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0일
본향의 나라 (훈독본)
날짜 : 1968. 3. 10(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GNT1g-kD4c4&list=PLtan-zpeJeilD6pJZCkogCwve2117SlW6&index=10
오늘은 ‘본향의 나라’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본향의 나라란 복귀해야 할 나라입니다.
본향의 세계를 소망해 온 인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인간의 모든 희망이 이루어진 행복한 세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소망하며 찾아 나왔던 본심이 원하는 어떠한 이상적인 나라가 있을 것이냐? 우리 인간은 자기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기에 인간 자체의 능력으로서는 본심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심이 바라고 있는 그 나라를 “내가 만들겠다. 어떻게든지 내가 이루겠다” 하는 주체적인 입장의 마음보다도 그러한 나라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이 상대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본향의 나라, 즉 이상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힘뿐만 아니라 배후에 어떠한 절대적인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향의 나라와 본향의 땅을 찾아야 되는 것이 온 인류의 소원입니다. (19-276)
왜 이 세계를 청산지어야 하는가
오늘날 이 세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도 지금의 세계는 본향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는 현세와 타협하는 것을 부정해 왔습니다. 현재의 세계에 목적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자의에 의해서 생활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세계도 본향의 세계를 고대하는 사람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환경과 사회요, 국가와 세계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할 때, 환영할 수 없으면서 처단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나할것없이 타락권 내에 서 있는 것이요, 또 더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과 비탄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슬픔과 고통이 연속되어 사망과 파괴를 가져오고, 결국에는 종말을 맞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거쳐오면서 그 무엇인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이 세상이 파괴될 끝날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또,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고 할진대 그 절대자는 절대자의 본의에 화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바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절대자도 이 땅 위에 끝날이 온다는 사실을 예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아무리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태어나기를 불행한 자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본심이 고대하는 본향의 가정, 본향의 사회, 본향의 나라, 본향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들이 그리워하고 소망하고 요구하는 그 모든 것들은 절대로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을 타파해 버리고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아무리 이것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알지 못하고 처리하게 되면 완전한 처리가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인간들이 자기들 나름으로는 아무리 잘 처리하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본향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인격의 기대, 가정의 기대, 또한 사회의 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준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만으로는 도저히 안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 것”이라고 자칭하는 내가 되어야 자주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주성을 가져야 나를 주관하고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여러분 자신인 것은 어찌된 일이에요? (19-279)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상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 자신이 태어났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동기가 되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마음은 출생한 그 당시의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관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기반에서 우리의 본심이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나와 상관이 없는 가운데서 흘러 내려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다른 그 무엇이 동기가 되어서 흘러 내려온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주체의 입장이 아니라 대상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나를 좌우할 수 있는 어떠한 생명의 근원이 있었기 때문에 내 자체가 거기에서 흘러 내려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는 자체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서 세상사를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본심의 기준과 완전히 일치가 되어 처리되지 않았다면 처리된 그 문제가 또다시 부정의 인연에 부딪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힘만으로는 새로운 이상세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망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역사의 주류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신(神)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행을 당했고 또한 망해 왔습니다. 결국, 수 없는 운명의 길 가운데서 인간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도탄 가운데서 인간이 방향을 모색한다고 하지만 그 방향이 애매하여 암중모색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안개 속의 허공을 뚫고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상에 큰 뜻을 품고 세계와 인류의 장래를 염려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이 역사는 흘러가고 있습니다. (19-280)
예수님도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누가복음 12:49) 했으며, 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한복음 16:12-13) 하면서 탄식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그 배후에는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외적인 것보다도 내적인 이면의 깊은 그 무엇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악한 세상을 처단할 수 있는 동기요, 기원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마음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불행의 요건이 있다면, 자기가 그것을 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험난한 모든 환경이 자기를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통일교인들은 이것을 뚫고 나가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19-281)
마음 몸 통일이 필요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로 합하여 받들 수 있는 이상의 인격, 이상의 중심, 이상의 양심을 중심하고 일체화된 이상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체화된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된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영원히 임재하실 수 있는 사랑이 피어납니다.
