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1권 6일
하나의 세계를 이루자 (훈독본)
날짜 : 1964. 3.23(월)
장소 : 한국 대구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fmqxnI6PWUA&list=PLtan-zpeJeikOD5x4sJiSU6hdLc_Cy0m0&index=6
지금 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주의와 사상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바라는 것이 통일인데, 어떻게 해야 통일이 될 것이냐? 과거에는 한 마을을 지배하는 데에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시대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돈이 지배했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권세를 가지면 어느 지역을 움직인다든가, 혹은 국가를 움직인다든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때에 와서는 주의와 사상, 무슨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주의와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자고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주의가 이제는 민주와 공산이라는 두 주의로 남아진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들이 바라는 주의나 이념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좌익이니 우익이니, 무슨 주의니 하면서 서로서로 적대시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통일된 세계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인류는 공산국가에 있는 사람들이나 민주국가에 있는 사람들이나 너나할것 없이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주의보다도 더 좋고 인류가 평화스럽고 행복스럽게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 수 있는 더 멋진 주의가 나온다면, 현실의 주의보다도 더 멋진 주의가 나온다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의 주의를 버리고 그 높은 이념의 주의를 따라갈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역사노정에는 성인현철들이 많이 왔다 갔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 나와서 하나의 세계를 꿈꾸고 만민을 선의 이념세계로 인도하기를 바랐지만, 그것이 아직까지 가능하지 못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어떠한 구상과 어떠한 계획과 어떠한 사상체계를 세운 이념을 세워 가지고 이 세계 만민과 하늘땅을 통일시킬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인 주인공이 있어서 그 주인공이 과거·현재·미래의 수많은 인류 앞에 “이것이야말로 과거에도 원했고, 현재도 원하고, 미래에도 원하는 하나의 주의와 이념이다”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상이라든가 주의를 내세운다면 모르거니와 현하의 인간들로써 꾸며진 어떤 주의나 사상을 가지고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54-41)
종교의 사명
만일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 인간은 모르고 있지만 배후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간의 마음을 수습하여 하나의 세계권 내로 몰아넣기 위한 섭리역사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종교를 믿는 우리는 대략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지를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역사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절대자인 그분이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아직까지 왜 세계 인류를 통일하지 못하셨느냐? 하나님이 통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통일시키지 못하시는 곡절이 무엇인가를 알아내서 해결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하나님 편에서 보는 인간세계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라면 왜 못 하시느냐? 하나님 편에서 보는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이것을 이루고자 섭리하더라도 하실 수 없게 하는 반대적인 요소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목적이 달라서는 안됩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세계를 통일하지 못하신 것을 바라볼 때 여기에는 어떠한 곡절의 내용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한 이 세계를 통일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며 사람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과 인류가 바라는 목적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양심을 가진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악한 것을 다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비록 악한 자리에 처해 있어서 벌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도 본심에 들어가서는 악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물론이고 악한 사람도 선을 바라고 옳은 것을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선한 세상을 이루지 못하고 악한 것을 제거하지 못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나와 가지고 악한 인연 가운데서 악이 침범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선을 높은 기준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의 사명이었습니다. 종교의 사명도 그러하지만, 양심을 가진 사람들도 어느 누구나 그런 행동과 생활의 틀을 세워 가지고 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나왔습니다. (154-43)
천상에서 도(道)를 내보내게 될 때
하나님도 끝날에 있어서 이 세계를 기필코 하나의 세계로 만드시려고 할 텐데 어떤 이상적인 내용을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만드실 것이냐? 유교나 불교 혹은 기독교를 막론하고 현하에 있는 종파들의 이념을 가지고는 세계를 통일시키지 못합니다. 이념적으로 더더욱 고차적인 이념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그 이념이 어디로부터 와야 하느냐?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되고, 그 이념은 영원불변 길이길이 양심을 가진 선한 사람일수록 그 이념을 내 이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념이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해오고 계신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지고 선한 사람을 만드시고, 선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선한 가정을 만드시고, 선한 가정을 만들어서는 선한 사회를 만드시고, 선한 사회를 만들어서는 선한 국가, 선한 세계, 선한 하늘땅을 만들고자 하십니다.
그러면 그 선의 기준을 절대적인 주체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크나큰 선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먼 거리를 두고 구원섭리를 하십니다.
지금 세계는 수많은 국가들을 중심삼고 주의나 사상의 대결을 볼 수 있는 종말시대에 왔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은 자기의 종교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필코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지만 그것만을 주장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주의면 주의나 사상이면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이면 공산주의, 민주주의이면 민주주의라는 주의도 정치적인 발전노정에 있어서 어느 한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올 때 자기 마음대로 왔다면 그분의 이념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었겠느냐 하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어떠한 인연을 갖추고 왔기 때문에 그 인연을 갖춘 비례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그 천적인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역사도 발전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기독교에 들어와 가지고 신봉하게 되어 있지 그것이 끝나게 되면 부패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철학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만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공산주의를 가지고도 안됩니다.
묘하게도,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가지고 일시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종교들이 이 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 이때에 비참한 파괴상을 전개시키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냐? 인간들은 모르고 있지만 천륜의 그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154-44)
참된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배후에서 역사적인 공헌을 해 나오던 종교도 이제는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주의나 사상에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십니다. 철학이면 철학에 있어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시고, 종교면 종교에 있어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불교만을 가지고 안됩니다. 유교만을 가지고도 안됩니다. 인간을 앞잡이로 세워 가지고 조종해 나오는 어떤 주의나 사상 혹은 종교이념을 가지고는 세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전부 다 길이 막혀 있으니까 참된 불교인이 고대하고, 참된 기독교인도 고대하고, 참된 철학인도 고대하고, 참된 주의자들과 사상가들도 고대하는 하나의 이념이 나와야 되고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뿐만 아니라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이 나와야 됩니다.
