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자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1일)

훈독왕 | 20201225071839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1일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자 (훈독본) 

날짜 : 1957. 10. 13(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EyCtnEYDrPg&list=PLtan-zpeJeilD6pJZCkogCwve2117SlW6&index=11

 


소망의 그 나라와 의는 우리의 최후의 목표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이 예고하셨던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찾는 것이 오늘날 우리 인류의 소망이요, 또한 지금까지 수천 년 역사과정의 인간들에게도 하나의 소망이었습니다.


이러한 소망의 나라와 소망의 의가 어찌하여 우리 최후의 목표로 남게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와 그 의의 중심인 아버지에 대하여 자세히 모르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와 같이 무지한 백성과 인류를 깨우쳐 그 아버지가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수고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어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 수고해 오신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만일 인간들이 그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그 아버지의 영광이 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 땅 위에 찾아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 나라의 그 의를 대신할 수 있고, 그 의를 따라가고 있으며, 그 의의 실체라고 자신 있게 외치고 나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나타나서 4천 년 역사를 뒤집어 놓고 “나는 하나님과 한 몸이다” 했으며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나를 믿어야 아버지를 알고, 나를 믿어야 그 나라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전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하고 자신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천상과 지상에 가로막혀 있던 모든 것을 헤치고 나타나서 그 나라와 의의 중심인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었던 타락한 인간들에게 “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각자의 생활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한 것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복음 중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 앞에 하나님을 대신한 하나의 실체로서, 하늘의 혈통을 대표할 수 있는 분으로서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망을 성취해 드리기 위해 온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류나 생명을 지닌 어떠한 존재도 반대해서는 안됩니다. 지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그 나라의 영광과 의를 증거할 수 있는 생활적인 환경을 갖추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뜻이 이루어지는 한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3-116)

그 나라와 의의 본질과 예수님의 소원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인간들이 소망하던 그 나라와 그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수고했으며, 만민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이 이루려고 했던 그 나라는 주는 사랑이 넘치는 나라요, 봉사하는 희생의 생활이 넘치는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은 땅 위의 만민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그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 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인간이 소망하는 그 나라가 본질적인 사랑이 실현된 나라, 즉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과 사랑의 본질은 사랑을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의와 통할 수 있는 희생과 봉사의 생활노정을 걸어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랑을 온전히 줄래야 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자를 찾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무한히 희생하고 봉사하시듯이 이웃을 위하여 무한히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신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 하나님의 실체로 나타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온 인류를 대하여 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민 앞에 증거하고 몸소 행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이나 군중 또는 반대한 유대교인들과 이스라엘 민족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그 사랑의 심정과 영원한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교단을 통하고, 민족을 통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통하고, 나아가 세계를 통하여 이 땅 위에서 사랑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닮은 하나의 존재를 찾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는데 예수님의 그 뜻을 가정이 막아버렸고, 교단이 막아버렸고, 따르던 제자들이 막아버렸고, 이스라엘 민족이 막아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다시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이 다시 와야 합니다. 그러한 주님이 다시 오는 그 날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소망하고 있는 재림의 날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 사무친 동시에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도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사탄 앞에 찢기고 제물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희생과 봉사의 길로 나선 예수님이었습니다. (3-117)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 사람

그와 같이 주고 싶어하는 사랑의 동산, 천국의 의를 땅 위의 생활에서 나타낼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소망의 그 나라를 요구하시게 되었고 소망의 그 의를 요구하시게 된 서러운 입장에 계십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그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이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끝나지 않은 이상 이 땅 위에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한 어떤 하나의 기준을 반드시 세워 놓아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지 못한다면, 예수님이 애달픈 심정으로 “너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한 말씀의 목적과 여러분은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여러분은 신앙노정에서 혼돈과 모순 그리고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하고 봉사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 몸부림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원수는 다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억만 사탄들이 우거하고 있는 이 우주 전체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원수가 문제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개인입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감추어져 있는 원수부터 제거해 나가는 것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가 이루어진 세계는 서로서로 주기를 즐겨하는 사랑의 세계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는 생활이 빛나는 세계입니다.


