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나를 얽어매자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3일)

훈독왕 | 20190224054754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3일

 

첨부파일 16 훈독경 제1권 23일 하나님 앞에 나를 얽어매자 1.mp3


하나님 앞에 나를 얽어매자
  
날짜 : 1961. 2. 15(수)
장소 : 한국 전주교회
  
 하나님에게 심정의 줄로 얽어매어야 할 나
  
여러분은 이곳에 참석할 때 어떤 생각을 했어요? 무엇을 하러 모였어요? 
오늘 모인 목적은 우리 인간끼리 인연을 두터이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나를 한 묶음으로 묶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지금까지 누구도 갖지 못한 띠로서 얽어매야 겠다는 것입니다. 그 띠가 뭐냐? 여러분의 몸이 되어야 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되어야 하고, 여러분의 정신이 되어야 하고, 여러분의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매기 위해서 온 자가 아니면 여기에 참석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매였으니 아버지도 못 풉니다.” 할 수 있는 이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따라갈 도리가 없습니다. 여기에 선생님을 찾아왔으면 이제부터 여러분을 선생님의 발에다 매든가 어디에든지 들이 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로 도망갈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단단히 붙들어 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붙들어 매는데 무엇으로 붙들어 맬 것이냐? 그 줄이 심정의 줄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 대해서 “야, 인간들아! 너희의 참심정의 줄로 내 목을 얽어매고, 내 다리를 얽어매고, 내 일신 전체를 네 몸에 얽어매 주려무나!”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을 그렇게 심정의 줄로 얽어매서 “아버지, 나와 당신은 하나입니다.”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통일의 용사라고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이요, 아버지와 일체라고 자처하고 나설 수 있는 뭐가 있어요? 한번 바람이 휩쓸어 치고 태풍이 장시간 들이 불어 치면 다리는 다리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사지백체가 전부 다 갈라져 제대로 설 수도 없는 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통일의 용사라고 할진대는 얽어매라는 것입니다. 법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법한테 얽어매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법에 완전히 매인 사람이라야 그 법을 완전히 움직일 수 있고 그 법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법에 완전히 얽어매여 있지 않고 딴 데 가서 재간 피우는 사람은 전부 다 죄인입니다. 

 

사람은 얽어매야 됩니다. 태어난 그날부터 부모에게 얽어매여 있고, 가정에서 형제에게 얽어매여 있고, 여자와 남자가 서로서로 얽어매여 있고, 백성이면 백성으로 얽어매여 있고, 어떤 주의자면 주의에 얽어매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얽어매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얽어매이는 데는 멋지고 큰 것에 얽어매이려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달라붙고 인연을 맺어 내 몸을 얽어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의 마음이 이런데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이 땅 위에 제일 기쁜 소식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여러분이 몸, 마음, 정신과 사랑의 심정을 중심삼고 천상천하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한테 내 몸을 꼼짝 못하게 얽어매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를 맺어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 사람은 하나님보다도 더 고마운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신 분이 주님이요, 메시아입니다. 그렇게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였습니다. (150-180)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지금 여러분의 마음, 심정, 몸, 이념, 소망,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가정 전체를 어디에 얽어맸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든지 자기 자신이 거기에 잠겨 있으며 얼마만큼 그 분야와 하나되어서 손과 손, 발과 발, 몸과 몸, 마음과 마음이 백 퍼센트 얽어매여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너자 나요, 나자 너다!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뗄래야 뗄 수 없다. 네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이요, 네가 서로 가면 나도 서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내용과 분야를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 기도하고 맹세합니다.” 하면서 여자들이 눈물을 쫄쫄 흘리다가도 난데없이 배척하고 이랬다저랬다 해 나오기를 6천 년 동안 했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들은 언제는 “죽겠습니다. 맹세합니다. 틀림없이, 약속하겠습니다.” 하다가도 10년도 못 가서 건달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안 믿는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해서 “내가 너를 믿어 준다. 내가 너와 인연을 맺겠다.”고 한번 얽어매면 푸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맸다가 풀었다가, 맸다가 풀었다가 합니다. 편리하면 매고 불리하면 풀고 하는 그따위의 것들은 아무리 많아도 쓸데가 없습니다. 