서양사를 보면, 16세기 초기에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추방해 버렸습니다.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추방하는 데 공로를 세웠을지 모르지만, 오늘에 와서는 다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될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전 세계의 인간들이 세계적인 지도자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 다니는 때입니다.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면 간절한 사람일수록 인류가 바라는 공동적인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고 그것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고 할진대는 그 지도자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민족주의적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종파주의적인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불교나 유교 등 어떠한 자기의 종교를 주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154-48)
참의 주인공이 누구냐
참의 주인공이 누구냐? 참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닙니다. 참 자체의 주인공이 누구여야 되겠느냐? 그보다 더 높은 참의 존재가 아니고는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흔히,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지식이면 된다. 권세면 된다. 돈이면 된다” 하지요?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3대 요소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은 돈으로서 끝나는 것이요, 지식은 지식으로서 끝나는 것이요, 권세는 권세로서 끝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그것들은 영원한 참의 실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일방향성을 갖고 있는 한계권 내에서만 인정되지 사방성을 넘고 입체성을 넘어 가지고는 인정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의 양심세계를 관찰해 볼 때 돈을 가지고는 참다운 사람을 찾을 수 없으며, 참다운 사람을 만들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권세를 가지고도 그렇습니다. 지식을 가지고도 안 됩니다. (154-50)
인간에게 참다운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것
그러면 인생이 바라는 최고의 참의 중심은 어디냐? 인간에게 외적인 것을 제거해 놓고 보면 내적인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을 해부해 보면 지(知)·정(情)·의(意)가 있습니다. 인간 마음의 소성을 지·정·의로 말하고 있는데, 그 중심이 지식일 것이냐? 지식일 게 뭐예요? 지식을 가지고 행복해요? 지식을 통해서 역사발전과 사회발전을 꾀하여 왔습니다. 또, 지식을 통하여 이념세계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식을 통해서 인간의 행복을 소개해 주지 못했고, 이념이 인간의 행복을 소개해 주지 못했습니다. 인간에게 참다운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심정입니다.
참이란 것은 시작과 끝이 같아야 됩니다. 오늘날 불교니 기독교니 무엇이니 하는 그런 건 다 필요 없습니다. 천지에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만입니다. 평화도 심정에서 오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나타날 때 대우주가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이요, 그런 심정에 사무쳐 천하를 대하여 나타나게 될 때 천하가 내 마음속에서 놀아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생이 찾아야 할 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어떠한 주의나 사상도 아닙니다. 하늘이 바라고 있고, 땅 위의 인간들이 바라는 통일세계를 무엇으로 이룰 것이냐? 인간들의 지식을 통해 가지고 될 것이냐? 안 됩니다. 무슨 주의나 사상으로 될 것이냐? 안 됩니다. 단지, 심정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앞으로 이념세계가 나오면 그 세계의 지도자는 현하의 우리 인간들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심정을 가지고 만민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고, 지금 인간들이 귀하게 보는 것보다 더 귀하게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주의만 나오면 천하는 통일될 것입니다. (154-52)
천정(天情)으로만 통일이 가능하다
그러면 앞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인간도 하나님도 통일된 세계를 바라는 목적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물론 사랑으로 합니다. 사랑으로 할 것이어늘 6천 년의 기나긴 역사를 거쳐오면서 왜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느냐?
그 이유는 인간 앞에도 원수가 있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도 원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하실 것이고, 인간도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될 것은 아는데 왜 못 되었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실래야 사랑하실 수 없는 원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려면 그 원수란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하시려면 원수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실 수 없고, 인간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원수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령한 기도를 한 사람은 잘 알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탄이라든가, 불교에서 말하는 마귀라든가 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가지고야 통일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부모에게서 느끼는 심정의 도수보다도 3배만 강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만민을 상대해 봐요! 현세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갖는 사랑의 심정적인 기준만 갖는다고 해도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이거늘 만약에 그 부모들 앞에 하늘이 3배 이상의 사랑을 부어 준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이 형무소에서 살인강도와 끼여서 살아도 보았지만, 그들과 이야기해 보면 백짓장 하나 차이도 안 납니다. 그들도 심정을 찔러 얘기하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현재 가지고 있는 양심작용의 십 배 정도 펌프 질을 하면 얼마나 선해지겠어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놀음을 하시지, 안 하시겠어요? 현재 선을 주장하는 충족된 본심의 작용력보다 2배, 3배, 4배, 5배의 가중적인 선을 보충시킬 수 있는 인간의 원천이 없다면 모르되 있다면 왜 못 하겠어요?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모르되 계신다면 왜 못 하시느냐? 그렇게 못 하시는 곡절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려면 원수의 문을 통과하셔야 됩니다. 하나님도 원수의 문을 통해서 오셔야 되고, 인간도 원수의 문을 통해서 하늘 앞에 도달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원수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을 하나로 만드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권을 지나가지 않고는 하나되지 않습니다. 만일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을 내세우든가, 혹은 그것을 가지고 가든가 하면 원수들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원수들이 그걸 침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어려운 때 통일을 다 바라는데 통일하는 데는 무엇으로 해야 하느냐? 천정(天情)으로만 통일이 가능합니다. (154-54)
천하보다 더 큰 참을 받기 위해서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를 통하여 천하가 공히 통일될 수 있는 그러한 지구 위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할 때는 민족적인 한계선을 넘어서라,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한계선을 넘어서라, 지식이 많다고 하는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라, 빈부나 귀천의 한계를 넘어서라, 잘나고 못났다는 한계선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좋다고 만들어 놓은 것을 전부 다 부정하라 이거예요.
