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사랑하자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6일)

훈독왕 | 20201225072050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6일

고향을 사랑하자 (훈독본) 

날짜 : 1990. 11. 24(토)
장소 : 한국 청원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qOJdOGiaAao&list=PLtan-zpeJeilD6pJZCkogCwve2117SlW6&index=16

 


인간이 어디서 출발했느냐

고향은 어느 누구나 언제나 그곳에서 살고 싶어하고, 또 그곳에서 언제나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것이 고향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근본이 어디서 왔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고향에서 살 때는 고향이 귀한 줄 모르지만 일단 고향을 떠나 보면 고향이 얼마나 그리운가를 알게 됩니다. 남북이 서로 갈라져 있지만, 외국에 나가게 되면 북한에 살던 사람이나 남한에 살던 사람이나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는 한 고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거리감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으로 서로 상치되는 입장에서 지내 왔지만 여기에 살던 사람이 미국이라든가 구라파, 남미, 아프리카 오지 등에 가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만나게 되면 누구보다도 가까움을 느낍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더 확대시켜 가지고 영계에 가게 되면 아시아 사람이나 구라파 사람이나 같은 지구성에서 온 사람끼리 가까움을 느끼게 되고, 또 그 중에서도 같은 시대에 살고 온 사람들끼리 더 가까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먼 조상들을 중심삼고 살던 사람들도 물론 가깝지만, 이와 같이 한 시대 안에 살던 사람이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 올라가서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 방대한 천주,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주의 내용을 바라보게 될 때 본래의 우리 인간이 어디서 출발했느냐? 그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209-7)


인간조상 중의 조상이 되는 아담 해와가 태어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난 그들에게 고향의 특별한 의미가 무엇이었느냐? 그 고향에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인연이 있었습니다. 또, 그 고향에서는 그 사랑과 생명을 중심삼고 혈연적 인연을 통해 가지고 역사를 거쳐오면서 혈통이라는 것을 이어받아 나옵니다. 이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을 수천만 년 연결시켜 나오면서 오늘날 이 동네까지 이르러서 여러분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고향 중에 무슨 고향이 제일 귀한 것이냐 할 때 사랑의 고향이 제일 귀합니다. 사랑의 고향이 있을 것입니다. 또, 고향 중에 귀한 고향이 뭐냐? 생명의 고향이 있어야 됩니다. 또, 고향 중의 고향이 뭐냐? 혈통, 이 핏줄의 고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고향이 있어야 되고 생명의 고향이 있어야 되고 혈통의 고향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사랑의 고향과 내가 찾고 있는 그 사랑과는 어떤 관계가 되어 있느냐? 또, 나는 생명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 생명의 고향과 나는 어떤 관계로 되어 있느냐? “나는 혈통이 필요하다. 핏줄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손만대로 역사를 이을 수 있다” 할 때, 그러면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혈통과 본연의 혈통은 무슨 관계로 되어 있느냐? 


만일에 이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면 여러분의 핏줄을 이어 당기면 어디까지 가겠느냐? 이것이 그 근원에 가게 되면 하나님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또, 생명을 중심삼고 끌어당기면 어디까지 가겠느냐? 저 뿌리와 연결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사랑을 끌어당기면 어디까지 갈 것이냐? 하나님까지 갈 것입니다. (209-8)

근원지는 하나

그러면 생명의 근원이 되고 사랑의 근원이 되고 혈통의 근원이 되는 그 근원과 오늘의 내 자신을 중심삼은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적에 그 근원에서 느끼던 그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제1조상 아담 해와도 되겠지만, 아담 해와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하나님 가운데 우리 고향의 생명의 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가운데 우리 고향의 혈육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근원이 되는 씨가 나와 더불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냐? 나에게 필요한 그 사랑은 하나님의 씨에 직결된 사랑과 하나돼야 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직결된 생명의 씨와 하나돼야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혈통의 씨와 연결되어 하나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전부 내가 가졌다고 할 때는 하나님을 가진 자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의 생명을 지니게 되고, 하나님의 혈육의 인연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늘날 남자와 여자로서의 혈육을 받아 가지고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비단 생각뿐이 아닙니다. 고향에 가게 되면 누가 있느냐 하면 사랑을 대표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또, 생명을 대표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 부모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육이 한꺼번에 합해져서 우리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사랑의 근원지, 생명의 근원지, 혈육의 근원지는 하나입니다.


