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9권 6일
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 (훈독본)
날짜 : 1986. 4. 1(화)
장소 : 한국 본부교회
선과 악의 기원
모든 사람들이 선한 세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 선인데도 불구하고 바라지 않는 악의 세계가 이루어져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선한 조상이 되었더라면 선한 세계의 씨가 싹이 터서 자라 가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물론이고 나 개인이 선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가정이 선하기를 바랍니다. 가정보다도 사회가 더 선하기를 바라고, 사회보다도 국가가 더 선하기를 바라고,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도 천주가 더 선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선한 세계가 필요 없습니다. 선한 세계라는 것은 관계의 세계로 연결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선한 상대가 없으면 안됩니다. 또, 선한 상대가 있더라도 선한 환경이 있어야 됩니다. 함께 사는 부부가 있다면 부부를 중심삼은 형제지간 혹은 사회와 국가의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환경과 그 모든 상대적 관계가 서로서로 격차 없이 화동하고 화합할 수 있는 그런 세계여야 합니다.
본래부터 인간이 가야 할 것이 선의 출발이었는데 악한 기원이 생겨났다면 선이 생겨난 기원 앞 혹은 중간에 악이 타고 들어왔다는 뜻이 됩니다. (144-9)
선한 세계는 어디를 중심삼고 가야 되느냐
우리 자신을 두고 볼 때, 내 자신은 두 세계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입니다. 내 몸과 마음을 두고 볼 때, 어떤 것이 선한 편에 서 있느냐? 보다 영원한 것, 보다 변치 않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변치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참이라는 것은 그 본질에 있어서 변치 않고 영원한 것에 가까운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두고 보면, 몸보다도 마음이 변치 않습니다. 몸이라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이라는 것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몸은 동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좋은 것을 보면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맛있는 것을 보게 되면 먹고 싶어하고, 전부가 오늘 환경에 좋을 수 있는 여건을 언제나 추구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더 가치적인 것, 더 귀한 것을 찾고자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내 몸과 마음의 두 인격이 연결되어 사는데 마음으로 원하는 길을 가지 않고 몸으로 원하는 길을 가게 마련입니다. 몸은 현재에서부터 전체를 자기 중심삼고 자기가 좋을 수 있는 길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즉,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모든 것을 부정시키려고 하는 입장에 서는 몸이기 때문에 이 몸을 중심삼은 세계라는 것은 선한 뿌리가 박혀진 것이 아니고 악한 뿌리가 박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언제나 뉘우치는 거예요. 한 마디의 말을 잘못했으면 비교합니다. 그것이 잘되었는지, 못되었는지 어제와 오늘을 비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중심삼고는 언제나 헤아리고 살피는 입장에 있습니다.
몸을 중심삼고는 오늘 내가 사는 환경보다도 다음날에 사는 내 환경이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큰 것을 바라고 더 커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환경의 확대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 확대된 모든 환경을 나를 위하라는 환경으로 집약해 버립니다. 사회가 좋다고 할 때, 사회에 내가 무엇을 투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로부터 내가 무엇을 거두려고 합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무대에 서더라도 그 세계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내게 투자해 주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세계는 다릅니다. 자기가 남보다도 높은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어야 되고, 희생해야 되고, 전체를 위해야 된다는 개념이 마음세계에는 따라다닙니다. 이렇게 볼 때, 악한 것은 몸뚱이에 가깝다는 거예요. 외적인 세계를 찾아가는 것은 악에 가깝고 내적인 세계, 마음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은 선에 가깝다고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144-11)
선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러면 여러분이 현재 살고 있는 세계는 선한 세계냐, 악한 세계냐? 하나의 세계를 향해 가는 데는 어차피 선악의 투쟁을 거쳐 나가는 거예요.
천태만상의 별의별 일들이 돌고 하지만, 출발 당시에 선하였던 우리 마음세계가 있었다면 그 기원이 스타트(start;시작)할 때 갈 길이 본래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과 직선이 될 수 있는 본래의 길이 있어야 했다구요. 그렇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복귀섭리해 나오셨는데 어디로 가시느냐 하면 정처 없이 흘러가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한테는 인간에 대한 창조이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 창조이상은 인간이 시작되는 그날서부터 뚜렷해야 됩니다. 방향도 뚜렷해야 된다구요. 그런데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으로 두 종류의 사람이 뿌려져서 이 세계의 끝날이 되게 되면 열매가 맺힐 텐데 어떤 것이 참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의 절대적인 생각이 둘일 수 없습니다. 출발에서부터 변할 수 없는 것이요, 과정도 변할 수 없는 것이요, 끝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고장이 났기 때문에 수리하기 위해 끌고 다니면서 왔다갔다했지만 끝날에 가서는 완전히 몸과 마음의 결실의 세계가 벌어진다 이거예요.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거예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둘이 싸울 것이 아니냐? 세계는 어떻게 되느냐? 공산세계도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민주세계도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습니다. 공산세계의 모순된 사실을 공산당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 모순된 사실이 제거된 이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바라는 것이고, 민주세계도 모순된 사실을 너무도 잘 아니까 그것이 제거된 보다 이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바랍니다. 그 하나의 세계는 선악이 공존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악이 없는, 선만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144-19)
선편과 악편
그러면 그 선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어떻게 되느냐? 시작과 끝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세계입니다. 맨 처음에 하나님이 있었으면 하나님이 시작이니 끝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좋을 수 있는 출발과 좋을 수 있는 과정과 좋을 수 있는 끝을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처음도 좋고, 과정도 좋고, 지금도 좋다 하실 수 있는, 시작과 결과가 통일된, 기쁨으로 결실될 수 있는 기반에 서야 될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세계의 환경에 들어가 가지고 복잡다단한 입장에서 악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따라 다니셨지만 질이 다르다는 거예요. 따라다니는 하나님 자체가 질이 같은 자리에서 따라다니시지 않았다구요. 다른 입장에서 따라오셨다 이거예요. 그렇게 따라오신 것은 네 목적을 협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악한 세계, 네가 가는 목적을 파탄시키고 너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거예요.
그러면 악한 세계를 대해 하늘이 구원섭리한다는 것은 뭐냐? 악한 세계를 브레이크를 걸고 파탄시켜서 악한 모든 힘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이 원하는 세계로 데리고 가겠다 이거예요.