스스로 남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길로 나가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 땅의 인간들을 그와 같은 길로 이끌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님은 그 당시에 땅 위의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남을 사랑하고 위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살아 주기를 바라고 자기가 사랑을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애처롭게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하여 희생과 봉사로 하나님의 사랑을 줄 수 있었던 한 존재를 찾지 못한 것이 예수님한테 있어서 가장 큰 안타까움이요, 슬픔이었습니다. (3-121)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하는 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사탄으로부터 몇 가지의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40일 금식기간에 먼저 먹을 것으로 시험받았습니다.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굶주린 인간들에게는 희소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먹을 것 때문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생활권 내의 모든 조건을 사탄 앞에 잃지 않았다는 입장을 세웠습니다.

그때까지 인간은 물질을 중심삼은 투쟁역사를 거쳐왔는데, 예수님이 사탄의 제1차적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그러한 물질을 중심삼은 투쟁역사를 종결시키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사탄에게 이끌려 교회의 성전 꼭대기에 서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태복음 4:6)는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지도할 수 있었던 종교이념을 갖고 나타난 예수님한테 뛰어내리라고 함으로써 유대교적인 습관과 그들의 주장 앞에 굴복하여 그들의 지도자의 입장을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승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꼭대기에 올려놓고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복음 4:9)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서 우주적인 이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세워드리기 위하여 사탄의 그러한 요구를 일축해 버렸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한 것이냐? 이 땅 위에 새로운 천지, 즉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 뜻을 나타내는 실현과정에서 그와 같이 역사적인 불신의 모든 조건을 탕감하고 복귀한다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을 맞이한 오늘날의 여러분에게도 물질을 중심한 투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오늘날 인간이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게 된다면, 이 땅은 자연히 암흑의 세계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을 밟고 올라서 예수님이 가졌던 천국의 이념을 받들고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물질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고, 그 다음에는 종교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분열과 모순 그리고 투쟁을 해결하게 될 종교가 출현하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물질의 시험을 거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하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이 인간뿐만 아니라 이 지상의 어떠한 주의나 주장을 넘어서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 굴복시키려고 하는 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가 끝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122)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

여러분은 먹는 문제나 입는 문제를 초월해야 됩니다. 자신만을 위하려는 마음, 즉 가정불화의 조건을 타파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역사적인 모순을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의식주(衣食住)의 모든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 참다운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먹을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본질과 그 나라의 본질을 그리워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먹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먹을 것을 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조그만 빵 한 조각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염려하면서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만 물질적인 곤고가 없게 됩니다. (3-125)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살아야

오늘날 여러분은 물질을 중심삼은 싸움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서 “이 물질을 통하여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저보다 더 잘 나타내 드릴 수 있고 이 물질을 저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이 물질이 저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인 줄 아오니, 그에게 이 물질을 사용하게 하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에게 주어야 할 물질을 자신이 취하게 된다는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본성이 발현될 수 있으며, 여러분이 영원한 소망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원수는 물질적인 조건을 통하여 찾아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복도 물질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와 같이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동시에 찾아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물질을 통하여 확고한 신앙의 중심을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것이든지 하나의 중심을 세우면 거기에는 자연히 상대적인 존재가 생깁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땅에서 원칙적인 신앙의 핵심, 하나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외쳤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속해 있으면 그 가정을 위하여 사는 자체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될 것이요, 하나의 국가에 속해 있으면 그 국가를 위하여 사는 것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될 때 진정으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사는 입장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사실들이 자신의 생활환경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나섰다면 여러분에게 먹을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자신보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굶을 수 있는 마음과 그것을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실천적인 면에서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생활하고 있는가, 봉사하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생활하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의 이 현실을 박차고 그 나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가를 반성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4) 하고 탄식하던 그 심정을 여러분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3-127)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시며,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이 땅의 모든 악의 세력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존재가 나타나게 되면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되고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인데, 아직까지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그러한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있었는데, 역사상의 선조들은 그 선지 선열들을 매장하고 핍박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 자체를 세워 그러한 역사적인 모든 잘못을 청산짓고자 하는 것이 여러분을 대하는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피 흘리는 십자가의 길을 참고 갔던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지금까지 6천 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자기 일신의 영광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던 그 길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위한 길을 가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수많은 선지 선열들 앞에 떳떳이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죽어서 영계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나서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지 못합니다. 믿는 것도 자기를 위해 믿고, 죽는 것도 자기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죽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떳떳이 설 수 없습니다. (3-129)