 

그러니 만큼 오늘 여기에 온 사람들은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여 누구와 어떠한 인연을 맺고, 어떠한 결의 밑에서 내 한 걸음의 거동을 갖추어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내가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 남쪽이면 남쪽, 북쪽이면 북쪽, 나무의 줄기면 줄기, 가지면 가지, 잎사귀면 잎사귀 등 어디에 처해 있는 자신인가를 스스로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밝히지 못하는 한 뜬구름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의 대상이 되고, 어떤 주권국가면 국가의 주권을 대신하여 전체의 소망이 될 수 있는 사람일수록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절대자가 그런 가치로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는 무한히 행복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중심삼고 전부가 인연을 맺으려고 하고, 전부가 하나되려고 하고, 전부가 나눠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하나님의 심정과 그렇게 완전히 얽어매여서 나누어질 수 없는 입장에 들어가게 되면 돈이 없어도 부자입니다. 참마음을 갖고, 참양심을 갖고, 참몸을 갖고, 참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 참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사람을 한번 접하면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줄로 얽어매어 있는가를 알게 되면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 알고 나면 또 만나야 되고, 그렇게 만나면 무엇이든지 나눠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150-183)

 통일교회는 정의 줄로 얽어매는 곳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지만, 통일교회에는 자꾸 사람이 달라붙습니다. 그렇게 달라붙게 되면 떨어지지 않고 하나됩니다. 할아버지와 나이 어린 사람들이 밤을 지새우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같으면 노인의 냄새가 난다고 가까이 올까 봐 옷자락을 털고 돌아서지만, 꽃 같은 아가씨들과 어린 총각들이 좋다고 밤을 새워 가면서 희희낙락하고 돌아가지 말라고 붙드는 그러한 무리가 되어 보세요! 그러면 세상 천하에 모든 욕을 먹어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그런 정(情)의 줄에 한 번을 만나면 한 번을 매이는 것입니다. 두 번을 만나면 두 번을 매이고, 세 번을 만나면 세 번을 매이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보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반가운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식이 아니요, 본연의 천성을 통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갖고 있는 의식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버리고 전체가 혁신될 수 있는 길로 내몰린다고 할진대, 그런 길에 들어선 사람은 무한히 행복한 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찾아온 것은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여러분을 단단히 붙들어매야 됩니다. 어디에 붙들어매야 되느냐? 아버지 앞에 붙들어매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는 동쪽으로 갑니다.” 하면, 하나님도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체가 못 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지만 단단히 붙들어매 가지고 여러분이 힘만 있으면 “나는 서쪽으로 갑니다.” 하면, 하나님도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복 중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꽁꽁 붙들어매서 꼼짝못하게 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가 아니면 안 되겠다. 네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으로 가고, 네가 서로 가면 나도 서로 가겠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6천 년이라는 세월을 찾아 나왔지만 못 만났습니다. (150-185)

 
 인간 타락 이후 지금까지 참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을 찾고 계셨는데 그 참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시대와 시대를 거쳐오면서 “네가 내 심정에 얽어맬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백성이 되었느냐?” 하며 택해 나오신 것이 아브라함이요, 야곱이요, 모세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개인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민족을 세워도 전부 다 믿을 수 없었으니 전세계를 주고도 바꾸지 않을 한 분을 세우기 위해서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민족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가정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리고, 이 사탄세계를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시기 위해서 세우면 쓰러지고, 매어 놓으면 풀어 버리고, 인연을 맺으면 끊어 버리기를 일삼던 인류를 대하여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참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를 모방하여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참사랑의 가치를 땅 위의 인간들 앞에 공개하고 가야 했는데 공개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왔다 갔지만 그 이후에는 예수님과 같은 그림자도 안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왔던 목적은 이 땅 위의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메시아를 대신할 수 있는 신부 한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거지 떼거리 같은 것들은 억천만이라도 다 쓸데없었습니다. 하나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반드시 인간도 심정을 갖고 있고 하나님도 심정을 갖고 있는데, 인간의 심정이 자리를 잡고 기쁘려면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기준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도 편안히 안식하실 수 없습니다. 행복을 노래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땅 위의 사람들이 그 기준을 잡았어요?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을 누가 아는 사람이 있어요? 수많은 인간들이 도의 길을 가고 신앙의 길을 가고 있지만 복받겠다는 사람들은 수두룩해도 하나님의 슬프고 억울하고 분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하나님을 수고롭게 해서라도 자기가 편안하면 됐지 하나님이 수고하시는 것을 슬프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150-188)

