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한 초종교운동 (천일국 훈독경 제11권 16일)

훈독왕 | 20201227064129

천일국 훈독경 제11권 16일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한 초종교운동 (훈독본)

날짜 : 1991. 7. 29(월)
장소 : 미국 이스트가든

https://www.youtube.com/watch?v=dBeS-6sGwRw&list=PLtan-zpeJeikOD5x4sJiSU6hdLc_Cy0m0&index=18

 


몸 마음의 통일을 완성하게 될 때

인간의 정신적 분야를 대표한 마음과 물질적 분야를 대표한 몸이 본래 태어날 때부터 갈라져 가지고 투쟁했을 것이냐, 하나되었을 것이냐? 이것이 근본문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 와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생활권 내에 들어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생활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떤 것이 본 바탕이 되어 인간이 되었느냐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것을 논리로 인정한다면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신이 있다고 하면 그 신은 몸 마음을 지은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통일적 인간을 짓지 못한 원인이 어디 있었느냐 하는 물음에 답변할 수 없고, 또 인간이 평화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 앞으로 평화세계의 기지가 어디냐 평화의 기지는 세계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고, 종교도 아닙니다. 나입니다. (218-203)

개인의 몸 마음의 통일을 완성하게 될 때는 다른 모든 것들의 완성에도 영향이 미쳐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의 통일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 내 자신의 평화를 어떻게 건설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와서 살았던 사람들의 평화라는 것은 전부 다 외적인 세계의 평화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평화롭고 세계가 평화로워야만 평화의 세계가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계의 그 무엇이 평화를 초래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기 자신에서부터 평화적 기준을 어떻게 완성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였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종교에는 타락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 타락이 무엇이냐? 몸 마음이 완성을 이루어 통일되지 못하고 평화의 기반이 못 된 것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서로 싸우고 투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통일하느냐 하는 것은 근본문제와 직결됩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하는 문제와 참사랑이 뭐냐 하는 문제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신이기 때문에 절대 평화의 기준을 하나님 자체도 가져야 되고 대상권도 가져야 됩니다. 즉, 하나님과 그 대상권이 완전히 통일적 기준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확실히 있느냐 하는 문제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내성을 알 수 있고, 그 다음에 내가 진짜 하나님과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두 문제에 귀착됩니다. (218-205)

남자와 여자가 도대체 왜 태어나기 시작했느냐

그러면 통일교회의 근본바탕을 어디에다 두느냐? 그것은 하나님한테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주인이 누구냐?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면 세상만사가 다 끝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세상에 태어나 부부가 되어 “나는 행복하다. 나는 평화스럽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됐다고 할 때는 하나님이 자연히 그들을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신인(神人)관계를 맺을 수 있는 첫 번째 동기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었을 때, 하나님과 인간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관계되어 있는 동물세계와 식물세계 그리고 광물세계의 모든 인연도 그 통일적 내용을 환영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218-206)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내용이 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가운데 인간이 모든 만물의 중심이고 그 중심 가운데 여자가 제일 아름다우니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은 여자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 자신도 그렇다고 답변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여자라고 할 때 여자의 뭘 좋아하시느냐? 또, 여자도 “아이고,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에 남자가 이 모든 창조물의 주체가 되니까 남자를 좋아합니다” 하는데 남자의 뭘 좋아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그게 문제가 큽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남자라는 것을 지을 때 남자만 주체로 생각하고 지으셨겠느냐, 남자를 짓기 전에 여자라는 모습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맞게끔 남자를 지으셨겠느냐? 그리고 여자라는 것을 만들게 될 때도 여자만을 생각하고 지으셨겠느냐, 여자를 만들기 전에 남자가 이렇게 지어졌으니까 그 남자에게 맞게끔 여자를 만드셨겠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를 짓게 될 때 남자만을 중심삼고 지은 것이 아니라 여자를 전제로 해 가지고 여자에 맞게끔 지으셨기 때문에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건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하고, 여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하니까 문제입니다. 이 가운데 문제가 뭐냐 하면 존재의 기원인 위해서 태어났다는 관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위해서 태어났다는 관념만 집어넣게 되면 남자도 남자 마음대로 살 수 없고, 여자도 여자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서로가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위해서 태어나기 시작했다면 그 위해서 태어나게 된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왜 지으셨느냐?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창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도 인간 때문에 존재하시는 것이요, 인간이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하고 인간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딱 맞으면 다 끝납니다. 거기에 앞서서 남자하고 여자가 다른 게 뭐냐? 한 가지가 다른 게 있지요? 그거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이것은 진리입니다. 실체 자체가 진리입니다. 부끄러울 게 없는 것입니다. (218-207)

