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1권 24일
평화의 근원은 하나님 (훈독본)
날짜 : 2002. 8. 5(월)
장소 : 한국 중앙수련원(구리)
평화의 근원은 하나님 (천일국 훈독경 제11권 24일)
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랑하는 조국의 7백만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고 이 역사적인 대회를 지켜보고 있는 7천만 세계인과 영계의 7억 축복가정 여러분! 우리는 마침내 실로 역사적이고 섭리적인 때를 맞이했습니다.
하늘은 역사를 통해 섭리하시면서 그 시대와 지역적인 문화에 맞추어 종교들을 허락하셨고, 인류는 그 종교권들 내에서 평화의 세계를 성취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오늘도 온갖 부조리와 부도덕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영원히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까? 본인은 부군 문선명 총재와 함께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일생을 바쳐 왔습니다.
본인은 오늘도 이렇게 하늘의 메시지를 들고 여러분 앞에 나왔습니다. ‘평화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본래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자유와 이상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 된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런 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타락한 그날부터 이 땅 위에는 고통과 슬픔과 비운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참된 사랑과 참된 이념을 갖고 살아야 할 인간이 참된 이념을 갖지 못했고,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으며, 행복한 환경에서 살아야 할 인간이 행복의 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처럼 타락은 이 땅 위에 사망의 역사를 출발시켰고, 그날부터 이 땅은 평화의 땅이 아닌 고통의 땅이 되었고, 사망이 이 땅 위에 부식된 그날부터 인간이 처하는 곳곳마다 평화가 아닌 싸움의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몸과 마음의 갈등을 놓고 싸움이 계속되어 왔고, 가정에 있어서는 가정적인 싸움이 있었으며, 또 이 싸움은 민족적인 싸움과 세계적인 싸움으로 확대되어 오늘날까지 세계의 어느 한 곳에서도 싸움이 없는 곳이 없는 역사를 엮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타락의 길로 몰아넣는 주범
불행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평화의 세계, 소망의 세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세계가 못 되어 있고 선악이 뒤엉킨 세계가 되어 있습니다.
인류가 선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를 형성하고 있는 개개인이 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 인간은 이상적인 봄 동산을 맞았을 것입니다. 그 이상적인 봄 동산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람들로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인류는 이 땅 위에 본연의 문화세계를 꽃피웠을 것입니다. 그러한 문화세계를 창조한 그 가운데서 우리 인류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왔을 것입니다.
천지가 생겨나고 신과 인간의 인연이 생겨난 이후에 비로소 참된 주인, 참된 부모, 참된 왕의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을 이처럼 비참한 타락의 길로 몰아넣었습니까? 한 마디로 타락은 자기중심적인 자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 버젓이 활개를 치며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극도의 이기주의적인 사고와 행위가 바로 우리를 타락의 길로 몰아넣는 주범입니다.
찾아야 할 심정의 기준
남의 입장이나 처지를 생각하기 전에 자기의 이익이나 편리만을 추구하는 졸렬한 행위들, 남이야 죽건 말건 나만 살겠다는 파렴치한 모습들은 다 타락이 야기시킨 행위의 파편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본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런 세상을 원치 않으셨고, 인간도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비참한 역사, 슬프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청산하고 본래 소망하셨던 평화의 세계, 행복의 세계, 자유의 세계, 선의 세계를 되찾기 위한 목적을 세워놓고 이 타락된 세상을 수습해 나오고 계십니다. 이것이 곧 복귀의 길이요, 구원섭리의 길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으로 전락한 인류가 되었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나 본연의 세계를 지향하는 본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인류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뜻하시는 세계를 소망하고 지향해 나왔으며, 우리의 그 소망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는 이상으로 남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에게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이상과 새로운 심정을 찾아 주시려고 지금까지 섭리를 거듭해 나오셨습니다. 만일 그런 이상을 성취하는 한 날이 하늘과 땅에서 찾아지지 않는다면, 즉 하늘과 땅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중심존재와 그 중심존재를 축으로 하여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하늘과 땅이 합하여 하나의 목적을 지향할 수 있는 길을 열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는 참다운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이상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우주적인 운명적 탕감복귀의 역사과정을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으로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드림으로써 하나님을 해방시켜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본래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의 마음과 몸이 절대 이율배반적인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자리에 섰으므로 역사노정을 재차 수습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평화권을 만들어 안착할 수 있는 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원섭리, 즉 복귀섭리라고 하는 지루한 종교의식이나 규례를 통해 수난과 희생 그리고 피 흘림의 역사를 엮어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근본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절대자 창조주로부터 지음을 받은 만물도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또 창조주와 더불어 하나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서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처럼 심정은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지간임을 증명해 주는 증표임은 물론 만물과 인간을 묶어주는 연결고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평화의 이상세계, 즉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데는 반드시 탕감의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탕감복귀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말입니다. 탕감복귀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무엇이든지 그 본연의 위치와 상태를 상실하게 되었을 때 그것들을 본래의 위치와 상태로 복귀하는 데는 반드시 거기에 필요한 어떤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세우는 것을 탕감이라고 합니다.
