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9권 23일
우리는 통일주의자다 (훈독본)
날짜 : 1987. 9. 27(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9wPKxzLYw1Y&list=PLtan-zpeJein8CLv1wZfteA6pHAzKAmIa&index=27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은 ‘우리는 통일주의자들이다’입니다.
천주통일은 누가 할 것이냐
우리 교회의 명칭을 보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입니다. ‘세계기독교통일’ 하면 세계 기독교를 통일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 ‘신령’이 들어갔는데 신령은 영적인 세계입니다. 세계 기독교를 통일한 그 기반 위에 신령한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역사를 이루어 가지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자는 거예요. 만약에 신령을 빼게 되면 기성교회와 똑같습니다. 신령을 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인류역사에는 그 역사를 움직여 나온 정신이 있습니다. 그 정신은 몸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몸을 넘고 환경을 넘어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지만 그 마음대로 하는 것이 가정을 넘고 환경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고, 더 나아가서 영적인 세계가 있다면 영적인 세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인격의 관을 말할 때 개인의 인격이 어떤가, 혹은 사회적인 인격이 어떤가, 사회생활이 어떤가,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사상이 어떤 것인가, 그 사람이 무슨 사상을 갖고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느냐 하는 것을 두고 말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인생관’ ‘역사관’ ‘사상관, 우주관’ 하면, 그것이 달라지는 걸 말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공식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다 그 관을 따라가게 됩니다.
‘개인관’ 하게 되면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이 다를 것이냐? 여자와 남자는 성격적으로나 생리적으로 모든 것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개인관’ 할 때는 같아야 됩니다. 그러면 ‘가정관’ 하게 된다면 여러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 가정들이 가는 길이 다 같아야 된다 그거예요.
그 가정들이 합해 가지고 이루는 종중이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국가관’ 하게 되면 국가들이 동서남북 다른 위치에 있다고 해서 달라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가는 것도 같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의 평화의 세계라든가 통일의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상세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수많은 국가들이 가야 할 길은 세계를 향하여 가는 길이어야 합니다. 세계를 향하여 가는 관을 갖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로 가는 관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천주통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천주’ 하게 되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영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168-241)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이익이 되어야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초점을 맞추게 돼 있습니다. 모든 것이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정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이 공간세계에서 운동하는 것들도 전부 다 균형이 잡힌 위치, 초점을 맞춘 자리에서 돌고 있지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균형이 맞지 않은 자리에서는 운동하지 않습니다. 태양계의 위성들도 마찬가지의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중구조로 되어서 그러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이중구조의 가는 길은 횡적으로 가는 길하고 종적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세계적으로 가고 싶다. 세계적으로 확대하고 싶다” 이러는 거예요. “아이고, 하늘땅처럼 높고 넓고 싶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한히 확대하고 무한히 높을 수 있는 관계를 맺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아무리 세계나 하늘땅이 하나되었더라도 하나된 그 자리에 머물지 않겠다, 그 이상의 자리에 나가야 된다,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면 횡적으로라도 확대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확대되어 나가는 데는 순환운동을 통해 가지고 동서남북을 거쳐야 되고, 전후좌우라도 움직여서 환경적인 여건에 있어서 내적인 판도를 확장하기 위한 내용을 가지고 움직여야 됩니다. (168-243)
주체가 있어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관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관과 하나님의 관이 다를 것이냐, 같을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인간들이 노력해서 세계를 통일했다고 하더라도, 만약에 신이 있어서 신과 인간이 통일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신이 인간을 지배하느냐, 인간이 신을 지배하느냐? 인간이 신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할 때는 인간만으로 제창하는 통일적인 권한을 신의 세계까지 적용시킬 수 있으되, 그렇지 않고 인간이 신의 주관을 받는다고 할 때는 인간이 아무리 통일세계를 이루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 통일세계가 신의 뜻에 일치되지 않으면 다시 뜯어고쳐야 됩니다. 신이 요구하는 뜻 앞에 부합될 수 있도록 내적 혹은 외적인 환경을 변모시켜야 돼요. 그렇게 신과 일치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래야 됩니다.
하늘이 있다면 하늘의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추어야 됩니다. 그걸 다 빼 버리고 “영적인 세계고 하나님이고 다 집어치워라! 우리 인간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운동선수가 되더라도 문씨면 문씨, 박씨면 박씨의 문중이 살고 있는 그 동네에서 대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더 높은 것, 동네의 대표를 했으면 그 다음에는 도면 도의 대표,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이면 나라의 대표, 세계의 대표로 나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세계의 대표뿐만이 아니에요. 우주의 대표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래요?
그 무엇인가 모르는 동기의 내용, 우리가 모르지만 그럴 수 있는 동기의 내용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인이 없어 가지고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반드시 우주의 중심을 휘어잡고 이렇게 가야 됩니다. 돌더라도 반드시 축을 중심삼고 돌게 마련입니다. 축이 없는 데서 움직이면 이동되어 가지고 파괴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가정에는 가정의 축이 있어야 됩니다. 그 축이 뭐냐 하면 주체입니다. 그 주체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168-246)
주체는 뭘 해야 되느냐
그러면 주체는 뭘 해야 되느냐? 주체에게는 보호의 책임이 있습니다. 위치의 결정과 보호의 책임이 주체에게 동반됩니다.
남자와 여자를 두고 볼 때,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런 남자가 못 되는 사람은 이상적인 남자가 못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자기들 둘 사이에 되어지는 모든 일은 남자가 책임지려고 합니다. 자리도 남자가 자리를 잡아야 여자가 따라서 자리를 잡으려고 합니다.
남자가 중앙만 되면 딱 축이 되기 때문에 여자는 자유입니다. 위에 올라갈 수도 있고, 아래에 내려갈 수도 있고, 동에 갈 수도 있고, 서에 갈 수도 있고, 남에 갈 수도 있고, 북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축은 그렇게 못 합니다. 축은 상하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축이 마음대로 이동했다가는 큰일납니다. 왱가당댕가당 깨진다 이거예요.
