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훈독경 제9권 5일
우리와 선악의 투쟁사 (훈독본)
날짜 : 1984. 3. 11(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선악이 나에게 있어서 어디에 근거하고 있느냐
타락한 세상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악이 가는 길과 선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이 없었던 세계는 어떤 세계였을 것이냐? 그 세계에는 하나의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지 않았던 세계의 가는 길은 어떤 길이었으며 타락한 후에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하는 차이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은 언제나 자기가 센터이니까 나를 중심삼고 선과 악의 세계, 혹은 본연의 세계와 타락의 세계가 설정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나를 중심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어떤 것이냐? 선한 것은 하나님이라는 선한 신과 연결되는 것이고, 악한 것은 선한 신과 반대의 존재인 사탄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선한 길은 영광의 자리에 연결되는 것이요, 악한 길은 지옥이나 감옥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선하고 악한 것은 언제나 내가 센터가 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좋고 나쁘다고 하는 말은 언제나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직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일반 젊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회악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뭐 유토피아니 선의 세계가 어떻다고 하지만, 그게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있다, 자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관점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피안(彼岸)의 세계, 선의 유토피아 세계가 있더라도 오늘의 내가 그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내가 되어 있으면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보통 사람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를 중심삼고 얘기하는 관념이 없습니다. 좋거나 나쁜 것은 나를 중심으로 개재시켜 가지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대개 일반적 경향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내 선이 어디에 있느냐 이거예요. 선이 그저 나와는 관계없이 땅 위에 굴러다니는 게 아닙니다. 또, 악 자체도 나와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 다 나라는 것을 중심삼고 올라가고 내려간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선할 수 있는 것, 내 선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고 내가 갖고 있는 악을 청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오늘 여러분의 생활의 당면과제입니다. 그 선악이 나에게 있어서 어디에 근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근거지가 어디냐? (131-20)
보다 두려운 사실
우리 인간은 이중구조, 이중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인간과 육적인 인간으로 돼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이 두 종류의 사람이 하늘을 중심삼은 두 성품으로 나타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써 두 종류가 돼 버렸다 이겁니다.
그래서 악의 기지는 육이 돼 있고, 선의 기지는 영이 돼 있다는 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내 몸은 사탄의 무대가 되어 있고, 내 영, 내 정신은 하나님의 무대입니다. 그래서 선악의 근거지는 내게 있습니다. 지옥을 차지하는 것, 지옥 사람이 되는 것도 내게 달려 있고, 하늘 사람이 되는 것도 내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나를 중심삼고 싸우고, 사탄도 나를 중심삼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같은 양반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2-24) 하고 탄식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상천국 혹은 이상적인 유토피아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몸에 반대되는 요소를 완전히 점령해 가지고 몸과 마음이 그 세계로 갈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걸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리 선한 세계가 있고 아무리 천국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에게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공존하면 반드시 투쟁합니다. 그것은 내가 투쟁요소를 지녀 가지고 천국에 간들 투쟁요소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투쟁요소를 지니고 천국 갔댔자 자기 본질인 투쟁요소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천국 가면 천국에서 대번에 “너에게는 악이 개재해 있다” 하면서 추방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대체 종교가 뭐냐 이거예요. 내 몸에서 투쟁하는 사탄의 근거지를 청산짓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그게 종교의 사명이라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131-22)
나를 전적으로 부정하라
그러면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어떻게 이 사탄세계, 악을 청산짓느냐? 그것을 대체로 말하면, 육적인 기준에 사탄이 있기 때문에 육적인 기준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역사가 투쟁사인데, 선악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걸 청산짓고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투쟁하는데는 나 자신이 투쟁하는 것입니다. 나부터 이겨야 됩니다. 국가에서 이기고, 세계에서 이기고, 영계에서부터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부터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선한 것을 확실히 알고 악한 것을 확실히 아느냐? 진리를 알아야 됩니다. 진리를 알면 참 아닌 것에서 해방됩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그랬는데, 참을 아느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하자는 것입니다.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몸뚱이를 쳐야 됩니다.
내가 무엇을 먹는데도 선한 음식을 먹느냐, 악한 음식을 먹느냐 하는 두 가지입니다. 그 음식이 말할 때, "선한 사람이 자신을 먹으면 그 사람에게 선한 음식이 돼 가지고 보다 가치 있는 영양소를 만들어 줄 것인데 악한 녀석이 먹기 때문에 악한 영양소가 돼 버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입는 옷도 그렇습니다. 물론, 일상 먹고사는 일체도 그렇습니다. 생각하는 것에도, 오늘 말한 말에도 선악이 있습니다. 모든 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갈라지느냐? 내가 중심이 되어 갈라집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사탄을 피해 가지고, 사탄을 방어하면서 선한 길로 갈 수 있는 그 길은 어떤 길이냐?
종교의 길, 종교의 가르침은 이 몸뚱이가 좋아하는 것을 다 거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높아지고자 하는 것은 다 거부합니다.