하나님의 참자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애쓸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목적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인류를 위하여 수고했던 예수님의 심정적인 기준까지 나아가야 하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리는 참자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불의를 보면 분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하나님의 주고 싶어하시는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이 세상 끝까지라도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면서 지금까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는 과정에서 사탄과 싸워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여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자리에 처하든지 그곳에서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에 나가면 그 사회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사탄과 싸워 승리하고, 국가에 나가면 그 국가의 제일 어려운 문제를 책임지고 나서서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서 지금까지 6천 년 섭리역사의 목적을 대신하고, 오늘의 현실적이고 우주적인 이념을 대신하여 어떠한 골고다의 길이 가로막히더라도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면서 늠름하게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훌륭한 모습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고 몸으로 화하여 사탄까지도 여러분을 존경하고 따르게 될 때, 비로소 여러분은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는 백성으로서 나설 수 있습니다. (3-131)*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1일, 원문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자  
 
날짜 : 1957. 10. 13(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소망의 그 나라와 의는 우리의 최후의 목표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이 예고하셨던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찾는 것이 오늘날 우리 인류의 소망이요, 또한 지금까지 수천 년 역사과정의 인간들에게도 하나의 소망이었습니다.
이러한 소망의 나라와 소망의 의가 어찌하여 우리 최후의 목표로 남게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그 나라와 그 의의 중심인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의 중심인 아버지에 대하여 자세히 모르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와 같이 무지한 백성과 인류를 깨우쳐 그 아버지가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수고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는 것이 아직까지 우리의 소망이요, 목표입니다.
이처럼 그 나라와 그 의를 이 땅 위에 찾아 세우시려는 아버지가 계신다면, 그 아버지의 뜻이 이 땅 위에 반드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어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 수고해 오신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먼저, 그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어떠한 역사과정을 거쳐서라도 먼저 그 나라의 주인공인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만일 인간들이 그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그 아버지의 영광이 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 땅 위에 찾아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 이전까지 하늘과 땅을 향하여 “내가 그 나라의 주인공이다” 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 나라의 그 의를 대신할 수 있고, 그 의를 따라가고 있으며, 그 의의 실체라고 자신 있게 외치고 나선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망이 없는 적막한 천지에 하나님의 소망과 의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나서 “내가 그 나라 아버지의 대신이요, 내가 그 나라 의의 실체”라고 주장하고 나선 한 분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땅 위의 인류에게 복음 중의 복음이요, 희소식 중의 희소식이었습니다. 그러한 주장을 하고 나선 분이 바로 종교로부터 불신을 당하고, 교단으로부터 매장을 당하고, 버림을 받고, 국가로부터 추방을 당했던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나타나서 4천 년 역사를 뒤집어 놓고 “나는 하나님과 한 몸이다” 했으며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나를 믿어야 아버지를 알고, 나를 믿어야 그 나라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전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하고 자신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천상과 지상에 가로막혀 있던 모든 것을 헤치고 나타나서 그 나라와 의의 중심인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었던 타락한 인간들에게 “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각자의 생활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한 것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복음 중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의 그러한 복음을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려는 하나님의 소망은 인간과 피조만물을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소망은 참다운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과 만물이 동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 앞에 하나님을 대신한 하나의 실체로서, 하늘의 혈통을 대표할 수 있는 분으로서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망을 성취해 드리기 위해 온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류나 생명을 지닌 어떠한 존재도 반대해서는 안됩니다. 지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그 나라의 영광과 의를 증거할 수 있는 생활적인 환경을 갖추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뜻이 이루어지는 한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돌이켜볼 때 예수님이 돌아가게 된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무한한 서러움이요,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복잡한 환경에 부딪쳐야 했던 역사적인 고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3-116)
 
그 나라와 의의 본질과 예수님의 소원

우리가 찾고자 하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이며, 그 나라와 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인간들이 소망하던 그 나라와 그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수고했으며, 만민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이 이루려고 했던 그 나라는 주는 사랑이 넘치는 나라요, 봉사하는 희생의 생활이 넘치는 나라였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영계를 체험해 보면 완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 위의 만민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그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 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인간이 소망하는 그 나라가 본질적인 사랑이 실현된 나라, 즉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과 사랑의 본질은 사랑을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의와 통할 수 있는 희생과 봉사의 생활노정을 걸어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랑을 온전히 줄래야 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자를 찾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무한히 희생하고 봉사하시듯이 이웃을 위하여 무한히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신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 하나님의 실체로 나타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온 인류를 대하여 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민 앞에 증거하고 몸소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수고했던 예수님의 마음에 사무친 것은 어떻게 하면 만민에게 하늘의 사랑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사랑을 준 목적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만을 사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 나아가 이방민족까지 사랑하여 이 땅을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찬 이상동산으로 건설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이나 군중 또는 반대한 유대교인들과 이스라엘 민족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그 사랑의 심정과 영원한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교단을 통하고, 민족을 통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통하고, 나아가 세계를 통하여 이 땅 위에서 사랑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닮은 하나의 존재를 찾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는데 예수님의 그 뜻을 가정이 막아버렸고, 교단이 막아버렸고, 따르던 제자들이 막아버렸고, 이스라엘 민족이 막아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다시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이 다시 와야 합니다. 그러한 주님이 다시 오는 그 날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소망하고 있는 재림의 날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 사무친 동시에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도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사탄 앞에 찢기고 제물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희생과 봉사의 길로 나선 예수님이었습니다. (3-117)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 사람