그러나 축을 대하고 있는 여자는 “아이고, 나 위에 올라갈래” 하면서 위에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구형을 이룰 수 있는 거예요. 위에도 갈 수 있고, 동서남북을 마음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반드시 일정한 자리를 잡아야 되고, 거기에 모든 상대권을 보호해야 되고, 모든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책임을 져야 됩니다. 반드시,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공의의 법도대로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자유로워요, 남자가 자유로워요? 여자는 입이 빠릅니다. 동에 가서도 나불나불하고, 서에 가서도 나불나불하고, 위에 가서도 나불나불하고. 앞에 가서도 나불나불하고, 뒤에 가서도 나불나불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이동적인 생활권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불나불하더라도 중앙을 생각하면서 나불나불해야지 그렇지 않고 자기를 중심삼고 나불나불하면 파괴됩니다. 나불나불하는데 중심과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나불나불하면 아무리 그렇게 하더라도 악한 것이 아닙니다. (168-247)
유물과 유심이 하나되어야
그러면 주체가 남자가 되어야 되겠어요, 여자가 되어야 되겠어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여자가 됐다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또, 남자가 됐다고 자랑하지 말라구요. 이러한 관이라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문 선생이 말한다고 해서 지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거쳐 가지고 과거, 현재, 미래의 영원한 세계를 연결시켜서 그렇게 되는 데 있어서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관을 가지고 변함이 없는 개인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가정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사회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나라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세계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하늘땅의 길을 가야 됩니다.
이것은 인간만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영적인 무형세계를 동반해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하나의 길을 발견하지 않는 한 이상세계, 이상천주라는 것은 형성될 수 없습니다. (168-249)
오늘 제목이 뭐라구요? ‘우리는 통일주의자들이다’입니다. 그러면 눈이 가라사대 “문 선생의 몸뚱이와 정신은 통일주의지만, 나는 개별주의자야” 이럴 수 있어요? “통일주의자, 그렇구 말구! 통일주의 좋지! 개인적으로 통일한 사람을 좋아하고, 가정적으로 통일된 것을 보기 좋아하고, 세계적으로 통일되고 하늘땅도 통일된 것을 보기 좋아한다. 나도 통일주의자다” 이래야지요.
도대체, 하나님은 무슨 주의자예요? 주의라는 것은 하나의 완성의 세계를 찾아가는 지팡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봉사가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요? 그와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주의의 세계에 살아서는 안됩니다. 주의라는 것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무엇을 찾아갈 때 필요한 것입니다. 사상계에 주의가 많지요? 그 주의들 가운데서 그래도 필요한 것은 통일주의가 아니냐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두 세계가 싸우고 있는데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둘이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가 있어야 되고 대상이 있어야 될 것인데 서로가 주체라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렇게 유물과 유심이 갈라져서 야단입니다. 그 유물과 유심이 하나되어야만 종횡이 연결됩니다. (168-253)
머리주의자가 되어야
여기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머리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머리만 제일이면 돼요? 손도 좋아하고 발도 좋아해야지요. 오른손도 좋아하고 왼손도 좋아해서 오른손도 그저 그걸 그렇게 잡으려고 하고, 왼손도 그걸 그렇게 잡으려고 하고 그래야 됩니다.
그러면 공산주의자들은 유물 변증법으로 세계를 통일하려고 야단하고, 그것을 내세워 가지고 선전공세를 하는데 그게 제일이에요?
인간의 생명을 남겨 놓을 거예요, 공산주의를 남겨 놓을 거예요? 공산주의가 귀한 거예요, 생명이 귀한 거예요? 왜 생명이 귀해요? 이런 것을 전부 다 논리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떠벌이들이예요. 질문하면, 전부 사방으로 막혀 있습니다. “영계가 있어” 할 때 “영계는 없어” 하고, “종교가 필요해” 하면 “종교는 아편이야” 하고, “너 마음 있어” 하면 “마음 필요 없어” 이러는 것입니다. 그 격이에요. 공산주의자들에게 마음이 없다고 해봐요. 눈이 더 새빨개집니다.
공산세계가 요즘은 주의보다도 경제를 중시합니다. 지금 중공에서도 공산주의가 변질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지고는 중국이 금후의 이상세계로 갈 수 없다고 해 가지고 체제변경을 논의하는 혼란에 빠지는 거예요. 경제문제를 중심삼고 변할 수 있는 그 공산주의는 가짜라는 것입니다.
우리 남자와 여자들, 돈 갖게 되면 변해요? 돈 갖다 줘서 변하면, 그건 가짜입니다. 사람이 돈에 팔려가야 되겠어요, 사람이 돈을 팔아먹어야 되겠어요? 사람이 돈을 팔아먹어야 됩니다. 그래, 공산주의 때문에 생명을 바칠 수 있어요? 생명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내용을 가졌다고 자인하게 될 때 공산주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지 동물적인 것이라고 해서 공산주의에 팔려 넘어가는 생명은 무가치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면 다예요? 선거하는 것이 민주주의냐구요? 거기에 관권이 동원되고, 금권이 동원되고, 모략 중상 음모가 개재되어 있는데 그게 민주주의예요? 속이고 별의별 짓들을 다 하고 뒤집어 씌워서 자기가 당선되면 민주주의냐 이거예요. (168-255)
하나님은 하나주의자
통일주의가 뭐냐 이거예요. 그건 “하나님, 당신은 무슨 주의요? 할 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주의야” 이러실 것입니다.
그 하나주의가 뭐요? 하나님이니까 생각하시는 것도 하나지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셔야 될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왔다갔다하시면 미친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은 시작에서부터 영원히 한 생각을 하시는 분입니다. 두 생각을 안 하신다구요. 그렇게 한 생각을 하면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그러나 답답하실 것 같은데, 언제나 좋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실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은 하나주의라면, 그것이 뭐예요? 넘버원 주의다, 멋진 주의다 그거예요. (168-259)
하나주의다” 하면서 무엇을 갖고 하나주의라고 하시느냐 이거예요. 그건 지식도 아니요, 권력이나 돈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뭐겠느냐 이거예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 당신의 아들이 필요하오” 하고 물어 본다면, 필요하다고 대답하시겠어요,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하시겠어요? 필요하다고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이 필요하면 아들딸을 만드실 수 있고 그런데 그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러시겠어요? 눈을 깜박깜박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뭘 먹겠다고 입을 놀리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여기 남자나 여자나 자식을 갖고 싶지요? 자식을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은 죽으라구요! 애기를 낳기가 쉬워요, 힘들어요? 힘들지요? 애기 낳는 부인들의 얼굴사진을 찍어서 보라구요! 요지경이 벌어집니다. 손발이 전부 다 위치를 찾지 못하고 야단이에요. 이게 동서남북으로 막 야단을 친다 이거예요.
그렇게 야단을 해 가지고 애기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왜 애기를 낳아요? 힘든데 말이에요. 어머니가 애기를 낳고 나서는 힘들다는 말은 없고, 애기를 사악 들여다보면 아픔을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아팠던 그 작용, 힘의 반작용으로써 “아이고, 좋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아팠던 반작용의 힘으로 “아이고, 내 것이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야. 아이고…” 이런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엇이 솟구치느냐? 사랑이라는 것이 싹튼다는 것입니다.
