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5일)

훈독왕 | 20201224054329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5일

하나님의 나라 (훈독본) 
날짜 : 1976. 4. 11(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https://www.youtube.com/watch?v=71iVFUGGmtc&list=PLtan-zpeJeilD6pJZCkogCwve2117SlW6&index=5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

 

본래 창조이상을 두고 보면 이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물건이든지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자연계 전체도 하나님의 주관을 받고 하나님권 내에서 보호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만물의 중심이 되는 인간들도 하나님의 주관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살아야 될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모든 것이 속해 있어야 됩니다.


결국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어야 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기 시작한 그날부터 영원히 우리의 주인은 한 분이요, 우리를 주관할 분도 언제나 한 분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그 사람과 나라들도 결국은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있는 사람과 나라들이요, 하나님의 주관을 받는 사람과 나라들이어야 됩니다.


우리가 먹고살고, 우리가 느끼고 사는 것도 하나님한테 속해야 됩니다. 하나님한테 속하는 음식물을 먹고, 하나님한테 속하는 것을 느끼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에서는 어느 누구나 목적이 둘이 아니라 하나일 것입니다. 전부 하나의 목적권 내에 살게 될 것입니다. 가는 방향이 둘일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조상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갔으면 천년만년 인류역사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전부 한 목표의 길을 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인류세계의 문화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문화가 되었을 것이고, 이 생활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문화를 중심삼은 생활권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언어도 하나의 언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정도 대개 같은 방향일 것입니다. 생활풍조도 같고 문화의 배경이 같으니만큼 모든 감정도 거기에 일치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 생활권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생활권이요, 그것이 범위가 넓어져서 군이 된다든가, 도가 된다든가, 나라가 된다든가, 혹은 세계가 되면 그 세계는 같은 생활환경과 같은 생활풍조로 통하는 하나님의 통치권 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타락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오관을 갖고 있습니다. 오관을 통해서 최고의 높고 귀한 존재와 더불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눈을 가졌으면 그 눈이 본 최고의 기쁨의 주체가 누구일 것이냐? 그것은 틀림없이 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듣는 것도 그렇고, 냄새 맡는 것도 그렇고, 느끼는 것도 그렇고, 전부 최고의 기쁨의 주체 되는 그분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생명과 사랑이 있다면, 그것들은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귀하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높고, 가장 중심이 되는 그분과 가까이 있고 싶어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86-289)

통일교회의 역사관

그런데 우리의 몸과 마음은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이 갈라진 인간을 볼 때, 여기에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중심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하나님이 지으셨다면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그 목적지에 갈 때까지 이것이 갈라질 수 없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갈라졌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여기에서 유심(唯心)이니 유물(唯物)이니 하는 역사적인 철학사조의 투쟁이 인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생활풍조가 달라졌고, 방향이 달라졌고, 전부가 자기 멋대로 생활하다 보니 가지각색의 문화가 벌어져 투쟁의 역사를 남기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은 세계를 서로 서로가 점령하는 놀음을 하면서 지금까지 각양의 배경을 중심삼고 이중 삼중의 방향이 다른 투쟁의 역사를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체를 두고 볼 때, 결국 발전은 투쟁에서 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근본이 되어 변증법이라는 논리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세계는 그 권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사람들은 지금 인간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종교에서는 막연하게 타락되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역사가 혼란기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 역사를 선악이 교체하는 투쟁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점점점 세계적인 전쟁이 되어 가면 되어 갈수록 악한 것은 제거되어 선한 세계로 옮겨져 간다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역사관입니다. (86-291)

이 세상은 하나님과 인간이 원하지 않는 세상

최후의 종말시대에는 하나님 창조의 세계로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어 놓고 선하다고 하셨고, 그 다음에 아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해와를 지어 놓은 후에야 비로소 가장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가장 좋다고 하셨을 때 전체가 좋았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으면, 그 생명의 주체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으로 그렇게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세계를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 아니요, 우리가 원하는 세상도 아닙니다.