몸뚱이는 배고프면 도둑질이라도 해야 된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하늘, 선은 “안 된다. 죽더라도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합니다. 그 다음에 졸음이 온다고 해서 체면도 모르고 염치도 모르고 자기 위신도 모르고 잠만 자면 맹탕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세 제자가 졸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죽게 되었는데도 체면이고 무엇이고 상관없이 졸음이 오니까 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일수록 예를 지켜야 되고 예법을 지켜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문제를 어떻게 컨트롤하느냐 이겁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몸뚱이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종교세계의 중요한 브레이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전적으로 부정하라는 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투쟁사’ 하게 되면 여러분은 그저 외부에서 벌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여러분 내부에도 그 투쟁사가 있습니다. (131-24)
모든 악의 근거지가 나다
그 투쟁사에서 선을 남기고 가야 됩니다. 전쟁 중에서 제일 무서운 전쟁은 나의 몸 마음을 중심삼고 싸우는 전쟁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2차대전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한 전쟁을 하고 있는 나가 문제입니다. 영원한 전쟁의 일선 무대에 선 나라는 걸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 편에서 선한 편으로 가기는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악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내려가기는 쉽지요? 올라가기는 얼마나 어려워요! 몇 십배 힘들다는 거예요. 올라가려면 내려가는 힘을 전부 다 부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선한 입장에서는 떨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선한 데서 내려갈 수 없도록 이 선한 편의 힘을 어떻게 강하게 만드느냐? 습관적으로, 고의적으로 강한 힘을 만들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습관성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선이 좋다” 할 수 있는 습관성을 만들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어떻고 뭐 어떻고, 하나님이 어떻고 미국이 어떻고, 세계가 어떻다고 하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선 하늘 편에 서 가지고 세계를 말하고, 선한 사람이 돼 가지고 세계를 말해야 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내가 선한 편에 서 있다” 할 수 있는 생활을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해요? 이것을 비례적으로 볼 때, 선한 편에 섰다고 하는 시간은 몇 시간도 안 되고 악한 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전부 다 “나는 좋고, 세상이 나쁘다. 악한 것은 나하고 상관없고 세상과 관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나와 직결돼 있다는 게 심각한 것입니다. “모든 악의 근거지가 나다. 악의 근거지, 본향 땅이 나로구나”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131-26)
모든 일체에 선악이 있다
어떻게 선한 편에 언제나 서 있고 악한 편에서는 언제나 도피하느냐? 나를 주장할 때는 사탄이 주관하고, 나를 부정하고 전체를 주장할 때는 하나님이 주관한다는 관념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뭐냐? 내가 빚을 지우려고 하는 것은 공적이요, 빚을 지려고 하는 것은 사적입니다. 사적이기 때문에 사탄편이다 이겁니다. 일생 동안 빚을 안 지겠다는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 대신 내가 빚을 지워야 된다 이겁니다. 이 한마디로 갈라집니다. 상대가 나에게 열만큼 했으면 나는 열 하나 해야 됩니다. 그게 이치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위해서 살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어머니 아버지한테 빚을 안 져야 되겠다” 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있으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이상을 내가 갚아 줘야 되겠다” 이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젊은이들은 “아이구, 부모님이 나를 사랑 안 해준다” 이것만 생각한다구요.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겠다” 이런 생각은 안 합니다. 이게 사고입니다. 그건 부모가 나쁘면 여러분도 나빠진다는 결론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나는 부모를 사랑한다” 그래야 됩니다. 그래야 효자입니다.
그러면 그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도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우리 아들이 제일이다” 그럽니다. 올라가라, 올라가라, 자꾸 올라가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두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그랬는데, 그게 얼마나 멋진 말이냐! 여기에 쏙 들어옵니다. 원수를 완전히 점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는 원수도 머리를 숙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빚을 진 사람 가운데 가슴을 펴고 이렇게 자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돈에 대해서 빚진 사람도 전부 다 굴복당하는데, 사랑에 대해서 빚을 졌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건 생명을 바쳐 갚아도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남을 위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전쟁은 치열하고 제일 무서운 전쟁입니다. 영원을 두고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보고, 듣는 것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듣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탄은 나를 중심삼고 보려고 하는데, 전체를 위하면 사탄은 떠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남자 여자가 있어 가지고 결혼할 때도 제일 잘난 남자나 제일 잘난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제일 못난 남자나 제일 못난 여자와 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저들과 같이 미남 미녀가 결혼하는 것보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그게 얼마나 멋지냐 이겁니다. 그러면 거기는 사탄이 얼씬을 못 합니다. (131-28)
하나님 앞에 빚을 지우려고 한다
일생 동안 살면서 내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일하고 전체를 위해서 얼마나 피를 뿌렸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저나라에 가서 평가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낮잠을 못 잡니다. 낮잠을 길게 자고 싶어도 낮잠을 못 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잠을 잊으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서 내가 일하려고 합니다. 이 시간에도 교인들은 일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빚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죽음의 자리에 가더라도 선생님에게 “나 이렇게 선교지에서 죽소, 선생님” 이런 원망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죽으면서도 선생님에게 머리를 숙이고 가려고 합니다. 선생님도 그래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야단하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 나는 이런 책임자로서 고생하는 걸 왜 몰라줘요”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하나님 앞에 빚을 지려고 안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빚을 지우려고 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빚을 어떻게 지우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억천만 사탄이 개입해 있다고 하더라도 물러갑니다. (131-31)
자기 자신을 점령 못 하는 사람이 세계를 점령할 수 없다
