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 땅과 조국광복을 위하여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3일)

훈독왕 | 20201225071930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3일

본향 땅과 조국광복을 위하여 (훈독본) 
날짜 : 1964. 10. 6(화)
장소 : 한국 전주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OZ-2O9bruRI&list=PLtan-zpeJeilD6pJZCkogCwve2117SlW6&index=13

 


소망의 조국을 찾기 위해 연속되는 싸움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바랍니다. 오늘도 그 목표를 향하여 마음은 달리고 있는데, 몸은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곳을 따라나가는 내 마음과 몸이 사정이 다른 입장이기 때문에 하루 하루의 생활에서 말할 수 없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이냐?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내 마음에서 소원하는 그 소원을 향해 내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이 움직여 주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그러하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그러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마음을 중심삼은 소망 가운데 전체가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바라는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여건인 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는 크나큰 고통 혹은 멍에로서, 싸움의 조건으로서 계속 나타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고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자기의 본심을 중심삼고 마음이 바라는 곳, 본연의 땅에서 살기를 바라면서 무한히 애썼지만 아직까지 그런 세계와 그런 천지를 못 본 채 왔다 갔습니다. 수많은 철학자, 수많은 종교인들이 이보다 더 선하고 행복한 하나의 본향 땅을 동경하면서 연속되는 싸움을 그치지 못하는 채 현세에도 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155-9)


하나님과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조국

우리 인간이 수천 년 역사가 지나가도 아직까지 그러한 생각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그런 한 때가 있어야 하고, 그런 한 곳이 나타나야 하고, 그런 하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땅 위의 수많은 인간들이 평화니, 행복이니, 자유니 하는 것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이러한 소망을 품고 나가는 그 동기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인류가 머물 수 있는 참된 조국과 본향 땅을 그리워하고 계실 것입니다. 인간인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런 생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스스로 우러나와서 생각되는 것이요, 그것이 내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서 감응적인 느낌을 통하여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가 있어서 인류의 마음을 목적으로 끌어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마음도 그런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있기 전에 하늘땅이 있었고, 하늘땅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 힘의 본체가 되는 중심이 있어서 천지만물을 지어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 피조세계를 지으신 목적이 있었으니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그 창조목적이 이루어졌다면 두말할 것 없이 인간 세상이나 만물세계와 같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존재들은 무엇이든지 평화스럽고 행복할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영광 가운데 잠겨서 온 천지가 동등한 이념권 내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이념이 남아 있기에 오늘날 인간 세상은 타락했지만 그 본심에 하나님의 뜻이 반영되어 우리를 다시 그 이념의 세계로 이끌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물건도 그 중심존재의 목적을 위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둘일 수 없습니다. 그 창조목적은 악한 목적이 아니고 선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존재세계가 선한 세계가 안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선한 세계의 이념권 내에서 살아야 할 인간도 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체가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삼은 세계에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의 본향 땅을 이루어 그야말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룬 땅이요,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인간이 되었더라면 우리가 불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155-10)

본연의 양심 작용은 변함이 없어

우리 인간은 악한 부모에게서 태어남으로써 본향 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악한 부모와 모든 혈육들을 전부 청산해 버리고 본연의 부모를 찾아야 합니다. 본향 땅을 찾고 나서 본연의 부모를 회복하고, 본연의 부모를 회복해 놓고는 본연의 형제들을 회복해야 합니다. 본향 땅에는 형제들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친척들종족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종족이 커 나감으로 말미암아 부족을 이루어서 민족을 편성하고, 그 민족이 국가를 편성하게 될 때 조국이 형성됩니다.


본래부터 우리 인간에게는 본향에서 태어나 조국을 창건해야 할 창조이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바라서 인간을 지으셨고, 인간도 그것을 바라서 지음을 받아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소망도 다 깨져 버리고 인간의 소망도 미완성되었습니다. 다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본향 땅을 못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본향의 조국도 없습니다. 그 조국이 지상천국인 동시에 천상천국입니다.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3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주권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국토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세계를 주관하실 수 있는 주권인류가 있어요? 없습니다. 


이곳은 본래 인간이 살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양심은 더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본향 땅을 찾아서 하늘 주권자를 모시고 그의 백성들과 더불어 그 나라에서 살다 가야만 천상천국에 갈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얼마나 바쁘겠느냐 말입니다. 마음은 넘고 또 넘어서 순식간에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그 본연의 양심작용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전부 다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우리도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세계를 주름잡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선을 중심삼고 마음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155-25)