그 당시에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로서 민족 앞에 몰림을 받고 배척받던 예수님을 보고 서러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4천 년 역사를 대신하여 놀라운 증거의 사명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기를 원하던 애달픈 사랑의 심정을 대신한 사람이 있었다면 신부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주고 싶어하는 사랑의 동산, 천국의 의를 땅 위의 생활에서 나타낼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소망의 그 나라를 요구하시게 되었고 소망의 그 의를 요구하시게 된 서러운 입장에 계십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그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단결했다고 해서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랑에 백 퍼센트 부합될 수 있고, 예수님의 주기 위해서 애달파하던 사랑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한 신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자신이 실천했던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대신할 수 있는 한 존재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한 존재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합니다.
이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끝나지 않은 이상 이 땅 위에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한 어떤 하나의 기준을 반드시 세워 놓아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지 못한다면, 예수님이 애달픈 심정으로 “너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한 말씀의 목적과 여러분은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서러움은 무엇이냐, 나의 서러움은 무엇이냐, 기독교의 서러움은 무엇이냐? 그리고 세계의 서러움은 무엇이고, 이 땅의 서러움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서러움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주고자 하시는 사랑은 어디에 머물 것이냐? 우리가 이러한 모든 문제를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탄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살펴볼 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느냐 하면 못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시간도 애달파하시며 탄식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앞에는 그것을 타개하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인 운명, 즉 심판의 과정을 거쳐나가야 할 운명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거쳐나가는 과정에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서 서러움을 느끼시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의가 없어서 서러움을 느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어떠한 이념과 관념을 초월하여 영원한 실존의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자연의 법도에 순응하고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심정을 지닌 존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서러워하고 계십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그 나라와 그 의의 본질인 봉사의 심정을 갖고 생활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러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노정에서 혼돈과 모순 그리고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하고 봉사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 몸부림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원수는 다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억만 사탄들이 우거하고 있는 이 우주 전체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원수가 문제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개인입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감추어져 있는 원수부터 제거해 나가는 것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왔던 예수님의 원수는 그 예수님을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의 존재로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 중에서 자신의 본성과 관계를 맺어서 “너희의 마음이자 내 마음이다”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나오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한 한 존재가 나왔더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갔을지라도 자신의 사랑과 이념은 이 땅 위에 세워질 것이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 예수님의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가 이루어진 세계는 서로서로 주기를 즐겨하는 사랑의 세계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는 생활이 빛나는 세계입니다.
스스로 남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길로 나가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 땅의 인간들을 그와 같은 길로 이끌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님은 그 당시에 땅 위의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남을 사랑하고 위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살아 주기를 바라고 자기가 사랑을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애처롭게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하여 희생과 봉사로 하나님의 사랑을 줄 수 있었던 한 존재를 찾지 못한 것이 예수님한테 있어서 가장 큰 안타까움이요, 슬픔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여주려고 해도 보지 못하고 손에 쥐어주어도 알지 못하던 무지한 사람들을 대하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태복음 6:31)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활을 부정하라는 말씀이요, 모든 환경을 부정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필연적인 조건임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한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러한 길을 밟고 올라서야만 소망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 사람은 이 자연적인 법도권 내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게 되어서 자연히 만물에 대한 염려는 할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에 한 말씀이었습니다. (3-121)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하는 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사탄으로부터 몇 가지의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40일 금식기간에 먼저 먹을 것으로 시험받았습니다.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굶주린 인간들에게는 희소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먹을 것 때문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생활권 내의 모든 조건을 사탄 앞에 잃지 않았다는 입장을 세웠습니다.
그때까지 인간은 물질을 중심삼은 투쟁역사를 거쳐왔는데, 예수님이 사탄의 제1차적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그러한 물질을 중심삼은 투쟁역사를 종결시키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사탄에게 이끌려 교회의 성전 꼭대기에 서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태복음 4:6)는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지도할 수 있었던 종교이념을 갖고 나타난 예수님한테 뛰어내리라고 함으로써 유대교적인 습관과 그들의 주장 앞에 굴복하여 그들의 지도자의 입장을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승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꼭대기에 올려놓고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복음 4:9)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서 우주적인 이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세워드리기 위하여 사탄의 그러한 요구를 일축해 버렸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한 것이냐? 이 땅 위에 새로운 천지, 즉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 뜻을 나타내는 실현과정에서 그와 같이 역사적인 불신의 모든 조건을 탕감하고 복귀한다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을 맞이한 오늘날의 여러분에게도 물질을 중심한 투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오늘날 인간이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게 된다면, 이 땅은 자연히 암흑의 세계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을 밟고 올라서 예수님이 가졌던 천국의 이념을 받들고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유대교단과 하나되어 세계를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민주주의 이념과 그 민주주의 이념의 기본이 되고 있는 기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로 단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물질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고, 그 다음에는 종교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분열과 모순 그리고 투쟁을 해결하게 될 종교가 출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역경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서도 변치 않는 모습을 나타낸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예수님의 그러한 인격을 닮아야 합니다. 끝날에 처한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세계적인 성전이념을 이루기 위해서 과거에 좋아했던 어떤 것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왔던 예수님의 생애노정에 부합되는 노정에 세워졌기 때문에 여러분의 앞에는 역사적인 싸움의 한 때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계적인 영광을 누려 왔던 사탄이 최후의 싸움에 패배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딸 앞에 굴복하고 경배하는 때가 반드시 와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뜻만이 나타날 수 있는 한 날이 어서 속히 와야 되고,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만일 그러한 존재가 나타나지 않으면, 예수님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외쳤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물질의 시험을 거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하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이 인간뿐만 아니라 이 지상의 어떠한 주의나 주장을 넘어서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 굴복시키려고 하는 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가 끝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122)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

