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 26 일
16 훈독경 제1권 26일 하나님의 가슴과 우리의 가슴 1.mp3
하나님의 가슴과 우리의 가슴(훈독본, 원문)
날짜 : 1995. 12. 31(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 수련소
세상의 문제는 하나님과 나의 문제
세상의 문제는 결국 하나님과 나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평면적으로 보면 나라와 나, 스승과 나, 부모와 나,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은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가정에도, 나라에도, 세계에도, 하늘땅에도, 하나님 앞에도 내가 중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면 가정이라든가 나라라든가 세계를 무엇으로 연결시키느냐? 돈으로 묶어지겠느냐, 지식으로 묶어지겠느냐, 권력으로 묶어지겠느냐, 그 가외에 무엇으로 묶어야만 묶어지겠느냐? 이것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현재 돈도 있고, 지식도 있고, 권력도 있지만 이런 것들을 중심삼고는 세계를 묶을 수 없고 세계의 역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경험을 통해 나온 결과입니다. 그것들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결과에 도달한 것입니다.
미국이 돈이 있지요? 세계를 리드하는 지식의 첨단 국가요, 힘에 있어서 첨단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나 하나를 소화 못 합니다. 그러니 2억 4천만 미국 국민을 이런 것들로 소화하겠느냐 할 때 절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권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역사적인 요소로서 남길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도 이것을 중요시하고 있었다면 세계의 문제는 벌써 해결한 지 오래됐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가슴에 무엇을 채우고 싶으냐는 것입니다. 지식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돈은 이미 다 창조해 놓은 것입니다. 창조는 그것 때문에 한 것이 아니고 보다 더 차원 높은 것을 위해서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왕이고, 권력의 왕이고, 돈의 왕입니다. 그분은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슴에 채울 것이 뭐냐? 이 셋을 한꺼번에 갖다 넣더라도 안 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겠느냐고 묻게 된다면, 아들이 부모를 닮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 인류 시조가 된다면 우리를 닮았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슴은 누구를 닮았다구요? 하나님의 가슴을 닮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돈을 갖다가 채운다고 꽉 차느냐? 안 찬다는 것입니다. 또, 지식을 갖다 채우고 권력을 갖다 채우려고 해도 안 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아담과 해와, 이 둘을 묶어서 하나님의 가슴에 채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갖고 채우고, 지식을 갖고 채우고, 그 외에 다른 무엇을 갖고 채우더라도 하나님의 가슴에는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텅텅 빈다는 것입니다. 무엇만이 채울 수 있느냐?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완전히 그 가슴을 채우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진 실체를 갖다가 맡겨야 꽉 찬다는 것입니다. 돈 갖고, 지식 갖고, 권력 가진 실체 가지고는 안 찹니다. 사랑은 볼 수 없지만 사랑이 꽉 찬 실체를 갖다 놓으면 가슴이 꽉 찹니다. 사랑과 하나된 실체는 갖다 놓으면 전부 다 “오케이!” 한다는 것입니다. (275-230)
문제는 내 몸 마음이 하나 안 된 것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부부끼리 몸 마음이 사랑으로 차게 될 때는 다른 어떠한 무엇이 들어오더라도 이미 꽉 찼기 때문에 다른 것을 갖다 붙일 수 없습니다. 돈도 필요 없고, 지식도 필요 없고, 다른 무엇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사랑을 갖고 있고, 생명을 갖고 있고, 혈통을 갖고 있고, 양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 그 사랑을 느끼고, 생명을 느끼고, 혈통을 느끼고, 양심을 느낄 수 있어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왜 못 느끼느냐 하면 하나돼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눈이 수없이 깜박깜박하고 있는데 그것을 느껴요? 그 눈꺼풀은 둘이 얼마나 서로 접하고 얼마나 소제하고 그러는데 왜 못 느껴요? 하나돼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이 하루종일 숨쉬면서 후우욱 후욱 하는데 그것을 생활 가운데서 몇 번이나 느껴 봤어요?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돼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심장이 뛰는 소리는 청진기로 들으면 폭탄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렇지만 바쁜 사람은 일년 동안에 한 번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돼 있기 때문에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렇다구요? 밸런스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밸런스가 되면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상대적으로 돼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페어 시스템(pair system;쌍쌍제도)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눈도 쌍으로 돼 있습니다. 밸런스를 취하고 있습니다. 코도 밸런스가 되어 있고, 입술도 밸런스, 귀도 밸런스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밸런스가 돼 있어요? 그게 왜 분리돼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도 몸 마음이 하나 안 돼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존재가 되려면 몸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나된 위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됩니다. 문제는 어디 있느냐?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세계의 역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꾸며 나온 남자 여자의 몸 마음이 하나되지 않은 데 있습니다. 몸 마음의 싸움이 문제입니다.