천하보다 더 큰 참을 받기 위해서는 천하보다 더 큰 그릇을 마련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영원한 참은 천지에 꽉 들어차 있나니 그 참을 받으려면 참된 그릇을 크게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됐거들랑 그 아들딸을 자기의 아들딸로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아들딸로 키우라는 것입니다. 형제가 있거든 그 형제도 세계적인 형제로 보라는 것입니다. (154-56)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선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천하의 참된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교훈하게 될 때 악하라고 교훈하느냐? 부모는 갖추지 못해서 줄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있는 선은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가 귀하다고 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주고 싶고, 그것에 이자에 이자를 더해서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천지에 참이 꽉 차 있다고 할진대 그 참의 주인이 누구냐? 그 주인은 참을 알고, 참의 맛을 느끼고, 참과 더불어 행할 수 있고, 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것이라구요? 공동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선한 사람, 역사적인 의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이 세계를 자기 것으로 위임받더라도 세계 만민 앞에 주고 싶어하는 사람, 세계에 나가서 무엇을 주고 싶어하는 그런 지도자입니다. 그러한 지도자가 이 땅 위에 나타나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소망이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그런 지도자와 주고받을 수 있는 심지와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나타나는 때가 선한 세계가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복을 무한히 갖고 계시는 복의 중심존재이십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복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인생으로서 최고로 승리했다고 하는 자, 이 세상 어디에서 보아도 최고로 성공했다고 하는 자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은 천하에 없는 참된 복을 무한히 갖고 계시는데, 그 무한히 갖고 계시는 참복을 오늘날 인간들 앞에 만세를 통하여 주고 싶어하십니다. 때로는 죽임을 당하더라도 또다시 와서, 혹은 목 베임을 당하더라도 그 피를 통하여 제물을 드리면서라도 주고파하신다는 것입니다. (154-59)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따라서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일치해야 되고, 하나님 편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아야 되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관점에서 이 인간세계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 어찌하여 6천 년 동안 이 세계를 하나로 못 만드셨느냐 하는 곡절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인간의 목적을 모르는 인간들 앞에 인간의 목적을 가르쳐 주는 곳이요,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 앞에 하나님의 목적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상치(相馳)되는 것이 아니라 상합(相合)하고 일치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일치만 되면 인간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찾으시던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던 세계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나님 편에서 보는 과거의 역사, 하나님 편에서 보는 현세, 하나님 편에서 보는 미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는 세계관과 우주관을 가르쳐 줍니다.
또, 통일교회란 뭘 하는 곳이냐? 아무리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라고 해도 이 세계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다운 심정의 기반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심정의 기반을 어떻게 하면 마련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이것만 가르쳐 줄 수 있으면 원수 사탄을 무찌를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통하여 왔는데 그를 처단해 버리고 밟아 치움으로 말미암아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직접적인 상대기준에 세워 놓자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인간을 통일할 수 있습니다. (154-65)*
천일국 훈독경 제11권 6일, 원문
하나의 세계를 이루자 20029
날짜 : 1964. 3.23(월)
장소 : 한국 대구교회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교인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넘어 통일된 이념의 세계에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주인공을 모시고 천지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서 다 같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역사적인 노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던 것이고 현실의 우리에게도 간절한 소망으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주의와 사상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바라는 것이 통일인데, 어떻게 해야 통일이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한 마을을 지배하는 데에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주먹만 세면 그 마을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돈이 지배했습니다. 돈이 있으면 돈을 가지고 세도를 부리면서 그 마을을 움직여 왔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권세를 가지면 어느 지역을 움직인다든가, 혹은 국가를 움직인다든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움직이는 방편은 여러 가지의 모양으로 변해 왔습니다.
더욱이 이때에 와서는 주의와 사상, 무슨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주의와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 주의가 좋으니 다 그리로 들어가야 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주의가 이제는 민주와 공산이라는 두 주의로 남아진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에 온 세계 인류는 끼여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바라는 주의나 이념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는 통일이 안 됩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무슨 주의니 하면서 서로서로 적대시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통일된 세계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인류는 공산국가에 있는 사람들이나 민주국가에 있는 사람들이나 너나할것없이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주의보다도 더 좋고 인류가 평화스럽고 행복스럽게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 수 있는 더 멋진 주의가 나온다면, 현실의 주의보다도 더 멋진 주의가 나온다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의 주의를 버리고 그 높은 이념의 주의를 따라갈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인간들이 이 세계를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 역사노정에는 성인현철들이 많이 왔다 갔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종교를 지도하던 대표자들도 있었습니다. 불교라든가, 유교라든가, 회교라든가, 기독교라든가 그 모든 정신적인 분야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도하던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정신적인 이념을 가진 종교를 기반으로 삼고서도 세계를 통일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 나와서 하나의 세계를 꿈꾸고 만민을 선의 이념세계로 인도하기를 바랐지만, 그것이 아직까지 가능하지 못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편에서 우리 인간들이 어떠한 구상과 어떠한 계획과 어떠한 사상체계를 세운 이념을 세워 가지고 이 세계 만민을 규합할 수 있겠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사람의 머리를 통하여 짜낸 이념, 지식을 통한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이 세계 만민과 하늘땅을 통일시킬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인 주인공이 있어서 그 주인공이 과거·현재·미래의 수많은 인류 앞에 “이것이야말로 과거에도 원했고, 현재도 원하고, 미래에도 원하는 하나의 주의와 이념이다”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상이라든가 주의를 내세운다면 모르거니와 현하의 인간들로써 꾸며진 어떤 주의나 사상을 가지고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54-41)
종교의 사명