 제일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얽어매이는 사람이 참사람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과 나를 영원히 붙들어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하면 나도 동하고, 하나님이 정하면 나도 정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간 걸음을 나도 따라가야 됩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붙들어맬 것이냐? 선생님의 주의는 하늘이 눈물을 흘리는 자리, 핍박받는 자리, 외로운 자리, 고통을 당하는 자리에서 얽어매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복받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여하게 될 때 떼어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 도의 길은 먹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입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자기가 갖춘 바의 모습은 늠름하지만 머리 숙여 땅을 보면서 한숨을 짓는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얽어매이고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웃고, 희희낙락하고, 궁둥이춤을 추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은 오늘날 인간들이 제일 싫어하는 데서부터 쌓입니다. 생명을 가진 초목 하나라도 그것이 생명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궁창 물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뿌리를 박고, 그것을 소화하고, 그것에서 생명의 요소를 빼내어 자기의 요소로 갖출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만 완전한 풀의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악한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아, 그런 길은 가지도 말라!” 합니다. 통일교회에 가면 거기에 빠지니 가지도 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내 아들에게 복 주시고, 천당 가게 해 주소!” 합니다. 내가 아는 천당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당을 가기 위해서는 지옥의 길에서라도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길은 없느냐?” 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정성을 들이고, 지옥의 밑창에 가서도 하늘의 제단을 쌓기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천당 간다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가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하나님…!” 하지 말고 빈민굴, 노동판, 허허벌판 가운데서 하늘을 향하여 제단을 쌓고 눈물로 호소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무리가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교회당에서부터가 아닙니다. 천국은 사탄굴의 밑창보다 더 험한 곳에서 모든 환경을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선한 마음으로 붙들어 얽어맬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50-190)

 오직 참사람만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하나님이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천리 만리 지옥이라도 개의치 않고 따라가겠다는 결의를 가진 무리가 있다고 할진대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하늘나라는 건설될 것이고,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세계 만민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은 이제부터 자기의 일생에서 “당신이 걸어간 6천 년 섭리노정에 있어서 이런 면에서만큼은 나와 영원히 매여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가져야 합니다. 그런 것도 하나 없으면 쭉정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나의 문제만은 내가 아니면 안된다. 그 문제만은 아버지도 나와 같이 의논해야 된다.”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축복을 안 해주실 수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갖은 고통, 갖은 수욕을 당하면서 이만큼 자라 나온 것도 그런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수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고 천상에도 수많은 영인들이 살고 있지만, 이 문제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 하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무엇을 가지고 발전 못 하면 천도가 어긋나는 것입니다. 선생님 이상 고생을 하고, 선생님 이상으로 애절하게 아버지를 얽어맬 수 있고, 아버지의 심정을 녹여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슬플 때 자기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입니다. 또,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내가 대신 당하겠다. 당신은 그 고통의 자리에 나가지 말라. 내가 대신 나가겠다.”고 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친구나 사랑하는 아들딸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사람이 있어요? 


영원무궁토록 행복하고 영광을 받아야 할 하나님이 지금까지 행복하지 못하고 안식의 자리에 서지 못한 연고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고통을 받게 될 때 이 땅 위에 사는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을 위하여 대신 고통받고자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억울하고 분하고 원한에 사무친 심정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한의 심정을 내게 주시옵소서! 내가 복수하겠나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하나님이 특별히 요구하고 바라시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여기에 많은 무리가 모였다고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고 내가 찾고 있는 무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인연을 갖추고 어느 때 어느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하나님한테 기억될 수 있는 무리입니다. 그런 무리를 만드는 것이 문제지, 사람이 천만이 모였다고 해도 구경꾼은 쓸데없습니다. 신앙의 기준을 여기서부터 닦아야 합니다. (150-195)

 사탄 도성을 헐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여러분은 자기가 좋다고 해서 자기의 마음대로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동기와 어떠한 복잡한 내용과 어떠한 이론을 거쳐 수천만 대 자기 선조들의 공적을 통해 여기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맺혀진 결실의 모양은 비록 찌그러지고, 작고, 보잘것 없지만 그 속에 흐르고 있는 정신만은 하나님이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찾아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온 여러분을 지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여러분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영원무궁토록 온 천상이나 지상에서 만민을 사랑할 수 있는 실적을 갖추고 어디를 가든지 영원한 자유의 심정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행동하고 같이 살 수 있는 입장을 개척하고 지도해야 하는 것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길입니다. 그런 길로 여러분을 이끌고 가야 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길은 편안한 자리가 아니라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자리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여기에 있는 선생님을 감동시키고 꼼짝못하게 하려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붙들고 울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눈물과 인정이 많습니다. 길을 가다가 전도 나가 있는 식구들이 옛날에 내가 지내오던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가슴이 아픕니다. 선생님도 그런 것을 많이 했습니다. 아주 훤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큰소리하는 것이 여러분만 고생시키고 여러분의 등을 쳐 먹으려고 하는 얘기이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내가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어디 가나 하나입니다. 죽을 자리에 생명을 내놓고 동반해서 승리적인 한 소망을 품고 가고자 하는 무리가 오죽하겠느냐 말입니다. 이 이념과 이 신념만 여러분의 마음에 불타 있고, 이 신념을 통하여 뚜렷한 목표를 향해 간다면 그 사람은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패배라는 말은 해소되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지고 통쾌합니까!