그러면 그 근원지인 하나님이 종적인 부모이신데 그 하나님을 대신해서 횡적으로 벌려 놓은 것이 인간인 남자와 여자이며, 그 근원지인 하나님의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을 벌여 놓은 것이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아들딸, 우리 인류의 조상, 사랑의 근원,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혈통의 근원입니다. (209-9)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가 “고향을 사랑한다. 고향을 찬양하자” 할 때, 사랑한다면 무엇을 사랑해야 되고 찬양한다면 무엇을 찬양해야 되느냐? 먼저, 사랑을 찬양해야 됩니다. 무슨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냐? 조상들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냐? 종적인 부모입니다. 그러면 본래의 고향에서 태어났어야 할 타락하지 않은 그 조상은 누구냐? 횡적인 부모입니다. 그러면 종과 횡이 연결된 것이 무엇이냐?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 종적인 생명과 횡적인 생명, 종적인 혈육과 횡적인 혈육이 엮어져서 두 사랑의 조화로 빚어진 것이 나입니다.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음 사람이 있지요? 그 다음에 몸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곧다고 합니다. 마음을 왜 곧다고 하느냐? 그 곧은 자리에 있는 분, 이 수직의 자리에 있는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근원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수직의 자리에 계십니다.


이 수직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수직, 생명의 수직, 혈통의 수직이라는 것은 이 인간 생명의 근본을 두고 볼 때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이 수직을 중심삼고 이것이 횡적으로 엮어져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직선상에서는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직선상에서 조화를 이루려면 세 점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들든지 세우든지 하려면 이 세 점이 필요합니다. 이 세 점에서부터 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3수와 4수를 근(根)으로 해 가지고 이 우주가 생성되니다. 운동하는데 원심력과 구심력이 수직을 중심삼아 가지고 작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3점에서 4수를 거쳐서 운동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랑이 뭐냐? 생명이 뭐냐? 혈통이 뭐냐? 전부 다 순환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도 운동을 합니다.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는 혈관이 있고 신경관이 있어 가지고 혈관도 운동을 하고 신경관도 운동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상대가 되어서 순환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생명력, 사랑력, 그 다음에는 핏줄의 힘이 있습니다. 힘이라는 것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없이는 안 나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우리의 종적인 부모요, 우리 인간의 조상이 횡적인 부모라면 그게 어디서 하나되어야 하느냐?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을 중심삼고 이것이 90각도를 이루어야 됩니다. 이것을 통일교회로 말하면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이니 6수고 이 중앙수가 7수입니다. 또, 8수가 구형이 됩니다. 8수, 완성수라는 것은 구형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부모와 횡적인 부모가 90각도를 이루어야 됩니다. 사람은 마음 사람과 몸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마음 사람과 몸 사람이 어떻게 만나느냐? 만나 가지고 구형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직선을 중심삼고 하나, 둘, 셋의 이 세 점을 중심삼고 연결됩니다.

우리 사람도 본래는 수직적인 부모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연을 중심삼고 수평적인 부모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이 하나로 묶어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넓고 높고 깊은 것을 원합니다. 그거 왜 그러하냐? 무한한 것을 소유하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 무한한 것을 하나의 구형으로 볼 때,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올라서는 것도 아니고, 내려가는 것도 아닙니다. 딱, 중앙에 들어가야 됩니다. 여기에 구형이 있으면 이 구형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이 전부 다 대각선으로 통하려면 이 핵의 자리에 있어야 됩니다. 이 핵의 자리를 중심삼고 모든 운동이 벌어집니다. (209-10)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육이 인연되는 곳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말할 때나 생명을 중심삼고 말할 때나 혈통을 중심삼고 말할 때, 우리 사람은 근원, 근본에 들어가서 접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고향이면 고향의 근본에 접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고향의 근본’이라고 하면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또 할머니 할아버지로 계속 나가면 하나님까지 통합니다. 사람이 그러한 연유로 태어났기 때문에 고향을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고향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 마음은 돌고 돌아 그 곳을 찾아가고, 그렇게 찾아가게 되면 거기에서 옛날의 본성적인 사랑이라든가 생명력이라든가 혈육적인 그 모든 것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고향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가게 되면 모든 것이 갖추어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본원지가 고향입니다.

그래, 자식 없는 사람이 왜 불쌍하냐 하면 죽어 버리면 거기서 그런 것들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연결되면 거기에서 자기의 사랑의 계대가 벌어지는 것이고, 자기 생명의 계대가 이어지는 것이고, 자기의 혈통적 계대가 천년만년 인류가 계속되는 한 언제나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육이 인연되는 곳에는 우주가 같이합니다. 우주가 같이 호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생명력이 거기에 나무로 말하면 뿌리와 같이 뻗어 있습니다. 나무가 뿌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영양소를 흡수해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는 곳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어디에나 연결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나 연결되고, 하나님의 혈육이 어디에나 연결됩니다. (209-13)