여러분, 선생님이 안 나오니까 주일날 재미없지요? 왜냐하면 선생님이 참사랑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나한테 빚을 진 것입니다. 무엇인가 받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받아 가지고 자기가 소화하고 자기가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누어 줘야 됩니다. 가지 위에 가지가 나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지가 그렇게 커 나갑니다. 선생님이 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도 나가서 그 분야에 공헌한 입장에 서면 모두 다 여러분이 없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여러분을 따라다니고 좋아합니다. 생명의 요소를 지니면 법대로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투쟁하는 데 있어서 승자가 돼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일생을 이렇게 간다” 하고 딱 정해야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나, 어린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사람이라는 사람은 모두에게 같은 마음을 가지고 대하고 위하겠다고 하는 것을 딱 정해 버려야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이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하기 전에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뭘 했느냐 하는 걸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러면 2차대전이 문제가 아니고 지금 소련과 미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속에서 영원히 계속할 이 전쟁을 어떻게 평화로 뒤집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거 안 되면, 세상이 평화세계가 되더라도 그건 전부 지옥이 됩니다. 선생님이 이것을 알고 이 길을 나설 때 제일의 표어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점령 못 하는 사람은 세계를 점령할 수 없습니다. (131-32)
역사의 발전적 길
나는 이제 죽을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놓고 어머니 아버지를 쭉 생각할 때, 어머니 아버지에게 내가 빚을 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내가 빚졌소. 그렇지만 그 빚을 어머니 아버지에게 갚으려고 하지 않았소.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갚으려고 했소. 그게 어머니 아버지의 소원이 아니겠소”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하면서 찬양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내 가정, 우리 문씨 가문에 빚을 졌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탕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문씨 가문에 대해서 빚을 갚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나라와 세계에 갚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나왔습니다. 왜냐? 우리 가정을 대신해서, 우리 가문을 대신해서 내가 빚을 지우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문씨를 대표해서 세계에 환영받고 나라에 환영받게 되면 나만이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문씨 가문이 환영받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어떠냐? 대한민국에 대해 빚졌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쓰는 돈을 한국에다 쓰지 왜 저럴까” 합니다. 나는 빚을 졌다고 하지만 생각이 다릅니다.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세계를 사랑하고 하늘땅을 사랑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세계와 하늘땅 앞에 찬양받게 될 때는 코리아도 찬양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레버런 문 잘했소”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통일교회 교인들한테도 빚졌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를 대표해서 세계와 하늘땅을 위해 선두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잘못한 것은 내가 다 짊어지고 있지요? 미국 식구, 아프리카 식구들의 나쁜 것은 내가 다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패들을 대표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승리하고 세계가 거기에 전부 다 순응하게 될 때 통일교회 자체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미국에 와서 미국 국민들 앞에 반대되는 입장에 있으니까 미국에 빚진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을 대표해서 자유세계를 위해서 공산세계를 방어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전세계의 국민은 레버런 문과 미국을 찬양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위해서는 못 했지만 세계를 위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한 걸 볼 때 미국이 찬양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 레버런 문 앞에 잘했다고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역사의 발전적 길입니다.
그 다음에 선생님이 영계의 협조를 얼마나 받았느냐? 영계에 대해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서 갈 때, 하나님이 해방되는 날에는 그 영계 자체에 승리와 찬양이 벌어질 것입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영계 자체에 승리가 올 수 있습니다. 그때를 대해서는 감사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런 길을 언제라도 가야 할 자신이 자신의 싸움을 끝내지 못하고 자기 문제로 고통을 당해 가지고는 갈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고통,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못 가는 것입니다. (131-35)
고귀한 인생관
그러면 제일 무서운 전쟁이 무슨 전쟁이냐? 우리 내부의 전쟁입니다. 그런 걸 해결하려면 참아야 됩니다. 투쟁사의 발판이 어떤 거냐 하면 나입니다. 그래, 패자가 될 거예요, 승자가 될 거예요? 누구 때문에 승자가 돼요? 전체를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표적을 향해서 이제부터 새로이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131-38)*
천일국 훈독경 제9권 5일, 원문
우리와 선악의 투쟁사
날짜 : 1984. 3. 11(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선악이 나에게 있어서 어디에 근거하고 있느냐
타락한 세상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악이 가는 길과 선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이 없었던 세계는 어떤 세계였을 것이냐? 그 세계에는 하나의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지 않았던 세계의 가는 길은 어떤 길이었으며 타락한 후에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하는 차이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은 언제나 자기가 센터이니까 나를 중심삼고 선과 악의 세계, 혹은 본연의 세계와 타락의 세계가 설정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나를 중심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어떤 것이냐? 선한 것은 어떤 것이냐? 선한 것은 하나님이라는 선한 신과 연결되는 것이고, 악한 것은 선한 신과 반대의 존재인 사탄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선한 길은 영광의 자리에 연결되는 것이요, 악한 길은 지옥이나 감옥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생활도 그렇습니다. 모든 선한 사람들은 자연히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요, 악한 사람들은 자연히 떨어져서 감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선한 것은 위에 서는 것이요, 악한 것은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건 누구를 중심삼고 그렇게 되느냐? 나를 중심삼고 그렇게 됩니다. 언제나 내가 센터가 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나를 중심삼고 여러분 개개인이 다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姓)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개체로서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좋고 나쁘다고 하는 말은 언제나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 두 가지가 여러분의 좌우에 붙어 다닙니다. 선과 악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직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일반 젊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회악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뭐 유토피아니 선의 세계가 어떻다고 하지만, 그게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있다, 자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관점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피안(彼岸)의 세계, 선의 유토피아 세계가 있더라도 오늘의 내가 그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내가 되어 있으면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의 학교를 볼 때 아무리 학교가 좋다고 하더라도 내가 좋은 학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학생이 되지 않으면 좋은 학교는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나와 관계돼 있다, 나와 직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언제나 생각할 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볼 때 나를 어디에 놓고 얘기하느냐? 나를 중심삼고 얘기하는 관념이 없습니다. 좋거나 나쁜 것은 다른 무엇을 중심삼고 생각하기 쉽지, 나를 빼놓고 생각하기 쉽지 나를 중심으로 개재시켜 가지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대개 일반적 경향입니다.