예수님도 자기 자신을 내버릴 정도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느 종교나 사랑을 중심삼고는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일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가져야 하겠습니다. (19-282)
아무리 세상에서 잘난 사람이라도 마음과 몸이 화합하지 못하는 한 그 사람의 집안은 망하거나 비참하게 됩니다. 즉, 마음과 몸이 하나되지 못한 개인들이 모여서 가정을 이루면 화합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재미나게 살고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하나되지 못한 가정은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어떤 고난보다, 어떤 환난보다, 그 무슨 전쟁의 피해보다도 내 몸과 마음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피해가 더 큽니다. 이 싸움에서 마음의 패전으로 인해 산더미 같은 슬픔의 패잔물이 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아무리 큰소리를 친다고 해도 그 자체는 패잔병의 팻말을 가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본래는 마음과 몸이 싸워 마음이 승리함으로 인하여 언제나 몸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본심 자체를 분석해 보면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본심은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자동적으로 생깁니다. 이러한 본심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상세계, 즉 본향의 세계를 추구하며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본심의 작용이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19-284)
마음의 종교시대가 와야 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마음의 만족을 위한 세계가 아니라 몸의 만족을 위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몸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마음의 행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즉, 몸을 위주한 외적인 세계를 중심삼고는 자기의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지도 않는 물질주의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도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까지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대치시킬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와 권위를 가진 마음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어요? 그러한 자리를 중심삼고 출발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개인으로 말미암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새로이 천지간에 싹트지 않고는 이 세계를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나 하나를 중심삼고 통일될 수 있는 절대적인 안식처가 어디냐? 예수님도 그것을 찾기 위해 이 땅에 왔던 것이요, 하나님도 그것을 찾고 계십니다. 그 기점을 찾아야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가 찾아가야 할 최고의 기준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자의에 의해서 통일시킬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자의에 의해서 평화의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남도 믿지 못하고 자신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요? 여기에서 종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막연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 전에 먼저 마음을 믿는 마음의 종교시대가 있어야 됩니다.
사람들은 가계의 장부를 정리할 때 수입과 지출이 얼마인지 정확히 결산을 합니다. 그렇게 장부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도 수지결산을 철저히 하는데, 여러분의 인생은 어때요? 일생 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서 수지결산을 해보았어요? 그렇다면 그 결과가 적자예요, 흑자예요? 적자라면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는 자리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죽을 수 있어야 하는데, 죽음 앞에서 살려고 허덕이는 것은 적자인생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절대성을 중심삼고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 흑자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해 주기 위한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 종교는 점진적이 아니고 폭발적이요, 순간적인 원동력을 가진 종교이어야 합니다. (19-286)
인간이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것
여기서 여러분은 근본 된 인생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에서부터 벌어집니다. 그 사랑의 동기로부터 본연적인 사랑의 기준을 복귀하자는 것이 역사시대에 수많은 인류들이 소망하던 내용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일평생 살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했다고 해도 본연의 사랑을 중심하지 않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또 그런 자식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본연의 사랑의 기준에 의하여 부부를 이루어 자식을 낳아야 모든 것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본연의 사랑이 기원이 되고 중심이 되어 새로이 태어난 본연의 아들딸들은 그 본성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사무쳐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무슨 제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연의 사랑으로부터 통일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사랑의 본향을 찾자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종교가 나왔습니다. 본연의 사랑을 중심하고 부부의 마음이 하나될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시작되어 영원까지 골고루 퍼져 나갑니다. 그것은 그들이 빼놓을 수 없고 분립시킬 수 없는 힘의 모색권 내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주체와 대상이 하나될 수 있고 천주를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의 근원이 되는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부부를 통하여 태어난 아들딸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예수님은 아들이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질적인 가정에 있어서 예수님은 형이고 우리는 동생으로서 형제입니다. 이렇듯 개인의 기준과 가정의 기준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오늘날의 인간 세상은 본연의 사랑 보따리를 갖지 못했습니다. 인간시조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되었다면, 오늘날의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요한복음 3:16)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을 알고 보아야 이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우리의 인간세계에 본향에 갈 수 있는 대표적인 다리를 놓아 줄 수 있는 설계자, 기술자가 되는 그 한 분이 이 땅 위에 오신다면 만우주의 인간들은 그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되지 말래도 통일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무엇으로 통일하느냐?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청산지어야 할 타락한 세계의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부부를 이루어 아무리 부모를 모시고 천년만년 살자고 꿈꾸고 노래하더라도 죽으면 다 천리만리 헤어집니다. 아무리 인간이 행복을 붙들고 천년만년 살고자 해도 며칠만 지나면 “아이고, 난 왜 이래” 하게 됩니다. 그러한 불행의 상태가 횡적으로 전개되어 세계화된 것이 오늘날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세계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19-292)