미국이 하나 안 된 것이 문제가 아니고, 세계가 하나 안 되고 하늘땅이 하나 안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 몸 마음이 하나 안 되고, 나와 같이 전세계 사람의 몸 마음이 하나 안 된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자체가 문제라는 말입니다.
통일은 어디서 벌어지느냐? 몸 마음이 통일 안 되면 외적인 세계에 아무리 통일이 벌어지더라도 몸 마음이 투쟁하는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이 아플 때는 눈 하나만 아파요, 전체가 아파요? 손톱 끝이 조금만 아프다 하게 되면 손끝만 아파요, 전체가 아파요? 누가 머리카락 하나 착 뽑으면 전체가 아파요, “여기만 아프다.” 그래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머리카락이 여러분 자체의 한 세포인 것과 같이 인간이 밸런스가 안 될 때는 우주의 밸런스가 안 됐다는 것을 증거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슬픔은 우주의 슬픔, 내 슬픔은 하나님의 슬픔, 내 슬픔은 역사적 슬픔이 연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275-232)
하나님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참사랑뿐
완전한 자유는 밸런스가 취해진, 통일된 터 위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 마음은 밸런스가 되어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진짜 자유는 없습니다. 참된 행복, 참된 자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당도 투쟁 개념을 가지고 자유를 찾자고 하니까 자연히 망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페어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계도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으로 되어 있고 식물도 수술 암술, 동물도 암컷 수컷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공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 밸런스 때문입니다. 전부가 밸런스 된 그것을 중심삼고 연결해야 됩니다. 사랑의 길을 중심삼고 연결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변소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볼 때 왜 더럽지 않아요? 마스크를 안 쓰고 본다구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그걸 해 놓은 것을 보면 코를 막고 “우우우…!” 하는데, 자기 것은 왜 더럽지 않아요? 하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여름에 나가 가지고 노동을 해서 땀에 젖은 양말짝을 여편네 무릎에 놓아도 들고 냄새 맡아 보고해도 싸움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동정하고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나를 위해서 고생했구나!” 합니다. 발 냄새가 결코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돼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이 그런 조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부부가 돼 가지고 사랑이 없다면 키스를 하고 그러는 것이 얼마나 복잡해요? 여자가 일생 동안 남자 생명체를 붙들고 살아요, 사랑을 붙들고 살아요? 사랑을 붙들고 삽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도 신비로운 것입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뭐냐? 물질이니 지식이니 힘 가지고는 아무 것도 채울 수 없는데, 하나 가능성이 있다면 모두가 좋아하는 사랑밖에 없다고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느냐 할 때 우리를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것도 사랑밖에 없다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참사랑입니다. (275-238)
사랑이 모든 존재의 목적이요 모든 힘의 원동력
그렇다면 어디서 참사랑을 찾느냐? 개인주의 왕국인 미국에서 찾을 수 있겠어요?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참사랑이 무슨 사랑이에요? 위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상대를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 사랑 없이는 개인의 완성이 불가능합니다.
그래,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고 했는데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사지백체가 다 좋아요? 절대적으로 좋아요?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을 나 혼자 찾을 수 있어요? 누구로 말미암아 찾느냐? 상대로 말미암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없으면 사랑을 영원히 찾지 못합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났는데 사랑은 상대 없이 찾을 수 없으니 상대 때문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자가 왜 태어났어요? 사랑 때문에 태어났는데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으니, 남자를 통하지 않고는 사랑을 할 수 없으니 이론적으로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자의 오관은 누구 때문에 태어났어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눈이 눈을 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오관이 오관 자체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냄새도 사랑하는 냄새를 맡고 싶은 것입니다. 듣는 것도 사랑하는 상대가 내는 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얼굴에 있는 모든 기관이 전부 다 사랑의 상대를 향하는 것입니다. 모든 전부가, 몸과 마음도 사랑 때문에 움직이고 사랑 때문에 방향을 맞추는 것입니다. 오관이 전부 다, 영적 오관이나 육적 오관이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이 모든 힘의 원동력이요, 이상적 행동의 원동력이요, 기쁨의 원동력입니다. 여자의 손이 아무리 힘이 없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만 나타나면 힘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못 살 정도로 그립던 임을 품게 되면 가슴이 꽉 차게 됩니다. 