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4일) u

훈독왕 | 20190225154000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4일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훈독본) 

날짜 : 1990. 2. 28(수)
장소 : 한국 국제연수원

  
 인간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존재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내용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문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뭐냐? 인간은 어떤 근원에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결과적 존재라면 원인적 존재가 있습니다. 그 원인적 존재를 제1의 존재라고 하면 우리는 제2의 존재입니다. 이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있게끔 한 주인공이 계시는데 그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나 인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뭐냐? 


어쨌든, 하나님은 좋아하고 기뻐하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여러분이 일을 하는데도 기쁘고 좋을 수 있는 목적이 있을 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뻐하고 좋아한다는 그 말 자체는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혼자는 기쁠 수 없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있는데 내 몸과 마음이 기쁘다면 무엇을 중심삼고 기쁜 것이냐? 그 기쁨이 내 한 자체에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쁘고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상대적 관계라든가 환경적 관계를 중심삼고 그것과 같이 동화할 수 있는 자리에서 기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온 피조세계를 왜 창조했느냐? 이 우주가 왜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알려면 근본으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결국, 서로 기뻐하기 위해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201-7)

 원인적인 존재와 결과적인 존재는 필연적인 상관관계

그러면 생명이라는 것이 생겨나기를 무엇에서 생겨났느냐? 부모로부터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생겨났습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떤 분이냐? 부모는 남자분과 여자분, 두 분입니다. 이 두 분이 합쳐져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남자분과 여자분의 사랑을 근거로 내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기원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합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것은 나 하나의 기쁨이 아니라 전체를 대표한 기쁨입니다. 그러면 그 기쁨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자기만 좋아 가지고는 안됩니다. 기쁜 것이 있으면 그것은 반드시 전체와 연관을 맺어야 됩니다. 나 하나를 중심삼고 전체가 나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같이 좋아하기를 바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자체가 나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벌써 여자를 선유조건(先有條件)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여자라는 말은 남자를 선유조건으로 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상관관계와 대응적인 환경적 여건을 인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의 중심이 하나님이고 그분이 원인적인 존재라면 우리는 결과적인 존재이고 하나님이 제1존재라면 우리는 제2존재인데 이 제1존재와 제2존재가 어떻게 결탁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결탁하느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참을 중심삼고 결탁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참이 뭐냐? 참 중의 참이 뭐냐? 고아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참은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 이상의 참이 없습니다. 제일 외로운 고아다 할 때 그 말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존재는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가 왜 제일의 기쁨의 대상이 되고 귀한 것이 되느냐? 여기도 역시 사랑 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세상에서 먹고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게 한 분이 그와 같이 만든 중심 내용이 뭐냐? 그 내용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이고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2존재로 태어난 것은 누구 때문이냐? 결과가 태어난 것은 원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2존재가 태어났다면 그것은 제1존재로 말미암아서입니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는 거리나 환경 여건을 넘어섭니다. 결과를 잡아당기면 원인이 따라오고 원인을 잡아당기면 결과가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부정하면 존재의 기원을 상실해 버립니다. 


참이니, 기쁨이니, 귀한 것이니 하는 이 전부가 원인적 근거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자리에서 하는 말이지 원인과 관계를 떠나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러면 근본 가운데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늘로부터 생명을 이어 나오게 된 동기도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볼 때 남자와 여자가 태어나서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201-10)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그러면 태초부터 계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생각할 때, 그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갖춘 주체로서 절대적인 자리에 계신 하나님에게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체라고 하더라도 그 절대적인 주체 자체가 절대적으로 주체가 되는 동시에 절대적으로 상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람에게는 동쪽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필요하고 동서가 있으면 남북이 필요하고 남북이 있으면 전후·좌우·상하가 필요해서 그것이 하나의 구형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구형을 표준으로 움직입니다. 


왜 구형을 닮아야 되느냐? 구형일수록 소모가 적습니다. 운동을 하더라도 둥글어야 자체도 피해를 받지 않고 환경에도 피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이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데서도 관계라는 것이 문제가 되잖아요? 상대적 관계라든가, 인간적 관계라든가, 부부관계라든가, 생활관계라든가, 모든 것이 관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작용하는 데도 역시 혼자 작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혼자 작용하면 손해가 납니다. 