하늘과 땅, 하나님과 우리 인간만이라면 이런 탕감이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우리의 첫 조상을 타락시킨 사탄 때문입니다. 사탄이 없으면 탕감도 필요 없고, 오늘날 우리가 목이 터지도록 외치는 종교통일이라는 말도 필요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해방이나 인류의 해방 같은 단어도 필요 없는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타락이 인류역사의 파탄, 고뇌와 실패의 역사, 전쟁의 역사를 빚어냈기 때문에 이것을 일소해서 모든 근본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사는 삶, 모든 것을 위해 사는 참사랑의 삶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평화의 근원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며, 평화의 근원을 발견하지 못하면 평화의 세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자유나 평화는 통일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생활을 놓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둘이 하나되지 않았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부부의 자유가 누려질 수 있습니까? 부부끼리 하나가 안 되면 그 가정의 화목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정의 평화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통일의 세계나 평화의 세계가 올 수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 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 앞에 변하는 사랑을 행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기점, 즉 불변의 정점에서 내 마음에 평화의 기반을 마련하고, 더 나아가 자유와 행복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기준을 중심삼고 몸을 완전히 제압하여 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 나가는 운동이 이 지상에서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이처럼 혼탁한 세파를 헤치며 살아가는 인류 앞에 최후의 종말적 경고로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평화의 기원지 혹은 행복의 기원지가 어디인지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과연, 평화와 행복의 기원지가 어디겠습니까? 그것은 미국도 아니요, 한국도 아니요, UN도 아닙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몸과 마음이 싸우는 이 인간의 가슴속에서 어떻게 평화의 우주관을 갖고 행복한 세계관을 갖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대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작은 가슴속에서는 6천 년을 계속해 온 전쟁의 포화가 아직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도 격전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도 물론 격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쟁은 모두 과정적인 전쟁이었습니다. 길어야 5년을 넘기지 못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을 놓고 전개되는 몸과 마음의 투쟁은 끝을 모르고 파멸로만 치닫고 있는 최악의 전쟁입니다. 자기의 일생을 향해 포를 쏘아대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대결장은 하나님과 사탄간의 선악의 전쟁터가 되어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안개 속에 가려 있고 담 속에 갇힌 인간상을 과연 어떻게 해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안개를 날려 버릴 바람을 불게 해야 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버티고만 있는 벽을 폭파시켜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숙명적인 투쟁노정입니다. 잠을 극복해야 되고, 배고픔을 극복해야 되겠으며, 비원리적인 성적 욕망을 극복해야만 되겠습니다. 그래서 문 총재님은 일찍이 이 길을 출발하면서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내걸고 일생을 싸워 나오신 것입니다.
참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성경에서는 오늘의 인류를 놓고 고아라고 했습니다. 국가도 주인이 없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어느 한 때라도 진정한 평화를 누려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나라에 주인이 있습니까?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십시오! 어디에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생명을 바쳐 통일을 성취하겠다는 참된 애국자를 찾을 수 있습니까? 어느 누가 병들고 썩어 가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구해줄 수 있는 사상이나 이념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
실로 안타깝고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 개개인을 놓고 일심·일체·일념의 기준을 세우지 못한 데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몸 마음의 통일이 없이 어떻게 가정의 화목과 국가와 세계의 평화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본심이 평화와 행복과 통일을 바라는 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육신입니다. 마음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서 마음대로 벗어버릴 수도 없고, 시시각각 색상이 바뀌고 방향이 바뀌는 이 몸뚱이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세계평화의 기준이 저 역사시대의 종말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싸우는 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몸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거기에 따르는 갈등과 고통도 커집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초소요, 몸뚱이는 사탄의 일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몸과 마음의 간격을 좁혀서 충돌을 피하고 결국에는 하나로 통일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체 속에 뿌리박은 타락성을 뽑아 버리고 심신일체적인 일념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참부모가 필요합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거짓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사탄의 거짓혈통을 제거해 줄 수 있는 참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참부모를 만나서 참사랑의 진리를 전수받고, 위해서 사는 참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상과제
