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0권 22일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남북통일 (훈독본)
- 전국 대학교수 초청 만찬회에서 하신 말씀 -
날짜 : 1986. 3. 20(목)
장소 : 한국 서울 힐튼호텔
https://www.youtube.com/watch?v=5mbhmv319xg&list=PLtan-zpeJeilD6pJZCkogCwve2117SlW6&index=22
통일이라는 문제
한국의 남북문제는 비단 김일성 대 현정부의 투쟁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본주의나 신본주의, 헬레니즘이나 헤브라이즘의 종착점이 돼 있다고 볼 수 있고 유심사상과 유물사상이 대결하는 최후의 종착점이 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한국문제는 비단 한국문제뿐이 아니고 이것을 넓혀 보면 세계의 문제요, 더 높이 보면 신(神)의 문제입니다. 신 가운데는 선신(善神)이 있고 악신(惡神)이 있습니다. 즉, 선한 신을 대표한 하나님과 악한 신을 대표한 악마가 있습니다. 한국은 그 대결의 현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의 한국 비전’이라고 하게 되면 세계의 비전에 연결됩니다. 또, 남북통일이라는 것도 세계통일의 비전과 일치됩니다.
지금 60억 인류가 이 땅 위에 살고 있지만 그 모든 사람들에게 “금후의 세계에 대한 당신들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평화의 세계가 되었으면, 통일된 하나의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우리 남한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묻는다면 4천만 전부가 “남북이 통일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통일이라는 문제는 오늘날 역사상에서 비단 지금의 국가문제를 걸고 말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닙니다. 이것은 크게 하면 세계적 문제요, 작게 하면 개인의 문제에도 연결됩니다. 세계의 통일이 있기 전에 국가의 통일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논리형성의 정상적인 길이라고 봅니다. 국가의 통일이 있기 전에 가정의 통일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아무리 행복을 바라더라도 하나 못 될 때는 그 가정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또, 그 가정이 행복하길 바라더라도 내 개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가정의 행복도 불가능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집안의 부부가 하나되어 평화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요, 이것이 모든 해결의 기점이 된다는 말입니다. (143-259)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면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사상계에서 정상의 자리를 점령해야 됩니다. 이것이 첫째 과제입니다. 사상계에는 철학사상, 종교사상, 혹은 여러 가지 다른 사상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투쟁하여 승리할 수 있는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가지 않고는 평화의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길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둘째는, 과학기술에서 첨단의 자리를 점령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 미국을 보더라도 미국이 지금까지 2백 년 동안 과학문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그들의 모든 생산 원자재는 남미를 통해서 공급됩니다. 그래서 남미를 예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유럽은 아프리카를 예속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평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시급히, 구라파의 모든 과학기술을 아프리카에 그냥 그대로 갖다 심어 놓아야 합니다. 미국의 과학기술을 그냥 그대로 남미에 심어 평준화시켜야 합니다. 과학기술의 정상의 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경제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미국도 요즘에 1년에 7, 8천억 달러에 해당하는 적자를 냈다고 합니다. 이제는 미국을 위주한 달러 제일주의시대는 지나갑니다. 이렇게 어려운 국제적인 금융시대를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세계 유휴금융액이 수천억, 수조 달러가 됩니다. 미국이면 미국의 재벌들이 돈을 모아 탈세하기 위해서 이름도 없는 나라에 전부 사장(死藏)시켜 놓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들이 그렇고, 독일 국민들도 그렇습니다. 영국 국민들도 마찬가지요, 일본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휴금융을 전부 활성화시킬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1천억 달러의 관리를 위해 은행을 설립하려고 합니다. 선진국가의 수령들을 중심삼고, 이 은행을 선진국의 법이 손대지 못하는 초국가적 은행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은행을 만들지 않고는 세계의 금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그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문제에서 정상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언론세계에서 첨단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현재 선생님이 <워싱턴타임스>를 중심삼고 미국의 1772개나 되는 신문사를 전부 누르고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언론계의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정보에 있어서 최고의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평화의 세계를 가누어 갈 수 있는 투쟁무대에서 몰락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워싱턴타임스> 얘기도 했지만, <워싱턴타임스>의 특이한 임무가 뭐냐? 세계 최고의 비밀정보가 다 들어오는 곳이 됐습니다.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선진국들의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론들이 그것을 미리 보도해야 합니다. 더욱이나, 선진국의 모든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미국 같은 곳에서는 언론기관이 일류이니까 언론기관이 보도해야 그 정책이 순조롭게 집행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국가의 비밀정보를 <워싱턴포스트>라든가 <뉴욕타임스>, 그 외 유명한 신문사들에 전부 제공합니다. 제공한 내용이 소련에 손해가 되는 일은 보도하지 않고 미국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일도 보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유명한 언론기관들을 신봉할 수 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워싱턴타임스>가 나와서 지금까지의 소련정책에 모두 정면도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당이면 당 책임자가 공산당의 위협을 받고 후퇴하는 시점에서 그 후퇴할 곳에 전진적인 공격을 하는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선진국들의 정보처에서는 <워싱턴타임스>에 정보를 주는 것입니다. 그걸 보고하면 즉각 대서특필해서 발표합니다. 이러다 보니 세계 국가들간의 모든 비밀정보는 <워싱턴타임스>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배후를 가졌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 기반이 소련의 위성국가는 물론 모스크바까지 뻗쳤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 보니, 통일교회 젊은이들 가운데 지금 투옥되어서 옥살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세계의 첨단에서 소련에 대치하여 싸워 나가야 하는데 정보전에서 밀리면 세계의 평화를 찾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한 기반을 닦아 이제는 미국이나 자유세계에서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디로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된다면, 이제 통일사상 아니면 안되겠다고 하는 기준이 서게 됐습니다. (143-261)