만일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인간 세상을 이냥 이대로 이렇게 될 대로 되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에서 나오셨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당신이 구상하시는 선한 목적의 세계로 이끌기 위하여 우리 인간은 모르고 있지만 배후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리 인간의 마음을 수습하여 하나의 세계권 내로 몰아넣기 위한 섭리 혹은 역사를 하고 계시느냐? 인간들은 모르고 있지만 배후에서 하늘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종교를 믿는 우리는 대략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역사를 해온 분은 절대적인 분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하셨느냐? 이것이 제일 중요한 난문제입니다. 천지를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역사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절대자인 그분이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아직까지 왜 세계 인류를 통일하지 못하셨느냐?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통일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을 것이나 그렇게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당초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통일시키기를 바랐지만 통일시키실 수 없었던 곡절의 그 무엇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곡절이 무엇이었느냐?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들의 사명이요, 이 곡절을 해결하는 것이 종교인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종교인 혹은 수많은 철학자 등 누구를 막론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자기 멋대로 제각기의 주장을 하면서 지금의 세계까지 끌고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통일시키지 못하시는 곡절이 무엇인가를 알아내서 해결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하나님 편에서 보는 인간세계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에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 세계가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되어 나오고, 이 세계를 통일시키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곡절이 있다고 하는 것, 하나님 편에서 보는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라면 왜 못 하시느냐? 하나님으로 하여금 못 하시도록 방해하는 존재가 있다든가, 혹은 할 수 없는 반대적인 요건이 있다든가 하면 그것이 무엇이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는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이것을 이루고자 섭리하더라도 하실 수 없게 하는 반대적인 요소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목적이 달라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되기를 바라시는데, 인간은 저렇게 되기를 바라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도 그것이요, 인류가 바라는 것도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공동의 목적기준이 무엇이냐? 이러한 문제를 아는 것이 통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중요합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세계를 통일하지 못하신 것을 바라볼 때 여기에는 어떠한 곡절의 내용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한 이 세계를 통일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며 사람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이 무엇이며,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인류가 바라는 목적은 무엇이냐? 그 목적이 달라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이 내가 바라는 목적이요, 인류가 바라는 목적이어야 됩니다. 그 목적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위의 인간들은 막연하게나마 선을 모방하고, 참 것을 모방하고, 옳은 것을 모방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심을 가진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악한 것을 다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비록 악한 자리에 처해 있어서 벌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도 본심에 들어가서는 악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에 몰려서 그런 행동은 했을망정 그 진실된 본심에서는 악을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물론이고 악한 사람도 선을 바라고 옳은 것을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선한 세상을 이루지 못하고 악한 것을 제거하지 못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나와 가지고 선을 고대합니다. 선을 높이고 악은 때려눕히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종교의 사명은 이것입니다. 악한 인연 가운데서 악이 침범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선을 높은 기준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의 사명이었습니다. 종교의 사명도 그러하지만, 양심을 가진 사람들도 어느 누구나 그런 행동과 생활의 틀을 세워 가지고 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나왔습니다. (154-43)
천상에서 도(道)를 내보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편에서 이 세계를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실들을 우리는 순식간에 알 수 있습니다. 평면적으로 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평면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 시대적인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끝날에 있어서 이 세계를 기필코 하나의 세계로 만드시려고 할 텐데 어떤 이상적인 내용을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만드실 것이냐? 기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만드실 것이냐, 불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만드실 것이냐, 혹은 이 땅에 정착해 있는 수많은 종파들의 어떤 이념을 중심삼고 만드실 것이냐? 그런 걸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유교나 불교 혹은 기독교를 막론하고 현하에 있는 종파들의 이념을 가지고는 세계를 통일시키지 못합니다. 통일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다는 것입니다. 못 한다는 거예요. 이념적으로 더더욱 고차적인 이념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그 이념이 어디로부터 와야 하느냐?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되고, 그 이념은 영원불변 길이길이 양심을 가진 선한 사람일수록 그 이념을 내 이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념이어야 됩니다. 양심을 지향하면서 따라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이념에 접하게 될 때 그 이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기 목숨을 빼앗기는 것보다도 더 두려워할 수 있는 그러한 이념이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해오고 계신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지고 선한 사람을 만드시고, 선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선한 가정을 만드시고, 선한 가정을 만들어서는 선한 사회를 만드시고, 선한 사회를 만들어서는 선한 국가, 선한 세계, 선한 하늘땅을 만들고자 하십니다. 거꾸로 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4대 종교라고 일컬어지는 그런 종교의 지도자들도 맨 처음에 출발할 때는 혼자였습니다. 당시를 대표하여 진리에 입각한 선의 주체로 나타나 가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외쳤습니다. 그 “나를 따라오라” 한 자체를 중심삼고 개인을 선화(善化)시키는 운동을 하였고, 가정을 선화시키는 운동을 하였고, 민족과 국가를 거쳐 가지고 세계적인 발판을 형성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선의 기준을 절대적인 선의 주체로 알아야 될 것이냐, 아니면 상대적으로 선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알아야 될 것이냐? 절대적인 주체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크나큰 선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먼 거리를 두고 구원섭리를 하십니다. 몇 천년 혹은 몇 백년의 세기를 거쳐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악한 인생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도를 세워 가지고 몇 천년 혹은 몇 백년의 한계적인 책임을 짊어지워서 나라면 나라, 지역이면 지역, 분야면 분야의 환경권에 있던 사람들을 규합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규합되면 더 높은 선한 이념을 세워서 끌어올려 가지고 점차적으로 발전시켜 나오셨습니다.
지금 세계는 수많은 국가들을 중심삼고 주의나 사상의 대결을 볼 수 있는 종말시대에 왔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은 자기의 종교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필코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지만 그것만을 주장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가 어느 시대에서부터 어느 시대까지 하나님이 이 땅 위의 악한 인생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세우신 종교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주의면 주의나 사상이면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이면 공산주의, 민주주의이면 민주주의라는 주의도 정치적인 발전노정에 있어서 어느 한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됩니다. 종교라고 하면 무턱대고 다 같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종교에도 급이 있습니다. 1급, 2급, 3급 등 급이 있습니다. 몇 천년 전까지의 사명을 띠고 나왔던 종교로서 그 사명이 끝났는데도 그 종교를 붙들고 나오는 구성체들이 세계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교 같은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옴으로 말미암아 사명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종교의 틀거리가 남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이 이 땅 위에 선한 지도자를 세울 때 몇 세대 혹은 몇 백년, 몇 천년의 천운을 짊어지워 가지고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를 보내면 어느 때 그 지도자의 사명이 끝나는가를 그 지도자를 따르는 신도들은 모르더라 이겁니다. 그러나 천상에서 도(道)를 내보내게 될 때 어느 때까지 그 사명이 끝난다는 것을 그 주인공은 압니다.