미국 국민들 중에서 “우리는 민주세계를 주도하는 일등 국민으로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의 국민이 되고 또 그러한 나라가 되었으니 영원히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다. 세계 역사를 두고 자랑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이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보장을 가지고 있어요? 

 

공산세계를 생각해 봅시다. 만일 공산주의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갈 수 있는 주의라고 볼 수 있느냐? 보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고, 그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그 나라를 위해서 죽어 가는 것이 다 허무하고 의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어떠한 나라의 국민이라도 그 국민이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그 나라에 이름을 내고, 그 나라의 무슨 챔피언이 되고, 그 나라의 무슨 학자가 되더라도 그건 다 허황된 것입니다.


공산당이 보면 민주세계에 충성하는 사람은 원수입니다. 그들은 민주세계를 위해 충성을 한다든가, 돈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무덤까지도 파 버립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제일 미워하는 것이 자본가입니다. 돈 있는 사람을 제일 미워합니다. 그다음에는 자본주의 세계의 지식 있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자본가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고 지도층에 있는 지식인들이 학살을 당합니다.


반면, 공산세계에 충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민주세계의 원수입니다. 만약에 이 세계가 어떻게 하나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세계가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세계냐? 그 세계를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어떤 주권자가 있어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주권자가 죽었을 때 민주주의 방식으로 하면 주권자를 선출해야 됩니다. 그러나 세습적인 방법으로 하면 그 아들이 책임져야 됩니다. 주권자가 교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한 번 정한 헌법이 영원한 헌법이에요? 그건 주권자의 마음대로 의회를 통해서 언제나 뜯어고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와 여러분이 같아요? 다릅니다. 밥을 먹는 데도 아버지는 햄버거를 좋아하면 아들은 스테이크를 좋아합니다. 웃는 데도 아버지는 좋아서 웃는데, 아들은 왜 저렇게 웃느냐 하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전부 다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좋아하는 국민이 있고, 아들을 좋아하는 국민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두 종류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싸우지 않지만, 국민들은 싸웁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이 세계는 불안한 세계요, 언제나 안정될 수 없는 세계요, 언제나 싸움하는 세계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사람들이 연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하나님을 하나 발견하거나 찾아서 세계를 수습하는 일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최고의 독재자가 되든가 해야지 그렇지 않고는 안됩니다. 어차피, 가상적인 하나님이라든가 가상적인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상형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춰 나가겠다고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사실적으로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거기서부터 문제없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왕지사 하나님은 절대자요, 영원한 주체요, 불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과 더불어 참의 인연을 맺으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충성하고, 거기에 생애를 바쳐 성과를 내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과 더불어 하나님의 세계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게 됩니다. (86-292)

차든지 덥든지 하라

오늘날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세계, 원칙적인 세계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성경에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요한계시록 3:15) 했습니다. 미지근하면 토해 버립니다. 집어던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찹니다. 하나님이 없다, 적극적으로 없다고 합니다. 절대적으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세계는 하나님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미지근한 것을 볼 때 “내 아들딸들 참 좋다. 나는 너희들을 좋아한다” 그러시겠어요? 하나님은 적극적인 하나님입니다. “뭐 공산주의면 어때? 같이 하지…” 그러면 식겠어요, 뜨거워지겠어요? 틀림없이 식어 버립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신다면 지극히 뜨거운 패를 원하실 것입니다. 24시간 언제든지 뜨거워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좋아하십니다. 불을 계속해서 때야 합니다. 덥더라도 불을 계속해서 때야지 덥다고 해서 그치는 날에는 식습니다.


만일 불을 안 땔 때 찬물을 갖다 부으면 식지만, 불을 땔 때 찬물을 갖다 부으면 조금 미지근하더라도 계속해서 때면 뜨거워집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뜨거운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여러분, 사랑이라고 하면 뜨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뜨거운 곳에 찬물을 갖다 부으면 폭발합니다. 뜨거운 것에는 무엇이나 갖다 놓으면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또, 찬 것에도 무엇이나 갖다 놓으면 차질 수 있습니다. 찬 것과 뜨거운 것이 싸우면 어떤 것이 이기느냐? 뜨거운 것이 이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찬 사람을 싫어하고 뜨거운 사람을 좋아합니다. 여자는 더욱이나 그렇지요? (86-295)

하나님의 생각

우리는 뜨거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찬 것에다 뜨거운 것을 갖다 대면 어떤 게 녹아요? 찬 것이 녹습니다. 