여러분은 나라는 관념이 강합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내 선이 어디에 있느냐 이거예요. 내 선이 어디에 있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선이 그저 나와는 관계없이 땅 위에 굴러다니는 게 아닙니다. 나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직결돼 있습니다. 또, 악이 있다면 악이 어디에 있느냐? 악 자체도 나와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 다 나라는 것을 중심삼고 올라가고 내려간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선할 수 있는 것, 내 선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고 내가 갖고 있는 악을 청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오늘 여러분의 생활의 당면과제입니다. 그 선악이 나에게 있어서 어디에 근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근거지가 어디냐? (131-20)
보다 두려운 사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이중구조, 이중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인간과 육적인 인간으로 돼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이 두 종류의 사람이 하늘을 중심삼은 두 성품으로 나타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써 두 종류가 돼 버렸다 이겁니다.
그래서 악의 기지는 육이 돼 있고, 선의 기지는 영이 돼 있다는 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내 몸은 사탄의 무대가 되어 있고, 내 영, 내 정신은 하나님의 무대입니다. 그러면 (그래서)선악의 근거지는 누구에게 있느냐?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습니다. 지옥을 차지하는 것, 지옥 사람이 되는 것도 내게 달려 있고, 하늘 사람이 되는 것도 내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나를 중심삼고 싸우고, 사탄도 나를 중심삼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같은 양반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2-24) 하고 탄식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상천국 혹은 이상적인 유토피아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몸에 반대되는 요소를 완전히 점령해 가지고 몸과 마음이 그 세계로 갈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걸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리 선한 세계가 있고 아무리 천국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에게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선한 무대로 끌려갈 수 있고 악한 무대로도 끌려갈 수 있습니다. 선한 무대로 끌려가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고, 악한 무대로 끌려가면 사탄이 역사합니다. 그러면 선악이 어떻게 같이 동거할 수 있느냐? 동거할 수 없습니다. 내 몸뚱이에 악이 근거하고 있고 마음에는 하나님이 근거하고 있다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그게 문제입니다.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공존하면 반드시 투쟁합니다. 그것은 내가 투쟁요소를 지녀 가지고 천국에 간들 투쟁요소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투쟁요소를 지니고 천국 갔댔자 자기 본질인 투쟁요소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천국 가면 천국에서 대번에 “너에게는 악이 개재해 있다” 하면서 추방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대체 종교가 뭐냐 이거예요. 내 몸에서 투쟁하는 사탄의 근거지를 청산짓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그게 종교의 사명이라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다 커버해 버리고 상대세계의 선을 찾고 다른 곳의 악을 분별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민주세계는 유심세계고, 공산세계는 유물세계입니다. 이렇게 갈라졌습니다. 크게 둘로 갈라져 투쟁하는 구역이 될 뿐이지, 그 자체, 그 씨는 누가 되느냐 하면 오늘날 인간 자체 개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라는 씨를 심어서 열매맺은 형태다 이겁니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이런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볼 때 민주세계의 문제, 공산세계의 문제를 미국이 책임지고 소련이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그게 미국의 문제냐? 아닙니다. 내 자체에 그런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보다 두려운 사실임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131-22)
나를 전적으로 부정하라
그러면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뭐냐? 어떻게 이 사탄세계, 악을 청산짓느냐? 어떻게 악을 청산짓느냐? 그것을 대체로 말하면, 육적인 기준에 사탄이 있기 때문에 육적인 기준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역사가 투쟁사인데, 반드시 선악이 투쟁하고 있다 이겁니다. 이걸 청산짓고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투쟁하는데 다른 사람이 투쟁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투쟁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 이겨야 되겠다” 그게 아니라 나부터 이겨야 됩니다. 내가 첫째입니다. 민족에서 이긴다든가 국가에서 이기고, 세계에서 이기고, 영계에서부터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부터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선한 것을 확실히 알고 악한 것을 확실히 아느냐? 진리를 알아야 됩니다. 진리를 알면 참 아닌 것에서 해방됩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그랬는데, 참을 아느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하자는 것입니다.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몸뚱이를 쳐야 됩니다. 존재하기 위해서 계속해야 됩니다.
