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7일)

훈독왕 | 20201225071659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7일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 (훈독본) 

날짜 : 1963. 4. 1(월)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sUsv1fRjXsE&list=PLtan-zpeJeilD6pJZCkogCwve2117SlW6&index=7

 


누구에게도 소망을 둘 수 없는 현실

여러분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고, 한국 나라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고, 한국 사람의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마다 천태만상으로 내용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한국 사람이요, 한국 백성으로 태어났고, 한국 사람의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되 그 내용으로 들어가면 모두 다 가정 환경이 다르고 부모의 사정이 다른 각각의 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하는 도가 다릅니다. 경기도가 있으면 경상도가 있고 전라도가 있습니다. 그렇게 팔도강산에 널려 있던 여러분이 모였습니다. 그러니만큼 처하여 있는 지역적인 환경도 다릅니다. 그렇게 다른 입장에 살면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 슬퍼하는 것, 생활하는 내면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 소망을 품고 싸워 나가는 방식, 혹은 목적을 세우는 것도 전부 다 다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그 내용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혹은 범위를 넓게 가지면 가질수록 거기에는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사정들이 다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신을 중심삼고 가정, 부락, 면, 군, 도 혹은 한국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게 될 때 모든 환경이 나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게 돼 있느냐? “아, 여기가 내가 영원히 찾아가려던 본향 땅이로구나! 여기는 억천만 년 행복의 콧노래를 불러가면서 살 수 있는 우리 삼천리 반도요, 그럴 가능성이 넘쳐흐르는 삼천만 민족이다”라고 여러분이 생각해 봤느냐 할 때 어때요?

지금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움직이는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소망을 둘 수 없는 입장에 있으니까 삼척동자도 “나는 불행한 사람이요, 나만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널려 있는 삼천만이 불행하고, 삼천만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삼천리 동산이 불쌍하고, 삼천리 동산만 불쌍한 것이 아니라 삼천리 반도와 삼천만 민족을 지도하는 주권도 불행한 주권이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을 넘어 이 땅 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수많은 주권들을 가지고 자기 국가의 문화예술이나 어떤 정책적인 이념을 세워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고 세계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국가들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때 국가나 국민 혹은 그 주권이 우리가 영원히 찾아 갈 수 있는 것들은 못 됩니다. 영원히 내 생명과 더불어, 내 마음과 더불어, 내 이념과 더불어 영원한 생활의 복지로 기반을 삼아서 거기에 뼈를 묻겠다고 할 수 있는 국가가 있느냐 할 때 어때요?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가 지상에서 제일가는 국토요, 그 주권이 오늘날 지상에서 제일가는 주권이요, 그 민족이 제일가는 민족이요, 그 백성이 제일가는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진정한 내 본심에서 바라는 이상적인 관으로 볼 때 과연 그것이 내가 소망하며 찾아가서 살 수 있는 나라일 것이냐? 아닙니다.


지금 민주주의 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선진국가의 입장에 있는 미국을 두고 볼 때도 미국이 칭찬하고, 미국이 높이고, 미국이 자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 하면 그렇게 못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도 아직까지 자기들 가운데서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좀더 세계적인 사람을 찾고 있고, 역시 좀더 만민이 우러러 바라볼 수 있는 국민성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 수많은 민족들이 그들의 전통과 역사적인 배경을 초월하여 영원을 중심삼고 숭배할 수 있는 국가의 주권을 찾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본심이 고대하는 본연의 나라, 본연의 동산, 본연의 주권이라는 기준은 오늘날 세계에 나타난 어떤 국가의 형태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2-135)

마음으로 찾고 있는 이념적인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인연을 가지고, 어떠한 생활무대를 가지고, 어떠한 생애노정을 거쳐서 마음으로 그리면서 좋아할 수 있는 이념을 세우느냐? 그럴 수 있는 최후의 종착지, 최후의 이념적인 보금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할 때 막막하고 아득하고 황무지와 같은 천지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변천합니다. 시대에 따라서 모든 사회환경이 변천해 나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과연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는 어디에 있을 것이냐? 우리의 마음으로 찾고 있는 이념적인 천국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겉으로 말을 하지 않고 행동은 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아 헤매는 무리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무리들 가운데 가담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혼자 있으면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심각한 문제에 부딪쳐서 홀로 해결하지 못할 때는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도 훌륭한 스승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스승을 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연을 해결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그 다음에 보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살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합니다. 


