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일
하나님의 섭리와 조국
날짜 : 1965. 10. 30(토)
장소 : 한국 대구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LGnLwmN-gww&list=PLtan-zpeJeilD6pJZCkogCwve2117SlW6
이 세계는 우리가 이상하는 세계가 아니다
현재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세계는 우리가 이상하는 사회와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두고 봐도 마음과 몸이 사사건건 통일되지 않고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데 협조하지 않고 반발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한국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도 그렇고, 서양 사람들도 그렇고, 자고로 왔다 간 우리 선조들도 그랬고, 현세를 살고 있는 30억 인류도 그렇고, 앞으로 올 미래의 수많은 우리 후손들도 그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인류가 이렇게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을 원하실 것이냐 할 때,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을 원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역시 그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을 원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가 그런 환경을 원치 않고 어떤 나라와 주권이 그것을 원치 않는 한 하나님도 역시 그런 환경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과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들까지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류를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자리에 둘 수 없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평화를 노래할 수 있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개인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 개인을 중심삼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종족을 이루고, 그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그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세계를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로 다시 돌이켜 놓기 위해서 이 땅을 대해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55-195)
오늘날 이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모여 있고, 이 지상에는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권내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권, 심판받고 저주받아야 할 권내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선지자를 보내 사탄세계의 양심적인 사람을 끌어다가 사탄과 지금까지 관계를 맺었던 모든 것들을 깨끗이 청산하고 사탄과 관계없는 조건을 세워 놓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하면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이 나와야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사를 중심삼고 볼 때, 이스라엘 선민사상이 역사상에 있었던 것은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가정을 취하여 새로운 족속을 편성하고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세계를 다시 찾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민을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인간시조가 타락한 그날부터 그러한 역사를 시작하여 오늘의 이 끝날까지 그러한 섭리의 발판을 닦으면서 하나님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역사의 배후에서 섭리해 나오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늘 편에 선 개인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으면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하나되고, 가정이 하나되면 종족과 민족 그리고 국가를 이루어 하나님이 대표적인 치리자를 보내 가지고 사탄세계를 쳐부수실 수 있었습니다. 악한 세계의 수많은 왕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왕권의 대표자로 이 땅 위에 보내신 분이 만왕의 왕이요, 메시아였습니다. (155-197)
하늘의 책임을 진 자는 주위 환경 전체가 반대해
메시아는 먼저 국가를 악한 세상에서 구해 가지고 하나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는 새로운 국권을 창건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한 국권을 창건하려면 민족이 있어야 했습니다. 민족이 있는 동시에 국토가 있어야 했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의 중동지역을 미래의 이스라엘을 창건할 수 있는 영토로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장악해서 그 영토를 하나로 만들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메시아를 군왕으로 세워서 악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점령해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바랐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선한 나라를 세워야 했습니다. 선한 나라를 세우려면 선한 민족이 있어야 했습니다. 선한 민족을 넘어 선한 종족도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가정의 열두 아들들을 위시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시련과 고통의 노정을 거치면서 악한 세상을 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당신의 아들딸들을 고생시켜 사탄세계에서 맞고 빼앗아 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을 위하여 가장 충성하는 사람들을 내세워 반대받게 하십니다. 그 사람이 지역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전 지역으로부터 반대를 받게 하시고, 민족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전 민족으로부터 반대받게 하시고, 국가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사탄 편의 전체 국가들로부터 반대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사탄이 기뻐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사탄 편 전체가 미워하는 자리에 세워 가지고 맨 위에서부터 끝까지 그를 미워했다는 조건을 세워 놓고야 사랑하십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노아 같은 사람도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했습니다. “저놈의 늙은이, 저놈의 영감쟁이 정신나갔지! 배를 만들려면 바닷가에서 만들지 산에다 만들 게 뭐야? 거 본래 미친 녀석이야, 미친 녀석” 하면서 인간 세상에서는 백 퍼센트 반대받는 환경에 세우셨습니다.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든지 노아를 배척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만이 아니었습니다. 120년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를 전부 때렸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그런 사람들은 한꺼번에 죽여 버려도 괜찮았습니다. 선에 대하여 반박하고 선에 대하여 원수의 입장에 선 그 사람들은 때를 맞이하여 한꺼번에 복귀하게 될 때는 때려죽여도 괜찮았다는 것입니다. 심판해 버려도 되었습니다. (155-199)
우리 선조들이 걸어온 길