몸 마음을 무엇이 통일하느냐

그러면 남자의 주인이 누구예요? 여자입니다. 또, 여자의 주인이 누구냐 하면 남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남편을 내 주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한 부분을 갖고 있는데 그 주인이 누구냐? 남자의 그 부분의 절대적인 주인은 여자이고, 또 여자의 그 부분의 절대적인 주인은 남자입니다. 지혜로운 하나님은 주인을 전부 달리해 가지고 마음대로 못 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모두 다 자기 것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사악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자유행동을 할 수 있어요? 여자가 자유행동을 할 수 있어요? 머리에 뭘 쓰고 다니면서 그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다 발가벗고 다니더라도 그것을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인을 차 버릴 수 없고 무시할 수 없습니다. 횡적인 탈선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의 주인을 모셔야 된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텐데, 두 주인을 가지려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아무리 거룩한 표시로 감추려고 해도 안됩니다.


여러분, 사랑을 원하지요? 절대적이고 유일하고 영원한 사랑을 원합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뭐냐? 절대적 사랑이 남자나 여자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유일한 사랑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이 애들을 낳아서 기를 때, 애들이 뭘 알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도 낳아서 눈만 뜨고 1주일만 되면 어머니의 냄새를 압니다. 어머니의 냄새를 맡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맛보게 되면 어머니가 지나가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맡고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린 애기는 어머니를 전체의 중심으로 삼고 자기의 생명과 상대적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어머니 사랑의 품이 좋아서 품기려고 합니다. 


이것은 역사를 초월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초월해서 공통적인 하나의 절대적인 욕구입니다. 왜 그러하냐?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 키 포인트가 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때요? 하나님도 역시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 혼자 암만 절대적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사랑을 찾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을 찾으시려면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레버런 문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성공했다고 하지만 암만 성공했더라도 사랑의 세계에서 성공 못 하면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랑의 상대가 없게 될 때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레버런 문에게는 미세스 레버런 문이 있기 때문에 슬프다가도 풀어지지요. 어려운 데, 높은 데, 낮은 데를 가더라도 다 사랑의 조화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높은 것은 낮게 하고, 낮은 것은 높게 하고, 먼 것은 가깝게 하고, 가까운 것은 멀게 할 수 있는 조화의 융통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이더라 이거예요. 


그러면 인간이 이렇게 절대적 사랑을 가졌다고 할 때,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면 누구를 갖다가 세우실 것이냐 할 때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唯人最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의 파트너, 창조주의 사랑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할 때 그 사랑과 하나된 사랑의 파트너는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나게 됩니다. 영원한 영생은 여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의 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고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한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영생이 있습니다. (218-210) 

창조의 원칙으로 본 공식적 결론

그러면 남자가 왜 태어났느냐 할 때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 이겁니다. 여자 남자들이 왜 태어났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 사랑으로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을 점령합니다. 그러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왜 결혼을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혼식을 누가 해줘요?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실 때 뭘 하시느냐? 구경하고 계시는 게 아닙니다. 남자의 마음에 들어가고 여자의 마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남자 여자의 결혼식은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의 파트너를 결탁하는 시간입니다. 누구도 그걸 몰랐습니다.

우리 인간은 두 부모를 거쳐왔습니다. 종적 부모인 창조주와 횡적인 인간의 조상인 횡적 기반에 선 참부모를 중심삼고 종적 사랑과 횡적 사랑이 결탁된 두 부모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핏줄을 이어받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두 구조의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에 마음은 종적인 부모를 이어받고 몸은 횡적인 부모를 이어받아 가지고 이중적 구조로서 통일을 이루는 사랑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창조의 원칙으로 본 공식적 결론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인류의 종적인 부모는 창조주이며, 참사랑을 중심삼고 그 종적인 참부모에 의해 가지고 내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어받은 것이 마음이고, 횡적인 참사랑의 부모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 몸이라고 할 때 그 참사랑과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 두 구조가 완전히 통일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은 핵이 되고 인간의 사랑은 부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218-218)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연결되느냐? 위로부터 오는 사랑은 제일 가까운 거리, 참사랑이 가는 길은 전부 다 직단거리를 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적인 사랑, 위에서부터 아래로 오는 사랑은 직단거리로 통일되게 될 때 90각도가 아니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직단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직단거리가 성립되면 거기에 대해서 인간의 참사랑도 직단거리로 통하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고 볼 때 횡적인 남자 여자도 반드시 수평이 되어 가지고 수직으로 90각도에 갖다 맞출 때 그것이 사랑의 결착점이며 90각도를 중심삼은 정착지입니다. 타락이 뭐냐 하면, 이 각도가 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종적인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인간이 틀려져 있기 때문에 이 각도를 맞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을 인간이 모르기 때문에 메시아가 와 가지고, 본연적 부모가 와 가지고 이것을 고쳐 놓아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 하나님은 구형을 닮아 있는 우주의 가운데 계십니다. 그리고 사랑을 중심삼고 종횡이 결탁된 초점에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계십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의 결탁점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 또한 우리 마음속 깊은 가운데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논리에 맞는 것입니다. (218-218)