하나주의를 이룰 수 있는 것
그러면 이제 개인관, 가정관, 종족관, 민족관, 국가관, 세계관, 하나님의 천주관, 하나님의 하나주의관이 밤이나 낮이나 24시간은 물론, 사계절은 물론, 젊은 세대 늙은 세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언제나 끝에서 끝으로 통할 수 있고, 종횡과 전후좌우로 통할 수 있는 이념적인 그 분모가 뭐냐? 그것을 결론지으면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마이크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할 것입니다. 모든 만물도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해도 부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하나주의라고 했는데, 하나주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참사랑입니다. 사랑은 공유물입니다. 남자가 가더라도 그 부인 앞에 사랑을 남겨 주고 가야 된다구요. 갈 때 “아이고, 이렇게 내가 돈을 많이 모아 가지고 기반을 닦았는데 내가 죽으면 이 기반이 없어질까 봐 걱정이야. 당신이 이 기반을 잘 지켜 주소” 하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세계적인 판도를 만들어 놓았지만, 내가 사랑을 덜 했소. 내가 사랑을 미처 못 했소. 벌여 놓은 그 분야에 당신은 나 이상으로 사랑해 주고, 내 몇 배 이상 사랑해 주기를 바라오” 이러게 될 때는 모든 것을 잘 관리하고 주관하라고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관리가 되고 수습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유언을 해야 됩니다.
이제 아버지가 유언을 하는데 “아들아, 내가 우리 집을 사랑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했지만 사랑하지 못했다. 재산이 문제가 아니고 금전이 문제가 아니고 지식이 문제가 아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을 나 이상 사랑하고, 내가 미치지 못한 기준까지 네가 사랑해 다오” 이래야 참된 부모로서의 유언의 도리가 선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불붙어 버릴 세상의 물질이나 재산을 중심삼고 안타까워하면 안됩니다.
아무런 관계도 없고 모르는 세계에 가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일하게 되면, 어디에 가든지 날로 발전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백 명의 교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말고 노력해야 된다. 도를 위하고 군을 위해서 밤잠을 자지 못하고 기도하는 그 지방의 책임자가 되라”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그 군의 주인이 될 아들딸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168-287)
최후의 목적
그런데 개인이 가는 길과 가정이 가는 길이 갈라지면 큰일나겠지요? 개인을 중심삼고 암만 정성을 들여도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고, 가정을 중심삼고 일생을 암만 잘살아도 사회와 국가가 통할 수 있는 관의 일치점을 거치지 않으면 일생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아무리 애국자의 이름을 갖고 살았더라도 대한민국 제일을 주장하지 않고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면 희망적인 애국자가 못 됩니다.
대한민국에는 사랑의 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애국자가 필요합니다. 아시아에 어떠한 성인이 나왔다면 그 성인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갈 길을 가르쳐 줘야 되고, 세계적인 성인이 나왔다면 하늘의 갈 길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상에 나왔던 성자라는 사람들은 전부 다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종주들이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어떠한 연고냐? 그것은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천상세계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도리, 참된 길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자들이 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만이 아니에요. 하늘과 땅의 도리입니다. 하늘을 중심삼은 사랑의 통치세계와 지상을 중심삼은 사랑의 통치세계에 역사관을 결속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류 전체, 인간이 기뻐하고 만물이 기뻐할 수 있는 통일의 이상세계로 하나님도 가기를 원하시고 인간도 가기를 원합니다. 최후의 목적은 그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이러한 길을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죽게 될 때 자기가 죽는다고 탄식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정이 남아서 내가 못 한 사랑을 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올바로 살고 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정을 사랑하고 살다가 죽더라도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사회를 위해서 올바르게 살라고 할 수 있는 터전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개인으로 살았지만 사회와 국가와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대표로 해서 산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산 사람은 천국으로 그냥 통합니다. 구세주가 필요 없습니다. (168-293)
개인적인 관, 가정적인 관, 사회적인 관, 국가적인 관, 세계적인 관, 하늘 나라의 천지관 등 모든 기준에서 참사랑의 도리를 중심삼고 가는데 그 사랑의 모체는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 그 다음에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 그 다음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천상세계나 지상세계나 만국의 대왕을 대표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하늘나라의 왕자가 되고 왕녀가 되어서 왕권을 대신하는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로 가자고 하는 패들이 통일교회 패요, 그러한 역사상에 없었던 주장을 하고 나온 사람들이 통일주의자들입니다. 그걸 말하기를 통일주의라고 하느니라, 아멘!
그렇게 살겠다는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보자구요! 그렇게 살 때는 틀림없이 주인이 될 테니까 그렇게 살 거예요, 안 살 거예요? 손 들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실천은 어려운 것입니다. (168-296)*
천일국 훈독경 제9권 23일, 원문
우리는 통일주의자다
날짜 : 1987. 9. 27(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은 ‘우리는 통일주의자들이다’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를 대해서 통일교회 패다, 통일교회 무리다, 통일교회 사람들이라고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천주통일은 누가 할 것이냐
우리 교회의 명칭을 보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입니다. ‘세계기독교통일’ 하면 세계 기독교를 통일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 ‘신령협회’에 ‘신령’이 들어갔는데 신령은 인간세계가 아니에요. 영적인 세계입니다. 세계 기독교를 통일한 그 기반 위에 신령한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역사를 이루어 가지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자는 거예요. 만약에 신령을 빼게 되면 뭐예요? 기성교회와 똑같습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서 신령을 빼면 세계기독교통일협회가 되겠지요? 신령을 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인류역사에는 그 역사를 움직여 나온 정신이 있습니다. 정신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있지만, 그 정신은 몸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몸을 넘고 환경을 넘어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할 때, 그 ‘훌륭한 사람’은 몸을 움직여 가지고 자기 하나를 중심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에서의 훌륭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지만 그 마음대로 하는 것이 가정을 넘고 환경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고, 더 나아가서 영적인 세계가 있다면 영적인 세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인격의 관을 말할 때 개인의 인격이 어떤가, 혹은 사회적인 인격이 어떤가, 사회생활이 어떤가,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사상이 어떤 것인가, 그 사람이 무슨 사상을 갖고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느냐 하는 것을 두고 말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우리가 정신을 갖고 있으되 그 정신이 미치고 있는 환경이 가정을 중심삼고 있느냐, 사회를 중심삼고 있느냐, 혹은 국가라든가 세계를 중심삼고 있느냐 하는 관을 갖고 말하는 것입니다. 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생관’ 하면, 그 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역사관’ 하게 되면, 그 관이라는 것도 언제나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상관, 우주관’ 하면, 그것이 달라지는 걸 말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있는 그것이 하나의 공식과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다 그 관을 따라가게 됩니다.