이런 조건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랜 기간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도록 노아를 그냥 두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일편단심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연환경은 변해도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던 아내와 자녀들이 변하더라도 그의 결심은 일편단심으로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강해졌습니다. 그 심정기반은 그 시대에 전 세계를 심판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걸어온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따라나온 사람들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행복을 노래하고,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를 다 버리고 떠나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지금의 이라크입니다. 가나안 땅이라는 곳은 지금의 이스라엘나라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려면 오늘날 수많은 국경을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그는 집시가 되고 유랑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향하시던 곳을 향하여 방향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면서 그 명령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그 길은 낙망의 길이라면 낙망의 길이요, 절망의 길이라면 절망의 길이요, 외로운 자리라면 외로운 자리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것을 안 사람들은 전부 다 비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역경을 거쳐 나가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행동했습니다. 애급에서 자기의 처자를 빼앗길 수 있었던 위험한 지경까지 갔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아브라함이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세워 약속한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지만,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바로 궁중에서 편안한 하루 하루를 보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신음과 도탄 중에 빠져 있던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 앞에 항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민족을 구해주마” 하고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이 기필코 버리시지 않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궁중에 있던 반대자들을 때려죽였고 그것으로 인해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극히 외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연을 상대로 하여 수많은 양떼들을 이스라엘 민족 대신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했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양떼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은 기억하사, 당신이 본래 약속하신 이스라엘 천국을 건설하시옵소서” 하면서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길도 개의치 않고 당당코 바로 궁중을 향하여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선조들이 가던 길에서는 언제나 배척을 받고 몰림을 받고 외로운 자리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기반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섭리를 출발해 나오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때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준비하셨던 민족적인 기반과 교단적인 기반이 일치되어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당할 시련과 고통을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교단이 책임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고통을 당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교단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것을 책임지고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국가한테 몰리고, 교단한테 몰리고, 자기의 친척들한테 몰리고, 제자들한테까지도 몰려서 갈 데가 없었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편단심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효성을 다한 마음이 불변적인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를 중심삼고 새로운 부활의 역사를 시작하여 제2이스라엘을 편성하는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세상에 선한 사람을 보내어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셔야 되느냐? 그 사람은 반드시 악한 세상에서 공박을 받고 반대를 받는 자리에서도 굴하지 않고 뛰쳐나갈 수 있는 여력과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세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없습니다. (155-201)
복귀섭리는 완전한 개인을 찾아 나오는 것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개인을 잃어버렸고 아담의 가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천국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개인을 찾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4천 년 동안 편성해 놓고 세례 요한을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세워 놓으셨는데도 불구하고 다 깨져 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인하실 수 있었던 개인, 가정, 종족과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사탄권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승리의 터전을 갖춰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갖추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갔기 때문에 역사적인 노정을 두고 연단시켜 다시 소망의 날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이 땅 위에 올 때는 끝날입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오던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적인 기준이었지만 재림할 때는 세계적인 기준 위에 옵니다. 그러한 차이밖에 없습니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발전하는 그 차이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55-203)
어린양 잔치의 의의
아담을 중심삼고 이상적인 세계를 약속하셨던 천지창조의 원칙이 타락으로 인하여 깨졌으니까 그것을 완전히 복귀하기 위한 대표적인 중심존재가 와야 합니다. 그 중심존재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주님은 완성한 아담의 실체로 오기 때문에 그 완성한 아담의 실체를 통해서 완성한 해와를 찾으면 가정의 편성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6천 년 전에 하나님이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불러 놓고 결혼식을 해주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해주시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 년 동안 번식된 것을 거꾸로 조여 가지고 반대적인 부모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다시 낳는 해산의 수고를 통해야만 인간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참감람나무였고, 그 당시에 지상에 살고 있던 인류는 돌감람나무였습니다. 언제든지 돌감람나무는 참감람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돌감람나무의 줄기를 자르고 참감람나무의 순을 접붙여야 됩니다. 지금의 인류는 가짜입니다. 가짜의 세계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관합니다. 가짜의 대왕이 사탄이다 이겁니다. 진짜 대왕은 하나님입니다. 진짜 대왕이신 하나님은 가짜로서 열매가 맺힌 자들을 주관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접붙이는 과정을 거쳐서 진짜의 가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진짜의 열매를 소망하고 나가게 됩니다.