일상생활에 있어서 사람들은 좋은 게 있으면 좋은 것에 먼저 손이 갑니다. 좋은 것을 먼저 먹으려고 합니다. 이것을 본질적으로 보게 될 때 사탄 편 악한 음식을 먹느냐, 선한 음식을 먹느냐를 나에게 묻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먹는데도 선한 음식을 먹느냐, 악한 음식을 먹느냐 하는 두 가지입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우주의 공동 물건입니다. 공동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 음식이 말할 때, 아무 (선한)사람이 자신을 먹으면 그 사람에게 선한 음식이 돼 가지고 보다 가치 있는 영양소를 만들어 줄 것인데 악한 녀석이 먹기 때문에 악한 영양소가 돼 버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입는 옷도 그렇습니다. 옷이 말하기를 “아, 나는 선한 사람한테 입혀야 되겠다. 악한 사람은 싫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물론, 일상 먹고사는 일체도 그렇습니다. 생각하는 것에도, 오늘 말한 말에도 선악이 있습니다. 모든 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갈라지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느냐? 내가 중심이 되어야 되는데 내가 어떤 사람이 돼야 되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사탄을 피해 가지고, 사탄을 방어하면서 선한 길로 갈 수 있는 그 길은 어떤 길이냐?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가르쳐 주는 것은 선한 길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할 때, 종교의 가르침의 내용은 대체로 뭐냐? 보편적으로 어떤 내용을 가르쳐 주느냐? 종교의 가르침은 이 몸뚱이가 좋아하는 것을 다 거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높아지고자 하는 것은 다 거부합니다. 그래서 옛날 중세에도 수도사들이 고행을 했습니다. 불교 같은 데서도 고행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몸뚱이는 배고프면 도둑질이라도 해야 된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도둑질을 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배가 고프면 도둑질이라도 해서 먹어야 된다고 하는 거기에서 하늘, 선은 “안 된다. 죽더라도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합니다. 먹는 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 졸음이 온다고 해서 체면도 모르고 염치도 모르고 자기 위신도 모르고 잠만 자면 맹탕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세 제자가 졸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죽게 되었는데도 체면이고 무엇이고 상관없이 졸음이 오니까 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일수록 예를 지켜야 되고 예법을 지켜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정서적인 면, 사랑문제를 어떻게 컨트롤하느냐 이겁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몸뚱이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종교세계의 중요한 브레이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전적으로 부정하라는 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투쟁사’ 하게 되면 여러분은 그저 외부에서 벌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여러분 내부에도 그 투쟁사가 있습니다. 그래, 여러분은 싸우지요? 눈은 눈 싸움을 하고, 코는 코 싸움을 하고, 귀는 귀 싸움을 하고, 입은 입 싸움을 하고, 손은 손 싸움을 하고, 마음은 마음끼리 전부 다 싸웁니다. (131-24)
모든 악의 근거지가 나다
그러면 그 투쟁사에서 무엇을 남기고 가야 되느냐? 선을 남기고 가야 됩니다. “그거 될 대로 되라” 그러는 사람은 파괴됩니다. 옥살박살되어 파탄돼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전쟁 중에서 제일 무서운 전쟁은 뭐냐? 나의 몸 마음을 중심삼고 싸우는 전쟁이 역사상에 제일 무섭고 영원히 가는 전쟁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2차대전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한 전쟁을 하고 있는 나가 문제입니다. 영원한 전쟁의 일선 무대에 선 나라는 걸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탄세계에서 선한 세계로 뽑아내기가 얼마나 힘드냐 이겁니다. 선한 편에서 사탄 편으로 가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사탄 편에서 선한 편으로 가기는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몇 배, 몇 십배 힘듭니다. 악은 뭐냐? 내려가는 것입니다. 내려가기는 쉽지요? 올라가기는 얼마나 어려워요! 몇 십배 힘들다는 거예요. 올라가려면 내려가는 힘을 전부 다 부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걸 이기고야 올라갑니다. 선한 입장에서는 떨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선한 데서 내려갈 수 없도록 이 선한 편의 힘을 어떻게 강하게 만드느냐? 습관적으로, 고의적으로 강한 힘을 만들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런 습관성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치즈니 버터니 햄버거에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에 가면 밥이고 무슨 고추장이고 김치가 다 싫지만, 미국만 오면 오자마자 어떻게 맥도널드 하우스에 갑니다. 그게 습관성입니다. 그건 외국에 가서 십 년, 이십 년을 살아도 죽은 것이 아니고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나는 선이 좋다” 할 수 있는 습관성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 선한 세계, 유토피아 세계는 누구로 말미암아 나타나느냐?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거기에서 갓(God)은 무슨 갓이고, 맨(man;사람)이 무슨 맨이냐? 굿 갓(good God;선한 하나님), 굿 맨(good man;선한 사람)이다 이거예요. 그럼, 악한 세계는 무엇이냐? 이게 사탄이고 이것이 맨인데, 배드 맨(bad man;악한 사람), 배드 갓(bad God;악한 신)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요소에 해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서 제거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천국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급선무로 결정해야 할 제1차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에게 사탄이 있어요? 악한 사탄과 악한 사람이 내게 접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그것을 결정해서 청산지어야 할 중요한 것입니다. 그 대신 굿 갓, 굿 맨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느냐 이겁니다.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도 결정하지 못했으면서 통일교회가 어떻고 뭐 어떻고, 하나님이 어떻고 미국이 어떻고, 세계가 어떻다고 하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선 하늘 편에 서 가지고 세계를 말하고, 선한 사람이 돼 가지고 세계를 말해야 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래도 세상에서 좀 낫다는 사람들인데, 그 자체가 생각할 때 “내가 선한 편에 서 있다” 할 수 있는 생활을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해요? “악한 편에 서 있다” 하는 생활을 몇 시간을 해요? 이것을 비례적으로 볼 때, 선한 편에 섰다고 하는 시간은 몇 시간도 안 되고 악한 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라구요, 몇 시간인가. 이게 들어갔다 나갔다하는 피스톤 같은데 내가 나쁜 피스톤이에요, 좋은 피스톤이에요? 좋은 피스톤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웃을 게 아닙니다. 공산주의 문제, 세계문제보다 내 문제가 더 큽니다. 내 문제가 더 큰 문제입니다.