본향의 나라를 위주로 생활해야
그런 사랑을 종교의 교리에 적용하고, 그런 관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세계를 노래하고 새로운 종족, 민족, 국가를 생활무대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서 세계를 틀림없이 뜻 앞에 세우겠다는 설계도를 지니고 다니는 남자와 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교인 여러분이 전부 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종교는 본향의 나라를 연결해 주는 다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사는 것보다 본향의 나라에서 사는 것을 더 원해야 됩니다.
본향의 나라, 그 나라는 부부가 서로 헤어져 있어도 사랑할 수 있고, 보잘것없는 사람도 어디 가서든지 환영받을 수 있는 그러한 나라가 본향의 나라입니다. 각 나라마다 자기 민족의 주체성과 민족문화를 자랑하지만, 그것은 본향의 나라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국경을 폐쇄해 놓고 살아온 민족들이 쌍수를 들어 본향의 나라를 환영하는 그 한때를 중심삼고 국가에 힘을 작용시킬 수 있는 세계가 와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본향의 나라를 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19-294)
큰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목적이 희생되어야 한다
봄빛이 찾아오면 그 봄빛을 백방으로 흡수할 수 있는 생명의 자주성, 생명의 흡수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봄철보다도 먼저 꽃을 피울 수 있는 봄철의 왕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유엔(UN)이 창설되어 세계를 위한 공동적인 목표를 중심삼고 큰 목적을 달성하고 행복한 세계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내심의 본향에 대한 그리움이 하늘과 더불어 그 무엇인지 모르는 사정에 합할 수 있는 기반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선시켜 통일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민족 앞에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냐? 교회의 마룻바닥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자신의 인격을 갖추어서 가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가정이 서게 되면 가정은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희생될 수 있어야 합니다. 큰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목적이 흡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요, 민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를 찾기 위한 것이요, 국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 나라만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을 전부 복귀하자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나할것없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자유의 천국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할 수 있는 하나님 사랑의 동산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8단계의 과정을 넘어가야 됩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희생시키고라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유린하고 깨어져 나갔던 사람들이 그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본연의 사랑으로 받들어 세우는 때가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안 오면 이 세상은 천국을 찾아가는 노정을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요, 가정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요, 종족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요, 국가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천륜의 운세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선진국가의 일등 국민이라도 천륜의 운세에 역행할 때는 망하게 됩니다. (19-301)
우리의 사명
우리는 본향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인류가 원하는 본향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본향의 개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개인과 더불어 가정이 일치되어야 종족, 국가, 세계, 하늘땅, 그리고 하늘 사랑의 법도가 세워집니다. 그 논리 위에서는 어느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을 가지고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혁명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지구성을 살려내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민족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많아질 때 본향의 세계가 창건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세계에 가고 싶거든 여러분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씨앗을 뿌리는 데 있어서 벅찬 소망을 갖고 미래의 열매에 대해 축복해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모든 전통을 뛰어넘어 새 농토에 씨앗을 뿌릴 수 있게 수호해 주자는 것입니다. 국가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저 높은 곳을 향해 출발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해서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는 정병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싸워 나가는 통일의 정병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했으니, 부디 목적한 결과가 거룩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이 지향하시고 인류가 소망하는 심정의 세계까지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한 본향 땅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본향의 나라를 창건할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각오로 뜻 앞에 용진할 수 있는 정예부대가 되어 주기를 부탁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9-308)*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0일, 원문
본향의 나라
날짜 : 1968. 3. 10(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은 ‘본향의 나라’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본향의 나라란 복귀해야 할 나라입니다.