옛날의 우리 선조들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고, 노아도 그랬고, 전부가 그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을 안 가겠다고 하는 녀석은 역사적인 전통을 무시하는 악질분자입니다. 잘나나 못나나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오늘 이 시대의 최후의 사탄 도성을 허는 데 있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바위라도 하나 굴려야 되겠고 치워 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양말을 벗고 옷을 벗어 제껴야 됩니다. 그것을 해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여러분이 그런 길을 가라고 책임을 지워 놓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명령해서 내가 득 보고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우주적인 하늘의 복을 집중시켜 선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봉사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교인으로서 못 한다는 말은 당치 않습니다. 생명을 바쳐 죽기를 맹세한 무리가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무슨 놀음이라도 해야 됩니다. 당장에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결의를 갖고 움직여야 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 수고한 사람으로서 아버지 앞에 효자 효녀의 상을 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도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삼고, 아버지가 걸어오신 처량한 역사노정 앞에 참된 효자 효녀로서 억울한 자리, 불쌍한 자리,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를 비로소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성공을 다 해 영광의 자리에 앉을 때 눈물 흘리면서 “아이구, 아버지! 이럴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자식을 찾아오고 허덕이는 그 자리에 찾아가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냐, 내 아들딸아!” 하며 아버지의 위신을 잊어버리고 몸부림치면서 여러분을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후회와 더불어 모든 것을 전부 다 풀어놓고 내 아들이라고 품어 줄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다 자리잡으신 그때에 가서야 “아이구, 아버지…!”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런 자리에 내보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복받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표본이 되어 아버지와 동반자의 입장에 설 수 있어야 만천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150-204)

  


<훈독 소감>
 
우리들의 가정 전체를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으로 얽어매어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심정의 인연으로 붙들어매기 위해서는 하늘이 눈물을 흘리는 자리, 핍박을 받는 자리, 외로운 자리, 고통을 당하는 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가진 초목 하나라도 그것이 생명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궁창 물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듯이 어려운 역경 속에서 제일 싫어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악한 것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천국은 사탄굴의 밑창보다 더 험한 곳에서 모든 환경을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선한 마음으로 붙들어 얽어맬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결정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때문에 아버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고생시키고 눈물의 골짜기에 내모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삼고, 아버지가 걸어오신 처량한 역사노정 앞에 억울한 자리, 불쌍한 자리,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효자 효녀가 되어주길 당부에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동반자의 입장에 서 주기를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당부를 명심하고 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명확한 신앙의 방향을 제시하여 주신 말씀을 감사히 받고 깊이 명심하게 되었습니다.