하나님은 본래 우리의 첫 조상이었던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이 땅에 참된 평화의 세계를 정착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만약 타락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성장하여 인격완성을 했더라면 하나님의 축복과 더불어 그들은 참가정을 이루어 죄악과 고통이 없는 이상천국을 창건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인류역사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6천 년간을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복귀섭리에 심혈을 기울여 오신 것입니다. 단 한 번도 당신의 인간창조를 후회하거나 사탄의 농락 앞에 좌절함이 없이 일편단심 참사랑과 용서의 심정으로 복귀섭리를 전개해 나오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처럼 귀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좀더 깊이 배우고 알게 된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 자리까지 여러분을 인도해 온 하늘과 조상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지상과제는 심신일체를 통한 우리 자신의 인격완성을 이루고 사탄의 지배 하에 사분오열된 가정들을 수습하여 참된 가정을 찾아 세워야 하는 일입니다. 위로는 1대의 위치에 있는 조부모를 하늘처럼 모시고, 2대 되는 부모님 앞에 절대복종하면서, 3대의 입장에 선 자녀들은 절대 부부를 이루어 자녀들을 죄 없이 순수하게 양육하여 한 가정에서 3대의 가정권을 세우게 되면 하늘은 그 가정과 영원히 함께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신인합덕의 경지에서 영원한 행복과 인류평화를 이루어 내는 산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본연의 인간은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참사랑에 감응하면서 일체를 이루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 위의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살고 있습니다. 마음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안식하기 위한 내 인격형성의 바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도 모셔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올바른 마음을 갖게 되면 만민을 일시에 평화의 왕궁으로 옮겨놓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고 참된 통일의 기원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에게 평화를 약속해 줄 수 있는 사상체계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역사적으로 많은 종교들의 출현으로 나타났습니다. 악의 세력이 창궐한 세상에서 마음이 몸을 백 퍼센트 지배하는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그때 그때마다 시대와 문화 그리고 지역적인 환경과 여건을 감안하여 필요 적절한 종교들을 허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종교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을 중심한 삶의 길을 꾸준히 개척해 나왔습니다. 현실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한 세계에 소망을 두고 사는 길을 배워 왔습니다. 기독교를 보아도 현실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살라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기 위해 이기주의적 삶을 살아도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마음세계에서의 평화를 강조합니다. ‘천국은 네 마음 속에 있다’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천국론은 세상적인 풍요와 권력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에 따라 그 방법들은 다를 수 있겠지만, 한결같이 인간에게 소망을 걸어놓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마음이 몸을 누르고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해 나온 것이 종교들의 사명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6천 년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종교들을 통한 인간구원의 섭리를 전개해 나오셨지만, 그 어느 종교 지도자나 성인 현철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몸과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고 영원한 통일과 평화를 성취할 수 있는지를 밝혀서 가르쳐 주지 못했고 어떻게 하면 마음을 중심삼고 몸뚱이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평화의 기준을 찾을 수 있는 곳, 부모가 영원히 하나되고, 부부가 영원히 하나되고, 형제가 영원히 하나되고, 부모와 자식이 영원히 하나되고, 일족이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마음과 몸의 통일점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왔습니다. 하늘의 기다림이 끝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인류가 역사적으로 맞이한 말세 중 최후의 종말기입니다. 하늘은 이제 더 이상 인류구원의 섭리를 연장할 수도, 연기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그렇게도 고대하고 소망해 온 인류의 참부모가 이제 이 땅 위에 현현하여 모든 책임을 홀로 지고 복귀섭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돈과 방탕으로 뒤엉킨 이 세계에 본연의 참사랑의 질서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세계를 창건하는 책임을 다하자
우리 부부는 인류의 참부모 된 자격으로 벌써 전 영계를 통일했습니다. 4대 종교의 종주들이 되는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메트는 물론 그들의 수제자급 120명씩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있습니다. 영계에서 개최된 세미나를 통해 우리 부부의 가르침인 원리와 통일사상을 공부한 후 보낸 그들의 메시지는 한결같이 소망적이요, 참부모에 대한 감사의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심지어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위시해서 영계에 가 있는 세계적인 공산주의자들도 참부모의 명에 따라 원리세미나를 수료하고 회개와 통한의 눈물로 점철된 메시지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소망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지상의 신도들이나 추종자들이 하루속히 참부모 된 문 총재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영생을 준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덧없는 지상생활에 귀한 일생을 낭비하지 말고 누구나 육신을 벗으면 들어가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될 영계의 삶을 위해 지혜롭게 준비해서 오라는 충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첫째,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 인류는 이제 하나님은 실제로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엄연한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관념적으로만 믿고 사는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품을 떠나 사탄에게 갔던 인류가 이제 회개하고 다시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탕자가 되어 떠났던 자식이 참회의 눈물과 함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리고 계십니다. 