자신에게는 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라는 그 나를 다시 한 번 분석 비판해 보게 될 때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 못 선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면, 주위에는 식구가 둘러 있고 그 주위에는 자연이 둘러 있습니다. 확대하면, 지구성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공중이라는 것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공중을 중심삼고 보면 태양이 비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고립된 여러분이 아니라 이렇게 연결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태양 빛을 받고 공기를 마시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은 이 지구성에서 먹을 것을 신세지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만약 여러분 혼자만 있고 이 동료들이 없다면 어떠한 입장에 있겠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비참하다면 비참할 것이요, 불쌍하다면 불쌍할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혼자 세계를 맘대로 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혼자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최소한도로 다른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는 존재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 앞에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 부모가 나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몸뚱이는 부모의 것이 아닙니다. 몸뚱이의 주인이 누구냐 하면 땅입니다. 여러분의 몸뚱이는 이 땅의 물과 흙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게 될 때 부모도 부모지만 이 땅도 나를 낳은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을 낳아 준 것으로 알지만, 먼저 땅이 여러분의 부모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하는 사람들은 영계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를 낳아 준 부모만이 아니라 낳아 준 부모를 만든 존재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이 부모가 되고, 그 다음에 나를 낳아 준 부모도 있고, 그리고 내가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는 나로서 태어나게 한 하늘 부모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게 될 때 이러한 3대 부모의 혜택을 받고 태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69-9)
참된 행복의 길
여러분은 그런 부모로 말미암아 태어나 가지고 20세가 되기 전, 청년이 될 때까지는 자기가 자기 몸을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부양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것이나 정서적인 문제를 부모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형제로 말미암은 사랑의 심정도 체휼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 7, 8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동무들의 사랑을 받거나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진정한 의미에서 내가 귀하고, 내가 자랑스럽고, 나만은 필요한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자기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참된 자리에서 참되게 생각하면서 참되게 사랑할 수 있는 내 자신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 홀로만 있는데, 나 혼자 좋은데, 나 중심삼은 가운데서 참된 인간의 모습이 있을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에 나를 대해 신세를 끼친 모든 존재들이 나에게서 찾아가는 운동을 벌이면 어떻게 하겠어요?
아무리 얼굴이 잘나고 훌륭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자연이 모든 원소를 공급해 줘서 그렇게 됐는데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자연이 “에이, 이 녀석아! 내 것 내놔라”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구요? 아무리 예쁜 그 눈도 자기의 것이에요? 예쁜 입술도 네 것이냐 이거예요. 얼굴이 네 것이냐, 몸이 네 것이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것이 없는 자리에 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어머니 아버지가 찾아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의 생명이 남아질 수 있어요? 이상적인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주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인간이 높고 큰 욕망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아가고, 부모가 찾아가고, 만물이 찾아가고, 모두가 전부 찾아가게 되면 나는 뭐예요?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인간이 먼저 무엇인지 발견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는 것은 공동 위주, 공동 소유물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69-11)
사람은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이 모든 행복의 여건이 나를 중심삼은 것보다도 상대를 중심삼은 것이 더 많은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아, 난 백만장자다. 나 혼자서도 행복해” 하고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요? “난 학박사가 됐으니까 행복해” 하고 혼자 행복하겠다는 거예요? “난 권력을 쥐었기 때문에 행복해” 하고 혼자 행복해요?
행복의 여건을 두고 볼 때, 나를 떠나 상대를 위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성립될 내용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인이 되고 미남자가 되려는 것도 자기 좋기 위해서 그래요? 전부 다 상대가 필요하고 상대를 위하는 데 있어서 행복의 여건이 성립됩니다. 이건 행복의 절대적 요인인 것을 우리는 발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잘 만들지 못하면 영원한 행복은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환경을 상대적으로 좋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나와 더불어 같이하겠다는 사람, 나와 더불어 같이 기뻐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데, 나와 더불어 살겠다고 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 참된 행복의 길이 생긴다고 우리는 규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69-13)
전체 앞에 플러스시키는 사람이 선한 사람
그러면 나라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때, 지금까지 일생 동안 살면서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느냐? 전부 빚투성이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됐다고 합시다. “아, 나는 의사가 됐기 때문에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걸 분석해 보고 비판해 보게 되면 자기가 배운 것, 진찰하는 것, 연구해 가지고 어떻다는 것, 그런 모든 것을 자기서부터 시작했어요? 어느 중간에서 빌려 가지고, 빚져 가지고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주인은 내가 아니라 다른 데 있습니다.
남의 것을 갖다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도적놈입니다. 도적놈이 별것 아니에요. 주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인 몰래 갖다가 자기 것처럼 행세하는 게 도적놈입니다. 주인이 있으면 “아, 주인 양반! 나 이거 좀 씁시다” 하고 인사하고 쓰게 되면 도적이 안 되는 것입니다.