악은 뭐냐? 그걸 그냥 그대로 끌고 가 가지고 벼랑에 떨어뜨려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서로 싸우고, 자기 주장하고, 서로 부딪칩니다. 선한 세계를 따라오지만 선한 세계에 브레이크를 걸고 선한 세계를 파탄시키는 것이 악입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선 편과 악 편을 말하는데, 선 편은 선하더라도 얼룩덜룩합니다. 또 악 편도 얼룩덜룩합니다. 선과 악이 혼합되어 있더라도 악이 우세하면 악한 편, 선이 우세하면 선한 편이라는 거지요. 절대적 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하자는 대로 시작서부터 일생 동안 따라가느냐? 아니에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 또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합니다. 그렇게 지그재그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144-21)
어디 가서 정착할 것이냐
그러면 선한 신이 있느냐? 그런 하나님이 있다면, 악한 신은 없느냐? 악한 신이 없다면, 선한 신이 갈 길을 누가 반대하겠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선한 신도 있고, 악한 신도 있다구요. 결국, 악한 신과 선한 신이 싸우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싸우느냐? 선한 신, 악한 신이 둘이서 싸우는 게 아니에요.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상대적으로 나타나 가지고 싸울 수 있는 무슨 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선신과 악신이 반대되어 가지고 싸우는데 선신 자체와 악신 자체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사람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선한 신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악한 신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의 두 종류가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 두 종류의 사람이 따로따로 되어 있으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선한 편 사람과 악한 편 사람으로 아침 저녁으로 교체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뭐냐 하면 소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냐? 하나님이나 악마보다도 사람이 무섭다는 거예요.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무섭고 악마보다 더 무섭습니다. 왜 그래요? 하나님을 마음대로 차 버리고 사탄도 시시각각으로 차 버리면 하나님도 나가떨어지고 악마도 나가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무서운 패가 있는데, 그것이 나라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이익만을 취하면서 왔다갔다하고, 조금만 불편하면 “나 요리 갈 거야, 엄만 저리 가” 하면서 마음대로 돌아서 가는 것입니다. 뒤로 돌아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옆으로 빠졌다가, 또 거꾸로 살살 빠져나갑니다. 하나님이 그래요? 하나님은 일방통행입니다. 악마도 일방통행이라구요.
그래, 악마는 뭐냐? 왼편, 좌익, 이게 사탄 편이 가는 길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좌익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아요? 십자가에서 생겼습니다.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가 생긴 그날서부터 이게 시작한 거라구요. 우익, 그건 누가 정했어요? 인간들이 가야 할 우익 길과 좌익 길의 두 갈래 길에서 끌려 다닙니다.
지금 세계는 도탄 중에 있습니다. 우익과 좌익이 싸우는 과정에서 나라의 기반이 깨져 나가고, 가정의 기반이 깨져 나가고, 사회가 다 깨져 나갔습니다. (144-23)
성공하는 사람들
이제 세계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나라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어디로 가느냐? 내가 누구냐? 내가 뭐냐? 내가 나를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이 여러분이에요? 내가 나예요? 내가 나가 아닙니다. 내 마음도 내 것 아니고, 몸뚱이도 내 것 아니에요.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을 나는 싫어하는데, 하나되어 가지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나를 찾고 있는데 내 몸뚱이와 마음이 매일같이 싸우고 있습니다.
바울 같은 양반도 그랬잖아요? 마음의 법과 몸의 법이 싸워 가지고 언제나 몸의 법이 마음의 법을 전부 이긴다고 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4) 하면서 탄식했습니다. (144-25)
그래, 여러분은 결정을 했어요? 선한 뿌리를 남길 것이냐, 악하고 병들어 가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나를 결정할 것이냐? 어떤 거예요? 이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미래의 세계가 좋은 세계가 되더라도 내가 병나서 곯아떨어지게 되면 그 미래의 세계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그 행복의 세계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지나가 버리고 말아요.
그래, 성공하는 사람들은 일대 충격을 받고도 그 일대 충격을 박찰 수 있는 자리에서 뒤돌아서 가지고 새로이 결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다른 면에 가서 성공하지 그 길을 따라가서 성공 안 하는 것입니다. 결심이라는 것은 실패한 길을 따라가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실패한 자리에서 반작용적인 힘을 이용해서 도약해 가지고 방향을 달리하는 데서 성공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달리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되면, 그 사람은 거기서 꺼져 버립니다.
아무리 세계의 사연을 구하고 동정을 구하더라도 그 사연과 동정은 통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결정해야지요. 결정지어 가지고 오를 수 있는 방향에 들어오게 되면 하늘 편 운세가 그리로 흘러갑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은 핍박의 길이었습니다. 출발에서부터 환영이 아니었어요. 그게 멋지다는 것입니다. 출발에서부터 환영 안 한 그것이 멋지다 이거예요. 출발부터 환영 안 했으니까 끝에도 환영 안 합니다. 환영 안 하는 곳이 어디냐? 악한 세계입니다. 선한 세계가 환영 안 하면 칼을 갈 터인데, 악한 세계가 환영하지 않고 끝에도 악한 세계가 환영하지 않으니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대 위에서 레버런 문 같은 사람도 전부 다 처음부터 대한민국 3천만이 반대하고 세상에서도 요사스럽게 반대하더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참 작전을 잘 하셨다구요. 환영했으면 내가 따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거든요. 들이 제기니까 분해서라도 안 따라간 것입니다. 그게 하늘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렇게 반대를 받으면서 통일교회가 발전해 나왔습니다. (144-27)
하늘이 보호하는 길
아무리 이상세계가 온다고 하더라도 선악의 결정권을 자기 스스로 갖추지 못하면, 악을 제거하고 선한 입장에 섰다고 자기 스스로 자신할 수 있는 환경권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은 선의 상속물을 받았댔자 보관하지 못합니다.