아직도 지상에 머무르며 인류복귀를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걷고 있는 참부모님을 위로하고 모시며 살라는 하나님의 당부이십니다. 이 시대의 종말기에 주신 당신의 경고를 심각히 받아들여 잘못된 생의 궤도를 수정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영계의 실존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모든 생활을 천륜에 맞춰 살아야 된다는 경고입니다. 전진적인 자아를 발견하고 전진적인 주체성을 찾아 세워 이 땅 위에 평화세계를 정착하라는 채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수천 수만의 성현 현철들과 여러분의 조상들이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다면 그 누가 감히 천륜에 어긋난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7백만 조국의 동포 여러분, 그리고 본 대회를 지켜보는 7천만 세계인과 영계의 7억 축복가정 여러분! 인류의 참부모가 되는 메시아가 재림한 이 시대, 남북한이 총칼이 아닌 사랑과 진리로 통일될 이 시대, 세계의 모든 종교가 참부모의 가르침 아래 하나가 될 이 시대, 영계의 모든 성현과 조상들이 강림하여 직접 우리와 교통하며 살게 될 역사적이고 섭리적인 이 시대를 맞이한 여러분은 진실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이제 전 인류는 인종과 이념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여 평화의 세계를 창건하는 데 소명받은 책임을 다해 줄 것을 촉구하면서 오늘 본인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국가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천일국 훈독경 제11권 24일, 원문
평화의 근원은 하나님
날짜 : 2002. 8. 5(월)
장소 : 한국 중앙수련원(구리)
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랑하는 조국의 7백만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고 이 역사적인 대회를 지켜보고 있는 7천만 세계인과 영계의 7억 축복가정 여러분! 우리는 마침내 실로 역사적이고 섭리적인 때를 맞이했습니다. 6천 년 동안 하늘과 땅이 그처럼 고대해 왔던 평화의 이상세계, 즉 지상·천상천국을 창건할 천운의 때가 우리를 찾아 왔다는 말입니다.
하늘은 역사를 통해 섭리하시면서 그 시대와 지역적인 문화에 맞추어 종교들을 허락하셨고, 인류는 그 종교권들 내에서 평화의 세계를 성취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오늘도 온갖 부조리와 부도덕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타락풍조를 막지 못한 채 험한 파도에 휩쓸리는 자신들의 모습을 불현듯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자화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영원히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까? 본인은 부군 문선명 총재와 함께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일생을 바쳐 왔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적인 메시지들은 시대와 환경의 현실적인 제약을 넘어 사실이요, 진리임이 증명되어 왔습니다.
본인은 오늘도 이렇게 하늘의 메시지를 들고 여러분 앞에 나왔습니다. 믿고 안 믿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지만, 본인은 비장한 각오로 종말기를 맞이한 오늘의 인류에게 이 메시지를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부디, 마음의 문을 열고 무지와 혼돈으로 점철된 오늘의 종말기를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늘의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지혜를 보여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본래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자유와 이상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 된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런 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타락한 그날부터 이 땅 위에는 고통과 슬픔과 비운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참된 사랑과 참된 이념을 갖고 살아야 할 인간이 참된 이념을 갖지 못했고,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으며, 행복한 환경에서 살아야 할 인간이 행복의 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고, 더 나아가 창조주 앞에 심정으로 하나된 행복의 전체 요소를 가지고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할 인간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러한 인간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참부모를 유린했고, 우리의 참된 가정과 참된 형제를 유린했고, 참다운 종족·민족·국가·세계를 유린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지금까지 6천 년 기나긴 세월 동안 하나님을 고난과 역경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입니다.
이처럼 타락은 이 땅 위에 사망의 역사를 출발시켰고, 그날부터 이 땅은 평화의 땅이 아닌 고통의 땅이 되었고, 사망이 이 땅 위에 부식된 그날부터 인간이 처하는 곳곳마다 평화가 아닌 싸움의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몸과 마음의 갈등을 놓고 싸움이 계속되어 왔고, 가정에 있어서는 가정적인 싸움이 있었으며, 또 이 싸움은 민족적인 싸움과 세계적인 싸움으로 확대되어 오늘날까지 세계의 어느 한 곳에서도 싸움이 없는 곳이 없는 역사를 엮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타락의 길로 몰아넣는 주범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인간 타락의 결과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 가운데 환경이 좋고 씨도 좋은 국가가 있을 수 있고, 환경은 좋지만 씨가 나쁜 국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이 세계가 전부 다 좋은 씨라면, 즉 본래 이 세계가 좋은 나무에서 얻은 좋은 씨로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오늘날 이 세계는 평화의 세계, 소망의 세계, 미래가 보장되는 세계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평화의 세계, 소망의 세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세계가 못 되어 있고 선악이 뒤엉킨 세계가 되어 있습니다. 주위에 나타나는 환경들은 선한 환경이라기보다는 악한 환경이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주위가 악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아무리 씨가 좋다고 하더라도 좋은 결실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인류역사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가 선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를 형성하고 있는 개개인이 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 인간은 이상적인 봄 동산을 맞았을 것입니다. 그 이상적인 봄 동산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람들로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인류는 이 땅 위에 본연의 문화세계를 꽃피웠을 것입니다. 그러한 문화세계를 창조한 그 가운데서 우리 인류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왔을 것입니다.