이렇게 볼 때 상관관계를 중심삼고 화합을 위해서,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존재는 작용하고 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생활작용을 하고 있지요? 거기에는 반드시 남자만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 주체와 대상관계가 성립되는 거기에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광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107개 이상 되는 모든 원소를 중심삼고 우주가 형성되었는데, 이러한 광물세계에서도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자만 보더라도 양자를 중심삼고 돌면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면 지구가 태양계를 중심삼고 대우주를 돌고 있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220억 광년입니다. 1광년이라는 것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보라구요! 이 대우주가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데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 그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대우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운동을 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존재의 기원을 이루기 위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201-12)

 상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그러면 둘이 작용해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되자는 것이냐? 어떠한 중심이 있으면 중심의 자리에 들어가 영원히 운동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하는 곳에는 반드시 중심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반드시 중심을 중심삼고 돌게 마련입니다. 지구도 그렇잖아요? 공전을 합니다. 하나의 중심인 태양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주체가 있게 될 때 그 주체 앞에 상대적인 존재가 생겨납니다. 주체나 상대는 모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상대적 존재를 찾지 못하게 될 때는 주체도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전기로 말하면, 전기에 플러스 전기가 있는데 플러스 전기는 완전한 것입니다. 절대적입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생겨났다고 할 때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플러스 앞에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생겨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의 중심 되는 곳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축은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수직, 축은 영원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축이 생겨야만 그것이 도는 데 있어서 손해가 안 납니다. 축이 생겨야 돌아도 바로 돌지 축이 안 생기면 이것이 자꾸 이동하기 때문에 힘의 소모가 많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서 주체와 대상이 운동하게 될 때는 반드시 축을 중심삼고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것입니다. 우주도 이런 상태에서 존속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권력을 갖고 아무리 지식을 가졌더라도 홀아비가 됐을 때는 불쌍하다고 하지요? 홀아비도 불쌍한데 아들딸마저 없게 될 때는 더 불쌍하다고 합니다. 권세와 지식과 돈 등 갖춘 것이 완전할수록 상대인 아내가 없을 때는 그만큼 더 고독을 느끼게 되고 더 불쌍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그 상대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냐 이거예요. 인간의 영원한 상대란 좋은 상대입니다. 좋은 상대라면 영원히 갈 수 있는 상대입니다. 그 상대가 뭐냐 할 때 반드시 남자에게 있어서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횡적인 면에서 어떤 가치 있는 존재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돈 백억, 천억과 바꾸겠어요? 진짜 사랑이 귀하다는 것을 알면 절대로 바꾸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주의 근본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근원이 손상된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아는 입장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무엇과 바꾸겠어요? 


그러면 상대가 귀한데 왜 귀하냐? 사랑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돈 천억, 1조 원을 준다고 하더라도 내 생명과 바꾸겠어요? 나도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돈 주고 살 수 없고, 지식 가지고 바꿀 수 없고, 권력 가지고 내 생명과 바꿀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게 된다면 상대와 주체가 얼마나 귀하냐는 것입니다. (201-15)

 모든 것은 상대를 위해 존재해

인간 세상에 50억 인류라든가 우리 4천만 혹은 남북을 중심한 6천만 전체 국민을 합해 놓더라도 그것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귀한 것이냐? 이렇게 남자와 여자로 태어났는데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피조물로 존재하는, 혹은 작용하는 모든 광물계와 식물계로부터 우주 전체를 두고 볼 때 이들이 주고받으면서, 운동하면서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 그들도 그들 나름의 주체 대상관계에서 자기 나름의 사랑이라는 축을 중심삼고 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물질, 우리 환경의 식물과 동물세계는 왜 태어났느냐 할 때 반드시 주체와 대상관계를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어떤 물건이든 태어난 근본 원칙에서는 플러스가 플러스, 주체가 주체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마이너스면 마이너스, 대상이면 대상 자체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주체가 태어난 것은 대상 때문이요, 대상이 태어난 것은 주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이고,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존속의 기원, 출생의 기원이 나로부터가 아닙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를 나로부터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철학에서 관이 달라 물질이 먼저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가 생겨났고, 마음이 먼저라고 하는 관에서 민주세계가 생겨났습니다.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이 벌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역사가 달라지고 목적이 달라졌는데, 그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전부 깨져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라는 것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 길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문총재가 주장하는 하나님주의니 두익사상이니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주체 자체가 생겨나게 될 때 주체 자체 때문에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창조주로 전체의 주체적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옵니다. 그분도 대상 때문에 계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가 사실이라고 할 때 절대적 하나님 자신, 절대적인 고정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여기 나이 많은 양반들, 오래 사신 분들은 생각해 보라구요! 혼자 있으면 고독하지요? 아들딸도 다 시집가고, 나중에는 자기 여편네와 둘이 이마를 맞대고 살다가 여편네도 죽든가 하면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그러니까 절대적 주체로 계시는 그분도 기필코 상대권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를 한 것은 자기 상대권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요, 상대권을 보존한다는 것은 자기 자체의 생존적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절대적 행사를 하면서 살고 싶으냐? 혼자는 안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절대복종하라!”는 그 하나님 자신도 “나도 절대복종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절대복종하며 살고 싶은 소성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도 절대적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상대를 만들기 위해서 모든 피조세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물에서부터 식물, 동물, 인간까지 나온 것입니다.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惟人最貴)다.” 할 때 만물지중이란 전체를 말합니다. 전체 가운데서 최고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 인간과의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만물이 존속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무엇을 중심삼고 상대적 운동을 하느냐? 급은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을 중심삼고 운동합니다. (201-17)