예수님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올 때 자기 마음대로 왔다면 그분의 이념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었겠느냐 하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어떠한 인연을 갖추고 왔기 때문에 그 인연을 갖춘 비례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그 천적인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역사도 발전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기독교에 들어와 가지고 신봉하게 되어 있지 그것이 끝나게 되면 부패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철학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유심철학, 유물철학,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인간을 재검토하는 실존철학 등 철학을 중심삼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또, 주의나 사상도 막바지에 왔습니다. 민주주의만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돈을 가지고 마음대로 자기의 모든 욕망을 좌우할 수 있는 주의를 가지고도 안됩니다. 그런 것들은 인간의 양심으로 요구하는 동기에서 이탈된 노선입니다.
공산주의를 가지고도 안됩니다. 세계제패를 꿈꾸고 있는 공산주의, 그들은 노동자나 농민들을 위주로 한 주권을 세워 하나의 평화세계를 건설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주의들도 머지않아 갈라져 가지고 총칼을 들고 싸우는 날에는 마지막이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불원간 싸우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철학도 그러하고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묘하게도,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가지고 일시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거 참 이상하지요? 이것들이 한꺼번에 문제되고 있습니다. 대처승이니 비구승이니, 장로니 목사니 해 가지고 말입니다. 세계적인 종교들이 이 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 이때에 비참한 파괴상을 전개시키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냐? 인간들은 모르고 있지만 천륜의 그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154-44)
참된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배후에서 역사적인 공헌을 해 나오던 종교도 이제는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주의나 사상에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십니다. 철학이면 철학에 있어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시고, 종교면 종교에 있어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냥 붙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거예요. 인간 편에서 보게 되면 그게 다 부패해 가지고 망하기 위해서 맨 말단에 처해서 할 수 없이 전부 다 후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인류역사를 지배하는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의 경륜이 있어서 그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만을 가지고 안됩니다. 유교만을 가지고도 안됩니다. 인간을 앞잡이로 세워 가지고 조종해 나오는 어떤 주의나 사상 혹은 종교이념을 가지고는 세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전부 다 길이 막혀 있으니까 참된 불교인이 고대하고, 참된 기독교인도 고대하고, 참된 철학인도 고대하고, 참된 주의자들과 사상가들도 고대하는 하나의 이념이 나와야 되고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뿐만 아니라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이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이 틀림없이 계신다면 그런 구상과 생각을 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의 마음은 좀 좋은 길이라고 하게 되면 끝까지 가서야 돌아서지 그냥은 안 돌아섭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다는 노정을 통하여 나오는 길은 끝에 가서야 해결이 납니다. 오늘날 도를 중심삼고 볼 때 불교, 유교, 회교, 기독교 등 세계의 4대 종교는 양심을 중심삼고,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길을 개척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나왔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오던 사람들은 무엇인지 모르게 기뻐하면서 좋은 일면을 따라 나왔습니다. 조상들이 받들어 나오던 종교를 후손들이 순종하면서 역사의 뜻과 더불어 끌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적인 산물들이 지금의 세계적인 정치노선들인데 아무리 둘러봐야 갈 수 없는 최종단에 와 가지고 딱 부딪쳤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을 찾아야 합니다.
서양사를 보면, 16세기 초기에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추방해 버렸습니다.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추방하는 데 공로를 세웠을지 모르지만, 오늘에 와서는 다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될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전 세계의 인간들이 세계적인 지도자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 다니는 때입니다.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면 간절한 사람일수록 인류가 바라는 공동적인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고 그것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고 할진대는 그 지도자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민족주의적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종파주의적인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불교나 유교 등 어떠한 자기의 종교를 주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상하지요? 내가 좋은 것이 있으면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도 여기에 못 들어옵니다. 큰일납니다” 그래요? 여러분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좋은 데 참석하지 못한다” 그래요? 진정 좋은 것은 만민의 것입니다. 참된 선이라는 것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를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란 것, 진정으로 좋은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하나 물어 봅시다. 여러분 자체에 있어서 제일 좋은 것이 뭐예요? 어떤 사람은 “우리 부모다”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에요? 남자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인 부인이고, 여자에게는 남편이고, 부모에게는 자식입니다. 물론 부모도 좋고, 자식도 좋고, 처도 좋고 다 좋되 우리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들의 몸뚱이가 필요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면 아버지의 몸뚱이가 필요해서 좋은 것이 아니요, 부부면 부부, 자식이면 자식 그 자체의 몸뚱이가 필요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냐? 부모면 부모, 처자면 처자와 엉클어진 사랑, 그 사랑이 참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부모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에 대해서 “우리 아버지의 사랑은 나만을 사랑하는 사랑이야! 만민이 끼어서는 안 돼” 하는 레테르가 붙었어요? “내가 처자를 사랑하는 것은 내 사랑이니까 다른 사람이 끼어선 안 돼” 그래요? 인간에게 제일 필요한 참된 기준으로 나타난 사랑은 참이기 때문에 공적인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이 이것을 침범하지 못합니다. 역사적인 어떠한 악도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입니다. 역사적인 살인강도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침범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공동소유인 것입니다. (154-48)
참의 주인공이 누구냐
여러분,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어떤 사람을 보면 “나는 부모가 없어서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으니 슬픈 존재다” 합니다. 왜 슬퍼요? 그것은 공적인 이념세계와 참의 인연을 맺어야 할 자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참된 우주세계에서 참의 인연을 맺어야 자기 가치가 참된 우주세계에서 존재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요, 그것이 천리의 원칙인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슬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천리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여 살아야 할 인생인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러한 요건들이 전부 다 제거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천운이 움직이는 참된 표본에 부합되는 요소를 결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우주의 존재권 내에 존재하기에 결함이 있는 위치에 서 있는 연고로 슬픔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도 마음대로 못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투쟁과정을 거쳐 가지고 발전해 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문제를 걸어 놓고 혁명을 일으킨 왕조가 어디 있었으며, 역사상에 그러한 영웅열사가 있었느냐? “나는 당신의 자식이 아니다” 하면서 부정의 팻말을 박고 낙인을 찍어도 그것이 인정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아버지가 공인하고 자식도 “그렇다” 하는 여기에는 침범을 받지 않는 것이요, 침범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혁명의 운세나 혁명의 사조와 무관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참된 것이요, 공동의 소유입니다.