본향의 세계를 소망해 온 인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인간의 모든 희망이 이루어진 행복한 세계가 아닙니다. 자타를 막론하고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개인이 그러한 세계에 살고 있고, 가정이 그러하고, 민족 국가 세계가 그러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소망하며 찾아 나왔던 세계가 이와 같은 세계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더 높고 귀한 소망의 나라일 것이냐? 그리고 우리의 본심이 원하는 어떠한 이상적인 나라가 있을 것이냐? 우리 인간은 자기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지금까지 역사를 이루어 왔고 지금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기에 인간 자체의 능력으로서는 본심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심이 바라고 있는 그 나라를 “내가 만들겠다. 어떻게든지 내가 이루겠다” 하는 주체적인 입장의 마음보다도 그러한 나라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이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본향의 나라, 즉 이상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힘뿐만 아니라 배후에 어떠한 절대적인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기독교에서 말하듯이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슬픔의 세상이요, 고통의 세상이요, 비탄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을 심판해 버리고 우리의 본심이 원하는 본향, 즉 새로운 이상세계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들도 그러한 이상의 나라를 흠모하는 중심사상을 세워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필코 본향의 나라와 본향의 땅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향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온 인류의 소원입니다. (19-276)
왜 이 세계를 청산지어야 하는가
오늘날 이 세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도 사실은 본향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있지만 역시 본향의 국가들이 아닙니다. 하나의 이상세계를 지향해 나아가고 있는 현시대를 보아서도 지금의 세계는 본향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자인하면 자인할수록 이러한 환경 전체를 환영해야 될 것이냐, 아니면 배척해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의 나라와 세계가 우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본향의 여건을 갖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는 현세와 타협하는 것을 부정해 왔습니다. 현재의 세계에 목적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자의에 의해서 생활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아무리 훌륭한 세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세계도 본향의 세계를 고대하는 사람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환경과 사회요, 국가와 세계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할 때, 환영할 수 없으면서 처단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나할것없이 타락권 내에 서 있는 것이요, 또 더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과 비탄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슬픔과 고통이 연속되어 사망과 파괴를 가져오고, 결국에는 종말을 맞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거쳐오면서 그 무엇인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이 세상이 파괴될 끝날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또,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고 할진대 그 절대자는 절대자의 본의에 화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바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절대자도 이 땅 위에 끝날이 온다는 사실을 예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끝날이 온다는 것을 자타가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활이 행복의 기원이 되면서 행복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서 아무리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태어나기를 불행한 자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결국, 불행한 환경을 거쳐 불행의 종말을 맞아야 할 인생입니다. 본심이 고대하는 본향의 가정, 본향의 사회, 본향의 나라, 본향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들이 그리워하고 소망하고 요구하는 그 모든 것들은 절대로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을 처리해야 되겠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이것을 타파해 버리고 처리해야 합니다. 만약 이 세계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처리하기 위한 어떠한 사회활동이나 세계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아무리 이것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알지 못하고 처리하게 되면 완전한 처리가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인간들이 자기들 나름으로는 아무리 잘 처리하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본향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인격의 기대, 가정의 기대, 또한 사회의 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준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만으로는 도저히 안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 것”이라고 자칭하는 내가 되어야 자주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주성을 가져야 나를 주관하고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여러분 자신인 것은 어찌된 일이에요? (19-279)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상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기 스스로가 동기가 되어 출발되었다면, 주체성을 가진 나는 자동적으로 거기에 대한 결과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태어났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동기가 