생물학이니, 해부학이니, 무슨 학이니 하는 여러 가지가 많이 있지만 그 주인들은 전부 다른 데 있는데 의사라고 자기는 중간에 딱 들어앉아 가지고 내 것처럼 자랑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연구한 사람들이 전부 찾아가면 내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의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이 주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어요? 인사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사기만 조작하는 그런 사람한테 주고 싶겠어요? 절대 주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모순된 것을 바로잡는 길을 우리는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내 것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교만한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주인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겠어요? 자기가 갖지 말고 전체에 나누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누어주는 데는 자기 욕심을 걸고 주는 것이 아니라, 주인들이 주고 싶어하는 것을 더 밀어 주고 더 플러스가 되는 데서 주기를 바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좋은 의사냐 나쁜 의사냐 하는 두 가지 길이 생기는데 좋은 의사라면 지금까지 주인들한테 받은 것을 고마워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요, 그것을 적절하게 세계 모든 사람들 앞에 참되게 자기의 것을 플러스시켜서 주고 떼먹지 않고 이익 나게 해서 돌려주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의사가 됐으면, 그 전문분야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플러스를 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주인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회사원이면 회사에 가서 “아, 이 회사 참 좋구만! 편한데, 이거 내 맘대로 하자” 이래 가지고 그 회사에서 공을 세운 공로를 다 집어치우고 “나에게만 이익이 되면 된다” 이러면 되겠어요? 그건 안됩니다. 악한 사람입니다.
회사원이라면 지금까지 회사를 세운 전통을 본받아 가지고 그 혜택권 내에 서서 자기가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보태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선한 사람이고 그 회사에서 기뻐할 수 있는 사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좋구만! 내가 출세 좀 해봐야 되겠다” 이러면 안됩니다. 혼자 들어와서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이런다고 되나요? 아무리 좋다고 이 전체의 뜻이 생겨날 때까지의 선한 공적 기반을 깎아 먹으면서 좋아하게 되면 안됩니다. 그 사람은 통일교회에 아무리 다녀도 다니나 마나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69-14)
선조들의 열매가 되는 부모
인류역사를 중심삼고 여러분이 얼마나 빚진 자리에 서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4백 조에 가까운 수많은 세포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세포들이 전부 다 내 것이에요? 수천 대 조상들의 세포 하나 하나를 배급받은 것입니다. 내 몸뚱이를 귀하게 여기기 전에 선조들 앞에 감사해야 됩니다. 그런데 감사해 봤어요? 손을 보고 “수많은 우리 선조의 세포들이 여기에 있구나. 선조님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한번 해봤어요?
선조는 그만두고 여러분 몸뚱이는 오늘날 이 세계와 미국이라든가, 친구라든가, 부모와 전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세포들은 영국 사람, 불란서 사람, 독일 사람들과 전부 다 같은 조상으로부터 배급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멀리 있는 사람들의 세포뿐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세포도 한 뿌리, 한 할아버지의 세포를 나눠 가진 것입니다. 4백 조나 된다니까 30억 인류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아, 인류여! 고맙습니다. 미국이여, 고맙습니다. 독일이여, 고맙습니다” 그래 봤어요? 또, 내 나라로부터 생명을 이어받을 후손들에게 나와 완전히 하나되어 참된 사람이 되어 달라고 그래 봤어요?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들지 나 같은 사람은 안 만들겠다고 생각해 봤어요? 선조로부터 받은 좋은 세포와 좋은 속성을 전부 모아 가지고 아들딸을 위하여 좋은 세포가 나올 수 있게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어야 합니다. 좋은 것만 골라 놓아야 좋은 것이 나오지 나쁜 것을 골라 놓으면 나쁜 게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참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선조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됩니다. 외향적으로 “세계 인류여, 내 주인이여, 감사합니다” 하고 후손들에게도 “내 열매인 후손들이여, 나를 본받지 말고 훌륭하게 되어라” 하는 생각에 푹 파묻혀야 됩니다.