인류가 소망하며 가고 싶은 본향은 어디에 있느냐? 보고 싶은 그 나라, 보고 싶은 그 백성, 보고 싶은 그 주권이 있을 것입니다. 크게 보면 더 큰 기준까지 있겠지만, 작게 보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가서 본 뒤에는 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 스스로를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52-138)

각 종교에서 바라는 메시아

우리가 가야 할 최후의 길을 다 가면 우리가 소망하고 온 인류가 소망하는 나라요, 소망의 천지가 생겨납니다. 하늘땅이 있다면 그 하늘땅이 전부 다 소망의 나라에 속한 영토요, 그 권내에 사는 수많은 인류는 그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 소망의 나라의 주권은 온 존재세계에서 소망하는 주권입니다.


우리 인간의 양심이 소망하는 기준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소망적인 논제를 세워 가지고 그 기준을 세워 놓지 않을 수 없기에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그런 것을 향하여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52-141)


이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주권이 되고, 하나의 민족이 되고, 이 지구가 하나의 영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복잡한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내용을 완비한 이념이 나와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들은 전통과 풍습이 다르고 역사적인 배경이 다릅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합하려면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의 간격을 두고 장벽을 쌓아 놓은 것을 일시에 융합시켜야 됩니다. 그러니까 일시에 민족적인 이념과 감정을 초월하여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소망적인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던 최후의 이념적인 나라를 찾고 하나의 주권과 나라 그리고 백성을 찾아오는 데 있어서는 어느 개인이나 민족을 막론하고 전부 다 그 나라에 정착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온 인류가 본심으로 가고 싶어하는 소망의 나라입니다. 그 소망의 나라가 있으면 지구가 그 나라의 국토가 되고, 세계 인류가 그 나라의 백성들이 되고, 세계의 모든 주권이 그 나라의 주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권을 가지실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억천만금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지금까지 인류가 바라던 소망의 전체를 내포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하늘땅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 땅 위에 나타나면 하나님의 이념을 소개할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류가 소망하는 이념이 어떤 이념인가를 밝히게 될 것입니다. 그 이념은 여기에 복지를 만들 수 있는 이념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하기 위해서 오시는 중심존재가 구세주입니다.

그분은 천지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존재요, 인류 전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존재입니다. 수많은 주권을 합하여 하나의 세계로 통일해 놓고 그 세계와 바꿀 수 있겠느냐 할 때 바꿀 수 없는 분, 절대적인 한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왈(曰) 메시아입니다. (152-143)

통일교회가 해야 할 것

여러분이 그러한 메시아를 만나고 싶어하는 소망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분을 만나려면 참다운 내가 아니면 안됩니다. 참된 것을 주관하고 참됨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참된 사람이 아니면 안됩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내 개인이 참되려면 먼저 내 마음이 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내 몸뚱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참된 기준은 어디에다 세우느냐? 그 참된 기준은 앞으로 세계적인 주권을 대표해서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절대적인 양심의 지도자로 말미암아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 지도자는 그 기준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의 양심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을 모르니까 그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마음의 기준을 세울 수 없는 나입니다. 그리고 내 몸을 중심삼고 생활할 수 있는 기준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절대적이다” 할 수 있는 기준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기준에 일치되는 내 마음의 기준을 세울 수 있고, 그 기준에 일치되는 내 몸뚱이의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만일에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 있다면 그 기준의 가치는 세계적인 주권을 대신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중심삼고 오라고 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상대적인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내가 됩니다.


그래야 구세주가 오면 그 구세주에 의해서 내가 구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힘을 열만큼 가지고 왔으면 내가 거기에 동반되어 열만한 힘에 붙들려 끌려갈 수 있고, 거기에 대해 순응하고, 거기에 대해 동하고, 거기에 대해 어떠한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만 구세주와 관계를 맺습니다. (152-146)

세계가 내적인 하나님 편과 외적인 사탄 편, 또는 내적인 마음 편과 물질적인 몸 편의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유물사관과 유심사관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천국이념을 갖고 나오는 종교와 지상의 천국이념을 갖고 나오는 종교도 있어야 됩니다. 영적인 천국은 마음을 대신하는 것이요, 몸적인 천국은 지상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것은 영육을 합하여 하나의 나에게 규합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천국과 지상천국이 통일될 수 있는 때가 와야 됩니다. 오늘날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의 사조는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의 기점을 기준으로 하여 통일되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온 교회가 통일교회입니다. (152-148)