되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마음은 출생한 그 당시의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관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기반에서 우리의 본심이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나와 상관이 없는 가운데서 흘러 내려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다른 그 무엇이 동기가 되어서 흘러 내려온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주체의 입장이 아니라 대상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나를 좌우할 수 있는 어떠한 생명의 근원이 있었기 때문에 내 자체가 거기에서 흘러 내려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는 자체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서 세상사를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본심의 기준과 완전히 일치가 되어 처리되지 않았다면 처리된 그 문제가 또다시 부정의 인연에 부딪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인간으로서는 이 세계의 그 무엇을 부정할 수 있고 처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강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이나 새로운 세계를 보장하는 절대적 기준을 이룰 수 있는 터전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힘만으로는 새로운 이상세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망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역사의 주류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신(神)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행을 당했고 또한 망해 왔습니다. 결국, 수 없는 운명의 길 가운데서 인간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도탄 가운데서 인간이 방향을 모색한다고 하지만 그 방향이 애매하여 암중모색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안개 속의 허공을 뚫고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상에 큰 뜻을 품고 세계와 인류의 장래를 염려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이 역사는 흘러가고 있습니다. (19-280)
예수님도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누가복음 12:49) 했으며, 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한복음 16:12-13) 하면서 탄식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그 배후에는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외적인 것보다도 내적인 이면의 깊은 그 무엇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악한 세상을 처단할 수 있는 동기요, 기원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마음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불행의 요건이 있다면, 자기가 그것을 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험난한 모든 환경이 자기를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통일교인들은 이것을 뚫고 나가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이 아무리 평화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지만 인간 세상의 그 무엇을 가지고는 세계적인 평화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지금보다도 옛날의 많은 도인들이 정성을 들였던 것으로 이미 그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발달된 과학문명 속에서 실존주의와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그 이상을 탐구하겠다고 허덕이는 판국입니다.
그러면 이런 시대와 달리 과거의 도인들은 심산유곡에 들어가 “마음의 욕구, 마음의 본향이 어디일 것이냐” 하면서 내적인 내용을 가지고 온갖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인격 기준을 찾아 세우고, 그 인격이 기뻐할 수 있는 선의 세계인 인류의 지상천국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정성들이고 기도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땅을 정비하고 이 세계를 해결지을 수 있는 기준을 아직까지 찾아 세우지 못했는데 주님이 와서 세상을 구할 수 있으며, 여러분이 우리 인생이 소망하는 본향의 나라인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19-281)
마음 몸 통일이 필요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몸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곧바로 가기를 바라는데, 몸은 반대로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의 마음이 비뚤어졌다”고 말할 때, 마음이 비뚤어진 것을 보았어요? 사람의 마음은 그 행동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곧다는 것도 행동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은 사람은 통일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마음과 몸이 하나로 합하여 받들 수 있는 이상의 인격, 이상의 중심, 이상의 양심을 중심하고 일체화된 이상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체화된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된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영원히 임재하실 수 있는 사랑이 피어납니다.
예수님도 자기 자신을 내버릴 정도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느 종교나 사랑을 중심삼고는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일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가져야 하겠습니다.
마치, 태양계가 어떠한 원칙을 따라서 끝없이 도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일체를 이루어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자연법도의 힘에 일치되는 것보다도 더 고차적인 일체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의 마음과 몸으로써 화해진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온다면 어떻겠어요? 그 사람의 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은 어떤 것이며, 그 사람이 생각하는 인륜도덕은 어떤 것이겠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부터 폭발되어 흘러나오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가정관, 사회관, 국가관, 세계관, 우주관은 어떤 것이겠어요?