인류역사란 소망의 조국을 찾아 나온 역사

오늘날 우리나 전 세계 인류가 아직까지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그 무엇에 미달하였음을 증거합니다. 이런 입장에 선 인류는 자고로 지금까지 개인을 중심삼고 그 마음의 방향을 찾기 위하여 싸움을 해 나왔고,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을 규합시키고, 가정을 중심삼고 민족과 국가 그리고 세계까지 한 방향으로 몰아 나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라는 것은 개별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배후에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던 창조이상을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상을 재차 실현하기 위한 하나님과 인간의 합동작전이 역사적인 도상에 반영되어 나왔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이 역사적인 섭리권 내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개인적인 투쟁시대, 가정적인 투쟁시대, 종족적인 투쟁시대, 민족적인 투쟁시대, 국가와 세계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서 참다운 마음의 본향 땅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다운 본향 땅을 찾아서 무엇을 할 것이냐? 본향 땅을 세운 후에는 참다운 인생의 조국, 하늘이 바라고 땅이 바라고 수많은 인류가 바라고 온 만유의 존재가 바라는 본향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달리고 있는 역사적인 과정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타락한 인간들을 몰아서 끝날에는 기필코 인류 앞에 참다운 본향 땅, 참다운 조국을 맡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지금까지의 한, 지금까지의 고통, 지금까지의 전쟁, 지금까지의 악한 사회제도는 종결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의 완전한 조국광복의 날을 온 인류 앞에 약속하고 그곳으로 인류를 몰아가십니다. (155-12)

참된 사람이란

그 조국본향 땅을 건설할 분은 인류가 아닙니다. 세계 인류 앞에 그러한 조국을 창건하고 본향 땅을 창건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대명을 받고 오는 메시아입니다. 

 

그분은 세상을 구하는 주인, 그야말로 역사상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참사람입니다. 그렇게 참사람을 고대하는 사상은 고차적인 종교라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할것없이 인류의 소망을 대표하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과 하나되면 우리의 욕망이 다 이루어집니다. 그분과 하나되면 전 세계가 하나로 화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도 그 존재와 하나되실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이 온다는 것이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사상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나라가 아닙니다. 악한 마귀 사탄이 지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보다도 악한 사람이 잘삽니다. (155-17)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책임

하나님이 우리 인류가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소망하던 조국과 본향 땅을 기필코 이루어 주시는 때가 바로 끝날입니다. 그때에는 반드시 이 모든 소원을 해원해 줄 수 있는 전체적인 중심존재로 구세주가 옵니다. 그 구세주와 상봉하기 위해서는 선을 중심삼고 이 세상의 어떤 악이라도 정리할 수 있는 중심적인 위치를 결정지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복잡한 사연이 번식되어 있는 이 천지간에 나타나 악과 대결합니다. 지금까지 가정에서 사랑하던 부모와 처자들은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나온다고 반대했습니다. 친척들도 반대했습니다. 친구들도 전부 다 반대했습니다. 그렇게 전부가 일시에 공격하는 고립된 입장에 서더라도 자기 위치를 양보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아 와라, 가정아 와라, 종족아 와라, 민족도 와라, 국가도 와라” 할 수 있는 기준까지 넘어가야 합니다. 반드시, 개인이 선한 입장에서 악을 심판하고 조국이라는 명사를 갖는 한 국가의 기준까지 남아질 수 있는 권한을 갖춘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 위에 구세주는 조국창건을 위해서 오는 것이요, 본향 땅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이 너나할것없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잃어버린 본향 땅, 잃어버린 조국의 광복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궐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의를 갖고 나섰기 때문에 내 가는 길에는 개인적인 십자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악이 문제가 아니요, 가정적인 악이 문제가 아닙니다. 종족, 민족, 국가 전부가 반대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넘어갈 수 있는 신념과 선에 입각한 결심을 갖춘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 소망의 백성으로서 갖출 바의 위신과 소망적인 나라의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국민성을 갖추고 새로운 나라에서 지녀야 할 인격을 갖추어 세상나라의 백성들과 다른 입장에서 권위를 갖추지 않으면 안될 것이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개인적인 골고다의 길에서 쓰러졌고 실수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개인적인 골고다의 노정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가정적인 골고다의 길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맞부딪치는 싸움의 도상에서 패자가 되면 안됩니다. 여기에서 승리하고 나야만 세계적인 새로운 본향 땅, 새로운 조국광복의 날을 향하여 참소를 받지 않고 누가 방해할 수 없는 자리에서, 자유로운 입장에서 행진할 수 있습니다. (155-18)

메시아가 오는 곳이 세계적인 조국

오늘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은 잃어버린 역사적인 조국해방을 위해서, 조국광복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잃어버린 본향 땅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 날을 맞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인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기 때문에 문화의 최고의 목적이요, 인류의 소망 중의 소망이기 때문에 그 날은 필시 와야 합니다. 그 날이 오지 않으면 인간은 지금까지 헛수고한 것이 됩니다. 

 

구세주가 오면 심판을 해야 합니다. 심판은 제물을 갖고 하는 것입니다. 제물은 거룩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동물들이 제물이 되었지만 선한 사람도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지극히 깨끗한 선한 사람을 그 지방을 대표해서 하나님이 내세우실 때 사탄도 인정하고 인간도 인정하는 제물적인 입장에 선 사람이 하늘 편에서 끝까지 싸우는 데 민족이 반대하면 민족이 들이 맞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은 제물적인 자리를 통해서 합니다.