만물이 춘하추동의 계절을 따라서 순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역사도 봄 절기, 여름 절기, 가을 절기, 겨울 절기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영속되는 세계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 세상에는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 소망의 때, 영광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의 출발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에게서 태어난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혈통을 전수받아야 했던 아담과 해와가 타락행위를 통해 사탄의 거짓된 혈통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은 하나님의 자식들이 아닌 사탄 마귀의 자식들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너희는 너의 아비 마귀에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채찍에 몰려 쫓겨난 우리의 첫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담아, 사랑하는 해와야! 내가 너희를 만우주의 창조목적의 세계, 사랑의 동산을 건설하기 위해 지었으니 너희는 평화와 행복의 주인이요, 부모요, 왕이다” 하시는 축복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아담이 천추만대 영원무궁토록 지상의 왕이요, 천상의 왕으로 설 수 있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천지가 생겨나고 신과 인간의 인연이 생겨난 이후에 비로소 참된 주인, 참된 부모, 참된 왕의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을 이처럼 비참한 타락의 길로 몰아넣었습니까? 한 마디로 타락은 자기중심적인 자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 버젓이 활개를 치며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극도의 이기주의적인 사고와 행위가 바로 우리를 타락의 길로 몰아넣는 주범입니다.
찾아야 할 심정의 기준
남의 입장이나 처지를 생각하기 전에 자기의 이익이나 편리만을 추구하는 졸렬한 행위들, 남이야 죽건 말건 나만 살겠다는 파렴치한 모습들은 다 타락이 야기시킨 행위의 파편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본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런 세상을 원치 않으셨고, 인간도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비참한 역사, 슬프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청산하고 본래 소망하셨던 평화의 세계, 행복의 세계, 자유의 세계, 선의 세계를 되찾기 위한 목적을 세워놓고 이 타락된 세상을 수습해 나오고 계십니다. 이것이 곧 복귀의 길이요, 구원섭리의 길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으로 전락한 인류가 되었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나 본연의 세계를 지향하는 본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인류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뜻하시는 세계를 소망하고 지향해 나왔으며, 우리의 그 소망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는 이상으로 남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에게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이상과 새로운 심정을 찾아 주시려고 지금까지 섭리를 거듭해 나오셨습니다. 만일 그런 이상을 성취하는 한 날이 하늘과 땅에서 찾아지지 않는다면, 즉 하늘과 땅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중심존재와 그 중심존재를 축으로 하여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하늘과 땅이 합하여 하나의 목적을 지향할 수 있는 길을 열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는 참다운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이상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우주적인 운명적 탕감복귀의 역사과정을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으로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평화와 자유와 이상으로 찾아오실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제물의 고개를 걸어놓고 우리를 찾아오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일소해 주는 한 시간, 즉 하나님의 심중에 사무쳐 있는 한을 해원해 줄 수 있는 한 시간을 찾아 세우지 못하는 한 인류의 평화는 물론 하나님의 창조이상도 이 땅 위에서 그 결실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드림으로써 하나님을 해방시켜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떨어지지 아니한 본연의 상태,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아니한 그 자리,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참부모를 잃어버리지 않은 그 자리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참부모를 중심삼은 평화의 동산에서 자녀로서 생활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과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는 새로이 구원섭리라는 명사가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떤 작전으로 지옥 같은 이 세계를 평화의 세계로 바꾸시겠습니까? 본래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의 마음과 몸이 절대 이율배반적인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자리에 섰으므로 역사노정을 재차 수습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평화권을 만들어 안착할 수 있는 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원섭리, 즉 복귀섭리라고 하는 지루한 종교의식이나 규례를 통해 수난과 희생 그리고 피 흘림의 역사를 엮어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만일 심정의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그 세계를 찾았다면, 그것은 어느 한 때에 다시 정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좋은 이상이 있거나 전 세계를 하나로 하여 이상적인 평화의 세계를 수립한다고 해도 개개인이 그 세계를 생각하고, 그 세계에 응하고, 그 세계의 움직임에 따라 그 세계와 하나될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을 갖지 못하면 아무리 원하던 이상세계라고 하더라도 그 세계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근본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절대자 창조주로부터 지음을 받은 만물도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또 창조주와 더불어 하나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서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처럼 심정은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지간임을 증명해 주는 증표임은 물론 만물과 인간을 묶어주는 연결고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평화의 이상세계, 즉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데는 반드시 탕감의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탕감복귀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말입니다. 탕감복귀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무엇이든지 그 본연의 위치와 상태를 상실하게 되었을 때 그것들을 본래의 위치와 상태로 복귀하는 데는 반드시 거기에 필요한 어떤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세우는 것을 탕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 사회에서는 탕감이라는 말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말은 있지만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 하나님과 우리 인간만이라면 이런 탕감이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우리의 첫 조상을 타락시킨 사탄 때문입니다. 사탄이 없으면 탕감도 필요 없고, 오늘날 우리가 목이 터지도록 외치는 종교통일이라는 말도 필요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해방이나 인류의 해방 같은 단어도 필요 없는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타락이 인류역사의 파탄, 고뇌와 실패의 역사, 전쟁의 역사를 빚어냈기 때문에 이것을 일소해서 모든 근본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사는 삶, 모든 것을 위해 사는 참사랑의 삶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평화의 근원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며, 평화의 근원을 발견하지 못하면 평화의 세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무엇을 했습니까? 핍박을 받고 십자가에 돌아가면서도 인류를 사랑하겠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중심삼고 취해서 간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사랑을 받겠다는 방향이 사랑을 주고 살겠다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그 기준이 세계화되면 그때에는 평화의 세계가 올 것입니다.