인간이 본향을 찾아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인격을 이루었다면, 그 인격은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진 인격권 내에서 지배받는 인격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넘어 그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준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본연의 가정, 종족, 민족을 세울 수 없습니다. (19-282)
아무리 세상에서 잘난 사람이라도 마음과 몸이 화합하지 못하는 한 그 사람의 집안은 망하거나 비참하게 됩니다. 즉, 마음과 몸이 하나되지 못한 개인들이 모여서 가정을 이루면 화합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재미나게 살고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하나되지 못한 가정은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어떤 고난보다, 어떤 환난보다, 그 무슨 전쟁의 피해보다도 내 몸과 마음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피해가 더 큽니다. 이 싸움에서 마음의 패전으로 인해 산더미 같은 슬픔의 패잔물이 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아무리 큰소리를 친다고 해도 그 자체는 패잔병의 팻말을 가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본래는 마음과 몸이 싸워 마음이 승리함으로 인하여 언제나 몸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할 때 그 말은 그 사람의 외모나, 학벌, 경력 또는 지위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원리적인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외적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것만을 강조해서는 안됩니다. 마음이 하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변함 없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인격자입니다.
옛날의 성현들이 가르쳐 준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사상과 더불어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을 중심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하늘과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어요? 세계 인류와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습니까? 또한, 땅을 사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심 자체를 분석해 보면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본심은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자동적으로 생깁니다. 이러한 본심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상세계, 즉 본향의 세계를 추구하며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본심의 작용이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19-284)
마음의 종교시대가 와야 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어떤 세계예요? 마음의 만족을 위한 세계가 아니라 몸의 만족을 위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몸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마음의 행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즉, 몸을 위주한 외적인 세계를 중심삼고는 자기의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 그 무엇을 가지고도 안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지도 않는 물질주의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교육현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전부 물질문명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도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까지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대치시킬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와 권위를 가진 마음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어요? 그러한 자리를 중심삼고 출발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개인으로 말미암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새로이 천지간에 싹트지 않고는 이 세계를 살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어차피 한번은 거부당하고 제거당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 번은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과 몸이 하나되지 못한 여러분 자체를 두고 볼 때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마음과 몸은 대동아전쟁보다 더 위급하고, 핵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전쟁은 종전이라도 있었지만, 여기에는 휴전도 없고 종전도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 땅 위에 존속하기 시작한 그날부터 끝날 때까지 우리의 마음 바탕에는 휴전도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어 서로 싸워 왔고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싸워 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였습니다. 어느 한 날 전쟁이 그치는 날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 싸움의 근거지가 어디냐 하면 몸과 마음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움의 근거지가 됨으로 인하여 개인, 가정, 종족, 국가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국에는 외적인 세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나 하나를 중심삼고 통일될 수 있는 절대적인 안식처가 어디냐? 예수님도 그것을 찾기 위해 이 땅에 왔던 것이요, 하나님도 그것을 찾고 계십니다. 그 기점을 찾아야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신, 수많은 종교인들도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를 고심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인류가 찾아가야 할 최고의 기준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자의에 의해서 통일시킬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자의에 의해서 평화의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남도 믿지 못하고 자신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요? 여기에서 종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막연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 전에 먼저 마음을 믿는 마음의 종교시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종교가 이 세계의 환경을 점차적으로 부정하는 힘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어느 한 순간에 한꺼번에 청산지을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몇 천년 동안 얼어붙은 얼음덩어리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나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따뜻한 봄날을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지금까지 지내온 역사상에 수많은 고비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의 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와야 합니다. 점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보다도 급진적이고 폭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계의 장부를 정리할 때 수입과 지출이 얼마인지 정확히 결산을 합니다. 그렇게 장부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도 수지결산을 철저히 하는데, 여러분의 인생은 어때요? 일생 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서 수지결산을 해보았어요? 그렇다면 그 결과가 적자예요, 흑자예요? 적자라면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는 자리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죽을 수 있어야 하는데, 죽음 앞에서 살려고 허덕이는 것은 적자인생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절대성을 중심삼고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 흑자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해 주기 위한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 종교는 점진적이 아니고 폭발적이요, 순간적인 원동력을 가진 종교이어야 합니다. (19-286)