그렇게 심판할 수 있는 자는 모든 악과 싸워서 남아져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삼천리 반도 혹은 삼천만 민중 앞에서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어떠한 시련도상에서도 절대로 삼킴을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악이 제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갖춘 바 이념과 심정을 꺾을소냐? 아무리 나가더라도 우리가 갖춘 절개를 더럽힐소냐”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도 오늘날 이 민족의 악한 혼란상에 절대 소화되는 인간이 되지 말고 그것을 소화시키는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세운 민족적인 운명, 국가적인 운명의 방향을 갖추어 우리가 심판의 한 기반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남는 무리를 하나님은 필시 요구하실 것이기에 그러한 무리의 대열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래서 본향 땅을 찾아가야 합니다. 본향 땅을 찾아서 조국을 창건해야 됩니다. 본향 땅을 찾아야 하고 조국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본향 땅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본향 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인류는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부모가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옹호해 가지고 “천세 만세 영원히 행복을 노래하고 살지어다” 하고 쌍수를 들어 축복하시지 못했고 당신이 창조한 천주의 위업을 상속해 주시지 못했습니다. (155-22)

본향 땅을 찾을 수 있는 때가 가까이 왔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세상을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시자는 것이 인간세계에 대한 구도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靈)으로 계시기 때문에 실체 대상자로 보내신 것이 과거의 도주들이었습니다. 도들 중에도 1세기의 도가 있습니다. “너희를 이 땅 위의 억조창생을 구하기 위해서 보내나니 너는 1세기 동안만 네가 가진 종교의 이념을 가지고 치리해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나면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들 중에도 몇 세기의 종교가 있고, 몇 천년의 종교가 있습니다. 로마의 압제시대에는 로마가 기독교를 삼켰지만, 오늘날에는 기독교가 문화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정신적인 뒷받침이 되어서 서구의 문명을 창출했습니다. 기독교는 몇 세기, 수십 세기의 인연을 갖고 나오는 도이기 때문에 남아졌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우리가 살 수 있는 본향 땅이 아닙니다. 여기가 평등, 평화,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유세계, 해방의 깃발이 영원무궁토록 우리의 마음과 몸에서 휘날릴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미완성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해서 우리는 본향 땅을 잃어버렸고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본향 땅에서 살 것이었는데 나고 보니 원수의 땅이요, 나고 보니 슬픈 땅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을 내가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서 망해라, 어서 망해라 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대한 애착심이 없고, 가정에 대한 애착심이 없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땅에 대한 애착심이 없습니다. 생활하는 사람은 생활에 대한 애착심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탄식밖에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나누고 피살을 같이 나누는 형제주의다 이겁니다. 예수님이 그런 것을 막연히 부르짖었지만, 이제는 구체적입니다. (155-32)

본향 땅을 우리 인간들은 어차피 찾아가야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사회의 모든 압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어가는 데는 내 발만을 들여놓고 넘어가지 말고 가족을 끌고 넘어가자, 우리 종족과 삼천만 민족을 끌고 넘어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주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싫다는 삼천만을 움직여서 좋다고 하도록 만들고, 삼천만이 도망가는 곳으로 가서 주인의 노릇을 하자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자기 편 것을 남기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편에 입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길을 가려고 할 때 가정이 반대하면 가정을 타고 넘어가고 사회가 반대하면 사회를 타고 넘어가야 합니다. 기필코, 가야 할 목적지는 본향 땅입니다. 아담 해와가 부모를 잃어버렸으니까 그 부모를 소개해 주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만인류는 참부모의 후손들이 못 되고 악한 부모의 후손들이 되었으니까 다시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참부모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이것을 유불선에서는 천지부모라고 합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받고, 참부모가 세운 도의 문을 통하고, 그 다음에는 참다운 형제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부모의 혈육을 통하고 그 부모의 심정과 사정 그리고 소원이 일치된 자리를 통하여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형제의 인연을 붙들고 나오는 사람은 지금까지 세상의 혈육끼리 아무리 다정하고 행복했더라도 참부모의 혈육의 인연을 갖다 물려놓으면 대번에 풀려 나오게 됩니다. 그 참부모를 만나게 될 때는 세상 부모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 양심은 살길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상에서 “아이구, 가고 싶구나” 하소연하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 본향 땅입니다.

그곳은 오늘날의 공산주의 세계도 아니요, 민주주의 세계도 아닙니다. 거기에 가면 자유와 평등과 행복이 자동적으로 보급되고 그러한 환경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세계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에는 왜 가느냐?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서 만나 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이 호소하는 그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보면 “아이구, 가고 싶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소리를 들어 봤어요? 가서 보고는 뭘 할 것이냐? 영원토록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동경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진대 그 하나님은 만민이 보고 싶어하는 분입니다. 그분이 계시는 곳은 만민이 가고 싶은 곳이요, 만민이 같이 살고 싶은 곳입니다. 행복한 곳, 이상의 본향은 어떤 곳이냐? 가고 싶은 곳입니다. 거기에는 보고 싶은 부모가 있으며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서 보고 영원무궁토록 떠나지 않고 같이 행복을 노래하며 살고 싶다 이겁니다. 그런 본향 땅을 우리 인간들은 어차피 찾아가야 합니다. (155-35)*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3일, 원문
 
