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1권 12일
평화의 세계, 통일의 세계 (훈독본)
날짜 : 1986.04.12 (토)
장소 : 한국 리틀엔젤스예술회관
https://www.youtube.com/watch?v=F2BEdfWjdu4&list=PLtan-zpeJeikOD5x4sJiSU6hdLc_Cy0m0&index=13
참사람을 어디서 찾느냐
오늘 말씀의 제목은 ‘평화의 세계, 통일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현세의 세계 인류 전체가 바라는 소원입니다.
더욱이, 혼란된 세계의 정세 가운데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남북이 분단되어 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실정 하에 있는 우리로서는 평화와 통일이 숙명적 과제인 동시에 실천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운명적 과제가 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평화의 세계, 통일의 세계는 인류의 공동적인 표제로써 바라고 있는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자신들이 찾고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선한 사람입니다. 참되고 선한 한 사람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1존재가 된다는 신이 있어서 제2존재를 만들었으면 어찌하여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 그는 절대자이고 불변 영원하신 분인데, 그분이 이상을 두고 지은 인류시조가 어떻게 악하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절대자인 그분이 생각하는 생각도 절대적이고 그가 세운 모든 목표도 절대적임에 틀림없어야 할 텐데, 그분이 지은 인간 자체가 이렇게 오늘날 세계의 혼란상을 이루어 버리고 전쟁역사를 엮어 가지고 멸망의 전야제를 맞을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이 어떤 연고냐는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참사람을 어디서 찾느냐? 여러분, 참사람을 봤어요? 참사람 가운데 참된 남자를 어디서 찾느냐, 참된 여자를 어디서 찾느냐? ‘사람’ 하면 아담과 해와, 남자와 여자입니다. 참된 사람을 나누어 놓으면 아담 해와, 남자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남자, 참된 여자’ 할 때 도대체 어떤 것이 참된 남자요, 참된 여자예요? 그 정의가 설정되어 있지 않고 내용이 규명되지 않는 입장에서 참의 사람을 추구한다면 모순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지금까지 참된 사람을 찾고, 참된 사람을 찾은 후에는 참된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추구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철학사조에 문제가 되어 오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건 뭐냐? 종교는 신을 만나 가지고 신과 더불어 사는 이상적 생활, 평화의 세계, 신이 기뻐하고 사람이 기뻐하고 만민이 기뻐하는 절대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으로부터 이상적 생활권을 추구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오늘날 그 종교 자체도 실패권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날 여기 기독교, 미국의 기독교를 보더라도 기독교는 이미 다 망했습니다. 현세를 소화할 수 없는 비탄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그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철학에 대한 희망이나 종교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인간은 문제가 큰 것입니다. 도대체, 이거 어떻게 되어서 오늘날 인간이 이와 같은 도탄 중에 살게 되어 있느냐 하는 근본문제의 해결을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144-146)
복귀섭리는 재창조섭리
오늘날 우리 자신을 두고 보더라도 몸과 마음이 완전히 통일의 기준에 서 있지 못합니다. 타락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않았으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는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오늘날 인류역사에 성인 현철들이 많이 왔다 갔지만, 그들 가운데 “나는 인생도상에 있어서 위인의 명칭 혹은 성인의 명칭을 가지고 선언하나니, 나는 몸과 마음의 완전한 통일을 이루어 영원히 하나로서 행복하다”라고 한 성인이 있었어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성인이 그렇게 못 했다면 누가 할 것이냐?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신다면 가망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망성을 걸고 오늘 여러분 앞에 나타나 가지고 말하고 있는 본인은 역사상의 어떠한 누구보다도 비참한 투쟁을 했습니다.
인간이 통일할 수 있는 길, 오늘날 혼란된 세상을 수습할 수 있는 길, 평화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길, 인간이 완성해서 이상적인 자아를 세워 가지고 만 우주에 자랑하고 주체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아의 발견을 어떻게 하느냐? 그것은 신을 확실히 발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고장이 났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한다는 것은 고장나지 않았던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구원섭리는 복귀섭리다, 이런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을 세계 역사상에 레버런 문이 발표했습니다. 구원섭리는 복귀섭리다!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복귀해 가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원칙을 따라서 가야 됩니다. 어느 누구라도 맹목적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재창조섭리입니다. 재창조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공장에서 블루프린트(청사진)를 통해 가지고 생산돼 나온 것이 고장이 날 때는 그 블루프린트를 통해서 재차 고장나기 전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바라던 본연의 실체가 나올 수 없는 것이 현실사회의 실상입니다. (144-148)
하나님은 참사랑의 대상인 아들딸을 필요로 해
도대체, 하나님이라는 분이 있다면 인간을 왜 만드셨느냐 이거예요. 이게 종교인으로서는 근본적인 문답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사상에서 창조주는 신성한 분이고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고 규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볼 때, 기독교는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살 수 없다는 결론을 이미 짓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느냐 이거예요. 이렇게 싸우고 역사에 피 흘려 가면서 원수시하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 만드셨다면, 그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류 앞에서 추방당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라면, 그분에게 있어서 인격의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인간들이 좋아하는 돈이나 지식 혹은 권력이 아닙니다. 도대체, 그러면 하나님한테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한테 절대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이 혼자서 찾으실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혼자 기뻐하실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서 있는 레버런 문은 하나님의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의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추구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류 사상입니다. 참사랑은 참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없으면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세계에 구세주를 보내신다는 말씀이 성립된 것입니다.