인간이 찾아가야 할 이상향

고향을 찬양하고 고향을 사랑한다는 데 있어서 우리는 먼 고향의 인연을 갖고 있지만, 고향을 사랑하고 싶은 그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야 할 곳이 바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씨는 다르더라도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딸들이요, 같은 근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살고 있는 그 곳에서 그들과 더불어 화합하고, 그들과 더불어 좋아하고, 그들과 더불어 꿈을 꾸면서 미래를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향의 인연, 생명의 인연, 사랑의 인연, 혈통의 인연을 민족을 넘어서 세계 앞에 확장시키려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서로서로 사랑하는 힘, 서로서로 단결하는 힘, 서로서로 위하는 힘을 뻗치면서 여기를 고향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초소처럼 생각하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곳의 마을을 사랑하게 될 때 이 자리가 사랑하는 고향이 되는 것이요, 역사를 대표해서 과거의 어떤 조상들보다도 귀한 자리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우리의 삶이 언제나 옛날의 역사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희망이 있습니다. 왜 그러하냐? 원인과 결과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것은 누구를 대신해서 사는 것이냐?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는 것이요, 조상들을 대신해서 살뿐만 아니라 오늘을 비롯한 미래의 모든 일족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과거의 고향이 나와 더불어 연결되어 있고, 현재의 고향이 나와 더불어 연결되어 있고, 미래의 고향이 나와 더불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한민족이면 한민족 자체가 하나되어 모든 사람들을 고향 사람들, 부모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산다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시대든지 환영받는 사람이 됩니다.


만일에 아까 말한 영계가 있어서 영계에 간다면 어떤 사람들이 훌륭하냐? 3시대의 고향, 즉 자기 조상의 고향과 현재의 고향 그리고 미래 후손들의 고향을 한 시대에서 지내고 가는 사람이 환영을 받습니다. 그리고 일방향성이 아니라 사방성을 가져 가지고 동서남북뿐만 아니라 전후좌우와 상하를 중심삼고 산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상세계에서도 어디를 가든지 상치가 안 됩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더라도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통합니다.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그 나라의 법이 아무리 엄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또, 우주가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근본에 가까운 사람은 하나님한테 가까운 사람인데 생애노정을 거치면서 훌륭한 공적을 갖고 산 사람, 또 앞으로 올 미래의 사람 할 것 없이 고향화 된 마음을 가져 가지고 3시대를 같이 살겠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은 지상세계나 천상세계의 어디나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역사는 나로 말미암아 열매가 맺히는 것이요, 현재는 나로 말미암아 결속이 되는 것이요, 미래는 나로 말미암아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딱 집어 보면 맨 안쪽 중앙에는 하나님이 있고, 그 다음에는 우리의 부모가 있고, 그 다음에는 내가 있고, 그 다음에는 내 자식이 있어서 모두 다 화합하는 환경에 있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이것을 고향 자체도 자랑하고 찬양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209-14)

고향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사람

영계라는 것은 광대한 세계가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천년 전이 보이고 몇만 년 전이 보입니다. 보이는데, 무엇을 보려고 하느냐? 남자로 생겼으면 여자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만나서 그 사람의 심중에 있는 본연적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크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랑의 양이 얼마나 많은가를 측정합니다. 척, 만나면 그 사람이 얼마만큼 사랑을 많이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자기가 살고 있던 부락, 도, 나라, 아시아, 지구성에서 얼마나 사람을 사랑했느냐?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의 생명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활동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백 리권의 사랑을 했느냐, 천 리권의 사랑을 했느냐? 일생 동안에 얼마만큼 사랑의 생명을 가지고 영향을 미쳤느냐? 그게 문제가 됩니다. 또, 그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와 같은 사람을 얼마나 남기고 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후손이 없으면 불쌍한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서는 인격적 표준이 사랑을 중심삼고 측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만물을 사랑해야 되고,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조상을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조상들을 중심삼은 일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또, 그 일족이 갖고 있는 땅을 사랑해야 됩니다. 땅을 사랑하고, 조상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고향을 사랑하자’인데, 이것은 고향이라는 제한된 이곳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 가나 고향에서 사는 것과 같이 살아야 됩니다. 어디를 가나 일생을 그립던 고향에서 사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4천만을 중심삼고 화합해 가지고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저나라에 가면 영적인 인격의 가치가 커집니다.


고향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영계를 생각하면서 사랑의 인격을 갖춰 가지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부모와 같이, 형님과 같이, 누나와 같이 위해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사랑과 생명을 투입해 가지고 아들딸을 키워서 더 훌륭한 후손들을 고향 땅에 남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살다가 저 영계에 가게 되면 전부가 내 고향 땅이 됩니다.