문제는 사람에게 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외적인 기반, 세계적으로 평화의 기지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다 닦았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사상을 가지고 있고,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고,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언론기관의 첨단에 섰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가 뭐냐? 자기 국가, 자기 민족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 주의를 주장하더라도 그 한계선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20세기 후반기에 모든 세계인들의 고민입니다. 한 곳에서는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뭐냐” 하며 인본주의를 위주한 황금만능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뭐냐? 진화에 의한 발전적 세계냐,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조화적 세계냐? 이것을 역사적으로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철학이 지금까지 고민한 것이 뭐냐? 철학은 참된 사람이 살 수 있는 이상을 말합니다. ‘이상’ 하게 되면 가정적 방향, 사회적 방향, 민족적 방향, 국가적 방향, 세계적 방향의 관이 있어서 한 길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그재그로 함부로 가서는 안됩니다. 관이라는 것이 전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철학은 참된 사람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참된 사람이 있느냐? 그래서 철학은 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하다가 이제는 다 낙제하고 후퇴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신을 알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또, 종교와 철학이 다른 게 뭐냐? 종교는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이상대로 살자” 하는 것입니다. 철학과 출발이 다릅니다. 지금 종교세계도 20세기 세계사적인 급변시대에 이것을 포괄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의 무력함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갔느냐? 이제는 종교도 다 흩어져 가고 있고, 철학도 다 시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참된 사람이 뭐냐, 어디 있어?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통일을 바라고, 모든 것을 바라더라도 문제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통일할 수 있는 나라가 있기 전에 통일할 수 있는 가정이 나와야 하고, 통일할 수 있는 가정이 나오기 전에 통일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두 세계가 싸움을 하는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외적 세계가 아닙니다. 마음 세계와 몸 세계,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 미국을 어떻게 믿겠어요? 자신을 못 믿는 내가 여편네를 어떻게 믿고, 자식을 어떻게 믿고, 나라를 어떻게 믿겠어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143-264)
하나의 세계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의 세계를 이루려면 인격혁명을 해야 합니다. 격위가 있어야 합니다. 낮은 격위에서부터 상위까지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격위를 중심삼은 혁명을 해야 합니다. 신이 있다면 신격과 대등할 수 있는 기준까지 합덕될 수 있는 인격혁명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혁명이 아닌 인격혁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신이어야 되겠느냐?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어야 합니다. 사람과 통할 수 있는 신,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신, 격위를 갖춘 신이 되어야 합니다. 인격적 신이라면 그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공통분모로 제일 좋아하는 것, 절대자인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내가 갖고 있다면 하나님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보고 “오소” 하면, 하나님이 안 오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주일학교 때부터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주는 제일 귀한 말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었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사랑하시느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누구를 죽여서라도 사랑하신다고 했어요? 독생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죽이고서라도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하나인 아들까지 죽이면서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143-272)
성경의 핵심
인간을 대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게 뭐냐?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계의 인간을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계명입니다. 하나님만 세계를 사랑하시려고 한 줄 알았는데, 우리 인간을 대해서도 세계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핵심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만났으면 완전히 성숙된 자리에서 공명체가 되어 마음과 몸이 같이 “이것이구나” 하고 달라붙을 수 있습니다. 째까닥 달라붙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봤느냐 할 때, 타락한 인간은 못 봤습니다. 타락한 후손들인 여러분은 그 법칙, 그 권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섭섭해도 할 수 없습니다.
언제 이 몸과 마음이 최고로 충동을 받을 수 있느냐? 가짜 사랑, 즉 타락한 세상에서도 사춘기 때 사랑의 방향만 딱 정하게 되면 부모가 반대하고 뭐 해도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몸과 마음이 취해서 생명도 투입합니다. 타락권 내에서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 사랑을 가지고도 그러는데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있다고 할 때는 어떻게 되겠어요? 재까닥 달라붙습니다. 달라붙으면, 누가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사탄이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못 갈라놓으십니다. 거기에 가서 붙어 계시려고 합니다. (143-273)
하나님이 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느냐?
이 우주의 비밀이 무엇이냐? 우주의 진리가 무엇이냐? 부자의 관계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그걸 파헤쳐 보니까 이런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여기 오신 귀한 손님들 앞에 제일 귀한 예물을 주는 것입니다. 선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났는데, 어떤 여자냐? 참된 여자입니다. 그러니 참된 남자가 되지 않고는 참된 여자를 못 만납니다. 그러면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143-275)
이 우주는 사랑의 뿌리에 인연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찾아가는 존재는 이 우주가 환영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대하는 데는 주체가 아니면 대상의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제일인 동시에 나도 제일입니다. 사랑은 동참권·동위권·상속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욕심은 굉장히 큽니다. 그 욕심까지도 점령할 수 있는 힘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더라도 하나님의 보물이 있다면, 하나님 가운데 숨겨진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까지 점령해야 욕심은 쉰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그런 욕심까지 소화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위하려고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위하는 데서 영원히 보장됩니다. (143-277)
원수를 사랑한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한테 미친 사람입니다.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개인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라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은 한국 사람인 선생님과 원수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그런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일제시대에 감옥에 있던 선생님을 죽이려고 한 일본 사람들을 한국이 해방된 뒤에 밤에 보따리를 싸서 보낸 사람입니다. 왜냐?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43-280)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40년 전에 총칼을 겨누던 그러한 원수의 국가가 망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부 모아서 미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 국가를 자기 나라 이상 사랑할 수 있는 터전을 발견하지 않는 한 지상에 천국이 현현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비로소 가능합니다.