하나님의 창조이상

이렇게 보게 된다면, 인류의 최초의 조상이었던 아담 해와는 도대체 어떤 존재였느냐?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맏아들이요, 해와는 맏딸이었습니다. 딸도 첫 딸이었습니다. 사랑의 첫 딸이었어요. 그러니까 오늘날 원리에서 말하는 아벨이니 가인이니 장자권 복귀니 하는 그런 말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장자가 결혼하게 되었다면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 그 참부모는 뭐가 되었을 거예요? 지상세계의 왕이 되었을 것이요, 천상세계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왕의 내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었고, 왕의 외적인 주인은 우리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 해와였습니다. 참부모의 자리에 선 아담 해와였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누구였느냐 하면 참사랑을 중심삼은 왕자요, 해와가 누구였느냐 하면 참사랑을 중심삼은 왕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첫사랑의 열매요, 첫 가정의 부모요, 첫 왕권의 전수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되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천국에 들어갑니다. 누구를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병났으니까 누구한테 업히거나 지팡이가 필요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종교가 지팡이의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여러분이 복귀해서 황족의 자격을 느낄 수 있는 공식적인 문을 통과한 티켓을 받지 않고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의 가정에 있어서 아담 해와와 같이 하나님이 대왕이 되시고 여러분은 왕자와 왕녀와 같은 입장에서 우주적인 사랑의 중심에 섰다고 할 수 있는 체험과 체휼을 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왕권과 부모권 그리고 장자권을 중심삼은 직계의 아들딸이 되어서 이 땅 위에 하늘나라의 왕궁을 건설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왕궁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이 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황족의 전통을 세우는 가정과 일족이 들어가는 곳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종적으로 왕권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직계 자녀, 장손 장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습니다.


나무에 있어서 종대순과 종대뿌리가 있지요? 종대순과 종대뿌리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이것은 하나지만 가지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수많은 가지들이 종대뿌리와 종대순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는 것과 같이 똑 같은 영양소를 받고 똑 같은 시간에 똑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은 뭐냐 하면 황족의 전통이 가지와 같이 전부 다 하나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살던 사람이 천국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잎에 있는 사람이나 가지에 있는 사람이나 똑 같은 생활을 한 사람이 천국 간다 하게 될 때 모든 만민의 가정들은 사랑을 중심삼은 황족의 전통을 중심삼은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되는 사람이 아내의 방에 들어가게 될 때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하늘이 공인한 왕후를 찾아 들어가는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고, 여자도 남편의 방에 들어가게 될 때 왕의 침대에 찾아 들어간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한 왕 앞에 왕후가 둘일 수 없고, 왕후 앞에 왕이 둘일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의 왕권과 모든 전체가 내 것이 됩니다. 영계가 그렇습니다.


그 나라가 누구의 나라냐 하면 애국자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 어느 왕의 나라가 아니고 애국자의 나라인 것입니다. 왕의 나라도 되지만 애국자의 나라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더 나라를 사랑했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그 나라가 움직이기 때문에 누가 왕권의 전통을 지켜 가지고 잘살았느냐 하는 문제가 소유권을 측정하는 잣대가 되어 있느니라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왕이 위에 있는 주인이라면, 나는 아래에 있는 하나의 축을 이루는 주인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나라의 역사가 돌아갑니다. 이것이 이상세계입니다. (218-221)

참사랑의 왕과 왕후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인간의 가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얼마나 멋져요! 정리가 됐지요? 지금까지 성인들은 외적인 세계를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통일교회의 레버런 문은 내적인 처리방법을 가르쳐 줘 가지고 통일적인 방안을 구성했으며, 그런 입장에서 종교를 통일해야 되고, 인류를 통일해야 되고, 하늘땅을 통일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통일교회라는 간판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완성을 논의한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할 수 있느냐? 참사랑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참사랑의 왕과 왕후들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내 것이요, 모든 곳이 내 고향이요, 모든 집이 내 집이 되는 것입니다. (218-225)*