사랑을 받겠다고만 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영원히 평화의 세계가 오지 않습니다. 자기 부모만이 부모가 아니고, 자기 형제만이 형제가 아니고, 자기 아들딸만이 아들딸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나의 부모, 나의 형제, 나의 자식처럼 느끼고 대할 수 있는 인격체가 되면 여러분은 사망세계에서 허덕이는 뭇 백성들을 볼 때 눈물 없이 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마약과 방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볼 때 내 자식을 구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받겠다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주겠다는 사랑의 발로입니다.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자유나 평화는 통일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생활을 놓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둘이 하나되지 않았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부부의 자유가 누려질 수 있습니까? 부부끼리 하나가 안 되면 그 가정의 화목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정의 평화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통일의 세계나 평화의 세계가 올 수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 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 앞에 변하는 사랑을 행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기점, 즉 불변의 정점에서 내 마음에 평화의 기반을 마련하고, 더 나아가 자유와 행복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기준을 중심삼고 몸을 완전히 제압하여 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 나가는 운동이 이 지상에서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갖고 왔던 새로운 세계주의 운동이 바로 이런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이처럼 혼탁한 세파를 헤치며 살아가는 인류 앞에 최후의 종말적 경고로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숙명적인 과제입니다. 운명적이 아니라 숙명적이라는 말입니다. 숙명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운명은 자기 노력으로 개조할 수도 있고 변경할 수 있겠지만, 숙명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절체절명의 천명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평화의 기원지 혹은 행복의 기원지가 어디인지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과연, 평화와 행복의 기원지가 어디겠습니까? 그것은 미국도 아니요, 한국도 아니요, UN도 아닙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몸과 마음이 싸우는 이 인간의 가슴속에서 어떻게 평화의 우주관을 갖고 행복한 세계관을 갖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대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작은 가슴속에서는 6천 년을 계속해 온 전쟁의 포화가 아직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도 격전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도 물론 격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쟁은 모두 과정적인 전쟁이었습니다. 길어야 5년을 넘기지 못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을 놓고 전개되는 몸과 마음의 투쟁은 끝을 모르고 파멸로만 치닫고 있는 최악의 전쟁입니다. 자기의 일생을 향해 포를 쏘아대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대결장은 하나님과 사탄간의 선악의 전쟁터가 되어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안개 속에 가려 있고 담 속에 갇힌 인간상을 과연 어떻게 해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안개를 날려 버릴 바람을 불게 해야 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버티고만 있는 벽을 폭파시켜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숙명적인 투쟁노정입니다. 잠을 극복해야 되고, 배고픔을 극복해야 되겠으며, 비원리적인 성적 욕망을 극복해야만 되겠습니다. 그래서 문 총재님은 일찍이 이 길을 출발하면서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내걸고 일생을 싸워 나오신 것입니다.