 참사랑에는 하나님도 복종해


첫사랑에 눈을 뜨면 밤이나 낮이나 가리지 않습니다. 잠을 모르고 모든 것이 깨 있으려 합니다. 눈도 완전히 열리고, 코도 완전히 열리고, 귀도 완전히 열리고, 모든 세포까지도 문을 엽니다. “야, 다 들어와라!” 합니다. 흥분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둥둥 떠다닌다는 것입니다. “다 들어와라!” 하는데 무엇을 보고 들어오라는 거예요? 사랑을 보고 찾아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가 되면 아무리 잘난 남자라도, 앞을 바라보고 전진하던 남자라도 옆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종적으로 직행하던 것이 횡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대부의 규수도 그렇잖아요? “절대 출입금지!” 하지만, 봄이 되거나 사춘기가 되면 담을 넘어서 무엇을 찾고 다닙니다. 찾는 것이 뭐예요? 남자라는 동물입니다. 다 그런 것을 경험했지요? 사춘기 시대의 젊은 남자들은 건너편에 있는 남자들한테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리 잘나고 훌륭한 남자라도 관심이 없지만 여자만 보면 대번에 마음이 쏠립니다. 모든 관심사가 상대적 존재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운동하는 것들은 영원한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운동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무엇을 중심삼고 살고 싶으냐? 그것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01-20)

 사랑의 상대를 위해서는 하나님도 모든 것을 희생해

그러면 하나님한테 절대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알아보니 절대적인 하나님도 절대적인 사랑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 자기보다 못생기기를 원하는 사람을 봤어요? 여기 앞에 앉은 양반들도 자신은 못생겼지만 여편네는 잘생겨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이 어디서 왔어요?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왔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서 왔느냐? 올라가고 올라가 가지고, 우리 일대조 할아버지 할머니한테서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위에는 제1존재가 있고 그 원인적 존재가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논리적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도 없습니다. “나는 못났어도 잘난 여편네를 원하고 아들딸도 나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 하는 마음이 어디서 왔어요? 그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도 낫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사랑하는 대상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죽더라도, 하나님이 희생되더라도 그 상대를 남겨 주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희생되어도 좋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부모 되는 나는 희생되어도 좋다.” 하는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도 사랑의 상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주체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을 희생시킬 수 있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중심삼고 살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201-25)

 사랑은 생명의 뿌리

왜 희생해야 되느냐? 사랑은 생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나를 낳아 준 근본입니다. 사랑이 없었으면 내가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가진 존재는 자기를 낳아 준 뿌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뿌리를 떠나서는 줄기나, 가지나, 잎이나, 꽃이나, 혹은 열매가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를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가지들입니다. 동쪽 가지요, 서쪽 가지요, 남쪽 가지입니다. 이들이 상치하면 뿌리가 꼬부라집니다. 뿌리가 꼬부라지고 줄기가 꼬부라지고 순이 꼬부라집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하듯이 형제지간에 서로 사랑하는 가지를 가진 그 나무는 곧은 뿌리와 곧은 줄기와 곧은 순을 갖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흐트러지면 무가치합니다. 수직이 안 됩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까지도 투입하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혼자는 외로우니까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창조한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을 짓기 위해 모든 전체를 전개시킨 것이 피조세계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을 하나 붙들면 놓겠어요, 안 놓겠어요? 죽기 전에는 못 놓습니다. 


여러분이 여편네 방에 들어가게 될 때 인사하고 들어가요? 그보다 더 깊은 곳에 갈 때 인사하고 그래요? 저쪽에서는 백 퍼센트 오라고 하고 이쪽은 또 가려고 하잖아요? 그래 가지고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돌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여자는 남자의 세계를 점령하고 남자는 여자의 세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201-27)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은 사랑

하나님은 누구냐 할 때 이제는 다 알 것입니다. 그분은 사랑의 주인공이시고 우리 인간을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만든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사랑의 대상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자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부모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어릴 때는 자녀의 자리에 있지만 크게 되면 남자를 대표할 수 있고 여자를 대표할 수 있는 만물 중의 최고의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남자는 “이 이상 더 갈 곳이 없구나! 내게 필요한 것은 저 서쪽에 있는 콩알만한 여자구나!” 하게 됩니다. 또, 여자는 “동쪽에 있는 덩치가 큰 밉살스럽고 보기 싫은 황소 같은 남자 녀석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크는 목적이 뭐예요? 크는 목적도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것만 갖다 놓으면 남자나 여자나 다 뻗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것이 더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좋고 망해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생사지권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영생하느냐 할 때 그게 여러분의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 가지고는 영생 못 합니다. 일생 백 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생명이 사랑을 뿌리로 해서 그 줄기를 중심삼고 혈통을 통하는 데 있어서 “나는 영원히 사랑 가운데 살 수 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생명과 핏줄을 통해 영생할 수 있습니다. 자, 사랑이 귀하다는 것을 아시겠어요? (201-30)
 