천일국 훈독경 제1권 제23일 원문

하나님 앞에 나를 얽어매자 
  
날짜 : 1961. 2. 15(수)
장소 : 한국 전주교회
  
 하나님에게 심정의 줄로 얽어매어야 할 나
  
여러분은 이곳에 참석할 때 어떤 생각을 했어요? 무엇을 찾으려고 해요? 무엇을 하러 모였어요? 목적이 있을 게 아니에요? 여기에 서 있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얼굴은 아무렇게나 생겼고 태도야 어떻든지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식구들과 안면을 두터이하기 위해서 모인 것도 아닙니다. 
오늘 모인 목적은 우리 인간끼리 인연을 두터이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나를 한 묶음으로 묶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묶는 데 있어서는 누더기의 끈으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지금까지 누구도 갖지 못한 띠로서 얽어매야 겠다는 것입니다. 그 띠가 뭐냐? 여러분의 몸이 되어야 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되어야 하고, 여러분의 정신이 되어야 하고, 여러분의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매기 위해서 온 자가 아니면 여기에 참석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매였으니 아버지도 못 풉니다.” 할 수 있는 이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따라갈 도리가 없습니다. 여기에 선생님을 찾아왔으면 이제부터 여러분을 선생님의 발에다 매든가 어디에든지 들이 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바쁜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로 도망갈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단단히 붙들어 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붙들어 매는데 무엇으로 붙들어 맬 것이냐? 그렇게 붙들어 맬 수 있는 줄이 있나니, 그 줄이 심정의 줄입니다. 앞으로 심정의 줄로 단단히 얽어매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 대해서 “야, 인간들아! 너희의 참심정의 줄로 내 목을 얽어매고, 내 다리를 얽어매고, 내 일신 전체를 네 몸에 얽어매 주려무나!”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벌거숭이의 몸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을 그렇게 심정의 줄로 얽어매서 “아버지, 나와 당신은 하나입니다.”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통일의 용사라고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 앞에, 천지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세계 앞에, 혹은 천상이나 지상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 앞에 나는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이요, 아버지와 일체라고 자처하고 나설 수 있는 뭐가 있어요? 한번 바람이 휩쓸어 치고 태풍이 장시간 들이 불어 치면 다리는 다리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사지백체가 전부 다 갈라져 제대로 설 수도 없는 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통일의 용사라고 할진대는 얽어매라는 것입니다. 법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법한테 얽어매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법에 완전히 매인 사람이라야 그 법을 완전히 움직일 수 있고 그 법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법에 완전히 얽어매여 있지 않고 딴 데 가서 재간 피우는 사람은 전부 다 죄인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있으면 그 헌법에 몽땅 사로잡혀 있어야 됩니다. 몸이나, 마음이나, 눈이나, 손발 할 것 없이 사지백체가 거기에 몽땅 사로잡혀 얽어매임을 당한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는 헌법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얽어매야 됩니다. 태어난 그날부터 부모에게 얽어매여 있고, 가정에서 형제에게 얽어매여 있고, 여자와 남자가 서로서로 얽어매여 있고, 백성이면 백성으로 얽어매여 있고, 어떤 주의자면 주의에 얽어매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얽어매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얽어매이는 데는 멋지고 큰 것에 얽어매이려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달라붙고 인연을 맺어 내 몸을 얽어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의 마음이 이런데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이 땅 위에 제일 기쁜 소식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여러분이 몸, 마음, 정신과 사랑의 심정을 중심삼고 천상천하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한테 내 몸을 꼼짝 못하게 얽어매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를 맺어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 사람은 하나님보다도 더 고마운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신 분이 주님이요, 메시아입니다. 그렇게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였습니다. (150-180)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지금 여러분의 마음, 심정, 몸, 이념, 소망,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가정 전체를 어디에 얽어맸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든지 자기 자신이 거기에 잠겨 있으며 얼마만큼 그 분야와 하나되어서 손과 손, 발과 발, 몸과 몸, 마음과 마음이 백 퍼센트 얽어매여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너자 나요, 나자 너다!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뗄래야 뗄 수 없다. 네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이요, 네가 서로 가면 나도 서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내용과 분야를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 기도하고 맹세합니다.” 하면서 여자들이 눈물을 쫄쫄 흘리다가도 난데없이 배척하고 이랬다저랬다 해 나오기를 6천 년 동안 했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들은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시시껄렁해 가지고 자기 멋대로 놀아났습니다. 언제는 “죽겠습니다. 맹세합니다. 틀림없이, 약속하겠습니다.” 하다가도 10년도 못 가서 건달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안 믿는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해서 “내가 너를 믿어 준다. 내가 너와 인연을 맺겠다.”고 한번 얽어매면 푸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해서 한번 인연을 맺으면 억천만 년 푸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맸다가 풀었다가, 맸다가 풀었다가 합니다. 편리하면 매고 불리하면 풀고 하는 그따위의 것들은 아무리 많아도 쓸데가 없습니다. 
그러니 만큼 오늘 여기에 온 사람들은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여 누구와 어떠한 인연을 맺고, 어떠한 결의 밑에서 내 한 걸음의 거동을 갖추어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내가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 남쪽이면 남쪽, 북쪽이면 북쪽, 나무의 줄기면 줄기, 가지면 가지, 잎사귀면 잎사귀 등 어디에 처해 있는 자신인가를 스스로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밝히지 못하는 한 뜬구름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나가는 새도 와서 쪼아먹을 수 있고, 지나가는 길거리의 사람들도 건드릴 수 있고, 누구나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습니다. 신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의 대상이 되고, 어떤 주권국가면 국가의 주권을 대신하여 전체의 소망이 될 수 있는 사람일수록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절대자가 그런 가치로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는 무한히 행복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중심삼고 전부가 인연을 맺으려고 하고, 전부가 하나되려고 하고, 전부가 나눠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하나님의 심정과 그렇게 완전히 얽어매여서 나누어질 수 없는 입장에 들어가게 되면 돈이 없어도 부자입니다. 참마음을 갖고, 참양심을 갖고, 참몸을 갖고, 참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 참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사람을 한번 접하면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줄로 얽어매어 있는가를 알게 되면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 알고 나면 또 만나야 되고, 그렇게 만나면 무엇이든지 나눠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150-183)
  