거기에서 자기를 자랑하고 뽐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요? 이 짧은 인생에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 얼마나 바보 같고 그 얼마나 천치 같고 용납할 수 없는 강도 같은 녀석이냐는 것입니다. 내가 수천 년 수만 년의 혜택을 받았는데, 온 세계의 혜택을 받았는데, 내가 그런 빚을 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갚을 생각은 않고 감사할 줄 모르고 빚지고 있다는 생각도 못 해 가지고 자기만 생각하니까 그건 강도보다 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 중의 지옥, 제일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듣고 보니까 자기를 주장하는 녀석은 정말 어리석고 미욱하고 얼마나 바보냐 이거예요. 인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가는 길은 여기로 갔다 저기로 갔다 하고, 이렇게 저렇게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라 한 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모든 걸 갚아야 하기 때문에 한 길만 감으로써 전체를 갚았다는 대표적인 조건을 세우기를 하나님 혹은 이 우주는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갚을 수 없으니까 갚을 수 있는 제일 좋은 한 장소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요, 형제요, 자매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만 갚으면 됩니다. 여기에서 완전히 갚고, 여기에서 완전히 심고, 여기에서 완전히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조들을 찾아갈 수 있어요? 수많은 선조들을 찾아갈 수 없으니까, 만날 수 없으니까 선조들의 열매가 되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됩니다. 그것만이 선조들에게 갚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69-16)
역사과정에서 많은 빚을 진 나
인류를 보면 남자와 여자입니다. 이 둘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만 되게 되면, 둘이서 서로 여기에서 갚는다면 인류 앞에 갚을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한테 빚진 것을 갚는 길이 된다 이거예요. 그 다음에는 형제끼리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세계 앞에 빚진 것을 갚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좋고 선한 것을 남겨 줌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대한 조상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불평하지 않고 행복하게 좋아하면서 선조들을 위해서 갚고, 남자 여자에게 빚진 것을 갚고, 이 세계 인류 앞에 빚진 것을 갚고, 후대 앞에 좋은 것을 심어 가자는 것이 인생살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를 중심삼고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은 선조들에게 반항하는 것이요, 남자 여자에게 반항하는 것은 인류의 남자 여자들에게 반항하는 것이요, 형제들에게 반항하는 것은 세계 만민에게 반항하는 것이요, 자기 아들딸을 무시하는 것은 후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이 원칙을 따라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가 하나되고, 부처가 자식을 중심삼고 하나돼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빚을 다 갚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조상의 뜻을 가진 부모 앞에 효도를 할 때 부모가 “야야,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젠 네 생각을 좀 해라” 그러면, 그 자리는 빚을 다 갚은 자리입니다. 또, 그 다음에 상대로부터 “이제는 그만해도 돼요. 내가 당신을 위하면 위했지, 이제 당신은 그만두오” 이렇게 되면 다 갚은 거예요. 형제에 대해서도 “아! 형님, 그만하소. 이제 내가 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형님은 그만두소‘ 이러면 되는 거예요. 자기 후손들을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가정이 있어요? 만일 그러한 자리에서 사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다면 그는 예수님을 안 믿더라도 당장에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원하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은 반대입니다. 동양에서는 부모를 높이고, 자기 상대를 대해 가지고 휙 휘파람을 불며 “어이…”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결혼할 때도 처음에는 색시나 신랑의 얼굴을 못 보고 만나는 것입니다. 또, 아기들을 하나님같이 모시고 그래요. 그런 것을 보면 서양 풍습이 옳은 것 같아요, 동양 풍습이 옳은 것 같아요?
여러분은 부모를 위하고 형제를 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정에서 살고 싶어요,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정에서 살고 싶어요? 위하는 가정에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처녀들이 있는데, 이 다음에 시집갈 때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있고 형제들이 많은 데로 가야 되겠어요, 혼자 있는 데로 가야 되겠어요? 어느 쪽으로 가야 되겠어요? 이렇게 볼 때, 그러한 인생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원칙에 의해서 오늘날 이 세계를 정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원칙만 남겨 놓고 그 가외의 것들은 정리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역사과정에서 많은 빚을 진 내가 지금까지 건방지게 돌아다녔습니다. 얼마나 철면피한 자신이었느냐 이거예요. 강도, 도둑놈이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 놈들이 여기에 왔는데 대접을 해야 되겠어요, “에이, 이 녀석아…” 하면서 탕감시켜야 되겠어요? 발길로 차고 천대해도 그만한 고통으로 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어서 해주소” 이래야 됩니다. (69-18)
참된 인생이 갈 길
통일교회에서 고마운 것은 탕감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빚을 갚자는 거예요. 빚을 갚자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 그 사상은 역사상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까 말했지만, 우리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하나를 잘못하게 되면, 마이너스가 되게 하면 그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항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노정에서 내 한 인생이 잘못하게 되면 모든 인류가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될래요, 모든 인류가 찬양할 수 있는 인생이 될래요? 찬양을 받는 인생이 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이 짧은 기간에 이를 악물고 나를 위하는 것보다도 전체 앞에 빚을 갚는 동시에 빚을 지우고 가겠다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빚을 지우려니까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 우리나라 사람으로부터 세계 각국의 사람, 이 땅 위에 있는 사람부터 영계의 영인들까지 빚을 지우려니까 일생을 남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일생 동안 진 빚이 이렇게 많은데 이 많은 빚을 다 갚고 살게 되면 틀림없이 역사적인 인물이 되고 하나님의 귀한 사람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줘야 됩니다. 어느 만큼 줘야 되느냐? 내 생명을 우주로부터 받았으니 만큼 이 생명을 우주를 위해서 줘야 됩니다. 그게 수수작용이고 탕감법칙입니다. 가정에 주고, 나라에 주고, 세계에 주고, 영계에 주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갈 길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주는 사람은 역사에 남을 사람이요, 하나님이 기억하실 사람이요, 인류의 마음 가운데 칭송받을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해야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해야 되고, 세계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참된 인생이 갈 길입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야 할 표본적인 직행 길입니다. 이렇게 감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밟고 나라로 점핑하고, 나라에서 세계로 점핑하고, 세계에서 하나님한테로 점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역사에 남는 효자가 남고, 나라를 위한 애국자가 남고, 세계를 위한 성인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아들로 남습니다. 인간 최후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욕망이 최고로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최고로 행복할 수 있게 되는데 그 행복은 무한한 행복이요, 전체를 위하는 행복입니다. 