인생이 찾아가는 길

지금 인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이제는 어떻게든지 모든 것을 조화시켜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시대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끝날이 되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영원을 두고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천국입니다. 아직까지 천국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 봐야 소망이 끝이 나지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가고 싶은 곳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러한 곳이 인생이 가야 할 본향 땅이라는 것입니다.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내 본래의 사람, 본래의 참다운 내 자신, 본래의 참다운 내 마음과 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참다운 내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살아야 할 본래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본래의 기준을 찾아서 헤맵니다. 그러다 보니까 6천 년 역사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본래의 자리에 가 가지고 본래의 사람 노릇을 못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탄식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제 어머니 아버지도 보기 싫습니다. 찾아오는 친구도 보기 싫습니다. 한 번 보면 천 년이라도 들여다보고 싶고 그럴 수 있는 무엇이 그리워집니다.

부모는 자식의 얼굴을 하루 종일 보고도 싫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무한히 봐도 보고 싶을 수 있는 그러한 분을 찾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런 분이 우리의 인생들이 가서 만나 봐야 할 분입니다. 그리고 만나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당신의 마음이 있고, 당신의 사정이 있고, 당신의 심정이 있는 한 나를 떼어놓을 수 없고 나는 당신과 관계를 안 맺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을 중심삼고 당신과 나는 살아야 할 인연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152-151)

지상천국

고향 땅을 찾아가서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은 부모입니다. 그러니까 형제들을 만나서 손목을 붙들고 “우리 부모를 찾아가자” 하면서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 길을 찾아가는 무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입니다. 그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원수가 있으면 생사결단해서 물리치기 위하여 단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수의 세계에서 서로 협조하고 의지하고 의논하면서 고향 땅에 가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한 날을 그리워하며 함께 찾아가는 무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다 소망의 재림사상이 있습니다. 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흑인의 부모도 되고, 황인의 부모도 되고, 백인의 부모도 됩니다. 그분은 오색인종의 부모가 되고, 영계에 알록달록한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 사람들의 부모가 됩니다. 인류라는 인류는 누구든지 다 그 부모를 중심삼고 한 울타리 안에서 산다면, 그곳이 지상천국입니다. 바로, 그 울타리권이 지구성이 되어야 합니다.

만민은 그 울타리 안에서 형제의 인연을 가지고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부모와 자식간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이 맺어집니다. 


부모와 연결되고 형제와 연결될 수 있는 세계형 가정기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하나의 세계요, 그런 세계를 향해서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곳을 맛본 사람은 열 번을 가고도 또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고, 가고 싶고, 살고 싶은 환경을 우리 인류는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누구든지 “가고 싶었던 길을 왔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춰야 되겠고, “보고 싶은 그분을 볼 수 있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춰야 되겠고, “모시고 싶었던 분을 모시고 살 수 있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곳이라는 것을 만민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전부가 절대적으로 같이 느낄 수 있는 기반만 되면 세계가 거기서부터 통일되기 시작됩니다.

그런 세계는 한꺼번에 이루어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을 거치고 국가를 거쳐서 세계까지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 세계가 완전히 이루어진 입장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고향을 찾아가도 서글프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길을 찾아온 자식을 만나는 부모는 통곡을 할 것입니다. 또, 자식에게 유업으로 남겨 주기 위한 소유를 원수 사탄에게 유린당해 부모가 그것을 빼앗아 줘야 할 입장에 서 있다면 얼마나 원통하겠어요! (152-153)

통일교회의 목적

그렇게 가고 싶고, 만나고 싶고, 살고 싶은 본향 땅을 찾아가 부모를 만났을 때 그 부모가 찾아오는 자식을 대해서 아무것도 줄 수 없고, 먹일 수 없고, 좋아할 수 없는 환경에 있더라도 낙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모의 슬픔에 동참하고, 부모의 어려움을 대신하고, 형제의 어려움을 대신하여 선두에 나서서 원수의 세계를 다시 빼앗아 오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지금의 통일교회는 그런 운동이 한꺼번에 되지 않으니까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펼쳐 나가는 것입니다. 내 사정이 아무리 슬프다고 하더라도 그 부모가 찾아온 길을 알고, 그 부모를 이 땅 위에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물과 더불어 결의하고, 눈물과 더불어 세계를 우리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 부모와 더불어 원수의 세계를 정복하고 새로운 천지를 만들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152-156)