본향 땅과 조국광복을 위하여 

날짜 : 1964. 10. 6(화)
장소 : 한국 전주교회
 
소망의 조국을 찾기 위해 연속되는 싸움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도 한 분자로 지금 존재하고 있습니다. 너나할것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바랍니다. 영원한 자유와 평화가 깃들 수 있는 안식의 동산을 언제나 그 마음이 추구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 목표를 향하여 마음은 달리고 있는데, 몸은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곳을 따라나가는 내 마음과 몸이 사정이 다른 입장이기 때문에 하루 하루의 생활에서 말할 수 없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이냐? 이것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즉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고민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내 마음에서 소원하는 그 소원을 향해 내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이 움직여 주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그러하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그러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마음을 중심삼은 소망 가운데 전체가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바라는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여건인 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는 크나큰 고통 혹은 멍에로서, 싸움의 조건으로서 계속 나타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고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자기의 본심을 중심삼고 마음이 바라는 곳, 본연의 땅에서 살기를 바라면서 무한히 애썼지만 아직까지 그런 세계와 그런 천지를 못 본 채 왔다 갔습니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 태어났고, 그와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옛날의 성현들이 간 그 길을 탄식 혹은 슬픔과 더불어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 세상을 보고 더러 말하기를 이 땅은 죄악의 세계요, 이 땅은 우리가 소망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 수많은 종교인들이 이보다 더 선하고 행복한 하나의 본향 땅을 동경하면서 연속되는 싸움을 그치지 못하는 채 현세에도 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155-9)

하나님과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조국

그러면 인간이 자기들도 모르는 내용도 없고 사실도 없는 본향 땅을 그리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것이 현실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세계를 동경하느냐? 그것이 만약에 우리 마음에서 동경해서는 안될 문제라면 포기해 버리고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수천 년 역사가 지나가도 아직까지 그러한 생각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그런 한 때가 있어야 하고, 그런 한 곳이 나타나야 하고, 그런 하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땅 위의 수많은 인간들이 평화니, 행복이니, 자유니 하는 것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고, 이 천지를 지었고 인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있다고 할진대 그 하나님은 어떠할 것이냐? 인간이 이러한 소망을 품고 나가는 그 동기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인류가 머물 수 있는 참된 조국과 본향 땅을 그리워하고 계실 것입니다. 인간인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런 생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스스로 우러나와서 생각되는 것이요, 그것이 내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서 감응적인 느낌을 통하여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가 있어서 인류의 마음을 목적으로 끌어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마음도 그런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일으키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진대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수고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마음의 방향을 이끌어 나가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있기 전에 하늘땅이 있었고, 하늘땅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 힘의 본체가 되는 중심이 있어서 천지만물을 지어놓은 것입니다. 반드시, 천지만물을 짓는 데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짓게 될 때는 반드시 목적을 두고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 피조세계를 지으신 목적이 있었으니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그 창조목적이 이루어졌다면 두말할 것 없이 인간 세상이나 만물세계와 같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존재들은 무엇이든지 평화스럽고 행복할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영광 가운데 잠겨서 온 천지가 동등한 이념권 내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이념이 남아 있기에 오늘날 인간 세상은 타락했지만 그 본심에 하나님의 뜻이 반영되어 우리를 다시 그 이념의 세계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우리 인간은 죄악 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 마음은 본연의 이상세계, 이상의 조국, 이상동산을 그리워하면서 하루 하루의 생활 혹은 생애노정에서 가야 할 목적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연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물건도 그 중심존재의 목적을 위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둘일 수 없습니다. 그 창조목적은 악한 목적이 아니고 선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존재세계가 선한 세계가 안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선한 세계의 이념권 내에서 살아야 할 인간도 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체가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삼은 세계에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의 본향 땅을 이루어 그야말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룬 땅이요,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인간이 되었더라면 우리가 불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155-10)