 

 

천일국 훈독경 제11권 16일, 원문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한 초종교운동 
 
날짜 : 1991. 7. 29(월)
장소 : 미국 이스트가든
 
몸 마음의 통일을 완성하게 될 때
 
우리가 영적인 면이라고 하게 되면 그것은 마음을 대표하는 것이고, 육적인 면이라고 하면 우리 몸뚱이를 대표한다고 봅니다. 이것을 조금 더 확대하면, 마음은 주체고 몸은 상대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이라는 것을 보게 될 때, 물질적 성공과 정신적 성공이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적 성공,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통일적 성공기반은 없을 것이냐?
인간의 정신적 분야를 대표한 마음과 물질적 분야를 대표한 몸이 본래 태어날 때부터 갈라져 가지고 투쟁했을 것이냐, 하나되었을 것이냐? 이것이 근본문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 와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생활권 내에 들어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생활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떤 것이 본 바탕이 되어 인간이 되었느냐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것을 논리로 인정한다면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신이 있다고 하면 그 신은 몸 마음을 지은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통일적 인간을 짓지 못한 원인이 어디 있었느냐 하는 물음에 답변할 수 없고, 또 인간이 평화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 앞으로 평화세계의 기지가 어디냐 하면 그 기지는 세계도 아니요, 어떤 나라도 아니요, 어떤 종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바탕은 몸과 마음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통일기지를 갖지 않으면 평화의 근원적 기반을 못 가짐으로 말미암아 그 바라는 소망의 평화세계를 달성할 수 없다고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은 신이 부정되는 것입니다. 평화의 기지는 세계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고, 종교도 아닙니다. 나입니다. (218-203)
전부가 우리 개인에게 돌아옵니다. 개인의 몸 마음의 통일을 완성하게 될 때는 다른 모든 것들의 완성에도 영향이 미쳐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의 통일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 내 자신의 평화를 어떻게 건설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제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투쟁하던 양극시대는 사라졌기 때문에 공산주의 기반이 무너짐과 동시에 어떻게 되느냐? 공산주의가 내려가면 민주세계는 올라가야 할 텐데 민주세계 자체도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와서 살았던 사람들의 평화라는 것은 전부 다 외적인 세계의 평화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평화롭고 세계가 평화로워야만 평화의 세계가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계의 그 무엇이 평화를 초래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기 자신에서부터 평화적 기준을 어떻게 완성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였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종교에는 타락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 타락이 무엇이냐? 몸 마음이 완성을 이루어 통일되지 못하고 평화의 기반이 못 된 것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서로 싸우고 투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 있다면 마음적 세계를 대표하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 기반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종교권입니다. 그 다음에 몸적인 분야를 중심삼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의 투쟁역사로 세계적 판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이렇게 두 블록으로 나누어진 상태에서 지금까지 외적인 몸뚱이가 마음을 침해하고 유린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대표하는 종교세계의 발전기반을 몸적인 정치세계가 언제나 쳐 나왔고 희생시켜 나오던 싸움이 계속되어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정치세계는 언제나 종교세계를 침해했습니다. 몸이 마음을 친 것과 똑같은 양상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통일하느냐 하는 것은 근본문제와 직결됩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하는 문제와 참사랑이 뭐냐 하는 문제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신이기 때문에 절대 평화의 기준을 하나님 자체도 가져야 되고 대상권도 가져야 됩니다. 즉, 하나님과 그 대상권이 완전히 통일적 기준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확실히 있느냐 하는 문제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내성을 알 수 있고, 그 다음에 내가 진짜 하나님과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두 문제에 귀착됩니다. (218-205)