그래서 “지구성이 내 고향이다” 하더라도 전체가 “옳습니다” 할 수 있는 대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더 크게 하면 세계적인 고향에서 산 대표자가 될 것이고, 더 크게 하면 하나님적인 고향에서 산 대표자가 됩니다. 그렇게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고향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겠습니다. (209-17)

만우주 앞에 찬양받고 사랑받으면서 살 수 있는 존재

여기에 일본 식구들이 많이 와 있지요? 일본 식구들도 지금 선생님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야 됩니다. 이게 일본의 연장입니다. 한국과 일본을 두고 볼 때, 뜻적인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더 큰 고향입니다. 한 사랑에 뭉치고 한 생명에 얽히고 한 핏줄에 매여서 하나로 이루어져 가는 것, 더 큰 고향의 삶을 그려 가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외로워하지 말고 그런 삶을 위해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여기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소련, 이 전체 대륙을 중심삼고 더 큰 고향의 인연을 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우리 고향에서 “아, 세계의 모든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곳이다” 하실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삶을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영계에 가더라도 해방권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국경이 없어집니다. 사랑만이 국경을 극복할 수 있고 참사랑을 중심삼은 생명권만이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국경을 넘습니다. 남녀가 사랑하게 될 때는 국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 사랑을 중심삼은 혈연관계, 본연적 사랑을 가지고 더 큰 고향을 추구하면서 더 큰 인류를 위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광대무변한 영계, 무한한 세계의 고향과 자동적으로 연결됩니다.


영계에 가면 자기 아내도 마음대로 못 만납니다. 그리고 만나서도 곧 이별해야 됩니다. 그러나 사방성을 갖고 화합해서 살겠다고 하는 뭐가 있으면 어디 가든지 숨이 안 막힙니다. 그런데 방향성을 갖고 여기만 딱 해서 숨쉴 때는 질식하는 줄 모르는데 다른 데 가게 되면 질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초월한 초월적인 사랑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참사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초월적인 사랑, 근원적인 사랑, 뿌리적인 사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접할 때는 그것이 높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공기와 같아서 거기서는 숨쉬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높고 넓은 사랑권에서 살므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영원한 고향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영원한 고향에서 사랑과 생명 그리고 새로운 후대를 남기면서 만우주 앞에 찬양받고 사랑받으면서 살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9-19)*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6일, 원문
 
고향을 사랑하자   
 
날짜 : 1990. 11. 24(토)
장소 : 한국 청원교회
 
인간이 어디서 출발했느냐
 
사람은 누구나 다 고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향은 어느 누구나 언제나 그곳에서 살고 싶어하고, 또 그곳에서 언제나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것이 고향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근본이 어디서 왔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 우주를 창조한 근본이 되는 어떤 주인이 있으면 그 주인으로부터 왔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태어난 그 동네에서부터 씨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근본까지 연결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향에서 살 때는 고향이 귀한 줄 모르지만 일단 고향을 떠나 보면 고향이 얼마나 그리운가를 알게 됩니다. ‘대한민국’ 하면 남북으로 갈려 있지만, 우리가 대한민국을 떠나서 외국에 나가게 되면 남한에서 사는 사람이나 북한에서 사는 사람이나 똑같이 가까움을 느낍니다. 남북이 서로 갈라져 있지만, 외국에 나가게 되면 북한에 살던 사람이나 남한에 살던 사람이나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는 한 고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거리감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으로 서로 상치되는 입장에서 지내 왔지만 여기에 살던 사람이 미국이라든가 구라파, 남미, 아프리카 오지 등에 가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만나게 되면 누구보다도 가까움을 느낍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더 확대시켜 가지고 영계가 있다고 하면 영계에 가게 되면 어떠할 것이냐? 영계에 가게 되면 아시아 사람도 올 것이고 구라파 사람도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 사람이나 구라파 사람이나 같은 지구성에서 온 사람끼리 가까움을 느끼게 되고, 또 그 중에서도 같은 시대에 살고 온 사람들끼리 더 가까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먼 조상들을 중심삼고 살던 사람들도 물론 가깝지만, 이와 같이 한 시대 안에 살던 사람이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 올라가서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 방대한 천주,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주의 내용을 바라보게 될 때 본래의 우리 인간이 어디서 출발했느냐? 여기 이 동네에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먼 그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209-7)
인간조상 중의 조상이 되는 아담 해와가 태어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난 그들에게 고향의 특별한 의미가 무엇이었느냐? 그 고향에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인연이 있었습니다. 또, 그 고향에서는 그 사랑과 생명을 중심삼고 혈연적 인연을 통해 가지고 역사를 거쳐오면서 혈통이라는 것을 이어받아 나옵니다. 이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을 수천만 년 연결시켜 나오면서 오늘날 이 동네까지 이르러서 여러분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고향 중에 무슨 고향이 제일 귀한 것이냐 할 때 사랑의 고향이 제일 귀합니다. 사랑의 고향이 있을 것입니다. 또, 고향 중에 귀한 고향이 뭐냐? 생명의 고향이 있어야 됩니다. 또, 고향 중의 고향이 뭐냐? 혈통, 이 핏줄의 고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로 태어난 우리 개인은 부모의 혈육을 통해 부모의 생명을 이어받고 부모의 사랑의 밑바탕에서 자라납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의 고향이 있어야 되고 생명의 고향이 있어야 되고 혈통의 고향이 있어야 됩니다. 그 근본적인 모든 것이 우리의 근원이 되는 것인데, 오늘날 자기 자신을 두고 볼 때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뭐냐? 나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고향과 내가 찾고 있는 그 사랑과는 어떤 관계가 되어 있느냐? 또, 나는 생명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 생명의 고향과 나는 어떤 관계로 되어 있느냐? “나는 혈통이 필요하다. 핏줄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손만대로 역사를 이을 수 있다” 할 때, 그러면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혈통과 본연의 혈통은 무슨 관계로 되어 있느냐? 이것이 끊어져 있느냐, 연결되어 있느냐? 이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만일에 이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면 여러분의 핏줄을 이어 당기면 어디까지 가겠느냐? 이것이 그 근원에 가게 되면 하나님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또, 생명을 중심삼고 끌어당기면 어디까지 가겠느냐? 저 뿌리와 연결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사랑을 끌어당기면 어디까지 갈 것이냐? 하나님까지 갈 것입니다. (209-8)