참된 남자, 참된 여자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싸우지 않는 일체된 사랑의 자리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사랑이 오지 않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천국은 가정이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가정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된 가정이 안 나왔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선생님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가능한 논리적 궤도를 통해서 발전적 단계를 거쳐 체험적 종교와 실험적 종교로 입증됨으로써 누구든지 다 갈 수 있는 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위해서 태어났느냐?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니 서로 위해야 합니다. 그 사랑은 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기 때문에 사랑의 기관을 엇바꿔 주셨습니다. 남자의 것은 남자의 것이 아닙니다. 여자의 것도 여자의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갖고 있는 것은 여자의 것이요, 여자가 주인입니다. 여자가 갖고 있는 것도 남자의 것이요, 남자가 주인입니다. 그 주인을 남겨 놓고 멋대로 하는 것은 사랑의 법칙에 위반되는 것이니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법 중에서 제일 무서운 법의 치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걸 안다면 자기 아내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남편을 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비판해 보고 과거의 흠이 있거들랑 “과거는 나 중심삼고 내 멋대로 사랑이 내 것이라고 했소. 사랑은 상대로부터 오는 것이고 사랑의 기관은 자기 것인 줄 알았더니, 당신이 주인이오. 주인 열쇠를 전부 고장내 버리고 내 멋대로 했으니, 나는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천하의 죄인이니 용서하시오” 하며 부부끼리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벌어지면 여러분의 아들딸이 효자 효녀로 나타날 것이고, 여러분의 아들딸이 여러분의 그 사랑의 길을 따라서 충신 열녀로 등장할 것입니다. 성인 열사, 하나님의 아들딸, 성자 성녀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셔들이지 않고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나라에 못 갑니다. 그래서 사랑이 귀합니다. 사랑을 세우려니 위하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참사랑은 주고 잊어버리고, 또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부부, 그럴 수 있는 나라, 그럴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가 서로 위할 수 있는 하나의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과거의 사람,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이 서로 주고 위할 수 있는 사랑을 해야만 이 세계를 평화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돈이나 군사력을 가지고 가능하냐? 안 됩니다. 지식을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복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보호하는 사랑의 품에서 자라다 태어나 20세까지 철모르고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습니다. 부모의 진자리 마른자리를 탓하지 않고 추한 것을 추한 것인 줄 모르고 다 기쁨으로 소화하는 참사랑이 저변에 깃든 가운데서 자라다가, 그 다음에는 사랑의 상대자를 만나서 서로 위하는 천리의 사랑에 접붙이기 위한 놀음을 일생과정을 통해서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하나님의 대상적인 실체권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143-283)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 단위 사랑의 수련소
가정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 단위 사랑의 수련소요, 더 큰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교재입니다. 거기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 그리고 아들딸의 연령층이 확대된 것이 세계의 인류입니다. 그 인류를 자기 아내와 같이 사랑하고 부모와 같이 사랑하고 아들딸과 같이 위해주면서 살 수 있는 가정만이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땅의 모든 권세를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무한하고 영원한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과 사랑관계를 맺게 될 때 즉각적으로 동위권이나 동참권에 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우주의 상속권을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몸과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개인의 몸과 마음에서부터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된 남자로서 자기 아내를 위하고, 그 다음에 가정 전체를 위하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남북통일도 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류가 기뻐합니다. 이상으로 친다면 하나님의 이상을 중심삼고 세계의 이상을 소화하고, 세계가 소화된 그 세계의 이상이 국가를 소화하고, 국가의 이상에 종족, 민족, 가정, 개인까지 연결될 수 있어야 이 땅 위에 유토피아의 세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143-285)*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22일, 원문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남북통일
- 전국 대학교수 초청 만찬회에서 하신 말씀 -
날짜 : 1986. 3. 20(목)
장소 : 한국 서울 힐튼호텔
통일이라는 문제
한국의 남북문제는 비단 김일성 대 현정부의 투쟁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본주의나 신본주의, 헬레니즘이나 헤브라이즘의 종착점이 돼 있다고 볼 수 있고 유심사상과 유물사상이 대결하는 최후의 종착점이 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한국문제는 비단 한국문제뿐이 아니고 이것을 넓혀 보면 세계의 문제요, 더 높이 보면 신(神)의 문제입니다. 신 가운데는 선신(善神)이 있고 악신(惡神)이 있습니다. 즉, 선한 신을 대표한 하나님과 악한 신을 대표한 악마가 있습니다. 한국은 그 대결의 현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의 한국 비전’이라고 하게 되면 세계의 비전에 연결됩니다. 또, 남북통일이라는 것도 세계통일의 비전과 일치됩니다.