그 이상 필요 없다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상대를 품는데 거기에 조그만 무엇이 들어와 끼는 게 좋겠어요? 그런 것은 절대 용허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참사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되는 데서 참사랑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참사랑을 영원히 원합니다. 그러려면 몸 마음이 하나돼야 합니다. 거기에서 참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참사랑을 못 느낍니다. 사랑이 있고, 생명이 있고, 혈통이 있고, 양심이 있지만 그것을 혼자 있을 때는 못 느낍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한꺼번에 느끼느냐? 미남자 앞에 미녀가 나타날 때, 미녀 앞에 미남자가 나타날 때 그것이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불꽃같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백 퍼센트 이상 충격적인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 백 퍼센트의 사랑을 원해요, 천 퍼센트의 사랑을 원해요? 천 퍼센트를 원합니다. 세포가 한꺼번에 후루루룩…! 사랑이란 헤쳤다 합했다, 헤쳤다 합했다 하는 것입니다. 보자기로 싸게 되면 이것이 하나밖에 없지만 헤쳐 놓으면 우주에 꽉 찬다는 것입니다. 싸는 데도 그 모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쥐면 한줌에 들어가지만 펼치면 우주에 꽉 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 하나님과 같이 참사랑이 아니면 안됩니다. 참사랑은 죽어도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 아니면 하나님한테 연결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참사랑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훌륭하더라도 참사랑의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상대일 뿐입니다. 주체를 부정하는 것은 대상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이제 통일교회의 멤버들은 참사랑의 개념을 다 알았습니다. 위하여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한테 하나님의 혈통이 상속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가 상속되는 것입니다. (275-240)
사랑을 가지면 우주를 품을 수 있어
지금까지 하나님은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면서 나오셨습니다. 내가 투입한 것을 기억하는 날에는 더 큰 세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계속 투입하는 데 더 큰 우주가 나타납니다. 사랑에 무한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무한히 소망할 수 있는 사랑의 파트너를 원했기 때문에 창조 때부터 계속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남편이라고 할 때 어떤 남편이 참남편이냐? 아내를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남편이 참남편입니다. 참부모도 마찬가지이고 참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국자, 성인, 성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자의 아버지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하여 살다가 죽어서 가는 곳이 소위 천국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어떻게 살았어요? 여러분을 중심삼고 살았어요, 우주를 중심삼고 살았어요? 내 개인을 중심삼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이제부터 나도 나를 위해 산다. 영원히 내 것은 나만의 소유다!” 하고 선포해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얼마나 이 세상이 외롭겠어요?
인간세계가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계속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더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나왔기 때문에 더 커진 인간 세상을 품고도 남을 수 있는 여유가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면 충분하다!” 하고 그만둔다고 생각해 봐요. 더 큰 세계가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런 큰 우주를 품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더 큰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게 되면 작아집니다. 자기한테 좋은 친구들이 있는데 “전부 나를 위하라!” 하면 다 떠납니다. 나중에는 자기 혼자만 남게 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도망가고, 국가가 도망가고, 사회가 도망가고, 조부모가 도망가고, 부모가 도망가고, 남편 아내가 도망가고, 아들딸도 도망가고 혼자만 남는 것입니다.
히피나 이피가 되어 비 오는 날 밤에도 어디 갈 데가 없고 아무데도 머무를 곳이 없게 되어 마지막에는 자살하는 것입니다. 그런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의 하나님, 참행복의 하나님, 참희망의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위하여 살게끔 되어 있는 것이 존재세계인데 거기에서 이탈하니까 전부 다 잃어버리고 자기 혼자밖에 남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 아무도 보호하지 않습니다. 우주가 그런 사람은 추방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지니 비참한 자리에서 쓰러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도 사랑이 아니면 안 채워집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말씀을 안 듣고 하버드 대학에 가겠다고 하면 하버드가 똥버드가 됩니다. 다 지옥 가는 것입니다. 여기 쓸쓸하고 의자도 없는 곳에서 서양 여자와 남자들이 앉아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고생하지만 여러분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참사랑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래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으니까 세상 사람은 미친 것들이라고 합니다. 미쳤는데 무엇에 미쳤느냐 하면 사랑에 미쳤다는 것입니다.