소망의 천국은 일시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기점을 통하여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마음 가운데서 결의한 그 자체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그 기준에 와 있고, 내가 만나고 싶은 자리에 와 있고, 내가 살고 싶은 곳에 와 있는데 여기에서 누가 나를 끌어갈 것이냐? 어떠한 사탄도 끌어가지 못한다” 하는 절대적인 신념을 갖추는 자가 소망의 천국,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소망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적인 주권과 세계 만민을 하나의 백성으로 만들어 놓으면 영원무궁토록 그 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모두 다 행복 가운데서 태어나서 행복한 삶을 살면서 하늘부모를 모시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내가 그 기준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미비한 모든 것들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런 기준에 도달한 후에는 어느 누가 나를 따라올 수 없고 나를 추월할 수 없습니다. 나를 넘어갈 수 있는 분은 부모밖에 없습니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형제는 그 형제밖에 없습니다. 세계가 전부 다 거기에서 자리를 잡고 승리의 한 중심이 세워졌다고 할 때까지는 세계무대를 중심삼고 모두 다 같이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가 될 때 태평천국이 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사탄이, 원수가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원수에게 약탈당한 모든 것을 빼앗아다가 본연의 부모를 모시고 형제들과 더불어 지상천국을 이루어서 영원한 낙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진짜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문제는 그것입니다. 세계의 종교들 가운데 처음으로 통일이라는 명사를 가지고 나왔으니까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거기로 향해서 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소망을 통해서 가정을 통일하고 심정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내 소망이자 구세주의 소망이요, 구세주의 소망이자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내 사정이자 구세주의 사정이요, 하나님의 사정입니다. 내 심정이자 구세주의 심정이요,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 세 분야만 일치시킬 수 있는 진정한 진리라면 이 진리가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한 것을 가르쳐 주고, 그러한 길을 개척하고, 그러한 곳을 찾아가서 그런 분을 만나기 위한 책임을 하자고 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의 용사들은 그런 분을 만났습니다. 그런 분의 소망과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여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이루는 것이 통일교회의 목적입니다. (152-158)*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7일, 원문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  
날짜 : 1963. 4. 1(월)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누구에게도 소망을 둘 수 없는 현실
 
여러분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고, 한국 나라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고, 한국 사람의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마다 천태만상으로 내용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한국 사람이요, 한국 백성으로 태어났고, 한국 사람의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되 그 내용으로 들어가면 모두 다 가정 환경이 다르고 부모의 사정이 다른 각각의 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하는 도가 다릅니다. 경기도가 있으면 경상도가 있고 전라도가 있습니다. 그렇게 팔도강산에 널려 있던 여러분이 모였습니다. 그러니만큼 처하여 있는 지역적인 환경도 다릅니다. 그렇게 다른 입장에 살면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 슬퍼하는 것, 생활하는 내면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 소망을 품고 싸워 나가는 방식, 혹은 목적을 세우는 것도 전부 다 다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그 내용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혹은 범위를 넓게 가지면 가질수록 거기에는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사정들이 다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신을 중심삼고 가정, 부락, 면, 군, 도 혹은 한국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게 될 때 모든 환경이 나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게 돼 있느냐? “아, 여기가 내가 영원히 찾아가려던 본향 땅이로구나! 여기는 억천만 년 행복의 콧노래를 불러가면서 살 수 있는 우리 삼천리 반도요, 그럴 가능성이 넘쳐흐르는 삼천만 민족이다”라고 여러분이 생각해 봤느냐 할 때 어때요?
삼천리 반도가 우리 앞에 소망의 터전이 될 수 없는 그런 곳인 동시에 지금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움직이는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소망을 둘 수 없는 입장에 있으니까 삼척동자도 “나는 불행한 사람이요, 나만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널려 있는 삼천만이 불행하고, 삼천만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삼천리 동산이 불쌍하고, 삼천리 동산만 불쌍한 것이 아니라 삼천리 반도와 삼천만 민족을 지도하는 주권도 불행한 주권이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을 넘어 이 땅 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수많은 주권들을 가지고 자기 국가의 문화예술이나 어떤 정책적인 이념을 세워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고 세계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국가들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때 국가나 국민 혹은 그 주권이 우리가 영원히 찾아 갈 수 있는 것들은 못 됩니다. 영원히 내 생명과 더불어, 내 마음과 더불어, 내 이념과 더불어 영원한 생활의 복지로 기반을 삼아서 거기에 뼈를 묻겠다고 할 수 있는 국가가 있느냐 할 때 어때요?
어떤 사람은 “내가 공부하는 것은 미국에 가기 위해서다. 미국 가고 싶어서 공부한다”고 할 것입니다. 혹은,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지극히 작은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가 지상에서 제일가는 국토요, 그 주권이 오늘날 지상에서 제일가는 주권이요, 그 민족이 제일가는 민족이요, 그 백성이 제일가는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진정한 내 본심에서 바라는 이상적인 관으로 볼 때 과연 그것이 내가 소망하며 찾아가서 살 수 있는 나라일 것이냐? 아닙니다.
지금 민주주의 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선진국가의 입장에 있는 미국을 두고 볼 때도 미국이 칭찬하고, 미국이 높이고, 미국이 자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 하면 그렇게 못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도 아직까지 자기들 가운데서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좀더 세계적인 사람을 찾고 있고, 역시 좀더 만민이 우러러 바라볼 수 있는 국민성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 수많은 민족들이 그들의 전통과 역사적인 배경을 초월하여 영원을 중심삼고 숭배할 수 있는 국가의 주권을 찾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본심이 고대하는 본연의 나라, 본연의 동산, 본연의 주권이라는 기준은 오늘날 세계에 나타난 어떤 국가의 형태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2-135)