그러면 공동의 소유라고 했는데 인간들만 소유할 수 있는 공동권 내의 소유물이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도 역시 필요로 하시는 것이라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의 주인공이 누구냐? 참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닙니다. 참 자체의 주인공이 누구여야 되겠느냐? 그보다 더 높은 참의 존재가 아니고는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있다고 할 때, 한 사람은 종이고 한 사람은 주인이라고 합시다. 주인과 종은 무엇이 다르냐? 그건 과거도 다르고 현재도 다릅니다. 출발점이 달라요. 그리고 지니고 있는 속성도 다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요?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주종관계가 벌어집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냐? 더 높을 수 있는 내정, 외적이라든가 내적이라든가 과거.현재.미래를 통할 수 있는 내정에 지니고 있는 그것을 중심삼고 주종관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생이 바라고 있는 참보다 더 높은 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참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붙여야 할 것이냐? 하나님이라든가, 갓(God)이라든가, 가미사마(神樣)라는 명사를 붙이는데 그 명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이 찾고 있는 최고의 참, 만민이 고대하는 최고의 참이 뭐예요? 떡이에요, 돈 보따리예요, 권세예요, 지식이에요? 전부 다 아닙니다.
흔히,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지식이면 된다. 권세면 된다. 돈이면 된다” 하지요?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3대 요소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은 돈으로서 끝나는 것이요, 지식은 지식으로서 끝나는 것이요, 권세는 권세로서 끝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그것들은 영원한 참의 실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일방향성을 갖고 있는 한계권 내에서만 인정되지 사방성을 넘고 입체성을 넘어 가지고는 인정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의 양심세계를 관찰해 볼 때 돈을 가지고는 참다운 사람을 찾을 수 없으며, 참다운 사람을 만들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권세를 가지고도 그렇습니다. 지식을 가지고도 안 됩니다. (154-50)
인간에게 참다운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것
그러면 인생이 바라는 최고의 참의 중심은 어디냐? 인간에게 외적인 것을 제거해 놓고 보면 내적인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을 해부해 보면 지(知)·정(情)·의(意)가 있습니다. 인간 마음의 소성을 지·정·의로 말하고 있는데, 그 중심이 지식일 것이냐? 지식일 게 뭐예요? 지식을 가지고 행복해요? 지식을 통해서 역사발전과 사회발전을 꾀하여 왔습니다. 또, 지식을 통하여 이념세계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식을 통해서 인간의 행복을 소개해 주지 못했고, 이념이 인간의 행복을 소개해 주지 못했습니다. 인간에게 참다운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심정입니다.
심정이라는 것은 과거를 살펴봐도 통하는 것이요, 현재를 살펴봐도 통하는 것이요, 미래를 살펴봐도 통하는 것입니다. 출발과 더불어 처음과 나중이 거침없이 통하는 자리에 있는 것은 심정밖에 없습니다. 참이란 것은 시작과 끝이 같아야 됩니다. 오늘날 불교니 기독교니 무엇이니 하는 그런 건 다 필요 없습니다. 천지에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만입니다. 평화도 심정에서 오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나타날 때 대우주가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이요, 그런 심정에 사무쳐 천하를 대하여 나타나게 될 때 천하가 내 마음속에서 놀아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생이 찾아야 할 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어떠한 주의나 사상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하늘이 바라고 있고, 땅 위의 인간들이 바라는 통일세계를 무엇으로 이룰 것이냐? 인간들의 지식을 통해 가지고 될 것이냐? 안 됩니다. 무슨 주의나 사상으로 될 것이냐? 안 됩니다. 단지, 심정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어떠한 주권자가 이 땅 위에 나온다고 하면 그 주권자는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들을 대하기를 자기 아들딸보다 더 값지고 가치 있게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주권자, 그런 주의가 나와야 됩니다.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온다면 그 지도자는 세계 만민을 국경을 초월하여 차별 없이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무수한 국가들에 대하여 역사적인 전통이니, 현실적인 사회제도니 하는 것 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지구성의 수많은 인류를 한 가정에서 기르고 있는 자식들보다도, 현재 이 악한 세상에서 부모들이 보고 있는 그 자식들보다도 더 귀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이념세계가 나오면 그 세계의 지도자는 현하의 우리 인간들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심정을 가지고 만민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고, 지금 인간들이 귀하게 보는 것보다 더 귀하게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주의만 나오면 천하는 통일될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떠하냐? 서로가 중상모략하고, 남의 등을 찌르고, 코를 까고서라도 타고 앉아서 자기가 지배하겠다고 야단합니다. 그래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세계를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의 모양은 외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과정에 머물러 있지만 혼자서 부딪치기에는 너무나 지긋지긋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기말적인 시대가 기필코 지나가야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154-52)
천정(天情)으로만 통일이 가능하다
그러면 앞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인간도 통일된 세계를 바라고 있으며, 하나님도 통일된 세계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아까 말했습니다. 통일된 세계를 바라는 목적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물론 사랑으로 합니다. 사랑으로 할 것이어늘 6천 년의 기나긴 역사를 거쳐오면서 왜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느냐? 하나님도 사랑하고 싶은 분이요, 인간도 사랑받고 싶은 존재인데 왜 사랑하시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 그렇게 못 되었느냐?