본연의 양심 작용은 변함이 없어

우리는 타락한 부모는 갖고 있지만 타락하지 않은 선한 부모는 못 가졌습니다. 선한 부모를 가져야 할 인간은 악한 부모에게서 태어남으로써 본향 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악한 부모와 모든 혈육들을 전부 청산해 버리고 본연의 부모를 찾아야 합니다. 본향 땅을 찾고 나서 본연의 부모를 회복하고, 본연의 부모를 회복해 놓고는 본연의 형제들을 회복해야 합니다. 본향 땅에는 형제들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친척들도 있어야 됩니다.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의 종족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종족이 커 나감으로 말미암아 부족을 이루어서 민족을 편성하고, 그 민족이 국가를 편성하게 될 때 조국이 형성됩니다.
본래부터 우리 인간에게는 본향에서 태어나 조국을 창건해야 할 창조이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바라서 인간을 지으셨고, 인간도 그것을 바라서 지음을 받아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소망도 다 깨져 버리고 인간의 소망도 미완성되었습니다. 다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전부 죄악 된 세상에서 악의 지배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경륜하시는 것을 기필코 이루지 않을 수 없기에 그 소망을 가슴에 품고 역사를 거쳐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수를 불려 가면서 선한 권을 만들어 선한 민족과 선한 세계를 갈라 나옵니다. 이것을 책임지기 위해서 이 땅 위에 나타난 것이 종교입니다.
본향의 나라에는 하나님이 직접 지배하실 수 있는 직계 아들딸이 있을 것이요, 그 다음에는 친척들도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도(道)의 세계에도 하나의 중심도를 중심삼고 방계적인 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도들 중에는 하나님이 직접 사랑하실 수 있는 아내나 아들딸과 같은 도가 있고, 하나님이 심부름을 시키실 수 있는 종과 같은 도가 있고, 종의 심부름을 받을 수 있는 종의 종과 같은 도가 있습니다. 그러한 도들이 이 세계에 가지각색으로 널려져 있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게끔 돼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향 땅을 못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본향의 조국도 없습니다. 그 조국이 무엇이냐 하면 지상천국인 동시에 천상천국입니다.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3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주권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국토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세계를 주관하실 수 있는 주권이 있어요?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이 있어요?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인류가 있어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조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은 본래 인간이 살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국광복을 바라는 전 인류의 소망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양심은 더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오늘 내가 거리에 나가서 좋은 일을 한 번 하고 나면 다 되느냐?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또 하라 이겁니다. 하루에 백번 천번 해도 또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래요? 그것은 빨리빨리 좋은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적인 소원이 자꾸 커 가지고 세계를 몽땅 품어서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선까지 인연을 맺고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30억 인류를 다 위해주고도 또 위해줘야 합니다. 나중에 위해줄 데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바다를 위해주고, 산을 위해주고, 하늘땅을 위해주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렇게 위해주려고 합니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마음이 소망하던 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생애노정은 칠팔십 년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엉클어진 모든 것을 수습하려면 억천만 년 걸려도 불가능합니다. 그것을 마음은 압니다. 그러니까 양심이 얼마나 재촉하겠어요! 죽으면 안됩니다. 죽으면 못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본향 땅을 찾아서 하늘 주권자를 모시고 그의 백성들과 더불어 그 나라에서 살다 가야만 천상천국에 갈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얼마나 바쁘겠느냐 말입니다. 마음은 넘고 또 넘어서 순식간에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그 본연의 양심작용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전부 다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우리도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세계를 주름잡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선을 중심삼고 마음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155-25)

인류역사란 소망의 조국을 찾아 나온 역사

오늘날 우리나 전 세계 인류가 아직까지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그 무엇에 미달하였음을 증거합니다. 이런 입장에 선 인류는 자고로 지금까지 개인을 중심삼고 그 마음의 방향을 찾기 위하여 싸움을 해 나왔고,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을 규합시키고, 가정을 중심삼고 민족과 국가 그리고 세계까지 한 방향으로 몰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인류역사라는 것은 개별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배후에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던 창조이상을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상을 재차 실현하기 위한 하나님과 인간의 합동작전이 역사적인 도상에 반영되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이 역사적인 섭리권 내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개인적인 투쟁시대, 가정적인 투쟁시대, 종족적인 투쟁시대, 민족적인 투쟁시대, 국가와 세계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서 참다운 마음의 본향 땅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다운 본향 땅을 찾아서 무엇을 할 것이냐? 본향 땅을 세운 후에는 참다운 인생의 조국, 하늘이 바라고 땅이 바라고 수많은 인류가 바라고 온 만유의 존재가 바라는 본향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달리고 있는 역사적인 과정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도 그 역사적인 과정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하나의 목적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의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공동목표인 하나의 완전한 세계, 행복의 세계, 행복의 본향, 행복의 조국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타락한 인간들을 몰아서 끝날에는 기필코 인류 앞에 참다운 본향 땅, 참다운 조국을 맡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조국이 회복되는 날, 그야말로 하늘땅이 환영할 수 있는 조국광복의 날을 맞이하는 그 날부터 이 땅에는 새로운 싸움, 새로운 고통, 새로운 탄식과 한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 날이 오면 지금까지의 한, 지금까지의 고통, 지금까지의 전쟁, 지금까지의 악한 사회제도는 종결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의 완전한 조국광복의 날을 온 인류 앞에 약속하고 그곳으로 인류를 몰아가십니다.
수많은 종족으로 발전하면서 점점점 번식된 수많은 국가들이 현재 좌우로 갈라져 부딪치는 단계에 왔기 때문에 앞으로 와야 할 것은 이 고개를 넘어서 하나의 이념세계인 동시에 하나의 조국입니다. 하나의 조국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155-12)