여러분이 말을 들을 때 어떤 말을 듣고 싶어요? 냉정하고 쌀쌀한 말을 듣고 싶어요, 다정하고 흐뭇한 말을 듣고 싶어요? 다정하고 흐뭇한 말을 듣고 싶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냄새 맡는 것도 그렇습니다. 찬 것은 싫습니다. 


하나님은 뜨거운 것을 좋아하십니다. 국도 뜨거운 것을 좋아하시고, 다 뜨거운 것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해도 틀림없습니다. 사랑을 해도 불이 활활 붙는 뜨거운 사랑을 좋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 가운데 나타나시고 영광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밝은 것은 타는 빛을 상징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뜨거운 사랑을 가졌습니다. 뜨거운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넘을 수 있고, 나라를 넘을 수 있고, 세계를 넘을 수 있고, 하늘땅을 넘을 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뜨거운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계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뜨겁게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전부 다 뜨겁게 만들고 싶어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민주세계의 사람들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지만 공산세계의 사람들까지도 뜨겁게 만들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럴 수 있는 교회, 그럴 수 있는 종교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은 그런 종교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런 교회가 되어 보자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뜨겁기 때문에 아무리 찬물을 갖다 붓더라도 식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86-298)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사랑의 빛과 열을 발하는 사람

밥을 맛있게 먹는 사람은 건강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틀림없이 불붙은 사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도 흔들흔들하고 “아이구, 못 가겠다” 하는 사람들은 기도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말을 듣고 따라다니거나 누가 “어디 가자” 하면 “그래, 그래”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식어 버립니다.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기성교회에 가서 기도해 보고 통일교회에 와서 기도해 보고, 몇 군데만 가 보면 벌써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곳을 대번에 압니다. 기도의 맛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보급받는 열을 잃어버립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중심삼고 기도하면 영감(靈感)이 옵니다. 하나님이 발전소처럼 여러분에게 보급하실 수 있는 선을 가져야만 언제나 뜨거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변하시지 않는 한 여러분도 변하지 않습니다. 밝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열도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시민들이 바라볼 때 “명랑하다. 참 인상이 밝다”고 해야 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광명한 아침과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광명하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도 전등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어떤 사람이겠어요? 언제나 밝은 빛이 24시간 발하고 뜨거울 수 있는 열을 발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사람일 것입니다. 벌레들도 캄캄한 밤이면 전부 다 빛이 있는 곳으로 몰려오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력과 사랑의 힘, 밝고 뜨거운 것을 장구하게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86-302)


영계는 밝은 세상입니다. 이 땅에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지만 영계에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밝겠어요! 그리고 영계는 뜨거운 세계입니다. 척, 사람을 대하면 벌써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것을 보고 그 사람이 얼마만큼 높은 사람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저울대가 됩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서 찬 기운을 느끼면 하나님 앞에 먼 사람이지만 뜨거우면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하나되고 차면 찰수록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냐? 밝은 나라요, 뜨거운 나라입니다. 그렇게 밝은 것은 완전한 정의, 옳은 것을 상징합니다. 사랑은 어떤 것이냐? 좋은 것입니다. “좋다” 할 때는 이상이 벌어집니다. 밝은 것은 뻗어나가는 것이고 사랑은 품는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늘나라는 밝은 나라고 따뜻한 사랑의 나라, 더운 나라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24시간 밝은 나라요, 24시간 더운 나라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하나의 방향만을 가기 때문에 광명한 모습, 명랑한 모습으로 힘차게 뻗어 나갑니다. 아무리 먹구름 같은 것이 막혀 있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은 구름에 가려지면 그림자가 생기지만, 하늘나라의 빛은 구름도 뚫고 나갑니다.