전체가 나를 위하고 전체가 날 지지할 수 있는 행복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70년, 80년 동안에 이 길을 따라서 직행해야 됩니다. 이것이 참된 인생길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르쳐 주는 곳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초국가적인 이 전통을 밟아서 세계 인류를 사랑하고, 세계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이런 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거기까지 가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며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가야 참된 인생길을 다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검은 사람도 있고 흰 사람도 있고 노란 사람도 있는데, 흑백이 문제가 아닙니다. 황인, 백인이 문제가 아니고 서로 어떻게 빚을 갚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서로서로 위하는 것만이 남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에서만이 하나의 세계, 하나의 통일된 행복의 이상세계가 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와 같은 무리를 세상에서 들어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봅니다. 요만한 축복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 축복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축복을 받고 싶지요? 그러면 멋있고 힘차게 가기를 바라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69-20)*
천일국 훈독경 제12권 9일, 원문
참된 인생길(Ⅰ)
날짜 : 1973. 8. 19(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3대 부모로부터 태어난 인간
인간은 누구나 크나큰 소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식구들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개개인은 크나큰 소망을 다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기 자기의 희망을 달성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이라는 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커지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최고의 희망의 절정, 최고의 기준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나, 그러한 나를 우리는 지니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무한한 희망을 갖고 있는 나지만, 현재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두고 볼 때 나 자신에게는 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귀중하고, 자기를 옹호하려고 하고, 자기를 위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나라는 그 나를 다시 한 번 분석 비판해 보게 될 때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 못 선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면, 주위에는 식구가 둘러 있고 그 주위에는 자연이 둘러 있습니다. 이것을 확대하면, 여기 미국이라는 나라가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더 확대하면, 지구성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공중이라는 것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공중을 중심삼고 보면 태양이 비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고립된 여러분이 아니라 이렇게 연결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태양 빛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공기를 마시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은 이 지구성에서 먹을 것을 신세지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만약 여러분 혼자만 있고 이 동료들이 없다면 어떠한 입장에 있겠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비참하다면 비참할 것이요, 불쌍하다면 불쌍할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혼자 세계를 맘대로 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혼자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최소한도로 다른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는 존재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 앞에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 부모가 나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이런 몸을 지닌 사람으로 낳아 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몸뚱이는 부모의 것이 아닙니다. 몸뚱이의 주인이 누구냐 하면 땅입니다. 여러분의 몸뚱이는 이 땅의 물과 흙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게 될 때 부모도 부모지만 이 땅도 나를 낳은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을 낳아 준 것으로 알지만, 먼저 땅이 여러분의 부모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하는 사람들은 영계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를 낳아 준 부모만이 아니라 낳아 준 부모를 만든 존재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이 부모가 되고, 그 다음에 나를 낳아 준 부모도 있고, 그리고 내가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는 나로서 태어나게 한 하늘 부모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게 될 때 이러한 3대 부모의 혜택을 받고 태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69-9)
참된 행복의 길
여러분은 그런 부모로 말미암아 태어나 가지고 자라게 됩니다. 여러분은 20세가 되기 전, 청년이 될 때까지는 자기가 자기 몸을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부양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것이나 정서적인 문제를 부모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직계로부터 오는 사랑도 사랑이지만 형제로 말미암은 사랑의 심정도 체휼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부모에게 영향을 받고 형제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 7, 8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동무들의 사랑을 받거나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어떤 스승의 말을 듣든가 어떤 책을 보든가 공부하는 가운데 “아, 인생은 이러한 것이다. 나는 이러 이러해야 되겠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비로소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내가 귀하고, 내가 자랑스럽고, 나만은 필요한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자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여기에는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참된 자리에서 참되게 생각하면서 참되게 사랑할 수 있는 내 자신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환경적인 모든 것을 다 차 버리고 무시하고 나서는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주장할 수 있는 내용과 그렇게 비교의 지능을 갖게 된 것은 환경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만약 부모가 없고 형제가 없고 학교의 동무가 없고 스승도 없고 이 나라가 없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자리에 있겠어요? 이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존재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내가 나를 주장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세우고 싶어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냐 할 때, 그럴 수 없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인간의 참된 모습은 어디서부터 발견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를 우리는 냉철하게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나만 있는데, 나 홀로만 있는데, 나 혼자 좋은데, 나 중심삼은 가운데서 참된 인간의 모습이 있을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에 나를 대해 신세를 끼친 모든 존재들이 나에게서 찾아가는 운동을 벌이면 어떻게 하겠어요?