지금 60억 인류가 이 땅 위에 살고 있지만 그 모든 사람들에게 “금후의 세계에 대한 당신들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평화의 세계가 되었으면, 통일된 하나의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우리 남한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묻는다면 4천만 전부가 “남북이 통일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통일이라는 문제는 오늘날 역사상에서 비단 지금의 국가문제를 걸고 말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닙니다. 이것은 크게 하면 세계적 문제요, 작게 하면 개인의 문제에도 연결됩니다. 세계의 통일이 있기 전에 국가의 통일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논리형성의 정상적인 길이라고 봅니다. 국가의 통일이 있기 전에 가정의 통일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아무리 행복을 바라더라도 하나 못 될 때는 그 가정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또, 그 가정이 행복하길 바라더라도 내 개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가정의 행복도 불가능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집안의 부부가 하나되어 평화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요, 이것이 모든 해결의 기점이 된다는 말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세계무대를 중심삼고 싸워 왔습니다. 이제는 명실공히 자유세계에서, 현대 문화사에서 선생님은 빼 버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공산세계에서도 역시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미국 사람이면 얼마나 좋았을 것이고, 소련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러나 그 대상으로 제일 지지리 불쌍한 한국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일제시대에 공부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미국에 가서 공부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공부하면서 약소민족의 처참함을 뼈와 살에 사무치게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왜 하느냐? 이국 땅에 가서 이질적인 사람, 존경도 받을 수 없는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격동하는 자유세계의 틈바구니에서 세계 정상의 자리까지 나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 서 있는 선생님 개인이 이 일을 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안테나를 가졌습니다. 이번 니카라과 문제라든가 세계의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을 선생님이 많이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해 나오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번번이 그러한 인도함을 따라오다 보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143-259)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면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사상계에서 정상의 자리를 점령해야 됩니다. 이것이 첫째 과제입니다. 사상계에는 철학사상, 종교사상, 혹은 여러 가지 다른 사상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투쟁하여 승리할 수 있는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가지 않고는 평화의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길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둘째는, 과학기술에서 첨단의 자리를 점령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 미국을 보더라도 미국이 지금까지 2백 년 동안 과학문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그들의 모든 생산 원자재는 남미를 통해서 공급됩니다. 그래서 남미를 예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유럽은 아프리카를 예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남아연방을 중심삼은 지금까지의 흑백문제, 세계사적인 긴박상 등 모든 문제도 거기에 연유하여 역사는 엉클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평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시급히, 구라파의 모든 과학기술을 아프리카에 그냥 그대로 갖다 심어 놓아야 합니다. 미국의 과학기술을 그냥 그대로 남미에 심어 평준화시켜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선진국의 이단자가 될 것을 선언하고 그런 준비를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니고 있는 과학기술에서는 첨단의 독일 과학기술과 연락하여 길을 닦고 있고, 일본에서도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10대 전자회사의 실험실을 뒷문으로 출입할 수 있는 길까지 닦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정상의 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경제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미국도 요즘에 1년에 7, 8천억 달러에 해당하는 적자를 냈다고 합니다. 이제는 미국을 위주한 달러 제일주의시대는 지나갑니다. 이렇게 어려운 국제적인 금융시대를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벌써 6년 전부터 세계적인 금융기관에 손을 댔습니다. 1만 명에 해당하는 국제적인 재벌들을 통해서 한 사람이 1천만 달러씩의 주식을 사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천억 달러를 모으려고 합니다.
지금 세계 유휴금융액이 수천억, 수조 달러가 됩니다. 미국이면 미국의 재벌들이 돈을 모아 탈세하기 위해서 이름도 없는 나라에 전부 사장(死藏)시켜 놓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들이 그렇고, 독일 국민들도 그렇습니다. 영국 국민들도 마찬가지요, 일본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휴금융을 전부 활성화시킬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1천억 달러의 관리를 위해 은행을 설립하려고 합니다. 선진국가의 수령들을 중심삼고, 이 은행을 선진국의 법이 손대지 못하는 초국가적 은행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은행을 만들지 않고는 세계의 금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그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문제에서 정상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언론세계에서 첨단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현재 선생님이 <워싱턴타임스>를 중심삼고 미국의 1772개나 되는 신문사를 전부 누르고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언론계의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정보에 있어서 최고의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평화의 세계를 가누어 갈 수 있는 투쟁무대에서 몰락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워싱턴타임스> 얘기도 했지만, <워싱턴타임스>의 특이한 임무가 뭐냐? 세계 최고의 비밀정보가 다 들어오는 곳이 됐습니다.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선진국들의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론인들이 그것을 미리 보도해야 합니다. 더욱이나, 선진국의 모든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미국 같은 곳에서는 언론기관이 일류이니까 언론기관이 보도해야 그 정책이 순조롭게 집행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국가의 비밀정보를 <워싱턴포스트>라든가 <뉴욕타임스>, 그 외 유명한 신문사들에 전부 제공합니다. 제공한 내용이 소련에 손해가 되는 일은 보도하지 않고 미국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일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유명한 언론기관들을 신봉할 수 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워싱턴타임스>가 나와서 지금까지의 소련정책에 모두 정면도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당이면 당 책임자가 공산당의 위협을 받고 후퇴하는 시점에서 그 후퇴할 곳에 전진적인 공격을 하는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선진국들의 정보처에서는 <워싱턴타임스>에 정보를 주는 것입니다. 그걸 보고하면 즉각 대서특필해서 발표합니다. 이러다 보니 세계 국가들간의 모든 비밀정보는 <워싱턴타임스>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배후를 가졌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 기반이 소련의 위성국가는 물론 모스크바까지 뻗쳤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 보니, 통일교회 젊은이들 가운데 지금 투옥되어서 옥살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세계의 첨단에서 소련에 대치하여 싸워 나가야 하는데 정보전에서 밀리면 세계의 평화를 찾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한 기반을 닦아 이제는 미국이나 자유세계에서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디로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된다면, 이제 통일사상 아니면 안되겠다고 하는 기준이 서게 됐습니다. (143-261)
문제는 사람에게 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외적인 기반, 세계적으로 평화의 기지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다 닦았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사상을 가지고 있고,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고,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언론기관의 첨단에 섰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가 뭐냐? 자기 국가, 자기 민족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미국을 위주로 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선진국민으로서 자기 나름의 애국사상을 중심삼은 기준에서 세계를 책임지게 되면 미국 사람이면 미국 사람 일원화로 전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꼬여 들이려고 합니다. 영국 사람이면 영국 사람, 프랑스 사람이면 프랑스 사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평화통일을 구상하기 전에 어떻게 민족성을 극복하는 사람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한국 사람으로서 국제무대에 나가서 한국 제일주의를 주장하면 되겠어요? 안됩니다. 하나의 세계, 인류가 추구하는 목적의 세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 국가, 민족을 넘어설 수 있는 사상적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상적 체계는 인간만의 사상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지금까지의 사상은 자기 국가의 한계선을 못 넘었습니다.