그 빛과 열을 갖고 거기에 가게 되면, 모든 것이 열에 뜨거워져 타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없어집니다. 결국, 천국 문은 누가 여느냐? 우리가 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사람은 언제든지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닫을 수도 있습니다. (86-303)

우리는 천국을 건설하는 개척자

우리는 천국을 건설하는 개척자요, 선발대요, 건설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복하고 그들을 말로써 전부 다 때려잡기 전에는 세계를 하나로 못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과 열을 가지고 어두운 세계를 다 파헤쳐 버려야 합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산세계를 소화해야 합니다. 그것을 소화하려면 그 이상 강해야 됩니다. 정의에 입각해서 그 이상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계에 남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모세가 느보 산에 올라가서 죽게 될 것을 아셨던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가나안을 복귀해야 할 책임을 맡길 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한 우리 통일교회는 누구보다도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담대하면 그 누구도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미국 국민들보다도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고, 공산세계의 국민들과 그 지도자의 영혼보다도 강하고 담대한 통일교인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서만 하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사탄세계는 파괴지만, 우리는 건설입니다. 희망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골리앗 앞에 다윗과 같은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뉴욕을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언론계를 무서워하거나 어느 정치가를 무서워할 것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있는 우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서운 우리들인데, 거기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백전백승하는 군사가 하늘나라를 이어받을 것입니다. (86-313)*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5일, 원문
 
하나님의 나라  
 
날짜 : 1976. 4. 11(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세상이 아니라 사탄이 주관하는 세상입니다. 본래 창조이상을 두고 보면 이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물건이든지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자연계 전체도 하나님의 주관을 받고 하나님권 내에서 보호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만물의 중심이 되는 인간들도 하나님의 주관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살아야 될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모든 것이 속해 있어야 됩니다.
결국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어야 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기 시작한 그날부터 영원히 우리의 주인은 한 분이요, 우리를 주관할 분도 언제나 한 분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그 사람과 나라들도 결국은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있는 사람과 나라들이요, 하나님의 주관을 받는 사람과 나라들이어야 됩니다.
우리가 먹고살고, 우리가 느끼고 사는 것도 하나님한테 속해야 됩니다. 하나님한테 속하는 음식물을 먹고, 하나님한테 속하는 것을 느끼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에서는 어느 누구나 목적이 둘이 아니라 하나일 것입니다. 전부 하나의 목적권 내에 살게 될 것입니다. 가는 방향이 둘일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조상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갔으면 천년만년 인류역사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전부 한 목표의 길을 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은 그 목적을 향해서 가는 데 있어서 빨리 가느냐, 더디게 가느냐 하는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었으면 이 인류세계의 문화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문화가 되었을 것이고, 이 생활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문화를 중심삼은 생활권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언어도 하나의 언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정도 대개 같은 방향일 것입니다. 생활풍조도 같고 문화의 배경이 같으니만큼 모든 감정도 거기에 일치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 생활권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생활권이요, 그것이 범위가 넓어져서 군이 된다든가, 도가 된다든가, 나라가 된다든가, 혹은 세계가 되면 그 세계는 같은 생활환경과 같은 생활풍조로 통하는 하나님의 통치권 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타락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오관을 갖고 있습니다. 눈이면 눈은 좋은 것을 보기 위해서 있습니다. 우리가 듣는 것도 그렇고, 맛보는 것도 그렇고, 느끼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오관을 통해서 좋은 것을 느낀다면, 그것이 무엇을 중심삼고 느끼기를 바라겠느냐? 혹은, 무엇을 이상하고 있겠느냐? 그것은 최고의 높고 귀한 존재와 더불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눈을 가졌으면 그 눈이 본 최고의 기쁨의 주체가 누구일 것이냐? 그것은 틀림없이 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듣는 것도 그렇고, 냄새 맡는 것도 그렇고, 느끼는 것도 그렇고, 전부 최고의 기쁨의 주체 되는 그분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생명과 사랑이 있다면, 그것들은 어떤 입장에서 존재하고 싶을 것이냐? 그것들은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중심에 갖다 놓든가 높은 데 갖다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가장 귀하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높고, 가장 중심이 되는 그분과 가까이 있고 싶어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도대체 어떤 곳이냐? 하나님의 나라는 주관자가 둘일 수 없습니다. 하나여야만 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에 두 갈래의 방향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딱 하나입니다. 절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86-289)