근원지는 하나

그러면 생명의 근원이 되고 사랑의 근원이 되고 혈통의 근원이 되는 그 근원과 오늘의 내 자신을 중심삼은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적에 그 근원에서 느끼던 그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제1조상 아담 해와도 되겠지만, 아담 해와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하나님 가운데 우리 고향의 생명의 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가운데 우리 고향의 혈육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근원이 되는 씨가 나와 더불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냐? 나에게 필요한 그 사랑은 하나님의 씨에 직결된 사랑과 하나돼야 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직결된 생명의 씨와 하나돼야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혈통의 씨와 연결되어 하나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전부 내가 가졌다고 할 때는 하나님을 가진 자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의 생명을 지니게 되고, 하나님의 혈육의 인연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늘날 남자와 여자로서의 혈육을 받아 가지고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비단 생각뿐이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고향에 가게 되면 누가 있느냐 하면 사랑을 대표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또, 생명을 대표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 부모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육이 한꺼번에 합해져서 우리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사랑의 근원지, 생명의 근원지, 혈육의 근원지는 하나입니다.
그러면 그 근원지인 하나님이 종적인 부모이신데 그 하나님을 대신해서 횡적으로 벌려 놓은 것이 인간인 남자와 여자이며, 그 근원지인 하나님의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을 벌여 놓은 것이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아들딸, 우리 인류의 조상, 사랑의 근원,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혈통의 근원입니다. (209-9)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가 “고향을 사랑한다. 고향을 찬양하자” 할 때, 고향을 사랑한다면 무엇을 사랑해야 되고 고향을 찬양한다면 무엇을 찬양해야 되느냐? 먼저, 사랑을 찬양해야 됩니다. 무슨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냐? 조상들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냐? 종적인 부모입니다. 그러면 본래의 고향에서 태어났어야 할 타락하지 않은 그 조상은 누구냐? 횡적인 부모입니다. 그러면 종과 횡이 연결된 것이 무엇이냐?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 종적인 생명과 횡적인 생명, 종적인 혈육과 횡적인 혈육이 엮어져서 두 사랑의 조화로 빚어진 것이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음 사람이 있지요? 그 다음에 몸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곧다고 합니다. 마음을 왜 곧다고 하느냐? 그 곧은 자리에 있는 분, 이 수직의 자리에 있는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근원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수직의 자리에 계십니다.
이 수직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수직, 생명의 수직, 혈통의 수직이라는 것은 이 인간 생명의 근본을 두고 볼 때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이 수직의 자리라는 것은 한 자리밖에 없습니다. 이 수직을 중심삼고 이것이 횡적으로 엮어져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직선상에는 조화가 없습니다. 직선상에서는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두 점을 연결시키는 것이 직선이기 때문에 이 직선의 세계에서는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직선상에서 조화를 이루려면 세 점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들든지 세우든지 하려면 이 세 점이 필요합니다. 이 세 점에서부터 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즘에 이 우주의 근본을 과학자들이 헤쳐 보고 헤쳐 보니 어떻게 되어 있느냐? 3수와 4수로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3수와 4수를 근(根)으로 해 가지고 이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그 말이 맞는 말입니다. 구(球)가 있다고 한다면, 여기에 줄을 달아서 돌리게 될 때 이것이 직선에서 이렇게 가 가지고 이것을 끌어가면서 이렇게 운동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운동하는데 원심력과 구심력이 수직을 중심삼아 가지고 작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3점에서 4수를 거쳐서 운동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랑이 뭐냐? 생명이 뭐냐? 혈통이 뭐냐? 전부 다 순환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도 운동을 합니다.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는 혈관이 있고 신경관이 있어 가지고 혈관도 운동을 하고 신경관도 운동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상대가 되어서 순환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생명력, 사랑력, 그 다음에는 핏줄의 힘이 있습니다. 