소련이 세계 공산주의를 선포하고 그야말로 세계를 제패하겠다고 당당하게 출범했지만 슬라브 민족성, 소련을 위주로 한 공산주의권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모택동과 결렬되었습니다. 국제 공산주의가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공산주의로 떨어졌습니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 주의를 주장하더라도 그 한계선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20세기 후반기에 모든 세계인들의 고민입니다. 한 곳에서는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뭐냐” 하며 인본주의를 위주한 황금만능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뭐냐? 진화에 의한 발전적 세계냐,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조화적 세계냐? 이것을 역사적으로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철학이 지금까지 고민한 것이 뭐냐? 철학은 참된 사람이 살 수 있는 이상을 말합니다. ‘이상’ 하게 되면 가정적 방향, 사회적 방향, 민족적 방향, 국가적 방향, 세계적 방향의 관이 있어서 한 길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그재그로 함부로 가서는 안됩니다. 관이라는 것이 전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철학은 참된 사람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참된 사람이 있느냐? 그래서 철학은 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하다가 이제는 다 낙제하고 후퇴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신을 알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또, 종교와 철학이 다른 게 뭐냐? 종교는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이상대로 살자” 하는 것입니다. 철학과 출발이 다릅니다. 지금 종교세계도 20세기 세계사적인 급변시대에 이것을 포괄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의 무력함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갔느냐? 이제는 종교도 다 흩어져 가고 있고, 철학도 다 시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참된 사람이 뭐냐, 어디 있어?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통일을 바라고, 모든 것을 바라더라도 문제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통일할 수 있는 나라가 있기 전에 통일할 수 있는 가정이 나와야 하고, 통일할 수 있는 가정이 나오기 전에 통일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두 세계가 싸움을 하는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외적 세계가 아닙니다. 마음 세계와 몸 세계,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 미국을 어떻게 믿겠어요? 자신을 못 믿는 내가 여편네를 어떻게 믿고, 자식을 어떻게 믿고, 나라를 어떻게 믿겠어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역사이래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흘러갔지만 그 현철들 가운데 “내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고 완전히 통일된 자리에서 표석(標石)을 놓았노라” 하고 선포한 성인 현철을 만나 봤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세계 통일에 앞서 나라통일, 나라통일에 앞서 가정통일, 가정통일에 앞서 개인통일이 문제입니다. 이 위의 모든 것을 다 잘라 버리고 나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몸 마음이 고통스러운데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면 편안해요? 우리 가정이 지금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나라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통일이 되었으면 뭘 해요? 세계가 통일되었더라도 남북이 갈라져 싸운다면 그 통일의 세계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143-264)
만유(萬有)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
참사람을 어디 가서 찾느냐? 나라를 넘어서 세계가 위할 수 있는 참사람, 세계를 넘어서 우주가 위할 수 있는 참사람, 만약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믿어주실 수 있는 참사람을 어디 가서 찾느냐? 그것이 망상이냐, 공론이냐? 이게 가능하지 않으면 평화의 기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을 가만히 보면 변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는데, 그 가운데 어느 것이 덜 변하느냐? 몸보다도 마음이 덜 변합니다. 양심은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흔히 귀한 것으로 보석을 말합니다. 다이아몬드를 말하고, 황금을 말하고, 진주를 말합니다. 다이아몬드는 굳은 데 있어서 어떤 것보다 역사성을 초월하고 시간성을 초월합니다. 어느 누가 힘을 가해서 그 힘을 약화시킬 수 없습니다. 힘에 있어서 절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황금은 빛에 있어서 역사성을 초월합니다. 높고 낮은 흑암권 어디든지 그 빛을 점령할 자가 없습니다. 불변이요, 유일이요, 절대적입니다. 진주는 조화의 빛, 우아한 빛이 아무리 갈고 닳아 다 없어지더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변치 않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우리 인간이 좋아합니다.
인간이 왜 그런 것을 좋아하느냐? 우리 인간의 본심 자체는 변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귀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절대적이고 불변이고 유일성을 가진 것이 뭐냐? 인간이 최고 귀한 것으로 남길 것이 물질인 다이아몬드요, 황금이요, 진주냐?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사람이냐, 물질이냐 할 때 사람입니다. 사람이 귀합니다.
사람이 귀한데, 변하지 않는 사람이 귀합니다. 참된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 했는데, 이게 반대되는 말입니다. 인간은 변합니다.