참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성경에서는 오늘의 인류를 놓고 고아라고 했습니다. 국가도 주인이 없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어느 한 때라도 진정한 평화를 누려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나라에 주인이 있습니까?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십시오! 어디에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생명을 바쳐 통일을 성취하겠다는 참된 애국자를 찾을 수 있습니까? 어느 누가 병들고 썩어 가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구해줄 수 있는 사상이나 이념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
실로 안타깝고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 개개인을 놓고 일심·일체·일념의 기준을 세우지 못한 데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몸 마음의 통일이 없이 어떻게 가정의 화목과 국가와 세계의 평화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본심이 평화와 행복과 통일을 바라는 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육신입니다. 마음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서 마음대로 벗어버릴 수도 없고, 시시각각 색상이 바뀌고 방향이 바뀌는 이 몸뚱이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인간의 몸뚱이는 사탄의 왕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하면서 탄식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선과 악의 두 목적을 지향하는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악을 지향하는 몸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역사를 두고 괴물 같은 원수인 몸은 언제나 그대로 남아서 영원히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탄식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평화를 성취할 수 있는 길은 전쟁이 아닙니다. 돈이나 권력 혹은 지식도 그 해답은 아닙니다. UN의 힘으로도 안 됩니다. 이기적인 개개인의 욕망과 자국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UN무대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 속에 타락성이 남아 있는 한 아무리 이상을 노래하고 평화를 외쳐봐도 거기에는 언제나 투쟁과 혼란의 역사가 난무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타락성을 뿌리뽑지 않고는 평화의 길을 모색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세계평화의 기준이 저 역사시대의 종말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싸우는 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몸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거기에 따르는 갈등과 고통도 커집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초소요, 몸뚱이는 사탄의 일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몸과 마음의 간격을 좁혀서 충돌을 피하고 결국에는 하나로 통일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체 속에 뿌리박은 타락성을 뽑아 버리고 심신일체적인 일념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참부모가 필요합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거짓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사탄의 거짓혈통을 제거해 줄 수 있는 참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참부모를 만나서 참사랑의 진리를 전수받고, 위해서 사는 참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세계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작게는 부부간의 갈등으로부터 크게는 국가들간의 상충과 전쟁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원인과 이유들도 한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을 파고 들어가 보면 남자와 여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아무리 큰 문제도 따지고 들어가 보면 결국 남자와 여자의 문제로 집약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시작이 본래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부터 출발되지 않았습니까? 가정에서의 불화가 확대되어 각종 사회문제와 국가문제 그리고 세계문제로까지 번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적인 차원에서 남자와 여자에 얽힌 문제만 완전히 해결하고 하나의 표준형을 만들어 놓으면 세계는 하나된 평화세계, 즉 창조본연의 이상세계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지상과제
하나님은 본래 우리의 첫 조상이었던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이 땅에 참된 평화의 세계를 정착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만약 타락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성장하여 인격완성을 했더라면 하나님의 축복과 더불어 그들은 참가정을 이루어 죄악과 고통이 없는 이상천국을 창건했을 것입니다.
그 세계가 바로 영원한 평화세계가 되었을 것이며, 인류는 자자손손 하나님의 직계자녀로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함은 물론 영계에 먼저 간 조상들과도 자유자재로 교통하고 왕래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렸을 것입니다. 죄를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절대 선주권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세계에서 어떻게 마음과 몸의 갈등을 상상이나 할 수 있으며 가정의 불화를 염려할 수 있겠습니까? 수천 년간 하늘과 인류를 농락하고 유린해 온 악마 사탄의 출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인류역사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6천 년간을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복귀섭리에 심혈을 기울여 오신 것입니다. 단 한 번도 당신의 인간창조를 후회하거나 사탄의 농락 앞에 좌절함이 없이 일편단심 참사랑과 용서의 심정으로 복귀섭리를 전개해 나오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처럼 귀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좀더 깊이 배우고 알게 된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 자리까지 여러분을 인도해 온 하늘과 조상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지상과제는 심신일체를 통한 우리 자신의 인격완성을 이루고 사탄의 지배 하에 사분오열된 가정들을 수습하여 참된 가정을 찾아 세워야 하는 일입니다. 위로는 1대의 위치에 있는 조부모를 하늘처럼 모시고, 2대 되는 부모님 앞에 절대복종하면서, 3대의 입장에 선 자녀들은 절대 부부를 이루어 자녀들을 죄 없이 순수하게 양육하여 한 가정에서 3대의 가정권을 세우게 되면 하늘은 그 가정과 영원히 함께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신인합덕의 경지에서 영원한 행복과 인류평화를 이루어 내는 산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본연의 인간은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참사랑에 감응하면서 일체를 이루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 위의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살고 있습니다. 마음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안식하기 위한 내 인격형성의 바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도 모셔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올바른 마음을 갖게 되면 만민을 일시에 평화의 왕궁으로 옮겨놓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고 참된 통일의 기원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에게 평화를 약속해 줄 수 있는 사상체계