<훈독소감>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인간이 나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상대 때문에 태어난 것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뜻도 바로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상대냐? 바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상대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위해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사랑일수밖에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생도 바로 이 사랑으로만 영생할 수 있음을 강조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가장 귀한 삶을 살아주길 당부에 당부를 하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길을 훈련하는 것이 지상 삶의 최대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부모 자식간에, 부부간에, 형제자매간에, 이웃간에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가장 귀한 삶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 24 일 원문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 

날짜 : 1990. 2. 28(수)
장소 : 한국 국제연수원

  
 인간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존재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내용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문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 하면 대한민국 사람도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인류가 다 들어갑니다. 이런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뭐냐? 더 높이 생각해 보면, 인간이 모든 우주의 근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근원에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결과적 존재라면 원인적 존재가 있습니다. 그 원인적 존재를 제1의 존재라고 하면 우리는 제2의 존재입니다. 이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있게끔 한 주인공이 계시는데 그를 한국 사람들의 말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여러분 각자 개인에게 있어서도 자기의 일생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중요한 문제를 어떻게 보다 가치 있게 성사시키느냐 하는 것이 생애의 의무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나 인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을 넘어서 하나님 자신에게 돌아가더라도 하나님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뭐냐? 또, 하나님이 나빠하고 싫어하는 것이 뭐냐? 이것은 하나님 자신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좋아하고 기뻐하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여러분이 일을 하는데도 기쁘고 좋을 수 있는 목적이 있을 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뻐하고 좋아한다는 그 말 자체는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혼자는 기쁠 수 없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있는데 내 몸과 마음이 기쁘다면 무엇을 중심삼고 기쁜 것이냐? 그 기쁨이 내 한 자체에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쁘고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상대적 관계라든가 환경적 관계를 중심삼고 그것과 같이 동화할 수 있는 자리에서 기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온 피조세계를 왜 창조했느냐? 이 우주가 왜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알려면 근본으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결국, 서로 기뻐하기 위해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201-7)