그렇지만 이 만유(萬有)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사람입니다. 물질의 그 어떤 귀한 것에도 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 영장이라는 말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이냐? 인간에게서 영(靈)을 빼놓으면 영장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동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이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장(長)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영원한 것을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변하는 사람 가운데에서는 참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서 참이라는 요소를 찾아보게 될 때, 하나님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하냐? 나 자신도 몸과 마음이 싸웁니다. 헤겔이 변증법을 세우게 되었는데, 아무리 봐야 사람이 모순이더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보니 둘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봐야 우리 조상도 그랬고, 지금 나도 그렇고, 앞으로 천년 후나 만년 후의 사람들도 그럴 성싶으니 모순적 와중에서 신음하는 자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만일 인간이 그렇게 된 것이 신의(神意)에 합당한 자리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잘못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이 있을 성싶다는 논리적 추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종교에서 타락이라는 말을 하고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 구원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이 신음하는 인간에게는 복음입니다. 교수님들,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종교에서 타락이라는 말을 하니 참된 하나님이 있을 성싶다. 타락해서 완성한 자리에 아직까지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 완성한 자리에 가서는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이거 심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역사이래 누구보다도 고통받고 누구보다도 몸부림쳤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을 빼놓고는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영계의 사실을 선생님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를 풍미하며 이런 문제를 놓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여 세계적 문제의 사나이가 됐는데, 그거 선생님이 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그렇게 했느냐? 하나님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143-268)
하나의 세계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변하실 수 없습니다.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이 변하실 수 없고 절대적이기에 하나님의 사상과 생각도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맹목적으로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창조이상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세계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격혁명을 해야 합니다. 인간혁명이 아니라 인격혁명을 해야 합니다. 격위가 있어야 합니다. 낮은 격위에서부터 상위까지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격위를 중심삼은 혁명을 해야 합니다. 신이 있다면 신격과 대등할 수 있는 기준까지 합덕될 수 있는 인격혁명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혁명이 아닌 인격혁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신이어야 되겠느냐?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어야 합니다. 사람과 통할 수 있는 신,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신, 격위를 갖춘 신이 되어야 합니다. 인격적 신이라면 그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공통분모로 제일 좋아하는 것, 절대자인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교수들은 “하나님이 뭘 제일 좋아하시겠노? 지식을 제일 좋아하시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대왕입니다. 또는, 경제학을 하는 사람은 “아이구, 돈이 제일이지”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돈을 언제든지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권력이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능치 못하실 것이 없기 때문에 권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내가 갖고 있다면 하나님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보고 “오소” 하면, 하나님이 안 오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주일학교 때부터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주는 제일 귀한 말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었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사랑하시느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누구를 죽여서라도 사랑하신다고 했어요? 독생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죽이고서라도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감리교에서는 “하나님이 감리교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었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장로교도 “하나님이 장로교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한다” 하고, 천주교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장로교가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입니다. 국가를 초월해서 하나된 세계, 이상하시는 목적에 결부될 수 있는 소망의 하나의 세계를 그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희생시키셨습니다. 우리 개인을 살려주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개인도 살아나야 세계도 살아나지만, 가치적으로 크고 작은 걸 비교할 때 하나님이 목적으로 하시는 것은 세계적 사랑, 세계적 아들딸입니다. 세계를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개인을 중심삼은 아들딸은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이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눈에 들지 않습니다. 참 놀라운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하나인 아들까지 죽이면서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143-272)
성경의 핵심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게 뭐냐? 하나님은 사랑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돈도, 권력도, 지식도 다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벽돌이 필요합니다. 문짝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벽돌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종합적인 완성의 미를 갖춰야 합니다.
인간을 대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게 뭐냐? 돈 많은 것, 학자 되는 것, 무슨 권력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했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계의 인간을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계명입니다. 이게 놀라운 말입니다.
하나님만 세계를 사랑하시려고 한 줄 알았는데, 우리 인간을 대해서도 세계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핵심이 그것입니다. 십계명이 아니라, 첫째 계명이 제일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그걸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는 것이 뭐냐? 생명을 내놓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목을 내놓고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전체를 투입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누구를 몽땅 사랑해 봤어요? 아내 된 자가 남편을 몽땅 사랑해 보고, 부모 된 자가 자식을 몽땅 사랑해 보고, 자식 된 자가 부모를 몽땅 사랑해 보고, 스승 된 자가 제자를 몽땅 사랑해 보고, 제자 된 자가 스승을 몽땅 사랑해 보고, 백성 된 자가 나라를 몽땅 사랑해 봤느냐?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못한 인간들을 대해서 하나의 타입, 금형(金型)을 만드신 것입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모델을 금형으로 만들어서 째까닥째까닥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모델이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을 중심삼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이 제일 귀합니다. 한국의 흘러간 노래에도 있습니다. ‘대학을 나와야 남자이더냐, 알뜰히 살뜰히 가정을 살피고 아내를 사랑해야 남자다’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면 그만이라는 노래입니다. 아무리 박사들이라고 해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 내가 원하는 사랑이면 만사가 다 해결됩니다.
그러면 우리 몸에게 “야, 몸아! 그래, 너는 무엇 중심삼고 하나되고 싶으냐” 하고 묻고, 또 마음에게도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고 싶으냐” 하고 물으면 사랑 중에서 참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만났으면 완전히 성숙된 자리에서 공명체가 되어 마음과 몸이 같이 “이것이구나” 하고 달라붙을 수 있습니다. 째까닥 달라붙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봤느냐 할 때, 타락한 인간은 못 봤습니다. 타락한 후손들인 여러분은 그 법칙, 그 권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섭섭해도 할 수 없습니다.