그 구세주가 와서 뭘 할 것이었어요? 권력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메시아가 세계를 구하러 왔던 것, 사랑의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왔던 것을 유대교가 믿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2천 년 동안 역사노정에서 비참히 수난 받는 고역의 민족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사람이다. 이렇게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시조를 지었는데 지으실 때 주된 사상이 무엇이었느냐 이거예요. 자기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상대를 바라서 지으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오늘날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惟人最貴)’라고 했습니다. 뭐가 귀하냐? 창조주가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그 사랑 앞에 상대적 권한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 그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144-150)
20세기 말기의 문명권
문 아무개가 생애를 바쳐 투쟁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 따져 들어가 보니 결론이 간단했습니다. 우주의 비밀이 딴 것이 아니라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라고 할 때, 그 부모는 가정에 모시는 부모가 아닙니다. 천지의 대주재가 되는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부자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참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참대상이 되는 사랑의 아들딸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이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요, 남자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요, 여자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참사랑, 절대적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이 벌어집니다. 이게 우주의 근본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없으면 고독한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이 필요하다면 전지전능한데 왜 못 가지시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적 기준이 설정되어 가지고 상대자가 나타나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이 천지 창조한 절대자라도 그 자체 앞에 사랑의 상대권을 통하지 않고는 그것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권 설정을 위해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기 시작하셨다는 말입니다. (144-150)
여러분 자신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느냐?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싸우고 계속해서 또 싸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시조가 그런 것을 뿌려서 역사적으로 보면 끝날의 가을절기와 마찬가지의 역사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지금 20세기 말기의 문명권은 인간역사의 시작 때 심어진 것을 거둘 때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아무리 혼란이 벌어져도 역사를 이 시대 자체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원인규명을 확실히 해서 본원지에 들어가 가지고 바로잡지 않고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세웠습니다. (144-153)
출생의 동기
나를 어떻게 통일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를 보고 지식을 가지고 하나되라고 해도 안 됩니다. 몸뚱이 자체도 그래요. 욕망을 중심삼고 말입니다. 돈 가지고 안 되고, 지식 가지고도 안 되고, 권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마음의 세계는 더욱이나 안 됩니다.
그러면 무엇만이 가능하냐? 참사랑이 이 몸에 와 붙으면 감전이 됩니다. 지금까진 반대로 갔지만 참사랑이 내 몸뚱이에 와서 접하면 그것을 자꾸 흡수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몸보고 “너 몸이 이와 같이 오늘날 통일의 기대를 전부 다 파탄시켜 나오는 원흉이 됐는데, 너 본래의 근본인 몸이 하나될 수 있는 요소가 뭐냐” 물어 보게 될 때, 그걸 찾고 또 찾아볼 때 그 요소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단 한 가지는 뭐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만 나오게 되면 몸뚱이도 달라붙는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몸 마음에 연결되게 될 때는 마음도 하나되고 싶고, 몸도 하나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한 요소로 인간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몸과 마음은 그 사랑 앞에 통일된 아들딸이 안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시조를 짓게 될 때 하나님 앞에 단 두 사람, 성경에는 아담을 지어 놓고 해와를 지으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144-154)
사람이 왜 태어났어요? 지상에 왜 태어났어요? 남자라는 동물은 여자라는 동물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동기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여자가 태어난 동기는 여자 때문이 아니라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엇바뀌었습니다.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이 뭐냐 하면 여자입니다. 또, 여자에게 제일 귀한 것은 남자입니다. 근본문제에 있어서의 출발이 엇갈려 있다는 것입니다. (144-157)
하나님의 창조의 본질
그렇다면 어째서 그러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니 남자에게는 여자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자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절대적 요건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몰랐습니다.
그러면 더 들어가서 남자 여자를 왜 하나님이 만드셨어요?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가 왜 하나되어야 해요? 인간적 사랑은 횡적입니다. 횡적 사랑인데, 이 횡적 사랑에는 조화가 없습니다. 직선상에는 조화가 없습니다. 평면상에는 조화가 없습니다. 수직적인 인연을 가져야 됩니다. 수직적인 사랑이 뭐냐? 하나님과의 사랑입니다.
결국은 어디 가기 위한 목적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났고 그 둘이 서로 서로가 사랑의 인연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인간이 사랑을 하느냐? 여러분, 욕심을 보게 되면 우주를 다 자기 손아귀에 집어넣고도 그 위에 더 큰 것이 있으면 그것도 갖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이런 욕망을 왜 집어 넣으셨겠어요?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 속에 있는 사랑까지도 차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까지도 발견해야 됩니다.
인간이 태어난 목적은 사랑의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뭐냐? 사랑이 왜 필요하냐? 사랑이라는 것은 관계만 맺으면 즉각 동위권(同位圈)에 서는 것입니다. 동참권을 갖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관계를 맺으면 같은 자리에 갑니다.