하나의 조국을 창건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여러분이 알기를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극락세계와 같은 것을 소개하는 곳을 소망의 목적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곳은 자기 부모는 지옥 가고 자기 혼자 가는 곳이 아닙니다. 본래 천국은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 자기 아내와 아들딸이 다 같이 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러한 천국에 가려면 국가를 찾아야 합니다. 조국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아직까지 조국광복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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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조국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타락한 권내에서 민족을 중심삼은 조국은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중심삼은 조국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세워 나오신 목표는 조국광복의 날을 찾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일편단심으로 소원하던 목적은 조국창건이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지금까지 피 흘려 나오면서 싸움을 해 나온 것도 무엇 때문이었느냐? 조국을 건설해야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국건설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참다운 남성이 이 땅 위에 나와야 됩니다. 그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신랑 신부가 어린양 잔치, 혼인잔치를 함으로써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가정을 비로소 이 땅 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개인을 찾으시면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낳으면 종족이 벌어지고 친척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친척들이 벌어지면 그 친척들을 중심삼고 민족이 편성되고, 그렇게 민족이 편성되어 가지고 국가가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의 과정을 거쳐 아벨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과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을 탕감복귀해 가지고 접붙여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양자의 입장에서 상속받을 수 있는 권내로 몰아넣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민족을 편성하여 평면도상에서 세계적인 기준을 갖춰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온 천주가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백성이 되고, 온 지구성이 하나님이 치리하실 수 있는 땅이 될 때 하나의 조국을 창건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155-207)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조국 땅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음으로 조국 땅이 어디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조국 땅이 어디냐? 동방에 있는 우리 한국이 조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조국 땅은 이스라엘 나라도 아니요, 미국도 아니요, 어느 국가도 아닙니다. 어떠한 곳에 하나의 조국의 형태를 갖추고 나와야 합니다. 그 조국이 편성되기까지는 어떠한 한 곳에 충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야 되겠고, 그 아들을 중심삼고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가정적인 출발을 보아야 되겠고, 그 가정을 위주로 하여 종족이 편성돼야 되겠고, 그 종족을 위주로 민족이 편성되어 국가를 대해서 개척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이 이 땅 위에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은 수많은 국가들을 발로 밟으면서 “혹시, 이 나라와 이 민족 가운데 하늘을 위한 충성의 도리를 다하면서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의 기준을 닦아 나오는 어떤 충신, 열녀, 효자, 효녀가 있느냐” 하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중심삼고 종족과 민족을 편성하는 운동을 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곳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런 자리를 찾았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런 곳에 책임을 짊어진 아들딸이 있다고 할진대, 그 아들딸이 갈 길은 자기 구원목적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조국광복의 날을 완결시키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155-215)
최고의 소망은 조국광복
여러분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조국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간 후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소망을 가지고 싸워 나오는 목적은 가정뿐만이 아닙니다. 최후의 목적은 조국입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제일 불쌍합니다. 나라가 없으면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와 친척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원수의 나라가 와서 덮치면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종교인들이 세계를 무대로 삼아 유리고객하면서 방랑하는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지상에 한 기준을 중심으로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방황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기필코 자리를 잡아 최후의 심판을 내려 사망의 세계를 청산지으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개인을 심판하려면 개인의 절대적인 승리의 기준을 갖춰야 합니다. 개인의 절대적인 승리를 갖추려면 수많은 개인들 앞에 시련이 와서 부딪치더라도 깨지지 않는 영원성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그 가정이 수많은 가정들한테 몰리고 쫓기더라도 하늘 것으로 남아질 수 있는 영원성을 갖춰야 합니다. 종족을 심판하려면 그 종족이 아무리 핍박과 시련과정이 있더라도 그 절개와 전통을 유린하지 않는 종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종족들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일념은 조국입니다. 조국 가운데는 민족이 들어 있고, 종족들이 들어 있고, 가정들이 들어 있고, 개인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삼천리 반도가 하나님의 조국이 되었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조국이에요?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악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청산해야 되겠느냐? 이걸 우리가 조국창건을 바라보는 소망의 일념을 중심삼고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런 방향으로 나오시고, 예수님도 그런 소망의 일념을 갖고 나오니까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일치된 생활권을 갖춰 생애의 목표로 세우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투쟁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국창건의 한 날을 맞이하여 그 나라의 충신이요,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등장할 수 있습니다. (155-218)*