남자와 여자가 도대체 왜 태어나기 시작했느냐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자면, 하나님도 몸과 마음이 싸우느냐? 그건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주체가 있다고 할 때 그 주체 앞에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도 그러한 인간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런 입장에 서지 못했으니 그 인간이 “당신과 관계를 맺을 때가 어느 때입니까” 이렇게 물어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이 같은 입장에 서지 않고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르다면 언제 하나되느냐? 이건 종교를 통해서 최고로 우려할 문제요, 정치세계나 사상세계의 어느 분야에 있어서도 최종적인 결론을 지어야 할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왜 통일교회라고 이름을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도대체, 통일교회를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교회의 근본바탕을 어디에다 두느냐? 그것은 하나님한테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주인이 누구냐?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면 세상만사가 다 끝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세상에 태어나 부부가 되어 “나는 행복하다. 나는 평화스럽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됐다고 할 때는 하나님이 자연히 그들을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신인(神人)관계를 맺을 수 있는 첫 번째 동기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었을 때, 하나님과 인간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관계되어 있는 동물세계와 식물세계 그리고 광물세계의 모든 인연도 그 통일적 내용을 환영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218-206)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라는 분은 뭘 하시는 분이냐? 그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인간을 창조하셨어요? 장난으로 지으셨어요, 가장 가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지으셨어요, 놀이감으로 한번 테스트하기 위해서 만드셨어요? 창조한 중요한 내적인 내용이 뭐예요? 우리 인간의 욕망은 하나님이 제일 좋은 보화를 가졌다고 할 때 그걸 전부 다 도적질을 하고도 마음에 차지 않아서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인데, 하나님이 이런 인간의 욕망을 채우고도 남을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만드셨을 텐데 그 내용이 뭐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내용이 뭐냐?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내용이라면 인간도 그걸 갖고 싶어할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또, 하나님이 제일 나빠하시는 게 뭐냐? 하나님이 제일 나빠하시는 건 우리 인간도 나빠할 것입니다. 그런 건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가운데 인간이 모든 만물의 중심이고 그 중심 가운데 여자가 제일 아름다우니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은 여자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 자신도 그렇다고 답변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여자라고 할 때 여자의 뭘 좋아하시느냐? 여자의 입술을 좋아하시겠어요, 눈을 좋아하시겠어요, 몸을 좋아하시겠어요? 뭘 좋아하시느냐 이겁니다. 또, 여자도 “아이고,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에 남자가 이 모든 창조물의 주체가 되니까 남자를 좋아합니다” 하는데 남자의 뭘 좋아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그게 문제가 큽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도대체 왜 태어나기 시작했느냐? 그게 문제가 됩니다. 남자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여자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싸움들을 합니다.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한테 “하나님은 왜 만드셨습니까? 나를 왜 만들었소” 하고 물어 봐요!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남자라는 것을 지을 때 남자만 주체로 생각하고 지으셨겠느냐, 남자를 짓기 전에 여자라는 모습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맞게끔 남자를 지으셨겠느냐? 그리고 여자라는 것을 만들게 될 때도 여자만을 생각하고 지으셨겠느냐, 여자를 만들기 전에 남자가 이렇게 지어졌으니까 그 남자에게 맞게끔 여자를 만드셨겠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를 짓게 될 때 남자만을 중심삼고 지은 것이 아니라 여자를 전제로 해 가지고 여자에 맞게끔 지으셨기 때문에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됩니다. 여기에 온 남자들,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건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하고, 여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하니까 문제입니다. 이 가운데 문제가 뭐냐 하면 존재의 기원인 위해서 태어났다는 관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위해서 태어났다는 관념만 집어넣게 되면 남자도 남자 마음대로 살 수 없고, 여자도 여자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서로가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위해서 태어나기 시작했다면 그 위해서 태어나게 된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왜 지으셨느냐?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창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도 인간 때문에 존재하시는 것이요, 인간이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하고 인간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딱 맞으면 다 끝납니다. 거기에 앞서서 남자하고 여자가 다른 게 뭐냐? 한 가지가 다른 게 있지요? 그거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통일교 교주 양반이 뭐 그런 얘기하느냐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실체 자체가 진리입니다. 부끄러울 게 없는 것입니다. (218-207)