통일교회의 역사관

그런데 우리의 몸과 마음은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이 갈라진 인간을 볼 때, 여기에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중심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하나님이 지으셨다면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그 목적지에 갈 때까지 이것이 갈라질 수 없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갈라졌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여기에서 유심(唯心)이니 유물(唯物)이니 하는 역사적인 철학사조의 투쟁이 인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생활풍조가 달라졌고, 방향이 달라졌고, 전부가 자기 멋대로 생활하다 보니 가지각색의 문화가 벌어져 투쟁의 역사를 남기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은 세계를 서로 서로가 점령하는 놀음을 하면서 지금까지 각양의 배경을 중심삼고 이중 삼중의 방향이 다른 투쟁의 역사를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체를 두고 볼 때, 결국 발전은 투쟁에서 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근본이 되어 변증법이라는 논리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세계는 그 권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사람들은 지금 인간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종교에서는 막연하게 타락되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역사가 혼란기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 역사를 선악이 교체하는 투쟁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점점점 세계적인 전쟁이 되어 가면 되어 갈수록 악한 것은 제거되어 선한 세계로 옮겨져 간다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역사관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보는 것은 정반합(正反合)입니다. 하나의 물건이 나오면 그것이 갈라져 가지고 합해 나온다, 다른 차원으로 합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원칙이 언제나 적용된다고 보기 때문에 역사의 목적이라든가 선의 관을 세울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는 선한 목적을 중심삼은 이상세계라는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 세상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중심삼고 악을 제거하면서 고차원의 세계로 전진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한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86-291)

이 세상은 하나님과 인간이 원하지 않는 세상
 
최후의 종말시대에는 하나님 창조의 세계로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어 놓고 선하다고 하셨고, 그 다음에 아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해와를 지어 놓은 후에야 비로소 가장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가장 좋다고 하셨을 때 보기에만 좋았겠느냐, 듣기에만 좋았겠느냐, 느끼기에만 좋았겠느냐, 생각하기에만 좋았겠느냐? 전체가 좋았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으면, 그 생명의 주체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으로 그렇게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세계를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 아니요, 우리가 원하는 세상도 아닙니다.
미국 국민들 중에서 “우리는 민주세계를 주도하는 일등 국민으로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의 국민이 되고 또 그러한 나라가 되었으니 영원히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다. 세계 역사를 두고 자랑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이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보장을 가지고 있어요? 소년이나 장년이나, 혹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나, 대학교 교수나 학생이나, 이 나라 대통령이나 전체가 “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때요? 공산세계를 생각해 봅시다. 만일 공산주의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갈 수 있는 주의라고 볼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보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고, 그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그 나라를 위해서 죽어 가는 것이 다 허무하고 의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어떠한 나라의 국민이라도 그 국민이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그 나라에 이름을 내고, 그 나라의 무슨 챔피언이 되고, 그 나라의 무슨 학자가 되더라도 그건 다 허황된 것입니다.
공산당이 보면 민주세계에 충성하는 사람은 원수입니다. 그들은 민주세계를 위해 충성을 한다든가, 돈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무덤까지도 파 버립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제일 미워하는 것이 자본가입니다. 돈 있는 사람을 제일 미워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본주의 세계의 지식 있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자본가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고 지도층에 있는 지식인들이 학살을 당합니다.
반면, 공산세계에 충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민주세계의 원수입니다. 만약에 이 세계가 어떻게 하나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세계가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세계냐? 그 세계를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어떤 주권자가 있어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주권자가 죽었을 때 민주주의 방식으로 하면 주권자를 선출해야 됩니다. 그러나 세습적인 방법으로 하면 그 아들이 책임져야 됩니다. 주권자가 교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한 번 정한 헌법이 영원한 헌법이에요? 그건 주권자의 마음대로 의회를 통해서 언제나 뜯어고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와 여러분이 같아요? 다릅니다. 밥을 먹는 데도 아버지는 햄버거를 좋아하면 아들은 스테이크를 좋아합니다. 웃는 데도 아버지는 좋아서 웃는데, 아들은 왜 저렇게 웃느냐 하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전부 다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좋아하는 국민이 있고, 아들을 좋아하는 국민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두 종류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싸우지 않지만, 국민들은 싸웁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이 세계는 불안한 세계요, 언제나 안정될 수 없는 세계요, 언제나 싸움하는 세계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사람들이 연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하나님을 하나 발견하거나 찾아서 세계를 수습하는 일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최고의 독재자가 되든가 해야지 그렇지 않고는 안됩니다. 어차피, 가상적인 하나님이라든가 가상적인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상형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춰 나가겠다고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사실적으로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거기서부터 문제없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왕지사 하나님은 절대자요, 영원한 주체요, 불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과 더불어 참의 인연을 맺으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충성하고, 거기에 생애를 바쳐 성과를 내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과 더불어 하나님의 세계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게 됩니다.
거기에서 충신이 되고, 거기에서 효자가 되는 것은 영원히 남아질 수 있지만, 오늘날 사탄세계, 이 변하는 세계에서 아무리 미국에 충성을 하고 공산세계에 충성을 하더라도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때에 가서는 제거당합니다. (86-292)