마음으로 찾고 있는 이념적인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인연을 가지고, 어떠한 생활무대를 가지고, 어떠한 생애노정을 거쳐서 마음으로 그리면서 좋아할 수 있는 이념을 세우느냐? 그럴 수 있는 최후의 종착지, 최후의 이념적인 보금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할 때 막막하고 아득하고 황무지와 같은 천지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인생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 허덕이고, 신에 대한 문제와 인간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면서 수양과 노력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목적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좀더 참다운 나, 좀더 참다운 사람, 좀더 참다운 주권을 추구하면서 “절대 이렇다” 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과 참다운 나라 그리고 참다운 주권을 모색해 나갑니다.
역사의 흐름은 변천합니다. 시대에 따라서 모든 사회환경이 변천해 나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과연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는 어디에 있을 것이냐? 우리의 마음으로 찾고 있는 이념적인 천국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겉으로 말을 하지 않고 행동은 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아 헤매는 무리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무리들 가운데 가담해 있습니다.
그 무엇 때문에 그렇게 헤매고 있느냐? 여러분은 싫든 좋든 여기에 앉아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선생님이 말씀하는 내용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싶고, 거기에 내가 화하고 싶고, 그 일을 위해서 한 일원으로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꽉 차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행동은 하지 않지만 여러분 자신들 속에 그런 세계주의적인 관념이 잠재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주의와 사상적인 일면을 마음속에 품었지만 행동과 표현을 못 하고 조직적으로 활동은 하지 못할망정 그런 내용의 사연을 품고 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혼자 있으면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심각한 문제에 부딪쳐서 홀로 해결하지 못할 때는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도 훌륭한 스승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스승을 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연을 해결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그 다음에 보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살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합니다. 대충, 요점을 따지면 그렇습니다.
인류가 소망하며 가고 싶은 본향은 어디에 있느냐? 보고 싶은 그 나라, 보고 싶은 그 백성, 보고 싶은 그 주권이 있을 것입니다. 크게 보면 더 큰 기준까지 있겠지만, 작게 보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가서 본 뒤에는 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 스스로를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52-138)
 