남자 여자의 사랑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이것은 반드시 혼자서는 안 됩니다. 혼자는 완성이 못 되는 것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잘나 가지고 성인이 되고 도통해 가지고 암만 그래야 하나님의 이상적인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완전히 사랑으로 통일되고 안팎의 몸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선남선녀로서 완전히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을 그려 나갈 수 있는 사랑, 그 평형선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랑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을 못 대하고는 하나님 앞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근본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본질이 사랑에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시작됐으니, 오늘의 인간 우리 자체도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사랑에서 출발해 사랑의 무대 위에서 자연적으로 화합해 가지고 자연적 동기에 접착해서 자연적 순환법도를 따라 가지고 그 열매와 같은 근본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144-157)
하나님은 영원하신 사랑
하나님께서는 창조할 때 자신을 전부 다 투입하셨습니다. 위해서 투입하신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모두를 투입하셨습니다. 위해서 상대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해서 존재하는 입장에 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귀하다고 하는 것은 천 번 사랑하고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구십 된 노인이 칠십 된 아들을 대해서 “야, 너 나가서 차 주의해라” 이러는 거예요. 구십 년을 전부 다 매일같이 권고했지만 지칠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참사랑의 인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천년만년 안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영생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찾을 길이 없습니다. 참사랑만이 영원합니다. 참사랑만이 부족하고 결여된 모든 것을 보충하고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통일교회는 위하는 종교입니다. 효자가 무엇입니까? 생명을 걸고, 생명을 바치면서 부모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충신이 뭐예요?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또 더 넘어서 바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힘은 사랑만이 갖고 있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참다운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로 태어났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누구냐? 내가 왜 귀하냐? 나는 부모님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사랑에 동참해 가지고 생명이 거기서 가지를 쳐 나온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모체의 원인적 사랑에 속해 있어야 됩니다. 절대적입니다. 그 사랑을 갖고 나올 때 우주는 어디든지 순응해야 됩니다. 그러한 본성적인 권위의 사랑기준을 중심삼고 나를 존중시하는 이 내용을 모르고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길이니 부모의 사랑에 동참한 나는 그 하나님의 사랑 길을 밝혀 가야 할 교량이요, 디딤돌입니다. 내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길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144-159)
위하는 길에서만 참사랑이 연결되는 것
참사랑을 찾아갈 사람은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는 절대 못 갑니다. 참사랑을 찾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해방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해방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무한히 광대한 세계와 놀음놀이를 할 수 있는 본질을 갖고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작용을 못 했던 탈락된 자아를 발견해야 됩니다. 자기가 출세하고 자기가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하늘과 관계가 없습니다. 위해야 됩니다. 위하는 길에서만 참사랑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백 번 반대할 때 백 번 이상 위하게 되면 통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기를 보면, 하나님은 왜 악마가 원하는 걸 다 이루어 주셨느냐? 위하는 사랑을 가진 본체이기 때문에 악마에 대해서도 악마의 행동으로 대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참이라는 것입니다. 위하는 사람에게, 위하는 데 본질적 사랑의 길이 동반되게 되어 있지 자기를 주체삼고 위하라고 하는 것은 악마가 낚아채 가는 것입니다.
남자는 누구를 위해서 났어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여자를 위하는 데 있어서 자기 생명을 다 투입해서 위할 수 있고, 위하고 나서 또 생명을 바쳐서 위하고 영원히 위하고 또 위하고 위할 수 있는 남자가 참된 남자입니다. 참된 여자는 누구냐? 자기 남편이면 남편을 중심삼고 생명이 끊어지면서라도 그 사랑을 위해서 더 위하고 더 위하고 싶을 수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이 참된 여자입니다. 그와 같은 부부만이 참된 부부입니다. 그런 부부로 연결되어 가지고 부모에 대해서 위하는 사람, 둘이 하나돼 가지고 위로 부모를 위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부부가 참부부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는 부모가 참된 부모요, 부모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녀가 참된 자녀입니다.
이런 원칙적 논리를 규정짓게 될 때 참다운 남자, 참다운 여자를 찾는 데서만이 세상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이 오늘 여기서부터 위하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애국자가 뭐예요? 나라를 위하는 사람 아니에요? 성인이 뭐예요? 성인은 세계를 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뭐예요? 인류 전체를 위하여 나오시기 때문에 하나님입니다. (144-161)
통일의 원칙
세계평화, 통일의 세계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몸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마음을 위하고 마음이 몸을 위할 수 있는 이 사랑을 찾아야 됩니다. 거기서부터 본질적 사랑이 내게 깃듭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으니 여자를 자기 생명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서로 위하는 세계, 서로 빼앗는 세계가 아닌 서로 위하는 세계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공식적인 과정을 통해 가지고 체험을 통할 수 있는 길을 알게 되면 왜 안 가겠어요? 우리 같은 사람은 이제 딴 데 가래도 안 간다는 것입니다.