차든지 덥든지 하라

오늘날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세계, 원칙적인 세계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공산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공산주의를 위해서 충성하고 공산주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라고 합니다. 민주세계를 봐도, 미국 같은 나라가 민주세계의 대표국인데 얼룩덜룩합니다. 하나님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다음에 중간 입장에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합니다.
민주세계를 보면 교회와 정치는 다른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이 앞서 있지 하나님이 앞서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앞서고 하나님은 뒤에 따라오고 계십니다. 그럴 수 있어요? 누가 앞서야 되겠어요? 헌법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가정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교육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되어야 합니다. 전부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그것이 아닙니다. 요즘에 와서는 교회에 협조하던 헌법을 전부 다 갈아치웠습니다. 정부가 교회에서 운영하던 학교에 원조하던 것을 전부 삭감해 버리고 교회에서는 운영하던 학교들을 다 팔지 않으면 안될 단계로 떨어졌습니다.
성경에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요한계시록 3:15) 했습니다. 미지근하면 토해 버립니다. 집어던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찹니다. 하나님이 없다, 적극적으로 없다고 합니다. 절대적으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세계는 하나님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미지근한 것을 볼 때 “내 아들딸들 참 좋다. 나는 너희들을 좋아한다” 그러시겠어요? 하나님은 적극적인 하나님입니다. “뭐 공산주의면 어때? 같이 하지…” 그러면 식겠어요, 뜨거워지겠어요? 틀림없이 식어 버립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신다면 지극히 뜨거운 패를 원하실 것입니다. 24시간 언제든지 뜨거워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좋아하십니다. 불을 계속해서 때야 합니다. 덥더라도 불을 계속해서 때야지 덥다고 해서 그치는 날에는 식습니다.
만일 불을 안 땔 때 찬물을 갖다 부으면 식지만, 불을 땔 때 찬물을 갖다 부으면 조금 미지근하더라도 계속해서 때면 뜨거워집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뜨거운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아침에는 뜨거웠지만 저녁에 식어 버리면 어떻겠어요? 24시간 언제든지 뜨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라고 하면 뜨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뜨거운 곳에 찬물을 갖다 부으면 폭발합니다. 뜨거운 것에는 무엇이나 갖다 놓으면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또, 찬 것에도 무엇이나 갖다 놓으면 차질 수 있습니다. 찬 것과 뜨거운 것이 싸우면 어떤 것이 이기느냐? 뜨거운 것이 이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찬 사람을 싫어하고 뜨거운 사람을 좋아합니다.
여자는 더욱이나 그렇지요? 얼음 속에서 생명이 자라지 않습니다. 뜨거운 데서 자랍니다. 그래서 열대지방은 나무가 무성한데, 한대지방은 나무가 없습니다. 한대지방에 가면 반대입니다. 온대지방에서는 봄이 오면 뜨거워집니다. 그렇게 뜨거워지면 생명이 솟아납니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86-295)