내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면 남에게 신세를 지웠댔자 그것은 영원히 안 가요. 흘러가 버리고 만다구요. 내 자신이 참의 자리에서 영향을 주는 것은 영원히 남지만, 하늘이 공인하지만 내가 왔다갔다하는 데 있어서는 그렇게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표어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결정해야 된다구요. 자기를 주관 못 하고는 우주를 주관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을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가는 것이다. 이렇게 출발한 내 본심이 이렇게 갔다면, 혼란된 세상이 아무리 지그재그로 가더라도 나는 여기서 이렇게 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 와중에서 이러고 왔더라도 요 중앙선에 와 가지고는 언제든지 지그재그가 아니라 이 선을 따라갈 것이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늘이여, 혹시나 방향이 틀렸거들랑 나를 시정해서 방향을 바로잡아 주소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결정하기 전에는 암만 기도했댔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가 허사예요. 파괴적인 주의로 살아 가지고 암만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암만 기도해도 안 됩니다. 먼저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지그재그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변치 않는 마음자세를 중심삼고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수습할 수 있는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게 인류애입니다. 인류애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위하는 사랑입니다. 나를 위하라는 사랑이 아니라 위해주는 사랑에서만이 본연의 이상세계에 도착할 수 있는 방향이 설정되는 거예요.
하늘이 보호하는 길은 두 길이 아니에요. 하나밖에 없다구요. 범위가 클 뿐이지 가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수직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144-40)
하늘 편을 따라가는 사람
선생님은 수직으로 서 있으니까 여러분이 횡적으로 연결되려면 90각도로 맺어져야 됩니다. 선생님의 수직을 중심삼고 수평선이 접해야만 90각도가 됩니다. 그렇게 90각도가 되어야 연장하더라도 영원히 오케이가 되지 여기에 85도, 88도가 되어도 오케이가 아닙니다. 요건 가면 갈수록 거리의 차이가 큰 것입니다.
수직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수직이 통할 수 있는 그 길이 뭐냐? 그건 돈도 아니요, 무슨 권력도 아니요, 무슨 지식도 아니에요. 그건 오직 참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참사랑을 원하거든 참된 남자가 되었느냐, 참된 여자가 되었느냐 하는 것을 먼저 물어봐야 됩니다. 참된 남자라는 것은 360도 갔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에요. 360도로 도수의 숫자가 많아졌다고 해서 “나 영점은 싫어” 하는 게 아니라구요. 이것은 360도 갔다가 영점으로 돌아와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참부부가 되었느냐 이거예요. 왜 참부부가 되어야 하느냐? 참부부의 사랑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을 대할 수 없습니다. 남자 혼자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남자로 왔기 때문에 반드시 신부를 모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대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동참할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남자 여자만의 사랑을 가지고는 안돼요. 하늘과 연결 못 됩니다. 그건 평형성 사랑은 되지만 종적인 사랑과 연결이 안 됩니다.
천국 가는 길이 둘이 아닙니다. 수직의 사랑, 참사랑의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래, 참아내의 노릇을 했느냐 참남편의 노릇을 해봤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올바로 하나님 편에 서서 결정했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자와 하늘 편을 따라가는 자는 다릅니다. 하늘 편을 따라가는 사람은 가다가도 언제든지 90각도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90각도 이상으로 돌아서야 저 벼랑에 가서도 살아 남지 88도만 해도 떨어지는 거라구요. 그렇게 가다가 틀렸을 때는 180도 돌아서겠다는 결정을 다 하고 있느냐 이거예요. 그럴 때는 가다가 반드시 180도 돌 계획을 해야 됩니다. (144-42)
열매가 익은 씨
여러분 하나가 잘못 결정하면 여러분의 가정이 망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사회가 망하고, 여러분의 나라가 망하고, 여러분의 세계가 망합니다. 그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자리에 있다는 거예요. 세계를 망치고 살리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공산주의도 한 사람, 기독교의 역사도 예수님 한 사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도 레버런 문 한 사람을 중심삼고 해결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에요. 한 사람이 누구냐? 나예요, 나.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세계를 망칠 수 있고 하나님을 망칠 수 있습니다. (144-44)
그래, 선악에 대한 결정도 하지 못한 여러분 자체에 나라가 달리면 나라를 처리할 수 있어요? 어느 한 지구의 교회를 맡기면 처리할 수 있어요? 천운이 도와주질 않아요. 여러분을 누가 보호해 주느냐 이거예요. 나 레버런 문은 보호 못 해줘요. 여러분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심적인 결정을 짓지 못하게 될 때는 보호를 못 해준다 이거예요. 그걸 도와주게 되면 망치는 거예요. 그걸 천대해야 되고 불신해야 그런 때가 찾아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따라오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 전부 다 어떻게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들고 차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보라구요! 열매가 익은 씨는 나무가 차 버리고 뱉어 버립니다. 씨가 되거들랑 퉁겨 버려요. 민들레 같은 것을 보게 되면 전부 다 거기에 붙어 있지 않고 날아갑니다. 바람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헤쳐 보내는 거라구요. 차 버립니다. 마찬가지의 이치로, 여러분이 열매가 되었다면 차 버려야 됩니다. 안다고 하지 말고 냉정하게 전부 다 뿌려 버려야 된다구요. 그게 천지이치입니다. 그게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요사스러운 여러분을 전부 다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주관성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서 선의 방향, 선의 목적을 확정짓지 않고는 선의 세계의 판도를 상속받을 수 없고 거기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게 천리입니다. (144-47)
여러분이 가는 길에 풍파도 많고 변함이 많지만 그 환경 여건을 소화하고 변함 없이 갈 수 있어야만, 하늘땅이 믿을 수 있어야만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길을 새로이 갈 수 있게끔 여러분 자체가 선 편과 악 편을 결정지어 선을 옹호하고 악을 제거해 가지고 전진적인 선의 방향을 위하여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144-50)*
천일국 훈독경 제9권 6일, 원문
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
날짜 : 1986. 4. 1(화)
장소 : 한국 본부교회
선과 악의 기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역사적인 세계입니다. 역사적인 세계라면, 그것은 개인 개인의 생활을 남기는 세계 혹은 가정·국가·세계가 가고 있는 모든 생활의 기록을 남기는 세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세계는 선한 세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선한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악한 세계가 이루어져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 선인데도 불구하고 바라지 않는 악의 세계가 이루어져 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선과 악의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그걸 따져 간다면 우리 인류의 시조까지 올라갑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선한 조상이 되었느냐, 악한 조상이 되었느냐? 