힘이라는 것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나옵니다. 주체와 대상이 없이는 힘이 안 나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우리의 종적인 부모요, 우리 인간의 조상이 횡적인 부모라면 그게 어디서 하나되어야 하느냐?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을 중심삼고 이것이 90각도를 이루어야 됩니다. 이것을 통일교회로 말하면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이니 6수고 이 중앙수가 7수입니다. 또, 8수가 구형이 됩니다. 8수, 완성수라는 것은 구형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부모와 횡적인 부모가 90각도를 이루어야 됩니다.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 사람과 몸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마음 사람과 몸 사람이 어떻게 만나느냐? 만나서 어떻게 되느냐? 만나 가지고 납작해지느냐? 구형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나 가지고 반드시 수직선을 중심삼고 하나, 둘, 셋의 이 세 점을 중심삼고 연결됩니다.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라는 것이 간단해 보이지만 모든 존재의 구성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안정을 표시합니다. 전부가 각이 맞아야 됩니다. 바람벽도 십자가의 90각도를 표방해 가지고 만듭니다. 전부 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람도 본래는 수직적인 부모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연을 중심삼고 수평적인 부모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이 하나로 묶어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넓고 높고 깊은 것을 원합니다. 그거 왜 그러하냐? 무한한 것을 소유하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 무한한 것을 하나의 구형으로 볼 때,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올라서는 것도 아니고, 내려가는 것도 아닙니다. 딱, 중앙에 들어가야 됩니다. 여기에 구형이 있으면 이 구형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이 전부 다 대각선으로 통하려면 이 핵의 자리에 있어야 됩니다. 이 핵의 자리를 중심삼고 모든 운동이 벌어집니다. (209-10)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육이 인연되는 곳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말할 때나 생명을 중심삼고 말할 때나 혈통을 중심삼고 말할 때, 우리 사람은 근원, 근본에 들어가서 접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고향이면 고향의 근본에 접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고향의 근본’이라고 하면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또 할머니 할아버지로 계속 나가면 하나님까지 통합니다. 사람이 그러한 연유로 태어났기 때문에 고향을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고향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 마음은 돌고 돌아 그 곳을 찾아가고, 그렇게 찾아가게 되면 거기에서 옛날의 본성적인 사랑이라든가 생명력이라든가 혈육적인 그 모든 것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고향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가게 되면 모든 것이 갖추어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본원지가 고향입니다.
여기 ‘청원’ 하면 우리 어머님의 고향입니다. 한씨 조상들이 여기에 살았을 것입니다. 한씨 되시는 분들도 여기에 오셨겠지요? 우리도 그 조상의 얼굴은 모릅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릅니다. 그렇지만 단 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여기서 그 두 분이 사랑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생명체와 여자의 생명체, 할아버지의 생명체와 할머니의 생명체가 같이 화합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할아버지의 피와 할머니의 피가 합해져 가지고 한씨의 계열을 이어 나왔습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은 모르지만 그들이 갖고 살고 있던 사랑, 그들이 갖고 있던 생명력, 그들이 갖고 있던 혈육의 인연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살아 있습니다.
그래, 자식 없는 사람이 왜 불쌍하냐 하면 죽어 버리면 거기서 그런 것들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연결되면 거기에서 자기의 사랑의 계대가 벌어지는 것이고, 자기 생명의 계대가 이어지는 것이고, 자기의 혈통적 계대가 천년만년 인류가 계속되는 한 언제나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육이 인연되는 곳에는 우주가 같이합니다. 우주가 같이 호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생명력이 거기에 나무로 말하면 뿌리와 같이 뻗어 있습니다. 나무가 뿌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영양소를 흡수해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는 곳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어디에나 연결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나 연결되고, 하나님의 혈육이 어디에나 연결됩니다. 그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209-13)