그래, 어떤 사랑에 미쳤느냐? 참사랑에 미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에 미친 분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분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고 잊어버려 진공상태에 가더라도 그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고기압도 진공상태에 가면 하강작용이 벌어집니다. 절대적인 진공상태에 들어가면 절대적인 힘이 연결됩니다. 절대적인 진공상태에서 절대적인 플러스 마이너스가 번개같이 부르르 떤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진공상태에 절대적인 힘이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기압은 저기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높은 곳은 낮은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사랑의 힘이 낮은 사랑의 빈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수직강하(垂直降下)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진공상태에서 무한한 힘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힘만이 가능합니다. 위하고, 보다 위하고, 절대적으로 위해 완전히 진공의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진공상태에 가면 거기에 구멍이 생깁니다. 그래서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기도할 때는 기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꽉 차면 터지겠어요, 안 터지겠어요? 터지겠어요, 아니면 이렇게 돌아가겠어요? 돌아서 영원히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력이 필요합니다. 던지면 이게 포물선을 그린다는 것입니다. (275-246)
오관의 최고 목적은 참사랑
우주의 생성은 3점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직선에서는 생성이 없습니다. 3점에서부터 우주가 형성됩니다. 하나님의 상대세계라는 것은 3점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 3점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무엇을 채운다구요? 참사랑입니다. 눈의 목적 완성, 눈이 볼 수 있는 최고의 목적 달성은 무엇이어야 하느냐?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코의 최고의 목적도 참사랑이고, 입의 최고의 목적도 참사랑이고, 오관 전부 다 최고의 목적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가슴에 참사랑을 품고 다닐 때 눈이 좋아하고, 코가 좋아하고, 귀가 좋아하고, 입이 좋아하고, 손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균까지도 거기에 협조해야지 잡아먹겠다고 못 합니다. 기뻐서 사는 사람, 사랑에 취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기 때문에 어느 누가 점령하고 어느 누가 파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를 위해 살라고 했다가는 전부 껍데기를 벗기고 불알을 떼어 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을에서 10년 20년 전체를 위해 살게 되면 욕 잘하는 할아버지까지도 그 사람 앞을 지나갈 때는 자기가 부끄러워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좋아요, 무서워요? 좋기만 하면 주체와 대상의 개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걸 잊어버리면 큰일납니다. 주체는 센터로서 자기보다 높으니까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남자들도, 여기 장(長)들도 선생님이 가까이 오라고 하면 다 도망갑니다. 곧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진공이 되니까 절대복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머리카락 하나에도 사랑을 채우고 다니겠다고 해야 됩니다. 거기에도 다 구멍이 있습니다. 숨을 다 쉰다는 것입니다. 내 손에도, 내 몸뚱이에도 참사랑을 채우고 다닌다고 할 때 “하나님, 날 따라오면 안됩니다. 떨어져 있으시오!” 하고 도망가 숨더라도 하나님이 자기를 따라와 지켜 준다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고, 동네 거지든 왕이든 다 좋아하고, 인류가 좋아하고, 하나님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그런 사람들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가 나서 눈을 부라리는 것을 좋아해요? 눈을 감고도 위하는 눈을 가지면 거기에는 사랑이 깃드는 것입니다. (275-248)
하나님의 가슴을 우리 가정이 채워 드리자
하나님의 가슴을 채우고 있느냐, 채우지 못했느냐? 그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채우지 못했으니 나와 우리 가정이라도 채워 보자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 통일가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보다도 위하겠다면 하나님을 내가 부려먹을 수 있습니다. 보다 사랑하는 상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사람들 가운데 천국 갈 사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미국 문화는 횡적인 문화라는 거예요. 악수하는 것도 횡적인 인사법입니다. 동양식은 종적으로 인사하는 것입니다. 서양은 종적인 개념이 없으니까 잘못하면 동물이 됩니다. 프리 섹스가 뭐예요! 그건 동물보다 못합니다. 그러니 지옥 중에서 쓰레기통, 제일 나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가정이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가정을 잃어버린 것이 한입니다. 이것을 채워 드려야 할 여러분입니다. 그 가슴에 사랑을 가득히 채워 드려 기쁨으로써 노래를 부르고 춤출 수 있는 에덴의 가정을 잃어버렸으니,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춤출 수 있는 가정을 복귀해서 하나님을 해방해야 되겠다는 이런 결의를 다시 해서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전진적인 발전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끝냅니다. (275-250)
<훈독 소감>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사랑으로 일체를 이룰 때만이 그 가슴을 꽉 채울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지 못하는 근본 문제는 내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있지 못한데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내 마음과 몸의 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참사랑을 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참사랑의 본질은 상대를 위해 100% 투입하는 것이라고 역설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하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투입하는 참사랑을 하게 될 때 3점을 이루어 참사랑이 완성됨을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하고 남자와 여자가 참사랑으로 서로 투입하여 참사랑의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우리가 되어주길 당부에 당부를 하시는군요.
제가 무엇을 이루어드려야 하는지 확실히 깨우쳐 주시는 말씀을 감사히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