‘개인관’ 하게 되면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이 다를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여자와 남자는 성격적으로나 생리적으로 모든 것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여자가 가는 길하고 남자가 가는 길이 다를 것이냐? ‘개인관’ 할 때는 같아야 됩니다. 그러면 ‘가정관’ 하게 된다면 갑이라는 사람의 가정, 을이라는 사람의 가정 등 여러 가정들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가정들이 있지만, 그 가정들이 가는 길이 다를 것이냐? 달라서는 안돼요. 같아야 된다 그거예요.
그 가정들이 합해 가지고 이루는 종중이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중’ 하면 문씨 종중과 박씨 종중 등을 포함해서 여러 종중들이 있지만, 그 종중들이 가는 길이 다를 것이냐? 아닙니다. 관이라고 하면 같은 것을 말합니다. 또, ‘국가관’ 하게 되면 백의민족이 가는 길이나 혹은 다른 민족들이 가는 길이나 본래는 같아야 됩니다. 국가들이 동서남북 다른 위치에 있다고 해서 달라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가는 것도 같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세계가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이라든가 하나의 평화의 세계라든가 통일의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가야 할 길도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상세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수많은 국가들이 가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가느냐? 국가들이 가야 할 길은 세계를 향하여 가는 길이어야 합니다. 세계를 향하여 가는 관을 갖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로 가는 관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엮어 놓은 수많은 국가들이 가는 길이 같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신이 있다면, 그 신이 갖고 있는 관하고 인간이 갖고 있는 관이 같을 수 있느냐?
오늘날 통일교회는 천주통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새로운 술어를 우리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통일이 아닙니다. 천주통일을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천주통일은 누가 할 것이냐? ‘천주’ 하게 되면 이 모든 공간세계까지 전부 다 통괄해서 말합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영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168-241)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이익이 되어야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초점을 맞추게 돼 있습니다. 눈도 그렇고, 코도 그렇고, 입도 그렇고, 모든 것이 초점을 맞추지 않고는 안됩니다.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정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이 공간세계에서 운동하는 것들도 전부 다 균형이 잡힌 위치, 초점을 맞춘 자리에서 돌고 있지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균형이 맞지 않은 자리에서는 운동하지 않습니다. 태양계의 위성들도 마찬가지의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중구조로 되어서 그러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이중구조의 가는 길은 횡적으로 가는 길하고 종적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세계적으로 가고 싶다. 세계적으로 확대하고 싶다” 이러는 거예요. “아이고, 하늘땅처럼 높고 넓고 싶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지요? 우리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게 왜 그러하냐 이거예요. 이것은 무한히 확대하고 무한히 높을 수 있는 관계를 맺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인간 자체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거 왜 이중구조로 되어 있느냐?
그러면 몸이 가는 길하고 마음이 가는 길이 다를 수 있겠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들어가 봅시다. 내가 살아야 할 생활관, 내 개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이 가는 길이 다를 것이냐 할 때 달라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도 같아야 된다 이거예요. 남자와 여자, 여러분 개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개인이 가는 길이 다르지 않습니다. 같다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가는 길하고 또 다른 가정이 가는 길도 같아야 됩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있지만, 그 가정들이 가는 길은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들이 가는 길도 같아야 되고, 국가들이 가는 길도 같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가 가는 길은 어떻게 될 것이냐? 세계도 마음대로 갈 수 없습니다. 우주관 가운데 속해서 하나의 움직임을 갖습니다. 그렇게 움직이는 데는 그냥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이익이 되어야 움직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는 사람들 가운데 오늘 손해보기 위해서 나간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구요. 전부 다 이익을 표준하고 나갑니다.
그러면 하늘땅이 이러한 관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데 있어서 매일같이 손해를 보고 후퇴하는 길을 가는 것이냐? 아닙니다. 전진적이요, 발전적인 세계를 향해서 나갑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아무리 세계나 하늘땅이 하나되었더라도 하나된 그 자리에 머물지 않겠다, 그 이상의 자리에 나가야 된다,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면 횡적으로라도 확대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확대되어 나가는 데는 순환운동을 통해 가지고 동서남북을 거쳐야 되고, 전후좌우라도 움직여서 환경적인 여건에 있어서 내적인 판도를 확장하기 위한 내용을 가지고 움직여야 됩니다. (168-243)
주체가 있어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관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관과 하나님의 관이 다를 것이냐, 같을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인간들이 노력해서 세계를 통일했다고 하더라도, 만약에 신이 있어서 신과 인간이 통일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신이 인간을 지배하느냐, 인간이 신을 지배하느냐? 인간이 신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할 때는 인간만으로 제창하는 통일적인 권한을 신의 세계까지 적용시킬 수 있으되, 그렇지 않고 인간이 신의 주관을 받는다고 할 때는 인간이 아무리 통일세계를 이루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 통일세계가 신의 뜻에 일치되지 않으면 다시 뜯어고쳐야 됩니다. 신이 요구하는 뜻 앞에 부합될 수 있도록 내적 혹은 외적인 환경을 변모시켜야 돼요. 그렇게 신과 일치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래야 됩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도 거기에 맞추어야 되고, 가정적으로도 거기에 맞추어야 되고, 종족 혹은 국가적으로도 거기에 맞추어야 되고, 세계적으로도 거기에 맞추어야 된다고 생각할 때 세계가 하나된 다음에 맞추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맞추어 나가면서 세계에 맞게끔 보조를 맞추어야 되고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사회에 보조를 맞추어서 나가야 되고, 사회는 국가가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추어야 되고, 국가는 세계가 가는 길에 맞춰야 되고, 세계는 하늘이 있다면 하늘의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추어야 됩니다. 그걸 다 빼 버리고 “영적인 세계고 하나님이고 다 집어치워라! 우리 인간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세계에 관이 있어야 됩니다. 과거에 봤던 것, 현재에 보는 것, 미래에 볼 것이 다를 수 없습니다. 같아야 됩니다. 과거에도 가는 것이 같고, 현재에도 같고, 미래에도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관을 세워서 찾아가는 것은 뭐냐? 왜 그걸 맞추어 가야 되느냐 하면 내 개인의 생활이 국가를 대표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가 되더라도 문씨면 문씨, 박씨면 박씨의 문중이 살고 있는 그 동네에서 대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더 높은 것, 동네의 대표를 했으면 그 다음에는 도면 도의 대표,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이면 나라의 대표, 세계의 대표로 나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세계의 대표뿐만이 아니에요. 우주의 대표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래요?