그 이유는 인간 앞에도 원수가 있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도 원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하실 것이고, 인간도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될 것은 아는데 왜 못 되었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실래야 사랑하실 수 없는 원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려면 그 원수란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 곡절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사랑하시려면 원수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실 수 없고, 인간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원수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습니다. 그러한 곡절이 있다는 거예요. 가려면 걸리고 오려면 멈추게 하는 원수의 주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기도를 한 사람은 잘 알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탄이라든가, 불교에서 말하는 마귀라든가 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가지고야 통일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부모에게서 느끼는 심정의 도수보다도 3배만 강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만민을 상대해 봐요! 현세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갖는 사랑의 심정적인 기준만 갖는다고 해도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이거늘 만약에 그 부모들 앞에 하늘이 3배 이상의 사랑을 부어 준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당장에 불벼락을 내려 형태도 없어지게끔 옥살박살내도 시원치 않은 악한 무리들이 언제 선하게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형무소에 가 보면 살인강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살인강도가 뭐예요? 세상에서는 악에 대해 말할 때 그런 명사를 갖다 붙입니다. 오늘날 아무리 악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악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선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을 바라는 마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선생님이 형무소에서 살인강도와 끼여서 살아도 보았지만, 그들과 이야기해 보면 백짓장 하나 차이도 안 납니다. 그들도 심정을 찔러 얘기하면 눈물을 흘립니다. 조그만 감방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사리에 어긋나는 것을 보면 “이 자식아…” 하고 팰 때가 있거든요. 그걸 볼 때는 살인강도를 한 사람도 “아, 시원하다” 합니다. 그러한 것을 볼 때 그들도 선을 세울 줄 아는 의리들이 있다 이겁니다. 그걸 보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선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현재 가지고 있는 양심작용의 십 배 정도 펌프 질을 하면 얼마나 선해지겠어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놀음을 하시지, 안 하시겠어요? 여러분,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현재 선을 주장하는 충족된 본심의 작용력보다 2배, 3배, 4배, 5배의 가중적인 선을 보충시킬 수 있는 인간의 원천이 없다면 모르되 있다면 왜 못 하겠어요?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모르되 계신다면 왜 못 하시느냐? 그렇게 못 하시는 곡절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려면 원수의 문을 통과하셔야 됩니다.
하나님도 원수의 문을 통해서 오셔야 되고, 인간도 원수의 문을 통해서 하늘 앞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 닦는 사람들이 산중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면 반드시 원치 않는 자가 나타나서 “이놈아, 네가 무슨 도를 닦아” 하면서 시험을 합니다. 도 닦는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와서 “이리 나와” 하고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원수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을 하나로 만드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권을 지나가지 않고는 하나되지 않습니다. 만일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을 내세우든가, 혹은 그것을 가지고 가든가 하면 원수들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원수들이 그걸 침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어려운 때 통일을 다 바라는데 통일하는 데는 무엇으로 해야 하느냐? 천정(天情)으로만 통일이 가능합니다. 선생님이 지방에 오면 아가씨들에게 언제나 하는 말이 “너 아프리카 껌둥이한테 시집가라면 갈래” 한다구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통과해야 됩니다. (154-54)
천하보다 더 큰 참을 받기 위해서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를 통하여 천하가 공히 통일될 수 있는 그러한 지구 위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할 때는 민족적인 한계선을 넘어서라,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한계선을 넘어서라, 지식이 많다고 하는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라, 빈부나 귀천의 한계를 넘어서라, 잘나고 못났다는 한계선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좋다고 만들어 놓은 것을 전부 다 부정하라 이거예요.
옛날에 어떤 녀석이 있었습니다. 이게 은덩이라고 합시다. 처음에는 쇠 짜박지밖에 모르던 녀석이 은을 봤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 기분이 좋아 가지고 입을 벌리고 “하나님이 주셨다” 이러면서 집어넣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도 그렇지 않아요? 그거 그런 거예요. 늙은이나 젊은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것을 많이 갖고 싶은 마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학자도 마찬가지요,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아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아이구! 더, 더, 더…” 하는 것이 죄예요? 그게 왜 죄예요? 지금까지 죄로 보였으니까 죄라고 합니다. 그게 이상하잖아요? 내 본심이 그런데 현재는 왜 그걸 죄로 취급하느냐? 그런 곡절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민이 서로 서로가 받으려고 하는데 받겠다고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원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천하보다 더 큰 참을 받기 위해서는 천하보다 더 큰 그릇을 마련해야 합니다. 참은 천하에 꽉 충만해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영원한 참은 천지에 꽉 들어차 있나니 그 참을 받으려면 참된 그릇을 크게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출세하려고 생각하는데 있어서 목적하는 것에 대한 사용법이 틀려져 가지고,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출세할 수 있겠어요? 지금 쓰고 있는 마음으로서의 욕망이니 야망이니 하는 것들은 나쁜 것들입니다. 그릇은 요만한데 이 많은 것들을 넣겠다고 한다면 큰일납니다. 요만큼도 못 가질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별의별 모략과 중상으로 남을 잡아먹기 위해서 야단하는 녀석들이 몇 해 동안 대통령을 하다가 어떻게 돼요? 다리가 들려서 거꾸로 처박혀 가지고 모가지가 땅으로 떨어지지요? 그릇에 담을 수 있어요? 치여 죽어요!
돈은 왜 생겼느냐? 인간은 만민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세주의요, 만민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됐거들랑 그 아들딸을 자기의 아들딸로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아들딸로 키우라는 것입니다. 형제가 있거든 그 형제도 세계적인 형제로 보라는 것입니다.