자연이 말하기를 “야, 아무개야! 내 것을 달라”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아무리 얼굴이 잘나고 훌륭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자연이 모든 원소를 공급해 줘서 그렇게 됐는데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자연이 “에이, 이 녀석아! 내 것 내놔라”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구요? 아무리 예쁜 그 눈도 자기의 것이에요? 예쁜 입술도 네 것이냐 이거예요. 얼굴이 네 것이냐, 몸이 네 것이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것이 없는 자리에 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어머니 아버지가 찾아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의 생명이 남아질 수 있어요? 이상적인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주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인간이 높고 큰 욕망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만은 세계에서 제일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내가 있어서 그렇게 되느냐? 왜 그렇게 되느냐? 내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되게끔 돼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아가고, 부모가 찾아가고, 만물이 찾아가고, 모두가 전부 찾아가게 되면 나는 뭐예요?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나라는 사람은 공(空)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인간이 먼저 무엇인지 발견해야 됩니다. 인간의 참된 길이라고 했으니까 내가 인생의 참된 길, 참된 삶의 길을 가려면 무엇을 발견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라는 것은 공동 위주, 공동 소유물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을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는 자신을 파탄할 수 있으되 공동적 소유물로서 나를 사랑하는 데서는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입니다. (69-11)
그러면 그게 사실 그렇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 생각해 봅시다. 사람은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좋기를 바랍니다. 웃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춤추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노래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행복의 여건이 나만을 중심삼은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 할 때, 나를 중심삼은 것보다도 상대를 중심삼은 것이 더 많은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아, 난 백만장자다. 나 혼자서도 행복해” 하고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요? “난 학박사가 됐으니까 행복해” 하고 혼자 행복하겠다는 거예요? “난 권력을 쥐었기 때문에 행복해” 하고 혼자 행복해요?
행복의 여건을 두고 볼 때, 나를 떠나 상대를 위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성립될 내용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웃을 때 혼자 웃어요? 혼자, 자기 때문에 웃어요? 그러려면 거울을 보면 됩니다. 춤추는 것도 혼자 추려고 그래요? 좋은 옷을 입는 것도 나 때문에 입으려고 그래요? 내가 행복하려고 그래요? 남 좋게 하려고 입는 것입니다. 미인이 되고 미남자가 되려는 것도 자기 좋기 위해서 그래요? 전부 다 뭐냐 하면 상대가 필요하고 상대를 위하는 데 있어서 행복의 여건이 성립됩니다. 이건 행복의 절대적 요인인 것을 우리는 발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잘 만들지 못하면 영원한 행복은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환경을 상대적으로 좋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나와 더불어 같이하겠다는 사람, 나와 더불어 같이 기뻐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데, 나와 더불어 살겠다고 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 참된 행복의 길이 생긴다고 우리는 규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69-13)
전체 앞에 플러스시키는 사람이 선한 사람
그러면 나라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때, 지금까지 일생 동안 살면서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느냐? 여러분은 그거 생각해 봤어요? 전부 빚투성이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됐다고 합시다. “아, 나는 의사가 됐기 때문에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걸 분석해 보고 비판해 보게 되면 자랑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배운 것, 진찰하는 것, 연구해 가지고 어떻다는 것, 그런 모든 것을 자기서부터 시작했어요? 어느 중간에서 빌려 가지고, 빚져 가지고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주인은 내가 아니라 다른 데 있습니다.
남의 것을 갖다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도적놈입니다. 도적놈이 별것 아니에요. 주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인 몰래 갖다가 자기 것처럼 행세하는 게 도적놈입니다. 주인이 있으면 “아, 주인 양반! 나 이거 좀 씁시다” 하고 인사하고 쓰게 되면 도적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인사를 못 하겠으면 무슨 표시라도 하고 갖다가 쓰면 법에 걸리지 않습니다.
생물학이니, 해부학이니, 무슨 학이니 하는 여러 가지가 많이 있지만 그 주인들은 전부 다른 데 있는데 의사라고 자기는 중간에 딱 들어앉아 가지고 내 것처럼 자랑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연구한 사람들이 전부 찾아가면 내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게 자랑할 수 있는 의사예요? 그런 모든 것의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이 주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어요? 인사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사기만 조작하는 그런 사람한테 주고 싶겠어요? 절대 주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이라면 어떨 것 같아요? 그런 사람에게 주고 싶어요? 안 준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많이 배웠다는 것은 많은 주인을 모셨다는 것이 됩니다. 또, 큰 권력을 쥐었다는 것은 많은 권력을 종합한 것을 말합니다. 금력을 가졌다는 것은 모든 금력을 모은 것을 말합니다. 그게 좋은 사람이에요, 나쁜 사람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많이 배우려고 하고 권력과 많은 금력을 가지려고 합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그런데 듣고 보니 반대되지 않아요?