그 무엇이 그렇게 되게끔 작용을 한다는 거예요.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이 그렇게 되게끔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작용을 해요? “우리 조상이 그런 작용을 하지” 그럴지 모르는데 아니에요. 그 무엇인가 모르는 동기의 내용, 우리가 모르지만 그럴 수 있는 동기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 내용이 없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원인이 없어 가지고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일 것이냐? 그렇게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이것은 반드시 우주의 중심을 휘어잡고 이렇게 가야 됩니다. 돌더라도 반드시 축을 중심삼고 돌게 마련입니다. 축이 없는 데서 움직이면 이동되어 가지고 파괴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가정에는 가정의 축이 있어야 됩니다. 그 축이 뭐냐 하면 주체입니다. 그 주체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에 있어서도 그렇잖아요? ‘인간’ 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인데, 남자 여자에 있어서 축이 있다면 그 축이 무엇이냐? 소위, 주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방향성을 갖고 말할 때 주체라고 하는 것이고, 입체성을 갖고 말할 때 축이라는 개념이 성립됩니다. 방향성을 중심삼고 주체라고 하고 대상이라고 합니다. (168-246)
주체는 뭘 해야 되느냐
그러면 주체는 뭘 해야 되느냐? 주체에게는 보호의 책임이 있습니다. 주체는 보호하라는 거예요. 보호의 책임이 있어요. 또, 주체는 언제나 위치와 방향을 설정해 줍니다. “이렇게 가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것이다” 하면서 보호해야 되고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위치의 결정과 보호의 책임이 주체에게 동반됩니다.
남자와 여자를 두고 볼 때,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런 남자가 못 되는 사람은 이상적인 남자가 못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자기들 둘 사이에 되어지는 모든 일은 남자가 책임지려고 합니다. 주동적인 역할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위치의 결정입니다. 자리도 남자가 먼저 잡으려고 합니다. 여자가 먼저 자리를 잡은 후 남자가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자리를 잡아야 여자가 따라서 자리를 잡으려고 합니다.
남자가 중앙만 되면 딱 축이 되기 때문에 여자는 자유입니다. 위에 올라갈 수도 있고, 아래에 내려갈 수도 있고, 동에 갈 수도 있고, 서에 갈 수도 있고, 남에 갈 수도 있고, 북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축은 그렇게 못 합니다. 그러니까 누가 더 좋아요? 여자가 더 좋아요, 남자가 더 좋아요? 여자가 중심이 못 되는 것은 기분 나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축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면 안되는 거예요. “아이고, 내 마음대로 해 가지고 엎드려 있겠다”고 해서 엎드려 있지 못합니다. 축은 상하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축이 마음대로 이동했다가는 큰일납니다. 왱가당댕가당 깨진다 이거예요.
그러나 축을 대하고 있는 여자는 “아이고, 나 위에 올라갈래” 하면서 위에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구형을 이룰 수 있는 거예요. 위에도 갈 수 있고, 동서남북을 마음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더 자유로워요? 그러면 여자가 될래요, 남자가 될래요? 여자가 “아이고, 왜 여자로 태어났나? 남자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겠노” 한다면, 그건 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남자는 반드시 일정한 자리를 잡아야 되고, 거기에 모든 상대권을 보호해야 되고, 모든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책임을 져야 됩니다. 반드시,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공의의 법도대로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자유로워요, 남자가 자유로워요? 여자는 입이 빠릅니다. 동에 가서도 나불나불하고, 서에 가서도 나불나불하고, 위에 가서도 나불나불하고. 앞에 가서도 나불나불하고, 뒤에 가서도 나불나불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이동적인 생활권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불나불하더라도 중앙을 생각하면서 나불나불해야지 그렇지 않고 자기를 중심삼고 나불나불하면 파괴됩니다. 나불나불하는데 중심과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나불나불하면 아무리 그렇게 하더라도 악한 것이 아닙니다. (168-247)
유물과 유심이 하나되어야
그러면 주체가 남자가 되어야 되겠어요, 여자가 되어야 되겠어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책임자는 자유가 없습니다. 전체를 위해서 사는 거예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내 마음대로 해, 내 마음대로” 하다가는 망합니다. 악한 거라구요. 세상에서 제거당합니다. 제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물러가는 거예요. 물러가야 되는 거라구요. 깨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물러갈 때는 그 대통령만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까지 깨져 버립니다. 왱가당댕가당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책임을 지고 보호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한 자리에서 영원히 정착할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정착할 자리는 대한민국이 설 자리가 아닙니다. 아시아가 설 자리, 세계가 설 자리, 하늘땅이 설 자리를 대신하는 자리에 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우리 인간사회에서 교육적인 면에서나 도덕적인 면에서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야 할 도의적인 교육의 기본이 안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여자가 됐다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또, 남자가 됐다고 자랑하지 말라구요. 이러한 관이라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문 선생이 말한다고 해서 지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거쳐 가지고 과거, 현재, 미래의 영원한 세계를 연결시켜서 그렇게 되는 데 있어서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관을 가지고 변함이 없는 개인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가정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사회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나라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세계의 길을 가야 되고, 변함이 없는 하늘땅의 길을 가야 됩니다.
이것은 인간만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영적인 무형세계를 동반해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하나의 길을 발견하지 않는 한 이상세계, 이상천주라는 것은 형성될 수 없습니다. (168-249)
오늘 제목이 뭐라구요? ‘우리는 통일주의자들이다’입니다. 그러면 눈이 가라사대 “문 선생의 몸뚱이와 정신은 통일주의지만, 나는 개별주의자야” 이럴 수 있어요? “통일주의자, 그렇구 말구! 통일주의 좋지! 개인적으로 통일한 사람을 좋아하고, 가정적으로 통일된 것을 보기 좋아하고, 세계적으로 통일되고 하늘땅도 통일된 것을 보기 좋아한다. 나도 통일주의자다” 이래야지요. 또, 입이 가라사대 “나도 통일주의자다. 개인이 그런 사람을 나는 좋아하고, 가정이 그러면 더 좋아하고, 세계에 그러한 관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도 통일주의자다” 이런다구요. 그러면 귀는 어때요?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그렇다” 이러는 거예요. 코도 “나도 그렇다” 이러고, 오관도 “아이고, 나도 그렇다” 이래야 됩니다.