 원인적인 존재와 결과적인 존재는 필연적인 상관관계

그러면 생명이라는 것이 생겨나기를 무엇에서 생겨났느냐? 생명이 무엇에서 생겨났어요? 부모로부터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생겨났습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떤 분이냐? 부모는 남자분과 여자분, 두 분입니다. 이 두 분이 합쳐져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남자분과 여자분의 사랑을 근거로 내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기원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합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은 왜냐? 철학에서도 내가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해답을 다른 데서 찾으려고 생각하겠지만 태어난 자신이 그 모든 설명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50억 인류를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남자가 25억이고 여자가 25억이 되는데 서로서로가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하나의 해결은 전체를 대신한 해결인 것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것은 나 하나의 기쁨이 아니라 전체를 대표한 기쁨입니다. 그러면 그 기쁨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자기만 좋아 가지고는 안됩니다. 기쁜 것이 있으면 그것은 반드시 전체와 연관을 맺어야 됩니다. 나 하나를 중심삼고 전체가 나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같이 좋아하기를 바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자체가 나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이 남자 때문이에요? 남자가 태어난 것은 벌써 여자를 선유조건(先有條件)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여자라는 말은 남자를 선유조건으로 하고 있는 말입니다. 위라는 말도 아래를 벌써 인정하고 있는 말입니다. ‘바른쪽이다.’ 할 때도 그 바른쪽 자체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상관관계와 대응적인 환경적 여건을 인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의 중심이 하나님이고 그분이 원인적인 존재라면 우리는 결과적인 존재이고 하나님이 제1존재라면 우리는 제2존재인데 이 제1존재와 제2존재가 어떻게 결탁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결탁하느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참을 중심삼고 결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변하기가 힘듭니다. 도대체, 참이 뭐냐? 참이란 말 자체만을 두고 보면 이건 추상적인 명사입니다. 참 중의 참이 뭐냐? 고아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참은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 이상의 참이 없습니다. 제일 외로운 고아다 할 때 그 말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존재는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 이상 참되고 기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가 왜 제일의 기쁨의 대상이 되고 귀한 것이 되느냐? 여기도 역시 사랑 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세상에서 먹고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게 한 분이 그와 같이 만든 중심 내용이 뭐냐? 그 내용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이고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2존재로 태어난 것은 누구 때문이냐? 결과가 태어난 것은 원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2존재가 태어났다면 그것은 제1존재로 말미암아서입니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는 거리나 환경 여건을 넘어섭니다. 결과를 잡아당기면 원인이 따라오고 원인을 잡아당기면 결과가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부정하면 존재의 기원을 상실해 버립니다. 
그렇다 할 때 상관관계를 중심삼고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본성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참이니, 기쁨이니, 귀한 것이니 하는 이 전부가 원인적 근거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자리에서 하는 말이지 원인과 관계를 떠나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러면 근본 가운데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늘로부터 생명을 이어 나오게 된 동기도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볼 때 남자와 여자가 태어나서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201-10)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그러면 태초부터 계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생각할 때, 그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무소부재하십니다. 그에게는 모르는 것이 없고, 그에게는 능치 않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갖춘 주체로서 절대적인 자리에 계신 하나님에게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체라고 하더라도 그 절대적인 주체 자체가 절대적으로 주체가 되는 동시에 절대적으로 상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람에게는 동쪽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필요하고 동서가 있으면 남북이 필요하고 남북이 있으면 전후·좌우·상하가 필요해서 그것이 하나의 구형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구형을 표준으로 움직입니다. 
왜 구형을 닮아야 되느냐? 구형일수록 소모가 적습니다. 운동을 하더라도 둥글어야 자체도 피해를 받지 않고 환경에도 피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자동차 바퀴를 보십시오! 그것이 조금만 찌그러져도 얼마나 피해가 많아요! 그 자체도 야단나지만 타고 있는 사람도 야단납니다. 그 환경에 상당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완전히 둥글게 될 때는 그것이 정지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몸 자체에서도 모든 것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원형을 그리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포를 보더라도 반드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용과 운동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문제가 됩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이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근본에 들어가서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전기가 먼저냐, 전기 작용이 먼저냐? 어떤 거예요? 전기가 먼저예요, 전기 작용이 먼저예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데서도 관계라는 것이 문제가 되잖아요? 상대적 관계라든가, 인간적 관계라든가, 부부관계라든가, 생활관계라든가, 모든 것이 관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작용하는 데도 역시 혼자 작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혼자 작용하면 손해가 납니다. 여러분이 아침 일찍 일어나 여기에 참석했는데 손해보기 위해서 여기 앉아 있다면 끝나고 가는 시간에는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아이구, 기분 나쁘다! 잘 자는 사람을 새벽부터 왜 깨웠어!” 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에 비례해 불평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볼 때 상관관계를 중심삼고 화합을 위해서,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존재는 작용하고 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태양계만 보더라도 태양을 중심삼고 그 위성들이 운동을 합니다. 그렇게 하나의 태양계를 이루어 대우주 형성에 있어서 하나의 공식적 모델과 같은 형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생활작용을 하고 있지요? 거기에는 반드시 남자만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 주체와 대상관계가 성립되는 거기에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광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107개 이상 되는 모든 원소를 중심삼고 우주가 형성되었는데, 이러한 광물세계에서도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자만 보더라도 양자를 중심삼고 돌면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작용을 하고 식물세계도 작용을 하고 동물세계도 작용을 하는데 여기에서 공통분모가 뭐냐 하는 것입니다.
지구면 지구가 태양계를 중심삼고 대우주를 돌고 있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220억 광년입니다. 1광년이라는 것은 1초 동안에 지구의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빠른 속도를 가진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보라구요! 이 대우주가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데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 그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대우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운동을 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숨을 쉬지요? 숨을 안 쉰다고 생각해 보세요! 왜 이렇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느냐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런 작용을 해야 됩니다. 주고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구도 그렇습니다. 지구도 운동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존재는 존재의 기원을 이루기 위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201-12)