천일국 훈독경 제10권 1일, 원문
하나님의 섭리와 조국
날짜 : 1965. 10. 30(토)
장소 : 한국 대구교회
이 세계는 우리가 이상하는 세계가 아니다
현재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세계는 우리가 이상하는 사회와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두고 봐도 마음과 몸이 사사건건 통일되지 않고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데 협조하지 않고 반발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한국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도 그렇고, 서양 사람들도 그렇고, 자고로 왔다 간 우리 선조들도 그랬고, 현세를 살고 있는 30억 인류도 그렇고, 앞으로 올 미래의 수많은 우리 후손들도 그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가운데서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행복하냐 할 때 행복하지 못합니다. 마음과 몸의 거리가 멀고 상충이 크면 클수록 불행의 요건이 비례해서 커 간다는 것은 생활권 내에서 여실히 체험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됐느냐? 그것은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타락한 세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는 어느 한 때 청산짓고 제거해야 합니다그리하여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된 개체가 가정과 하나되고, 그 가정이 국가와 전체 세계와 하나되어 누구를 막론하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고, 평화를 노래할 수 있고, 자유를 찬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인류가 이렇게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을 원하실 것이냐 할 때,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을 원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역시 그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을 원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가 그런 환경을 원치 않고 어떤 나라와 주권이 그것을 원치 않는 한 하나님도 역시 그런 환경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과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들까지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류를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자리에 둘 수 없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평화를 노래할 수 있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개인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 개인을 중심삼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종족을 이루고, 그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그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세계를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로 다시 돌이켜 놓기 위해서 이 땅을 대해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55-195)
하나님이 본래 구상하신 그 세계가 어디냐 하면 오늘날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입니다. 땅은 땅이로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환경 자체는 아닙니다. 이것을 그냥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타락의 인연으로 출발되어 타락의 과정과 결과를 향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지향하시는 목적과 새로운 이념을 향해서 이것이 지향돼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날 이 세계를 그냥 연결시켜서 발전시킬 수 있는 입장이 아니십니다.
이것은 청산해야 할 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를 세워서 대심판하여 하나님만이 취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고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를 편성하여 새로운 세계를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을 성취하지 못하고 연장을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내려왔습니다. 아직까지 이 세계가 타락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다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천주는 아직까지 이 지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모여 있고, 이 지상에는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권내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권, 심판받고 저주받아야 할 권내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선지자를 보내 사탄세계의 양심적인 사람을 끌어다가 사탄과 지금까지 관계를 맺었던 모든 것들을 깨끗이 청산하고 사탄과 관계없는 조건을 세워 놓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하면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이 나와야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사를 중심삼고 볼 때, 이스라엘 선민사상이 역사상에 있었던 것은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가정을 취하여 새로운 족속을 편성하고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세계를 다시 찾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민을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인간시조가 타락한 그날부터 그러한 역사를 시작하여 오늘의 이 끝날까지 그러한 섭리의 발판을 닦으면서 하나님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역사의 배후에서 섭리해 나오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늘 편에 선 개인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으면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하나되고, 가정이 하나되면 종족과 민족 그리고 국가를 이루어 하나님이 대표적인 치리자를 보내 가지고 사탄세계를 쳐부수실 수 있었습니다. 악한 세계의 수많은 왕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왕권의 대표자로 이 땅 위에 보내신 분이 만왕의 왕이요, 메시아였습니다.