만약에 선한 조상이 되었더라면 선한 세계가 출발해서 선한 세계의 씨가 뿌려진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서 선한 세계의 씨가 싹이 터서 자라 가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순환법도에 따라서 연속적으로 개인적인 선한 결과를 수확해야 되고, 가정적인 선한 결과를 수확해야 되고, 국가면 국가 자체가 선한 결과를 거두어야 하고, 혹은 세계면 세계가 그런 결과에 도달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통일교회의 술어를 인용해서 말하면 천주적인 선한 결실을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선한 주인이 있다면 그분이 기뻐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물론이고 나 개인이 선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가정이 선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개인과 가정 중 어느 편이 더 선하기를 바랄 것이냐 할 때, 가정이 더 선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가정보다도 사회가 더 선하기를 바라고, 사회보다도 국가가 더 선하기를 바라고,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도 천주가 더 선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처음서부터 그러한 마음을 가지셨을 것이고, 그러한 선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셨을 것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그런 관계의 세계가 벌어졌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선한 세계가 필요 없습니다. 선한 세계라는 것은 관계의 세계로 연결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선한 상대가 없으면 안됩니다. 또, 선한 상대가 있더라도 선한 환경이 있어야 됩니다. 함께 사는 부부가 있다면 부부를 중심삼은 형제지간 혹은 사회와 국가의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환경과 그 모든 상대적 관계가 서로서로 격차 없이 화동하고 화합할 수 있는 그런 세계여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기뻐할 수 있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기뻐할 수 있고, 그 환경을 대하고 있는 전부가 기뻐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악의 기원에 있어서 우리의 인간조상이 만약에 선하지 못했고 악하게 되어 악한 기원에서 출발했다면 그 악한 기원과 선한 기원이 어떻게 되었겠어요? 본래부터 인간이 가야 할 것이 선의 출발이었는데 악한 기원이 생겨났다면 선이 생겨난 기원 앞 혹은 중간에 악이 타고 들어왔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문제를 볼 때, 악이 먼저일 수 없습니다. 선이 먼저여야 되는 것입니다. 선이 먼저 되어야 할 것인데 만일 악이 먼저 되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판서하시며) 여기서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바로 돌아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외로 돌기 시작했다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출발 당시, 선이 움직이기 시작한 당시에 바로 돌기 시작했다면 그 움직임은 영원히 바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외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기 시작하여 속도가 가해졌다면 그 선의 순환권 내에서는 악의 출발, 악의 시작이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 만일 악이 먼저 출발했다면 문제가 큰 것입니다. 악을 뿌렸으면, 악이 먼저이면 어디까지나 악이 우선권을 갖고 개인에게 있어서나 가정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나 국가나 세계에 있어서 악의 영향권이 먼저 미쳐질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러면 이것을 제지해 놓지 않고서는, 그 움직이는 환경, 그 순환하는 운동의 환경을 제지해 버리고 제거시키지 않고는 선의 기반형성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144-9)
선한 세계는 어디를 중심삼고 가야 되느냐
우리 자신을 두고 볼 때, 내 자신은 두 세계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입니다. 내 몸과 마음을 두고 볼 때, 어떤 것이 선한 편에 서 있느냐? 보다 영원한 것, 보다 변치 않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변치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참이라는 것은 그 본질에 있어서 변치 않고 영원한 것에 가까운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두고 보면, 몸보다도 마음이 변치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에는 동기라는 것이 깊지 않습니다. 자기가 현재 처한 입장에서 모든 걸 생각하게 되지 과거라든가 역사성을 배후로 해 가지고 생각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결국은 뭐냐 하면, 몸이라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이라는 것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날과 오늘 그리고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몸은 동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좋은 것을 보면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맛있는 것을 보게 되면 먹고 싶어하고, 전부가 오늘 환경에 좋을 수 있는 여건을 언제나 추구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더 가치적인 것, 더 귀한 것을 찾고자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내 몸과 마음의 두 인격이 연결되어 사는데 마음으로 원하는 길을 가지 않고 몸으로 원하는 길을 가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출발했으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 마음으로 원하는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원하는 세계, 내가 좋을 수 있는 환경을 전부 다 찾아가려고 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다섯 식구가 살면, 그 식구들 전체가 좋을 수 있는 것은 제쳐두고 나 좋을 수 있는 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4천만 한국 백성이 산다면 4천만 한국 백성을 생각하기보다 나 좋을 수 있는 4천만, 나 좋을 수 있는 40억 인류,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천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몸은 현재에서부터 전체를 자기 중심삼고 자기가 좋을 수 있는 길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즉,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모든 것을 부정시키려고 하는 입장에 서는 몸이기 때문에 이 몸을 중심삼은 세계라는 것은 선한 뿌리가 박혀진 것이 아니고 악한 뿌리가 박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떠냐 이거예요? 마음은 언제나 뉘우치는 거예요. 한 마디의 말을 잘못했으면 비교합니다. 사방의 환경을 살핀다는 거지요. 그것이 잘되었는지, 못되었는지 어제와 오늘을 비교한다는 것입니다. 또, 높고 낮은 것을 측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중심삼고는 언제나 헤아리고 살피는 입장에 있습니다. 몸과 다릅니다. 그래서 마음을 따라가는 세계는 몸이 가는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면 선한 세계는 어디를 중심삼고 가야 되느냐? 몸을 중심삼고 찾아가는 거기에 선한 세계가 있겠느냐, 마음을 중심삼고 찾아가는 그 세계에 선의 기원으로부터 선의 과정, 선의 결과,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겠느냐? 이렇게 볼 때, 몸을 중심삼고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하냐? 몸을 중심삼고는 오늘 내가 사는 환경보다도 다음날에 사는 내 환경이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큰 것을 바라고 더 커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환경의 확대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 확대된 모든 환경을 나를 위하라는 환경으로 집약해 버립니다. 사회가 좋다고 할 때, 사회에 내가 무엇을 투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로부터 내가 무엇을 거두려고 합니다. 결국은 이런 입장입니다. 아무리 큰 세계라도, 아무리 세계적인 무대에 서더라도 그 세계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내게 투자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디까지나 자기를 중심삼은 길을 찾아가는 것이 몸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세계는 어떠냐? 마음의 세계는 다릅니다. 자기가 남보다도 높은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어야 되고, 희생해야 되고, 전체를 위해야 된다는 개념이 마음세계에는 따라다닙니다. 이렇게 볼 때, 악한 것은 어디에 가까우냐? 몸뚱이에 가깝다는 거예요. 외적인 세계를 찾아가는 것은 악에 가깝고 내적인 세계, 마음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은 선에 가깝다고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144-11)
선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러면 여러분이 현재 살고 있는 세계는 선한 세계냐, 악한 세계냐? 하나의 세계를 향해 가는 데는 어차피 선악의 투쟁을 거쳐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상하시는 세계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왜 그러하냐? 절대적인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그 생각도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하나입니다. 그분이 생각하시는 것도 하나입니다. 그분이 이상하시는 것도 하나지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절대적인 것입니다.