참된 사람이란

그 조국을 치리할 분은 인간이 아닙니다. 본향 땅을 건설할 분은 인류가 아닙니다. 세계 인류 앞에 그러한 조국을 창건하고 본향 땅을 창건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대명을 받고 오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사상은 기독교는 물론이요, 불교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습니다. 고차적인 종교는 반드시 참된 사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참된 사람이란 역사적인 인간들이 소망하던 사람이요, 오늘날 30억 인류가 소망하는 사람이요, 앞으로 올 후손들이 믿고 바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 전체가 바라는 참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 바라실 수 있는 참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타락한 세상의 종말에 반드시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보내집니다. 그분은 세상을 구하는 주인, 그야말로 역사상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참사람입니다. 그렇게 참사람을 고대하는 사상은 고차적인 종교라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할것없이 인류의 소망을 대표하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과 하나되면 우리의 욕망이 다 이루어집니다. 그분과 하나되면 전 세계가 하나로 화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도 그 존재와 하나되실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이 온다는 것이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사상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로 말하면 미륵불이 온다는 것이요, 유교로 말하면 진인이 온다는 것입니다. 교파가 다르기 때문에 명사를 달리하지만 결국은 한 분입니다. 그분이 오는 목적은 인류의 본향 땅을 찾기 위한 것이요, 인류의 본향 땅을 찾아서 인류의 조국을 창건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본향 땅이 없는 사람들이요, 나라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마귀 사탄이 지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보다도 악한 사람이 잘삽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우리 마음이 요구하듯이 참을 요구하고 소망의 때를 바라보고 나오던 양심적인 사람들은 악과 대항하여 싸우다가 희생되었습니다. 그렇게 싸워 가지고 개인의 선, 가정의 선, 종족의 선, 민족의 선의 터전을 세계적인 사조에 합류시켜 세계적인 기반으로 닦아 놓은 것이 오늘날 서구문명의 정신적인 뒷받침이 되는 기독교입니다.
우리 스스로 본향 땅을 찾을 수 없고, 우리 스스로 그 조국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종말시대에 보내겠다고 하신 한 분이 있나니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구세주는 본향 땅을 세울 수 있는 분으로서 타락하지 않은 본향 땅, 본연의 나라에 대한 전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아 가지고 오는 분입니다. 그분 가운데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이 있고, 인간이 소망하는 평화가 있고, 행복이 있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 모든 여건을 갖고 오는 분이 주님입니다. (155-17)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책임

그분이 이 땅에 와서 본향 땅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요, 본향의 조국을 건설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런데 본향을 찾고 조국을 찾기 전에 그분이 먼저 우리와 더불어 악한 세상을 심판해야 합니다. 악한 세상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사명을 해야 되느냐? 그분과 함께 악한 세상을 심판해야 합니다. 심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을 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놓고, 그 터전에 그분을 모셔야 합니다. 우리가 나가서 싸우는 것은 악과 싸워 가지고 내가 선한 입장에서 악 앞에 삼켜 버림을 당하지 않고 도리어 악을 삼키자는 것입니다. 이런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여기에 찾아온 목적은 자신이 머무는 그 환경에서 악과 대결해 싸우는 데 힘이 부족하니까 말씀을 듣고 하나님으로부터 선한 입장에서 악을 삼켜 버릴 수 있는 힘을 보급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느니, 정성을 들이느니 하는 모든 것은 내가 선한 입장에서 악한테 삼킴을 당하지 않고 악을 삼켜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이겨낼 수 있는 중심위치를 결정짓기 위해서 도의 길을 가고 정성을 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가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소망하던 조국과 본향 땅을 기필코 이루어 주시는 때가 바로 끝날입니다. 그때에는 반드시 이 모든 소원을 해원해 줄 수 있는 전체적인 중심존재로 구세주가 옵니다. 그 구세주와 상봉하기 위해서는 선을 중심삼고 이 세상의 어떤 악이라도 정리할 수 있는 중심적인 위치를 결정지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복잡한 사연이 번식되어 있는 이 천지간에 나타나 악과 대결합니다. 지금까지 가정에서 사랑하던 부모와 처자들은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나온다고 반대했습니다. 친척들도 반대했습니다. 친구들도 전부 다 반대했습니다. 그렇게 전부가 일시에 공격하는 고립된 입장에 서더라도 자기 위치를 양보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아 와라, 가정아 와라, 종족아 와라, 민족도 와라, 국가도 와라” 할 수 있는 기준까지 넘어가야 합니다. 반드시, 개인이 선한 입장에서 악을 심판하고 조국이라는 명사를 갖는 한 국가의 기준까지 남아질 수 있는 권한을 갖춘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 위에 구세주는 조국창건을 위해서 오는 것이요, 본향 땅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한 나라를 위주로 하고 오기 때문에 그 나라가 나타나서 기반을 갖기 위해서는 세상나라의 권세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선한 입장에 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이 너나할것없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잃어버린 본향 땅, 잃어버린 조국의 광복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궐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의를 갖고 나섰기 때문에 내 가는 길에는 개인적인 십자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악이 문제가 아니요, 가정적인 악이 문제가 아닙니다. 종족, 민족, 국가 전부가 반대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넘어갈 수 있는 신념과 선에 입각한 결심을 갖춘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 소망의 백성으로서 갖출 바의 위신과 소망적인 나라의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국민성을 갖추고 새로운 나라에서 지녀야 할 인격을 갖추어 세상나라의 백성들과 다른 입장에서 권위를 갖추지 않으면 안될 것이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서 6천 년이 걸렸습니다. 개인적인 탕감의 복귀역사와 가정적인 탕감의 복귀역사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탕감의 복귀역사를 이루어 가인과 아벨처럼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이마를 맞대고 부딪칠 수 있는 시대까지 오는 데 6천 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6천 년에 걸쳐 사탄과 싸워 나오던 과정에서 지상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개인적인 골고다의 길에서 쓰러졌고 실수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개인적인 골고다의 노정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가정적인 골고다의 길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맞부딪치는 싸움의 도상에서 패자가 되면 안됩니다. 여기에서 승리하고 나야만 세계적인 새로운 본향 땅, 새로운 조국광복의 날을 향하여 참소를 받지 않고 누가 방해할 수 없는 자리에서, 자유로운 입장에서 행진할 수 있습니다. (155-18)