 통일교회는 정의 줄로 얽어매는 곳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지만, 통일교회에는 자꾸 사람이 달라붙습니다. 그렇게 달라붙게 되면 떨어지지 않고 하나됩니다. 할아버지와 나이 어린 사람들이 밤을 지새우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같으면 노인의 냄새가 난다고 가까이 올까 봐 옷자락을 털고 돌아서지만, 꽃 같은 아가씨들과 어린 총각들이 좋다고 밤을 새워 가면서 희희낙락하고 돌아가지 말라고 붙드는 그러한 무리가 되어 보세요! 그러면 세상 천하에 모든 욕을 먹어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통일의 역사라는 것은 무엇이냐? 올가미를 가지고 얽어매는 역사입니다. 할아버지의 다리도 얽어매고, 할머니의 다리도 얽어매고, 아주머니나 아저씨,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부 다 걸리기만 하면 얽어매는 것입니다. 얽어맬 수 있는 끄나풀을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나 자신이 얽어매임을 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 어떤 주체면 주체 앞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입장에 처해야 합니다. 그렇게 못 되는 날에는 문제가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그런 정(情)의 줄에 한 번을 만나면 한 번을 매이는 것입니다. 두 번을 만나면 두 번을 매이고, 세 번을 만나면 세 번을 매이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보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반가운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식이 아니요, 본연의 천성을 통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갖고 있는 의식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버리고 전체가 혁신될 수 있는 길로 내몰린다고 할진대, 그런 길에 들어선 사람은 무한히 행복한 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찾아온 것은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여러분을 단단히 붙들어매야 됩니다. 어디에 붙들어매야 되느느냐? 아버지 앞에 붙들어매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는 동쪽으로 갑니다.” 하면, 하나님도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체가 못 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지만 단단히 붙들어매 가지고 여러분이 힘만 있으면 “나는 서쪽으로 갑니다.” 하면, 하나님도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복 중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꽁꽁 붙들어매서 꼼짝못하게 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가 아니면 안 되겠다. 네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으로 가고, 네가 서로 가면 나도 서로 가겠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6천 년이라는 세월을 찾아 나왔지만 못 만났습니다. (150-185)
  
 인간 타락 이후 지금까지 참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을 찾고 계셨는데 그 참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시대와 시대를 거쳐오면서 “네가 내 심정에 얽어맬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백성이 되었느냐?” 하며 택해 나오신 것이 아브라함이요, 야곱이요, 모세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개인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민족을 세워도 전부 다 믿을 수 없었으니 전세계를 주고도 바꾸지 않을 한 분을 세우기 위해서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민족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가정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리고, 이 사탄세계를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시기 위해서 세우면 쓰러지고, 매어 놓으면 풀어 버리고, 인연을 맺으면 끊어 버리기를 일삼던 인류를 대하여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노정에서 4천 년의 결실로 하나님이 세우신 그 분이 누구였느냐? 몸에서, 심정에서, 생활에서, 이념에서부터 전 하나님의 뜻으로 얽어매인 한 사람으로 보냈던 그 분이 구주였습니다. 구주는 무슨 구주였느냐? 우리 생활의 구주요, 우리 이념의 구주요, 우리 마음의 구주요, 우리 생명의 구주였습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참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를 모방하여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참사랑의 가치를 땅 위의 인간들 앞에 공개하고 가야 했는데 공개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왔다 갔지만 그 이후에는 예수님과 같은 그림자도 안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왔던 목적은 이 땅 위의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메시아를 대신할 수 있는 신부 한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거지 떼거리 같은 것들은 억천만이라도 다 쓸데없었습니다. 하나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반드시 인간도 심정을 갖고 있고 하나님도 심정을 갖고 있는데, 인간의 심정이 자리를 잡고 기쁘려면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기준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도 편안히 안식하실 수 없습니다. 행복을 노래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땅 위의 사람들이 그 기준을 잡았어요?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을 누가 아는 사람이 있어요? 수많은 인간들이 도의 길을 가고 신앙의 길을 가고 있지만 복받겠다는 사람들은 수두룩해도 하나님의 슬프고 억울하고 분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하나님을 수고롭게 해서라도 자기가 편안하면 됐지 하나님이 수고하시는 것을 슬프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150-188)
  