몸 마음을 무엇이 통일하느냐

그러면 남자의 주인이 누구예요? 여자입니다. 또, 여자의 주인이 누구냐 하면 남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남편을 내 주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한 부분을 갖고 있는데 그 주인이 누구냐? 남자의 그 부분의 절대적인 주인은 여자이고, 또 여자의 그 부분의 절대적인 주인은 남자입니다. 지혜로운 하나님은 주인을 전부 달리해 가지고 마음대로 못 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모두 다 자기 것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사악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자유행동을 할 수 있어요? 여자가 자유행동을 할 수 있어요? 머리에 뭘 쓰고 다니면서 그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다 발가벗고 다니더라도 그것을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인을 차 버릴 수 없고 무시할 수 없습니다. 횡적인 탈선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의 주인을 모셔야 된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텐데, 두 주인을 가지려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아무리 거룩한 표시로 감추려고 해도 안됩니다.
여러분, 사랑을 원하지요? 남자 여자 전부 다 원해요, 안 원해요? 무슨 사랑을 원해요? 절대적이고 유일하고 영원한 사랑을 원합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뭐냐?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절대적 사랑이 남자나 여자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죽고 사는 이러한 놀음은 현실적 실증의 사실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유일한 사랑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이 애들을 낳아서 기를 때, 애들이 뭘 알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도 낳아서 눈만 뜨고 1주일만 되면 어머니의 냄새를 압니다. 어머니의 냄새를 맡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맛보게 되면 어머니가 지나가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맡고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린 애기는 어머니를 전체의 중심으로 삼고 자기의 생명과 상대적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어머니 사랑의 품이 좋아서 품기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품입니다. 그 사랑의 품에 품겨서 생명의 줄에 연결되는 그 시간이 행복합니다. 절대적인 사랑으로 하나되면 그 앞에서는 제아무리 생긴 것이 험상궂고 도적놈 같더라도 “예, 그렇습니다” 하고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밤중에 물어 보나, 새벽에 물어 보나, 변소간에 앉아 있다가 물어 보나 “오케이, 넘버 원”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초월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초월해서 공통적인 하나의 절대적인 욕구입니다. 왜 그러하냐?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 키 포인트가 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때요? 하나님이 돈이 필요해요, 권력이 필요해요, 아니면 지식이 필요해요? 그런 것들은 다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 혼자 암만 절대적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사랑을 찾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을 찾으시려면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레버런 문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성공했다고 하지만 암만 성공했더라도 사랑의 세계에서 성공 못 하면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랑의 상대가 없게 될 때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레버런 문에게는 미세스 레버런 문이 있기 때문에 슬프다가도 풀어지지요. 어려운 데, 높은 데, 낮은 데를 가더라도 다 사랑의 조화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높은 것은 낮게 하고, 낮은 것은 높게 하고, 먼 것은 가깝게 하고, 가까운 것은 멀게 할 수 있는 조화의 융통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이더라 이거예요. 그거 부정할 수 있어요?
그러면 인간이 이렇게 절대적 사랑을 가졌다고 할 때,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면 누구를 갖다가 세우실 것이냐 할 때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唯人最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의 파트너, 창조주의 사랑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할 때 그 사랑과 하나된 사랑의 파트너는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나게 됩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적인 산물입니다. 영원한 영생은 여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의 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고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한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영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종적이라면 우리 인간은 횡적이니까 어떻게 종횡을 묶어서 관계를 갖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종적인 존재가 무엇이냐 하면 내 마음이고, 횡적인 입장에 선 존재가 육체입니다. 육체는 세상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몸 마음을 무엇이 통일하느냐 이거예요. 돈이 통일하느냐, 지식이 통일하느냐, 권력이 통일하느냐? 이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참사랑입니다. (218-210)