위하는 사랑의 길에서만이 하나님을 만나고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를 만날 수 있고, 참된 가정과 참된 아들딸, 참된 부모,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나라, 참된 세계, 참된 하늘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것이 통일의 원칙입니다. 이것이 평화의 원칙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요사스럽게 말하는 위대하다는 사람이 있더라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부디, 그렇게 아시고 돌아가셔서 이런 운동을 오늘부터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144-167)*
천일국 훈독경 제11권 12일, 원문
평화의 세계, 통일의 세계 15720
날짜 : 1986.04.12 (토)
장소 : 한국 리틀엔젤스예술회관
참사람을 어디서 찾느냐
오늘 말씀의 제목은 ‘평화의 세계, 통일의 세계’입니다. 오늘날 세계 40억 인류를 모아 놓고 “그대들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평화의 세계가 되었으면, 하나의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현세의 세계 인류 전체가 바라는 소원입니다. 비단 이 시대뿐만이 아니고 이 시대가 지나간 후의 후대의 소망도 되는 것이요, 뿐만 아니라 과거의 인류역사 과정에 왔다 갔던 모든 성인 현철과 그 이외의 사람들, 모든 인류 전체가 희망했던 표제가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혼란된 세계의 정세 가운데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남북이 분단되어 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실정 하에 있는 우리로서는 평화와 통일이 숙명적 과제인 동시에 실천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운명적 과제가 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평화의 세계, 통일의 세계는 없을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동서남북에 살고 있는 세계, 거기에는 문화배경이 다르고 전통이 다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누구나 다 환영할 수 있는 그런 평화의 기지, 그런 통일의 세계는 없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공동적인 표제로써 바라고 있는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 가만이 보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사람이 나빠서 이렇게 됐느냐, 혹은 신이 있으면 신이 짓궂어 가지고 이렇게 됐느냐?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사람’ 하게 된다면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반드시 심은 대로, 동기가 된 대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본래의 우리 인류시조를 기독교 신자들은 말하기를 아담과 해와라고 말합니다. 아담 해와라고 말하는데, 그 아담 해와가 선한 조상으로서 선의 씨를 뿌렸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오늘날 이 종교계에서 아무리 인간의 근본문제를 규명하기 위해서 찾아보더라도 인간은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동기에 의해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결과적 존재인 것입니다. 제2의 존재입니다. 제1존재가 아니라 제2의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 자신이 이렇게 나쁘게 되었으면 그 원인이 되는 근본이 나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철학사조에서 크나큰 문제가 됩니다.
지금 우리 자신들이 찾고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선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세계가 크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는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되고 선한 한 사람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1존재가 된다는 신이 있어서 제2존재를 만들었으면 어찌하여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 그는 절대자이고 불변 영원하신 분인데, 그분이 이상을 두고 지은 인류시조가 어떻게 악하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절대자인 그분이 생각하는 생각도 절대적이고 그가 세운 모든 목표도 절대적임에 틀림없어야 할 텐데, 그분이 지은 인간 자체가 이렇게 오늘날 세계의 혼란상을 이루어 버리고 전쟁역사를 엮어 가지고 멸망의 전야제를 맞을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이 어떤 연고냐는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참사람을 어디서 찾느냐? 여러분, 참사람을 봤어요? 참사람 가운데 참된 남자를 어디서 찾느냐, 참된 여자를 어디서 찾느냐? ‘사람’ 하면 아담과 해와, 남자와 여자입니다. 참된 사람을 나누어 놓으면 아담 해와, 남자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남자, 참된 여자’ 할 때 도대체 어떤 것이 참된 남자요, 참된 여자예요? 그 정의가 설정되어 있지 않고 내용이 규명되지 않는 입장에서 참의 사람을 추구한다면 모순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지금까지 참된 사람을 찾고, 참된 사람을 찾은 후에는 참된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추구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철학사조에 문제가 되어 오는 것입니다. 철학은 오늘날 인간의 역사를 통해 가지고 모든 면을 비판규명해 나오면서 “참된 사람이 어떤 것이냐? 참된 사람을 결과적 존재로 지으신 원인적 존재가 되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어떤 것이냐” 하는 걸 규명하는 데 있어서 이미 낙제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탈락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철학이 추구하는 목표는 뭐냐? 참된 사람을 찾지 못하는 입장에 있다면, 그것을 넘어서 참된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제1원인 되는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제2원인적인 존재의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의 참된 모습은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발견해야 됩니다. 여기에 있어서 철학은 이미 실패했습니다.
종교라는 건 뭐냐? 종교는 신을 만나 가지고 신과 더불어 사는 이상적 생활, 평화의 세계, 신이 기뻐하고 사람이 기뻐하고 만민이 기뻐하는 절대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으로부터 이상적 생활권을 추구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오늘날 그 종교 자체도 실패권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날 여기 기독교, 미국의 기독교를 보더라도 기독교는 이미 다 망했습니다. 현세를 소화할 수 없는 비탄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그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철학에 대한 희망이나 종교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인간은 문제가 큰 것입니다. 도대체, 이거 어떻게 되어서 오늘날 인간이 이와 같은 도탄 중에 살게 되어 있느냐 하는 근본문제의 해결을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144-146)
복귀섭리는 재창조섭리
오늘날 우리 자신을 두고 보더라도 몸과 마음이 완전히 통일의 기준에 서 있지 못합니다. 기독교 신학을 창시한 바울 같은 양반은 마음의 법이 있고 몸뚱이의 법이 있어 가지고 두 법이 싸우는데 몸의 법이 마음의 법을 언제나 사로잡아 도탄 중에 몰아넣음으로 말미암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4) 하는 비통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건 왜 그랬느냐? 신이 있다면 어찌하여 마음의 법이 몸의 법을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더냐?
오늘날 우리 인간 자신의 통일권을 찾아보려고 할 때 신이 있다면 완전히 통일적인 내적 기준을 중심삼고, 양심을 중심삼고 몸을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 당장 서야 할 터인데 그런 입장에 선 자아를 보장할 수 없다면 그건 어떤 원인 때문이냐 이거예요.