도대체, 그럴 수 있는 중심이 뭐냐? 공부 잘하는 사람은 “학문이 제일이지” 합니다. 학문이 제일인데, 공부할 때 눈이 좋아해요? 또, 몸뚱이가 좋아해요? “싫지 않고 좋아, 좋아! 밤잠을 안 자고 공부하자” 그래요? 어쩔 수 없어서 하지 뭐! 눈이 얼마나 피곤해요! 눈은 죽겠다고 하지요.
입은 먹기를 좋아한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밤낮 먹으면 어떻게 돼요? “쉬지 않고 입에 넣어서 자꾸 깨물어서 넘겨야 돼. 안 넘기면 큰일난다”고 해봐요! 그런 지옥이 없을 것입니다. 먹는 것을 보기만 해도 지옥이에요. 잠자지 않고 보라는 것도 지옥입니다. 듣기만 하는 것도 지옥입니다. 팔을 이렇게 언제나 움직이라는 것도 지옥이라는 거예요. 이게 문제입니다. 언제나 움직여도 좋은 것, 언제나 봐도 좋은 것, 언제나 먹어도 좋은 것, 언제나 만져도 좋은 것, 언제나 좋은 그런 것이 있느냐? 싫어하는 것을 중심삼고 통일할 거예요, 언제나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통일할 거예요?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원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뭐냐? “하나님, 당신은 뭐예요? 도대체, 하나님은 무슨 주의자요” 해봐요! 주의라는 것은 하나의 완성의 세계를 찾아가는 지팡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봉사가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요? 그와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주의의 세계에 살아서는 안됩니다. 주의라는 것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무엇을 찾아갈 때 필요한 것입니다. 사상계에 주의가 많지요? 무슨 주의, 무슨 주의…. 거기에는 동으로 가는 주의, 서로 가는 주의, 남으로 가는 주의, 내려가는 주의, 올라가는 주의 등 주의들이 많지만 그 주의들 가운데서 그래도 필요한 것은 통일주의가 아니냐 이거예요. 우선, 내용은 어떻든 말은 맞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은 맞는데 그 말은 과거 사람도 좋다고 하고, 오늘의 사람도 좋다 하고, 천 년 후의 사람도 좋다고 합니다. 남자도 좋고, 여자도 좋다는 거예요. 미국 놈들한테도 좋고, 소련 놈들한테도 좋고, 중국 놈들한테도 좋고, 일본 놈들한테도 좋고, 한국 사람들한테도 좋습니다.
이렇게 볼 때, 민주세계에서 좋아하는 것과 공산세계에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두 세계가 싸우고 있는데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하나되겠느냐?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주체가 되어서 하나되어야 하겠다고 하고,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주체가 되어서 하나되어야 하겠다고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둘이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가 있어야 되고 대상이 있어야 될 것인데 서로가 주체라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렇게 유물과 유심이 갈라져서 야단입니다. 그 유물과 유심이 하나되어야만 종횡이 연결됩니다. (168-253)
머리주의자가 되어야
여기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통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디즘(Godism;하나님주의)! 레프트 윙(left wing;좌익)과 라이트 윙(right wing;우익), 여기에서 통일교회는 헤드 윙(head wing;두익)을 주장하는 거예요. 머리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손주의를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머리주의의 내용이 뭐냐? 머리만 제일이면 돼요? 손도 좋아하고 발도 좋아해야지요. 오른손도 좋아하고 왼손도 좋아해서 오른손도 그저 그걸 그렇게 잡으려고 하고, 왼손도 그걸 그렇게 잡으려고 하고 그래야 됩니다. 그러니까 혼자보다 둘이 좋으니까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산주의자들의 유물 변증법을 그렇게 좋아할 것이냐? 그들은 그것으로 세계를 통일하려고 야단하고, 그것을 내세워 가지고 선전공세를 하는데 그게 제일이에요? 그 이상의 것은 없어요? 이게 문제라구요.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공산주의를 택할 거예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면 그 이상의 것을 택할 거예요? 그 이상의 택할 것이 없다면 세계는 공산세계가 되겠지요.
인간의 생명을 남겨 놓을 거예요, 공산주의를 남겨 놓을 거예요? 어때요? 공산주의 때문에 생명을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아직까지는 그 분석 기준을 확정짓지 않았습니다. 어느 것이 귀한 거예요?공산주의가 귀한 거예요, 생명이 귀한 거예요? 왜 생명이 귀해요? 이런 것을 전부 다 논리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떠벌이들이예요. 질문하면, 전부 사방으로 막혀 있습니다. “영계가 있어” 할 때 “영계는 없어” 하고, “종교가 필요해” 하면 “종교는 아편이야” 하고, “너 마음 있어” 하면 “마음 필요 없어” 이러는 것입니다. 그 격이에요. 공산주의자들에게 마음이 없다고 해봐요. 눈이 더 새빨개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빨갱이인데 눈이 더 빨개진다는 거예요. 원숭이가 우리의 아버지예요? 공산주의자한테 원숭이 새끼라고 해보라구요, 좋아하나. “원숭이 새끼야, 잘생겼구만” 하면 기분 좋아요? 기분 나쁘지요.
공산세계가 요즘은 주의보다도 경제를 중시합니다. 지금 중공에서도 공산주의가 변질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지고는 중국이 금후의 이상세계로 갈 수 없다고 해 가지고 체제변경을 논의하는 혼란에 빠지는 거예요. 경제문제를 중심삼고 변할 수 있는 그 공산주의는 가짜라는 것입니다.
우리 남자와 여자들, 돈 갖게 되면 변해요? 돈 갖다 줘서 변하면, 그건 가짜입니다. 사람이 변해야 되겠어요, 돈이 변해야 되겠어요? 그거 다 문제라구요. 사람이 돈에 팔려가야 되겠어요, 사람이 돈을 팔아먹어야 되겠어요? 사람이 돈을 팔아먹어야 됩니다. 왜, 어째서 그래요? 모릅니다. 모르지만,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고예요. 그래, 공산주의 때문에 생명을 바칠 수 있어요? 생명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내용을 가졌다고 자인하게 될 때 공산주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지 동물적인 것이라고 해서 공산주의에 팔려 넘어가는 생명은 무가치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면 다예요? 요즘은 대통령선거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선거하는 것이 민주주의예요? 선거하는 것이 민주주의냐구요? 문제라구요. 거기에 관권이 동원되고, 금권이 동원되고, 모략 중상 음모가 개재되어 있는데 그게 민주주의예요? 속이고 별의별 짓들을 다 하고 뒤집어 씌워서 자기가 당선되면 민주주의냐 이거예요.