제아무리 방향이 천만 가지라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있다면, 이 세계가 절대적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기원을 가졌다면 끝날은 틀림없이 복잡할 것입니다. 이 길을 출발해 가지고 전부 다 천 갈래, 만 갈래의 길이 생겼습니다. 이 가운데는 모호하지요. 길이 없다구요. 가는데 이렇게 가지요, 이렇게. 좌로 가나 우로 가나 딱 합해 가지고 가야 됩니다. 합해 가지고 가는 그 자리에서 출발하는데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직선이 되어야 한다 이거예요. 이걸 모르는 거예요. 개인적인 직선, 가정적인 직선, 종족적인 직선, 민족적인 직선, 국가적인 직선, 세계적인 직선의 방향을 맞추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와중에서 제멋대로 굴러가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출발부터 갈라져 가지고 천만 갈래로 벌어진 것을 수습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좌우가 혼란된 세계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모릅니다. 지금 그렇지 않아요? 유심사관은 마음의 역사관입니다. 유물사관은 몸의 역사관이에요. 역사라는 것은 생활을 합한 모든 기록, 모든 노정을 표시한 것입니다.
천태만상의 별의별 일들이 돌고 하지만, 출발 당시에 선하였던 우리 마음세계가 있었다면 그 기원이 스타트(start;시작)할 때 갈 길이 본래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과 직선이 될 수 있는 본래의 길이 있어야 했다구요. 그렇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복귀섭리해 나오셨는데 어디로 가시느냐 하면 정처 없이 흘러가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처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하나님한테는 인간에 대한 창조이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 창조이상은 인간이 시작되는 그날서부터 뚜렷해야 됩니다. 방향도 뚜렷해야 된다구요. 그런데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으로 두 종류의 사람이 뿌려져서 이 세계의 끝날이 되게 되면 열매가 맺힐 텐데 어떤 것이 참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안 그래요? 그건 까 보아야 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밤송이 같은 것도 보게 되면 크기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밤송이를 보게 되면 전부 다 같은 모양이지만 가운데를 까 보면 알이 없는 게 있다구요. 보기에는 똑같습니다. 그게 숫밤송이인데, 그 숫밤송이라는 녀석이 태어난 자리는 알밤송이 녀석과 다르지 않아요. 같은 가지에서 자랐다 이거예요. 도리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숫밤송이가 된다는 거지요. 그럴 때 그것은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영양소를 받아 온 모든 전부가 도리어 손해를 끼쳤다는 것입니다. 그건 뭐 불쏘시개밖에 안 됩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의 절대적인 생각이 둘일 수 없습니다. 출발에서부터 변할 수 없는 것이요, 과정도 변할 수 없는 것이요, 끝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고장이 났기 때문에 수리하기 위해 끌고 다니면서 왔다갔다했지만 끝날에 가서는 완전히 몸과 마음의 결실의 세계가 벌어진다 이거예요.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거예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둘이 싸울 것이 아니냐? 세계는 어떻게 되느냐? 공산세계도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민주세계도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습니다. 공산세계의 모순된 사실을 공산당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 모순된 사실이 제거된 이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바라는 것이고, 민주세계도 모순된 사실을 너무도 잘 아니까 그것이 제거된 보다 이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바랍니다. 그 하나의 세계는 선악이 공존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악이 없는, 선만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144-19)
선편과 악편
그러면 그 선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어떻게 되느냐? 시작과 끝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 말은 뭐냐? 맨 처음에 하나님이 있었으면 하나님이 시작이니 끝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좋을 수 있는 출발과 좋을 수 있는 과정과 좋을 수 있는 끝을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처음도 좋고, 과정도 좋고, 지금도 좋다 하실 수 있는, 시작과 결과가 통일된, 기쁨으로 결실될 수 있는 기반에 서야 될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그렇다는 거예요.
아무리 악한 세계의 환경에 들어가 가지고 복잡다단한 입장에서 악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따라 다니셨지만 하나님은 질이 다르다는 거예요. 따라다니는 하나님 자체가 질이 같은 자리에서 따라다니시지 않았다구요. 다른 입장에서 따라오셨다 이거예요. 그렇게 따라오신 것은 네 목적을 협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악한 세계, 네가 가는 목적을 파탄시키고 너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거예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세계를 대해 하늘이 구원섭리한다는 것은 뭐냐? 악한 세계를 협조해 줘 가지고 악한 세계가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계를 브레이크를 걸고 파탄시켜서 악한 모든 힘을 제거해 버리고 내가(당신이) 원하는 세계로 데리고 가겠다 이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악한 세계를 대해서 하나님은 반대적 방향과 반대적 내용을 지녀 가지고 이것을 제거시키려는 악영향적 내적 인연을 갖고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악은 뭐냐? 그걸 그냥 그대로 끌고 가 가지고 벼랑에 떨어뜨려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서로 싸우고, 자기 주장하고, 서로 부딪칩니다. 만일에 선한 세계가 벌어지는데 거기에 악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악은 뭐냐 하면 반대라구요. 선한 세계를 따라오지만 선한 세계에 브레이크를 걸고 선한 세계를 파탄시키는 것이 악입니다. 몸과 마음이 언제나 투쟁과정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통일교회가 선 편과 악 편을 말하는데, 악 편이 뭐냐? 선한 것하고는 다릅니다. 선 편은 선하더라도 얼룩덜룩합니다. 선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선이에요. 또 악 편, 악하다고 하는 편, 그편도 얼룩덜룩합니다. 선과 악이 혼합되어 있더라도 악이 우세하면 악한 편, 선이 우세하면 선한 편이라는 거지요. 절대적 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하자는 대로 시작서부터 일생 동안 따라가느냐? 아니에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 또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합니다. 그렇게 지그재그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게 되면, 선한 것이 열이라면 악한 것은 열이 될 수 없다구요. 악한 것은 반드시 아홉이어야 됩니다. 그래야 선 편이 되는 거예요. 아홉이 되어야지 악한 것이 열을 넘어서 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아무리 선한 세계를 추구했댔자 그건 악한 세계가 되기 마련입니다. (144-21)
어디 가서 정착할 것이냐