 제일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얽어매이는 사람이 참사람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과 나를 영원히 붙들어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하면 나도 동하고, 하나님이 정하면 나도 정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간 걸음을 나도 따라가야 됩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붙들어맬 것이냐? 통일교회의 주의는 춤추는 자리에서 붙들어매자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웃을 수 있는 자리에 가서 붙들어매자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주의는 하늘이 눈물을 흘리는 자리, 핍박받는 자리, 외로운 자리, 고통을 당하는 자리에서 얽어매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복받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여하게 될 때 떼어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 도의 길은 희희낙락거리고 노래하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도의 길은 먹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입고 나서도 한숨을 짓고, 자기가 갖춘 바의 모습은 늠름하지만 머리 숙여 땅을 보면서 한숨을 짓는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얽어매이고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도 뜻이 있고, 생각이 있고, 크나큰 이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 사람이 자기의 후계자를 선택할 때는 술 먹는 자리에서 택하지 않습니다. 춤추는 자리에서 택하지 않아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인을 택하려고 할 때는 댄스홀 같은 데 가서 택하지 않아요. 반드시 낮은 자리에 가서 택합니다. 자기가 높은 인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낮은 데로 내려가 땀을 흘리고 추한 모습을 한 자리에서 정성을 들이는 심정의 기틀을 세워서 택해야 합니다. 고통을 겪는 자리에서 심정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붙들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참사람입니다. 절대로 네온사인 불빛이 호화찬란한 자리에서가 아닙니다. 
참이라는 것은 웃고, 희희낙락하고, 궁둥이춤을 추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은 오늘날 인간들이 제일 싫어하는 데서부터 쌓입니다. 생명을 가진 초목 하나라도 그것이 생명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궁창 물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뿌리를 박고, 그것을 소화하고, 그것에서 생명의 요소를 빼내어 자기의 요소로 갖출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만 완전한 풀의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악한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아, 그런 길은 가지도 말라!” 합니다. 통일교회에 가면 거기에 빠지니 가지도 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내 아들에게 복 주시고, 천당 가게 해 주소!” 합니다. 내가 아는 천당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당을 가기 위해서는 지옥의 길에서라도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길은 없느냐?” 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정성을 들이고, 지옥의 밑창에 가서도 하늘의 제단을 쌓기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천당 간다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가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하나님…!” 하지 말고 빈민굴, 노동판, 허허벌판 가운데서 하늘을 향하여 제단을 쌓고 눈물로 호소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무리가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교회당에서부터가 아닙니다. 천국은 사탄굴의 밑창보다 더 험한 곳에서 모든 환경을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선한 마음으로 붙들어 얽어맬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50-190)
  
 오직 참사람만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하나님이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천리 만리 지옥이라도 개의치 않고 따라가겠다는 결의를 가진 무리가 있다고 할진대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하늘나라는 건설될 것이고,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세계 만민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다년간 지내 나온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만일 그렇게 실행했는데 망하게 되면 와서 호소하라구요.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은 이제부터 자기의 일생에서 “당신이 걸어간 6천 년 섭리노정에 있어서 이런 면에서만큼은 나와 영원히 매여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가져야 합니다. 그런 것도 하나 없으면 쭉정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나의 문제만은 내가 아니면 안된다. 그 문제만은 아버지도 나와 같이 의논해야 된다.”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축복을 안 해주실 수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갖은 고통, 갖은 수욕을 당하면서 이만큼 자라 나온 것도 그런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수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고 천상에도 수많은 영인들이 살고 있지만, 이 문제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 하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무엇을 가지고 발전 못 하면 천도가 어긋나는 것입니다. 선생님 이상 고생을 하고, 선생님 이상으로 애절하게 아버지를 얽어맬 수 있고, 아버지의 심정을 녹여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처녀가 자기가 이상하던 남자를 남편으로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섰다고 할진대 그 처녀는 그 남자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아름다움을 풍겨 주고, 아름다운 태도나 아름다운 말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녀가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고귀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고 할 때는 그 여자가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그 남자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슬플 때 자기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입니다. 또,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내가 대신 당하겠다. 당신은 그 고통의 자리에 나가지 말라. 내가 대신 나가겠다.”고 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친구나 사랑하는 아들딸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사람이 있어요? 
영원무궁토록 행복하고 영광을 받아야 할 하나님이 지금까지 행복하지 못하고 안식의 자리에 서지 못한 연고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고통을 받게 될 때 이 땅 위에 사는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을 위하여 대신 고통받고자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억울하고 분하고 원한에 사무친 심정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한의 심정을 내게 주시옵소서! 내가 복수하겠나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하나님이 특별히 요구하고 바라시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여기에 많은 무리가 모였다고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고 내가 찾고 있는 무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인연을 갖추고 어느 때 어느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하나님한테 기억될 수 있는 무리입니다. 그런 무리를 만드는 것이 문제지, 사람이 천만이 모였다고 해도 구경꾼은 쓸데없습니다. 신앙의 기준을 여기서부터 닦아야 합니다. (150-195)
  