창조의 원칙으로 본 공식적 결론

그러면 남자가 왜 태어났느냐 할 때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 이겁니다. 여자 남자들이 왜 태어났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 사랑으로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을 점령합니다. 그러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결혼도 그렇습니다. 왜 결혼을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기 위해서입니다.
맨 처음에는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나 가지고 자라면서 “이게 뭐야, 저게 뭐야” 하고 자꾸 질문을 합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자기를 알고 세계를 다 알았습니다. (판서하시며) 이게 알고 보니까 남자가 여기서 퍼져 가지고 전부 다 끝까지 갔습니다. 끝까지 가서 보니까 아담이 옛날에 에덴 동산에서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던 해와가 자기 상대인 것을 알았고, 또 해와가 생각할 때는 언제나 독재주의고 자기만을 위하던 그 오빠라는 녀석을 싫다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내 편인 것을 알아 가지고 서로가 방향을 잡아서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서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되느냐? 중앙에서 만나야 됩니다. 수직의 중앙에서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남자와 여자의 결혼입니다. 그 결혼식을 누가 해줘요?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실 때 뭘 하시느냐? 구경하고 계시는 게 아닙니다. 남자의 마음에 들어가고 여자의 마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남자 여자의 결혼식은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의 파트너를 결탁하는 시간입니다. 누구도 그걸 몰랐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아담 해와가 어떻게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느냐? 에덴 동산에서 동물들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해와를 생각하고 해와가 아담을 생각하니까 별천지가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디서 만나게 되어 있었느냐? 중앙의 자리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두 부모를 거쳐왔습니다. 종적 부모인 창조주와 횡적인 인간의 조상인 횡적 기반에 선 참부모를 중심삼고 종적 사랑과 횡적 사랑이 결탁된 두 부모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핏줄을 이어받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두 구조의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에 마음은 종적인 부모를 이어받고 몸은 횡적인 부모를 이어받아 가지고 이중적 구조로서 통일을 이루는 사랑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창조의 원칙으로 본 공식적 결론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인류의 종적인 부모는 창조주이며, 참사랑을 중심삼고 그 종적인 참부모에 의해 가지고 내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어받은 것이 마음이고, 횡적인 참사랑의 부모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 몸이라고 할 때 그 참사랑과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 두 구조가 완전히 통일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은 핵이 되고 인간의 사랑은 부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218-218)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연결되느냐? 위로부터 오는 사랑은 제일 가까운 거리, 참사랑이 가는 길은 전부 다 직단거리를 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적인 사랑, 위에서부터 아래로 오는 사랑은 직단거리로 통일되게 될 때 90각도가 아니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직단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직단거리가 성립되면 거기에 대해서 인간의 참사랑도 직단거리로 통하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고 볼 때 횡적인 남자 여자도 반드시 수평이 되어 가지고 수직으로 90각도에 갖다 맞출 때 그것이 사랑의 결착점이며 90각도를 중심삼은 정착지입니다. 타락이 뭐냐 하면, 이 각도가 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종적인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인간이 틀려져 있기 때문에 이 각도를 맞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을 인간이 모르기 때문에 메시아가 와 가지고, 본연적 부모가 와 가지고 이것을 고쳐 놓아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뭘 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왜 90각도가 되어야 하느냐? 90각도는 상하와 좌우 그리고 전후를 중심삼고 하나의 구형이 되게 된다면 이 구형의 90각도 12명을 중심삼고 어디에 갖다 맞추더라도, 동서남북 어디에 갖다 맞추더라도 통일이 됩니다. 위의 것을 잘라 가지고 아래에 가져다 붙여도 맞고, 안의 것을 바깥에 갖다가 붙여도 다 딱딱 들어맞습니다. 이게 이렇게 해 가지고 돌아가더라도 틀린 것이 없고, 반대로 돌아가더라도 틀린 게 없고, 전부 다 틀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형으로 이루어지게 될 때, 그것이 지탱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전부 다 교체되는 그 점이 핵을 통하지 않고는 지탱하는 상대권을 못 가집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과 우주가 결탁한 사랑의 이상권을 통해 가지고 우주가 지탱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 하나님은 구형을 닮아 있는 우주의 가운데 계십니다. 그리고 사랑을 중심삼고 종횡이 결탁된 초점에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계십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의 결탁점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 또한 우리 마음속 깊은 가운데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논리에 맞는 것입니다. (218-218)

하나님의 창조이상

이렇게 보게 된다면, 인류의 최초의 조상이었던 아담 해와는 도대체 어떤 존재였느냐?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맏아들이요, 해와는 맏딸이었습니다. 딸도 첫 딸이었습니다. 사랑의 첫 딸이었어요. 그러니까 오늘날 원리에서 말하는 아벨이니 가인이니 장자권 복귀니 하는 그런 말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장자가 결혼하게 되었다면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 그 참부모는 뭐가 되었을 거예요? 지상세계의 왕이 되었을 것이요, 천상세계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왕의 내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었고, 왕의 외적인 주인은 우리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 해와였습니다. 참부모의 자리에 선 아담 해와였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누구였느냐 하면 참사랑을 중심삼은 왕자요, 해와가 누구였느냐 하면 참사랑을 중심삼은 왕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첫사랑의 열매요, 첫 가정의 부모요, 첫 왕권의 전수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되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천국에 들어갑니다. 누구를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병났으니까 누구한테 업히거나 지팡이가 필요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종교가 지팡이의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여러분이 복귀해서 황족의 자격을 느낄 수 있는 공식적인 문을 통과한 티켓을 받지 않고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의 가정에 있어서 아담 해와와 같이 하나님이 대왕이 되시고 여러분은 왕자와 왕녀와 같은 입장에서 우주적인 사랑의 중심에 섰다고 할 수 있는 체험과 체휼을 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왕권과 부모권 그리고 장자권을 중심삼은 직계의 아들딸이 되어서 이 땅 위에 하늘나라의 왕궁을 건설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왕궁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이 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황족의 전통을 세우는 가정과 일족이 들어가는 곳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종적으로 왕권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직계 자녀, 장손 장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습니다.
나무에 있어서 종대순과 종대뿌리가 있지요? 종대순과 종대뿌리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이것은 하나지만 가지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수많은 가지들이 종대뿌리와 종대순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는 것과 같이 똑 같은 영양소를 받고 똑 같은 시간에 똑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은 뭐냐 하면 황족의 전통이 가지와 같이 전부 다 하나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살던 사람이 천국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모든 가지들은 뭐냐 하면, 종대순이 자꾸 자라야 가지들도 자라기 때문에 그 모든 전체가 종대순이 자랄 수 있게끔 영양을 보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대뿌리도 깊이 깊이, 굵게 굵게, 높게 높게, 크고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잎에 있는 사람이나 가지에 있는 사람이나 똑 같은 생활을 한 사람이 천국 간다 하게 될 때 모든 만민의 가정들은 사랑을 중심삼은 황족의 전통을 중심삼은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되는 사람이 아내의 방에 들어가게 될 때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하늘이 공인한 왕후를 찾아 들어가는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고, 여자도 남편의 방에 들어가게 될 때 왕의 침대에 찾아 들어간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한 왕 앞에 왕후가 둘일 수 없고, 왕후 앞에 왕이 둘일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의 왕권과 모든 전체가 내 것이 됩니다. 영계가 그렇습니다.
그 나라가 누구의 나라냐 하면 애국자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 어느 왕의 나라가 아니고 애국자의 나라인 것입니다. 왕의 나라도 되지만 애국자의 나라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더 나라를 사랑했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그 나라가 움직이기 때문에 누가 왕권의 전통을 지켜 가지고 잘살았느냐 하는 문제가 소유권을 측정하는 잣대가 되어 있느니라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왕이 위에 있는 주인이라면, 나는 아래에 있는 하나의 축을 이루는 주인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나라의 역사가 돌아갑니다. 이것이 이상세계입니다. (218-221)