타락이라는 말을 갖다 놓게 되면 신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유를 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타락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않았으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는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오늘날 인류역사에 성인 현철들이 많이 왔다 갔지만, 그들 가운데 “나는 인생도상에 있어서 위인의 명칭 혹은 성인의 명칭을 가지고 선언하나니, 나는 몸과 마음의 완전한 통일을 이루어 영원히 하나로서 행복하다”라고 한 성인이 있었어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성인이 그렇게 못 했다면 누가 할 것이냐? 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신다면 가망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망성을 걸고 오늘 여러분 앞에 나타나 가지고 말하고 있는 본인은 역사상의 어떠한 누구보다도 비참한 투쟁을 했습니다.
인간이 통일할 수 있는 길, 오늘날 혼란된 세상을 수습할 수 있는 길, 평화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길, 인간이 완성해서 이상적인 자아를 세워 가지고 만 우주에 자랑하고 주체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아의 발견을 어떻게 하느냐? 그것은 신을 확실히 발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결론지었기 때문에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걸고 누구보다도 담판을 한 대표적인 사나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 모르는 걸 알다 보니, 말을 하다 보니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반대도 많이 받으며 지금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윤리, 도덕관념, 누구나 아는 모든 사회제도에 일치될 수 있는 것을 하나 둘 했으면 문제가 안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만 년 거쳐온 역사적 과정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원점으로 돌아가야 된다 이거예요.
구원이라는 말은 고장이 났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한다는 것은 고장나지 않았던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구원섭리는 복귀섭리다, 이런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을 세계 역사상에 레버런 문이 발표했습니다. 구원섭리는 복귀섭리다!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복귀해 가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원칙을 따라서 가야 됩니다. 어느 누구라도 맹목적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재창조섭리입니다. 재창조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공장에서 블루프린트(청사진)를 통해 가지고 생산돼 나온 것이 고장이 날 때는 그 블루프린트를 통해서 재차 고장나기 전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바라던 본연의 실체가 나올 수 없는 것이 현실사회의 실상입니다. (144-148)
하나님은 참사랑의 대상인 아들딸을 필요로 해
그러면 문제가 큽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드셨느냐? 도대체, 하나님이라는 분이 있다면 인간을 왜 만드셨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겠어요, 지식이 필요하겠어요, 권력이 필요하겠어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능치 못함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도대체 무엇이 필요해서 사람을 만드셨느냐 이거예요. 이게 종교인으로서는 근본적인 문답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사상에서 창조주는 신성한 분이고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고 규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볼 때, 기독교는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살 수 없다는 결론을 이미 짓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느냐 이거예요. 이렇게 싸우고 역사에 피 흘려 가면서 원수시하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 만드셨다면, 그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류 앞에서 추방당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라면, 그분에게 있어서 인격의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인간들이 좋아하는 돈이나 지식 혹은 권력이 아닙니다. 도대체, 그러면 하나님한테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한테 절대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이 혼자서 찾으실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혼자 기뻐하실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사랑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기독교 신자들이 잘 알듯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했는데, 그 첫째 되는 계명이라는 것이 무슨 기독교인들에 대한 계명이에요? 인간 전체, 우주 전체에 대한 계명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둘째는 뭐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 이거예요. 둘째 계명은 세계인을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게 뭐예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또, 기독교인들이 잘 알고 있는 성구인 요한복음 3장 16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장로교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짜입니다. 감리교나 성결교를 사랑해서 주었다고 생각하면, 그건 가짜들입니다. 중요한 건 다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했습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지요. 교파주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세계주의입니다. 종파주의적 입장에 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권 내로 나갈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서 있는 레버런 문은 하나님의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의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추구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류 사상입니다. 참사랑은 참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없으면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세계에 구세주를 보내신다는 말씀이 성립된 것입니다.
그 구세주가 와서 뭘 할 것이었어요? 권력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나라에 메시아가 오게 되면 로마의 압제 하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를 당장에 권력으로 분쇄해 버리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끔 바랐기 때문에 메시아를 맞지 못했습니다. 메시아가 세계를 구하러 왔던 것, 사랑의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왔던 것을 유대교가 믿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2천 년 동안 역사노정에서 비참히 수난 받는 고역의 민족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사람이다. 이렇게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시조를 지었는데 지으실 때 주된 사상이 무엇이었느냐 이거예요. 자기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상대를 바라서 지으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오늘날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惟人最貴)’라고 했습니다. 뭐가 귀하냐? 창조주가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그 사랑 앞에 상대적 권한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 그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144-150)
20세기 말기의 문명권
여러분, 오늘 이것을 확실히 알고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이게 하나의 선물입니다. 문 아무개가 생애를 바쳐 투쟁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 따져 들어가 보니 결론이 간단했습니다. 우주의 비밀이 딴 것이 아니라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라고 할 때, 그 부모는 가정에 모시는 부모가 아닙니다. 천지의 대주재가 되는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부자의 관계입니다. 답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부자의 관계가 뭐냐? 이런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 볼 때,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이 뭐냐? 참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참대상이 되는 사랑의 아들딸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이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요, 남자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요, 여자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참사랑, 절대적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이 벌어집니다. 이게 우주의 근본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없으면 고독한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이 필요하다면 전지전능한데 왜 못 가지시는 거예요? 자체로서 모든 자유 권한을 가지고 행사하실 수 있는데, 그 말이 틀리잖아요? 천만에요! 내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적 기준이 설정되어 가지고 상대자가 나타나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이 천지 창조한 절대자라도 그 자체 앞에 사랑의 상대권을 통하지 않고는 그것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권 설정을 위해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기 시작하셨다는 말입니다. (144-150)
나 하나 물어 보자구요! 여러분 자신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느냐?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싸우고 계속해서 또 싸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시조가 그런 것을 뿌려서 역사적으로 보면 끝날의 가을절기와 마찬가지의 역사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지금 20세기 말기의 문명권은 인간역사의 시작 때 심어진 것을 거둘 때입니다. 수확기라고 보는 것입니다.