각 종교에서 바라는 메시아

우리가 가야 할 최후의 길을 다 가면 우리가 소망하고 온 인류가 소망하는 나라요, 소망의 천지가 생겨납니다. 하늘땅이 있다면 그 하늘땅이 전부 다 소망의 나라에 속한 영토요, 그 권내에 사는 수많은 인류는 그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 소망의 나라의 주권은 온 존재세계에서 소망하는 주권입니다.
우리 인간의 양심이 소망하는 기준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소망적인 논제를 세워 가지고 그 기준을 세워 놓지 않을 수 없기에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그런 것을 향하여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52-141)
이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주권이 되고, 하나의 민족이 되고, 이 지구가 하나의 영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복잡한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내용을 완비한 이념이 나와야 합니다.
그 나라는 개인의 나라가 아니라 역사적인 나라입니다. 역사란 우리나라의 역사만이 아니고 어떠한 민족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나라란 세계사적인 내용을 동반할 수 있는 역사적인 소망의 나라입니다. 역사적인 나라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면 기독교의 종파적인 역사만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문화사가 있으면 문화사, 인류사가 있으면 인류사, 하나님의 섭리사가 있으면 섭리사 등 전반적인 역사를 기반으로 한 역사적인 소망의 나라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 시대적인 소망의 나라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들은 전통과 풍습이 다르고 역사적인 배경이 다릅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합하려면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의 간격을 두고 장벽을 쌓아 놓은 것을 일시에 융합시켜야 됩니다. 그러니까 일시에 민족적인 이념과 감정을 초월하여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소망적인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던 최후의 이념적인 나라를 찾고 하나의 주권과 나라 그리고 백성을 찾아오는 데 있어서는 어느 개인이나 민족을 막론하고 전부 다 그 나라에 정착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느 민족이 그러한 이념을 가지고 자리를 잡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이냐, 영국이냐, 불란서냐, 혹은 세계에서 어떤 문화를 자랑하는 선진국가냐? 그것은 모릅니다. 우리가 바라고 있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온 인류가 본심으로 가고 싶어하는 소망의 나라입니다. 그 소망의 나라가 있으면 지구가 그 나라의 국토가 되고, 세계 인류가 그 나라의 백성들이 되고, 세계의 모든 주권이 그 나라의 주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권을 가지실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억천만금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모든 성현들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바라던 소망의 전체를 내포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하늘땅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 땅 위에 나타나면 하나님의 이념을 소개할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류가 소망하는 이념이 어떤 이념인가를 밝히게 될 것입니다. 그 이념은 여기에 복지를 만들 수 있는 이념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하기 위해서 오시는 중심존재가 구세주입니다.
끝날이 가까워짐에 따라서 민주주의를 가지고도 안되고 공산주의를 가지고도 안되겠다고 하며 자탄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를 수습하여 우리가 소망하는 그 나라, 본연의 신앙노정을 찾아가는 우리에게 소망의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그분, 우리 인류가 찾고 있는 그분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분은 천지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존재요, 인류 전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존재입니다. 수많은 주권을 합하여 하나의 세계로 통일해 놓고 그 세계와 바꿀 수 있겠느냐 할 때 바꿀 수 없는 분, 절대적인 한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왈(曰) 메시아입니다. 각 종교에서 바라는 메시아입니다. (152-143)

통일교회가 해야 할 것

여러분이 그러한 메시아를 만나고 싶어하는 소망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분을 만나려면 참다운 내가 아니면 안됩니다. 내 자신이 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을 주관할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것을 주관하고 참됨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참된 사람이 아니면 안됩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내 개인이 참되려면 먼저 내 마음이 참되어야 합니다. 나를 보면 마음과 몸뚱이로 나뉘지요? 크게 나누면 그렇지요? 나라는 것은 마음과 몸뚱이입니다. 그런데 참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참된 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내 몸뚱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참된 기준은 어디에다 세우느냐? 그 참된 기준은 앞으로 세계적인 주권을 대표해서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절대적인 양심의 지도자로 말미암아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 지도자는 그 기준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의 양심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을 모르니까 그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마음의 기준을 세울 수 없는 나입니다. 그리고 내 몸을 중심삼고 생활할 수 있는 기준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절대적이다” 할 수 있는 기준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기준에 일치되는 내 마음의 기준을 세울 수 있고, 그 기준에 일치되는 내 몸뚱이의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만일 그런 기준이 있다면, 천하의 만인간은 어느 누구나 그 기준을 따라오려고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기준의 가치는 세계적인 주권을 대신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중심삼고 오라고 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상대적인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내가 됩니다.
그래야 구세주가 오면 그 구세주에 의해서 내가 구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힘을 열만큼 가지고 왔으면 내가 거기에 동반되어 열만한 힘에 붙들려 끌려갈 수 있고, 거기에 대해 순응하고, 거기에 대해 동하고, 거기에 대해 어떠한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만 구세주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관계를 못 맺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성현들을 세워서 “모든 사람들은 이 사람을 중심삼고 규합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합동운동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152-146)
종교가 역사의 흐름을 따라서 민족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사명을 가졌다면, 그 종교는 민족을 움직이는 것으로 끝납니다. 거기에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종교가 나오면, 지금까지 민족을 움직여 나오던 종교는 거기에 흡수됩니다. 그렇게 통합되면 세계가 종교권 이념세계로 규합되어 들어가는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종교들이 합해 가지고 나중에는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종교와 몸을 대신할 수 있는 종교가 나옵니다. 마음을 대신하여 천상천국을 논하는 종교가 나오는 동시에 몸을 대신하여 지상천국을 논하는 종교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내적인 하나님 편과 외적인 사탄 편, 또는 내적인 마음 편과 물질적인 몸 편의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유물사관과 유심사관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천국이념을 갖고 나오는 종교와 지상의 천국이념을 갖고 나오는 종교도 있어야 됩니다. 영적인 천국은 마음을 대신하는 것이요, 몸적인 천국은 지상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것은 영육을 합하여 하나의 나에게 규합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천국과 지상천국이 통일될 수 있는 때가 와야 됩니다. 오늘날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의 사조는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의 기점을 기준으로 하여 통일되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온 교회가 통일교회입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해야 할 것은 소망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을 만드려면 참다운 사람의 양심적인 기준과 몸적인 기준을 어디에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양심적인 기준은 하나님과 인류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영원히 그것이다." 할 수 있는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지도자를 기준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152-148)