여기에서 한 가지 모순된 것을 바로잡는 길을 우리는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내 것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교만한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주인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겠어요? 자기가 갖지 말고 전체에 나누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누어주는 데는 자기 욕심을 걸고 주는 것이 아니라, 주인들이 주고 싶어하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자리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밀어 주고 더 플러스가 되는 데서 주기를 바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좋은 의사냐 나쁜 의사냐 하는 두 가지 길이 생기는데 좋은 의사라면 지금까지 주인들한테 받은 것을 고마워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요, 그것을 적절하게 세계 모든 사람들 앞에 참되게 자기의 것을 플러스시켜서 주고 떼먹지 않고 이익 나게 해서 돌려주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의사가 됐으면, 그 전문분야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플러스를 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주인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의사라는 것을 이용해 가지고 도적질하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학교에도 가고, 회사에도 가고, 통일교회에도 들어왔습니다. 회사원이면 회사에 가서 “아, 이 회사 참 좋구만! 편한데, 이거 내 맘대로 하자” 이래 가지고 그 회사에서 공을 세운 공로를 다 집어치우고 “나에게만 이익이 되면 된다” 이러면 되겠어요? 그건 안됩니다. 악한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추방당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회사원이라면 지금까지 회사를 세운 전통을 본받아 가지고 그 혜택권 내에 서서 자기가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더 보태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선한 사람이고 그 회사에서 기뻐할 수 있는 사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좋구만! 내가 출세 좀 해봐야 되겠다” 이러면 안됩니다. 혼자 들어와서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이런다고 되나요? 아무리 좋다고 이 전체의 뜻이 생겨날 때까지의 선한 공적 기반을 깎아 먹으면서 좋아하게 되면 안됩니다. 그 사람은 통일교회에 아무리 다녀도 다니나 마나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하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위해 정성들이고 수고한 공적 앞에 자기의 정성을 보태서 확대시킬 수 있는 입장, 더 많이 남겨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통일교회의 선한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번 걸리면 관계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참소를 하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 있으면, 그 천 사람에게 안 했더라도 모두 다 참소하는 것입니다. “뭐야? 한 사람에게 했는데, 왜 천 사람이 전부 그래? 나 혼자 했는데, 한 사람이 그러지 천 사람이 무슨 관련이 있어” 이럴 수 없습니다. (69-14)
선조들의 열매가 되는 부모
인류역사를 중심삼고 역사 가운데 나라는 것을 들고 나와서 한번 얘기해 보자구요! 여러분이 얼마나 빚진 자리에 서 있느냐는 것입니다. 빚졌어요, 안 졌어요? 안 졌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4백 조에 가까운 수많은 세포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세포들이 전부 다 내 것이에요? 수천 대 조상들의 세포 하나 하나를 배급받은 것입니다. 내 몸뚱이를 귀하게 여기기 전에 선조들 앞에 감사해야 됩니다. 그런데 감사해 봤어요? 손을 보고 “수많은 우리 선조의 세포들이 여기에 있구나. 선조님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한번 해봤어요? 그러니까 왕창 잘라 버렸습니다. 해야 할 책임을 안 하고 다 잘라 버렸다는 것입니다.
선조는 그만두고 여러분 몸뚱이는 오늘날 이 세계와 미국이라든가, 친구라든가, 부모와 전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세포들은 영국 사람, 불란서 사람, 독일 사람들과 전부 다 같은 조상으로부터 배급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멀리 있는 사람들의 세포뿐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세포도 한 뿌리, 한 할아버지의 세포를 나눠 가진 것입니다. 4백 조나 된다니까 30억 인류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아, 인류여! 고맙습니다. 미국이여, 고맙습니다. 독일이여, 고맙습니다” 그래 봤어요? 또, 내 나라로부터 생명을 이어받을 후손들에게 나와 완전히 하나되어 참된 사람이 되어 달라고 그래 봤어요?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들지 나 같은 사람은 안 만들겠다고 생각해 봤어요? 선조로부터 받은 좋은 세포와 좋은 속성을 전부 모아 가지고 아들딸을 위하여 좋은 세포가 나올 수 있게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어야 합니다. 좋은 것만 골라 놓아야 좋은 것이 나오지 나쁜 것을 골라 놓으면 나쁜 게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참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선조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됩니다. “당신이 주인이오. 감사합니다” 이래야 됩니다. 외향적으로 “세계 인류여, 내 주인이여, 감사합니다” 하고 후손들에게도 “내 열매인 후손들이여, 나를 본받지 말고 훌륭하게 되어라” 하는 생각에 푹 파묻혀야 됩니다.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를 주장할 것이 하나도 없는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자기를 자랑하고 뽐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요? 이 짧은 인생에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70년 짧은 인생에서 자기를 생각할 시간이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 얼마나 바보 같고 그 얼마나 천치 같고 용납할 수 없는 강도 같은 녀석이냐는 것입니다. 내가 수천 년 수만 년의 혜택을 받았는데, 온 세계의 혜택을 받았는데, 내가 그런 빚을 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갚을 생각은 않고 감사할 줄 모르고 빚지고 있다는 생각도 못 해 가지고 자기만 생각하니까 그건 강도보다 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하다구요. 그러니 지옥 중의 지옥, 제일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도적놈보다 더합니다. 지옥에 가야 됩니다.