오늘 아침에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부 다 “나는 좋고, 세상이 나쁘다. 악한 것은 나하고 상관없고 세상과 관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나와 직결돼 있다는 게 심각한 것입니다. “모든 악의 근거지가 나다. 악의 근거지, 본향 땅이 나로구나”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131-26)
모든 일체에 선악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에 있어서 총평을 하여 결론적으로 우리가 알아듣기 쉽고 간단한 내용을 한마디로 어떻게 수습해야 되느냐? 어떻게 선한 편에 언제나 서 있고 악한 편에서는 언제나 도피하느냐? 이런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를 주장할 때는 사탄이 주관하고, 나를 부정하고 전체를 주장할 때는 하나님이 주관한다는 관념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뭐냐? 내가 빚을 지우려고 하는 것은 공적이요, 빚을 지려고 하는 것은 사적입니다. 사적이기 때문에 사탄편이다 이겁니다. 일생 동안 빚을 안 지겠다는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 대신 내가 빚을 지워야 된다 이겁니다. 이 한마디로 갈라집니다. 상대가 나에게 열만큼 했으면 나는 열 하나 해야 됩니다. 그게 이치입니다. 상대가 백을 했으면 나는 백 하나, 백 열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 선 이상에 언제나 있습니다. 여기 이상에 언제나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열의 빚을 지고 아홉만 했으면 벌써 여기로 내려와 있다 이겁니다. 백의 빚을 졌는데 구십의 빚을 갚았으면 벌써 여기에 내려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이론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위해서 살라” 하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가정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어머니 아버지한테 빚을 안 져야 되겠다” 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있으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이상을 내가 갚아 줘야 되겠다” 이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젊은이들은 “아이구, 부모님이 나를 사랑 안 해준다” 이것만 생각한다구요.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겠다” 이런 생각은 안 합니다. 이게 사고입니다. 그건 부모가 나쁘면 여러분도 나빠진다는 결론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나는 부모를 사랑한다” 그래야 됩니다. 그래야 효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도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우리 아들이 제일이다” 그럽니다. 올라가라, 올라가라, 자꾸 올라가라 하는 것입니다. “제일이다” 하고 올라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넘버원이 뭐냐? 너는 여기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넘버원인데,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원칙을 두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그랬는데, 그게 얼마나 멋진 말이냐! 여기에 쏙 들어옵니다. 원수를 완전히 점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는 원수도 머리를 숙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빚을 진 사람 가운데 가슴을 펴고 이렇게 자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돈에 대해서 빚진 사람도 전부 다 굴복당하는데, 사랑에 대해서 빚을 졌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건 생명을 바쳐 갚아도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주장하는 데 있겠어요, 남을 위해서 주장하는 데 있겠어요? 남을 위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전쟁은 치열하고 제일 무서운 전쟁입니다. 영원을 두고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패를 결하기 위해서, 승리의 길을 가기 위해서 이런 결정적인 원칙을 세웠다고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쏙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보고, 듣는 것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듣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탄은 나를 중심삼고 보려고 하는데, 전체를 위하면 사탄은 떠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남자 여자가 있어 가지고 결혼할 때도 제일 잘난 남자나 제일 잘난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제일 못난 남자나 제일 못난 여자와 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저들과 같이 미남 미녀가 결혼하는 것보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그게 얼마나 멋지냐 이겁니다. 그러면 거기는 사탄이 얼씬을 못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밤이 되나 낮이 되나 무서운 게 없습니다. 밤은 사탄이, 악이 지배한다고 했는데 악한 세계도 다 다닐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그런 사람은 밤중에도 등대와 같이 빛난다 이겁니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가더라도 흑암의 권세권 내에서 생명의 길을 원하는 사람들은 내 뒤를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암만 칠흑 같은 밤이라도 내가 등대와 같은 빛을 가지고 있으면 생명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옵니다. 그래서 밥을 먹으나 글을 쓰나 모든 일체에 선악이 있다는 것입니다. (131-28)
하나님 앞에 빚을 지우려고 한다