인간이 찾아가야 할 이상향
 
고향을 찬양하고 고향을 사랑한다는 데 있어서 우리는 먼 고향의 인연을 갖고 있지만, 고향을 사랑하고 싶은 그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야 할 곳이 바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씨는 다르더라도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딸들이요, 같은 근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살고 있는 그 곳에서 그들과 더불어 화합하고, 그들과 더불어 좋아하고, 그들과 더불어 꿈을 꾸면서 미래를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향의 인연, 생명의 인연, 사랑의 인연, 혈통의 인연을 민족을 넘어서 세계 앞에 확장시키려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서로서로 사랑하는 힘, 서로서로 단결하는 힘, 서로서로 위하는 힘을 뻗치면서 여기를 고향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초소처럼 생각하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곳의 마을을 사랑하게 될 때 이 자리가 사랑하는 고향이 되는 것이요, 역사를 대표해서 과거의 어떤 조상들보다도 귀한 자리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우리의 삶이 언제나 옛날의 역사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희망이 있습니다. 왜 그러하냐? 원인과 결과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것은 누구를 대신해서 사는 것이냐?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는 것이요, 조상들을 대신해서 살뿐만 아니라 오늘을 비롯한 미래의 모든 일족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아담 해와의 때에는 자식이 없었거든요. 자식이 없었던 입장에서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자리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향으로 말하면 과거의 고향이 나와 더불어 연결되어 있고, 현재의 고향이 나와 더불어 연결되어 있고, 미래의 고향이 나와 더불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한민족이면 한민족 자체가 하나되어 모든 사람들을 고향 사람들, 부모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산다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시대든지 환영받는 사람이 됩니다.
만일에 아까 말한 영계가 있어서 영계에 간다면 어떤 사람들이 훌륭하냐? 3시대의 고향, 즉 자기 조상의 고향과 현재의 고향 그리고 미래 후손들의 고향을 한 시대에서 지내고 가는 사람이 환영을 받습니다. 그리고 일방향성이 아니라 사방성을 가져 가지고 동서남북뿐만 아니라 전후좌우와 상하를 중심삼고 산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상세계에서도 어디를 가든지 상치가 안 됩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더라도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통합니다.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그 나라의 법이 아무리 엄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또, 우주가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근본에 가까운 사람은 하나님한테 가까운 사람인데 생애노정을 거치면서 훌륭한 공적을 갖고 산 사람, 또 앞으로 올 미래의 사람 할 것 없이 고향화 된 마음을 가져 가지고 3시대를 같이 살겠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은 지상세계나 천상세계의 어디나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역사는 나로 말미암아 열매가 맺히는 것이요, 현재는 나로 말미암아 결속이 되는 것이요, 미래는 나로 말미암아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딱 집어 보면 맨 안쪽 중앙에는 하나님이 있고, 그 다음에는 우리의 부모가 있고, 그 다음에는 내가 있고, 그 다음에는 내 자식이 있어서 모두 다 화합하는 환경에 있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이것을 고향 자체도 자랑하고 찬양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209-14)

고향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사람
 
여러분은 영계를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있는 이 사람은 영계의 사실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영계라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1초 동안에도 몇 억만리를 갈 수 있습니다. 광대한 세계가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천년 전이 보이고 몇만 년 전이 보입니다. 보이는데, 무엇을 보려고 하느냐? 다른 것을 안 봅니다. 무엇을 만나고 싶어하느냐 하면, 남자로 생겼으면 여자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만나서 그 사람의 심중에 있는 본연적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크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랑의 양이 얼마나 많은가를 측정합니다.
석가모니가 자비를 말했지만, 그 자비라는 것도 사랑 아니에요? 예수님도 사랑을 말했습니다. 인(仁)이라는 것도 그 저변에는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척, 만나면 그 사람이 얼마만큼 사랑을 많이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자기가 살고 있던 부락, 도, 나라, 아시아, 지구성에서 얼마나 사람을 사랑했느냐?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의 생명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활동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백 리권의 사랑을 했느냐, 천 리권의 사랑을 했느냐? 일생 동안에 얼마만큼 사랑의 생명을 가지고 영향을 미쳤느냐? 그게 문제가 됩니다. 또, 그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와 같은 사람을 얼마나 남기고 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후손이 없으면 불쌍한 것입니다.
나무가 맨 처음에는 조그만 씨에서 새싹이 나와 가지고 크기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그 줄기와 가지가 전부 커 가지고 많은 씨를 맺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가지고 얼마나 활동해서 나라에 생명력을 얼마나 부가시켰으며 그러한 힘을 가진 아들딸이나 후손들을 얼마나 남겼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씨’ 하게 되면 한씨의 종친회도 있고 고향도 중요하지만 청주를 중심삼고, 충청도를 중심삼고, 한국 땅을 중심삼고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저나라에 가서는 인격적 표준이 사랑을 중심삼고 측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만물을 사랑해야 되고,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조상을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누구든지 고향에 가면 조상을 모신 선산이 있습니다. 조상을 모셔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조상들을 중심삼은 일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또, 그 일족이 갖고 있는 땅을 사랑해야 됩니다. 땅을 사랑하고, 조상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고향을 사랑하자’인데, 이것은 고향이라는 제한된 이곳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 가나 고향에서 사는 것과 같이 살아야 됩니다. 어디를 가나 일생을 그립던 고향에서 사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4천만을 중심삼고 화합해 가지고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저나라에 가면 영적인 인격의 가치가 커집니다.
이런 것을 아시고 고향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영계를 생각하면서 사랑의 인격을 갖춰 가지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부모와 같이, 형님과 같이, 누나와 같이 위해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사랑과 생명을 투입해 가지고 아들딸을 키워서 더 훌륭한 후손들을 고향 땅에 남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살다가 저 영계에 가게 되면 전부가 내 고향 땅이 됩니다.
내가 평안도에서 태어났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살고, 충청도에 와서 살고, 전라도에 가서 살고, 경상도에 가서 살고, 일본에 가서 살고, 미국에 가서 살더라도 전부가 연결됩니다. 그래서 “지구성이 내 고향이다” 하더라도 전체가 “옳습니다” 할 수 있는 대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크게 하면 아시아적인 고향에서 산 대표자가 될 것입니다. 또 조금 더 크게 하면 세계적인 고향에서 산 대표자가 될 것이고, 더 크게 하면 하나님적인 고향에서 산 대표자가 됩니다. 그렇게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고향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겠습니다. (209-17)