 상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그러면 둘이 작용해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되자는 것이냐? 어떠한 중심이 있으면 중심의 자리에 들어가 영원히 운동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하는 곳에는 반드시 중심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반드시 중심을 중심삼고 돌게 마련입니다. 지구도 그렇잖아요? 공전을 합니다. 하나의 중심인 태양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갈라서 이야기해 봅시다. 절대적인 주체가 있게 될 때 그 주체 앞에 상대적인 존재가 생겨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주체 자체도 무(無)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나 상대는 모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상대적 존재를 찾지 못하게 될 때는 주체도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전기로 말하면, 전기에 플러스 전기가 있는데 플러스 전기는 완전한 것입니다. 절대적입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생겨났다고 할 때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플러스 앞에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생겨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의 중심 되는 곳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중앙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대한민국 대통령도 대한민국 백성이 세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주체라면 백성은 상대가 되어서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영원성을 가집니다. 
축은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수직, 축은 영원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도 완전히 상하가 하나되어 잘 주고 잘 받으면 거기에는 어느 개인이나 백성 혹은 대통령도 움직일 수 없는 영원한 축이 생겨납니다. 
축이 생겨야만 그것이 도는 데 있어서 손해가 안 납니다. 축이 생겨야 돌아도 바로 돌지 축이 안 생기면 이것이 자꾸 이동하기 때문에 힘의 소모가 많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서 주체와 대상이 운동하게 될 때는 반드시 축을 중심삼고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것입니다. 우주도 이런 상태에서 존속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권력을 갖고 아무리 지식을 가졌더라도 홀아비가 됐을 때는 뭐라고 그래요? 불쌍하다고 하지요? 홀아비도 불쌍한데 아들딸마저 없게 될 때는 더 불쌍하다고 합니다. 권세와 지식과 돈 등 갖춘 것이 완전할수록 상대인 아내가 없을 때는 그만큼 더 고독을 느끼게 되고 더 불쌍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그 상대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냐 이거예요. 인간의 영원한 상대란 어떤 상대냐? 좋은 상대입니다. 좋은 상대라면 어떤 상대냐? 영원히 갈 수 있는 상대입니다. 그 상대가 뭐냐 할 때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남자에게 있어서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횡적인 면에서 어떤 가치 있는 존재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돈 백억, 천억과 바꾸겠어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진짜 사랑이 귀하다는 것을 알면 절대로 바꾸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주의 근본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근원이 손상된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아는 입장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무엇과 바꾸겠어요? 나라와 바꾸겠어요? 
그러면 상대가 귀한데 왜 귀하냐? 사랑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돈 천억, 1조 원을 준다고 하더라도 내 생명과 바꾸겠어요? 나도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돈 주고 살 수 없고, 지식 가지고 바꿀 수 없고, 권력 가지고 내 생명과 바꿀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게 된다면 상대와 주체가 얼마나 귀하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날 우리 인간들 자체가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201-15)

 모든 것은 상대를 위해 존재해

인간 세상에 50억 인류라든가 우리 4천만 혹은 남북을 중심한 6천만 전체 국민을 합해 놓더라도 그것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귀한 것이냐? 이렇게 남자와 여자로 태어났는데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피조물로 존재하는, 혹은 작용하는 모든 광물계와 식물계로부터 우주 전체를 두고 볼 때 이들이 주고받으면서, 운동하면서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 그들도 그들 나름의 주체 대상관계에서 자기 나름의 사랑이라는 축을 중심삼고 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기 자체가 플러스 마이너스 작용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차원이 다를 뿐이지 인간들끼리 사랑하는 것과 딱 마찬가지의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물질, 우리 환경의 식물과 동물세계는 왜 태어났느냐 할 때 반드시 주체와 대상관계를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어떤 물건이든 태어난 근본 원칙에서는 플러스가 플러스, 주체가 주체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마이너스면 마이너스, 대상이면 대상 자체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주체가 태어난 것은 대상 때문이요, 대상이 태어난 것은 주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이고,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존속의 기원, 출생의 기원이 나로부터가 아닙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를 나로부터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철학에서 관이 달라 물질이 먼저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가 생겨났고, 마음이 먼저라고 하는 관에서 민주세계가 생겨났습니다.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이 벌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역사가 달라지고 목적이 달라졌는데, 그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전부 깨져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라는 것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 길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문총재가 주장하는 하나님주의니 두익사상이니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주체 자체가 생겨나게 될 때 주체 자체 때문에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창조주로 전체의 주체적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옵니다. 그분도 대상 때문에 계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가 사실이라고 할 때 절대적 하나님 자신, 절대적인 고정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여기 나이 많은 양반들, 오래 사신 분들은 생각해 보라구요! 혼자 있으면 고독하지요? 아들딸도 다 시집가고, 나중에는 자기 여편네와 둘이 이마를 맞대고 살다가 여편네도 죽든가 하면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그러니까 절대적 주체로 계시는 그분도 기필코 상대권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를 한 것은 자기 상대권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요, 상대권을 보존한다는 것은 자기 자체의 생존적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절대적 행사를 하면서 살고 싶으냐? 혼자는 안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절대복종하라!”는 그 하나님 자신도 “나도 절대복종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절대복종하며 살고 싶은 소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 문제가 되어 왔는데 하나님이 제1존재이고 우리가 제2존재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이런 논리로 결론을 짓게 될 때, 절대적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도 절대적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상대를 만들기 위해서 모든 피조세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물에서부터 식물, 동물, 인간까지 나온 것입니다.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惟人最貴)다.” 할 때 만물지중이란 전체를 말합니다. 전체 가운데서 최고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 인간과의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만물이 존속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무엇을 중심삼고 상대적 운동을 하느냐? 급은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을 중심삼고 운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곤하다는 생각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201-17)