미국이 한때는 레버런 문 때문에 얼마나 야단했어요! 야단했지요? 지금도 야단하지만 말이에요. 내가 미국에 돈벌려고 왔어요? 또, 찬양받고 환영받으려고 왔어요? 아닙니다. 미국 국민을 찬양하고 미국을 구해 주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 국민은 나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매장하려고 그럽니다. 나 미국한테 빚지지 않았습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도 누구에게 빚을 안 졌고, 이 나라를 사랑하는 데도 누구에게 빚을 안 졌고, 이 나라에 돈을 쓰는 것도 누구에게 빚을 안 졌습니다. 원수의 나라 미국이 망할까 봐 <워싱턴 타임스>를 만들고, 전세계와 타협할 수 있는 하나의 기구를 만들어 가지고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공산당과의 싸움을 도맡아 가지고 미국 앞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나고 보니까 미국 전체가 레버런 문에게 빚진 줄 알게 되었습니다. 빚진 줄 알게 될 때는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물러가는 것입니다. 반대하던 것은 물러가는 거예요. 일생 동안 살면서 내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일하고 전체를 위해서 얼마나 피를 뿌렸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저나라에 가서 평가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미국이면 미국, 자유세계에 나타나 가지고 환경적으로 어떤 영향을 줬느냐? 악한 영향을 줬느냐, 좋은 영향을 줬느냐 할 때 좋은 영향을 줬습니다. 그러면 자꾸 올라갑니다. 아무리 욕을 먹고 반대를 받더라도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만히 있지만 통일교회가 얼마나 올라온지 알아요? 여러분은 몇 년이 되었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통일교회는 얼마나 올라온지 아느냐 이겁니다. 요즘에 보면 미국의 저명한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아와서 “우리를 도와주소” 이럽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싸움은 이미 끝내고 나라와 세계의 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을 보게 된다면 선생님은 낮잠을 못 잡니다. 낮잠을 길게 자고 싶어도 낮잠을 못 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잠을 잊으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서 내가 일하려고 합니다. 이 시간에도 교인들은 일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빚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죽음의 자리에 가더라도 선생님에게 “나 이렇게 선교지에서 죽소, 선생님” 이런 원망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죽으면서도 선생님에게 머리를 숙이고 가려고 합니다. 선생님도 그래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야단하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 나는 이런 책임자로서 고생하는 걸 왜 몰라줘요”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하나님 앞에 빚을 지려고 안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빚을 지우려고 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빚을 어떻게 지우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억천만 사탄이 개입해 있다고 하더라도 물러갑니다.
그래, “레버런 문! 나빠, 나빠” 하며 자꾸 두드리는데도 자꾸 올라갑니다. 통일교회 레버런 문은 반대를 받으면서 발전합니다. 왜 그러하냐? 그게 선이기 때문입니다. (131-31)
자기 자신을 점령 못 하는 사람이 세계를 점령할 수 없다
이런 것을 아는 레버런 문은 편한 자리에 갖다 놓더라도 편하게 못 삽니다. 거기에서 도망가 가지고 기어다니면서 또 그 놀음을 합니다. 이스트가든의 오래된 사람들,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선생님에게 졌다고 합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나에게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하냐? 내게 사탄이 안 들어오고 하나님이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깁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안 나오니까 주일날 재미없지요? 왜냐하면 선생님이 참사랑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게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나한테 빚을 진 것입니다. 빚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받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받아 가지고 자기가 소화하고 자기가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누어 줘야 됩니다. 가지 위에 가지가 나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지가 그렇게 커 나갑니다. 선생님이 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도 나가서 그 분야에 공헌한 입장에 서면 모두 다 여러분이 없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여러분을 따라다니고 좋아합니다. 생명의 요소를 지니면 법대로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투쟁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느냐, 승자가 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승자가 돼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일생을 이렇게 간다” 하고 딱 정해야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나, 어린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사람이라는 사람은 모두에게 같은 마음을 가지고 대하고 위하겠다고 하는 것을 딱 정해 버려야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이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하기 전에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뭘 했느냐 하는 걸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게 얼마나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물로 말하면, 저쪽은 높은 물이고 나는 낮은 물이면 내가 떨어져 내려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내게 접근해 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공기가 진공상태가 된다면 고기압권은 자동적으로 밀려옵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그래서 레버런 문이 가는 데는 그러한 저기압권을 연결시켜 줍니다. 그래서 선한 영들이 전부 몰려오고 선한 운동이 벌어집니다. 즉,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는 데는 언제나 문제입니다. 가만히 있더라도 싸도 싸움이 벌어집니다. 밖에서는 좋으니 나쁘니 갑론을박해 가지고 야단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요즘에도 얼마나 야단해요! 요즘에 와 가지고는 레버런 문이 좋은 사람이라고 증거하고 들어옵니다. 그렇다고 옛날의 레버런 문과 오늘의 레버런 문이 다르냐? 같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오늘날 레버런 문을 지지하고 다 그러니 미국이 살 수 있는 가망시대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2차대전이 문제가 아니고 지금 소련과 미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속에서 영원히 계속할 이 전쟁을 어떻게 평화로 뒤집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거 안 되면, 세상이 평화세계가 되더라도 그건 전부 지옥이 됩니다. 선생님이 이것을 알고 이 길을 나설 때 제일의 표어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점령 못 하는 사람은 세계를 점령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극단적인 저 끝까지 갔다가 돌아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세계에서 위해야 할 곳이 이곳만이 아니고 다른 곳에 더 큰 것이 있다고 할 때는 얼른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통일교회가 세워졌고,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셨고, 나 하나 때문에 영계에 많은 문제가 벌어지고 지상에도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지금 남미의 위정자들은 물론 미국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해 가지고 만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131-32)