선과 악이 투쟁할 때 선이 이기느냐, 악이 이기느냐? 어떤 게 이겨야 되겠어요? 오늘 인간들은 말하기를 “어, 선이 이겨야지” 한다구요. 선한 편을 따라가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답변합니다. 그러나 악은 “어떤 게 이겨야 되겠어” 할 때 말하기를 “악이 이겨야지” 그렇게 답변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신이 있느냐? 그런 하나님이 있다면, 악한 신은 없느냐? 악한 신이 없다면, 선한 신이 갈 길을 누가 반대하겠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선한 신도 있고, 악한 신도 있다구요. 결국, 악한 신과 선한 신이 싸우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싸우느냐? 선한 신, 악한 신이 둘이서 싸우는 게 아니에요. 둘이 싸울 수는 없다구요.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상대적으로 나타나 가지고 싸울 수 있는 무슨 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악을 곧장 제거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싸우는데 어떻게 해요? 선신과 악신이 반대되어 가지고 싸우는데 선신 자체와 악신 자체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사람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선한 신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악한 신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의 두 종류가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 두 종류의 사람이 따로따로 되어 있으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면 선한 편 사람권과 악한 편 사람권으로 갈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편 사람과 악한 편 사람으로 아침 저녁으로 교체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뭐냐 하면 소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냐? 하나님이 무서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언제나 선한 길을 가십니다. 악한 것은 언제나 악한 길을 갑니다. 두 길을 못 가요. 악마가 선하고 악할 수 있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악마는 악한 길을 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악한 길을 가실 수 없습니다. 언제나 선한 길을 가셔야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나 악마보다도 사람이 무섭다는 거예요.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무섭고 악마보다 더 무섭습니다. 왜 그래요? 하나님을 마음대로 차 버리고 사탄도 시시각각으로 차 버리면 하나님도 나가떨어지고 악마도 나가떨어지게 됩니다. 그래, 하나님도 무서워하시고 사탄도 무서워하는 것이 뭐냐? 하나님과 악마가 서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과 악마가 서로 싸웠으면 벌써 끝장 다 났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무서운 패가 있는데, 그것이 나라는 사람입니다. 요사스러운 나라는 사람이라구요. 자기의 이익만을 취하면서 왔다갔다하고, 조금만 불편하면 “나 요리 갈 거야, 엄만 저리 가” 하면서 마음대로 돌아서 가는 것입니다. 뒤로 돌아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옆으로 빠졌다가, 또 거꾸로 살살 빠져나갑니다. 하나님이 그래요? 하나님은 일방통행입니다. 악마도 일방통행이라구요.
그래, 악마는 뭐냐? 왼편, 좌익, 이게 사탄 편이 가는 길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좌익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아요? 십자가에서 생겼습니다. 십자가에서부터 생긴 거예요.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가 생긴 그날서부터 이게 시작한 거라구요. 우익, 그건 누가 정했어요? 인간들이 말한 거예요. 그렇잖아요? 인심은 곧 천심이라구요. 사람의 마음에 어린 것은 말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인간들이 가야 할 우익 길과 좌익 길의 두 갈래 길에서 끌려 다닙니다.
이것이 먼 거리에서 둘이 끌어당기니, 시시각각으로 끌고 다니니 죽을 지경이라구요. 지금 세계는 도탄 중에 있습니다. 우익과 좌익이 싸우는 과정에서 나라의 기반이 깨져 나가고, 가정의 기반이 깨져 나가고, 사회가 다 깨져 나갔습니다. “옛날에 좋던 가정이 어디 갔어, 나라가 어디 갔어” 하지만,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나 중심삼고 나 제일주의라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미국에 있어서 자기 중심삼은 주의, 자기 세대라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미 제너레이션(me generation;자기 세대)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 피곤하지 않아요? 여기서 살겠다고 등불을 켜고, 살아 보겠다고 왔다갔다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기가 차요! 어디 가서 정착할 거예요? 대한민국이 어디 가 정착할 것이고, 대통령은 어디 가 정착할 거예요? 국회의원들은 어디 가 정착할 거예요? 정착한다고 하지만 마음대로 안 됩니다. 이 통일교회 영신들, 어디 가서 정착할 거예요? 문 선생이고 무엇이고 따라다녀도 이익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몇 십년씩 따라다니느라고 고달프지요? 고달픈 보따리입니다. 그렇게 고달프니까 보따리를 집어던지면 좋겠는데 못 던집니다. 집어던졌다가는 또 가 쥐어야 됩니다. 휙 집어던졌다가는 또 가 쥐어야 된다구요. 그래도 돌아다녀 보면 이게 낫거든요.
그거 솔직한 얘기지요.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거 못 느끼고 돌아다녔겠어요? 도망가서 더 좋을 수 있으면 도망갔지요. 도망가야 별수없으니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욕을 먹고 감옥에 끌려다니면서 말이에요. 이게 할 짓이에요? 못 할 짓인 줄 알지만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이러지 않고는 가망성이 없습니다.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144-23)
성공하는 사람들
이제 세계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나라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어디로 가느냐? 내가 누구냐? 내가 뭐냐? 내가 나를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이 여러분이에요? 내가 나예요? 내가 나가 아닙니다. 내 마음도 내 것 아니고, 몸뚱이도 내 것 아니에요.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을 나는 싫어하는데, 하나되어 가지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나를 찾고 있는데 내 몸뚱이와 마음이 매일같이 싸우고 있습니다.
바울 같은 양반도 그랬잖아요? 마음의 법과 몸의 법이 싸워 가지고 언제나 몸의 법이 마음의 법을 전부 이긴다고 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4) 하면서 탄식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부 다 바울의 신앙관을 배우고 있습니다. (144-25)
그래, 여러분은 결정을 했어요? 말하라구요! 나는 이것을 찾은 자리에서 변치 않는다는 결정을 지었느냐? 언제나 팔려 다닐 수 있는 사람이냐 이거예요. 부평초, 뿌리 없는 나무는 죽습니다. 뿌리 없는 풀도 죽습니다. 그 뿌리를 어디다 박을 것이냐? 선한 뿌리를 남길 것이냐, 악하고 병들어 가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나를 결정할 것이냐? 어떤 거예요? 이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미래의 세계가 좋은 세계가 되더라도 내가 병나서 곯아떨어지게 되면 그 미래의 세계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그 행복의 세계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지나가 버리고 말아요.