 참사랑에는 하나님도 복종해

여러분도 지금은 나이들이 다 많으시지만 청춘시대에 그런 때가 있었지요? 첫사랑에 눈을 뜨면 밤이나 낮이나 가리지 않습니다. 잠을 모르고 모든 것이 깨 있으려 합니다. 눈도 완전히 열리고, 코도 완전히 열리고, 귀도 완전히 열리고, 모든 세포까지도 문을 엽니다. “야, 다 들어와라!” 합니다. 흥분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둥둥 떠다닌다는 것입니다. “다 들어와라!” 하는데 무엇을 보고 들어오라는 거예요? 사랑을 보고 찾아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가 되면 아무리 잘난 남자라도, 앞을 바라보고 전진하던 남자라도 옆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종적으로 직행하던 것이 횡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대부의 규수도 그렇잖아요? “절대 출입금지!” 하지만, 봄이 되거나 사춘기가 되면 담을 넘어서 무엇을 찾고 다닙니다. 찾는 것이 뭐예요? 남자라는 동물입니다. 다 그런 것을 경험했지요? 사춘기 시대의 젊은 남자들은 건너편에 있는 남자들한테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리 잘나고 훌륭한 남자라도 관심이 없지만 여자만 보면 대번에 마음이 쏠립니다. 모든 관심사가 상대적 존재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운동하는 것들은 영원한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운동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무엇을 중심삼고 살고 싶으냐?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문제에 대해 심각했습니다. 오늘날 인간세계에 악이 충만해 가지고 세상이 망했는데 이상의 모체가 되는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걸 버려 두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이것을 보고 전부 시정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하나님은 왜 이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여러 가지 곡절의 사실을 풀어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발견했다면 하나님 자신으로 돌아가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도 절대복종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뭐냐? 그것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이 이렇게 납니다. (201-20)

 사랑의 상대를 위해서는 하나님도 모든 것을 희생해

그러면 하나님한테 절대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한테 절대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돈은 얼마든지 만들어 씁니다. 다이아몬드도 아닙니다. 다이아몬드 별들이 얼마나 많아요! 수억의 별이 있는데 거기에 다이아몬드로만 된 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80퍼센트, 90퍼센트 금덩이로 된 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비취돌로 된 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부자예요, 아니에요? 220억 광년이라는 그 세계에 보화의 별들이 꽉 차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나님은 상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상상에 미칠 수 있는 대상적 미의 가치를 지닌 존재세계를 바라보시면서 그 가운데서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내 이 마음이 천지지간에 제일이구만!” 그러면서 사실 것입니다. 그러한 전부와 바꿀 수 없는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알아보니 그래요. 천신만고 죽느니, 사느니 하면서 뒤넘이치고 영계를 다 들춰보고 나니까 기가 찹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절대적인 사랑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지금까지는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의 논리는 전부 다 “그 말이 거짓말이지 맞는 말이야? 가 봤느냐? 그거 어떻게 알 수 있어?” 그럽니다. 의심스럽지요? 그렇지요? 
한 가지 물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 자기보다 못생기기를 원하는 사람을 봤어요? 여기 앞에 앉은 양반들도 자신은 못생겼지만 여편네는 잘생겨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이 어디서 왔어요? 어디가 기원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 무엇이 있는 데서 왔는데 그것이 누구한테서냐?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왔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서 왔느냐? 올라가고 올라가 가지고, 우리 일대조 할아버지 할머니한테서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위에는 제1존재가 있고 그 원인적 존재가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논리적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도 없습니다. “나는 못났어도 잘난 여편네를 원하고 아들딸도 나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 하는 마음이 어디서 왔어요? 그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도 낫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사랑하는 대상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죽더라도, 하나님이 희생되더라도 그 상대를 남겨 주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희생되어도 좋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부모 되는 나는 희생되어도 좋다.” 하는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도 사랑의 상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주체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을 희생시킬 수 있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201-25)