그 메시아로 인해 진정으로 하나님이 소망하셨던 참다운 개인, 가정, 종족, 민족과 국가가 나와야 했습니다. 반드시, 메시아가 그 국가를 만들어 놓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랬느냐 하면 사탄세계가 국가를 편성하여 하나님을 참소하고 선의 길을 파탄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국가적인 기준을 만들어 국가적인 기준에서 악한 세계를 파탄시킬 총책임을 짊어진 하나의 주인공을 보내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메시아였습니다. (155-197)
하늘의 책임을 진 자는 주위 환경 전체가 반대해
메시아는 먼저 국가를 악한 세상에서 구해 가지고 하나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는 새로운 국권을 창건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한 국권을 창건하려면 민족이 있어야 했습니다. 민족이 있는 동시에 국토가 있어야 했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의 중동지역을 미래의 이스라엘을 창건할 수 있는 영토로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장악해서 그 영토를 하나로 만들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메시아를 군왕으로 세워서 악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점령해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바랐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선한 나라를 세워야 했습니다. 선한 나라를 세우려면 선한 민족이 있어야 했습니다. 선한 민족을 넘어 선한 종족도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가정의 열두 아들들을 위시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시련과 고통의 노정을 거치면서 악한 세상을 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당신의 아들딸들을 고생시켜 사탄세계에서 맞고 빼앗아 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을 위하여 가장 충성하는 사람들을 내세워 반대받게 하십니다. 그 사람이 지역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전 지역으로부터 반대를 받게 하시고, 민족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전 민족으로부터 반대받게 하시고, 국가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사탄 편의 전체 국가들로부터 반대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사탄이 기뻐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사탄 편 전체가 미워하는 자리에 세워 가지고 맨 위에서부터 끝까지 그를 미워했다는 조건을 세워 놓고야 사랑하십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노아 같은 사람도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했습니다. “저놈의 늙은이, 저놈의 영감쟁이 정신나갔지! 배를 만들려면 바닷가에서 만들지 산에다 만들 게 뭐야? 거 본래 미친 녀석이야, 미친 녀석” 하면서 인간 세상에서는 백 퍼센트 반대받는 환경에 세우셨습니다.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든지 노아를 배척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만이 아니었습니다. 120년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를 전부 때렸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그런 사람들은 한꺼번에 죽여 버려도 괜찮았습니다. 선에 대하여 반박하고 선에 대하여 원수의 입장에 선 그 사람들은 때를 맞이하여 한꺼번에 복귀하게 될 때는 때려죽여도 괜찮았다는 것입니다. 심판해 버려도 되었습니다. (155-199)
우리 선조들이 걸어온 길
이런 조건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랜 기간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도록 노아를 그냥 두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일편단심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연환경은 변해도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던 아내와 자녀들이 변하더라도 그의 결심은 일편단심으로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강해졌습니다. 그 심정기반은 그 시대에 전 세계를 심판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걸어온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따라나온 사람들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행복을 노래하고,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를 다 버리고 떠나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지금의 이라크입니다. 가나안 땅이라는 곳은 지금의 이스라엘나라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려면 오늘날 수많은 국경을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그는 집시가 되고 유랑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향하시던 곳을 향하여 방향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면서 그 명령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그 길은 낙망의 길이라면 낙망의 길이요, 절망의 길이라면 절망의 길이요, 외로운 자리라면 외로운 자리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것을 안 사람들은 전부 다 비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역경을 거쳐 나가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행동했습니다. 애급에서 자기의 처자를 빼앗길 수 있었던 위험한 지경까지 갔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아브라함이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세워 약속한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지만,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바로 궁중에서 편안한 하루 하루를 보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신음과 도탄 중에 빠져 있던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 앞에 항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민족을 구해주마” 하고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이 기필코 버리시지 않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궁중에 있던 반대자들을 때려죽였고 그것으로 인해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극히 외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연을 상대로 하여 수많은 양떼들을 이스라엘 민족 대신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했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양떼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은 