인간이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것
여기서 여러분은 근본 된 인생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에서부터 벌어집니다. 그 사랑의 동기로부터 본연적인 사랑의 기준을 복귀하자는 것이 역사시대에 수많은 인류들이 소망하던 내용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일평생 살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했다고 해도 본연의 사랑을 중심하지 않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또 그런 자식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본연의 사랑의 기준에 의하여 부부를 이루어 자식을 낳아야 모든 것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천륜대도를 펼 수 있는 법도와 질서의 세계에서 운행되는 모든 궤도를 주관할 수 있는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한 인간 본연의 가치기준에서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인류의 시조도 좋아하는 봄날, 행복의 꽃이 피는 봄날을 맞이하여 환희의 천지를 한꺼번에 품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본연의 사랑이 기원이 되고 중심이 되어 새로이 태어난 본연의 아들딸들은 그 본성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사무쳐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무슨 제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연의 사랑으로부터 통일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사랑의 본향을 찾자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종교가 나왔습니다. 본연의 사랑을 중심하고 부부의 마음이 하나될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시작되어 영원까지 골고루 퍼져 나갑니다. 그것은 그들이 빼놓을 수 없고 분립시킬 수 없는 힘의 모색권 내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주체와 대상이 하나될 수 있고 천주를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의 근원이 되는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부부를 통하여 태어난 아들딸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예수님은 아들이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질적인 가정에 있어서 예수님은 형이고 우리는 동생으로서 형제입니다. 이렇듯 개인의 기준과 가정의 기준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왜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느냐? 우리 인생의 본심이 추구하는 본향의 관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알려 주는 내용을 들고 나온 기독교가 자동적으로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간 세상은 본연의 사랑 보따리를 갖지 못했습니다. 인간시조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되었다면, 오늘날의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게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기원이 어디에 있어요?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영화를 보나 노래를 들어 보나 사랑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표현하는 형태는 갖추었지만 본래의 사랑의 내용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본향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본연의 사랑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요한복음 3:16)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을 알고 보아야 이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우리의 인간세계에 본향에 갈 수 있는 대표적인 다리를 놓아 줄 수 있는 설계자, 기술자가 되는 그 한 분이 이 땅 위에 오신다면 만우주의 인간들은 그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되지 말래도 통일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무엇으로 통일하느냐?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청산지어야 할 타락한 세계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사람들이 일생 동안 즐기고 같이하지만 영원한 세계와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부부를 이루어 아무리 부모를 모시고 천년만년 살자고 꿈꾸고 노래하더라도 죽으면 다 천리만리 헤어집니다. 아무리 인간이 행복을 붙들고 천년만년 살고자 해도 며칠만 지나면 “아이고, 난 왜 이래” 하게 됩니다. 그러한 불행의 상태가 횡적으로 전개되어 세계화된 것이 오늘날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세계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19-292)
본향의 나라를 위주로 생활해야
그렇지만 선생님은 본향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입니다. 거꾸로 서도 바로 선 것 같은 그 세상에서는 서로 부닥쳐도 좋습니다. 어서 빨리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이 세상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새로운 나라가 이 지구성에 벌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을 종교의 교리에 적용하고, 그런 관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세계를 노래하고 새로운 종족, 민족, 국가를 생활무대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서 세계를 틀림없이 뜻 앞에 세우겠다는 설계도를 지니고 다니는 남자와 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교인 여러분이 전부 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본향의 나라를 연결해 주는 다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사는 것보다 본향의 나라에서 사는 것을 더 원해야 됩니다. 그것은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본향의 나라, 그 나라는 어떠한 곳에 한정된 나라가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헤어져 있어도 사랑할 수 있고, 보잘것없는 사람도 어디 가서든지 환영받을 수 있는 그러한 나라가 본향의 나라입니다. 각 나라마다 자기 민족의 주체성과 민족문화를 자랑하지만, 그것은 본향의 나라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국경을 폐쇄해 놓고 살아온 민족들이 쌍수를 들어 본향의 나라를 환영하는 그 한때를 중심삼고 국가에 힘을 작용시킬 수 있는 세계가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본향의 나라가 문제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위주로 할 것이냐, 본향의 나라를 위한 생활을 위주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생활을 해야 되겠어요? 여러분은 본향의 나라를 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19-294)
큰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목적이 희생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지연됨으로 인해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왔습니다. 칠흑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광명한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광명한 빛을 갖추어 본향을 찾아가야 됩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원동력을 지녀야 합니다.