인생이 찾아가는 길

지금 인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이제는 어떻게든지 모든 것을 조화시켜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시대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끝날이 되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영원을 두고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천국입니다. 아직까지 천국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 봐야 소망이 끝이 나지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가고 싶은 곳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을 해원하고 이루는 곳이 어디라구요? 소망의 천국입니다. 천국에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곳이 본향 땅이에요, 본향 땅.
그러한 곳이 인생이 가야 할 본향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향 땅에 가서는 뭘 할 것이냐?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내 본사람을 완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내 본래의 사람, 본래의 참다운 내 자신, 본래의 참다운 내 마음과 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참다운 내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살아야 할 본래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본래의 기준을 찾아서 헤맵니다. 그러다 보니까 6천 년 역사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본래의 자리에 가 가지고 본래의 사람 노릇을 못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탄식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제 어머니 아버지도 보기 싫습니다. 찾아오는 친구도 보기 싫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좋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몇 시간만 지나면 “아이고, 보기 싫어” 합니다. 한 번 보면 천 년이라도 들여다보고 싶고 그럴 수 있는 무엇이 그리워집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부모는 자식의 얼굴을 하루 종일 보고도 싫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무한히 봐도 보고 싶을 수 있는 그러한 분을 찾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런 분이 우리의 인생들이 가서 만나 봐야 할 분입니다. 그러면 만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살아야 됩니다. 만나만 보고 돌아오면 되겠어요? “당신의 마음이 있고, 당신의 사정이 있고, 당신의 심정이 있는 한 나를 떼어놓을 수 없고 나는 당신과 관계를 안 맺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을 중심삼고 당신과 나는 살아야 할 인연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 인생이 찾아가는 길입니다. (152-151)

지상천국

고향 땅을 찾아가서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은 부모입니다. 그러니까 형제들을 만나서 손목을 붙들고 “우리 부모를 찾아가자” 하면서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 길을 찾아가는 무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신도들끼리 싸우는 것은 벌써 틀린 것입니다. 그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원수가 있으면 생사결단해서 물리치기 위하여 단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수의 세계에서 서로 협조하고 의지하고 의논하면서 고향 땅에 가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한 날을 그리워하며 함께 찾아가는 무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다 소망의 재림사상이 있습니다. 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흑인의 부모도 되고, 황인의 부모도 되고, 백인의 부모도 됩니다. 그분은 오색인종의 부모가 되고, 영계에 알록달록한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 사람들의 부모가 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다 가져야 할 부모입니다. 인류라는 인류는 누구든지 다 그 부모를 중심삼고 한 울타리 안에서 산다면, 그곳이 지상천국입니다. 바로, 그 울타리권이 지구성이 되어야 합니다.
광대무변한 천주 가운데 먼지만한 지구성이 있습니다. 지구가 얼마나 커요? 이것은 무한한 천체에 비하면 먼지 하나 같은 것입니다. 만민은 그 울타리 안에서 형제의 인연을 가지고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부모와 자식간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이 맺어집니다.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다. 내 부모가 아니다” 하거나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하면 그렇게 아니라고 부정하는 존재가 부정을 당하면 당했지 아니라고 부정을 당하는 입장이 부정당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이 연결됩니다. 그것은 천하의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인연입니다.
부모와 연결되고 형제와 연결될 수 있는 세계형 가정기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하나의 세계요, 그런 세계를 향해서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곳을 맛본 사람은 열 번을 가고도 또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고, 가고 싶고, 살고 싶은 환경을 우리 인류는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누구든지 “가고 싶었던 길을 왔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춰야 되겠고, “보고 싶은 그분을 볼 수 있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춰야 되겠고, “모시고 싶었던 분을 모시고 살 수 있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곳이라는 것을 만민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전부가 절대적으로 같이 느낄 수 있는 기반만 되면 세계가 거기서부터 통일되기 시작됩니다.
그곳에서는 형제들끼리 부모의 복을 빼앗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받고 기뻐하는 형제를 보고 모두 다 머리를 숙입니다. “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아? 이놈의 동생이 왜 더 받느냐” 하면서 주먹질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받는 것은 세계를 대표해서 받는 것으로 알고, 그 사랑을 내 대신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의 세계가 벌어집니다. 그런 세계를 지상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는 한꺼번에 이루어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을 거치고 국가를 거쳐서 세계까지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 세계가 완전히 이루어진 입장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고향을 찾아가도 서글프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길을 찾아온 자식을 만나는 부모는 통곡을 할 것입니다. 또, 자식에게 유업으로 남겨 주기 위한 소유를 원수 사탄에게 유린당해 부모가 그것을 빼앗아 줘야 할 입장에 서 있다면 얼마나 원통하겠어요! (152-153)