 사랑은 생명의 뿌리

이렇게 볼 때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중심삼고 살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데 “아이구, 나 중심삼고 살겠다.” 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아내도 자기를 중심삼고 살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살겠다고 합니다. 그래, 부부지간에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요? 철주를 박아 놓고 거기에 둘이 매고 살아요? 사랑인지 무엇인지, 두루뭉수리인지 판박인지 모르지만 거기에 붙어사는 것 아니에요? 그것을 축으로 해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 보니 가운데가 둥글둥글 커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도 그 사랑 때문에 희생하려고 하고 여자도 그 사랑 때문에 희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희생해야 되느냐? 사랑은 생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나를 낳아 준 근본입니다. 사랑이 없었으면 내가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가진 존재는 자기를 낳아 준 뿌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뿌리를 떠나서는 줄기나, 가지나, 잎이나, 꽃이나, 혹은 열매가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를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가지들입니다. 동쪽 가지요, 서쪽 가지요, 남쪽 가지입니다. 이들이 상치하면 뿌리가 꼬부라집니다. 뿌리가 꼬부라지고 줄기가 꼬부라지고 순이 꼬부라집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하듯이 형제지간에 서로 사랑하는 가지를 가진 그 나무는 곧은 뿌리와 곧은 줄기와 곧은 순을 갖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흐트러지면 무가치합니다. 수직이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수직이 돼야 하느냐? 수직을 통한 꼭대기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근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찌그러지면 그 꼭대기와 통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게 살고 사랑하면서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곧아야 하고, 줄기가 곧아야 하고, 순이 곧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에 최고의 사랑의 축이 있다면 그 축 앞에 평행선이 되어야 합니다. 산에 가서 보면 좋은 나무는 키가 크고 곧은 나무지요? 작은 나무한테도 “너 어떻게 클 거야?” 하고 물어 보면 저 큰 나무와 평형선으로 크고 싶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까지도 투입하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혼자는 외로우니까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창조한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을 짓기 위해 모든 전체를 전개시킨 것이 피조세계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을 하나 붙들면 놓겠어요, 안 놓겠어요? 죽기 전에는 못 놓습니다. 하나되는 데는 얼마나 하나가 되고 싶은지 이렇게 하나될 뿐만 아니라 저렇게도 하나되고, 저쪽을 뚫고 나갔다 와서도 하나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특성이 다릅니다. 여자와 남자가 얼마나 달라요? 하나가 올라가려는 기운을 뻗는다면 하나는 내려가려는 기운을 뻗어서 균형을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사랑하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뚫고 나가느냐? 여자면 여자의 제일 비밀 근거지의 중앙 복판을 뚫고 나가라고 하고 또 남자의 비밀 근거지를 뚫고 가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길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편네 방에 들어가게 될 때 인사하고 들어가요? 아저씨들, 어때요? 여편네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을 때 인사하고 그래요? 그보다 더 깊은 곳에 갈 때 인사하고 그래요? 저쪽에서는 백 퍼센트 오라고 하고 이쪽은 또 가려고 하잖아요? 그래 가지고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돌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여자는 남자의 세계를 점령하고 남자는 여자의 세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점령하느냐? 총칼이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점령할 때 그 방안의 모든 것이 다 웃고 좋다고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아이구, 당신들이 뒤넘이치는 것을 보니 나도 뒤넘이치고 싶다.” 하면서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비로소 행복이 풍선처럼 둥둥 뜨고 둥글둥글할 수 있는 기분이 나는 것입니다. 판대기 짜박지 사랑, 방향적인 사랑이 되어 보라구요 어떻게 되나. 꽉찬 사랑으로 변화해야 된다구요. 둥글둥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난 사람은 손해가 나는 것입니다. (201-27)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은 사랑

우리 같은 사람은 미국에 가면 미국에 가서도 둥글둥글 돌아간다구요! 구형이 왜 좋으냐? 구형이 가진 특권은 그 표면이 어디든지 머물게 될 때, 서게 될 때는 수직을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표면이 어디든지 서게 되면 반드시 수직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 표면 전부가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구형은 공평하고 평등합니다. 내가 왕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수직은 전체를 대신한 중심이기 때문에 정오가 되면 그림자가 없습니다. 다른 때는 다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왜 안 보이느냐 하는 문제를 이론적으로 어떻게 규명하느냐? 하나님은 수직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수직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 보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볼 수 없습니다. 수직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냐 할 때 이제는 다 알 것입니다. 그분은 사랑의 주인공이시고 우리 인간을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만든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사랑의 대상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자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누구냐 할 때 하나님은 부모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어릴 때는 자녀의 자리에 있지만 크게 되면 남자를 대표할 수 있고 여자를 대표할 수 있는 만물 중의 최고의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남자는 “이 이상 더 갈 곳이 없구나! 내게 필요한 것은 저 서쪽에 있는 콩알만한 여자구나!” 하게 됩니다. 또, 여자는 “동쪽에 있는 덩치가 큰 밉살스럽고 보기 싫은 황소 같은 남자 녀석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크는 목적이 뭐예요? 크는 목적도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것만 갖다 놓으면 남자나 여자나 다 뻗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것이 더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요? 망해도 좋다고 합니다. 죽어도 좋고 망해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생사지권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가지고 영생하느냐 할 때 그게 여러분의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 가지고는 영생 못 합니다. 일생 백 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생명이 사랑을 뿌리로 해서 그 줄기를 중심삼고 혈통을 통하는 데 있어서 “나는 영원히 사랑 가운데 살 수 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생명과 핏줄을 통해 영생할 수 있습니다. 
풀줄기가 가을이 되면 마르지만 봄에 또 줄기가 나오지요? 여러분이 왜 아들딸을 남겨야 되느냐? 여러분의 피가 심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아들딸을 남긴다는 것은 내 제2의 생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을 좋아했으니 나와 같이 사랑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서 아들딸을 시집 장가보내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시집 장가 못 보내면 부모는 한이 됩니다. 왜 그러냐?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세계에서 이런 모든 원칙적 기반에 연결되어야 공존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면 불합격자니 추방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 사랑이 귀하다는 것을 아시겠어요? (2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