기억하사, 당신이 본래 약속하신 이스라엘 천국을 건설하시옵소서” 하면서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길도 개의치 않고 당당코 바로 궁중을 향하여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선조들이 가던 길에서는 언제나 배척을 받고 몰림을 받고 외로운 자리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기반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섭리를 출발해 나오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때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준비하셨던 민족적인 기반과 교단적인 기반이 일치되어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당할 시련과 고통을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교단이 책임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고통을 당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교단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것을 책임지고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국가한테 몰리고, 교단한테 몰리고, 자기의 친척들한테 몰리고, 제자들한테까지도 몰려서 갈 데가 없었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편단심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효성을 다한 마음이 불변적인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를 중심삼고 새로운 부활의 역사를 시작하여 제2이스라엘을 편성하는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세상에 선한 사람을 보내어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셔야 되느냐? 그 사람은 반드시 악한 세상에서 공박을 받고 반대를 받는 자리에서도 굴하지 않고 뛰쳐나갈 수 있는 여력과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세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없습니다. (155-201)
복귀섭리는 완전한 개인을 찾아 나오는 것
아브라함이 찾아 나섰던 본향 땅이 어디였으며, 아브라함이 소망했던 조국이 어디였느냐? 또, 모세가 찾아 나섰던 가나안 복지가 어디였으며 이스라엘나라는 어디였느냐?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이 찾아 나오고 희망하던 조국이 어디였으며, 하나님이 바라고 계시는 조국은 어디냐?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슬퍼하신 것은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요, 백성이 없었기 때문이요, 주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것이 하나님의 한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주권을 가졌다면 세계를 일시에 통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사랑하실 수 있고 지배하실 수 있는 영토와 백성 그리고 주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전부 다 사탄세계의 주권, 사탄세계의 백성, 사탄세계의 국토였습니다. 이것을 쳐부수고 싸워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창건함으로써 만국의 영광을 차지하여 만왕의 왕의 권한을 가지고 세계를 통치해야 되었는데, 그 사명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끝날에 기독교 문화를 발전시켜 전 세계가 기독교 문화권으로 수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조국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찾아왔던 조국과 같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요, 그 나라의 땅이 하나님의 땅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그 조국과 땅 그리고 백성이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을 모아서 뭘 하느냐? 미래에 제3이스라엘의 창국시대를 대비하여 새로운 민족과 국가를 이루어 새로운 인류를 편성하기 위한 준비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때 이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이것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나오기 전에 민족이 나와야 하고, 민족이 나오기 전에 종족이 나와야 하고, 종족이 나오기 전에 한 가정이 나와야 하고, 한 가정이 나오기 전에 한 개인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완전한 개인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세계를 찾기 전에 국가, 국가를 찾기 전에 민족, 민족을 찾기 전에 종족,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 가정을 찾기 전에 완전한 개인을 찾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개인을 잃어버렸고 아담의 가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천국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개인을 찾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4천 년 동안 편성해 놓고 세례 요한을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세워 놓으셨는데도 불구하고 다 깨져 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인하실 수 있었던 개인, 가정, 종족과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사탄권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승리의 터전을 갖춰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갖추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갔기 때문에 역사적인 노정을 두고 연단시켜 다시 소망의 날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이 땅 위에 올 때는 끝날입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오던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적인 기준이었지만 재림할 때는 세계적인 기준 위에 옵니다. 그러한 차이밖에 없습니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발전하는 그 차이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55-203)
어린양 잔치의 의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랑 되신 주님이여, 오시옵소서” 합니다. 여기에서 하늘땅이 완전히 공인할 수 있는 남성, 하나님의 사랑과 심정 그리고 인격을 대표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재현할 수 있는 주체적인 한 남성이 문제입니다. 창세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소망하신 최고의 이상적인 개인으로서 혼인식을 올리게 될 존재가 재림주입니다. 그 재림주는 개인의 완결된 기준을 세우고 가정을 편성해야 합니다.