언제 뿌려졌느냐? 언제 뿌려졌는지 모르지만 기간을 통해서 열매맺을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조 아담 해와는 어떠했느냐? 몸과 마음이 싸우는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뿌려진 것이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팽창되어 가지고 단말마적인 세계상을 이루어 놓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중심삼은 주의, 양심적으로 해야 되겠다는 주의, 그것이 인륜 도덕관을 중심삼고 새로운 종교문화와 인격완성의 세계를 추구해 나왔습니다. 그 반면에 몸뚱이는 “아니야, 마음이고 무엇이고 다 짓밟고 나는 동물과 같은 행동을 해 가지고 현재 자체 생활권 내에서 만족하면 돼! 도덕이고 뭐고 없다” 이거예요. 그런 두 싸움권 내에 내가 묶여 있습니다. 인류는 이 싸움을 하며 나오고 있습니다.
그 싸움이 열매로 맺혔으니 마음적 입장을 대표한 세계적 결실형이 유심세계, 유심사관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유물세계, 공산주의 세계입니다. 이게 어디서 나온 거예요? 그 밑바닥의 동기가 어디예요? 이것은 여러분의 몸과 마음, 여러분의 개체에 인연되어 있는 몸과 마음의 투쟁역사가 횡적으로 세계 만민에 연결됨과 동시에 조상으로부터, 즉 종적으로의 수만 년의 역사를 이어 나온 투쟁역사권 내에서 자리를 못 잡고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혼란 과정에 있는 입장과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아무리 혼란이 벌어져도 역사를 이 시대 자체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원인규명을 확실히 해서 본원지에 들어가 가지고 바로잡지 않고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세웠습니다. (144-153)
출생의 동기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일확천금을 꿈꾸어 당장에 어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쥐어 가지고 자기 스스로 욕망적인 모든 것을 한번 충당시켜 보겠다고 행세했댔자 그 자체가 세계적이 될 수 없습니다. 역사는 반드시 결실을 맺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이 두 싸움을 어떻게 말리느냐 하는 게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이 싸움을 돈 줘 가지고 말릴 수 있어요? 몸뚱이는 돈을 제일주의로 하는데, 마음은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라 이거예요. 만민을 위해 써라 이거예요. 몸뚱이는 반대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선의 하나님이 있는 반면에 악의 신이 있습니다. 악신과 선신의 대결 도상에서 놀아나는 인간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를 어떻게 통일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를 보고 지식을 가지고 하나되라고 해도 안 됩니다. 몸뚱이 자체도 그래요. 욕망을 중심삼고 말입니다. 돈 가지고 안 되고, 지식 가지고도 안 되고, 권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마음의 세계는 더욱이나 안 됩니다.
그러면 무엇만이 가능하냐? 참사랑이 이 몸에 와 붙으면 감전이 됩니다. 지금까진 반대로 갔지만 참사랑이 내 몸뚱이에 와서 접하면 그것을 자꾸 흡수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몸보고 “너 몸이 이와 같이 오늘날 통일의 기대를 전부 다 파탄시켜 나오는 원흉이 됐는데, 너 본래의 근본인 몸이 하나될 수 있는 요소가 뭐냐” 물어 보게 될 때, 그걸 찾고 또 찾아볼 때 그 요소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단 한 가지는 뭐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만 나오게 되면 몸뚱이도 달라붙는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에게 “마음아, 너 무엇하고 하나될 거야” 물어 보면 돈이겠어요? 지식이겠어요? 권력이에요? 아닙니다.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 몸 마음에 연결되게 될 때는 마음도 하나되고 싶고, 몸도 하나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한 요소로 인간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몸과 마음은 그 사랑 앞에 통일된 아들딸이 안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시조를 짓게 될 때 하나님 앞에 단 두 사람, 성경에는 아담을 지어 놓고 해와를 지으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144-154)
그러면 해와가 생겨나게 된 동기가 어디 있어요? 여자가 생겨난 동기가 어디 있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여자가 여자 때문에 생겨났어요?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야, 여자는 여자인 나 때문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사고라는 것입니다. 본래 여자가 생겨난 것은 여자 때문에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든 것은 여자 때문에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누구 때문이었어요? 남자 때문에 만드셨다는 거예요. 출생의 동기가 여자 때문이 아닙니다. 이걸 몰랐습니다. 출생의 동기가 남자 때문입니다. 남자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 문씨 종족 가운데서 잘났다는 남자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왜 태어났어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하겠어요? 태어나기를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생겨나게 된 동기가 여자입니다. 남자가 아닙니다. 이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왜 내가 태어났느냐? 왜 이 땅 위에 나타났느냐? 지금까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철학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태어났어요? 지상에 왜 태어났어요? 남자라는 동물은 여자라는 동물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동기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여자가 태어난 동기는 여자 때문이 아니라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엇바뀌었습니다.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이 뭐냐 하면 여자입니다. 또, 여자에게 제일 귀한 것은 남자입니다. 근본문제에 있어서의 출발이 엇갈려 있다는 것입니다. (144-157)
하나님의 창조의 본질
그렇다면 어째서 그러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사랑을 찾으려니,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니 남자에게는 여자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자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절대적 요건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몰랐습니다.