절대자 하나님은 자체 내에 모순이나 갈등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남성성상과 여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이면서도 남성격 주체로 계시는 분입니다. 인간이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자체 내에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통일을 이루어 존재하십니다. 따라서, 그런 만유의 대왕이신 하나님을 닮아서 자식으로 창조받은 인간도 몸과 마음의 완전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가능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몸이 조화통일의 기준을 잃어버리고 갈등과 모순의 늪에서 허덕이며 살아왔습니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역사적으로 많은 종교들의 출현으로 나타났습니다. 악의 세력이 창궐한 세상에서 마음이 몸을 백 퍼센트 지배하는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그때 그때마다 시대와 문화 그리고 지역적인 환경과 여건을 감안하여 필요 적절한 종교들을 허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종교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을 중심한 삶의 길을 꾸준히 개척해 나왔습니다. 현실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한 세계에 소망을 두고 사는 길을 배워 왔습니다. 기독교를 보아도 현실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살라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기 위해 이기주의적 삶을 살아도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마음세계에서의 평화를 강조합니다. ‘천국은 네 마음 속에 있다’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천국론은 세상적인 풍요와 권력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에 따라 그 방법들은 다를 수 있겠지만, 한결같이 인간에게 소망을 걸어놓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마음이 몸을 누르고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해 나온 것이 종교들의 사명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6천 년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종교들을 통한 인간구원의 섭리를 전개해 나오셨지만, 그 어느 종교 지도자나 성인 현철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몸과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고 영원한 통일과 평화를 성취할 수 있는지를 밝혀서 가르쳐 주지 못했고 어떻게 하면 마음을 중심삼고 몸뚱이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평화의 기준을 찾을 수 있는 곳, 부모가 영원히 하나되고, 부부가 영원히 하나되고, 형제가 영원히 하나되고, 부모와 자식이 영원히 하나되고, 일족이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마음과 몸의 통일점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왔습니다. 하늘의 기다림이 끝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인류가 역사적으로 맞이한 말세 중 최후의 종말기입니다. 하늘은 이제 더 이상 인류구원의 섭리를 연장할 수도, 연기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그렇게도 고대하고 소망해 온 인류의 참부모가 이제 이 땅 위에 현현하여 모든 책임을 홀로 지고 복귀섭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돈과 방탕으로 뒤엉킨 이 세계에 본연의 참사랑의 질서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하늘의 진리를 전해주고 있는 문 총재 부부가 바로 그 참부모입니다. 이제 인류에게 평화를 약속해 줄 수 있는 사상체계는 문 총재가 설파하는 참부모의 사상밖에 없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위해서 사는 철학, 즉 영원한 생명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참사랑을 바탕으로 한 천부주의뿐입니다. 하나님의 대상인 내가 하나님보다 높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을 찬양할 수 있는 자아발견뿐입니다. 여기서만이 영원한 평화세계, 즉 영생의 지상·천상천국이 연결됩니다.
평화세계를 창건하는 책임을 다하자
우리 부부는 인류의 참부모 된 자격으로 벌써 전 영계를 통일했습니다. 4대 종교의 종주들이 되는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메트는 물론 그들의 수제자급 120명씩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있습니다. 영계에서 개최된 세미나를 통해 우리 부부의 가르침인 원리와 통일사상을 공부한 후 보낸 그들의 메시지는 한결같이 소망적이요, 참부모에 대한 감사의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심지어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위시해서 영계에 가 있는 세계적인 공산주의자들도 참부모의 명에 따라 원리세미나를 수료하고 회개와 통한의 눈물로 점철된 메시지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소망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지상의 신도들이나 추종자들이 하루속히 참부모 된 문 총재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영생을 준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덧없는 지상생활에 귀한 일생을 낭비하지 말고 누구나 육신을 벗으면 들어가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될 영계의 삶을 위해 지혜롭게 준비해서 오라는 충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첫째,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 인류는 이제 하나님은 실제로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엄연한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관념적으로만 믿고 사는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품을 떠나 사탄에게 갔던 인류가 이제 회개하고 다시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탕자가 되어 떠났던 자식이 참회의 눈물과 함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리고 계십니다. 아직도 지상에 머무르며 인류복귀를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걷고 있는 참부모님을 위로하고 모시며 살라는 하나님의 당부이십니다. 이 시대의 종말기에 주신 당신의 경고를 심각히 받아들여 잘못된 생의 궤도를 수정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영계의 실존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모든 생활을 천륜에 맞춰 살아야 된다는 경고입니다. 전진적인 자아를 발견하고 전진적인 주체성을 찾아 세워 이 땅 위에 평화세계를 정착하라는 채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수천 수만의 성현 현철들과 여러분의 조상들이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다면 그 누가 감히 천륜에 어긋난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머지않아 여러분도 영적인 체험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동원되어 여러분의 삶과 생각까지도 직접 감시하고 지도하는 때가 왔습니다. 우리 부부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많은 통일성도들은 벌써 이런 경지의 삶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7백만 조국의 동포 여러분, 그리고 본 대회를 지켜보는 7천만 세계인과 영계의 7억 축복가정 여러분! 인류의 참부모가 되는 메시아가 재림한 이 시대, 남북한이 총칼이 아닌 사랑과 진리로 통일될 이 시대, 세계의 모든 종교가 참부모의 가르침 아래 하나가 될 이 시대, 영계의 모든 성현과 조상들이 강림하여 직접 우리와 교통하며 살게 될 역사적이고 섭리적인 이 시대를 맞이한 여러분은 진실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이제 전 인류는 인종과 이념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여 평화의 세계를 창건하는 데 소명받은 책임을 다해 줄 것을 촉구하면서 오늘 본인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국가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