그래, 성공하는 사람들은 일대 충격을 받고도 그 일대 충격을 박찰 수 있는 자리에서 뒤돌아서 가지고 새로이 결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다른 면에 가서 성공하지 그 길을 따라가서 성공 안 하는 것입니다. 결심이라는 것은 실패한 길을 따라가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실패한 그 길을 따라가는 자리에서 계속적으로 연결시키는 놀음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자리에서 반작용적인 힘을 이용해서 도약해 가지고 방향을 달리하는 데서 성공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달리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되면, 그 사람은 거기서 꺼져 버립니다.
아무리 세계의 사연을 구하고 동정을 구하더라도 그 사연과 동정은 통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결정해야지요. 결정지어 가지고 오를 수 있는 방향에 들어오게 되면 하늘 편 운세가 그리로 흘러갑니다. 그 힘이 그리로 흘러가는 거라구요. 태풍이 불어도 태풍의 방향이 있습니다. 태풍이 정지될 때까지는 그 방향으로 전부 다 흘러갑니다. 그 권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는 그걸 박차고 그 이상의 결심을 해 가지고 도약할 수 있는 결정을 해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은 핍박의 길이었습니다. 출발에서부터 환영이 아니었어요. 그게 멋지다는 것입니다. 출발에서부터 환영 안 한 그것이 멋지다 이거예요. 출발부터 환영 안 했으니까 끝에도 환영 안 합니다. 환영 안 하는 곳이 어디냐? 악한 세계입니다. 선한 세계가 환영 안 하면 칼을 갈 터인데, 악한 세계가 환영하지 않고 끝에도 악한 세계가 환영하지 않으니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대 위에서 생각이 없지 않은 레버런 문 같은 사람도 전부 다 처음부터 대한민국 3천만이 반대하고 세상에서도 요사스럽게 반대하더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때는 3천만이라고 그랬는데, 이제는 4천만이 되었어요. 한 40년 되었으니까 말이에요. 하나님도 참 작전을 잘하셨다구요. 환영했으면 내가 따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거든요. 들이 제기니까 분해서라도 안 따라간 것입니다. 그게 하늘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렇게 반대를 받으면서 통일교회가 발전해 나왔습니다. (144-27)
하늘이 보호하는 길
여러분에게 아무리 이상세계가 온다고 하더라도 선악의 결정권을 자기 스스로 갖추지 못하면, 악을 제거하고 선한 입장에 섰다고 자기 스스로 자신할 수 있는 환경권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은 선의 상속물을 받았댔자 보관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내가 무엇을 결정해야 되느냐? 그것이 결정 안 되었으면 남에게 신세를 지울 필요도 없고, 질 필요도 없습니다. 내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면 남에게 신세를 지웠댔자 그것은 영원히 안 가요. 흘러가 버리고 만다구요. 내 자신이 참의 자리에서 영향을 주는 것은 영원히 남지만, 하늘이 공인하지만 내가 왔다갔다하는 데 있어서는 그렇게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표어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결정해야 된다구요. 자기를 주관 못 하고는 우주를 주관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선악에 대한 나의 결정’을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가는 것이다. 이렇게 출발한 내 본심이 이렇게 갔다면, 혼란된 세상이 아무리 지그재그로 가더라도 나는 여기서 이렇게 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 와중에서 이러고 왔더라도 요 중앙선에 와 가지고는 언제든지 지그재그가 아니라 이 선을 따라갈 것이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늘이여, 혹시나 방향이 틀렸거들랑 나를 시정해서 방향을 바로잡아 주소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결정하기 전에는 암만 기도했댔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가 허사예요. 파괴적인 주의로 살아 가지고 암만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암만 기도해도 안 됩니다. 먼저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쏘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지그재그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변치 않는 마음자세를 중심삼고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수습할 수 있는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게 인류애입니다. 인류애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위하는 사랑입니다. 나를 위하라는 사랑이 아니라 위해주는 사랑에서만이 본연의 이상세계에 도착할 수 있는 방향이 설정되는 거예요.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꺼떡거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거 결정했지요? 이제 당장에 선생님이 “여러분, 보따리 싸 가지고 아프리카 어디로 대이동하라” 하면 어떻겠어요? “난 병이 났소. 그런 때는 지나갔소. 지금까지 일했으니 딴 사람 보내소”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60이 넘어서도 댄버리 감옥길을 하늘이 벌써 결정한 걸 알고 찾아갔습니다. 하늘이 명령을 안 해도 내가 찾아간 거예요. 미국 갈 때 벌써 감옥을 표준으로 하고 간 것입니다.
이제 중공이나 소련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대합니다. 편안히 가려고 안 그러는 거라구요. 소련 사람들의 모가지를 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어차피 출발했던 그 길과 과정에 걸어오던 길을 변함 없이 따라가야 됩니다. 하늘이 보호하는 길은 두 길이 아니에요. 하나밖에 없다구요. 범위가 클 뿐이지 가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수직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144-40)
하늘 편을 따라가는 사람
선생님은 수직으로 서 있으니까 여러분이 횡적으로 연결되려면 90각도로 맺어져야 됩니다. 수평선에 서야 돼요. 선생님의 수직을 중심삼고 수평선이 접해야만 90각도가 됩니다. 그렇게 90각도가 되어야 연장하더라도 영원히 오케이가 되지 여기에 85도, 88도가 되어도 영원이 아니에요. 이것은 오케이가 아닙니다. 요건 가면 갈수록 거리의 차이가 큰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오케이 같지만, 오케이를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수직은 하나입니다. 평행선은 위에도 있고 아래에도 있고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수직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수직이 뭐냐? 수직이 통할 수 있는 그 길이 뭐냐? 그건 돈도 아니요, 무슨 권력도 아니요, 무슨 지식도 아니에요. 그건 오직 참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참사랑을 원하거든 참된 남자가 되었느냐, 참된 여자가 되었느냐 하는 것을 먼저 물어봐야 됩니다. 참된 남자라는 것은 360도 갔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에요. 360도로 도수의 숫자가 많아졌다고 해서 “나 영점은 싫어” 하는 게 아니라구요. 이것은 360도 갔다가 영점으로 돌아와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참부부가 되었느냐 이거예요. 참부부의 정의가 뭐냐? 왜 참부부가 되어야 하느냐? 참부부의 사랑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을 대할 수 없습니다. 남자 혼자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남자로 왔기 때문에 반드시 신부를 모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대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동참할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남자 여자만의 사랑을 가지고는 안돼요. 하늘과 연결 못 됩니다. 그건 평형성 사랑은 되지만 종적인 사랑과 연결이 안 됩니다. 여기 와 가지고 딱 합하게 되면 여기서 얻은 힘은 사방으로 통합니다. 아래로도 갈 수 있고 위로 엇바꿔 가지고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원형을 거칠 때 모든 힘은 이 한 점을 통합니다. 여기의 가장자리 힘은 전부 다 파괴될 힘입니다. 있을 수 없다는 거지요.