참은 꽉 차 있습니다. 밤에도 차 있고 낮에도 차 있고, 어제·오늘·내일, 과거·현재·미래에도 꽉 차 있습니다. 꽉 차 있는 그것을 전부 다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고 싶지요? 선생님이 하나님하고 인사를 해 가지고 여러분이 참을 가질 수 있도록 사인해 주면 좋겠습니다. 30억 인류에게 사인을 해주면 좋겠다구요.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게 누구의 것이에요? 만일에 선생님의 것을 내가 하나님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사인해 주고 “하나님은 관두소! 30억 인류에게 줍니다” 이러고 나서면 무슨 법에 걸리겠어요? 안 걸립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가 사인을 해주어 가지고 이 우주에 꽉 차 있는 참을 30억 인류가 빨리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거룩한 분이 계시니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골방에 들어가 앉아 있더라도, 양심은 “이놈아, 너 악해라” 그래요? “선해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선과 악의 무대, 나쁘고 좋은 환경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언제나 선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154-56)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선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천하의 참된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릇을 만들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좋은 것을 자기 뱃속에 몰아넣고도 좋다는 것입니다. 꼭대기에 넣겠으면 꼭대기에 넣고, 밑에 넣겠으면 밑에 넣고, 중간에 넣겠으면 중간에 넣으면서 장소를 개의치 않습니다. 어떤 데도 좋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뭘 할 것이냐? 그 참을 가진 사람의 병이 무엇이냐? 그것을 보관하지 못하는 것이 병이 아니라 주지 못하는 것이 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에 꽉 차 있는 참을 누가 가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교훈하게 될 때 악하라고 교훈하느냐? 부모는 갖추지 못해서 줄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있는 선은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가 귀하다고 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주고 싶고, 그것에 이자에 이자를 더해서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천지에 참이 꽉 차 있다고 할진대 그 참의 주인이 누구냐? 그 주인은 참을 알고, 참의 맛을 느끼고, 참과 더불어 행할 수 있고, 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것이라구요? 공동의 것입니다.
복이 무엇이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복 받아라” 하면 그저 좋다고 하지요? 그런데 자기 맘대로 살면서도 “어허, 복이 좋구나” 하는 자들은 강도들입니다. 복은 공동의 물건인데 사적으로 사용하다가는 망합니다. 그것 때문에 자기의 종족도 꺾임을 당하고 자기 일생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이 좋기는 좋지만 복은 지극히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동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요, 공동의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권과 공간권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이걸 지배할 능력을 가진 인간이 이 땅 위에는 없습니다. 지배하려다가는 망합니다. 선을 지배할 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선한 사람, 역사적인 의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이 세계를 자기 것으로 위임받더라도 세계 만민 앞에 주고 싶어하는 사람, 세계에 나가서 무엇을 주고 싶어하는 그런 지도자입니다. 그러한 지도자가 이 땅 위에 나타나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소망이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그런 지도자와 주고받을 수 있는 심지와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나타나는 때가 선한 세계가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복을 무한히 갖고 계시는 복의 중심존재이십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복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아내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 아니면 안되겠다고 하며 울고불고하던 그 자식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인생으로서 최고로 승리했다고 하는 자, 이 세상 어디에서 보아도 최고로 성공했다고 하는 자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은 천하에 없는 참된 복을 무한히 갖고 계시는데, 그 무한히 갖고 계시는 참복을 오늘날 인간들 앞에 만세를 통하여 주고 싶어하십니다. 때로는 죽임을 당하더라도 또다시 와서, 혹은 목 베임을 당하더라도 그 피를 통하여 제물을 드리면서라도 주고파하신다는 것입니다. (154-59)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만민 앞에 주는데, 무엇을 줄 것이냐? 참다운 사랑을 주자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부모의 사랑보다도 더 커야 됩니다. 그 사랑은 부부의 사랑보다도 더 커야 됩니다. 그 사랑은 자녀의 사랑보다도 더 커야 됩니다. 그런 사랑을 주기 위하여 나선 우리 앞에 부모가 반대하면 부모의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내가 욕을 먹습니다. 부인이 그 뜻을 위해 가려는데 남편이 못 가게 하니까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 자식들이 가는 길을 부모가 반대하면 그 부모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보다 더 귀한 것을 이 민족 앞에 주고, 만민 앞에 주고, 이래 가지고 만민이 주고 싶어서 자기 가정을 초월하고, 자기 민족을 넘어서 허덕이는 무리가 되거들랑 그런 무리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겠어요? 두고 보라구요! 세계는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통일의 이념 혹은 교회를 통일하겠다는 주의나 주장을 많이 가지고 나왔지만 통일을 못 했습니다. 그렇게 못 한 것을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안다 이거예요. 알면서 왜 이렇게 나오느냐? 그것이 어떻게 되어서 실패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일치해야 되고, 하나님 편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아야 되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관점에서 이 인간세계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 어찌하여 6천 년 동안 이 세계를 하나로 못 만드셨느냐 하는 곡절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인간의 목적을 모르는 인간들 앞에 인간의 목적을 가르쳐 주는 곳이요,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 앞에 하나님의 목적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상치(相馳)되는 것이 아니라 상합(相合)하고 일치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일치만 되면 인간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찾으시던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던 세계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나님 편에서 보는 과거의 역사, 하나님 편에서 보는 현세, 하나님 편에서 보는 미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는 세계관과 우주관을 가르쳐 줍니다.
또, 통일교회란 뭘 하는 곳이냐? 아무리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라고 해도 이 세계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다운 심정의 기반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심정의 기반을 어떻게 하면 마련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이것만 가르쳐 줄 수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느냐? 원수 사탄을 무찌를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됩니다. 마귀면 마귀, 악이면 악의 주인공을 맘대로 이끌어 가지고 만민 앞에 굴복시켜 주기 위해서 “꿇어” 하면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통하여 왔는데 그를 처단해 버리고 밟아 치움으로 말미암아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직접적인 상대기준에 세워 놓자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인간을 통일할 수 있습니다. (15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