이렇게 말을 듣고 보니까 자기를 주장하는 녀석은 정말 어리석고 미욱하고 얼마나 바보냐 이거예요. 인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가는 길은 한 길이라고 전부 사방으로 가르쳐 줘야 됩니다. 여기로 갔다 저기로 갔다 하고, 이렇게 저렇게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라 한 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모든 걸 갚아야 하기 때문에 한 길만 감으로써 전체를 갚았다는 대표적인 조건을 세우기를 하나님 혹은 이 우주는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갚을 수 없으니까 갚을 수 있는 제일 좋은 한 장소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요, 형제요, 자매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만 갚으면 됩니다. 여기에서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완전히 갚고, 여기에서 완전히 심고, 여기에서 완전히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조들을 찾아갈 수 있어요? 수많은 선조들을 찾아갈 수 없으니까, 만날 수 없으니까 선조들의 열매가 되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됩니다. 그것만이 선조들에게 갚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69-16)
역사과정에서 많은 빚을 진 나
인류를 보면 남자와 여자입니다. 이 둘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만 되게 되면, 둘이서 서로 여기에서 갚는다면 인류 앞에 갚을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한테 빚진 것을 갚는 길이 된다 이거예요. 그 다음에는 형제끼리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세계 앞에 빚진 것을 갚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좋고 선한 것을 남겨 줌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대한 조상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불평하지 않고 행복하게 좋아하면서 선조들을 위해서 갚고, 남자 여자에게 빚진 것을 갚고, 이 세계 인류 앞에 빚진 것을 갚고, 후대 앞에 좋은 것을 심어 가자는 것이 인생살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를 중심삼고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은 선조들에게 반항하는 것이요, 남자 여자에게 반항하는 것은 인류의 남자 여자들에게 반항하는 것이요, 형제들에게 반항하는 것은 세계 만민에게 반항하는 것이요, 자기 아들딸을 무시하는 것은 후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가정과 젊은 녀석들을 보라구요! 부모가 어디 있어요? 형제가 어디 있어요? 남편이 어디 있고, 여편네가 어디 있어요? 이건 전부 개돼지새끼같이 됐습니다.
이 나라는 망한다구요! 미국이 잘될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미국이에요, 나쁜 미국이에요? 좋은 곳이에요, 나쁜 곳이에요? 나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이 원칙을 따라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가 하나되고, 부처가 자식을 중심삼고 하나돼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빚을 다 갚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조상의 뜻을 가진 부모 앞에 효도를 할 때 부모가 “야야,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젠 네 생각을 좀 해라” 그러면, 그 자리는 빚을 다 갚은 자리입니다. 또, 그 다음에 상대로부터 “이제는 그만해도 돼요. 내가 당신을 위하면 위했지, 이제 당신은 그만두오” 이렇게 되면 다 갚은 거예요. 형제에 대해서도 “아! 형님, 그만하소. 이제 내가 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형님은 그만두소‘ 이러면 되는 거예요. 자기 후손들을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가정이 있어요? 미국에 그런 가정이 있어요? 만일 그러한 자리에서 사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다면 그는 예수님을 안 믿더라도 당장에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어떤 사람을 원하시겠어요? 그런 사람을 원하십니다. 빚을 지고도 좋다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 마음대로 한다면 망하지요. 그런 빚을 졌기 때문에 부모 앞에 가게 되면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형제를 보고는 “아, 미안하다” 이래야 됩니다. 후손을 대해서도 “내가 선하지 못해서 안됐다”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한 남자가 아니더라도 선하게 될 수 있지 그러지 않고는 악한 사람밖에 더 되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은 반대입니다. 동양에서는 부모를 높이고, 자기 상대를 대해 가지고 휙 휘파람을 불며 “어이…”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결혼할 때도 처음에는 색시나 신랑의 얼굴을 못 보고 만나는 것입니다. 또, 아기들을 하나님같이 모시고 그래요. 그런 것을 보면 서양 풍습이 옳은 것 같아요, 동양 풍습이 옳은 것 같아요? 내가 동양 사람이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원칙을 두고 볼 때 그래야 된다는 것을 해명해 주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를 위하고 형제를 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정에서 살고 싶어요,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정에서 살고 싶어요? 위하는 가정에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처녀들이 있는데, 이 다음에 시집갈 때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있고 형제들이 많은 데로 가야 되겠어요, 혼자 있는 데로 가야 되겠어요? 어느 쪽으로 가야 되겠어요? 이렇게 볼 때, 그러한 인생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원칙에 의해서 오늘날 이 세계를 정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원칙만 남겨 놓고 그 가외의 것들은 정리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역사과정에서 많은 빚을 진 내가 지금까지 건방지게 돌아다녔습니다.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깨달아야 됩니다. 얼마나 철면피한 자신이었느냐 이거예요. 강도, 도둑놈이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 놈들이 여기에 왔는데 대접을 해야 되겠어요, “에이, 이 녀석아…” 하면서 탕감시켜야 되겠어요? 발길로 차고 천대해도 그만한 고통으로 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어서 해주소” 이래야 됩니다. (69-18)
참된 인생이 갈 길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고생하는 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고마운 것은 탕감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빚을 갚자는 거예요. 빚을 갚자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 그 사상은 역사상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있기 때문에 내가 머리를 숙이려고 하고, 그 말이 있기 때문에 내가 희생하려고 하고, 그 말이 있기 때문에 내가 우주 앞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역사 가운데서 내가 빚진 것을 갚지 못하고 일생을 내 마음대로 살았다면, 나는 어디 가겠어요? 지옥가야 되겠어요, 천당가야 되겠어요? 두 길 중에서 한 길을 가게 되면 틀림없이 지옥으로 가야 됩니다.