이 땅의 어느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 때, 역사적인 종결과 과학적인 종결 그리고 윤리와 종교적인 종결을 예고하는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예수님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한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 땅 위에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기 위하여 불변의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을 만 우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 대신자의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나라의 본질적인 이념을 여러분 자체의 생활에 적용하여 여러분 생애의 실정적인 가치를 형성하고 영원한 미래를 약속하는 소망의 한 날을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타락 후 4천 년 동안 수고하신 다음에 예수님을 보내시어 역사하게 하신 뜻과 예수님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예수님과 성신을 합한 삼위신이 역사한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이제 그 나라와 그 의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불의의 조건들, 천주적인 이념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불의의 조건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일신의 생활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대신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 나라에 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그 의의 백성이 되고자 한다면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가지고 싸우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 입는 문제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부여되면 그것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조각의 빵이 있다면, 그 빵을 혼자 먹게 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했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타난 인간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원인은 모든 가족들이 가정은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그것이 자기만 먹기 위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불화가 생겨납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화살이고 사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먹는 문제나 입는 문제를 초월해야 됩니다. 자신만을 위하려는 마음, 즉 가정불화의 조건을 타파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역사적인 모순을 밝고 올라서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의식주(衣食住)의 모든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 참다운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의 물건을 놓고도 그것을 대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서로 차이가 있으면 안타깝고 서러운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하나된 상태에서 인간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하나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하나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서러운 입장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먹을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본질과 그 나라의 본질을 그리워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먹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먹을 것을 대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꺼번에 많은 보화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자기의 임의대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조그만 빵 한 조각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염려하면서 먹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만 물질적인 곤고가 없게 됩니다. (3-125)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살아야