만우주 앞에 찬양받고 사랑받으면서 살 수 있는 존재
 
여기에 일본 식구들이 많이 와 있지요? 일본 식구들도 지금 선생님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야 됩니다. 이게 일본의 연장입니다. 일본과 말이 다르다 뿐이지 전부 다 한 조상입니다. 한국과 일본을 두고 볼 때, 뜻적인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더 큰 고향입니다. 일본이 작은 고향이라면 한국은 더 큰 고향이 되는 것입니다. 또, 중국하면 더 큰 고향이 됩니다. 보다 더 큰 고향에서 더 멋지게 살겠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 신자들의 삶입니다.
선생님도 대한민국을 떠나서 세계에 많은 기반을 닦으면서 세계의 모든 민족들과 화합해 가지고 더 큰 고향에서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히 유명해졌습니다. 뒤를 돌아다보니 오색인종이 한 족속이 되고 한 혈족이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랑에 뭉치고 한 생명에 얽히고 한 핏줄에 매여서 하나로 이루어져 가는 것, 더 큰 고향의 삶을 그려 가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외로워하지 말고 그런 삶을 위해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여기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기는 대륙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바다에서 솟은 섬과 같은데, 여기는 대륙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대륙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제1고향이 됩니다. 섬은 제2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섬은 언제나 육지를 그리워합니다. 그런 것을 알고 여기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소련, 이 전체 대륙을 중심삼고 더 큰 고향의 인연을 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우리 고향에서 “아, 세계의 모든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곳이다” 하실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삶을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영계에 가더라도 해방권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국경이 없어집니다. 사랑만이 국경을 극복할 수 있고 참사랑을 중심삼은 생명권만이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국경을 넘습니다. 남녀가 사랑하게 될 때는 국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 사랑을 중심삼은 혈연관계, 본연적 사랑을 가지고 더 큰 고향을 추구하면서 더 큰 인류를 위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광대무변한 영계, 무한한 세계의 고향과 자동적으로 연결됩니다.
영계에 가면 그렇습니다. 영계에 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아내도 마음대로 못 만납니다. 아무리 가깝더라도 마음대로 못 만나요. “한씨…” 하고 나오면 안되는 것입니다. 거기가 한씨만의 천국이 아닙니다. 방대한 천국이기 때문에 한씨만을 생각하면 그 계열밖에 못 만납니다. 그리고 만나서도 곧 이별해야 됩니다. 그러나 사방성을 갖고 화합해서 살겠다고 하는 뭐가 있으면 어디 가든지 숨이 안 막힙니다. 그런데 방향성을 갖고 여기만 딱 해서 숨쉴 때는 질식하는 줄 모르는데 다른 데 가게 되면 질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초월한 초월적인 사랑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참사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초월적인 사랑, 근원적인 사랑, 뿌리적인 사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접할 때는 그것이 높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공기와 같아서 거기서는 숨쉬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높고 넓은 사랑권에서 살므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영원한 고향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영원한 고향에서 사랑과 생명 그리고 새로운 후대를 남기면서 만우주 앞에 찬양받고 사랑받으면서 살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아시고 여기에서도 그런 운동이 벌어져서 이것이 청원뿐만이 아니라 충청북도, 대한민국, 세계로 전개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오늘이 하나의 역사적인 새로운 씨가 심어지는 기원을 이룰 수 있는 날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몇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2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