하나님의 생각

우리는 뜨거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찬 것에다 뜨거운 것을 갖다 대면 어떤 게 녹아요? 찬 것이 녹습니다. 춘하추동을 볼 때, 추운 절기 겨울과 더운 절기 여름 그리고 춘추의 비중을 보더라도 더운 분야가 많습니다. 이 지구도 추운 분야보다도 더운 분야가 많기 때문에 생물이 존속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들을 때 어떤 말을 듣고 싶어요? 냉정하고 쌀쌀한 말을 듣고 싶어요, 다정하고 흐뭇한 말을 듣고 싶어요? 다정하고 흐뭇한 말을 듣고 싶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냄새 맡는 것도 그렇습니다. 찬 것은 싫습니다. 먹는 것은 어때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은 아침도 더운 것 먹고, 점심도 더운 것 먹고, 저녁도 더운 것 먹으니까 조금 식혀 줘야 되겠다고 해서 먹는 것입니다. 너무 뜨거우면 과열되니까 식혀 주기 위해서 먹는 걸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뜨거운 것을 좋아하십니다. 국도 뜨거운 것을 좋아하시고, 다 뜨거운 것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해도 틀림없습니다. 사랑을 해도 불이 활활 붙는 뜨거운 사랑을 좋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 가운데 나타나시고 영광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밝은 것은 타는 빛을 상징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뜨거운 사랑을 가졌습니다. 뜨거운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넘을 수 있고, 나라를 넘을 수 있고, 세계를 넘을 수 있고, 하늘땅을 넘을 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뜨거운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계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뜨겁게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전부 다 뜨겁게 만들고 싶어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민주세계의 사람들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지만 공산세계의 사람들까지도 뜨겁게 만들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럴 수 있는 교회, 그럴 수 있는 종교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은 그런 종교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런 교회가 되어 보자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뜨겁기 때문에 아무리 찬물을 갖다 붓더라도 식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어디에 있어요? 그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찬물을 자꾸 끼얹어라! 그러면 그것이 빨리 식을 것이다” 하는 것이 사탄세계의 생각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핍박을 받고 찬물을 맞는 것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는 이게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반대가 없으면 단결이 안 됩니다. 또, 반대가 있어야 모든 방비태세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를 받으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좋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돈이 많다고 하게 되면 “레버런 문이 돈 많은데, 그 돈을 자기를 위해 쓴다” 하면서 선전하기 때문에 돈을 나를 위해 쓰지 않고 공적으로 쓰게 됩니다. 그러니까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다 “이 단체는 강력한 단체로 레버런 문이 말만 하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레버런 문이 시키면 폭력단체가 될 수도 있고, 레버런 문이 독재자가 될 수 있고, 이들이 정치를 하면 나라도 뒤집어 박는다” 하면서 선전하고 있습니다. 원수들이 그렇게 보고 있으니,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공정하게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반대를 받을수록 통일교회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 두고 보면 볼수록 약해질 줄 알지만 더 또릿또릿하고, 더 뜨겁고, 더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86-298)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사랑의 빛과 열을 발하는 사람