오늘날 여러분은 물질을 중심삼은 싸움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서 “이 물질을 통하여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저보다 더 잘 나타내 드릴 수 있고 이 물질을 저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이 물질이 저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인 줄 아오니, 그에게 이 물질을 사용하게 하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에게 주어야 할 물질을 자신이 취하게 된다는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본성이 발현될 수 있으며, 여러분이 영원한 소망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원수로 대해야 할 것은 여러분에게 부여된 물질을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심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빵 한 조각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만인이 나눠먹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먹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먹기 이전에 가정을 위하여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고 사회, 민족, 국가, 세계 인류를 위하여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이 그러한 마음을 소유해야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완성될 수 있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수는 물질적인 조건을 통하여 찾아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복도 물질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와 같이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동시에 찾아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물질을 통하여 확고한 신앙의 중심을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것이든지 하나의 중심을 세우면 거기에는 자연히 상대적인 존재가 생깁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땅에서 원칙적인 신앙의 핵심, 하나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외쳤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먹는 것 때문에 식구끼리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 때문에 시어머니, 며느리, 형님, 동생간에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것 때문에 국가면 국가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친척이면 친척끼리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것을 밟고 올라서기 위하여 가정, 사회, 국가와 세계를 위하여 애달픈 마음을 갖고 살았으며 그 나라와 그 의를 건설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예수님의 그러한 심정을 체휼하고 그 인격을 닮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입는 것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노정에도 반드시 입는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과정이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탄의 어떠한 참소에도 구애됨이 없이 그러한 문제를 자유자재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먹고 입는 문제가 사탄의 조건이 됩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는 일 전체에는 사탄이 침범하려고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속해 있으면 그 가정을 위하여 사는 자체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될 것이요, 하나의 국가에 속해 있으면 그 국가를 위하여 사는 것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될 때 진정으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사는 입장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사실들이 자신의 생활환경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나섰다면 여러분에게 먹을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자신보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굶을 수 있는 마음과 그것을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실천적인 면에서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생활하고 있는가, 봉사하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생활하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의 이 현실을 박차고 그 나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가를 반성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4) 하고 탄식하던 그 심정을 여러분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3-127)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여러분에게는 현실에서 주고 싶은 마음을 중심삼고 생애 전체의 가치를 찾아 세워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이 땅 위의 소망의 실체로 왔던 분이 2천 년 전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인간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서 살았던 분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먹는 빵 한 조각과 입는 옷 한 벌에 하나님의 애달픈 눈물자국이 어려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탄식의 조건입니다.
이제 다시 오시는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주기 위한 이념의 주인공으로 오십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천리원칙을 통하여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갖고 그 사랑을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주기 위하여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주님을 통해서 인간조상이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인간의 가치를 되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왔다가 제물로 간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의 동반자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오늘날의 신앙자들이 그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 신자들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기독교가 발전할 수 없으며, 나라에 백성들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그 나라가 번영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예고하신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예수님이 이 땅을 대해서 애달파하던 그 심정을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서 체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시며,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이 땅의 모든 악의 세력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존재가 나타나게 되면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되고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인데, 아직까지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그러한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있었는데, 역사상의 선조들은 그 선지 선열들을 매장하고 핍박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 자체를 세워 그러한 역사적인 모든 잘못을 청산짓고자 하는 것이 여러분을 대하는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피 흘리는 십자가의 길을 참고 갔던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지금까지 6천 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자기 일신의 영광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던 그 길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위한 길을 가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수많은 선지 선열들 앞에 떳떳이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죽어서 영계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나서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지 못합니다. 믿는 것도 자기를 위해 믿고, 죽는 것도 자기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죽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떳떳이 설 수 없습니다. (3-129)

하나님의 참자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을 부정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자신을 대한 아버지의 소망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그 환경과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일신을 부정하고 애달픈 마음으로 하늘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사회, 민족, 국가와 세계를 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부정하고라도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이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서러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자기 일신 때문에 서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서러워하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애쓸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목적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인류를 위하여 수고했던 예수님의 심정적인 기준까지 나아가야 하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리는 참자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불의를 보면 분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하나님의 주고 싶어하시는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이 세상 끝까지라도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면서 지금까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는 과정에서 사탄과 싸워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여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자리에 처하든지 그곳에서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에 나가면 그 사회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사탄과 싸워 승리하고, 국가에 나가면 그 국가의 제일 어려운 문제를 책임지고 나서서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당장에는 망하는 것 같지만 뒤에는 흥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어느 집안이나 직장 혹은 단체나 국가의 주인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효도를 다하고, 남편과 아내가 열남과 열녀의 도리를 다하고, 국왕을 위해서 충신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가정의 주인이며 국가의 주인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서 지금까지 6천 년 섭리역사의 목적을 대신하고, 오늘의 현실적이고 우주적인 이념을 대신하여 어떠한 골고다의 길이 가로막히더라도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면서 늠름하게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훌륭한 모습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고 몸으로 화하여 사탄까지도 여러분을 존경하고 따르게 될 때, 비로소 여러분은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는 백성으로서 나설 수 있습니다. (3-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