그 신랑 되신 주님은 남성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을 대표하여 개인복귀의 완결과 더불어 가정의 터전을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6천 년 역사는 잃어버린 본연의 아담 한 사람을 완결짓기 위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을 통하여 해와를 지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은 하나님을 저버리던 아담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완성된 아담의 위치에서 완성된 해와를 다시 빚어 가지고 가정을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정이 안 나오면 종족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아담을 중심삼고 이상적인 세계를 약속하셨던 천지창조의 원칙이 타락으로 인하여 깨졌으니까 그것을 완전히 복귀하기 위한 대표적인 중심존재가 와야 합니다. 그 중심존재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주님은 완성한 아담의 실체로 오기 때문에 그 완성한 아담의 실체를 통해서 완성한 해와를 찾으면 가정의 편성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6천 년 전에 하나님이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불러 놓고 결혼식을 해주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해주시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 년 동안 번식된 것을 거꾸로 조여 가지고 반대적인 부모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다시 낳는 해산의 수고를 통해야만 인간이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부모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부모의 혈육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런 세계의 인류입니다. 섭섭하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증명을 받을 수 있는 사랑권 내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증명하실 수 없는 거짓된 사탄 편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하나의 표본적인 남성을 세워 놓고 지구성에 있는 수많은 인류의 목을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목을 자른다는 것은 죽인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참감람나무였고, 그 당시에 지상에 살고 있던 인류는 돌감람나무였습니다. 언제든지 돌감람나무는 참감람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돌감람나무의 줄기를 자르고 참감람나무의 순을 접붙여야 됩니다. 지금의 인류는 가짜입니다. 가짜의 세계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관합니다. 가짜의 대왕이 사탄이다 이겁니다. 진짜 대왕은 하나님입니다. 진짜 대왕이신 하나님은 가짜로서 열매가 맺힌 자들을 주관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접붙이는 과정을 거쳐서 진짜의 가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진짜의 열매를 소망하고 나가게 됩니다.
하나의 조국을 창건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여러분이 알기를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극락세계와 같은 것을 소개하는 곳을 소망의 목적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곳은 자기 부모는 지옥 가고 자기 혼자 가는 곳이 아닙니다. 본래 천국은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 자기 아내와 아들딸이 다 같이 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러한 천국에 가려면 국가를 찾아야 합니다. 조국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아직까지 조국광복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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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조국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타락한 권내에서 민족을 중심삼은 조국은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중심삼은 조국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세워 나오신 목표는 조국광복의 날을 찾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일편단심으로 소원하던 목적은 조국창건이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지금까지 피 흘려 나오면서 싸움을 해 나온 것도 무엇 때문이었느냐? 조국을 건설해야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국건설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참다운 남성이 이 땅 위에 나와야 됩니다.그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신랑 신부가 어린양 잔치, 혼인잔치를 함으로써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가정을 비로소 이 땅 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개인을 찾으시면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낳으면 종족이 벌어지고 친척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친척들이 벌어지면 그 친척들을 중심삼고 민족이 편성되고, 그렇게 민족이 편성되어 가지고 국가가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의 과정을 거쳐 아벨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과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을 탕감복귀해 가지고 접붙여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양자의 입장에서 상속받을 수 있는 권내로 몰아넣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민족을 편성하여 평면도상에서 세계적인 기준을 갖춰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온 천주가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백성이 되고, 온 지구성이 하나님이 치리하실 수 있는 땅이 될 때 하나의 조국을 창건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155-207)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조국 땅
우리가 통일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온 것은 개체의 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일편단심의 소원은 조국광복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조국,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하던 조국, 성신이 소망하던 조국, 역사적인 수많은 선조들이 소망하던 조국, 그 조국을 내 중심에 자리잡게 하고, 그 조국을 이루기 위해서 길을 닦아 나오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효도할 수 있는 개인, 가정, 종족과 민족을 어떻게 세워 놓느냐? 