역사의 발전적 길
나는 이제 죽을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놓고 어머니 아버지를 쭉 생각할 때, 어머니 아버지에게 내가 빚을 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내가 빚졌소. 그렇지만 그 빚을 어머니 아버지에게 갚으려고 하지 않았소.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갚으려고 했소. 그게 어머니 아버지의 소원이 아니겠소”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하면서 찬양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내 가정, 우리 문씨 가문에 빚을 졌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탕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문씨 가문에 대해서 빚을 갚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나라와 세계에 갚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나왔습니다. 왜냐? 우리 가정을 대신해서, 우리 가문을 대신해서 내가 빚을 지우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문씨를 대표해서 세계에 환영받고 나라에 환영받게 되면 나만이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문씨 가문이 환영받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어떠냐? 대한민국에 대해 빚졌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쓰는 돈을 한국에다 쓰지 왜 저럴까” 합니다. 나는 빚을 졌다고 하지만 생각이 다릅니다.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세계를 사랑하고 하늘땅을 사랑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세계와 하늘땅 앞에 찬양받게 될 때는 코리아도 찬양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레버런 문 잘했소”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통일교회 교인들한테도 빚졌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를 대표해서 세계와 하늘땅을 위해 선두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잘못한 것은 내가 다 짊어지고 있지요? 미국 식구, 아프리카 식구들의 나쁜 것은 내가 다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패들을 대표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승리하고 세계가 거기에 전부 다 순응하게 될 때 통일교회 자체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미국에 와서 미국 국민들 앞에 반대되는 입장에 있으니까 미국에 빚진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을 대표해서 자유세계를 위해서 공산세계를 방어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전세계의 국민은 레버런 문과 미국을 찬양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위해서는 못 했지만 세계를 위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한 걸 볼 때 미국이 찬양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 레버런 문 앞에 잘했다고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역사의 발전적 길입니다.
그 다음에 선생님이 영계의 협조를 얼마나 받았느냐? 영계에 대해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서 갈 때, 하나님이 해방되는 날에는 그 영계 자체에 승리와 찬양이 벌어질 것입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영계 자체에 승리가 올 수 있습니다. 그때를 대해서는 감사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런 길을 언제라도 가야 할 자신이 자신의 싸움을 끝내지 못하고 자기 문제로 고통을 당해 가지고는 갈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고통,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못 가는 것입니다. (131-35)
고귀한 인생관
그러면 제일 무서운 전쟁이 무슨 전쟁이냐? 우리 내부의 전쟁입니다. 그런 걸 해결하려면 참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상에 천국이 안 되고 천상에 되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루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와 선악의 투쟁사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말뚝을 딱 박아 가지고 경계선을 중심삼고 찾아가야 됩니다.
투쟁사의 발판이 어떤 거냐 하면 나입니다. 그래, 패자가 될 거예요, 승자가 될 거예요? 누구 때문에 승자가 돼요? 전체를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표적을 향해서 이제부터 새로이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모든 면에서 새로이 전부가 이런 걸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만 미인하고 한 자리에 벌거벗고 있더라도 “저거 잡아먹겠다” 하는 생각을 못 한다 이겁니다. “이 여자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빚 지우겠느냐”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녀를 찬양하고 그녀를 위해서 생각하는 게 얼마나 고귀하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남자라서 미국의 여자들이 선생님보고 울고불고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생각 안 합니다. 내게 키스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허락하면 전부가 선생님에게 키스하려고 할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이상 사랑하고, 형님 누나 남편 아내 이상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은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마음입니다.
얼마나 고귀한 인생관이에요! 이런 고귀한 인생관이라는 걸 알고 “힘차게 해라, 심각하게 해라” 하다가 “아이구, 이거 어떻게 통일교회를 믿나” 하지 말고 씩씩하고 멋지게 살아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살겠다는 사람들은 한번 손 들어 보자구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131-38)*