아까 말했지만, 우리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하나를 잘못하게 되면, 마이너스가 되게 하면 그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항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노정에서 내 한 인생이 잘못하게 되면 모든 인류가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이 녀석…” 하면서 참소한다 이거예요. 그런 인생이 될래요, 모든 인류가 찬양할 수 있는 인생이 될래요? 찬양을 받는 인생이 돼야 합니다. 그거 생각만 해도 무섭고 지긋지긋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이 짧은 기간에 이를 악물고 나를 위하는 것보다도 전체 앞에 빚을 갚는 동시에 빚을 지우고 가겠다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빚을 지우려니까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 우리나라 사람으로부터 세계 각국의 사람, 이 땅 위에 있는 사람부터 영계의 영인들까지 빚을 지우려니까 일생을 남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여러분이 일생 동안 진 빚이 이렇게 많은데 이 많은 것을 다 갚고 살게 되면, 이보다 더 무거운 걸 들어 넘길 수 있으면 틀림없이 역사적인 인물이 되고 하나님의 귀한 사람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친구라고 하면 나를 위해주려는 친구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줘야 됩니다. 어느 만큼 줘야 되느냐? 내 생명을 우주로부터 받았으니 만큼 이 생명을 우주를 위해서 줘야 됩니다. 그게 수수작용이고 탕감법칙입니다. 가정에 주고, 나라에 주고, 세계에 주고, 영계에 주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갈 길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주는 사람은 역사에 남을 사람이요, 하나님이 기억하실 사람이요, 인류의 마음 가운데 칭송받을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사랑하고 미국이면 미국 이 나라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해야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해야 되고, 세계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참된 인생이 갈 길입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야 할 표본적인 직행 길입니다. 이렇게 감으로 말미암아 내가 전부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밟고 나라로 점핑하고, 나라에서 세계로 점핑하고, 세계에서 하나님한테로 점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역사에 남는 효자가 남고, 나라를 위한 애국자가 남고, 세계를 위한 성인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 남습니다. 인간 최후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욕망이 최고로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최고로 행복할 수 있게 되는데 그 행복은 무한한 행복이요, 전체를 위하는 행복입니다. 전체가 나를 위하고 전체가 날 지지할 수 있는 행복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70년, 80년 동안에 이 길을 직행으로 가도 갈지 말지 한데 딴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이 길을 따라서 직행해야 됩니다. 이것이 참된 인생길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르쳐 주는 곳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가거들랑 틀림없이 세계의 최고 희망적인 사람, 최고의 욕망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다 될 것입니다. 그 이상의 길이 없기 때문에 인생으로서 갈 수 있는 참된 길은 이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은 빚을 져 가지고는 못 갑니다. 그러니 죽어야 됩니다. 생명을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희생을 생각할 때, 희생이란 새로이 심는 것이라는 관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행복합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이 미국에 와서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빚지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빚을 지우려고 합니다. 미국 국민이 선생님이 간 길을 통해서 빚을 지는 날에는 이 빚을 영원히 갚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빚을 진 사람은 머리를 숙이는 것이요, 빚을 지운 사람은 들림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초국가적인 이 전통을 밟아서 세계 인류를 사랑하고, 세계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이런 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거기까지 가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며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가야 참된 인생길을 다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검은 사람도 있고 흰 사람도 있고 노란 사람도 있는데, 흑백이 문제가 아닙니다. 황인, 백인이 문제가 아니고 서로 어떻게 빚을 갚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서로서로 위하는 것만이 남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에서만이 하나의 세계, 하나의 통일된 행복의 이상세계가 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와 같은 무리를 세상에서 들어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봅니다. 요만한 축복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 축복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축복을 받고 싶지요? 그러면 멋있고 힘차게 가기를 바라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6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