봄빛이 찾아오면 그 봄빛을 백방으로 흡수할 수 있는 생명의 자주성, 생명의 흡수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봄철보다도 먼저 꽃을 피울 수 있는 봄철의 왕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국가에 운세가 왔으면 그 운세를 가지고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는 안됩니다. 즉, 한 나라만을 위한 세계가 아니라 세계를 위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엔(UN)이 창설되어 세계를 위한 공동적인 목표를 중심삼고 큰 목적을 달성하고 행복한 세계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내심의 본향에 대한 그리움이 하늘과 더불어 그 무엇인지 모르는 사정에 합할 수 있는 기반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선시켜 통일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민족 앞에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냐? 교회의 마룻바닥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자신의 인격을 갖추어서 가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가정이 서게 되면 가정은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희생될 수 있어야 합니다. 큰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목적이 흡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요, 민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를 찾기 위한 것이요, 국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 나라만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을 전부 복귀하자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나할것없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자유의 천국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할 수 있는 하나님 사랑의 동산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8단계의 과정을 넘어가야 됩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희생시키고라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유린하고 깨어져 나갔던 사람들이 그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본연의 사랑으로 받들어 세우는 때가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안 오면 이 세상은 천국을 찾아가는 노정을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통일교회에서 해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일을 해 나왔습니다. 우리는 몰리고 쫓김을 받던 자리에서도, 피를 토하던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하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빌어먹던 자리에서도 남을 위하여 봉사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요, 가정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요, 종족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요, 국가의 운세를 따라 사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천륜의 운세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선진국가의 일등 국민이라도 천륜의 운세에 역행할 때는 망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상응작용과 상극작용이 있습니다. 상응작용이 되려면 서로 일치해야 됩니다. 이 세계에서는 상대를 위하는 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것을 싫다고 하는 것은 악입니다. 그것을 이루어야 영존할 수 있는 기원이 생깁니다. 거기에서 우주의 보상원칙에 의한 존속의 기원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너도 나와 같이 되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곧 선입니다. (19-301)
우리의 사명
그러면 이 엄청난 사실을 중심삼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우리는 본향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본향의 나라를 원할 것입니다. 인류가 원하는 본향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본향의 개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개인과 더불어 가정이 일치되어야 종족, 국가, 세계, 하늘땅, 그리고 하늘 사랑의 법도가 세워집니다. 그 논리 위에서는 어느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을 가지고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혁명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지구성을 살려내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민족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많아질 때 본향의 세계가 창건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세계에 가고 싶거든 여러분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 본향의 나라로 가야 합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천하만민이 원하는 소망의 나라로 가야 합니다. 자유의 천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자체에 속한 것만 귀한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봄철이 찾아오면, 농부는 씨앗을 뿌릴 줄 알아야 됩니다. 귀한 볍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렇게 뿌리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철에 씨를 뿌릴 줄 모르는 사람은 농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씨앗을 뿌리는 데 있어서 벅찬 소망을 갖고 미래의 열매에 대해 축복해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모든 전통을 뛰어넘어 새 농토에 씨앗을 뿌릴 수 있게 수호해 주자는 것입니다. 국가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저 높은 곳을 향해 출발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해서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는 정병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싸워 나가는 통일의 정병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했으니, 부디 목적한 결과가 거룩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이 지향하시고 인류가 소망하는 심정의 세계까지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한 본향 땅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본향의 나라를 창건할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각오로 뜻 앞에 용진할 수 있는 정예부대가 되어 주기를 부탁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9-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