메시아가 오는 곳이 세계적인 조국

오늘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은 잃어버린 역사적인 조국해방을 위해서, 조국광복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잃어버린 본향 땅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 날을 맞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인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기 때문에 문화의 최고의 목적이요, 인류의 소망 중의 소망이기 때문에 그 날은 필시 와야 합니다.
그 날이 오지 않으면 인간은 지금까지 헛수고한 것이 됩니다. 돈이니 윤리도덕이니 하는 것들은 다 무효가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모든 것이 바랍니다. 그건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게끔 만든 어떤 목적적인 기준이 있고 동기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동기가 있어서 목적을 추구하는 힘의 작용권 내에 들어가서 감촉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이 그렇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오면 심판을 해야 합니다. 심판은 제물을 갖고 하는 것입니다. 제물은 거룩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동물들이 제물이 되었지만 선한 사람도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지극히 깨끗한 선한 사람을 그 지방을 대표해서 하나님이 내세우실 때 사탄도 인정하고 인간도 인정하는 제물적인 입장에 선 사람이 하늘 편에서 끝까지 싸우는 데 민족이 반대하면 민족이 들이 맞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은 제물적인 자리를 통해서 합니다.
그렇게 심판할 수 있는 자는 모든 악과 싸워서 남아져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심판은 누구를 통해서 하느냐? 제물적인 입장에서 남은 무리를 통해서 합니다. 그런 과정을 틀림없이 거쳐오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삼천리 반도 혹은 삼천만 민중 앞에서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어떠한 시련도상에서도 절대로 삼킴을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악이 제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갖춘 바 이념과 심정을 꺾을소냐? 아무리 나가더라도 우리가 갖춘 절개를 더럽힐소냐”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선생님이 전라북도면 전라북도를 찾아와 여러분한테 이야기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그 악한 환경을 깨쳐 버리는 자가 되어야지 악에 밀려나 깨지는 무리가 되면 안됩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자유당, 민주당, 혁명정부까지 3주권이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맞았지만 깨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오늘날 이 민족의 악한 혼란상에 절대 소화되는 인간이 되지 말고 그것을 소화시키는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세운 민족적인 운명, 국가적인 운명의 방향을 갖추어 우리가 심판의 한 기반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남는 무리를 하나님은 필시 요구하실 것이기에 그러한 무리의 대열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래서 본향 땅을 찾아가야 합니다. 본향 땅을 찾아서 조국을 창건해야 됩니다. 본향 땅을 찾아야 하고 조국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류가 바라는 본향과 인류가 바라는 조국은 어느 곳이 될 것이냐? 메시아가 오는 곳, 구세주가 오는 곳이 인류가 바라는 본향이요, 조국이 됩니다. 메시아가 미국에 오면 미국 땅이 세계적인 조국이 될 것이요, 세계적인 본향 땅이 될 것입니다.
타락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조국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본향 땅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본향에는 부모가 있습니다. 본향 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인류는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부모가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옹호해 가지고 “천세 만세 영원히 행복을 노래하고 살지어다” 하고 쌍수를 들어 축복하시지 못했고 당신이 창조한 천주의 위업을 상속해 주시지 못했습니다. (155-22)

본향 땅을 찾을 수 있는 때가 가까이 왔다

땅 위의 인류는 지금 돈이 없어 한하는 것이 아니요, 그 나라의 주권이 없어서 한하는 것이 아니요, 그 나라의 백성과 국토가 없어서 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한하느냐? 마음대로 기뻐할 수 있고,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된 것이 한입니다. 이 땅이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땅이 못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땅과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사회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사회와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땅이 되어 있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세상을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시자는 것이 인간세계에 대한 구도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靈)으로 계시기 때문에 실체 대상자로 보내신 것이 과거의 도주들이었습니다. 도들 중에도 1세기의 도가 있습니다. “너희를 이 땅 위의 억조창생을 구하기 위해서 보내나니 너는 1세기 동안만 네가 가진 종교의 이념을 가지고 치리해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나면 무너지게 됩니다. 우수한 문화는 열세한 문화를 흡수하는 것이요, 우수한 사람은 열세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요, 강한 힘은 약한 힘을 삼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들 중에도 몇 세기의 종교가 있고, 몇 천년의 종교가 있습니다. 로마의 압제시대에는 로마가 기독교를 삼켰지만, 오늘날에는 기독교가 문화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정신적인 뒷받침이 되어서 서구의 문명을 창출했습니다. 기독교는 몇 세기, 수십 세기의 인연을 갖고 나오는 도이기 때문에 남아졌습니다. 어느 부자가 망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어느 누가 나라를 가졌다가 잃어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망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인간들은 모르지만 대우주의 원동력이 작용하는 원칙에 부합되지 않을 때는 깨지는 것이요, 부합될 때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고로 하나님을 추상명사 같지만 막연하게라도 받들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우리가 살 수 있는 본향 땅이 아닙니다. 여기가 평등, 평화,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유세계, 해방의 깃발이 영원무궁토록 우리의 마음과 몸에서 휘날릴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렇게 안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양심세계에 힘을 강하게 불어넣으셨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왜 이렇게 됐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미완성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미완성의 단계에서 타락했으니까 고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해서 우리는 본향 땅을 잃어버렸고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본향 땅에서 살 것이었는데 나고 보니 원수의 땅이요, 나고 보니 슬픈 땅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을 내가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서 망해라, 어서 망해라 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대한 애착심이 없고, 가정에 대한 애착심이 없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땅에 대한 애착심이 없습니다. 생활하는 사람은 생활에 대한 애착심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탄식밖에 없습니다. 될 대로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조금 지나면 “어서 망해라” 할 것입니다. 좌우의 사조에 부딪쳐 시달려 온 약소 민족들은 어느 누구든 어서 망하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가 우리가 본거지로 삼아서 행복의 터전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땅이냐?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가야 합니다. 가정아 지나가라, 사회야 지나가라, 나라야 지나가라, 세계주류야 지나가라, 공산주의도 지나가고 민주주의도 지나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나누고 피살을 같이 나누는 형제주의다 이겁니다. 예수님이 그런 것을 막연히 부르짖었지만, 이제는 구체적입니다. (155-32)