밥을 맛있게 먹는 사람은 건강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틀림없이 불붙은 사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도 흔들흔들하고 “아이구, 못 가겠다” 하는 사람들은 기도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말을 듣고 따라다니거나 누가 “어디 가자” 하면 “그래, 그래”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식어 버립니다.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기성교회에 가서 기도해 보고 통일교회에 와서 기도해 보고, 몇 군데만 가 보면 벌써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곳을 대번에 압니다. 기도의 맛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보급받는 열을 잃어버립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중심삼고 기도하면 영감(靈感)이 옵니다. 하나님이 발전소처럼 여러분에게 보급하실 수 있는 선을 가져야만 언제나 뜨거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변하시지 않는 한 여러분도 변하지 않습니다. 밝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열도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시민들이 바라볼 때 “명랑하다. 참 인상이 밝다”고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래요? 아니면, 비 올 날 같지 않아요? 이제부터 여러분은 광명한 아침과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광명하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도 전등과 같습니다. “나는 이 캄캄한 뉴욕시의 몇 천촉 혹은 몇 만촉짜리의 전등이다. 수은등이다. 밝기도 하지만, 여기에 와서 불도 쬘 수 있다”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어떤 사람이겠어요? 언제나 밝은 빛이 24시간 발하고 뜨거울 수 있는 열을 발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사람일 것입니다. 벌레들도 캄캄한 밤이면 전부 다 빛이 있는 곳으로 몰려오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력과 사랑의 힘, 밝고 뜨거운 것을 장구하게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고, 세 번 만난 다음부터 떼어버리고 가더라도 자연히 따라오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더욱이나 남자들이 나가면 여자들이 따라오고, 여자들이 나가면 남자들이 따라옵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못 합니다. 그래서 이 찬 뉴욕 도시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빛으로써 커버하고 녹여야 되겠습니다. (86-302)
영계는 밝은 세상입니다. 이 땅에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지만 영계에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밝겠어요! 그리고 영계는 뜨거운 세계입니다. 척, 사람을 대하면 벌써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것을 보고 그 사람이 얼마만큼 높은 사람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저울대가 됩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서 찬 기운을 느끼면 하나님 앞에 먼 사람이지만 뜨거우면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하나되고 차면 찰수록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냐? 밝은 나라요, 뜨거운 나라입니다. 밝다고 하면 모든 오관이 전부 다 보려고 하고 느끼려고 합니다. 그럴 때는 밝은 것을 보급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밝은 것은 완전한 정의, 옳은 것을 상징합니다. 사랑은 어떤 것이냐? 좋은 것입니다. “좋다” 할 때는 이상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좋으면 눈을 뜨고 좋아해요, 눈을 감고 좋아해요? 아기들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이렇게 두드려 주면 눈뜨고 웃는 것보다 눈을 감으면서 웃습니다. 왜 그러하냐? 사랑은 내적이기 때문입니다. 밝은 것은 뻗어나가는 것이고 사랑은 품는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늘나라는 밝은 나라고 따뜻한 사랑의 나라, 더운 나라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24시간 밝은 나라요, 24시간 더운 나라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하나의 방향만을 가기 때문에 광명한 모습, 명랑한 모습으로 힘차게 뻗어 나갑니다. 아무리 먹구름 같은 것이 막혀 있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은 구름에 가려지면 그림자가 생기지만, 하늘나라의 빛은 구름도 뚫고 나갑니다.
그 빛과 열을 갖고 거기에 가게 되면, 모든 것이 열에 뜨거워져 타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없어집니다. 결국, 천국 문은 누가 여느냐? 우리가 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사람은 언제든지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닫을 수도 있습니다. (86-303)

우리는 천국을 건설하는 개척자

우리는 천국을 건설하는 개척자요, 선발대요, 건설대입니다. 그러니까 이 길을 잘 닦아야 합니다. 길이 꾸불꾸불하면 전부 뭉개 버리고 또다시 닦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복하고 그들을 말로써 전부 다 때려잡기 전에는 세계를 하나로 못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과 열을 가지고 어두운 세계를 다 파헤쳐 버려야 합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산세계를 소화해야 합니다. 그것을 소화하려면 그 이상 강해야 됩니다. 정의에 입각해서 그 이상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계에 남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모세가 느보 산에 올라가서 죽게 될 것을 아셨던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가나안을 복귀해야 할 책임을 맡길 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한 우리 통일교회는 누구보다도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담대하면 그 누구도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미국 국민들보다도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고, 공산세계의 국민들과 그 지도자의 영혼보다도 강하고 담대한 통일교인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서만 하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사탄세계는 파괴지만, 우리는 건설입니다. 희망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골리앗 앞에 다윗과 같은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뉴욕을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언론계를 무서워하거나 어느 정치가를 무서워할 것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있는 우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서운 우리들인데, 거기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백전백승하는 군사가 하늘나라를 이어받을 것입니다. (86-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