그러면 더 들어가서 남자 여자를 왜 하나님이 만드셨어요?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가 왜 하나되어야 해요? 인간적 사랑은 횡적입니다. 횡적 사랑인데, 이 횡적 사랑에는 조화가 없습니다. 직선상에는 조화가 없습니다. 평면상에는 조화가 없습니다. 수직적인 인연을 가져야 됩니다. 수직적인 사랑이 뭐냐? 하나님과의 사랑입니다.
결국은 어디 가기 위한 목적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났고 그 둘이 서로 서로가 사랑의 인연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남자가 사랑을 찾아가려면 여자 외에는 없습니다. 남자가 참사랑을 찾는 길이 그것입니다. 참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인간이 사랑을 하느냐? 여러분, 욕심을 보게 되면 우주를 다 자기 손아귀에 집어넣고도 그 위에 더 큰 것이 있으면 그것도 갖고 싶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에 있어서의 측량할 수 없는 막대한 욕망, 방대한 욕망이 허황된 것이냐? 허황되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이런 욕망을 왜 집어 넣으셨겠어요? 그러니 그 욕망이 없으면 안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 속에 있는 사랑까지도 차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까지도 발견해야 됩니다.
인간이 태어난 목적은 사랑의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본심은 “높아라, 높아라, 높아라” 하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길을 잘못 들었으니 그렇지요. 그러면 그 사랑이 뭐냐? 사랑이 왜 필요하냐? 사랑이라는 것은 관계만 맺으면 즉각 동위권(同位圈)에 서는 것입니다. 동참권을 갖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관계를 맺으면 같은 자리에 갑니다.
남자 여자의 사랑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이것은 반드시 혼자서는 안 됩니다. 혼자는 완성이 못 되는 것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잘나 가지고 성인이 되고 도통해 가지고 암만 그래야 하나님의 이상적인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완전히 사랑으로 통일되고 안팎의 몸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선남선녀로서 완전히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을 그려 나갈 수 있는 사랑, 그 평형선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랑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을 못 대하고는 하나님 앞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얘기입니다.
우리는 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근본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돌아가는 데는 돈 가지고 가요? 지식 가지고, 권력 가지고 가요? 안 됩니다. 본연의 본질이 근원이니 그 본질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돌아올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본질이 사랑에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시작됐으니, 오늘의 인간 우리 자체도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사랑에서 출발해 사랑의 무대 위에서 자연적으로 화합해 가지고 자연적 동기에 접착해서 자연적 순환법도를 따라 가지고 그 열매와 같은 근본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무슨 논리가 필요 없고, 가중적인 인간의 보충의 힘도 필요 없습니다. 구원이니 뭐 섭리니 구세주니 그런 보강적 요건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144-157)
하나님은 영원하신 사랑
오늘날 문이라는 사람이 세계 도처에서 반대를 받으며 피해 다니고, 별의별 놀음을 하고, 쫓겨다니고 다 했는데 결국에 가 가지고는 오늘날 세계적인 발판을 어떻게 닦았느냐? 하나님께서는 창조할 때 자신을 전부 다 투입하셨습니다. 위해서 투입하신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모두를 투입하셨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위해서 상대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해서 존재하는 입장에 서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놀랍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영원하신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귀하다고 하는 것은 천 번 사랑하고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구십 된 노인이 칠십 된 아들을 대해서 “야, 너 나가서 차 주의해라” 이러는 거예요. 구십 년을 전부 다 매일같이 권고했지만 지칠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참사랑의 인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잊고 또 되풀이해도 싫지 않아요. 천년만년 안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영생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찾을 길이 없습니다. 참사랑만이 영원합니다. 참사랑만이 부족하고 결여된 모든 것을 보충하고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로마 병정에 대해서 복을 빈 놀라운 사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저들이 짓는 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러니 자기를 봐서 그 죄를 탕감해 달라고 호소했던 내용이 뭐예요? 죄보다도 더 큰사랑의 힘이 작용했습니다. 죄를 기억하기 전에 사랑이 벌써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게 위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통일교회는 위하는 종교입니다. 효자가 무엇입니까? 생명을 걸고, 생명을 바치면서 부모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충신이 뭐예요?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또 더 넘어서 바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힘은 사랑만이 갖고 있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결론을 짓자구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권위를 절대시하지요? 누가 조금만 무시해도 욕을 하고 대번에 복수하려고 합니다. 누가 침범하면 용서치 않습니다. 절대시합니다. 그거 왜 절대시하느냐? 나라는 존재는 참다운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로 태어났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누구냐? 내가 왜 귀하냐? 나는 부모님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생명의 동참자가 아닙니다. 사랑에 동참해 가지고 생명이 거기서 가지를 쳐 나온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모체의 원인적 사랑에 속해 있어야 됩니다. 절대적입니다. 그 사랑을 갖고 나올 때 우주는 어디든지 순응해야 됩니다. 그러한 본성적인 권위의 사랑기준을 중심삼고 나를 존중시하는 이 내용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덮어놓고 나 제일주의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길이니 부모의 사랑에 동참한 나는 그 하나님의 사랑 길을 밝혀 가야 할 교량이요, 디딤돌입니다. 내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길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144-159)
위하는 길에서만 참사랑이 연결되는 것
참사랑을 찾아갈 사람은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는 절대 못 갑니다. 도를 닦는데 내가 구원을 받겠다고 해서 정성들이면 가다가 전부 다 막혀요. 참사랑을 찾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해방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해방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데데한 졸장부들이 오늘날 교파주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단이니 사교니 하는 말을 해요?