본향 땅을 우리 인간들은 어차피 찾아가야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사회의 모든 압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어가는 데는 내 발만을 들여놓고 넘어가지 말고 가족을 끌고 넘어가자, 우리 종족과 삼천만 민족을 끌고 넘어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주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싫다는 삼천만을 움직여서 좋다고 하도록 만들고, 삼천만이 도망가는 곳으로 가서 주인의 노릇을 하자는 것입니다.
전부 다 반대입니다. “너희들은 먹고 즐기지만, 우리는 굶고 앉아서 즐거워한다. 너희들은 비행기를 타고 좋다고 하지만, 우리는 걸어다니면서도 좋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나왔지요? 그렇게 나가다가 쓰러지지 말라 이겁니다. 이 나라가 끝나고 반드시 해결지을 날이 올 것이니까 그때까지 가 보자는 것입니다. 참다운 것과 강한 것은 남는다는 것이 천칙입니다.
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자기 편 것을 남기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편에 입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길을 가려고 할 때 가정이 반대하면 가정을 타고 넘어가고 사회가 반대하면 사회를 타고 넘어가야 합니다. 기필코, 가야 할 목적지는 본향 땅입니다. 아담 해와가 부모를 잃어버렸으니까 그 부모를 소개해 주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만인류는 참부모의 후손들이 못 되고 악한 부모의 후손들이 되었으니까 다시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참부모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이것을 유불선에서는 천지부모라고 합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받고, 참부모가 세운 도의 문을 통하고, 그 다음에는 참다운 형제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부모의 혈육을 통하고 그 부모의 심정과 사정 그리고 소원이 일치된 자리를 통하여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형제의 인연을 붙들고 나오는 사람은 지금까지 세상의 혈육끼리 아무리 다정하고 행복했더라도 참부모의 혈육의 인연을 갖다 물려놓으면 대번에 풀려 나오게 됩니다. 그 참부모를 만나게 될 때는 세상 부모가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 부모도 그 부모를 찾아가지 않으면 망합니다.
내 양심은 살길을 압니다. 여러분, 향기로운 냄새를 맡는 것이 좋지요? 그거 왜 그래요?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이 좋다는 것은 그 향기를 맡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괜히 좋습니다. 선전이 필요 없습니다. 가기만 해도 좋고, 안 보면 보고 싶고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상에서 “아이구, 가고 싶구나” 하소연하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무엇인지 모르게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 본향 땅입니다.
왜 가고 싶으냐? 어머니 아버지가 있고, 형제와 친척들이 있고, 내 나라가 있으니까 가고 싶습니다. 거기에는 내 복지요, 내 안식처가 있으니까 가고 싶은 것입니다. 악한테 밟혀 온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역사를 거쳐오면서 탄식권 내에서 양심으로 호소하고 뒤넘이치면서 밤을 새워 동경했지만 그 곳을 확실히 몰랐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사방 편답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막연히 추상적인 관념으로 마음이 지향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품고 처량히 지냈습니다.
그곳은 오늘날의 공산주의 세계도 아니요, 민주주의 세계도 아닙니다. 거기에 가면 자유와 평등과 행복이 자동적으로 보급되고 그러한 환경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세계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에는 왜 가느냐?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서 만나 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이 호소하는 그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보면 “아이구, 가고 싶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소리를 들어 봤어요? 가서 보고는 뭘 할 것이냐? 영원토록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동경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진대 그 하나님은 만민이 보고 싶어하는 분입니다. 그분이 계시는 곳은 만민이 가고 싶은 곳이요, 만민이 같이 살고 싶은 곳입니다. 행복한 곳, 이상의 본향은 어떤 곳이냐? 가고 싶은 곳입니다. 거기에는 보고 싶은 부모가 있으며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서 보고 영원무궁토록 떠나지 않고 같이 행복을 노래하며 살고 싶다 이겁니다. 그런 본향 땅을 우리 인간들은 어차피 찾아가야 합니다. (15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