통일교회의 목적

그렇게 가고 싶고, 만나고 싶고, 살고 싶은 본향 땅을 찾아가 부모를 만났을 때 그 부모가 찾아오는 자식을 대해서 아무것도 줄 수 없고, 먹일 수 없고, 좋아할 수 없는 환경에 있더라도 낙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모의 슬픔에 동참하고, 부모의 어려움을 대신하고, 형제의 어려움을 대신하여 선두에 나서서 원수의 세계를 다시 빼앗아 오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지금의 통일교회는 그런 운동이 한꺼번에 되지 않으니까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펼쳐 나가는 것입니다. 내 사정이 아무리 슬프다고 하더라도 그 부모가 찾아온 길을 알고, 그 부모를 이 땅 위에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물과 더불어 결의하고, 눈물과 더불어 세계를 우리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 부모와 더불어 원수의 세계를 정복하고 새로운 천지를 만들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빨리빨리 원수의 품에서 빼앗아다가 형제로 만들어서 다 함께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부모가 세계 만민과 자녀의 인연을 갖추게 됩니다. 그 일을 완수할 때까지 우리는 충성을 다하고 그 형제들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과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용사들로 만들려고 여러분을 몰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을 찾아와 보니까 형제들의 고통이 남아 있고 부모의 고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고통을 일시에 제거해야 됩니다. 그 사명을 짊어지고 싸울 수 있는 때를 맞았다는 것이 일면으로는 불행한 것 같지만 다른 일면으로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싸워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게 되면, 세계 만민이 머리를 숙이며 항복할 때가 올 것입니다. (152-156)
소망의 천국은 일시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기점을 통하여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마음 가운데서 결의한 그 자체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그 기준에 와 있고, 내가 만나고 싶은 자리에 와 있고, 내가 살고 싶은 곳에 와 있는데 여기에서 누가 나를 끌어갈 것이냐? 어떠한 사탄도 끌어가지 못한다” 하는 절대적인 신념을 갖추는 자가 소망의 천국,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소망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적인 주권과 세계 만민을 하나의 백성으로 만들어 놓으면 영원무궁토록 그 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모두 다 행복 가운데서 태어나서 행복한 삶을 살면서 하늘부모를 모시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내가 그 기준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미비한 모든 것들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런 기준에 도달한 후에는 어느 누가 나를 따라올 수 없고 나를 추월할 수 없습니다. 나를 넘어갈 수 있는 분은 부모밖에 없습니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형제는 그 형제밖에 없습니다. 세계가 전부 다 거기에서 자리를 잡고 승리의 한 중심이 세워졌다고 할 때까지는 세계무대를 중심삼고 모두 다 같이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가 될 때 태평천국이 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사탄이, 원수가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원수에게 약탈당한 모든 것을 빼앗아다가 본연의 부모를 모시고 형제들과 더불어 지상천국을 이루어서 영원한 낙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그런 사명이 있다는 것을 각자가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는 소망의 나라와 소망의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진짜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문제는 그것입니다. 세계의 종교들 가운데 처음으로 통일이라는 명사를 가지고 나왔으니까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거기로 향해서 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소망을 통해서 가정을 통일하고 심정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내 소망이자 구세주의 소망이요, 구세주의 소망이자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내 사정이자 구세주의 사정이요, 하나님의 사정입니다. 내 심정이자 구세주의 심정이요,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 세 분야만 일치시킬 수 있는 진정한 진리라면 이 진리가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한 것을 가르쳐 주고, 그러한 길을 개척하고, 그러한 곳을 찾아가서 그런 분을 만나기 위한 책임을 하자고 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의 용사들은 그런 분을 만났습니다. 그런 분의 소망과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여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이루는 것이 통일교회의 목적입니다. (15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