언제 이 몸과 마음이 최고로 충동을 받을 수 있느냐? 가짜 사랑, 즉 타락한 세상에서도 사춘기 때 사랑의 방향만 딱 정하게 되면 부모가 반대하고 뭐 해도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몸과 마음이 취해서 생명도 투입합니다. 타락권 내에서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 사랑을 가지고도 그러는데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있다고 할 때는 어떻게 되겠어요? 째까닥 달라붙습니다. 달라붙으면, 누가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사탄이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못 갈라놓으십니다. 거기에 가서 붙어 계시려고 합니다. (143-273)
하나님이 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느냐?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물론,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 이전에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을 만나기 전에 무엇을 만나야 되느냐? 남자에게서 사랑을 찾으려면 여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이 여자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은 여자고, 여자에게 제일 귀한 것은 남자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철학 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뭐냐? 내가 태어난 목적이 뭐냐? 인생은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이 고민입니다. 남자가 왜 태어났어요? 내가 왜 태어났어요? 학문 때문이 아니요, 돈 때문이 아니며, 권력 때문이 아닙니다.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입니다. 그 어깨가 큰 것은 자기 벌어먹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식을 벌어먹이고, 아내를 벌어먹이기 위해서입니다. 남자가 갖고 있는 기관과 여자가 갖고 있는 기관들 중에서 하나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 기관을 누구 때문에 갖고 있느냐? 자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닙니다. 남자의 것은 여자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여자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것은 남자의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 우주의 비밀이 무엇이냐? 우주의 진리가 무엇이냐? 부자의 관계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그걸 파헤쳐 보니까 이런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여기 오신 귀한 손님들 앞에 제일 귀한 예물을 주는 것입니다. 선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났는데, 어떤 여자냐? 참된 여자입니다. 그러니 참된 남자가 되지 않고는 참된 여자를 못 만납니다. 그러면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143-275)
여러분이 늘 생각해야 할 한 가지가 “내가 왜 귀하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우주의 제일 존재로 세우고 싶어합니다. 여기서 먼저 생각할 것은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주의 근본은 존재에 앞서서 사랑이 없어서는 존재가 생겨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제1존재가 아니라 제2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생겨나고 싶어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여러분이 존재의식을 갖기 전에 벌써 사랑이 존재해서 여러분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모의 사랑 가운데 동참한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동참자라는 것이 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 아버지 앞에 몸을 부벼대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동참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동참권이 있습니다. 사랑의 인연이 됐을 때는 아버지가 높은 자리에 있고 내가 낮은 자리에 있더라도 내가 즉각 아버지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으며, 높은 자리에 있는 아버지도 즉각 내가 있는 자리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동위권, 동참권이 사랑에 개재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비록 떨어져 나와 있더라도 사랑은 영원합니다.
이 우주는 사랑의 뿌리에 인연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찾아가는 존재는 이 우주가 환영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대하는 데는 주체가 아니면 대상의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제일인 동시에 나도 제일입니다. 사랑은 동참권·동위권·상속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욕심은 굉장히 큽니다. 그 욕심까지도 점령할 수 있는 힘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더라도 하나님의 보물이 있다면, 하나님 가운데 숨겨진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까지 점령해야 욕심은 쉰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그런 욕심까지 소화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 세상, 타락한 세상에서의 모든 철학은 자기 사욕을 위주한 철학입니다. 이것을 지구상에서 쓸어 버려야 합니다. 그런 일은 무기를 가지고, 경제력을 가지고, 지식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고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참사랑만이 그것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느냐?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려고 창조하셨다면 세계는 하나 안 됩니다. 하나님이 위하려고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위하는 데서 영원히 보장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 우리 인간을 만드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 반드시 주관성과 동위권, 그 다음에는 상속권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됩니다.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욕을 먹으면서 세계를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습니다. (143-277)
사랑의 세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크다
역학세계에서는 입력이 출력보다 큰 것이 원칙이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큽니다. 쓰면 쓸수록 무한히 복된 것입니다. 참사랑은 위하는 사랑인데, 주고도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천 년을 주고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기억하지 않습니다.
구십이 넘은 박사님이 있다고 합니다. 그 박사님한테 칠십 난 아들이 있다면, 아들이 어디 나갈 적에 “얘, 오늘 차 조심해라” 그런 말을 합니다. 구십이 넘도록 그렇게 매일 되풀이했어도 지칠 줄 모릅니다. 그것은 영원히 계속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부모의 사랑도 그런데 본연의 세계인 하나님의 사랑에 속해 있을 때 지치겠어요? 여기서 비로소 우리 인생의 참된 하나님의 대상권을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불변한 것을 알게 될 때, 우리 인간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생의 논리를 타당화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니 영생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걸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한국에 와서 어떤 일을 하든지 “레버런 문이 대통령이나 정당이 욕심나서 그런다” 하는데,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공산당을 하나님과 인류의 원수로 규명한 선생님이기 때문에 이것을 책임지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한국 백성이 선발대가 되어 점령고지에 깃발을 꽂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으로 말미암아 남북통일이 되면 세계통일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군사력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선생님이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준비를 다 해놓았습니다. 그건 정부도 모르고 있습니다. 한국이 망하면 안되겠기에 선생님이 그런 준비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한테 미친 사람입니다.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개인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라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은 한국 사람인 선생님과 원수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그런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일제시대에 감옥에 있던 선생님을 죽이려고 한 일본 사람들을 한국이 해방된 뒤에 밤에 보따리를 싸서 보낸 사람입니다. 왜냐?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43-280)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은 원수고, 일본 사람과 미국 사람이 원수며, 미국 사람과 독일 사람이 원수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망하고 죽게 되었으니 그 원수 나라의 국민들을 데려다가 미국을 살려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으로서 미국을 사랑하는 이상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전통을 세우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새로운 주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전통을 세웠습니다.