민주주의는 자유입니다. 야당과 여당이 동등한 자리에서 돈을 쓰더라도 딱 갖다 놓고 공평하게 나누어 써야 됩니다. 국가의 돈이 여당의 돈인가요? 여당과 야당이 딱 의논해 가지고 “자, 선거비로 이렇게 씁시다. 두 갈래로 나누어서 당신이 남쪽을 가지고 싶으면 갖고 북쪽을 갖고 싶으면 가지소! 이렇게 나누어서 선거합시다” 이렇게 해야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의 개념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권 패가 뭐고 여권 패가 뭐예요? 그건 시정을 해야 됩니다. (168-255)
하나님은 하나주의자
이만큼 했으면 알겠지요? 통일주의가 뭐냐 이거예요. 그건 간단한 거예요. “하나님, 당신은 무슨 주의요? 세상에는 주의가 하도 많은데, 아버지주의 어머니주의 아들주의 조카주의 삼촌주의 무슨 사돈의 팔촌주의 등 너더분하게 많은데 하나님은 무슨 주의자요” 할 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주의야” 이러실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하나님이니까 말이에요. 하나님이니까 “나는 하나주의야” 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주의가 뭐요? 하나님이니까 생각하시는 것도 하나지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셔야 될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왔다갔다하시면 미친 하나님이지요. 문 선생도 왔다갔다하면, 내가 40년 전에 한 말이 지금과 다르다면 미친 녀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통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변천해 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은 무슨 주의자라구요? 하나주의자! 왜 하나주의자라구요? 시작에서부터 영원히 한 생각을 하시는 분입니다. 두 생각을 안 하신다구요. 그렇게 한 생각을 하면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그러나 답답하실 것 같은데, 언제나 좋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실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은 하나주의라면, 그것이 뭐예요? 넘버원 주의다, 멋진 주의다 그거예요.
그래, 하나주의의 내용이 뭐예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이 하나인데, 그 생각이 무슨 생각이에요? 돈 생각이에요? 황금 보석 진주, 그런 것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이에요? 보석이라든가 금은보화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실 수 있어요, 없어요? 언제나 만드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언제나 만들 수 있는 건 뭐 필요 없는 거예요. 언제나 만들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가질 수 있으니까 그런 것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지식이 필요해요? 전지(全知)예요.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위의 것 전부, 아래의 것 전부, 동쪽 전부, 서쪽 전부, 구형 전부, 내용 전부, 형태 전부를 아신다는 거예요. 그런 분이 공부가 필요하겠어요? “아이고, 나도 철학을 공부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하나님이 철학을 공부하신다고 생각해 봐요. 그게 어울리겠어요? (168-259)
하나님한테 공부가 필요해요, 필요하지 않아요?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 권력이 필요하겠어요? 사람들은 “나 대통령 해먹자. 대가리가 깨져도, 허리가 불거지고 가랑이가 찢어져도 해먹겠다” 하는데, 하나님이 권력이 필요해요? 필요하지 않습니다. 천지의 모든 것은 하나님한테 속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 하나님한테 필요한 게 뭐 있겠어요? 전지전능하시고, 그 다음에는 전유소유라구요. 무엇이든 다 가졌는데 무엇이 필요하시겠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뭘 갖고 하나님이 통일하실 거예요? “나 제일주의다. 하나주의다” 하면서 무엇을 갖고 하나주의라고 하시느냐 이거예요. 그건 지식도 아니요, 권력이나 돈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뭐겠느냐 이거예요. 무엇이겠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아들이 필요하오” 하고 물어 본다면,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고 대답하시겠어요? “필요하오” 할 때는 필요하다든가 안 하다든가 해야지, 그 중간은 필요 없습니다. “필요하오” 할 때, “오냐” 하든가 “아니다” 하든가 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하나님이? 이때 하나님이 계신다면 필요하다고 대답하시겠어요,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하시겠어요? 필요하다고 대답하십니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그래요? 이게 문제라구요. 아, 하나님은 아들딸이 필요하면 아들딸을 만드실 수 있고 그런데 그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러시겠어요? 눈을 깜박깜박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뭘 먹겠다고 입을 놀리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여기 남자나 여자나 자식을 갖고 싶지요? 자식을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은 죽으라구요! 미국 사람들은 새끼들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멸망주의예요. 1세기 후면 다 사라집니다. 인류의 공도(公道)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그건 전부 다 흘러가 버리고, 추풍낙엽이 되어 비료감밖에 안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처녀들! 애기를 낳기가 쉬워요, 힘들어요? 힘들지요? 애기 낳는 부인들의 얼굴사진을 찍어서 보라구요! 언제 주름살이 생기느냐 하면, 애기를 낳을 때 주름살이 생길 수 있는 금이 그어진다고 보는 거예요. 늙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위로 힘을 줄 때는 이게 올라가고, 아래로 힘을 줄 때는 내려가고, 옆으로 힘을 주면 벌려지면서 요지경이 벌어집니다. 그래 가지고 손발이 전부 다 위치를 찾지 못하고 야단이에요. 이게 동서남북으로 막 야단을 친다 이거예요.
그렇게 야단을 해 가지고 뭘 하는 거예요? 애기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왜 애기를 낳아요? 힘든데 말이에요. 애기 낳은 어머니가 애기를 낳고 나서는 힘들다는 말은 없고 “아들이야, 딸이야” 그러고 있다 이거예요. 낳아 놓고는, 애기를 사악 들여다보면 아픔을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아팠던 그 작용, 힘의 반작용으로써 “아이고, 좋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렇게 아팠던 반작용의 힘으로 “아이고, 내 것이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야. 아이고…” 이런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엇이 솟구치느냐? 사랑이라는 것이 싹튼다는 것입니다.