천국 가는 길이 둘이 아닙니다. 수직의 사랑, 참사랑의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래, 참아내의 노릇을 했느냐 질문해 보라구요! 참남편의 노릇을 해봤느냐 이거예요. 그건 자기들이 잘 알지요? 살면서 여편네가 되어 가지고 남편 속여먹기를 떡 먹듯하고, 남편이 되어 가지고 여편네 속여먹기를 떡 먹듯하고, 자식이 되어 가지고 부모 속여먹기를 떡 먹듯하고, 부모가 되어 가지고 자식 속여먹기를 떡 먹듯이 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에서 통일의 기반을 갖춰야 됩니다. 그 통일의 기반은 무엇을 갖고 갖추느냐? 돈을 주고 통일하려고 안 그래요. 선생님은 돈 갖고 있지만 돈의 종이 아닙니다. 몇 천만불을 내가 하루에 사인할 수 있고 몇 억, 몇 수십억을 하루에 사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그 돈에 팔려가는 내가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사랑의 세계를 위하는 데 쓰려고 하지 악돌이들의 판돈으로 쓰려고 안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올바로 하나님 편에 서서 결정했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자와 하늘 편을 따라가는 자는 다릅니다. 하늘 편을 따라가는 사람은 가다가도 언제든지 90각도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90각도 이상으로 돌아서야 저 벼랑에 가서도 살아 남지 88도만 해도 떨어지는 거라구요. 그렇게 가다가 틀렸을 때는 180도 돌아서겠다는 결정을 다 하고 있느냐 이거예요. 그럴 때는 가다가 반드시 180도 돌 계획을 해야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처가 소금기둥이 왜 되었어요? 그거라구요. 세상을 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딱 돌아설 줄도 알아야 됩니다. (144-42)
열매가 익은 씨
여러분 하나가 잘못 결정하면 여러분의 가정이 망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사회가 망하고, 여러분의 나라가 망하고, 여러분의 세계가 망합니다. 그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자리에 있다는 거예요. 세계를 망치고 살리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공산주의도 한 사람, 기독교의 역사도 예수님 한 사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도 레버런 문 한 사람을 중심삼고 해결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에요. 한 사람이 누구냐? 나예요, 나.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세계를 망칠 수 있고 하나님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걸 망각해서는 안된다구요. (144-44)
그래, 선악에 대한 결정도 하지 못한 여러분 자체에 나라가 달리면 나라를 처리할 수 있어요? 어느 한 지구의 교회를 맡기면 처리할 수 있어요? 처리가 안 됩니다. 천운이 도와주질 않아요. 천운이 안 도와줍니다. 하늘땅이 옹호해 주지 않는다구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을 누가 보호해 주느냐 이거예요. 나 레버런 문은 보호 못 해줘요. 여러분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심적인 결정을 짓지 못하게 될 때는 보호를 못 해준다 이거예요.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걸 도와주게 되면 망치는 거예요. 그걸 천대해야 되고 불신해야 됩니다. 그런 때가 찾아옵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나와 가지고 초하룻날, 주일날 설교할 시대는 지나갑니다. 만국의 수령들을 데려다가 훈시하고 교육할 때가 찾아오는 거라구요. 앞으로는 얼씬 못 할 때가 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천운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 자신들이 만국을 통할 수 있는 결정적 자세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자신을 개인이 잡더라도 점핑해 넘어갈 수 있고 가정, 사회, 나라가 잡더라도 점핑해서 담 넘어 가지고 더 차원 높은 선의 판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발판돌이라도 되어라 이거예요.
그래, 여러분이 지금 무엇이 되어 있어요? 30년, 40년 선생님은 그런 싸움을 해 나왔지만 여러분은 선생님을 따라오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 전부 다 어떻게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들고 차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보라구요! 열매가 익은 씨는 나무가 차 버리고 뱉어 버립니다. 씨가 되거들랑 퉁겨 버려요. 민들레 같은 것을 보게 되면 전부 다 거기에 붙어 있지 않고 날아갑니다. 바람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헤쳐 보내는 거라구요. 차 버립니다. 마찬가지의 이치로, 여러분이 열매가 되었다면 차 버려야 됩니다. 안다고 하지 말고 냉정하게 전부 다 뿌려 버려야 된다구요. 그게 천지이치입니다. 그게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오래된 패들을 전부 다 세계로 뿌려 버려야 됩니다. 그거 찬동해요? 뿌려져 가지고 거기에서 뿌리를 박아 잎이 나와 가지고 가지가 되고 줄기가 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선생님 열매와 같은 열매를 맺을 자신이 있어요? 심각하다구요.
축복가정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요사스러운 여러분을 전부 다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거 심각한 얘기입니다. 그래, 여러분 자신들이 주관성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서 선의 방향, 선의 목적을 확정짓지 않고는 선의 세계의 판도를 상속받을 수 없고 거기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게 천리입니다.
그런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돌아가 기도하면서 결정해야 됩니다. 우선, 나는 누구의 아들딸이냐? 난 어떤 부모의 아들딸이냐? 어머니 아버지의 참아들딸의 자리에서 정성을 들여 주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효성의 도리를 다해야 된다구요. 어머니 아버지가 없더라도 영계에 가 있는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아들의 도리,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있게끔 정성을 들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144-47)
여러분이 가는 길에 풍파도 많고 변함이 많지만 그 환경 여건을 소화하고 변함 없이 갈 수 있어야만, 하늘땅이 믿을 수 있어야만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길을 새로이 갈 수 있게끔 여러분 자체가 선 편과 악 편을 결정지어 선을 옹호하고 악을 제거해 가지고 전진적인 선의 방향을 위하여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14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