40년 전에 총칼을 겨누던 그러한 원수의 국가가 망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부 모아서 미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 국가를 자기 나라 이상 사랑할 수 있는 터전을 발견하지 않는 한 지상에 천국이 현현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런 것들이 생활무대에서 평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적인 새로운 운동이 등장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국가를 넘어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사람에게 제일 귀한 것이 사랑입니다. 남자 여자는 왜 사랑을 찾아야 되느냐? 그 사랑을 찾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남자, 참된 여자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싸우지 않는 일체된 사랑의 자리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사랑이 오지 않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천국은 가정이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가정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된 가정이 안 나왔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선생님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가능한 논리적 궤도를 통해서 발전적 단계를 거쳐 체험적 종교와 실험적 종교로 입증됨으로써 누구든지 다 갈 수 있는 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위해서 태어났느냐?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니 서로 위해야 합니다. 그 사랑은 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기 때문에 사랑의 기관을 엇바꿔 주셨습니다. 남자의 것은 남자의 것이 아닙니다. 여자의 것도 여자의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갖고 있는 것은 여자의 것이요, 여자가 주인입니다. 여자가 갖고 있는 것도 남자의 것이요, 남자가 주인입니다. 그 주인을 남겨 놓고 멋대로 하는 것은 사랑의 법칙에 위반되는 것이니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법 중에서 제일 무서운 법의 치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걸 안다면 자기 아내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남편을 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비판해 보고 과거의 흠이 있거들랑 “과거는 나 중심삼고 내 멋대로 사랑이 내 것이라고 했소. 사랑은 상대로부터 오는 것이고 사랑의 기관은 자기 것인 줄 알았더니, 당신이 주인이오. 주인 열쇠를 전부 고장내 버리고 내 멋대로 했으니, 나는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천하의 죄인이니 용서하시오” 하며 부부끼리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벌어지면 여러분의 아들딸이 효자 효녀로 나타날 것이고, 여러분의 아들딸이 여러분의 그 사랑의 길을 따라서 충신 열녀로 등장할 것입니다. 성인 열사, 하나님의 아들딸, 성자 성녀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셔들이지 않고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나라에 못 갑니다. 그래서 사랑이 귀합니다. 사랑을 세우려니 위하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참사랑은 주고 잊어버리고, 또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부부, 그럴 수 있는 나라, 그럴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가 서로 위할 수 있는 하나의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과거의 사람,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이 서로 주고 위할 수 있는 사랑을 해야만 이 세계를 평화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돈이나 군사력을 가지고 가능하냐? 안 됩니다. 지식을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복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보호하는 사랑의 품에서 자라다 태어나 20세까지 철모르고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습니다. 부모의 진자리 마른자리를 탓하지 않고 추한 것을 추한 것인 줄 모르고 다 기쁨으로 소화하는 참사랑이 저변에 깃든 가운데서 자라다가, 그 다음에는 사랑의 상대자를 만나서 서로 위하는 천리의 사랑에 접붙이기 위한 놀음을 일생과정을 통해서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하나님의 대상적인 실체권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143-283)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 단위 사랑의 수련소
아들딸을 사랑하는 변치 않는 마음을 그냥 그대로 하나님 앞에 돌리고, 그냥 그대로 남편이나 아내 혹은 식구들에게 돌리는 가정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 단위 사랑의 수련소요, 더 큰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교재입니다. 거기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 그리고 아들딸의 연령층이 확대된 것이 세계의 인류입니다. 그 인류를 자기 아내와 같이 사랑하고 부모와 같이 사랑하고 아들딸과 같이 위해주면서 살 수 있는 가정만이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땅의 모든 권세를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옛날에 사대부의 가정에 아무리 층층시하가 있더라도 그 집안에서 보다 수고하고 보다 위하고 보다 가정을 사랑하던 사람이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특권입니다. 무한하고 영원한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과 사랑관계를 맺게 될 때 즉각적으로 동위권이나 동참권에 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우주의 상속권을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바탕의 마음은 욕망으로 작용합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게 되면 21세기의 비전과 남북통일이 모두 다 해결됩니다. 내 몸 마음이 사랑에 의해서 통일되면 가정에 무시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통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사랑으로 화합된 부부는 가족뿐만 아니라 그 종족의 어디든 통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둘이 하나되어 모범적으로 사는 부부를 그 동네의 친척들이 물어뜯고 짓밟으려고 해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럴 수 있는 화합된 가정, 그럴 수 있는 화합된 종족, 그럴 수 있는 화합된 민족, 그럴 수 있는 화합된 국가, 그럴 수 있는 화합된 세계, 그럴 수 있는 화합된 하늘땅, 그럴 수 있는 화합된 인간애와 하나님이 일체된 세계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을 중심한 유토피아의 세계입니다. 거기에는 분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몸과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개인의 몸과 마음에서부터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된 남자로서 자기 아내를 위하고, 그 다음에 가정 전체를 위하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남북통일도 가능합니다. 싸워서는 남북통일이 안 됩니다. 공산주의 사상도 사랑 가운데는 흡수됩니다. 이것을 몰라서 그렇지, 남북통일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남북의 분립이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류가 기뻐합니다. 인간만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먼저 기뻐하시고 이 세계가 기뻐하고 난 뒤에 나라가 기뻐하고, 나라가 기뻐하고 난 뒤에 가정이 기뻐하고, 가정이 기뻐하고 난 뒤에 내가 기뻐해야 됩니다. 순서가 그렇습니다.
이상으로 친다면 개인의 이상은 가정의 이상에 들어가야 하고, 가정의 이상은 종족의 이상에 들어가야 하고, 종족의 이상은 민족 이상에 들어가야 하고, 민족의 이상은 국가의 이상에 들어가야 하고, 국가의 이상은 세계의 이상에 들어가야 합니다. 더 큰 이상권 내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이상이 세계의 이상을 소화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이상을 중심삼고 세계의 이상을 소화하고, 세계가 소화된 그 세계의 이상이 국가를 소화하고, 국가의 이상에 종족, 민족, 가정, 개인까지 연결될 수 있어야 이 땅 위에 유토피아의 세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143-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