 사탄 도성을 헐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여러분은 자기가 좋다고 해서 자기의 마음대로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동기와 어떠한 복잡한 내용과 어떠한 이론을 거쳐 수천만 대 자기 선조들의 공적을 통해 여기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맺혀진 결실의 모양은 비록 찌그러지고, 작고, 보잘것 없지만 그 속에 흐르고 있는 정신만은 하나님이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찾아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온 여러분을 지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여러분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영원무궁토록 온 천상이나 지상에서 만민을 사랑할 수 있는 실적을 갖추고 어디를 가든지 영원한 자유의 심정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행동하고 같이 살 수 있는 입장을 개척하고 지도해야 하는 것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길입니다. 그런 길로 여러분을 이끌고 가야 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길은 편안한 자리가 아니라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자리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여기에 있는 선생님을 감동시키고 꼼짝못하게 하려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붙들고 울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눈물과 인정이 많습니다. 길을 가다가 전도 나가 있는 식구들이 옛날에 내가 지내오던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가슴이 아픕니다. 선생님도 그런 것을 많이 했습니다. 아주 훤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큰소리하는 것이 여러분만 고생시키고 여러분의 등을 쳐 먹으려고 하는 얘기이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내가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기도해 보라는 말입니다. 왜 충성을 하라고 하셨는지 기도해 보면 다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모양으로 사바사바해서 아버지와 통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과거와 이런 경력과 이런 실적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와 얽어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한 여러분은 어디 가나 하나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어디 가나 하나입니다. 죽을 자리에 생명을 내놓고 동반해서 승리적인 한 소망을 품고 가고자 하는 무리가 오죽하겠느냐 말입니다. 이 이념과 이 신념만 여러분의 마음에 불타 있고, 이 신념을 통하여 뚜렷한 목표를 향해 간다면 그 사람은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패배라는 말은 해소되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지고 통쾌합니까!
옛날의 우리 선조들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고, 노아도 그랬고, 전부가 그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을 안 가겠다고 하는 녀석은 역사적인 전통을 무시하는 악질분자입니다. 잘나나 못나나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오늘 이 시대의 최후의 사탄 도성을 허는 데 있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바위라도 하나 굴려야 되겠고 치워 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양말을 벗고 옷을 벗어 제껴야 됩니다. 그것을 해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여러분이 그런 길을 가라고 책임을 지워 놓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명령해서 내가 득 보고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우주적인 하늘의 복을 집중시켜 선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봉사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교인으로서 못 한다는 말은 당치 않습니다. 생명을 바쳐 죽기를 맹세한 무리가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무슨 놀음이라도 해야 됩니다. 당장에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결의를 갖고 움직여야 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 수고한 사람으로서 아버지 앞에 효자 효녀의 상을 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도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삼고, 아버지가 걸어오신 처량한 역사노정 앞에 참된 효자 효녀로서 억울한 자리, 불쌍한 자리,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를 비로소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성공을 다 해 영광의 자리에 앉을 때 눈물 흘리면서 “아이구, 아버지! 이럴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자식을 찾아오고 허덕이는 그 자리에 찾아가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냐, 내 아들딸아!” 하며 아버지의 위신을 잊어버리고 몸부림치면서 여러분을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후회와 더불어 모든 것을 전부 다 풀어놓고 내 아들이라고 품어 줄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다 자리잡으신 그때에 가서야 “아이구, 아버지…!”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런 자리에 내보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복받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표본이 되어 아버지와 동반자의 입장에 설 수 있어야 만천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1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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