하나주의를 이룰 수 있는 것
그러면 이제 개인관, 가정관, 종족관, 민족관, 국가관, 세계관, 하나님의 천주관, 하나님의 하나주의관이 밤이나 낮이나 24시간은 물론, 사계절은 물론, 젊은 세대 늙은 세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언제나 끝에서 끝으로 통할 수 있고, 종횡과 전후좌우로 통할 수 있는 이념적인 그 분모가 뭐냐? 그것을 결론지으면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손 들어 봐요! 이거 왜 들었어요? 사랑 때문에 손들었다고 하면 만물이 좋아합니다. 졸던 나무도 번쩍 눈을 뜬다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이 마이크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할 것입니다. 우주의 사랑을 가지고 말을 하게 되면, 마이크가 침이 튀어 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침아, 내게 튀어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해서는 “이놈의 침아, 붙지 말아라! 푸푸푸…” 합니다. 이런 모든 만물도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해도 부자가 됩니다. 나는 도망 다니기가 일쑤입니다. 난 지금까지 도망 다니면서 살잖아요. 욕먹고 다니고 말이에요. 그래도 돈 보따리가 자꾸 따라오더라구요. 사람도 따라오고, 사람을 따라서 돈도 따라오더라구요. 그건 무슨 냄새를 맡고 그래요? 사랑 냄새입니다. 또, 무슨 맛을 보고 그래요? 사랑 맛입니다. 문 선생의 사랑 맛이 아주 복잡하거든요. 그렇다고 사(邪)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통일시키는 참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주의라고 했는데, 하나주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참사랑입니다. 사랑은 공유물입니다. 남자가 가더라도 그 부인 앞에 사랑을 남겨 주고 가야 된다구요. 갈 때 “아이고, 이렇게 내가 돈을 많이 모아 가지고 기반을 닦았는데 내가 죽으면 이 기반이 없어질까 봐 걱정이야. 당신이 이 기반을 잘 지켜 주소” 하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세계적인 판도를 만들어 놓았지만, 내가 사랑을 덜 했소. 내가 사랑을 미처 못 했소. 벌여 놓은 그 분야에 당신은 나 이상으로 사랑해 주고, 내 몇 배 이상 사랑해 주기를 바라오” 이러게 될 때는 모든 것을 잘 관리하고 주관하라고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관리가 되고 수습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유언을 해야 됩니다.
이제 아버지가 유언을 하는데 “아들아, 내가 우리 집을 사랑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했지만 사랑하지 못했다. 재산이 문제가 아니고 금전이 문제가 아니고 지식이 문제가 아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을 나 이상 사랑하고, 내가 미치지 못한 기준까지 네가 사랑해 다오” 이래야 참된 부모로서의 유언의 도리가 선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불붙어 버릴 세상의 물질이나 재산을 중심삼고 안타까워하면 안됩니다. 나는 재산을 관리할 생각이 없다구요.
통일교회 이놈의 자식들, 내가 지금 일부러 통일교인들 자리 못 잡고 전부 다 따라지로 살게 만들고 있다구요. 요전에도 회사 사장, 국장 할 것 없이 전부 다 인사이동을 다 해버렸습니다. 어느 누구한테도 물어보지 않고 말이에요. 세상에 그런 인사조치가 어디 있어요? 엉망진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네 전문분야를 사랑하던 마음 이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고 모르는 세계에 가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일하게 되면, 너는 어디에 가든지 날로 발전한다” 한 거예요. 그게 다른 것입니다. 사상의 개념이 다르다구요.
또, “내가 아무리 따라지라도 좋다. 통일교회에 한 사람이 있어도 좋다. 여러분도 백 명의 교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말고 노력해야 된다. 도를 위하고 군을 위해서 밤잠을 자지 못하고 기도하는 그 지방의 책임자가 되라”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그 군의 주인이 될 아들딸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168-287)
최후의 목적
그러면 오늘 통일주의는 뭐냐? 통일교회 교인들은 관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의 관은 공통적입니다. 가정의 관도 공통적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까지 공통적입니다. 여기에 지옥은 안 통합니다. 이것은 천국만 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 관을 갖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나라에 대해서 관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계에 대한 관을 갖고 삽니다.
그런데 개인이 가는 길과 가정이 가는 길이 갈라지면 큰일나겠지요? 개인을 중심삼고 암만 정성을 들여도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고, 가정을 중심삼고 일생을 암만 잘살아도 사회와 국가가 통할 수 있는 관의 일치점을 거치지 않으면 일생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아무리 애국자의 이름을 갖고 살았더라도 대한민국 제일을 주장하지 않고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면 희망적인 애국자가 못 됩니다.
대한민국에는 사랑의 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애국자가 필요합니다. 아시아에 어떠한 성인이 나왔다면 그 성인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갈 길을 가르쳐 줘야 되고, 세계적인 성인이 나왔다면 하늘의 갈 길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상에 나왔던 성자라는 사람들은 전부 다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종주들이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어떠한 연고냐? 그것은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천상세계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도리, 참된 길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자들이 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만이 아니에요. 하늘과 땅의 도리입니다. 하늘을 중심삼은 사랑의 통치세계와 지상을 중심삼은 사랑의 통치세계에 역사관을 결속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류 전체, 인간이 기뻐하고 만물이 기뻐할 수 있는 통일의 이상세계로 하나님도 가기를 원하시고 인간도 가기를 원합니다. 최후의 목적은 그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이러한 길을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죽게 될 때 자기가 죽는다고 탄식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정이 남아서 내가 못 한 사랑을 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올바로 살고 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정을 사랑하고 살다가 죽더라도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사회를 위해서 올바르게 살라고 할 수 있는 터전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개인으로 살았지만 사회와 국가와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대표로 해서 산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산 사람은 천국으로 그냥 통합니다. 구세주가 필요 없습니다. (168-293)
자, 알았지요? 통일주의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개인적인 관, 가정적인 관, 사회적인 관, 국가적인 관, 세계적인 관, 하늘 나라의 천지관 등 모든 기준에서 참사랑의 도리를 중심삼고 가는데 그 사랑의 모체는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 그 다음에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 그 다음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천상세계나 지상세계나 만국의 대왕을 대표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하늘나라의 왕자가 되고 왕녀가 되어서 왕권을 대신하는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로 가자고 하는 패들이 통일교회 패요, 그러한 역사상에 없었던 주장을 하고 나온 사람들이 통일주의자들입니다. 그걸 말하기를 통일주의라고 하느니라, 아멘!
그렇게 살겠다는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보자구요! 그렇게 살아 가지고 망하나 보라는 거예요. 동네에서 그렇게 한 3년쯤 살아 보라구요. 그 동네의 어려운 사람들은 전부 다 문을 두드리고 줄 지어 서 가지고 “아무개 아버지, 만나서 얘기 좀 합시다” 이럴 것입니다. 그런 의논의 주체가 되나, 안 되나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살 때는 틀림없이 주인이 될 테니까 그렇게 살 거예요, 안 살 거예요? 손 들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실천은 어려운 것입니다. (168-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