참사랑의 왕과 왕후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몸뚱이를 중심삼은 개인적 사탄 기반, 가정적 사탄 기반, 종족적 사탄 기반, 민족적 사탄 기반, 국가적 사탄 기반, 세계적 사탄 기반의 싸움을 전부 다 해결할 수 있는 내적인 준비를 종교계에서 하지 않고는 통일의 세계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버런 문이 회교권이라든가 불교권 등 12종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는데, 그것은 뭘 하자는 거예요?
평화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종교단체가 싸워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멸하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다 침 뱉어 버리고 발로 차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끝날이 되어 오면 종교의 무력함으로 말미암아 혼돈상태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권 내에서 서서히 제거권 내로 들어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레버런 문 같은 사람이 나와 가지고 그것들을 규합해서 형제지인연을 중심삼고 부모의 사랑으로 하늘과 연결시키기 위한 놀음을 한 것이 초종교운동인데, 그러한 운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평화가 가까워지고 사랑의 다리가 넓어진 것입니다. 그러한 작전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필요합니다.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한 것을 참부모로 출발시켜야 됩니다. 거짓부모는 무엇이냐 하면 거짓사랑에서 거짓생명과 거짓혈통을 상속한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야 됩니다. 이것을 없애 버리고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생명과 참혈통을 어떻게 이어받느냐, 다시 말하면 생명의 씨를 잘못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다시 본연의 씨를 받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참부모가 없으면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메시아가 오셔서 그 메시아의 씨, 참부모의 새로운 생명의 씨를 가져와 가지고 재차 주입해서 접붙이는 양식을 통해 가지고 본연의 참감람나무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짜 우리의 부모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가까워요! 진짜 종적인 부모가 하나님이고, 참부모는 횡적인 부모로서 사랑의 이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만국의 만민들이 형제지관(兄弟之觀)을 중심삼고 국제결혼을 합니다.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민족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합니다. 일본하고 한국은 역사적인 원수입니다. 이건 어떻게도 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1988년에 한국 사람 2천5백 명과 일본 사람 2천5백 명을 완전히 교체결혼시켜 놨습니다.
그러니까 일본나라가 야단하고 한국나라가 야단했습니다. 야단이 뭐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이 바로 안 잡히는 것입니다. 싹, 다 하면 어느 누가 말해요? 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체함으로 말미암아 일본나라의 2세들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기반이 출발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이 결혼하려면, 여러분이 그런 배포와 희망적인 무엇을 갖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은 마음이 크고 넓고 높은 사람들에게 흡수되고 점령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218-223)
그래,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얼마나 멋져요! 정리가 됐지요? 지금까지 성인들은 외적인 세계를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통일교회의 레버런 문은 내적인 처리방법을 가르쳐 줘 가지고 통일적인 방안을 구성했으며, 그런 입장에서 종교를 통일해야 되고, 인류를 통일해야 되고, 하늘땅을 통일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통일교회라는 간판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완성을 논의한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할 수 있느냐? 참사랑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참사랑의 왕과 왕후들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내 것이요, 모든 곳이 내 고향이요, 모든 집이 내 집이 되는 것입니다. (218-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