이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다년간 이런 복귀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한국 백성들을 중심삼고 싸우면서 수고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생하는 것은 나만이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이념적인 가정이 구원받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우리 가정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리 종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하고, 우리 종족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한 단계 앞의 목적을 위해 현실권 내에서 충성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것을 수습하고 연결하여 발전시키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을 보면 “내가 신앙하는 것은 내가 복 받기 위해서다” 이럽니다. 자신은 복받지만, 하나님이 슬퍼하시면 어떻게 할거예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조국광복의 한 날을 맞이하여 만세에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 전에는 여러분에게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왔던 예수님도 그 날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는 한 언제나 기도해야 되었습니다. 그렇게 갈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음으로 조국 땅이 어디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조국 땅이 어디냐? 동방에 있는 우리 한국이 조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조국 땅은 이스라엘 나라도 아니요, 미국도 아니요, 어느 국가도 아닙니다. 어떠한 곳에 하나의 조국의 형태를 갖추고 나와야 합니다. 그 조국이 편성되기까지는 어떠한 한 곳에 충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야 되겠고, 그 아들을 중심삼고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가정적인 출발을 보아야 되겠고, 그 가정을 위주로 하여 종족이 편성돼야 되겠고, 그 종족을 위주로 민족이 편성되어 국가를 대해서 개척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이 이 땅 위에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은 수많은 국가들을 발로 밟으면서 “혹시, 이 나라와 이 민족 가운데 하늘을 위한 충성의 도리를 다하면서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의 기준을 닦아 나오는 어떤 충신, 열녀, 효자, 효녀가 있느냐” 하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중심삼고 종족과 민족을 편성하는 운동을 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곳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런 자리를 찾았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런 곳에 책임을 짊어진 아들딸이 있다고 할진대, 그 아들딸이 갈 길은 자기 구원목적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조국광복의 날을 완결시키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155-215)
최고의 소망은 조국광복
자기 가정에서 따르는 자녀가 있으면, 그 자녀를 하나님의 조국광복의 한 날을 위하여 준비시킬 수 있는 하늘의 정병으로서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자. 주님이여, 어려운 일은 다 당신이 가지시고 기쁜 일은 나에게 주소” 하는 것은 도둑놈의 심보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조국을 창건하는 것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있는 타락한 인간들의 소망인데도 불구하고 그 소망은 잊어버리고 나 하나 천국 가겠다고 하면 되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 여러분이 금후에 가져야 할 최고의 소망의 중심은 조국광복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날을 가졌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날을 가졌다고 자랑하고, 만물의 날을 가졌다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최후에 남은 날이 하나님의 날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날을 못 찾았습니다. 이 땅 위에서 만유의 주요, 만군의 여호와로서 온 천하를 품에 품고 자유자재로 지구성 전체와 수많은 인류를 동서로 명령하여 마음대로 움직이실 수 있는 세계의 형태가 못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아야 할 운명권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조국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간 후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소망을 가지고 싸워 나오는 목적은 가정뿐만이 아닙니다. 최후의 목적은 조국입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제일 불쌍합니다. 나라가 없으면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와 친척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원수의 나라가 와서 덮치면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종교인들이 세계를 무대로 삼아 유리고객하면서 방랑하는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지상에 한 기준을 중심으로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방황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기필코 자리를 잡아 최후의 심판을 내려 사망의 세계를 청산지으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개인을 심판하려면 개인의 절대적인 승리의 기준을 갖춰야 합니다. 개인의 절대적인 승리를 갖추려면 수많은 개인들 앞에 시련이 와서 부딪치더라도 깨지지 않는 영원성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그 가정이 수많은 가정들한테 몰리고 쫓기더라도 하늘 것으로 남아질 수 있는 영원성을 갖춰야 합니다. 종족을 심판하려면 그 종족이 아무리 핍박과 시련과정이 있더라도 그 절개와 전통을 유린하지 않는 종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종족들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또, 민족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권 내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법도에 따라 사명을 다하는 데 있어서 사탄세계가 참소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민족들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를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요, 세계를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최고의 일념은 조국입니다. 조국 가운데는 민족이 들어 있고, 종족들이 들어 있고, 가정들이 들어 있고, 개인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삼천리 반도가 하나님의 조국이 되었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조국이에요?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악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청산해야 되겠느냐? 이걸 우리가 조국창건을 바라보는 소망의 일념을 중심삼고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런 방향으로 나오시고, 예수님도 그런 소망의 일념을 갖고 나오니까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일치된 생활권을 갖춰 생애의 목표로 세우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투쟁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국창건의 한 날을 맞이하여 그 나라의 충신이요,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등장할 수 있습니다. (155-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