영계가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무한히 광대한 세계와 놀음놀이를 할 수 있는 본질을 갖고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작용을 못 했던 탈락된 자아를 발견해야 됩니다. 자기가 출세하고 자기가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하늘과 관계가 없습니다. 위해야 됩니다. 위하는 길에서만 참사랑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문 아무개라는 사람도 지금까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생활한 그 모든 내용의 골자는 간단합니다. 위하는 것입니다. 백 번 반대할 때 백 번 이상 위하게 되면 통일이 벌어집니다. 그거 이론적입니다. 기성교회가 나를 40년 동안 반대했지만 내가 다 잊어버리고 반대하지 않고 껄껄 웃으면서 대해주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또 40년을 반대할 수 있는 기력이 있어요? 하나님은 “어디, 악마의 세력이 크다 하더라도 반대해 봐라! 너를 위해주마”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기를 보면, 하나님은 왜 악마가 원하는 걸 다 이루어 주셨느냐? 위하는 사랑을 가진 본체이기 때문에 악마에 대해서도 악마의 행동으로 대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참이라는 것입니다. 금이 시궁창에 들어간다고 빛깔이 변할 수 있어요? 본질이 변할 수 있어요? 시궁창에 들어가더라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위하는 사람에게, 위하는 데 본질적 사랑의 길이 동반되게 되어 있지 자기를 주체삼고 위하라고 하는 것은 악마가 낚아채 가는 것입니다.
남자는 누구를 위해서 났어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여자를 위하는 데 있어서 자기 생명을 다 투입해서 위할 수 있고, 위하고 나서 또 생명을 바쳐서 위하고 영원히 위하고 또 위하고 위할 수 있는 남자가 참된 남자입니다. 정의가 나왔지요? 참된 여자는 누구냐? 자기 남편이면 남편을 중심삼고 생명이 끊어지면서라도 그 사랑을 위해서 더 위하고 더 위하고 싶을 수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이 참된 여자입니다. 그와 같은 부부만이 참된 부부입니다. 그런 부부로 연결되어 가지고 부모에 대해서 위하는 사람, 둘이 하나돼 가지고 위로 부모를 위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부부가 참부부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는 부모가 참된 부모요, 부모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녀가 참된 자녀입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개인주의의 첨단에 올라가 있다 이거예요. 세상에서 자기밖에 모릅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수습하겠어요? 이런 원칙적 논리를 규정짓게 될 때 참다운 남자, 참다운 여자를 찾는 데서만이 세상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이 오늘 여기서부터 위하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애국자가 뭐예요? 나라를 위하는 사람 아니에요? 성인이 뭐예요? 성인은 세계를 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뭐예요? 인류 전체를 위하여 나오시기 때문에 하나님입니다. (144-161)
통일의 원칙
자, 결론은 이렇습니다. 세계평화, 통일의 세계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몸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마음을 위하고 마음이 몸을 위할 수 있는 이 사랑을 찾아야 됩니다. 거기서부터 본질적 사랑이 내게 깃듭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으니 여자를 자기 생명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서로 위하는 세계, 서로 빼앗는 세계가 아닌 서로 위하는 세계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공식적인 과정을 통해 가지고 체험을 통할 수 있는 길을 알게 되면 왜 안 가겠어요? 우리 같은 사람은 이제 딴 데 가래도 안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레버런 문 사상이 세계에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통일교회 교인 한 사람만 가게 되면 그 동네에 문제가 벌어집니다. 전부가 반대하거든요. 반대하더라도 10년이고 들락날락하는 것입니다. 제일 반대한 사람을 위해줍니다. 상감마마 이상으로 배고프면 먹을 것 갖다 주고, 철 따라 과일 열릴 때가 오게 되면 과일을 사다 줍니다. 그런 효자, 그런 자기 손자 손녀가 어디 있겠어요? 이래서 통일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만큼 왔습니다.
이제는 137개 국가에 바람이 불 수 있는 기반, 꼬리를 물어 가지고 회오리바람이 불어 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낙심하지 마시고, 시간도 많이 보냈지만 오늘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 왔다가 “그 문선명이라는 사람을 만나 보니 대단하더구만” 그러지 말고, 대단하다고 말하기 전에 “그가 가진 사상 간단하더라” 해야 됩니다.
위하는 사랑의 길에서만이 하나님을 만나고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를 만날 수 있고, 참된 가정과 참된 아들딸, 참된 부모,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나라, 참된 세계, 참된 하늘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것이 통일의 원칙입니다. 이것이 평화의 원칙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요사스럽게 말하는 위대하다는 사람이 있더라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부디, 그렇게 아시고 돌아가셔서 이런 운동을 오늘부터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144-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